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 Docu 강정 (2011)

미안해 강정 그리고 힘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이유 가운데는 단순히 영화적인 호기심과 재미에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관심있는 사안에 대한 정보 혹은 의견으로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평화의 섬 제주의 강정마을에 정부가 해군기지를 세우려고하는 문제에 대해, 8명의 감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즉흥연주(Jam)를 펼친 작품 'Jam Docu 강정'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이유와는 조금 다른 이유와 감정으로 보게 된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대하는 내 마음을 상당히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것이 작품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강정마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 때문이었다. 보통 잘 알지 못하고 관심없던 문제를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는, 그 사안에 대해 오히려 더 적극적인 비판이나 강한 어조로 의견을 피력하는데에 문제가 없지만, 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내 입장은 사실 조금 미약한, 아니 미안한 것이었다.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강정마을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버렸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에 그친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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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정마을이 처한 정의롭지 못한 처우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할 수 있는 일 혹은 한 일이라고는 그저 지난 여름휴가를 제주도로 가려다가 차마 그러지 못한 것과 SNS를 통해 관련 소식을 리트윗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휴가지 선택의 문제는 어찌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뻔히 강정마을이 처한 상황을 알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 망정 휴가를 '즐기러' 제주도로 가는 것은 차마 할 수 없어 제주도를 가지 않은 것이 내 미안함 표현의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안함은 이 작품을 보면서 더욱 깊어졌다. 수년을 거듭한 싸움에서 해군기지 설립이 결정된 이후 제주로 찾아온 활동가들과 외부인들에게 강정마을 사람이 던지는 한 마디, '그 때는 뭐하고 이제서야 왔느냐'는 한 마디는 뼈저리게 돌아왔다. 아예 몰랐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알고 있었던 자로서의 미안함은,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 조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들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고작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보자는 취지였다. 더 많은 이들이 강정마을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이 작품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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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가 정말 강정에 필요한가 아닌가의 정치/사회적 맥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 사안을 알게 된 외부인으로서 강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단순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었다. 환경파괴와 개발의 논리는 항상 부딪히게 되는데 개발의 논리가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부분은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감수할 정도의 개발 논리가 수긍되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구럼비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왜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이 문제인가?'라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것보다는, 그냥 강정마을과 구럼비를 보여준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다른 어떤 논리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구럼비의 천연 해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바위 위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나, 강정마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강정마을에 대한 모습은,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에 대해 수많은 어려운 말보다 강한 인상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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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아름다운 강정마을에 군사적이고 전쟁과 관련된 해군기지를 굳이 세워야 하는 논리가 절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을 두고 마을 사람들 간에 찬성과 반대로 편이 나뉘게되 결과적으로 더 큰 상처를 남긴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작품에도 담겨있지만 피를 나눈 형제 간에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이제는 서로 말조차 섞지 않는 관계가 되었거나, 정확히 마을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서로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현실을 만든 것이야 말로 강정마을에 가장 큰 상처일 것이다. 누가, 왜 이런 상황을 조장했는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과 관계를 통해 형성된 '마을'과 '사람들'의 가치를 단순한 논리로 대응하는 모습은, 강정마을의 가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개발 논리만 내세우는 것과 그대로 겹쳐진다. 이 상처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해군기지가 건설되든 그렇지 않든 이미 깊어진 강정마을 사람들 간의 상처는 과연 아무렇지 않게 치유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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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강정마을 문제의 핵심은 그 자체에도 있지만, 정부나 권력이 사안을 바라보는 수준과 시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것이 단순히 제주도의 어느 마을에만 국한 된 문제였다면 아마도 이렇게 영화화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의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정마을을 더, 더 응원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어쩌면 나를 대신해 정의롭지 못한 일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이 고작 응원이라면, 응원이라도 먼저 해야겠다.

평화가득 강정마을, 응원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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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다큐멘터리 _ The Eastwood Factor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010년작 '히어애프터 (Hearafter)'는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와는 또 다른 의미로 그의 현재를 발견하고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스스로 정리하는 정말 위대한 작품이 '그랜 토리노'였다면 '히어애프터'는, 80이 넘은 이스트우드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작품이었다. 여기서 '히어애프터'에 대해 다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오늘은 '히어애프터'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수록된 다큐멘터리 'The Eastwood Factor'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사실 극장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던 작품이라 블루레이도 일찌감치 구매하려고 했었지만, 1시간 20분이 넘는 분량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수록된다는 사실에 더 따져볼 것도 없이 바로 구매하였고, 이 부가영상만으로도 충분히 값은 하는 타이틀이 되었다.





'The Eastwood Factor'는 이스트우드와 워너 스튜디오와의 인연, 그리고 그가 보고자랐던 워너의 예전 작품들, 배우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가 소개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를 보면, 그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의 연관성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신인시절 작품인 TV시리즈 '매버릭 (Maverick, 1959)'과 '로하이드 (Rawhide, 1959~1965)'의 출연 장면도 만나볼 수 있는데, 물론 신인 특유의 어색함이 없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그가 이후에 보여준 느낌들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짧지만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이 다큐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그의 필모그래피의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 '더티 해리 (Dirty Harry, 1971)' 시리즈를 비롯해, 그의 또 다른 흥행 시리즈였던 세르지오 레오네와의 작품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를 엿볼 수 있었던 서부 영화의 출연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더티 해리'와 '무법자 조시 웨일즈 (The Outlaw Josey Wales, 1976)'의 이야기를 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스튜디오 한 켠에 그의 모든 출연작에서 그가 입었던 의상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는 곳을 잠시 보여주는데, 워낙에 인상 깊은 캐릭터여서인지 의상만 보아도 어떤 작품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브론코 빌리 (Bronco Billy, 1980)'는 이전 그가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성향의 캐릭터였다. 조금 다르게 얘기하자면 캐릭터 자체는 별로 변하지 않았는데, 이를 둘러싼 상황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달까. 오랑우탄과 함께 출연한 '더티 파이터 2 (Every Which Way But Loose, 1978)' 는 주위에서 모두가 말렸던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최대 흥행작 중 하나가 된 이색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페일 라이더 (Pale Rider, 1985)'에서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와의 3부작 이후 만나볼 수 있었던 '부활'의 테마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또한 '가족'이라는 테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포레스트 휘태커가 찰리 파커를 연기한 '버드 (Bird, 1988)'는 평소 재즈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깊이는 물론, 애정이 수준급의 연출력으로 잘 빚어진 작품이었다. 참고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직접 영화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걸작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 1992)'. 이 작품은 크린트 이스트우드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영웅담과 장르적 특성을 더 깊은 깊이로 뒤집는 대단한 작품이었는데, 모건 프리먼, 진 핵크만 등의 명연기가 이를 더했다. 폭력의 회환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스토리텔링과 이 보다 더 적합한 배우 (캐릭터)가 있을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이후 이런 경향은 '그랜 토리노'에서 완전한 종결을 이룬다.




사실 아주 어린 시절 보았던 '퍼펙트 월드 (A Perfect World, 1993)'는, 단순한 기억에 감동은 있지만 너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작품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번 다큐를 보니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를 리얼타임으로 본 첫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처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 배우도 드문데, 그 중 가장 의외(?) 였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일 것이다. 연출과 주연을 함께 맡은 이 작품에서 그는 메릴 스트립과 함께 애틋한 로맨스와 여운을 깊이 남겼다. 이 작품 역시 개인적으로는 '퍼펙트 월드'와 같은 이유로 다시 보고 싶은 작품.





숀 펜,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 등이 출연한 걸작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2003)'는 피할 수 없었던 운명 속에 처한 세 주인공들의 관한 이야기였고, 힐러리 스웽크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2004)'는 복싱 영화가 아니라 부녀간의 정을 그리려고 했던 여운 깊은 휴먼 드라마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역시 얼핏 보기엔 굉장히 일반적이고 흔한 성공과 실패, 뒷이야기가 아닌가 싶지만, 이것보다는 부녀간의 이야기로 그리려던 그의 의도에 충실해보자면 오히려 극 속에서 복싱이 사라진 뒤에 진정한 영화의 깊이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도전작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그와 반대편에선 자들의 시선으로 그려보려 했고, 자국어인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일본 배우들과 작업을 한 작품이었다.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개봉하지 못해 DVD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랜 토리노'. 이 작품은 배우로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마무리 하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 어떤 배우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이렇게 완벽하게 스스로 정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품 자체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였기에 더 압도적인 인상을 받을 수 밖에는 없었던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최근 작 '인빅터스 (Invictus, 2009)'를 끝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 대신, 노년을 맞은 한 사람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소개한다. 속세를 벗어난 안식처에서 자신 만의 소소한 일들과 생활을 즐기면서도, 아직도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은, 감독이자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현명한 노인의 삶이었다. 그의 팬들은 흔히 그의 이름을 우리 식으로 풀이해 '동림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그를 선생님 혹은 옹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결코 재미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깊은 존경의 의미를 담은 표현법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에 대한 글이라던가, 그의 대한 글의 말미에는 꼭 '동림 선생님, 만수무강 하셔서 좋은 영화 계속 많이 만들어주세요~' 라는 응원과 부탁의 메시지를 적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동림 선생님, 만수무강 하셔서 좋은 영화 계속 많이 만들어주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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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간첩
메시지+재미+실속까지 소소한 다큐멘터리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타임'의 네 번째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간첩'이었다. 일단 이 다큐멘터리는 '부당거래' 이후 작품으로 유럽을 배경으로한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던 류승완 감독이, 영화 작업에 앞서 관련 자료조사 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지점이 MBC가 기획한 의도와 부합되는 부분이 있어서 TV를 통해 이 짧은 다큐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류승완 감독과 지인인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함께 북한 공작원, 이른바 간첩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겠지만, 간첩을 찾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이 다큐의 목적성은 '정말 간첩을 찾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왜 못찾을 걸 애초에 알았으면서 이 과정을 다큐로 담아냈느냐'로 접근해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일차적으로는 항상 영화를 만들기 이전의 사전 자료조사 과정이 매우 궁금했었는데, 그런 부분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그 소재가 남북문제를 비롯해 한국사와 연결된 실제 사실이다 보니 더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류승완 감독은 이 '간첩'이라는 다큐를 연출하면서 딱딱하고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매우 리듬감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고전 영화와 드라마 속 장면들을 끼워넣어 무겁게 흘러갈 수도 있는 주제에 리듬을 주고 있는데, 마치 힙합 음악에서 샘플링을 사용하듯 영상을 활용하고 있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자료 조사 과정의 이야기는 진지하려고 작정하면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무겁고 정치적인 내용으로도 풀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소재는 같지만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이 방식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치고 빠지는 정도가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만약 완벽한 페이크 다큐를 예상했다거나 혹은 완전히 진지한 (MBC 창사 50주년 기념 특별기획에 빛나는;;) 다큐를 기대했다면 양다리를 걸친 이 모습에 갸우뚱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간첩을 찾아라!'가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아직도 (말도 안되게) 등장하곤 하는 레드 컴플렉스를 묘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줄타기가 적절한 구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맨 마지막에 간첩 신고에 관한 노래를 들려주는 것과 이와 함께 등장하는 간첩신고 문구 (폰트)의 포장은, 누가봐도 아직도 무슨 일만 벌어지면 북한 소행이라고 하는 것들과 더나아가 어처구니 없게도 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회에 대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풍자였다.

자료조사의 과정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나름대로 흥미롭고, 편집과 연출 의도만을 가지고 풍자의 성격을 가미했으며, 결과적으로 나중에 나올 신작 영화에 대한 간단한 떡밥도 깔았으니, 이 정도면 소소하게 만족스러운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다.


1. 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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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애니+다큐멘터리

2008년 칸 영화제가 주목하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전미 비평가 협회 작품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 참고로 수상은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일본 영화 ‘굿바이’였다 - 등 그 해 영화 팬들에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Vals Im Bashir, 2008)’ 이었다. 이 작품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중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벌어졌던 학살사건에 대해, 감독인 아리 폴만의 자전적인 시점으로 이야기 한다.





이 작품이 영화적은 물론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당시 발생한 사건인데, 팔랑헤 (기독교 민병대) 당 지도자이자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시르 제마엘이 취임을 앞두고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 당하자 팔레스타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팔랑헤 당원들이 테러범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에서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그 수는 무려 800 ~ 3,000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는 부녀자와 어린아이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바로 이 학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사건의 영화화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수백 명이 사망한 끔찍한 학살이었음에도 결국 어느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은 이 작품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이 학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조명탄을 쏘며 주변을 밝게 해 팔랑헤 민병대들이 학살하는 것을 방조했다는 주장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그를 2001년 희생자 유가족들이 벨기에 법정에 고소했지만, 벨기에 법정은 원고 가운데 벨기에 국적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 결국 이 학살 사건으로 인해 처벌 받은 이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이후 2002년 1월 24일, 학살의 주동자였던 민병대 사령관 엘리 호베이카는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을 당하게 된다.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 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당사자(가해자 혹은 피해자)와 제3자 중 누구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느냐는 점을 들 수 있을 텐데, ‘바시르와 왈츠를’은 당시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 중 한 명으로 많은 것을 목격했던 감독 아리 폴만 본인의 기억과 경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작품에 그대로 나와 있는 것처럼, 아리 폴만 본인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많은 기억이 지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당시 함께 참전했던 동료들과 이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건을 다시 더듬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은 영화의 전개방식은, 이 사건과 관련된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에게 또 한 번 논란거리를 던진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인인 아리 폴만의 입장은 한 편으론 배신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땐 당시 이스라엘 군의 범죄를 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은 아리 폴만의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리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논란거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는 제 3자라 할 수 있는 양국 외에 관객들이 작품에 흥미를 갖고 빠져들게 될 만큼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영리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아리 폴만은 본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으나 이 작품은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애니메이션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개를 총으로 쏴 죽였던 것을 비롯해 자신에게 끔찍한 경험이었던 장면들을 실사로 촬영할 수는 없었던 개인적인 이유를 비롯해, 몇몇 상상과 꿈과 같은 장면들을 실사화 하기 어려웠던 - 예산 문제 역시 - 점도 있었다. 또한 본인 스스로도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정말 지루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워낙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터라 평범한 다큐멘터리였다면 더더욱 다가가기 어렵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갖게 된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아마도 영화의 맨 마지막 차마 보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했을 때 그 충격이 다른 어떤 다큐나 극 영화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구성적인 면 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실 처음 ‘바시르와 왈츠를’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작품인 ‘웨이킹 라이프’나 ‘스캐너 다클리’ 등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었던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촬영 영상 위에 애니메이션을 입힌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백지에서부터 시작한 완벽한 애니메이션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장면을 대부분 실제로 촬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림을 새로 그렸다는 점일 텐데, 이것이 로토스코핑 기법과 같은 효과를 내긴 했지만 이것과는 또 다른 미묘한 감성과 속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제 촬영 본을 기본으로 애니메이션화 한 것 외에도, 삽화를 디지털화 하여 각 그림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해 한 뒤 다시 결합하는 방식 (기술)을 도입한 것도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결국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은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그 가운데 있었던 한 개인의 기억과 망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와 기억, 이 두 가지 상대적인 개념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두 가지 장르의 결합처럼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와 망각의 교차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Blu-ray 메뉴






블루레이 메뉴 가운데 각각의 메뉴 선택 시 표시되는 노란 점의 경우, 영화 속 등장하는 노란색 조명탄의 불빛이 연상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답게 탁월한 화질을 선보인다.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물씬 나는 거친 영상을 만날 수 있는 동시에, 칼 같은 선예도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이 역시 충족시켜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인물이나 움직이는 사물의 경우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분리하여 다시 결합한 결과물로서 각각의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배경의 경우 이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일반적인 배경 묘사보다는 훨씬 외곽선의 표현이 강한 편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면 블루레이로서의 출시가 꼭 필요하지는 않았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바시르와 왈츠를’은 많은 장면을 이미지와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음으로 블루레이의 장점이 발휘되는 부분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깊은 음영의 표현은 블루레이의 고화질을 통해 좀 더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돌비 TrueHD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우수한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탱크의 발포음, 여러 명의 총격 시 발생하는 효과음과 중간중간 삽입된 영화음악의 전달까지. 대사 위주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특히 영화음악이 삽입된 장면에서 좀 더 강렬한 음장감을 확인해볼 수 있으며 블루레이 사운드를 좀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목소리 연기는 직접적인 출연이나 본인을 밝히기 꺼려한 이들을 제외하면 감독인 아리 폴만을 비롯해 대부분 본인이 직접 연기하고 있는데, 이들의 음성 역시 뭉개짐 없이 선명하게 전달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바시르와 왈츠를’ 블루레이에는 DVD에는 수록되지 않은 아리 폴만 감독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자체가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니, 이 음성해설 트랙만큼 많은 정보를 담은 부가영상은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음성해설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와 배경이 되는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극 중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인물들에 대한 뒷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당시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담 외에 애니메이션화로 인한 기술적, 연출의 변 또한 만나볼 수 있다.




감독 인터뷰와 Q&A 질의 응답에서는 대부분 영화의 특별한 형식적인 면에 대한 부가 설명과 실제 겪었던 자신의 경험에 대해,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관해 들려준다.




제작과정과 애니매틱스에서는 실제 촬영한 영상과 뼈대가 된 애니매틱스 영상을 서로 비교하여 어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화 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또한 인물의 얼굴을 표현할 때 15개의 큰 부분으로 나눈 뒤 다시 120개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작업한 과정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게도 극 영화와 같은 현실감을 부여하려 노력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었으며, 모든 부가영상은 아쉽지만 SD영상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인 동시에, 개인적인 전쟁의 경험과 우연히 알게 된 망각의 경험에서 시작되고 또 전개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와 같은 작품이 국내에서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될 수 있다는 것에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반갑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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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브 (The Cove)
잔인한 진실, 이제는 행동할 때 


지난해 가장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중 하나였던 '더 코브'를 뒤늦게 EIDF 프로그램을 통해 TV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극장 개봉 당시 이미 많은 화제를 불어일으켰고 선댄스에서의 수상 등 주목받는 작품이었는데, 늦었지만 EIDF 덕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카피 들을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더 코브'의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저 황홀한 이미지에만 끌려, 단순히 해양세계와 돌고래의 압도적인 신비로움을 알려주는 작품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저 카피들이 말해주듯 '더 코브' 에 담긴 내용은 (그리고 사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잔혹함과 공존에 대한 신랄한 경고이자 신고의 성격을 갖고 있는 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 Diamond Docs. All rights reserved

우리는 그린피스의 활동이나 가끔씩 들려오는 해외 토픽 등을 통해 불법 고래잡이에 관한 사실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예전에 포경 관련해서도 일본의 행동들을 알게 된 적이 있는데, '더 코브'를 통해 알게 된 일본 타이지의 잔인한 진실은 그 동안 철절히 숨겨져 왔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곳에서는 매년 2만 3천마리가 넘는 돌고래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데, 일단 그 사실 이전에 이것을 은폐하려는 타이지 사람들과 관리들의 모습들이 가관이다. 가끔 이런 사회 고발성 다큐멘터리에는 그 어느 극영화 못지 않은 악당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이 곳 사람들 역시, 그 어떤 작가가 만들어낸 악역 캐릭터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실존인물들이 아닐 수 없겠다. 자신들의 부당함을 숨기고 이를 밝혀내려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고 있노라면, 인간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끔까지 만든다. 

작게는 마을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정부와 돌고래 사업과 관련된 거대 회사와 국제 단체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너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고발은, '더 코브'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다. 영화는 이를 위해 '오션스 일레븐'에 버금가는 정예 팀을 만들어 잔인한 진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대에 결국 성공하는데, 물론 이 과정이 극영화 못지 않게 긴장감 넘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극영화 다른 점이라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극영화와는 다르게 이 잔인한 장면이 사실이라는 점 때문에 그저 재미만 느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만큼 일본 타이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잔인함 그 자체였다. 

극영화에서도 가끔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루이 시호요스 감독은 드디어 그 충격적인 영상을 영화를 통해 공개하게 되는 순간, 그 어떤 영화적 묘사의 장치도 사용하지 않는다. 극적인 음악도 없고, 그 동안 계속 포함되었던 내레이션도 이 순간엔 침묵한다. 그리고는 그저 어부들이 잔인하게 돌고래를 학살하고, 그로 인해 붉게 물든 바다를 말없이 보여준다. 이 장면이 얼마나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는지는 직접 보고 느끼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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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자신 역시 돌고래들을 사육하고 돌고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한 남자 후회로 부터 시작되었다. 릭 오배리는 이 다큐를 통해 여러번 '그 때는 몰랐었다' '왜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를 후회하곤 한다. 어쩌면 이 큰 후회가 그를 지금까지도 돌고래 보호를 위해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후회는 이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우린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다큐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사실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막말로 이런 것들을 모두 염두에 둔다면 내가 먹는 것, 보는 것, 사는 것 들 모두가 행복이 아닌 삶의 제약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논리로 다시금 나를 합리화하며 작게 나마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시작도 전에 관두게 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합리화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부당함을 느꼈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신이 믿는 가치가 계속 구현되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한 발이나마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코브'를 보고 나서 아주 작은 결심을 하나 했다. 사실 돌고래는 너무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했고,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놀이공원의 '돌고래쇼' 는 꼭 한 번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적어도 볼 수 없는 '쇼'가 되어버렸다. 나 하나 안본다고 돌고래쇼를 보는 사람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 돌고래를 잡아들이는 행동이 줄지는 않겠지만, 분명 한 건 돌고래쇼를 보려는 사람의 수가 하나는 줄었다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미약하나마 돌고래 사업에 손실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다큐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는 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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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분식 (Shared Streets, 2009)
성장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지켜보기


태준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샘터분식>을 좋은 기회에 시사회를 통해 먼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화사 시네마달에서 제작하거나 배급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몇 편은 제대로는 아니더라도 분위기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태준식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럼에도 그의 신작 <샘터분식>이 눈에 들어왔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홍대'라는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전 부터 홍대를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에 살게 되면서, 이 거리는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매우 익숙한 곳이 되었고, 그 문화와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 앞으로도 한 동안은 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홍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이 <샘터분식>이라는 영화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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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홍대라는 지역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작게는 세 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샘터분식'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최영임)이고 두 번째는 정치에 관련된 당원으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고 믿고 있는 가치관을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청년(안성민), 마지막은 힙합 레이블이자 크루인 소울컴퍼니(Soul Company)의 일원인 힙합 아티스트 제리 케이 (김진일)입니다. 얼핏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역시 '홍대'라는 공간 그 자체입니다. 이들 모두 이 홍대 마포 일대를 자신들의 주 생활 공간으로 삼고 있으며, 어찌되었든 이 곳에서 자신이 꿈을 이루려는 인생의 도전을 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는 포스터나 홍보 문구에 나와있는 것처럼 홍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 거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소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 가벼운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갖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태준식 감독은 '본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이 작품은 본인에게 있어 조금은 쉬어 가는 의미에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홍대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지만(그리고 전작들에 비하자면 물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색깔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저 거리 위의 소소한 이야기를 예상했던 저에게는 역시나 쉬어가려고 했어도 푹 쉬지는 못한 듯한 감독의 사회적 메시지가 넘쳐나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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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읽은 것은 결코 세 명의 주인공 중 한명이 민노당원(현재는 진보신당 당원)이라서는 아니에요. 물론 평소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관객이라면 이런 주인공의 직업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따지고 보니 이 영화의 주요 테마들인 홍대, 정치, 힙합 그리고 소울컴퍼니 모두가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서 그런지 각개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게 다가 온 경우였습니다. 민노당이 진보신당으로 변화하기 직전에 겪었던 갈등을 아주 살짝 엿볼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영화 속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점점 작업 환경이 좋아진 소울컴퍼니의 변화 그리고 자주 가는 거리에 항상 있었던 샘터분식이라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관심사였죠.

그런데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홍대라는 공간을 살고 있는 이 세 명 주인공의 이야기는 약간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처럼 모두 관심사인 경우에는 조금 덜 할듯 하지만,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던가, 힙합에는 전혀 문외한이거나, 홍대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인물들 간의 접점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으며, 자신만의 스펙트럼에서 이야기를 해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한 공간에서 약간은 억지스럽게 만나는 듯한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에 쉽게 동화되기 어려울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 명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을 것이 아니라 한 명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갔어도 좋았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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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았던 건, 이런 별개로 느껴지는 이야기가 왜 하나의 이야기로 묶였는가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샘터 분식>을 보고 느낀 가장 큰 인상은 바로 '성장하는 것과 머물러 있는 것, 혹은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시간의 변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려하는 장면들이 많은 편입니다. 홍대 앞 도로를 사계절에 따라 촬영한 컷이나, 해가 뜨고 지고를 표현한 컷 등 무언가 계속 흐르고 있다는 배경을 설명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런 흐름 속에 살고 있는 상반되는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세 명의 주인공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매우 정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첫 장면부터 한창 촛불로 뜨겁던 종로 거리를 비추거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그리고 대통령의 여러 활동 들, 이 외에 여러 사회 문제들로 채워지는 영화 중간 중간의 배경들은, 그것들이 정치적인 것이 불편하다기 보다는 그 만큼 불편한 현실이 너무도 우리 현실에 가깝게 와닿아 있다는 것을 달리 체감하게 합니다. 이 영화가 성장과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차이점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제리 케이는 힘든 병을 이겨내고 녹녹치 않은 언더 힙합씬에서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고, 꾸준히 사회운동을 하던 안성민씨는 자신이 숙원사업으로 여겼던 '민중의 집'을 드디어 열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으며, 샘터분식의 주인인 최영임씨에게도 큰 변화는 없었던 듯 하지만 달리 보면 그녀에게는 하루하루 아들을 키우고 가족을 부양해 가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성장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이렇게 주인공들이 모두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은 발걸음이라도 성장한 것에 비해, 이를 둘러 싸고 있는 우리내 정치, 사회 현실은 성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더욱 퇴화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죠. 영화 속에 삽입된 뉴스 속 앵커의 멘트들만 들어봐도 발전하기 보다는 점점 암울해지는 사회가 현실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태준식 감독은 은연 중에 라도 이런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홍대라는 하나의 지역과 단 세 명의 인물들의 삶에 국한하여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지켜보았는데도, 이렇듯 변화와 성장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정작 이 거대한 사회는 이런 구성원의 변화의 속도에 발 맞추고 있지 못하다는 메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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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더 콰이엇을 비롯해 소울 컴퍼니의 MC들과 음악을 BGM으로 계속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소울컴퍼니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이들의 음악과 삶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더라구요.

2. 워낙에 홍대 구석구석이 촬영된 터라 (그것도 오랜 시간) 혹시나 거리를 지나던 '내'가 나오지 않을까도 싶었는데, 다행인지(?) 나오지는 않더군요 ㅎ

3. 홍대 전철역 앞에서 옥수수 파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깜놀했습니다. 평소 모습만 보다가 영화 나오신다고 화장하신 모습은 정말 몰라보겠던데요 ^^;;

4. 정식 개봉은 11월 26일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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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시네마달 에 있습니다.









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로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에 걸맞지 않는 록큰롤 곡들을 무대에서 노래해
Youtube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국내 쇼프로그램인 '스타킹'에나 나올 법한 정도의 소재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재를 그렸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슈와 화제거리에만 집중해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록을 연주한다' 정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상은 전해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죠(실제로 이 '영앳하트' 코러스 밴드의 단장인 밥 실먼은 쉽게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미 여러 번 '영앳하트'를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에, 또 한번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겠죠. 결과적으로
스티븐 워커 감독에게 영화화를 허락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앳하트의 'Alive and Well' 공연을 앞둔 6주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븐 워커 감독은 매우 영리하게
6주라는 시간 속에 영앳하트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어느 영화 못지 않게 재미있는 유머들과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와 노인의 들려주는 지혜에 대해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제하는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큰롤 인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진리와도 같은 감동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본래 TV쇼를 연출했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짧은 러닝 타임 속에도
의도되지 않은 장면들을 통해 어느 코미디 못지 않은 유머러스함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노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펑크나 록 음악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리는 방법은 특히 돋보이는데, 자칫하면 노인들을 우습도록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이 과정을 그는 적절한 편집을 통해 유머러스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음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행복한 순간이 가득 넘칩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 소닉 유스나 콜드 플레이를 부르는 모습은
설명만 들으면 그저 기이하거나 코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영앳하트가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을 본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절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단장인 밥 실먼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가 놓치지 않았던 점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가요도 그렇지만 팝송의 경우는 더더욱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멜로디나 음악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죠.
영앳하트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이 단순히 노인이 펑크를 부른다 라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워커 감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미덕을 본 것이지요. 바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 말입니다. 확실히 이야기나 노래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어떤 것이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들려주느냐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깊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80년 넘게 혹은 9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는 결코 헛되이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공연 중에 불렀던 곡들의 대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저로서도, 그 노래의 가사들이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관통할 정도로 놀라운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콜드 플레이 (Coldplay)의 'Fix You'의 가사가 이리도 나를 위로하는 가사라고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고,
(물론 크리스 마틴이 부르는 'Fix You'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앳하트의 '프레드 니들'이 부르는 이 곡의 감동만은
못했던 것 같아요)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 줄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공연 중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자
찰나이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확실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흡수력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몇번씩 수술을 치루고, 병으로 인해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노인이 거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하나하나 읖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어쩌면 오리지널 뮤지션이 부른 것 보다도 더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났구요.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과도 같이 <로큰롤 인생>은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매우 영리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멤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병으로 인해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이 과정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바다에서 허우적대도록
'죽음'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죽음이라는 일종의 사건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처럼요. 8,90이 넘는 나이에 멤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지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경지이며, 단순히 두려움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공연 바로 직전에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지만, 단 한 명 동요없이 공연을 끝까지 치루기도 하구요.
그리고 카메라 역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 내에서 부단장이 멤버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릴 때는 버스 밖을 비출 뿐이고, 다른 멤버가(여기선 그냥 멤버라고 표기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맞이 했을 때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훨씬 극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되게 우스운건, 이분들의 80년 넘는 인생에서 겨우 1시간 남짓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히 존재가 사라졌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많이 봐왔지만 <로큰롤 인생>처럼 나 스스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도 '로큰롤 인생 _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고 할까 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음악 자체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의 포스터나 영화의 시작부분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그들이 갖은 어려움 끝에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가 주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도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될까요?  영앳하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마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듯 건네는 말들이 하나하나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하다보니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로큰롤 인생>을 논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는 이들이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공연날 까지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
한 구석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더군요.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은
어쩌면 이들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실제로 소닉 유스의 팬이 아니면 이런 가사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죠),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를 읽고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연습을 해갈수록 가사를 이해해 가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더 포인터 시스터즈의 'Yes We Can Can'을 연습하는 장면 역시 재미있는 장면인데,
'Can'이라는 단어가 무려 71번이나 등장하는 이 곡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해 내는
장면에서는 감동이라기 보다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극 중간 중간에는 이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비지스의 'Stain' Alive' 를 부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곡이 삽입되었던 원작인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패러디한(호리호리한 존 트라볼타가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발이 클로즈업
되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구요. 볼링 치는 그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구요 ~
또 하나 재밌는건, 이 곡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니 굉장히 의미있게 들렸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있어' 라는 후렴구가 이리도 인상깊게 들리다니요!
물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본래 듀엣곡이었던 곡이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솔로곡으로 변해버린 'Fix You'와
교도소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밥 딜런의 곡 'Forever Young'이었구요 (Fix You는 마치 조니 캐쉬처럼 멋지게 소화해
내시더라구요).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도 아무리 설명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봤자,
영화 1회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에 1000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그저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시고 영화를 안보시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는 말 뿐입니다. 영화야 어차치 100% 취향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높은 확률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같네요.
단순히 슬퍼서라기 보다는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숙연해 짐을 느꼈기 때문이었겠지요.




Fix You - Young@Heart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




Forever Young - Young@Heart (이 곡은 중반부터 나오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수입/배급사 영화사 진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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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2008)

'두 번째 달'이라는 밴드의 음악을 몇번 인상 깊게 듣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인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촬영한 다큐멘터리라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6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의 다큐멘터리는 60분 내내 아일랜드의 이국적인 풍경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스크린 한 가득 담고 있었다.'바드 (BARD)'는 두 번째 달의 김현보와 박혜리가 주축이 되어 만든 아이리시 프로젝트 밴드인데,
임진평 감독은 이들이 아일랜드를 만나 연주하고 그 속에서 반응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나레이션으로 다큐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아일랜드라는 국가가 언제부터가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나라이기도 했고, 각종 영화나 밴드 등을 통해 최근들어
더욱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나라이기도 한데(아마도 <원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하겠다), 바드의 경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아일랜드 행을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화는 임진평 감독의 에세이집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와 패키지로 봐야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갈만한 작업으로 느껴졌다. 즉 아일랜드라는 곳에서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통 음악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음악과 그들의 삶이 얼마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는 잘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이 다큐만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TV다큐를 통해 여러번 접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시도였다고 하겠다(영화를 보는 내내 최근 EBS
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세계문화기행(?)'이 떠올랐다).


팜플렛에 담긴 감독의 말을 빌려오자면 '시나리오도 없고 생전 처음 가보는 나라 아일랜드. 하지만 뭔가 만들어 올 거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라는 말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아무리 다큐멘터리라도
어느 정도의 시나리오가 없었던 것은 결국 문제점으로 드러났으며, 막연한 기대는 결국 막연한 것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밴드 멤버들이 아일랜드에서 겪는 소소한 연주 장면과 이동 등, 그리고
인터뷰 등을 담고 있지만, 그저 그들의 여행에 동참한 것일 뿐 아무런 이유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더 중요하다, 나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왜 아일랜드처럼 전통음악을 계속 대중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는가 라는
말들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이런 얘기는 마지막에 듣기 좋은 마무리일뿐, 이런 말들이 나올만한 과정은 여행 속에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이 왜 아일랜드까지 날아가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어야 했는지에 대한 진정이 보이지 않았고, 그저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본토에 가서 직접 아이리시 음악을 느껴보고 싶다 그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는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60분 내에서는 그 과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뭐랄까 너무 추상적이며 감독의 말대로 무언가 만들어 올 거 같은 막연한 기대만이 존재하는
다큐로 마무리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차라리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Heima' 다큐처럼 단순히 연주하는 장면
만으로도 많은 의미와 진정을 전달하는 것을 본보기로 삼았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저 개인적인 여행기로 그친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이 다큐는 소자본으로 이루어진 인디 영화라 좀 더 아쉬운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밴드가 직접 아일랜드에
가서 겪게 되는 변화라던가 진지함에 좀 더 가까이 카메라를 기울였더라면 좀 더 괜찮은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것 같은데,
결국 다큐가 다 끝날 때까지 밴드 멤버들과 카메라 사이에는 계속 벽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소통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이고.
영화라는 포맷으로 만나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던 다큐멘터리였다. 아마도 TV를 통해 방영되었다면 훨씬 더 좋은
감상평을 했을런지 모르겠다.


1. 포스터에는 대문짝만하게 '미로스페이스 개봉'이라고 적혀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이대 후문쪽에 위치한
   필름 포럼에서 감상하였다.

2. 주말 오후임에도 나, 너, 어떤 남자, 이렇게 세명이서만 조촐하게 감상했다.

3. 잠시나마 오랜만에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하림의 모습이 반가웠다.

4. 아...TV용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만나보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5. 음악, 아일랜드, 여행 등 내가 너무 좋아하는 요소들만 있었던 영화였기에 더 아쉬움이 큰지도 모르겠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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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5th EIDF _ 히어 앤 나우 / Hear and Now
삶의 적응 그리고 러브 스토리


제 5회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어느새 부턴가,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만큼이나 좋아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는데, 요즘 워낙 정신이 없는 탓에 날짜도 미처 기억 못하고 있던
이번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의 한 작품을 우연히도 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이래서 이번 페스티벌이 좋다. 잠시 신경을 못써 놓칠 수도 있는 작품들을 다행히 TV에서 방영하는 관계로 극장에서만
상영할 때 보다는 훨씬 놓칠 확률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오늘 감상한 <히어 앤 나우>같은 경우도 집에서 해야될 일이 있어서
컴퓨터를 하던 중 틀어놓은 EBS채널에서 다큐가 시작되었고, 바로 컴퓨터를 접어두고 TV앞에 집중하게 된 경우다.
(참고로 이번 EIDF 영화제는 EBS를 통해서 뿐 아니라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
TV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시놉시스

감독은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처음으로 소리를 경험하는 생애의 기념비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부부는 65세의 나이에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하는데, 고요함에서 소리로의 여정은 쉽지가 않다. 얻는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은 이들의 경험은,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남는다. - 자료출처 : EIDF 홈페이지 (http://www.eidf.org/)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인간극장' 풍의 장애를 다룬 소소한 에피소드, 그 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치 애초부터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소스같은, 두 주인공 부부의 어린 시절 사진과 동영상들,
그리고 담백하지만 힘이 있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은 색다른 느낌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65년이나 청각 장애를 갖고 살아온 부부가, 65세의 노년이 되어서야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여기서 이들이 겪는
감정과 변화에 다큐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통 '인간극장'같은 형식의 일반적인 구성이었다면,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로
고통받는 부부의 삶을 조명하다가 마지막에가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예전에 장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리뷰하면서도 이야기 했던 말이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결말이라기 보다는, 비장애인이 장애를 갖고 있는 이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해피엔딩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가 없어지고 극복되어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장애인이 반드시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고
극복되었다 여겨지면(물론 일방적으로) 그걸로 바로 끝내버리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장애를 다루었던 대부분의 영화들(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행복한 세계를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 <히어 앤 나우>는 수술이라는 것을 종점으로 선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술 전에 앞으로의 일들을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부부의 심정 만큼이나 수술 후의 그들의 겪고,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해 더욱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선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인 아이린 테일러 브로드스키(Irene Taylor Brodsky)가 바로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노 부부의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부모의 고단함과 두려움을 잘 알고 있고,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가장 외곡없이 바라볼 수 있는 화자로서, 아이린은 이 다큐멘터리를 단순히 꿈만 같은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수술 이후에 이 노 부부가 겪는 일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것부터,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하려했던
중요한 이들까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부부 역시 수술을 통해 들을 수만 있겠된다면 모든 것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들리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 이들은,
오히려 들리는 비장애가 장애로 다가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고,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행동까지 보이게 된다. 그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내이 수술은 부모님에게 그저 들리는 것만 주었을 뿐이라고'
'그저 들릴 뿐이라고'. 극중 어머니는 오히려 수술 이후에 더 큰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너무 많은 소리를 한꺼번에 접하다
보니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주의에서는 자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라며 기계를 착용하라고만 하는데, 이 어색하고
혼란스럽기만한 기계 착용이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과 장애로 다가오게 된다.
내이 수술을 한 뒤에도 보청기와 같은 기계를 귀에 착용해야만 듣는 것이 가능한데, 들리는 자유보다 들리지 않는 장애에
오랜 세월 익숙해진 부부는 오히려 이 자유를 만끽하기 보다는, 기계를 벗어놓고 있을 때 훨씬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그리도 바라던 출소를 했던 모건 프리먼이 너무도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낸
탓에 출소 후에도 다시 감옥을 그리워 할만큼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노 부부는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조금 더 환경에 빨리 적응해 기계에 익숙해지려고도 하고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 비해 적응이 느린 것 또한 스트레스고, 자신도 남편과 비슷한 속도로 적응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매우 현실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보기 힘든 디테일로서,
이 이야기를 단순히 장애에 관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노년에 접어든 두 부부의 깊은 삶과 러브 스토리로 감싸 안고 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위해 너무 앞서나가지 않고 속도를 맞춰주고, 3개월, 6개월이 지나도록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아내는
1년이 지나고서야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것조차 '완전히 수술이후에 적응해 이젠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식이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두 부부의 대화와 뒷 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함께 겪어오며 깊어진 그들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저들처럼 오래 살지 않고서는,
저들처럼 오랜 세월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바로 '그것' 때문에, 한적한 길가에서 서로 '당신이 날 챙겨줘야지'
하며 서로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치는 모습에서 깊은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나 다큐는 많이 봐왔지만, 단연코 이 다큐처럼 더도 덜도 없이, 하지만 따뜻한 심정으로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고. (최근 재미있게 보았던 러브 스토리라면 '월-E'가 있겠다 ;;;)

아내 - 경적을 울리는 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편 - 그것도 대화지. 이쪽으로 비켜, 저쪽으로, 이렇게 경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니까.
아내 - 근데 이건 뒤 차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거 잖아요. 그러니까 대화라고 할 수 없죠.
남편 - 그렇네. 이건 대화라고 할 수 없겠네.


한 번 본 기억으로만 쓴거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이런 대사는 절대 시나리오 작가는 쓸 수 없는 경지의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작품을 꼭 나중에라도 보여주고 싶다.


1. EBS Space 2008-09-25 10:00
   아트하우스 모모 2008-09-26 11:00
   아트하우스 모모 (2차) 2008-09-27 10:30   

  아직 못 본 분들 가운데 시간이 되는 분들은 EBS Space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위와 같이 상영 예정이니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간대가 별로 좋지는 않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제5회 EBS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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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길에서 (On The Road One Day, 2006)
그들이 목숨걸고 살아가는 이야기

얼마전 어느 영화관련 사이트를 둘러보다 인상적인 포스터 한 장을 만나보게 되었는데,
아스팔트 위에 애처롭게 죽어있는 삵 한마리와 함께 무언가 먹먹한 느낌을 받게 되었던 포스터는 바로,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의 포스터였다.
사실 이 포스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보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본 개봉을 했을 때는 아쉽게도 시간을 놓쳐 관람하지 못하였지만, 연장 상영이 된 덕에 고맙게도
하이퍼텍 나다를 찾아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알려진 바대로, 이른바 '로드 킬'. 즉 길에서, 도로에서 죽음을 당한 생명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황윤 감독은 로드킬을 연구하는 3인의 연구팀과 동행하면서, 일반인들은 쉽게 지나치고 마는 로드킬에 대해
깊고도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100분이 조금 못되는 영화 한편에 담아냈다. 로드킬이란 쉽게 말해서 길에서
동물들이 차에 의해 치여 죽게 되는 사고를 의미하는데, 이 다큐에는 본질적으로 로드킬에 대한 인식의 전환부터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사람들은 흔히 '왜 동물들이 도로를 굳이 지나가다가 차에 치이나'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수인데, 이것부터가 가장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도로는 인간이 길을 내기 이전에, 그곳에 생활하고 있던,
동물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생활터전이었으며, 딱 잘라말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 도로를 지나가지 않으면,
생존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에, 말 못하는 동물들도 쌩쌩 달리는 무서운 차들을 피해 이런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하게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해본 결과
실제로 한 길을 두고 같은 동물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건너다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국내의 토지 면적당
도로의 비율을 따져봤을 때, 아주 활동범위가 적은 동물들 조차 하루에 몇 번씩 도로위를 지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를 조사하는 이들 조차도, 과연 로드킬이 몇 건이나 있을까 라는 의구심으로 시작한 조사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나도 많이, 한달 사이에도 수백, 수천건이 기록될 만큼 엄청난 동물들이 로드킬로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로드킬이 발생한 지점을 점으로
표시한 그림이 나오는데, 한 건에 하나씩 점으로 표시했는데도, 하다보니 결국 도로를 모두 잇게 되는 선으로
연결되어버린 현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에는 새, 고라니, 삵, 개구리, 토끼 등등
너무나도 많은 종과 수의 동물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보고 싶었던 새들을 모두 도로위에서 본다'라는 감독의 독백처럼,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야할 야생동물들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시체가 되어 발견이 되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이 과정 중 하나 놀랐던 것은, 고라니 같은 동물이 로드킬을 당했을 때 상태가 비교적 멀쩡하면, 친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서 가져간다고 한다. 바로 먹기 위해서라는데,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같은 인간으로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간들간에도 그렇지만, 환경과 혹은 동물과도 공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 하다.
영장류로서 모든 동물들보다 우월한 두뇌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인간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임에
분명한 환경과의 공존에 더욱 힘을 써야 할텐데, 결과적으로 너무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사고와 판단이
로드킬 같은 이런 끔찍한 현상을 일으켰다 해야겠다. 감독은 말 못하는 그들에게 말할 이 다큐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보는 이로하여금 이 사태를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된다. 그내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도로위를 무섭게 달리는 차들이나, 높아만 보이는 방지턱 등이
얼마나 높은 벽과 공포로 다가오는 지를 부족하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사실 도로위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은 인간에게도 아주 무서운 존재다).

그리고 우리가 그냥 지나치거나 했던 그들에게 사연과 이야기를 부여함으로서, 길에서 목숨을 잃은 하나 하나의
생명체가 모두 다 이런 사연을 지니고 있고, 모두 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다큐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로드킬에 실상을 보고 하는 것 정도로 이야기가
구성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황윤 감독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강한 어조로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특히나 개발 만능주의에 맞물려, 고속도로의 개방 기념식의 화면을 동물들의 입장에서 본 경계해야할
인간들의 무서운 것들과 교차시키면서, 반어법을 통해 인간들에게 과연 잘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얼핏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도로를 놓지 않을 수는 없는것 아니냐' '피해는 감수해야 하는것
아니냐'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다큐를 보다보면, 필요없고 효과가없는 중복 도로 건설만을 제거하더라도,
일단의 효과가 있으며, 더 나아가 애초부터 아예 건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들의 것이었으니,
그들의 편의를 충분히 고려한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엄청난 로드킬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뭐랄까, 앞으로도 하루에도 몇번씩 위험한 도로위를 지나다녀야만
하는 동물들의 앞날이 희망차 보이지는 않았다. 단적인 얘로 로드킬에 대해 연구가 시작된 것은 이번이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그 것조차 국가에서 정식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3명의 사람들이, 자신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경각심조차 거의 무지하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다큐를 보고 바로 야생동물 보호에 관해 직접 뛰어들지는 않더라도, 아마도
도로위를 운전할 때 한 번 쯤 조심운전은 하게 될테니 말이다.

인간으로서 참으로 죄스러운 생각이 깊어져 힘들었던 다큐멘터리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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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길에서>


야생동물들의 이야기를 10년 넘게 담아온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황윤 감독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이번 개봉에 발맞춰
감독의 첫 번째 다큐작품인 <작별>도 함께 개봉을 한다고 하니 그의 작품에 생소한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사실 평소에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고, 특히 동물과 관련된 다큐에도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특별히 찾아보거나 하지는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하이퍼텍 나다에 들러 영화를 감상해야 겠다.

무엇보다도 다른 정보 없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저 인상적인 포스터 때문이었는데,
강렬한 이미지의 포스터이지만, 이것이 극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저 장면이 연출된 것이 아니라 현실임을 감안했을 때, 그저 강렬하다고 느끼기에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한다.

서울에서는 하이퍼텍 나다(동숭아트센터)에서만 개봉하며,
지방에서는 대전아트시네마, 광주극장, 동성아트홀(대구), 국도극장에서 3월 27일 개봉할 예정이다.




우리 학교 (Our School, 2006)
 
현재 지구상에 '조선'이란 국호를 쓰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남조선'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음은 물론이요, 북한 역시 '조선'이 아니라
'북조선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기호상으로만 남아있는 통일 조선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재일동포사회에 존재하는 '조선학교'일 것이다.
 
이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바와 같이
남한에서는 이들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역시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북한만이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지원금을 보내기 때문에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고향은 대부분이 남쪽이지만, 조국은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해보자면,
어찌보면 경제적으로 상황이 매우 어려운 북한에서도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남한 정부에서는 왜 이들을 아직도 남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예전 같으면 시대상황 등을 이유를 들어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어떤 이유로도 사실 타당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조선학교에서는 우리식으로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이되면 그해 조국으로
수학여행을 딱 한 번 떠나게 되는데, 왜 남한으로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느냐는
감독의 물음에, 남한으로 가려면 대사관 등 여러가지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야하고,
달갑지 만은 않은 대접을 받는데, 그렇게 까지 해가면서 가야되는가 싶다는 선생님의 말에
더 안타까움이 더해질 수 밖에는 없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명준 감독이 3년간 홋카이도의 조선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사실적인 생활상을 직접 촬영한 것을 편집한 영화이다.
 
처음에는 남쪽에서온 이 낯선 감독에게 수줍음이 많은 어린 학생들도 별로 친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면서 '명준 감독' , '명준 오빠' 등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한 관계가 되었다. 감독의 말처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내내 감독과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분단이라는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감독이 이를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때는
북으로 수학여행을 오르는 만경봉호에 함께 탑승할 수가, 접근할 수가 없었을 때
단 한 번 뿐이었다고 한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감독에게 뱃머리에서 '명준감독~'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독 자신만큼이나 보는 사람들도 감동적이었다)



재일동포사회의 문제에 관한 영화들은 이미 몇 차례 있어왔다.
 
<고 (Go)>나 <박치기>등을 보았다면 이 다큐멘터리 속의 이야기가
그리 어색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텐데,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이 두 영화와 같지만,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우리 학교>는 이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영화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이전 영화들을 볼 때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우리 학교>를 보고 난 다음에는, 현실적으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이 상황을 호전시키기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던지, 일본 우익들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던지 하는
감정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로 소박한 한 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일본 내의 조선학교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생기게 되는 많은 어려움들과
그 속에서 민족성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조선 학교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재일동포 사회까지.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다가도 금방 눈물 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실 영화에서도 그렇고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렇고,
조금은 부족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지고 말았을 때, 그리고 그 때 그 구성원들이 패배에 슬퍼하는 순간을 담은 영상들은 많이 봐왔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조선학교 축구팀이 다른 일본 학교 팀에게 패배한 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에게 경기의 패배는 단순히 패배 이상에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눈물을 흘릴 때 차마 그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을 정도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나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들 스스로가 축구가 최종 목표이거나 축구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 아이들도
아니었으나, 자신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 경기에 참가하고
여기에서 승리를 거둬서 재일 동포 사회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기 위해,
일종의 '책임감'에서 우러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경기에 지고 난 뒤에도 한참을 그자리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때 함께 슬퍼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졸업식 장면에서도,
3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2시간이 조금 넘는 분량의 다큐멘터리였으나,
그 속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한 아이들이 졸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오랜 추억을 조금이나마 공유한 탓인지, 아이들이 '우리학교'를 떠나는 마음이
어떨지 조금이나마 이해한 탓인지 정말로 나오려는 눈물을 악을 쓰고 겨우겨우 참아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생님이 하신 말,
'힘들고 지칠 땐 언제든지 우리학교를 찾아오십쇼, 여기는 동무들의 영원한 모교입니다'라는 말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깟 생각은 절대 할 수 없게 만드는 너무나도 감동스런 한 마디였다.
 
재일동포 사회의 특수성과 그들만이 겪게 되는 어려움.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민족이고, 어쩌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도
더욱 더 한반도에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현실.
그리고 우리가 매번 소원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장난삼아 이야기하는 '조국 통일'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나에게도
감동과 눈물외에 여러가지 많은 생각할 거리와 행동할 거리를 전달해주었다.
 
철학적이고 인간적이고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면에 있어서도
참으로 할말도 생각해볼 일도 많은 영화이지만,
 
이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라도
꼭 다시 몇 번이고 극장을 찾아야겠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 / ashitaka

** /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수히도 많았지만,
말로 하기 보단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그리고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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