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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아만다 녹스 (Netflix : Amanda knox)

살인사건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어두운 자화상


몇 해 전 해외토픽으로 연일 이슈가 되었던 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이탈리아 페루지아 지역에서 벌어진 영국 유학생 살인사건이 그것이었는데, 이 살인사건에 범인을 두고 아만다 녹스라는 여성이 도마 위에 올라 몇 차례의 재판을 통해 유죄와 무죄를 오고 가는 판결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그녀의 이름인 '아만다 녹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이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처음 사건이 일어나던 시기부터 모든 재판이 끝나는 시점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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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장르의 다큐멘터리로는 역시 넷플릭스의 간판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살인자 만들기 (Making a Murderer) '를 들 수 있는데, '살인자 만들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사건을 완벽하게 해부하고 그 가운데 잘못된 지점들을 발견해 내 살인자로 지목된 스티븐 에이버리의 무고함의 측면을 세세하게 말하고자 한 것과 달리, '아만다 녹스'는 살인사건의 과정과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핵심은 그보다 이 살인사건을 둘러싼 다른 것들의 경솔함 혹은 무책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아만다 녹스와 그의 남자 친구가 직접 인터뷰어로 등장하는 등 희대의 악녀 (혹은 변태 살인자)로 몰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그들의 입장에 서서 억울함과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만다 녹스가 영화 속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살인자라고 생각한다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각각 나는 어떤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억울한 희생양도 희대의 악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이 이 사건을 이토록 자극적 쟁점으로 부각하였는지, 이 사건을 둘러싼 다른 것들(사람들)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드리운다. 팩트 체크도 없이 오히려 팩트를 일일이 체크하게 되면 타이밍을 잃게돼 다른 언론사에 특종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기자(언론)의 모습은, 이 작품이 이 사건을 통해 전하고자 한 씁쓸한 현재의 결론과 같다 (이 기자가 초반에는 제법 유능한 기자로 묘사된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누군가가 목숨을 잃고 또 누군가가 억울하게 살인자라는 (그보다 더한 굴욕적 주홍글씨까지) 누명을 쓰게 될 수도 있는 사안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 만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극적인 측면만 부각해 이슈를 만들고, 그 이슈에 함몰되어 대중들 역시 쉽게 판단하고 휩쓸려 버리고 마는. 그리고는 또 쉽게 잊어버리면 끝나는 일련의 과정들은, 아만다 녹스가 진짜 살인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도 더 밝혀내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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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그대로의 작품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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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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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솔직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팬으로서 '올드보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가라는 질문엔 선뜻 답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건 지난 10주년 상영회 (리뷰 : 올드보이 10주년 -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에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올드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영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올드 데이즈'와의 만남은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여러 번을 보고, 수 없이 영화 음악을 듣고, 여러 버전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작품임에도 '올드 데이즈'를 보는 내내 속으로 '아... 빨리 올드보이를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곧 블루레이로 다시 만나게 될 '올드보이'가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1. 플레인 아카이브는 (본인들은 쑥스럽겠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네요.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2.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상영회 후 GV 자리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올드 데이즈'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얘기들이 흥미로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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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Seymour: An Introduction, 2014)

삶과 예술 그리고 질문과 대답



감독이자 배우 에단 호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사실 무대공포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세이모어 번스타인과 소울 메이트가 되고 자신의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세이모어 번스타인. 그는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예술의 도시 뉴욕 작은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출처 : 다음영화)


배우로서 몹시 애정하는 에단 호크가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Seymour: An Introduction, 2014)'는 한 명의 배우이자 예술가인 에단 호크의 진정성 있는 질문과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과 대답을 담은 또 다른 예술 작품이다. 에단 호크는 작품성에 대한 인정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헐리웃의 스타 배우이지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거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선뜻 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삶 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무대 공포증마저 겪던 즈음, 우연히 만난 세이모어 번스타인에게 자신의 이러한 고민을 털어 놓게 되고 그에게서 그간 찾아내지 못했던 대답 혹은 정답을 듣게 된다. 이 영화는 에단 호크가 자신이 경험했던 삶의 고민에 대한 세이모어의 대답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삶)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 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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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혹은 무대 위에서 대중들에게 박수와 관심을 받는 공연자들의 경우,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거나 혹은 자신이 원했던 일정 수준의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될 때 그 간의 경력과 삶을 되돌아 보며, 급작스런 회의(懷疑)에 빠지게 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특히 성공을 거뭐지게 된 경험이 있는 아티스트일 수록 그 부와 인기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뒤에는 더더욱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정신 없이 달려왔고, 처음 이 세계에 뛰어 들었던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거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뒤늦게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런 기승전결 조차 일종의 패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전형적인 면이 있는데, 에단 호크와 세이모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깊이의 측면에서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에단 호크가 고백한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회의 그리고 진솔함이 느껴지는 질문에서부터 이 영화는 결을 달리한다. 에단 호크의 그 질문이 형식적이지 않고 진짜라고 느껴진 데에는 이 영화의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에단 호크가 영화 속에서 질문을 던진 자신을 최대한 배제하고, 세이모어의 이야기를 자신이 받아 들였던 것처럼 관객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진심이 100% 느껴진다. 스스로가 세이모어와의 만남을 통해 거짓이 아닌 진실 된 답을 얻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관객)에도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가 세이모어의 삶을 통해 느끼게 된 것들이 그가 알 수 없었던 질문의 답이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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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모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감정의 변화 혹은 불안과 상처를 경험하고 나서 백발의 스승이 된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의 가르침에 마냥 평화롭기 보다는 한 편으론 세이모어가 그랬던 것처럼 삶에서 부딪히게 되는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고나서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도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주저 되는 영화다. 왜냐하면 여기엔 두 사람의 진실한 삶이 그대로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이모어와 에단 호크 두 사람의 삶과 삶의 대한 태도를 통해 지금의 내가 겪는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 역시 작은 위로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1. 한 때 글렌 굴드도 듣고 클래식도 찾아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오랜 만에 예전 클래식 음반들을 꺼내 듣고 싶어졌어요.

2. 세이모어는 예전 한국 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한국에 파병되어 경험한 에피소드들도 들려주는데, (한국 관객으로서)묘한 느낌이었어요.

3. 에단 호크는 다음 국내 개봉할 작품도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담은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2015)'인데,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아 팬으로서 뿌듯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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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살인자 만들기 (Netflix _ Making a Murderer)

긴 호흡으로 즐기는 치밀한 다큐멘터리



최근 국내에 런칭한 넷플릭스 (Netflix)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서비스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익하고 볼 만한 작품이라면 역시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작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기존 다른 IPTV 서비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들 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완성도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작품들을 여럿 만나볼 수가 있어서 반가운데, '살인자 만들기'는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SBS에서 방영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즌제로 만나는 느낌인데, 긴 호흡으로 하나의 사건을 차근 차근 그리고 치밀하게 다루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극 영화 못지 않은 극적인 재미와 흥미 그리고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몰입도가 무척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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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만들기'는 무려 10년 이라는 시간을 들여 제작한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실화'와 '다큐멘터리'를 굳이 또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스티븐 에이버리를 중심으로 겪게 되는 이 사건과 법정 공방의 긴 이야기가 마치 수준급의 스릴러 작가가 공들여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실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적인 요소가 많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화가 허구의 이야기보다도 더 허구 같은 경우는 가끔 만나볼 수 있는데, '살인자 만들기'가 그 가운데서도 첫 번째 손에 꼽을 만한 다른 이유는 실존 인물들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캐릭터스럽다는 점이다. 일부러 저렇게 딱 맞는 배우들을 찾아 캐스팅을 한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실존 인물들은 주인공 스티븐 에이버리를 비롯해 검사, 경찰, 변호사, 주변 인물 등 모두가 관련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접하게 된다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진 미드라고 보는 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실존 인물들이 주는 극적인 몰입감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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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세월을 쫓아가며 사건을 다룬 점이 바탕이 되기는 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를 10화에 달하는 하나의 시즌으로 제작한 것과 하나의 시즌이 다 끝날 때 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연출과 편집은 '살인자 만들기'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첫 번째 이유다. 아마 제작진이 가장 고심했을 부분은 무고하게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스티븐 에이버리가 다시 금 살인 혐의를 쓰고 재판을 받고 투옥하게 된 (진실 여부는 일단 떠나서라도)이 억울함을 시청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을 텐데, 긴 호흡에도 차근 차근 증거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낸 방식은 억울함을 넘어서 분노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조금은 일방적으로 스티븐 에이버리의 편에 서 있는 작품의 시선이 실제 사건의 진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방해를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작품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 만으로도 스티븐 에이버리가 무죄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이 사건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실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추가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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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완성도나 매력을 떠나서 '살인자 만들기'처럼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 가능한 환경에 대한 부러움도 컸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넷플릭스라는 회사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또 한 번 신뢰를 가질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만약 아직 넷플릭스를 결제 해 놓고 어떤 걸 봐야 할지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단, 짜증을 넘어선 분노가 일 수 있다는 점은 꼭 미리 체크하시길.


1. 무려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음악을 맡고 있다는 점!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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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인 타임 (Back in Time, 2015)

백 투 더 퓨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나


지난 해 10월 21일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처'의 탄생부터 현재 이 작품이 갖는 의의에 이르기까지 진심으로 이 작품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제이슨 아론 감독의 '백 인 타임 (Back in Time, 2015)'이다. 최근 국내에 런칭한 넷플릭스를 둘러 보던 중 발견하게 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백 투 더 퓨처'의 팬들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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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른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백 인 타임' 역시 '백 투 더 퓨처'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시 시간 여행 영화라는 것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스튜디오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던 일이나, 마이클 J.폭스의 스케쥴로 인해 결국 그를 캐스팅하지 못하고 에릭 스톨츠를 캐스팅하여 5주 동안이나 촬영을 진행했던 일이나,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인 자리에서 마치 '스타워즈'같은 작품에서나 가능할 법한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얻은 일 등 '백 투 더 퓨처'에 관한 흥미로운 제작 뒷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마 이 영화의 열혈 팬들이라면 상당 부분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실제 제작에 참여했던 스텝과 배우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를 유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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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담겨 있다면 '백 인 타임'은 조금은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 보다 더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던 건 바로 '백 투 더 퓨처'의 열혈 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사랑하고 이로 인해 삶에 깊은 영감을 받게 된 팬들이 이 영화의 영향력 아래에서 어떠한 일들을 만들어 내고 삶을 살아갔는가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는, 반대로 '백 투 더 퓨처'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가를 다시 한 번 끄덕이게 만든다. 극 중 등장하는 타임 머신인 드로리안을 갖기 위해 혹은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나, 영화 속 호버보드를 실제로 연구하여 만들어 낸 팬들, 그리고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마이클 J.폭스와 함께 이 병의 치료방법 연구를 위해 자원봉사와 여러 사회활동을 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즉, '백 인 타임'은 '백 투더 퓨처'의 여러 트리비아를 통해 흥미를 이끌어 내는 것에 그치는 팬무비가 아니라, 이 영화의 팬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사랑하는 영화를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반대로 이 영화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변화시켰는지를 소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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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백 투 더 퓨처'의 팬들이라면 꼭 한 번 봐야 할 작품이라고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이런 다큐영화 감상으로는 드물게 뭉클해 지는 감동도 느낄 수 있었던, 여러모로 흐뭇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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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Taxi, 2015)

영화는 죽지 않는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택시 (Taxi, 2015)'는 그 이면을 반드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감독이 직접 출연해 택시기사로 분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택시 안에서 만나고 한 편으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대화들이 담긴 이 영화는, 이란 정부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해외출국금지 및 20년간 영화촬영이 금지 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그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려 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촬영할 수 없게 된 그는 택시 기사로 분해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니며 승객들로 분한 지인들과 함께 이 위대한 영화를 완성해 냈다. 그가 택시 안에서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 편으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현재 이란의 현실에 대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로서 영화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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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정세와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단 번에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는 그냥 느껴지는대로 영화를 한 번 감상하고, 그 다음에 이란의 현실과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처한 상황에 대해 정보를 찾아 본 뒤 다시 한 번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았을 때도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다큐멘터리 사이에 있는 듯한 영화는 어렵지 않고 제법 즐겁게 감상할 수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은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택시'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배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어린 조카의 이야기나, 감독과 뜻을 함께 하는 인권 변호사의 이야기, 불법 DVD를 판매하는 몸이 불편한 남자의 이야기 등 이 작은 이야기와 대화 속에는 한 편으론 농축되어 있고 한 편으론 직접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참고로 극 중 등장한 조카는 실제 감독의 조카이고, 인권 변호사로 등장한 여성 역시 실제 인권 변호사인 나스린 소투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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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실을 리얼리즘 방식으로 담아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택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같은 배경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메시지가 되었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조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생존해 내는지 그리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까지. '택시'는 전달해 냈다. 생각할 수록 대단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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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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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

미약한 촛불이 불꽃으로 타오르길



여기 나쁜 나라가 있다. 극장에서 흔히 보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모 기업의 자랑스러운 나라. 생명이라는 존재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가 있다. 기업의 광고처럼 차라리 그 자랑스러움을 잊고 있었던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냉정하게도 그 나라는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갔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일반인들까지, 수 많은 생명들을 깊은 바닷 속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사건은 지금까지 내가 현실에서 겪었던 어떠한 사건들 보다도 충격적이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아팠던 참사였다. 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관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를 만나게 되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제작한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어떤 현실과 싸워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차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거리로 내몰려 단식하고 더위와 추위와 싸우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삭발하고, 무릎 꿇어야 했던 슬프지만 현실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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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두 번의 대통령을 겪게 되면서 이 말은 결코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모르는 것은 죄고, 알고자 하지 않은 것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일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기업의 비리나 일부 선원들의 잘못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만약 거기서 끝났더라면 어쩔 수 없었던 참사로 기억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참사가 벌어진 그 순간부터 국가가 국민들을, 그것도 생명을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대했는가에 대한 것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될 더 참혹한 참사가 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알 수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린 것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정치라는 것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생명이나 죽음 앞에 섰을 때는 그 어떠한 정쟁도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그 모든 과정의 기회를 이미 스스로 놓쳐버린 세월호 참사의 경우라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유가족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고의 정상적인 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행동이라는 것은 솔직히 양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기본적인 상식 중의 상식,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나쁜 나라의 정부에겐 정말 최소한의 무엇. 양심이라고까지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아주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고 슬픔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처를 짓누르는 더 큰 고통마저 주었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이 나왔을까. 국가가 나서서 바닷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죽하면 부모들이 내가 직접 바닷 속으로 뛰어드는 걸 막지만 말아달라고 했을까. 잘못돼도 너무 잘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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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것은 죄다. 모든 눈과 귀가 막혀버린 현실에 진실을 알고자하는 길을 더 번거로워졌지만, 번거롭다는 사사로운 이유로 외면하기엔 이건 너무 명핵히 우리, 아니 나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광화문에 수십만명이 모여도 그건 맨날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또 그냥 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과연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 만의 이야기일까.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 운동권이고 (요새 운동권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본래 사회 불만 세력이고, 정부나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시절도 있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횡포가 일부에 한했을 때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로 인해 거리의 투사가 되는 현실. 나는 이 같은 점이 가장 슬프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시위라는 것 근처에도 가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 오히려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사람들. 뉴스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건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그저 수학여행 간다는 아이한테 용돈 더 못 챙겨줘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의 엄마가 어쩌다가 짧은 머리로 수십만명이 모인 광장에서 그 어떤 투사보다 강하고 큰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게 되었을까. 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의 일들을 모르는 것은 죄다.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는 이미 늦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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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꼭 알아야 할 진실이다. 기록이다.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로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보낸 500일 넘는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유가족이 아닌 이들이 보낸 500일이라는 시간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의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한 줄 기사로만 보았던 일들의 이면에는 얼마나 깊은 고통과 인내의 쓰디쓴 시간이 있었는 지를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예전 광우병 문제로 광화문 과장에서 작은 촛불을 들고 행진에 시민들과 함께 가담했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참히 발포한 물대포 때문도 아니었고, 곧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전경 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으로, 시청에서 다시 명동으로 행진했을 때 명동에서 만난 현실 때문이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촛불을 들고 모인 이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명동의 밤거리는 쇼핑을 하고 저녁 시간을 즐기러 온 또 다른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때의 명동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바로 옆에선 모두가 촛불을 들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곳은 너무 평화롭고 들떠있고 즐거워 보였다. 관심 없는 이들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언가 몹시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난 그저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몇 번 촛불을 들었을 뿐이었는데도 이 날의 다른 공기는 몹시 서럽게 느껴졌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요 근래에도 느낀다.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지겹다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피로감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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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만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들 뿐일 것이다. 그들이 그만하기 전에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폭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나쁜 나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더 지난 지금에도 이 나쁜 나라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쁜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간 동안 미약하나마 생겨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내 일처럼 나서서 돕고자 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만약 이 영화가 단순히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나 비판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면 그 이상의 희망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잊지 말고 함께 해줄 것을 죄송하게도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서 미약한 촛불이 언젠가 꼭 불꽃으로 타오르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각자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 부터 시작하면 언젠간 불꽃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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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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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 (Citizenfour, 2014)

다음 사람들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



몇 해 전 에드워드 스노든 이라는 이름이 세상을 떠들석 하게 했었다. NSA 계약 직원이자 전직 CIA 분석요원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세상에 폭로한 극비 문서들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한 미국민들과 외국인들의 전방위적인 감시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 (Citizenfour, 2014)'는 스노든이 로라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접근했던 시점부터 그가 가디언지 기자인 그린 월드 등과 함께 이 비밀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그 이후 겪게 되는 일들까지를 그 여느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묘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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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이 폭로한 미국의 범죄행위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국 정부는 단순한 의심 만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미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전화, 인터넷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네트워크를 이용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했고, 이 같은 범죄는 단순히 미국 정부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군사정부와 몇 번의 정부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도청, 감시 등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는 어느 정도 인지되어 있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시티즌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단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전방위적인 감시 활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 입장에서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정말 영화보다 더한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현재의 감시 활동은 감시대상자가 자유를 박탈 당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 이런 행위들의 접근 방식 역시 훨씬 더 자연스럽고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쓰는 전화나 노트북,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그 정보들을 분석하여 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이동 경로, 취향, 성향 등 모든 것을 분석하고 혹은 가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이 테러 집단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한 개인으로서 공포감과 동시에 무력함이 느껴지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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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정부의 다른 행위를 폭로하는 고발 다큐멘터리와 달랐던 점은, 어떠한 충격적인 사실을 파해치고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인 만큼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라는 점과 정부의 불법사찰이라는 국내외 뉴스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아마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티즌포'는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처럼 미정부가 얼마나 많은 인원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랫 동안, 얼마나 조직적으로 감시해 왔는 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끔 그 자체가 폭로의 핵심이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있는데, '시티즌포'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시티즌포'는 분명한 프로파간다 (선동) 영화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최대한 스노든의 의도를 퇴색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스노든은 이 스캔들이 제보자 개인인 스노든 자신에게 집중되고 그로 인해 이슈가 함몰 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즉, 이 감시 행위라는 일종의 자유를 빼았는 범죄 행위가 단순히 정부의 일급비밀을 폭로한 한 제보자가 일으킨 스캔들로 포장되고 전파 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선구자라고 말하는 것 처럼, 이 영화는 이 충격적 사건이 계속 진행 중이고 피해자는 우리 모두이며, 이 싸움은 결코 쉽지 않고 오래 진행되겠지만 누군가는 계속 이어 나가야만 할,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키고 싸워야 할 가치가 달린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아, 저런 무서운 일이 있었네' '스노든이 대단한 사람이네' 라고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정부와 권력의 조직적인 비윤리적인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 한 명 한 명이 쉽지 않은 용기를 내어주길 강력하게 바라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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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에서도 이런 불법사찰, 핸드폰 도감청, 개인정보 누출 등 여러가지 형태로 개인의 자유를 국가나 권력이 억압하고 박탈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가끔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 시스템을 잘 알면 알 수록 얼마나 디테일하고 무서운 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별 것 아닌 것에도 조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티즌포'는 용기 내어 공객적으로 말하라고 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의미 있고 현재에 간절히 필요한 이유다.



1. 다시 생각해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나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의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 자기 검열을 은연 중에 하게 만든 다는 건, 스스로에게 창피한 것도 창피한 거지만 그 보다는 이렇게 만든 이들이 명백히 잘못한 일인거죠. 움츠러들 수록 그들의 의도되로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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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선 (The Look of Silence, 2014)

악마와 얼굴을 마주하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 (The Look of Silence, 2014)'은 1965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군부정권 하에서 벌어진 100만명에 달하는 공산당 학살 사건을 되짚는 여정이다. 물론 당시에는 공산당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대학살이었지만 그들은 공산당이 아니었고 그저 군부정권에 반대하는 일반 국민들이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국가들에게는 비슷한 역사적 사건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인도네시아의 경우가 조금 다른 점이라면 독일 나치의 경우와는 달리 아직까지도 완전히 씻어내기는 커녕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이 점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오랜 시간을 들여 당시 형 람디를 끔찍하게 잃었던 아디와 함께 당시 학살을 저질렀던 이들을 한 명 한 명 만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직 그 정치적 상황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까? 관객은 이 여정에서 살아있는 악마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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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만나게 되는 여정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아디의 여정이 더 참혹한 건 형을 비롯해 수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이들이 아직까지도 그 때를 자랑스럽게 추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명 한 명 현재를 살고 있는 가해자들을 만날 때 마다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낯선 이방인인 조슈아의 카메라 앞에서 학살 당시를 구체적으로 기억하며 직접 몸으로 재연까지 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고 안쓰러움을 넘어서 뭐라 해야 할지 답답할 지경이다. 아직도 그들의 기억 속에는 공산당들을 처단했던 애국적인 행동인 동시에 영광스럽고 주변에 자랑할 만한 멋진 추억인 것이다.


보통 이러한 역사나 사건을 다룰 때 갖게 되는 시각은 가해자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미쳐있었던 시절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 가해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고 행했던 미친 시절.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얼마나 세상이 미쳐있었던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같을 수 없다. '침묵의 시선' 속 조슈아의 카메라 앞에 선 가해자들의 얼굴에는 연민을 갖기 힘든 악마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말해 그들은 정말로 피해자들이 짐승 같은 공산당인줄로만 알았고,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무서운 마음에 피해자의 피를 마셨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을 그저 미친 시절의 벌어진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선택을 관객이 직접 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객관적인 (하지만 직접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오히려 피해자인 아디와 제 3자인 조슈아는 가해자들을 이해해보려는 마음마저 느껴진다. 지금이라도 가해자들이 당시를 후회하며 '그 땐 어쩔 수 없었어요, 나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으니까요.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하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그 땐 왜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모르겠네요'라며 후회라도 했으면 했을 텐데, 놀랍게도 가해자들의 입에선 왜 다 지난 일을 일부러 들춰 내냐는 화가 돌아 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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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코 시대의 탓으로 마무리 되어서는 안된다. 앞서 영화의 시각이 객관적이라고 했지만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객관적이면 객관적일 수록 한 편에 일방적으로 서게 되어 버리는 구조다. 시대의 탓으로 돌리기엔 가해자들의 지금 태도는 물론이고 하물며 지금의 태도가 아직 진행중인 상황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과거의 참혹했던 학살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해도 이해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마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몇 번의 가해자와의 대화를 보면서 나는 진짜 악마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스스로 옳고 그름은 물론 인간성마저 쉽게 포기해 버린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고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은 그 어떤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직접적이고 극적인 작품이다. 만약 이 영화 속에 담으려 했던 진실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작았더라면 그의 연출 방식에 수긍하지 못했을 정도로, '침묵의 시선'은 그 어떤 극영화보다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며 공포스럽다. 사실 영화 초반만 해도 자신이 피해자의 가족임을 숨기고 가해자들을 만나 그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가해자들이 현재 어떤 가치관으로 살고 있고 당시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지를 (그야말로)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일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디와 조슈아의 여정은 그것보다 훨씬 직접적이었다. 아디는 점점 그들이 불쾌해 할 정도로 질문의 강도를 높여가고, 나중엔 자신이 당신이 당시 학살했던 이의 동생이라는 점을 그 앞에서 밝히기도 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 가운데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이를 찾아가 직접적으로 되묻기까지 한다. 어떤 주먹질도 총칼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대화 장면은 어떤 액션 영화보다도 긴장감 넘치고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죄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감독의 연출 방식에 대해 수긍하지 못할 뻔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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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것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고 있는데, 점차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침묵의 시선'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작품은 한 편으론 기획과 연출이 직접적으로 가미 된 작품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과연 이것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가둬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진실과 사건 그리고 사람이 담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차라리 이 이야기가 픽션이기를 간절히 바랄 정도였다. 이 충격적인 역사를 아주 조용하지만 용기있게 거슬러 올라가는 아디는 차라리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기를 바랬을 정도로, 이 진실은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아디가 용기를 내면 낼 수록 더 겁이 났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인도네시아의 참혹한 역사가 전혀 남의 나라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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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가해자였던 일본과 더 질이 나쁜 권력 세력이었던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슬픈 역사를 지닌, 아니 진행중인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속에서 당시를 추억하며 그 끔찍한 학살이 이뤄진 스네이크 강 앞에서 손가락으로 V를 만들며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았을 땐, 기가 차는 것과 동시에 친일 행위를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정당화 하려는 친일파 세력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디처럼 이 악마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진실을 되물을 수 있을까. 그런 용기를 갖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소한 내가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하더라도 그 용기가 정의로운 행동이고 응원할 수 있는 양심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1. 이 작품 보다 먼저 제작되고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감독의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은 미처 못보았는데, 꼭 찾아 봐야겠네요 (국내에 정식으로 플레인에서 블루레이로도 출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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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2015] 퀸 오브 사일런스 (The Queen of Silence, 2014)

영화가 응원하고자픈 소녀의 꿈



데니사는 폴란드의 집시 캠프에 불법 거주하고 있는 열 살 소녀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 춤과 리듬으로 가득한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며, 데니사는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발리우드영화에서 본 화려한 여인들의 흉내를 낸다. 춤추는 동안만큼은 잔인한 현실을 떠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소녀는 마침내 말로 할 수 없었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공포와 같은 감정들을 표현해낸다.


아그니에슈카 즈비에프카 감독의 '퀸 오브 사일런스 (The Queen of Silence, 2014)'는 귀가 들리지 않는 집시 소녀 데니사의 이야기를 통해 은근히 한 소녀의 꿈과 집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들리지 않는 소녀의 장애에 관한 묘사는 비교적 가혹하지 않다. 관객에게 일부러 들리지 않는 고통에 공감하도록 주입하지 않고, 데니사를 둘러 싼 동네 아이들의 짓궃은 놀림과 장난들도 데니사를 피해자로서 묘사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감독의 의도 못지 않게 데니사 자체가 워낙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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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오브 사일런스'가 조금 특별했던 건 이 영화의 연출 방식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100% 실제의 것 만을 다룬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른 편집이 가해지기 때문) 일반적인 다큐 영화가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데니사는 발리우드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는데,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발리우드 영화처럼 중간 중간 연출된 댄스 장면을 삽입하였다. 즉, 데니사가 맨 앞에서고 몇몇 실제 아이들과 동원된 엑스트라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댄스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으로 조금 이질적이고 불편할 수 있는 방식인데, 그러게 느껴지기 보단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데니사의 꿈을 조금 이라도 이뤄주고픈 영화의 마음이 느껴져 조금은 행복해지고 또 조금은 애잔해졌다.


만약 실제 데니사의 이야기가 조금 더 희망적이거나 더 행복해 지는 일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더라면 이 연출된 댄스 장면이 더 이질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함께 지내던 가족들과도 떨어져 더 먼 다른 나라에서 홀로 지내게 되고, 듣는 것 역시 그다지 진전이 없게 된 현실에 비춰 보았을 때 감독은 더 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서 데니사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퀸 오브 사일런스'는 일반적인 다큐와는 다르게, 실제 주인공들과 함께 만든 영화에 가깝다. 그냥 의미상 함께 만든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데니사와 아이들이 이 작업을 이해하고 연기하며 함께 만든 영화.


아마 이 작품을 본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하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감정이 들기 이전에 데니사의 환하게 웃는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 미소가 남긴 의미가 깊은 여운으로 남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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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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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Factory Complex, 2014)

자본주의의 유령을 쫓다



위로'공단'이라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 (Factory Complex, 2014)'은 '그 많던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다 어디 갔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영화는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실제 당사자인 여공들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대우와 그들이 목숨 걸고 투쟁하게 된 이유에 대해 들려줄 때까지만 해도 보통의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들과 그렇듯이, 이 사건을 통해 피해를 받거나 고통 받은 이들에 대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를 통해 더 넓은 범위의 기업과 근로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단지 몇 몇 노동과 관련 된 사건에 포인트를 둔 작품이 아니었다. '위로공단'이 꺼내 든 노동에 관한 이야기는 동일방직 사건에 대한 이야기 이후 YH무역 농성사건, 구로동맹파업에 이어 비교적 최근 문제였던 기륭전자 사태까지 다루는 것은 물론, 2014년 캄보디아에서 벌어졌던 노동자들의 유혈사태까지 이야기를 확장 한 뒤, 비교적 매우 밀접한 노동 문제였던 대형마트, 스튜어디스, 콜센터 직원들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까지 포괄하는 광범위의 노동 아니, 자본주의의 근간에 대해 묻는 문제적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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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위로공단'의 구조는 여러 가지 노동과 관련된 사건들과 그 당사자들의 인터뷰들을 늘어놓는 방식이다. 늘어 놓았다는 건, 이 다른 사건들 간의 연결 고리를 영화가 굳이 직접적으로 맺으려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임흥순 감독은 이 영화적 연결 고리를 만들지 않는 대신, 별도의 연기자가 연기한 인서트 컷들을 추가시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임흥순 감독은 영화 감독인 동시에 미술가이기에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미술가적 연출이 돋보인 구성이었는데, 만약 이 연결 고리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라기 보다는 노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혹은 자료에 그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가감없는 인터뷰를 담아내면서 (여기서 가감이 없다는 건 감독이 일부러 끔찍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내용만 담거나 혹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등 일방적인 경향의 인터뷰로 영화의 성격을 규정 짓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 전반적으로는 다른 가공의 컷들을 통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 고발 다큐가 진실을 알리고 행동하기를 권하는 것과는 달리, 쉽게 답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한 번쯤은 꼭 고민해 보도록 만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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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이 던진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던 건 결코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가치는 언제부터 이토록 타락했나?'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한 행위 이상을 노동에서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목적 외에 노동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등 단순히 권력을 쥔 회사가 그렇지 못한 노동자를 탄압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계가 분명할 수 밖에는 없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질문에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최근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한 뒤 오랜 시간 다닌 소중한 직장을 관두는 개인적 일이 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노동의 순수한 가치를 믿고자 하는 입장에서, 결국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노동 외에는 가치를 찾는 것에 실패 했기 때문에, 견디고 견디는 것을 반복하다가 결국 이 같은 선택을 한 최근이었다. 현실적인 질문으로 돌아갔을 때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으로 회사를 다니고 노동을 하는 것이 결코 잘못되었거나 불순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사실상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사회라면, 결국 이 영화 속에 등장한 여러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건들은 또 다시 반복될 수 밖에는 없다는 것도 스스로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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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영화 내내 떠도는 유령 같은 두 소녀의 이미지는 희망스럽기 보다는 공포스럽게 또 애처롭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쩌면 유령처럼 떠돌 수 밖에는 없는 삶 속에 놓여 버린 것은 아닐까. 일한다는 것에서 돈을 번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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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



이번 EIDF 2014에서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애런 슈워츠에 관한 작품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다.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인터넷을 위해 태어난 소년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말 제목인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IT업계에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였다. 앨런 슈워츠는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블로그를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RSS를 개발한 것은 물론, 저작권과 관련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 역시 만든 장본인이다. 특히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이미 프로그램에 눈을 떠서 자신이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바를 코드로 구현 하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그의 인생에 대해 특히 천재 프로그래머로서의 면면 외에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앨런 슈워츠는 단순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용감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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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 그가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미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현대 정보 통신 이면에 숨어 있는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친다. 무엇이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는가? 2014년 Hot Docs 개막작


세상을 바꾼, 혹은 바꾸려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보면 감탄과 동시에 우러러 보게 되는데, 앨런 슈워츠의 경우는 정말 최근 내가 알게 된 누군 가의 삶 가운데 가장 진심으로 우러나와 그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주장했던 것들은 그가 천재 개발자나 해커여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해할 만한 평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 문제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순 없을 땐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역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던. 그래서 천재 해커로서 그가 이룬 것들 보다 오히려 사회운동가로서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더 대단하고 인정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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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가 사회의 불합리와 싸워온 과정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너무도 보편적이고 뻔하게만 느껴지는, 바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명제였다. 더 나은 세상은 누구나 꿈꾸지만 막연하거나 실제로는 이를 위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진심으로 이를 위해 싸우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겁내지 않았던 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몹시 두려워 했고 힘겨워 했다) 애런 슈워츠의 삶과 행동을 보니 무언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 그러니까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만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시스템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애써 생산한 콘텐츠를 너무 쉽게 도용하는 잘못된 사용과 이해가 만들어 낸 상황들 때문이기도 한데,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좀 더 공유 보다는 만든 사람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시스템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후 그의 삶에서 그가 보여준 정보 공유가 한 사회, 아니 세대와 역사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작게 생각하면 정보라는 것은 생산하거나 처음 취득한 사람이 개인적 이익의 측면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정말 속 좁지만 내가 어렵게 알게 된 걸 그저 남이 쉽게 알게 되는 자체가 못 마땅해서 지식 공유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애런 슈워츠의 경우 처럼 이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이 한 사회의 단위로 공유될 때, 그 이전엔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까지 가능한 가를 그가 설파 한 논리는 물론 실제 그의 생각을 믿고 있던 이들이 이뤄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애런 슈워츠는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프로그램 안에 갇혀 있는 우리들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유라는 마법의 스펙트럼이 코드로 쫙 머리 속에 펼쳐졌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의 삶에 진정으로 감동 받았고,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만들고자 했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까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 다시보기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112658&lectId=10245365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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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인디게임 (Indie Game: The Movie, 2012)

모든 인디 제작자가 겪게 되는 일들



정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거기다가 인터넷에서 다시 보기로 까지!) EIDF! 매 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영화제라 이번 역시 어떤 작품을 먼저 볼까 고르던 중이었는데, 일단 가장 구미가 당겼던 '인디게임'을 선택하였다. 뭐 게임이라면 워낙 관심이 많고, 지난 해 흥미롭게 읽었던 조던 매크너의 '페르시아 왕자 개발 일지'처럼 내가 평소 즐기는 게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 궁금했기에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택했다. EIDF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간략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에드먼드와 토미는 게임 <Super..Meat..Boy>의 출시를 7개월 앞두고 있고,..필은 4년 동안 준비한 게임 <FEZ>의 공개를 5개월 남겨두고 있다...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한 스크린 뒤에는 개발자들의 고난과 역경만이 계속되는데……...과연 게임은 무사히 완성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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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디게임 한 편이 어떤 과정, 특히 소비자는 미처 알기 어려운 힘겨운 과정과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출시가 가능한지 그 이면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론 사실 '인디게임' 이라는 제목 가운데 '게임'에 더 흥미가 느껴져서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보고 난 느낌은 '인디'에 더 전반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게임 측면으로는 나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엑스박스 마켓 플레이스에 출시되는 인디 게임을 다룬 이야기라 하나 하나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역시 '인디'게임의 제작 과정을 소재로 했다는 것. 대형 게임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이 출시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물론 이 과정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다) 1~2명의 개발자가 기획, 개발, 디자인, 퍼블리싱,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독립적인 제작과정의 이야기는,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과정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게임 개발이라는 특성상 홀로 사회와 멀어져 오랜 시간을 개발에만 몰두하거나, 그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개발한 게임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심리적 상태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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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인디 게임과 그 시장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부터 출시까지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십분 공감할 만한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서비스를 운영했던 입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특히 최근 다른 새로운 서비스(제품)를 처음부터 하나 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터라, 이들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일들은 물론, IT업계에서 기획, 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본다면 아마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EIDF는 정말 감사하게도 방영 시간을 놓친 작품이라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보기를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하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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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BS 국제다큐영화제]

특별 추천작 및 개막작 _ 블랙 아웃 (Black Out)



지난 토요일(12일), 매봉역에 위치한 EBS 사옥에서 있었던 제1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EIDF)의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 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지난 번 '계단 2'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EIDF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소개를 했었었는데, 한 번 더 추가하자면 전 세계의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소개하는 '좋은' 영화제로, 극장은 물론 TV에서도 영화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영화제였는데, 좋은 기회에 개막전에 미리 간담회에 초대 받아 자세한 설명도 듣고, 개막작인 '블랙 아웃 (Black Out)'을 가장 먼저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어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의미 깊었던 시간은 EIDF의 프로그래머 분이 직접 소개해주신 'EIDF를 즐기는 10가지 방법'이라는 내용의 간단한 발표였는데, 특히 시놉시스 등 기본 정보 만으로는 흥미를 이끌기에 조금은 부족함이 느껴졌던 작품들을, 몹시 보고 싶게 끔 만드는 핵심적인 소개의 시간이라 매우 유익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EIDF를 매년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렇게 좋은 영화제인 것에 비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라는 점이었거든요. 물론 다큐멘터리 라는 장르의 특성 상 대중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고 다큐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해소 시킬 만한 극 상업 영화 못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여럿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도 별로라는 평을 듣기 이전에 많은 분들이 아직 존재조차 모르는 현실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포스팅으로나마 EIDF를 소개하고자 하는 점도 있구요.





이 시간을 통해 제가 특별히 흥미를 갖게 된 몇 작품을 소개하자면,


1. 게이트키퍼 (The Gatekeepers) _ 드롤 모레 감독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 중 하나 인 신베드(Shin Bet)의 지난 30년 간 수장을 지낸 6명의 심층 인터뷰를 담은 작품으로, 정보기관이라는 특수한 조직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 역사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2.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Google and the World Brain) _ 벤 루이스 감독


현재까지 1천만 권의 책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다는 구글. 하지만 이 가운데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책들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빅 브라더가 되고자 하는 구글의 프로젝트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 담긴 작품입니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으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네요.


3. 우리들의 닉슨 (Our Nixon) _ 페니 레인 감독


닉슨에 관한 자료와 뒷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죠 ㅎ 이 작품은 닉슨의 최측근이었던 삼인방 봅 홀드먼, 존 얼릭먼, 드와이트 체이픈이 직접 슈퍼8mm 카메라로 촬영했던 영상들을 담은 작품으로서, 기록으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쓰촨은 무너지지 않았다 (Fallen City) _ 치 자오


개인적으로 상실과 상실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런 면에서 주목하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쓰촨은 무너지지 않았다' 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삶이 무너져 버린 가족의 이야기와 그럼에도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5.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I Will Be Murdered) _ 저스틴 웹스터


이미 제목에서 부터 잔뜩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암살을 예고한 듯한 발언을 했던 과테말라의 로드리고 로젠버그라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자신이 암살 당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동영상이 공개되며 이 문제는 대통령과 과테말라 전체를 혼란에 휩싸이게 만드는데.. 아, 이 작품도 안보고는 못 배기겠네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날은 간담회가 끝나고 가장 먼저 개막작 '블랙 아웃'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요, 평소 EBS SPACE 공감의 공연이 펼쳐지는 곳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에바 웨버 감독의 이 작품은 서아프리카의 빈국 기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인구의 80%가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해 공부를 하려는 어린 학생들이 밤이면 유일하게 전기가 공급되는 공항이나 주유소 등의 불빛에 의존하여 공부를 하는 모습을 통해, 기니라는 나라의 현실은 물론, 우리의 삶을 되 돌아 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IDF의 프로그래머 분께서도 간담회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개인적으로도 EIDF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가정에서 손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일 텐데, 그런 면에서 '블랙 아웃'을 통해 만나보게 된 기니의 현실은, 얼핏 들어왔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47분의 길지 않은 러닝 타임에도 기니의 핵심을 관통하는 여러 가지 담론에 대해 떠올려 볼 수 있었으며, 이들에 비해 너무도 부유해 한 편으론 배부른 현실에 놓인 우리를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EIDF 영화제는 10월 18일 부터 25일 간 TV EBS채널과 건대 시네마테크, 고대 시네마트랩, 인디스페이스 등을 통해 상영될 예정이며, 자세한 스케쥴 및 내용은 아래 EIDF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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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BS 국제다큐영화제

이 작품을 주목하라 - 계단 2: 최후의 변론 (The Staircase 2)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극장에서는 물론 TV를 통해서도 함께 소개하는 영화제인, EBS 국제다큐영화제 (EIDF)가 벌써 올해로 10회를 맞았네요. 평소 다큐멘터리에도 관심이 많고 다른 영화제에 비해 집에서 TV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용이함이 있다 보니 이전부터 꾸준히 주목하고 있었던 영화제인데, 올해도 10월 18일 ~ 25일까지 고려대학교 시네마트랩, 건국대학교 시네마테크, 인디 스페이스, EBS SPACE 를 통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올해 EIDF는 '진실의 힘 (Truth Let it be Heard)'이라는 주제로 상영 작들이 초대되었는데, 다큐멘터리가 다른 극 영화 장르에 비해 더 차별 점을 가질 수 있는 '진실' 전달에 포인트를 두었다는 점에서, 초대 된 작품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게 되더군요.





일단 본격적으로 제가 이번 EIDF에서 추천하는 작품에 대해 소개하기 이전에, 아직 EIDF에 대해 조금은 낯선 분들을 위해 좀 더 소개해 드리자면, 앞서 설명 드렸던 바와 같이 다큐멘터리 작품들 만을 소개하는 영화제로서 올해는 91개국의 756편의 작품이 출품 되었으며 이 가운데 23개국 54편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부분 경쟁 국제 영화제로서 영화제 마지막 날 시상식도 진행되며, 무엇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가정에서 EBS 채널을 통해 영화제 기간 동안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방영되는 작품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인 영화제 입니다. 물론 극장에서도 상영을 하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고 싶은 작품들은 고대 시네마트랩, 건대 시네마테크와 인디 스페이스 등을 통해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까지는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와 함께 했었는데, 극장에서 가서 관람했던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영화 '계단 2 : 최후의 변론'의 한 장면)


제가 이번 EIDF에서 소개, 아니 추천 드리고 싶은 작품은 장 자비에 드 레스트레이드 감독의 2011년 작 '계단 2 : 최후의 변론 (The Staircase 2)'입니다. 장 자비에 드 레스트라드 감독은 프랑스 출신의 작가, 연출자, 영화/TV시리즈 제작자로서 주로 사회의 구조를 분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던 감독인데, 그는 전작 '일요일 아침의 살인'을 통해 아카데미 영화제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 '계단 2'로 올해 EIDF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단 2'는 '계단 (The Staircase)'에 이어 10년 만에 선보이는 후속 작으로서, 마이클 피터슨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건 8년 후 조사에 참여했던 일부 수사관들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를 기반으로 다시 재심을 받기 위해 벌이는 긴 법정 심리를 지켜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극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긴장감과 리듬 그리고 실화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만약 이 작품이 EIDF에서 상영되었다는 걸 몰랐다면 다큐멘터리 형식을 띈 일반 극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몰입 감과 긴장 감을 전달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계단 2 : 최후의 변론'의 한 장면)


이 작품이 더 흥미로웠던 점은 연출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음에도 하나에 완벽한 작품으로서 성립하고 있다는 점일 텐데, 마이클 피터슨이 겪어야 했던 8년 간의 이야기와 지리 한 법정 심리가 영화보다 더 영화 다운 이야기여서 이기도 하지만, 이를 묵묵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감독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해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힘을 얻게 될 때는 감독 본인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어느 한 편에 서서 지지하거나 정반대로 완전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경우가 있을 텐데, '계단 2'는 후자에 가깝기는 하나 본 사건 자체가 워낙 한 편으로 치우친 (정의의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사건이었기에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진실의 힘'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비슷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적지 않게 보았었는데, 만족스러웠던 그들과 비교해도 '계단 2'는 전혀 모자라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EIDF 상영 작 가운데 단연 추천하고 싶네요! '계단 2'는 EBS 채널을 통해서도 상영될 예정인데요, 10월 19일 (토) 오후 11시 45분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또한 극장에서도 상영될 예정인데요, 고려대학교 미디어관 4층에 위치한 KU시네마트랩에서는 10월 21일 (월) 낮 12시 50분에 상영될 예정이며, 건국대학교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에서는 10월 20일 (일) 오후 7시 40분, 21일 (월) 오후 1시 10분 이렇게 2회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영화 '계단 2 : 최후의 변론'의 한 장면)


마지막으로 이번 EIDF는 일반 상영 외에 특별 상영과 부대 행사들도 열릴 예정인데, 비틀즈 팬클럽 관리자였던 프레다 켈리와 'Good Ol' Freda'의 프로듀서인 제시카 로우슨이 참석한 가운데 'Good Ol' Freda'의 특별 상영과 함께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인 멘틀즈와 타틀즈의 공연이 곁들여진 '비틀스 데이'행사가 10월 24일 (목) 4시 반 부터 10시까지 EBS 1층 로비 및 EBS SPACE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한 도시와 건축 섹션 중심으로 선정된 3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관련된 책의 저자와의 만남도 진행하는 '건축 다큐 북 콘서트'도 10월 22일 ~ 24일 KU 시네마테크에서 열릴 예정이니, 건축과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시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이번 제 10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과 상영 작들에 대한 소개는 아래 EIDF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다음주 금요일인 10월 18일 부터 25일(금)까지 극장과 EBS 채널을 통해 진행될 제 10회 EIDF 영화제의 작품들을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추천한 '계단 2 : 최후의 변론'도 10월 19일 (토) 오후 11시 45분에 방영 예정이니 꼭!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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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

닮고 싶은 죽음, 아니  삶



비록 제작자라 할지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신뢰의 이름 그리고 죽음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을 지낸 마미 스나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도모아키 스나다의 마지막 여정을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도모아키 스나다는 자신의 삶을 직접 정리하며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평소 영화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자주 우는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만 같은 영화지만, 오히려 이 영화엔 눈물보단 미소와 부러움이 더 깊게 흘러나왔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울지 않았다.



ⓒ 영화사 진진. All rights reserved


죽음을 계획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도모아키 씨의 여정은 결코 슬프지 않게 그려진다. 아니 그려진다는 연출의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보다는 유쾌함이 담겨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도모아키 씨가 적어내려간 엔딩 노트엔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장례식 초대 명단 정리하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을 믿어보기' 등 적어도 죽음보다는 삶이 느껴지는 to-do list가 담겨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영화들이 주인공의 일생을 모두 담으려 하는 것과 같은 거대한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도모아키 씨의 젊은 시절을 사진과 홈비디오 등으로 회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죽음을 더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장치라기 보다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 과의 관계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배려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런 유쾌한 분위기가 도모아키 씨의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가 관객을 위해 만든 방식이라고 오해할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는 철저하게 도모아키 씨의 생각과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 왜 애쓰고 있다고 하냐면 이 작품을 촬영하고 만든 이가 바로 그의 막내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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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어떤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아닌 계획을 짜보기도 하는데, 그런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엔딩 노트는 정답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서 과연 이런 계획을 실현 혹은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삶은 '가능하다' 라는 확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엔딩 노트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도모아키 씨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모아키 씨의 죽음이 정말 부러웠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하게 꿈꾸었던 죽음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도모아키 씨의 죽음보다는 그의 삶을 더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런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이런 그의 마지막을 기꺼이 함께 동참해주는 가족을 갖고 있는 그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엔딩 노트'는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모아키 씨처럼 죽고 싶다' 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도모아키 씨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결코 울지 않았다. 최근 본 그 어떤 영화들 보다도 해피 엔딩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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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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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2011)

말하는 순간 기적이 되는 영화



뒤늦게 고백하자면 이 영화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2011)'은 처음 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영화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이 영화 시사회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였음에도 크게 관심이 가는 작품은 아니었다. 음악이나 뮤지션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주인공인 뮤지션에 대한 애정도였기에, 처음 보는 로드리게즈라는 뮤지션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개봉 이후 이 작품을 본 이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놀라운'것이었는데, 그냥 '재밌다' '재미없다'의 반응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흥미를 갖게 되었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 반응을 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음악 다큐 영화를 선택할 때 그 뮤지션에 대한 애정도를 보고 선택한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라면 아마도 이 영화를 선택할 사람들은 남아공 사람들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홍보 문구처럼 대중들은 물론 '그 자신도 몰랐던 기적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Red Box Film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서칭 포 슈가맨'에 대해 글로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글의 부제목을 '말하는 순간 기적이 되는 영화'라고 지은 것은 그냥 허세나 있어보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상에는 내가 이렇게 보았다는 것을 너무나도 풀어놓고 싶은 영화와, 그보다는 누군가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는 영화가 있는데, '서칭 포 슈가맨'은 후자 가운데서도 아주 그 성격이 강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리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보고자 한다면 절대 이 영화와 관련된 정보 페이지나 포스터/스틸컷 등도 접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서칭 포 슈가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최대한 로드리게즈에 대해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대부분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서칭 포 슈가맨'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 두 장의 앨범 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미스테리의 가수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 가운데서 로드리게즈 그 자신도 몰랐던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두 가지 인데 하나는 마치 스릴러 장르를 보듯 베일 속에 완전히 가려진 로드리게즈 라는 가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재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영화적으로도 짜임새가 좋은 편이라 로드리게즈를 찾아가는 과정에 리듬이나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더 나아가 관심도 없었던 로드리게즈라는 인물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갖을 만큼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한 편, 관심을 얻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관객과 쥐었다 폈다하며 로드리게즈의 비밀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나간다.


두 번째 흥미로운 지점은 스포일러가 있다.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Red Box Films. All rights reserved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힙겹게 알게 된 로드리게즈의 이야기가, 아니 그의 삶이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최근 보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지 해리슨'도 그러했듯이,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로드리게즈라는 한 인간의 삶이 주는 감동은 나로하여금 절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정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에 현실에 허덕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그의 삶은, 힘든 시절을 그의 노래로 버텨온 남아공 사람들의 에너지와 더불어 이 영화를 단순한 음악 다큐멘터리 이상의 것으로 빚어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로드리게즈를 실제로 만나게 된 남아공 사람들의 '진실된' 환희와 자신도 모르는 세월 동안 자신을 지지해 준 남아공 사람들을 만나게 된 로드리게즈의 감격은 그 자체로 진한 감동을 주었다. 만약 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려준다면 단 번에 믿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런 일들을 다 겪고도 아직도 디트로이트의 그 오랜 집에서 수십년간 해오던 힘들고 남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는 로드리게즈의 삶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바로 로드리게즈의 삶 그 자체다.



(스포일러 끝)




ⓒ  Red Box Films. All rights reserved


(영화 팬 이전에 음반 애호가로서 로드리게즈의 'Cold Fact' 앨범은 정말 갖고 싶네요)



'서칭 포 슈가맨'은 단순한 음악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내가 올해 알게 된 누군가의 삶 중에서 가장 감사하게 여기게 된 누군가의 삶을 담은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런 삶이 있다니. 기적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1. 음악이 정말 좋습니다. 이미 'Sugar Man'이 나오는 첫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죽이는데!'라는 탄성이 흘러나왔어요. 당연히 사운드 트랙은 이미 질러져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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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2011)

물질 세상 속 영적인 존재가 되다



비틀즈의 멤버이자 기타리스트로서, 솔로 뮤지션이자 에릭 크랩튼과의 유명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비 샹카의 영향으로 인도 음악과 시타르 연주자로서. 이 정도가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조지 해리슨의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항상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구가 존재했었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비틀즈 보다는 존 레논을 좋아하는 편인데, 조지 해리슨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수록 마치 비틀즈 - 존 레논이 그러했던 것처럼 더 큰 궁금증과 더 큰 만족을 얻게 되던 차에 바로 이 영화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Living in the Material World)'을 만나게 되었다. 거기다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마틴 스콜세지라는 점에서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스콜세지라면 누군가를 담아내는 표현에 있어서 객관적이면서도 일반적으로는 놓치기 쉽지만 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반드시 이야기해야할 '정수'를포착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믿음은 이번에도 옳았다.



ⓒ Grove Stree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208분이라는 러닝 타임 답게 이 작품은 조지 해리슨이라는 인물을 시작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까지 차근차근 담아낸다. 비틀즈 결성 전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와 밴드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틀즈라는 전설적인 밴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이후 비틀즈 활동 시절의 몇몇 일화들과 이후 그들의 관계가 소원해 지고 해체에 이르는 과정 역시 기존에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좀 더 조지 해리슨 중심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비틀즈 활동 이후 솔로 뮤지션이자 영적인 존재가 되고자 했던 조지 해리슨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비 샹카를 알게 된 이후 그에게 깊은 영감을 받은 조지 해리슨은 직접 시타르 연주를 사사 받은 것은 물론, 그의 음악을 더 큰 세계 음악 시장에 알리는 데에 적극적이었고 또한 세계 최초의 대규모 자선 콘서트였던 '더 콘서트 포 방글라데시 (1971년 8월 1일)'를 개최하며 단순한 뮤지션이 아닌 더 가치 있는 일들을 '행동'으로 옮겼다.




ⓒ Grove Stree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이 작품에 담긴 그의 삶을 다시 한 번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영화 속에 담긴 그의 삶을 보고 느낀 바가 더 중요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마치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 '울지마 톤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마음의 울림을 얻게 되었다. 아마도 마틴 스콜세지가 반해 그의 삶을 더 많은 이들에게 영화로 소개해야 겠다고 마음 먹은 것 역시 같은 울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조지 해리슨의 삶 그러니까 그가 살면서 마음 먹었었고 행동으로 그리고 끝까지 삶 자체로 증명한 것들, 그리고 그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의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글로만 보자면, 아니 더 자세한 설명으로 들어도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직관적이라기 보다는 모호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놀랍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리고 본질적으로 조지 해리슨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영적인 존재',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지언정 적어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만들었다가 아니다).



ⓒ Grove Stree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보통 영화의 리뷰 글을 쓸 때는 내가 느낀 바에 대해서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글로 표현할 길 없는 내 감상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보았으면 하는 소개와 바램의 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혹시 '조지 해리슨' 이라는 비틀즈 멤버로서의 인물과 208분이라는 쉽게 다가서기 힘든 시간 때문에 이 작품을 멀리한 이들이 있다면, 결코 이런 이유 때문에 놓쳐버릴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전하고 싶다. 이 작품은 비틀즈 멤버로서의 조지 해리슨도 물론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조지 해리슨의 삶에 대해 깊게 조명하고 있으며, 208분이라는 러닝 타임 역시 부담으로 느껴지기 보다 그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다시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까지는 비틀즈 보다 존 레논을 좋아했었는데 앞으로는 조지 해리슨을 더 동경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삶도.



ⓒ Grove Stree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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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Woody Allen, a Documentary, 2012)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우디 앨런



예전에는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좋아진 감독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라면 국내에는 홍상수 감독이요, 국외에서는 우디 앨런 감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예전 영화들은 몇몇 보아왔지만 사실 그의 많은 작품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작품만을 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디 앨런 영화의 재미를 본격적으로 느낀 것은 어쩌면 2005년 작 '매치 포인트 (Match Point)' 부터 인 것 같다 (덜 우디 앨런스러운 영화부터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함정). 여튼 그 전까지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은,  그 이후 '스쿠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환상의 그대'를 지나 '미드나잇 파리'에 이르면서, 이제는 정말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시기적인 타이밍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거의 제대로 못 본 상태에서 이미 팬이 되어버린 경우라, 그의 전작들과 그의 과거에 대해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작품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만나면서 좀 더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 Whyaduck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일단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디 앨런의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정말로 다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의 경우 어느 한 시기나 사건에 고정되거나, 혹은 시작은 모두 다루지만 현재까지는 다루지 않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운 점들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로 현재 시점, 그러니까 '미드나잇 파리'를 마치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투 롬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더 느껴졌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이 현실감 혹은 동시간대를 느낄 수 있도록 늦지 않게 국내 개봉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 몰랐던 그의 초창기 활동들 즉, 영화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스탠딩 코미디언과 코미디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비교적 자세히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본명인 앨런 스튜어트 코닉스버그 대신 어떻게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는지 (알고 보면 별 것 없지만;), 작은 지역 신문에 코미디를 기고하던 이가 어떻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당시의 우디 앨런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당시의 귀한 자료들을 보니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미국인들만 웃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인지 분간은 안되어 덜 웃긴 개그들도 있었지만, 지금봐도 우스운 장면들이 많았을 정도로 영화 감독이 아닌 코미디언으로서의 우디 앨런도 만나볼 수 있었다.



ⓒ Whyaduck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후 그가 왜 영화 판에 뛰어들었고 더 나아가 왜 영화 감독이 되려 했는지부터, 그렇게 시작한 영화 감독으로서의 활동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직접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심층 깊게 만나볼 수 있는데, 우디 앨런이 쿨한 사람이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런가 그의 대한 이야기들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들로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런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지나치는 것들이 그 인물에 대한 단점이나 약점 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디 앨런에게 커리어의 끝을 예상했을 정도의 스캔들이었던 양녀 '순이'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감정적인 측면보다 사실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 다른 이유는, 제 3자들로 인해 소개되는 우디 앨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소개하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우디 앨런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관련된 과거들, 그리고 자신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함에 있어서 코멘트가 필요한 적제적소에 등장해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이렇듯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개봉 제목처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알려주는 동시에 제법 '잘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 Whyaduck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을 보고나면 누구나 그의 전작들이 너무도 보고 싶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극장을 나와 집으로 오자마자 집에 DVD랙을 뒤져서 그의 전작들의 소장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미처 소장하지 못한 작품들의 DVD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쇼핑몰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1935년 생으로 올해 80이 다되어가는 이 감독은, 노장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아직도 정력적으로 작품들을 매년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작품들은 심지어 더 좋아지고 더 젊음과 노련함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그의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우디 앨런은 과거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작 '투 롬 위드 러브'도 정말 기대된다.



ⓒ Whyaduck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 그의 전작 가운데서 현재 가장 보고 싶은건 '애니홀'과 '젤리그', '슬리퍼' 그리고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요. 그 가운데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일 것 같네요 ㅎㅎ


2. '미드나잇 파리'도 꼭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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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게인 (The Swell Season, 2011)

원스의 그와 그녀, 그대로의 이야기



영화 '원스 (Once, 2007)'의 두 주인공 '그' 글랜 한사드와 '그녀' 마르케타 이글로바가 주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The Swell Season'을 보았다. 참고로 Swell Season은 이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한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이기도 한데, 국내에서는 좀 더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어필하기 위해 '원스 어게인'이라는 제목을 달고 개봉했다 (그래서 혹자들은 후속편으로 알고 있기도;;;). 개인적으로 영화 '원스'로 인해 이들의 음악을 알게 되었고, 글렌 한사드가 프론트맨으로 있는 밴드 '더 플레임즈 (The Flames)'의 앨범들과 그녀와 함께한 The Swell Season의 앨범 그리고 이들의 내한공연에도 다녀왔으며, 이후 마르케타의 솔로 앨범 'Anar'에 이르기까지, 이 두 사람의 음악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이 영화 'The Swell Season'은 음악적인 이야기보다는 바로 그와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영화 '원스' 역시 실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에 비하면 완전한 극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영화 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원스'였다면, '스웰 시즌'은 현실 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Elkcreek Cinema.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바로 거기서 부터 시작한다. 아일랜드에서 음악만 해오던 남자 글렌 한사드와 체코에서 역시 소박하게 음악만을 해오던 한 여자가, 우연한 기회에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이 영화로 인해 전 세계인에게 주목 받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광의 수상자가 된 이후, 그들이 겪게 된 새로운 변화로 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이야기가 단순히 급작스러운 성공 후에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단정짓기엔, 이들에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글렌과 마르케타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고 이 성공이 둘 사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으며, 연인에서 친구로 남기까지의 과정에서는 오히려 음악보다 남녀간의 이야기가 더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정도로 스타가 되었음에도 아직 '스타'라는 것과는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는 이들답게, 극 중 예상치도 못하게 훌렁 옷을 벗어던지는 마르케타의 모습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듯한, 진짜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든 다큐는 엄밀히 말해서 현실이라기 보단 만들어진 극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쨋든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들의 모습에 비춰봤을 때 카메라를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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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국 이 이야기는 둘의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다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다시 둘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각자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이 말만 보면 마치 만나고 헤어지는 것만에 대한 영화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이 둘의 이야기는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이 둘 사이에는 그것이 위로이던 분노이던 간에 음악이라는 공감대가 있고, 영화는 그와 그녀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싼 음악에 대한 의미까지 조용히 담아낸다. 영화 '스웰 시즌'은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에 비해서도 굉장히 심심한 구성, 그러니까 별로 극적 요소를 담고 있지 않은데 아마도 이 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며, 보편성을 갖을 수도 있지만 그럴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음악적으로 계속 그들을 응원하고픈 나로서는, 좀 더 그들을 알게 된 것 같아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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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마지막 스샷. 실제로 내한에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을 때의 시작도 저 레파토리였죠. 마이크를 빌리지 않고 기타도 앰프와 연결하지 않은 채, 글렌 한사드가 홀로 무대에 나와 'Say it to me now'를 열창하던... 그 때의 감동이 떠오르더군요 ㅠ


2. 스웰 시즌 내한공연 후기는 여기서 - http://www.realfolkblues.co.kr/844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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