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것 많았던 추노의 마지막


'선덕여왕' 이후 오랜만에 재미있게 끝까지 잘 보았던 '추노'가 드디어 오늘 막을 내렸다. '추노'에 대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정리하는 것은 너무 방대해질 우려가 있으니, 인상 깊었던 마지막 화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넘어가보려고 한다(사실 무언가 글로 쏟아내지 않으면 몹시도 답답할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혹시 몰라 스포일러 표시합니다. 당연히 추노 마지막 회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노'는 구조상 처음부터 누군가가 마지막에 죽을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단 누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혹은 누가 살아남을지가 관심거리였는데, '추노'는 이렇듯 '누가 죽고 사느냐'에만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왜 살아남고'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인상적인 엔딩을 선사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누가 죽네마네'하며 손가락으로 그 경우의 수를 꼽아보았던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업복이 (공형진). 바로 전회에서 믿었던 그(박기웅)에게 배신 당한 뒤, 이제야 마음을 고백한 초복이를 남겨두고, 초복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궁궐로 향한 업복이의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의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보통 같으면 자신들을 배신한 그에게 복수하고 자신은 장렬히 죽음을 당하는 것만으로 업복이의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을텐데, 업복이의 이야기는 그 자신의 죽음으로 쓰는 메시지보다도 더 큰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극 내내 세상을 바꾸려는 업복이를 (적어도 겉으로는) 못마땅해 하고, 그저 주어진 노비의 삶을 살아가는데에 충실하려 했던(자신의 딸의 고통을 참아내면서까지) 반짝이 아버지에게로의 전파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렇게 어긋난 세상을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평범한 반짝이 아버지에게, 양반노비 구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다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업복이의 삶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꽉 쥔 주먹으로 알 수 있듯이 반짝이 아버지의 삶은 극 마지막의 내레이션을 들려주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추노'는 대부분 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의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황철웅(이종혁)에게 연민이 들었다. 그리고 황철웅이 사실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어쩌면 '누가 죽을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에서 어렵지 않게 죽음을 예상했었던 황철웅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초반을 제외하고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지워낸 듯 했던 황철웅에게, 바로 마지막 직전에 다시 한번 어머니를 등장시키며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 했을 때부터, 무언가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그렇지 않다면 이제 거의 살인귀로 다 몰아갔던 황철웅을 다시 한번 지옥에서 구해낼 이유가 없었다). 대길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대길에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막는 이유를 듣고 나서, 칼을 스스로 내린 순간 이미 황철웅은 이 싸움을 포기 한 듯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는걸 스스로 깨닫고 있던 황철웅은, 마지막에와서야 대길과 송태하의 집념을 새삼 느끼고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자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황철웅은 집으로 돌아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불편한 아내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이는 극중 내내 터지지 않았던 유일한 황철웅의 감정의 폭발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너무 깊게 잘못 되어 버린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 황철웅의 마지막 진솔한 눈물은, 대길과 송태하의 눈물에 버금가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대길과 언년이, 송태하의 마지막은 사실 앞선 이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이고 전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이 울컥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대길'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창조해 낸 장혁이라는 배우 덕택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남자와 세상을 바꾸려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운명을 선택해야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그렇게 한 세상을 살 다간 이들 이야기의 마지막은 예정되었던 대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다시 생각해봐도 대길의 죽음이 인상 깊은 것은 장혁의 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업복이와 황철웅의 마지막 보다 메시지 측면에서는 대단할 것이 없는 엔딩이었으나, 그 마지막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장혁의 공이었다. 그리고 애초 '추노꾼 = 현상금 사냥꾼' 이라는 설정으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을 연상시켰던 '추노'는 엔딩 장면에서는 아예 완벽한 오마주로, 이런 논란 아닌 논란에 대해 깔끔한 마침표를 찍었다. <카우보이 비밥>의 말할 것도 없는 팬인 나로서는, 그 오마주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는 없었다.



(아, 이제 이 장면을 볼 때 '대길'이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ㅠ)


어쨋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마지막을 (특히 업복이와 황철웅 때문이었다) 선사한 추노. (아, 그리고 초복이가 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 3>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라클이 사티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수요일, 목요일을 보낸다니.
이제 정녕 추노가 끝났다는 것이 말이여 당나귀여.

보너스.

광고 이후 나온 정말 '추노'의 마지막 장면.(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pedr.com/10b6i


p.s 1. 내가 정녕 죽은것인지 아닌지 어심을 읽으시게
     2. 나는 전반적으로 맞아 죽지 않았나 싶은데
     3. 형님들, 남아로 태어났으면 블루레이 한번은 출시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4. 이히히히히, 나 천지호야, 나 마지막회 안나왔다고 잊지마, 천지호야~~~~~~~

이제 이런 성대모사 연습한거 다 어디 써먹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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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09)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콤비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는, 스콜세지 - 로버트 드니로 이후 최고의 감독과 페르소나 콤비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들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미스틱 리버>, <곤 베이비 곤>의 원작자 데니스 르헤인이 쓴 유명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었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스크린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셔터 아일랜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히치콕식 스릴러 연출과 큐브릭을 연상시키는 미장센으로 담아낸,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수작이었다(개인적으로는 걸작이라 불러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 근래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몰입도 있고, 가장 영화 본연의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으며, 근래 본 연기 가운데 또 하나의 절정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매우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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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날 처음 만난 자신의 파트너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에 환자 실종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출구라고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것 외에는 없는 이 외딴 섬에서 어떻게 환자가 도망치게 혹은 실종되었는지 의문이 많은 가운데, 테디는 이 정신병원 시설과 관계자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며, 그 안에 자신의 개인적인 조사 역시 진행하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의 타이틀 텍스트라던지 애쉬클리프를 조명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던지, 'The Band'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음악감독 로비 로버슨의 음산하고 무거운 음악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미국의 보스턴 셔터 아일랜드로 이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장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셔터 아일랜드>의 의상과 미장센은 너무도 영화적이라 매혹적이다. 당시의 코트와 의상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 중 하나인 마크 러팔로의 코스츔은 그 자체로 고증을 넘어선 매혹이 되버리고, 아내가 골라준 촌스러운 넥타이를 코트에 어울리지 않게 매치한 디카프리오의 모습 역시 영화 초반 연대를 알리는 텍스트 없이도 이 작품이 어느 시대를 그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사실 몰입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는, 코트에 모자를 눌러 쓴 마크 러팔로를 보는 순간 이미 몰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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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미장센이 시대의 공기를 담으려고 애썼다면, 시종일관 긴장감을 전하는 스코어는 장르 영화로서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라는 영화 뒷 편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크 러팔로의 등장만으로 몰입했던 터라 그 이후에도 심하게 몰입해 영화가 반전을 제공했을 때에도, 그 이후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모두 다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스코세지가 풀어낸 <셔터 아일랜드>의 구성은 혼란스럽고 불부명한 구조를 보여주는 듯 하다.

관객들은 죽었다던 테디의 아내가 등장할 때 꿈이나 환상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녀가 환상 속에서 보여주는 장면과 대사, 미장센 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테디가 보는 아내의 환상 들은 마치 최근 보았던
찰리 카우프먼의 <시네도키 뉴욕>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쩌면 이 작품을 더욱 모호하게(하지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던)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의 결말로 되돌아 보았을 때 다시 한번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적 장치들이었다(재미있는 건 <시네도키 뉴욕>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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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아주 깊게 몰입했던 터라 결말에 보여준 반전과 그 이후에 영화가 택한 설정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반전에만 목숨건 정통 스릴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혼란스런 설정들도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정통 스릴러의 범주로만 따져보아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결국 테디 다니엘스 인지 앤드류 레디스 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흥미롭고, 맨 마지막에 선택한 삶(혹은 죽음)이 테디로서의 그것인지 앤드류 로서의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스포일러를 표시한 김에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결국 마지막 등대 위에서 들려주는 박사의 이야기처럼 앤드류는 자신의 아이들을 우울증으로 익사시켜 살해한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과 나치 수용소의 기억 등이 트라우마가 되어 결국, 테디 다니엘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냈고 수술이 아닌 진보적인 치료를 추구하던 코리 박사는 이 거대한 연극을 통해 앤드류를 치료하길 시도했으나, 결국 다시 한번 돌아오는 것에 실패한 앤드류에게 포기하고 외적인 수술을 시도할 수 밖에는 없게 된다.

원작에는 없다는 영화 만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데, '괴물로 살아가거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거나'라는 대사 뒤에 스스로 수술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앤드류(테디)의 모습은, 이런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앤드류(괴물)로서 살아가느니, 가상의 인물인 테디가 되어 모든 것을 잊은 채 사는 것을 (수술)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결국 앤드류의 환상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결국 이 모든 것이 음모를 파해치려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를 막기 위해 병원가 박사가 몰아간 것이라고 보는 설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그 만큼 스콜세지는 각각의 이야기에 논리가 될 만한 설정들을 영화 중간 중간에 직간접적으로 뿌려 놓았다. 이것들은 <셔터 아일랜드>가 재 관람 할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믿으며 따라가느냐 아니면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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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진실인가에 대한 논란은 그 자체로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 이긴 하지만, <셔터 아일랜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 무언인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만약 진실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혼란스럽게 단서를 풀어놓 되 결말이 알려지고 나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했고, 깊이 파고들면 들 수록 더 확고한 영화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트라우마' 그 자체다. 영화는 반전에 관련된 여러 단초들을 심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하고 있다. 테디가 이 일에 자처한 것도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앤드류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 때문이며, 꿈만 꾸면 보이는 환상들(나치 수용소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자신의 아이들을 빨리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까지) 역시 모두 테디 내면의 트라우마 들이다. 영화는 한 개인이 트라우마로 인해 어떻게 잠식되어 가고 고통을 겪는지의 과정을 스릴러라는 그럴 듯한 장르에 빗대어 들려준다.

이렇게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셔터 아일랜드>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것 외에 당시 미국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극중 테디가 겪었던 나치 수용소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때 뿐이며, 공산주의자를 색출해 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던 당시 미국 사회내의 문제는 영화가 담고 있는 불안으로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50년대 핵과 냉전 시대의 공포와 의심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트라우마에 빗대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와의 대화 중에 '수소 폭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사실 매우 직접적인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부터 폭발한다는 수소 폭탄의 비유는, 냉전 시대 소련이나 다른 세계로 부터의 공포보다는 메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당시 미국 사회 내의 불안과 공포가 더욱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영화는 바로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는데, 이 작품에도 <셔터 아일랜드>와 비슷한 시대 배경과 정신병원(뇌수술)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실제 이런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 사회를 되돌아 보았을 때, 마치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치'라는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역시 50년대 메카시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치와 공산주의의 정반대에서서 자유를 부르짖었던 자신들에게 나치와 똑같은 어두운 과거는 분명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였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시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에 빗대어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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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갈수록 매혹적이다. 1950년대에 빠져든 디카프리오는 당시 고전 헐리웃 영화 속 남자 배우들 처럼, 연극적인 연기를 펼친다. 스콜세지와의 호흡은 한계를 모르고 나아가고 있으며, 이젠 더이상 연기력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실례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크 러팔로 라는 배우는 시대극에서 특히 장점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 자체가 미장센이 되는 연기에 있어서 마크 러팔로는 참으로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 밖에 벤 킹슬리와 막스 본 시도우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함께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무게는 깊어지며, 미쉘 윌리엄스와 잭키 얼 헤일리(아시다시피 <왓치맨>의 '로어셰크'가 바로 그다), 그리고 에밀리 모티머와 패트리시아 클락슨의 연기도 좋았다. 디카프리오가 월등한 롤을 맡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조연급 연기자들의 연기를 맛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1. 벌써부터 얼른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영상의 입자 자체가 거친 편이라 칼 같은 선예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어서 블루레이나 DVD가 출시되어 음성해설 트랙이라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2. 마크 러팔로의 의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조디악>을 떠올렸는데, 흥미로운건 <조디악>에서 범인으로 의심되었던 배역을 연기했던 존 캐롤 린치가 이 작품에도 소장(부소장?)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죠.

3. IMDB의 트라비아를 보니 파라마운트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 마크 월버그로 진행하려고 했었다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조디악>스러워졌을지도 모르겠군요 ㅎ

4. 오랜만에 스코어에 감동 받았습니다. 감정적 감동이 아닌 영화적 감동이요. 사운드 트랙도 구매해야 겠네요.

5. 글을 다 쓰고 오랜만에 관련 글들을 읽어보며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영화의 반전을 가지고 각자의 논리들로 풀어놓은 글들을 보는 재미를 이렇게 느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6. 아, 또 보고 싶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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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각자의 삶의 무게

제이슨 라이트먼의 최신작 <업 인 디 에어 (국내 개봉 제목 '인 디 에어')>는 그의 전작 <주노> 때문에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주노>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 였지만, 어쨋든 연출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먼의 신작은 <주노>를 매우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몹시 기대가 되는 바였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의 캐스팅은 <주노>와는 다르게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나 이 '어른'의 이야기는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창, 그리고 위로가 담긴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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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가다. 고용주가 직접 해고를 통보하지 못할 경우에 대신 사람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독특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1년중에 대부분을 비행기 출장으로 보내는 그에게 공항은 집보다(없는 집보다) 편안한 곳이며, 항공사의 마일리지는 훈장과도 같다. 그러던 그의 회사에 화상채팅을 통한 해고방식을 제안한 신참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주목을 받게 되고, 라이언은 나탈리와 함께 출장 길을 떠나게 된다.

먼저 라이언 빙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이언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가족들과 멀어져서 혼자 지내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쁜 일에 취해있고, 자신 만의 도전과제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벽증과는 좀 다른 의미지만, 라이언에게는 자신 만의 확고한 룰이 있다. 여행 가방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빠른 편집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라이언은 이렇듯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데에 주저없고 확고한 사람이며 그것에 얽매여 있다기 보다는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고 전문가라는 불편한 직업임에도 '장인 정신'에 가까운 직업 윤리로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결혼과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삶은 여행용 캐리어 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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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아직 꿈 많고 열정에 차 있는 청춘의 나탈리는 알게 모르게 자극이 된다. 라이언은 나탈리의 방식과 제안에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혹은 '나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니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될거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은연 중에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라이언은 받아치기 어려운 자신 만의 논리로 나탈리의 희망에 찬 청춘을 보기 좋게 꺽지만,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나탈리를 보며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점점 자신의 정해진 룰 밖의 세상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초중반까지 든 생각은, 결국 자신과 다름을(틀림이 아닌) 인정하고 이해하는 가치관이었다. 라이언은 그 자체로 이런 이해가 가장 필요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남들 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과 인생이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결국 '목표' 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목표라는 것에 경중이 없듯이 라이언의 인생 목표는 그것으로 존중 받을 이유가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 천만 마일이라는 그의 목표는 깊게 생각해보자면, 천만 마일을 날아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했으며, 얼마나 많은 삶의 연륜이 쌓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척도 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재쳐두더라도 누군가가 삶의 도전과제로 정한 목표라는 점에서 그것은 이해를 넘어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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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쿨한 삶의 자세를 갖은 듯한 라이언 조차, 결혼식 준비로 명소에서 찍은 듯한 사진을 대신 만들어 오라는 여동생의 부탁을, '도대체 이런걸 왜 찍는거지?'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이 미션을, 왠지 '그래도 나 한테 특별히 한 부탁이니 해줘야지 뭐'라는 식으로 억지로 완수하고나서, 드디어 동생에게 이 사진을 전달했을 때, 그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과 형편상 신혼여행을 못가서 이렇게라도 남기려고 했다는 동생의 말에, 라이언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라이언은 자신 만 하는 것으로 당연히 알았던 이 미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에서 사뭇 당황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가족과 친구 없이도 만나는 모든 이가 친구라서 외롭지 않다던 라이언은, '특별히' 오빠인 자신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소외감(그러니까 자신도 결국은 수 많은 존재 중에 하나라는 것)과 동시에 서운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신혼여행을 대신하려는 이벤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최고급 클래스를 도전과제로 삶고 있던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번 쯤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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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는 삶의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온 라이언이 결혼식날 결혼을 망설이는 동생의 남편될 사람인 '짐'에게 결혼에 대해 설득하게 되는 점이나, 항상 타인에게 해고를 통보해오던 그가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의 입사 추천서를 쓰게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완전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에 앞서 라이언은 동생의 결혼식에 맞춰 고향을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항과 비행기, 그리고 각각의 호텔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그에게, 자신이 자랐던 이 고향은 이런 집을 대신하는 것들이 줄 수 없었던 것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에는 무엇보다 추억이 있고, 그 자신의 말처럼 그 추억 속에는 자신 혼자가 아닌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이런 변화를 겪게 되면서 라이언은 이런 추억을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이로, 관계를 맺어오던 알렉스 (베라 파미가)에게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라이언이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처럼 가볍고 쿨한 관계만을 원하던 이였고, 자신을 탈출구 정도로 생각했던 알렉스의 말에 라이언은 진심으로 대꾸하지 못한다. 라이언 조차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던 이었기에, 오히려 '왜 갑자기 나를 찾아 왔느냐'라는 알렉스의 큰 소리에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 디 에어>가 주는 끝 맛은 왠일인지 개운하지 만은 않다. 혼자서도 잘해요 였던 라이언이 결국 가족과 주변의 따스함을 알게 되었고, 화상채팅으로 누군가를 해고하는 잔인한 방식은 사고로 인해 보류가 되었지만, 공항 전광판 앞에서 자신의 앞으로 삶의 행선지를 응시해보는 라이언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 디 에어>는 마냥 선하게 '자신의 삶의 짐을 여럿이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자신의 삶은 혼자가 다 짊어져야 한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도 아닌, 매우 현실적인 지점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다른 가방이나 짐은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줄 수 있지만, 결국은 각자가 끌고 가야 하는 여행용 캐리어 가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기가막힌 소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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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인 조지 클루니는 이 타이틀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는(그래도 섹시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하지만)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었는데,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는 왜 그가 '모스트 원티드 섹시스트'인지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완전한 로맨스 영화 아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클루니에게서야 말로 진정한 매력이 느껴진다. 베라 파미가는 어느 덧 클루니와 커플을 이뤄 '삶의 연륜'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나아가 버렸는데, 커리어 우먼의 매력과 별 다른 제스처 없이 표정과 미소 만으로도 설명 가능한 알렉스 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비하면 많이 마른 모습으로 보였는데, 이 때는 그저 주인공 친구였던 그녀가 이제는 관객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캐릭터를 연기해 낸 것을 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보는 중간에는 너무 평범한 드라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하기도 했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면 할 수록 참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1. 라이언이 결국 기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장면 묘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기장님의 모습이 마치 천사나 신처럼 느껴졌거든요.

2.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의 국내 제목은 '마일리지'가 될 뻔 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끔찍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미 상으로는 제법 괜찮은 제목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3. 그런데 아예 본래 제목을 개봉하려 했다면 원제 그대로인 'Up in the Air'로 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의 엔딩 크래딧 중간에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업 인 디 에어'여야 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노래 한 곡이 등장합니다.

4.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 <주노>는 소박한 포크 음악들이 실린 사운드트랙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라 이번 작품도 음악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관조하는 듯한 포크 음악들이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도 좋았지만요 ㅎ

5, 극중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유명한 J.K.시몬스가 자신의 딸들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시몬스의 딸들 사진이라고 하네요.

6. 첨엔 '아, 이 영화는 적어도 최근 실직이나 해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개인적인 이유라도 보면 안되겠다'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분들이 보시면 힘이 될 영화같아요. 삶의 무게는 버겁지만 나아갈 이유가 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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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병소장 (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 2010)
성룡 후기 작품의 시작일지도


적어도 성룡 영화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영화팬으로서 성룡 '형님'의 영화는 영화의 좋고 나쁨, 완성도를 떠나서 팬으로서 챙겨보는 몇 안되는 장르이기도 하다('성룡 영화'는 그 스스로 하나의 장르다). 그래서 최근 다른 이유로 말이 많은 작품 <대병소장>도 놓칠 수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이 작품을 단순히 불편한 감정이 있는 유승준의 출연 사실 만으로 거르기에는 제법 의미있는 성룡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성룡 영화의 초기, 중기 등을 넘어서 본격적인 후기 작품의 시작이라고 볼 만한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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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병소장>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요소라면, 성룡 영화들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긴 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성룡의 영향력이 영화 외적으로 가미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크레딧을 보면 감독 외에는 거의 모든 주요 스텝을 성룡이 맡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로듀서, 치프 프로듀서(?), 오리지널 스토리, 주연 등 영화의 전반에 걸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사실 타이틀롤 맨 처음에 이름이 언급될 만큼, 성룡이 맡은 캐릭터가 주연은 아니라고 영화 내내 생각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을 보니 이 캐릭터가 맨 처음 이름을 올린 이유가 단지 성룡이라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대병소장>은 오리지널 스토리를 비롯해 성룡이 상당히 예전부터 기획해온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이야기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롤을 따져보니 단순히 넘길 일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만 제외한다면 위나라 장군 역할을 맡은 왕리홍이 주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비중은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연'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분명 주인공은 왕리홍이고 성룡이 맡은 양나라 병사는 이 버디무비 아닌 버디무비에서 어쨋든 조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이 맡은 캐릭터는 기존 성룡 영화 속 성룡 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는 마치 <놈놈놈>의 송강호 처럼(그런데 <놈놈놈>의 주연은 분명 송강호다 ㅎ) 익살스럽고 양념 같은 이미지인 것에 반해, 왕리홍은 주연 다운 자신 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위나라 장군인 왕리홍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롯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캐릭터이지만, 성룡이 맡은 캐릭터는 이 큰 줄거리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성룡이 맡은 캐릭터는 왕리홍이 맡은 캐릭터를 알게 모르게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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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 이렇게 자신의 영화에서 한 발 물러나서인지, 우리가 흔히 성룡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대병소장>에서는 기대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18:1이 되었어도 혼자 만의 실력으로 모두를 제압했을테지만(적어도 날쌔게 약올리며 도망은 갔을테지만), <대병소장>에서 그런 성룡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수의 적에게는 싸워볼 생각도 못한채 순순히 잡힌 다던가, 상대에게 무술로서 압도하는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머가 가미되기는 했었지만 항상 자신의 영화에서 수 많은 악당들을 일당백으로 무찌르던 성룡의 모습에 익숙한 팬들 입장에서는 이런 성룡의 변화가 낯설고 한편으론 쓸쓸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 영화라면 꼭 등장하던 아크로바틱한 액션 시퀀스라던가, 도구나 장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액션 시퀀스도 그리 많지 않다(나오긴 한다). 이런 점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팬으로서 아쉬운 점이지만, 그 밖에 전체적인 이야기가 갖는 힘이 약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유머는 등장하지만 예전 같은 임팩트는 아니었고 무언가 드라마로 이끌려는 시도는 알겠으나 전체적으로 진부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성룡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나중에 가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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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냥 심심하기만 하다라도 느꼈던 영화가 한순간에 바뀐 것은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이야기의 반전 때문이 아니라 '아, 성룡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메시지보다는 영화가 주는 즐거움에 포커스를 두었던 그의 영화에 비춰봤을 때, 이번 <대병소장>은 이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러닝타임을 끌고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마치 당의 지원을 받으며 작품 세계가 '소박'에서 '대의'로 변해버린 장예모의 작품들을 보고 당황했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런 당황스러움과는 종류가 약간 달랐지만 성룡 역시 무언가 '대의'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특히 그 일부러 마지막에 보여주려고 숨긴 티가 너무 났던 그 문구를 공개하는 장면은, 장예모의 <영웅>의 마지막이 그대로 연상되었다). 그러고보니 이 작품은 장예모의 <영웅>과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 마지막 시퀀스를 대하는 관객들의 평가는 아마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성룡 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성룡이 더욱 마음에 들지만, 그가 꾸는 꿈이 이런 꿈이라면 좀 더 팬으로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이렇게 이야기하고나면 장예모의 그것과 완전히 같다고 이야기하는것 같은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병소장>은 '대의'와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소시민 영웅이라는 기존의 모티브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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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의 연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채로운 점이라면 자신의 실제 목소리로 중국어 연기를 한다는 점이었는데, 캐릭터 자체가 살짝 모호한 감은 있었지만 그럭저럭이었던 것 같다(하지만 캐릭터의 무술 실력에 비해 그 마지막의 '팔뚝'은 좀 과했다 ㅎ). 의외로 비중있는 여자 캐릭터가 없다는 것도 이채로웠다, 두 명의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긴 하는데 좋고 나쁨을 논하기엔 비중이 너무 적다.

성룡 팬이라면 재미 여부를 떠나서 꼭 봐야할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후 성룡 작품들(자신이 감독하고 각본쓰고 주연을 맡게 될 작품들)의 여부에 따라 중요한 지점이 될 작품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1. 국내에 들어온 필름 상태가 너무 좋지 못하더군요. 디지털 상영으로 높아진 눈이 오랜만에 불편을 겪었습니다. 중간에 화면 톤이 아예 나가버리는가 하면, 톤이 나가면서 포커스도 나가버려서 마치 캠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주더군요. 사실 좀 욱하는 분들이라면 환불도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되네요.

2. 상영관 자체도 너무 없었지만 관객들도 정말 없더군요. 오랜만에 상영관을 통째로 빌려서 관람했습니다. 정말 유승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성룡 형님 영화인데 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도 ㅠ

3. 역시 성룡 영화 답게 엔딩 크래딧에 NG장면이 수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임팩트는 확실히 이전보단 떨어지는것 같아요.

4. 연륜이 쌓이면서 다른 배우를 보조해주는 캐릭터로 물러나는 것도 좋지만, '성룡'은 계속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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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Un Prophète, 2009)
범죄를 통한 사회화 과정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신작 <예언자>가 눈에 들어왔던 가장 큰 이유는, 왠지 모를 제목의 위엄 때문이었다. '예언자'라는 제목은 쉽게 줄거리를 예상하기 어려운 제목이기도 하고(제목은 '예언자'인데 영화의 줄거리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무언가 단어자체에서 오는 무게감과 위압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게 된 프랑스 영화 <예언자>는 이런 위엄으로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다른 '위엄'들이라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등의 수상 소식과, <대부>를 잇는 걸작이라는 호평들이었는데 사실 언제부턴가 갱스터 영화 혹은 범죄 수작 영화들에 <대부>와의 비교가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들어 크게 관여치는 않았다. 그렇게 보게 된 <예언자>는 <대부>와는 조금 다른, 굉장히 개인적이면서도 그 개인의 사회화에 과정을 범죄로 녹여낸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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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 19살의 말리크는 감옥은 물론 외부에도 친구도 가족도 없으며,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자이다. 이런 무적, 무취의 말리크는 코르시카 계 갱들에게 이용되어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로부터 그의 감옥 내의 삶과 전체적인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예언자>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주인공인 말리크 (타하 라힘)의 변화 과정이다. 그의 입소과정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말리크가 얼마나 비어있는 백지와 같은 상태인지를 인지시킨다. 그리고 관객에게도 급작스럽게 말리크가 범죄에 어떻게 이용되고 그 과정과 이후에 그에게 어떤 심리변화와 외부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역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한다. <예언자>는 완전히 범죄 영화의 범주로만 봐도 상당한 수작이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코르시카 계와 아랍계 간의 세력 다툼과 감옥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각종 상황들의 묘사 그리고 조직의 막내 격으로 들어오게 된 인물이 보스에 가까운 영향력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예언자>는 괜찮은 범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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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국 백지와도 같았던 한 인물의 사회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더욱 다이나믹한 감옥과 범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과정을 지켜보는 묘미가 더욱 컸다. 감옥이란 한정적인 공간의 특수성도 있지만,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말리크가 (그의 눈빛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를 대하는 사회 역시 어떻게 변해 왔는지가 잘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했던 말리크는 점점 그 심부름 외에 다른 자신만의 비지니스를 열어가고, 이 사회의 생리를 파악하면서 이 어울리지 않았던 옷을 자신만의 맞춤 옷으로 점차 만들어 간다.

이것이 만약 전형적인 범죄영화였다면 감독의 의도가 조금은 빗겨나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이스턴 프라미스>를 통해 조직과 범죄가 아닌 '폭력'의 역사와 폭력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듯이, 자크 오디아르는 말리크의 성장에 조직이라는 범죄 요소를 드리우긴 했지만, 그것이 주가 아니라는 듯 여러가지 영화적 시도와 감수성 넘치는 편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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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가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굉장히 감수성 넘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얼핏 '이렇게 삭막하고 빠삭하게 말라있을 법한 영화에서 풍부한 감수성이라니?'라고 의문을 갖을 수도 있겠는데, 자크 오디아르는 이 무섭도록 무거운 현실의 비상구로 영화의 중간중간 감수성이 넘치는 장면들을 삽입하고 있다. 영화의 인트로 부분에서 살짝 소개되었던 화면 방식(좁은 구멍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듯한 앵글)은 말리크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가끔씩 등장하는 마치 '다른 세계'로 느껴지는 영상과 장면 전환은 자칫 무겁게만 흘러갈 법한 영화에 묘한 리듬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냥 범죄 영화였다면 없어도 되었을 법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처음 말리크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대상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더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이 캐릭터의 의미는 '예언자'라는 제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보는 동시에, 감옥 안팍에서 조직 간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긴장감 외에 말리크가 겪는 내적인 갈등 들을 잘 나타낸다. 이런 캐릭터의 묘사는 상당히 과감한 연출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과감함이 영화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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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촬영 부분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장면마다 앵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감옥이라는 공간의 한계성을 잘 담아낸 구도도 좋았다. 그리고 디지털 상영의 우수한 화질과 더불어 잡티 없이 깔끔한 실내 장면들의 영상은 마치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을 보는 듯한, 그러니까 극 사실적인 묘사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것이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의 명연기와 만나 더더욱 깊은 몰입도를 이끌어낸 듯 하다.

<예언자>는 오랜만에 본 프랑스 영화이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장이기도 했는데, 주연을 맡은 타하 라힘과 '세자르' 역할을 맡은 닐스 아르스트럽의 연기는 그야말로 수상 감이라 할 수 있겠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국내 개봉 포스터 속 타하 라힘의 모습은 마치 거스 반 산트의 남자들 같다) 마스크의 타하 라힘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발견 포인트일텐데, 불안함을 잘 담아낸 눈동자와 복잡한 심리 상태를 관객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해내는 연기력은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자르 역할의 닐스 아르스트럽 역시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긴 했는데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본 작품이라고는 <잠수종과 나비> 뿐이고, 이 작품에서 그의 모습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끝까지 영화의 무게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멋진 연기였으며, 나중에는 결말에가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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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여러가지로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2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도 주인공의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으며, 범죄 영화에만 몰입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주절주절 말을 많이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 <예언자>였다.


1. Nas의 곡(
Bridging The Gap)을 극장에서 빵빵하게 들으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진짜 이부분의 사운드가 더 임팩트있기도 해요.

2.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개인적인 생각은 프랑스 감옥이 참 좋다는 것 -_-; 기본적으로 담배나 술 등도 마음껏 마시고, 고시생은 엄두도 못내밀며 웬만한 원룸 사용자들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시스템이 갖춰진 감옥 시설이 부럽기까지;;;; 나중에 개인플레이어로 DVD까지 보는데 ㅠㅠ

3. Sigur Ros 곡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화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인물들의 클로즈업이 될 때는 정말 HDTV를 통해 보는 것 같더군요. 이로서 블루레이 구입은 확정입니다;

5. 극장이던 블루레이/DVD던 다시 봐야 좀 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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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1961)
드디어 극장에서 본 뮤지컬 영화의 마스터피스!


영화팬으로서 갖게 되는 소원 중 하나라면, 동시대가 아닌 이전의 명작들을 비디오나 DVD등 홈비디오 매체가 아닌 극장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경험일텐데,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들 가운데 반드시 보고 싶었던 작품들 가운데는 데이빗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압도적인 시네마스코프 영상과 스크린에서만 그 감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스케일 때문인 경우도 있었고, 오우삼의 <영웅본색>처럼 단순히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과연 극장에서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하는 호기심과 기대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장에서 '꼭 한번' 보고 싶은 작품으로 계속 꼽아왔던 것은 바로 이 작품, 로버트 와이즈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다.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극장 상영을 위해 만들어진 '극장 예술'이기도 하고 (특히 이전 영화들이라면), 이 작품 같은 경우는 특히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만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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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점들을 다 재쳐둔다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냥' 꼭 한번 극장에서 보고 픈 개인적인 영화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올리버>, <그리스> 등과 함께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인 동시에, 무엇보다 음악과 안무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압도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엄청난 걸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제'에 이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사 백두대간에 이 필름 수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1년 반쯤 전에 알고는 주구장창 이 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려왔었는데, 매번 긴 상영시간과 적절한 기획을 찾지 못하고 점차 잊혀질 때쯤,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던 이번 상영 기회는 왠지 개인적인 선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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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는 언제봐도 경이스럽다. 뉴욕의 풍경을 항공촬영으로 훑어가는 샷은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도 뉴욕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영화의 주요 갈등요소가 되는 사회문제를 어렵지 않게 드러낸다. 이후에 이어지는 'Jet Song'의 임팩트는 21세기에 봐도 실로 압도적이다)

사실 우려했지만 실제 극장에서 본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는 DVD에 수록된 버전과는 달리 오프닝 타이틀 부분이 일부 삭제되었으며 (DVD버전을 보면 한곡이 온전히 끝날 때 까지 타이틀이 컬러만 변경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상영 필름에서는 이 부분이 금방 지나간다), 화면비 역시 상하 좌우가 모두 온전치 못한 것 같았으나(예전 극장에서 보았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자면, 좌우의 화면비가 엄청나게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아주 예전에 국내 개봉되었을 때 역시 여러가지 문제로 인터미션 등 삭제가 된 버전이 상영되었다고 한다. 이번 상영분 역시 인터미션은 추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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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가지 장면만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설명해야 한다면, 도입부의 'Jet Song'을 주저 없이 꼽을 것이다. 안무라는 것이 스크린에 어떻게 녹아드는지에 대한 교과서이자 진부하지 않은 감각이 돋보이며, 음악이라는 것이 이야기와 어떻게 결합되는 지에 관한 '좋은 예' 이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었기에 드디어 상영이 시작될 때의 감흥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황홀한 'Prologue'와 'Jet Song' 을 볼 땐 소름이 멈추지 않았으며, 'Maria'와 'Tonight'이 흐를 땐 감동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Jet Song'의 경우 특히 도드라지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음악은 완전히 장면과 결합되어 있다. 최근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장면과 음악이 겹치는 것을 촌스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뮤지컬 영화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다.

얼마전 EBS에서 방영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보고 난 뒤라 이 작품의 음악과 장면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빨랐는데, 음악이 어떻게 이야기를 꾸미는지, 반대로 같은 음악에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는 번스타인의 설명을 떠올리니, 장면과 음악이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이 작품의 구성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확실히 번스타인의 음악에서는 장면이 그대로 느껴진다. 뭐랄까 번스타인의 음악은 장면을 뒷받침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음악으로 장면을 쓰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면 그 어느 뮤지컬 영화보다 영화 속 장면이 속속들이 전부 떠오르곤 한다. 이것이야 말로 뮤지컬 영화의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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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더 훌륭한 점이 있다면 단연코 '단체 연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그렇지만, 뮤지컬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주연 배우들은 물론 조연 연기자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황홀함 마저 느끼게 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몇번이고 봐도 매번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살아있는 연기에 있다. 이들의 연기는 너무 영화적이고 연극적이라 '과연 저런 연기를 최근에도 본적이 있었나' 싶기까지 할 정도인데, 완벽하게 카메라 안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들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면서도 마치 그림같은 장면 장면은, 만약 내가 감독이어서 내 앞에서 저 연기를 실제로 보았더라면 얼마나 뿌듯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 작품은 특히 주연 한 두명이 만드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제트단과 샤크단, 그리고 그들 각각의 무리가 '그룹'지어서 연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 구성원 하나하나의 모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토니가 노래할 때 뒤에서 제트 단원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베르나르도와 아니타가 화면 맨 앞에 춤을 출 때 샤크단원들은 각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숨겨져 있지만 반드시 챙겨야할 이 작품의 보석같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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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와 'Tonight'을 비롯해 이 작품의 주요곡들의 장면들은 너무 많이 보고 또 보아서, 노래는 물론 안무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외우고 있는데, 극장에서도 동작을 따라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느라 혼났다)

예전엔 그냥 노래가 좋고 춤이 멋져서 보았던 영화였다면, 이제와 다시 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새로운(?) 발견이라면 안무의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의 경우 발레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안무가로서 영화의 안무들은 발레 동작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갱들의 이야기와 발레 안무가 엇나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막상보고 나면 클래식한 음악과 발레 안무가 얼마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당시 한참 유행하던 고전적인 MGM뮤지컬과도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현대적인 신세대 뮤지컬로 보기에도 어려운(당시에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음악을 맡은 레너드 번스타인, 안무가이자 연출을 맡은 제롬 로빈스, 그리고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 이렇게 각각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어 시너지를 이룬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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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져오긴 했지만,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의 소년 갱집단의 이야기로 옮겨왔다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들이 각자를 적대하는 이유 가운데는 단순한 세력 다툼이 아닌, 당시 미국내의 사회적인 문제와 이민자 문제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이 대단한 이유는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유쾌하고 흥겨운 리듬 속에 자연스레 녹여내었다는 점이다. 사실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그저 저런 가사들이 장난으로 느꼈을 정도로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가사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사 역시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상당히 라임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극장에서 보면서 새삼 발견한 영화의 장점이라면 손드하임의 가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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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ght' 시퀀스는 여러가지 다른 이야기와 캐릭터의 이야기가 하나의 노래에 녹아드는 가장 전형적인 시퀀스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구성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자주 쓰는 구성이기도 하고, 폴 토마스 앤더스인이 <매그놀리아>의 'Wise Up' 시퀀스를 통해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아마도 이 작품이 그 시초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곡에 등장하고 있는 각각의 그룹들의 비중이 동등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만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에 근거한 남녀 로맨스 뮤지컬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이 곡의 후반부를 보면 역시나 동작과 음악이 기가 막힌 싱크로율을 보여주는데, 특히 중간에 형사와 경찰차가 나오는 장면을 껴넣은 부분의 리듬감과 긴장감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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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어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늘밤 결투'가 끝나고 난 뒤의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공감도 재미도 못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투 이후 영화는 급격히 어두워지고 다운되기 때문이다. 그 중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있다면 결투 이후 혼란스러운 제트단의 분위기를 잘 그린 'Cool'을 들 수 있겠는데, 예전 기억에 이 시퀀스는 그저 '지루한 부분' 정도 였는데 이제와 보니, 극중 시퀀스 가운데 가장 난이도 높은 안무는 물론 구성 면에서도 매우 완성도 높은 시퀀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극장 관람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라면 분명 'Cool'의 재발견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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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과 마찬가지로 그 이후 등장하는 마리아와 아니타의 'A Boy Like That & I Have a Love' 시퀀스 역시 이번 관람의 재발견 포인트였다. 어렸을 때는 단순한 것만 보였었다면, 이번에는 마리아보다 오히려 아니타 입장에서 보게 되어, 아니타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퀀스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어쩌면 토니를 너무 쉽고 급작스럽게 용서해버린(용서의 과정 조차 없었던 것 같다) 마리아가 아니타에게 너무 그 용서를 강요하는 듯 느껴졌는데, 이를 눈물 흘리며 수용할 수 밖에는 없는 아니타의 모습에 더욱 동화되었다. 이 시퀀스도 예전에 보았을 때는 그저 '지루한 후반부' 였었다면, 이제는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를 더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사실 뮤지컬 영화 가운데(특히나 고전 가운데) 이렇게 어두운 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작품이 있었나 싶다. 뮤지컬 세상은 항상 유쾌하고 밝을 것만 같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 유쾌함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현실의 무게감을 잘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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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입고나온 옷 색깔을 유심히 보라. 마리아는 드디어 자신이 입고 싶던 빨간 드레스를 입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고대해왔던 감상이라 2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고 빠져들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더 완벽하고 온전한 화면비로 즐겼더라면 감흥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내 인생의 뮤지컬 영화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또 한번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앞으로도 허락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고, 너무나 고마운 생일 선물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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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빅터스 (Invictus, 2009)
영감(靈感)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지난 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그랜토리노>였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좋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눈물 흘리지 않았을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그랜토리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와 감독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걸작이었다. 그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인빅터스>는 그래서 볼 것도 없이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다. 남아공의 유명한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를 주인공으로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원작을 영화화한 <인빅터스>는, 럭비 (스포츠)라는 소재가 더해져 또 한번 뻔한 감동 공식이 아닌 이스트우드 만의 깊은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럭비라는 소재 때문에 이 영화를 스포츠 영화로 오해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빅터스>는 근본적으로 영감 (靈感)의 전달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깊게 묘사한 그의 또 하나의 수작으로 기억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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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국민들(흑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 (모건 프리먼)는, 흑백으로 나뉘어져 있는 남아공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 럭비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경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럭비팀 ‘스프링복스(Springboks)'를 지지하며 그 주장인 프랑소와 (맷 데이먼)를 만나 스프링복스에게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바라게 된다.

<인빅터스>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근본적으로 영감(靈感)의 전달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그 영감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행동과 가치들도 매우 중요하지만, 스포츠 경기와 관중들을 비중있게 묘사한 것도 그렇고 그 전달 과정의 묘미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미뤄봤을 때, 누군가의 신념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반대하는 이들에게까지도)에게 영감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깊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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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왜 스포츠일까?'라는 점을 의아해하기도 했었는데, 앞서 얘기한 영감의 전달과정을 표현하는데 이 스포츠라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었다.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당선 된 뒤 흑인과 백인들로 나뉘어진 국가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은 일에도 직접 나서며 행동으로 실천하게 된다. 그러다가 럭비와 곧 있을 럭비 월드컵을 알고나서는 이 럭비라는 스포츠가 자신의 이 신념을 영감으로 승화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주장인 프랑소와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주장에게서 이 영감을 받아들인 팀원들은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신념에 동화되어 가며, 더 나아가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 그리고 TV로 이 경기를 지켜보는 수천만의 국민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만델라의 메시지가 전달되게 되는 것이다.

얼핏보면 '꼭 우승해야 된다'라는 만델라의 주장이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영감의 전달 도구로서 생각해보았을 때, 왜 만델라가 그리도 우승을 원했었는지 절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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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영화 <인빅터스>는 여러모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를 떠올리게 했다.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우리도 저런 대통령을 가졌었지'라는 탄식과 그리움이었다.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그 경중을 따지지 않고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영화 속 만델라의 모습은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오랜 투옥 생활을 마치고 당선 된 이후 경기장에 나타나 국민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예전에는 이런 지도자가 나온 영화를 보면 '아, 우리는 언제쯤 저런 지도자를 갖을 수 있을까?'라고 기대만 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아, 가졌었지...'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곤 한다.

그리고 럭비 월드컵의 선전을 통해 전국민들이 가득한 열기로 하나가 되는 모습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월드컵은 영화 속 럭비 월드컵과는 달리 흑백의 화합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는 없었지만, 영화처럼 어려움에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희열(영감)을 맛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는 스포츠라는 것이, 더 나아가서는 영감과 메시지가 확산되어 나가는 과정을 경험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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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빅터스>는 여러 모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작 <그랜 토리노>를 떠올리게도 한다. 전작 <체인즐링>과 비교해봐도 <인빅터스>가 훨씬 <그랜 토리노>에 가까운 것은,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과 연출자로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빅터스>의 이야기 전개는 그리 느린 편이 아니지만, 영화의 리듬은 상당히 느린 편이고 관조적인 편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랜 토리노>를 연상시키는 톰 스턴의 카메라 앵글과 카일 이스트우드의 음악, 제임스 J. 무라카미의 미술은(이들은 모두 이스트우드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해오고 있는 팀이다), 스스로 <그랜 토리노>의 영감을 이어 받은 듯 하다. 특히 카일 이스트우드의 음악과 곡 구성은 몹시도 <그랜 토리노>스럽다. 굳이 '노인의 지혜'를 다시 들먹이지 않아도 카일의 음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하려는 것을 음악으로 들려준다.

<인빅터스>는 <그랜 토리노>같은 엄청난 감정의 동요는 없지만, 이스트우드의 노련한 영화 기술과 의외의 볼거리인 럭비 월드컵 경기 장면만으로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 엔딩 크레딧에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이 스틸 컷으로 제공되는 것은 좋았습니다. 실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만델라의 모습과 프랑소와를 비롯한 실제 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2. 언젠가 넬슨 만델라를 영화화 한다면 그 1순위는 당연히 모건 프리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싱크로율은 대단하더군요. 특히 만델라 특유의 그 의상을 입고 나온 장면에서는 잠시 착각을 할 정도였어요.

3.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아들인 '스콧 이스트우드'가 스프링복스의 선수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4.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화질이 상당히 좋더군요. 보면서 내내 블루레이 출시가 된다면 화질을 기대해 볼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5. 참고로 ‘인빅터스(invictus)’는 ‘정복되지 않는 자들(Unconquered)’이란 뜻의 라틴어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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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2010)
그리려고 그린 그림


너무나 유명한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어쩃든 그와 상관없이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작초기부터 스냅 샷이 하나하나 공개 될 때마다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팀 버튼의 작품 성격으로 미뤄보았을 때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었고, 이야기도 어두움을 배경으로 기괴한 웃음을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은 물론 헬레나 본햄 카터가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는 소식은, 이 삼총사가 다시 한번 일을 내보려고 하는구나 싶었었는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기대에는 많이 못미치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원작과 감독, 캐스팅으로 미뤄봤을 때 참 괜찮은 조합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팀 버튼의 판단미스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는지, 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너무 '그리려고 그린 그림'의 티가 나는 작품이었다. 즉,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의도보다는 너무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 있어서, 그림 그리는 것에만 집중해버린 나머지 그림의 메시지는 억지로 가져다 놓은, 아니면 메시지를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의미없는 화려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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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이상한 나라'의 비주얼은 만족스럽다. 이런 것들은 팀 버튼이 본래 매우 잘하는 것들로서 그 만의 색채가 쉽게 묻어난다. 비대칭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면서 매우 화려한 색감의 세계와 캐릭터는 일단 관객들의 눈을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데 일단  근본적으로 주인공 앨리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원작이 너무 유명해서인지 아니면, 이미 한번 다녀온 세계를 앨리스가 나이 먹고 다시 방문하게 된 점을 감안해, '두번째'라 관객에게 역시 설명하는 부분을 대폭 축소한 것인지는 몰라도, 앨리스가 이 곳에서 사건들을 겪게 되는 과정 속에 아무런 공감대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건 내 꿈이야'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 할 때도, 마지막에 이곳을 떠나려고 할 때도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특성상 이 같은 공감대가 최우선 과제는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어쩃든 '너무'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하다.

주인공인 앨리스에게서 어떠한 매력이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다보니, 이런 새로운 캐릭터들에게 역시 쉽게 빠져들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그 중 가장 피혜를 본 캐릭터라면 조니 뎁이 연기한 '모자 장수'를 들 수 있을텐데, 애초의 이 작품이 마치 조니 뎁 주연의 영화로 알려진 것에 더더욱 작품이 혼란스러워진 느낌이 분명 있다. 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찌되었든 '앨리스'가 주인공인데, 팀 버튼의 작품에서는 앨리스가 별다른 주인공스러운 매력을 뿜지 못하다보니 더더군다나 조니 뎁의 모자 장수에게 관심을 흘렸으나, 모자 장수라는 캐릭터는 태생부터 자신 만의 한계가 있는 캐릭터이다보니 관객들이 주연급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도 애매한 정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차라리 앨리스 역할에 조니 뎁의 이름 값에도 눌리지 않는 스타급 여배우를 캐스팅 했더라면 어느 정도 이런 아쉬움이 상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이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만;;). 일반적인 영화의 주인공에게 100%는 안되도 80%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라면, 이 영화는 주인공 앨리스를 비롯해, 모자 장수와 붉은 여왕 등에게 각각 2,30% 씩 정도밖에 공감을 나눌 수 밖에는 없는, 겉만 맴도는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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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팀 버튼이었다면 차라리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에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원작의 설정을 더 뒤집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앨리스가 없어도 좋으니 모자 장수가 완전한 주인공인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붉은 여왕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면, 좀 더 비대중적일지언정 훨씬 더 팀 버튼스러운 만족스런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이때 쯤 이미 앨리스는 아웃 오브 안중;)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붉은 여왕이 주인공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팀 버튼은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이 캐릭터에게 애정을 숨기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데(차라리 더 여기에 애정을 쏟아 부었어야 했다!), 팀 버튼이 악당을 그리는 대부분의 방식처럼, 붉은 여왕은 완전히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는 결핍과 부족함으로 인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붉은 여왕의 이야기였다. 명령과 강제 보다는 사랑으로 통치하려 하고(그래서 그녀의 세계는 온통 하트가 아니던가!), 자신의 컴플렉스를 자랑처럼 여기는 모습은 그 주변에 있는 비컴플렉스 인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연민으로 다가온다. 잘 생각해보면 붉은 여왕의 가장 큰 고민은 '왜 내 말을 안들을까?'가 아니라 '왜 나보다 내 동생(백색 여왕)을 더 좋아할까? 내가 이렇게 잘 해주는데' 였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는 이들이었다는 점을 봤을 때, 그녀의 이런 외로움과 컴플렉스를 연민으로 더더욱 감싸며 주연의 롤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듯 싶다. 아니면 모자 장수를 주연으로 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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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참 좋을 것 같았던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다른 감독이 했으면 분명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너무 보여지는 이미지에 급급한 나머지 (물론 이 작품은 보여지는 이미지가 참 중요한 작품이긴 하지만서도) 본래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마저 조니 뎁의 CG가득한 댄스 스텝과 함께 날려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 앨리스 역할을 맡은 미아 바쉬이코브스카 양의 매력이 부족했던 것도 한 몫 한듯 싶습니다. 요즘 같아선 시얼샤 로넌 양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 몇몇 익숙한 목소리 연기자들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앨런 릭만이나 크리스토퍼 리 같은 경우는 워낙에 유명한 목소리라 이번에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더군요. 목소리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었는데 크래딧에서 티모시 스펠을 보고서는, '엇 또 쥐 역할로 나왔나?' 싶었는데 이번엔 다행히(?) '개' 역할이더군요 ㅎ

3. '네이브 오브 하트' 역할로 나온 크리스핀 글로버의 모습도 반가웠습니다. 이 분만 보면 아직까지도 <백 투더 퓨처>의 조지 플라이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참고로 이 캐릭터는 팀 버튼의 의도적으로 CG스러운 움직임을 준 것 같더군요.

4. 앤 해서웨이 얘기를 한 마디도 못했는데, 그녀가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 중 제일 웃깁니다. 말 다했죠.

5.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주제곡 'Alice'는 에이브릴 라빈이 불렀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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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2009)
죽은 자의 동화



앨리스 시볼드의 2002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한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이 메가폰을 잡은 이유만으로 관심을 끌게 된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흘러나오는 분위기만 보아도 피터 잭슨이 최근 작들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잔잔한 작품일 것 같아 오히려 좀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평소처럼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는 조금 의외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CG를 통한 월페이퍼 스러운 영상들이 많은 한 편, 판타지와 스릴러에 가족 드라마를 섞은 묘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그리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고,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만 믿고 극장을 찾는 이들이라면 더욱 실망할 확률이 높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속에서도 흥미로운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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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이 소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영화 초기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영화적 사건을 서두에 언급하였다는 것은 이 죽음이 포인트가 아니라는 것을 일단 알려준다. 소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죽음을 통해 벌어지는 가족의 이야기와 소녀가 겪는 여정을 그린다는 것인데, 그래서 인지 영화의 주인공인 수지(시얼샤 로넌)는 영화 내내 죽음이라는 범주안에 있지만 영화 자체는 별로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있지는 않는다.

일단 수지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갑작스러워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 때문인 것도 조금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큰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지는 그저 지난 번 한 좋아하는 남자아이와의 약속에 나가야 하는데 못나가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는 아빠에 대한 걱정 그리고 커가는 동생에 대한 부러움 뿐이다. '뿐이다'라기 보다는 포커스가 '죽음' 그 자체라기 보다는 이렇게 개인적인 것에 더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영화 <러블리 본즈>는 죽음이라는 설정을 아주 가깝게 끌어 안고 있음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거의 드리워져 있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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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는 분명 여러 토끼를 잡으려 한 흔적이 느껴진다. 사후세계를 떠도는 수지의 이야기, 그리고 수지를 떠나보내고 남게 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수지를 죽인 살인자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버무려내게 되면서 영화는 판타지와 스릴러 그리고 가족 영화와 소녀의 성장영화에 이르는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소녀의 로맨스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 버금가게 이성을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죽음을 그리지만 어둡지 않은 이야기가 되는데에 한 몫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 부분에 할당량은 차라리 판타지에 가까운 사후세계로 더 보충했었더라면 조금 더 집중력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극초반 설명 정도로 그친 소녀의 로맨스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는 모티브로 등장하면서 중간중간 영화는 힘을 잃기도 했고, 더불어 판타지 세상에서 뛰어노는 수지의 모습이 쌩뚱맞음과 어울려, 관객으로 하여금 중심을 잡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 역시 그저 애타게 수지를 찾는, 수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가족의 이야기 정도라면 힘을 얻었을 텐데, 부부 간의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이 역시 조금은 거추장 스러운 부분이 되어버렸다(이런 느낌을 받은데에는 엄마 역할의 배우가 무려 레이첼 와이즈 였다는 점도 한 몫 톡톡히 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야기가 구심점은 있지만 (수지의 죽음) 완벽한 조화는 이루지 못하면서 진행에 조금씩은 더딘 느낌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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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가 그럭저럭 좋았던 것은 <네버엔딩 스토리>를 연상케 하는 판타지적인 사후 세계관과 이외로 스릴러 적인 매력이었다. 이 작품은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언급하게 되는 CG영상의 경우, 분명 조금 과한 감은 있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의도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와 떠올려보면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사후 세계의 분위기를 이리도 아름답고 판타지적인 세계로 그린 것은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의 자식이 죽어서 가게 되는 세계가 무섭고 어두운 곳이 아니라 영화 속 처럼, 죽음을 인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뛰어 놀고만 싶은 아름다운 세계였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말이다(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에서는 살인범이 잘 살아가고 있는 어두운 세계가 펼쳐진다. 후반부 살인자의 집에서 펼쳐지는 추격씬을 비롯해 그가 등장할 때는 굉장한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피터 잭슨이 연출력을 십분 느껴볼 수 있었다. 판타지적인 느낌을 지우고 이 부분에만 집중했더라도 제법 괜찮은 범죄 스릴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조디악>이나 <양들의 침묵>을 문득 문득 떠올리게 되는 흥미로운 스릴러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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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시네마스코프의 적극적인 활용이라 하겠다)

<러블리 본즈>가 흥미로웠던 또 다른 점은,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 (2.35:1)의 화면비를 갖고 있다는 점, 아니 이 화면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위의 스냅샷처럼 시네마스코프의 화면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들이 매우 많다. 위의 장면에서는 남자와 수지 사이의 엄청난 거리가 느껴지는데, 이런 거리는 무언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는데, 즉 캐릭터나 이야기보다도 저 '간격'이 더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네마스코프는 화려한 사후세계를 그리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간격을 그리는데에 탁월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굉장히 빈번하고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거리 외에 피터 잭슨은 '외로움'을 표현하는데에 이 화면비를 또 한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와이드한 화면비의 중심에 캐릭터를 두어 좌우 여백을 십분 활용하여, 넓은 배경 속에 외로이 남은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다. 광활한 사후 세계에 홀로 남은 수지와 딸을 잃고 방황하는 아빠 잭 (마크 월버그)이 더욱 외로워 보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는 이 화면비만의 장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는데, <러블리 본즈>의 피터 잭슨은 이 화면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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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톤먼트>의 이후가 궁금했던 시얼사 로넌은 그 때의 영롱했던 눈빛은 그대로 간직한 채 좀 더 성숙한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으며, 마크 월버그의 '아빠' 연기도 수긍이 되는 부분이었다. 레이첼 와이즈는 비중 자체가 마크 월버그에게 쏠리는 바람에 큰 활약을 펼칠 여지는 부족했으며, 수잔 서렌든은 등장은 제법 하지만 비중은 카메오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조지 하비' 역할을 맡은 스탠리 투치의 연기는 이 영화를 잠시나마 스릴러로 오해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연기였다.


1. 피터 잭슨이 역시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사진관에서의 연기는 너무 티났어요 ㅎㅎ
2. 피터 잭슨과 그의 아내인 프란 윌시는 각본과 제작을 이번에도 겸하고 있습니다.
3. 극장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피터 잭슨의 아들이 카메오로 출연했군요.
4. 음악은 브라이언 이노가 맡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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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ingNut Films.DreamWorks SKG 에 있습니다.



 


위핏 (Whip It, 2009)
뻔하지만 재미있는 세가지 이유


엘렌 페이지에 저 가인스러운 아이라인의 포스터를 본 순간, 그리고 감독인 드류 베리모어를 비롯해 영화 속에 터프한 '언니'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위핏>은 쭈욱 기대작이었다. 사실 드류 베리모어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기대한 것보다는 엘렌 페이지를 비롯한 수 많은 여자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더 기대되는 포인트였을 것이다. 드류 베리모어는 연출작은 처음이지만 이전 몇몇 작품의 제작자로서 나선적이 있어서 이런 감독으로서의 행보가 크게 낯선 것만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엇, 드류 베리모어에게 이런 점도 있었어?'라기 보다는, '딱 봐도 드류 베리모어 스타일이 묻어나네'하고 느낄 정도의 통쾌하고 깔끔한 가족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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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핏>의 줄거리는 사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흔한 소녀의 성장드라마이다. 이제 막 소녀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놓인 주인공은, 애정 문제로 진로 문제로 그리고 부모와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 여기에는 우리가 너무도 많이 보아왔던 멋진 밴드 보컬의 남자친구, 시골 작은 마을 소녀로서 이곳을 빠져나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픈 욕망,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것저것 다 해보지도 못했는데 한가지 길만 가라하는 부모님과의 갈등이 또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조금 다른 점이라면 소녀의 분출구 중 하나가 조금은 특별한 '롤러 더비' 경기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과연 소녀가 나중에 어떻게 될까?' '더비 경기에서 우승할까?'라는 점에서 보게 된다면 정말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위핏>은 뭐가 재미있는걸까? 개인적으로 그 첫 번째로는 캐릭터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하나같이 몹시도 만화 같은 캐릭터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들에게 영역 설정을 적절하게 해준 감독의 연출력을 눈여겨 볼 만 하다. <위핏>의 캐릭터들은 분명 만화같은 캐릭터들이지만, 별로 만화같은 행동들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 말은 즉슨 좀 독특해 보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만화처럼 오버스런 캐릭터로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헐 스카우트' 팀을 비롯해 상대팀원들도 그렇고, 더 오버하여 완전히 스포츠 만화로 이어질 여지가 많았지만, 이들은 어쩌면 자신의 캐릭터를 제대로 다 소개하지도 못한채 (그런데 이렇게 되었다면 가족 영화로서의 동력을 떨어졌을지 몰라도, 다른 한편으론 더 재밌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존재하고 있는데, 별로 결정적인 장면 없이 항상 '팀'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개성은 부여하되 항상 팀으로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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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역시 이런 캐릭터들을 잘 살린 수 많은 배우들을 들지 않을 수 없겠다. 주인공을 맡은 엘렌 페이지에게서는 아직도 <주노>의 그림자가 남아 있긴 하지만, 좀 더 엘렌 페이지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달까. 엘렌 페이지가 언제쯤 소녀 이미지에 기대지 않은 캐릭터로 다가올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어쨋든 현재 엘렌 페이지의 소녀 이미지는 언제든 환영이다. 많은 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반가운 배우는 줄리엣 루이스였다. '메이븐' 역할을 맡은 줄리엣 루이스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망가지면 망가질 수록 지나 데이비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거칠고 '찌든(?)' 언니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메이븐 역할은 악역으로 빠지기 쉬운 캐릭터였으나 이 정도의 롤을 부여한 것은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탁월했다 여겨진다.

<미스트>의 '그랜드 캐년'(!) 마샤 게이 하든 여사 역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그녀의 특유의 무서움과 그 이면에 따듯함을 동시에 보여준 캐릭터로서 뻔한 가족영화가 되지 않는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남편 역할을 맡은 다니엘 스턴의 경우 다들 알아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홀로 집에>의 그 도둑인데,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까지 그 천진한 표정이 남아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하지 않았다면 존 굿맨이 맡았을 역할로 생각되었을 정도 ㅎ
<데스 프루프>의 그녀 조 벨 역시 반가운 배우였는데, 그녀가 출연했길래 당연히 스턴트에도 관여를 했을 줄 알았는데 (물론 어느 정도는 했겠지만), 크레딧을 보니 온전히 배우로만 출연을 했더라. 힙합 아티스트로 더욱 유명한 이브도 있는 듯 없는 듯 했고, '버드맨' 역할로 나온 카를로 알반은 어디서 봤는가 했더니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NBA저지를 항상 입고 있던 그였더라. 드류베리 모어나 크리스틴 위그를 비롯해 여기 언급하지 않은 많은 조연배우들이 많든 캐릭터 덕에 한층 재미가 배가 되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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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뻔하지만 감동적인 연출과 영화에 사용된 음악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을 보고도 나름 재밌다고 생각했던 나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뻔한 가족 드라마의 몇몇 순간에서는 찡해지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을 과잉으로 몰아가지 않고, 그 정도로 두는 연출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영화 삽입곡들은 사실 맨처음 드류 베리모어에게 기대했던 작품이 있었던 것처럼, 음악 역시 '아마도 이런 분위기의 곡들이 나올 것 같다'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곡에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The Ramones'와 'Clap Your Hands Say Yeah'를 비롯해 특히 영화의 후반 하이라이트 경기 부분에 'the Go! Team'의 익숙한 곡이 들려왔을 땐 박수라도 칠 뻔했다 (그런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분명 기억엔 'The Power Is On'이었던 것 같은데 사운드트랙에는 'Doing It Right'가 수록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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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드류 베리모어의 첫 연출작인 <위핏>은 이 정도면 성공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차기작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더욱 펼칠 수 있을지 기대된다.


1. 스페셜 땡스란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을 보니 왠지 뿌듯하더군요 ^^
2. 그런데 이 '롤러 더비' 경기는 실제로 북미지역에 존재하는 건가요? 살짝 궁금해지더군요.
3. 크레딧의 맨 마지막 프로덕션 이름을 보고 또 한번 재미있어 했네요 ;;
4. 상하는 정확하지 않아도 좌우는 확실히 짤린 화면비였는데, <더 문>에 이어 두 번째군요 윽..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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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Percy Jackson & The Olympians: The Lightning Thief, 2010)
소년 그리스 신화


몇몇 관객들이 '피터 잭슨과 번개 도둑'으로 오해하고 있는(ㅋ) 이 영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그리스 신화를 소년을 주인공으로, 현대판으로 그려낸 성장 판타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면 '유치찬란'과 '아동취향'이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였었는데, 본래 아동취향에도 쉽게 동화되곤 하는 나로서는 큰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해리포터'의 아류라는 평들과 손발이 너무 오그라든다는 의견들과는 달리(이런 식이라면 소년이 주인공인 모든 판타지는 해리포터의 아류가 된다. 이 작품은 해리포터 보다는 그리스 신화에 포인트를 둔 작품이라 해야겠다), 군더더기 없는 빠른 진행과 의외로 볼만한 볼거리들로 장식된 괜찮은 판타지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놓쳤다면 조금 실망할 뻔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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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퍼시 잭슨....>의 줄거리는 거의 따로 요약할 것 없이 그리스 신화의 기본 골격을 떠올려보면 그대로 적용이 가능할 정도다. 기본으로 그리스 신화의 인물과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소년의 판타지를 가미해, 다른 판타지 소설들이 그러하듯 소년/소녀가 주인공인 판타지로 풀어나간다. 따지고보면 <퍼시 잭슨...> 역시 무리하게 해리포터를 따라가려다가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무리함이란 영화를 시리즈로 이끌어가려는 움직임을 이야기하는데, <퍼시 잭슨...>역시 시리즈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 무궁무진한 편이다. 이 작품 <번개 도둑>만 예로 들어봐도, 처음 퍼시 잭슨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캠프에 들어가게 되는 것만으로도 1편의 영화는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2시간 짜리 영화라면 1시간 정도는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퍼시 잭슨의 이야기를 그리고, 천천히 이상한 조짐들을 푼 뒤 엄마가 납치되고 본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부분을 하이라이트로 그려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크리스 콜럼버스는 이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로 풀어내는대에 만족했고, 군더더기 없는 빠른 진행으로 재미있는 요소만 남긴 채 크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있다. <퍼시 잭슨...>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바로 이 깔끔함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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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무 빠른 진행으로 인해 이른바 말이 안되는 설정이나 소년의 감성에 기대다보니 살짝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만약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시리즈로 길게 늘여트리는 것과 현실감각), 단연 이 편이 더 나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이고 소년이 주인공이며 이런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 중 하나인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크리스 콜럼버스는 '해리포터 1,2'편의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 기막히는 장점은 놀라울 정도의 조연 배우들의 캐스팅이다. 과연 저런 배우들을 어떻게 다 한 작품에 (냉정하게 얘기해서 이런 성격을 갖고 있는 판타지 작품에) 캐스팅 할 수 있는지가 더욱 놀랍기만 했다. 오프닝 크래딧에 배우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나열될 때마다 '와' '어, 또??' 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제우스 역의 숀 빈을 비롯해 메두사 역의 우마 서먼, 피어스 브로스넌, 캐서린 키너, 로자리오 도슨, 스티브 쿠건, 조 판톨리아노 등의 출연은 마치 인디 영화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법한 캐스팅으로서, 이런 기대하지 않았던 판타지 작품에서의 만남은 사실 의외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것만으로도 제법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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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쩃든 크리스 콜럼버스의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단순히 '해리포터' 아류로 불리며 사그라들기엔 제법 매력있는 작품이다. 평소 이런 판타지 세계에 가감없이 빠져들고 리얼함을 강요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기까지 하다.


1. 여러 말이 안되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그 중 최고는 신들의 감각마저 무디게 하는 인간의 고약한 냄새가 아닐까 싶네요. 그렇게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주인공을 신들이 못찾는 이유가, 인간의 고약한 냄새 때문이라니 ㄷㄷ

2. 짧은 추가 장면이 있습니다. (나가다가 다 서서 보시던데, 이럴 땐 차라리 그냥 나갑시다들)

3. 코엑스 서태지 M관에서 보았는데 후반 하이라이트 장면을 비롯해 몇번 사운드가 들락날락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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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2008)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단연코 이 영화 <맨 온 와이어>는 저 포스터 한 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형식이 다큐멘터리인지, 저것이 CG를 통해 만들어진 장면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냥 저 이미지는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사실 <맨 온 와이어>는 2009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비롯해 많은 영화제에서 많은 상들을 수상하여 더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진 작품인데, 이런 많은 수상 수식어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맨 온 와이어>의 이야기는 실화여서 감동적이었고, 그 어느 작품보다 '극적인'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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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곡예사인 필리페 페티 (Philippe Petit)가 1976년 8월 7일,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쌍뚱이 빌딩 사이를 외줄로 연결하여 그 위에서 펼친 퍼포먼스와 이 퍼포먼스가 실행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들을 담은 실화다. 일반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느끼는 (그러니까 실화라서 더욱 감동을 느끼는) 감동과 이 작품이 실화라서 주는 감동의 종류는 분명 조금 다르다.

일단 <맨 온 와이어>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인터뷰와 재연 장면, 실제 촬영된 장면들로 이뤄진 이 작품이 몹시도 극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찌보면 이 작품은 좀 더 본격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특징적인 점이라면 연기자들의 재연으로 구성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적절한 어둠과 그림자를 통해 이 부분을 실제와 혼동하도록 자연스럽게 배치한 점에서 연출의 재치가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이 '재연'이다 라는 점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한데, 이 재연부분의 극적인 요소가 실화라는 다큐적인 부분의 감성을 해치기는 커녕 돕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이것이 마치 거대한 극영화가 아닐까 문득문득 생각하게 될 정도로 (일종의 <트루먼 쇼>처럼), 영화의 주요 사건이 되는 쌍둥이 빌딩 퍼포먼스를 앞둔 시점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만나 뜻을 모으던 때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서사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 영상들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자료가 되는데, 이 부분이 이 작품을 더욱 극적인 영화로 느껴지게 했다 (아련한 흑백 필름의 질감은 흡사 안톤 코르빈의 <컨트롤>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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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곡예의 주인공 필리페 페티일 것이다. 그가 너무도 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것 때문이 아니라, 곡예 만큼이나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능이 충만한 그 때문이었다. <맨 온 와이어>에 삽입된 그의 인터뷰를 보면 '과연 저렇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외줄 위에서 오랫동안 외로움을 홀로 견뎠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물론 이 부분은 영화의 후반부를 보며 달리 깨달을 수 있었는데, 줄 위의 그에게 '외로움'은 없었다). 손짓, 발짓, 몸짓을 써가며 자신의 무용담을 보기 좋게 늘어놓는 그의 리드에 따라 재연 장면들은 줄을 서듯 따라온다. 너무 열정적으로 스크린 뒤의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필리페의 눈빛에서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내가 느낀 특별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게 해주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그의 열띤 화법은 적어도 한 명의 관객에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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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또 다른 지점은, 대부분 쌍둥이 빌딩을 건넌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다면 그 사건 자체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을텐데, 이 영화는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보면 우리가 (어쩌면) 쉽게 접하는 단 한 장면(빌딩 사이를 건너는)이 사실은 많은 과정들을 거쳐 이뤄낸 산물이다 라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듯도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는 같은 뜻으로 모인 젊은이들 사이의 갈등과 성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대로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그러니까 극적으로 묘사하려 했다면 영화는 좀 더 일반적인 의미의 극적요소가 가미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감독인 제임스 마쉬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설명하되 어느 한 순간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듯 빠져나오면서 이야기의 결말을 더 묘하게 마무리 짓고 있다.

사실 한참 이야기를 잘 들어오던 청자의 입장에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순수한 이상만을 꿈꾸며 함께 달려왔던 젊은이들이 목표를 이루고나서는 왜 그렇게 산화되듯 쉽게 사그라든 것인지, 연인 사이였던 필리페와 그녀의 이별은 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영화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인데, 어차피 안알려줄 것이었다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이들의 이런 갈등 요소를 언급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영화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영화의 화법은 잘 들여다보면 필리페와 그의 친구들이 갔던 길과도 많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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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여곡절을 지나 필리페가 드디어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을 타고 건너던 순간의 장면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시간이 멈춘듯 한 경험을 이 장면을 통해 할 수 있었고, 그 어느 장면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이 표현이 100% 맞거나 아주 틀린 표현이 동시에 될지도 모르겠지만, <맨 온 와이어>라는 작품은 마치 이 한 장면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너무도 위험천만한 순간이지만 조금의 불안감이나 위험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으며, 곡예라는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감성적인 순간이었다.

빌딩 사이을 위태롭게 건너는 장면은 스포츠적인 도전으로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맨 온 와이어>는 도전인 동시에 도전이 아닌 것으로 그려냈다. 도전이라는 것은 목표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필리페의 도전에는 목표(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 사이를 건너는 것)는 있지만, 의도는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역시 '왜?'라는 부분이다.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외줄타기를 한거죠?'라는 질문에 필리페는 아무 이유없다고 답한다. 사실 이 장면에서 소름은 더 돋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전하려 예술 작품을 만들지만, 필리페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예술'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한 곳이 단숨에 탁 트인듯한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다. 무언가 심오한 메시지를 들려줄 줄 알았던 그에게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을 때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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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릴러 거장의 작품을 보는 듯한 범죄영화적 분위기를 이끄는 연출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또 다른 요소는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영화 음악이다. 이 영화를 다큐이면서도 극영화로, 극영화이면서도 다큐멘터리로 만든 데에는 마이클 니먼의 음악이 크게 작용했다.

맨 처음 이야기했듯이 <맨 온 와이어>는 압도적인 포스터에 끌렸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압도적인 찰나와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1. 이건 제가 영화에 감동받아 있을 때 영화의 삽입된 클래식을 인용하여 만든 동영상이에요 (직접 촬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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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추노>를 1회부터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게 본 편인 <선덕여왕>의 경우도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이야기했고 특히 미실없는 덕만이 등장한 이후에는 많이들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미실없는 덕만 스토리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편이었다), 한 번도 따로 글을 쓴 적은 없었는데 이번 <추노>는 도저히 짧게라도 한 마디 안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뭐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라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이대로의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추노>는 개인적으로 (아마도 많은 드라마 팬들이 그러할듯) 국내 TV드라마 가운데 블루레이 출시를 소원하게 되는 작품이 될 듯 하다.




어제 10화를 보고 든 생각은 '와, 진짜 연출, 연기, 로케이션 모두 비교대상을 훨씬 뛰어넘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드라마(월화수목 방영되는)가 벗어나기 어려운 약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아쉬운 점들을 조금 이야기해보자면, 송태하와 언년이의 문제의 키스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감정선을 고려했을 때 이럴 수도 있겠다는 싶다(난 관대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동안 송태하라는 캐릭터가 보여주었던 충성심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미뤄봤을 때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일각이 급한 시점에서, 그토록 보호해야 하는 마마가 배위에서 굳건히 기둥을 꼭 쥐고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언년이와 시간을 지체한 지점이었다(사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키스씬이 아닌 지체 부분이었다). 한섬이 이를 두고 어찌되었든 또 누군가를 구하러 갔다는 식으로 미화하려고 했지만 (마치 '네오'를 보는 듯), 그간 송태하를 보았던 시청자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추노>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주로 언급하는 점들 가운데는 역시 '현실성'을 들 수 있겠는데, 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리얼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허구는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언년이가 송태하의 큰 도를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드는 것이나, 배에 상처를 입은 황철웅이 관군 수십명을 모두 제압한 뒤의 장면이라던지 등은 그 동안 일부 리얼리티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당시 재현 언어와 무기들로) 작품이어서 좀 더 아쉽게 느껴진 감이 없지 않다. 만약 이 작품이 이런 리얼리티를 모두 살렸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나 관심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로 오해하지 말자!) 아, 추가로 막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출생의 비밀' 건은, 받아들이는 사람들로서는 '출생의 비밀'로 오해할 수 있지만 연출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당시 양반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욱 강했다고 생각한다. 즉, 대길과 언년이, 큰놈이 형제이자 남매라는 것도 분명 충격포인트이지만 그것보다는 양반들이 노비들을 어떻게 대하고 당시의 잘못된 제도가 만들어낸 폐해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더 포인트라는 점이다.




여튼 <추노>는 참 흥미로운 작품이다. 일단 연기를 이야기해보자면 주연을 맡은 장혁 같은 경우 본인 최고의 작품을 드디어 만났다고 볼 수 있을텐데, 분명 오버스러움이 더해진 연기이지만 '이대길'이라는 캐릭터와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터라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는다. 오지호의 경우 분명 처음에는 책을 읽는 듯한 대사 톤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는데, 익숙해져서 인지 점점 '송태하' 캐릭터와 겹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역대 최고 민폐 캐릭터로 등극한 '언년이' 역할의 이다해의 경우, 본인의 연기에 대한 내용보다는 역시 캐릭터에 대한 찬반(물론 반이 압도적으로 많지만)이 뜨거운데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민폐의 수준은 확실히 넘사벽인듯(어느 게시판을 보니 언년이의 민폐를 따로 정리한 고문서가 있던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흐르더라...).

<추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과 연기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 중 최고는 역시 성동일 일텐데, 그간 코믹한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공감대와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최고의 열연을 펼치고 있다(사실 천지호가 황철웅에게 '버릇없이' 대들 때는 저래도 되나 싶을 때가 많다 ㅋ). 처음엔 까메오 출연인줄로만 알았던 공형진도 인상적이고 대길 패거리와....여튼 거론하기조차 너무 많은 한명한명 조연들의 연기만으로도 <추노>는 충분히 재미있다. 따지고보면 이렇게 주인공 외에 각각의 캐릭터에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 얼마나 있었나 싶기도 하고(화방 아저씨의 울컥함에도 살짝 공감이 되었을 정도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로케이션이었다. <추노>는 정말 로케이션의 승리라고 할 만한 장면들이 여럿 등장했는데 특히 어제 10화에서 등장한 제주도 장면들은 장소가 장면을 만들어낸 최고의 순간이었다(이 장면을 보는 순간 블루레이 구입 욕구가 200% 증가했다!). 그리고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레드원 카메라로 촬영이 되었는데, 역대 한국 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영상과 화질을 선사하고 있다. 국내 TV방영 환경이 소스의 우월함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블루레이의 출시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 또 <추노>에 대해 글까지 쓸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엔딩 시점이나 아니면 완전히 막장으로 흐르게 되었을 경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튼 누군가에게 '언니, 저도 추노 열심히 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짧게 나마 글을 남겨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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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KBS에 있습니다.










서태지 심포니 (The Great 2008 Seo Tai Ji Symphony with Tolga Kashif & Royal Philharmonic)
극장에서 만난 서태지


(서태지 관련 글은 참 이유없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굳이 다시 한번 밝히고 시작하자면, 나는 뼈속까지 태지 팬이다)

2008년 열렸던 서태지 심포니 공연은 못 가본게 참 아쉬웠던 공연 중 하나였다. 그것이 단순히 서태지라서가 아니라 서태지가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공연이기도 했고, 본격적인 클래식 편곡으로 새롭게 써진 곡들에 대한 궁금함과 경기장 공연이라는 악조건 속에서의 사운드 문제가 걱정/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때를 놓쳐버린 공연 관람은 그 이후 DVD와 블루레이(!)까지 출시 예정이라는 소식에 잔뜩 기대를 하게 만들었는데, 영상물 출시 이전에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작은 예매전쟁을 치룬 후에 극장에서 태지의 공연을 처음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관람의 포인트라면 첫 번째 포인트는 서태지였고, 두 번째는 극장에서 만나는 태지, 세 번째는 극장에서 즐기는 콘서트 정도가 되겠다. 일단 서태지 심포니 공연 자체를 TV방영시 보기는 했었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극장 상영이라는 이번 기회, 그러니까 좀 더 실제 공연장에서 보는 것에 가까운 느낌(TV관람시 보다 가까워졌다는 것이지 라이브를 실제로 즐기는 것에 가까워 졌다는 의미는 아니다)을 받을 수 있는 이번 극장 상영은 그것만으로도 두근대는 경험이었다. 사실 록밴드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메탈리카 등 이전에 몇 차례 있어왔던 것이라 그 자체로 획기적인 것은 아닐테지만, 내게 익숙한 태지의 음악들이 어떻게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를 이뤘을까에 대한 기대, 그리고 본래 클래식 곡이었던 3집 수록곡 '영원'을 드디어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오늘을 위해 이 곡을 만들었나봐요'라는 태지의 한 마디는 그의 오랜 팬으로서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ㅠ)라는 점이 관람 포인트였다.





극장에서 콘서트 무비 혹은 다큐멘터리를 즐겨본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때의 희열은 확실히 일반 극영화를 볼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다른 감동을 주곤 했었다. 롤링 스톤스의 <샤인 어 라이트>같은 경우는 진짜 거의 공연을 통째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는데,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그들의 공연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고, 퀸의 'Rock Montreal' 같은 경우도 마치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다같이 환호하며 볼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은 리허설 장면을 촬여한 다큐였음에도 이를 넘는 감동을 주었음은 굳이 또 말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서태지 심포니 극장 상영의 특징이라면 사운드 측면에서 거의 쉴틈없이 몰아친다는 점이다. 메가박스 서태지 M관의 사운드는 분명 좋은 편인데, 공연 자체가 워낙에 사운드의 볼륨이 높다보니 마치 시너지 이수 5관에서 관람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극장 상영만의 장점이라면 공연장(특히 경기장)에서는 완벽하게 커버되지 않은 사운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사운드로 오히려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일텐데, 이번 서태지 심포니의 경우는 그 중간지점 쯤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도 공연장에서는 미처 다 캐치 되지 못했을 사운드들이 살아있는 동시에, 록 사운드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공연장과 같이 엄청난 볼륨감으로 몰아쳐 '크기'의 임팩트는 있지만 '정교함'의 임팩트는 음반 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점을 가지고 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얘기해보자면, 보통 같으면 그저 볼륨감으로 디테일을 압도하는 사운드에 아쉬움이 더 많이 들었을테지만, 이런 AV적인 퀄리티 측면보다는(이렇게 계속 얘기하면 사운드 퀄리티가 무척이나 떨어지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평균은 당연히 넘는 퀄리티이다) 팬들을 위한 선물에 가까운 극장 상영이기 때문에(서태지 팬이 아니고서야 이 공연을 굳이 비싼 돈 내가며 극장에서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좀 더 콘서트 같은 분위기를 내는 사운드가 오히려 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연 내내 감동 때문 만이 아니라 Only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운드 때문에 소름이 돋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인상적인 몇 곡을 꼽아보자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 심포니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영원'이었고, 'Take One'의 서곡도 기존 곡의 색채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록 넘버들은 오케스트레이션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곡들이 많았기 때문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담당하거나, 합창단의 코러스가 더해지는 정도) 원곡들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을 느끼기 어려운 점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Moai'같은 곡은 클래식 편곡으로 더욱 아름다운 선율이 살아났고, 'T'ik T'ak'같은 곡 역시 메인 테마가 굉장히 극적으로 연출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 들을 때 보다 들으면 들을 수록 좋아지는(슬퍼지는) 보너스 트랙 'Zero'까지.




이번 극장 상영의 특징이라면 짧은 심포니 공연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영상이 모두 끝난 뒤에, 공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제법 긴 시간 상영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추후 DVD나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수록될 영상으로 여겨지는데, 극장에서 서플먼트를 만나다니!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기서는 영국에서 서태지 밴드와 로열 필하모닉이 처음 리허설을 맞춰보는 장면, 태지 밴드의 짧은 일상 등 팬이라면 눈을 뗄 수 없는 영상들이 담겨있다(이거야 말로 진정한 팬서비스, 서비스!). 짧지 만은 않은 부가영상이 모두 끝이 나면 마지막으로 보너스 트랙인 'Zero'의 공연 실황이 이어지고 서태지 심포니는 마무리 된다.


1. 사실 많은 환호성과 합창을 예상하고 갔는데, 제가 본 회차의 매니아분들은 의외로 얌전하셔서 거의 숨죽이고 보았다는 ㅎ
2. 새삼 엔딩 크래딧에 Blu-ray를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국내 최초, 국내 뮤지션 블루레이 실황 타이틀이 되겠군요!



글 / 음반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2009)
내게도 썸머가 있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크 웹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500)일의 썸머>는 누가 뭐래도 주연을 맡은 조이 데샤넬 때문에, 조이 데샤넬 이므로, 조이 데샤넬 이라서 기대했던 영화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조이 데샤넬은, <예스맨>에 이르러 매력 발산에 정점을 보여주었는데, 그간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 가운데 (국내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제대로 된 로맨스 장르라 부를 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포스터 속 분위기나 스틸 컷의 분위만으로도 사랑스러움이 전해지는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는, 그녀의 팬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명의 팬 입장에서 어느 정도였는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조셉 고든-레빗은 <브릭 (Brick, 2005)> 에서 이미 인상적인 연기를 봤던 터라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에 여배우에 대한 사랑이 컸던지라, 영화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그녀에게 오롯이 받쳐져 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영화는 이런 나처럼 한쪽으로 치우쳐있던 사람이 보아도 중심을 찾게 될 만큼 참 매력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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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500)일의 썸머>는 로맨스 영화다. 평범하지 않은 듯 하지만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듯 하지만 매우 특별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두 남녀의 이야기'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지만, 영화가 그리는 화자나 심리를 그리는 주체는 남자 주인공인 톰(조셉 고든-래빗)이고, 톰의 연애담과 성장담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야기다. 톰과 썸머 (조이 데샤넬)의 이야기는 한 번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겪어보았다는 말에 아니라며 불끈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잘 떠올려보면 내가 예전에 만났던 그녀는 썸머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내가 했던 고민들은 톰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누구나 다 겪었을 법한 남녀간의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500)일의 썸머>가 평범하지 않은 것은 마크 웹 감독의 감각적인 편집과 영상 때문 만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나면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는 사운드트랙 때문 만도 아닐 것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처음 보게 될 때는 딱히 내 이야기다라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지만, 곱씹어 보면 볼 수록 나의 예전 로맨스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에 있어서 <(500)일의 썸머>는 직접적인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어떤 에피소드를 두고 '아, 맞아 나도 예전에 저런 일이 있었지', '나도 저렇게 다투곤 했었지'라는 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겹치지 않을 지라도 무언가 내 기억 한 편을 공유한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진부해 보이는 홍보 카피는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매우 정확한 카피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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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타임라인을 묘사하는 영화의 방식도 흥미로웠다. 일반적이었다면 500일이라는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그릴 때, 감정의 변화에 따라 그러니까 시간의 순흐름에 따라 굴곡을 겪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을 텐데 (그래서 500일이 되면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마크 웹 감독이 이 '500일'을 그리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시간의 순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유자재로 시간대를 이동하며 두 남녀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연애 초기에는 마냥 좋았던 그녀의 특징들, 공간들이 날짜를 며칠만 뒤로 돌려 보면 오히려 끔찍하고 불편한 것이 되어 버리는 연애의 굴곡을 짧은 호흡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관객에게 '이랬던 남녀가, 저렇게 변했다' 라는 짧은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500일 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에도 수 많은 굴곡을 겪는 남녀 관계를 보여주면서 어찌보면 그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영화의 구성 방식을 통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 역시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과정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하지만, 좀 더 정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좋았던 그녀의 모든 것을 잊고 살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숙해졌는가 혹은 익숙해짐으로 인해 처음 느꼈던 설레임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며 나의 추억과 현재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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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락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500)일의 썸머>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참 묘한 매력을 갖는 영화다. 처음에는 일반 로맨스 영화 같지 않은 엔딩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발한 엔딩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묘한 매력이라는 표현에는 은근히 애잔하고 쓸쓸하다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가 선택한 엔딩은 분명 우울한 엔딩이 아니지만, 톰에게서는 여전히 썸머 양의 그림자가 보이고, 관객에게는 여전히 그 벤치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아른거린다. 물론 이런 감정은 나만의 것일지도 모르겠다(하긴 그 벤치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내 추억 속 한 장면과 너무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영화의 엔딩을 떠올려보면 깜찍한 결말을 선사함과 동시에, 영화가 500일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1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썸머 와의 500일과 똑같은 500일이 다시 한번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들게 한다. 우연 마저 자연이 섭리로 이해하게 된 톰이긴 하지만, 연애는 또 다른 문제다. 가을 양과의 새로운 로맨스가 여름 양과의 로맨스와 완전히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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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일의 썸머>의 소소한 재미라면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화 속에, 그 주변에 등장하는 뮤지션과 음악,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영화 속 톰과 썸머는 분명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취향은 확실히 남들과 좀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The Smiths'를 서로 좋아하고 신세대 답지 않게 예전 영화 '졸업'을 보고, 썸머는 비틀즈 멤버 중에도 링고 스타를 유독 좋아한다. 비틀즈 하면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지배적으로 많고, 스미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중적인 취향과는 좀 다른 취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고 (나도 어쩌면 그런 면이 많아서인지 더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다 별로라고 하는 밴드와 영화를 몇 번씩 보고 듣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이런 취향의 주인공들을 내세운 것은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크 웹 주변에 아무래도 이런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일반 관객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고, 결국은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아주 작은 장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 평소에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이 둘 간의 대화에서 소소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은 데뷔작에서 감각적인 영상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가끔 스크린에서는 과도한 재주를 부려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마크 웹 감독의 경우는, 정말 '딱 좋은' 정도였던 것 같다. 세련됨으로 치장할 수 있었음에도 아련함과 따듯함으로 아우른 오프닝 시퀀스와 중간중간 등장한 올드한 느낌의 시퀀스는 감각적이면서도 그 '온도'는 잃지 않는 영리한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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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에는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1967년작 <졸업 (The Graduate)>의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인용이 등장하는데, 특히 졸업의 그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한 카메라 구도는 참 흥미롭더군요. 거기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아닌 그들의 다른 곡을 배치한 것도 센스라면 센스!

2. <졸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셉 고든-레빗의 연기 스타일이 고전적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여러 모로 더스틴 호프만이 연상되더군요. 확실히 장례가 촉망되는 배우에요.

3. 극 중 두 남녀의 대화 중에 썸머가 '너 토네이도 겪어 본 적 있어?'라는 대사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이 양은 <오즈의 마법사>를 리메이크한 TV단편 시리즈 <틴맨 (Tinman, 2007)>에서 도로시 역이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거든요 ㅎ

4. 극 중 톰이 입고 나오는 뮤지션 티셔츠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Joy Division이나 The Crash의 유명한 앨범 커버 티셔츠들을 입고 나오죠.

5. 극중 언급이 되는 The Smith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어서 조금 남달랐었는데, CD/DVD 쇼핑몰을 운영하던 때에 해외뮤직비디오 DVD주문시 스미스를 껴넣으면 사장님이 항상 그랬었거든요, '이거 누가 사겠니?';;; 전 그 때마다 그랬었구요. '네, 이거 한 개씩은 꼭 나가요'. 꼭 스미스 뿐만 아니라 도대체 누가 살까 싶은 앨범들도 꼭 몇 장씩은 판매되죠. 그 때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어요.

6. 사운드트랙은 너무 좋죠. 사운드트랙 음반 리뷰는 http://www.realfolkblues.co.kr/1186 여기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7. 아, 참고로 제가 운영하는 조이 데샤넬 양의 팬블로그는 http://zooey.textcube.com 입니다 ^^; 조이당 여러분은 여기서 만나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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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
외로운, 위로의 일기


내 인생의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감독을 맡은 미셸 공드리만의 것이라보긴 어려운 작품이었다. 사실 찰리 카우프만은 <이터널 선샤인> 개봉 당시에도 워낙에 유명한 각본가였기 때문에 미셸 공드리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그가 각본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었는데(이렇게만 써놓으면 은근히 공드리를 무시하는 듯도 하지만, 나는 공드리를 카우 프만 보다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카우프만의 각본과 공드리의 마술이 더해진 <이터널 선샤인>은 정말 수많은 시네필들을 감동에 빠지게 한 걸작이었다.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은 항상 독특했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했었지?' 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할 지언정 그 기이한 세계관과 .5층의 이미지는 잊지 못한다. <휴먼 네이처 (Human Nature, 2001)>와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을 기억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찰리 카우프만은 '천재 각본가'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를 매번 들려주었지만, 그의 연출 데뷔작은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의 작품보다 어쩌면 더 걱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던 찰리 카우프만이 첫 번째 연출작은, 참으로 복잡하고 많은 분석할 거리가 있고 무엇보다 너무 나를 들켜버린 것만 같은 깊디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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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자 케이든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항상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한 듯 했지만 겉으 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의 삶은, 어느 날 화가인 아내 아델(캐서린 키너)이 어린 딸을 데리고 떠나버리면서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내가 떠난 뒤 그 동안 자신을 사모해 오던 극장 매표원 헤이즐(사만다 모튼)과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한편, 거금의 기금을 받게 되면서 평생 꿈꿔오던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된다.

<시네도키, 뉴욕>은 카우프만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공드리와 함께 했던 작품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야기보다는 소품같은 단편적 이미지들을 여기저기 배치하는 한 편, Jon Brion의 음악과 함께 몽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처럼 펼쳐놓는다. 이 단편적인 몇 가지 것들은 얼핏 보아서는, 아니 집중해서 보아도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쉽게 유추하기 어렵다. 계속 노인이 주인공의 뒤를 따라오는 것 (혹은 귀신처럼 장면 장면에 등장하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지만 이것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고, 변의 색깔을 두고 벌어지는 대화들이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단번에 분석이 되기 보단 무언가 소스를 늘어놓는 듯한 느낌이 강한 서두다.

연극 연출가인 주인공 케이든을 통해 새로운 작품에 대한 창작의 고통 (<8과 1/2>과 같은)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혹은 개인적인 고뇌를 좀 더 확장시키려는 것인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러닝타임이 지속될 수록 찰리 카우프만의 이 거대한 야심에 조금은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카우프만은 지금까지 전작들에서 항상 개인의 심리상태를 기본으로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왔었지만, 어쨋든 소박한 그릇에 담겨 펼쳐진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번 작품은 본인이 연출을 맡은 첫 작품이라는 것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두려움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아마도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거대한 담론을(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심리묘사인 이야기를) 주저하지 않고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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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든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제유법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카우프만의 이 놀라운 이야기는, 그 세계를 다층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을 반복했다가 다시 모든 거풀을 벗어내고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케이든은 맥아더 제단으로부터 기금을 지원 받아 연극을 제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간단하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고 진실된 것을 투영하려는 의지가 뒷받침되며 본격적으로 자신 본연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올리게 된다. 이 자체가 제유법이라 할 수 있지만 카우프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나타난 남자는 케이든을 쭈욱 지켜보았고 자신이 케이든보다도 케이든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있다며 그의 역할을 하기를 자청한다(이 남자는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영화 시작부터 계속 화면 어딘가에 등장했었다). 이 남자 새미 (톰 누난)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제유법의 세계로 깊게 빠져든다.


새미는 단순히 연극에서 케이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든 보다도 더 케이든 임을 믿고 있는(이건 분명 믿음이다) 존재라 가끔씩 케이든과 부딪히기도 한다. 케이든은 극중 자신을 연기하는 새미가 무대라는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자신의 행세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크게 제지하지도 않는다. 새미 말고도 케이든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연극 속에서 다른 인물들을 통해 복층 구조로 등장한다. 나중에는 케이든과 연극 속에서 케이든을 연기하는 새미, 그리고 극 속에서 연출을 하는 케이든까지.. 한 명의 캐릭터를 여러 개의 모습으로(신체로) 쪼개어 놓는다. 이런 카우프만의 세계는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의 기본 이론이 되었던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연상케 한다. 점점 제유법의 세계가 깊어지면서 이 극을 연출하고 있는 케이든도 그 속에서 케이든을 연기하는 새미도, 그리고 그 캐릭터의 본 주인들과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정체성과 그 세계의 공간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 관객 역시 어디까지가 연극의 범주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의 범주인지 쉽게 구별되지 않아 혼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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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제유법이라는 것이 부분으로 전체를 전체로 부분을 이야기하는 표현법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카우프만의 이야기는 항상 부분 그러니까 케이든의 심리상태를 통해 인간 본연의 대한 깊은 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카우프만의 이야기를 항상 귀담아 듣게 되는 것은 사실 영상 예술의 화려함과 독특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위로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가 초반에 이르러 중반으로 진행될 때 까지만 해도, 점점 거대해 지는 세계관을 보며 첫 단독 연출작이라서 그런지 너무 욕심'만'을 내는 것이 아닌가 부담스럽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가서는 다시 본연의 이야기로 돌아올 때 눈가가 저절로 뜨거워져 버리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카우프만이 케이든을 풀어내는 방식에는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위로가 기본이 된다. 복잡한 제유법이니, 공드리 같은 마술같은 기법이니, 분석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다양한 장치들이니 해도, 이것들은 모두 위로와 자기반영이라는 메시지를 꾸며주는 기법들일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카우프만은 본인 첫 번째 연출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영화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시네도키, 뉴욕>에서 제유법을 다루는 방식은 확실히 영화적인 요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 복잡한 구성 때문에 본질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카우프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었다. 아마 본인도 작품을 완성하고나서 굉장히 뿌듯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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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위로의 메시지로 돌아와서. <시네도키, 뉴욕>이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곤 그 이유가 상당히 개인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번 영화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라고 얘기하는 나이지만, 이번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였던 것 같다. 개인적인 것이기에 영화는 더 많은 공감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이기도 한데, 이 작품은 공감대를 얻으려는 노력 측면에 있어서 확실히 다른 작품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중반까지는 카우프만이 만든 이 세계에서 몹시도 혼란스러웠었다. 그런데 오히려 인물의 세분화되고 그 세분화된 인물들이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진심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공감대는 한 순간에 폭발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고들 이야기한다. 곁에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있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인간은 늘 내면의 나와 싸운다. 아니 누군가가 나를 내가 아는 것처럼 이해해주길 몹시도 바란다. 극중 케이든이 겪는 고뇌는 창작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위로와 이해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여러 인물들에게 기대어도 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말미에 케이든에게 또 다른 케이든인 새미가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며 메시지를 전할 때,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 순간은 분명 이 영화에 클라이맥스였다. 내가 남들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나의 분신(결국 나)에게서 듣게 되는 이 순간, 즉 누군가가 (하지만 타인이라고 보긴 어려운 존재에게) 나를 100% 이해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을 때의 찰나는 어떤 기분일지 잘 상상이 되질 않았었는데, 비록 영화 속 새미는 타인이라기보단 내 마음 속 외침에 더 가까운 존재였고, 영화 속에서 벌어진 간접 경험이긴 했지만 매우 소중한, 그리고 감격적인 찰나였다. 찰리 카우프만과 나는 한 번 만난적도 없을 뿐더러 내가 그를 아는 것은 그가 쓴 몇 편의 작품일 뿐인데,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뼈속까지 공감하게 만들었다니, 슬픔과 위로가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리 가까운 이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결핍일 수도 있고, 부끄러움일 수도 있으며 사랑일 수도 있다. 이런 말 못할 이야기를 위로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에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그래서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은 적어도 나에게는 <이터널 선샤인>과 더불어 가장 소중한 작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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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델 역할을 맡은 캐서린 키너도 그 이미지가 참 좋았으며, 새미 역을 맡은 톰 누난과 여전히 빛나는 미셸 윌리엄스 등 너무 많은 좋은 배우들이 나와 그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했던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에밀리 왓슨이나 제니퍼 제이슨 리, 다이안 위스트 등은 출연사실 조차 몰랐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구요.

2.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헤이즐 역할을 맡은 사만다 모튼이었어요. 사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당시만 해도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로서 성장할 줄은 몰랐었죠. <컨트롤>을 통해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더욱 노련한 연기의 그녀를 만나볼 수 있어요.

3. Jon Brion의 음악은 확실히 좋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의 음악 때문에 공드리의 작품 냄새가 좀 더 짙어진다는 것 정도일 것 같네요. 국내에도 OST가 발매될 수 있을까요.

4. 본래는 각본만 카우프만이 쓰고 연출은 스파이크 존즈가 하려했던 작품이었는데, 그의 버전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카우프만의 연출작에 100% 만족하게 되었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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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The Road, 2009)
마음 속 불꽃이 있는가?


코맥 맥카시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존 힐코트의 영화 <더 로드>는, 워낙에 많은 원작의 독자들 때문이라도 온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코맥 맥카시의 원작 소설을 읽을 뻔했었는데, 다행히도(?) 막 읽으려는 찰나에 영화화 소식을 접한 터라 더 깨끗한 상태로 영화를 만나기 위해 독서의 즐거움을 포기하기도 했었다(그렇기 때문에 이 리뷰는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쓰여졌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사실 엄청난 베스트셀러라는 사실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긴 했지만, 베스트셀러의 영화화는 기대와 동시에 우려가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려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면, 비고 모르텐슨이라는 배우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믿음을 주어 결정적으로 이 작품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 이어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를 함께 하며 어쩌면 벗기 힘들었을 '아라곤'이라는 이미지를 너무 쉽게 벗어버린 비고 모르텐슨의 이름이 코맥 맥카시 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건 아마 나 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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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지만 인류가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만큼의 재앙을 겪게 되어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쇼핑카트에 필요한 것들을 담아 인간들을 먹는 무리들을 피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간다. 비고 모르텐슨이 연기한 남자는 아들과 함께 이 지구에 남겨졌으며, 아내의 마지막 말처럼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 힘든 여정을 이어간다.

혹자들은 왜 지구가 이런 재앙을 맞게 되었는지, 아니 그 이전에 정확히 어떤 재앙이 일어난 것인지조차 묘사나 설명이 없는 스토리에 대해 불만을 갖을 지도 모르겠다. 종종 이렇듯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해주지 않는 작품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물론 그 배경적인 이야기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쉽게 얘기해서 영화 속 부자에게는 그들에게 닥친 지구의 재앙이 지진이던, 온난화로 인한 재난이던, 멈추지 않는 화제던, 외계인의 침공이던 그 어떤 것이 되든 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더 로드>에서 닥친 재난은 '재난' 이상의 의미는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이런 재난을 맞닥들인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그 안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지가 핵심적인 이야기라는 말이다. 물론 지구가 어떤 재앙을 맞았고 아이가 다 크도록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불만으로 까지 전이될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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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정하기 어려운 재앙 앞에서 연약하기만 한 인간의 외로운 싸움을 그린 영화는 많은데, <더 로드> 역시 그 묘사 방법이 훨씬 더 정적이고 차분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많은 부분을 같이 하고 있다. 재난 앞에 무력함, 그리고 그 재난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는 전개, 항상 옳을 것만 같았던 우리의 주인공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욕구의 유혹에 넘어갈 때, 그리고 러닝타임 내내 항상 강할 것만 같았던 역시 '우리의' 주인공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시퀀스 등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을 <더 로드>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물론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은 훨씬 정적이고 인상깊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더 로드>에서 발견한 이 영화 만의 특별한 지점은 '따라온다'라는 개념이었다. 일단 이 영화에서는 굉장히 의도적으로 '따라온다'라는 대사를 사용하고 있다. 남자는 가끔씩 만나게 되는 불청객들에게 꼭 '언제부터 따라왔냐!'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불청객들은 '따라오지 않았다'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불청객들이 따라온 적은 없지만 남자는 항상 본인은 착한 사람으로서 나쁜 사람들에게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살고 있다. 이것은 재앙이 닥친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세계라고 하더라도 이런 남자의 심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 남자는 분명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홀로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그렇게 생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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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들은 이런 재앙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이지만 본 적도 없는 착한 사람들(가족 외에)을 믿고 있다(정확히 얘기하자면 착한사람으로 믿고 있다). 길에서 만난 노인에게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남자는 누군가가 우리를 쫓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아들에게는 이런 부정적인 걱정이 없다. 오히려 개가 있으니 한 무리의 가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보는 편이 더 가깝다.
이런 아들과 남자의 미묘한 갈등은 이 영화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다. 이런 재앙 속에서도 천사 같이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들과 착한 사람이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재앙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던 남자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를 일깨워 준다.

'따라온다'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면 남자는 계속 불청객이 나타났을 때, 언제부터 우리를 따라왔냐며 의심했었지만 정작 그들을 계속 따라온 것은 영화 속에서 말하는 '착한 사람'들이었음이 밝혀지는 부분은 의미 심장했다(물론 영화에서 묘사하기로는, 왜 이 착한 사람들이 마치 부자를 시험이라도 하듯 계속 따라왔으면서 남자가 죽은 이후에야 나타났는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남자의 의심과는 다르게 계속 그들을 따라오던 이들은 착한 사람들이었고(개가 짖던 것도 순간도 그들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를 은연 중에 믿어오던 아들의 믿음은 결국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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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분명 컬러영화이지만 흑백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의 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색이 빠진 죽어있는 지구의 모습과 생존에 갈림길에 서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로 인해 더 인상 깊게 다가왔으며, 별다른 스펙타클한 장면 없이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구의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주연을 맡은 비고 모르텐슨은 다시 한번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흡입력 높은 연기를 펼친다. 비고는 실제로 아버지라는 캐릭터에 상당히 잘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항상 생각해왔었는데, <더 로드>에서 그런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 로버트 듀발과 가이 피어스는 워낙에 피폐한 캐릭터 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몰라볼 정도인데, 특히 가이 피어스의 경우는 까메오 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가이 피어스는 존 힐코트 감독의 전작 <프로퍼지션, 2005>에 출연했었다). 샤를리스 테론 역시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다른 의미에서 그녀의 출연이 굉장히 의미있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아들 역할을 맡은 코디 스미스 맥피 때문이었는데, 물론 이 아역 배우의 연기 역시 흠잡을데 없이 만족스럽긴 했지만, 별개로 이 아이의 얼굴에서 샤를리스 테론의 얼굴이 계속 비춰졌다는 것이 몹시도 흥미로웠다. 흡사 실제 모자 관계가 아닌가 (테론에겐 죄송;) 의심을 해볼 정도로 코디 스미스 맥피의 눈빛, 표정, 볼 에서는 샤를리스 테론의 이미지가 매우 자주 흘러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들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서 단순히 아들 뿐만 아니라 아내를 그리는 그의 모습이 느껴져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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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닉 케이브 (Nick Cave)가 음악을 맡고 있습니다.
2. 존 힐코트 감독의 그의 아들인 Louie Hillcoat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있습니다.
3. 이제야 마음 놓고 맥카시의 원작 소설을 읽어볼 수 있겠네요 ^^;
4. 엔딩 크래딧과 함께 시작되는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Dimension Films에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2009년도 어느 덧 다지나가고 2010년 새해를 맞았네요. 먼저 부족한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조금 늦었지만 2009년 한해 본 영화들을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올해의 한국영화와 한국 영화를 제외한 올해의 영화 두 부분으로 진행될 예정이며(음반은 올해도 못할 것 같네요 흑 ㅠ),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제가 꼽은 올해의 해외영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 해에도 제 블로그를 통해 같은 카테고리로 베스트 영화를 선정했었는데, 지난해 제가 꼽은 베스트 해외영화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를 제외한 2009년 저의 베스트 영화는 지난해와 동일하게 15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지난 해도 워낙 좋은 작품이 많아 15작품을 선정하기가 쉽지 만은 않았네요. 15작품 가운데 순위는 없으며, 제목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각각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리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글 쓰는 것보다도 더 오래걸린 듯한 저질 디자인 실력에 갈채를 ㅠ)



걸어도 걸어도 - 진리를 다루는 방법


한 줄 평 : 너무 진부한 얘기를 너무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법.




그랜토리노

http://www.realfolkblues.co.kr/908

한 줄 평 : 결국 남기지 못한 그 리뷰, 그 영화.




다우트 - 신앙심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http://www.realfolkblues.co.kr/878

한 줄 평 : 액션 없이도 겁을 먹게하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




드래그 미 투 헬 _ 클래식한 B급 호러 무비의 그야말로 재미

http://www.realfolkblues.co.kr/1000

한 줄 평 : 탁자 위의 그 댄스 다시 보고파~




디스 이즈 잇 - 우리가 몰랐던 진짜 마이클 잭슨

http://www.realfolkblues.co.kr/1124

한 줄 평 : ㅠㅠ




디스트릭트 9 _ SF의 옷을 입은 정치적 메시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1118

한 줄 평 : 계속 이런 식이라면 피터 잭슨 '제작'만으로도 믿을 만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 1950년대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본, 그들의 이상과 현실

http://www.realfolkblues.co.kr/1067

한 줄 평 : 올해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




더 레슬러 _ 한계와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찬사

http://www.realfolkblues.co.kr/884

한 줄 평 : 미키 루크가 울 때 나도 울었다 ㅠ




바더 마인호프 _ 혁명, 그 현실의 이름

http://www.realfolkblues.co.kr/1046

한 줄 평 : 그들에겐 과거 얘기지만 우리에겐 현실이라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




바스터즈 _ 타란티노가 말하는 내 생애 최고의 걸작

http://www.realfolkblues.co.kr/1127

한 줄 평 : 타란티노의 취미생활은 이제 경지에 올랐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_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

http://www.realfolkblues.co.kr/848

한 줄 평 : 공드리! 카우프만 없이도 감동을 주었어 ㅠ




업 (Up) _ 놓아주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배려깊은 이야기

http://www.realfolkblues.co.kr/1053

한 줄 평 : 시작부터 울리면 어쩌란 말이냐 ㅠ




에반게리온:파 (破) _ 전율의 미완성

http://www.realfolkblues.co.kr/1157

한 줄 평 : 오타쿠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왓치맨 _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http://www.realfolkblues.co.kr/1110

한 줄 평 : 전부 조크야, 다 조크일 뿐이라고.




퍼블릭 에너미 _ 마이클 만의 실험적인 갱스터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1064

한 줄 평 : 극현실감을 추구하는 마이클 만, 다음 작품은 다큐멘터리?




전부 세어보진 못했지만 2009년 한 해도 참으로 많은 영화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애착이 있던 극장들이 사라지고 문을 닫는 등 안좋은 일들도 많았던 한해였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극장에서 좋은 영화들을 계속 만날 수 있어서 여전히 좋았던 한해 였습니다. 2010년에도 부족하지만 제 블로그를 통해 계속 영화 리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댓글과 트랙백으로 의견 주시는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0년도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에 있습니다.






나인 (Nine, 2009)
뮤지컬은 결국 판타지와 챕터의 예술


<시카고>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하고,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벅찬 캐스팅으로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영화 <나인 (Nine)>은, 앞선 이유만으로도 뮤지컬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호불호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대부분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혹평을 등에 업고 관람을 하게 된 <나인>은 그래서인지, 아니면 뮤지컬 세계에 유난히도 동화가 잘 되는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 크게 아쉬울 것 없는 멋진 뮤지컬 영화로 기억될 작품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와 롭 마샬 감독(혹은 롭 마샬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과 나의 시선은)은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긴 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큰 인기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카고 (Chicago, 2002)>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인>의 리뷰를 쓰기 전에는 적잖은 고민도 되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영화가 좋았다는 평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최근 본 <파르나서스....>의 경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인상 깊게 보았다는 글을 쓰기가 잠시나마 머뭇거려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뭐 어차피 개인적인 차이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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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합성논란까지 있었을 정도로 말이 안되는 이 화려한 캐스팅을 보라!)

<나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에 영감을 받아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그러니까 정확히 얘기하자면 <8과 1/2>의 리메이크라기 보단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천재 영화 감독이자 카사노바인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작품(이탈리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보여지는 것에서만 벗어나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뇌를 고백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과정 속에 그의 인생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으로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어떤 특별한 감동이 요소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분명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일 것이다.

또한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공감대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귀도가 영화 감독으로서 창조의 고통을 겪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보다는, 그의 여성편력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는 편이라 귀도의 고뇌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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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들이 내러티브나 공감대(특히 공감대)면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무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경우일 때 더 자주 나타나는데,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타 장르의 영화들보다 챕터의 성격이 짙으며, 그 챕터들이 노래라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캐릭터나 에피소드에 관한 설명을 대사나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 대신 노래를 통한 시퀀스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화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 한 곡은 정확히 챕터와 성격을 같이 하기 때문에,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비교적 다음 에피소드로 빨리 이야기가 전환되곤 한다. 쉽게 얘기해서 노래가 삽입된 장면에서 인물들의 가사가 관객에게 좀 더 공감대를 얻어야만 챕터 방식이라도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텐데, 대부분이 이 장면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에 몰입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뮤지컬을 제외하고 최근 그나마 좋은 반응을 끌었던 뮤지컬 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뮤지컬은 뮤지컬이되 주인공이 가수이거나 쇼비지니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경우가 많다. 이런 종류의 뮤지컬은 음악영화와 뮤지컬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작품들인데 (가까운 예로는 <드림걸즈>를 들 수 있겠다), 이런 작품들은 일반적인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전통적인 구성도 있으면서 또한 가수로서 노래하는 구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적은 부담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되곤 한다. <나인>의 경우는 또 조금 다른 경운데, 그래도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는 상당수가 그렇지만 '노래하는 것 =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이런 공식에 가까운 작품이다. 애초부터 귀도가 상상하는 영화의 장면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나인> 속 노래하는 장면들은 귀도의 판타지이자 뮤지컬의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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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리도 화려한 여배우들이 캐스팅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판타지적인 특성과 강조된 챕터 형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작품은 확실히 무대 뮤지컬의 성격을 깊게 띄고 있는데, 사실 그러기엔 좀 캐릭터가 많았다는 생각도 든다. 워낙에 캐릭터가 많은 탓에 거의 소개와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곡에서 모두 소화해야 했던 탓에, 이야기보다는 '소개'의 인상을 더 깊게 남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저 '니콜 키드먼 나왔다!', '아니, 소피아 로렌이잖아!', '퍼기는 역시 가수출신이라 무대가 강렬한데', '페넬로페 크루즈는 늙지도 안나봐' 등 배우마다 간단한 소감을 풀어내기가 일쑤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무대화되고 영화화 되면서 영화라는 것과 감독,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사그라든 것이 사실이다. 맨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 <나인>은 펠리니의 작품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로 인한 혹평들은 어쩌면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뮤지컬 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나인>이 좋았던 것은 클래식 뮤지컬 영화스러운 분명한 챕터별 구성과 환상적인 노래와 춤 때문이었다(확실히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챕터를 감싸는 기본 이야기의 전개가 아쉬웠던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화려한 캐스팅의 배우들은 각자의 챕터에서 짧지만 강렬한 등퇴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니콜 키드먼 같은 경우는 확실히 그 금발과 아름다움 외에는 이렇다할 분량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내가 감독이라도 누가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여배우다운 한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 캐릭터에는 주저없이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했을 듯 하다(그녀 외엔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릴 수 있겠다). 블랙 아이드 피스 출신의 퍼기의 경우는 사실 드라마타이즈의 연기는 하나도 없이 노래와 춤에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욱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사실 이런 여배우들 사이에서 어설프게 연기하느니 안하는게 나을듯 하다). 많은 이들이 페넬로페의 시퀀스와 더불어 최고의 장면으로 그녀의 시퀀스를 꼽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무대 뮤지컬의 한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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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여배우와 챕터는 바로 케이트 허드슨의 시퀀스였다. 'Cinema Italiano'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기도 했는데, 무리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주디 덴치의 캐릭터는 조금 어정쩡한 감이 없지 않았고, 소피아 로렌 역시 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출연 소식 만큼의 인상은 주지 못한 듯 하다. 마리온 꼬띨라르의 경우 드라마 타이즈에 있어서는 페넬로페와 함께 가장 분량이 많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아카데미 수상자 답게 화려함이 없는 가운데서도 빛이 나고 있다(이 영화에선 숨막힐듯한 그녀의 클로즈업이 나온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섹시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선사하며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처럼 보라색으로 표현하면 좋을 매력을 선사하는데, 확실히 그녀의 출연분이 다른 챕터에 비해 튀는 편이긴 하다. 오히려 주연을 맡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경우 그의 출연작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편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관객을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그가 어느 정도 힘을 빼고 펼치는 이번 연기도 색다르게 볼 만하다(첨에 그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또 하이라이트에서 목에 핏줄 세우며 열창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말이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황홀함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던 영화로서, <나인>은 뮤지컬 영화팬인 내게 가슴 뛰는 영화였다.


1. 음악이 오히려 고전적이라 참 좋더군요. 사운드트랙은 이미 질러져있다.
2. 배우들의 연습장면이 짧게 나오는 엔딩 크래딧도 좋았어요.
3. 이 작품의 각본은 안소니 밍겔라가 마이클 톨킨과 함께 작업했었는데, 아시다시피 2008년 세상을 떠났죠. 영화는 그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4. <시카고>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카고>를 재미있게 본 관객을 홍보타켓으로 삼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5. 어쩌다보니 최근 본 두 작품(파르나서스...)이 전부 저만 좋아하는(혹은 응원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에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2009년도 어느 덧 다지나가고 2010년 새해를 맞았네요. 먼저 부족한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조금 늦었지만 2009년 한해 본 영화들을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올해의 한국영화와 한국 영화를 제외한 올해의 영화 두 부분으로 진행될 예정이며(음반은 올해도 못할 것 같네요 흑 ㅠ),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제가 꼽은 올해의 한국영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 해에도 제 블로그를 통해 같은 카테고리로 베스트 영화를 선정했었는데, 지난해 제가 꼽은 베스트 한국영화는 추격자/미쓰 홍당무/과속 스캔들/고고 70/다찌마와 리 였죠.


올해 역시 외화에 비해 국내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진 못했는데(20편이 못되는거 같네요), 그 가운데 베스트로 꼽을 만한 작품을 정리해보니 총 4편이 선정되었습니다. 네 작품 가운데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우리말 제목 가나다 순입니다.

똥파리 (Breathless, 2008)

감독 : 양익준
주연 : 양익준, 김꽃비

리뷰 : 폭력의 역사를 통한 가족의 탄생 (http://www.realfolkblues.co.kr/952)
무대인사 사진 (2009.04.25, 아트하우스 모모) (http://www.realfolkblues.co.kr/946)


<똥파리>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에너지 넘치는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양익준 감독은 폭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결국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며, 입에 담기도 부담스런 욕설이 가득한 영화였지만 그 진심만은 어느 영화 보다 따듯하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한국영화 올해의 발견이라면 단연 <똥파리>.





박쥐 (Thirst, 2009)

감독 : 박찬욱
주연 :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

리뷰 : 욕망으로 물들인 박찬욱의 새로운 장르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954)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박쥐> 씨네토크 현장 (http://www.realfolkblues.co.kr/963)

박찬욱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가장 큰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우리 감독이긴 하지만, 이번 신작 역시 이런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수작을 만들어냈다.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좀 더 대중적인 코드로 돌아올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 역시 자신의 세계와 특유의 미장센을 숨김없이 드러냈으며, 그로 인해 더 큰 호불호가 생겼지만 나로서는 더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이 <박쥐>가 될 것 같진 않지만, 이건 분명 두고두고 이야기해볼 만한 텍스트와 미장센이었다.





마더 (Mother, 2009)

감독 : 봉준호
주연 : 김혜자, 원빈, 진구

리뷰 : 그녀의 이름은 마더 (http://www.realfolkblues.co.kr/987)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는 사실 조금 의외스러운 작품이기도 했다. <마더>는 그 미장센이나 분위기가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박찬욱스러운 카메라 워킹과 미장센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는데, 물론 그 속에서 봉준호 만의 매력은 가득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병우의 음악과의 싱크로율은 날로 높아가고 있으며, 버스를 배경으로한 엔딩 장면은 소름끼치도록 멋진 올해의 엔딩 장면이었다.




잘알지도 못하면서 (Like You Know It All, 2009)

감독 : 홍상수
주연 :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정유미, 공형진, 유준상, 하정우

홍상수 감독의 <잘알지도 못하면서>는 올해에 본 영화 가운데 외화를 다 포함해서도 가장 재미있는 영화 중 하나였다. 러닝타임 내내 계속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었고,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었음에도 당시 관람이후 리뷰를 쓰려는 시점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시점과 겹치는 바람에 글을 쓰지 못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어쩃든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는 여러모로 재미있고 곱씹어 볼만한 작품이었다.



1. 곧 2009년 올해의 영화 (해외편)를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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