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 Road, 2008)


1. 원래 리뷰를 반 이상 굉장히 많이 써놓았었는데, 도저히 정리가 안되더군요.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이번 경우는
<바벨>의 경우처럼 영화에 완전히 압도당해 쓸 엄두를 못 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좀 처럼 정리가 되지 않더라구요;;

2. 사실 반 이상 써놓았던 리뷰만 봐도 그렇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할 얘기가 많은 영화였어요.
그냥 <타이타닉>의 두 주인공이 나온다길래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주저없이 선택한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할 얘기거리도 많았고,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좀 처럼 하나의 '글'로서 마무리 짓지를 못하겠더군요;

3.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 편하지 만은 않더라구요. 이 영화는 굉장히 내면을 건드리는 영화인데, 상당히 냉소적이고 현실적인데다가 비관적인 논조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괴롭더군요. 꼭 내 얘기가 아니더라도 주인공에게 쉽게 동화되는 저로서는 역시나 괴롭더라구요 ^^;

4. 영화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 속 케이트 윈슬렛이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감독인 샘 멘더스가 감독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남편으로서는 상당히 독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저 같으면 자신의 아내에게 이런 캐릭터를 연기시키지는 못할 것 같아요;;

5. 마이클 샤논이 연기한 '존'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영화 속에서 보면 존이 휠러 부부에게 따지듯이 얘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이 장면은 존이 휠러 부부의 내면의 욕망과 허영과 모든 것을 겉으로 끄집어 내어 까발리는 굉장히 괴로운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웃더라구요. 도대체 뭐가 우스웠던 겁니까.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라 우스웠던 것인지 묻고 싶어지더라구요.

6. 안좋았던 기억에 대해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영화를 본 아트하우스 모모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날 때까지 불이 켜지지 않는데(이게 맞죠), 뒤에 앉으신 여자 분 두 분이 계속 작지 않은 소리로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여기 왜 불 안켜줘' '뭐야 이거 다 봐야 되는거야?' '뭐야 우리 무슨 극장에 갇힌거야?'
저 정말 거의 처음으로 극장에서 큰 소리로 누구에게 따질뻔했어요. 엔딩 크래딧을 저처럼 모든 관객들이 보길 원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보고 싶어도 시간 때문에 일찍 나가야할 수도 있을거고. 하지만 보고 싶지 않으면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더군요.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이것들 때문에 영화평을 정리 못한 것은 아니에요 ^^;)

7.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의 초반에 부부관계인 두 주인공이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데, 왠지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가 죽지 않고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했다면, 아마도 이런 권태기를 한번쯤은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왠지 잭과 로즈의 연장선으로 느껴져서 재미있기도 했죠.

8. 결국 영화는 현실과 이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 제 생각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이상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즉 이상으로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또 다른 현실일 수도 있고, 현실로만 생각해왔던 것이 어쩌면 이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 일 수도 있다는 거죠.

9. 가장 좋아하는 남녀 두 배우들 하나인 레오와 케이트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더라구요. 멋지게 배우로 성장한 둘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 이기도 했고, 그냥 둘이 좋아서이기도 했구요.

10. 음악도 참 좋았습니다. 스코어 앨범이 나온다면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요.

11. 그냥 두 배우가 나오는 로맨스 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시면 될 것 같아요. 인간관계과 현실과 이상, 그리고 결혼에 관한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에요.

12. 마지막 극중 케시 베이츠의 남편의 행동이 이 영화에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아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드림웍스 픽쳐스에 있습니다.







아래는 반도 못 쓴 리뷰인데, 혹시나 나중에라도 이어쓰거나 수정할 일이 생길지 몰라 남겨두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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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 Road, 2008)
무엇이 현실이고 이상인가.

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의 소설을 원작으로 <아메리칸 뷰티>를 연출했던 샘 멘더스와 <타이타닉>의 커플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지금까지 언급한 이유만으로도 일단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잘 알다시피 샘 멘더스와 케이트 윈슬렛이 부부관계인 것 또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었으며, <타이타닉>의 커플이 11년 만에 다시 커플로 스크린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영화팬들에게는 분명 설레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미있는건 이들 외에 역시 <타이타닉>에 함께 출연했었던 케시 베이츠 역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원작이 된 예이츠의 소설도 읽어보질 못했고,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감독과 배우들 뿐이었기에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관람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상당히 냉소적인 동시에 괴롭기까지한 영화였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심하게 다투는 휠러 부부의 언쟁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일단 이 첫 장면부터 한 번에 체감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의 화면비였다. 드라마 장르치고는 드물게 2.35:1의 와이드 비율로 영상을 제공하고 있는데,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은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2.35:1의 화면비를, 드라마가 주가 되는 이 영화에서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인물들간의 거리를 더 표면적으로 느끼게 해주어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들이 한 공간안에 있어도 그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생각하도록 만들게 된다. 초반 좁은 자동차 앞 좌석에 앉아 두 주인공이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차안 옆 좌석에 앉아있음에도 이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가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 사실 더 인상적인건 극중에서 두 인물이 표면적으로는 다투고 있지 않을 때라고 할 수 있을텐데,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있을 때도 그렇고 우리가 현실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 간의 거리를 눈에 확 띄도록 설정함으로서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현실과 이상간의 간극, 인물들 간의 갈등에 대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극중 휠러 부부가 사는 거리의 이름이다. 잘사는 중산층을 대변하는 일종의 상징으로서 인식할 수 있을텐데, 이 거리와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전형적인 보기 좋은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휠러 부부는 이 가운데서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선망에 대상이며, 그들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고 보여지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생계를 위해 하고 싶지 않은 뻔한 세일즈 일을 해오고 있는 프랭크(디카프리오)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가사를 꾸려가고 있는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우연한 기회에 파리로의 여행이 아닌 이민을 계획하게 된다. 현재의 삶에 무력함과 공허함을 느끼던 에이프릴은 예전 사진을 정리하다가 파리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던 프랭크의 말을 떠올려 급작스레 이를 계획하게 된다. 프랭크도 처음에는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터라 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계획에 함께 하게 된다.

이 계획이 있기 전 프랭크가 기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장면은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출근 시간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똑같은 양복과 모자, 무엇보다 표정으로 무의미하게 회사 건물로 들어서는 프랭크의 모습은, 프랑스 이민을 결정하고 나서 180도 달라진다. 분명 똑같은 옷과 시간이지만 현실에서의 탈출구를 계획하고 있는 프랭크에게는 유난히 빛이 나게 마련이다. 휠러 부부는 친한 부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이 부부는 이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가고나자 말도 안되게 유치한 계획이라며 서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들 부부의 행동과 설정은 휠러 부부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 앞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말하고 싶은건 이상이고, 그럼에도 말못하고 나중에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현실이다. 이 친구 부부의 남편은 자신의 집 마당에서 휠러 부부의 집을 멀찌감치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오래전부터 에이프릴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이를 고백하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조차 믿어주지 못하는 거품으로 덮힌 관계 속에 영화는 현실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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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이라 할 수 있는 '존'과 연관 지은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리뷰를 접게 되었네요;;;





서태지 - Atomos Part Secret (SINGLE)

01. Bermuda [Triangle]
02. Juliet
03. Coma
04. Bermuda [Triangle][RMX]


짧은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굳이 밝히고 넘어가자면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신도이자 오랜 팬으로, 서태지의 팬 대부분이 그렇듯이 일반적인 팬 이상으로 추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로서 서태지를 인식하고 있다. 싱글 형식을 취하면서 더더욱 욕을 많이 먹고 있는 듯한 서태지의 새 싱글 'Atomos Part Secret'을 언제나처럼 예약을 통해 손에 쥐게 되었다. 먼저 음반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다른 얘기를 좀 늘어놓자면, 발매 당일 아침에 교보문고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는 팬들,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한 시라도 빨리 들어보기 위해 요즘은 잘 쓰지도 않는 CDP를 일부러 구매했다는 팬들까지. 이 광경이 나에게는 오버스럽거나 유치해보이지 않았다. 나도 한 때는 서태지 음반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국에서 누구보다 먼저 접하고 주변에 알려주었던 사람이었고, 음반 가게에 가서 선불을 내고는 그냥 메모지에 번호와 예매권이라고만 써있는 종이를 받아가며 앨범발매를 손꼽아 기다려 본 적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음악일까 궁금해 잠못 이룬적도 있었고, 정말 CD혹은 테입을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몇 번이고 들어본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열정을 가지고 앨범 발매일 새벽에 문을 열지도 않은 음반샾앞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음반을 구매하고는 미처 집까지 가는걸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에서 부랴부랴 음반을 들어보는 광경이 부러운 한편, 아련하게도 느껴졌다.

여튼 개인적인 회상은 뒤로 하고, 항상 논란이 되고야 마는 서태지의 새 싱글이 드디어 발매가 되었다.





이번 싱글을 잘 알다시피 일단 '싱글 앨범'으로서 정규 앨범과는 차이가 있고, 지난 번 'Moai'가 수록되었던 싱글 'Atomos Part Moai' 이후 발매된 두 번째 싱글이다.
(서태지 - Atomos Part Moai 리뷰 보기 : 서태지와 아이들의 향수를 느끼다! http://www.realfolkblues.co.kr/688)

일단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번 싱글과 첫 번째 싱글을 동일선상에서 1:1 비교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 싶다. 첫 번째 싱글
'Atomos Part Moai'는 추후에 발매된 앨범에 대한 전체적인 컨셉과 분위기를 소개하고 알리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던 싱글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임팩트 면이나 신선도 면에서 두 번째 싱글인 'Atomos Part Secret'보다는 더 유리할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에 싱글이란 포맷은 정착되지 못한 탓에 일반 대중들은 '싱글=앨범'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서태지라면 매 앨범 마다 확확 달라져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추가되어 이번 싱글은 조금 아쉽다는 평을 더 듣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논란이 되고 있는 싱글 음반 가격에 대해 짧게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도 정규앨범과 큰 차이가 없는 가격은 조금은 불만이다. 서태지 본인은 그 정도 값을 하는 음악을 수록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는데, 서태지 본인도 알다시피 국내 음반 시장은 물론 싱글 시장은 아예 개념조차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초월하는 개념을 등장시킨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일본 처럼 싱글 시장이 자리잡은 상황이었다면, 기존 가격과 다른 가격대의 싱글을 내면서 '나는 자신있다'라는 데에 큰 거부감들이 생기지 않았겠지만, 앞선 이유들처럼 이런 상황을 너무 초월한 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가격이 비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격이 싸더라도 음반을 사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냥 서태지가 싫은 사람은 제외하더라도, 음반 구매해본지는 백만년도 넘은 이들이 음반 가격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그 만큼 앨범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소수가 된 현실이 한탄스럽기도 하고.





이번 싱글에는 보다시피 총 4곡이 수록되었는데, 이미 디지털 싱글로 공개되었던 'Bermuda [Triangle]'과 이 곡의 리믹스를 제외하면 신곡은 2곡 뿐이다. 일단 첫 번째 곡 'Bermuda [Triangle]'은 이미 뮤직비디오로도 자주 접해서 인지 매우 익숙함을 넘어서 반가움이 느껴졌다. 예전 곡이 공개된 이후로 몇몇 팬들 사이에서는 'Moai'보다 좋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곡으로, 전체적으로 네이쳐 파운드 사운드 보다는 'Heffy End'가 수록되었던 7집의 음악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론 곡을 뒷받침하고 있는 소스들에서는 네이처 파운드 사운드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피아노 선율과 록 사운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곡으로서 후렴구도 몇 번 듣게 되면 외울 정도로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은 여전하다. 두 번째 곡 'Juliet' 역시 드럼 사운드가 초반 부터 강조된 곡임을 알 수 있다. 초반 인트로가 지나면 연약한 태지의 보이스가 신비한 느낌을 주는데, 이 시퀀스와 록 사운드 부분은 계속 맞물려 진행된다. 전체적으로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곡으로 후반부 역시 너무 고조되지 않고 절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 번째 곡 'Coma'는 서태지 음반에 꼭 한 곡 씩은 들어있는 암울함과 슬픈 감정이 드러나고 있는 곡이다. 서태지의 이런 곡들엔 거의 흡사한 감성과 분위기가 있는데, 이곡 'Coma'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곡을 듣고 있노라면 대충 어떤 분위기의 뮤직비디오가 그려진달까. 상실과 허무함, 그리고 외로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 곡에도 피아노 선율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전반적으로 어쿠스틱 배킹이 깔려있어 좀 더 위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극적인 요소도 느낄 수 있지만 '죽음의 늪'이나 '기억나니'등 처럼 이 부분만 강조된 경우는 아니다. 네 번째 트랙은 'Bermuda [Triangle][RMX]'로 'Bermuda [Triangle]'의 리믹스 트랙이다. 일단 일반적인 리믹스 트랙하면 그저 반주 조금 틀려진 같은 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팬이 아니더라도 이번 리믹스 트랙의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본래 트랙이 좀 더 록적인 요소가 강했다면 이번 리믹스 트랙은 좀 더 네이쳐 파운드 사운드의 요소를 적극 가미한 곡으로, 기본적인 리듬 구조자체가 틀리다. 물론 개인적으론 원곡이 좀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공간감이 느껴지는 태지의 보이스를 만나볼 수 있는 리믹스 버전도 스쳐 듯기엔 아쉬운 트랙이다.




서태지의 팬으로서 사실 무조건 구매한 앨범이긴 하지만, 확실히 전작이었던 'Atomos Part Moai'와 비교하자면 임팩트면에서는 조금 심심한 싱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팬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구매할 수 밖에는 없는 또 하나의 싱글이 되겠지만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이한철 3집 - 순간의 기록

01. User's Manual
02. 동경의 밤
03. 차이나
04. 시내버스 로맨스
05. Carnaval
06. Sevilla (세비야)
07. Milano S. (밀라노 S.)
08. 안아주세요
09. 인생
10. Leaving City Havana


'지퍼'와 '불독맨션' 등으로 활동했던 이한철의 솔로 앨범 3집이 최근 발매되었다. 사실 이한철은 국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명으로서 그의 여러 프로젝트들에도 항상 관심이 많았었고(그런데도 '주식회사'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솔로 앨범들 역시 항상 빼놓지 않고 챙겨들어 왔었다. 일단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뮤지션 이한철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매끄러운 멜로디를 뽑아내는 작곡가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록에 기반을 둔 그의 음악은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슈퍼스타' 등에서 알 수 있듯 대중들에게 단번에 곡을 인식시킬 만한 후렴구를 만들 수 있는 특출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불독맨션 시절부터는 이국적인 음악 스타일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무엇보다 '흥'을 낼 수 있는 리듬들을 만들어내는 한 편, 매 앨범마다 한 두 곡 씩은 가슴을 후벼파는 슬로우 템포의 곡들도 수록해, 재미와 감동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고 있는 뮤지션이라 하겠다.

이번 앨범 '순간의 기록'은 그의 솔로앨범 3집인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가 하는 프로젝트 밴드들이(프로젝트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퍼'도 그렇고 '불독맨션'도 그렇고 너무 단발로 끝나버린 것을 들 수 있겠다. '불독맨션'의 경우 현재는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팬들 자체도 여러 팀으로 그리고 솔로로 등장하는 이한철의 모습에 조금은 혼란을 겪게 되는 것도 같다. 그래도 어쨋든 새로 발매한 그의 새 앨범은 역시나 만족스럽다. 이한철의 음반을 선택하면서 한 번도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어떤 프로젝트 앨범이던 EP던, 솔로 앨범이던 항상 어느 정도의 퀄리티와 전반적인 '들을 만한' 음악을 항상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순간의_기록'이란 타이틀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조합이기도 하고, 자주 쓰는 단어이기도 한데 이번 그의 앨범에서도 이 같이 좋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트랙 'User's Manual'은 인트로로 기획된 짧은 곡으로서 펑키한 리듬과 랩핑에 가까운 보컬로 진행된다. 두 번째 곡 '동경의 밤'부터는 본격적으로 이한철의 음악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전개와 익숙한 후렴구는 여전하다. 한 뮤지션의 음악을 오래 듣게 되면 분명히 그들만의 '톤'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텐데, 이 곡을 비롯한 이번 앨범에 수록된 여러 곡에서도 이런 '톤'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트랙 '차이나'는 앨범 발매 전에 지난해 열렸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공연을 통해 미리 만나볼 수 있었던 곡이라 무엇보다 반가웠다.

(2008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후기 - http://www.realfolkblues.co.kr/678)
(2008 펜타포트 '이한철과 런런런어웨이즈' 사진 보기 - http://www.realfolkblues.co.kr/683)

공연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우가차카'하는 후반 간주부분과 후렴구의 '차이나~~~'만으로도 귀에 쏙들어오는 곡이다. 소스들은 굉장히 복고한 소스들이 사용되었는데 마치 90년대 공일오비의 곡 혹은 이승환의 재기발랄한 곡을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네번째 트랙 '시내버스 로맨스'는 이한철 앨범에 꼭 한 곡씩은 들어있는 감성적인 곡이라 할 수 있겠다. 가사도 그렇고 무엇보다 후렴구의 멜로디는 듣는 이로하여금 한 번쯤 불러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매우 보편적인 곡 전개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다른 버전을 내놓는 것도 분명 재주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아마 곡을 쓰게 되면 이한철의 곡들처럼 될 가능성이 제일 높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들에서 상당한 동질감도 느껴지는 것 같다. 'Carnaval'은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다양한 드럼 사운드로 템포가 있는 곡이다. 이 곡에서는 전체적으로 불독맨션 시절의 느낌이 짙게 묻어났다. 그 다음 곡 'Sevilla (세비야)'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으로, 부담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리듬의 전개와 보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가사의 아련함이 잘 전달되는 편이다. 'Milano S. (밀라노 S.)' 는 스카리듬이 돋보이는 곡으로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운 곡이다(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흥겹다'란 뭐라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기존의 '흥겹다'와는 조금 차별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 코러스도 귀에 감키고 브라스 사운드도 흥겨웁게 들려온다. 전체적인 임팩트가 없는 편이긴 하지만, 템포와 리듬 변화등 다양한 시도들이 담긴 곡으로서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것이다. '안아주세요'는 전주 부분에서 그가 예전에 참여했던 '리아' 2집에 수록되었던 곡들의 느낌이 묻어난다 (리아의 2집은 정말 버릴 곡 없는 소소한 명반이었다). 이 곡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는 브라스 부분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홉 번째 트랙 '인생'은 '슈퍼스타'와 마찬가지로 어느 CF에 어울릴 듯한 곡이다. 듣기 편하고 가사의 내용도 긍정적인 곡. 개인적으로 너무 착한 곡들은 좀 싫어하는 편이라 베스트 트랙으로 보긴 어렵겠지만, 대중들에게 가장 먼저 어필할 곡이 어쩌면 이 곡이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곡 'Leaving City Havana'은 제목이나 마지막 트랙인 것만으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앨범 전체를 차분히 마무리 하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실은 이한철의 보컬도 감미롭지만, 그가 좋아하는 하바나의 평화로운 느낌과 더불어 스페인어 특유의 강점을 잘 살린 후렴구도 사랑스럽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하바나의 어느 노을 지는 해변가에서 그물 침대에 누워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그림이 절로 연상된다. 그만큼 피스풀 한 곡이랄까 ㅎ

이번 이한철의 3번째 솔로 앨범 '순간의_기록'은 월메이드 대중음반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들도 그렇지만, 이한철의 곡들도 너무 쉽게 사라지거나 너무 인정과 주목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이번 앨범 역시 어쩌면 소수 팬들만 즐기고 마는 음반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앨범 타이틀처럼 내게는 또 하나의 '순간의 기록'을 남긴 좋은 앨범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왓치맨 (Watchmen, 2009) (IMAX DMR 2D)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300>을 연출했던 잭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은 일찌감치 부터 올해 가장 큰 기대작 중 하나였고, 그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으로는 드물게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이미 영화 감상 전에 읽게 되었던 흔치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영화 감상 전에 원작이 된 텍스트를 먼저 접한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일 것이다. 원작을 미리 본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되겠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또한 원작이 존재할 경우, 원작을 미리 인지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 있는 것도 물론일 것이다(물론 지론은 영화는 원작이 있을 경우라 하더라도 영화만을 통해 100%를 보여주어야 하지 원작을 읽어야만 100%가 완성되는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원작을 읽었을 경우 100%가 120% 200%되는 것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왓치맨>은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라는 소식을 듣고 조금은 일부러 원작을 찾아 읽게 된 경우였다. 물론 <씬시티>때 반짝했다가 <다크 나이트>이후 본격적으로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그래픽 노블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간 그래픽 노블이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경우, 영화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은 그 세계관과 캐릭터,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많아 왠지 영화만으로는 100%를 얻지 못하는 것 같은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왓치맨>의 경우는 미리 그래픽 노블로 출판된 2권의 책을 미리 개봉전에 읽어보게 되었고, 더더욱 영화를 기대하게 되었었다.

개인적인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화는 원작과 비교하여 만족스러웠으며, 원작을 미리 읽었던 것은 약이 된 경우였다 하겠다.


(이후 부터는 영화와 그래픽 노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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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무어의 원작인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현실과 픽션이 적절히 섞인 이른바 '팩션(Faction)'이었다. 베트남전과 닉슨 대통령, 케네디 암살, 소련과의 냉전 등 실제 미국 역사의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그 가운데 마치 진짜처럼 가상의 캐릭터들을 끼워넣는 스타일이었다. 이 같은 방법은 <스파이더 맨>처럼 누구나 우연한 기회에 히어로가 될 수 있다라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 역사속에 히어로를 삽입함으로서 허무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좀 더 공감대를 불어넣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원초적으로는 '정말 그랬다면 어땠을까?' 혹은 '그런 일이 어디선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왓치맨'은 만약 미국이 배트남 전에서 패하지 않고 다양한 국가적 사건들에 알게 모르게 히어로들이 개입되어 있었다고 가정한 상태로 진행이 된다. 이 국가적 사건들에 가상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심은 것은 제법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특히 영화의 인트로 시퀀스는 인물들의 대략적 역사와 더불어 시대적 상황을 간략하지만 임팩트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확실히 실제 미국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 있을 수록 흥미로운 인트로가 아닐 수 없다(더군다나 여기는 상당히 많은 패러디나 인용들이 담겨있어 더욱 흥미롭다. 그 유명한 종전 사진을 레즈비언의 키스로 묘사하는 센스라던가, 히어로의 은퇴장면을 예수의 최후의 만찬으로 표현한 장면 등만해도 그렇다).

사실 원작 코믹스는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이나 역사에 대해 상당히 불친절한 경우였는데, 영화는 이 부분을 비교적 잘 압축하여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미닛맨 (Minutemen)'으로 활동했던 1기 히어로들이 어떻게 활약했고 사회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어떻게 사라져갔는지와 케네디 암살이나 인류의 달 착륙 같은 국가적 사건에 어떻게 개입이 되어있는지, 기본적으로는 어떤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었는지,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어린 시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보여주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인 '왓치맨'이 구성되는 시기까지 이를 함축적으로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근래에 본 오프닝 시퀀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은 확실히 고심하고 노력한 기색이 역력히 보이는 작품이다. 아마 본인도 꼭 왓치맨은 아니었더라도 어느 코믹스나 그래픽 노블의 팬보이였을 잭 스나이더는, 원작의 수 많은 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런 의식은 전체적으로 큰 각색보다는 원작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오는데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원작을 읽은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는 전체적으로 그래픽 노블을 그대로 다시 한번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정도로, 몇몇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들과 결말 부분만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신문 가판대 소년이 전하는 화물선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빠진 경우이며, 결말 부분도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변형이 된 경우라 하겠다). 예전 <씬시티>영화를 보고 나서 뒤늦게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보고는 영화 속 장면이 얼마나 그래픽 노블을 그대로 옮겨오려 노력한 것인가를 확인하고는 놀란적이 있었는데, <왓치맨>의 경우는 원작을 먼저 읽은 경우라 영화를 보는 중에 너무도 똑같은 장면 구성에 놀라게 되는 장면이 몇몇 있기도 했다.

원작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워낙에 원작의 세계관과 캐릭터의 깊이가 깊고 이야기가 다중적이기 때문에 단 한편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영화에서(그것이 2시간 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다 소화하고 설명하고 풀어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잭 스나이더는 몇몇 장면을 영화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함축적 장면들로 표현하고 몇몇 시퀀스들은 과감히 제외하면서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화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이 정도의 영화화라면 다른 어떤 감독이 만들어도 쉽게 구현해내기는 어려운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잭 스나이더가 좀 더 스타일리쉬한 부분에 치우쳐서 메시지보다는 보여지는 것에 더욱 치중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만의 장기는 살리되 메시지에 흠이 가는 부분은 최소화 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몇몇 액션 장면에서는 <300>을 통해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베리 슬로우 모션 액션을 엿볼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과하지는 않았으며(그래서 300 같은 액션영화를 떠올리며 극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이 허탈해하며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액션보다는 원작의 그 질감과 느낌을 스크린으로 옮겨오는데에 더 공을 쏟은 것이 만족스러웠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 원작을 읽은 이들 가운데서도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에 대해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편에 서고 싶다.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굉장히 정치적일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철학적일 수 밖에 없는 텍스트이다. 실제 미국의 정치적 배경을 영화의 주된 배경과 소스로 사용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어찌보며 이 배경 속에서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어떻게 사회의 폭동과 범죄를 야기시키고, 이를 막기 위해 스스로 일어난 자경단과 같은 히어로들을 또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영화는 시종일관 보여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코스츔을 입은 히어로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에 이르고, 스스로 환멸과 후회, 덧없음을 느끼고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반 사회적으로 그려지지만 어찌보면 본래 마스크를 쓰고 히어로가 되기로 했던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신념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로어셰크 뿐이며, 나머지 히어로들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은퇴했다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스스로의 절망 때문이라 해야겠다. 각 히어로들에게는 자신 만의 고통과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생각해볼만한 캐릭터는 역시 닥터 맨하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고로 마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존은 철저히 국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이용되고 사용되어 진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전쟁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게 되고 소련과의 냉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이 존재하고, 그는 미국인이다'라는 말처럼 대외선전용으로도 사용되게 된다.




영화 속 닥터 맨하튼이 겪는 고뇌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고민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고 볼 수 있겠다. '신'으로 묘사된 것처럼 절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닥터 맨하튼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은, 결국 영화과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권력'에 대한 것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왓치맨>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묻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절대적에 가까운 힘을 갖고 있지만 닥터 맨하튼이 결코 절대선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는 극중 코미디언의 말처럼 막을 수도 있던 재앙들을 결국은 막지 '않'은 경우도 많았으며, 인간들에 대한 환멸로 치부하기는 했지만 그조차 인간적인 면에 휩쓸려 어느 한 편을 들고 편협함을 은연 중에 갖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절대자라기 보다는 '미군'에 가까운 행동을 벌여왔던 지난 날들에 뒤늦게 덧없을 느끼고 지구를 떠나지만, 화성에서 그가 갖게 되는 고민들 역시 이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있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이 엔딩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이 모든 음모가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된 로어 셰크와 댄(나이트 아울 II)은 오지맨디아스를 찾아가보지만 이미 이들이 막기에는 늦어버린 때였다. 나중에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알게 된 닥터 맨하튼 역시 오지맨디아스를 막기 위해 나타나지만 결국 막지 못한다. 아니 막지 못했다기보다는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에 결국 수긍하게 되어버린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평화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식의 논리. 엄청난 큰 재앙이 닥치게 되자 오랫동안 핵전쟁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던 미국과 소련은 더 큰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연합하게 되고, 이른바 '평화'를 이루게 된다. 오지맨디아스의 논리는 이런 것이다. 결국 다수가 행복한 평화만 이루면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 그런데 나댄과 닥터 맨하튼은 이 같은 오지맨디아스의 논리에 반박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계획 시전이 아니라 이미 시행된 이후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핵전쟁 바로 직전까지 갔던 세계의 정세를 평화의 무드로 만든 것이 거대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만들어진 평화'를 굳이 깨는 방식을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거대한 재앙 앞에 다툼과 혼란이 하나로 융합되고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여럿 있어왔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9.11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음모설 따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여러가지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부시 정부에게 단 한 방에 국민의 힘을 실어준 것은 다름 아닌 9.11 참사였으며, 결국 기름전쟁이었던 빈 라덴 잡기 전쟁의 명분을 준 것도 9.11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같이 큰 재앙이 닥치면 미국의 침공이 부당하고 믿고 있던 사람들의 신념마저 약해져서 '그래,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이젠 충분한 명분이 있잖아?'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왓치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이 잘못된 것은 댄도 닥터 맨하튼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일이 벌어진 바에야 이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평화지만, 이 거짓을 알게 된다면 겪게 될 혼란과 핵전쟁 위기를 굳이 초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래 이미 일은 벌어졌잖아, 이 평화를 잘 지켜내기만 하면 돼'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끝까지 여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래 신념대로 가겠다던 로어 셰크를 닥터 맨하튼이 손수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며, 댄 역시 좀 더 강하게 로어 셰크를 설득하거나 맨하튼을 막아볼 수도 있었지만(물리적으로는 못하겠지만), 그러지 않고 로어 셰크가 죽은 다음에야 '안돼~!'하며 역시 자기 합리화를 하고야 만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곧이 곧대로 융통성 마저 없어보였던 로어 셰크의 길이 옳은 것인지(죽음을 뻔히 알고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 아니면 이미 일이 벌어진 뒤라면 그리고 진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더 큰 재앙을 겪을 수도 있다면 이 평화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대답이 결코 쉽지 만은 않다. 솔직히 대답은 로어 셰크를 응원하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저런 상황에 닥쳤을 때 과연 로어 셰크처럼 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쓸쓸한 것은 비단 어두운 스타일과 고어한 장면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관객에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와 현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노출시켜 자기 합리화와 신념 가운데서 고민하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 인상적인 건 오지맨디아스가 정말 '평화'만을 위해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보기엔 후에 상황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폐허를 제건하는 회사는 다름아닌 '바이트'사이고 하늘에도 '바이트'사의 비행선이 떠있고, 결국 이 재건될 세계에서 주도권과 권력을 쥐게 될 것은 오지맨디아스의 '바이트'사가 될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결국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국제 사회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일 것이며, 더나아가 이를 자기합리화하며 신경쓰지 않으려 하거나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비판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왓치맨>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준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영화 속에 삽입된 곡들은 <포레스트 검프>처럼 당시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어서, 마치 실존했던 비화를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살짝 들게도 했다. 오프닝에 사용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을 비롯해,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제니스 조플린의 'Me And Bobby McGee' 등은 당시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곡들이었다. 아, 그리고 코미디언이 살해를 당하는 장면에 사용된 냇 킹 콜의 'Unforgettable'도 기가 막힌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의 'All Along The Watchtower'도 인상적이었는데, 밥 딜런의 곡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곡 등 당시 히피정신으로 자유와 반전을 부르짖었던 정서를 담고 있는 곡들이 사용된 것도 단순히 시대적 상황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 다 인상적이고 적제적소에 음악들이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나 단 하나 댄과 로리의 베드씬에서 흘러나오던(그것도 크게!) 'Hallelujah'는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레너드 코헨 버전이라 조금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제프 버클리나 루퍼스 웨인와잇이 부른 버전이었다면 좀 더 쓸쓸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으나, 레너드 코헨의 버전은 '할렐루야'라는 가사와 맞물려 자칫 웃음이 지어지는 시츄에이션을 자아내기도 했다;; (잭 스나이더가 의도한 것이 어쩌면 이것일지도 ㅎ).




일단 잭 스나이더의 영화답게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이라던가 그 스타일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로어 셰크였다. 계속 변형하는 가면의 표현도 인상적이었고 그 거친 나레이션과 건조함은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특히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인상적이었는데, 잭키 얼 헤일리는 원작이 로어 셰크와 거의 흡사한 느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잭키 얼 헤일리는 어디서 본듯 했으나 잘 기억이 나질 않았었는데, 찾아보니 바로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했던 <리틀 칠드런>에서 주변에서 소외받고 의심받는 인물을 연기했던 그 였다. 재미있는건 이 <리틀 칠드런>에 등장했던 또 한 명의 배우가 <왓치맨>에 출연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는 다름 아닌 나이트 아울 II 역할을 맡은 패트릭 윌슨이다. 원작과의 조금 차이점이라면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원작에서 댄은 좀 더 나이가 많은 인물로(그래서 로리와 나이차이가 좀 있는) 생각되었는데, 극 중에서는 조금 젊은 듯했다. 그래서 로리와도 약간 안어울린다기 보다는 남녀관계로서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 큰 뿔테 안경을 고쳐쓰는 모습이 마치 <슈퍼맨>에서 클락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여러 배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역시 인상적인 다른 배우를 꼽으라면 빌리 크루덥이었다. 사실 단 번에 얼굴을 알아본 배우는 그 뿐이었다(생긴건 제일 외곡되었는데도 말이다 ㅎ). <미션 임파서블 3>와 <빅 피쉬>를 통해 눈에 익었던 그는 <왓치맨>에서 닥터 맨하튼 역을 맡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빨리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어 그의 출연분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왓치맨>은 분명 원작 코믹스와 더불어 그리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더군다나 만약 이 영화를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 블록버스터로 인식하게 된다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매니아적인 요소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며, 우울하고 씁쓸한 사회의 뒷맛 역시 숨기지 않고 내놓고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주말 시간을 즐기기 위한 영화로는 절대 비추이며 (그래서 오히려 긴 러닝타임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여유가 된다면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먼저 읽는 편이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듯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원작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원작을 읽었을 때 100%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아마도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면 또 한 번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나는 좋아! 왓치맨!


1. 왕십리 CGV에서 아이맥스 DMR 2D로 감상하였는데, 일산 아이맥스를 안본 입장에서는 엄청난 스크린 크기에 일단 압도. 많은 분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리가 조금 과하게 큰 듯한 느낌도 분명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 상영전 작게 뿌려지던 일반 광고와 예고편들 ;;

2. 마지막 시퀀스에서 오지맨디아스가 보는 많은 영상들 가운데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건, <람보 2>와 <매드맥스>를 들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나름 이유를 가지고 삽입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연관성을 따져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되겠다.

3. 나이트 아울 II과 로리가 아키를 타고 불난 건물의 사람들을 구출하는 시퀀스에서 커피를 나눠 마시는 장면이 추가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이 장면은 원작을 읽을 때 왠지 인상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영화에서는 종이 커피잔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만 묘사되었다.

4. 원작을 보면 극중 인물들이 보는 신문들이나 길가에 현수막 혹은 TV속 내용들에 대해 자막이 지원되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여기까지는 지원이 되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물론이것이 조금은 과한 요구일 수도 있겠지만 원작을 읽은 분들은 아시다시피 이것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이 지원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5. 사실 영화가 영화인지라 하고 싶은 말들이 더 많았는데 한번에 정리하기는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추가로 생각이 떠오르거나 한번 더 보게 된다면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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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이 화제가 된 지도 어느새 조금 시간이 흘렀다.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기하)이 이 정도로 알려지기 전부터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은 몰랐었다. 내가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홍대를 거닐다 클럽 앞을 지날 때 호객꾼이 '자~ 달이 차오릅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오늘 출연합니다~' 라고 얘기할 때만 해도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기하가 누구야?'하고 물어올 때였으며, 소수들만 '오~ 오늘도 장기하와 달려볼까!' 라고 말할 정도였다. 장기하가 이토록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발점은 'EBS 스페이스 공감' 에서 헬로루키 코너를 통해 방송출연을 했던 것과 쌈지 페스티벌에서 숨은고수로 출전하여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를 때 그 많은 관객들이 미미 시스터즈의 그 현란한 안무를 따라하면서 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 때부터 '장기하'라는 이름은 점점 소수를 넘어서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게 되었고, 급기야 몇몇 TV프로에서 새로운 현상과 이슈 메이커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장기하와 '싸구려 커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장기하에 대해서는 늦게 접한 편이다. 뭐랄까 개인적인 성격상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접한 경우가 아니라면, 특히나 장기하의 경우처럼 일순간에 스타가 되어버린 경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이상하게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데 나도 좋아하는 유일한 존재라면 역시 '이효리'정도 ^^;), 그래서 남들이 다 수공예 소형앨범이었던 '싸구려 커피'에 열광할 때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번 정규 앨범 '별일 없이 산다'는 이런 나에게도 본격적으로 장기하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장기하의 음악을 듣기 전에 알고 있던 그의 정보는 인디 밴드인 '눈 뜨고 코베인'의 멤버라는 점과 장기하 본인이 산울림 음악의 추종자라는 것이 전부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확실히 그 간 대중의 관심과 현상이 되다시피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참 듣기 좋은 것이었다. 역시나 김창완으로 대표되는 산울림의 분위기를 깊게 느낄 수 있었고, 인디 본연의 단백한 가사와 예전 국내 포크 싱어들의 장점들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악들이 담겨있었다.




첫 번째 곡 '나와'는 예전 한국 록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간결한 드럼과 기타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인데, 후반 부의 코러스 부분은 뻔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장기하의 보컬은 역시나 무심한듯 잘 어울린다. 두 번째 곡 '아무것도 없잖어'는 가사와 그 전달방식이 매우 재미있는 곡이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요소들이 잘 버무려지고 있는데, 거의 나레이션에 가까운 보컬과 기이한 느낌의 남성 코러스 그리고 컨츄리마저 느껴지는 리듬들까지. 가사가 참 잘들리는 가요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사 자체가 이야기를 가지고 전개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좀 더 몰입도가 높은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최근 가요 곡들을 보면 가사 전달에 대해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는 절대 간과할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하겠다.

세 번째 곡 '오늘도 무사히'는 마치 서부영화에나 나올법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가면 역시 가사와 보컬에 있어 예전 가요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수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네 번째 트랙 '정말 없었는지'. 개인적으로 장기하의 앨범을 들으면서 찡하게 될 줄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곡을 들으면서는 순간 찰나를 경험했다고 할까(지금 리뷰를 쓰는 중에도 이 곡이 흐르자 바로 프리즈 상태를 경험!). 어쿠스틱 기타 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와 베이스가 더해지는 후반부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특히 가사의 감성이 매우 잘 전달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쯤 연습해서 불러보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이번 앨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베스트 트랙이었다.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은 '오늘도 무사히'의 테마가 그대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서부영화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데, 전자가 행진곡에 가까웠다면 후자는 주인공의 쓸쓸한 테마랄까. 가사를 살리는 재주가 참 맛깔난다. 분명히 클래식한 방식의 보컬들인데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말하러 가는길'은 초반부터 확실히 복고스러움을 드러내는 곡이다. 가요가 트로트에 빚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최근 댄스가요에서 흔히 써먹는 '뽕필' 말고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 이 곡은 전통 트로트에 고즈넉한 감성을 장기하 식으로 잘 승화시킨 곡이라고 생각된다. '나를 받아주오'에 가면 좀 더 노골적이 된다. 장기하는 장난치듯 보컬을 사용하는데, 예전 가요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추임새들과 코러스, 그리고 송창식의 곡이 떠오르는 지르는 후렴구까지(그런데 마무리는 역시 김창완이다;;). '그 남자 왜'는 펑키한 리듬으로 시작된다. 역시 요즘 펑키한 곡들보다는 예전 제임스 브라운 같은 스타일이 오히려 더 묻어난다. 그런데 역시 가사와 전달 방법은 토속적이다(하지들 마러, 남자랍니다. 뭐 이런식의 가사들은 정말 맛깔스럽다).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는 약간 아방한 느낌마저 드는 곡인데, 마치 신디사이저 초창기에나 들었을법한 올드한 신디 사운드와 약간 사이키델릭한 기타사운드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장기하의 가사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변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 라니! 그 다음은 지금에 장기하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싸구려 커피'다. 이 곡은 너무나 유명하니 굳이 말하면 잔소리일듯. '달이 차오른다, 가자' 역시 전자와 비슷한 경우지만 짧게 코멘트해보자면 전자가 김창완 스타일이었다면 후자는 송창식 스타일이라고 봐야할 듯 싶다. 뭐 미미 시스터즈의 그 현란한 팔동작 봤어요? 못봤으면 말을 마세요.

'느리게 걷자'는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온 듯한 느낌을 그야말로 '갑자기' 느껴버릴 수 있는 희한한 레게 리듬이 가미된 곡이다. 레게 리듬에 토속적 가사와 정서를 불어넣은 것은 이전에 강산에도 들려준 바가 있는데, 장기하 역시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마지막 트랙 '별일없이 산다'는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으로서 다시 산울림 스타일의 록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후렴구의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할 고민없다'는 완전 김창완 100%다. 파이프 오르간 스러운 간주부분에 연주도 인상적이고 장기하의 단백하고 깔끔한 토속 보컬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에 바라는 점이라면, 이런 감수성을 잃지 말고 계속 앞으로도 음악 활동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겠다. 뭐랄까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했을테지만 생각보다 너무 큰 이슈와 관심을 불러일으켜 버렸기 때문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텐데, 팬으로서 조심스러운 염려랄까. 하긴 이런 것에 휩쓸릴 장기하와 얼굴들이었다면 '별일없이 산다'라는 타이틀로 첫 정규앨범을 내지도 않았겠지. 훗.






장기하와 얼굴들 - 정말로 없었는지 (Live)





이건 별도로 지난 번 장기하를 다시 보게 한 또 하나의 동영상.
'장기하와 조까를로스 - Smells Like Teen Spirit'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인터내셔널 (The International, 2009)
괜찮은 다 아는 이야기


이 영화 <인터내셔널>은 역시 두 배우, 클라이브 오웬과 나오미 왓츠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다. 감독 이름은 미리 확인하지도
못할 정도로 별 다른 정보 없이 보게 되었는데, 감독은 다름아닌 <롤라 런>과 <향수>를 연출했던 톰 튀크베어 였다.
사실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고 영화를 보게 된 드문 경우이긴 했으나 중간에 '혹시'하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도 있었다
(이 부분은 맨 마지막에 얘기하도록 하죠).
사실 애초부터 그리 큰 기대를 했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였던 것 같다.
정부와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연루된 음모를 파해치는 주인공, 그 와중에 중간중간 밝혀지는 작은 반전들, 그리고 가미된 액션들.
2시간을 즐기기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이미 비슷한 영화들을 통해 너무 많이 보았던 이야기들을 모은 것 이상의 감흥은 없었으며,
결국 소스를 빌려온 영화들 이상은 보여주지 못했던 평범한 영화이기도 했다.




클라이브 오웬이 연기한 주인공 루이 셀린저는 인터폴 소속의 형사로 은행과 연관된 대규머 범죄조직의 음모를 파해치고 있으나,
워낙에 연관된 정부와 기업들이 많아 내부적으로도 협력이 부족한 상태다. 이런 셀린저를 돕는 인물이 바로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
뉴욕의 보조검사 휘트먼이다.

영화의 대략적 줄거리라인은 이미 범죄 스릴러 혹은 액션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영화들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마치 또 하나의 다른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여러가지 영화의 잔상들이 엿보이는데, 옥상을 넘나들며 추격전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본 얼티메이텀>으로 대표되는 '본 시리즈'가 연상되고, 거대 범죄조직을 상대로 제목처럼 '국제적인' 로케이션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첩보 장면들은 007 시리즈를 비롯한 이른바 '요원'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요소들이었으며, 이 영화가 후반부에 깊게 다루고 있는 메시지 측면은 <다크 나이트>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같이 여러 영화들의 요소들이 비쳐지기는 하지만, 톰 튀크베어 감독은 비교적 이를 잘 버무린 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해 앞서 언급한 이런 영화들을 감상하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그런 관객들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미 본 이들이라도 그리 지루하지 않게 러닝타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조직을 상대하는 '요원'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들과의 유별난 차이점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후반부에 삽입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의 메시지는 이미 <다크 나이트>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이 영화에서는 분명 이것이 핵심은 아니었다고 생각되기에, 여기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통해 인물들의 동기나 연관관계를 좀 더 심도있게 풀어내지 못한 것도 조금 아쉬운 점일 수 있겠다(역시 본 처럼 3부작으로 가야만 완벽한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첫 번째 장면은 박물관에서 벌어지는 총격 씬을 들 수 있겠는데, 독특한 원형 구조로 되어 있는 장소의 장점을 100% 활용한 멋진 구성이었다. 뭐랄까 클라이브 오웬이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 한 번 주위를 쓰윽 둘러보는 장면서 부터, 왠지 이 장소가 완전히 망가지겠구나 했는데, 역시 장소를 완전히 초토화 시키는 액션 장면이 벌어지게 된다. 톰 튀크베어 감독은 이 원형구조를 액션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아주 잘 활용하고는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임팩트 면에서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확실히 총격 액션 장면에서는 마이클 만이 항상 떠오를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극중 클라이브 오웬과 아민-뮬러 스탈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마치 <다크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시퀀스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둘의 대화 장면도 장면이었지만 이를 작은 틈 사이로 나오미 왓츠가 바라보는 시점이 인상적이었는데, 극 중에서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는 클라이브 오웬이 연기한 셀린저와 현실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는 아민-뮬러 스탈이 연기한 웩슬러를 번갈아 보는 시선 연출은, 어쩌면 꼭 법의 테두리 내에서 범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과 법으로는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범죄에 한해서는 법을 초월해야만 제거할 수 있다는 현실의 가운데서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케 하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출이었다고 생각된다. 영화는 결국 엔딩 장면에서도 이런 점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어떤 것이 결국 옳았는지 보다 과연 멈출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너무 익숙한 주제들을 다룬터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흥미롭지 못했지만, 그래도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과 뉴욕, 프랑스, 터키의 이스탄불, 베를린 등등 다양한 로케이션 장소, 특히 인상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을 만나보는 재미도 쏠쏠했던 영화였다.
클라이브 오웬의 연기는 그리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바리를 걸치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칠드런 오브 맨>의 이미지가
너무도 겹쳐보였으며, 나오미 왓츠의 경우는 캐릭터 자체가 좀 심심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누군가의 파트너가 아니라 그녀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어서 다시 보고 싶다!). 아민-뮬러 스탈의 경우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또 한 번 기대했으나 캐릭터 자체가 보스 역할이 아니라서 였는지, 이에는 못미치는 살짝 아쉬운 연기였다.


두 배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패스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영화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과감히 패스해도
될 듯 하다.


1. 인터폴 본부가 나오는 장면에서 잠시 남자 배우 한명이 대사 한마디와 함께 스쳐 지나가는데, 분명 벤 위쇼였다! 그래서 '엇! 벤 위쇼가 이 영화에 나온단 말이야?'하고 놀랐다가 단 몇 초 이후엔 등장하지 않길래 혹시나 잘못 본 것은 아닌가 했었는데, 엔딩 크래딧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벤 위쇼가 맞았다. 나중에 이 영화가 <향수>를 연출한 톰 튀크베어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야 벤 위쇼가 까메오 출연한 것에 '이유'를 수긍할 수 있었다(혼자 알아보고 혼자 좋아했다는 ㅎ)

2. 한 때 제임스 본드 후보로 거론되었던 클라이브 오웬은 이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네요 ㅎ

3. 감독인 톰 튀크베어는 음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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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콜럼비아 픽쳐스에 있습니다.










말리와 나 (Marley and Me, 2008)
반려동물을 통해 보는 인생


<말리와 나>라는 제목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제법 오래전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역시 반려동물들과 인간간의 이야기를
다룬 이누도 잇신 감독이 참여한 프로젝트 영화 <우리 개 이야기>때문이었는데, <우리 개 이야기>DVD 출시 당시 프리오더
이벤트로 '말리와 나'라는 제목의 도서를 증정하는 행사로 미리 책을 먼저 받아볼 수 있었고, 바로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화가
진행되었다는 것 정도를 미리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은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와 책 첫머리를
들춰 보니, 저자의 이름이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존 그로건'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인데, 뒤늦게 생각해보니 한편으론 드라마틱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너무도 평범한 일상들의
이야기를 영화 화법으로 잘 풀어낸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말리와 나>를 처음부터 보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 일것이라는 단순한 추측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 개 이야기>가 그랬고, 고양이와의 애틋한 감정들을 소소하게 다룬 <구구는 고양이다>가 그랬으며,
애니메이션 <볼트> 역시 그런 이유에서 보게 된 영화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은
신파적이고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별다른 불만없이 보게 되는건 영화 속에 담긴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 만으로도 어느 정도 개인적인 이유를 더해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인데,
<말리와 나>는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 그 것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이 부분이 살짝 의외
이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결과적으로 더욱 만족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매우 평범한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는 동시에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빼먹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의외의 만족스러움을 주었던 <인 굿 컴퍼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래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선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둘 다 기자로서 바쁜 날들을 보내던 존 그로건과 제니퍼 그로건 부부는, 덥석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한 시간들과 두려움으로
인해 먼저 강아지 한마리를 키워보게 된다. 이 강아지의 이름이 바로 '말리'이고, 이 녀석은 엄청난 말썽꾸러기다('말리'라는
이름은 유명한 레게 음악의 레전드 '밥 말리'에서 따온 것이다). 얼마나 말썽을 부리는지 집 안에 남아나는 것을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못쓰게 만들고 나름 엄하다는 애견 교육관도 두손 두발 들어버린 정말 '최강'의 말썽꾸러기 강아지다.
처음 존과 제니퍼는 관객들이 생각했을 때 '와, 저 정도까지 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리가 일으킨 사고(?)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보인다. 말리가 어떤 사고를 치던 신혼이고, 아직은 말리가 그저 귀여워만 보이는 존과 제니퍼에게는
다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미묘한 갈등이 하나 있다. 둘 다 기자이지만 아내인 제니퍼는 좀 더 좋은 직장에서 명성이 있는 기자이고,
남편인 존은 작은 신문사에서 부고란 정리가 주된 업무인, 영향력이 아직은 별로 크지 않은 기자이다. 이런 갈등이 표면적으로
크게 폭발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지만, 결혼 생활이 계속되고 다툼이 일 때마다 이 부분은 조금씩 문제로 부각된다. 남편인
존은 아내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을 은연 중에 갖고 있으며, 아내인 제니퍼 역시 진심으로 남편을 응원해주기는
하지만 역시 마음 한 켠엔 이런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부 간 일종의 신분 구조에 대한 갈등은 존이 더 좋은
신문사로 스카우트 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만, 아이를 유산하고 다시 얻고 키우는 과정 속에서 부부 간의 미묘한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이 영화의 이야기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미묘한 감정과 갈등들을 보이지 않게 담아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요소를 들라면 남자주인공인 존의 태도일 것이다. 보통 같으면 힘겨루기에 있어 한 번쯤 크게
폭발할 것도 같은데 존은 말리가 친 사고들에도, 아내의 투정에도 거의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참아낸다.
존에게는 앞서 언급한 제니퍼와의 부부로서 갈등 외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가족을 위해 참아야만 하는 갈등도 존재한다.
그는 전쟁 기사를 쓰러 출장을 가는 친구 기자와 함께 기자로서 더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가족과 말리를 위해
이런 꿈들을 스스로 많이 억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해 가며 가족 중심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로 성공을
이루게 된다. 본인은 그렇게도 '기자'를 원했으나 하는 수 없이 떠맡은 칼럼니스트 코너는 연일 인기를 끌어서 더 큰 신문사로
스카우트도 되고, 그렇게 원하던 기자가 된 이후에도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고는 다시금 칼럼니스트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런 점을 보면 역시 인생은 아이러니이고 무엇이 반드시 옳은 것응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듯 하다.
본인의 꿈과 이상을 이루는 것만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는 것 또한 반드시 옳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음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진리의 경지의 메시지이겠지만, 이 영화는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이런 것들을
슬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외에도 이 영화는 겉으로는 신파극처럼'만' 보이지만, 그 속에 인생과 결혼, 그리고 가족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담아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부부간의 직업적 상하구조로 인해 갖게 되는 고민들이라던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부부간의 변화가 생기는 부분,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열정적이다가 시간이 갈 수록 애정과 관심이
식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은연 중에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미묘한 감정들을 이렇게
보일듯 말듯 배치해 놓은 시나리오가 매우 마음에 들었으며, 오히려 이를 대놓고 공개했을 때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영화의 마지막 존의 내레이션은 갑자기 너무 신파로 마무리 지으려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서 이 영화에서 은근히 언급했던 현실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정리하는 내레이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얼핏보면 반려동물의 소중함과 애정만을 담은 내레이션과 마무리로 보이기도 하나, 결국 말리와 함께 했던 삶을 통해
인생에서 소홀히 했고 서로에게 상처주었던 부분들을 반성하고 스스로 껴안음으로서, 전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장치로 내레이션이 사용되고 있다 하겠다. 자신보다 짧은 인생을 사는 '말리'를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랄까. 단순히 항상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것 정도만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곁에서 함께 한 존재라는 메시지에 울컥하지 않을 순 없었다. 특히 부부의 아들인 패트릭이, 어린 시절
촬영했던 홈비디오를 보는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이 아기였을 때에도 항상 말리가 함께 했음을 예전 비디오를
통해 새삼 알게 되어 눈물 흘리는 패트릭의 모습은, 반려동물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의지 할 수 있었던
존재였는지 역시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런 영화라면 의례 주인공인 동물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나올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하고 점점 힘을 잃다가 목숨을 잃고 마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신파라 욕해도 좋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너무도 슬프게 다가왔던 이유는 극 중 '말리'의 모습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함께 했던 고양이
'일루'의 모습과 너무도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루는 말리처럼 엄청난 말썽꾸러기라서, 생전 처음 큰소리로 꾸짖어본 적도
있고 가끔은 귀찮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사건이 많았었는데, 영화 속 말리의 이야기와 일루의 이야기가 다른 점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끝까지 말리를 가슴으로 품었지만, 나는 이사라는 형식적 핑계를 들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일루를 다른
사람에게 떠나보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끝까지 일루를 포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들었고,
회환이 몰려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더욱 슬픈 영화였으며, 또 한 번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매우(아주 매우)
고심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1. 두 주인공 배우는 알았지만 그 외에 캐스팅은 전혀 몰랐던 터라 앨런 아킨의 등장이 무척 반갑더군요!

2. 패트릭으로 등장한 아역배우는 <다크 나이트>와 <미스트>등을 통해 익숙했던 나단 겜블군이라 역시 반가웠습니다.

3.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얻을 수 있었던 영화라 만족스러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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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
한계와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찬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작 <더 레슬러>는 미키 루크라는 배우 때문에 일단 주목하게 된 영화였다.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 화려한 헐리웃의 섹시가이로 유명세를 떨치던 미키 루크는 마약을 비롯해 각종 안좋은 일들로 영화계에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었으나 몇해 전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씬시티>를 통해 다시금 메인 스트림에 복귀하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와 캐릭터로 또 다른 미키 루크를 선보이며 영화 팬들 곁을 다시 찾아왔었다.  그 이후 미키 루크의 새로운 행보를 주목하던 중 처음으로 접하게 된 영화가 바로 이 영화 <더 레슬러>였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작 가운데 <파이>와 <레퀴엠>만을 보았었는데(<천년을 흐르는 사랑>은 dvd가 있음에도 아직 보질 못했는데, <더 레슬러>를 계기로 이번에 한번 봐야겠군요), 영화를 볼 때는 전작들과의 접점을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웠으나, 리뷰를 쓰려고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이번 작품 <더 레슬러>역시, '레슬링'이라는 소재는 단지 거들 뿐,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한계에 부딪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주인공인 랜디 더 램(미키 루크)은 젊은 시절 프로레슬러로 큰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던 스타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보청기를 착용해야만 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노년에 가까운 남성일 뿐이다. 그런데 랜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바로 그가 아직도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스포츠를 주제로 신파성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성공스토리 영화들과의 분명한 차이점이다. 실버스타 스텔론의 <록키 발보아>같은 경우 (참고로 미키 루크에게 캐스팅 제의가 가기 전에 스텔론에게도 제의가 있었으나 바로 <록키 발보아>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전성기를 보냈던 주인공이 세월이 흐른 뒤 다시금 전성기 때처럼 열정을 가지고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으로 감동을 그려내고 있지만, <더 레슬러>의 경우는 전성기를 보낸 주인공이 한참 떠나있던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계속 몸을 사용해야 하는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비록 엄청난 주목을 받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금은 작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오고 있으며 쉬지 않고 해왔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 랜디가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은 무엇일까. 다른 성공스토리가 '그래, 내가 전성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도전과 성공으 이야기였다면, <더 레슬러>의 구조는 '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의 고민과 고통에서 시작된다. 격한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수많은 약물과 편법등을 동원해서 커리어를 이어오던 랜디에게 어느날 심장에 무리를 주는 쇼크로 쓰러지게 되면서, 랜디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 동안 프로레슬러로서 소홀했던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에게도 좀 더 마음을 열기로 하고, 자주 가던 스트립바의 캐시디(마리사 토메이)에게도 오랫동안 숨겨왔던 손님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심장에 이상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좀 더 신파같은 줄거리였다면 단번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레슬링을 했었을테지만, <더 레슬러>의 랜디는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위해 큰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주저없이 커리어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슬링을 떠나서 그가 바로 피부로 겪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다. 레슬링 비지니스 속에서만 살아온 랜디가 이를 관뒀을 때 겪게 되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하나 뿐인 딸은 자신을 아버지는 커녕 남 대하듯 쫓아내는 한편, 빈 트레일러 집에 덩그러니 누워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며, 레슬링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직접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앞치마와 위생모를 머리에 쓰고 식품 코너에서 샐러드를 팔기도 해야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불러온 동네 꼬마와 구형 닌텐도로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랜디는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레슬링 게임에 신나하는 것에 비해 아이는 최첨단 FPS 게임(콜 오브 듀티 4)을 이야기하는 것은, 랜디가 현실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그 거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랜디가 이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랜디는 자신을 매몰차게 내치는 딸 스테파니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캐시디에게 살짝 고백을 했다가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한 뒤에도 (생각보다는) 약한 불만의 표현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하고 싶지 않았을 식품 코너 일도 긍정적이고 즐겁게 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했다. 랜디가 맞닥 들이게 되는 현실의 묘사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랐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뿌리치는 스테파니의 입장은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부분이다.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없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병을 얻고 나서야 나타나서 호의를 배푸는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고, 캐시디 역시 그간 아무리 자주 오가며 정을 쌓았다 하더라도 막상 고백까지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기에 랜디에게 다가오는 현실이 그리 가혹한 것만은(자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랜디가 현실에 대처하는 방식은 너무 순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을 모두 다 세상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랜디의 모습은 애처로운 동시에 너무도 현실적이다. 사실 이런 현실이 닥쳤을 때 고통을 조금 호소하다가 바로 불만과 용기를 동시에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너무도 영화적이었던 것에 반해, 랜디의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의 진심을 얘기하며 그 거친 피부 아래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눈물 이상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했다 (랜디가 현실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유일한 부분은 '랜디'라는 레슬러로서의 이름으로 반드시 불리길 원하는 것이 전부인것 같다).




랜디가 처하는 현실의 극적인 대비 측면을 위해 영화는 프로 레슬링의 세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쇼(Show)'로만 알고 있는 프로 레슬링을 위해 얼마나 많은 '현실'의 사람들이 많은 준비와 노력을 들이는지를 구차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통 같으면 프로 레슬링의 링 뒷면에서는 서로 저렇게 미리 합을 짜고 스토리를 준비하는구나 하고 알 정도였다면 초반 한 두번 연관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을텐데, <더 레슬러>에서는 이 부분은 랜디가 링에 오를 때마다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미리 칼날을 숨겨 이마에 커트를 내고 사용할 무기들에 관해 미리 준비를 하는 기술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이렇게 치열한 경기를 치르고 링을 내려와 쇼 뒷면에 현실로 돌아왔을 때 레슬러들의 세계를 가까운 곳에서 조명하고 있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이다. 보통 일반적 영화같았다면 퇴물쯤 되는 랜디를 젊은 레슬러들이 그야말로 퇴물 취급하며 왕따 비슷하게 몰아갔을테지만, 이것은 너무 극적인 요소만을 강조한 전개일뿐, 현실성과 메시지를 중시하는 <더 레슬러>에서 젊은 레슬러들에게 랜디의 존재는 존경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링을 내려온 랜디에게 서로 등을 두드리며 나누는  '굉장했다' '죽여줬다' '영광이다' 등의 말들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말들인 것이다.

가장 쇼에 가까운 프로레슬러에게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또 하나의 진부한 설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더 레슬러>는 이런 논란에서는 거뜬히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카메라 워크라 하겠는데,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랜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킹과 굉장히 인물에 가깝게 밀착되어 있는 카메라와의 거리는  이 영화의 인물들에 좀 더 현실적인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스트립바에서 댄서로 일하고 있는 캐시디는 이 영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단순히 랜디와의 로맨스 적인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랜디와 비슷하게 한계에 부딪혀 갈팡질팡하는 캐릭터로 보는 것이 맞겠다. 그녀 역시 젊은 댄서들에 밀려서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보인 랜디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랜디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이라기 보다는 랜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나서 용기를 얻고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전이된 경우라고 봐도 좋을 듯 하다. 그래서 캐시디는 랜디가 스트립바에 와서 돈을 주고 나체의 자신을 보는 것이 못 마땅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론 목숨을 걸고 레슬링을 다시 하려고 하는 랜디가 안쓰러운 것이다. 

랜디를 이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링 위 임을 깨닫고 20년 만에 열리는 기념 경기에 보수도 없이 참가하기로 한다. 링 위의 공간은 철저한 쇼의 무대이자 다른 한편으론 가장 치열한 랜디의 현실이기도 하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이뤘고, 상대 레슬러도 랜디의 상태가 걱정되어 이쯤에서 끝내자고 하지만 랜디는 결국 더 완벽한 쇼를 위해 마지막 기술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링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의 엔딩은 마치 한계와 맞서싸우다가 산화해 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듯한 느낌은 분명 아니었다. 랜디는 자신의 인생과 현실, 링을 돌아보며 한계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인채, 자신 만의 방법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카메라 워크도 그렇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미키 루크라는 점에서 이야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랜디와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은 여러 모로 유사점이 많다고 할 수 있을텐데, 영화 속 랜디처럼 자신의 한계와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간(돌아온) 미키 루크의 열연은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사실 개인적으로 한창 때 미키 루크가 출연한 영화들을 그리 많이 본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영화 속 랜디를 연기한 미키 루크의 모습에서는 진정과 인생이 느껴졌다. 미키 루크 본인은 극 중 랜디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비슷해 처음에는 출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랜디처럼 미키 루크도 더 이상 이 같은 점을 외면하려고만 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 더 좋은 결과와 그의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미키 루크의 오랜 팬이 <더 레슬러>를 보게 된다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듯 하다. 


1. 평소 WWE를 그래도 챙겨보는 입장에서 레슬링 관련 영화라 혹시나 관련 선수들이 잠시라도 스쳐가지 않을까 해서 눈에 불을 켜고 봤는데, 적어도 WWE소속 선수들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더군요.

2. 극중 래니의 딸 이름이 스테파니 라는 점도 살짝 흥미로웠습니다. 잘 알다시피 WWE의 회장 격인 빈스 맥맨의 딸 역시 이름이 스테파니이기 때문이죠 ㅎ

3. 캐시디 역할을 맡은 마리사 토메이의 경우 얼굴이 굉장히 낯이 익어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있나보다 했는데,
그렇다기보다는 여러 여배우들의 얼굴이 겹쳐보인 것 때문인듯 하네요. 그녀는 이미 조 페시와 연기한 <나의 사촌 비니>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적도 있습니다.

4. 스테파니 역할을 맡은 에반 레이첼 우드는 처음에는 몰라보겠더군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때와는 머리 색도 틀리고 화장도 진하게 한터라 약 10초간 못알아볼 뻔 했네요 ^^;

5. 극 중 랜디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등은 숀 마이클스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6. 엔딩에 흐르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이 영화와 그리고 무엇보다 미키 루크와 너무도 잘 어울리더군요.




7. 제 리뷰의 제목인 '한계와 가치있는 것들의 대한 찬사'는 좀 맞는 거 같지 않아서 '한계 그리고' 뭐 이런식으로 수정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한계'라는 것 역시 찬사를 받아야 마땅한 것 같네요. 극중 랜디와 같다면 한계를 접했다는 것 자체가  가치있는 일이고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Fox Searchlight에 있습니다. 







SF호러 영화의 잊혀지지 말아야할 걸작

B급 호러무비의 거장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 (The Thing)>은 여러 모로 의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작인 이 영화의 장르적 묘미는 지금봐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들도 최근 SF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특수효과에 비하자면 디테일 면에서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에서는
지금봐도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인 특수효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비디오로 어렴풋이
보고 난 뒤 제대로 본 것은 이번 블루레이를 통해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DVD로 미처 감상하지 못하고 고화질의 블루레이로
감상하게 된 것이 오히려 득이 된 경우다), 더더욱 (제작년도를 감안한다면 더!) 굉장한 영화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존 카펜터의 팬이라고 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그의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진 못했지만 이 작품 만큼은 왠지 끌렸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영화의 인상적인 포스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굉장히 단순하지만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는 이 포스터 때문에 이 영화는 예전부터 꼭 보고싶었던 영화였고, 블루레이가 출시된 지금에서야 드디어 영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존 카펜터라는 이름은 미처 영화를 보기 전에도 '괴물 (The Thing)'이 항상 연관되어 생각되어질 정도였는데,
보고 난 뒤에도 역시나 이런 연관관계는 계속될 것 같다.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비트의 음악을 배경으로, 설원을 달리는 개 한마리와 이를 쫓는 헬기의 오프닝 씬은
지금봐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 영화의 인트로는 공포를 다룬 장르영화적 특성을 매우 잘 살리고 있는 구성으로 이뤄져있다. 별다른 설명없이 남극이라는
배경을 화면 가득 보여주고, '왜'인지 모를 상황을 전개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남극의 눈 밭위를 달리는 개 한마리와 이를 쫓는 헬기, 그리고 사고로 인해 헬기가 추락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는 영화의 주요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남극의 연구기지 내부를 보여주는데, 몇 번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이 곳이 외부와는 고립되어 있는 장소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설정은 바로
이 '고립'된 장소에 관한 것인데, 남극이라는 장소가 영화 속에서 고립의 의미로 흔히 사용되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런 설정으로
쓰인 영화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여유있게 들 정도로 <괴물>에서는 배경과 극의 전개를 매우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노르웨이 탐사팀의 연구기지를 찾아간 주인공 일행은 여기서 이상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우주선으로 보이는 거대한 물체와 외계 생물로 보이는 괴물체를 발견하고 조사를 위해 본인의 캠프로 가져오게 되는데,
이와 더불어 사고를 통해 연구소 내로 들이게 되었던 개 한 마리가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이 괴물체가 다른 객체의 모습을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조금 의아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구를 하는 연구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점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 하더라도, 딱 봐도 너무도 괴기스런 물체를
처음 본 이들 치고는 너무 담담한 태도들이었다. 괴생물체를 수술대 비슷한 곳에 올려놓고 해부를 하는 장면에서도
이들은 그저 '이게 도대체 무슨 생명체야?'하는 정도의 가벼운 질문만 있을 뿐, 크게 놀라거나 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이유에 대해 잘 생각해보면 영화의 제목은 <괴물>이지만 사실은 이 괴물의 존재나 특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존 카펜터의 <괴물>이 단순히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나 장르 영화와는 차별되는 중요한 지점이며,
결국 '괴물'이라는 존재를 통해 무언가 빗대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생물체는 어떤 기본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개가 되었던 인간이 되었던,
그 객체의 모습으로 복제가 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자신들의 동료 중 하나가 괴물에게 당해 복제가 된 것을 목격한
이들은 점점 서로를 위심하기에 이른다. 고립된 공간을 벗어날 수도 없고 이 한정된 공간 내에서 함께 지내야만 하는 이들은,
서로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은 이 영화의 원작이 되었던 작품의 제작연도를
따져보았을 때 매카시즘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무성 내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매카시즘을 떠올려 보았을 때, 정확한 근거나 실체를 가지고 대상을 몰아가기 보다는 불안함과 여론에 휩쓸려 마녀사냥 식으로
상대를 외곡하는 것으로 안정을 찾는 걸 연관지을 수 있을 텐데, 이 연구소 내에 인물들의 관계와 분위기가 딱 그러하다.
괴물에게 복제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를 창고에 가두기도 하고, 괴물일지도 모르는 이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는 등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불안감은 극속도로 퍼져나가게 된다.

결국 이들은 반 강제적으로 스스로가 괴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하기에 이른다. 이 시퀀스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는데, 어찌보면 고백성사 갖기도 하고 어찌보면 고백을 강요받는 듯한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건 본인들 조차 내 안에 괴물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 검사를 받게 될 때 괴물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한편, 내가 만약 괴물로 판명이 되면 어찌 행동해야 될지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럿 속에서
스스로의 결백을 입증해야만 하는 설정들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존 카펜터의 <괴물>은 그 어느 스릴러 영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이 과정을 손에 땀을 쥐도록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인 동시에 추리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카펜터 감독은 단순히 공포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추리소설의 방식을 가져와 관객들 역시 누가 괴물일까 하는
궁금증은 물론 주인공인 맥레디(커트 러셀) 역시 괴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도록 만든다. 관객들 조차 극중에서 나는 아니야
라고 말하는 맥레디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 전개 방식은 매우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 생물체가 등장하고 UFO를 발견하지만 주인공들은 이에 사실 무덤덤한 편이다. 이는 이 영화의 포인트가, 보여지는 것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추리소설 같이 '누구'를 맞추는가에만 집중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존 카펜터는 누가 뭐래도
호러 영화의 거장이다. 물론 무서운 모습을 한 괴물의 시각적 요소 때문에 공포를 느끼게도 되지만, 공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긴장감과 분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은 지속적으로 강약을 조절하고 있는 영화이다.
초반 개 한마리가 우리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좁은 복도를 걸어와 머뭇머뭇하며 우리 안으로
들어와 중앙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괴물로 변이하기 까지의 과정은, 대사 한 마디 없지만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다다른다
(더군다나 이 '개'는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말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 관객이 더욱 불안감을 느끼도록 하는데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이는 동시에 막상 무언가가 일어났을 때에도 좀 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의 임팩트를 주는 등
사건 전과 후를 모두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겠다.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방식보다는 마치 무엇인가 계속 일어날 것 만 같은 암시를 준다거나,
그림자를 통해 표현한다거나 밀폐되어 있는 공간 자체를 공포스럽게 보이도록 묘사하면서, 오히려 괴물이 눈 앞에 등장했을 때
보다도 나오기 전까지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위의 이 장면의 구도와 긴장감은 최고이지 않나 싶다. 물론 그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들의 임팩트도 굉장했고)

극적인 긴장감과 더불어 이 영화가 '괴물' 영화로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독특한 모습의 창조물들 때문이다.
존 카펜터는 당시, 이전까지의 괴물 영화들에 있어 단순히 괴물 탈을 쓰고 나오는 방식에 대해 불만이 많았었다고 하는데,
이런 불만을 반영하듯 이 영화에는 당시로서는(지금봐도 인상적인) 매우 충격적이었을 기괴한 모습과 구조의 괴물들과,
장면들을 담고 있다. 복제 한다는 것 자체보다도 복제가 완전히 끝나지 않는 중간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독특한 형태의 창조물들을 만들어냈으며, 전기 충격을 시도하다가 갑자기 배가 뚫려서 손이 잘리고 마는 장면은 지금봐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화려하게 움직이는 촉수들의 표현들과 얼굴 아래에 거미 모양의 다리를 한 형태의 괴물 모습은 지금까지도 호러 팬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회자되고 있기도 할 정도로, 그 움직임이나 형태가 일반적이지 않고 유니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존 카펜터의 <괴물>이 지금까지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로 기억되는데는 아마도 엔딩 장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추리소설 방식을 채용한 경우 확실한 답변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보통이고, 공포 영화의 경우도
공포를 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영화의 결말은 이를 벗어난 열린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엔딩은 연구소를 대형 괴물과 함께 불태워 버린 뒤 남은 두 주인공의 대화로 마무리되는데, 이 둘 가운데 괴물에게
복제를 당한 이가 있는 것인지, 둘다 이미 괴물에게 당한 것인지, 아니면 둘다 괴물에게 복제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추위를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구조가 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채 끝을 맺고 있다. 본래는 결론을 명확히
내는 것으로 계획되었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고 끝을 맺은 것이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1981년 작인 <뉴욕탈출>과 1986년 작 <빅 트러블>등을 통해 존 카펜터의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커트 러셀은 이 영화
<괴물>에서도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연기 자체가 인상적이라기 보다는 표정과 이미지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커트 러셀도 그렇고 이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은 전체적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고
하기 보다는 이 공간과 분위기에 적절히 녹아들었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최근 개봉한 <다우트>의 경우처럼
연기 자체의 에너지로 메시지를 표현하기 보다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전체적 분위기에 완벽하게 결합하는 연기로서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존 카펜터의 <괴물>은 스토리텔링의 디테일한 측면보다는 장르적 특성에 더 집중을 했던 영화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에서는 오픈 형식으로 마무리했던 엔딩과는
다르게 영화의 후속 스토리격 이야기를 다룬 게임이 발매되기도 했고, 영화의 초반 전멸하는 것으로 나오는 노르웨이 탐사단의
이야기를 (아마도)다룬 프리퀄 형식의 이야기도 영화화가 계획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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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블루레이의 메뉴는 유니버설에서 출시된 타이틀답게 유니버설의 전형적인 메뉴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유니버설 타이틀만의 고유 기능인 U-Control 기능이 제공되고 있으며, 'EXTRAS'메뉴를 통해 서플먼트를 수록하고 있다.


Blu-ray Picture


1080p 풀HD의 화질은 1982년이라는 제작연도를 감안하였을때 비교적 만족스러운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물론 개봉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인 만큼 최신 영화들과의 1:1화질 비교는 어렵겠지만, 몇몇 장면의 디테일한 부분은 세월의 흐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어두운 부분의 표현이라던가 전체적인 장면 표현에 있어서 노이즈와 잡티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크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비교적 블랙의 표현력이 깊은 편이라 선명한 화질을 감상할 수 있다.

(아래의 스크린샷 4장은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블루레이롬을 통한 캡쳐를 통해서 볼 때는 그리 확 와닿지는 않는 화질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HDTV를 통해 감상했을
때는 좀 더 만족스러웠던 화질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모습도 컴퓨터 그래픽보다는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블루레이의 고화질에서도 큰 이질감이 없으며, 온통 하얀 눈으로 덮힌 배경에 어두운 옷을 입고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캄캄한 밤에 폭발과 화염이 이는 장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극적인 색과 명암의 대비로 인해 화질 평가
측면에서 좀 더 장점을 드러내고 있다.



Blu-ray Sound





DTS-HD 5.1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는 음질 역시 만족스러운 편이다. 고요함과 폭발을 적절히 교차하며 극을 긴장감 넘치게 이끄는
전개 방식과도 맞물려, 영화음악 역시 강약을 반복하고 있는데, 특히 엔니오 모리꼬네가 맡은 영화음악은 시종일관 극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크레딧을 처음 볼 때 음악을 엔니오 모리꼬네가 맡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었는데, 기존 존 카펜터의 작품들에서는 존 카펜터가 스스로 영화 음악을 맡았던 것들과는 달리 이 작품 <괴물>에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실험적이고 음산한 비트와 선율이 더해져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존 카펜터는 자신이 연출한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그가 영화음악을 맡지 않은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존 카펜터가 직접 영화음악을 담당하고 있지 않기는 하지만,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영화음악가 중 하나가 엔니오 모리꼬네이기도
하기 때문에 <괴물>의 음악은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존 카펜터스러운
영화음악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스코어 적인 측면 외에 괴물이 내는 효과음이나 대형 폭발음 등의 표현력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블루레이로 출시되는 예전
영화들의 경우 일부 사운드가 너무 뭉뚱그려져 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괴물>의 경우는 이런 면에서 합격점을 줄만 하다.
사운드가 담겨있을 때보다 아무런 사운드가 나지 않을 때가 더욱 공포스러운 영화이긴 하지만, 차세대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역시 제작연도와 영화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하겠다.


Blu-ray Special Features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영화와 역시 만족스러운 화질과 사운드에 비춰봤을 때 <괴물> 블루레이 타이틀에 수록된 서플먼트는
확실히 아쉬운 편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서플먼트라 할 수 있는 감독인 존 카펜터와 커트 러셀이 참여한 음성해설에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으며, 역시 메인 부가영상이라고 할 수 있는 'John Carpenter's The Thing: Terror Takes Shape'에도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특히나 이 영화처럼 작품 세계가 확실한 감독이 연출한 작품의 경우 감독의 음성해설은 그 어느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을텐데,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사실상 대부분의 유저에게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밖에 'Production Background Archive' 'Cast Production Photographs' 'Production Art and Storyboards' 'Post Production' 등
몇가지 서플먼트가 담겨있는데, 위의 캡쳐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위의 캡쳐화면은 각각의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 경우입니다), 마치 DVD타이틀 초창기 시절을 보는 듯한 텍스트와 이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풀HD급 제작과정을
만날 수 있는 최신 타이틀에 비해서는 역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다. 물론 이 역시 별도의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보다는 자료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조된 경우라
끝까지 끈기 있게 감상하는 것이 그리 쉬운 편만은 아니었다.




[총평] 존 카펜터의 <괴물 (The Thing)>은 B급 호러 영화의 거장인 존 카펜터의 팬들에게는 두말 할 것 없이 봐야할 작품임은 물론
차세대의 고화질과 사운드로 복원되다시피한 블루레이 타이틀은 필수 소장 목록 1호가 될 것이며, 그의 작품을 아직 다
섭렵하지 못한 이들에게 역시, 그가 왜 한 장르의 장인으로 불리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인상적인 영화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비로소 스크린을 통해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의 절반을
블루레이를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며(절반이라고 한 이유는 이 작품 역시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될 날을 아직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흘려보았던 존 카펜터의 예전 작품들에 다시금 손을 뻗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블루레이로서도 아쉬운 서플먼트
부분만 참아낸다면 화질과 사운드면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타이틀이 될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작 품
화 질
음 질
스페셜 피쳐
소장가치
9
8
8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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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가장 마음에 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이미지.





아래의 문구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네요.

http://www.realfolkblues.co.kr/870





주연배우들은 없지만 어떤 장면보다 역동적인 첫 번쩨 포스터와, 영화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졸리의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을 담은 <체인질링> 두 번째 포스터.

http://www.realfolkblues.co.kr/853





그리고 <다크 나이트>.
첫 번째 포스터의 장면도 물론 좋아하는 장면이지만, 두 번째 역동적인 모습도 마음에 드네요.

http://www.realfolkblues.co.kr/696
http://www.realfolkblues.co.kr/700





최고 수준의 연기를 경험할 수 있었던 영화 <다우트>
그리고 비올라 데이비스의 마법의 10분!
http://www.realfolkblues.co.kr/878




각본상 후보에 오른 <해피 고 럭키>. 그리고 셀리 호킨스의 저 미소.

http://www.realfolkblues.co.kr/804




영화 상에서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캐릭터를 메인으로 한 <헬보이 2 :골든아미>.

http://www.realfolkblues.co.kr/752




구스 반 산트와 숀 펜의 만남 <밀크>




케이트 윈슬렛만으로도 기대되는 영화 <더 리더>




최근 <식스 핏 언더>를 보고 있는터라 더 정이 가는 포스터 <더 비지터>






아. 그저 최고 ㅠㅠ <월-E>
아카데미는 <월-E>를 작품상 후보에 올리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지어다.

http://www.realfolkblues.co.kr/705




오늘 보게 될 예정이라 더욱 두근거리는 미키 루크의 <더 레슬러>





레오와 케이트의 재회. 그것만으로도 벅찰 듯한 <레볼루셔너리 로드>까지.



확실히 메인 포스터들과는 또 다른 감각과 느낌의 홍보 포스터들이 오히려 메인포스터 보다 더욱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네요. 더불어 이번 아카데미도 기대됩니다!











지난 수요일(18일). 영화 팬들 사이에서 희대의 괴작으로 기대되고 있는 <드래곤볼 - 에볼루션>의 디렉터스 컷 프리뷰와
기자회견에 참석하게 되었다. 행사 당일 바로 전날 저녁에 급작스럽게 연락을 받은터라 별다른 준비를 못하고
행사장에 가게 되었는데(더군다나 오전 11시로 계획되었던 행사가 오전에 다시 10시로 변경되면서 더 급작스럽게
이동하게 되었다), <드래곤볼 - 에볼루션>을 조금이나마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무엇보다 주연 배우들을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조금 급작스러웠던 스케쥴이었지만 기꺼이 참석하게 되었다.

행사장인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관에 도착하여 약 15분 정도 분량의 프리뷰를 감독인 제임스 왕의 설명을 곁들여
만나볼 수 있었다. 일단 그 동안 예고편 등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장면들과 거의 겹치지 않는 새로운 클립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라고는 원작과 주연배우들의 이름 뿐이었기 때문에 제임스 왕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서는
미리 살펴보질 못했었는데, 이 프리뷰를 보는 중간중간 이연걸 주연의 <더 원>을 떠올리게 되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더 원>의 감독이 제임스 왕이 아니였던가. 일단 <더 원>은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나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2009년 개봉작인 <드래곤볼 - 에볼루션>을 보면서 <더 원>을 떠올렸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리뷰에는 몇몇 액션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마치 와이어 액션의 초창기를 보는 듯하달까,
경공이라고 하기에는 딱딱하고 와이어 액션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액션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와호장룡>의
경우처럼 미적인 측면이 강조된 경우도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와이어 액션 씬 외에 원작인 만화가 그랬던 것처럼 브루마가 캡츌을 이용해 탈 것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것 역시 확실히 만화를 보며 상상했던 장면에는 많이 못 미치는 평이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고편에도 수록되었을
정도로 이 장면은 제법 인상적인 장면으로 분류되어지고 있는데, <트랜스포머>의 변신 장면을 보며 감동을 하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별로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할 듯 하다.

물론 프리뷰에는 극히 일부 장면만이 공개되었고, 피콜로 같은 경우는 아주 잠깐 등장했을 뿐이었으며, <드래곤볼>의
장점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장면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홍보문구처럼 '전 세계가 기다려온' 이 영화에는
조금 부족한 장면들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원작과의 비교는 안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원작인 만화와 비교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것보다는 다른 측면에 포인트를 두고 감상하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조금 더 흥미롭게 즐기는 방법이 될 듯 하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언제부턴가 다른 이유로 이 작품을 기대해 오지 않았던가!

롯데시네마에서 짧은 프리뷰를 감상한뒤, 이곳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이동해 주연배우들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손오공 역의 저스틴 채트윈. 나는 왜 그가 <우주전쟁>의 그 아들이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일까 --;; 영화 속 모습보다 실제 그의 모습은 더 친근하고 스마트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치치' 역할을 맡은 제이미 정. 부모님이 70년대에 이민을 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인 그녀는,
부모님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사진 촬영에도 친절하게 임해주었다(지정된 포토타임 외에
한 일반인 아저씨가 기자회견 중간중간 계속 개인적으로 제이미 정에게 손으로 카메라를 봐달라고 신호를 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계속 응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피콜로' 역할을 맡은 제임스 마스터스. 이번에 내한한 배우들 가운데 가장 프로페셔널 하다고 느꼈던 배우였다.
사진에서 보시다 시피 악역임을 각인시켜주려는듯 저렇게 오버스러운 표정까지 지어주며 포토타임에 임하기도 했었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열의를 보여주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원작인 만화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느껴졌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일반적인 답변들을 했던 반면에 좀 더 깊은 답변을 들려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TV시리즈 '스몰빌'에서 '브레니악' 역으로 출연했던 그를 실제로 만나게 되 반갑기도 했다 ^^;






'부르마' 역할을 맡은 에미 로섬의 경우 외모도 외모지만 목소리도 상당히 아름다웠던 것 같다. 주윤발을 제외하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그녀는, 포토 타임이나 기자회견 중에도 특유의 환한 미소로 카메라 기자들의 셔터를 연신
바쁘게 했다.




기자회견 장에서 유일하게 소녀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던건 100% GOD 출신의 박준형 때문이었다. 동료배우들이 이때마다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이를 비롯해 배우들과 스텝들 간의 분위기는 매우 좋아보였다). 이미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아주 잠깐이지만) 헐리웃에 진출한 박준형은 이번 영화에서는 '야무치' 역할을 맡아 제법 비중있는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계속 통역사 분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몇번씩이나 칭찬해 주위를 당황케하기도 ㅎ)






그리고 주윤발 형님 ㅠㅠ
저 인자하게 미소짓는 표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 날의 기자회견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저렇게 인자하게 미소짓는 표정을 보니 <가을날의 동화>라던가 <영웅본색 2>에서 보여주었던 장난기스럽고 푸근한
모습들이 절로 떠올랐다. 확실히 한국에서의 인기를 반영하듯 테이블 배치라던가 기자들의 주목도에 있어 주윤발 형님에게
가장 큰 비중이 주어지지 않았나 싶다. '무천도사'같이 조금은 의외인 캐릭터를 맡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개인적으로도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아내가 하라고 적극 추천하는 바람에 하게 되었다'라는 대답이 재미있었다.








정해진 포토타임 외에 질의응답 시간에는 촬영 자제를 요청하였는데, 이를 전혀 무시하고 사진 촬영이 계속되어(플래쉬가
연신 터졌다) 몇몇 배우들은 불편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기자회견이 마무리 된 듯 하다.















참고로 에미 로섬 사진이 유독 많은 이유는 결코 그녀 사진만을 찍으려고 했던 것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앞사람에 방해를 받지 않고 그나마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것이 그녀였기 때문에 유독 그녀의 사진을 많이 촬영할 수
있었다. 제임스 마스터스나 저스틴 채트윈의 경우 거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앉아있어서 사진도 거의 찍을 수가 없었고,
주윤발 형님도 겨우겨우 몇 컷이나마 건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전부 감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적절히 못하겠으나,
프리뷰를 보아서는 역시나 다른 방향으로 기대했던 쪽으로 흘러갈 공산이 높아졌으며(근데 이럴려면 좀 더 막가야 하는데,
프리뷰만으로는 그런 점을 느낄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원작인 '드래곤볼'은 역시 그냥 잊고 보는 편이 더 나을듯 싶었다.

과연 어떤 장면들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정식개봉을 하게 되면
꼭 극장을 찾아야 겠다. <드래곤볼 - 에볼루션>은 전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3월 12일 개봉할 예정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se.co.kr)










다우트 (Doubt, 2008)
신앙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이 작품 <다우트>는 정말로 오로지 이 배우들의 이름들만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던 영화였다. 최근 <맘마 미아!>를 통해 수준급의 노래실력과 색다른 연기변신을 통해 역시 헐리웃 최고의 명배우임을 새삼 확인시켰던 메릴 스트립과 <카포티>로 비로소 더 큰 인정을 받게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카포티>이전에도 그의 연기는 항상 최고였다), 그리고 <준벅>과 <마법에 걸린 사랑>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에이미 아담스까지. 이 영화 <다우트>는 원작인 연극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들만 믿고 선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고, 결과적으로도 그랬다. 그리고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바로 '의심'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을 통해 매우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성니콜라스'라는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교구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며,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수녀가 교장을 맡고 있으며,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이 곳의 주임신부이며,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 역시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교훈으로 삼는 무서운 교장이자 의심이 많은 수녀이고 이에 반해 플린 신부는 술을 즐기고 아이들과도 격없이 지내는 것들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진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제임스 수녀는 말그대로 주께 모든것을 바치기로 종신서원을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듯한 순수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날 플린 신부는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론을 하게 되는데, 모든 일에 날이 서 있는 듯한 알로이시스 수녀는 왜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플린 신부가 강론을 했을지,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이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임스 수녀조차 플린 신부가 학교에 새로 전학온 유일한 흑인학생인 도널드와의 관계를 서서히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이 세 인물의 갈등구조에 있다.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또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는 인물들 간의 세력다툼과 갈등에 대한 묘사가 몹시도 매력적이다.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진보적 성향의 플린 신부는 어찌보면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정확한 상하관계는 아니지만 신부와 수녀의 관계이면서도 한편으론 학교의 교장으로서 더 높은 지위임을 확인시키려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이에 은근히 신부로서 수녀에게 지지 않으려는 플린 신부의 미묘한 밀고 당기기는 교장실을 배경으로한 장면에서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설탕 같이 단 것은 죄악시 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설탕을 무려 3개나 타서 먹는 플린 신부, 연필을 고수하는 수녀와 볼펜을 선호하는 신부, 교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교장의 자리인(그러니까 알로이시스 수녀의 자리인) 곳에 앉는 신부와 이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생각하다가 플린 신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냉큼 자리에 앉는 수녀의 모습까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소소한 표현들만 봐도 이 두 인물이 얼마나 다른 캐릭터인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자신 만의 세계가 확고한 이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순수한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도 매우 흥미롭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제임스 수녀답게 그는 이 두 인물 사이에서 몹시도 갈팡질팡 한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플린 신부를 함께 의심했다가 플린 신부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서는 다시 알로이시스 수녀를 의심하게 된다.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는 본인 스스로의 능동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간의 힘겨루기에 있어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작용되고 있기도 하다. 둘의 의견 중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자적 입장인 제임스  수녀를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려 드는 것이다. 결국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진심에 서게 되지만, 그렇다고 플린 신부가 일종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 <다우트>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제목인 '의심'에만 집중할 뿐 '진실' 자체에는 그리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스릴러였다면 바로 그 진실에 집중해서 플린 신부가 정말 도널드를 비롯해 예전 교구에서도 그렇고 무슨 문제를 일으켰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으로 인한 오해였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마무리했겠지만, <다우트>는 진실 자체보다는 제목처럼 '의심'이라는 것에 더 큰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보다는 의심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도널드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과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플린 신부를 의심하는 수녀의 말에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반적인 대답으로 대응하던 밀러 부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플린 신부의 잘못을 얘기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결국 본심을 이야기하고 만다. 그 본심인 즉슨 플린 신부가 실제로 아이를 유혹했던 그렇지 않았던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널드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이미 여러 학교들을 전학다녔었고, 성 니콜라스 학교를 졸업하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조금만 더 서로 눈감고 지내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 그리고 플린 신부가 아이를 유혹했다 하더라도 도널드가 신부에게 지금처럼 의지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고 얘기하는 이 장면은, 실체보다는 그저 자신이 믿는 그대로 이루어만 지면 상관없다는 나약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시퀀스였다.

영화의 마지막 플린 신부는 더 좋은 곳으로 일종의 승진이 되어 부임하게 되었고, 잠시 아픈 오빠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온 제임스 수녀에게 알로이시스 수녀는 울면서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자신에게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만 알았던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과 믿음에는 결국 아무런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막연한 확신과 선입견을 통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도 완벽히 옳다고 확신할 만큼 강한 자기 최면을 걸어온 것이다. 영화 내내 그 어떤 공포영화의 캐릭터 못지 않는 강한 포스를 내 뿜던 알로이시스 수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니, 결국 가장 나약한 캐릭터는 알로이시스 수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자꾸 의심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그녀의 눈물의 고백은, 특별한 케이스라기보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컴플렉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과 여러가지로 맞지 않는 이의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등은 어찌보면 가장 태생적인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어쩔 수 없는 의심스러움을 결국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구실들을 만들어가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왔던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수녀가 된 것은 어쩌면 이런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 행동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실체없는 의심에 가득차 있는 그녀에게 절대자인 '종교적 믿음'은 분명히 편안한 도피처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만큼 <다우트>의 강점은 연기력에 근거한 전개 방식에 있다. 그런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작품에 비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언성을 높여가며 열연을 펼치는 장면은, 마치 액션영화의 '듀얼'신을 보는 듯한  치열함과 임팩트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으며, 아무런 영화적 장치없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극중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맡은 메릴 스트립을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이지만 마치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처음부터 맡기위해 정해진 배우처럼 또 한번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서 객석 여기저기서 너무도 동요된 나머지 혀를 차거나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로 (마치 아주머니들이 일일연속극 속 나쁜 역할로 출연하는 배우를 실제 나쁜 사람인걸로 오해하는 것처럼),  어찌보면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수 있었던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은 깊은 연기 내공을 그야말로 '시전'하고 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서두에 얘기했듯이 대중들에게 늦게 인정받았을 뿐이지, 이미 최고의 연기를 여러 번 보여주었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능글맞게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 역시 그 답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도 선과 악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마스크와 연기력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배우라고 생각되는데, 의심을 받고 있어 관객조차 이것이 의심인지 진실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플린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워낙에 쟁쟁한 두 배우 덕에 조금 소외된 듯한 경향도 있지만, <다우트>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가 영화 속 제임스 수녀를 통해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녀의 순수한 표정 연기와  두 거대한 주장들 속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캐릭터를 떨리는 눈동자와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포스터 이미지나 영화의 내용적인 면들에서도 은유적을 표현되듯이 <다우트>는 삼각관계 혹은 삼위일체의 구성을 담고 있는 영화이고, 그 축의 당당한 하나는 바로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마법의 10분'이라고도 표현했듯이 극중 도널드의 엄마 역할 출연한 비올라 데이비스가 메릴 스트립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비올라의 연기는 이 영화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다우트>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한 연기를 통한 생각해 볼 거리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중견 배우들의 최고 수준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고도 넘치며,  무엇보다 관계와 갈등, 과정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한줄평 : 최고 연기 내공의 고수들이 펼치는 의심과 확신의 나홀로 줄다리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Miramax Films에 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순간의 성장영화

F.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데이빗 핀처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우리말 제목에
괸해서는 조금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원제 그대로 '흥미로운 사건' 혹은 '기이한 사건' 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포레스트 검프'처럼 '벤자민 버튼'이라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던터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었으나, 우리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 정도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채 관람하였는데(아!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이나 성향 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영화도 어느 정도 이런
성향에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의 주된 흐름은 로맨스에 있었다. 원작을 이미 읽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원작과는 사뭇 다른 각색으로 실망도 했다고 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스타일리쉬하고 독특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조디악>이후 확실히 <조디악> 이전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연출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미 스포아닌 기본 줄거리로서 알려진 바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 노인의 몸(정확히 말해서는
몸상태라 해야 맞겠다)으로 태어나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몸이 젊어지는 독특한 인생을 타고난 캐릭터이다. 태어나자 마자
노인과 같은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하고 나온 아이를 아버지인 토마스 버튼은 어느 한 집에 버리게 되는데, 이 집은 일종의
양로원 같은 공간으로 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원작에서 벤자민의 부모는 벤자민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은 일반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소 설정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듯 하다.
이 곳을 관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 벤자민은 어렸을 때 부터 노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다. 거꾸로 시간이
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기 어렵고 그들의 죽음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역시 의미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노인들이 주로 살아가는 이 공간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보여주었던 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다
겪어야만 하는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메시지들을 은연 중에 전달하고 있다.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이 공간과 벤자민의 나레이션들을 통해 이 '인생'에 관한 깊은 메시지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이야기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소외된 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선입견이
없이 수용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가 판타지스러운 것은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적용받는 주인공 때문 만은 아닐 것
이다. 앞서 언급한 이 공간, 이 공간은 어찌보면 매우 판타지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겠다. 일단 이 시기라면 완벽하게
인종차별이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없을텐데(하긴 오바마 정부인 최근조차 완벽하게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상
흑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간에 굉장히 격식이 차려진 삶을 살아온 듯한 백인 노인들이 이 공간에 아무런 불평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장신구들로 미뤄보아 다들 여유로운 마지막을 준비하려 이곳을 선택한
이들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에게서는 전혀 인종차별의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인종차별에 관한 건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다른 시선은 바로 선입견 없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에 모습에 있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이 태어나자 마자 '괴물'같이 흉측한 모습이라며 아이를
버렸지만, 이를 발견한 '퀴니'는 거의 단 한번도 주저함 없이 벤자민을 겉모습이 아닌 '아이' 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이 공간 속에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같으면 퀴니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벤자민을 공개했을 때 기겁들을 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은 '내 죽은 남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퀴니가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벤자민을 처음 친구로 받아주었던 피그미족 남자도 그랬고, 키작고 노인으로만 보였던 벤자민을
자신의 선원으로 받아준 선장 마이크 역시 그러했고, 벤자민의 연인이었던 데이지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모두는
우리가 쉽게 보는 벤자민의 기이한 겉모습에 전혀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이렇지 않기에
이런 구성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것이 씁쓸하기까지 한데, 이를 반영하는 캐릭터들을 노인이나, 흑인, 선원들로 묘사한 것은,
그 반대에 서있다 할 수 있는 이른바 '지식층'들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괴물 같다며 벤자민을 버렸다가
나중에 점점 젊어지고 번듯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전재산을 물려주며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아버지임을 밝히게 되는
토마스 버튼이 기업가(사업가)라는 점도 앞선 것들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케이트 블란쳇 만큼이나 좋아하는 줄리아 오몬드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화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데이지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이 예전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계속 나레이션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더더욱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좀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비춰
봤을 때도 그렇고, 부모가 (직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판타지스럽다는 측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기이하게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매우 보편적
이다. 노인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은 노인들과의 생활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우연히 함께하게 된 인양선 항해를
통해 마치 사춘기 소년이 그러하듯 성에 대한 첫경험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으며, 데이지를 통해 이성에 대한
감정과 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나가게 된다. 시작은 남들과 정반대에서 시작했지만 시작점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반대방향에서 걸어간다고 보면 될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 기이한 설정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성장영화와
맞아 떨어진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빗 핀처라는 점이었는데, 이 기이한 설정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그의 역량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바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맨스와
드라마에 가까운 이 영화를, 스릴러와 강한 스타일이 장기인 핀처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데이빗 핀처는 <조디악>이후 이렇게 느긋하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스릴러 적인 긴장감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조디악>은 물론 범죄 스릴러 라는 장르 안에 있었지만 이전 그의
작품들처럼, 장르적인 특성과 분위기에만 기대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런 장점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다시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특히 순간순간 장면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니 '과연 이 장면들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가 잠시 헛나갔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 영화가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는데 있어서 얼마나 순간과 지금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은 데이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시퀀스를 통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데이지가 차에 치이게 되는 과정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듯 여러가지가 제대로 정상적
으로 작용하지 못했음에도 즉 단 한가지라도 어긋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찰나의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과 시간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벤자민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일종의 '접점'을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서로 반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둘의 나이가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도달했을 때, 이들은 그야말로 서로를 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순간에 집중한다. 얼핏보면 이 시기가 곧 '청춘'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만개했다
지는 꽃처럼, '한 때'를 찬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찬양'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벤자민의 어린 시절(?)의 묘사를 위해 엄청난 CG가 사용되고 있다. 이부분은 모션캡쳐를 통해
브레드 피트의 얼굴 부분을 그래픽으로 완성하고, 얼굴 외 부분은 대역 연기자가 연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짜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을 촬영했던 방식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도 작고 노인의 몸을 갖고 있는
브레드 피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재미있는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등장한 순서대로 배우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다음에야(틸다 스윈튼이 등장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캐릭터 묘사에 사용된 CG와 이에 따른 비용도 많았겠지만, 이 밖에도 배경 묘사나 로케이션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난 CG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극 중 벤자민 버튼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데 물론 실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된 분량도
조금 있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완벽한 CG로 채워졌으며(예전 파리 시내를 아우르는 장면은 CG이지만 상당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가 인양선을 타고 간 곳 거리의 디테일도 로케이션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묘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이 두 배우의 모습 묘사에도 많은 CG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브래드 피트의
경우 할아버지 분장부터 <델마와 루이스>시절 혹은 더 이전을 연상케 하는 '미소년'의 모습까지 연기하고 있어,
이른바 '뽀샵'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중 데이지가 발레를 하는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보면서 데이빗 핀처도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고)

극중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젊어진 다는 설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외모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겠는데,
점점 젊어질 때마다 더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외모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사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자체로 표현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극중 틸다 스윈튼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연기한
것이 아니라 모션 픽쳐를 사용한 대역 연기자가 벤자민을 연기하였고, 이후 에도 외모 적인 변화 만큼 인상적인 연기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물론 그의 외모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긴 했다;;).

그에 반해 데이지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훨씬 깊은 편이다. 대부분 CG에 큰 도움을 받았던 벤자민 버튼 역할과는
달리, 죽음을 앞둔 노인 역할부터 20대의 풋풋한 발레리나 까지, 또 한번 그녀의 놀라운 연기 스펙트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워낙에 빛을 발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조금 가려져 있긴 하지만, 20대의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의 놀라운 외모는
(물론 CG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다시 한번 여신의 포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라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지만 연기면에서는 그녀의 연기가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데이지의 딸로 등장하는 줄리아 오몬드의 경우 브래드 피트와 <가을의 전설>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터라 이 같은 관계설정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찌보면 큰 기대에 비해 표면적으로 별로 들려주는 얘기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젊어진다는 설정을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하지 못한 듯한 느낌도 살짝 들지만, 개인적으론 이 설정에
국한되지 않고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단지 설정만 빌려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2시간 4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지 두 배우의 외모적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콘스탄틴>등에서 잘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멋지게 변형되어 등장한다.
이 로고를 통해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살짝 예상해볼 수 있었다.

2. 초반에 허리케인이 온다며 잠시 간호도우미가 자리를 뜨는데, 이 도우미의 이름이 도로시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참고로 영화 마지막 장면의 날짜는 뉴올리언즈가 카트리나에 피해를 받게 되었던 그 날이라고 한다.

3. 본문에도 썼지만 영화의 초중반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모션 캡쳐하여 대역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등장순서대로 나오는 엔딩 크래딧에 브래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뒤에야 이름을 올리고 있다.

4.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알렌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 <바벨>에서 부부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5. 의외로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은데(비슷한 시기에 마녀 혹은 여왕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 하다), 이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등장한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습니다.







세븐 파운즈 (Seven Pounds, 2008)
살아남은 자의 또 다른 선택


윌 스미스를 떡하니 내세운 포스터가 나름 인상적이었던 영화 <세븐 파운즈>. 언제부턴가 윌 스미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어느 정도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배우가 된 듯 하다. 특히 이런 영향력을 갖고 있던 배우들이 개인적으로는 애초부터
이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윌 스미스는 작품이 하나 하나 더 해질 수록 차곡차곡 그 영향력을 더해나간 결과
이제는 감독 이름도 확인하지 않은채 그의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선택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세븐 파운즈>였으며, 보는 내내 한 편으론 그의 전작이었던 <행복을 찾아서>와 비교하곤 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작품의 감독이었던 가브리엘 무치노와 윌 스미스 콤비의 또 다른 작품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선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하느님은 7일 만에 세상을 만들었고, 나는 7초 만에 모든 것을 잃었다' 라는 주인공 '벤'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러곤 자신이 자살한다고 911에 신고전화를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고는 별다른 설명없이 이 남자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간다. 사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윌 스미스가 연기한 '벤'의 행동들에 근거를 초반에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시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 눈이 안보이는 전화 상담원에게 전화하여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붓는지, 친구로 보이는 남자와는 왜 다투는 것인지, 동생의 전화는 왜 계속 피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걸 미스테리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숨겨온 것이라고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초반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전화 장면이 나왔고, 무언가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더 직접적으로 장기기증을 필요로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것만 봐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첫 장면과의 연계성을
통해 하나 둘 등장하는 이 인물들에게 벤이 장기기증을 하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된다. 만약 감독인 가브리엘 무치노가
벤이라는 인물의 행동의도에 대해 숨기는 것으로 이 영화를 미스테리 하게 풀어나가 나중에 어느 정도 비밀이 밝혀졌을 때
관객들로 하여금 '그랬었었구나...'하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라면 이는 큰 '오해'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븐 파운즈>는 초반에 이야기의 전개를 다 알려주고 시작하는 셈이 된다(만약 가브리엘 무치노가 위와 같은
이유를 감동 포인트로 잡았다면 이건 좀 문제일 듯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좀 더 작은 디테일이나 감정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며 영화를 보게 되었다. 쉽게 말해 좀 더 '벤'이 되어보려 한 것이다.
벤이 이렇듯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앗아가며 7명이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기로 한 것은, 영화 중간중간 스쳐가는
회상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사고로 부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죽게한 사고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이 회상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전까지는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나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정도로, 이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벤이(더군다나 자신의 과오로 일어난 사고였기에) 스스로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런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사실 이 영화에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미스트>의 경우가 그랬듯이
주인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죄의식의 해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7명의 생명을 살리는 행동 자체의 숭고함으로
볼 것인지에서 나뉠 듯 하다). 영화는 이처럼 관객에게 주인공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준 뒤
이 남자의 심정을 공감케 하는데 더 집중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진짜 윌 스미스가 '벤'이라서 국세청 직원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조회하고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특권'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일종의 '권력'을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에 쓰면 괜찮은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영화가 될 줄 알았었는데, 알다시피 윌 스미스가 '벤'이 아니라 '팀'
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런 논쟁은 필요가 없어진다(참고로 엔딩 크레딧에 윌 스미스의 배역 이름은 '벤'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역시 남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남자의
심정에 빠져드는 것이 남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어서인지 이 착하게만 보이는 스토리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첫 장면에 '신(神)'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이 영화는 굉장히 영적인 부분의 접근이 가능한 영화라 하겠다. 마치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여러 생명을 살리려는 '벤'의 여정은 이를 자연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동기 부분에서 '벤'은 죄책감에 근거했다는 것 때문에 한 편으론 아쉬움도 남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감독과 배우의 전작 <행복을 찾아서>에서처럼 인간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기도 했다.

영화 속 '벤'은 집이며 장기며 모두 내주는 것에서 '히어로'나 '신'적인 모습이 비춰지기도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벤'이
겪는 괴로움과 고통을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신이 지켜내려는 7명의 이름을 악을 쓰며 외우는 모습에서,
결정을 내린 뒤에도 끊임없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에밀리와의
관계가 가장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결국 사랑에 감정을 느끼게 되 담당 의사를 다시 찾아가 심장을 의식 받을 수 있는
확률을 되묻는 장면은, 확실히 신적이라기 보다는 몹시도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따지고보면 에밀리와의 로맨스는
로맨스라기 보다는 '벤'의 생존본능에 의한 구실로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스스로 에밀리와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혹은 납득시키고 싶어하는 그의 불안하고 인간적인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말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평가가 남겠지만, 영화 속 벤처럼 자신에게는 특히나
엄격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만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디테일한 드라마로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

사실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 예고 했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눈물이 났다.
보통 이식을 받거나 큰 상처가 있는 경우 숨기려는 것과는 달리, 가슴이 파인 원피스로 오히려 자신의 수술 상처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에밀리의 모습이나, 벤의 안구를 이식받은 에리자(우디 헤럴슨)가 에밀리(로자리오 도슨)를
알아보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리뷰의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보는 내내 윌 스미스의 연기와 그 비중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특히 이제는 감정을 움직이는
휴먼 드라마에 있어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한 영향력을 가진 배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믿음직함이 느껴졌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속으로만 해야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연기를 펼쳤다.

로자리오 도슨은 영화 속에서 몸이 아픈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아픈 로자리오 도슨의 모습을 보니 며칠 전 보았던 <체인질링>의
안젤리나 졸리가 자꾸 떠올랐다. 둘다 강한 여성의 대표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아파서 골골해 하는 모습을 보니
측은함과 동시에 배우 자체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우디 헤럴슨은 뭔가 이렇게 착하게만 나오니 조금 적응이
안되긴 했다 ^^;


1. 메가박스 신촌에서 디지털 상영으로 감상하였는데, 정말 화질이 좋더군요! 마치 블루레이를 집에서 보는 듯한 디테일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좋은 화질이었습니다. 화질이 감상에 10%이상 도움이 확실히 된 경우입니다.

2. 삽입곡들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닉 드레이크의 곡이 좋았고, 뮤즈의 곡도 좋았구요.

3. 이 영화를 보니 오랜만에 <행복을 찾아서>도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콜럼비아 픽쳐스에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a_shitaka@nate.com)


오마주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보여준 헐리웃 애니메이션

헐리웃이 동양 문화, 특히 쿵푸에 관심을 가져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1,2>를 제외한다면 이러한 높은 관심을 그에 걸 맞는 결과물로 완성시킨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중화 권과 같은 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국내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한 것이 역력히 보이는 이른바 ‘양키 센스’의 헐리웃 작품들에서는, 기대한 만큼 장점보단 단점이 더 부각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류의 영화들로는 성룡과 이연걸이라는 꿈의 조합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실망이 컸던 <포비든 킹덤>을 들 수 있겠고, 아직 개봉 전이지만 예고편이나 스틸 컷만으로도 전설의 괴작 반열에 근접하고 있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을 (미리)예로 들 수 있겠다. 앞선 두 영화들은 어찌 보면 매우 혜택을 받은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전자는 중화 권 최고의 스타들이 직접 출연하고 있으며, 후자는 일본 최고의 망가인 <드래곤볼>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로 미뤄봤을 때 <쿵푸팬더>는 출발점 자체가 두 작품보다 훨씬 뒤쳐질 수 밖에는 없었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기는커녕 극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고, 원작이 있기는커녕 순수 창작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전체관람가의 가족 영화다) 그런데 이미 극장에서 확인했다시피 <쿵푸팬더>는 <킬 빌>에 버금가는 쿵푸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단순히 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놀랍다. 감독이 중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쿵푸와 쿵푸 영화에 대한 디테일한 점들을 놓치지 않고 그려내고 있으며, 전통 쿵푸 영화들의 클리셰들을 잘 버무려 전 세계, 전 연령의 관객들이 즐거워 할 만한 멋진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쿵푸팬더>의 기본 줄거리는 어린 시절 <취권>을 비롯해 골든 하베스트사의 쿵푸 영화들을 보고 자란 이들이라면 너무도 익숙할 이야기와 인물 구조를 갖고 있다. <쿵푸팬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면 이 같이 뻔한 이야기를 단순히 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새 옷을 입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익숙한 관객들 역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신선한 재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혈관에 육수가 흐르는 루저 캐릭터인 ‘포’가 전설의 용문서를 전수 받는 ‘용의 전사’가 되는 과정은 클리셰가 집대성 된 스토리라고 볼 수 있지만, 이 과정 속에는 수 많은 오마주들과 설득력 가득한 장면들이 포진되어 있으며, 쿵푸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는 물론 <매트릭스>나 <스타워즈> 같은 헐리웃 영화들의 주요 모티브를 자신 만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낸 점도 <쿵푸팬더>가 단순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자체에 대한 칭찬을 하느라 다 거론하지도 못했지만, CG 측면에서도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터들과 영화 기술자들이 합작해 낸 놀라운 결과물이었고, 이러한 장점은 <쿵푸팬더> 블루레이를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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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쿵푸팬더>가 영화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큰 혜택을 애초부터 부여 받은 작품은 아니었다 라고 얘기했었는데, 반대로 블루레이라는 차세대 영상 포맷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다른 실사 영화들보다 태생적으로 장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아무리 화질 좋은 실사 영화들도 처음부터 100% 디지털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화질에는 못미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면에서 어쩌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화질 평가는 별개로 해야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으나, <쿵푸팬더>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러한 점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큰 이견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화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기대가 큰 영화들은 기대보다 더 좋아야만이 ‘좋았다’라는 평가를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국내 출시 이전에 이미 해외 리뷰 사이트들에서 별 5개 만점을 연달아 주기도 했던 <쿵푸팬더> BD 의 화질 평가는 필자로 하여금, ‘그래 얼마나 좋길래, 한번 두고보자’하는 식의 눈길을 은연 중에 갖게 했는데, 그래도 최고 평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정도로 레퍼런스급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아래 4장의 그림은 클릭하면 1920*1080 원본 사이즈의 그림으로 확대됩니다)






2.35:1의 화면비와 1080p의 화질로 수록된 영상은 레퍼런스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나중에 서플먼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캐릭터를 구현해 내는 것과 장면 연출에 관한 기술적 측면에서 상당히 진일보된 CG 기술과 애니메이터들의 피나는 노력이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때 애니메이션에서 그 기술력의 수준을 논할 때 ‘물’의 표현력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후에는 <몬스터 주식회사>를 통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처럼 ‘털’의 표현력이 이를 판단하는 주된 기준이 되었고, 나중에는 물에 젖은 털의 표현마저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아래 2장의 그림은 클릭하면 1920*1080 원본 사이즈의 그림으로 확대됩니다)



<쿵푸팬 더>의 그래픽은 그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온몸이 털로 뒤덮힌 캐릭터는 기본이고, 이 캐릭터가 옷을 입고 있다는 설정을 예로 들 수 있을 듯 하다. 일반적으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순식간에 장면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피부에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애니메이터들의 작업 현장을 들여다보니 ‘포’처럼 털로 뒤덮힌 신체에 옷을 입고 있는 캐릭터를 구현해 내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 작업인지를 알 수 있었는데, 잘 알다시피 <쿵푸팬더>의 캐릭터들은 여기에 ‘쿵푸’까지 하고 있으니 실로 최고 난이도의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이런 디테일은 극장에서는 디지털이나 아이맥스 상영이라 해도 100% 확인이나 체험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블루레이의 훌륭한 화질을 통해 극장에서는 놓쳤던 미세한 디테일을 맛볼 수 있었다.



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거나 혹은 봤더라 하더라도 일부 장면에서 붉은색 혹은 녹색이 너무 진하게 - 마치 화질 문제로 인해 보정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 표현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일단 블루레이에서도 이런 현상은 여전하다. 사실 극장에서 볼 때는 화질보다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으나 리뷰를 위해 블루레이를 감상하면서는 본인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며 갸우뚱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는 어디까지는 의도된 색감이며, 보이지 않은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는 연출이라 할 수 있겠다.

감독인 마크 오스본과 존 스티븐슨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쿵푸팬더>에는 거의 단 한번도 현실과 같은 ‘파란’하늘이 등장하지 않는데, 마치 화면 전체에 번지듯 사용된 색감은 각각 그 장면을 주도 하고 있는 정서나 캐릭터에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서, 블루레이의 선명한 화질을 통해 더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CG로 작업된 애니메이션의 경우 실사 영화에 비해 입체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쿵푸팬더>의 경우는 영상 자체가 질감과 공간감이 잘 살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깊은 블랙을 표현해낸 블루레이의 우수한 화질 덕분이라고도 할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편 거의 마지막 부분에 포가 힘들어하는 시푸를 두 손에 안다시피 하는 장면에서, 포가 시푸를 들어 올릴 때 그 입체감과 공간감에 화면에서 한 발작 물러나 움찔하기도 했었는데, 몇몇 장면은 마치 3D 입체 영상을 보는 듯한 입체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쿵푸팬더>는 실사 영화 못지 않게 - 어쩌면 더 치밀하게 - 조명 연출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캐릭터에 어떻게 빛이 드리워 지는지, 수 많은 청중들에게 어떻게 그림자가 지는지를 깊이 고민한 영상은, 깊은 블랙의 화질로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라고 한 이유는 극장에서는 사실상 다 확인할 수 없었던 디테일 이었기 때문인데, 블루레이의 고화질 영상은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물론, 수 많은 캐릭터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복잡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초반 제이든 궁전 장면에서 최고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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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는 모든 애니메이션 작품이 그러하듯이 실존하지 않는 사운드가 주를 이룬 영화이다. 특히 동물들이 주인공에다가 쿵푸라는 소재를 다루게 되면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효과음들과 소리들이 담기게 되었는데, 배경음악 보다는 효과음이 더욱 중시되는 사운드라는 점에서 블루레이로서의 장점은 더욱 커진다.

<쿵푸팬더> 블루레이는 영어 돌비트루HD를 비롯하여 한국어 5.1 돌비디지털 채널을 수록하고 있다. 돌비트루HD로 제공되는 영어 더빙트랙을 우선 살펴보면 차세대 음향답게 기존 돌비트랙과는 차별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타이렁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시퀀스에서는 멀티 채널의 활용도와 음장감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타이렁에게 화살이 쏟아지는 장면과 타이렁이 이를 이용해 벽을 기어 오르는 장면에서는, 큰 규모의 소리들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작은 타이렁의 발자국 소리 또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또한 ‘무적의 5인방’이 처음 소개되는 장면에서 역시 공간감 활용도를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시퀀스다. 각 동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캐릭터답게 각 캐릭터가 내는 사운드도 각각인데, 쉽게 말해 그냥 ‘휙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굉장히 디테일한 사운드로 이루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포와 타이렁의 듀얼 장면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부숴지고 떨어지고 하는 과정 중에 생기는 먼지를 동반한 사운드는 우퍼 스피커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되며, 각종 타격음들도 배경음악에 묻히지 않고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스 짐머와 존 파웰이 참여한 사운드트랙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는데, 작품에 걸맞게 동양적이면서도 애니메이션 특유의 재미를 표현해낸 음악 역시, 효과음들과는 별개로 후방을 든든히 지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타이틀로서(특히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가장 먼저 꼽게 되는 조건은 화질도 음질도 아닌 우리말 더빙의 수록 여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쿵푸팬더>는 우리말 더빙 트랙이 돌비디지털 5.1채널로 수록되어 있다. 사실 포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잭 블랙을 비롯해 오리지널 더빙 연기자들이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앞선 이유 때문에 더빙 수록이 간절한 국내 유저들을 위해 수록된 우리말 더빙의 퀄리티도 괜찮은 편이라 하겠다.


음질 자체를 봤을 때 돌비트루HD의 영어 더빙 보다는 그 임팩트가 부족할 수 밖에는 없지만, 김기현 씨를 비롯한 국내 성우진들이 연기한 우리말 더빙도 그 만의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어 자막보다 더 알기 쉽고 친숙하게 풀어놓은 우리말 더빙의 대사들은, 더빙의 타겟이 되는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기획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우리말 더빙으로 감상을 하면 엔딩 크래딧과 함께 국내 개봉 시처럼 비(Rain)가 부른 아시아버전 ‘Kung Fu Fighting’이 흐르고, 영어 더빙 버전으로 감상하면 엔딩에 CEE-Lo가 부른 곡이 나온다는 점이다. 국내 개봉 시에는 오리지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CEE-Lo의 곡을 들을 수가 없었음으로 오히려 오리지널이 반가운 경우라 하겠다.

Blu-ray Special Features



‘쿵푸팬더 속으로’라고 이름지어진 메인 서플먼트 가운데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역시 ‘제작자의 음성해설’을 들 수 있을텐데, 감독인 마크 오스본과 존 스티븐슨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통해, 영화를 보면서 미처 알 수 없었던 뒷 이야기들이나 의도적으로 삽입한 장면이나 설정 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영화들을 참고했는지에 대한 정보등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앞서 초반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제대로 된 오마주를 담아낸 영화임은 알고 있었지만, <소림 36방>을 비롯해 마니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고전 홍콩 쿵푸 영화들까지 참고한 감독의 정성과 노력을 엿볼 수도 있다. 그리고 각 장면을 연출한 애니메이터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들을 수 있었고, 영화의 내용에 관한 깊은 이야기와 정서에 관한 생각도 들려주고 있다. 새삼 느낀 거지만, 감독이 들려주는 음성해설을 듣고 있노라니 이들이 정말 ‘제대로’ 동양문화와 쿵푸를 꿰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성해설 트랙외에 ‘트리비아 트랙’을 자막 선택화면에서 지정할 수 있는데, 영화에 뒷 얘기라고 할 수 있는 트리비아 트랙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좋으나 - 예를 들어 무적의 5인방과 타이렁이 다리에서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을 참고했다는 식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자막으로 선택된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별도의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짧고 간단한 정보만을 지원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은 영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 자막이 더 필요한 서플먼트이기도 한데 더군다나 트리비아 트랙을 선택하면 영어 더빙 감상시 본편에 대한 자막 또한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서플먼트 가운데는 ‘애니메이터 코너’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 역시 PIP형식을 통해 영상을 제공하고 있지만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캐스팅 만나보기’에서는 ‘포’를 연기한 잭 블랙을 비롯해, ‘시푸’역의 더스틴 호프만, ‘몽키’역의 성룡, ‘바이퍼’ 역의 루시 리우, ‘타이그리스’역의 안젤리나 졸리, ‘타이렁’역의 이안 맥쉐인 그리고 ‘맨티스’역의 세스 로건과 ‘크레인’역의 데이비드 크로스, ‘우그웨이’역의 렌달 덕 김의 인터뷰와 연기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보통 애니메이션 더빙의 경우 완성된 영상에 더빙만 입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쿵푸팬더>의 경우는 영상을 다 완성하기 전에 진행되어 더빙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동작들을 따로 촬영해 목소리 연기를 담당하는 배우들의 습관이나 표정들이 실제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 적용이 되도록 제작된 경우다.

그래서 ‘포’에게서는 단순히 목소리 뿐 만 아니라 표정이나 동작에서 잭 블랙 만의 익살스러움을 느낄 수 있으며, ‘시푸’에게서는 더스틴 호프만의 노련함이, ‘맨티스’에게서는 세스 로건의 조크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맨티스’ 같은 경우 극장에서 관람할 때는 비중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세스 로건의 연기로 인해 ‘맨티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대사나 방향이 많이 틀려졌다고 한다.



‘한계를 넘어서기’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털이난 캐릭터가 옷을 입고 거기에다 쿵푸까지 한다는 설정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애니메이터들의 기술적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고, ‘국제보호기구 : 야생팬더를 구해주세요’에서는 잭 블랙의 진행으로 점점 지구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팬더에 대해 인간들로 하여금 경종을 울리는 공익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내용만으로 보면 매우 공익적이라 지루할 수 있는 영상인데, 잭 블랙의 재미있는 진행과 더불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영상 덕분에 끝까지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포의 파워플레이’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볼 수 있는데, ‘용의 전사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는 유저가 직접 ‘포’의 입장이 되어 영화 속에 등장했던 무적의 5인방의 수련 방법을 하나씩 게임 형식으로 진행해 볼 수 있다. 이 게임이 은근히 쉽지 않은데 이유는 조작 방법이 영어로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두 뒤섞기’는 이름 그대로 영화 속 시푸가 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리저리 그릇 속에 만두를 넣고 섞은 다음 직접 맞추는 게임인데, 큼지막한 한글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어 시원시원함 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만두 뒤섞기’의 경우 게임 자체가 워낙 쉽기 때문에 굳이 한글화 하지 않아도 되었을 듯 하고, ‘용의 전사 트레이닝 아카데미’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 경우라 할 수 있을 텐데, 정작 후자에는 한글메뉴가 지원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캐릭터 그리기’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터가 직접 등장하여 영화 속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쉽게 처음부터 그려주는데, 마치 예전 EBS를 통해 방영되었던 ‘밥 로스의 조이 오브 페인팅’(일명 그림 아저씨)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직접 6가지 주요 캐릭터 가운데 선택할 수도 있다.

'쿵푸의 소리와 움직임’에서는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이 영화의 사운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담고 있다. <쿵푸팬더>의 사운드는 <반지의 제왕> <킹콩> <트랜스포머>등에서 사운드 효과를 담당한 에단 반 더린이 참여하고 있는데, 앞선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소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는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KUNGFU FIGHTING’ 뮤직비디오는 CEE-Lo가 부른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되었는데, 영화 속 기존 장면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뮤직비디오만을 위해 제작된 장면들도 있고, 잭 블랙과 CEE-Lo가 등장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을 듯 하다. ‘팬더 춤 배우기’‘쿵푸 할 줄 아나요?’는 마치 교육용 DVD를 보는 듯한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흑인 여성 댄서가 아이들과 함께 등장해 팬더 춤 동작을 친절히 설명해 주기도 하고, 여섯 동물을 기본으로 한 캐릭터 별 쿵푸 스타일과 무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팬더의 나라’라는 메뉴에 담긴 서플먼트들은 영화 자체 보다는 배경이 되는 중국 문화와 역사 혹은 무술에 관한 정보들이 담겨있는데, 아시아권 유저들을 대상으로 했다기 보다는 북미권 서양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성격의 영상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핑의 국수집’에서는 실제 중국 식당에서 국수면발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밀가루 반죽이 주방장이 동작을 거듭할수록 얇은 면발로 변하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젓가락 사용하는 법’ ‘12지신 속으로’ ‘쿵푸팬더의 동물들’ ‘당신이 싸우는 스타일은’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친절하게 관련 문화 정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비디오 쥬크박스’에서는 <슈렉 1,2,3> <헷지> <마다가스카> <샤크>등 드림웍스 전작들의 뮤직비디오를 선택하여 감상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역시 일부 작품의 경우 더빙을 우리말로 설정했을 경우 우리말로 진행되는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

[총평] 블루레이라는 차세대 영상 포맷이 가정용 기본 영상소스로 자리잡으려면, 무엇보다 온 가족이 즐길 만한 진정한 ‘가족용’ 타이틀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쿵푸팬더>BD는 어른들에게는 재미와 추억을 선사하고, 아이들에게는 우리말 더빙을 통해 한결 더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블루레이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내용면에서도 그렇고 레퍼런스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훌륭한 화질과 음질은, 무언가 하나가 만족스러우면 다른 하나가 아쉬운 적이 많았던 블루레이 시장에서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인 것은 물론 일터. 곧 대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올 상반기 블루레이 시장 가운데서도 <다크나이트>BD 이후 가장 많은 인기를 끌 블루레이 타이틀이 될 것을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2009.01.26 | 아쉬타카 (a_shitak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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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프라임 리뷰를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www.dvdprime.com
http://dvdprime.paran.com/dvdmovie/DVDDetail_Sub.asp?dvd_id=1765&master_id=11








적벽대전 2 _ 최후의 결전 (Red Cliff 2, 2009)
오우삼의 삼국지 주유전

사실 많은 이들이 실망했던 1편의 경우도 2편을 위한 거대한 예고편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특히나 1편에서는 제목이 '적벽대전'임에도 정작 적벽대전은 거의 치뤄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무언가 2편에 가서는
주유와 공명의 심리전을 예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2편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일단 리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전에 짚고 넘어갈 점은, 영화 <적벽대전 2>는 원작인 삼국지연의 와는 거리가 있는
허구의 서사 장르일 뿐더러,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자체도 정사와는 차이가 있는 일종의 과장된 소설이다보니, 아예 원작이고
익숙한 삼국지와의 비교에 대한 내용은 최소한으로 줄이려 한다. 뭐 어쩔 수 없이 거론하게 되겠지만, 하나하나 비교해 가며
따져보기에는 워낙에 어긋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냥 '오우삼의 삼국지'라던가 '삼국지 주유전' 정도로 러프하게 인정하고
리뷰를 이어가 본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미 1편을 통해서도 그렇고, 양조위라는 배우가 캐스팅 된 것만을 놓고 보았을 때도 알 수 있었지만, 오우삼이 만든
<적벽대전>은 어디까지나 주유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물론 삼국지에서 주유가 주목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적벽대전 당시가
가장 주목받는 때이기는 하지만, 오우삼의 <적벽대전>만큼 집중되 있는 편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개인적으로는
양조위와 금성무가 인물을 바꿔서 연기했어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우삼은 주유를 너무 사랑했기에
양조위를 선택하게 된 듯 싶다). 주유가 워낙에 큰 비중을 갖고 있는 탓에 다른 장수들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가 소홀히 되는
것이 원작팬으로서는 가장 아쉬울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등 촉 장수들에 대한 묘사는 기존
이 삼형제로 대변되는 삼국지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당황될 정도로 그저 동네 힘쎈 형(장비), 얼굴 벌건 동네 형(관우),
그리고 공원가면 만날 것 같은 아저씨(유비)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조자룡의 경우는 굉장한 비중을 부여받고
있는 경우인데,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처럼 주유와 등을 맞대고 싸우는 이도 조자룡이고, 레골라스 급의 아크로바틱한
액션 장면을 만들어내는 장본인도 다름아닌 조자룡이다(이런 경향은 1편에서도 드러났다).

하지만 촉의 장수들은 조조로 대표되는 위나라 장수들과 비교하자면 그나마 양반이라 할 수 있겠다. 위나라 장수들은
그나마 배신한 채모와 장윤을 제외하면 이렇다하게 이름이 거론되는 장수조차 없으며, 그 외에 거론되는 장수라고는
위나라에 속한 것도 아니요 장수도 아닌 '화타'가 유일하며, 마지막 장면에 '하장군'으로 묘사되는 모 장수가 있겠다
(애꾸눈이 아니었던 걸로 봐서 하후돈은 아닌듯 싶고, 그렇다면 하후연? 하후상? 하후덕? 등 인 듯도 싶지만, 어쨋든 중요한건
이들이 전부 일반 장수들 이상으로는 묘사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조조에게는 그 어느 세력보다 훌륭한 장수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휘하의 장수들의 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사실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2>에서는 영화적인 분위기를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소교의 에피소드와 손상향의 에피소드를
매우 비중있게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일반 영화였다면 매우 효과적인 장치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삼국지를 베이스로
하는 <적벽대전>에서 이런 쌩뚱맞은 에피소드를 만나니 사실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아니 왜, 적벽대전에
'바보온달'시퀀스를 삽입한 것인가!). 물론 정사가 소설화 되고 영화화 되면서 과장에 과장이 더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하여도,
결국 이 여인 한 명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거나, 마지막에 소교를 인질로 잡고 협상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영화구나'할 수
밖에는 없었다.

개봉이후 조금 늦게 영화를 보게 된지라 이미 많은 사람들의 스포일러 없는 감상평들을 접하고 간 탓에, 원작과의 비교에 대한
기대를 접고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주유와 공명, 혹은 주유와 조조의 허허실실 지략 대결에 대한 묘사는 2편에서 가장 기대하던
바였다. 물론 <적벽대전 2>에는 바로 이 '허허실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지략 대결이 등장하지만, 좀 더 치밀하고 비중있게
묘사했으면 하는 바램과는 달리, 빨리 빨리 맛만 보여주고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만약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공명이 화살 10만개를 얻어오는 장면이나, 서로가 서로를 속일 것을 예상하여 수를 두는 계략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오히려 예상보다 못한 수 놀림에 감탄할 장면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내용상으로는 역시나,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무엇이 되었든 욕을 먹을 수 밖에는 없다'라는 지론처럼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으나, 그렇다고 오우삼의 <적벽대전 2>가 단순히 아쉽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1편과 마찬가지로 전투 씬에 있었는데, 기존 전쟁영화들에서는 대규모 인원이 등장한 전투씬을 그릴 때
단순한 치고 박는 식의 연출을 어떻하면 효과적이고 미적으로 그릴까 혹은 리얼하게 그릴까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삼국지라는 특성에 잘 부합하여 '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전투 씬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전편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이 진법이 사용된 전투 장면이었는데, <적벽대전 2>에서도 이 진법을 이용한 공성전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방패로 주위를 둘러쌓은채 기회를 도모하다가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가며 신출 기몰하게 나타나 적을 베는 장면이나,
공성을 오르기 위해 진을 쌓는 장면 등은 오우삼이라는 감독과 중국이라는 인프라가 만났을 때만 가능할 법한 대규모
장면으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예전부터 삼국지 게임을 즐겨해온 입장으로서는 각 부대별로 네모낳게 모양지어
전진하는 장면이 반갑기까지 했으며, 공성전을 연출하는 방법도 실제와 허구가 적절히 섞인 장면들로 이뤄져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런 전쟁 씬의 경우 음악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벽대전 2>의 경우 음악 없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았으며, 이 분위기에 따라 한쪽이 계속 밀리다가 다른 한쪽이 다시 우세하곤 하는 본편적
연출과는 다르게, 계속 서로가 죽고 죽이는 현실적인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이 영화에선 실제로 촉과 오의 연합군이 기세를
몰아 조조의 군대를 잠식해 갈 때도 상당히 많은 아군이 전사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연기와 캐릭터를 묘사한 배우는 조조 역할을
맡은 장풍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영화가 완전히 주유의 원사이드 영화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조조라는
캐릭터가 다른 한편에서 열심히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오우삼은 조조를 완벽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선한 면(동시에 독한 면이 될 수도 있겠다)또한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좀 더 캐릭터를 확장시킬 여지가 있었다면,
훨씬 더 풍부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장풍의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조조 라는 캐릭터에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장풍의가 출연한 다른 영화들에도 급 관심이 가게 되었다.

주유 역할을 맡은 양조위와 공명 역할을 맡은 금성무에 연기는 개인적으로는 별로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애초에
처음 캐스팅 얘기가 나올 때부터 양조위가 주유와 공명 역할 모두에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양조위는 언제나처럼
괜찮은 연기를 펼쳤으나 자신의 부인을 적장에게 빼았길지도 모르고, 자신을 생각해서 부인이 스스로 적장에게 간 장수의
깊은 갈등까지는 표현해내지 못한 것 같다. 공명 역할의 금성무는 확실히 멋지긴 했으나, 뭐랄까 좀 더 공명스럽지는
못했다고나 할까. 하긴 공명스럽다는 것이 기존 삼국지 관련 작품들을 통해 얻게 된 일종의 선입관이긴 하겠지만,
그가 공명 같다기 보다는 여전히 금성무 같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기도 하겠다. 소교 역할을 맡은 린즈링은 아름답기는
하나 아무래도 캐릭터가 조금 쌩뚱맞다 보니 '그저' 아름답게만 묘사되고 있고, 손상향 역할의 조미는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하나 삼국지와는 덜 어울리는 캐릭터였으며, 손권 역할의 장첸은 손권 자체가 어찌보면 유비만큼이나 힘없이 그려지기
때문에 무언가 갈팡질팡 하는 느낌이 깊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2>는 역시나 삼국지의 팬들에게는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 구조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아쉬운 작품이긴 했으나, 원작과의 1:1 비교라는 점에서 조금 벗어난 다면, 그럭저럭 오우삼
감독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장함이 라던가, 대규모 자본과 엑스트라가 동원된 인상적인 공성전 만으로도
볼만했던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1.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점에서 보았는데, 화질이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노이즈가 너무 심하고 전체적으로 색감도 별로 좋지
못하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분명히 제가 본 프린트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극장에서 사운드 볼륨도 별로 크지 않아
임팩트도 심히 부족했던 것 같구요.

2. 혹자들은 3편이 나온다고 하는데, 물론 루머일 것이며, 나온다면 그건 적벽대전 3가 아니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되겠죠.

3. 양조위는 연기할 때 우리가 극장에서볼 때와는 다른 언어로 연기한 것 같더군요.

4. 다시 생각해보아도 조조 휘하 장수들의 묘사는 정말 안습이네요 ㅠㅠ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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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현이 (a_shitaka@nate.com)


아바(ABBA)라서 더욱 행복한 뮤지컬 영화

스웨덴 출신의 혼성밴드 ‘아바(ABBA)’는 전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팝스타이기도 하지만,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 덕분에 특히 국내에서 더욱 인기를 누렸던 추억의 팝스타이기도 하다. 추억이라는 ‘과거형’으로 정의하긴 했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들의 오래된 CD 혹은 LP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 형’으로 21세기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데, 이런 붐을 먼저 일으킨 것은 무대 뮤지컬인 ‘맘마미아!’였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아바의 익숙한 곡들을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는데, 국내에서는 최정원, 전수경 등이 출연하여 공연되었다. 영화 <맘마미아!>는 바로 이 무대 뮤지컬에 근본을 두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데 단순히 인기 무대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 영화 <맘마미아!>는 뮤지컬의 감독과 스텝들이 고스란히 다시 모여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메릴 스트립, 줄리 월터스 등 헐리웃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뮤지컬이라는 장르 속에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극장에서 <맘마미아!>를 보기 전만 해도, 뮤지컬 영화의 광 팬인 필자였음에도 ‘그저 아바 음악을 2시간 동안 실컷 들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아쉽진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안이한 생각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별빛 쏟아지는 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I Have a Dream’을 부르는 첫 장면부터 단숨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맘마미아!>에는 단순히 아바의 음악으로 이뤄진 뮤지컬이라는 것 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특별한 뮤지컬인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론 바로 ‘아바’의 음악으로 이뤄진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다른 뮤지컬 영화들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아바의 곡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없는가, 아바의 음악들과 얼마나 많은 추억을 공유했는가는 분명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렇다고 아바의 음악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별로 재미를 못 느낄 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 영화에 수록된 아바의 곡들은 놀랍도록 - 마치 영화를 위해 모두 새롭게 만들어진 곡들인 것처럼 - 영화 속 이야기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유명한 곡들을 원작으로 영화나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몇몇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어느 정도 원곡과 이야기 간에 이질감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맘마미아!>는 주인공인 도나가 딸을 시집 보내며 드는 감정이 잘 드러난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야기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있는 경우라 하겠다. (※ 'Slipping Through My Fingers' - 이 곡은 본래 아바의 멤버인 비요른과 아그네타가 이혼한 뒤 엄마인 아그네타가 딸인 린다를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감정을 그린 곡이라고 한다). 물론 이 같이 아바의 음악들로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공은 무대 뮤지컬 <맘마미아!>에게 먼저 돌아가야겠지만, 뮤지컬의 감독 및 주요 스텝들이 영화 역시 만들었으니 영화 역시 이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하겠다.





영화는 뮤지컬 영화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특히 초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또래의 여자 친구 둘과 함께 'Honey, Honey'를 부르는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전형적인 구성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대사를 주고 받으며 노래를 시작해 완전히 노래로 빠져들었다가 장소를 이동해가며 노래는 이어지고, 이 과정 속에서 영화 초반의 스토리에 관한 소스와 캐릭터에 성격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구성을 보여준다. 뮤지컬 영화에서는 구구절절 스토리를 다 설명하거나 -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 할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대부분 노래로 설명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성은 아무리 전형적이라 해도 뮤지컬 영화로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맘마미아!>는 무대에 익숙한 감독과 스텝들답게 다른 뮤지컬 영화들 보다 훨씬 더 공간을 활용하거나 대규모의 군중 씬이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이것은 장점과 단점으로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무대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화끈한 감동을 스크린에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아주 만족할 만한 장점으로 들 수 있겠지만, 군중이 동원된 장면에서는 다른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군중들이 노래에 참여하게 되는 동기가 살짝 부족한 점도 느껴지기도 한다. 치밀하게 따지고 들자면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 조금 허술한 면도 느껴지지만 이는 뮤지컬 세상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맘마미아!>에는 이를 다 감수하고도 남을 아바의 말 그대로 주옥 같은 곡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 만으로 행복함은 넘치고도 남는다.






<맘마미아!>블루레이 타이틀에 수록된 영화 본 편 자막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극장에서 볼 때와는 조금 다른 자막이 수록되었는데, 긴 대사들이 약간 함축되어 담긴 경우도 몇몇 있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음성으로 만나볼 수 있는 ‘Thank You for the Music’의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점은 극장 상영 시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로서 비슷한 소재였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BD와 비교했을 때 훨씬 만족스러운 자막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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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p 풀HD의 해상도를 지원하고 있는 <맘마미아!> 블루레이의 화질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작년 말에만 출시되었어도 상급의 화질로 평가 받겠지만, 여러 화질 좋은 타이틀이 출시된 현시점에서는 '평균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초반 어두운 밤 바다 장면을 시작으로, 그리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득 담고 있는 영상은 풀HD의 화질로 시원하게 재현된다.

(아래 스크린 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일부 장면의 경우 미세한 노이즈가 발견되기도 하고, 인물들 외에 주변 배경들의 표현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감상에 지장이 있거나 크게 불편하다고 느낄 만한 정도는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주요 활동무대인 호텔의 경우 영국에 위치한 대형 촬영장에 세트를 지어 촬영했고, 몇몇 장면만 실제 그리스에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되었는데, 이들 간의 약간의 화질 편차가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 자체가 화질이 최우선 되는 작품은 아니기에 평균적인 화질로도 비교적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라 하겠다.

Blu-ray Sound






DTS-HD Master를 수록한 사운드는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는 더 없이 훌륭하지만 멀티 채널의 위용은 느끼기는 어렵다. 뮤지컬 영화로서 액션 영화들처럼 채널 분리도를 느낄 만한 장면들도 많지 않고, 대부분의 사운드가 센터 스피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차세대급의 인상적인 사운드에 익숙한 유저들이라면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다. 또한 뮤지컬 영화라 하더라도 군중 씬의 사운드 임팩트는 조금 아쉬운 편인데,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Dancing Queen’ 시퀀스나 화려한 군무를 만나볼 수 있는 ‘Voulez-Vous’ 시퀀스 같은 경우에서는 좀 더 임팩트 있는 서라운드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 부분에서는 센터 스피커를 통해 모든 곡을 HD 사운드에 걸맞은 음질로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Blu-ray Special Features





<맘마미아!> 블루레이는 유니버설에서 제작된 타이틀로서 유니버설의 기본적인 블루레이 메뉴들을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원하는 장면을 직접 영상 클립으로 만들 수 있는 ‘My Scene’이나 다양한 부가영상들을 본 편과 동시에 감상/확인 할 수 있는 ‘U-Control’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최근 리뷰 했었던 <원티드>블루레이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U-Control’의 경우 다양한 기능들 가운데 ‘P.I.P’기능 만을 제공하고 있는데, 역시나 한글 자막을 수록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유니버설의 다른 타이틀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U-Control’에 수록된 영상의 경우, 일부 다른 부가영상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메뉴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영상들인데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맘마미아!> 블루레이는 타이틀 뒷면 설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했을 시에만 볼 수 있는 메뉴가 있다. ‘Behind The Hits’라는 제목의 메뉴인데, 영화 속 노래가 삽입된 장면에서 그 원곡에 대한 설명 (아바의 어떤 앨범에 수록되었는지 등을 비롯한 트리비아) 을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메뉴는 초기 언어설정에서 ‘영어’로 설정해야만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서플먼트 가운데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코멘터리인데, <맘마미아!> 블루레이에는 감독인 필리다 로이드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음성해설 외에 첫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은 ‘Deleted Scene’과 ‘Outtakes’이다. 삭제 장면에서는 영화의 인트로 시퀀스에서 3명의 남자 주인공이 소피에게 편지를 받게 되고 섬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추가로 담겨있다. ‘Outtakes’는 쉽게 말해 ‘NG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가운데 웃음을 참지 못해 벌어지는 NG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참고로 두 가지 서플먼트를 비롯해 ‘Gimme! Gimme! Gimme!’ 뮤직비디오와 비요른 울바에우스의 까메오 출연 장면은 SD영상으로 수록되어 있다).




Deleted Musical Number - The Name of the Game’에서는 빌과 소피가 부녀 지간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 삭제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데, 본 편에서는 그냥 대화로만 진행되지만 삭제장면에서는 ‘The Name of the Game’곡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어두운 밤 벌어지는 장면이지만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매력을 또 한번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The Making of Mamma Mia!’는 일반적인 제작 다큐 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감독과 스텝들의 인터뷰를 통해 무대 뮤지컬이 스크린으로 옮겨지기까지의 과정을 전해 들을 수 있고, 배우들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다. <맘마미아!>는 주인공들이 여성인 점도 있지만, 감독과 제작자, 작가 역시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한 편의 ‘여성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실제 영화 속 3명이 여자 주인공과 매우 흡사한 제작진 여성 3인 방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영화는 아바의 두 멤버인 베니 안데르손과 비요른 울바에우스가 직접 음악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이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비롯해 배우들에게 직접 반주를 해주면서 노래를 가르쳐 주는 녹음실에서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뮤지컬 영화답게 이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음악감독을 맡은 마틴 로우의 인터뷰가 매우 비중 있게 실려있다. 이 영상을 통해 알 수 있었던 흥미로운 점은 마치 무대 뮤지컬을 연습하듯이 출연하는 모든 보조 연기자들에게까지 노래를 연습 또 연습시키는 장면이었는데, 본래 노래보다는 춤이 장기인듯한 보조 출연자들에게 립싱크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하도록 유도하는 장면에서는, 무대에 익숙한 전문 스텝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캐스팅에 관련된 영상에서는 소피아 역할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오디션 장면을 짧게 나마 만나볼 수 있는데, 단연 돋보이는 그녀의 노래 실력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난 뒤 혹자들은 ‘여자 주인공이 원래 가수야?’하고 물어봤을 정도로, 메릴 스트립의 노래가 ‘뮤지컬’스러웠다면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노래는 정말 ‘가수’ 같은 놀라운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Anatomy of a Musical Number - Lay All Your Love On Me’에서는 본래 노래가 그리 능숙하지 않았던 남자 주인공 도미닉 쿠퍼가 이 곡에 익숙해 지기까지 연습하는 과정과 이 곡의 촬영 에피소드가 담겨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따듯하게만 보였던 해변에서의 이 장면이 실제로는 너무 추웠었다는 후문을 전해들을 수 있다.





Becoming a Singer’에서는 아바의 두 남자멤버가 영화 음악을 맡게 되면서 새롭게 예전의 음악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다. 두 멤버는 물론 당시 함께 녹음했었던 세션 연주자들도 이번 사운드트랙에 함께 참여하였는데, 오랜 세월 연주해 보지 않았던 곡들이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어 금새 마칠 수 있었다는 이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들은 최종적으로 녹음실에서 녹음할 시에만 노래에 집중하고 실제 촬영장에서 촬영 할 때는 녹음할 때처럼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맘마미아!>의 경우는 실제로 촬영장에서 녹음한 소스를 몇몇 장면에서 섞어서 사용했을 만큼, 배우들이 촬영할 때도 매우 진지하게 노래에 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배우들은 정말 매일매일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을 연습하듯이 노래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했고, 노래에 비교적 능숙하지 않았던 피어스 브로스넌과 스텔란 스카스가드, 콜린 퍼스 등 남자 배우들은 자신들이 노래하는 장면 촬영이 있는 날이 공포스럽게 느껴졌을 만큼 떨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메릴 스트립의 경우는 모든 장면에서 항상 노래를 직접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잘 들어보면 메릴 스트립이 노래한 곡들을 영화 속에서 들어보면 마치 ‘라이브 실황’ 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완벽한 음정과 녹음용으로 정리된 노래보다는 감정과 장면에 충실한 -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뮤지컬 스타일의 접근 방식이 아닐 수 없겠다 - 노래로서 훨씬 더 장면과 어울리는 멋진 곡들을 선사하고 있다. <맘마미아!> 속 또 하나의 명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The Winner Takes It All’같은 경우도 실제 로케이션 촬영에서 라이브로 부른 버전이 영화 속에 섞여 있다고 한다. ‘A Look Inside Mamma Mia!’ 에서는 그룹 아바의 예전 활동 모습들과 그들의 음악에 대한 스텝들과 배우들의 평가를 만나볼 수 있다. 아바와 한 시대를 공유했던 이들이라면 아바의 예전 활동 화면들이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이 영상은 전체적으로 앞선 부가영상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Gimme! Gimme! Gimme!’ 뮤직비디오와 아바의 멤버인 비요른의 까메오 출연 장면이 별도로 수록되어 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도미닉 쿠퍼가 출연하는 영화 속 장면과 더불어 뮤직비디오 만을 위해 새롭게 촬영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영화의 추가 엔딩 장면을 통해 만나볼 수 있던 비요른 울바에우스의 재미있고 반가운 까메오 출연 장면은, 정말 그인가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Dancing Queen’ 시퀀스 가운데 해변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 스치듯 지나간 배우는 다름아닌 역시 아바의 멤버 베니 앤더슨인데, 이에 대한 언급이나 추가 영상이 없는 것은 아쉽다.

[총평] <맘마미아!>블루레이는, 차세대 영상 매체의 특성만을 가지고 보았을 때는 최신 액션 타이틀에 비해 확 끌리는 화질과 음질을 자랑하는 타이틀은 아니지만, 아마 <맘마미아!> BD를 소장하려는 이들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이 같은 AV 측면의 스펙보다는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최고의 행복한 장면을 선사한 엔딩 크래딧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남겨둔 채 <맘마미마!> 블루레이 리뷰를 마칠까 한다.




2009. 01. 16 | 신현이 (a_shitak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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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시티 (24 city, 2008)
타인은 거론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스틸 라이프>를 연출했던 지아장커의 신작 <24 시티>는 사실 보기 전부터 조금 겁을(?)먹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기존 그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더 건조할지도 모르겠다는 이미 본 지인의 말 때문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명절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저녁에 이루어진 시사회라 잠깐 졸긴 했지만,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되었던
허문영, 김영진 평론가의 씨네토크 덕분에 한결 영화에 대한 이해가 수월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이루어진 <24 시티>는 중국 서남부 쓰촨성에 위치한 청두라는 도시에 있었던  '420 공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며 한 때 청두의 주요 생활 터전이기도 했던 이 공장이 국가의 정책 변경에 따라
재개발이 이뤄지고 이로 인해 '24시티'라는 최상급의 고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 곳에 살고 있던 혹은 일하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24 시티>는 거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극중 인물들의 인터뷰로 채워가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동장르의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긴 호흡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 자체가 크게 극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굉장히 사소하고 소소한 얘기거리 들이며, 인내심을 요할 정도로 상당히 길게 진행되곤 한다. 이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점은 우리가 자신이 모르는 (혹은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현실에 가까워 있다는 다큐멘터리 들을 보아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극적인 요소를 위해 편집되기 마련이다(물론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인터뷰도 편집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길게 까지 듣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이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지아장커 감독은 의도적으로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어찌보면 별로 중요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이야기를 아주 길게
늘어놓음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지하고 길게 들어준 적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과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보통 같으면 이 긴 이야기 속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감독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하겠지만,
지아장커는 정반대로 이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듣게 하는 형식 자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듯 싶다.
즉 누군가의 사정과 인생을 듣고 보는 것 만으로는 절대 이들의 이야기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 두 평론가 분들과 함께 했던 씨네토크를 함께 하기 전까지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바에 대해
약간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무언가 깨름직하긴 한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피보면 <24 시티>는 '청두'라는 도시에 살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개발을 통해 사라져간 이 도시의 옛 모습을 그리며,
노동의 현장이었던 이 곳이 자본의 상징으로 변해간 것에 대해 연민과 이 속에 살았던 자들의 삶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었으나(거의 그럴 뻔 했음), 두 평론가 분의 의견을 듣기 전에도 이렇게만 보기에 <24 시티>는 무언가
이상한 부분들이 많았었다. 일단 이 영화는 리얼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허문영님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노동자들도 있지만,
조안 첸 같은 유명한 배우들도 출연하고 있으며, 실제 노동자들의 이야기 가운데는 말그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노동자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영화가 끝난 뒤 알 수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배우들이 출연해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에서는 의아함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인터뷰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을 수 밖에는 없었는데, 어떤 이야기는 정말 사소함을 넘어서서 불필요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지막 등장한 젊은 여성의 시퀀스는 결과적으로 이 의아함에 어떤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노동자의 딸 임을 부정하려고 했던 그녀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나는 노동자의 딸이다 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그 공장을 허물고 생겨난 괴물같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다짐은,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같은 공간 안에 놓여있지만 세대가 이어지면서, 같은 공간이
어떻게 달라 보일 수 있는지와 그 속의 인물들의 가치관도 얼마나 다르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으나, 이 마지막에 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지어버리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열심히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재벌 아들들의 사치 용품 쇼핑을 대신해 주며
쉽게 돈을 버는 것도 그렇고, 결국 이 상징과도 같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며 눈물 흘리는 라스트는 마지막 현재의 청두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래도 니가 있어 찬란했다'라는 식의 자막과 더불어 이상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영화를 보면서 깜빡 속을 뻔할 정도로 동화와 이상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은 바로 음악의 사용이었는데, <24시티>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와 영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음악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거의 한 인터뷰 시퀀스 마다
하나의 테마 음악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고, 이런 형식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아, 이 남자의 이야기 뒤에는 이 노래가
나오겠구나'하고 미리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렇게 음악과 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달리보면 굉장히 인위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하려고 일부러 넣은 장치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페이크의 수준이 굉장히 디테일한 터라 아주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는 것 그대로를 믿기 쉬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지아장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를 본 것 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만으로 청두를 이해했다고 하지 말라, 혹은 중국의 현재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배우를 이 다큐멘터리 형식에 넣어가며 이 이야기가 가짜 일 수 있다는 걸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기도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들을 통해 이것들 만으로는 알 수 없음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허문영,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 하는 씨네토크 시간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리뷰에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의아스러웠던
부분들에 대해 좀 더 명쾌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에 해석에 대한 이야기들은 물론,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해들을 수 있었으며,
이후 관객들의 열띤 분위기 속에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감독이나 배우들이 참여하는 씨네토크도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영화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
영화가 끝난 뒤 좀 더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만족스러웠던 시간이었다.







1. 사실 이 날 피곤하기도 하고 영화 자체가 굉장히 '잠이 오도록' 진행된 터라 깜빡 졸기도 했었는데, 이런 잠을 확 깨버릴 정도로
   임팩트가 있던 순간 이후로는, 끝까지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2. 그 순간이란 바로 <첩혈쌍웅>에서 엽청문이 불렀던 노래가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였는데, 정말 잠이 확 깰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곡을 본래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크린에서 이 곡을 만나니 그 감흥이란 이루 말할 수 없더라.




(24시티에 등장한 곡이 <첩혈쌍웅>처럼 엽청문이 부른 버전인지는 100%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인상적이었음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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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질링 (Changeling, 2008)
원치 않는 변화를 겪어야만 하는 현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2008년작 <체인질링>은 개봉전 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래 안젤리나 졸리가 다시 한번 아카데미를 두드려볼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들도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였지만, 무엇보다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으로 노년에 더욱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우리말로 '동림'선생 ㅎ)의 최신작이기 때문이었다. 배우와 감독을 겸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두 분야 모두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지속적으로) 드물다고 할 수 있을텐데,
언제부턴가 동림선생의(감독으로서) 작품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극장으로 달려갔었던 것 같다. 이 작품 <체인질링>역시
마찬가지 경우였다.


(아래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 영화의 제목인 '체인질링 (Changeling)'의 뜻을 찾아보면 대략 이렇다.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 《요정이 앗아간 예쁜 아이 대신에 두고 가는 못 생긴 아이》'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몰랐었기에 생각해볼 수가 없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의 뜻을
새겨보니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직접적인 뜻 외에도 은유적인 여러 다른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좋은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1928년 미국 L.A에서 있었던 실화를 그리고 있다(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화다 '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실화 (A True Story)'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극중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전부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나중에 여러 자료들을 확인해본 결과 실제 사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영화도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를 그린
다른 영화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당시 미국은 금주법으로 인해 밀주를 일삼는 대형 범죄조직이 등장했으며,
경찰 역시 타락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다. <체인질링>은 이 시기에 아들을 잃어버렸던(혹은 다른 아이와
바꿔치기 당했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크리스틴 콜린스는 전화 교환원 일을 하며 홀로 아들 월터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이다(영화 속에서는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실제 월터의 아버지는 당시 절도 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인 월터가
없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경찰에서는 실종신고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얼마만에 경찰에서 월터를 찾았다고 해서 기차역으로
달려가보지만, 자신이 월터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는 분명 월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경찰의 존스 반장은 '시험 삼아
아이를 한번 데려가 키워보라며' 일단 사건을 종결시키려고만 한다. 크리스틴은 혼란스러움에 어쩔 수 없이 이 '가짜 월터'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정신을 차린 뒤 이 아이가 월터가 아니라는 확신에, 경찰에게 다시금 이를 호소하지만 경찰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아 점점 골치거리가 되어가는 크리스틴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게 이른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과 힘으로 대표되는 외부 작용으로 인해, 이와는 아무런 상관도 이렇게 될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변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무거운 현실이다. 그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만을 바랬던
크리스틴은 어느덧 원하지도 않았던 부패한 경찰 권력과의 정의로운 싸움에 주인공(이자 희생양)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틴이 처음 부터 '남이 걸어온 싸움을 내가 마무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물론 아니었다. 초반 기차역에서
가짜 월터를 확인하고서도 경찰 반장의 말도 안되는 말에 일단 수긍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었고, 더이상
못참겠다고 경찰서를 찾아가 반장에게 따져도 보았지만, 정의를 외치기 보다는 아들을 되찾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경찰에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사과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따져보려고도 하지만, 결국 앞선 것과 같은 이유로
이들이 하라는대로 잘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아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때 부터 이 원치 않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수행하기로 마음 먹는다.

극중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구스타브 브리그랩 목사는 크리스틴의 억울한 상황을 돕기 위해 진심으로 돕는데, 물론 여기에는
진심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계속 해왔던 부패 경찰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이 케이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음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쇼크나 사건(혹은 스타)이 필요했던 구스타브 목사에게
크리스틴의 억울한 케이스는 좋은 원동력이 될 기회였으며, 결국 그녀가 직접 경찰과의 싸움에 나서게 되면서 대규모 군중들이
참여하는 시위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마치 구스타브 목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크리스틴을 이용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목사가 원하는 것이 개인적인 것도 아닐 뿐더러, 반드시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자신의 아들을 되찾는 일에만 관심이 있던 그녀에게는, 정신병동에서 만난 억울한 사연의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도 나서게 되고, 반대로 같은 유괴/살인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극중 크리스틴이 여러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아들인 월터를 찾고 싶었을 뿐이지,
부패한 경찰을 몰락시키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 영화 속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에서는
단 한번도 강인함이라던가 생기있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한 때 터프한 여전사의 상징이었던 '라라 크로프트' 안젤리나 졸리가
이렇게 러닝 타임 내내 아파보이고 힘없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는 크리스틴 만큼 중요한 캐릭터가 또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20건에 달하는 아동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이다. 영화가 실화인 것처럼 이 사건과 그 역시 실존인물이자 실제 사건인데,
일단 <체인즐링>에서는 노스콧에 대해 더 나아갈 것 처럼 하다가 어느 선에서 그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예 단순한
사이코 패스 정도로만 묘사했으면 모르겠지만(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재판장에서 자신은 무죄이며, 크리스틴에게
너만이 착한 여자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이후 사형을 앞두고 크리스틴과 만나 복잡한 심리상태를 살짝 엿보이는 장면을
보면, 한편으론 크리스틴과 맞닿아있는 캐릭터로서 그리려는 시도가 얼핏 보였기 때문에 더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다.

실제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가정사와 사건 정황이 있었다고
하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연쇄 살인범에게 일말에 자비도 배풀지 않고 있다(실제로 노스콧의 어머니는 이 살인사건에
함께 가담한 공범이기도 했으며, 어머니가 아니라 사실은 할머니였는데, 그러니까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은 아버지와 딸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던 것이다).

뭐랄까 권력의 힘에 의해 평범한 아이 엄마에서 부패와 맞서싸우는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크리스틴과 맞물려, 불우한
가정환경과 역시 잘못된 권력의 부패로 인해(고든이 잡혀갈 때보면 '예전에 몇년 동안 휴가를 보냈던 곳'이라고 감옥을
칭하기도 하는 걸로 봐서 이미 전과가 있었고,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여행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는 얘기로 봐서
역시 경찰에 대한 무능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마지막 이 둘의 정면 대면 장면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냈던 것처럼
크리스틴과 노스콧의 캐릭터를 정반대에 서있지만 동일한 피해자라는 개념으로 그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쇄살인범에게 연민의 감정을 선물하지는 않았다(이것이 반드시
나쁘거나 좋거나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선 이유들도 그렇고 사형장에 끔찍하게 끌려가는 모습이나 마치 <어둠 속의 댄서>
의 셀마 처럼 사형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세어가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노래하다 사형당하는 장면을 넣은 것에서는,
분명히 이 노스콧의 캐릭터를 단순하게만 느껴지도록 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 초반 부에 관객을 분노케 하는 것은 바로 부패한 경찰 권력이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하겠다.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아이의 엄마에게 가짜 아이를 안겨주고는 시험삼아 키워보라고 말을 하고는,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에만 급급하는 모습이나, 점점 말을 듣지 않고 감히 권력에 대항하려 들자 정신병자로 몰아
감금하기까지 이른다. 권력이란 항상 그렇지만 자신들이 그리는 큰 크림에서 한 사람의 인격은 별로 신경쓰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애초에 깨끗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이렇게 커질 일도 아니었지만, 커다란 힘을 가졌음에도 조금의 흠집조차
내길 원하지 않는 것이다. <체인즐링>에서는 짧지만 이 권력 구조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존스 반장이 혼자 나쁜 놈
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스스로가 권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자라 믿었던
불쌍한 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위의 청장 또한 옷을 벗게 되었지만, 애초에는 일이 커지자 그냥 이선에서 마무리하기
위해 존스를 희생양(희생양까지는 아니겠다. 잘못을 안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으로 만들고 끝내버리려고 했던 권력의 모습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권력에 어떻게 언론과 진실을 외곡하고 조작하는지에 대한 것도 엿볼 수 있다. 가짜 아들을 안겨주며 지금은 혼란스러워
착각을 하는 것이라며 말도 안되게 아이를 넘겨주고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름다운 장면만을 제공하고,
문제점을 알아내고 조사를 하려는 부하 경찰에게 신문도 안보냐며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2차 권력을 그대로 이용하려는
부패의 전형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신문도 안보냐고 물은 다음에, '아마 다른 신문을 보나보지'하고 얘기하는 장면에서는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너무도 우리 현재의 현실과 닮아있는 이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신병원이 정신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정신병을 만들어내는 곳이며, 전기고문 등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연상되기도 했다.




<체인질링>을 보는 내내 2009년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으로서 국내의 현실이 겹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 똑같은
이야기를 국내 감독이 만들어 한국에서 개봉하려 했다면 아마 국가에서 큰 제제라도 받았을 정도로, 영화 속 이야기는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다른 것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는 실화이긴 하지만 1930년대 라는 과거의
것이고, 우리의 이야기는 2009년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 부패 경찰은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자들은
그대로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에게는 정신병자라는 죄목을 부가하여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만다.
인터넷에 정부 정책의 잘못됨을 이야기하면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하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 마저 통제하여 진실을 점점 알기 어려워지는 모습도 닮아있고, 문제가 있을 때 하위 담당자를 경질하는 것으로
불을 끄고 보려는 모습도 너무나 닮아있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영화 속에서는 이런 부패한 경찰을 처벌할 수 있는
공정한 사법부가 있었지만, 국내에 현실을 떠올리며 이 마지막 재판 장면을 보니, 그야말로 딴 세상 얘기로만 보여서
더욱 씁쓸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원티드>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확실히 너무 예전에 비해 살이 많이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크리스틴을 연기하려면 예전 라라 크로포트 같은 건강한 몸매는 불편했겠지만, 깊은 아이 라인을 지우더라도 퀭해 보이는
눈가와 그녀 답지 않게 너무 마른 팔과 다리는 캐릭터가 측은하다 보니 더욱 더 측은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는 기존 안젤리나 졸리의 캐릭터를 떠올려봤을 때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녀의 연기 변신을 높이 사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도 <체인즐링>이 안젤리나 졸리의 필모그래피에서 베스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아직까지 그녀의 베스트는
<처음 만나는 자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디테일하게 묘사된 당시의 미장센 만큼이나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관객들이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에 적극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 외에 인상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존스 반장 역을 연기한 제프리 도노반을 꼽을 수 있겠다. 그의 마스크에서는
캐릭터가 캐릭터이니 만큼 <L.A 컨피덴셜>의 가이 피어스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정말 옆에 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캐릭터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존 말코비치는 분량이 적은 관계로 깊은 인상까지는 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물론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말 대단한 할아버지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가 만들어낸
영화음악은 생각보다는 극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데,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일부 장면에서 음악이 감정을 주도 할 때도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 만큼이나 재즈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인데, 영화를 보고나오면서 바로
스코어를 흥얼거렸을 정도로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재능도 상당히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 장인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텐데, 그가 장면장면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는
정말 움찔움찔 할 정도로 놀라운 장면이 많았었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배우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크리스틴'의
모습을 발견해낸 점이나 관객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해내는 그의 능력은, 사실 이제 더이상 언급하는 것조차
실례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개인적으로 결정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감독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 좋은가,
아니면 배우로서의 그가 더 좋은가 하는 점일텐데, <체인즐링>을 보고나니 감독인 그에 조금 더 기울기도 하지만,
곧 개봉할 <그랜 토리노>를 보고나면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 대해 평론가들의 평가가 조금 나뉘는 것을 보고 든 아쉬운 생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평가 평균을 너무 높여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뭐랄까 항상 90점 이상을 기본적으로 받아오는 우등생이다보니
100점을 받지 않고서는 다들 반응이 미지근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체인질링>은 안젤리나 졸리를 배우로서 다시 보게된 작품이었으며, 영화 장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솜씨를 다시 한번
접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영화 속 과거의 미국 현실이 현재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어 씁쓸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유니버설 픽쳐스에 있습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 2007)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

미셸 공드리는 내게 있어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인생 최고의 멜로 영화를 안긴 영화 감독이자, bjork, beck 등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더 먼저 알게 되었던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 이전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더 익숙했던 그의 작품들에는, 동시대의 다른 뮤직비디오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세계가 있었다. 그는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한 방식을 선호하는 감성의 소유자이고, 일반적인 것들 속에서 독특한 것을 찾아내는 탐험가이기도 하며,
어른이지만 아이의 순수함을 갖고 있는 피터팬이자,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공드리'스러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조자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던 그가 영화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2001년 작 <휴먼 네이처>와 2004년 작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코미디를 연출해낸 <휴먼 네이처>와
21세기 감성 멜로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이터널 선샤인>은 미셸 공드리의 작품인 동시에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2005년 작인 <수면의 과학>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놀라운 결과물이
오롯이 공드리의 것인지 아니면 찰리 카우프만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면의 과학>을 보고 난 이후에는
이 것이 카우프만의 역량이 가미되었을 때만 발휘되는 효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영화 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에게는
언제 부턴가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바로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었던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으로 높아질 때까지 높아진 기대도 더해진 탓에,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미셸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를 잔뜩 만나볼 수 있는 'Director's Label Series Boxed DVD 자랑 ^^;
http://www.realfolkblues.co.kr/2 )




그런데 최근 개봉한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고 나니, 이 <수면의 과학>이 그리 홀대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크게 보면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에 관한 굉장히 직접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비교하자면 <수면의 과학>은 조금 은유적이고,
방식면에서는 조금 달리했던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수면의 과학>에 주인공인 '스테판'은 누가 뭐래도 미셸 공드리 자신의
모습이 적극 투영된 캐릭터였다. 현실과 꿈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꿈의 세계에 빠져있는 스테판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꿈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 현실 뿐인데, <수면의 과학>은 이 상황에서 '현실'이 아닌 '스테판'의 세계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이 꿈의 세계이 정당성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면의 과학>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은 있었지만(여기서 세련되지 못했다는 표현은 대중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가 될 수 있겠네요)
공드리의 진심이 100% 담긴 영화였다. 어찌 보면 찰리 카우프만의 역할은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세계를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인식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카우프만 없이 처음 홀로 서기를 했던 <수면의 과학>에서
미셸 공드리는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레오 까락스, 봉준호와 함께한 프로젝트 <도쿄!>에서는 단편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훨씬 성숙해진 공드리의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도쿄!>에서 그가 연출한 'Interior Design'은 공드리가 특히 관심을 갖기도 했던 일본 문화를
배경으로 공드리만이 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에만 급급해 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는데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수면의 과학>과 <도쿄!>사이에는 보지 못한 하나의 영화가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최근 개봉한 <비카인드 리와인드>였다. 국내는 개봉이 늦어지면서 2008년 작인 <도쿄!>가 먼저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도쿄!> 비교적 만족스러웠던 점을 미뤄보자면, 이렇듯 점차 찰리 카우프만 없이 홀로 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그의 신작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유난히 좋아하는 잭 블랙과 모스 뎁을 재쳐두고서라도 충분히 기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영화였다.


(이후 부터는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도시 계획을 위해 철거위기에 놓인 건물에 속해있는 한 오래된 비디오 가게가
있는데, 주인인 플레쳐 (대니 글로버)가 다른 행사 참석을 핑계로(사실은 VHS에서 DVD로 넘어가기 위한 시장 조사였지만)
자리를 비우고 마이크 (모스 뎁)에게 가게를 맡기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이크의 친구인 제리 (잭 블랙)는 우연한 사고를
통해 일종의 전기인간이 되고 이 때문에 그가 지나간 곳에 있던 가게 내의 비디오 테입들은 전부 내용이 지워지게 되면서,
이 사고를 주인아저씨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와 제리는 직접 영화를 찍어서 이를 담아 손님들에게
대여를 해주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영화를 직접 찍기는 찍는데, 그냥 오타쿠에 가까운 매니아들이라 예전 영화들을
직접 찍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비디오가게에 테입이 전부 지워져서 이를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직접 찍기로 한다는
설정 자체가 무척이나 공드리스러운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마이크와 제리는 직접 'Sweded'한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 과정들은 재미도 있고 나름 의미도 엿볼 수 있었다(영화 속에서 이들은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영화를 설명하기를
스웨덴에서 수입된 영화들이라 특이하다 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Sweded'한 영화를 찍는 장면이었는데,
이 과정이 단순히 재미 만을 주지는 않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와 제리, 그리고 후에 합류한 엘마 (멜로니 디아즈)가
영화를 촬영하는 방식이 바로 실제 미셸 공드리가 예전부터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방식, 더 나아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 예전 클래식한 자동차들을 섭외하지 못해 사진을 대형으로 프린트해 마치
어린이 인형극처럼 대형 사진을 활용하는 장면이나, 결국은 카메라로 촬영된다는 점을 100% 적용하여 서 있는 대형 구조물을
눕힌 상태로 마치 서있는냥 촬영하는 것이나, 어두운 장면을 촬영할 때 네거티브 방식으로 촬여하면서 얼굴 부분은
복사기로 스캔한 것을 반대로 사용하는 것 등(마지막 같은 아이디어는 정말 빛이 났다!)은 이미 미셸 공드리가 이름을
날리게 된 여러 뮤직비디오들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기법들이었다. 사실 'Sweded Movie'라는 신조어가 이 영화를 통해
생겨나기도 했지만, 따지고보자면 '공드리 무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예전 작품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통해
작업된 결과물들이었다.

그래서 영화 속 <고스트 바스터즈>나 <러시아워 2> <킹콩> <캐리> <알리> <로보캅>등 다양한 영화들을 'Sweded'하게
촬영하는 장면들이, 단순히 패러디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미셸 공드리의 역사를 읊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국내 개봉시에는 마치 잭 블랙 주연의 완전 코미디 영화처럼 포장이 되어 '잭 블랙이 너희를 웃게 하리라!'라는 우스꽝스런
카피 문구로 홍보가 되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마이크이며,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영화에 대한
미셸 공드리의 고백과 사랑이 담긴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단순히 영화 패러디
장면에서 잠깐 잠깐 보여지는 잭 블랙의 개인기에만 환호하거나 혹은 실망하게 된 것 같아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제리 역할을 잭 블랙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도 없을 것 같지만, 반대로 잭 블랙이라는 배우에게서는
일종의 선입관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100% 장면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더 폴>이 그러했듯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미셸 공드리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이
그 동인 영화(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역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고스란히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맞아 떨어지고, 후반부 저작권 문제로 인해 더이상 영화를 직접 찍을 수 없게 된 다음,
스스로 Sweded한 영화가 아닌 자신들 만의 영화를 여럿이 함께 모여 만드는 과정은, 어쩌면 순수하기만한 미셸 공드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고백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면의 과학>이 아쉬웠던 것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빗대어 보자면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만 있고, 나중에 직접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고 이를 다 함께 모여 관람하는
과정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공드리 같았으면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주제이자 목표인 영화를
만들었을 테지만, 점점 홀로서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공드리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와서는 점점 자신의 장기와 이야기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인상적인 영화로 남느냐, 아니면 그냥 그런 영화로 기억되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후반부에 시사회를 하는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이 장면에서
'푸훗'하며 유치하고 아동스럽다며 웃었을지 모르지만, 만약 이 장면에서 찡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이터널 선샤인>과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미셸 공드리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기억될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극중 잭 블랙이 연기한 '제리'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한창 날리던 시절 미셸 공드리의 모습이라면,
대니 글로버가 연기한 '플래처'는 영화 감독으로서 최근의 미셸 공드리를 엿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미셸 공드리는 아직까지 동심을 갖고 있는 피터팬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순수함을
통해 남들을 볼 수 없고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표현해 내던 시절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의 그였다면,
영화 감독으로서 요즘의 미셸 공드리는, 영화 속 '플래처'처럼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의 꿈을 꺽거나,
희망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편리함과 새로운 것만을 찾는 도시계획처럼, VHS만의 정겨움과 불편함을 어서 DVD로 대채하려고만 하는 문화처럼(그런데
실상에선 이 DVD도 이제 퇴물 취급을 받는터라 씁쓸한 미소가 지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 자체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으로 종결시켜 버리는 문화에 대해, 미셸 공드리는 유치하리만큼 순수한 이야기로라도 현실에 호소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은 극 중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정부 직원 캐릭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캐릭터는 극의 전개상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캐릭터는 영화 속 어느 캐릭터보다
현명하게 묘사되며,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함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동반하고 있다. 이들이 정성스레 만든 비디오 테입들을
불도저로 부숴버려야 하는 이 캐릭터에게, 확연한 악당의 이미지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성을 부여함으로서,
미셸 공드리는 관객들에게 강요보다는 부탁조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 가게 주인인 플래처는 '제리를 가게에 들이지 말라'는 글을 기차 유리창에 남기는데, 마이크가 보는 방향을
생각해서 일부어 반대로 쓴 이 글은 마이크에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져 한동안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종이를 반대로 보게 되고 나서야 참 뜻을 알게 된다. 작은 웃음 소재로만 사용되는 줄 알았던 이 설정은 영화 후반부
모두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장면에 복선으로 사용되고 있다. 창문에 천을 달아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를 보게 되는데,
창 밖에서는 이를 찍어온 방향과 정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영화적으로 줄 수 있는
감동은 이들이 스스로 만든 영화를 다같이 모여서 보는 이 장면(이때 스크린을 비추지 않고 프로젝터 빛에 비친 관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감동의 장면이다)에서 이미 다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부러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영화를 그것도 외곡된 방향으로 즐기고 감동하는 장면을 삽입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한 편으론 제대로, 혹은 원래 있던 그대로의 방식으로는 외면 받을 수 밖에 없고, 뒤집거나 외곡하고 나서야 이들의 진심이
이해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셸 공드리 입장에서 보았을 땐,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대중들이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마이크 역할을 맡은 모스 뎁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물론 그가
블랙뮤직의 슈퍼스타였을 때였는데, 알리시아 키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을 때 '제법 영화배우 분위기가 난다'고 생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 영화를 통해 완전히 뮤지션으로서의
허물을 벗었달까. 완벽히 영화 배우 '모스 뎁'다운 모습이었다. 잭 블랙과 대니 글로버 사이에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캐릭터로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으며, 연기 외적으로는 아마도 본인이 직접 코디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멋진 의상들의 향연도
인상적이었다. 힙합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다가 배우로 전업한 경우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아이스 큐브라고 봐야 할텐데,
내 취향에는 모스 뎁의 앞날이 훨씬 기대된다. 그는 확실히 영화 배우로서도 대단한 재능이 엿보인다.

잭 블랙은 국내에서는 마치 단독주연처럼 홍보되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히 조연에 만족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오타쿠 캐릭터를 크게 오버하지 않는 수준에서 연기하고 있으며, 역시 잭 블랙 답게 디테일한
조크들을 사이사이 껴 넣는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종종 이렇게 영화광으로 영화 속에 출연했던 것 같은데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와서 비로서 본격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혹자들은 잭 블랙도 별로 안웃기더라 하며
실망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일부러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었기에 이런 평가는 조금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대니 글로버와 미아 패로우는 잭 블랙과 모스 뎁 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따듯함을 이 영화에 불어넣고 있다.
특히 두 배우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패러디할 땐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조연으로는 <아임 낫 데어>에
출연했던 아역 연기자인 마커스 칼 프랭클린을 들 수 있겠는데, 그의 비중은 사실 까메오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크래딧에서는
매우 상위에 위치해 사뭇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고니 위버는 연기 자체보다도 <고스트 바스터즈>와 연관이 되어
슬쩍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렇듯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을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설득시키기 위해,
좀 더 일반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영화인 동시에, 영화 감독 미셸 공드리의 자전 적인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이다.
잭 블랙이 마구 웃겨주는 코미디를 생각했다면 Sweded한 영화 장면 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장면을 찾아볼 수 없겠지만,
감독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터널 선샤인> 못지 않은 흥미로운 감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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