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영화


얼마 전이였다.
TV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5월 장애우 주간을 맞이하여 관련 영화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레인맨>,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등이 소개된 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개되었다. 프로그램이 다 마치고 난 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왜, 조제...가 장애우 관련 영화에 소개 되었지?’ 개봉 시에 극장에서 보고, 일반판 DVD출시 시에 감상하였으며, 스페셜 에디션이 재 출시된 뒤에도 다시 감상하였었지만,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가 아니라 유모차를 타는 것이나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 그저 습관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즉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작품 속에 녹여버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되는 소소한 체험이었다. 일본 영화의 새로운 작가 주의 감독으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최신작 <메종 드 히미코>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 더 이상 <조제...>만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작품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순 없지만 주된 배경과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게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인 만큼,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게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직접적인 명령조에 어조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선입관과 잘못된 시각으로부터 치유되도록 자연스럽게 이끄는 이야기의 마술사이다. <조제...>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관련 에피소드를 자주 노출 시키는 편이지만, 역시 게이에 관한 잘못된 시각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극 중 사오리가 처음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와서 겁을 먹고 불편함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하고 댄스홀에서 이들을 조롱하는 그의 옛 동료 남자에게 끝까지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변해가는 과정과 같이, 관객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한 노인들의 모습에 웃음과 괴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이런 것들에 대해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된다. 극중 사오리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서 이 ‘자연스러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보통의 영화 같았으면 어떠한 계기나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있지만, <메종 드 히미코>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사실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동기부족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동성애’라는 소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메종 드 히미코>는 일반인들에게 게이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없어지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기 보단, 오히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게이가 된 아버지 히미코를 미워하던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랄까. 특히 극중에는 등장하지 않는 히미코와 어머니와의 일들을 통해 사오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어린 딸을 버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미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메종 드 히미코’에서 보낸 시간들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히미코’가 아닌 ‘아버지’로 점점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 서플먼트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습고 극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 같아 빼려고 했었다는 댄스홀의 단체 댄스 씬은, 제작자들이 이제와 밝히는 것처럼 본편에 포함한 것이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바보스런 장면이 있어야 슬픈 장면들이 더욱 슬퍼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특유의 ‘뾰루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사오리가 환하게 웃는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배경에 흐르는 댄스 곡의 가사가 곱씹으면 씹을수록 영화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
왠지 쓸쓸해질 뿐, 왠지 허전해질 뿐, 서로가 상처를 주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듣고 싶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댄스 홀에서 흐르던 곡의 가사)





이 영화를 알기 전 개인적으로 두 주연배우인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대표작들은 각각 다른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배우를 이야기 할 때 현재로서는 <메종 드 히미코>를 대표작으로 꼽게 되었다. <조제...>에서 조제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라면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하루히코’가 그러하다. 배 바지도 아닌 것이 쫄 바지 같지도 않은(어쩌면 배 바지이면서 쫄 바지 인지도 모르지만)바지를 입고, 레이스가 있는 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었음에도(거기에다 매번 헝크러져 있음에도 멋지기 만한 헤어스타일은 또 어떤가) 한 번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 기는 커녕, 멋지기만 했던 ‘하루히코’는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그러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오다기리 죠가 만들어낸 ‘하루히코’는 영화를 외적인 아름다운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바로 시바사키 코우가 연기한 ‘사오리’이다. 시종일관 또렷 하다기 보다는 흐릿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오리는 <조제...>의 츠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시바사키 코우는 <고 (Go)>에서도 인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줬었는데, 이번 사오리 역할이야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두 멋진 주인공외에 히미코 역할의 다나카 민은 무용가로서 모 시상식 장에서 너무도 멋진 모습에(무대 위 모습이 아닌 보통의 모습) 너무나도 반한 감독에 의해 적극 캐스팅되었는데, 히미코라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력이기 보다는 모습 자체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이 노인들 역할의 배우들은, 리얼리티를 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쓰도록 감독이 특별히 당부했을 만큼, 배우 출신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연극 연출과 각본을 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물들이 캐스팅 되었다. 양로원의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개별 조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이 쉽게 인물에 동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같은 리얼리티를 중시한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출시된 <메종 드 히미코 SE> DVD타이틀은 같은 제작사에서 출시되었던 감독의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SE>와 같은 컨셉의 패키지로 제작되었다. 디지팩의 소장가치 높은 케이스와 2장의 디스크, 그리고 엽서 5종 세트와 <조제...>때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드지형 필름 컷이 포함되었다.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외곡 없이 전달한다. 특별히 우수한 화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최신작에 걸맞는, 영화에 분위기와 걸 맞는 최상의 화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상 크게 강력한 사운드나 채널 분리도가 필요 없는 만큼 2채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질을 들려준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과 촬영, 프로듀서의 음성해설, 그리고 예고편들과 <조제...>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감독과 프로듀서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나,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 등 주연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두 번째 디스크에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짜임새 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우리를 다시금 기쁘게 해준다. 가장 주된 서플먼트는 아마도 메이킹 오브 ‘메종 드 히미코’일 텐데,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촬영이 모두 끝나고 시사회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프로듀서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 그리고 캐스팅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모 시상식에서 반해버린 다나카 민을 ‘히미코’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과 프로듀서가 정말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 민을 찾아가게 된 에피소드와 주된 활동 배경이 되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어울릴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러브 호텔 등을 전전한 이야기, 그리고 본래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건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나 너무도 멋진 건물 탓에, 처음 대본과는 다르게 바닷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수정하게 된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서플먼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 작업이 영화 전반에 끼친 영향에 관한 일들인데, 감독과 프로듀서들도 애초 의도하지 않았고 몰랐던 장면과 내용들이 호소노의 음악 작업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 특히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나 게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느꼈다는 호소노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낸 음악들과,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사오리의 어머니에 대한 테마를 만드는 등 어머니 캐릭터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호소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음악이 덧 입혀지기 전에는 한 번도 이 대본이 헤피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호소노가 작업한 엔딩을 들으며,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헤피 엔딩을 찾아낸 점 등이 놀랍다는 프로듀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이렇듯 프로듀서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자신들 보다 더 위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음악감독 호소노 하루오미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음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 밖에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미공개 장면이 10장면 수록되어 있으며, 스텝들이 꾸며낸 단편 ‘변호사 아사카 레이코의 사건수첩’ 가족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는 서플먼트이다. <메종 드 히미코 SE> 서플먼트에 장점이라면 감독과 프로듀서, 배우들의 인터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인데,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영화와 캐릭터에 관한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인터뷰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두 주연 배우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인터뷰는 별도로 수록되었으며, 이 밖에 일본 내에서 무대 인사 영상과 도쿄 FM 공개방송 영상,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들을 통해 중복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오다기리 죠가 내한했을 때의 영상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 소개 영상이 아니라 내한 시에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가슴을 파고 들어와 이내 떠나지 않는 사랑스런 작품들이다. 슬픈 장면임에도 왠지 모를 행복함이 전해지거나 환하게 웃는 장면에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은, 이제 이누도 잇신 감독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것, 소외되고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레 일 깨워주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누도 잇신 감독. 이젠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운데, 어느 것도 한 작품만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2006.05.22
글 / ashitaka





구구는 고양이다 (グ-グ-だって猫である, 2008)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의 삶을 보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감독인 이누도 잇신과 주연을 맡은 우에노 주리의 GV가 있던 바람에 엄청난 관심을 모으기도 했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신작 <구구는 고양이다>. 재미있는건 우에노 주리야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스윙걸즈> <무지개 여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이미 너무도 익숙했던 배우였지만, 국내팬들에게 이토록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였다는것. 여튼 개인적으로는 또래의 일본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 면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미야자키 아오이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이 ;;;),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고 하면 한 때 쌍수를 들고 찬양의 글을 주절주절
많이도 썼을 만큼 너무도 좋아하는 감독이기 때문에, 이 작품 <구구는 고양이다>가 저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초 기대작이었죠.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과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의 조합이니 뭐 말 다 했죠(만약 미야자키 하야오가
실사 영화를 만드는데 주인공이 미아쟈키 아오이다 라고 한다면, <구구는 고양이다>의 조합이 최고라는데 한 번 더 생각해
보긴 해야겠네요 ^^;).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고양이가 등장하고 이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다는 소식은 저를 엄청난 기대의 바다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산영화제때 부산에 있었음에도 그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주리짱의 샤방샤방한 사진만으로 아쉬움을 달래던 시간을 견디고 나니, 바로 얼마지나지 않아 정식 개봉이 되어
드디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처음에 포스터나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인 <우리 개 이야기>속 '포치 이야기'처럼 반려 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 자체에 대한 슬픈 이야기, 그것 뿐인줄 알았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복잡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다음 이미지가 나오기까지의 글에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처음에는 반려동물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인간이 겪는 슬픔과 공허함을 보여주면서, 애완동물이 단순히 인간이
주인으로서 자신 만을 위해 갖게 되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 주인공 '아사코'가 '구구'를 새로운 식구로 맞이 하면서 부터는
이야기가 조금씩 복잡해 집니다. 일단은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바'를 떠나보내고 '구구'를 맞이했지만, '사바'의 빈자리를
'구구'가 완벽하게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코는 자신도 모르게 구구를 사바로 부르기도 하고,
표현은 하지 않지만 내내 사바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합니다. 사바를 떠나보내고 구구가 등장하는 영화의 시점을 봤을때
보통 같으면 구구가 중심이 되어 다시금 완벽한 새출발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나갔겠지만, 이누도 잇신 감독은
새로운 반려동물을 만난 뒤에도 끝내 처음 떠나보낸 '사바'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아사코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았거나 또는 먼저 보낸 분들이라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구구는 고양이다>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조금 아쉬웠던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사코와
사바 혹은 구구의 이야기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에노 주리가 맡은 나오미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약간은
지나치게 개입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아사코와 사바, 구구의 이야기로만 끌어갔다면 더 호소력 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오미의 미래와 남자친구와의 에피소드, 성장 이야기까지 개입이 되면서 영화가 약간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고 중심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과감하게 얘기해서 나오미 캐릭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영화가 크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입원한 아사코에게 나오미가 남자친구와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들 등(공원에 있던 아저씨까지!!)을 동원하여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은 충분히 감동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완전히 판타지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영화의 원작이 순정만화인것 처럼 너무 만화적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인지 영화의 후반부에 사바와 아사코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길이길이 남을 만한 대화와 감정이 살아있는 명장면으로 손꼽게 될 만큼, 이누도 잇신 만의 따듯한 감성이 잔뜩
묻어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몇년 전까지 고양이를 키웠던 저로서는 이 장면에서 아니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ㅠ



(우에노 주리외의 3명의 여자 캐릭터는 영화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이들은 실제 개그 소속사에 소속된
개그 트리오로서 일본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느껴졌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 역시 아직까지도 사진첩에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 사진을
끼우고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드라마였던 <우리 개 이야기>
가 그랬던 것처럼 <구구는 고양이다>역시 이런 저로서는 남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특히 제가 키우던 고양이인 '일루'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사바'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더더욱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는
없었는데, 비슷하게 어렸던 시기에 일루를 만나게 되었고, 죽음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먼저 보낼 수 밖에는
없었던 경험이 있던 저로서는, 아사코가 사바를 그리워 하는 이야기가 한 장면 한 장면 의미있게 느껴지더라구요.


(우리 일루(ILLU)사진 ㅠㅠ . 분명히 블로그 옮기면서 일루 사진을 다 옮겨왔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하드에도 없고 ;;
 아.....갑자기 슬픔이 와락 밀려옵니다 ㅠㅠ)


저와 일루는 참으로 사연이 많았었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옥탑방에 살 때 저랑 둘이서
티격태격하면서 지냈었는데 정말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둘이서 놀기도 많이 놀았었거든요. <우리 개 이야기>를 볼 때도
그랬었지만 <구구는 고양이다>를 보고 있노라니, 하나 하나 어찌나 저와 일루의 이야기 같은지 중간 중간 울컥하는 걸
겨우겨우 참으며 봐야 했습니다. 이사를 가게 되고 다시금 상황이 좋아지면 저도 다시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지만,
아마도 평생 일루를 잊지는 못할 것 같아요. 영화 속 아사코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국내에는 우에노 주리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큰 인기를 끌다보니 우에노 주리가 마치 단독 주연인
것처럼 홍보가 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에노 주리는 주조연에 가까웠고 실제적인 주인공은 아사코 역할을 맡은
고이즈미 쿄코였습니다. 너무나도 일본스럽고 여성스러운 목소리도 인상적이었고, 그녀의 깊은 내면연기 덕에 극에 깊게
몰입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8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가수 출신이더군요. <춤추는 대수사선>에도 출연했었다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

우에노 주리는 밝고 명랑한 모습과 진지한 청춘의 모습을 모두 잘 연기해 냅니다. 노다메처럼 아주 왈가닥은 아니지만 절로
웃음지게 될 만큼 발랄한 모습도 선보이는 동시에, 마치 <무지개 여신>에서 처럼 자신의 미래와 남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에노 주리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누도 잇신 감독의 따뜻한 감성 세계는 이번에도 저를 감동시켜 버린 것 같습니다. 이누도 잇신은 확실히 소소하고 보편적인
생활 속에서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감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습니다.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만큼
순정만화스러운 감성과 직접적인 장면들도 등장하지만, 판타지와 생활의 접점을 잘 알고 있는 이누도 잇신은 이번 영화 역시
너무도 이누도 잇신 스러운 영화 한편은 또 내놓은 듯 합니다.
우에노 주리의 단독 주연을 예상하셨던 분들은 좀 더 생각해 보셔야 될지 모르겠지만,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들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나 일본 영화의 소소한 감성들,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나 반려동물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 분들께는 강추 할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1. 영화 음악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특히 영화 속 포크 밴드의 곡들도 상당히 좋더군요. OST를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2. 영화 속 배경이 된 장소인 '기치조지'는 얼마전 친구가 신혼여행을 다녀왔던 곳으로 여행 사진들을 주의 깊게 보았던터라
    조금은 익숙한 곳이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꼭 한번 가야할 곳으로 제 뇌리에 등록완료 되었습니다 ^^
3. 영화 속엔 조금은 쌩뚱맞게 느껴지는 외국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다름아닌 메탈밴드 '메가데스'의 전 기타리스트인
   마티 프리드먼입니다. 그는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데 록 팬들에게는 그의 출연이 색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CJ가 단순히 배급/수입만 한줄 알았는데 제작에도 직접 참여를 했더군요.
5. 고양이 키우시는 분들은 무조건 봐야 해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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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비롯해 애완동물에 관한 영화는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큰 덩치의 세인트 버나드가 등장하는 코믹 가족 드라마 <베토벤>시리즈도 있었고, 국내에서는 전화기 CF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던 양치기 개 콜리가 등장하는 <내 친구 레시>라는 영화/시리즈도 있었고, <플란다스의 개>같은 유명한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음이>라는 국내 영화가 개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존에 공개되었던 강아지가 등장하는 작품들과 오늘 소개할 <우리 개 이야기>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기존에 작품들이 강아지가 등장하여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나 혹은 강아지의 충성스런 활약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 <우리 개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을 통해 다양한 장르로서 강아지와 인간과의 관계, 특히 최근 들어 애완동물을 그저 사치품 정도로 취급하고 너무도 쉽게 가졌다가 물건 버리듯 버려버리는 현실에 대해, 강아지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우리 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저 강아지가 등장하는 그저 그런 독립 단편집 정도로 생각했으나(특히 이누도 잇신이 연출한 에피소드를 제외한 다른 에피소드에 대한 편견은 더했다), 막상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니 이 같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개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주요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은 물론,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나카무라 시도우, <전차남>의 이노 미사키, 그리고 TV드라마와 영화 <나나>에 출연하여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미야자키 아오이 등 참여한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도 제법 탄탄한 작품이다. 국내에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렇게 의외의(?) 수준급 스펙의 DVD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우리 개 이야기>가 다른 옴니버스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각 에피소드들마다 다른 장르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우리 개가 No.1'은 뮤지컬 장르로 클래식을 번안한 노래와 코믹한 댄스를 만나볼 수 있으며,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 노래하는 남자’편에서는 극중에 소재가 되는 뮤지컬과 맞물려 뮤지컬 장르를 차용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A Dog's Life'는 뮤직 비디오로 수록되었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전체적인 장르는 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지만, 중심이 되는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한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4부작을 제외하면 각각 에피소드가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꾸민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작품들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CM이여 어디로 가는가'는 광고영상이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변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사랑에 빠진 고로'에서는 주인공인 강아지 고로의 생각이 그대로 더빙되는 설정으로 재미를 주고, '개의 말'에서는 외국에서 제작한 인터뷰 프로그램이라는 컨셉으로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나카 요지는 <스윙걸즈>를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파워 퍼프 걸>을 연상시키는 그림체의 뮤직비디오 'A Dog's Life'는 각각 Good과 Bad 버전으로 나뉘어 수록되었는데, 특히 Bad버전의 가사와 영상을 곱씹어 보면 이 작품이 말하려는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앞서 잠시 얘기했듯이 옴니버스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4부작이다. 어린 야마다 군과 우정을 맺은 시바견 포치가 계속 주인을 찾아가고 기다린다는 이 에피소드들은,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역시나 평범한 것을 애절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답게 야마다군과 포치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상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포치’시리즈는 그것만으로도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옴니버스라는 형식을 띄고 각 에피소드가 띄엄띄엄 삽입된 것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말해 4개의 에피소드를 한 번에 주욱 감상하는 것 보다 중간 중간 텀을 둔 것이, 결국 더 큰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엔딩 크레딧을 보기 전까지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있잖아, 마리모' 역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포치 이야기'가 <우리 개 이야기>의 중심이라면, 사나다 아쓰시 감독이 연출한 '있잖아, 마리모'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한 번이라도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참기가 쉽지 않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에 물결이다.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사용되었던 자막의 미학을 차용하여,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한 번은 주인인 미카의 입장에서, 또 한 번은 애완견인 마리모의 입장에서 그려낸 이야기는 주인에 입장에서 한 번, 애완견에 입장에서 또 한 번 눈물 흘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너 닮은 강아지 또 키우고 싶어’라는 자막이 흐를 때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만다. 애완동물을 한 번 이라도 키워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나, 더 나아가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냈던 애완동물을 먼저 떠나보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너무도 공감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영화제에서만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우리 개 이야기>는 상당히 수준급의 스펙으로 출시가 되었다.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본편의 영상은 모두 HD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매우 밝고 콘트라스트비가 높은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오히려 너무 깔끔한 영상 때문에 영화적인 느낌이 조금 덜한 편이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잔잔한 드라마인터라 크게 채널 분리도나 강력한 사운드를 필요로 하지 않아 특별히 멀티채널의 장점을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뮤지컬 장면에서는 공간감 있는 서라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스코어나 대사 전달도 선명한 편이다. 서플먼트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음성해설과 더불어 각각 에피소드들마다 메이킹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는 각 배우들과 감독들마다 ‘애완견은 키우는지’, ‘애완견과의 추억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다음 세상에 개로 태어난다면 어떤 개로 태어나고 싶은지’등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여섯 개의 삭제 장면을 수록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짧은 분량의 삭제장면이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와 버금가는 분량의 내용과 화질, 음질을 담고 있어 이 역시도 선택이 아닌 필수 감상코스라고 해야 할 듯하다.


2006.10.18

글 / ashitaka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조제를 보게 된건 극장에선 어찌 되었는지 소식도 듣지 못한채 지나쳐버렸고,

DVD출시이전에 DVD소스로 보게 되었었다.


얼마전 EBS시네마천국에서 장애인 주간이라며 장애우에 관련된 영화들을 몇편 소개해주었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가 돋보였던 <레인맨>이라던가, 숀 팬에 연기와 다코타 패닝을

전세계에 알린 <아이 엠 셈>등 몇몇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섹션에 바로 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나왔다.

처음 몇 분간은 굉장히 당황했다.


'왜 조제가 장애인 영화 소개에 등장하는거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영화 소개를 더 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조제에게 장애가 있었구나'


물론 영화를 보면서 극 중 조제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볼때도 그랬고, 이 후에 다시 보게 되었을때도 그랬고,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의자에서 떨어지고, 매일 누워있고, 외출도 유모차를 타고서야 가능했지만,

단 한 번도 장애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장애인 관련 영화라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 맞다 그랬었지'하고

느꼈던 것이다.


조제는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영화이지만,

이 같은 점이 숨어있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 깨닫지 못하도록 연출한 연출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영화속 인물에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도록 그려낸 것은 장애우에 대한 일반인들에

삐뚤어진 시각마저 감싸앉아 이해하려는 포용력마저 느껴진다.

또 하나.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듯이, 조제에서 장애란 결코 극복해야할 과제가 아니다.

흔히 장애를 가진 주인공에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장애 = 인간승리 의 과제로

펼쳐지기가 일쑤인데, 조제에게 장애란 결코 극복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츠네오와 조제 사이에 이 같은 불편함은 아무런 문제는 커녕,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것은 또 하나의 삐뚤어진 시각이다.

극복해야한다는 것은 장애를 가진 본인보다는 주변인들에 대리만족에 산물이며,

장애극복이 곧 인간승리라는 것은 가장 잘못된 명제 중 하나인듯 하다.

그렇다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실패한 인생이며,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비장애인과 어울릴 수 없다는 오바스런 결론에 도래하기에 이른다.

장애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에 상징으로

곁에 두려는 것에 불과하다.


난 앞서 얘기한것 처럼 이 영화를 단 한번도 장애 라는 단어와 연관지을 수 없었는데,

장애라는 단어와 연관지으면서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다.


깨달은 뒤에 한 편으론 다른 차원에 메시지가 담긴 영화임을 알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켜왔던 순수함을 잃은 듯한 기분이 동시에 드는 건 왜일까.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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