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성급했던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따지고보면 마블의 '어벤져스'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코믹스 팬들의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을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 관한 것이었다. 본래 영화화 측면에서도 마블보다 훨씬 더 먼저 관심과 성공을 가져갔던 DC코믹스는 차근차근 시네마틱유니버스를 완성시킨 마블의 성공을 보며 뒤늦게 (많이 늦게) '저스티스 리그' 영화화 계획에 들어 갔는데, 생각보다는 빠르게 바로 이 작품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훨씬 오래 되었음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영화화가 되었다고 얘기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블의 '어벤져스'에 비해 DC의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조금 성급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력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더 좋을 수 있었고, 이 기획의 기대감을 감안했을 때 더 좋았어야 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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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역시 2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뚝뚝 끊어지는 듯한 편집점과 내러티브의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본격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캐릭터들 간의 충분한 연결고리와 갈등 구조를 풀어냈더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득이 되었을 텐데, '배트맨 대 슈퍼맨'은 지루함도 다 지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갈등을 풀어내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맨 오브 스틸'까지만 보았던 관객 입장에서는 슈퍼맨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배트맨의 이야기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바로 중간부터 시작하는 경우라 쉽게 빠져들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본 관객 입장이라고 해도 놀란의 배트맨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사이에는 분명 스타일은 물론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간극이 있기 때문에, 만약 DC가 놀란의 배트맨을 연장선으로 가져가려고 했다고 보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러울 수 밖에는 없는 연결이었다. 놀란의 배트맨은 '다크나이트'라는 기본 테마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갈등과 고민을 끝까지 파고드는 범죄 드라마였다면, 잭 스나이더가 다루는 배트맨은 그 일들을 겪은 한 참 뒤의 배트맨으로서 조금은 더 거칠어 지고 과격해지고, 자경단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에 있어서도 놀란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시기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이 연결은 조금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는 없던 경우라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기는 부족했다.


DC코믹스의 '어벤져스' 격이라 할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가 조금은 성급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독립적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물론 '헐크'도 리부트를 겪기는 했지만)난 다음의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이번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밴 애플렉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바로 '맨 오브 스틸' 이후의 슈퍼맨과 결합해 버린 영화이기에 (여기에 원더우먼까지 등장하고), 조금은 성급함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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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테마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 바로 그 좋은 재료를 이렇게 쉽게 써버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과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을 정말 좋아하는 팬으로서, 히어로물이 사유할 수 있는 담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소재이자 프로젝트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과 협력을 다룬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런 테마는 어설프게 그리고 액션 측면에서도 100% 만족감을 주지 못한 잭 스나이더의 결과물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잭 스나이더가 놀란의 '다크나이트'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스 짐머의 장엄한 음악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분위기를 깨버린 건 역시 그 갑작스러운 갈등 해결의 내러티브였는데, 아무리 이 재료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를 제외하고 순수 액션 블록버스터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 갈등해결을 비롯한 내러티브의 전개는, 다들 너무 갑작스럽고 순진하기까지 한 진행을 보여준다. 그렇다보니 배트맨은 물론이고 슈퍼맨까지도 '왜 저러지?' 혹은 '저렇게 하면 될걸 왜 그러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렉스 루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점을 다 포기한다면 액션 측면에서 기가 막힌 볼거리를 제공해서 압도해 버려야 하는데, 뭐 별로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웅장한 음악에 비해 실상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던 액션 연출이 한 번 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액션은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니고 원더우먼의 등장 뿐이었다 (원더우먼은 이 등장 씬을 남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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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생각보다 괜찮고,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크리스찬 베일은 보여줄 수 없었던 묵직한 덩치 액션(?)이 가능해 시기적으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밴 애플렉의 독립적인 배트맨 영화가 가능하다면 (아니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한 이상 이건 꼭 필요하다)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고, 크리스토퍼 리브 이후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 역시 액션 중심의 영화가 아닌, 슈퍼맨(클락 켄트)의 내면의 테마를 기반으로 전개 되는 '맨 오브 스틸' 이후 슈퍼맨 영화를 하나 더 진행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역시 충분하다. 좀 갑작스럽기는 했으나 원더 우먼 역시 이번 작품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들려준 것이 없음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을 비롯해 플래시나 아쿠아맨, 사이보그 등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 시켜도 좋겠다. 아, 그리고 그린 렌턴도 합류해야 할 텐데 (참고로 이번 관람 전에 코믹스로 저스티스 리그를 읽었더니 그린 렌턴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 이미 마블의 '데드풀'을 통해 스스로 디스를 완료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여기도 리부트가 필수적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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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더라면 더 흥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 안볼 수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아...그래서 또 아쉬움이 남는다...



1. 아이맥스 3D로 1차 관람하고 2차로는 돌비 애트모스로 관람할 예정인데, 예상으로는 돌비 애트모스가 더 적절한 포맷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맥스 3D도 물론 좋았지만 최적의 포맷이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답할 듯.

2. 별 것 아니었지만 초반에 조금 그랬던게,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겨우(?) 레니게이드를 탄다? 동네 나갈 때도 람보르기니 타던 분이...

3. 제레미 아이언스가 뛰어난 배우라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알프레드 캐릭터는 이미 마이클 케인이 너무 완벽하게 해 냈던 바람에 더 보여줄 여백이 남지 않은 듯 하더군요.

4. 잭 스나이더는 참..... 애증의 감독인듯 ㅎ

5. 관련 예전 글들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http://realfolkblues.co.kr/696)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http://realfolkblues.co.kr/700)

* 맨 오브 스틸 _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http://realfolkblues.co.kr/1812)

* 왓치맨 _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http://realfolkblues.co.kr/89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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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우주를 건축하고 낭만을 이야기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를 개봉 첫 주말 아이맥스로 보았다. '인터스텔라'는 그의 작품답게 원초적으로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복잡한 설계가 밑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낭만과 감동이 자리 잡고 있는, 딱 크리스토퍼 놀란 다운 작품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Gravity, 2013)'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본격 우주 체험 영화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 밖에는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던 우주라는 공간과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래비티' 이후엔 그 어떤 영화도 (최소한 단 기간 내에는) 우주를 다시 배경으로 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 거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놀란은,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우주를 그리는 동시에 또 한 번 설계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 다층적이다 못해 다 차원적인 구조를 구현해 냈고, 여기에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라마까지 담아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스텔라'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놀란의 영화관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해 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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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본격적인 이유를 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치밀한 설계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주로 만드는 설계도는 무언가 학구적인 의욕을 한 껏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 형태로 구성한 '메멘토'도 그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다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인셉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100% 완벽하게 분석해 내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었던 것처럼,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우주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블랙홀, 웜홀, 4차원, 5차원 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시각적으로 수긍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학구적으로 파고든 설계 탓에 자주 그가 만든 세계는 논리적 오류나 설정의 오류라는 많은 의견들과 부딪히게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그의 동생과 함께 쓴 시나리오가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있는 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왜 이런 방식을 매번 택하고 있는 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인터스텔라'를 통해 또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이렇게 영화를 복잡하고 설명하듯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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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그 세밀한 설계 자체가 갖는 중요성, 그러니까 '인터스텔라'로 비유하자면 5차원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영화화하기 위해 이를 논리적으로 뒷 받침할 만한 만반의 준비와 설계를 건축하듯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구조와 설계 자체를 중심에 둔 다는 얘기다. 사실 대다수가 이 의견에 손을 들어줄 텐데,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사실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인셉션'을 보고나서 부터인데, '인셉션'이 개봉하고 나서 흡사 논문에 가까운 영화 글들이 수를 놓았을 정도로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오히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라는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관한 아주 강력한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놀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아내를 잃은 남편이거나 가족을 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의 분석은 이미 여럿 있어 왔는데, 여기에 더 힘을 보태서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계한 구조적 배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그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터스텔라'를 보며 또 한 번 강하게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결국, 기억을 이야기할 때도, 꿈 속의 꿈을 이야기할 때도, 코스츔을 입은 외로운 영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우주 속 웜홀 뒷편의 5차원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한 인간의 드라마를, 더 나아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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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측면이 놀란의 모든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고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의 경우 이 가운데 가장 감정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편이고, 이 작품 '인터스텔라'는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구조의 황홀함에 압도되어 만족감을 얻기에 벅찼었지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니 너무도 명백한 코브의 슬픈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셉션'은 놀란 영화의 큰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와 감정, 혹은 설계와 낭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 아니 비중이 크다기 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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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개념의 표현 방식 때문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감정적이라고 느꼈던 '인셉션'에서도 그 표현 방식은 직접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인터스텔라'에서의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서는, 오히려 한편으론 이런 우주 영웅 가족영화에 대명사로 불리우는 '아마겟돈'보다도 더 강력한 세기로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서 영화의 중반부까지 우주와 웜홀에 대한 방정식을 풀 듯 논리의 파도를 따라오던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 사랑이야!'라는 영화의 후반부가 맥이 빠질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인터스텔라'의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었을 뿐 놀란의 영화는 항상 이런 드라마를 바탕에, 아니 중심에 놓았었기에 크게 이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 사랑이었어!'라는 식의 전개는 이 5차원이라는 개념을 재료로 하기엔 너무 1차원적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게 마련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찰리 카우프만이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통해 본인의 메세지를 정말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것처럼, 본인이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던 설계와 감정의 개념을 한 발 더 나아가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나싶다. 이 작품에서 후반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차원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라는 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을 꺼내놓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 인간이 알아 낸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혹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과학적 산물 혹은 미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설명이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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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접근이었는데, 처음엔 이 같은 영화의 태도가 '와, 정말 대단한데!'라고만 느껴졌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Contact, 1997)'가 던진 화두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경험한 것'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메시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즉, 아빠가 똑같이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가 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영화가 바라보든 태도는 이전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터스텔라'가 왜 흥미로운 작품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콘택트'와 근본적으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콘택트'는 이 광할한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라는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지만, '인터스텔라'는 그 중심이 외계 생명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혹은 인간의 진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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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어쨋든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처럼 하나 하나 따져보면 '왜 그런한가?'에 대해 소품이나 배경, 인물, 대사 등 모두 이유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다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강력하게 드러난 낭만적인 가족 드라마이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다들 순수하리만큼 낭만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마치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한 디지털의 시대에 끝까지 필름 촬영을 우선하고 3D를 배제해 온 그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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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차원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건 '그래비티'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체험이었어요. 오히려 이 부분은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오면 서플먼트를 통해 좀 더 구조적인 뒷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 한스 짐머의 음악이 참 좋았어요. '다크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그의 작품인듯. 김혜리 기자의 말만 따라 정말로 놀란 작품만 특별히 더 신경 써주는 것 같은 느낌이 ㅎㅎ


3. 본문에도 전반적으로 뉘앙스를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놀란은 '5차원은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 만큼, 극 중 쿠퍼가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의 구성상 중간 정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마지막 대사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던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처럼 감정적으론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은.


4. 그냥 다른 얘긴데, 만약 이 영화를 그대로 번역해서 '별과 별 사이'로 개봉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감독이 전한 의도는 분명 '별과 별 사이' 일텐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어버리는 묘한 영어 제목 번역의 현실. 꼭 이 작품 만의 얘기가 아니라 가끔 미국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제목들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더군요. 우리는 아무래도 영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오히려 번역하게 되면 느낌이 애매해지는 경우도 발생하다보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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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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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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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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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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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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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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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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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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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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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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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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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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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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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Batman Begins, 2005)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



다음주면 드디어 개봉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감상에 더 효과적일 만한 각종 작품, 자료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놀란 배트맨 3부작의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배트맨 비긴즈'는 개봉 당시에도 매우 만족했던 작품이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전반적으로 '다크나이트'급의 열광은 없었으며, 별로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던 당시 분위기였다), '다크나이트'를 보고 나서 다시 보게 된 비긴즈는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라이즈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꼭 한 번 다시 볼 만한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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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역시 '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나?'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비긴즈' 영화의 숙제이자 반드시 설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특히 배트맨의 경우 후천적인 사고에 의해 본의아니게 히어로가 되었거나 아니면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 난 경우와는 달리, 본인의 의지에 따라 '배트맨'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왜?'라는 물음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배트맨 비긴즈'는 정말로 탁월한 작품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팬들이 '다크나이트'보다도 이 작품을 더 꼽기도 하고, 결국 이 3부작이 완성되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라는 물음에 답해야 할 '배트맨 비긴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에 대한 완벽하고도 충분한 답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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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기존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 이전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굉장히 많은 담론들과 이 3부작을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심어져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브루스 웨인은 스스로가 겪는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 혹은 중간의 해결책으로 배트맨이라는 아이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단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겪게 된 이후의 공포와 복수의 트라우마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을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 브루스는 그 이전 동굴에 떨어져 박쥐들로 표현된 공포를 겪은 것이 가장 큰 모티브인 동시에 고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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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메인 테마가 '공포'와 '극복'에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죽음, 특히 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히 부모를 잃은 것에 대한 상처가 아닌 공포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브루스가 어려서 깊은 우물에서 공포에 빠져있을 때, 이를 극복해준 매개체는 다름 아닌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이었다. 다른 히어로들이 아버지를 비롯해 자신에게 직언을 해준 이의 말을 고비 때마다 되새기며 다시 초심을 다잡는 것과는 달리, 브루스 웨인은 초심을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에 힘입어 자신의 공포를 극복해내게 되는 것이다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 라는 말은 단순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된 이후에도 겪게 되는 일들이나 배트맨이 되려고 한 목적 등을 따져본다면 '올라오면 된다'는 건 브루스 혼자서는 이끌어낼 수 없었던 해결책이었기에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정리하자면 어린 브루스는 공포를 스스로 극복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로 인해 극복하고 의지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아버지를 잃게 되자 다시금 공포에 휩싸인 동시에 본인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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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만약 브루스가 본래 계획했던 대로 스스로 복수할 수 있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공포 - 극복(아버지) - 아버지의 죽음 - 복수 (범인의 처단) 으로 내면적 고통을 해결했거나 혹은 스스로 극복하는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의 손으로 복수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 이 기회를 다른 곳 (고담의 악당들을 퇴치하는 것)에 쓰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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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결국 다른 자의 손에 죽게 되자 혼란을 겪던 브루스는, 고담의 지배자인 팔코니와 만나 또 다른 공포를 접하고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나기로 작정한다. 노숙자와 옷을 바꿔 입고는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뛰어가는 이 뒷 모습은, 이후 '다크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고담의 다크나이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뛰어가는 그 뒷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후 라스 알굴과 듀커드를 만나 자경단으로서 훈련을 받는 것 역시 브루스에게는 공포를 극복하는 하나의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은 대부분의 다른 영웅이 그러하듯이 코스튬을 입고 나선 이후 바로 완전한 영웅으로서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는 훈련 기간이 많아서인지 첫 시도에서도 거의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 역시 공포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는데, 즉 브루스 웨인이 진정한 배트맨이 된 시기는 스스로 공포를 극복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주적 중의 하나로 닥터 크레인 (허수아비)이 등장하고 있는데, 닥터 크레인의 주 공격 포인트가 바로 상대의 공포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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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과 상대하게 된 배트맨은 바로 이 공포를 자극하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거의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 안고 마는데, 영화는 이 지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아직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코스튬을 입고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자신의 공포를 극복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다시 한 번 알프레드를 통해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유산(재산적인 것 말고)을 비로소 흡수한 브루스는,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공포를 극복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존재인 듀커드와의 일을 마무리 짓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보면 볼 수록 완성도가 높은 것이 '비긴즈'로서 해야할 숙제들을 모두 만점으로 완료한 동시에 '다크나이트'로 가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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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대놓고 다음 편의 주적은 조커가 될 거라는 장면(이건 암시라고 하기엔 너무 직접적이니)은 이미 '다크나이트'를 통해 보았던 것처럼 속편의 주제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다크나이트'와 연결지어 보면 이 마지막 조커 장면 외에도, '다크나이트'에서 주로 다뤄지는 갈등의 요소에 대한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입장과 생각을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즉, 브루스 웨인이 자신이 공포를 극복해내며 드디어 배트맨으로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존재의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다는 것을 '배트맨 비긴즈'는 은근히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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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음 주 개봉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위해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생각은 '배트맨 비긴즈'를 보았을 때 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고 나서야 더 깊게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 이제 여섯 밤만 자면 그 대단원을 만날 수 있겠구나 ㅠ



1. 다시 본 '배트맨 비긴즈'는 '다크나이트'에 비해 유머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거의 시퀀스마다 하나 둘 씩 등장할 정도니까요. 어쩌면 시작부터 너무 무거워만 질 수 있는 것을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르겠네요.


2. '다크나이트' 역시 주말에 다시 보긴 할 건데, 또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비긴즈'에 비해 예전에 써놓은 글의 양이 많다보니 말이죠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http://realfolkblues.co.kr/696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http://realfolkblues.co.kr/700


3. 모든 이미지는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서 직접 캡쳐하였습니다.


4. 이건 그냥 보너스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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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재미있는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ㅋ 매번 눈 주위만 팬더처럼 까맣게 칠해야하는 배트맨의 이면. 이 장면은 '킥 애스'에서 직접적으로 나오기도 했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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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저 예고편 만으로 이렇게 두근 거렸던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자신의 전작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미 제작이 결정되던 그 순간부터 영화 팬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과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는 '다크나이트'의 후속작 '다크나이트 라이지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의 공식 티저 예고편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이번 예고편을 통해 '다크나이트 라이지즈'는 확실히 '배트맨 비긴즈 (Batman Begins, 2005)'로 부터 시작된 서사의 결론을 짓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마지막과 맨 처음은 여러모로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을텐데, '라이지즈' 덕에 조금은 평가절하를 받고 있는 ('다크나이트'에 비하자면) '배트맨 비긴즈'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악당인 '베인'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것과 동시에, 배트맨이 정말로 힘겨워 하는 장면도 엿볼 수 있어 이 서사시의 마지막 대결이 어떠한 세기로 전개될지 벌써부터 심장이 요동치게 만든다.

티저 예고편만으로 이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들다니!
이 크리스토퍼 놀란 같으니라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예고편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저서 '김태훈의 랜덤 워크'를 읽던 중 한 문장이 하나의 글감을 제공했다. 그는 1960년대를 두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이 신보를 발표하고, 고다르와 트뤼포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시대'라
고 이야기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많았던 터라 공감이 많이 되는 구절이었다. 나도 가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 당시 개봉관에서 이 주윤발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비틀즈라는 밴드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TV라이브로 즐겼다면 어땠을까, '스타워즈 - 에피소드 5'의 그 유명한 대사를 개봉 당시 실제로 들었더라면 과연 그 충격이 어땠을까 등 비디오나 후일담으로 전해들은 전설의 이야기들을 리얼타임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보곤 했었다.

매번 이런 생각은 이렇듯 부러움에서 그치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일인지, 그간 내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이 시대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후세에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되돌아본다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을 모두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으며, 앞서 부러워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역시 전야제라는 행사를 통해 팬들이 모여 그 유명한 오프닝롤이 등장할 때 극장에서 환호를 보내며 즐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 뿐인가 '메멘토'부터 시작해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그리고 '다크나이트'로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작과 성장을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며, 코엔 형제라는 세기의 천재 감독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소년에서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소룡의 영화를 비록 극장에서 즐기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성룡이라는 형님을 모실 수 있었으며,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같은 우리 감독들의 세계적인 작품도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별을 갖을 수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픽사라는 영민한 스튜디오, 에반게리온이라는 걸작을 무려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이걸 하나하나 말하자면 절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현재에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예전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지금은 지긋한 나이의 배우들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마련인데, 아마 이 다음 세대는 분명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테마 음악을 극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매번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라는 부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분명 다음 세대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시대다.




음악은 또 어떤가. 개인적으로 존 레논과 동시대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우 자주 하곤 하지만, 아마도 이 다음 세대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를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면, 그의 신보를 몇년마다 들어볼 수 있었다면, 내한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부러움, 아니 마치 꿈과도 같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내겐 그리고 우리에겐 마이클 잭슨이라는 세기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아마도 이건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축복일런지 모른다. 또한 U2, 라디오헤드, 뮤즈,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A.T.M 등 수 많은 밴드들은 물론 bjork, beck, sigur ros, 프린스 등 개성있고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뮤지션들의 신보를 흔치 않게 음반샾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부러워할 만한 자산들이 많은 세대였다. 한 앨범이 100만장 넘게 팔리던 상황을 목격한 마지막 세대였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기 위해 동네 음반샾에 미리 가서 예약표를 발권받거나 발매일 음반샾 앞에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본 마지막 세대였다. 또한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레전드 아티스트의 결성부터 해체까지를 모두 확인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발하지 않는 댄스 음악을 만들었던 듀스를 TV음악 프로에서 만나볼 수 있었음은 물론, 윤종신이라는 사람을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던 '가수'로서 갖을 수 있었다.  




그냥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누린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시대와 현재 누리고 있는 시대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라는 것. 내가 과거의 시간들을 부러워 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시절을 더 치열하게 즐겨야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제 6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오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상 리스트를 정리해볼까도 했지만, 일단 영화는 국내 미개봉작들이 많고
TV부분 역시 못 본 작품이 다수이기 때문에 리스트를 정리해봐도 만족스럽게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히스 레저의 수상 장면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더군요.
(짧게 하나 언급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덱스터>에 마이클 C.홀이 이번에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팬으로서 너무 아쉽더라구요)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수상이긴 하지만(근데 예상되었다는 말로 그냥 넘기기엔 함께 오른 후보들이
너무 쟁쟁했죠. 톰 크루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랄프 파인즈였으니까요),
그의 수상 장면은 역시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데미 무어가 후보를 거명하면서 'Heath Ledger'라는 이름은 언급만 했는데도 소름이 돋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수상자로 호명되고 후보에 오른 동료 배우들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기립박수로 그를 기리고
인정하는 장면은 감동적일 수 밖에는 없더군요.

히스 레저가 상을 수상할 경우 누가 대리수상할 것이냐를 놓고도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그의 전 부인인 미셸 윌리엄스가 받아도 좋다, 그녀는 안된다 라는 논란이 있었죠),
오늘 시상식에서는 <다크 나이트>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나와 대리수상을 했습니다.

상을 받고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가 연기하는 짧은 클립을 보여주었는데,
며칠전에 블루레이로 재감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인상적인 연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수상소식에 ,
괜시리 마음이 동요되는군요.



그가 오늘 시상식에 참석했다면 이렇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2008년은 그 어느해 보다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가해서
고전 영화들을 비롯해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고, 개봉영화들은 액션과 볼거리가 위주인 블록버스터부터
개봉관을 찾기 힘들어 발품을 제법 팔아야만 볼 수 있었던 작은 영화들까지 가능한한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구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150편 정도 올 한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한해를
정리하며 베스트 작품을 단 10작품으로 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유난히 장르적으로 봤을 때 다큐멘터리나 음악영화가 많기도 했는데, 이를 따로 분류하여 순위를 정해볼까도
했지만, 결국 총 15편의 베스트 리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아래 선택된 15편의 작품들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평가기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 한국영화 베스트 5와 동일하게 15편 가운데 차등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블로그에 작성했던 영화의 리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르비차 (Grbavica, 2005) _ 사라예보, 내 사랑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진,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작게는 한 모녀, 넓게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입니다.
이런 소재 역시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줄거리일지 모르나,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그들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르바비차>는 타인이 영화적 극적 요소만 부각시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자신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렌 페이지 때문이긴 했습니다.
제목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우리 영화 <제니, 주노>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두 어린 주인공 외에 이를 둘러싼 두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그려낸 시나리오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로우 파이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들로 가득했던
영화음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스>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는 엔딩 장면의 여운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느긋하게 서스펜스를 이끄는 장인의 솜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요 바래 소개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들의 이름들 덕분에
일치감치 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고, 이 큰 기대를 모두 만족시켜준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제는 정말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는 내내 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으며, 올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토미 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의 열연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은 영화로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구요. 







데어 윌 비 블러드 _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그놀리아>는 에이미 만의 음악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고, 아담 샌들러와 함께 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제가 가끔 잠식당하고 마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어준 멋진 작품이었죠. 단 한 마디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정의해 보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제가 쓴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지만 더 다양하고 깊은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 매번 무시무시한 열연을 펼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굳이 더 거론할 필요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며,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알게 된 폴 다노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정리를 위해 다시 한번 DVD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스피드 레이서 _ 눈이 부신 가족영화의 황홀경

스피드 레이서 BD _ 황홀경의 레퍼런스급 화질로 만나는 레이싱 어드벤처!


올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이 즐거웠고 황홀했으며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으나 아마도 제가 꼽은 영화들 중에
가장 다른 분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영화가 <스피드 레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 상영시
2번 정도 관람하였고, 블루레이로 시청, 부산에서 열렸던 블루레이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관람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워쇼스키 형제가 얼마나 오타쿠 스럽고 원작을 21세기 스크린에 잘 표현해 냈는지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저 같은 사람이야 좋아했지만 사실 저렇게 오타쿠 스러운 작품을 헐리웃 메이저 시장에서 저 정도 규모로 만들
생각을 한 워쇼스키 형제도 형제고,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대인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리븐>같은 레이싱을
생각하셨다면 얼른 잊으세요. <스피드 레이서>의 자동차들은 앞보단 주로 옆으로 달리고, 쿵푸도 하거든요 ^^;






아임 낫 데어 _ 밥 딜런의 몽타주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뮤지션을 그리게 되면
전형적인 전기 영화 형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임 낫 데어>는 이런 정형화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그림처럼 밥 딜런이라는 사람, 뮤지션의 일대기를 조명합니다. 다른 뮤지션 같았으면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그리는데 이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
같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은 단순히 밥 딜런의 인생과 주변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만의 장점을 살려
당시의 문화와 사회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는 케이트 블랑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출연하는줄 몰랐던터라 더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가 특히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플래닛 테러 _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하기를 원할 텐데, <플래닛 테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각 장면 장면마다 소리내어 반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였습니다. 일반 관객들과
다 같이 보는 환경이라면 어렵겠지만 특별히 로드리게즈의 팬들이라던가 이 영화에 팬들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 장면 장면 하나에 소리내어 환호하고 역겨움엔 질색하며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말이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정말 영화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혼자 뚝딱 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플래닛 테러>는 그의 B무비적
감성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 특별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어한 장면들이 많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신나게(?)그려내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일부러 옛 것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낸 영상은,
그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즈 맥고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네요.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다크나이트>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극장에서 여러 번 본 영화입니다. 정확히 몇번 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란 대형 아이맥스 스크린과 맞물려 엄청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분위기를 한번 더,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과연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연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며, 히스 레저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둠의 기사'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준 대작이었으며, 그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다크나이트>도 이렇게 짧은 몇 줄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







월-E _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천재야!!!!' <월-E>는 그 가운데서도 그 천재성이 정말 놀랍도록 발휘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쌍안경 렌즈 속에서 저런 오묘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겠으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한 감성을 이리도 잘 버무린 작품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월-E>의 감동은 '우주최고'였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감정들 중에 특히 '아련함'을 좋아하는데,
이런 '아련함'을 표현함에 있어 월-E와 이브가 보여준 우주최강 애틋 러브스토리는 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군요.
한동안 입에 '이 봐~' '이브아~'를 달고 살 정도로 중독성있는 대사들과, 장난감 뽐뿌라는 엄청난 부산물들을 만들어낸
올해 최고의 러브 스토리 <월-E>였습니다.






컨트롤 _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음악영화'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컨트롤>을 꼽겠습니다.
뮤지션의 삶을 다룬 만큼 '음악영화'와 '전기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컨트롤>만의
다른 시각을 꼽자면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이언 커티스, 즉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살았던 청년 '이언 커티스'를 조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흑백영상으로 담겨있는데,
흑백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이언 커티스의 고뇌와 혼돈, 그리고 맨체스터의 풍광들은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의 연기는 정말 이언 커티스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주었으며,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만다 모튼은, 개인적으로 그녀 필모그래피의
최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네요. <컨트롤>영화 팜플렛은 <렛 미 인>과 더불어 제 회사 책상을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렛 미 인 _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지난해 <원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렛 미 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라는 헐리웃 밖의
영화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관심과 반응을 불러낸 것 자체가 우선 반가웠으며, 뱀파이어 영화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맞은 북유럽의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광들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었던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스토리가 남녀 간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존재와 존재간의 사랑
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한 편으론 러브스토리로만 읽혀지지 않는 여백이 있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판의 미로>의 메인 테마 음악이
떠오른다는 것 -_-;;;






로큰롤 인생 _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실 15편을 선정하면서 이 작품 <로큰롤 인생>과 <존 레논 컨피덴셜>을 두고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극장에서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좋은 다큐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큰롤 인생>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올해의 다큐 영화랄까요.
처음 보기 전에는 그냥 인간극장 스타일의 다큐일줄로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닉유스를 노래한다'라는
사실은 그런 화제성 다큐로 만들어지기가 쉽거든요(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로큰롤 인생>은 그들이 노래하는 자체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노인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두시간 남짓을 알았던 것 뿐인데, 극 중 인물에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늙고 싶다'도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가 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올해의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었던 영화이기도 한데, 크로넨버그의 전작이었던 <폭력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봐야할
그 만의 깊은 연구가 담긴 하나의 결과물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불어 매우 드물게 리뷰의
소재목을 따로 정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며(그만큼 먹먹함이 오래갔죠), 비고 모르텐슨과 뱅상 카셀의 연기에
감탄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의 경우야 다들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하시는터라 제가 더 거들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뱅상 카셀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키릴'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를
고려해 봤을 때, 그의 나름 팬으로서 정말 훌륭하고(어쩌면 비고 보다 더) 멋진 연기를 펼쳤다고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비고가 연기한 니콜라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키릴'이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동시에,
타셈 싱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그 행위에 대한 행복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감상 전 다른 분들의 평에서는 이야기는 허술하나 볼거리는 대단하다 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4년 간의 고생을 하며 볼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곳이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답고 웅장한 미관을 자랑하는 영상미는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의 이야기(화자와 청자가)가 뒤섞여 버무려지는 이야기 구조는 <더 폴>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순간인지를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이스턴 프라미스>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이 심해져 별도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경우였지만,
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경우는, 이 제목 만으로도 대부분이 설명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설명이
되기 때문에 추가로 제목을 달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제목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나 나레이션 등을
통해 제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있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스런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일본이 사법제도만을 문제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카세 료는 정말 일본 남자 배우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한 연기를 펼쳤으며,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과연 <쉘 위 댄스>같은 코미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인가 싶을 정도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5작품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로는 <존 레논 컨피덴셜> <에반게리온 : 서> <마법에 걸린 사랑> <쿵푸팬더>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한해는 위의 15편 영화들을 비롯해 제가 본 150편 넘는 영화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행복해 했던 것 같구요.

2009년에도 더 좋은 영화들과 조우하기를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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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오늘 아이맥스로만 세 번째 관람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요 근래에 영화에서 이렇게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효과적으로 전달한 경우가 있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 답게 볼거리는 볼거리대로 전달하고, 스케일은 스케일대로 자랑하고 있으며, 코믹스를 원작으로한 히어로물답게 캐릭터별로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도 잘 표현해내고 있고(물론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영웅론과는 다르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영화 속에 녹여내 관객으로 하여금, 그 어떤 정치적 선동이나 말들 보다도 훨씬 강한 인상을 받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오히려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들이 (특히 초반부에 대사들은 영화에 막 빠져들기 시작하는 단계라서 - 그리고 어찌 진행될지 몰랐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에서도 - 작은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거의 한 마디도 그냥 쓰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혹은 농담하듯 던지며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관한 심각한 스포일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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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트맨, 하비 덴트, 조커, 이 세 명 모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모두 다 아시겠지만 이 세 캐릭터의 영화 속 관계나 캐릭터가 갖고있는 상징적인 의미의 관계를 보아도, 이들은 절대 독립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는 영웅과 악당의 단순 관계로 규정 짓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다 하겠습니다. 일단 얼핏 보아도 배트맨은 일반적 히어로물의 영웅들과는 거리가 있으며, 조커 역시 일반적인 악당들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다크 나이트>에 따르자면, 조커는 태생적으로 배트맨의 의해 탄생하게 된 인물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처럼 조커가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살해하게 되어 직접적인
원한의 구조로 이루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조커란 캐릭터는 고담시의 범죄와 싸우는 배트맨의 등장을 목격하고, 고담시민들이 배트맨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자신과의 유사점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일어나게 된 갖가지 사회적 현상들과 모순들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고, 이로 인한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의도 아닌 의도를 가지고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다크 나이트>에서는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조커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배경은 물론, 의도나 성격 자체가 없는 캐릭터로, 혼돈 그 자체로 보는 편이 더욱 맞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앞서 '의도'라고 표현된 것들은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지, 애초에 그럴려는 엄청난 계획과 목표를 갖고 진행된 일들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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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속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보여주는 이른바 '별종'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은 어느 정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화 초반 갱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별종'이라는 단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던 조커가 배트맨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별종'이라 칭하며 배트맨에게 '너도 나와 같은 별종이다'라고 이야기하죠. 배트맨은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지만 조커와의 대결이 깊어질 수록 점차 어느 정도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다른 히어로물의 영웅의 모습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물론 모든 히어물과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경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설정은 놀란이 얘기하려는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외계인이 되었든, 돌연변이가 되었든, 아니면 사고로 특수능력을 얻었던지 간에, 일반적으로 주인공인 영웅들의 이러한 능력은 악을 소탕하는 데에만 쓰여지면 일반인들에게도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환호를 얻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일반인들이 보내는 시선과 반응이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이라면, <다크 나이트>에서의 모습은 영화의 겉모습처럼 상당히 리얼리티에 가까운, 즉 판타지에서는 숨기고 싶었던, 버젓이 존재하지만 숨기고 싶었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과 모순적인 양면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만드는 존재가 바로 조커이며, 조커가 만들어낸(만들었다기 보다는 끄집어낸) 사건들이 계속되면서 브루스 웨인 역시, 자신이 본래 생각했던 선한 의도로 행했던 일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직시하게 되고, 배트맨으로서 행해왔던 영웅적인 일들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즉 자신이 조커와 같은 '별종' 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다크 나이트>속 배트맨의 모습이 일반적이라면 이러한 고민에 굳이 빠져들 이유가 없으며, 그냥 조커 역시 다른 악당들처럼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결국 소탕해내고, 앞으로도 계속 영웅으로서 악당을 소탕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다릅니다. 배트맨은 자신이 이런 비정상적인 영웅 행동이 영원할 수 없음을 이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조커의 등장과 사건들을 통해 이를 더욱 확신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과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가 바로 하비 덴트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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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하비 덴트의 캐릭터에 공감을 하고 감정이입이 되었을 만큼,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는 어찌보면 가장 안쓰럽고 안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악과 맞설 방법을 찾던 브루스 웨인에게 적임자로 선택되었을 정도로 하비 덴트의 캐릭터는 '고담시'라는 배경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매우 곧은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고든과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비 덴트는 내사과 시절부터 어찌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보일 정도로, 관례적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좋지 않은 행태들 마저 일일이 태클을 걸며 걸고 넘어지는, 즉 너무 곧이 곧대로 법과 선을 행해서 나쁜 이들은 물론 동료들과 일반인들에게도 때때로 욕을 먹는 고담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이죠. 

물론 그렇다고해서 하비 덴트가 절대 선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가 <다크 나이트>에서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 그는 악당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데에는 어느 정도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면에서는 배트맨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얼핏 보면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이라는 인물이 가장 선한 캐릭터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배트맨 비긴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파트너가 뇌물을 먹고 부패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냥 긁어부스럼 만들기도 싫고, 또한 이미 모두가 썩었는데 어디가서 얘기하냐며 현실을 탓하고 마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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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비 덴트는 달랐죠. 그도 누구보다 이렇게 썩을 대로 썩은 경찰과 조직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하비 덴트는 이런 부조리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워온 용자라 할 수 있습니다. 고든이 하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영화 속 대화에 언급된 것처럼 영웅심에 불타 동료들 모두를 조사한 것에 불쾌한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마음 한 편에는 자신은 미처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을 거침없이 해나아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질투어린 시선과 부러움, 그리고 존경심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고든의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이후 하비 덴트가 결국 부패한 경찰들에 의해 레이첼과 각각 납치가 되고, 레이첼을 잃는 사고를 겪고 그가 고통에 힘겨워 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표현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고든이 하비에게 갖는 미안함은 레이첼을 잃게 되는 사건에 있어서 결국 하비를 믿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큰 것이겠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애초부터 갖고 있었던 이러한 부러움과 존경심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하비 덴트의 중심으로 돌아가자면, 하비 덴트에게는 레이첼을 잃은 책임을 묻는 대상이, 이를 사실상 직접 행했다고 볼 수 있는 조커도 아니고, 어찌되었든 레이첼보다 자신을 먼저 구하러 온 배트맨도 아니며, 그 동안 경찰조직 내에서 그 부패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미적한 태도로 이를 자신처럼 적극적으로 고쳐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고든이라는 점에서,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가 투 페이스로 변하게 된 근본적인 심경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 원한의 가장 큰 대상이 배트맨이나 조커 였다면, 영화 속 투 페이스의 모습처럼 변화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하비 덴트는 레이첼을 잃음으로서 그간  자신이 그토록 바꿔나갈려고 고군분투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던, 이른바 같은 편인 경찰들에게 (더군다나 결국 그 부패한 경찰들이 자신과 레이첼을 납치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음으로)그 화살을 돌리게 되면서 더 큰 분노로 인해 투 페이스의 모습으로 변화했다고 생각됩니다. 하비 덴트의 입장에선 어찌됬든 배트맨은 행동하는 인물이었고, 고든은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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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고든으로 돌아가자면, 고든은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가장 죄책감을 크게 느낀 인물로 보여집니다. 하비 덴트의 생각처럼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거나, 인정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고든도 참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비 덴트를 통해 이제야 자신이 역할과 해야할 일을 비로서 깨닫게 되었지만, 앞으로는 개혁하려는 용기가 있어도 배트맨의 뜻을 들어주기 위해 연기를 해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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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는 처음 볼 때부터 굉장히 정치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일단 아이러니하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히어로물은 가장 미국적인 동시에 전세계에서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은연중으로 혹은 세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토록 만드는 기능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것이 애초부터 의도적이든 하다보니 그리 되었든 말이죠. 슈퍼히어로물에서 주인공인 영웅은 곧 미국이며, 악당은 미국이 주적으로 칭하는 테러리스트 들이 되겠으며, 테러를 당하는 일반 시민들이나 보통 사람들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정도로 비교하면 될 듯 합니다. 즉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고, 슈퍼히어로가 나서서 악을 물리치면 만사가 행복하고, 이는 결국 세계의 혼란스런 정세 속에서 미국이 경찰 노릇을 해야만이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에서는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슈퍼 파워를 선한 의도로 좋은 일에만 쓰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즉 책임만 지면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로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슈퍼파워는 좋은 일에 써라'가 되기도 하겠지요. 물론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는 감수하고 희생해야 될 것도 분명히 있다 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를 단순히 가면을 쓴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삶과 가족이나 여자친구를 포기해야 된다는 것 이상으로는 전개하지 않고 있지만, <다크 나이트>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괜찮은가?' 혹은 '슈퍼파워를 지닌 자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하여 선과 악의 균형을 맞추는 것 자체가 옳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만 사용된다면 다 괜찮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 행한 힘의 결과로 좋은 일들만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이런 것을 슈퍼히어로가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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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감독의 비판적 메시지는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조커의 행동들을 보며 '그들이 이렇게 까지 선을 넘을 줄은 몰랐다'라는 브루스의 말에 알프레드는 '선을 넘은 건 주인님이 먼저죠'라며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아주 직접적입니다. 배트맨은 분명 악당을 소탕한다는 의도 아래 악당들과 마찬가지로 법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폭력을 행했고(그 폭력이 누구에게 행해졌는지만 다를 뿐이죠), 단순히 용기 있는 몇 번의 행동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각종 신무기와 비밀스런 프로젝트 들을 통해 브루스 웨인의 삶보다 배트맨의 삶에 더욱 집중했을 정도로 악당과의 전쟁 아닌 전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브루스 웨인에게 배트맨으로서 아버지의 혼이 깃든 고담시를 지켜야 한다, 고담시의 악을 모두 소탕해야 한다라는 것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비판의 메시지는 정치적으로 미국과 미국의 군사행동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히어로인 배트맨의 모습은 미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현재 정세 속에서 일종의 영화 속 히어로 입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의도 아래 각종 군사작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아직 믿기 어렵고, 나에게 적대적인 나라들이 힘을 갖는 것은 위험하니, 착한 내가 힘을 다 쥐고 컨트롤 하는 것이 안전하다 라는 것이지요. 이 논리의 기본적인 모순은 착한 사람이라도 모든 권력을 쥐고 컨트롤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더 문제는 그 '착한 사람'이 실제로는 '더 나쁜 사람'이라는 것에 있겠지요. 물론 영화 속 배트맨의 모습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더 나쁜 사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착한 사람이죠. 힘을 가지고 영웅 대접을 받고 영웅놀음에 빠지게 되면 당사자는 이미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브루스 웨인도 이런 위기에 빠질 수 있었으나 그에게는 알프레드나 폭스, 레이첼 같은
곧은 말을 해주는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브루스 웨인은 항상 알프레드에게 '어떻게 해야하냐'며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알프레드는 브루스가 스스로 깨우치도록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으로 대답을 돌려줍니다. 그래서 브루스는 자신이 계속 고담을 위해 배트맨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담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선한 의도로 행해왔던 일들로 인해 더 큰 악이 발생한 것을 깨닫고 '영웅'으로서가 아닌 '어둠의 기사' 로서 자신 스스로를 희생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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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에게 있어 굉장히 비판적인 텍스트 입니다. 다른 장르도 아닌 미국의 영웅적 행세를 가장 근간에서부터
지지하고 있던 히어로물에서, 이런 미국의 영웅적 행태를 비판하는 텍스트를 끌어낸 것은 놀란 감독의 대담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클 케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기존 히어로물이 미국 내에서 바라본 미국의 모습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미국을 바라본 모습이라는 말은, 아주 완벽하게 떨어지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그것도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메시지의 표현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가 대단한 작품이라 평가 받는데에는 이런 비판적인 시각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영화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다'라며 화두를 던져준 영화는 많았으나 '이렇게 해야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영화 속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모습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단순히 문제 제기 뿐 아니라, 나아가야 할 해결책 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배트맨의 모습이 바로 그 해결책이지요.

조커와의 대결을 통해 배트맨의 등장이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후계자 겪인 인물을 모색하던 중 하비 덴트를 점 찍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하비 덴트 역시 타락해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결국 스스로 영웅의 이미지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배트맨은 폭스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휴대폰을 통해 모든 이들을 투시할 수 있는 이른바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되는데, 폭스는 '이건 너무 과한 힘이에요'라며 우려를 표시합니다. 배트맨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이번 일만 끝나면 이 기계가 존재하는한 회사를 떠나겠다는 폭스에게, 일이 끝나면 이름을 입력하라고만 합니다. 결국 기계를 통해 조커를 다시 잡아들이게 되고 폭스는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고, 기계는 폭파되며 폭스는 '그래 브루스 웨인이 그럴리가 없지'라는 식의 미소를 띄우며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일반적이라면 악당을 잡아들이는데 용이한 이 기계를 굳이 폭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자면 배트맨이 앞으로도 활동하는한 더한 악당들이 계속 등장할테니, 그들과 계속 싸우기 위해서라도 이 최신의 무기는 남겨두어야 겠지요.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 기계를 과감히(?) 폭파합니다. 그 이유는 폭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이 너무 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아무리 선한 편이라 하더라도 이 경우처럼 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신도 본인이 소탕해야할 악당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앞으로 악당들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을 지언정, 도를 넘는 옳지 않은 방법은 과감히 포기하고 미련을 버립니다. 이것은 미국식 히어로물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비판적인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담기에 '배트맨'이라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아니 이 모호함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캐릭터는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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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알프레드의 대화 속에서 이 영화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제가 일일이 대사 하나하나를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다크 나이트>를 또 다시 보게 될 분들이 계신다면 이 둘의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곱씹으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던 대화들도 하나하나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무섭도록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화를 통해서는 이 영화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따져보면 영화 속에서 조커는 자신이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계획했던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 속에 내제되어 있었던 본성과 모순을 끄집어내 이용한 것 뿐이었죠. 그가 처음 배트맨에게 관심을 끌고 접근하게 된 것도, 배트맨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갱들에 필요를 끌어냈기 때문이었고,나중에 자신을 잡으러온 배트맨이 경찰 특공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도록 만든것도, (안이 훤히 보이는 의심스런 건물임에도, 더 치밀한 조사없이)가면을 쓴 사람은 악당이고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은 인질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죠. 특히 그간 범죄를 소탕해 오던 배트맨을, 막상 자신들에게 죽음의 위험이 닥쳐오자 제물로 바치는 듯이 자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장의 모습이나, 리스가 시간 내에 죽으면 폭파시키지 않겠다는 조커의 말에 모두들 달려들어 리스를 죽이려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무관한 일들에는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먼산 보듯 하다가, 정작 자신의 신변에 직접적인 위협이 닥쳐왔을 땐 그 어떤 악당들보다도 악한 본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이기적인 사회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병원에 입원된 가족을 위해, 혹은 밀린 입원비를 위해 남의 목숨을 쉽게 재물로 바치고 마는, (저도 물론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이지만, 영화의 초반에 고든과 라미레즈가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때, 고든이 라미레즈에게 부모님은 어떠시냐고 안부를 묻자, 계속 입원 중이시라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이 대사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면, 후반부에 경찰 가족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사람 찾아보라고 했을 때 벌써, 라미레즈의 배신을 눈치챌 수도 있었겠지요) 즉 선과 악의 차이는 동전 뒤집듯이 별 것 아닌 것이 되고마는 사회의 암울하고 어두운 면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과 악에 대한 묘사는 배트맨과 조커의 캐릭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고,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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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에 근거해 이 영화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시퀀스는 바로 두 대의 유람선 장면이었습니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선입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화법이나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화에 심하게 몰입한 관객들이 생각하기에, 막판에 한 죄수가 '당신이 10분 전에 못한 일을 내가 하겠다'며 기폭장치를 달라고 했을 때 대부분 그 죄수가 누르겠거니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죄수는 기폭 장치를 누르지 않고 오히려 창문 밖 바다로 던져버리죠. 그리고 다른 배에서도 한 남자가 '자기 손이 더럽히긴 싫다 이거지'하며 기폭장치를 손에 쥐었을 때 누르지 않을까 했지만, 이 남자도 결국 누르지 못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게 되죠.

그런데 저는 이 다음 장면에 각 배에 탄 사람들의 심리 묘사 장면이 더욱 좋았습니다. 좋았다기 보다는 표현함에 있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기폭장치를 던져버리거나 누르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같은 배에 탄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그래, 그런 짓을 할 수야 없지'라기 보다는 '아, 이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더욱 커 보입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차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본능적으로는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라는 감정이 극하게 교차되고 있는 순간이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함께 이 극적인 선과 악의 대립의 순간은 극렬하게 묘사되지만, 결국 둘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못하고, 이에 조커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 동안 사람들의 악한 본성에 내맡겨 자신의 일들을 척척 진행되었던 조커에게는 처음 맛보는 실패 아닌 실패였죠.

이 장면은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판타지 적이라기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쩌면 죄수들도 누르지 않고, 죄수들을 죽여야 한다며 큰 소리 치던 사람들도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는 이 장면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진 것 자체가, 현대의 이 사회가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가를 은연중에 느끼게 해준 섬뜩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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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메멘토> <인썸니아> <프레스티지>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물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혹은 담으려 하지 않았던 미국식 영웅주의의 대한 비판적 메시지와 더불어 선과 악이 이성보다는 이기적인 본능에 의해 제어되는 사회의 대한 비판과 이러한 사회와 정세 속에서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의 메시지를 모두 담고 있는 완벽한 영화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다크 나이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자면, '완벽한 영화'라는 표현마저도 오만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어떻합니까.
완벽한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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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되었을 때에는 굳이 이걸 사야할까 하는 생각에 그냥 관심을 갖지 않도록 했었지만,
<다크나이트>를 보고 집에오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한 나는 무심코 결제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배트맨 허쉬'와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둘 다 정말 명작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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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1장을 읽은 것 뿐이지만,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니 확실히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시간 상으로 <다크 나이트>가 있은 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트맨도 늙었고, 하비 덴트도 늙었고. 알프레드는 아직
살아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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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도 영화를 보는 순간, 무조건 질러야 겠다고 생각했던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만든
<다크 나이트>사운드 트랙. 노래가 담긴 사운드트랙이 아닌 배경음악으로만 수록된 사운드트랙을 구매하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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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는 다시 봐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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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과 극찬들. 국내 시사회 이후에 역시나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걸작이라는 거침 없는 평가들. 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고(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저 뿐 아니라 기대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 수록 실망이 자연적으로 커지는 법이라 감상전의 이 같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은 분명히 곧 만나게 될 <다크 나이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습니다. 즉 쉽게 말해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었어도 워낙에 커진 기대 탓에 120점 정도는 보여줘야만이 100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부담스런 기대를 안고 관람했음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200점짜리 결과물을 저에게 안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감동과 전율의 눈물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위대함에 대한 박수를 보낸 영화였으며, 그 동안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영화들을 모두(과장을 보태자면)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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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작이었다는 것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기존 판타지스럽고 기존 히어로 물의 일반적인 구성에 충실했던(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이 이런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죠) 배트맨의 이야기를,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로 가져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인간적인 면으로 그려냈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왜 배트맨이 되었나에 관한, 혹은 될 수 밖에는 없었나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정말 놀란이 만든 <배트맨 비긴즈>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담시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워진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데에 <배트맨 비긴즈>의 최대 공을 들였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프롤로그 없이 이미 비긴즈에서 설명이 된 세계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복잡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배트맨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적으로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고, 투 페이스도 등장하게 되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기본적인 히어로 물의 아주 커다란(아주) 바탕 아래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히어로로서 겪는 갈등의 요소를 극대화해 어느 리얼한 극 영화들 보다도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고 지치고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갈등을 야기시키면서(그것도 히어로 물에서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심리극의 분위기로 배트맨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되는 배트맨을 만들기 위해 리얼리티를 강조함에 있어 마이클 만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 동안은 그저 코믹스나 영화 속에나 만나볼 수 있는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고담씨티를 실제 시카고를 배경으로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인물들과 배트맨, 조커 등의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도 동시에 부여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마이클 만이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총격씬에서의 리얼리티와 사운드(마이클 만은 역시 총소리의 달인!), 그리고 <콜레트럴>에서 보여주었던 L.A의 밤거리의 묘사 같은 장면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특히나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CG가 아닌 리얼리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반 프롤로그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의 사운드는 엄청난 박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밤거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차량 추격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묵직함과 박력이 느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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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열연은 <다크 나이트>를 위대한 영화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사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에 가려서이지,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신뢰를 깊게 할만큼 인상적입니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던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해 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언제 까지 배트맨이 고담시에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 악을 소탕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 오게 된 계기는 아니었나'하는 '배트맨'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더 집중적으로 리뷰할 글을 위해 남겨두느라 자세한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겪는 고민은 관객도 예상할 수 없음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따르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크리스찬 베일만한 배우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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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서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짙은 분장과 의도된 목소리 연기 탓만이 아니라, 그의 놀랍도록 몰입된 연기에서는 히스 레저는 물론, 조커 하면 떠오르는 잭 니콜슨의 그림자 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간 히스 레저가 출연한 작품들은 <카사노바>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보았던 것 같은데, 그 작품들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도된 목소리 연기와 입맛을 다시는 동작 등을 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탄스럽고 칭찬할 부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 또한 나중 포스트에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을 때보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온 오늘의 느낀 그의 공백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ㅠㅠ


초반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는 이 정도면 거의 까메오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이런 스쳐가는 분량에도 기꺼이 참여한 그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결과적으로 킬리언 머피도 이 걸작의 영화에 동참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과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역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하면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거치면서 어느새 악역의 기존 이미지는 거의 다 희석되다시피 되어버린 게리 올드만 역시 고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냈고(코믹스 속 고든의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코믹스 속 고든과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의 모습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케이트 홈즈에 이어 레이첼 역할을 맡은 메기 질렌할은 객관적인 미모 평가에서는 조금 뒤쳐진다는 평들도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가 교체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물론 영화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 감독의 연출력이 바탕이 되었죠).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과 조커 만큼이나)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선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비 덴트와 악당이 모습으로 변해버린 투 페이스의 캐릭터 모두를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되지 않도록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등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 포스트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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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무려(!) 함께 작업한 사운드 트랙은 그야말로 걸작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중후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하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너무 오버되지 않은 표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서사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묻어있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오랜만에 스케일이 느껴지는 사운드 트랙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 너는 질러져있다).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된 이후에 작정하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번 보고, 단 번에 연재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떠오르고 계획하게 된 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의 세계관 / 감독의 메시지, 배우/캐릭터 열전,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배트맨 이야기 등등 적게는 3회, 많게는 4~5회에 걸쳐 <다크 나이트>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작이자 히어로 물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에 대해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성의이겠지요 ^^;



1.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건 느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2.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해가는 과정과 배경을 보니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투 페이스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약간 우습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들이 다시 보였달까요. <다크 나이트>중복 관람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배트맨 포에버>를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3.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 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이 뜨자 한 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와 스텝의 이름이 떴을 때 한 번, 총 3번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4. 전 원래 어느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 보고 나오는 편이지만, 화요일 6시 용산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쳐다봤는데, 아마도 제가 본 이래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완전히 끝까지 남아있던 광경이었습니다.

5. 에릭 로버츠의 모습도 오랜만이라 반갑더군요.

6. 고든의 아들 역할로 나오는 아역배우 나단 겜블은 <미스트>에서 토마스 제인의 아들로 나오기도 했었죠.

7. 엔딩 크레딧에 히스 레저와 함께 추모의 뜻을 보냈던 이는 Conway Wickliffe 라는 특수효과 전문 스텝이었습니다. 1966년 생으로 지난해 9월 25일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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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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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블루레이 한장을 그것도 한정판으로 구매한 것 같다.
물론 <배트맨 비긴즈>는 이미 코믹스가 포함된 DVD 한정판을 소장하고 있지만, 최근 발매된 블루레이에는
업그레이드된 화질과 음질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다크나이트>의 프롤로그 영상이 1080P의 화질로
수록되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프롤로그의 화질이란 것이 가히 블루레이 최고 수준의
화질이라 리뷰어 입장을 재쳐두더라도, 일반 소비자로서라도 이 화질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것이라.....불가항력이었다.

그런데 예약시기에는 사실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서 넋을 놓고 있었는데, 나중에야 타이틀의 소장가치를
깨닫고 찾아본들, 이미 모든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매진 상태.
포기하고 있을 때쯤, 우연히 광화문 교보에 들렀던 동호회 형님께서 '2장 남아있더라'라는 제보를 투척.
바로 30분만에 날아간 교보에는 다행히도 그 두 장 중, 한 장이 아직 살아남아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손에 넣게 된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 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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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가운데 가장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누가 뭐래도 <다크 나이트>일 것이다.
팀 버튼이 재해석한 <배트맨>시리즈 이후 완전히 망쳐놓은 3,4편을 넘어서(아니 3,4편은 언제 한 번 다시
곰곰히 따져봐야 겠다. 괴작으로의 맛이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시 만들어낸 <배트맨 비긴즈>의 의미심장한 성공 이후 매번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와 함께 가장 매력적인 악당 순위 1,2위를 다투는 조커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중 2번째 작품인 <다크 나이트>.

이미 아주 많은 티저 영상들과 포스터 등등이 공개되었지만, 포스터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미리 접하지 않고
그간 열심히 피해다녔다. 바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 완전히 신선한 느낌을 받기 위한 일종의 노력인데,
<다크 나이트>의 경우는 이런 행동들이 매우 어려웠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래도 이제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이런 노력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과연 히스 레저가 보여주는 조커의 모습은 어떨까.
이미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던 잭 니콜슨의 조우커 마저 뛰어넘은 영화사에 남을 연기를 펼쳤다는 평들도
자자하던데 정말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과연 <다크 나이트>도
이런 흔해빠진 공식을 이겨내지 못할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 CGV아이맥스 예매가 오픈하여, 개봉일과 그 주 일요일 아이맥스로만 2번 예약완료.
  시너스 이수5관도 오픈되는대로 예매 예약.
  메박 M관도 여유가 되면 예매할 계획.
  <스타워즈>이후로 극장에서 단일 영화로 가장 많이 보게 될 영화로 일단 내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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