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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 (Suffragette, 2015)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서프러제트 (Suffragette)' 무리의 이야기를 그린 사라 개브론 감독의 '서프러제트'는, 근래 개봉했던 스티브 맥퀸의 '헝거 (Hunger, 2008)'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셀마 (Selma, 2014)'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응당 누려야 할 권리 혹은 자유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투쟁 혹은 그 투쟁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 속 런던의 배경 역시 20세기 초로 아주 가까운 과거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올해가 되어서야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을 정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근 과거의 이야기 혹은 현재 진행형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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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는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모드 와츠라는 평범한 인물이 어떤 일들과 변화를 겪으며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운동가로 변모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주목한다. 이런 구조는 전형적일지 몰라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이나 운동에 큰 관심은 없었던 평범한 인물이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결국 서프러제트가 되는 이야기는 반복이지만, 투쟁 혹은 운동에 있어서 이 반복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를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선택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거리에 나와 운동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 이들을 그저 원래 그런 사람들로 생각하거나, 특별한 이해 관계가 있어서, 성질이 그러해서 그러는 거라고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 많은 사고 혹은 피해로 인해 거리에 투사가 된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평소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역시 누군가 정해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로만 알고 있었던 모드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면서 운동에 뛰어 들게 되는 것처럼,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평범한 이가 투쟁해야 한다는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반복이 있었음에도 재차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직도 다수는 내가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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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묘사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공권력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하는 종류의 고통 보다는 오히려 주변과 가족으로부터 겪는 이질감과 몰이해에서 오는 외로움과 괴로움, 갈등에 주목한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가치 판단의 중요성 보다는 사회의 분위기가 투표권을 주장하는 여성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과 억누르려는 방향성을 갖고 있을 때, 나서서 피해를 감수하거나 투쟁하기 보다는 그저 조용히 침묵하기를,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은 침묵하기를 바라는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는, 모드에게 그 어떤 무력을 통한 폭력 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파고 든다. 시위를 하다 경찰에게 잡힌 모드를 풀어주면서 '체포하지 말고 그냥 집 앞에 내려줘. 남편이 알아서 하게'라는 식의 대사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 중 하나다. 그렇게 평범한 인물이 가족과 소중한 아들, 직장 등 모든 것을 잃고, 누군가는 목숨을 통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반면 그 무언가를 남성들은 너무 쉽게 소유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당함, 너무 쉽게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이들의 무지함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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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역사 속 투쟁으로 읽을 수가 없다. 최근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여성 혐오 범죄를 비롯해, 다른 곳도 아니고 '서프러제트'의 상영관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 및 비하, 폭력 사건은, 솔직히 내가 지금 어떤 수준의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처참한 기분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프러제트'는 누군가가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실은 그것들을 싸우지도 않고 애초부터 갖고 있어서 자신만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과, 왜 이것들을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역사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이들이 그것을 행동으로 거침 없이 옮길 정도로 사회의 분위기가 썩어버렸다는 것에 한심함 마저 든다. 지금은 우리 사회는 후퇴해도 너무 후퇴했다.



1. 벤 위쇼는 출연하는 지도 몰랐었는데 반갑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되네요

2.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온 많은 것들에 대해 적지 않은 수가 혐오 혹은 분노를 느낀다는 걸 근래 종종 느끼게 되어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요즘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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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 블루레이 리뷰

작품에 걸맞는 컬렉션으로 탄생한 한정판​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 가운데 최근 몇 년 간 가장 꾸준한 완성도와 평단의 열렬한 지지, 더 나아가 조금씩 더 나아지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코엔 형제를 가장 첫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07 년 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시작으로, '번 애프터 리딩 (2008)', '시리어스 맨 (2009)', '더 브레이브 (2010)' 그리고 이 작품 '인사이드 르윈'에 이르기까지,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국 사회를 다루는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던질 수 있는 메시지의 한계를 조금씩 더 넓혀왔다 (혹자는 '번 애프터 리딩'이 이 리스트에서 빠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확히 이야기하자면 코엔 형제는 위에 언급한 작품들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이른바 '거장'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밥 딜런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음악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땐, 그들의 팬이자 포크 음악의 애호가로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이미 여러분들이 확인했다시피 또 한 번 마법 같은 연출력으로, 최고의 음악 영화인 동시에 코엔 형제가 꾸준히 말하고자 하는 삶의 고통을 담아낸 수작으로서 기억될 작품을 만들어 냈다. 바로 '인사이드 르윈'이다.




'인사이드 르윈'은 데이브 반 롱크 (Dave Van Ronk)라는 실제 포크 뮤지션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데이브 반 롱크는 당대의 포크 뮤지션인 밥 딜런, 존 바에즈 등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의 전기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코엔 형제는 데이브 반 롱크라는 포크 뮤지션의 이야기를 빌어, 자신들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시대의 공기와 우연의 연속을 통한 삶의 아이러니를 차분하게 그려낸다 (참고로 영화의 제목 'Inside Llewyn Davis'는 데이브 반 롱크의 1963년 앨범 'Inside Dave Van Ronk'에서 가져왔다). 




실 처음 코엔 형제가 음악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일반적인 음악 영화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할 수 있었고, '인사이드 르윈'은 조금 다른 의미지만 실제로 그랬다. 포크 뮤지션인 르윈 데이비스 (오스카 아이삭)를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되지만, 그의 음악적 커리어에 대한 성공과 실패에 주목하기 보다는 코엔 형제의 다른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짧은 여정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개의 우연들과 그 우연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 내는 전혀 다른 사건들에 대해 무덤덤 하게 그려낸다.

'시리어스 맨'이 나른함과 시니컬 함의 정서였다면 '인사이드 르윈'은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 혹은 꿈을 꾸는 듯 불투명하고 안개 속에 있는 듯 멜랑콜리한 정서를 통해 놀랍게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 도대체 무슨 체험을 한 것인가 스스로를 몇 번이고 돌아보게 만든다.





인사이드 르윈 - THE BLU COLLECTION LIMITED EDITION




'인사이드 르윈'을 인상 깊게 본 순간 동시에 들었던 한 가지 걱정은, '과연 인사이드 르윈의 블루레이는 출시 될 것인가? 만약 출시된다면 패키지는 너무 소홀하게 나오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인사이드 르윈'은 정말 그 해 최고의 영화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땐 외면 당할 소지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블루를 통해 출시된 블루레이는 한정판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소장 가치 높은 만족스러운 패키지로 출시되었다. 진심으로 다행이다.




단 이번 한정판 블루레이 패키지의 구성물을 나열해 보자면 40p 분량의 소책자와 오리지널 포스터 카드, 포토 카드 3종과 기타 피크 그리고 더 블루 콜렉션 한정 카드가 수록되었다. 넘버링 스티커 등 한정 판을 더욱 한정 판 답게 만드는 구성물을 통해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쓴 모습이다.






저 소책자의 경우 '고양이를 쫓는 이상한 모험'이라는 제목의 영화 리뷰 글과 '포크가 허락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OST를 소개하는 글이 수록되었고, 여기에 감독과 배우들을 각각 소개하는 '피로한 인물의 창조자들'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수록되어 충분한 읽을 거리 또한 제공한다. 소책자에 수록된 모든 글은 영문으로도 제공된다.



풀 슬립 아웃케이스는 크래프트 재질로 제작되었으며 최근 풀 슬립 아웃케이스의 경향이 그러하듯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내부까지 일부 디자인이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스는 스카나보 투명 케이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포토 카드 3종과 오리지널 포스터 이미지가 담긴 카드 1장도 수록되어 소장 가치를 더한다.

그 리고 포크 음악을 담은 영화 답게 기타 피크도 제공하고 있는데, 아까워서 실제 이 피크로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 만은 집에 어쿠스틱 기타가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 이 피크를 사용해서 극 중 오스카 아이삭처럼 'Hang Me, Oh Hang Me~'를 읊조려 볼 수도 있겠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최신작답게 만족스러운 편이다. 아마 극장에서 이 작품을 접하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작품의 영상 톤에 대해서 살짝 의문을 갖을 지도 모르겠는데, 전반적으로 무채색의 느낌이 나도록 색감의 레벨을 상당히 낮춘 형태의 영상은 감독의 의도가 담긴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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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영상에 잠시 등장하는 실제 촬영 장면과 비교해보면 영화 속 영상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컬러가 조정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가스등 카페 장면과 실외 장면에서 더 그러하다), 오히려 이렇게 전체적으로 톤 다운 된 영상을 수록하고 있기에 화질의 중요성이 더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Blu-ray : Audio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음악의 비중이 큰 작품 답게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코엔 형제는 '인사이드 르윈'을 만들면서 음악을 단순히 담는 것이 아니라 라이브로 담아내길 원했는데, 그렇게 담아낸 연주와 노래 장면들은 블루레이의 사운드를 통해 더 집중력 있게 안방 극장으로 전달된다. 특히 이 작품의 연주 장면은 연주와 노래 외에 군더더기가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배제한 채 오로지 그 곡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사운드의 중요성이 다른 영화들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확실히 이 포인트를 더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화 음악 외에 이 작품에서 소소하지만 사운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고양이가 등장하는 장면인데, 아마 집사 분들이라면 다 잘 아시겠지만 고양이 특유의 그르렁 대는 사운드를 느낄 때면 묘한 쾌감이 있는데, 특히 블루레이처럼 선명한 사운드로 접하게 될 땐 그 감동(?)이 더 배가 되는 느낌이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 가 영상은 Inside “inside Llewyn Davis” 라는 제목의 약 40여 분 분량의 메이킹 영상 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영상의 내용 자체는 만족스러운 편이지만, 이 영상 외에는 전혀 다른 부가 영상이 수록되지 않은 점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킹 영상에서는 감독인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의 인터뷰는 물론이고, 오스카 아이삭과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존 굿맨 등 주요 출연진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코엔 형제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전체적으로 '인사이드 르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비롯해, 연기와 노래 특히 연주까지 가능한 르윈 데이비스 역할을 캐스팅하기 까지의 어려움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코엔 형제는 이번 영화에서 노래와 연주가 마치 뮤지컬처럼 직접 라이브로 진행되길 원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오스카 아이삭 만한 적역도 없지 않았나 싶다.





양한 제작 뒷 이야기를 담은 메이킹 영상에서도 특히 흥미를 끌었던 장면은, 주인공 오스카 아이삭을 비롯해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음악 감독인 티 본 버넷 그리고 '멈포드 앤 선즈 (mumford and sons)'의 리드 보컬 마커스 멈포드와 그의 아내 캐리 멀리건까지 음악 작업을 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어쩌면 이 과정의 장면들도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유명한 뮤지션과 배우들이 스튜디오에서 서로 눈빛을 맞춰가며 노래와 연주를 함께 하는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인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총평] 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그들의 놀라운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힐 만한 마법 같은 작품이었다. 포크 뮤직이라는 세계 관에 자신들이 평소 말하고자 했던 삶의 아이러니에 관한 세계관을 아주 얇은 두께의 레이어로 겹쳐낸 이 작품은, 완벽한 코엔 형제의 영화인 동시에 완벽한 음악 영화이기도 하다.


런 작품을 구성물이 풍성한 패키지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아직도) 반가움이 더 먼저 드는 사건이며, 앞으로도 코엔 형제의 영화를 비롯해 작품성으로 인정 받는 좋은 영화들이 그에 걸맞는 퀄리티의 타이틀과 패키지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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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화려함이 독이 된 바즈 루어만의 또 다른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의 필모그래피를 빼놓지 않고 봐왔었고, 무엇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 '위대한 개츠비'는 원작을 제쳐두더라도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바즈 루어만은 이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과 스타일대로 연출했는데, 그 스타일이 이 이야기와는 잘 맞지 않는 듯 했다. 바즈 루어만은 이 고전을 21세기에 새롭게 펼쳐 놓으면서 무언가 다른 볼거리와 화려함으로 업그레이드 하려 했지만, 결국 이 시도는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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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자면 극 중 개츠비의 심리는 물론 그 외의 인물들의 심리를 100% 이해하기에 영화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다. 물론 말미에 개츠비의 심리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개츠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낭비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바즈 루어만은 개츠비를 중심으로 데이지와의 로맨스를 그리는 것은 물론, 닉 캐러웨이를 화자로 하여 전반적인 구조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그 시대가 담고 있던 깊은 경고와 반성의 메시지까지 녹여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집중력이 분산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화려함이 너무 과했다. 화려함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화려함은 바즈 루어만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니던가) 이 화려함의 활용을 통해 오히려 메시지의 깊이를 더 견고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저 화려한 눈 요기로만 남은 것이 안타까운 점이었다. 3D 버전은 보지 않았지만, 아마 3D로 보았다면 그 안타까움은 더 커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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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총 천연 색의 활용과 볼거리 가득한 화려함은 분명 바즈 루어만의 장기다. 바즈 루어만은 '위대한 개츠비'를 마치 '물랑루즈'처럼 찍었는데, '물랑루즈'의 경우 딱 맞는 옷이었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그 옷만 보이는 경우였다. 즉, 극 중 개츠비가 화려한 대규모의 파티를 매주 여는 것을 두고 세간에서 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개츠비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이 화려함의 정당성을 이끌어 냈어야 했는데, 영화의 화려함은 그저 공허함 만을 남겼다. 특히 음악의 활용도 실패였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물랑루즈'와 마찬가지로 기존 곡들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그 원곡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기쁨 외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제이 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어쨋든 '위대한 개츠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가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는 점도 한 몫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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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만 쭉 늘어놓았으나 만족스러운 점도 있었는데,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바즈 루어만의 재회랄까. 바즈 루어만은 마치 예전 '로미오와 줄리엣' 출연했던 그 아름답고 풋풋한 미소년을 그리듯, '위대한 개츠비' 속 레오를 그려내고 있었다. 약간 CG가 더해진 듯 했지만 (레오 뿐만 아니라 배경에 CG가 워낙 강하다 보니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도 CG 느낌이 강하게 난다) 미모로 관객을 사로잡는 레오의 매력을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그의 팬으로서 반가웠다. 그와는 정반대로 캐리 멀리건은 정말 매력적인 배우인데 그 매력이 거의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녀 필모에서는 좋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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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Drive, 2011)

이토록 황홀한 아름다움



매년 백 편이 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면 그 가운데에는, 하마터면 놓칠 뻔 했으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는 감격을누리고 있구나 라고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는 작품이 한 두 작품 나오기 마련인데, 올 해는 아마도 이 영화 '드라이브 (Drive, 2011)'가 아닐까 싶다. 처음 11월에 봐야 할 영화 목록에 '드라이브'는 없었다. 그저 캐리 멀리건이 나오는 영화라 한 번 보고 싶기는 했지만, 더 보고 싶은 다른 작품들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만 같아 결국 다음으로 미루는 것으로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적은 상영관을 통해 (왜 항상 좋은 영화의 상영관 수는 이리도 적은 것일까!) 이미 본 이들의 반응을 보니 '엇, 이거 그냥 지나쳤다간 나중에 큰 후회를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봤으면 큰 후회 정도가 아니라 계속 재개봉이라도 혹시 안하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를 체크하고 다니는 날들이 계속될 뻔 했을 정도였다. 쟁쟁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올해,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영화의 손꼽는 후보작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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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들이라면 아마 '드라이브'에서 여러 영화의 감각과 향이 느껴질 것이다. 어두운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조용히 (정말 조용히) 달리는 자동차와 한 남자. 그리고 핑크색 컬러로 뿌려지는 오프닝 크래딧과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감각의 배경음악까지.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드라이브'는 이미 오프닝만으로 관객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를 연상시키는 오프닝의 감각과 구성은 영화를 내내 감싸고 있는데, 이것 만으로도 '드라이브'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주인공의 모습이나 포스는 '첩혈쌍웅'으로 대표되는 당시 홍콩 느와르 영화 속 주윤발의 그것을 정확히 떠올리게 했다. 입에 문 이쑤시게가 오히려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져 없었어도 충분한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은 주윤발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당시 홍콩 영화를 즐겨봤던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당시 영화 속 주윤발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적 무언가가 충만한 이미지였다. 물론 라이언 고슬링이 이 한 편 만으로 시대를 관통했던 주윤발의 아우라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 홍콩 느와르 속 주윤발이라는 캐릭터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경과 시대에 다시금 불러와 소화해 냈다는 점만은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다. 말 한 마디 보다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미세한 동선의 차이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라이언 고스링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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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러티브 측면에서 보자면 '드라이브'는 상당히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 편이다. 극중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이 가까워지는 속도에 있어서도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쿨하게 넘기고, 이름도 없이 그저 '운전사'로만 불리는 라이언 고슬링의 과거에 대해서도 영화는 거의 정보를 주지 않고 그저 분위기로만 슬쩍 풍길 뿐이다. 그리고 이 드라이버가 처하게 되는 상황의 큰 그림에 있어서도 영화는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다. 마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영화는 뚝뚝 끊겨서 불편하고 주인공들에게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빠져들지 못하고, 결국 결론에 가서도 무슨 영화를 본 건가 싶어야 맞을 텐데, '드라이브'에게는 이런 점이 발견되기는 커녕 오히려 매우 깊은 만족감을 전해 준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마치 주윤발이 주연을 맡은 '블레이드 러너'를 베이스로 하여,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도시의 밤을 그리는 데에서는 마이클 만을, 그리고 폭력을 묘사하는데에 있어서는 크로넨버그마저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터미네이터'의 느낌마저 풍길 정돈데 (이 영화는 묘하게도 몹시 SF영화스럽다), 이런 점들 역시 말로만 전해 들으면 장점들을 다 가져다 놓기는 했으나 조합 측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번잡스러워 실패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거장들의 인장 과도 같은 장점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다 흡수해 소화까지 시켜버린 경우라고 하겠다. 즉, 이건 이 작품을 연상시키고, 이건 이 감독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이브' 자체는 독립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얘기다. 아... 이 얼마나 황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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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를 본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황홀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최근 본 영화 가운데 테랜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의 '황홀경'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의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드라이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듯 싶다. '트리 오브 라이프'의 경우 담고 있는 주제와 포괄하는 범위 자체가 근본적 아름다움과 우주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황홀경'을 담아내기에 비교적 용이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반 면, '드라이브'는 매우 상업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범죄, 액션, 로맨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와 동등한 영화적 아름다움을 담아냈다는 점이 이 영화가 칸에게도 선택 받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작품으로 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올해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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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는 첫 인트로 부터 액션과 스릴러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풍기고 있는 그 아름다움에 손에 땀을 쥐었던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며 '머니볼'의 대사 마냥 '이래서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라고 되내일 수 밖에는 없는 '황홀한' 작품이었다. 강력한 올해의 영화 추천작!



1. '황홀하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많이 쓴 리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어요, 황홀하니까!

2.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아마존으로 가야할듯.

3. 라이언 고슬링이 입고나온 그 스콜피온 점퍼! 저 점퍼 입는 다고 영화 속 고슬링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소장하고 싶은 아이템이네요 ㅎ

4. 극장에서 벌써 대부분 내린 것 같은데, 꼭 상영관을 찾아서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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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렛 미고 (Never Let Me Go, 2010)

외로운 영혼의 나직한 노래



가즈오 이시구의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고 (Never Let Me Go)'는, 인간 복제나 장기 기증 등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나 'A.I' 등 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네버 렛 미고'는 이 설정을 제외한다면 거의 SF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미가 짙게 깔린 작품인 동시에, 반대로 그래서 더 SF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진면목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네버 렛 미고'가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SF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데,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의 존엄성이나 정체성 등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를 묻는 것보다는,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고 '종결 (Completion)'되어지는 운명에 힘겹게 순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교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인간성에 대해 그리고 영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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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렛 미고'에 전반적으로 드리워져 있는 정서는 체념과 순응 그리고 나직한 슬픔이다. 극 중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알고 나서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겪기도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과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경계를 넘는 사투를 벌이는 것 보다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순응의 범주 안에서 그 누구도 강하게 탓하지 못하는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이런 주인공들의 여정이 답답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구성적 측면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음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읽어내려가는 캐시 (캐리 멀리건)에게 애잔함이 드는 동시에 동정이 아닌 같은 존재로서의 슬픔마저 느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이 소멸되어 가는 이들의 운명에 빗대어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끔 하는게 아니라 더 큰 범주에서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질문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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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읽어보지 못해 영화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의 존재론 적인 화두보다는 오히려 세 남녀의 미묘한 삼각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던,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한 것은 결과적으로 더 큰 인상을 주었다. 결국 방법론의 차이 정도일 수도 있지만, 마크 로마넥이 선택한 이 방식은 이 작품을 SF라는 장르에서 자유롭게 해주었고, 인간과 인간을 위한 존재에 대한 영화가 아닌 그냥 '우리'에 관한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앞서 운명에 순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 순응이 극복이나 반항보다 인상적인 이유에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 번째는 개인적으로 결핍과 장애 혹은 경계 아래에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인데, 이런 것들을 반드시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견디는 과정에 더 포커스를 둔 방향성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만드는 타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환경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극복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캐시의 1인칭 입장에 가깝게 그리려고 한 영화의 과정이 더욱 인상적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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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에서 언급했던 그 과정, 바로 견디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 중 캐시의 대사를 보면 이런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와 캐시가 말하고자 했던 점은 '우리는 결국 너희와 같다'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너희보다 더 인간적이다'라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담담히 '우리는 결국 삶을 끝까지 살아냈다'라는 것이었다. 정확히 알지 못했고 모두를 이해할 수도 없지만 '삶을 끝까지 살아냈다'라는 캐시의 이 말은 인간들을 한탄하는 메시지보다도, 한계를 넘어 새로운 존재가 되는 이야기보다도 더 강한 인상과 무게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참고로 표현상 구분했을 뿐이지, 저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간 아닌 존재가 아니라 그냥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어요;). 결국 이런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여정은 단순히 답답한 순응이라기 보다는 내적인 치열함의 또 다른 방향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캐시의 말처럼 그 누구도 이해했다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하나의 소중한 '삶'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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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무언가 먹먹함과 쓸쓸함 그리고 자기연민까지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영화로 기억되기보다는 음악이나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될 것 같기도 하구요.

2. 캐시 역할의 캐리 멀리건은 정말 캐릭터와 잘 어울리더군요. 아역을 맡은 배우도 멀리건과 많이 닮아있어서 보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구요. 전 '언 애듀케이션'보다 '네버 렛 미고'의 캐리 멀리건이 더 좋았네요.

3. 짧은 출연이지만 샐리 호킨스와 샬롯 램플링도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인상 깊었네요. 샐리 호킨스는 '해피 고 럭키' 이후로 계속 이렇게 조연으로 등장하는 작품들만 보게 되는 것 같네요;

4. 기회가 된다면 가즈오 이시구의 원작 소설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영화 속에 나오는 저런 바닷가에 앉아서 보면 더 확확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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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애듀케이션 (An Education, 2009)
교육, 과정의 중요성


어쩌다보니 연출을 맡은 론 쉐르픽 보다 각본을 쓴 닉 혼비가 더욱 유명세를 탔던 영화 <언 애듀케이션>을 지난 주말 보았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과 주연 배우 정도만 알고 가는 나로서는 (모르면 모르고 볼 수록 최적의 조건에서 관람할 수 있다), 포스터만 보고는 '좀 샤방한 로맨스겠구나' 했는데, 물론 로맨스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성장담이었으며 가족과 교육의 굴레를 보면서 의외로 우리내 교육현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 작품을 보며 이런 현실을 떠올리게 될 줄은 사실 몰랐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이, 또 성장이야기야?' 싶은데, 사실 영화 가운데 성장담이 아닌 영화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매번 반복되는 성장담(그것도 소녀!)임에도 <언 애듀케이션>은 한 번쯤 또 볼만한 성장담이자, 그 외에 여러가지 요소를 조용히 들려주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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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소녀의 성장담 이전에 그 소녀가 처한 현실의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1년 영국을 살고 있는 17세 우등생 '제니' (캐리 멀리건)는 보수적인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옥스퍼드 대학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니는 이런 부모님의 기대와 통제 아래 열심히 공부해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왜 옥스포드에 꼭 가야하나?'라는 의문이 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만난 연상남 '데이빗' (피터 사스가드)은 17세 소녀 제니가 동경하던 세상을 실현시켜줄 인물로 급 부상하며, 제니는 급속도로 데이빗과 이 새로운 어른의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일단 일탈 전 제니가 살고 있던 가정을 살펴보면,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오로지 우등생만을 목표로 하는 듯한 이 가정은 의외로(?)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옥스포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작은 레슨비 하나하나에 형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하지만 딸의 인생을 위해 가족 모두가 제니의 교육이라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후반부에 좀 더 터져나오지만, 이 가족의 목표(즉 부모의 바램)는 꼭 '옥스포드'는 아니다. 바꿔 말하면 성공적인 삶이며, 그것이 옥스포드 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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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니가 탈출해서 만난 데이빗의 세상은 실로 어른의 세상이다. 겉보기에는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옥스포드를 목표로 매번 압박 속에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치열하기 보다는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며 사는 듯 한 데이빗의 그럴 듯한 삶에 제니는 단번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17세 소녀 제니의 욕망도 있다. 제니는 데이빗과의 삶을 통해 단숨에 어른의 삶에 물들어 버렸고, 동경하던 삶을 너무 쉽게 이뤄버린 탓에 그 과정에서 배워야할 것들을 놓치고 만다.

그런데 중반까지 영화가 그려내는 데이빗의 삶은 정말 완벽해 보인다. 이 영화를 그냥 데이빗과 제니의 알콩달콩 로맨스로만 가져갔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이 둘의 묘사는 17세 소녀라는 점을 지워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데이빗이라는 캐릭터는 느끼함과 귀여움을 고루 갖춘 매력을 선사한다. 멀쩡한 로맨스 영화를 요새 별로 못 본 것도 있지만, 이 둘의 연예를 보면서 오랜만에 그 귀여움에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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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가 후반으로 갈 수록 인상 깊은 것은 알프레드 몰리나가 연기한 제니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이 캐릭터는 여러모로 한국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1960년대 영국 남자에게서 근래 한국의 아버지상을 보다니;).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딸의 인생은 지금의 자신보다는 나아지게 해야겠다는 일념하에, 성공적인 삶의 목표 (혹은 길)로 알려진 옥스포드 대학에 반드시 제니를 진학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데이빗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듯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딸의 성공'이나 '딸의 편안한 삶'이지 '옥스포드'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채지 못한 어린 제니는 나중의 아버지의 태도가 급변 했을 때 (사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급변이라 보긴 어렵지만, 제니의 눈으로 보았을 땐 그렇게 느껴지기 충분했다) 몹시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고,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제니는 한 여름의 꿈과도 같은 바람을 겪고 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혹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된다. 결국 이런 획일적인 교육과 삶이 싫어서 일탈했던 제니가 바람을 겪고 다시 (스스로) 돌아온 곳은, 또 다시 교육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그렇다고 '부모님 말씀 하나 틀린 것 없다' 라던지, '결국 삶에 순응하며 살아야된다'로 결론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돌아왔으니 그 길이 맞는 것이었다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것에 본래 의미, 즉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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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애듀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연을 맡은 캐리 멀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소녀의 전작들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오만과 편견>과 <퍼블릭 에너미> 정도가 본 작품인데, 어쨋든 이들 작품 속에서 멀리건의 이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쨋든 이 영화는 캐리 멀리건을 위한 작품임에 틀림 없다. 그녀의 얼굴과 표정연기는 참 유니크한데,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표정과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으로 단번에 관객들과 평단에 찬사를 받은 그녀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그녀 외에 알프레드 몰리나의 연기가 몰입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데이빗' 역할을 맡은 피터 사스가드의 그 영국식 억양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배경이 영국이다 보니 다들 영국식 억양을 쓰긴 하지만, 사스가드의 그것이 가장 매력적이더라).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해피 고 럭키>의 샐리 호킨스의 깜짝 출연이었는데, 전혀 다른 인상이긴 했지만, 워낙에 인상적인 페이스라 단번에 알아보겠더라. 그녀의 모습을 본 건 의외의 수확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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