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터 (The Fighter, 2010)
가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매 작품마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과 (이젠 많이 지겨운 얘기지만) 화려했던 과거는 접고 배우로서 꾸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주고 있는 마크 월버그,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 출연하고 있는 데이빗 O.러셀의 신작 '파이터 (The Fighter)'는 라이트웰터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동생 미키 워드와 슈가 레이 레너드와 경기를 치르기도 했던 형 디키 애클런드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미키 워드는 'Irish'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으며 아투로 가티와의 기념비적인 경기로 더욱 유명한 복서인데, '쓰리 킹즈 (Three Kings, 1999)'를 연출했던 데이빗 O.러셀 감독은 이 실화를 권투 영화로 그리지 않고 가족 영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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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이터'에는 권투 영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패배를 계속해 오던 복서의 재기와 성공,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 하던 주인공이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권투 영화와 스포츠 영화의 기본적인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파이터'는 스포츠 영화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미키 워드와 디키 애클런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서의 삶에 중심을 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보니 주인고은 오히려 미키 워드가 아니라 디키 애클런드에 더욱 가까워졌다.

둘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후자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보편적인 캐릭터인 미키 워드에 비해 디키 애클런드의 캐릭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 그리고 놀라운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덕이었다 하겠다. 크리스찬 베일은 체중을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파이터'에서 보여준 디키 애클런드의 연기는 그 가운데서도 기존의 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리스찬 베일이 주로 맡아온 역할은 (몸무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주로 무겁거나 어두운 캐릭터가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디키 애클런드'는 경망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고 사고 뭉치인 동시에 떠벌이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캐릭터였기에 더욱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염 기른 점잖은 모습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던 그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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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본론인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와서보자면, 극 중 등장하는 미키의 가족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아들을 끔찍히 아끼기는 하지만 너무 아낀 나머지 아들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인생이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많은 누나들. 멜리사 레오가 연기한 어머니 역할과 여러 명의 누나들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누나들은 여럿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하나'처럼 행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로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의 경우보다는 우리 영화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고 보아왔던 문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기에 이런 가족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빗 O.러셀은 이 가족이라는 캐릭터를 조금은 공포스럽게도 또 한 편으로는 코믹하게도 그려내고 있는데, 두 형제가 벌이는 갈등의 든든한 배경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많지만 철옹성 같이 두터운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고자 하는 '샬린 (에이미 아담스)'의 존재도, 이 가족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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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파이터'는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을 굴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 마저도 극복해 나가느냐에 대한 과정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겠다. 극중 미키와 디키가 겪는 갈등의 핵심은 성공도 사랑도 아닌 바로 가족이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떠난다는 그 말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키와 가족에 모든 기대를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디키, 이 영화가 선택한 과정은 챔피언으로 가는 여정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회복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간절하게 챔피언이 되어야만 하는 미키 워드를 주인공으로 한 권투 영화였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가족은 아마도 일찌감치 그의 인생에서 배제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키 워드는 가족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챔피언이 되길 원했고, 그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복서였던 형 디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파이터'는 결국 권투영화일지도 모른다. 미키와 디키 그리고 가족들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챔피언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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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기 전 실제 주인공들의 뒷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는데,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나타낸다.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별다른 코멘트가 없어도 이들이 실제 미키와 디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영화 속 처럼 활발한 모습의 디키와 이런 형의 넉살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기는 미키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훈훈한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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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함께 아무말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에서도 디키와 엄마가 차 안에서 Bee Gees의 'I Started a Joke'를 부르는 장면은 역시나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곡이라 더욱 그랬구요. 여기에 Red Hot Chili Peppers의 'Strip My Mind'까지 나와서 황홀!

2. 하도 가족영화, 가족영화해서 권투영화로서의 장점을 조금 보태보자면, 극중 권투 경기 장면은 실제와 같은 현실감을 주기 위해 당시 방송촬영 영상을 컨셉으로 수록되었습니다. HBO의 유명한 방송스타일 말이죠.

3. 극중 등장하는 슈가 레이 레너드는 실제 그가 연기하기도 하였습니다.

4. 극중 디키가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던 슈가 레이의 다운 장면. 이것이 슬립 다운인지 넉다운인지는 직접 판단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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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에 '새삼스런' 이 빠졌다. 영화가 앞으로는 모두 데이터로 대체 될 것이고, 극장이란 곳이 희귀한 장소가 될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처음 했던 것도 벌써 수년이 흘렀다. 그 때는 단순히 씁쓸한 미래에 대한 예측 정도였는데 '새삼스럽지만' 이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불법 다운로드의 수준은 '불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문화로 확산되었으며,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최소 마지노선인 '죄책감'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여력 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이야기하자면 불법 다운로드가 합법 다운로드보다 쉽고,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지언정 이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최소한의 죄책감을 갖고 부끄러운 일인 줄만이라도 잊지 말자 라는 것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은 죄책감은 커녕, 내 하드에 얼마나 많은 영화파일을 갖고 있는지와 풀HD급 화질의 소스를 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최신영화 파일을 얻었는지가 영화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영화 본다는 사람들'에 나는 없다) 자랑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어쨋든 오늘 갑자기 이 새삼스런 이야기에 대해 말을 꺼내게 된 것은 불법다운로드를 하지 말자 라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극장 예술에서 파일형태의 데이터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가끔 이런 얘기를 꺼내면 혹자들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만 영화란 말이냐 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BD나 DVD 혹은 합법적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후자의 경우가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 전달 방법이 되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음반업계를 들 수 있을텐데, 최근 극소수만이 CD로 음악을 즐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mp3나 스트리밍으로 음악 자체를 즐기게 된 현상을 보자면 이것은 분명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CD가 아닌 몇백원에 다운받는 파일 형태를 선호하고 즐기기 때문에 뮤지션들은 CD형태로 제작을 할 때는 항상 모험을 해야하고, 어차피 몇백 k정도의 좋지 않은 음질과 이어폰으로 즐기게 될 음악에 사운드적인 퀄리티의 비중을 줄일 수 밖에는 없게 되었다. 현재 국내가요 시장을 보면 앨범 형태로 음반을 내기보다는 디지털 싱글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일일 차트 혹은 주간 차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수준까지 왔는데, 이것이 주객이 전도된 대표적인 안타까운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최신 트렌드와 기술,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그대로 남아있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예술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 왔으며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을 즐기는 소비자나 시장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가 본질을 해치는 수준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음반의 예를 계속 들어보자면 뮤지션들이 기본적으로 음반이나 앨범형태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토양과 이런 형태로 즐기는 층이 유지되는 시장에서 mp3나 스트리밍 등 형태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은 후자의 변화에 본질이 큰 영향을 받아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뒤틀림이 생겨버린 현실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감독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극장 개봉과 웹개봉을 동시에 진행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북미에서는 대여용 디스크 시장이 제법 활성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극장 상영을 걱정하고 영화가 자본에 완전히 잠식될 걱정을 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국내의 현실은 이런 암울한 미래가 (누군가에겐 더 편리한 미래겠지만) 머지 않아 찾아올 것만 같다. 영화를 만들 때 스케일이나 극장 환경을 고려하여 영상과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장면을 연출해 내는 것이 보통일텐데 이런 작품이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서 말그대로 '재생'되길 원하는 창작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역시 음반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나 휴대폰 환경에서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가까워져 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워너브라더스가 '다크 나이트'를 시작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최근 페이스북에 누구보다 재미를 느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주 흥미로운 뉴스였지만, 이런 흥미와 기대보다는 점점 극장 시대가 막을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시장과 문화의 변화에는 발맞춰 가야겠지만, 그것이 본질을 해칠 정도의 속도와 세기라면 조금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아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더더욱 데이터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의 음식들은 배달을 하지 않고 배달음식으로 먹게 된 들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데이터화 된 영화 예술은 영화라는 매체가 담고 있는 참 맛을 과연 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들에 있어서는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커피 맛이 쓰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픽사 이야기 (Pixar touch, 데이비드 A.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창조적 기업의 역사


평소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기업이나 조직 가운데 픽사(Pixar)를 가장 동경해 오고 있다. 그냥 좋아하는 걸로만 따지자면 당연히 지브리 스튜디오가 되었겠지만, 일하고 싶은 기업이라던가 동경해온 조직이라면 단연 픽사를 가장 먼저 꼽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일하고 싶은 직장이나 동경하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회사는 구글(Google)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구글보다 픽사에게서 더 많은 장점과 비전을 발견해 왔었다 (픽사와 구글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서울 어딘가에서 나 혼자 무의미한 고민 중 -_-;). 애니메이션을 몹시 사랑하는 이로서 픽사의 작품들은 가장 애니메이션다우면서도 동시에 이전에 애니메이션 작품이 넘지 못했던 경계와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시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를 극영화와 동일한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든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이렇게 동경해마지 않는 픽사 스튜디오에 대한 책 한 권을 몇 달 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픽사 이야기 (Pixar touch)'이다. 픽사를 단순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 뿐만 아니라 조직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컸다는 점에서, 그동안 픽사가 걸어온 길을 조금이나마 들어볼 수 있는 이 책은 몹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픽사라는 회사자체가 존재하기 이전에 핵심 인물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서부터 '라따뚜이' '업'에 이르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픽사의 결코 쉽지 만은 않았던 여정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이 가운데는 픽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계기나 초기 루카스 필름에 세들어 살던 시절,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의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거대 스튜디오인 디즈니와의 관계 속에서 '토이 스토리'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디즈니에서 독립해 자신들만의 성공을 맛보기까지의 일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평소에도 픽사에 많은 관심이 있던 터라 대부분의 사실 관계는 대충은 파악하고 있긴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픽사가 겪었던 시련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큰 것들이었으며, 하마터면 지금쯤 우리가 픽사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없었을 위기들도 참 많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세세하게 픽사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선택을 매번 해왔는지는 역사에 가까운 일이라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픽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벤처 기업 혹은 창조적인 것을 비전으로 하는 기업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꿈을 위해 모인 조직이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을 맞닥들였을 때 그때마다 어떠한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음 행동을 결정했는지를 보고 있으면, 이것이 단순히 픽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시에 픽사 역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 인한 인간적인 문제, 부의 재분배, 조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겪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었으며, 그들이 걸어온 길을 풀어놓은 이 책의 내용은 수많은 벤처기업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밖에는 없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회사생활을 오래하며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들을 비롯해 정말 많은 일들을 겪어 왔는데, 그 때마다 해왔던 나의 선택과 픽사의 선택을 비교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양 선택을 비교해볼 수는 있었지만, 이 책이 들려주고자 하는 바가 무슨 벤처기업 성공의 정답해설지가 아닌 것처럼, 결국 무슨 선택을 해왔는가 보다는 벽을 만났을 때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꿈을 잃지 않아왔는지가 더욱 흥미롭고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픽사가 걸어온 길은 단순히 꿈을 쫓는 순진한 이상가들의 길도 아니었고, 반대로 돈과 성공을 쫓아 앞만 보고 달려온 길도 아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결과가 말해주듯 이 모든 역경을 겪어내고 성공이라는 것을 얻었기에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일반적인 경제적 성공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후일담도 분명 가능했을 것이다. 요새 동료들과 우스게 소리로 하는 얘기가, 우리 회사도 책 한권 쓰면 좋을 것 같다라는 얘기를 가끔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성공해야 의미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도 비슷한 의미)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어느 회사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굴곡을 겪게 마련이고, 그 시련을 어떻게 잘 견뎌내고 그 가운데서도 구성원과 비전을 지켜내는가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 '픽사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점을 가장 많이 배우게 되었다. 픽사라는, 내가 가장 동경하는 회사가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설사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지금의 성공이 말해주듯 그들이 택해온 길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더 나아가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나와 내 회사의 미래와 꿈에 대해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준 책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단도직입,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포스터 맨 위에 문구처럼 올해의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현 감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어린 나이에 정말 멋진 데뷔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 등을 살펴보자면 더더욱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영화는 미스테리의 방식으로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기태의 아버지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데, 이 이후에도 이 미스테리 방식은 계속 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미스테리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시간의 재배열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 아, 한 편으론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수꾼'은 학창시절 그 누구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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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기태와 희준, 동윤, 이 세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에 '파수꾼'은 소년과 학교 그리고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흔히 가곤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표면적인 폭력과 사춘기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폭력을 권력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사실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파수꾼'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조금은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가 폭력을 그리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 보다 가해자(피해자인 동시에)를 묘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극중 기태(이제훈)는 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무리를 거느린 일종의 권력자다. 항상 같이 다니는 무리들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섭게 그리고 상대가 무력화되도록 겁을 주곤 하는 존재다. 그러던 기태가 어느 날 역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희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이 일로 인해 희준은 큰 상처를 입고 기태를 멀리하려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태가 사과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바로 폭력의 주체였던 기태조차 자신의 저지른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몰랐던 것은 물론, 결국 그 결과와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기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게 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비슷한 (혹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훈이 연기한 기태가 그 상황을 맞닥들이는 장면의 전율에 가까운 떨림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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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더 섬세함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묘사를 들 수 있을텐데, 일단은 기태와 희준, 동윤이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우정을 나눈 친구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기태 역시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이런 면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기태는 분명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추억과도 같다. 일단 영화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단서로 그의 아버지와 가족을 들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 이후 기태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궁금한 점들 혹은 의심되는 점들을 찾아가고 있다. 기태 아버지의 여정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속죄의 여정에 가깝다. 어머니의 부제와 존재는 했지만 곁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 이로 인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어야 했던 기태는 주목 받기 위한 삶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기태의 자리를 몇 번 그대로 포갠듯이 묘사한다. 영화의 시작, 위 층에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상처를 받은 기태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고, 동윤이는 같은 장소에서 기태와 기태 아버지를 모두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의 속죄의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속죄는 없다.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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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가장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에 대한 감정 묘사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세한 감정묘사가 단순히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세 친구의 우정과 그 헤어짐을 통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에 대한 물음이자, 아니 묻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던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주인공들의 대화를 보면 핵심이 없다. '뭐' '그래서' '그래서 왜' '뭐가 어쨌는데'라는 식의 서로를 방어하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식의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자아가 만들어져 가는 시기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내 마음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핵심없이 겉돌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서로 알지 못한 채 안타까운 해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파수꾼'은 세 친구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기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묻어나고 있다. 결국 희준과 동윤이 역시 기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과연 더 현명한 우정으로 이 간극을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영화가 이 안타까움을 그리는 라스트 씬에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영화적 기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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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보고나서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1. 기태 역의 이제훈씨를 비롯해 서준영, 박정민 이 세 사람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기태의 그 흔들리는 눈동자와 불안하고 당황한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2.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된 기차역이, 바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는 곳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엔딩 크래딧에 원능역이 있는 걸 보고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저 기차길에서는 불량한 형들을 비롯해 학생들이 자주 놀 던 곳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걸터 앉아 놀던 기억이 있어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기차길 바로 앞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메일 학교가려면 그 기차길을 지나야 했거든요.

3. 윤성현 감독과 세 배우의 앞날이 모두 너무나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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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동자 속 비밀


후안 호세 캄파넬라 감독의 작품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미카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과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 등이 후보에 올랐던 2010년 제 82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서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아르헨티나 영화이다. 2001년 전작 '신부의 아들 (El Hijo De La Novia)'로 그 해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던 후안 호세 캄파넬라 감독은,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를 통해 다시 한번 아르헨티나 영화를 세계 영화 팬들에게 강하게 인지시켰다 (참고로 '신부의 아들'에서 출연했던 리카도 다린이 이 작품에서도 주연으로 열연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아카데미 수상에 힘입어 워너브라더스에서 리메이크 제작을 결정한 상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5년 간의 시간에 대해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한 남녀의 사랑과 한 아름다운 여성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남녀의 사랑과 한 여성의 죽음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듣기 이전에, 아르헨티나가 겪었던 정치/사회적인 현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부터 1983년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군부가 힘을 잃을 때까지, 군부의 수장이었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를 중심으로 한 군부독재의 암울한 시기를 겪었었다. 이 군부독재 기간 동안 수많은 민간인들의 납치, 고문, 살해 등 인권유린이 발생하였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후안 호세 캄파넬라 감독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줄기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일반적인 경우 역사적 아픔을 그리는 방식에는 그 가운데 개인 사를 두어 극명하게 대비시키거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가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측면에서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조금 방향을 달리한다. 일단 한 젊다 못해 어린 신부의 잔인한 강간 살인 사건을 통한 전개가 그러하다. 이 사건을 통해 영화는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당시 암울했던 시대상을 조명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과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이라면 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노골적이지 않아도 시대의 아픔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영화의 시작부분, 그러니까 아직 그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 여성이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1976년 군부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여성 대통령 이사벨 데 페론을 빗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이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주인공 벤자민 에스포시토 (리카도 다린)가 이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당시의 암울하고, 정의의 편에 섰다면 억울할 수 밖에는 없었던 시대상을 비추어 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처럼 직접적인 정치적 사건에 가깝게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25년을 두고 전개되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아마도 아르헨티나 국민들이라면 더 깊게 다가올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영화의 또 다른 줄기인 에스포시토와 이레네의 러브 스토리 역시 이런 메시지와 크게 떨어져있지 않는다.





이 둘의 러브 스토리가 애닮은 것은 서로 간절히 원했으면서도 단 한 번 붙잡지 못했던 그 안타까움과 회환에서 오는 이유 때문인데, 이런 정서는 영화가 말하려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포스터 만으로 접했을 때에는 그저 애절한 러브 스토리인줄로만 알았던 터라, 두 남녀의 이야기가 예상 외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탓에 예상을 빗나가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영화를 모두 관람한 뒤 떠올려 보았을 때 시대의 아픔과 남녀의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를 모두 만족시켰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두 가지 정서가 사실은 하나의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결합시킨 이야기의 구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로서의 영화와 스릴러로서의 영화가 모두 만족스러운 또 다른 영화적 장치 중 하나라면,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화의 구성 방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이 플래시백 방식을 중간중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데, 25년이라는 세월을 모두 그럴싸하게 연기한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은 이 같은 플래시백 방식이 어색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과거의 이야기가 실제 과거사인지 아니면 현재의 에스포시토가 써 내려간 소설의 일부분인지 명확하지 않은 점도, 이 영화에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점을 모두 간과한다 하더라도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영화적으로 참 근사한 작품이다. 애잔한 영화의 음악을 비롯해, 구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영상과 크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은근한 빛을 다루는 방식은, 영화가 담고 있는 애절한 멜로의 깊은 향과 더불어 그 뒤에 묵묵히 버티고 서 있는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담겨 있다.

DVD Menu





DVD Quality

색감과 영상에 상당히 신경을 쓴 작품답게 2.35:1 화면 비의 DVD 화질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이다. 가끔 이 영화처럼 장면 전환에 색감 변화를 민감하게 주는 작품의 경우, DVD로 출시되었을 때 화질 표현이 오버스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부족하거나 더함 없이 딱 적절한 표현력을 담고 있어, DVD 화질로서는 매우 우수한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클로즈업 장면에서의 디테일 수준도 상당한 편이며, 아웃 포커싱을 이용한 장면이 많은데 이 장면에서의 대비도 선명한 편이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도 준수한 편이다. 대사 위주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영화 음악이 삽입된 장면이나 축구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장면에서는 사운드 측면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부가영상으로 후안 호세 캄파넬라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쉴 세 없이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덕에 영화에 대한 재미가 배가 되는 음성해설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기술적으로 카메라 구도와 캐릭터들을 배치한 것에 대한 의미 라던지, 영화를 볼 때는 미처 다 확인할 수 없었던 디테일한 부분까지 들려주고 있어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보길 권하고픈 음성해설이다




'Behind the sceens of The Secret in their eyes'에서는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으며, 짧지만 촬영장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Casting The Secret in their eyes'에서는 주요 배역을 제외한 조연 캐릭터들의 캐스팅 관련해 미리 연기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실제 장면과 똑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배경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제한적인 메시지에도 충실하지만, 그와 더불어 멜로와 스릴러라는 보편적인 정서에도 부족함이 없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참 근사한 영화였다'라는 감상과 함께 쉽게 말하기 어려운 아련함이 가슴에 남는,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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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2010)
코엔 형제가 말하는 진정한 용기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진정한 용기 (True Grit, 1969)'와 찰스 포티스의 소설 'True Grit, 1968'을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True Grit (국내 개봉명 : 더 브레이브)'은 서부 영화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그들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또 다른 묵직한 서부영화인 동시에 '시리어스 맨' 이나 '번 애프터 리딩'에서 보여주었던 재기 넘치는 '코엔 형제스러움'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1880년대를 배경으로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는 당찬 14살 소녀 매티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티가 여정을 위해 만나게 되는 루스터 카그번 (제프 브리지스)과 라 뷔프 (맷 데이먼)의 캐릭터가 더해져, 간단하지만 힘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서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용기 (True Grit)'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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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는 처음부터 아주 강인하고 용기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할 때, 글도 못 읽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밖에는 없어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이유를 대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지는 매티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더라도 나서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매티가 만나게 되는 카그번과 라 뷔프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지만, 무언가 하나 씩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카그번은 배짱있고 노련한 보안관이지만 정의보다는 돈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고, 너무 이런 생활을 오래 한 나머지 불한당 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져 버렸을 정도다. 그에 반해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는 역시 레인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현상금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카그번과 협력 했을 뿐 그 이상의 목적은 없는 이다. 이런 이들이 매티를 만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확실한 건 이 작품의 전개에 있어 복수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영화는 마침내 매티가 아버지를 죽인 톰 채니 (조쉬 브롤린)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마치 우연처럼 그리는 한 편, 이 후에도 이들의 조우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카그번과 라 뷔프의 행동에 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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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찌들 대로 찌든 캐릭터와 냉정하고 차가운 캐릭터가 뚜렷한 목적성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에 의해 동화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코엔 형제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동화의 과정을 별로 자극적이지도, 더나아가 심심할 정도로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만약 카그번과 라 뷔프가 동화되는 과정을 어떤 사건을 두고 감정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것으로 연출하거나, 매티의 복수에 촛점을 맞춰 톰 채니와의 긴장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더 브레이브'는 오락적으로는 더 효과 높은 작품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묵직한 주제를 뒤에 탄탄히 받쳐두고는 마치 이 주제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믿는 것처럼, 별다른 수식어 없이 진중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화술 덕에 영화의 마지막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들려주는 후일담은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찬송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종교적이기까지한 무게를 전한다. 후일담을 들려줄 때도 영화는 절대 신파나 감정의 극대화를 노리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가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용기란 어떤 수식어나 포장도 필요 없는, 강요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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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연을 맡은 매티 로스 역의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실제로도 14살의 소녀인데, 제프 브리지스, 조쉬 브롤린, 맷 데이먼을 리드할 정도로 당찬 연기가 인상적이더군요.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여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어 자리를 하기도 했는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라 할 수 있겠네요.

2. 럭키 네드를 연기한 베리 패퍼도 인상적이었는데, 항상 전쟁 영화나 범죄 영화 등에서 우수한 병사나 요원 중 하나로 나온 적은 많았지만, 이번 처럼 무리의 우두머리로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했다는 ㅎ

3. 조쉬 브롤린은 '환상의 그대'에 이어 연속으로 찌질한 연기에도 재능이 있음을 이번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한 동안 조쉬 브롤린 하면 날카롭고 좀 무섭기까지한 이미지였는데, 이러다가 너무 쉬워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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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항상 그랬다. 그의 이름을 알게 해주었던 영화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이 그랬고, 얼마전 왕년의 스타 미키 루크를 다시금 끌어올린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연출할 작품인 '로보캅'과 '엑스맨 : 울버린 2'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애로노프스키는 항상 대상을 어떤 상황에 던져 두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심리와 신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었다. 극한이라는 것은 언제나 완벽이라는 것과 강박이라는 것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런 것에 관심이 많던 애로노프스키에게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은 언젠가는 영화화 해야 했을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애로노프스키는 백조의 호수를 상당히 늦게 접하게 되어, 한 명의 배우가 백조와 흑조의 두 가지 자아를 연기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감독 스스로도 정작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에 자세한 내용은 뒤늦게 알았던 터인지, '블랙 스완'에서는 누구나 알법한 이 유명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두 차례나 거듭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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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발레단의 무용수 니나 (나탈리 포트만)는 누구보다 완벽한 안무와 실력을 갖고 있는 발레리나지만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발레단의 새해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단장인 토마스 (뱅상 카셀)로 부터 듣는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보게 된 단장은 니나를 주인공인 백조 여왕으로 캐스팅하고, 그녀는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에 몰입 또 몰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흑조를 더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과 같은 발레리나로서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압박, 그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빼았겨 버린 전 백조 여왕인 베스 (위노나 라이더)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자신이 갖지 못한 매력을 갖고 있는 릴리 (밀라 쿠니스)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강박까지, 이 모든 것들을 여린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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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블랙 스완'은 강박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물론 이 강박은 완벽하기 위함 때문이다. 즉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니나는 (사실 이 작품은 강박 그 자체에 대한 텍스트에 더 가깝기 때문에, 본래 니나가 완벽주의자였는지 아니면 정황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해 완벽해야만 할 상황에 놓인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분위기로만 보자면 영화 속 니나는 둘 다인것 같지만) 지나친 강박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와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자아분열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로 인해 니나는 엄마와 릴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 어디까지가 니나의 환상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허상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근접한 카메라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하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전하게 니나의 심리와 결합되어 움직인다. 여기에 동참한다면 관객 역시 니나가 겪는 불안한 심리와 강박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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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니나의 강박을 그리 되, 심리적인 면에만 집중하거나 관객에게 보여지는 측면에 있어서는 덜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그가 앞으로 맡게 될 '로보캅'과 '울버린 2'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같은 심리변화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갖고 있는 감독이다. '블랙 스완'에서는 이런 불안함과 강박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정도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서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그야말로 그 강도와 속도가 심장을 뚫고 나올 정도로 폭발한다. 사실 나는 바로 극한까지 몰고가는 영화의 이 속도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 강도에 흠뻑 반했다. 사실 '블랙 스완'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독처럼 이 이야기를 잘 몰랐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이야기를 겉핥기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블랙 스완'의 몰입감은 최고수준이다. 또한 '블랙 스완'은 완벽한 '백조의 호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백조와 흑조 연기에 모두 완벽해 질 수록 영화는 점점 더 '백조의 호수'에 가까워만 진다.

다시 매력을 느꼈던 그 '극한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블랙 스완'은 주인공인 니나가 극심한 자아분열을 겪게 되면서 부터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강도를 계속 높여 끝에 가서는 마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와 신지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극점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런 시각적인 표현 방법과 클라이맥스의 속도 그리고 이야기의 세기는 분명 과잉이다. 과잉이라는 것은 본래의 그릇을 넘어 넘쳐난다는 것인데, '블랙 스완'은 이 넘쳐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넘쳐나기를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잉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감정선을 잃지 않은 채 과잉의 끝까지 극한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이 극한을 영화와 함께 경험했다. 진짜 얼마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극중 주인공과 같은 박동으로 뛰고, 허기지고 힘이 들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블랙 스완'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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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동년배 여자 연기자들보다 항상 한 발 앞서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블랙 스완'에서 그녀의 연기는 극한까지 몰고간 감독 애로노프스키처럼 극한까지 표현해 내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작품이 끝난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 작품은 시각적인 표현이 지금처럼 없었더라도 아주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만큼이나 무섭도록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뱅상 카셀의 경우, 아주 오래 전 '증오'부터 은근히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나에게 있어 뱅상 카셀은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이 아니라 그냥 오롯이 뱅상 카셀이다), 오랜만에 깊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다. 특히 뱅상 카셀이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었나? 라고 느낄 정도로 세련된 발레단 단장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확실히 얼굴 속에 독기를 가득 담고 있는 뱅상 카셀의 캐스팅은 나탈리 포트만 만큼이나 완벽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했던 '일라이'에서는 비쥬얼 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과는 달리, 밀라 쿠니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릴리' 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데에 아마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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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아주 불안하고 관객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자아분열의 심리묘사를 다룬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은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기가 빨려버린 것만 같은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또 한 번 이 극한의 예술을 한 번 더 맛보고 싶다.


1. 예전에는 그냥 흘려보거나 지나쳤던 발레 '백조의 호수'를 '블랙 스완'을 보고나니 너무도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갖고 있는 DVD들 중에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타이틀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2. 잔잔한 것만큼이나 극한에 대한 도전적인 영화를 즐기는 저에게 있어서 '블랙 스완'은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손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3. 글을 쓰며 영화를 한 번 더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오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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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Late Autumn, 2011)
유령과도 같은 하루


이만희 감독의 동명작품을 리메이크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한국인 훈(현빈)과 중국인 애나(탕웨이)가 미국 시애틀에서 만난 하루를 담은 작품이다. 사실 리메이크라고는 하지만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현재는 필름 프린트가 존재하지 않아 본 사람들 보다는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욱 많기 때문에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도 싶지만, 영화 감독들 및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태용 감독에게는 오히려 더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 원작을 본 적은 없고 단지 이 작품이 갖고 있다던 이미지와 정서만 전해 들은 것이 고작이라, 오히려 오롯이 김태용 감독의 작품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래서였을까. '만추'는 탕웨이와 현빈이라는 배우의 옷을 입은 김태용 감독의 또 다른 하루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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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교도소에서 특별히 하루 외출을 허가받은 애나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훈을 만나게 된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그리고 그녀가 처한 현실 때문에 애나는 누군가와의 새로운 만남이나 인연을 굳이 만들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난 훈의 적극적인 행동에 아주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훈 역시 자신이 현재 처한 도망자 신세와 직업적인 면에서 접근했던 것과는 달리 점점 애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결국 훈과 애나가 함께 보내게 되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는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마음의 동요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만추'의 주인공은 탕웨이가 연기한 애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대부분의 심리 묘사가 그녀 위주로 진행되며 현빈이 연기한 훈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애나의 하루를 함께하는 외부 작용으로서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애나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이 담긴 멜로였음에도), 오히려 후반부 훈의 개인적인 이야기 부분은 조금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차라리 훈의 이야기를 좀 더 쳐냈더라면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너무 친절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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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에게 있어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하루는, 예상치 않았던 훈의 등장으로 인해 판타지스러운 혹은 유령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서로 자신의 말이 아닌 영어로 대화하는 이 둘의 관계는, 각자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점에서 제 3의 매개체로 이어진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애나에게 있어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녀의 과거는 중국어가 지배하는 세계고, 훈에게 있어 누님들을 만나 유흥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일들은 한국어가 지배하는 세계다. 애나와 훈은 하루라는 짧은 시간 탓도 있지만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의 영역에서 서로의 세계는 잊은 채 조우하려고 한다. 그래서 제 3의 언어와 공간이라는 조건은 이들에게 미묘하지만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겠다 싶은(특히 애나의 입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 훈이라면 이미 많은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미약한 가능성, 혹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아주 조금의 기대. 이런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영화는 느리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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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성과 더불어 김태용 감독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역시 놀이공원에서 벌어진 판타지 시퀀스다. 이미 전작 '가족의 탄생'을 통해 이런 공중부양 판타지를 보여주었던 김태용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을, 즉 두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감성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 시퀀스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의 판타지가 아니라 그 안에 외국인 두 남녀의 몸짓과 거리 (서로가 다른 속도와 보폭으로 걷기에 쉽게 만나기 어려운)의 묘사 등을 통해 애나와 훈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퀀스를 역시나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약간 길게 느껴지는 분량을 떠나서, 조금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연극 시퀀스의 감정이 오히려 주인공들의 감정보다 더 과잉이 되어 있어, 시작은 주인공들의 감성에서 시작했지만 시퀀스가 끝날 때에는 그냥 연극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이 내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아주 천천히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시퀀스는 아주 마음에 드는 부분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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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탕웨이라는 배우의 얼굴은 여러가지 표정을 지을 때보다 절제하고 있을 때 훨씬 진면목이 드러나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추'에서는 특히 이런 탕웨이 만의 매력이 흠뻑 담겨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특히 화장을 했을 때보다 거의 안했을 때가 훨씬 매력적인 그녀의 얼굴의 오목조목함이 잘 담겨 있고,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안개와 잘 어울려 하나의 그림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빈의 경우 무엇보다 '훈'이라는 캐릭터가 어색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시크릿가든을 보지 않아서 몰입하는데에 아무 걸림돌이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유령같은 하루를 담아낸 것에 만족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내려고 했던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그 정도에서 그쳤기에 전반적으로 인상 깊은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1. 이 작품에 일등공신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현빈이 입고 나온 극중 코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묘한 주머니 위치가 만들어낸 미장센이란! 만약 보통 코트를 입고 나와서 일반적인 모양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훈이었다면, 분명 이 정도로 각인 시키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2. 참고로 극중 훈과 식당에서 설전을 벌였던 남자배우는 한국인 배우 김준성 씨네요. 반응들을 보니 이 분 밉다는 분들 많던데, 그 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반증일듯;

3. 시애틀 관광코스에 있던 오리버스(?)는 한 번 타보고 싶더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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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애니+다큐멘터리

2008년 칸 영화제가 주목하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전미 비평가 협회 작품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 참고로 수상은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일본 영화 ‘굿바이’였다 - 등 그 해 영화 팬들에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Vals Im Bashir, 2008)’ 이었다. 이 작품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중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벌어졌던 학살사건에 대해, 감독인 아리 폴만의 자전적인 시점으로 이야기 한다.





이 작품이 영화적은 물론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당시 발생한 사건인데, 팔랑헤 (기독교 민병대) 당 지도자이자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시르 제마엘이 취임을 앞두고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 당하자 팔레스타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팔랑헤 당원들이 테러범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에서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그 수는 무려 800 ~ 3,000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는 부녀자와 어린아이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바로 이 학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사건의 영화화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수백 명이 사망한 끔찍한 학살이었음에도 결국 어느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은 이 작품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이 학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조명탄을 쏘며 주변을 밝게 해 팔랑헤 민병대들이 학살하는 것을 방조했다는 주장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그를 2001년 희생자 유가족들이 벨기에 법정에 고소했지만, 벨기에 법정은 원고 가운데 벨기에 국적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 결국 이 학살 사건으로 인해 처벌 받은 이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이후 2002년 1월 24일, 학살의 주동자였던 민병대 사령관 엘리 호베이카는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을 당하게 된다.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 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당사자(가해자 혹은 피해자)와 제3자 중 누구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느냐는 점을 들 수 있을 텐데, ‘바시르와 왈츠를’은 당시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 중 한 명으로 많은 것을 목격했던 감독 아리 폴만 본인의 기억과 경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작품에 그대로 나와 있는 것처럼, 아리 폴만 본인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많은 기억이 지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당시 함께 참전했던 동료들과 이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건을 다시 더듬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은 영화의 전개방식은, 이 사건과 관련된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에게 또 한 번 논란거리를 던진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인인 아리 폴만의 입장은 한 편으론 배신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땐 당시 이스라엘 군의 범죄를 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은 아리 폴만의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리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논란거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는 제 3자라 할 수 있는 양국 외에 관객들이 작품에 흥미를 갖고 빠져들게 될 만큼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영리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아리 폴만은 본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으나 이 작품은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애니메이션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개를 총으로 쏴 죽였던 것을 비롯해 자신에게 끔찍한 경험이었던 장면들을 실사로 촬영할 수는 없었던 개인적인 이유를 비롯해, 몇몇 상상과 꿈과 같은 장면들을 실사화 하기 어려웠던 - 예산 문제 역시 - 점도 있었다. 또한 본인 스스로도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정말 지루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워낙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터라 평범한 다큐멘터리였다면 더더욱 다가가기 어렵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갖게 된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아마도 영화의 맨 마지막 차마 보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했을 때 그 충격이 다른 어떤 다큐나 극 영화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구성적인 면 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실 처음 ‘바시르와 왈츠를’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작품인 ‘웨이킹 라이프’나 ‘스캐너 다클리’ 등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었던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촬영 영상 위에 애니메이션을 입힌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백지에서부터 시작한 완벽한 애니메이션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장면을 대부분 실제로 촬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림을 새로 그렸다는 점일 텐데, 이것이 로토스코핑 기법과 같은 효과를 내긴 했지만 이것과는 또 다른 미묘한 감성과 속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제 촬영 본을 기본으로 애니메이션화 한 것 외에도, 삽화를 디지털화 하여 각 그림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해 한 뒤 다시 결합하는 방식 (기술)을 도입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결국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은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그 가운데 있었던 한 개인의 기억과 망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와 기억, 이 두 가지 상대적인 개념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두 가지 장르의 결합처럼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와 망각의 교차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Blu-ray 메뉴






블루레이 메뉴 가운데 각각의 메뉴 선택 시 표시되는 노란 점의 경우, 영화 속 등장하는 노란색 조명탄의 불빛이 연상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답게 탁월한 화질을 선보인다.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물씬 나는 거친 영상을 만날 수 있는 동시에, 칼 같은 선예도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이 역시 충족시켜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인물이나 움직이는 사물의 경우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분리하여 다시 결합한 결과물로서 각각의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배경의 경우 이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일반적인 배경 묘사보다는 훨씬 외곽선의 표현이 강한 편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면 블루레이로서의 출시가 꼭 필요하지는 않았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바시르와 왈츠를’은 많은 장면을 이미지와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음으로 블루레이의 장점이 발휘되는 부분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깊은 음영의 표현은 블루레이의 고화질을 통해 좀 더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돌비 TrueHD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우수한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탱크의 발포음, 여러 명의 총격 시 발생하는 효과음과 중간중간 삽입된 영화음악의 전달까지. 대사 위주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특히 영화음악이 삽입된 장면에서 좀 더 강렬한 음장감을 확인해볼 수 있으며 블루레이 사운드를 좀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목소리 연기는 직접적인 출연이나 본인을 밝히기 꺼려한 이들을 제외하면 감독인 아리 폴만을 비롯해 대부분 본인이 직접 연기하고 있는데, 이들의 음성 역시 뭉개짐 없이 선명하게 전달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바시르와 왈츠를’ 블루레이에는 DVD에는 수록되지 않은 아리 폴만 감독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자체가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니, 이 음성해설 트랙만큼 많은 정보를 담은 부가영상은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음성해설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와 배경이 되는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극 중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인물들에 대한 뒷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당시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담 외에 애니메이션화로 인한 기술적, 연출의 변 또한 만나볼 수 있다.




감독 인터뷰와 Q&A 질의 응답에서는 대부분 영화의 특별한 형식적인 면에 대한 부가 설명과 실제 겪었던 자신의 경험에 대해,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관해 들려준다.




제작과정과 애니매틱스에서는 실제 촬영한 영상과 뼈대가 된 애니매틱스 영상을 서로 비교하여 어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화 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또한 인물의 얼굴을 표현할 때 15개의 큰 부분으로 나눈 뒤 다시 120개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작업한 과정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게도 극 영화와 같은 현실감을 부여하려 노력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었으며, 모든 부가영상은 아쉽지만 SD영상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인 동시에, 개인적인 전쟁의 경험과 우연히 알게 된 망각의 경험에서 시작되고 또 전개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와 같은 작품이 국내에서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될 수 있다는 것에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반갑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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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 동 (Re-encounter, 2010)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


민용근 감독의 영화 '혜화, 동'은 스물 셋 혜화 (유다인)의 지난 겨울 이야기 그리고 아직 겨울인 혜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등학생이었던 혜화와 한수는 서로 사랑했고 혜화는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무렵 한수는 말도 없이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혜화는 아이를 잃은 채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 혜화는 동물병원에서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던 중, 다시 나타난 한수에게 아이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다시 한번 혜화의 삶은 크게 요동친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데에도 '다시 (Re-encounter)'를 여러 번 사용하게 된 것처럼, '혜화, 동'은 다시 겪게 되는 아니 겪어야만 하는 풀지 못한 미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5년이 흐른 뒤 혜화의 모습은 다시 금 평온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냥 터지지 않은 상처일 뿐, 치료 후 아물지 않은 상처와는 다르다. 그냥 시간 속에 꾹꾹 눌러담아 두었던 과거의 일들은 5년이 지난 뒤 다시 나타난 한수로 인해 다시 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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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앉고 있는 혜화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특별한 구분 없이 넘나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의 장면과 현재의 장면이 영화적으로 별다른 장벽이나 구분없이 섞여 놓여있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혜화의 과거의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은 흘러갔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혜화의 시간은 그대로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동일선상에서 두고 풀어가지만, 영화 속 혜화와 한수는 현재를 위해 과거로 계속 돌아가려고 한다. 혹은 치유되지 않은 과거는 무시한 채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한수는 혜화에게 미안한 마음과 혜화가 앉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식을 꺼내온다 (이 방식은 영화의 마지막 일종의 반전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 반전이 극적인 요소를 주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반전의 연관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혜화는 한수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의 상처를 다른 것들을 통해 잊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기 보다는 다른 것들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것이 치유된다고 믿었다. 자신의 아이의 빈자리는 일하는 동물병원 원장의 아이에게서 채우고, 한수의 빈자리는 동물병원 원장과의 관계에서 채워가고 있었고, 어린 시절 키웠던 개 '혜수'와 새끼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과 더 나아가서는 이 모든 것을 보내야만 했던 빈자리를, 집을 잃고 상처받고 버려진 개들을 구조해 보살피는 것에서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혜화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듯 했던 존재들은 모두 혜화가 아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와 맞물려 한수가 나타나면서 혜화는 결국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니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와 직면하려고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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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으로 잠시나마 직면하고서야 혜화는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혜화가 갖고 있는 상처는 치유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그 앞에 서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혜화는 고민 끝에 이 모든 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을 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능한 선택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 있다. 혜화의 선택을 통해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길었던 겨울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혜화는 그걸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사실 고민은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던 선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은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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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중 삽입되고 엔딩 크래딧에도 흐르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처음 들었을 때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가 혜화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과 곡의 가사가 잘 맞아 떨어지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 곡의 가사도 잘 보면 희망적이거나 하기보다는 안되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렇다고 담담히 인정하는 것에 가까우니까요.

2. 유다인 씨의 연기는 역시 참 좋았습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할 때 그녀의 얼굴은 그저 평범하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백지에 점점 무언가가 써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여러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 눈망울의 깊이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3. '혜화, 동'은 반려동물에 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혜수의 딸로 여겨지는 그 강아지가 철거된 집에 홀연히 나타나는 그 장면의 컷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모노노케 히메'에서 시시가미가 등장할 때처럼 정적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확실히 동물의 눈빛이 주는 특별함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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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100번째 영화 '1911' (신해혁명)
(Jackie Chan's 100th Movie) 


성룡의 100번째 영화의 포스터가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신해혁명 영화화한 '1911'이 그 작품인데, 성룡의 100번째 작품과 신해혁명의 100주년이 겹쳐져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국내를 비롯한 중국 외 해외 팬들에게는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이룬 다룬 작품이라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성룡 형님의 100번째 작품이라는 그 한 줄의 문구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텐데, 이런저런 수식어를 가져오지 않아도 'Jackie Chan's 100th Movie'라는 저 문구가 얼마나 눈물나도록 멋스러운지, 그의 오랜 팬으로서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공개되기 전 팬들 사이에서는 제작 계획을 밝힌 바 있는 '용형호제 3'가 성룡의 100번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하곤 했었는데, '용형호제 3'가 되었어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성룡은 좀 더 자신의 100번째 작품에 무게감과 의미를 더 두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에 공개된 포스터 속 성룡의 모습은 그 동안 성룡하면 쉽게 떠오르던 밝고 유쾌한 얼굴은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이런 경향은 이미 최근작 '베스트 키드'나 '대병소장'을 통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성룡은 장리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을 맡고 있으며 (General Director), 아시아영화로는 최초로 중국와 미국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작품이 될 예정이다. 이 작품에는 성룡 외에 '적인걸'에 출연했던 여배우 이빙빙과 '검우강호'에 출연했던 왕학기 그리고 '색,계'와 '24시티'등에 출연했던 조안 첸이 출연하고 있는데, 참고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는 장쯔이 역시 캐스팅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아무래도 그녀는 최종적으로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올해 10월 중국와 미국에서 동시 개봉 예정이며, 아직까지 국내개봉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국내에서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성룡 형님의 100번째 영화라는 점도 너무 감동스러웠지만 저 포스터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더라 ㅠㅠ 내 인생 최고의 배우 성룡은 과연 100번째 영화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어떤 표정과 연기를 보여줄까. 아직은 멀기만한 올 10월이 너무도 기다려진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회상


내게 있어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억하는 것 만큼 아련한 작품은 사실 아니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사실 그다지 영화를 많이 보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도 있고, 그냥 단편적인 기억에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스~'로만 기억되는 러브 스토리로만 기억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더불어 이와이 슌지 보다는 이누도 잇신에 감성에 더 가까운 편이었고 그의 작품들 가운데도 '러브레터' 보다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더 좋아하는 부류였다. 이렇듯 개인적으로는 너무 일반적이리만큼 유명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러브레터'가 며칠, 아니 몇 달 전부터 몹시 아련해져오기 시작했다. 특히 너무나도 익숙한 사운드트랙인 'A Winter Story'의 피아노 선율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맴돌았고, 이런 앓이는 결국 아주 예전에 구입하였지만 거의 꺼내어 보지 않았던 DVD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꺼내어 보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러브레터'는 확실히 달랐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너무나도 유명해서 굳이 꺼내어 듣게 되지 않는 뮤지션의 최고 히트곡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도 와닿으면서 '그래, 역시 명곡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왜 '러브레터'인가 라는 것에 대해 새삼 아니 비로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조금 특별한 구조로 풀어놓은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게 된 '러브레터'는 그것 보다는 결국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와이 슌지가 말하는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 직접적이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인데, 예전에는 이 비유가 그냥 겉도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그 비유가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질 만큼, 체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극 중 후지이 이츠키는 오해로 인한 와타나베 히로코의 편지를 받고서야 자신의 시간 속에 동명이인이었던 남자아이 후지이 이츠키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고, 그와 연관된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놓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소녀 시절의 기억들도 떠올리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또 한 명의 후지이 이츠키와 공유한 시간들을 기억해 내게 된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어린 시절 자신과도 같은 소녀들이 전해주는 도서대출카드에 숨겨진 진실은 이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에 확실한 마무리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이 마지막이 없었더라도 이미 후지이 이츠키가 와타나베 히로코를 통해 겪게 되는 회상의 일들은, 그것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쓰~'의 정서를 100%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니 못했던 것을 이번에 보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는 수많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들이 모두 잊혀지고도 남을 만큼 깊은 것이었으며, '잘 지내시나요~ 나는 잘 지내요~' 라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그 때보다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달까. 그리고 '나는 잘 지내요'라는 말이 얼마나 하기 힘든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아무 이유없이 간절했던 '러브레터'를 비로소 보고 나니, 무언가 큰 일을 치른 것만 같은 감흥마저 들었다. 10년 만에 다시 본 '러브레터'. 과연 또 한 번의 10년 뒤에 다시 보게 된 다면 또 어떨까. 그 때는 '나는 잘 지내요'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달을 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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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Tangled, 2010)
디즈니가 가장 자신있는 마법의 세계


애니메이션을 극 영화보다 덜 사랑하지 않고, 디즈니의 최근 행보에 적극적인 환영을 보내는 입장이었음에도 사실 신작 '라푼젤 (Tangeld)'은 처음부터 기대작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소녀와 공주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오해 때문이었는데 (그런데 따지고보면 '라푼젤'은 공주이야기가 맞고, 이런 지나친 소녀 이야기를 사실 싫어하지도 않는다는 아이러니), 시사회를 비롯해 들려온 주변의 평가는 그야말로 호평 일색이었다. 다른 사람의 평에 쉽게 현혹되는 편은 아니지만, '이건 볼 필요도 없어'라는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기에, 갑자기 커진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찾게 되었고 결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라푼젤'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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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가 그러했고, 디즈니의 전작 '마법에 걸린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라푼젤'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부담을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아낸 가장 좋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라푼젤'에 와서야 '디즈니는 진작 이래야했다'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것이, 디즈니는 이 정도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었지만 근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었었다. '볼트'의 경우 디즈니가 전통적으로 지향하던 바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작품이었다면 극영화였던 '마법의 걸린 사랑'이야말로, '이것이 디즈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서 선보인 신작 '라푼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디즈니의 노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이 바로 '라푼젤'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말해 픽사가 주도권을 쥐게 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픽사를 따라가려는 시도가 아닌 (사실 이제는 디즈니와 픽사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라푼젤'만 해도 executive producer로 픽사의 수장인 존 라세터가 참여하고 있으며, 아무리 전세가 역전되었다고는 하나 디즈니가 픽사를 따라간다는 것은 픽사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개발하는 길을 택했고, 그리하여 가장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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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디즈니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생각해볼 것도 없이 뮤지컬 장르를 배경으로 한 유치하리 만큼 순수한 세계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의 전성기에는 누가 뭐래도 뮤지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라푼젤'에서 디즈니는 '마법에 걸린 사랑'에 이어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인 환상적인 뮤지컬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확실히 예전보다 뮤지컬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감안한다면 변화를 걱정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이 마법의 주문은 21세기에도 다시 통한다는 것을 이 작품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3D라는 기술을 적극 도입하기는 했지만 '라푼젤'은 어디까지나 클래식한 디즈니의 전형적 애니메이션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요즘같이 다양하고 소박한 소재들이 넘쳐나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왕국과 공주, 마녀와 공주를 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구조는, 영화를 보지 않고 줄거리만 본다면 굳이 작품을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단순한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3D 효과를 비롯한 기술적 발전을 과도하게 발견할 수도 없지만, '라푼젤'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즉, '라푼젤'은 본연의 것에 가장 충실하되 그 주변의 부수적인 것들이 중심을 해치지 않을 정도에서 최대치를 제공하고 있는 아름다운 균형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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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디즈니의 기술적 진보에 사뭇 놀라기도 했었다.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의 질감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분명 최고의 기술 수준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 기술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물과 피부 그리고 털의 묘사 장면에서도 한 차원 발전한 디즈니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댐이 부서져 물이 쏟아지고, 그 물에 젖어 동굴 안에 갇히게 된 캐릭터들의 묘사 장면은 아마도 애니메이터들이 가장 뿌듯해 할만한 시퀀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3D 아이맥스의 경우도 기술과 작품이 가장 조화로운 균형을 이룬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3D 입체효과를 관객들로 하여금 꼭 인지시키기 위해 부담스러운 시퀀스를 넣지 않고도 관객들이 '황홀한 3D 경험을 했다'라고 느낄 만큼 균형을 잘 맞추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정말 오랜만에 3D 영화를 보면서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느낀 장면이 있었을 만큼 (실제로 최근 3D 영화 관람 분위기와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관객들이 스크린 속으로 손을 뻗기도 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입체효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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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린 시절 보았던 디즈니 작품들을 어른이 되어서 떠올려 보았을 때 가장 문제라고, 특히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은 디즈니과 권선징악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다. 권선징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디즈니가 악당을 묘사하는 방식 때문이었는데,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주인공이고 우락부락하고 덩치 큰 사라은 악당이거나 공룡이 나오는 작품을 예로 들면 초식공룡은 착하고 육식공룡은 나쁘다 라는 식의 겉모습과 외모만을 통한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주기에 교육적으로는 좋지 못한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디즈니의 전통적인 방식을 보기 좋게 꼬집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드림웍스의 '슈렉' 이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이고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슈렉 1편의 결말에서 디즈니였다면 피오나가 마법에 풀려 다시 아름다운 외모의 공주로 돌아가는 것이 '행복한'이야기였을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라푼젤'은 이 같은 전통적인 선입견에서 긍정적으로 변화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극 중반 악당처럼 험상굳은 도둑들이 잔뜩 등장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외모의 선입견으로 한정 짓지 않고 그 나름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는 후반부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역할을 부여받아 중요한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냥 거친 외모와 덩치의 캐릭터들이 사실 나쁘지 만은 않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각각의 꿈이 있다는 것을 초반에 복선으로 배치한 뒤 후반부에 이들이 그 꿈으로 인해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또 한 명의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마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미묘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저 착한 주인공을 유혹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할 만큼 (사실은 그다지 동정할 만한 부분이 없었음에도), 그녀가 퇴장할 때 전통적인 권선징악 구조의 통쾌함이 들지 않았다. 이건 부연설명으로도 썼던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를 확인해보면 동정할 만한 점이 없었음에도 악당이 악당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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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은 마지막에 가서도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 놓는다. '이러이러하여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에 대해 굳이 변화하려 하지 않고, 나레이션을 통해 '여러분들도 다들 예상하는 바와 같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이것이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라푼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뻔한 이야기에 감동받고 3D아이맥스의 효과도 좋았던 점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 디즈니가 가장 디즈니다운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디즈니가 어느 날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디즈니의 클래식한 세계를 좋아하지 않던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는 '라푼젤'의 경우처럼 클래식한 디즈니의 방식을 조금씩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디즈니가 자신들의 브랜드를 더 확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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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컬 시퀀스 때문이라도 '라푼젤'은 한 번 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네요. 3D 아이맥스 자막 버전으로 보았는데, 더빙 버전이 궁금하기도 하구요.

2. 주인공 '라푼젤'의 목소리 연기와 극 중 노래를 가수 출신인 맨디 무어가 담당하고 있는데, 알고 봤음에도 그녀의 목소리와 잘 매치가 되질 않더군요. 그 만큼 라푼젤의 목소리 연기가 훌륭했다는 이야기겠지요. 노래 역시 만족스러웠구요.

3. 마이클 베이 영화를 살짝 패러디한 시퀀스도 재미있었습니다. 뭐 재미를 위해 한 장면 정도 넣은 것 같아 보이더군요 ㅋ

4. 개인적으로 이런 애니메이션 여자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라푼젤은 디테일이나 성격이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 동그란 볼의 디테일에 빠졌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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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세상의 모든 방관자들에게…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장철수 감독의 2010년 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른바 '김기덕의 아이들'로 불리는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도 단연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촬영을 마치고 나서 개봉여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 제 63회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제 14회 부천 국제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작품이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하 김복남)'은 개봉 당시에도 조금씩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었지만, 대체적으로 '인상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만큼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되는 메시지로 – 그리고 이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영상으로 – 기억되는 작품이다.





'김복남'을 단순히 '억압받던 자의, 드디어 시작되는 복수' 영화로 보긴 어렵다. 사실 이런 영화였다면 잔인함을 떠나서 주인공의 복수 여정에 통쾌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김복남 (서영희)의 복수에는 이런 통쾌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본래 말하려던 것은 무엇일까. 제목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엿볼 수 있듯 '전말' 즉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던 제 3의 관찰자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복남'에서는 이 관찰자를 이야기의 화자나 제 3자로 두지 않고, 이 사건에 연루된 또 하나의 인물 즉 '방관자'로서 규정 짓는다. 극 중에 이 방관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섬 '무도'로 잠시 휴가를 오게 되는 혜원 (지성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구성상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복남 보다 혜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복남의 이야기를 통해 혜원에게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극중 혜원으로 대표되는 '방관자'의 입장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과 겹쳐진다는 점이다. 극중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마치 원시사회와도 같이 그려지는 '무도' 사람들과 그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이런 고립된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폐쇄적이고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쳐있는 섬뜩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 무도 사회의 모습이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영화는 단순히 고립된 이 사회의 공포에 죄를 전가하기 보다는,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외부의 방관자에게 죄를 묻는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다른 영화였다면 주인공이 – 이 영화의 경우라면 혜원이 복남을 데리고 나오는 것 – 무도를 탈출 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영화에서는 이런 탈출 역시 방관자 적인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다.





극중 혜원에게는 방관자로 더 이상 남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제공한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을 목격하고도 방관자로서 남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보았을 때 누구도 혜원의 이런 행동을 나무라기 어렵다는 것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흥미로운, 방관자가 관객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관객은 '서울 사람'인 혜원의 시점과 겹쳐져 처음에는 회사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공감하고, 범죄를 목격한 것만으로 경찰서에 불려가 범죄자들에게 협박을 받는 그녀와 똑 같은 공포를 경험하며, 이후에는 복남의 부당한 생활에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만, 이후 복남의 복수가 시작된 이후에는 역시 혜원과 마찬가지로 복남에게 공포를 느끼며 도망을 치기까지 이른다. 이렇듯 영화 속 혜원의 시점과 심리는 관객의 공감대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복남의 복수에 통쾌함을 느끼지도 못하고, 오히려 혜원과 마찬가지로 방관자로서의 죄의식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관객을 피해자로 몰아가는 것이 훨씬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고 방관자라는 가해자의 입장으로 그려낸 방식은, 대중영화에서 용기 있는 시도인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몹시 흥미로운 구성을 갖게 되었다. '김복남'은 이런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중간중간 직간접적인 비유와 설정들을 상당히 많이 배치하고 있다. '무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사회에 대한 묘사 – 남성 위주의 절대적 사회 -, 그리고 이후 무도를 떠나 벌어지는 사건들에 있어서도 가끔 거칠고 과장된 내러티브가 있을지언정 여러 가지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치들이었다. 특히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철수 감독이 김기덕의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점 – 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점 – 을 눈 여겨 볼 만한 작품이기도 했다. 아, 그리고 서영희 라는 배우가 드디어 제대로 주목 받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DVD Menu






DVD Quality

화질과 사운드는 최시작 DVD답게 우수한 편이다. 화질의 경우 플레이어의 업스케일링 기능을 통해 HDTV로 감상할 경우 기대 이상의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블루레이 소스를 보지 못해 얼마나 BD가 얼마나 기대 이상의 화질을 보여줄 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BD로 출시된다면 분명 영화의 깊은 인상을 더 배가 시켜줄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말할 수 있겠다.





DTS를 수록한 사운드 역시 기대이상의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사실 블루레이 이후 DVD를 감상하며 사운드에 크게 귀 기울여 볼 정도의 타이틀은 많지 않았는데, '김복남' DVD의 경우 DVD만 놓고 경쟁했을 때는 우수한 수준의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소소한 사운드가 잘 살아 있는 동시에 임팩트를 전달해야 할 때는 박력도 선사하는 만족스런 사운드였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김복남' DVD에는 기본적인 부가영상만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음성해설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장철수 감독과 주연을 맡은 서영희, 지성원이 참여한 음성해설에서는 주로 촬영장에 대한 뒷이야기와 각 배우들의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다소 무거웠던 영화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부족한 것이 살짝 아쉽기도 하지만, 두 주인공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것만의 재미를 충분히 전달한다.




'메이킹'에서는 별다른 인터뷰나 진행 없이 몇몇 중요 장면의 촬영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밖에 예고편과 TV Spot이 수록되었다.



[총평]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영화 속 전말이 드러나는 사건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상적인 작품이었으며,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했다. DVD 타이틀의 경우 준수한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지만, 블루레이의 출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려운 국내 BD 시장이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이 작품의 블루레이 출시를 바래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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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 카운티 (Essex County, 제프 르미어 저)
여운과 여백의 놀라운 그래픽 노블


사실 내게 있어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는 단순히 프랭크 밀러나 앨런 무어 등의 작가로 대변되는, 주로 히어로 물을 다룬 것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니, 한정되어 있었다기 보다는 그것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 '에식스 카운티'와 '아스테리오스 폴립'이란 두 권의 그래픽 노블을 알게 되었는데, 서점에서 책을 사서 돌아와 집에서 첫 장을 넘기기 전까지만 해도 '에식스 카운티' 역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바로 그 '그래픽 노블'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접하게 된 제프 르미어의 거칠고 유난히 음영이 강조된 그림체는, 분명 프랭크 밀러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말로 설명해 놓은 것만 보면 거칠고 음영이 강조된 그림체라는 것이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보게 되면 프랭크 밀러와 제프 르미어의 그림체의 성격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시작한 '에식스 카운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술 읽혀나갔다. 조금은 묘한 것이, 대놓고 기승전결 방식으로 이야기를 강조한 구성도 아닌데, 이야기에 흐름에 쉽게 몸이 이끌려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고 다음 그리고 다음,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표면적으로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결말 그 이상의 포용력으로 전체 이야기를 끌어 안고 있는 놀라운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에식스 카운티'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로 여운과 여백의 미학이었다. 여기서 여백이란 직접적인 그림의 여백과 이야기의 여백 모두를 가리키는데, 고요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한 컷과 그것 만큼이나 느리고 반복에 가까운 컷의 진행은 직접적인 여백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는 가끔 서사의 구체적 묘사는 있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에 있어서는 많은 여백을 두고 있는 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감정들을 대부분 절제하고 있는데, 그것이 상대에게 하는 말일 때는 물론이고 혼자 속으로 하는 독백의 경우에도 절제의 여백을 남겨둔 점이 느껴진다. 이런 이 작품의 경향은 분명 답답함 보다는 미덕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한편으론 바로 이것이 '에식스 카운티'의 성격을 말해주는 포인트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운. '에식스 카운티'는 제 1부 농장이야기, 제 2부 유령이야기 그리고 제 3부 시골 간호사로 이뤄져 있는데, 이 3부작의 짜임새와 연결 고리는 흔히 말하는 반전처럼 충격적이거나 반전을 위한 구성이라기 보다는, 각각의 캐릭터가 연결되어 있는 구성을 통해 결국 '인생'이라는 것과 존재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에식스 카운티'가 놀라운 그래픽 노블 작품인 이유는 바로 이처럼, 인생이라는 깊이의 여운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만화와 소설, 그러니까 이미지와 이야기와 완벽하게 결합된 지점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사실 이 두 가지가 이 정도로 각각의 높은 수준에서 접점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데, 제프 르미어는 두 가지 모두를 활용할 수 있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에서 다운 그레이드 없이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 (510p)이었음에도 단숨에 읽어내려간 이후의 느낌은, 사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감흥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려 다시 한번 책을 슬쩍 펼쳐 보았는데, 책의 어디를 펼쳐보아도 찡하고 짠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제서야 앞서 이야기했던 이 작품의 장점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제프 르미어의 '에식스 카운티'는 내게 있어서도 참 특별한 그래픽 노블로 기억될 것 같다. 분명 이야기가 핵심인 작품이고 볼거리로 승부하는 작품도 아닌데, 책을 한 번 정독한 이후 '에식스 카운티'의 한 장 한 장은 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 소중한 한 장이 되어버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타운 (The Town, 2010)
클리셰 그 자체의 나쁘지 않은 범죄영화

척 호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벤 애플렉 감독의 작품 '타운 (The Town)'은 '디파티드', '히트' 등을 비롯해 범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에 매우 충실한, 클리셰 그 자체로 보아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 무리는 은행강도를 일삼는 범죄자이고, 배경이 되는 '찰스타운'은 대대로 범죄가 가업처럼 되물림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이며, 이러던 가운데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 애쓰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이곳 (찰스타운)을 떠나야 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마지막 범죄를 계획하게 된다. '타운'은 위의 내용이 전부라고 봐도 좋을 만큼 범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이들도 쉽게 짐작할 만한 이야기로 전개되며, 그 가운데 범죄 영화의 클리셰도 거의 모두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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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타운의 아이들. 이 아이들이 바로 그 아이들이다)

'타운'이 괜찮은 영화일지 아닐지는 철저하게 이 영화에 기대하는 바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겠다. 만약 서두에 언급했던 '디파티드'나 '히트' 등을 기대했다며 정말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에 허탈함을 느끼게 되겠지만, 반대로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고 장르영화로서 범죄영화를 만나려고 했던 관객이라면, 적절한 클리셰와 괜찮은 무게감에 만족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다른 장르영화들도 그렇지만, 범죄영화의 경우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과 동시에 그저 범죄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무게감과 적당한 희열을 느끼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타운'은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다른 범죄영화와 조금 다른, 아니 이 영화가 선택한 소재라면 '찰스타운'이라는 보스턴의 지역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팬웨이파크를 범죄의 무대로 삼는 다는 점과 더불어 주인공이 벗어나려는 굴레를 지역과 가족으로 구체화 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야기를 가족과 특히 지역적인 것으로 한정하면서 좀 더 지역적 특색을 갖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것이 한계로 작용하기 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겠다. 만약 '타운'이 '찰스타운'을 벗어나는 더 큰 메시지를 그리려 했다면 정말로 기술적인 클리셰만이 남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감독 자신이 사랑하는 지역의 이야기로 한정지으면서, 오히려 욕심을 덜어낸 결과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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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포스틀스웨이트. 그가 없는 헐리우드는 분명 조금은 심심해 졌을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극 중 조직의 대부로 등장하는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때문이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나 많은 영화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그의 출연사실을 몰랐던 터라 더욱 그랬는데, 스크린을 통해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건 '인셉션'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결국 이 작품 '타운'이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올해 4월 영국에서 개봉예정인 'Killing Bono'라는 작품이 유작이라 할 수 있을텐데, 아마도 이 작품은 개봉이 어려울 듯해 국내 극장에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건 '타운'이 될 것 같다). 배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얼마지나지 않아 그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은, 이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히스 레저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역시 영화와는 별개로 쓸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가 맞게 되는 상황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역시 분량과는 상관없이 별다른 장치나 과장 없이도 조직의 대부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타운'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은 범죄영화지만, 피터 포스틀스웨이트로 인해 조금 더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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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터 포스틀스웨이트 외에 크리스 쿠퍼도 매우 짧은 분량 출연하지만 강한 인상을 줍니다.

2. 제레미 레너의 연기가 좋더군요. 범죄 영화에 저런 캐릭터는 꼭 하나씩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별로 나쁘지 않았어요.

3. 엔딩 크래딧에 실제 찰스타운에 대해 관객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뭐 찰스타운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은 저렇지 않다는 얘기에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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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킬링조크 (Batman The Killing Joke)
거울 속 조커의 초상화



그래픽 노블에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영화화 된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된 스토리가 있다면 '배트맨'과 관련된 시리즈 들을 들 수 있을텐데, 이번에 보게 된 '배트맨 킬링조크'는 그간 배트맨 시리즈가 배트맨의 심리에 포커스를 두었던 것과 달리, 조커에 대한 이야기를 짧지만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굳이 히스 레저 주연의 '다크 나이트'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배트맨 이야기에서 조커 라는 캐릭터가 갖는 인상이란, 다른 수많은 상대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을텐데 그것은 조커라는 캐릭터의 존재가 배트맨의 또 다른 모습, 거울, 또 다른 자아로 비유될 만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커의 의미는 대부분이 잘 알고 있지만 사실 이 핵심을 파고 든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비교적 이 부분을 잘 파고든 작품이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조커라는 캐릭터의 상대성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화의 영향력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래픽 노블을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조커에게 이런 캐릭터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바로 이 작품 '킬링 조크'만큼 조커의 입장에서 쓰여진 작품은 드물 듯 하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조커라는 캐릭터의 탄생 비화를 담고 있는 동시에, 배트맨과의 접합점, 연결점 그리고 경계선에 대한 묘사를 그래픽 노블 특유의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사실 많은 기대를 했던 터라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점이라면 역시 책의 분량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짧은 분량을 선택한 것은 분명 앨런 무어의 선택이었겠지만, 조커를 중심으로 한 배트맨과의 이야기라면 정말 그 존재와 경계 그리고 닮아있는 점에 관한 철학적 토론만으로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한 주제였기에, 책을 읽으며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속으로 '조금 더, 더'를 외칠 수 밖에는 없었다. 이미 수많은 배트맨 관련 작품들을 통해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에 가까운 짧은 분량에서도 작품이 주려는 메시지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좀 더 여유있는 분량으로 어쩌면 배트맨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울 수 있는 조커와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써내려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킬링 조크' 만큼이나 마지막에 보너스로 수록된 '선량한 사람'의 임팩트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작품은 짧아서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느낌도 있는데, 배트맨과 조커가 아닌 제 3자인 선량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배트맨 시리즈가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 선과 악의 경계 그 판단의 모호함에 대해, 한번 더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
환상 속에 사는 그대들을 위해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는 극중 등장하는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와 삶에 대해, 노련한 시각으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극을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리듬감이 넘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유쾌하지만 (그래서 '연애소동극'이란 문구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유쾌하지 만은 않은 씁쓸한 인생의 뒷 맛을 전하는 작품이다. 극중 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인생의 탈출구 (희망)를 꿈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늙은 아내와 이혼하고 딸보다도 젊은 여성과 재혼하여 더 젊고 생기 넘치는 웰빙 라이프를 꿈꾸는 알피 (안소니 홉킨스). 남편과의 이혼 이후 점쟁이에게 모든 삶을 의지하다시피 하는 헬레나 (젬마 존스). 이 둘의 딸인 헬레나 (나오미 왓츠)는 데뷔 이후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 남편 로이 (조쉬 브롤린)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갤러리를 갖고자 하며, 멋진 직장 상사인 그렉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게 된다. 남편인 로이 역시 출판사에 보낸 새 원고에 대해 소식이 없어 불안해 하던 중, 길 건너 창밖의 여자 디아 (프리다 핀토)에게 마음을 빼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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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등장하는 대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를 꼽으라면 '인생은 때론 신경안정제보다 환상이 필요하다'를 들 수 있을텐데, 우디 앨런이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환상을 갖고 살아야 한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라기 보다는, 환상에 잠시 몸을 맡겼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환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삶은 역시 삶이다'라는 냉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냉소적이라고 하니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날카롭거나 어둡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면 아직도 우디 앨런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스크린에 드리우는 그 따스한 색감처럼 시종일관 생기와 유쾌함으로 가득차 있다. 냉소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을 보면서, 혹은 집에 돌아와 이 작품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될 때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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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극중 인물들이 빠져들게 되는 환상에 관객들도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노장에 영화 기술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어쩜 이렇게 적지 않은 나이에 감독이 (쉽게 말해 할아버지가), 연애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넘쳐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인 것일까 라는 점이다. 사랑 뿐만 아니라 연애를 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 묘사를 거추장 스럽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있게 써내려가는 기술이야 말로 우디 앨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환상의 그대'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사실 이렇다할 새로울 것도 없고, 어쩌면 과장 섞인 감정이 필요할 듯한 익숙한 전개에 놓이기도 하지만, 우디 앨런은 최소한이자 최선의 감정 묘사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감정선을 묘사해 낸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는 참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없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순전히 그 표현 방법을 통해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영화 장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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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에 서두에는 우디 앨런이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인용된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고,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작품은 일상에서 환상을 꿈꾸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래서 조금의 환상이 삶에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노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환상이 나쁘다거나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갖을 수 밖에는 없는 삶의 구조이지만 그 환상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 라는, 한 차원 물러서서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극중 리듬감 넘치던 내레이션 음성은 왠지 더 초월한 듯 담담하게 느껴졌다. 환상에 흠뻑 빠져도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매력 넘치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펼쳐 놓고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하다니. 이거야 말로 정말 냉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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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아' 역할로 나온 프리다 핀토는 정말 '환상' 그 자체더군요. 물론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시간이 좀 흐른 탓도 있겠지만, 이 작품 속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니 보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21세기 여신으로 급부상한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2. 그리고 로이 역할로 나온 조쉬 브롤린은 보는 내내 마치 홍상수 영화의 김상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나온 배 하며, 대충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홍상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김상경이 안겹쳐질 수가 없는 모습이더군요.

3. 아직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반해, 나오미 왓츠는 확실히 나이가 이제 느껴지는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느껴지는 동시에 예전 나오미 왓츠에게서 느꼈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다섯 손가락에 드는 페이보릿 여배우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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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한 달간 꼬박꼬박, 마치 수업을 듣는 것처럼 한 시간도 빼놓지 않고 함께 했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Justice)' 강의가 모두 끝이 났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일방적이지 않은 (하지만 결국 노련한 마이클 샌델의 손바닥 안에 있는) 토론 방식 자체가 흥미로웠다. 평소에 쉽게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충분히 들어보고, 한 편에 서서 다른 한 편의 논리를 무너 트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상대가 설득 당하지는 않을 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상대의 논리를 경청하며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것에 호의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선입관이었는데, 마이클 샌델에 관한 선입관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강의에 대한 선입관이었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처럼 답이 너무 뻔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 도출해 내기 어려운 주제일 경우엔 이런 선입관이 더 깊게 작용하게 되는데, 일반적인 경우 이런 주제의 결론은 아무리 잘 된 경우라도 고작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정의란 무엇입니다'라고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렸을 때 '그 정도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잖아'라고 너무 쉽게 예상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도 무언가 큰 가르침을 얻기 보다는 그저 과정을 즐기는데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이번 마이클 샌델의 '정의' 역시 그 토론 과정과 방법론에 주목하며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 강의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게 중요하다).

그렇게 주제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자세로 보게 된 마지막 강의. 지금까지 거의 자신의 주장은 펼치지 않았던 (펼치더라도 마이클 샌델로서 하기보다는 다른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하던) 마이클 샌델은 드디어 '정의'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역설이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원화 사회로 각각 추구하는 선의 가치가 다른, 그래서 정의라는 것에 정의도 저마다 다를 수 밖에는 (틀린 것이 아닌)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의란 이런 것이라고 하나의 가치관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실 여기서 나는 크게 한 방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나만의 가치관이 정립된 이후부터 줄 곧 누군가와 의견을 나눠야 할 일이 있을 때, 대부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왔었다. 물론 이런 중립적 태도는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는,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 만은 없다는 (내가 나의 주장을 옳다고 믿는 것처럼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전재 하에)것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면서 갖게 된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 이런 중립적인 태도는 마이클 샌델이 마지막 결론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상대의 대한 이해에 근거하기 보다는 회의적인 입장으로 인한 결과일 때가 더욱 많아졌다. 간단하게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토론을 벌이다가 상대가 절대 내 의견을 이해하지 못한 다거나 합의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 회의적인 태도로 '이 토론은 끝날 것 같지 않다'라는 마음에 중립적인 것으로 마무리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토론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아, 이 상대와는 어차피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해' '서로 마음만 상할거야'라는 생각에 애초부터 회의적 중립 태도를 갖게 되곤 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중립적 태도란 것은 허울 좋은 '중립'과 '이해' 일 뿐, 사실 회의적이고 외면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회사에서 일 적인 주제로 혹은 그 밖의 여러 주제들로 의견을 나눌 때, 나는 언제부턴가 처음부터 중립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나는 언제부턴가 중립에 서야만 한다는,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내 의견보다는 소수에 서서 그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겠다는 마음에 (여기에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일종의 희열 탓도 있었다), 무엇이 옳은 가에 대한 문제는 종종 뒤쳐지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마지막 강의를 통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외면하지 말아라' '외면하지 않고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정의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라고. '외면하지 말라'는 그의 결론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중립이라는 허울 좋은 방법을 앞세워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 본심이야 어찌되었든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면 좀 더 편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끊임없이 정의에 가까워지기 위해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은, 훨씬 더 귀찮고 번거로우며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강의가 내 이성에 작지만 실천을 가능케 하는 가르침을 주었다. 

'외면하지 말라'
'그것이 정의에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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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
제 블로그에서 '안녕하세요'하며 글을 써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날 만큼 신선하다못해 손발이 좀 오그라드는 시작이네요 ㅎ 오늘은 제 블로그 관련해서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자랑이에요 ㅋ

다름이 아니라 제 블로그에 작성하는 영화 글들을 '올댓 개봉영화' 모바일 앱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댓 개봉영화 어플은 본래 지인 블로거이신 '신어지' 님께서 혼자 운영을 해오셨던 영화 리뷰 관련 어플이었는데요, 새해를 맞아 함께할 필진을 모집하신다는 말에 늦게나마 조심스레 '저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해서, 이번 달 부터 함께 진행을 하게 되었네요. 참고로 저 외에도 영화 리뷰계에 떠오르는 신성 '탈렌' 님께도 함께 참여하기로 하셨습니다. 신어지, 탈렌, 아쉬타카 이렇게 세 명이서 개봉 영화 위주의 리뷰 글들을 올댓 개봉영화 어플을 통해 제공하게 되었어요.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을 사용하신 분들께서는 '올댓 개봉영화' 어플을 무료로 다운 받으셔서 접속하시면, 위의 스크린 샷처럼 영화 리뷰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처럼 제 '윈터스 본'과 '러브 앤 드럭스' 리뷰가 보이네요 ^^; 참고로 '올댓 개봉영화' 어플은 '올댓' 시리즈 가운데서도 인기나 다운로드 순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어플로서, 현재까지 19만명이 넘는 분들이 다운로드를 하셨네요. 왠지 잘 차린 밥상에 수저를 얹은 듯한 느낌이 있어서,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열심히 글들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미지 몇장 더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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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영화 리뷰를 쉽게 보실 수 있도록 UI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가독성도 좋구요.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안드로이드 계열 어플이라 정작 제가 아이폰을 통해 볼 수는 없다는 것 ㅠ 참고로 저 같은 아이폰 유저는 모바일 URL을 통해 사파리로 보실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깔끔하지가 않아서 이것보단 그냥 (제 리뷰 밖에는 없지만)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모바일페이지로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참고로 현재 몇가지 기능 개선 및 추가가 된 '올댓 개봉영화 2.0'이 준비중이라고 하니, 저도 개인적으로 더 기대가 되네요~ 신어지 님이 매주 작성해주시는 '주간 개봉영화 소개' 글을 비롯해 매주 영화 한 편 이상씩은 꼭 보고, 꼭 포스팅하는 블로거 세 사람이 만들어가는 '올댓 개봉영화' 어플에 많은 관심부탁드려요~ 나중에 아이폰에서도 제공 가능한 어플에서도 비슷한 제공을 할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네요 ^^;

또 좋은 소식있으면 포스팅을 통해 찾아뵙겠습니다.
'May the Movie with you'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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