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2013)

가족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 작을 보면 대부분 가족과 관련된 영화들이었다. 2008년 작 '걸어도 걸어도'는 아들로서 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이었고, 2011년 작 '기적'은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또 다른 가족 영화였으며, 제작을 맡았던 '엔딩노트' 역시 한 가족이 가장과 이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또 한 번 가족의 관한, 그 가운데서도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아버지라는 존재의 탄생 혹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단 한 번도 자극적이었던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 역시 결코 관객을 향해 소리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일어난 사건 자체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의 중대한 사건이지만, 영화는 이를 내적으로 삼켜내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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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버지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연기한 료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 까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료타에게 맞춰져 있다. 사실 이 작품은 고레에다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감흥을 전달한 작품이었지만, 조금의 석연치 않은 부분들도 있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버지 역할인 료타에게만 맞춰져 있다. 같은 크기의 충격을 맞게 된 두 가정이고, 한 가정으로만 한정 지어도 료타의 아내의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는 오로지 료타의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가 극을 이끈다 는 것 보다는 극이 그 만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도 직접적인데, 결국 영화는 료타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지 바로 그 과정인 '그렇게'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석연치 않았던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다. 너무 료타의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자체가 러닝 타임 내내 료타가 아버지가 되길 기다려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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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그렇게 아버지가..'에서 료타가 겪게 되는 사건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인물들도 똑같은 세기로 겪게 되는 사건이었기에, 극 중 인물들 모두가 (심지어 상대가 되는 가족까지도) 료타가 자신을 극복하고 아버지가 되길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한 편으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판타지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료타가 아버지가 되었다고 과연 두 가족이 겪은 이 고통이 해소되었나? 라는 물음에 조금은 우울함 마저 들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참여한 GV로 한 번, 그리고 나중에 개봉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관람하였는데, 단순 재 관람의 이유 때문 만이 아니라 다시 보고 나서 달리 느낀 부분이 생겼다. 바로 석연치 않게 여겼던 료타와 이를 기다려주는 영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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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료타와 영화의 관계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들어오는 생각은, 어쩌면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료타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그 자신의 자각이나 극복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말 없이 기다려주는 가족이었다는 얘기다. 료타가 결정적으로 다시 금 이 잘못된 상황을 재 자리로 돌려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 장면을 봐도 그렇다. 울고 있는 료타를 본, 이제 막 잠에서 깬 그의 아내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아침 먹을까?'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 역시 그렇게 돌아온 료타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또 다른 가족 역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판타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의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기적'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기적이 아닐까 하는 것. 이 영화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1. 영화를 본 지는 제법 지났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2. 아래 사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님이 함께 했던 씨네토크 현장.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는 관계라는 걸 그 분위기만 봐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참 귀한 시간이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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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테리언으로 만나는 밀양 블루레이

(The Criterion Collection - Secret Sunshine Blu-ray)



일단 '밀양' 블루레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크라이테리언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The Criterion Collection)은 LD 시절 부터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던 브랜드로서, DVD 시절 부터 흔하게 쓰였던 일종의 특별판 (Special Edition)을 처음 만든 회사였다. 크라이테리언이 2차 영상물 시장에서 최초로 한 것들을 꼽아보자면, 4:3 비율의 TV와 스캔이 전부이던 때에 처음으로 레터 박스를 통해 와이드 화면비를 풀스크린의 TV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였으며, 부가영상 (Supplement)의 개념을 최초로 수록한 것도 크라이테리언이었다. DVD나 블루레이를 즐기는 또 다른 핵심 재미인 감독과 배우, 스텝들의 코멘터리, 제작과정 메이킹 영상, 각종 예고편 등의 부가영상들이 바로 크라이테리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


이런 구성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이 어느 정도 보편화 된 후부터 크라이테리언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이른바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완벽한 원본 재현으로 복원하여 내놓으면서 부터다. 단순히 스펙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원본에 가장 가깝도록 복원하는 것에 최우선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매니아들 사이에서 더욱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브랜드 자체가 스스로 굉장한 자존심으로 임하고 있다는 점도 여러 일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단순한 출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컬렉션으로서, 작품으로서도 크라이테리언으로 출시된다는 자체 만으로 '인정' 받았다는 의미를 갖게 되기도 했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영어 자막만 수록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렇기 때문에 스펙적인 측면과 소장 가치 높은 컬렉션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내 팬들로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인데, 바로 이 크라이테리언에서 이창동 감독의 우리 영화 '밀양'이 출시된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야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감독으로서 그 동안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크라이테리언 출시에 대한 기대와 예상이 오갔었는데, 드디어 크라이테리언 로고를 달고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을 손에 받아보고 나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답게 작품의 이미지를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표현하는 커버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밀양 : 블루레이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타이틀은 파란 밀양의 하늘을 담은 프린트의 BD디스크와 간단한 소개와 스틸컷 등이 담겨있는 부클릿으로 구성되어 있다.







블루레이 디스크를 넣으면 아래와 같은 메뉴 화면이 등장한다.









영화 초반 주인공 모자가 밀양으로 이사오게 되는 그 차안에서 바라본 밀양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심플한 메뉴 디자인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메뉴 구성도 간단해서 챕터 선택 메뉴와 영어 자막 ON/OFF 메뉴,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는 영상과 미국 개봉 예고편이 담긴 서플먼트가 전부다.


(블루레이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답게 블루레이의 화질은 역시 만족스럽다. 이창동 감독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지만 이 작품 '밀양' 역시 자연광이 상당히 많이 사용된 조명이 매우 중요한 작품인데, 영화의 이런한 조명을 블루레이는 세심한 터치로 놓치지 않고 있다. 빛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감도, 그리고 빛이 만드는 공간감을 그대로 살려낸다. '밀양'이라는 작품이 드라마라는 장르라서 액션 영화에 비해 화질이 그다지 중요할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이 블루레이를 보다보면 그 중요성을 아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 'LEE CHANG-DONG ON THE SET OF "SECRET SUNSHINE'이 수록되어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 동안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면 자막 등의 압박으로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던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블루레이로, 우리 영화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자체로 반가운 일이며 그 작품이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앞으로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 감독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꾸준히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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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아름다운 걸작 '시'


2010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Poetry)'는 가혹하리만큼 인간이 고통을 겪는 방식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인 동시에,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한 탐미적인 작품이었으며, 제목인 '시'에 대한 간접적인 비유는 물론 매우 직접적인 텍스트이기도 한 그 해 최고의 작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 동안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 같은 작품들은 이를 통해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깊은 공감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약간의 과잉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서, 완성도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좋은 영화'라 말하기엔 조금 부족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좋은 영화'란 '착한 영화'와는 전혀 다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시'는 착한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좋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시'가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 보면 가혹하리만큼 냉정함이 그 이면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냉정한 시선이 지향하는 바가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과정과 결과 모두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주인공의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시를 배우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한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시상은 언제 찾아오나요?'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아무것도 적지 못한 노트에 자연이 직접 쓴 시를 계기로 미자는 진정한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전환점을 갖게 되고, 자신을 둘러 싼 삶에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 '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일차적으로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현실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죽어가고 있는 문학으로서의 '시'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시선'으로서의 시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는 여러 차례 시를 배우는 강좌 장면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단순한 내러티브를 위해서였다면 그냥 '미자가 시를 배운다'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했을 테지만, 이렇게 다큐멘터리에 가깝도록 시 강좌 장면을 다룬 것은 관객들이 이 장면을 보며 영화 속 미자처럼 잠시나마 시라는 예술에 대해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보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관객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자처럼 동화되도록 만든 것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관객은 잠시나마 이 작품을 보는 동안에는 극중 미자처럼 시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건 생각해볼 수록 대단한 이 영화의 지점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술'로서의 '시'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주인공 미자를 비롯해 안내상이 연기하는 기범 아버지로 대변 되는 어른들의 시선, 그리고 한 발 물러서 있는 주변 인물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통해 또 다른 '시'를 써내려 간다. 특히 미자를 바라보고, 미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데, 세속적인 사건을 겪는 과정 속에서 세속적인 것과는 조금 멀어져 있던 미자 라는 인물이 어떻게 고통과 현실을 인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겪어가는지(극복하거나 포기하거나 의 이분법 보다는 그냥 '겪는다'가 이 작품에는 더 어울릴 것이다)의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참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미자가 세속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추구하던 많은 가치들을 포기해 가는 텍스트라고 여겨, 마지막 엔딩을 맞닥뜨렸을 때 그 어떤 작품들보다 먹먹하고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블루레이 리뷰를 위해 다시 보게 된 '시'는 그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다시 보게 된 미자의 행동들은 자포자기하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삶에 대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세속에 물든 사람들과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미자가 택한 방법들과 그 과정의 행동들은 미자 나름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자기 것인 냥 포용하려고 애쓴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며, 그 결과는 세상으로 하여금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존재조차 인식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관객에게는 깊은 울림과 더불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미자가 쓴 시 '아녜스의 노래'와 영화 '시'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강의 이미지는 죽음과 슬픔을 노래하는 듯싶었지만, 다시 바라본 강의 이미지에서는 분명 희망의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THE DVDPRIME COLLECTION 002 – 시 블루레이
 

이 작품은 잘 아시는 것처럼 DVDPRIME과 제작사 UEK,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낸 자랑스런 'DP 컬렉션' 그 두 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사실 첫 번째 타이틀이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두 번째 타이틀인 '시' 가 훨씬 더 큰 부담을 본의 아니게 지게 되었는데,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만드는 이들의 심정을 주변에서 가깝게 전해들을 수 있었던 입장으로서 부족한 재능이나마 여기에 보태고자 블루레이 리뷰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시' 블루레이 타이틀은 '김복남…'과는 또 다른 감회가 드는 타이틀이었다. DP 컬렉션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시' 역시 이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국내에서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기 사실상 어려웠던 작품인 동시에, 너무 블루레이로 소장하고 싶은 그 해 최고의 걸작이기도 했다. 극장에서 몇 차례 관람을 하면서도 블루레이 라이센스 발매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려 본다면, 이렇게 직접 우리 손으로 만든 타이틀을 소장할 수 있게 된 현실은 아직도 놀라울 뿐이다.
 




Blu-ray 메뉴






Blu-ray : Picture & Sound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블루레이에 걸 맞는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작품 자체의 화질이 다른 해외 영화에 비해 뛰어나게 좋은 편은 아니고, 또한 극장에서 보았던 화질도 뛰어난 화질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블루레이의 화질이 오히려 더 좋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블루레이 화질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단순히 느낌 때문 만은 아닌 것이, 실제로 극장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영상의 디테일 한 부분과 색감들을 블루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처럼 영화 역시 인위적인 조명 보다는 자연광과 최소한의 조명들을 활용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런 빛의 디테일 한 활용의 정도를 블루레이 영상을 통해 좀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좀 더 안방 극장의 환경에 맞게 적절한 레벨로 수록되었다. 사운드 적인 측면의 활용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5.1채널의 서라운드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으며, 대사 전달에 있어서도 감상에 지장을 주는 부분은 없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만나볼 수 있었던 강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경우는 영화의 여운을 더 오랜 시간 잡아주는 중요한 사운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더욱 선명한 강물 소리에 그 여운을 지속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시'




'시' 블루레이에서 가장 눈에 띠는 부가영상이라면 본편 재생 시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의 영상 메시지'를 꼽을 수 있겠다. 2차 영상물을 즐기는 사용자로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확장 판이나 길예르모 델토로의 타이틀들을 보며, '아, 국내 타이틀에도 감독이 DVD나 블루레이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주는 챕터를 가져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시' 블루레이에는 바로 이창동 감독의 이런 인트로가 블루레이만을 위해 담겨 있다. 사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블루레이 만을 위한 부가영상이라는 점에서, DP 컬렉션이어서 가능한 서플먼트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하나 DP 컬렉션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이라면, 이 타이틀이 탄생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DP 회원이자 소비자인 분들의 이름(닉네임)이 담긴 'BD 메이킹 크래딧'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단순한 구매자 목록이 아님은 우리가 더욱 잘 알고 있기에 여기에 많은 부연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이 메이킹 크래딧은 내 이름이나 닉네임이 실려 영광스러운 것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뿌듯함'이 더 밀려오는 훈훈한 크래딧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가영상은 이창동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이창동 감독 스스로가 작가이자 각본을 썼기 때문에 '시'라는 작품에 대한 더 풍부한 의미는 물론 감독으로서의 연출 의도 그리고 전설적인 배우 윤정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시'를 인상 깊게 본 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참고로 음성해설 트랙을 선택하면 편의를 위해 본편 한글자막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만약 음성해설을 들으면서 본편의 한글자막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리모컨을 통해 음성 트랙을 다이렉트로 변경하면 된다.

 



이 밖에 부가영상으로는 전반적인 메이킹 영상들과 감독, 배우 들의 짧은 인터뷰 들이 각 주제에 맞게 메뉴 별로 수록되어 있다. 모든 부가영상은 DVD에 수록되었던 내용과 동일한 영상으로 SD 포맷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영화적으로만 보아도 이창동 감독의 '시'는 지난해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손꼽을 정도의 걸작임은 물론, 그의 수준 높은 필모그래피에서도 단연 꼽을 만한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아낸 동시에, 'DP 컬렉션 002' 타이틀이라는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갖는 블루레이 타이틀 역시, 퀄리티나 내용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와 노력이 엿보이는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DP 컬렉션에 더 큰 응원을 보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이창동 감독의 시 _ 블루레이 출시기념 시연회 및 GV


지난 토요일(11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블루레이 출시를 기념한 상영회와 GV가 열렸다. '시'블루레이는 다른 타이틀과는 다르게 국내 출시예정이 없던 작품을 DP에서 소비자들이 미리 선구매형식을 취해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하게 된 특별한 경우인데, DP컬렉션 001 타이틀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었고, 002 타이틀이 바로 '시'다. 참고로 이 DP컬렉션의 배경과 국내 블루레이 시장에 관한 내용은 지난 글을 참고하면 되겠다~






(상영이 시작되기 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시고 계신 DVD프라임의 박대표님!)


사실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좀 더 가까이 지켜보게 된 입장에서, '시' 블루레이를 위해 정말 많은 신경을 쓴 이들의 노력을 알기에 감회가 남다른 순간이었다. 특히 첫 번째 타이틀이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정말 얘기치 않았던 오류로 인해 리콜을 결정했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었고, 어려운 국내 2차 영상물 시장을 고려했을 때 자칫 이 새로운 가능성 마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탄생한 '시' 블루레이였기에 이번 시연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박대표님도 뵙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미리 프리오더했던 '시'블루레이를 손에 쥐고 나니 무언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800명 넘는 이들이 심정이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시' 블루레이 상영 시작. 왜 이렇게 이런 행사는 깔끔하게 되는 법이 없는지, 영사실에서의 플레이어 조작 미스로 이창동 감독님의 소개 인트로가 나오지 않아 재차 상영을 하게 되었는데, 완전한 손님이라기 보다는 반 운영자의 심정으로 앉아 있던 나도 진땀 났을 정도였으니, 박대표님의 심장은 얼마나 빨리 뛰었을지...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DP 리뷰를 위해 이미 블루레이 타이틀을 여러 차례 먼저 보았던 터였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보는 맛은 역시 또 달랐다. 그 만큼 '시'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던 것도 있겠고.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에 대한 리뷰는 곧 DP 리뷰를 통해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그렇게 상영이 끝나고 곧 이어진 이창동 감독님과의 GV. 영화평론가 이상용 님의 진행으로 시작된 GV는 이 특별한 자리에 대한 의의와 '시' 블루레이를 처음 보게 된 감독님의 솔직한 (아주 솔직한;;;)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블루레이에 수록된 음성해설까지 다 들었던 터라, 겹치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고 가끔씩 서로 웃어가며 즐길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GV였다. DP회원들 외에도 감독님의 팬들 및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자리를 함께하여 그 어느 때보다 질문자가 많은 GV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후 싸인회를 위해 빨리 마무리해야 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시'에 대한 이야기 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아주 살짝 들을 수 있었는데,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쉽게 성사될지 여부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임을 슬쩍 드러내셨는데, 꼭 성사되어서 내년 즈음에는 신작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GV가 끝나고 극장을 찾은 DP회원들 약 150명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셨는데, 아마도 블루레이를 미리 구매했던 이들에게도, 감독님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싸인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뒤 감독님께 나즈막하게 내 이름을 얘기한 후, 블루레이에 멋지게 싸인을 받았다.





일반판에 제공되는 슬리브 대신 DP한정판에만 제공되는 특별 슬리브에 일부러 싸인을 받았다. 감독님께 '나중에 DP에 블루레이 리뷰 올라오면 꼭 한 번 봐주세요'라고 말해보고도 싶었지만, 그 말은 고이 접어두고 그냥 싸인만...

DP컬렉션의 두 번째 타이틀 '시'가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불러와서 그 다음 타이틀이 제작되는 힘을 얻었으면,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이런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가 걱정없이 제작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길 꿈꿔본다. 이게 꿈에 가깝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시 (Poetry, 2010)
시가 죽어버린 시대, 다시 시를 쓰다


주인공 '미자 (윤정희)'는 경기도 소도시에서 이혼한 딸이 남긴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많은 나이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거동이 불편한 회장님 (김희라)의 수발을 드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는 평범한 할머니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직도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추구하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런 미자에게 어느 날 얘기치 않은 세속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영화는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는 미자에게 더욱 주목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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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하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시인의 대답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대답 속에도 있듯 시라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자체는 무어라 정답지을 수 없을 터. 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이런 미자에게 며칠 전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의 죽음이, 자신의 손자의 성폭행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현실을 풀어놓는다. 사실 미자는 이 상황을 그리고 이 상황을 대처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완벽한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이 이야기를 조용히 마무리하려 한다. 가해자의 부모들 뿐 아니라 학교 측, 언론,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합의금을 받을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의 부모까지. 이들에게 미자가 알고 있었던 도덕적인 가치는 거세되고 없다. 하지만 미자는 투사가 아니라 그저 힘없는 노인일 뿐이다. 합의금 500만원을 만들기 어려워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 같은 같은 가해자 아버지 (안내상)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쉽게 들어줄리 없다.

그런데 이창동의 '시'는 이런 도덕이 거세된 세계를 현실로 등장시키면서도 이들의 모습을 더 극적으로, 악한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안내상이 연기한 가해자의 부모 같은 경우만 봐도 사람이 나빠보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극중 미자가 처음 본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될 정도로 사람 좋은 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묘사 방식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자와 상반되어 더 큰 쓰라림을 준다. 도덕적인 헤이가 너무 당연해진 세상. 그러니까 꼭 악당이라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도덕적 헤이가 익숙해진 세상이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런 순리 아닌 순리에 익숙해져 버린 세상을 그림으로서,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하는 돌이킬 수 없을 듯한 쓰라림과 회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주인공의 정의의 투사가 되어 이런 세상을 계몽하려 드는 것보다, 이렇게 자신도 힘없이 휩쓸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더 무섭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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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결국 오백만원의 합의금을 만들기 위해 본인의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야 만다. 그런데 회장님 (김희라)에게 돈을 받기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백만원을 달라는 말을 굳이 노트에 적어서 보여준 이유는 단순히 주변에 가족들이 있어서, 이들의 귀를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등장하는 노트의 클로즈업 장면을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감독은 오백만원만 달라는 이 메시지를 이전 미자가 어렵게 작성했던 시 한줄을 보여주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며 시를 쓸 때는 그렇게 한 줄 한 줄이 어렵던 것이,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너무도 쉽게 써지는 모습을 볼 때, 또 한 번 쓰라림을 겪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미자는 스스로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사건이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을 용기도 없고, 시를 좋아한답시고 모였지만 사실은 미자처럼 시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벼운 마음, 또 하나의 유흥으로 여기고 모인 이들 사이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에 적당히 물들어야만 '좋은게 좋은' 이 세상을 미자는 견딜 용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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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자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를 쓴다. 시를 쓰고자 마음 먹은 이후부터 계속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울림을 찾으려 했던 미자의 마지막 시는 결국, 자신의 손자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중생에 대한 미안함을 담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는 곧 그 여중생의 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영화 속 미자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서 기억을 잃게 되는 것 또한 쓰라린 일이다. 이미 물들어버린 세상과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가 스스로를 점점 더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난다.


1. 글을 쓰면서도 계속 울컥하네요.
2. 사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예전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밀양'은 좋아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가 제일 좋았어요. 진정 그는 작가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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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Secret Sunshine, 2007)
 
 
(스포일러 있음)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매우 호평을 받았던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등도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밀양>은 매우 기다렸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창동, 송강호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이긴 했었다(전도연의 연기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다)
 
난 보기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일부러 정보를 많이 사전에 얻지 않는 편인데,
<밀양>은 촬영현장을 스케치한 모 프로그램에서 납치라는 소재를,
그리고 모 잡지에 난 기사가운데 스쳐지나간 종교라는 소재만 미리 알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밀양'이 지명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오프닝에 송강호와 전도연이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고
사뭇 놀라게 되었다 (난 왜 부부일꺼라 미리 생각했던가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밀양>은 두 번 다시 보고싶지는 않은 영화이다.
영화가 재미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불편함과 억눌림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갑자기 얼마전 보았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떠올랐다.
<밀양>은 어떤 면에서는 <마츠코..>와 닮아 있기도 하다.
마츠코의 일생과 극중 이신애의 일생은(이신애의 경우 일생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둘 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고 고통스런 순간들이지만,
<마츠코>의 경우 희망과 뮤지컬 리듬으로 영화를 이어갔다면
<밀양>의 경우엔 참담하고 안타까운 사건들을 진지하고, 한편으론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납치와 살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신애는
누구보다도 우스운 소리라고 여겼던 종교(기독교)에 의지하고 빠져들게 되지만,
살인자를 용서하러 간 자리에서 그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용서를 받았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다시 한번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곤 자신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신'이라는 존재에게 보란듯이
이상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일종의 '멜로'영화라고 했는데,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 해매는 신애와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곳에
항상 보이는 곳에 있는 종찬의 특별한 멜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자칫 '구원'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으로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밀양>이 담고 있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는 (종교적인 소재가 직접적으로 담겼음에도)
범인간적인,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하는 넓은 의미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 영화가 매우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종교 때문이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종교라는 것은 그 어느 소재보다도 건드리기가 껄끄러운 문제이며
어떻게 그려도 한 편에선 욕먹기 쉬운 것이 종교인데,
<밀양>에서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그리면서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기독교인들도 기분 나쁘지 않게, 중도를 지키는 매우 어려운 '중간'을 그리는데 성공한듯 하다.
실제로 연기자가 아니라 목사님이 출연하기도 했을 정도로, 기독교인들 스스로에게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찬양조로 그리지도 않았으며,
'기독교'라는 집단 자체는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그저 보수적인 한 단체 정도의 의미만이
느껴질 정도였다.
 
종교적인 것이라면 신애와 종교 사이에 일일텐데,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던데, 신이 있다면 왜 이런일들이 생기느냐 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논란이 되는 문제가 신애에게 닥치게 된다.
이 문제는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도 명확히 답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극 중 신애는 이 같이 어디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처참한 한 여자의 삶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도연의 연기는 참 대단했다.사실 전도연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특히 연기력에 대해서
이렇다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물론 신애라는 인물 자체가 여배우로서
거듭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도연의 연기가
단순히 인물자체의 매력때문이었다고만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기엄마가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잃고 난 고통을
제대로 쉽게 연기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그런 마음에서 임한 만큼 정말 처절하리 만큼
공감할 수 있는 신애를 볼 수 있었다.
 
다들 전도연, 전도연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송강호의 연기였다.
포커스는 분명 신애에게 맞춰 있는 영화이지만, 만약 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이 없었다면
<밀양>은 더 무겁기만 하고, 단순히 처절하기만 한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찬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 타임 속에서
잠시나마 쉴 여유를 갖을 수 있었으며, 무거워만 갈 수 있었던 영화에
리듬감을 가미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마치 무슨 감초역할로 비춰질 수도 있을텐데,
종찬의 역할은 감초가 아니라 신애의 그림자와도 같이 없어서는 안될 캐릭터이며,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구원'이라는 물음에 있어서,
결국 인간이 구원받을 곳은 인간 뿐이다 라는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보는 내내 송강호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표면적으로 돋보이는 전도연의 열연 못지 않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밀양>.
납치, 살해, 종교 등 너무나도 선정적인 소재들이 한 꺼번에 쓰였음에도
그 본래의 존재 이유처럼 '소재'로만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그 만큼 더 큰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었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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