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8 (Super 8, 2011)
너무 행복했던 J.J의 스필버그 종합 선물세트


J.J. 에이브람스의 '수퍼 8 (Super 8)'은 완벽한 스필버그 영화다. 일차적으로 스필버그가 참여하기도 했으니 스필버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E.T' '구니스' '미지와의 조우' 등 스필버그 영화들의 자양분을 받고 자라난 세대가 이를 추억하며 만든 종합적인 의미로서의 '스필버그' 영화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수퍼 8'은 새로울 것은 전혀 없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추억의 부스러기들을 잔뜩 끌어와 오마주와 자기 확장만을 더했음에도 이 작품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없다면 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일부러 분석해보자면 최근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의 줄거리는 너무 단순하고 건너뜀도 많고, 논리적이라기 보단 허무한 것에 훨씬 더 가깝고, 메시지 역시 동심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점들은 정말로 한 발 물러나서 일부러 찾아본 것들이다. 한 발 물러나 냉정하게 본다면 이런 단점들이 훤히 보이는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전혀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로 '수퍼 8'은 내 유년의 추억들과 스필버그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해 행복하게 만든, 참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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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극장을 나오며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J.J.에이브람스가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이 작품은 J.J가 동경하던 스필버그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스필버그를 보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T'나 '미지와의 조우'를 보며 외계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구니스' 같은 작품을 보며 어린 시절 모험을 꿈꾸고 더나아가 이런 작품들을 나중에 직접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J.J의 동경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엿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동경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사실 어린 시절 꿈꾸던 바를 어른이 되어 이루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꿈을 한치도 엇나감 없이 그대로 이룬 J.J가 몹시도 부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더 부러운 점은 단순히 동경하던 영화를 연출하였기 때문 만이 아니라, 그 동경의 대상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그야말로 '꿈 종결자'가 아닌가! 

J.J처럼 직접 그 꿈 실현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수퍼 8'은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보며 자라온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이와 같은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해준 또 다른 꿈의 영화였다. 직접적인 이야기도 물론 그렇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70년대 후반 미국의 모습에서는 'E.T'가 보여주었던 아이들과 배경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어두워진 동네를 산 위에서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 같은 경우는 직접적인 오마주이기도 했다. 이것 외에도 주인공 아이들 가운데 영화 감독인 아이의 집 세트는 정확히 'E.T'의 그것과 닮아있었으며, 식탁을 두고 벌이는 가족들의 배치나 가족 구성원의 묘사 역시 'E.T'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갈등과 해소가 상처받은 가족의 치유라는 점에서 이것은 그대로 'E.T'의 엘리엇 가족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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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친구들의 구성 역시 '구니스'를 비롯한 스필버그의 세계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요즘에는 이렇게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티격태격하며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가 많지 않지만,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세계에서는 꼭 등장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이라면 무언가 어린이답지 않게 만들고 어른들의 것에 능통한 친구를 들 수 있을 텐데, '구니스'와 인디아나 존스' 에 출연했던 키호이콴 (Jonathan Ke Quan)과 마찬가지의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는 폭죽과 밀리터리에 능한 친구가 대변하고 있다. 나머지 친구들의 모습 역시 스필버그의 세계 관은 물론 '스탠 바이 미'같은 어린이 모험영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클래식한 캐릭터들이었다. 그 와는 반대로 어른들의 모습은 항상 불친절하고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믿지 못하며, 소통을 거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설정 역시 요즘 영화로 비춰보자면 너무 뻔하고 올드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이런 점들이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 '레드 원(Red One)'이 아니라 '수퍼 8'이기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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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퍼 8'이 완전히 스필버그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 스필버그 영화이긴 하지만 J.J.에이브람스는 여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넣어 조금의 확장을 시도했다. 'E.T'의 감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J.J는 여기에 '클로버필드'가 갖고 있는 괴물의 형태와 공포/스릴러 적인 요소를 가미했는데, 확실히 이 부분은 스필버그 영화와 차별되는 J.J만의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클로버필드'와 같은 무게중심으로 흐르지는 않지만, 분명 미지의 존재를 그리는데에 있어서 공포와 충격 요법을 가미하고 있고, 그 형태와 구성 역시 봉준호 감독의 우리 영화 '괴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스릴러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두 남녀 어린이 주인공 조 (조엘 코트니)와 엘리스 (엘르 패닝)의 관계 설정 역시 스필버그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완전히 어린이들의 우정이라기 보다는 소년, 소녀의 애틋한 감성을 더해 또 다른 분위기를 극에 담아내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이런 J.J만의 가미된 부분들의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불편하거나 하는 부분은 아니었으며 소년, 소녀의 감성의 경우 엘르 패닝의 완벽한 소녀 비주얼을 통해 또 다른 활기를 불어 넣는 긍정적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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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의 여러가지 것을 가져온 것과 동시에 이 작품은 '영화'에 관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극 중 주인공 어린 친구들은 '수퍼 8'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사건 (The Case)'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중인데, 이 과정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감독인 J.J의 자전적인 경험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고, 여기에 빗대어 영화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 '사건'은 좀비 영화인데 이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으로 유명한 조지 로메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실제로 엔딩 크래딧과 함께 볼 수 있는 이 영화 속 영화를 보면, 조지 로메로에 대한 오마주를 더욱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극중 화학공장의 이름도 '로메로화학'이 아니던가!).


전체적인 스필버그 영화라는 그림 속에 영화에 관한 텍스트를 적절하게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 만드는 부분에서는 리얼리티마저 느껴지는데, 누군가의 말처럼 이 작품 '수퍼 8'은 결국 '사건'이라는 영화의 거대한 메이킹 필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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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에이브람스의 '수퍼 8'은 여러가지 면에서 요즘의 헐리웃 영화가 보여주는 경향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 리메이크에 가까운 복고적인 작품이었지만, 그래서 좋았고, 더나아가 '스필버그'여서 더할나위없이 행복했던 작품이었다.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수퍼 8'은 선물세트 겪의 작품이었지만 더 나아가서 예전 우리가 보았던 'E.T'나 '구니스'처럼 아이들이 모험을 경험하고 꿈꿀 수 있는 작품들이 최근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21세기를 사는 어린이들에게도 20세기 어린이들이 느끼고 경험했던 것처럼 모험과 꿈을 꿀 수 있는 '꿈'으로서의 영화가 더욱 많아져야만, 30년 뒤 40년 뒤에도 지금을 추억하며 이런 영화들을 또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1. 엘르 패닝은 이로서 더이상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라는 수식어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코타 패닝도 한 몫 톡톡히 했죠;;)

2. 엔딩 크래딧과 함께 극 중 아이들이 만든 영화 '사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수퍼 8'보다 재밌다는 분들도 상당수가 되니 절대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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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V시리즈 '로스트'는 물론, 픽사의 '업'과 '라따뚜이' 등의 음악을 맡았던 Michael Giacchino의 음악은 상당히 장르적이에요. 음악 역시 존 윌리엄스의 그것을 오마주하려 상당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상과 음악이 완전히 당시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4. J.J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당시 SF영화에서 자주 보이던 빛의 굴절 효과를 사용하고 있어요. 보통 의도적인게 아니죠. 

5. 그런데 7편을 안보고 8편을 봤더니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 있네요. 1편은 너무 어렸을 때 봐서 기억이 잘 안났지만 최근에 출시된 블루레이로 6편까지는 복습을 하고 간터라 복선 등을 확인할 수 있더군요. 7편 보신 분들 얘기 좀 해주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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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극장판 블루레이 (銀河鐵道999, Blu-ray)
기념비 적인 애니메이션 그리고 블루레이


어린 시절 단순한 동심으로 즐겼던 애니메이션들 가운데서도 동심답지 않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 몇 작품 있는데, 그 가운데 그 아련함으로만 꼽자면 이 작품 '은하철도 999 (銀河鐵道999)'는 단연 적은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일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 동요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불리웠던 수 많은 만화 주제가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곡 역시 김국환 씨가 부른 이 작품의 주제가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 건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였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한참 많아지던 시절, 애니메이션의 계보 아닌 계보를 거슬러 오르다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으니 바로 '은하철도 999'였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은하철도 999'에 대한 관심은 영감을 얻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銀河鐵道の夜)'까지 미치게 되었고, '아, 어린 시절 보았던 이 작품이 아련했던 이유가 단순히 스쳐가는 기억만은 아니었구나'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은하철도 999'는 그 주변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참 많은 작품이기도 한데, 이와 관련한 사실들과 분석은 이미 DP리뷰를 통해 페니웨이 님께서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정리해 주셨음으로, 이 글에서는 큰 부담을 덜고 블루레이로 다시 보게 된 '은하철도 999 극장판'에 대한 감상의 측면에 더욱 집중해 보려고 한다.

은하철도 999 블루레이 DP리뷰 (페니웨이 님)


사실 수년 전에 어린 시절 이후 다시 보게 되었을 때만 해도, 이 극장판에 대한 진정한 가치까지 느끼지는 못했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라면 그 때도 이제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이라 깜냥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고,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소스의 퀄리티가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는 점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수년 전 구입한 '은하철도 999 극장판' DVD세트를 보았을 때는 이번과 같은 감흥까지는 느끼지 못했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DVD를 보았을 당시에는 이런 감흥이 포맷의 퀄리티가 향상된다고 해서 그리 향상될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었다. 지금부터 이 작품에 대해 풀어놓는 감상은,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블루레이의 고 퀄리티로 즐겼을 때 새롭게 발견했거나 혹은 더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부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겠다. 





린 타로가 감독한 '은하철도 999 극장판'은 새삼스럽지만 참 기념비 적인 작품이었다. 솔직히 이번에 다시 보면서 여러 장면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린 타로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요즘에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1979년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TV시리즈를 극장용으로 재편집하거나 축약하여 '극장에서 보는' 정도의 역할이 대부분이었는데, '은하철도 999'는 제작사인 도에이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TV시리즈의 축약과 재편집을 넘어서 아직 진행중인 시리즈의 마무리(극장판 만의 엔딩)를 먼저 지어버렸다는 점만 봐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또한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시도 역시, 결과적으로 아주 성공적인 모험이 되었다. 그 결과 1979년 개봉한 극장판 '은하철도 999'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를 넘어 아직까지도 실사 영화들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고 비교되는 작품인 동시에, 개봉 당시에도 실사 영화를 모두 통틀어서 흥행 1위를 거두었을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후세에 재평가되는 작품들이나 기념비 적이다 라고 평가 받는 작품들을 보면, 결코 그런 호화스런 수식어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은하철도 999 극장판' 역시 상당부분에서는 '당시에는' 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아도 지금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될 만하거나 더 앞서 있을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과 모험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든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점인데, 작품 곳곳에서 성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장치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수 많은 놀라운 것들 중에서도 가장 손꼽고 싶은 것은 바로 영화 음악이었다. 명작곡가 아오키 노조미가 만든 음악들은 그 음악 자체로서도 대단하지만, 그 선곡 센스가 파격적인 동시에 글 서두에 얘기했던 '아련함'을 증폭시키기에 너무도 적절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운드트랙 앨범 '교향시 은하철도 999'는 당시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 '고다이고'가 부른 주제가 역시 오리콘 싱글 차트 2위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직접 들어본 '은하철도 999 극장판'의 음악은 이런 사실 관계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감동의 연속이었다. 뻔한 감동을 부추길 수 있는 일반적인 음악 사용 대신 예상을 빗겨가는 장르의 곡이 갑자기 등장하지만,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커녕 '아, 이런 장면에 이런 곡이 잘 어울릴 수도 있는 거였구나 ㅠ'라고 느껴질 정도로 파격이 단순히 파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관을 열어버린 듯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또한 나중에 린 타로 감독의 작품들 (특히 '메트로폴리스 (メトロポリス, 2001)'에서 잘 나타나는)에서 만나게 되는 이른바 '파괴의 미학'의 시작과 절정을 바로 이 극장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파괴의 미학. 2001년작 '메트로폴리스'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엄청난 파괴와 붕괴의 장면을 배경으로 너무나 감미로운 'I Can't Stop Loving You'가 흐르던 순간이었다. 이 장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장면과 연출이 '은하철도 999' 극장판에 등장하는데, '메트로폴리스'의 경우보다 정리된 느낌은 조금 덜하지만 스케일은 오히려 훨씬 더 큰 편이다. 스케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작품의 스케일은 극장판 임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애니메이션 극장판과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의 액션 연출과 대규모 전투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 같은 경우는 대사없이 진행될 수 있는 한계점을 한참이나 넘어서 버린 느낌을 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대사없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인데, 그럼에도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 있는 액션이 장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대사없이 진행되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클래식한 대서사시를 즐기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대단한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이 애니메이션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실사 영화들과 동등하게 평가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이전까지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들보다 훨씬 더 '극장판'에 어울리는 의도적인 연출과 스케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대규모 전투 씬 같은 스케일 측면도 물론 그러하지만, 이렇게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부분들 외에도 세심하게 극장판에 더 어울리도록, 혹은 극장판이어서 더 자연스럽게 시도해볼 수 있었던 부분들을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사실 스토리 자체나 몇몇의 설정들은 당시 일본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분명히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커다란 단점으로 지적되지 않을 만큼 TV시리즈가 갖는 오리지널리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극장판만으로 독립적인 자립도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당시 감독인 린 타로가 얼마나 '극장판'이라는 포맷에 신경을 썼는지, 그리고 각본에 참여한 이치카와 콘 처럼 영화 스텝들의 적극적 활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1979년작 '은하철도 999'와 1997년작 '안녕, 은하철도 999'는, 성공한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의 일반적인 공식들과는 다르게 원작자가 아닌 새로운 감독이 맡아 자신만의 색깔을 넣어 많은 것을 새롭게 시도했음에도, 오리지널을 해친다기 보다는 극장판에 걸맞는 확장성과 작품성을 갖게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2011년에 블루레이로 다시 보게 된 1979년작 '은하철도 999'는 2000년 대에 DVD로 보았을 때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한 듯한 작품성과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으며,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인류가 이 작품처럼 우주를 여행하게 될 때, '은하철도 999'를 다시 보게 될 때야 말로, 어쩌면 이 작품의 가치가 비로소 인정받게 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Blu-ray : Menu





Blu-ray : Quality

일본 개봉 30주년 기념으로 도에이 애니메이션사에서 자존심을 건 블루레이 타이틀이라는 말이 결코 겉치레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1080p 풀HD의 화질은 DVD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선명함을 담아내고 있다. 일부 장면에서는 너무 선명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DVD와 비교하여 높은 퀄리티의 화질을 보여주는데, 종종 '아련함'을 담은 작품들이 고퀄리티의 화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은하철도 999' 극장판 블루레이는 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DVD를 볼 때만 해도 잘 몰랐었는데, 블루레이를 보고 나니 차세대 화질과 사운드라는 포맷이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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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신작 블루레이 타이틀과 1:1 비교를 하였을 때에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화질이지만, 작품의 제작연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화질이다. 또한 선명해진 화질 탓에 기존 비디오나 DVD버전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미세한 부분들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도 했으며, 레이저 빔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대규모 전투씬을 비롯해 스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배경 장면 등에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추억의 잔상이 깊게 남아있는 팬들에게는 너무 선명해진 화질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것이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운드는 일본어 LCPM 2.0, 한국어 2.0 사운드와 리마스터링 된 돌비 트루 HD 5.1채널을 각각 수록하고 있는데, 일단은 일본어와 한국어 두 가지 버전 모두가 각각의 의미를 갖는 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를 추천할 만 하다. '은하철도 999'는 오리지널인 일본어 더빙은 물론 국내 성우들이 더빙한 한국어 버전 모두가 만족스러운 많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데츠로(철이)와 메텔을 연기한 노자와 마사코와 이케다 마사코 콤비 그리고 우문희씨와 정희선씨 콤비의 버전을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이 타이틀의 소장 이유가 되겠다. 리마스터링 된 5.1채널의 사운드는 좀 더 블루레이만의 사운드 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오래된 작품이라 아무리 복원된 5.1채널의 사운드라해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액션 시퀀스에서는 제법 멀티 채널의 효용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것도 일본어, 한국어 더빙 버전과 마찬가지로 어느 버전이 우월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둘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부가영상으로는 역시 이번 블루레이를 위해 특별히 추가된 음성해설 트랙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겠다. 국내 최초로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이 수록되었는데, '은하철도 999'의 매니아 중의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 투니버스 '스튜디오 붐붐'의 진행자였던 송락현 님과 PC통신 시절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동호회 '하이텔 애니메이트'의 전 시삽 이주석 님, 그리고 애니메이션 수집가로 잘 알려진 탁상 님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일반 팬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의 뒷 이야기들과 작품과 관련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한 가득 들려준다. 실제로 블루레이 타이틀을 연달아서 일본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그리고 음성해설 트랙으로 마지막 한 번 더 풀로 감상하였는데 그래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흥미로운 음성해설이었다. 이 타이틀을 구매한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빼놓지 말고 들어봐야할 음성해설이라 하겠다.




이 밖에 본 예고편과 티저 예고편, 그리고 아직까지도 추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유명한 김국환 씨의 '은하철도 999' TV판 주제가 뮤직비디오와 '눈물 실은 은하철도'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다. 극장판 본편을 보며 작품의 대단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면, 익숙한 김국환 씨의 주제곡을 들으며 다시 한번 깊은 추억과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총평] 최근 국내에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거나 작품성은 있지만 비교적 마이너한 작품이 블루레이로 국내에 출시된 타이틀을 리뷰할 때, 쉽게 말해 '출시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하곤 했었는데, '은하철도 999' 극장판 타이틀 역시 현재 국내 블루레이 시장과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미뤄봤을 때 결코 제작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 라이센스 버전만의 특전을 만들기 위한 제작사 노바미디어의 노력은 한 사람의 블루레이 유저로서 박수를 보내고픈 심정이다.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은하철도 999'를 2011년에 다시 살아 숨쉬게 한 것, 그리고 비로소 이 극장판의 대단함을 알 수 있도록 만든 것 만으로도 이번 블루레이의 출시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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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悪人 Villain, 2010)
외로운 존재와 소중한 자를 둘러싼 슬픈노래


지난해 일본내 가장 화제작 중 하나였던 이상일 감독의 '악인 (
悪人)'은, 그 제목과는 달리 단호하거나 세기가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에서 '악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저 '우리가 악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연약한 이들이 많다' 라거나 '이들을 악인으로 만든건 사회다'라는 것 정도를 담아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관계를 담아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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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 싸고 유이치 (츠마부키 사토시)와 요시노 (미쓰시마 히카리)와 그녀의 아버지 요시오 (에모토 아키라), 요시노와 관계가 있던 남자 대학생 마스오 (오카다 마사키) 그리고 나중에 유이치와 만나게 되는 미츠요 (후카츠 에리)와 요시노를 자식같이 키웠던 그의 할머니 후사에 (기키 기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 있지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슬픔 그리고 결핍을 안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읽지는 못해 원작과의 비교는 어렵겠지만, 이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악인'은 러닝타임도 139분으로 결코 짧지 않은 편인데, 이 각자의 이야기 (각각이 아닌)는 조금은 독립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러닝타임 내내 동일한 힘의 크기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유이치의 이야기는 너무 가려져 있고 미츠요를 만나기 전과 후의 이야기는 1막과 2막으로 나눠도 좋을 만큼의 거리감이 없지 않으며 할머니인 후사에의 이야기 역시, 중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독립성을 갖는 부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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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글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악인'에는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시선이 존재한다. 이 포용은 마치 연골처럼 이들의 관계를 조금 더 자연스럽도록 연결시켜주는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시킨다. 다시 말해, 좀 더 유이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해 극적인 동력을 얻지 못한 까닭은, 그 만큼 '악인'에서는 악인이 된 유이치 뿐만 아니라 그 주변과 그로 인해 돌아볼 기회와 잠재적 분노 그리고 슬픔을 표출하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어떠한 사건, 특히 살인사건이나 사이코 패스 등을 그릴 때의 경향을 보면 결국 그 이면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무관심과 잘못이 있었다는 것으로 종결짓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러한 논리적이고 냉소적인 이유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 더 호소하고 기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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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불필요 하다 싶을 정도로 흩날리게 뿌려놓은 조각들은 마지막에가서 영화가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꺼낼 때,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작동한다. 이 덩어리는 완벽한 하나가 되지는 못해 조금씩 갈라진 균열의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기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 균열이라는 것 또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또 다른 외로움과 포용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을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더라도 영화가 마지막 던지는 메시지는 뭉클하고 울컥하게 되는 지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 동안 이들의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과 마음의 짐을 엿볼 수 있었기에, 참아왔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소박하게 고백하는 순간 (혹은 끝내 토해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영화가 들려주는 슬픈 노래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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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캐릭터의 특성상 깊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반면, 할머니 역할을 맡은 기키 기린이나 아버지 역할의 에모토 아키라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 이 작품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배우라면 오히려 이 둘을 더욱 꼽고 싶을 정도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에 상당히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극중 캐릭터들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을 음악이 상당부분 역할을 부여 받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마운틴 픽쳐스 에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 _ 블루레이 출시기념 시연회 및 GV


지난 토요일(11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블루레이 출시를 기념한 상영회와 GV가 열렸다. '시'블루레이는 다른 타이틀과는 다르게 국내 출시예정이 없던 작품을 DP에서 소비자들이 미리 선구매형식을 취해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하게 된 특별한 경우인데, DP컬렉션 001 타이틀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었고, 002 타이틀이 바로 '시'다. 참고로 이 DP컬렉션의 배경과 국내 블루레이 시장에 관한 내용은 지난 글을 참고하면 되겠다~






(상영이 시작되기 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시고 계신 DVD프라임의 박대표님!)


사실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좀 더 가까이 지켜보게 된 입장에서, '시' 블루레이를 위해 정말 많은 신경을 쓴 이들의 노력을 알기에 감회가 남다른 순간이었다. 특히 첫 번째 타이틀이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정말 얘기치 않았던 오류로 인해 리콜을 결정했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었고, 어려운 국내 2차 영상물 시장을 고려했을 때 자칫 이 새로운 가능성 마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탄생한 '시' 블루레이였기에 이번 시연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박대표님도 뵙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미리 프리오더했던 '시'블루레이를 손에 쥐고 나니 무언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800명 넘는 이들이 심정이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시' 블루레이 상영 시작. 왜 이렇게 이런 행사는 깔끔하게 되는 법이 없는지, 영사실에서의 플레이어 조작 미스로 이창동 감독님의 소개 인트로가 나오지 않아 재차 상영을 하게 되었는데, 완전한 손님이라기 보다는 반 운영자의 심정으로 앉아 있던 나도 진땀 났을 정도였으니, 박대표님의 심장은 얼마나 빨리 뛰었을지...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DP 리뷰를 위해 이미 블루레이 타이틀을 여러 차례 먼저 보았던 터였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보는 맛은 역시 또 달랐다. 그 만큼 '시'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던 것도 있겠고.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에 대한 리뷰는 곧 DP 리뷰를 통해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그렇게 상영이 끝나고 곧 이어진 이창동 감독님과의 GV. 영화평론가 이상용 님의 진행으로 시작된 GV는 이 특별한 자리에 대한 의의와 '시' 블루레이를 처음 보게 된 감독님의 솔직한 (아주 솔직한;;;)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블루레이에 수록된 음성해설까지 다 들었던 터라, 겹치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고 가끔씩 서로 웃어가며 즐길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GV였다. DP회원들 외에도 감독님의 팬들 및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자리를 함께하여 그 어느 때보다 질문자가 많은 GV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후 싸인회를 위해 빨리 마무리해야 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시'에 대한 이야기 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아주 살짝 들을 수 있었는데,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쉽게 성사될지 여부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임을 슬쩍 드러내셨는데, 꼭 성사되어서 내년 즈음에는 신작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GV가 끝나고 극장을 찾은 DP회원들 약 150명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셨는데, 아마도 블루레이를 미리 구매했던 이들에게도, 감독님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싸인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뒤 감독님께 나즈막하게 내 이름을 얘기한 후, 블루레이에 멋지게 싸인을 받았다.





일반판에 제공되는 슬리브 대신 DP한정판에만 제공되는 특별 슬리브에 일부러 싸인을 받았다. 감독님께 '나중에 DP에 블루레이 리뷰 올라오면 꼭 한 번 봐주세요'라고 말해보고도 싶었지만, 그 말은 고이 접어두고 그냥 싸인만...

DP컬렉션의 두 번째 타이틀 '시'가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불러와서 그 다음 타이틀이 제작되는 힘을 얻었으면,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이런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가 걱정없이 제작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길 꿈꿔본다. 이게 꿈에 가깝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확장판으로 더 깊어진 깔끔한 범죄영화


척 호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벤 애플렉 감독의 작품 '타운 (The Town)'은 '디파티드', '히트' 등을 비롯해 범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에 매우 충실한, 클리셰 그 자체로 보아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 무리는 은행강도를 일삼는 범죄자이고, 배경이 되는 '찰스타운'은 대대로 범죄가 가업처럼 되물림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이며, 이러던 가운데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 애쓰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이곳 (찰스타운)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마지막 범죄를 계획하게 된다. '타운'은 위의 내용이 전부라고 봐도 좋을 만큼 범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이들도 쉽게 짐작할 만한 이야기로 전개되며, 그 가운데 범죄 영화의 클리셰도 거의 모두 수행하고 있다.






'타운'이 괜찮은 영화일지 아닐지는 철저하게 이 영화에 기대하는 바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겠다. 만약 서두에 언급했던 '디파티드'나 '히트' 등을 기대했다며 정말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에 허탈함을 느끼게 되겠지만, 반대로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고 장르영화로서 범죄영화를 만나려고 했던 관객이라면, 적절한 클리셰와 괜찮은 무게감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조금 심심하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블루레이를 통해 재 관람하니 새삼 영화의 깊이가 은근하게 풍겨져 나와 범죄영화 특유의 공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다른 장르영화들도 그렇지만, 범죄영화의 경우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과 동시에 그저 범죄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게 감과 희열을 느끼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타운'은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아니 좋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다른 범죄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경적인 소재 선택에 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찰스타운'이라는 보스턴의 지역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팬웨이파크를 범죄의 무대로 삼는 다는 점과 더불어 주인공이 벗어나려는 굴레를 지역과 가족으로 구체화 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야기를 가족과 특히 지역적인 것으로 한정하면서 좀 더 지역적 특색을 갖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것이 한계로 작용하기 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타운'이 '찰스타운'을 벗어나는 더 큰 메시지를 그리려 했다면 정말로 기술적인 클리셰만이 남는 영화가 되었을 텐데, 감독 자신이 사랑하는 지역의 이야기로 한정 지으면서, 오히려 욕심을 덜어낸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지역적 한정성은 실제 찰스타운에서 벌어졌었던 은행강도 사건 및 도주 사건을 묘사함에 있어 더욱 치밀함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주민들의 참여는 물론, 당시를 기억하고 관련한 자들을 통한 자료조사를 통해, 아마도 당시를 기억하는 찰스타운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보더라도 허점을 쉽게 발견할 수 없도록 '현실성'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타운'에 가장 큰 자부심이 되었으며, 영화의 색깔을 나타내는 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라면, 극 중 조직의 대부로 등장하는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때문이었다. 올해 1월 세상을 떠나 많은 영화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는데, 스크린을 통해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건 '인셉션'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결국 이 작품 '타운'이 국내에서 만나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올해 4월 영국에서 개봉예정인 'Killing Bono'라는 작품이 유작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이 작품은 개봉이 어려울 듯해 국내 극장에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건 '타운'이 될 것 같다). 배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은, 이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히스 레저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역시 영화와는 별개로 쓸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인셉션'과 이 작품 모두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역시 분량과는 상관없이 별다른 장치나 과장 없이도 조직의 대부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타운'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은 범죄영화지만, 피터 포스틀스웨이트로 인해 조금 더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s & Sound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보스턴의 풍광을 분위기 있게 담아내고 있는데, 칼 같이 선명한 화질과 외곽선의 표현은 아니지만, 범죄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장면보다는 보스턴 찰스타운을 하늘에서 바라본 장면들처럼, 배경을 묘사할 때 좀 더 디테일 한 블루레이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다. 레퍼런스 급의 최신작들과 비교하여 조금은 아쉬운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극장에서 디지털 소스로 관람했을 때에도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던 원본을 감안한다면 BD의 화질이 특별히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매우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범죄 영화답게 '타운'에는 다양한 총기들의 격발 음, 자동차 추격전에서 발생하는 긴박한 효과음들과 폭발음 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총기들도 중화기에 가까운 수준에 총기들이 등장하고 대규모 총격 씬이 진행되는 만큼 차세대 사운드를 맘껏 즐겨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팬웨이파크에서 벌어지는 총격 씬의 경우 사운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공간감 있고 임팩트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실제로 극장에서 감상했을 때는 그렇게 사운드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자면, 블루레이의 사운드가 좀 더 체감하기에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Blu-ray : Special Features

'타운' 블루레이를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라면 123분이었던 극장판과는 다르게 총 153분의 확장판이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무려 30분에 가까운 분량이 추가되었는데, 삭제 장면이 추가된 경우가 아니라 기존 장면이 확장되거나 추가된 경우라 장면에 따라 전혀 볼 수 없었던 시퀀스가 통으로 추가된 장면도 있고, 전체 시퀀스에서 짧은 장면들이 새롭게 추가된 장면들도 확인할 수 있다.





블루레이에는 극장판과 확장판이 각각 수록되었는데, 확장판의 경우 확장된 장면이 나올 때 마다 화면 좌측 상단에 아이콘으로 표기하여 추가된 장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확장판의 내용들은 극장판과 비교하자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는 장면들도 있는 한편, 각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탄탄히 해줄 장면들도 담겨 있어 결과적으로 좀 더 풍부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확장판의 경우 좀 더 주인공 더그와 클레어의 관계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벤 애플렉의 음성해설 역시 극장판과 확장판 두 가지 버전으로 제공되는데,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들어보면 단순히 극장판 버전에 확장된 장면에만 코멘트를 추가한 개념이 아니라, 확장된 시퀀스의 경우 그 앞 뒤까지 고려하여 다른 전개로 음성해설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벤 애플렉이 얼마나 많은 세심한 연출을 하고 있는지 과장 없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음성해설 트랙에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가영상은 'FOCUS POINT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본편을 보다가 관련된 장면이 있을 때 안내가 나오면 확인할 수도 있고, 별도로 부가영상만 따로 볼 수도 있도록 선택할 수 있다. 'Pulling Off The Perfect Heist'에서는 극 중 등장하는 첫 번째 은행강도 장면을 통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현실성에 대해 들려준다. 실제 찰스타운에서 벌어졌던 이 사건을 재현하면서, 찰스타운 사람들이나 FBI에서 보았을 때에도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을 엿볼 수 있다.






'The Town'에서는 작품의 배경이 된 '찰스타운'에 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범죄가 세습되고 보스턴의 대부분 범죄에 연루된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마치 유럽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운 거리로 이뤄진 곳들도 존재하는 지역적 특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Nuns With Guns : Filming in the North End'에서는 극 중 수녀 가면을 쓰고 벌이는 노스엔드의 추격전에 대한 뒷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연출을 위해 동원된 자동차 스턴트에 대한 촬영장 모습과 감독과 스텝들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The Real People of The Town'에서는 실제 찰스타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주요 캐릭터를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의 경우 실제 찰스타운 주민들을 캐스팅하였고, 직접적인 캐스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자문을 얻는 역할 등으로 작품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부가영상을 보다 보면 '타운'은 마치 재현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Ben Affleck : Director and Actor'에서는 '타운'에서 감독과 각본 그리고 주연을 맡은 벤 애플렉에 대한 동료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물론 다양한 벤 애플렉의 재능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독으로서 그의 면모를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동료들의 인터뷰와 수록된 짧은 촬영장 영상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프로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The Cathedral of Boston'에서는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에서의 촬영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펜웨이파크에서 다른 촬영도 아니고 총격씬의 촬영 허가는 관계자들이 전하는 것처럼, 레드삭스의 골수 팬인 벤 애플렉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그라면 단순히 세트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펜웨이파크에 대한 존경을 담아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시퀀스 하나는 실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면이 되었다.


[총평] 벤 애플렉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타운'은 찰스타운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현실성을 범죄영화라는 장르에 잘 녹여낸 깔끔한 범죄영화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으로 미뤄보았을 때 '타운'은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며 또한 극장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확장판은, 이 괜찮은 범죄영화에 좀 더 풍부함을 더해주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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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속 운명론에 대해


'쿵푸팬더'는 히어로 물이다. 그것도 고전적인 운명론에 근거한 히어로 물이다. 비범하기는 커녕 평범하지조차 못한 주인공 '포'가 전설 속의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이었다는 것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속편에 와서도 또 한 번 이 운명론을 영화의 맨 앞에 내세우고 있다. 평범한 주인공이 본래 부터 영웅이 될 수 밖에는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따져보면 결국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될 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작 좀 힘 빠지고 부정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넌 그럴 운명이야' '너의 인생은 이미 영웅의 길로 정해져있다'라는 말은 그럴싸하고 멋져보이지만, 영웅으로 선택 받은 본인의 의지는 재쳐두고라도, 그 주변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이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힘빠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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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대사부 우그웨이 옹 때문!)


'쿵푸팬더'의 운명론은 대사부인 우그웨이가 전설 속의 용의 전사로 그 동안 수련해오던 무적의 5인방이 아닌 이들을 동경해오던 실수 투성이의 팬더 '포'를 지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꾸 평범하지도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다보니 '포'의 여러가지를 비하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철저히 노력의 정도로 보았을 때 평범에도 못 미친다는 표현이다). 그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방식대로 용의 전사로 선택 된 포를 무적의 5인방과 스승인 시푸가 별로 못마땅하게 여겨 포를 구박하고 그 과정 속에서 포는 엄청난 친화력을 발휘해 이들 모두를 감동시켜, 결국 모두가 동의할 수 없었던 이 운명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여기에는 간과한 가장 큰 오류가 있다. 특히 포가 이들에게 (특히 용의전사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았던 타이그리스에게) 인정 받는 과정이 딱 드림웍스와 전체관람가 영화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번 글처럼 운명론만 가지고 작품을 해석했을 때에는 분명 가장 큰 헛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이야기를 좀 더 현실에 대입해보자면 평생을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쌓아왔는데, (정말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뚱뚱한 팬더가 그 자리에 적임자로 선택 받았고 그 선택이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을 맞닥들였을 때, 과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얘기다. 한 몇 년 무슨 대회의 우승을 목표로 연습한 것도 아니고 평생을 그것에만 몰두에 수련을 쌓아왔는데 말이다. 이런 현실을 보았을 때 타이그리스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보다는 오히려 타이렁의 반응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 '타이렁'의 이야기가 이제야 나왔는데, '쿵푸팬더'가 인상적이고 더 큰 인상을 남겼던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악당의 롤을 부여 받았다고 생각되는 타이렁 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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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는 '쿵푸팬더' 최고 동정심드는 캐릭터 '타이렁' ㅠ)


개봉 당시에도 썼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포가 루저를 대변하는 캐릭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타이렁이 더 루저에 각가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전편에서 등장하는대로 타이렁은 어린 시절부터 마스터 시푸에 의해 차근차근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았으며,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수재 중에 수재였다. 딱 하나 문제라면 엘리트 코스를 단기 속성으로 수료했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 탈이었을 터. 타이렁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결코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기 보다는, 너무 열심히 하고 잘한 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실력'이 아닌 '운명'에 의해 그냥 '너는 아니다'라는 답을 얻게 되었을 때 타이렁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쿵푸팬더' 전편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캐릭터는 당연히 타이렁이었다. 누구나 타이렁과 같은 현실에 놓이면 더하면 더했지 그처럼 실망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타이렁이 이후에 벌이는 이른바 '삐뚫어진' 행동들은 타이렁을 욕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이렁은 아마 우그웨이는 물론 자신을 자식 같이 대했던 시푸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나 한테 왜 그랬어요'


정말 운명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면, 타이렁이나 타이그리스 같은 피해자는 애초부터 만들지 말았어야지. 이 우그웨이 영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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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운명론은 속편인 '쿵푸팬더 2'에서도 등장한다.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을 타고 난 포의 이야기 대신, 쿵푸를 지키고 셴으로부터 마을과 성을 지키도록 운명지어진 '팬더' 포의 대한 이야기 말이다. 공작인 '셴'선생은 타이렁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도 넓은 의미에서 보았을 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정해진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싸우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셴'을 알아왔던 예언자는 정해진 예언을 들어 '셴'을 압박하는데, 이유는 정말 '예언' 혹은 '점' 때문이 전부다. 자신의 앞길을 하얗고 검은 무언가가 반드시 막아서게 되리라는 예언을 극복하기 위해, 그 싹부터 모두 잘라내려고 애쓴 셴의 이야기 역시 따지고보면 슬픈 이야기다. 물론 타이렁과 같은 울컥하는 공감대는 부족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쿵푸팬더 2'에서도 역시 이 운명론은 절대 비껴가지 않고, 이들을 둘러싼 현실을 관통한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으며, 결국 정해진 순간에 맞춰 영웅이 어떻게 각성하는 가하는 방법론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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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쿵푸팬더'의 운명론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이 시리즈에서 발견한 것은 이런 운명론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용의 전사'에게 지워진 짐이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수준의 짐도 아니고, 오히려 누구나 닮고 싶어하고 되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이 노력이 아닌 100% 운명 (운)에 의해 정해져있다는 것은 여전히 선호하는 줄거리는 아니지만, 영화가 앞서 언급한 타이렁이나 타이그리스, 셴을 그리는 방식을 보면 이들을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가득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편에서 타이렁을 묘사하는 건 표피적으로는 분명 선할 여지가 없는 악당으로 설정했어야 더욱 깔끔했을 테지만 (더군다나 이런 오락영화에서는), 영화는 타이렁이 용의 전사가 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을 짧지만 묘사하고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승이었던 시푸가 타이렁에게 갖는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안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예전에 1편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치 '스타워즈'가 연상되는 오비원과 아나킨과 같은 관계를 시푸와 타이렁에게서 느낄 수 있었는데,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다시 아나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타이렁에게도 마지막에 기회를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그랬다면 '쿵푸팬더'는 좀 더 완벽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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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2'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셴'을 그리는 방법도 전편에서 타이렁을 그리는 방법과 방법론에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그 세기나 비중에 있어서는 분명 타이렁보다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셴에게는 타이렁과 같은 공감대를 이끌 만한 요소가 없었고, 포와 경쟁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셴과 운명과의 싸움에 포가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좀 더 전체적인 스토리와는 다른 두개의 스토리가 존재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셴이 성을 차지하고 무기를 개발해 쿵푸를 모두 없애버리려고 한 의도의 근원을 쫓아가보면, 다른 악당들과는 다르게 어떤 야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내쫓았던 (이 과정에서도 부모가 셴을 미워래 내쫓은 것이 아니라 운명론에 근거하여 어쩔 수 없이 쫓아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하지만 결국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과) 본인이 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예언과 쿵푸 등에 관련된 것이었기에 발동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셴이라는 캐릭터 역시 포와 선과 악으로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라기 보다는, 포의 운명론에 희생될 수 밖에는 없는 또 다른 안타까운 캐릭터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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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쿵푸팬더' 시리즈에 담겨있는 운명론은 결과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는 이를 선택하며 희생될 수 밖에는 없는 캐릭터들에 대한 연민이 조금씩 담겨있어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운명론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말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이, 속편 및 만약 이 시리즈가 마무리 된다면 그 마지막 작품에서 포가 맞이했던 운명론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포의 운명이라는 것이 자신을 위해 주변이 모두 희생해야만 하는 운명일지, 아니면 마지막에 가서는 포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다른 길을 택할지, 아니면 또 다른 운명과 맞서 싸우게 될지 그 결과를 꼭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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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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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2 (Kung Fu Panda 2)

포의 근원을 찾는 두 번째 이야기



헐리웃에서 만든 작품답지 않게 동양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패러디 수준이 아닌 오마주로 이끌어 낸 것은 물론 전연령이 즐길 수 있는 재미까지 담고 있던 작품이 바로 '쿵푸팬더'였다. 전편에 대한 만족감이야 개봉 당시 리뷰와 블루레이 리뷰 등을 통해 이미 얘기했으니, 이 글에서는 바로 최근 개봉한 속편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영화 '쿵푸팬더 2' 역시 이런 생략이 가능한 작품이었는데, 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설정을 전편에서 끝마쳤기 때문에 속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에 휩쓸린 포의 이야기를 좀 더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속편들이 전편만 못한 이유는, 전편에서 비중있게 그리는 캐릭터 설정과 히어로물의 경우 (쿵푸팬더는 어쨋든 운명론에 근거한 히어로물의 범주로 볼 수 있겠다) 평범한 주인공이 히어로가 되는 과정에서 얻는 재미와 감동을 속편에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태생적 이유 때문일텐데, '쿵푸팬더 2'는 이러한 단점을 1편에서 암시했던 포의 출생의 비밀, 팬더인 포의 근원을 찾는 이야기로 보완하려 하고 있다. 사실 이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이 '비밀'이라고 하기 부끄러울만큼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그 자체보다는 그 배경을 둘러싼 이야기와 사건들을 통해 포가 한 걸음 또 성장하는 계기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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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통해 교훈을 주려 했다면, 속편은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통해 또 다른 교훈을 주려고 하고 있다. 전편에는 '타이렁'이 있었다면 속편에는 공작새인 '셴'이 등장하는데, 이 '셴'이라는 캐릭터 역시 '타이렁'과 마찬가지로 본디부터 악당이었다기 보다는 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내몰려 반대에 서게 된 캐릭터라 할 수 있을텐데, 그러한 점이 이 '쿵푸팬더' 시리즈가 갖는 특별한 (어쩌면 가장 특별한) 점이 아닌가 싶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차원이 아니라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운명론과 결부하여 깊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이 아닌 별도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다뤄볼 예정이다.


그 결과가 허무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쿵푸팬더 2'는 포의 근원을 찾아가는 또 다른 여정이다. 전편이 '용의 전사'로서 각성하게 되는 과정이었다면, 속편은 이미 용의 전사로 활약하게 된 포가 자신의 부모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인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통해 쿵푸의 고수로서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 모두 포의 근원과 관련된 것으로서 결국 하나의 여정으로 볼 수 있을텐데, 영화가 선택한 이 여정의 방법론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만약 단순히 포의 출생의 비밀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켰더라면 굉장히 심심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며, 이 영화가 상당히 힘을 주어 얘기하고자 했던 '쿵푸'에 대한 메시지도 전달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두 가지 이야기의 적절한 접점을 찾은 것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쿵푸팬더 2'의 이야기가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 시리즈가 애초에 몇부작으로 기획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시리즈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2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지루하지 않게 오락적 요소와 맞물려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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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전편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쿵푸팬더'는 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조명(Lighting)에 굉장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애니메이션에서 조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실사영화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텐데, 그 가운데서도 '쿵푸팬더'는 매우 세심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조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연광을 논하는 것이 우습지만, '쿵푸팬더 2'에서는 이 작품 속 자연광의 사용이 실사 영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대단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조명에 있어서 기술적인 우월함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 다양한 밝기의 배경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실내와 실외, 자연광과 인공 조명, 불빛과 반사광 등 다양한 조명의 활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작품의 장점은 추후 블루레이를 통해 좀 더 확연히 표현되지 않을까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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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스 3D의 볼거리도 충분한 편이다. 최근 들어 3D포맷으로 개봉하는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반대로 3D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하락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4D 상영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과 3D가 별로 연관이 없지만, 억지로 포맷에 끼워맞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쿵푸팬더 2' 아이맥스 3D는 포맷과 작품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미 입체 영화의 신기함에는 제법 익숙해진터라 더 이상 입체만을 강조하는 3D영화는 의미가 없지만, 아직까지 입체 효과에 신기함을 갖고 있는 관객들이라 하더라도 '쿵푸팬더 2'는 나쁘지 않은 3D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굳이 입체임을 억지로 뽐내지 않으려는 작품들의 단점이라하면 3D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조금 심심한 작품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포의 회상장면의 경우 일부러 2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좀 더 대비되는 느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이 회상 장면의 경우 일반적인 본편이 실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고 보았을 때 별도의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두어, 관객들로 하여금 더 이상 본편을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어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대비는 '쿵푸팬더 2'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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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멀리하는 터라, 이 영화의 감독이 한국계 여성인 여인영 감독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역시나 싶었다. 왜냐하면 작품을 보는 내내 오히려 전편보다 더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은 장면과 설정들이 나오는 걸 보고는 '어떤 서양 감독인지 중국 문화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을 만큼, 어설픈 설정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계 감독이 아닐까? 라는 예상마저 했을 정도였는데, 중국이 만든 화약이라는 점을 스토리에 깊게 녹여낸 점이나 예전 '황비홍'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사자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퀀스, 그리고 중국의 곳곳을 표현해 낸 디테일은 단순히 설화나 전설에 기대어 만든 것이 아니라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통해 만들어 진 것임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아,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도 이런 세계적 블록버스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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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서 여러가지 이유들을 다 재쳐두더라도 '쿵푸팬더 2'는 가족오락 영화로서 러닝타임을 신나게 즐기기에 개인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각각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만족도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포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이다. 울고, 웃고 즐겼으니 이 정도면 대만족!



1. '쿵푸팬더 2'는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모두 디자인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다른 영화들보다 끝까지 크래딧을 즐기는 관객들이 더 많더군요. 굳이 쿠키 장면이 없더라도 관객을 끝까지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네요.


2. 평소에도 엔딩 크래딧에 관심이 많아 주의깊게 보는 편이지만, 이번 크래딧에서는 놀라운 이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더군요. 일단은 몽키의 목소리 역할을 맡은 성룡을 다른 캐스팅과는 다르게 'and'로 표기한 것이 이채로웠고, 캐스팅 가운데서는 장 끌로드 반담과 빅터 가버의 이름까지 만나볼 수 있어 놀라웠습니다. 그래도 가장 놀라웠던 이름이라면 길예르모 델 토로가 아니었나 싶네요. 참고로 델 토로는 'executive producer'와 'creative consultant'를 맡고 있는데,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야 말로 그의 주종목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가족영화라 그의 컨설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네요 ㅎ


3. 본문에 있는 것처럼 '쿵푸팬더' 시리즈가 담고 있는 운명론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별도로 글을 써볼 생각입니다. 이것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흥미로운 부분이거든요!


4. 3편도 기대가 되네요. 대충 예상도 되구요. 과연 용의 전사 포의 운명은 어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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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愛 (No Name Stars)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5.18 광주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당시를 치열하게 겪은 세대도 아닐 뿐더러,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입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은 부모 아래서 그 어떤 슬프고 참혹한 역사보다도 많은 자료와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던 터라, 5.18 광주는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참혹한 참상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들과 책들을 통해서 였는데,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이 들기 보다는 그저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와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광주시민들, 더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알아갈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이제와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이런 기회들이 내 인생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광주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후 정치적인 잣대를 세우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너무 이 진실 속에서 살아온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언제부턴가 진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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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5월. 나는 또 하나의 오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를 보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5.18 광주의 한 가운데에서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아주머니들, 어머니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오월애'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말들을 통해, 2010년 광주를 다시 돌아보는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광주와 관련된 여러 다큐, 인터뷰, 영상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접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 과거사에 왜 눈물을 흘리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우리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현 정권에 들어서서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1980년대 피흘려 싸운 광주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즉, 이것은 결코 남의 일,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며,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적어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른다면 오월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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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과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관련된 나의 일이라는 점에서 5.18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아직도 오월 광주의 슬픔과 희생이 치유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잊혀져야할 과거사로 점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5.18은 혁명으로 인정받고, 희생자들은 민주투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참혹한 일들을 저질렀던 범죄자들은 죄값을 치르기는 커녕,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한 짓은 절대 용서받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이렇다하더라도 이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개숙여 사죄할 때나 가능한 일일텐데,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사실을 점점 지워가고 있는 지금에서 어떻게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끄럽고 화가나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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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광주의 슬픔과 눈물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은, 함께 싸우다 먼저 자신을 던져 희생했던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보답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오월 광주를 끌어 안은 채 또 다른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흘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작품을 보며 흐르는 내 눈물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들에게 너무 소홀했고, 사회와 정부는 또 다시 이들을 폭도로 내몰 궁리만 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는 커녕,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만 자행하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감출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 '오월愛'는 광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지난해 도청건물 철거를 두고 벌어진 일들만 제외하면 거의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렇다고해서 결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받아들이는 이들에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오월愛'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금 책임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광주 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로서는, 적어도 내가 안다고 해서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미약한 노력이라도, 5.18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이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세대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오해로 인해 잘못된 사실들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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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월 광주가 아닌 우리의 광주. 그리고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다'로 한정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미래로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담아 '끝나지 않는다'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1. 보통 때 같으면 슬픔이 더 깊었을 텐데, 이번에는 사실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도 가끔씩 TV에 등장하는 29만원 그 때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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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느와르 (L.A. NOIRE)

스크린 샷 위주의 초반 단평


출시 전 트레일러와 참여 스케일 만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락스타 게임즈의 'L.A. 느와르'를 프리오더를 통해 구매하였고, 정말 없는 짬을 틈타 조금씩 플레이 해보았다. 뭐 일단은 'GTA'와 ''레드 데드 리뎀션'을 만든 록스타 게임즈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게임 '대부' 시리즈를 재미있게 했던 터라 그 보다 훨씬 더 향상되고 스토리가 강화된 이 타이틀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조금을 해보았을 뿐이지만 (요 근래 했던 게임들치고는 그래도 짧은 시간에 제법 많이 진도를 나간 상태;), 초반 느낌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 넘어가보려고 한다. 뭐 정리보다는 발로 찍은 스샷 구경하는 재미로라도 슥슥 보셔도 좋을 듯 ^^;
 





게임은 1947년 미국 L.A를 배경으로 진행되는데, 주인공은 콜 펠프스라는 경찰이며 간단한 튜토리얼을 거쳐 형사로 거듭나 본격적인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을 갖고 있다. 일단 'L.A.느와르'의 흥미로운 점은 1947년 L.A를 재현한 게임 속 환경들이다. 클래식한 의상과 자동차, 그리고 거리의 풍경들은 정말 웬만한 미드나 영화 못지 않은 분위기 재현으로 시선을 끈다. 하지만 무엇보다 'L.A.느와르'를 대단한 작품으로 만들게 하는 것은 게임 속 캐릭터들의 엄청난 표정 묘사들이다. 기존에 조금 완성도가 있다 싶은 게임들에서도 캐릭터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 수준은 조금 있었지만, 적어도 'L.A.느와르'에 버금가는 묘사 수준은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 표정의 변화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잠깐 정신을 놓으면 이게 게임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실제 미드 속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연기를 게임 캐릭터를 통해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단서를 기반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 기본.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최대한 많은 단서를 얻어야 한다. 질문을 성공할 때마다 받게 되는 포인트를 통해, 몇가지 힌트 중 한가지를 선택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L.A.느와르'의 표정 묘사 수준이 이 정도로 높은 것은 단순히 기술적 우월함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게임 진행에 다양하고 디테일한 표정 묘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핵심은 사건 현장 및 주변에서 얻는 단서를 기초로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심문 시퀀스에서 주인공은 준비된 질문을 던지고 그의 대한 반응을 주시하며 진실 / 의심 / 거짓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여기에서 용의자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진실을 말할 때, 의심할 만한 대답을 할 때, 거짓말을 할 때에 따라 다른 표정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대사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만큼 표정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 자막이 지원되지 않음에도 이 심문 시퀀스를 어느 정도나마 즐겨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용의자를 심문할 땐, 무엇보다 표정에 주목하라! 흔들리는 눈빛, 시선처리, 입모양 모두가 단서!


사건현장 주변을 꼼꼼히 살펴야만 단서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얻을 수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L.A.느와르'는 한국어 자막은 지원되지 않는다. 기존 'GTA'나 '레드 데드 리뎀션'도 지원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나 스토리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심문'이 베이스가 되는 게임이기에 우리말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점이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턱없이 부족한 영어실력과 표정을 읽는 독심술 스킬을 통해 대략적인 내용 파악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어찌 100% 네이티브들이 즐기는 수준과 같을 수 있으랴. 아마도 이 게임이 우리말 더빙이나 자막을 지원했더라면 200%는 재미있는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부족한 히어링으로 열심히 들으려고 하다보면, 게임의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는 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 용의자를 추적하다보면 격투 시퀀스도 등장한다. 어지간히 못하지 않는다면 맞아 죽을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될듯!



아무리 스토리가 중요하다해도, 기본적으로 차타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이 경찰이라 좋은 점은 거리에 널린 차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타볼 수 있다는 것!




사건 중심으로 챕터가 이루어져 있는데, 그 타이틀 역시 몹시 느와르스럽다!





메뉴를 통해 지금까지 플레이하며 진행된 대사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그대로 프린트까지 된다면 나만의 'L.A.느와르'를 만들 수도 있을 듯!


아직 초반이라 간단한 느낌 정도만 정리해보았지만, 앞으로 게임이 진행되면 될 수록 익숙해지는 것 만큼이나 복잡해지는 사건들 덕에 점점 영어의 압박이 가중되는 느낌도 든다. 100% 즐길 수 없는 것이 분명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듯. 앞으로는 또 어떤 사건을 맡아 단서를 얻고 해결해 나갈지 두근두근한 마음! 요즘 나는 퇴근하면 그 때의 L.A로 떠난다~ (뭔가 눈물나는 듯 ㅠ)


* 특별 짤방은 미드를 조금이라도 보신 분들, 더 직접적으로 '앨리어스'나 '로스트' 등을 보신 분들이라면 바로 알아보실 바로 그 남자!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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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조류 (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양념으로만 가득찬 영화



조니 뎁을 디즈니 가족영화의 캐릭터로 승화시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 '낯선조류'를 보았다. 사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는 거의 조니 뎁에 대한 팬심으로 보기 시작한, 그리고 보고 있는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번 '낯선조류'에서는 페넬로페 크루즈까지 출연한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는 재쳐두고서라도 한 번 봐야겠다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치가 별로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낯선조류'는 그다지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제작비와는 상관없이 이미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알려져 있는 시리즈의 작품답지 않게 스케일이 느껴지는 볼 거리는 거의 없었고, 소소한 즐거움도 밋밋한 수준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원작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해 '캐리비안의 해적'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는 없지만, 만약 '해리포터'의 경우처럼 전체 하나의 이야기를 조금씩이라도 전개해 가는 과정이었다면 모를까, 아니 그렇다하더라도 큰 줄기의 진전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에피소드 정도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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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보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는 있지만, 그 배경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보다는 잭 스페로우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그 이야기 역시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캐릭터 뒤에서 근근히 지원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던 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작품의 특성은 3편에서 조금씩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본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3편도 별로이지 않았느냐'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래도 3편이 나름 재미있었던 것은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페로우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원맨쇼를 비롯해, 1편부터 시리즈에 참여해 온 '윌 터너 (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 (키이라 나이틀리)'은 물론,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주윤발이라는 새로운 배우의 참여를 통해 흥미요소와 연속성을 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낯선조류'에서는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 '바르보사'와 '깁스 (케빈 맥널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연속성 보다는 에피소드의 느낌이 더 강해 단순히 캐릭터를 소비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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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가장 큰 이유라면, 그 동안 시리즈를 이끌었던 고어 버번스키 대신 롭 마샬이 연출을 맡은 사실을 들 수 있겠다. 롭 마샬은 '시카고' '나인' 등 뮤지컬 영화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었던 감독인데, 어차피 결과물이 아쉽다보니 제작사도 디즈니겠다, 혁신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에 뮤지컬 적인 요소를 가미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위험한 상상도 해본다. 출연진들이야 뭐 가무에도 능한 배우들이니 괴작이 될 지언정 무언가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마도 이랬다면 이 시리즈의 팬들은 더 떠났을지도 모르니 개인적인 상상으로만 그쳐야겠다. 어쨋든 결과적으로 차라리 뮤지컬 시퀀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좀 심심한 작품이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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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와 젋음의 샘에 관련된 이야기와 캐릭터, 그리고 시리즈의 주인공인 잭 스페로우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다보니, 모두가 조금씩 여운 만을 남기는 작품이 된 듯 하다. 특히 인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비중이 모호하다보니 감정을 더 싣기도 애매하고 그냥 곁가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른 가지들에 비해 흥미로운 그런 경우였다. 이야기 자체가 많은 캐릭터들이 젊음의 샘이라는 하나로 모여드는 구조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2시간 정도의 오락영화에서는 좀 더 캐릭터와 이야기의 줄기를 심플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검은 수염, 안젤리카, 인어, 젋음의 샘, 스페인 군대, 바르보사 등 각각은 나쁘지 않은 양념들이었지만, 메인 요리는 없는 양념으로만 가득찬 영화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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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도 감독인 롭 마샬과의 인연으로 주디 덴치가 카메오 출연을 한 것 같더군요.

2. 이번 작품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잭 스페로우보다도 그의 아버지를 연기한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차드랄까. 뭐 이제는 두말하면 잔소리인 얘기지만, 조니 뎁이 잭 스페로우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많은 부분을 참고한 캐릭터가 키스 리차드였죠. 그래서 전편에 아버지 역할로 등장도 하게 되었던 것이구요. 짧지만 반가운 출연이었습니다!

3.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쿠키 장면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정도의 장면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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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와 세스 로건의 그린 호넷 비긴즈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에 걸쳐 방송되었던 WXYZ 라디오 시리즈로 처음 등장한 '그린 호넷'은, 이후 1960년대 미국 ABC사의 TV시리즈로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또 하나의 히어로 시리즈였다. TV시리즈 '그린 호넷'은 범죄자를 가장한 영웅 그린 호넷과 그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인 동양인 케이토가 벌이는 악당들과의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이 오래된 TV시리즈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 당시 케이토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소룡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시 헐리웃에서 영화화 된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이 작품의 감독으로 주성치가 물망에 올랐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이소룡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을 자주 표한 적이 있는 주성치였기에, '그린 호넷'과의 연결 고리도 어색하다기보다는 기대하는 바가 더 컸으며 또한 케이토 역할에 국내 배우 권상우가 언급되기도 해 또 다른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던 미셸 공드리 감독에게 맡겨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의외일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는 미셸 공드리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등 다른 어떤 감독들보다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의외였던 것은 공드리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스튜디오마저 공드리에게 '이런 주류 상업영화를 정말 하겠느냐?'라고 되물었을 정도라고 하니 제작자와 팬 모두에게 의외였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둘도 없는 팬이었지만 그가 '그린 호넷'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간 공드리의 작품들과 '그린 호넷'과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으며,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 보여주었던 감각들 역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떻게 소비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우려 했던 대로 미셸 공드리와 그린 호넷의 조합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미셸 공드리의 장점은 아날로그 한 것과 소박한 것,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을 무색하게 만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치장한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장점들이 제대로 발휘되기에 '그린 호넷'의 무대는 적절하지 않았으며 주연과 제작/각본을 맡은 세스 로건과의 궁합도 그리 어울리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린 호넷'에서 미셸 공드리만큼 (혹은 더!)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라면 세스 로건을 들 수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는 주연인 그린 호넷 역할은 물론 제작과 각본에까지 참여하고 있어 사실상 세스 로건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부자이면서 별다른 정의감보다는 그저 질투나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린 호넷'이 된 브릿 리드 역할과 세스 로건의 캐릭터는 잘 맞아 떨어지는 편인데, 전반전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싱크로율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브릿 리드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조금은 부족한 점도 없지 않다. 전반적으로 '배트맨' 같은 히어로 물 까지는 아니더라도 '킥 애스'와 같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던, 더 나아가 예전 TV시리즈를 즐겼던 세대들은 물론 세스 로건과 나란히 하는 최근 영화 팬들까지 고루 만족시킬 수 있었던 여지가 있었던 작품이었으나, 조금은 아쉬운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준수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장면이 많은 편인데 레퍼런스급 타이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암부 표현력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감상에 불편함을 줄 정도는 아니며 장면마다 조금씩 편차를 보여준다. 아주 쨍한 화질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화질이 될 수도 있겠는데, 미셸 공드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칼 같은 선예도 보다는 아무래도 지금과도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자동차 추격 씬, 케이토의 화려한 무술 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격투 씬 그리고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인공 '블랙 뷰티'가 만들어 낸 다양한 무기들이 활용되는 사운드를 차세대 포맷답게 수준급 음질을 들려준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볼거리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디테일 한 측면보다는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임팩트와 규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세스 로건과 프로듀서 그리고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세스 로건은 시종일관 그 특유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는데, 이런 유쾌함을 국내 소비자들이 함께 즐길 수 없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Delete Scenes'에서는 총 9가지 삭제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모두 본편과 동일한 HD퀄리티의 영상으로 수록되었다.

''Awesoom' Gag Reel'' 은 촬영장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아마도 다른 작품의 Gag Reel이었다면 조금은 흘려 보는 부가영상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세스 로건이 출연하다 보니 좀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고 결과도 여타 Gag Reel 보다는 더 재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의외였다면 미셸 공드리 감독의 '깨는' 모습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Trust Me' Director Michel Gondry'에서는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이 작품을 처음 맡게 된 이유부터 그가 스튜디오에 먼저 보내온 테스트 격투 장면 영상과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그만의 재능이 발휘된 부분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미셸 공드리와 처음 작업해보는 헐리웃 스텝들이 처음에는 그가 의도하는 바와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이유도 모른 채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가 나중에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아, 그리고 말미에 등장하는 공드리의 충격적인(?) 저질 유머도 인상적이었다.





'Writing The Green Hornet'에서는 각본과 총제작을 맡고 있는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린 호넷'을 쓰면서 고려했던 점들,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들에 대해 들려준다. 캐릭터와 캐스팅에 관한 뒷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것은, 크리스토퍼 왈츠가 연기한 처드노프스키 역할이 본래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






'The Black Beauty : Rebirth of Cool'에서는 영화 속 만능 자동차인 블랙 뷰티의 상세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The Stunt Family Armstrong'에서는 '그린 호넷'의 스턴트를 맡고 있는 빅, 앤디, 스콧, 이렇게 3명의 암스트롱을 통해 영화 속 스턴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Finding Kato'에서는 케이토 역할을 맡은 주걸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예전 '닌자 어쌔신'의 스텝들이 아시아에서 슈퍼스타인 비의 인기에 놀랐던 것처럼, 감독 겸 배우 겸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슈퍼스타인 주걸륜의 면면을 조명하는 한 편, 주걸륜이 케이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도 만나볼 수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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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2010)

메리를 둘러 싼 삶의 온도



영화를 보기 전 될 수 있으면 감독이나 배우 이상의 정보는 얻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는, 마이크 리의 신작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역시 감독과 짐 브로드밴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왠지 따스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삶에 대해 위로를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보게 되었다. 아무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피하더라도 포스터를 본 이상,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통해 나만의 예상을 잠시하도 해보기 마련인데, 내게 있어 이 영화는 노년의 부부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내 삶을 다시 한번 깊게 성찰하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것은 맞았지만, 위로 받기 보다는 더 큰 외로움과 메마름을 겪었달까. 그리고나서 새삼 되내어보니 그의 전작 '해피 고 럭키' 역시 마냥 행복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안에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담은 작품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마이크 리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깊이로 와닿는 것일까.



ⓒ Thin Man Films. All rights reserved


처음 영화를 보고 떠올려 보았을 때는 평화로운 노년의 부부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루스 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보자면 영화 포스터처럼 자신들이 깊게 뿌린 내린 나무라는 삶에 메리(레슬리 맨빌)와 아들 커플, 그리고 켄과 톰의 형에 관한 이야기가 가지처럼 엮여있고 새싹과 낙옆처럼 흘러가는 하나의 계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톰과 제리는 삶에 대해 통달해 누구든 감싸안아줄 것만 같은 인물들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이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라 할 만큼, 지독하게 계산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들만의 시간에 원치 않는 이가 끼어드는 것을 불편해하고 참을성의 한계 역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리의 직장 동료인 메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누던 친구였지만, 메리가 자신들의 삶에 원치 않을 정도로 끼어들면서 결국 감싸안기 보다는 냉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데, 우리들의 삶에도 원치 않는 이들이 눈치 없이 껴들거나 굳이 내가 나서서 포용하기에는 벅찬 이들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경우를 떠올리게 된다.


즉 톰과 제리의 행동은 앞서 말했듯이 냉정하게 보았을 때 매몰찬 행동이라기 보다는 이해가 가는 한계 상황이랄까. 제 3자가 되어 그들에게 '왜 더 따듯하게 감싸주지 못했나'라고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마음으로 보았을 때 메리라는 인물은 분명 이들 삶에 쳐내고 싶은 가지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Thin Man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마이크 리의 시선은 묘하게 메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아니, 이것이 감독의 의도한 바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계절'은 생각하면 할 수록 메리라는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메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삶과 주변은 고통과 외로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톰과 제리 부부를 비롯한 타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의 행복이 결국 그런 행복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큰 외로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인생의 씁쓸함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지났지만 메리는 그대로였고, 변한 것은 메리를 둘러싼 주변의 공기 뿐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정확히 메리의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메리를 둘러싼 삶의 공기는 사계절의 온도와 같이 흘렀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 수록 이 영화가 쓸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건, 계절이라는 건 반복되기 때문이리라. 메리에게 다시 봄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 봄은 어차피 매서운 겨울을 위한, 삶이 주는 아주 조금의 배려일 뿐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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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Night Fishing, 2010)

박찬욱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콜라보레이션



박찬욱 감독과 동생인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감독의 프로젝트 단편 영화 '파란만장'을 뒤늦게 IPTV를 통해 관람하였다. 공개 당시에 워낙에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라는 사실로 화제가 되었던 단편영화였는데, 극장 상영 기회는 아쉽게 놓쳤지만 쿡TV를 통해 이제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던 건 당연히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홍보의 포커스는 아이폰 4였지만 개인적으로 아이폰 4 촬영은 양념일 뿐, 단편이긴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이런 호기심 정도여서인지 오광록 외에 이정현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게 된 박찬욱/박찬경 형제의 단편 프로젝트 '파란만장'은, '박찬욱 + 아이폰 4' 라기 보다는 오히려 '박찬욱 + 어어부 프로젝트' 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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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래도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라는 트랜드와 맞물려, 박찬욱 같은 전문가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화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일까? 라는 궁금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 측면에서 '파란만장'은 마치 '봐, 아이폰 4로 이런 장면도 찍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의도된 장면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마케팅과 기술적 포인트에 맞춰 작품을 만들 박찬욱 감독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포인트를 포함하려고 의도한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영화와 거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앵글을 비롯해, 아웃 포커싱이라던가 스마트폰이라면 아마도 취약점이 아닐까 라고 생각되는 어두운 밤 장면, 더 나아가 수중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 촬영 카메라로서 아이폰 4가 갖는 기술적 가능성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절히' 배치 했다는 점인데, 가끔 3D입체 영화의 경우 너무 기술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의도 때문에 본편과는 어긋날 정도의 연출이나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는 점에서, '파란만장'은 이런 기술적 가능성의 노출과 작품의 분위기가 잘 균형을 이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얘기하자면, 스폰서인 올레KT와 박찬욱 감독의 팬들을 모두 적당히 만족시키는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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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편이라는 특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은 단순히 장편에 비해 분량이 짧은 것이 아니라, 단편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호흡과 분위기가 있어서 매력적이기 마련인데, 이를 모를리 없는 박찬욱/박찬경 감독은 단편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낚시터와 밤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설정, 그리고 굿을 벌이는 또 하나의 시퀀스는 기괴함과 모호함이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별다른 앞뒤 설명 없이도 어렵지 않게 단편 속 '순간'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광록과 이정현 두 배우의 연기를 들 수 있을텐데, 이정현이 표현한 캐릭터의 경우 얼핏보면 극중 캐릭터라기 보다는 (특히 노래할 때) 가수 이정현의 모습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이질감이 '파란만장'만의 아우라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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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의 기괴함과 단편 맛의 맛을 내는데 가장 인상적인 재료는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평소에도 아방가르드하고 독창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파란만장'이 더 단편스럽도록 그리고 더 기괴한 리듬을 갖도록 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던 어어부프로젝트는, '파란만장'을 통해 또 한번 다른 아티스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리듬과 공기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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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

제목이 8분이 아니라 소스코드인 이유



'더 문 (The Moon, 2009)'을 연출했던 던칸 존스의 신작 '소스 코드'를 보았다. 확실히 이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이크 질렌할이나 베라 파미가가 아니라 던칸 존스였다. '더 문'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재능과 SF적인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영화에 녹여내는 그의 방식은, '소스 코드 (Source Code)'라는 제목과 함께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을 선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에는 '인셉션 (Inception)'이 항상 함께 했었는데, 그 의도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셉션'을 거론해도 될 만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꿈 속의 꿈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 꿈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확장시켰지만 결국 그 안에는 주인공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매우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이자 드라마였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소스 코드' 역시 평행우주론이라는 세계관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SF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접근법으로 풀어낸 같은 방법론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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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카고행 기차안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주인공 콜터 (제이크 질렌할)는 열차 안에 있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심지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 그리고 곧 열차는 폭발하고 또 한 번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한 여성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열차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다시 열차로 돌아가야 하며, 8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채 다시 열차 속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스 코드'의 설정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에 관해 그렸던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설정들이 자주 등장하며, 꼭 이 설정만이 아니더라도 큐브에 갇혀 만져지지 않는 다른 이의 메시지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같은 시작점의 8분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은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연상시키게 하는데, 놓인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 극중 제이크 질렌할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은 빌 머레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익숙한 재료들과 설정들을 가지고 요리했지만, 던칸 존스의 이 완성된 요리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균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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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에는 더 강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줄기가 여럿 존재한다. 영문도 모른 채 소스 코드 속에서 '션'으로서 세상을 구해야만 하는 콜터의 이야기, 아프칸에서 헬기 조종을 했던 군인으로서 콜터의 이야기, 소스 코드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8분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티나 (미셸 모나한)를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스 코드'는 이들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가는 방법 대신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정쩡하고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 이야기에 (설령 그것이 오버스럽더라도) 몰두해서 극한까지 몰아가는 편을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몰고 가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방법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요소를 전부 껴안으려고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 던칸 존스의 '소스 코드'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아쉬움 보다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상황에 바로 놓여져버린 주인공 콜터의 개인사는 아버지와의 짧은 인연 (정말 짧은) 정도만 묘사되고 있는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짧은 아버지와의 연관관계 만으로도 후반부 콜터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에 아주 큰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와 아버지 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고, 콜터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화 한통으로 이런 여백을 모두 담아냈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의 숨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다른 SF영화였다면 아마도 가장 큰 이슈가 되었을 소스 코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소재 정도로만 등장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장황한 설명이나 상황 묘사 없이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역시 이 영화에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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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군의 주도로 진행되는 소스 코드 프로젝트의 배경에 깔린 음모라던지, 이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성공시키기 위해 암암리에 진행되는 일들, 더 나아가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면 D.J.카루소 감독의 '이글 아이 (Eagle Eye, 2008)' 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시스템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의 개입은 소극적으로 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상상을 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딱 그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 여지와 소스 코드 프로젝트를 대변하는 것은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굿 윈'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캐릭터의 묘한 비중이 '소스 코드'를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굿 윈은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닥터 러틀리지'와 주인공 콜터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서 두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 연결고리의 훌륭함이 (캐릭터나 베라 파미가의 연기 모두) 이 영화가 더 매력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갖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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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제목은 '소스 코드'보다는 오히려 '8분'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감독인 던칸 존스가 왜 '소스 코드'라고 제목을 가져갔을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전작 '더 문'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작품이 진정한 SF영화로 인정 받는 이유는 SF적 설정이나 세계관을 부각시켜 드러내지 않고 완벽하게 녹여낸 채, 그 토대에서 자유롭게 다른 얘기를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소스 코드'는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을 그 중심에 대놓고 부각시키지는 않았지만, 그 기반 위에 완전히 녹아든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 같은 SF영화를 만들어 냈기에 '더 문'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평행우주가 도대체 뭐야?' '그게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갖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과연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것을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SF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물론 이 영화가 과학적으로 완벽한 영화였는가에 대해서는 작은 의문들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도 세계관을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SF영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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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의 제목이 '8분'이었다면 아마도 그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났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마지막이라고 느꼈었다). 여기서 만약 영화가 끝났다면 감동과 여운은 더 했겠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평행우주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한 부분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끝났더라도 평행우주에 관한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던칸 존스는 자신이 결국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위해 감동적인 엔딩을 과감히 포기했고, 또 다른 감동의 엔딩을 선사했다. 말초적으로는 앞선 장면이 훨씬 더 감동적이긴 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엔딩도 평행우주론을 또 한 번 새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엔딩을 다 갖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1. 미리 알고 가긴 했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평행우주론에 대해 친절한 주석을 달아주신 홍주희씨 덕분에 아쉬움이 들더군요. 의역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주석을 번역자가 인장처럼 남기는 것은 과한 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전례가 있었죠). 설령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평행우주론'에 대해 몰랐다고해도 모르는 채로 보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 아닐텐데, 마치 '자 이런거였어'라고 가르치는 듯한 주석은 앞으로도 없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2. 저는 왜 닥터 러틀리지 역할을 맡은 제프리 라이트를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스 큐브로 생각했던 걸까요. 심지어 제프리 라이트가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아이스 큐브라고 생각하며 봤던 작품이 많네요 -_-;;

3. 결국 가장 불쌍한건 '숀'. 숀은 누가 챙겨주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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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2 - Hustle Real Hard

힙합씬의 10년 내공이 어디가랴



도끼(Dok2)의 드디어 발매된 데뷔앨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벌써 이 아이가, 아니 그가 힙합씬에 등장한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좀 뻔한 수식어를 들자면 도끼는 '힙합신동'이었다. 12살 어린 나이에 아이답지 않은 플로우와 캐릭터는, 적어도 겉 멋만 들어서 잠시 힙합바지 좀 끌다가 사라질 아이는 아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게 했었는데, 솔로 데뷔앨범은 이제야 선보이게 되었지만, 그의 10년은 결코 그냥 보낸 것은 아니었다. 사실 10년이라는 시간이 '엇? 벌써?'라고 느꼈던 이유도 그 동안 도끼의 활약이 왕성하지는 않았더라도 꾸준히 다른 앨범의 참여를 통해 있어왔기 때문이었는데, 그 간의 활동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고 이번 앨범 'Hustle Real Hard'를 들어보면 '힙합씬 10년 내공이 어디가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여러 MC와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해오던 도끼는 올해 초 소울컴퍼니를 나온 더 콰이엇 (The Quiett)과 일리네어레코즈 (Illionaire Records)를 설립, 'Hustle Real Hard'를 발표했다. 드디어 나온 첫 데뷔 앨범답게 'Hustle Real Hard'에는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이야기를 넘치는 자부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뭐 힙합에서 이 정도의 프라이드는 거슬린다기보다는 당연한 것에 가까울 정도인데, 내가 도끼라고해도 10년 만에 내는 데뷔앨범이라면 이런 비슷한 내용들의 가사들로 채우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이야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터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비트와 사운드의 경우는 '역시'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번 앨범은 도끼가 전곡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곡의 비트와 가사까지 맡고 있는데, 사실 힙합 팬들 사이에서는 어린 아이가 랩을 잘한다로 인상적이었다기 보단, 어린 아이가 만든 비트치고는 수준급이다 라는 이유로 인상 깊었던 그였기에 어쩌면 이번 앨범의 사운드 퀄리티와 비트의 만족스러움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어둡고 무거운 사운드가 주를 이룬 음악이 아닐까 했지만, 그 가운데에 달콤하고 가벼운 비트의 곡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재범 (JayPark)이 피처링한 'My Love'도 좋았고, '음악을 멈추지마' 같은 곡은 훅도 제법 인상적이었다. 하나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Soulja Boy가 피처링한 'Hustle Real Hard'였는데 (동명 타이틀 곡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솔자보이의 피처링의 퀄리티도 그렇고 전반적인 도끼와의 시너지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는 전체적으로 Jay-Z의 음악에서 느꼈던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곡들이 많았는데, 비트나 플로우도 조금 그렇지만 브라스를 적절하게 사용한 음악 때문인 것 같다. 브라스의 적절한 사용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백킹을 담당하는 비트의 세기가 임팩트있게 담겨있어서 전반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즐길 수 있었던 앨범이기도 했다. 역시 이런 분위기를 담은 곡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라면 더 콰이엇과 Beezino가 피처링한 'Mr.Independent 2'를 들 수 있겠다. 훅도 좋고 세 명의 MC의 색이 각각 잘 표현된 곡이었다. GD를 비롯해 현 아이돌 힙합그룹들에 대한 디스가 포함되어 있어 아마도 이 것이 더 화제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 곡이 표현하려는 것은 디스라기 보다는 독립적인 그들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점을 더 봐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새삼 생각해보게 된 것은 역시 MC나 프로듀서는 피처링만으로는 자신의 역량을 100% 표현하기 어렵고, 자신의 앨범이 되어서야 마음껏 재능을 펼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단점을 더 부각하는 것이 될지언정, 드디어 제대로 된 도끼(Dok2 Gonzo)의 음악을 만났다는 점에서 
'Hustle Real Hard'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위드블로그 (http://withblog.net)를 운영하면서 서비스적으로 가장 많이 안타까운 부분은, 리뷰어 분들이 '저 당첨됐어요!' '왜 저는 당첨이 안되나요?' '도대체 당첨 기준이 뭔가요?'등등 '당첨'이라는 말이었어요. 혹자들은 결국 당첨이든 선정이든 단어가 다를 뿐이지 그 내용은 별 차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묻지만, 실제 2년 넘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만들어가는 입장에서는 바로 이 '선정'이라는 것에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치관과 노력과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불만들보다도 일반적인 '당첨' 개념에 위드블로그를 포함시키는 것이 더 안타까웠던 것이죠. 그래서 급기야 이런 '당첨은 싫어요!'라는 캠페인까지 오픈하게 되었구요.

사실 위드블로그는 그 동안 쉬운 길로 가기보단 옳은 길로, 적어도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길로만 가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주의 의도를 어떻게 하면 블로거들한테 전달할까 라는 것에 있어서, 광고주의 일방적인 의도를 들어주는 것에 급급하기보다는 '우리를 한 번 믿어 봐라' '우리에게 완전히 맡겨주면 잘할 자신이 있다'라는 말로 반신반의하던 광고주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위드블로그가 다른 서비스들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갖게 되면서 광고주분들도 위드블로그의 방식을 믿고 맡겨주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위드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는 더더욱 이런 접근이 쉽지 않았었죠. 지금의 모델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 광고주가 위드블로그를 믿어 준 것 보다도 저희가 블로거분들을 믿었던 것이 더 컸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미약했지만 진심으로 대하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 진심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사실 이번 '당첨은 싫어요!' 캠페인에 참여해주신 블로거분들의 포스팅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운영자로서는 울컥울컥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정성껏 포스팅을 남겨주셨고, 그 포스팅의 내용들도 단순히 스페셜 뱃지만을 위해 쓰신 글들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자신의 위드블로그 활동에 대해 솔직하게 남겨주신 것을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감동적인 글들이었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이 정도로 많은 분들과 정성이 들어간 참여가 많을 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또 다른 솔직한 얘기를 하자면 과연 위드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블로거분들한테까지 전달되고 있을까 라고 의문을 가졌던 것, 아니 이런 것들이 '위드블로그' 같은 종류의 서비스가 바라기에는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져오기도 했었는데, 이번에 참여해주신 글들을 보면서 '아, 그래도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너무 뿌듯한 캠페인이었다는 말도 꼭 하고 싶네요.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위드블로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아마도 위드블로그가 살아있는한 끝까지 계속될 질문에 대한 운영자의 의견을 또 한 번 꺼내어 놓고자 합니다. 그 질문은 '도대체 선정 기준이 무엇이냐?'라는 것일텐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질문은 아마도 절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위드블로그는 서비스의 특성상 회원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그 기회의 숫자를 아무리 많이 늘린다고 해도 결국 선정되지 못하는 분들이 발생할 수 밖에는 없는 시스템이니 말이죠.

그럼에도 이 질문에 또 한 번 답변하자면, 정말 많은 그리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어쩌면 주관적인 것에 더 많은 기준을 두고 선정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무슨 서비스가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주관적인 기준으로 기회를 주느냐?'라고 당연히 반문 하실 수 있을텐데, 반대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들(방문자수, 추천수, 포스팅수, 노출수 등등)로 리뷰어의 기회를 드리게 된다면, 캠페인을 10개 진행하든 1000개 진행하든 간에, 항상 객관적 지표수치 결과에 따른 상위 몇등까지만 리뷰어로 선정이 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위드블로그는 파워블로거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파워블로거 전용 서비스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위드블로그의 태생적인 조건 상 리뷰어 선정 기준은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 수치들도 물론 고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저희가 원하는 리뷰어를 선정할 수 없으며, 기존 파워블로거라는 이슈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소박한 블로거분들을 발굴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도대체 선정 기준이 뭐냐!'라는 질문을 계속 끊임없이 듣더라도 저희는 저희의 주관적 기준을 믿고 계속 리뷰어 선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블로거분이 그 동안 어떤 글들을 포스팅해 오셨는지, 포스팅에 어떤 정성이 담겨있는지, 해당 제품이나 문화 컨텐츠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객관적 지표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들이거든요. 반대로 얘기해서 객관적 지표만으로 리뷰어를 선정한다면 저희의 일은 10분의 1도 안되게 수월해 질거에요 ^^; 그냥 프로그램으로 엔터 한번 클릭하면 1등부터 몇등까지 나오게 만들어서 그 분들을 매번 선정하면 되니까요. 아니면 그냥 반대로 역시 프로그램으로 이벤트 추첨하듯 랜덤으로 뽑아도 되구요. 하지만 이러면 위드블로그가 아니죠. 욕을 먹더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니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가끔 위드블로거 분들께 위블 인사이드나 티타임 등을 통해 드리는 말씀이지만, 위드블로그가 블로깅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 서비스가 되기 보다는 그저 자신 만의 블로깅을 열심히 하다보면 가끔씩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부가적인 서비스가 되면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드블로그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기 보다는 어차피 볼 영화, 어차피 듣고 싶었던 음반, 평소에 보고 싶었던 공연,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제품에 대한 체험의 기회를 가끔씩 위드블로그를 통해 얻게 되는 것 정도의 것만 되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반대로 얘기하자면 위드블로그는 평소에 관심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영화인데, 공짜로 표가 생겨서 일부러 보고 어쩔 수 없이 리뷰도 쓰게 되는 분들을 선정하기보다는, 우리가 선정하지 않아도 돈주고 예매해서 영화를 볼 분들, 평소에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 시사회에 초대되는 것 만으로도 너무 기뻐하실 분들을 최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분들이어야만 자신의 진심을 담아 솔직한 포스팅을 쓰실 수 있을테니까요.

야심한 새벽시간에 글을 쓰다보니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는데요, 이번 '위드블로그 바로알기 캠페인 1탄'을 통해 오히려 운영자로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캠페인이었구요. 앞으로는 좀 더 위드블로그를 이용하시는 블로거분들이 더 많은 행복을 느끼실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일들을 계속 더 연구하도록 하겠습니다 ㅋ 다 재미있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 아, 위드블로그는 재밌자고 하는 서비스이지 절대 죽자고 달려드는 서비스는 아니에요 ㅎㅎ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미리 언지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아직 '위드블로그 바로알기 2탄'은 어떤 주제로 할지 생각해보질 못했는데, 1탄이 너무 잘된 나머지 2탄에 적잖은 부담을 받게 되겠네요. 이거야 말로 행복한 고민이겠죠? ^^;
 



위드블로그 바로알기 1탄 - 당첨은 싫어요! 
캠페인 참여글 모두 보기 http://withblog.net/campaign/1198/post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토르 : 천둥의 신 (Thor, 2011)
대서사와 셰익스피어를 입은 마블 히어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총집합하는 '어벤져스 (The Avengers)'의 또 다른 멤버 '토르 (Thor)'를 보았다. 토르가 영화로 만나볼 수 있었던 다른 마블의 히어로들과 다른 점이라면, '스파이더 맨' '헐크' '아이언 맨' 등의 경우 후천적으로 사고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슈퍼 파워를 얻고 히어로가 되는 것에 (혹은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것에) 반해, 신화에 근본을 두고 있는 토르의 경우 이미 파워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시작점을 달리 한다. 이 시작 점이 다른 것은 특히 영화화에서 큰 차이점을 갖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물이 쉽게 말해 영화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직 멀쩡한'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토르'는 오히려 그 반대로 초중반 토르가 힘을 잃게 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 세상)가 교차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마블 히어로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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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점은 '토르'는 이미 대중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대 그리스 희곡 및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토르'는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인과 쉴드 (S.H.I.E.L.D)로 대변되는 현재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고전적인 서사와 갈등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현재의 이야기와 교차하지 않았다면 '타이탄' 같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토르'는 왕과 왕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한 이야기에 히어로 물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 때문에 연출을 캐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배우인 동시에 감독이자 극작가인,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캐네스 브래너 만큼 '토르'가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되는 점을 잘 표현해낼 이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캐네스 브래너가 '토르'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이야 걱정할 바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히어로물이자 블록버스터 연출로서의 캐네스 브래너는 의문 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갖는 한계 내에서 이 정도 결과물이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스럽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액션 전문가가 시나리오까지 맡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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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가 갖는 한계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처럼 소개가 필요한 첫 작품이었다는 공통의 한계와 다른 히어로와는 다르게 탄생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극적인 공감대를 얻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그 만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토르가 지구로 추방 당한 뒤 겪는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은 그가 진정한 히어로로서 거듭나는 탄생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사실 빠른 전개 탓에 적극적인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제인 (나탈리 포트만)과의 로맨스도 브루스 배너나 피터 파커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토르'는 그 자체로도 소개가 주목적인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 나올 '어벤져스'의 큰 그림으로 보자면 더더욱 '토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의미가 컸기에, 이 한 편만으로 평가 받기에는 조금 억울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토르'의 속편이 나온다거나 '어벤져스'에서는 좀 더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상태라(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소개를 마쳤으니 말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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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쩔 수 없는 한계들 때문이었는지, 극 중에서 가장 비중있게 느껴진 캐릭터는 주인공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가 아니라 동생 '로키 (톰 히들스톤)'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극중 토르는 쿨하고 우직한 매력은 있지만 (마치 사조영웅전의 곽정과도 같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내적인 갈등이라던가 감정의 동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비해 로키라는 캐릭터는 그 탄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영화에 주요 갈등 및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서, 캐네스 브래너가 그린 셰익스피어적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스포일러 시작)
로키가 극의 주된 갈등을 쥐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악한이라기 보다는 동정에서 이해될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왕국을 지배하려는 야욕보다도 그저 아버지에게 용기있고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별다른 갈등구조가 없던 토르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고, 더 나아가 엔딩 쿠키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만약 계속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그의 행동으로 인한 스토리에 좀 더 깊이를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아주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번 영화 '토르'는 토르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로키로 인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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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우리에게 마침내 선보일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1. '아이언맨 2'의 쿠키 장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묠니르 장면은 '토르'에서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것 외에도 '토르'에는 '어벤져스' 떡밥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있는 편이에요. 동료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이야기라던가, 토니 스타크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그렇고.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더군요. 이래서 마블 코믹스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연계되는 부분이 깊다보니 말이죠.


2. 오딘의 아들을 '오딘손'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토르의 풀네임이 Thor Odinson 이네요 ^^;


3. 토르가 지구에 와서 겪는 코믹한 장면들에서는 의외로(?) '엑셀런트 어드벤쳐'가 떠오르더군요.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이 쇼핑몰 가던 장면이 겹쳐져서 ㅎㅎ


4. 짧은 분량이었지만 역시 '어벤져스'를 위한 포석이었던 '호크아이'의 출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호크아이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터라 보는 순간 100%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레미 레너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봤기에 비중있는 캐릭터라는건 알 수 있었죠 ㅎ


5. 그의 반해 아사노 타다노부의 활용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이런 작품(비중)으로 헐리웃을 노크할 배우는 아닌데, 그냥 들러리 정도로 묘사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군요.


6. 요툰하임의 분위기나 이곳 캐릭터들의 모습 그리고 쿠키장면에서 등장한 큐브까지, 얼핏 '트랜스포머'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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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여기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한 남자가 있다. 아프리카 수단의 황무지 땅 톤즈에서 슈바이처 아니 '졸리' 신부님으로 더 익숙했던 이태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땅에서 힘없고 병든 자들을 돕는 한 신부의 이야기라고 하면, 감동은 있겠지만 어느 정도 예상되는 그런 얘기가 아닐까 하고 그냥 넘겨 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울지마, 톤즈'의 이야기는 이런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누구의 희생이 더 고귀하고, 누구의 인생이 더 아름다웠다고 비교 우위로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비슷한 감동 스토리를 초월하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이태석 신부가 걸어온 길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감동과 더불어 자책감을 넘어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삶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감동 실화'같은 수식어 정도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간 이 작품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울지마, 톤즈'는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던 이태석 신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고 바로 수단 톤즈로 여정을 옮긴다. 내레이션의 말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일생을 특별히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톤즈라는 곳에 실정을 알리려는 의도는 물론 아니었으며 단지 이태석 신부라는 사람의 삶은 어떠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 그렇다면 그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보기로 한 시도로 진행되었다. 그의 죽음을 작품 서두에 배치한 것은 '울지마, 톤즈'가 하고자 하는 말이 눈물에 가려 희석되길 바라지 않는 감독의 바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삶을 일부러 극적으로 구성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따라가고,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그가 아닌 진짜 이태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울지마, 톤즈'가 인상적인 또 다른 지점은 종교적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했던 한 신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너무나도 충실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냈는데, 이 작품에서 '신부'라는 것은 단지 호칭이자 직업일 뿐 그 어떤 종교적인 색깔도 드리우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 가서 이들의 현실을 알게 된 뒤 '만약 예수님이 톤즈에 오셨다면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니면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 먼저 지으셨을것 같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석 신부 역시 종교인으로서 이들에게 다가갔다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톤즈를 바라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기도 하고.




Open Case

의미있는 작품이라 제작사에서 패키지 디자인에 큰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아웃 케이스 제작에 사용된 종이 재질이나 케이스 내 내용물들 모두 최고급품을 사용해 제작되었다.





DVD Menu





DVD Quality


KBS한국방송에서 기획, 제작된 '울지마, 톤즈'는 화질이나 음질로 말하는 작품은 아니기에 스펙에 대한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거들어보면, 이태석 신부의 주변인들의 인터뷰 영상은 대부분 고화질로 촬영된 터라 추후 블루레이에서도 손색이 없을 화질을 수록하고 있고, 톤즈에서의 영상은 이태석 신부 생전 영상의 경우 풀스크린과 와이드스크린을 오가고 있지만 4:3으로 촬영된 영상들도 화질이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금희 씨의 차분한 내레이션이 주를 이루는 돌비디지털 2.0 채널의 사운드 역시, 멀티 채널이 그리 필요치 않은 작품이라 2.0채널 만으로도 충분히 사운드를 전달하고 있다.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는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을 두 번째 디스크에는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작품 외의 부가영상이 극 영화에 비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L.A에 위치한 CGV에서 상영회를 가졌던 영상과 작품을 보고 나온 L.A 한인 관객들의 반응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관객 30만 돌파를 기념하는 오찬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 짧은 예고편과 영등위 시상식 영상 그리고 예고편과 하이라이트가 수록되었다.




[총평] '울지마, 톤즈'는 감정적으로만 흐를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자제하여 故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갔음에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를 수 밖에는 없었던 강한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故 이태석 신부는 '왜 오지인 톤즈까지 가야만 했나?'라는 세상이 던진 질문들에 끝까지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하기 보단 그저 톤즈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더 줄 수 있을 까라는 질문에 더욱 충실한, 그 누구보다 충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그 것만으로도 이 작품 '울지마, 톤즈'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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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전드 내한공연 (John Legend)

전설 형과 함께하는 Slow Dance!



존 레전드는 그의 첫 앨범 'Let's Get Lifted'를 들었을 때부터 그의 이름처럼 '이 남자는 전설이 될꺼야'라고 촉이 바로 섰을 만큼, 듣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는 깊이와 내공의 앨범이었다. 그 때부터 한결 같이 좋아했던 존 레전드의 내한 공연. 몇 년 전에 이어 두 번째 내한공연인데, 첫 번째 내한 공연은 아쉽게 못갔었던 것을 떠올리며 이번 공연은 절대 놓치지 않을리라는 대쪽과도 같은 결의하에 할부신공을 발휘, 존 레전드를 내 눈과 귀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존 레전드의 곡들은 공연을 위해 미리 예습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나 같이 많이 들었던 곡들 그리고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었던 터라 별다른 준비없이도 공연을 100% 즐길 수 있었다. 최근 저질로 바닥을 치고 있는 체력 탓에 스탠딩으로 예매하지는 못하고 2층 좌석으로 예매하였지만,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악스홀이라 2층에서 관람하기에도 크게 부족함은 없었다 (물론 이건 스탠딩으로 관람하지 않은 이의 이기적인 변명이다. 당연히 스탠딩에서 보았다면 적어도 3배는 좋았을듯 ㅠ). 두근두근 기다리는 시간이 별로 길지도 않았는데 그는 마치 첫 앨범 'Let's Get Lifted'의 자켓 사진처럼 실루엣으로 스윽 등장했다. 이미 실루엣 만으로도 아우라를 만들어낸 존 레전드는 팬들이 미처 다 현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히트곡 퍼레이드를 시작. 이 때부터 멘트도 없이 쉴세 없이 그의 공연은 이어졌다. 


초반이 특히 그랬고 후반 부에도 중저음이 사용되는 부분에서는 심하게 울리거나 밸러스가 맞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여주었는데, 사운드의 문제 탓에 존 레전드의 보컬이 조금 씩 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인지 오히려 피아노 한 대만을 두고 노래하는 곡들에서 그의 진가가 더 발휘된 느낌이었다. 하긴 존 레전드는 본래 피아노 한 대만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사로잡는 것이 가능한 훈훈한 오빠(?)가 아니었는가. 이번 공연은 남자인 내가 봐도 참으로 '훈훈한' 공연이었다. 시종일관 아빠 미소가 아닌 오빠 미소로 관객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곡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소화하는 그의 표정에서, 관객들은 '이곳이 지상낙원인가 ㅠ'라고 절로 느낄 정도였다. 'PDA'나 'Let's Get Lifed', 'Green Light' 같은 빠른 곡들에서는 정말 라이브 영상으로만 보던 그 공연에 내가 와있구나! 라는 걸 100%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선보였던 'Number One'도 좋았고. 'Green Light'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것 같다. 레전드 형의 꿀렁이는 미묘한 댄스도 좋았고 ㅎ





정말 쉬는 시간 없이 피아노와 무대를 오가며 (무대 아래까지!) 공연을 이어가던 존 레전드는 'Green Light'로 정점을 찍고 팬들의 앵콜을 받고 다시 나타났는데, 그저 민소매 런닝 셔츠로 갈아입었을 뿐이었지만 공연장은 열광에 도가니. 나도 모르게 열광할 수 밖에는 없는 분위기와 열기였다. 그리고 그가 조용히 시작한 곡은 다름 아닌 'Ordinary People'. 개인적으로 너무 유명한 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릇이 있지만, 이 곡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노래방 18번 중에 한 곡이기도 한 'Ordinary People'을 라이브로 듣게 될 줄이야 ㅠ 존 레전드의 피아노 연주와 풍성한 소울(Soul)을 느낄 수 있는 이 곡에서, 존 레전드는 그가 왜 이름 뿐만이 아니라 전설로 불리는 지 여지없이 보여줬다. 팬들과 함께 부르는 후반부는 그 자체로 감동.


이번 공연은 특이하게(?) 사진 촬영을 전혀 막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찍어볼까 하다가 그 것보다는 살아있는 라이브를 가슴 속에 더 담자! 라는 생각에 공연만 신나게 즐겼다. 하지만 그렇게 참던 나도 맨 마지막 'Ordinary People' 나올 땐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John Legend - Ordinary People from ashitaka on Vimeo.


모든 내한공연이 다 그러하지만, 존 레전드의 공연도 꿈만 같이 흘러갔다. 바쁜 아시아투어 일정 속에서 소홀히 하는 공연은 물론 아니었으며, 특별히 보여주기 식의 공연도 아닌 존 레전드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멋진 라이브였다. 아...언제 또 전설 형을 만나볼 수 있으려나?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마셰티 (Machete, 2010)

일부러 그 수준으로 만든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 이 두 사람이 쿵짝쿵짝 거리며 만들었던 '그라인드 하우스 (Grindhouse,2007)'는 이들의 팬들은 물론 B무비의 감성을 그리워 했던 영화 팬들에게도 몹시 반길 만한 작품이었다.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로 이뤄진 이 B무비는 사실 보는 사람도 보는 사람이지만, 로드리게즈와 타란티노가 만드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는 것이 떠올라 더 훈훈했던 작품이기도 했는데, 이 '그라인드 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셰티 (Machete)'였다. 이미 가짜 예고편 만으로도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이 작품은 결국 거짓말처럼 정말 장편 영화화 되었고,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B무비 아닌 B무비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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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티'의 예고편은 적어도 '플래닛 테러' 정도를 예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만화처럼 두려움을 모르고 다양한 각도로 펼쳐지는 칼부림과 그로 인해 터져 나오는 선혈과 어긋나는 관절들, 헐벗은 미녀들과 후끈한 영상은 '야, 이거 플래닛 테러처럼 또 한 번 신나게 즐길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마셰티'는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작품이었다. 아니 다르다기보단 이런 류의 예고편들이 매번 그렇듯 조각을 전체처럼 포장한 그럴 듯한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셰티'가 마음에 안들었다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라인드 하우스' 특히 '플래닛 테러'는 B급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로드리게즈가 마음 껏 펼쳐본, 즉 갈때까지 가 본 작품이었다. 그 절제 없는 막장 에너지에  관객은 환호했고 터져나오는 폭소와 키득거림이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즐길 수 있게 될 줄이야!'라며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셰티'가 갖고 있는 성격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뭐 '플래닛 테러' 스타일을 기대하게 한 예고편 때문에 많이들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이 영화에 미지근함과 촌스러울 정도로 전형적인 구조와 장면, 연출들은 말그대로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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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티'는 일부러 촌스럽고 미지근한 전개와 장면을 연출하려고 디테일하게 애쓴 작품이다. 사실 그 표면적인 열기는 달랐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느꼈을 로드리게즈의 희열은 아마도 '플래닛 테러' 못지 않았으리라 예상된다. 로드리게즈는 '마셰티'의 플롯도 화면 연출도 자신이 동경하는 B무비의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마셰티'가 답습하고 있는 B무비의 전형은 괴상하고 유치하리만큼 이질적인 소재와 캐릭터(플래닛 테러)도, 어린 시절 TV시리즈와 영화에서  보았던 올드한 향취(데쓰 프루프)도 아닌 바로 관객에게 외면 당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그 뻔뻔함과 촌스러움이었다.

언제부턴가 B무비라고 하면 대중적인 영화와는 조금 차별되는 감성과 소재를 다룬 저예산 영화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우리가 B무비라고 기억하는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매끄러움이나 세련됨, 영화적 재미 부분들은 상당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종의 악취미가 없다면 보기 힘든 작품들이 많았는데, 로드리게즈는 '마셰티'를 통해 바로 이런 B무비만의 성격(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갖게 된)을 다시금 불러오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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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부러 가져다 놓은 영화의 장면들은 너무 정색을 하고 있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니 트레조가 연기한 마셰티 역할이야 캐릭터 자체가 상반대는 대사 하나 만으로도 코믹스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경우라 많이들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멀쩡하게 정색하고 촌스러움의 전형을 연기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제시카 알바가 연기한 사타나 라고 할 수 있겠다. 요원인 동시에 전직 요원 출신인 마셰티에게 빠져 결국 그와 함께 정의의 편에 서게 되는 사타나 캐릭터는, 이 전형적인 스토리 가운데서도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텐데, 패러디 영화에서 처럼 일부러 오버하지 않아도 제시카 알바가 이 캐릭터에 충실하면 충실할 수록 더욱 키득거릴 수 밖에는 없었다.

참 전형적인 포즈로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와 알몸으로 샤워를 하며 고뇌에 사로 잡히는 모습은 (비록 제시카 알바의 몸매에 눈을 빼앗겨 장면의 정서를 놓쳐버릴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이 영화가 B무비를 지향하는 B무비이기에 웃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로드리게즈가 추억을 갖고 동경하는 B무비에서 이러한 장면들은 웃길려고 연출되었다기 보다는, 그 촌스러움에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장면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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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과 자신이 동경했던 B무비의 정취를 가져다가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격한 표현들로 풀어내긴 했지만, '킬 빌'처럼 오마주 그 자체의 영화는 물론, '오스틴 파워'처럼 패러디 영화도 아닌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단점들까지 그대로 다 갖고 있을 정도로 정말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든 터라, 앞서 언급했던 갖가지 양념들을 제외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이건 좀 심심한데?'라는 평을 듣기에 딱 좋은 영화가 되었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마셰티'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종착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즉, 반대로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플래닛 테러'나 '데쓰 프루프'가 더욱 좋긴 했지만, '마셰티'는 '마셰티'대로의 정도를 지키고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갖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이것은 절제였다. '플래닛 테러'를 만든 로드리게즈였다면 '마셰티'에서도 근질근질 할 정도로 참기 힘든 장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자 탈출 씬을 제외한다면 거의 정도를 지키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극적 욕망을 꾹꾹 눌러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절제의 영화라고는 부를 수가 없는 것이, 로드리게즈는 B무비의 이런 단점들까지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매니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셰티'는 다시 말하면 참느라 힘들었던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00%를 발휘한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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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드리게즈는 이번에도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와 함께 이름을 올린 에단 마니퀴스(Ethan Maniquis)는 '플래닛 테러' '씬 시티' 등의 편집을 맡았던 인물이네요.

2. 이번 작품 역시 로드리게즈는 1인 다역을 맡고 있습니다. 연출, 제작, 편집, 비주얼 이펙트, 음악 등. 

3. 그의 작품들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도 계속됩니다. 톰 사비니, 치치 마린 같은 배우들은 그의 작품에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배우들로서, 이번 작품에서 역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이 외에 마치 실제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키게도 했던 린제이 로한과 또 여전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완소 미셸 로드리게즈, 이 작품에 딱 맞아 떨어진 캐스팅 중 하나였던 스티븐 시걸과 돈 존슨 까지. 로버트 드니로 전편의 브루스 윌리스 같은 비중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4.  이 영화의 마지막엔 놀랍게도 마셰티 속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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