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이었던가. 이 때 내 경제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턱 밑까지 차다 못해 혀끝으로 뛰쳐나오기 직전이었던 이 때. 내게는 2007년 최고의 영화였던 <원스 (Once)>의 주인공이자, 이미 음반으로 더욱 익숙해진 존재이기도 했던 그들 'The Swell Season'의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많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돈이 어찌되었던 누리고 보자는 성격인 나는 이들의 공연에 한치에 주저함도 없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예매 시작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예매를 하기에 이르렀다(할부는 아직도 계속된다!!). 2007년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 주인공들의 내한 공연 이라고는 하지만, 이 당시 비슷한 시기에 예매를 했던 다른 공연들과 비교해 보자면, 내가 The Swell Season의 공연을 택한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들 가운데는 거의 10년을 기다려온 Jamiroquai의 내한공연 관람 포기가 있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이토록 기다려왔던 그들의 공연이 바로 어제와 그제 이틀간에 걸쳐 있었다. 나는 18일(일) 공연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공연장인 세종문화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일종의 포토존에 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제서야 아주 조금 실감할 수 있었다. 아, 참고로 이번 내한 공연을 한 The Swell Season은 잘 알려졌다시피 영화 <원스>의 주인공인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르글로바로 이뤄진 프로젝트 밴드이며, 영화 사운드 트랙 외에도 앨범을 따로 발매하기도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는 이들 외에 글렌 한사드가 소속된 아일랜드의 인기밴드 '더 플레임즈 (The Frames)'도 함께 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깊었던 공연이었다. 사실 영화 <원스>를 접하기 이전부터 플레임즈를 알고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되었던 나로서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저번 bjork 내한공연 때 기념 티셔츠를 공연 끝나고 사야지 했다가는 결국 못사고 말았던 기억을 되살려, 이날은 도착하자마자 티셔츠 부터 구매했다. 아, 그리고 내한공연 기념 포스터도 추가로 구매했다. 그런데 구매하려고 보니 현금이 모자라 세종문화회관 밖의 인출기로 향했는데, 근처 일식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모여있길래 보았더니, 다름 아닌 글렌 한사드가 일행과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부터 나는 마치 파파라치 같은 습성을 스스로 자극하여 그의 모습을 밀착 촬영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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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이렇게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의외의 장소에서 글렌 한사드를 만나 크게 동요되기 시작한 내 심장은 공연장에 들어서면서 더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공연장 내부의 모습은 대략 이러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공연장이 세종문화회관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려했던 것처럼 이들의 공연과 세종문화회관은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일단 사운드 자체가 별로 좋지 못했는데, 피아노를 비롯한 대부분의 악기들을 단순히 볼륨만 강조하다보니 전체적인 사운드 완성도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았고, 몇몇 곡에서는 귀가 불편할 정도였다. 그리고 스탠딩이 아니라 좌석제인 점도 불만스러운 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클래식 공연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암묵적으로 전하는 공연장의 구조가 불만스러웠다 해야겠다. 지난해 펜타포트에 플레임즈가 내한한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2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서만 관람하려니 역시나 좀이 쑤실 수 밖에는 없었다. 단순히 앉아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활동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공연을 함께 즐긴다기 보다는 이들의 일방적인 공연을 그저 감상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물론 감상만으로도 황홀하지만 @@). 아마도 스탠딩으로 이뤄지는 다른 공연 이었다면 더 자연스럽게 노래들을 따라부를 수 있었을 것이고, 더 크게 호응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분위기 자체가 조용하게 흐르다보니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여튼 아쉬운 점은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인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날 공연에는 수 많은 명장면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연의 첫 장면이 가장 인상깊지 않았나 싶다. 길거리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절규하듯 노래하는 영화 <원스>의 첫 장면처럼, 자신이 아끼는 낡은 기타를 홀연히 들고 나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기타반주 만에 의지하여 'Say It To Me Now'를 불러주었는데, 아, 절로 소름이 돋았다. 글렌 한사드의 매력은 서정적인 감성과 폭발하듯 터지는 가창력이라 할 수 있는데, 세종문화회관을 몇 바퀴는 돌고도 남을 가창력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이 곡의 임팩트는 실로 대단했다.




노래가 끝나고 짧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한 글렌 한사드의 옆으로 빨간색 치마를 입은 마르케타가 걸어나왔다. 초반에는 영화 속에 삽입되었던 곡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Lies'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예전 영화를 인상 깊게 보고 난 이후에 한동안은 유튜브를 전전하며 이들의 공연 클립들을 일일이 다 찾아 하나하나 감상했던 때가 있었는데, 실제 눈 앞에서 글렌과 마르케타가 서로 눈을 맞추며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꿈만 같았다. 영화에 수록된 곡 외에 'This Low', 'The Moon'같은 Swell Season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연주하였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영화에 수록된 곡들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When You Mind's Made Up'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원, 투'하는 곡 시작 전 글렌의 준비 신호마저 외워버린 곡 'Falling Slowly'가 드디어 연주되었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곡이라 부족한 실력으로 연주도 해보고 했던 곡이라 특히 기대되기도 했는데, 정말 수천번도 더 듣고 본 노래와 장면이지만, 또 한 번 감동스러울 뿐이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글렌이 곡 중간중간마다 곡에 담긴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참 '착한' 그들처럼 노래 속에 담긴 메시지들도,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는 그 속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그 상처를 달래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들처럼 참 착하기만 했다. 공연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영화 속 장면처럼 글렌이 즉흥적으로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를 부르던 순간이었는데, 영화 속 처럼 처음에는 감미롭게 들려주다가 그 헤비하게 변하는 장면까지 그대로 연출해 주었다. 자신도 재미있는지 참을 수 없는 록커의 본능을 살짝 살짝 표현해주곤 했다. 공연장의 사운드 시설이 별로 좋지 못해 그가 디스토션을 걸고 연주할 땐 사운드가 별로 좋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느낌만은 제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의 1부라고 봐도 좋을 순서가 끝난 뒤부터는 마르케타가 먼저 홀로 나와 'The Hill'을 불러주었는데, 아...ㅠㅠ 이 장면은 그대로 영화였다. 마르케타의 라이브가 이리도 감동적일 줄이야. 정말 5분이 안되는 시간 동안 완전히 얼어 붙은 듯이 멈춰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는 '건전지송'으로 더욱 익숙한 'If You Want Me'
가 이어졌는데, 확실히 국내에서는 더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영화 엔딩 크래딧에 삽입되었던 'Once'가 이어졌고, 앵콜 요청이 있은 뒤 다시 무대로 나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모두가 (드디어) 함께하는 분위기 속에 흥겨운 피날레가 이어졌다.




행복해하는 더 플레임즈 멤버들의 표정도, 살랑살랑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노래하던 마르케타의 모습도, 그리고 항상 따듯했던 글렌의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보통 같으면 카메라 촬영 제제가 조금은 허술해지는 마지막에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몇 컷이라도 건지려고 안간힘을 썼었겠지만, 이 날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뭐 비매너이기도 하고, 수십명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와중에도 계속 제지하러 여기저기 동분서주하는 세종문화회관 직원이 안쓰러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진 찍느라 이 순간을 찰나일 지언정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모든 내한 공연이 그러하듯, The Swell Season의 공연도 어느덧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들의 온기는 영화가 그러했듯, 음악이 그러했듯, 내 맘 속을 영원히 따듯하게 해줄 것만 같다.







워낭소리 (Old Partner, 2008)
삶과 죽음의 관한 담담한 여정


<워낭소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재쳐두더라도(하지만 재쳐두기엔 그간 선댄스가 주목한 작품들은
대부분 다 좋긴 했다), 다큐멘터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던 내게 개봉 훨씬 이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었다.
사실 40년을 함께한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것은 어쩌면 '인간극장' 정도의 소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영화라는 포맷으로 선보이는 이 작품에 남다른 기대가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왠지 보기도 전에 내용을 다 알것만
같았고, 보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이 영화는, 의외로 단순히 할아버지와 소와의 애틋한 관계만을 조명한
단순한 작품이 아니었으며, 인간극장처럼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서,
그 과정 속에서 더 깊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미깊은 다큐멘터리였다.




70이 넘는 평생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최노인에게는 무려 30년이나 함께 해온 소 한마리가 있다. 이 소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농사를 함께 지어온 가장 믿음직한 동료이며, 할머니의 계속 되는 구박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함께했던 파트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을 전해듣고 예상했던 것은 이렇듯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 속에서,
소가 결국 할아버지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겪게 되는 일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소에게 다정하게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소가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물론 관객들까지 슬픔에 젖도록 만드는 구성일
것으로 알았었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이렇게 일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지만 할아버지에게
소는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굴레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항상 말없이 묵묵히 일을 해왔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적이
없으며, 더 나아가 얼핏 봐서는 늙어서 자신 몸 하나 겨누기도 힘겨워 보이는 늙은 소를 할아버지가 고되게 부려먹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자식처럼 살아왔는데, 그 흔한 '누렁이'같은 이름조차 없다. 그냥 '소' 라고 하거나
화가 날 땐 '소새끼' 일 뿐이다.

소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의 말처럼 주인을 잘 못 만나서 사람으로 치면 벌써 세상을 떠날 나이가
지났음에도 매일 같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 일을 해야 한다. 어찌보면 할머니의 말이 더 설득력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서
그렇지 사람이었으면 벌써 욕을 해도 한 바가지는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사람이었다면 벌써 소에게 맞아 죽었을 것이라며
자신이 소에게 고된 삶을 주었던 것을 인정한다. 이렇듯 겉으로 보기에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 둘은 표현방법이 일반적인 경우가 틀릴 뿐이다. 할아버지는 말 한 번 따뜻하게 하는 법이 없지만,
성치 않은 다리를 이끌고 매일 소를 먹일 '꼴'을 배러 가고 그 힘든 농사도 소가 농약먹은 풀을 먹으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는 힘든 길을 고수해왔다. 소 역시 말 못하는 동물이긴 하지만(동물은 말을 하지 못할 뿐, 표현은 분명히
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힘듦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힘든 길이면 가지 않겠다고 힘을 써볼 수도 있고, 내키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지만 소는 항상 할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따른다.
이 관계를 주종관계로 보게 되면 마치 소가 내내 희생만 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이 관계를
그려내는 방식은 이들을 주종관계로 보기 보다는, 동반자 혹은 파트너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카메라 구도나 이야기 구성면에서 보았을 때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아니라 함께
삶과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동일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마치 두 인물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듯한 구도가
이 영화에는 자주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소다. 서로 겨누기 힘든 다리를 발 맞추어
가며 걷는 장면이나, 담배를 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할아버지의 옆으로 포커스 아웃된 소의 모습을 담는 다던가,
무릎을 끌며 농사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저 멀리 떨어져서 지긋이 바라보는 소의 시선을 담아낸 것이 그렇다.
할아버지는 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소리내어 '아파, 아파' 하던 것은
말 못하는 소의 심정을 대신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파올 때마다 아마 소도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가 예전 같지 않자 할아버지는 수의사를 불러 소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데, 수의사는 길어야 1년 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후 할아버지는 우시장에 나가 새끼 밴 암소 한마리를 집으로 사오게 된다. 이 암소가 집에 오게 되면서 늙은 소는 그 동안
사용하던 자리도 이 소에게 내어주고, 이 젊은 소에게 힘으로 밀려 먹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이 암소가 송아지를 낳게 되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된다. 이 힘있는 암소와 어린 송아지는 할아버지가 처해 있는
상황에 그대로 비유된다. 모든 농사를 직접 손으로 짓고 농약도 전혀 치지 않아 모두 손수 벌레를 잡아주고, 잡초를 일일히
제거해야 하는 방법을 고수해온 할아버지에게 빠르고 간편한 농사 기계와 농약은, 나쁘다기 보다는 가는 길이 틀리다고
해야겠다. 모든 편리함을 마다하고 고집스럽게 가장 힘든 길을 택한 할아버지에게, 아니 그것이 더 힘든 길 인줄도 모른채
그저 묵묵히 열심히만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급속하게 변해가는 세상은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다. 할머니는 이 고집스러운
할아버지에게 제발 좀 편하게 살자고, 소를 팔자고, 농약을 치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하지만, 할아버지는 진짜 안들리는지
아니면 안들리는 척 하는 건지 대답이 없다. 어쩌면 대답할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살아가는 것에만 열심이었던
그의 인생에 변화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세상의 문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큰 결심을 하고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갔다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가격들을 듣고 다시 소를 끌고 돌아오게
되는 장면은, 할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이 세상과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런 소는 돈주고 데려가라고
해도 안가져 간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할아버지는 큰 상처 아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에게 크게 한 소리를
해주고는 집으로 소를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나중에 송아지 역시 팔려고 하는데 가격 면에서는 역시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가격에 송아지를 팔게 된다. 송아지를 팔아버리게 된 것이 단순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FTA관련 뉴스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늙은 소 역시 헐값에 팔아버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 늙은 소는
자신과 똑같은 세상과 멀어진 존재였기에 할아버지는 팔아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소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워낭소리>에는 의외로 제 3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 어쩌면 할머니는 관찰자적 입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자신처럼 고생 많이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예기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열 여섯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할아버지에게 시집와서는 지금까지 이렇게도 고집스러운 할아버지와 살아왔지만,
말로는 온갖 불평들을 할아버지에게 쏟아내지만, 그 후회스러운 불평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직접적으로는 어린 시절 남의 집 살이를 하면서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만 했던 할아버지가 그 이후에도
습관적으로 매일 같이 일을 해야만 하는 모습이 안쓰러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할아버지가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 고집을 꺽을 수 없는 것에 안쓰러운 것이다.

편리하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곧이 곧대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도를 가는 이의 삶이 간편한 삶에 의해
잠식당하는 것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어찌보면 할머니의 입장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항상 할아버지가 하는 일을 묵묵히 돌봐주고 있는 것이다.




<워낭소리>는 소가 죽는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이 죽음 자체를 극 적인 소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데, 실제로 영화는 이 소의 죽음 자체보다는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매일 같이 아무리 힘들어도 발걸음을 일으키던 소가 어느 날 아무리 애를 써도 일어나지 않자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죽음을 감지하게 된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수의사의 말이 있은 후, 무려 40년 동안이나 코를 두르고 있던
쇠꼬뚜레와 고삐를 풀어주며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그 동안 애 많이 썼단'말을 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삶과 죽음에는
연연하지 않고 무덤덤할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이지만 이 순간 이들 모두는 매마른 피부 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슬픔 보다는 감사의 감정이 더 큰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워낭을 손에 쥐고 있는 남겨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는 담담히 보여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보지 않고서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질 않았다. 어느새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대처하는 노인의 지혜를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어버린 것이다.





1. HD로 촬영된 영상과 친절한 자막은 감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영화를 보고나니 나도 대체될 수 없는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어떻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3. FTA를 반대하며 미친소를 외치던 시위 행렬 앞으로, 할아버지와 소가 지나가던 장면은 정말 묘한 순간이더군요.
   더군다나 소가 한 번 스윽 돌아보는데, 오만가지가 연상되는 장면인듯.

4. 이번 감상기는 평소보다 더 정리가 잘 안되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느림보에 있습니다.






버터플라이 (Butterfly, Le Papillon, 2002)
노인과 아이가 벌이는 현문현답(賢問賢答) 로드무비

2002년작인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는 2006년에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있는데, 정식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위드블로그와 함께한 시사회 기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사실 2002년 작이라는 점도 그렇고,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저 '착해만 보이는' 아우라 때문에 그다지 보려고 애초부터 기획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앞선 이유로 보게 된 영화는 생각보다는 덜 심심했고, 나름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었으며, 예상했던 대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 어제 명동 거리는 몹시도 추웠는데, 나비가 나는 따뜻한 풍광을 담은 영상과 노인과 아이가
주고 받는 알콩달콩한 대사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마음 한 켠을 조금이나마 뜨듯하게 뎁혀주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출발 스포일러 여행 등을 통해 이미 알려져다시피 포스터에 등장하는 노인과 아이가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게 되는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나비를 수집하는 할아버지 줄리앙과 이집 위층에 사는 외로운 소녀 엘자는 우연한 기회에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1년 내내 딱 며칠만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나비 '이자벨'을 채집하려 떠나는 줄리앙의 여행에,
부모님이 잘 돌보지 않아 항상 외롭던 엘자는 줄리앙의 동의 없이 함께 하게 된다. 이렇게 떠나게 된 여행은 뒤늦게 딸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엘자의 엄마에 의해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되고, 줄리앙과 엘자의 여행은 일종의 납치극으로 세상에
비춰지게 된다. 좀 더 코믹함을 강조하려는 영화였다면 납치극으로 오해된 과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뤘겠지만,
<버터플라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나중에 엘자 엄마와 줄리앙을 만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연결고리일 뿐이고 영화의 중심은, 이 둘의 여행과 그 과정 속에 담겨있다 하겠다.

엘자는 항상 외로운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움을 넘어서 영특한 소녀라 할 수 있는데,
일단 관객은 이 맹랑한 소녀 엘자와 노년의 줄리앙의 대화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너무 어른스럽고 때로는
너무 철없는 질문들은 던지는 엘자에게 줄리앙은 때로는 친손녀처럼 다정하게, 때로는 너무 귀찮아 신경질도 내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서 둘을 점점 서로를 배워가게 된다. 아이는 노인에게. 노인은 아이에게 말이다.




포스터에서 벌써 알 수 있었듯이 이 영화는 아이와 노인이 관계를 맺는 전형적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과 아이가 등장한다고 해서 철없던 아이가 노인에게 지혜를 배워 결국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마무리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츄어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왜 이래, 아마츄어같이). 대부분 노인과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노인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설정이 대부분인데, <버터플라이>역시 마찬가지다.
줄리앙은 여러 종류의 나비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집가인데, 그가 이렇게 나비 수집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영화 중반에야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먼저 떠나보낸 기억 탓인데,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은 줄리앙을
나비 수집이라는 일종의 도피처를 갖게 했고, 그것으로서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항상 자신을 족쇠고
있는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엘자와 함께 여행하게 되면서 점차 하나 둘 씩 깨닫게 된다.

사슴을 잡는 것은 밀렵 행위고 나비를 수집하는 것은 고귀한 행동으로 넘어가려던 안이한 생각은, 순수한 소녀의 눈에는
똑같은 나쁜 행위로 보였을 뿐이고, 가장 단순하고 뻔한 질문들만 던지는 엘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줄리앙은 잊고 있었던,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인정하는 방법을 점차 배우게 된 것이다.
중간에 들린 민박집에서 계속 고장한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는 은유적으로 줄리앙의 삶을
표현하고 있고,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수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은유라 할 수 있겠다. 마치 가지도 않는 시계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처럼 줄리앙은 돌이킬 수 없는 일에(다른 말로 하면 꼭 자신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에),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고 아파했던 것인데,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직접 수리해 준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이 짐을
벗어버리는 점을 배우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앙에게 엘자는 매개체라고 보면 되겠다. 줄리앙은
이 꼬마소녀의 맹랑한 대답들처럼 다 알고는 있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엘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버터플라이>가 전형적인 로드무비라고 보기는 어렵짐나, 이 영화의 주제는 로드무비라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로드무비라는 것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려고 길을 떠나곤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부분은 길 위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의 것들을 통해 처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것을 깨우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터플라이>는
줄리앙의 로드무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렇게도 희귀하고 갖고자 했던 나비 '이자벨'을 스스로 놓아주는
장면은, 드디어 줄리앙이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것을 상징한다(이자벨을 찾으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이자벨의 애벌레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설정은, 주제를 설명하는 매우 직접적인 은유일 것이다).
엘자 엄마의 이름이 '이자벨'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숨겨놓은 귀여운 설정 중 하나였다. 원제인 '나비(Le Papillon)'에서도
알 수 있듯, 고치를 벗고 스스로 나와야만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줄리앙에게 씌워진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영화 초반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아이의 순수함에서만 던질 수 있는 이른바 '현문'이다. 어린 아이와 나이 많은 노인은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표현에 있어서는 단순하지만 때묻은 어른들이 선뜻 대답하기에는 쉬운 질문들이
아닌데, 줄리앙 역시 처음에는 어른의 시각으로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느냐'라는 식의 '우답'들을 내어 놓는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래딧에는 두 배우의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노래가 흐르는데, 이 가사들을 보면 영화 초반에는
'우답'들을 내어놓던 줄리앙이 이 노래 속에서는 엘자의 '현문'에 맞춰 '현답'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문현답 (愚問賢答)'이 아닌 '현문현답 (賢問賢答)'. 이 곡이 단순히 귀여운 불어발음과 재미있는 가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엘자를 연기한 클레어 부아닉은 그 깨물어주고 싶은 불어 발음과 더불어 웨인 루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까지(웨인 루니의
귀여운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수긍할 수 있을 듯), <버터플라이>의 전체 온도를 2도 쯤 상승시키는 귀여움을 선보였다.
어른스러운 아이, 맹랑한 아이 캐릭터는 여럿 있어왔지만, '엘자'를 보면서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유명배우인 미셸 세로의 편안한 연기도 엘자와 좋은 콤비를 이뤘던 것 같다(참고로 미셸 세로는 200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화려하고 치밀한 영화들 가운데 <버터플라이>는 분명 조금은 심심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심한 영화치고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1. 돌틈에 대신 들어간 그 남자아이는 어찌되었는가?
 '난....혼자 몸이 작았을 뿐이고, 그냥 할 수 있냐길래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고, 이미 몸에 로프 감겨 있고!, 엄마 보고 싶고 ㅠㅠ'

2. 예전 조르디가 불렀던 노래 이후 오랜만에, 아이가 부른 중독성있는 (불어로 부른) 곡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슬아~' 이후 대화체로 이뤄진 인상적 곡이기도 하고 ㅎ



3. 아무리 프랑스에 사는 할아버지 라지만 'NBA'를 모르다니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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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2008)
사랑과 질투와 분노의 끝까지 치닫는 치정극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상당히 걱정과 우려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일단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전문가들의 평도 좋지 않았고, 개봉 뒤 만난 일반 관객들의 평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지 않다기 보다는 '최악'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올 정도였는데, 원래 이런 타인의 평에 좌지우지 되는 편은 아니지만 어쨋든 본래 보다는 훨씬 낮춰진 기대치를
가지고 극장을 찾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아, 개인적으로도 이런 평들에 앞서 분명 <쌍화점>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되는
작품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인상깊게 보아왔던 이로서 유하 감독의 신작임에도,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었다. 단순히 사극을 단 한번도 연출해보지 않은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로서 유하 감독의 이야기가 시대극과 어울릴 만한가를 생각해 본다면, 잘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장점들은 현대극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군상을 표현해 내는 것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고려 시대에 왕과 왕비, 호위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 하기에 충분했다.

결론적으로는 많은 대중들이 실망한 것처럼 아쉬운 부분도 많았으나, 이야기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치정극을 연출해내는
유하 감독의 재주는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지는 것 보다 더 큰 외면을 받는 이유는 첫 째, 홍보 측면에서
치정극으로 알려지기 보다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서사블록버스터로 포장된 점일 것이며, 두 번째는 <미인도>와 맞물려
'누가 누가 더 야한가'에만 집중된 시선일 것이고, 세 번째는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역사에 조금만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인물이 공민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민왕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 <쌍화점>에서는 분명 '공민왕'이 아니라
그냥 '왕'이라고만 칭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픽션에 범위가 (완전한 픽션에 측면에서 봤을 때)크지 않지만
영화 시작 전에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없다면 실제 역사와 비교하여 외곡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거
자체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고려 시대를 분명히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쨋든 픽션이라는 얘기다.
주진모가 연기한 '왕',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켰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그리고 원나라에서
왕에게 시집온 왕후(송지효), 이렇게 3명의 인물이 벌이는 치정극이 이 영화에 주된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치정극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유하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관계의 끝까지 가보자'라는
감독의 의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후반 부에 가면 '이쯤이면 끝나겠지'하는 지점이 적어도 두 번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느낀 이유가 극이 늘어지고 지루해져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 정도에서 복수던 헤피엔딩이던
마무리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쌍화점>은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가 반영되어서인지 일반적인 지점에서 몇 번이고 더
나아간다. 그야말로 '치정극'인 셈이다. 자고로 치정극이라 하면 사랑으로 인해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을 얼마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유하 감독의 <쌍화점>
연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내면에 감정선은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두 얼굴의 캐릭터들, 속마음을 감춘채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해야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배우들은 말을 할 때보다 말을 하지 않을 때 더더욱 연기를 해야하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감정선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크게 좌지우지 되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어색한 문어체 대사 표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음을 동의한다.
특히나 조인성은 일단 연기 여부를 떠나서 사극에서 통용되는 어투와는 이질감 있는 외모를 갖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그의 어색한 발음 연기와 더불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도록 만든 계기가 된 듯하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미 <주몽>으로
사극을 경험했던 송지효의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하겠고, 주진모의 경우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화란 한 번 유치하거나 우습게 느껴지면 다시금 중심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장르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두 현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이 한복입고 어색한 문어체 대사를 할 때 '푸훗'하고 웃어버린 관객들은,
이어 벌어지는 동성애 코드가 더해지면서 이 이야기에서 점차 멀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관람할 때 관객들이 영화에서 멀어짐을 느꼈던 지점은 여러 번 지적했던 것처럼 조인성과 주진모의
배드씬이 등장했을 때 부터였다. 한 침대에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이 수근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 이들이 연기를 어색하게 해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물론 이후에 장면들에서 이 둘의 동성애
연기가 어색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특히 동성애 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동성애'자체가 중심이 된 영화들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현실 과의 힘겨운 싸움이 주가 되기
마련인데, <쌍화점>의 경우는 동성애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일반적 삼각관계가 조금 더 확장된 경우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궁 밖에는 나가본 적도 없고 오직 궁 안에서 왕과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홍림에게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사랑이 가능한 세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일단 홍림이 왕과의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에 눈 뜨게 되는
계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왕을 위해서 혹은 왕이 주선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장
믿을 만한 신하였던 홍림에게, 후사를 위해 왕비와의 잠자리를 명하게 되는데, 이를 문 밖에서 바라보는 왕의 질투가 홍림이
아닌 왕비에게 쏠려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왕이 사랑하는 사람은 홍림이기 때문에 홍림이 왕비와 관계를 갖는 것을
참을 수 없고, 더나아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하지만 왕은 이런 고통을 잘 컨트롤
해낸다. 세 번째인가 관계를 맺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해 이들을 엿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참아낸다.

이걸로 끝났다면 그냥 좀 독특한 취향을 가졌던 왕의 이야기로 끝났을 수도 있지만, 왕이 주선했던 이 관계를 통해 홍림이
새로운 세상에 눈 뜨면서 이야기는 점차 발전한다. 물론 홍림이 눈뜬 것은 동성간의 관계 밖에는 몰랐던 그가 이성과의
관계에 눈 뜬 것이기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왕 밖에는 몰랐던(혹은 모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놓여있던) 그가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깊은 관계를 처음 경험하면서 얻게 된 일종의 호기심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그것이 동성이던 이성이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에 심한 불편을 느끼던 홍림이,
관계를 거듭할 수록 이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좀 더 욕정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중에도 이 '욕정'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는데, 과연 홍림이 이성과의 욕정에만 사로잡혀
이 같은 치정극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유하 감독은 본래 부터 그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잘 표현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정 위주의 동기만을 너무 강조한 듯 하다. 그런데 본래 치정극이란 욕정이 동기나
소스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를 최종 결정하고 움직이는 주된 요소는 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를 움직이는 것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투와 집착, 애증 등이 주된 요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홍림과 왕비는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마치 둘 모두 욕정에만 잠식당한 듯 마치 자랑하듯 다양한 체위에만 몰두하는 듯 보인다.

이들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이부분이었다. <미인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이 영화와
비교되곤 하는 <색, 계>의 경우는 분명 그 중심이 '욕정'에 있었다. '愛'가 아닌 '色'이 제목에 등장했던 것처럼 반역자를
처단하려는 애국심마저 잠식시켜버렸던 '욕정'이 분명하게 중심이 된 영화가 <색, 계>였다면, <쌍화점>은 '욕정'보다는
'애정'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라고 봐야하는데, 이슈에 민감했던 탓인지, 아니면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인지,
옷을 입고 있을 때 말 없이 표현해 내는 인물 간의 감정들은 참 좋았지만, 옷을 벗고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쌍화점>의 리뷰 제목으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주진모(그가 맡은 캐릭터)다' 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어찌보면 세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애처롭고 불쌍한 이도 왕이며, 굳이 결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정 속에서 가장 상처 받는 이도 바로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비가 아이를 회임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왕비마저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음에도 왕비에게 중전에 예우를 다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홍림을
던지면서까지 관계를 맺게 하였고, 이후에 홍림과 왕비가 눈이 맞아 자신을 번번히 속이고 관계를 맺어온 것을 눈치 챘음에도
용서하려 했고, 계속 그러 한 뒤에도 목숨만은 살려주는 아량을 배풀었으며, 왕비를 죽였다고 까지 속여 홍림을 궁으로 오게
만듬으로서 홍림과의 오해를 마지막에라도 풀고 싶어했던 그였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원나라에 속국으로 전락한 나라의
억울함도 보살펴야 함은 동시에 자신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려는 대신들의 음모에도 맞서 싸워야 했으니 여간 피곤할 일이
많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그리고 따지고보면 왕은 모든 것을 자신을 희생하면서 배려했음에도 결국 모든 파국을
자신의 몸으로 몸소 흡수해야 했던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왕의 이런 안쓰러움은 마지막에 가서 더욱 더 골이 깊어진다.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복선들이 있는데 영화 초반 궁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던 '건룡위'의 한 인물을 용서해준 일을 두고, 왕은 홍림에게 너도 나와 함께 궁밖으로 도망칠 만한 용기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는 후반 부 왕비와 홍림이 궁밖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왕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왕과 홍림의
좋은 한 때에 왕이 그린 그림을 보고 홍림은 '저도 이왕이면 활을 쏘고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마지막에 왕은 이 그림을 홍림이 원하는대로 새로 그렸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한 건 홍림은 끝내 알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 왕과 홍림의 마지막 듀얼 씬 가운데 두 사람의 칼에 의해 이 그림은 반으로 잘려지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확실히 홍림이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완성된 것을 모르고 죽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왕비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있다는 것은 보여주는데, 왕비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왕에 대한 분노가 끝까지
치밀었던 홍림은 왕비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뉘우치며(사실 왕비를 죽이지 않았다고 봤을때
홍림이 왕에게 잘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분노할만한 구실은 없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남은 힘을
써서 고개를 왕 쪽으로 애써 돌려놓아 그를 바라보며 목숨을 거두게 된다. 이는 너무 진부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관객들을 속이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에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라는 표면적 영상에 적응하지 못해 작품에 공감하지 못했던 관객들을 아쉽다고 했던 나로서도,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극한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다. 초반 왕비가 노래하는 장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기는 했으나 심하지는 않았었는데, 후반 연회 장면에서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간 주진모가 보여주었던
대사 톤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공기의 보컬이 등장해, 립싱크를 넘어서서 기존 분위기와 전혀 섞이지 못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 듯 했다. 더군다나 가사 자체가 '쌍화점에 쌍화사러 갔다가' 뭐 이런식이라 공감하기 쉽지 않은 가사들인데,
분위기마저 이를 돕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주진모는 역시 말하지 않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면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된다. 조인성과의 배드씬 촬영을
앞두고 한달 만 연기해 달라고 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던 촬영이었을텐데, 홍림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는 왕의 감정선을 비교적 잘 연기한 듯 싶었다. 조인성의 경우 일단 사극의 연기톤과 분위기와는 끝내 완벽히
섞이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나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송지효의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도록 연출된 듯 했는데, 대사 전달 측면에서는
세 배우 중 가장 나았다고 생각되며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고 얘기하고도 싶다.

<쌍화점>에는 몇몇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데, 일단 초반 연회에서 자객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액션씬 연출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칼로 베어졌을 때 피가 튀는 것이 너무 인위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나중 듀얼 장면에서도 두드러지듯
와이어 사용이 너무 티가 나는 액션이었다. 일부에서는 액션 영화로 알려졌던 만큼(?) 배드씬과 더불어 액션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많았을법 한데,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액션연출이었던 것 같다. 유하 감독은 주먹 싸움 연출에
훨씬 재능이 있다고 봐야겠다.


<쌍화점>은 조인성이라는 스타의 출연과 조인성과 주진모의 파격 동성애 장면, 그리고 송지효라는 여배우의 노출로 화제가
된 작품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보다는 인물들의 내적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려고 애쓴, 고려발 치정극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유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인물간의 갈등 구조가 끝까지 가는 치정극의 효과는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나, 사극이라는 불편한 옷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느껴졌던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오퍼스 픽쳐스에 있습니다.








볼트 (Bolt, 2008)
트루먼 쇼의 후속편 혹은 진행형?

월트디즈니의 신작인 <볼트>는 애초부터 경쟁사인 픽사와 드림웍스의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픽사는 <월-E>로, 드림웍스는 <쿵푸팬더>로 각각 최고의 히트작을 근래 선보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월트디즈니의 신작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는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이유로 기대가 적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픽사의 존 라세터가 총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나, 스틸컷들로 엿볼 수 있었던 3D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교 대상들을 제외하고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디즈니스러운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 여기서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를 논하려고 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간단하게만 얘기해보자면, 월트디즈니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성공을
부러워해 그들처럼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 만의 장점을(그게 혹자들에게는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더라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편이 월트디즈니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런 좋은 예로 지난해 초 개봉했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을
들 수 있겠다. 자신들 만이 가진 히스토리와 장점을 부각시켜 기존의 스토리텔링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던가,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조금씩 가미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는 것이,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좋은 옷을 애써 입는 것 보다는
훨씬 낳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볼트>는 약간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일 듯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3D 기술력은
경쟁사들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놀랍게 성장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 두 단락에는 영화 본편에 대한 내용과 영화 <트루먼 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볼트>의 이야기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를 바로 연상시킨다.TV드라마 속 슈퍼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개 '볼트'는
촬영장 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TV 속 슈퍼독 캐릭터를 보이는 그대로 믿고 있는 또 다른 '트루먼'이다.
악당인 '녹색눈'으로부터 주인이자 친구인 '페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는 볼트는, TV드라마의 내용상 페니가
녹색눈에게 납치되게 되자 세트장내 컨테이너를 박차고 페니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 속에서 볼트는 우연히 촬영장
밖은 물론 이곳이 위치한 헐리우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부로 옮겨지게 되고, 처음으로 가상 현실 공간을 벗어나 현실 공간에
놓여진 볼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TV쇼라는 가상현실에 이것이 가상현실인 줄 홀로 모르는 주인공이 놓여있다는 점은 <트루먼 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트루먼은 가상현실 속에서 이를 깨닫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볼트는 우연한 기회에 가상현실을 벗어나게되,
현실 속에서 자신이 그 동안 겪었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촬영장 문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트루먼 쇼>의 후속편 격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중에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음으로 여전히 <트루먼 쇼>와 동일선상에 놓여진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루먼 쇼>의 경우 평생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았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극적으로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고 결국 세트장 문을
박차고 나서면서 '사람들의 트루먼'이 아닌 '나 스스로의 트루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볼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볼트에게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가상현실 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다.
볼트에겐 바로 '페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페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페니만은 진짜 '현실'일 것이라는 강한 믿음만이 볼트가 힘든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주원동력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와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지만, <볼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디즈니다웠다고 생각된다.
가상현실=악당 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희망과 빛을 대변하는 페니의 존재는, 이 영화를 이야기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만약 정말로 가상현실=악당 이었다면 <트루먼 쇼>의 경우처럼 탈출 하는 것이 곧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도 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트루먼을 안타깝게 여긴 실비아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긴
한다) 페니가 있었기에 <볼트>의 엔딩은 <트루먼 쇼>와는 다른 방향으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볼트가 여정 중에 그 동안 자신의 삶이 가상현실임을 깨닫고 고양이 친구인 '미튼스'에게 평범한
강아지들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는 부분이데, 얼핏보면 이 부분이 마치 <월-E>에서 이브가 자신이 정지되어 있을 동안
월-E가 했던 일들을 영상 자료로 후에 보게 되면서 애틋해 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이 보통 강아지들의 삶으로 일컬어진 일련의 이들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겠다.

'원래 개들은 이렇게 살아' 하면서 보여주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얘기했던 페니와 볼트 간의 '친구'관계를 떠올려
봤을 때(이 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주인'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친구'에 더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주인'과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아지에게까지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줄기차게 '주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계속 '친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들 중 <우리 개 이야기>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볼트>에서 이야기하는
동물과 인간의 친구관계란 어차피 주종관계의 또 다른 이름밖에는 되지 않는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판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했지만 반려동물로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다 키워봤던,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다시 키우고 싶은 사람으로서 <볼트>가 주는 뻔한 감동적 장면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독인 바이론 하워드와 크리스 윌리엄스를 비롯해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
강아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기존 강아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들에서는 현실 속
강아지의 움직임들과는 사뭇 다른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영화 속 '볼트'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정말 실제 살아있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3D 애니메이션 기술력
보다도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더더욱 이 작품이 실감났던 것 같다. 굉장히 미세할 수 있지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강아지만의 작은 움직임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고, 관절의 움직임들도 상당히 오랜 시간 연구한
티가 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고양이 캐릭터인 '미튼스'와 햄스터 '라이노'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특히 '라이노'는 <볼트>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라이노가 보여주는 오타쿠적인 설정도 재미있었고, 볼을 이용한 움직임과 유머스런 장면들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튼스'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었는데, 볼트가 주인공이라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미튼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줬어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튼스가 주인공
이었다면 주인의 무책임함, 그야말로 반려동물을 그저 '애완동물'로만 여기는 인간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볼트가 주인공이니 여기까지 다룰 수는 없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삶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미튼스의 표정에서는 얼마전 한국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보았던 한 작품 가운데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바에 앉아 자신의 처지를 슬프게(정말 구슬프게!) 그들 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기술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볼트>는 얼핏 사전 정보없이 보면 이 영화가 디즈니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휼륭한
3D 그래픽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볼트의 털들은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털'이라는 것이 그래픽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점에서 <볼트>는 제법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영화 속 장면들 영상에서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영상 측면에서 디즈니 작품으로 확 와닿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는데, 마치 <인크레더블>에서 뛰쳐나온듯한 인물들의 이목구비는 이 영화에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듯 하다.




존 트라볼타가 더빙한 볼트의 목소리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존 트라볼타의 목소리가 제법 익숙한 나로서도 영화 초반 이후부터는
그의 이미지를 지우고 극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이다. '페니'는 마일리 사일러스가 연기했는데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노래가 한 곡 흐르는데 더빙 연기를 맡은 두 배우가 직접 노래하고 있다.
오랜만에 존 트라볼타의 노래를 듣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3D 디지털 자막 버전을 보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사실상 상영하는
곳이 없음으로 불가피하게 일반 자막 버전을 선택했는데, 3D 버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더빙 판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한데,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1. 사실 원래 제목은 '뻔한 감동, 그래도 감동' 이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동심의 용솟음이란 -_-;;

2. 영화를 보고나니 다시 한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도 용솟음쳤다.

3. 엔딩 크래딧 디자인의 구성이 마치 <월-E>와 흡사함을 느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월트디즈니에 있습니다.










지난 해까지는 의외로(?) 연말에 영화부분은 베스트를 정리하지 못하고 음반에 관해서만 쭈욱 정리를 해왔었는데,
올해는 음반을 그만큼 듣지도 못한 것도 있고 영화를 워낙 많이 본 것도 있어 본격적으로 올해를 정리하는 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부분을 나누어 선정해 보았는데, 한국영화는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산해보니 의외로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더군요. 그래서 베스트 10을 작성할만한 작품들을
소화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베스트 5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외국영화는 넘쳐나서 베스트 15로 최종 결정하기로 했고,
다큐나 음악영화는 수가 많아서 아예 따로 섹션을 두어 선정할까 하다가 그냥 총 15편으로 선정하게 되었네요).

이미 연말이라 많은 블로거 분들과 전문가 분들이 2008년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셨는데,
한국영화 부분에서 가장 많이 베스트 1위로 선정된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이나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를
개인적으로 끝내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은근히 보려고 했던 한국영화들을 놓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네요. 못 본 영화들은 다음 달에 DVD로라도 감상을 해야겠네요.

한국영화 베스트 5로 선정된 작품들 간에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았으며, 개봉한 순서대로 정렬하였습니다.
각 영화의 이미지나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로 이동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이른바 '물건'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이렇다할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시나리오의 짜임새와 극적 긴장감을 잘 컨트롤하는 연출력은 봉준호 감독의 걸작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으며,
주로 조연으로 출연해 오던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집중 조명을 가져다 주기도 했으며, 하정우라는 신인 아닌
신인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18세 관람가로서 녹녹치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두었다는 것도 놀랍고, 장르 영화가 한국에서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에
반갑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4885 번호를 갖고 계신 분들은 조금 섬찟하셨을듯 ^^;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어찌보면 <추격자>보다도 더욱 지독한 장르 영화라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의 공식블로그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류승완 감독님은 물론,
임원희 씨와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올해 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단편의 코믹스러움과 한국고전 영화들에 대한 비틀기, 그리고 류승완 만의 액션에 대한 애착이 묻어났던 이 영화가
생각보다 더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너무 아쉽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한국영화 베스트 5에 꼽게 된 작품임에도 두 번의 인터뷰에(특히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은 탓에 따로 리뷰를 작성하지 못했던 케이스이기도 하네요.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려 감독님이 이전부터 제 블로그를 알고 가끔 들러주신다는(dp의 닉네임도 기억하고 계셨다는 ㅠ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어 심히 떨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입니다.







사실 <고고70>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아쉬웠던 영화이긴 했습니다. 국내에서 음악영화를 만든다면(특히나 라이브를
직접 소화해야만 하는 음악영화라면) 남자 배우가운데 이견 없이 가장 첫 번째로 고려될 배우인 조승우가 출연하고 있고,
현재 '문샤이너스'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배우로서 출연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음악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최호 감독의 작품이었기에 기대치가 평소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이긴 했죠.
<고고70>은 조승우의 여전한 연기와 차승우의 실제 무대 위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신민아라는
여배우를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영화 내내 만나볼 수 있었던 'Soul' 가득한 음악도
만족스러웠구요. 한가지 아쉬운건 좀 더 흥행이 될 수 있었을텐데, 영화 외적인 소송 문제들이 더 커져 영화를 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린 관객들이 많아, 의외로 금방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베스트 5를 꼽으면서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한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미쓰 홍당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들과 개성 강한 유머코드로 무장한 시나리오로 불쑥 등장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에서 '캐릭터'가 살아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아 몹시도 반가웠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는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과 더불어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캐릭터였으며, 공효진 외에 서우, 황우슬혜 등이 연기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던
생동감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 굉장히 코드가 강한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절로 뿌듯해지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이런 영화라면 언제든 대 환영입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과속스캔들>은 예정에 없던 의외의 영화였습니다.
뻔할 것 같은 제목과 뻔할 것 같은 인물들로 도배되어진 영화일 것이라는 무서운 선입견으로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호평들에 이끌려 보게된 <과속스캔들>은 과연 좋은 가족영화였으며, 괜찮은 성장영화 더군요.
특히나 한국영화를 따져보면 온가족이 볼만한 가족영화나 드라마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연말에 온가족이 부담없이 볼만한 코미디이기도 했고, 캐릭터들도 과하지 않았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박보영이라는 여배우에게 단번에 큰 관심을 집중시킨 영화이기도 했으며,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된 영화,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지만 영화를 선택할 때 선입견은 반드시 버려야할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영화였습니다.




2008년 저의 한국영화는 이렇게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가장 기대했었던
영화이긴 했지만 베스트 5로 꼽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네요. 역시 베스트 5까지 꼽기엔 부족했지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날, 그 길에서>도 인상깊었던 작품이었구요.

내년 한해도 기다려지는 작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해, 봉준호, 홍상수, 장준환, 장진 등
다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감독의 작품들이 내년에 찾아올 예정이라, 2009년도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네요.
(이 가운데는 제 지인 중 한분의 입봉작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쁜 놈이 더 잘잔다>가 바로 그 영화!>

2008년 한해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009년에도 부탁할께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예스 맨 (Yes Man, 2008)
짐 캐리여서, 주이 디샤넬이어서.

12월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정리하면서 이 영화 <예스 맨>을 소개할 때 '짐 캐리가 출연하는 것 만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다'
'거기에 주이 디샤넬까지 나온다니 더할나위 없겠다'라는 식으로 얘기한적이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예스 맨>은
애초부터 그 이야기나 완성도에 기대를 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는 짐 캐리의 출연만으로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은 있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해프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등을 통해 완소 배우로 거듭나고 있던 주이 디샤넬의 출연작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런 기대가 크게 배반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목과 시놉시스 몇 줄로 알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라는 얘기도 되겠네요.
좀 더 보태자면 짐 캐리보다도 주이 디샤넬에 더 완벽하게 빠지게 된 영화가 되었다고 할까요.




(다음 사진이 나올 때까지 한 단락에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스 맨>은 내용에 대해 그리 깊게 나눌 만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 한 단락으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혼자있기를 즐기게 되어버렸으며, 주변의 약속이나 연락에도 그냥 무반응으로 줄곧 대응해 오던
주인공 칼 (짐 캐리)은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가게 된 한 강연회(?)에서 무엇에 홀린 듯 '예스 (Yes)'의 힘, 긍정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 강의에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마치 모든 점쟁이가 '요즘 힘들지'하면
'맞아요, 힘들어요'하면서 잠시나마 혹하게 되는것 처럼), 단순하지만 뻔한 얘기를 잠시나마 곱씹어 보게 된 그는,
반 강요에 못이겨 '예스'를 외치게 된 일이 발전하여 좋은 인연과 결과를 낳게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러면 정말 '서약'한대로
무조건 '예스'를 외쳐보자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정말 거짓말 처럼 이 '예스'로 인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그의 생활은 더욱 활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니 누리지 않았던 삶들을 적극적으로 영유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무조건 '예스'로 답한다는 것을
안 주변 사람들이나 은행의 고객들은 그를 곤욕스럽게 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물론 은행 고객들의 경우 곤욕보다는
긍정적으로 풀리긴 했죠). 이런 예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는 이상한 행동들로 오해를 받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점차 좋은 관계를 맺어오던 앨리슨 (주이 디샤넬)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너무 '예스'를 외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노 (No)'를 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간 간과해 왔다는(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다시금 진심으로 자기 주변과 앨리슨을 받아들이게 된다는...뭐 특별할 것은 없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 영화는 짐 캐리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에이스 벤츄라>와 <이터널 선샤인>의 중간쯤에 위치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약간 어정쩡한 영화가 되버린게 아닌가 싶은거죠. <에이스 벤츄라>같이 포복절도 할 수준의
웃음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짐 캐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손짓 발짓, 대사들로 인해 웃음 짓게 되는 장면들은
종종 등장하지만, 폭발력 부분에서는 그의 본격적인 코미디 영화들만 못하며, 부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왔던 캐릭터가
긍정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며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드라마는 <이터널 선샤인>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는 거죠. 물론 두 작품들과 비교해서 모두 혹은 한 쪽만이라도 완전히 만족시킬 만한 영화가 어디 쉽게 나오겠느냐
생각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지점이 조금 모호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짐 캐리하면 기대하게 되는 웃음의 포인트도 조금 부족했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는 그 메시지의
전달력이나 메시지 자체의 내용도 그리 새롭거나 임팩트가 있지 못했던 것 같구요.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 캐리'라는 전제조건을 적용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쉬움들입니다.
짐 캐리여서 말이죠.




엄청난 폭발력이 있는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따져보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짐 캐리만의 매력과 코미디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짐 캐리는 참 팔 다리가 긴 배우 중 한 명인데, 그의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만들어내는
몸 개그 또한 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몸 개그 장면들 가운데는 그처럼 긴 팔 다리가 아니라면
별로 우습지 않을 장면들도 많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점이 우리가 짐 캐리 영화를 볼 때 너무 익숙해져서
그만의 장점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점 중 하나이기도 하죠.

이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해리포터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고, 포크 가수를 흉내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대충 하는거 같지만 짐 캐리가 하면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포크 가수를 흉내내는 부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포크 가수라기 보다는 Dashboard Confessional 같은 이모코어 밴드를
흉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굉장히 특징을 잘 잡아서 성대모사 수준의 패러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하는 부분 같은 경우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웃음을 유발할 만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북미에서 보신 분들 계시다면 외국인들은 이 한국어 시퀀스를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유창하다기보다는
잘 외운 듯한 티가 나긴 했지만, 한 두 마디가 아니고 제법 많은 우리말 대사가 스크린에서 나오다보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 캐리가 <예스 맨>에서 보여준 연기는 여전했지만 영화 자체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약간 어정쩡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절제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달리면서 사진찍는 장면 등에서는 절로 뿜게 되더라구요 ㅎ




제가 이 영화에 최소한 별 반개를 더 주게 된 이유는 바로 짐 캐리가 아니라 앨리슨 역할을 맡은 주이 디샤넬 때문이었습니다.
주이 디샤넬은 제가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헐리웃의 여배우 이기도 한데, 이렇게 주목하게 된데에는 배우로서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물론 좋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모습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더 돋보였던 것은 이런 그녀의 뮤지션스러운 재능이 영화 속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를 통해서 그녀가 속한 밴드인 She & Him의 음악을 살짝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예스 맨>에서는 그녀의 이런
뮤지션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엿볼 수 있습니다. 극중 배역이 밴드의 보컬이라 직접적으로 여기서 그녀의 노래 실력을
맛볼 수도 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Yes Man'이라는 곡의 보컬을 비롯해 그녀가 직접 노래하고 있는 곡들이
사운드트랙에 담겨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음악이 와닿았던 영화이기도 했는데, 역시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Eels'가 전체적인 음악을 맡고 있어 중간 중간 그의 아련하고 매력적인 보컬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코미디 영화치고는 드물게 사운드트랙을 구매하게 될 것같은 영화였어요. eels와 주이 디샤넬이라면 구입하고도 남죠.
암요(찾아보니 아직 국내에는 라이센스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 해외주문은 꿈도 못꾸는 터라 제발 라이센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뿐 입니다).

주이 디샤넬에 대해서 조금 더 보태자면, <해프닝>에서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가 그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물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맡은 '앨리슨'은 실제 그녀와 많이 닮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밴드 멤버인 것도 그렇고, 자유분방한 듯 하면서도 여림이 느껴지는 '앨리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주이 디샤넬이라는 배우를 좀 더 선보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나온 영화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나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은하수를...>의 캐릭터와 살짝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저는 '앨리슨'의 경우가 더 좋았네요.




이 영화에는 짐 캐리와 주이 디샤넬 외에 조연으로 테렌스 스템프가 등장하는데, 그가 누구인가 하면 왕년에 <슈퍼맨>에서
'조드 장군'역할로 출연했었던 배우이며 재미있게도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다룬(하지만 영화 속 슈퍼맨 보다 더 늙어버릴
때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드 <스몰빌>에서는 슈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의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했던 배우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바로 '예스 맨'이 되라는 강연을 하는 교주스러운 강사로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진지한 포스가 있어서인지
이 캐릭터가 아주 가볍게 그려지지 만은 않더군요. 테렌스 스템프는 특히 목소리가 너무 멋진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 속에서도
그의 멋진 목소리를 충분히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했던 <원티드>에도
출연했었는데, 어쨋든 자주 뵙는거 같아 반갑습니다 ^^;

그 외에 미드 <앨리어스>시리즈의 '윌 티핀'역할로 눈에 익히고,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어느 정도
각인을 새긴 브래들리 쿠퍼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분량이나 역할이 그리 크지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거리가
많지는 않네요.




<예스 맨>은 큰 기대없이 본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코미디 배우들에 비해 짐 캐리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미국적'인 색깔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데 크게 불편함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 않을 듯 하구요.

그리고 저처럼 주이 디샤넬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eels와 주이 디샤넬이 참여한 영화 음악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1. <해리포터>를 비롯해 <300>까지 코스츔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들 외에 조연들 캐릭터를
코스츔 하고 온 주변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무척이나 웃었습니다.

2. 주이 디샤넬이 극중 참여하고 있는 밴드의 음악도 그닥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가사가 좋았죠 ㅋ

3.

이건 그냥 팬으로서 사진 한 장 추가.
너무 예쁘게 포장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가장 평범하게 나온 그녀의 사진을 한 장 골라봤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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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로 일본 내에서도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며 큰 인정을 받고 있는 수오 마사유키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카세 료의 영화이기도 하구요.
제목과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일본의 사법재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강하지만 조용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이 영화가 의외스러웠던 것은 앞선 영화들처럼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왔던(코미디 영화가 아닌 
영화들에서도 유머러스함을 언제나 숨기지 않았던)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이렇듯 심각한 주제와 법정드라마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배우란 어차피 감독과 작품에 따라 연기변신을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지만, 감독의 경우는 자신 만의 스타일이나 세계에서 쉽게 벗어나기도, 전혀 다른 이야기나 장르의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 뿐더러 결과물들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도
걱정이 되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수작이었으며,
특히 이렇다할 영화적 장치 없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되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분노를 동시에 일으키는
순작용을 만들어낸 영화였습니다(여기서 분노란 영화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에 의한 분노죠).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어느 출근 길에 만원 지하철에 탔던 텟페이(카세 료)가 한 여학생으로 부터 치한으로
오해를 받게 되어,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고 이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벌이는 재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이 과정 속에는 그 어떤 영화적 장치들도 없고,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설정된 장면이나 이야기도 없습니다.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일본 사법재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된 뒤 200건에 달하는 재판에 참가하면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재판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떤 이 제도의 문제점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개선
여지가 있는지를 파악한 뒤, 이 이야기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영화는 어찌보면 시종일관
참으로 답답하고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보듯 혀를 차게 만듭니다.

사실 이 영화처럼 감상기의 내용과 영화 속 텍스트가 중복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극 중 인물들의
대사나 독백등을 통해 감독은 물론, 관객들이 하고자 하는 말까지 모두 다 담고 있습니다. 그 만큼 감독이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흔히 법이라는 것을 적용할 때, 죄인에게 유죄를 어떻하면 선고할까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죄가 없는 이들이
어떻하면 유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잘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생각도 이런데, 그 가장 가까이 있는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관심은 더더욱, 유죄에만 관심이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죠.
죄인을 잡아다놓고 무죄라고 판명해 버리면, 자신들의 경력에 흠이 생기게 되고 능력없는 검사, 재판관으로 평가받으며,
결과적으로 정부 권력에서 집행한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은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듯이 99.9% 입니다. 극중 야쿠쇼 쇼지의 대사처럼 '이 99.9%라는 것이 확률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죠. 결국 그 0.1%의 케이스가 자신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며, 대부분이 유죄를
받을 죄인들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경우에도 공정하게 재판받지 못한 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이는 자신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인 텟 페이의 여정은 바로 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텟 페이도 처음에는 '자신은 정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재판으로 가봐야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없으니, 그냥 유죄를 인정하고 보석금을 내면 당일날 풀려날 수
있다는 당직변호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은 '정말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텟페이의 생각이 옳았느냐를 넘어서서, 얼마나 힘든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선택이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기 전이라면 당연히 무죄 상태로서 죄인 취급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법 제도는 일단 유죄로 판명하여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이라도 유치장에 몰아넣고 중범죄자들과 똑같이 취급을 하게 됩니다. 영화는 좁은 유치장에서 생활하고,
취급받는 텟 페이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텟페이는 이 같은 취급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돌아보게 끔 하는 계기가 됩니다. 영화적인 요소를 더 살리려고 했다면,
텟페이가 강하게 반항하고 소리지르며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겠지만, 극중에서는 거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실제로 텟페이와 같은 현실에 놓여지게 된다면, '자신은 정녕 무죄이기에' 얼떨떨함에 아무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영화는 텟페이만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억울하게 잡혀 있는
존재에 대한 시선도 있지만, 그 만큼이나 그로 인해 고통받고 변해버린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친구가 어느새 완전히 법 전문가가 되어 있다던가,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 역에서
광고판을 몸에 쓰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어머니와 친구의 모습을 보면, 이 잘못된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격지 않아도 될 고통을 주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과정을 그리는 수오 마사유키의 시선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조금도 극적이지 않고 조금도 더하거나 줄이지 않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자신과 메시지의 힘을 믿었던 것이지요. 결국 어머니가 유죄선고를 받고 울부짓을 때보다도 처음 광고판을 몸에 두르고
인파속으로 나설 때가 더 슬펐던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결론을 예상할 수 있고,
그런 결과가 별로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실제로 무죄이기에) 점점 텟페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만, 자신 만의 곧은 주관이 있었던 재판관이
결국 교체되고 이 시스템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평가가 조정되면서 점점 텟페이는 유죄로 굳어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재판 시작부터 애타게 찾았던 결정적 증인을 찾았을 때 관객들은 '아,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지만, 이것 역시 그들 나름대로 '해석'되기에 따라 아무런 증언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동영상이 나와도, 직접 방송에서 말을 해도, 오해가 있었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우리의 현실과 다를 것 없죠).

이렇게 까지 울화가 치미는 일들이 계속 생기지만, 그래도 텟페이는 마지막 유죄를 선고 받기 직전까지도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정말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는것'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라는 순진하지만 틀리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현실과 너무 닮아있는 이 영화 속에서는
이런 당연한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텟페이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죄를 합리적으로 증명했음에도
이를 판단하는 법과 제도, 그들에 의해 결국 판단되어 유죄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는 법 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그냥 큰 이익이나 불익이 되지 않는 일들에는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들고, 쉽게 말해 '그냥 좋게 좋게 하는게 서로 좋은거 아니냐'라는 식이 팽배해져 있는
요즘, '아닌건 아닌거다'라고 꼭 외쳐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하겠습니다.




주연을 맡은 카세 료의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구구는 고양이다> <도쿄!> <허니와 클로버> <하나>까지, 최근 일본에서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남자배우라는 그의 연기는 흠잡을데가 없습니다(<박치기>에도 출연했다는데, 이 영화를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음에도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DVD를 다시 꺼내봐야 겠네요). 극중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 나이 인줄 알았는데, 74년 생으로 올해 서른 다섯이더군요.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감정을 폭발하지 않고 시종일관 한정된 내면의 연기로 인물의 심리를 전달해야 하는데,
카세 료는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안한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토 아사카, 야마모토 코지, 야쿠쇼 코지 등의 연기도 특별히 나무랄데는 없지만,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카세 료의 영화이긴해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 모든 메시지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있어서, 감상기를 별도로 쓰기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하구요.

사회 비판적인 텍스트를 오히려 영화적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깊게 어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1. 다케나카 나오토가 까메오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2.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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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은 (부제목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왜 추가하지 않았냐면, 물론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부제목이기도 해서이지만,
이 부제목에 이유를 잘 알 수 없어서 이기도 합니다. '오디어스'는 알겠는데 '환상의 문'은 뭔지.. 그냥 '더 폴'하기엔
너무 쌩뚱맞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너무 홍보적인 면만 강조된 부제목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유명 CF와
R.E.M의 'Losing My Religion'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한 인도출신의 타셈 싱 감독의 작품입니다.
볼거리가 많은 12월 극장가에서도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영화 중 하나인데,
타셈 싱이 감독으로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보니 제작자로 참여한 데이빗 핀처와 스파이크 존스가 더 노출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구요(두 감독 모두 뮤직비디오 or CF 연출 경험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의 대체적인 평들은 '영상은 무척이나 뛰어나다' '이야기는 허술하다' 이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얘기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역시나 볼거리는 대단했으며(근데 미리 이것이 CG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가서여서 더욱 대단하다고 보는 내내 느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 역시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정이 깊게 드러나고 있는 시나리오로,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동화적인
영화의 서술구조로 보았을 때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그 화려하다던 영상미에 대해 가장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4년 반 동안 28개국을 넘나들며 카메라에 담아낸
영상은 이곳들이 지구상에 실존하는 공간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극중 화자가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장소들의 미적 아름다움은, 정말로 어린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동화속 장소에 걸맞는 이질적 미를 뽐내고 있는데, 무려 4년 반동안(기사를 보니 장소 섭외에 총 17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촬영한 영상은 이런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환상적인 장면들을
선사합니다. 특히 감독의 마인드 자체가 CG를 이용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그 맛을 살리기 위해 가능하면
실제로 구현하길 원한 탓에 우리가 스크린에서 이렇듯 존재하지 않을 법하지만 존재하는 장소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특히 오디어스의 성이 있는 푸른 도시는 다른 감독들 같으면 CG를 통해 간단히 색을 입히는 것으로
처리했겠지만, 주민들에게 페인트 통을 무료로 제공하여 실제로 도시의 모든 집의 벽과 지붕을 하늘색으로 칠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나비 섬 같은 경우 피지에 있는 섬이라고 하는데, 정말 판타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고, 인도 조드푸르에 있다는 인상적인 계단의 경우 타셈 싱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근처 주민들도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로케이션 장소를 찾고 섭외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끼고도 남을 것 같네요.



(저 하늘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벽들이 CG가 아니라 실제로 페인트로 칠한 것이라고 하니 놀랄 따름입니다. 제작진에서
페인트를 무료로 사주고 양해를 구하고 칠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몇몇 동의하지 않은 집이 있어서 인가 군데군데
칠하지 않은 집들이 보이더군요 ㅎ)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렇듯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답지 않게 화질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제가 본 극장만의 프린트 문제인지, 아니면 기본 화질 자체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디지털 상영의 그런 칼 같은 선명함은 아니더라도 좀 깨끗한 영상이길
원했는데 전체적으로 어둡고 노이즈도 제법 있는 영상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었으나 워낙에 영상이 영상인 영화인지라 좀 더 좋은 화질로 즐겼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로케이션 이야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얼마나 많은 곳을 촬영하고 수집했는지, 파리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건 1초씩 휙휙 지나가더군요. 그렇게 지난 간 명소들이 제법 많았는데, 잠깐씩 지나간 장면들에
캐릭터들이 있던 걸로 봐서 다 직접 가서 촬영했다는 것이 되길래, 관객입장인데도 너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보니 각국의 로케이션 스텝들 명단이 나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아래 세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심각한 스포일러는 없다 생각되는데 약간의
언급들이 있는터라 표기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오래 전 미국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입원한 남자 환자가 한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주된
스토리인데, 이를 그리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남자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오디어스' 총독을 무찌르기 위해 모인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화자의 입장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청자의 입장에서도 동시에
영화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특히 그 청자가 상상력 넘치는 어린 소녀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어 지는데, 이 구조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야기 자체의 소중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들려주는 이 영웅담은 그것만으로도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각각 총독에게 원한을 진 독특한 배경과
외모의 캐릭터들이 서로 모여서 총독에게 대항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여정은 만화 영화나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익숙한 이야기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이 이야기를 듣는 어린 아이의 입장이 적극 반영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틀려지게 됩니다. 아직까지 세상에 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일 수록 그런 경향이 짙은데, 누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면 그 이야기를 단순히 다른 세상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자신의 세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믿어버리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이야기 그대로 믿게 되고 더 나아가 가족이나 친구들 처럼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자신의 상상속에서 이야기 속에 포함시켜 버리는 것이지요. 영화는 이런 아이의 순수함을
이야기 속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물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야기 속 캐릭터들에게
전개되기도 하죠.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는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들 수 있을텐데, 물론 아주 같은 방식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야기 속의 세계와 이야기 밖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이런 구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아이의 상상력에 맞물려만 진행되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나중에는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남자의 입장이 적극 반영된 이야기 임을 알았을 때,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로워지더군요. 처음에는 장난치듯
남자가 아이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중반 이후부터 남자가 현실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쯤에는
결국 이 지어낸 얘기 속에 남자의 현실적 문제들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알게 됨으로서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분명 이야기의 구조에서 허술함이 느껴지기는 했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는 허술함이 많이 느껴지긴 했는데, 저는 영화에 완전히 동화되서인지(또!), 뭐 어차피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가 몰핀을 얻을려고 지어낸 얘기라고 봤을 때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 합리화까지 하기에
이르렀죠;

개인적으로 이 오디어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고 분량이 적다고 느껴졌는데, 그 만큼 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풀어나갈 여지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장편의 TV시리즈로 제작된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이야기 속
영웅들이 오디어스에게 원한을 품게 된 배경들에 관한 것들도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고, 오디어스의 성까지 가는
여정에 수 많은 에피소드를 배치해 더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워낙에 열려있는 캐릭터들과
방대한 '여지'덕분에 상상력이 불끈불끈 솟을 수 밖에요.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시간과 돈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셈 싱이라는
감독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애정이 있는가를 엿볼 수 있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더더욱 직접적으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물론 좋았지만 끝나고 나서 이야기 밖의 얘기를 들려줄 때
더더욱 큰 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찔끔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얘기가 끝난 뒤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의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나레이션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와 인연을 맺은 남자는 자신이 스턴트맨으로 출연한 영화를 아이에게 선물하였고, 이 아이는 영화 속 인물이 정말
로이 아저씨가 맞는 확인하기 위해 같은 장면을 수십번씩 돌려보기 시작했고, 그렇다 보니 영화가 재미있어졌고,
로이 아저씨가 스턴트 맨이다보니 매번 떨어지고 넘어지고 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다보니 이런 장면들만 보는 습관이 생겼고..
하면서 예전 고전 영화들의 스턴트 장면들과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들이 하나 둘씩 스쳐지나가는데,
이건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키스 씬 모음 장면을 보는 것처럼, 짠한 감동이 느껴지더라구요.
한편으론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처럼 스턴트맨에 대한 존경의 뜻을 넘어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있는
타셈 싱 만의 방식이라고 느껴져서 감동스럽기도 했구요. 앞선 장면들은 편하게 즐기다가 막판에 이렇게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장면이 갑자기 등장하다보니, 갑자기 울컥하는 바람에 적응이 안되기도 했었네요 ^^;




분명 주목받고 화제가 되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로 등장하는 '오디어스'와 영웅들의 이야기였지만,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이야기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다 못해 분출(?)해버린 작품을 만난터라 무척이나 반갑고
감동스러웠습니다.
날카로운 잣대를 가지고 본 다면 헛점 투성이인 영화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영화도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1. 영화 초반에 장면이 그냥 인상적인 영상미로만 의미있는 장면인줄 알았는데, 후반 부에 보니 이 인트로 장면이
    일종의 복선이었더군요.

2. 아역을 맡은 카틴카 언타루는 너무도 귀엽습니다. 요즘은 확실히 아역연기자가 대세군요!

3. 구글리, 구글리, 구글리~~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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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로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에 걸맞지 않는 록큰롤 곡들을 무대에서 노래해
Youtube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국내 쇼프로그램인 '스타킹'에나 나올 법한 정도의 소재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재를 그렸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슈와 화제거리에만 집중해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록을 연주한다' 정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상은 전해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죠(실제로 이 '영앳하트' 코러스 밴드의 단장인 밥 실먼은 쉽게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미 여러 번 '영앳하트'를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에, 또 한번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겠죠. 결과적으로
스티븐 워커 감독에게 영화화를 허락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앳하트의 'Alive and Well' 공연을 앞둔 6주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븐 워커 감독은 매우 영리하게
6주라는 시간 속에 영앳하트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어느 영화 못지 않게 재미있는 유머들과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와 노인의 들려주는 지혜에 대해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제하는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큰롤 인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진리와도 같은 감동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본래 TV쇼를 연출했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짧은 러닝 타임 속에도
의도되지 않은 장면들을 통해 어느 코미디 못지 않은 유머러스함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노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펑크나 록 음악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리는 방법은 특히 돋보이는데, 자칫하면 노인들을 우습도록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이 과정을 그는 적절한 편집을 통해 유머러스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음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행복한 순간이 가득 넘칩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 소닉 유스나 콜드 플레이를 부르는 모습은
설명만 들으면 그저 기이하거나 코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영앳하트가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을 본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절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단장인 밥 실먼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가 놓치지 않았던 점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가요도 그렇지만 팝송의 경우는 더더욱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멜로디나 음악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죠.
영앳하트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이 단순히 노인이 펑크를 부른다 라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워커 감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미덕을 본 것이지요. 바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 말입니다. 확실히 이야기나 노래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어떤 것이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들려주느냐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깊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80년 넘게 혹은 9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는 결코 헛되이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공연 중에 불렀던 곡들의 대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저로서도, 그 노래의 가사들이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관통할 정도로 놀라운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콜드 플레이 (Coldplay)의 'Fix You'의 가사가 이리도 나를 위로하는 가사라고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고,
(물론 크리스 마틴이 부르는 'Fix You'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앳하트의 '프레드 니들'이 부르는 이 곡의 감동만은
못했던 것 같아요)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 줄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공연 중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자
찰나이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확실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흡수력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몇번씩 수술을 치루고, 병으로 인해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노인이 거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하나하나 읖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어쩌면 오리지널 뮤지션이 부른 것 보다도 더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났구요.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과도 같이 <로큰롤 인생>은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매우 영리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멤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병으로 인해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이 과정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바다에서 허우적대도록
'죽음'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죽음이라는 일종의 사건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처럼요. 8,90이 넘는 나이에 멤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지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경지이며, 단순히 두려움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공연 바로 직전에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지만, 단 한 명 동요없이 공연을 끝까지 치루기도 하구요.
그리고 카메라 역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 내에서 부단장이 멤버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릴 때는 버스 밖을 비출 뿐이고, 다른 멤버가(여기선 그냥 멤버라고 표기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맞이 했을 때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훨씬 극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되게 우스운건, 이분들의 80년 넘는 인생에서 겨우 1시간 남짓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히 존재가 사라졌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많이 봐왔지만 <로큰롤 인생>처럼 나 스스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도 '로큰롤 인생 _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고 할까 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음악 자체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의 포스터나 영화의 시작부분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그들이 갖은 어려움 끝에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가 주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도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될까요?  영앳하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마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듯 건네는 말들이 하나하나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하다보니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로큰롤 인생>을 논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는 이들이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공연날 까지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
한 구석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더군요.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은
어쩌면 이들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실제로 소닉 유스의 팬이 아니면 이런 가사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죠),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를 읽고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연습을 해갈수록 가사를 이해해 가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더 포인터 시스터즈의 'Yes We Can Can'을 연습하는 장면 역시 재미있는 장면인데,
'Can'이라는 단어가 무려 71번이나 등장하는 이 곡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해 내는
장면에서는 감동이라기 보다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극 중간 중간에는 이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비지스의 'Stain' Alive' 를 부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곡이 삽입되었던 원작인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패러디한(호리호리한 존 트라볼타가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발이 클로즈업
되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구요. 볼링 치는 그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구요 ~
또 하나 재밌는건, 이 곡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니 굉장히 의미있게 들렸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있어' 라는 후렴구가 이리도 인상깊게 들리다니요!
물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본래 듀엣곡이었던 곡이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솔로곡으로 변해버린 'Fix You'와
교도소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밥 딜런의 곡 'Forever Young'이었구요 (Fix You는 마치 조니 캐쉬처럼 멋지게 소화해
내시더라구요).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도 아무리 설명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봤자,
영화 1회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에 1000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그저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시고 영화를 안보시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는 말 뿐입니다. 영화야 어차치 100% 취향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높은 확률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같네요.
단순히 슬퍼서라기 보다는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숙연해 짐을 느꼈기 때문이었겠지요.




Fix You - Young@Heart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




Forever Young - Young@Heart (이 곡은 중반부터 나오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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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연인들 (The Lovers From The North Pole, Los Amantes Del Circulo Polar, 1998)
우연과 운명의 러브스토리


이 영화는 <섹스 앤 루시아>를 연출했던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Lafont)의 1998년 작입니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국내에는 올해 12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게 된거죠. 사실 큰 관심이 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친한 블로거 분이 오프라인에서 전해준 '괜찮다'라는 말과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에 끌렸달까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바람은 <북극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를 보기에 탁월한 환경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장 내가 추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입고갔던 코트를 벗지 않고 관람했거든요.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운명적 사랑' '영원한 사랑' '특별한 운명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등
러브스토리에서 엿볼 수 있는 대부분의 홍보문구들이 즐비한 영화였기에, 뭐 그런 뻔한 영화겠구나 하는 짐작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놓친 사실이 있었다면 바로 스페인 영화라는 점이었겠지요. <섹스 앤 루시아>는 예전에 얼핏
본 것 같은데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훌리오 메뎀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었고,
스페인 영화라는 점이 유일하게 이 영화에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요소였죠.

스포일러 없이 간단하게 추천의 글과 결론을 내어보자면, 이 영화 이 계절에 보기에 참 좋은 영화입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홍보 문구들처럼 이야기자체는 클리셰 가득한 러브스토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재밌는건 영화를 볼 때는 이 이야기가 전혀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나중에 든거죠. 그만큼 이 영화는 흔한 러브스토리의
클리셰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루하기는 커녕,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 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 사이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북극의 연인들>은 결국엔 러브스토리이긴 하지만, 오토와 어머니의 관계가 제법 비중있게 그려집니다.
오토의 성장영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요.)


시놉시스

우연과 필연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영원한 사랑...

끝이 시작이 되는 순환적인 구조 속에 두 연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마치 직소퍼즐처럼 짜넣은 더없이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주인공 아나와 오토는 8살 때 처음 만나 영혼의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오토의 아버지와 아나의 어머니가 결혼하는 바람에, 아나와 오토는 비밀스럽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간직하게 된다. 많은 우여곡절로 서로를 떠난 두 사람은 25살이 되어 북극권의 가장자리 핀란드에서 다시 만나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데뷔작부터 줄곧 반복과 순환 구조에 몰두해온 메뎀의 관심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 감독 자신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회문(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단어, Medem, Ana, Otto)인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오토(Otto)와 안나(Anna)는 어린 시절 부모님 덕에 서로 알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이름이다. 이 영화는 그들의 순환적인 이름처럼 백야로 해가 지지 않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삶에 관한 영화다. 결코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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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만 다시 읽어보아도 이 영화를 선뜻 선택하게 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첫 장면만 봐도 엔딩까지 쭈욱 예상이 되는
영화로 보이니까요. <북극의 연인들>은 결론은 이 예상과 맞아떨어지는데, 보는 과정에서는 눈치 채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첫 번째로 영화를 그리는 독특한 방식을 들 수 있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로 입장을 바꿔가며
마치 다른 이야기처럼 그리는 방식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10년 전에도 그리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겠지요?;;;),
훌리오 메뎀 감독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토와 아나의 이야기를 오가다가 결국은 둘이 아닌
하나의 장소로 귀결되어 지는 구성 방식은, 단순히 같은 얘기를 다른 시각으로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개 방식 그 전부로
사용되고 있는거죠.




(이 영화에는 아역과 청소년기, 성인으로 같은 인물이 세 명의 배우에 의해 그려지는데, 3명 모두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아이들의 깊은 눈빛은 너무 인상적이었구요. 스페인 아이들의 마스크나 분위기는 언제봐도 매력적인것 같아요.)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각각 오토(otto)와 아나(ANA)인데,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회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는 영화의 내용상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영화의 구성 측면에서도 이 '회문'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즉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동일하다는 얘기인데, 최근에는 스릴러 장르의 미드에서
자주쓰곤 하는 이 방식이 이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보완하는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 핸드 헬드로
촬영된 흔들리는 화면과 주인공들의 흥분된 표정들은 긴장감만으로 다가오지만, 마지막에 이 장면이 반복될 때에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죠. 분명 첫 장면에서 이미 다 본 장면들이지만 마지막에 다시 볼 때는 사뭇 궁금해하며
장면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1시간 쯤 전에 장면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가 아니라, 그렇도록 잘 연출한 영화의
묘라 해야겠죠.

이 영화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핀란드 시골 마을의 고요한 풍광과 더불어,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인
장면 장면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일단 온종일 해가 지지 않는 인적 없는 호수가에 자리한 집의 풍경은 이 영화의 제목이
'북극의 연인들'이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일정 시기에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더불어
고요함과 더불어 불안함도 전달해내는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영화의 주인공들 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사춘기를 겪을 때 집과 집 주변의 묘사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어두워진 밤 시간에 창문 밖으로
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대 명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주인공의 긴장되고 떨리는
심정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로 표현해낸 이 장면이야말로 훌리오 메뎀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핀란드 시골 마을의 그 아름다운 풍광보다도 이 장면이 더 인상깊고 기억에 오래 남을듯
하네요.




이 영화를 '아름다운'영화로 기억되게 하는 다른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배우들과 캐릭터 일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남녀 주인공인 오토와 아나는 각각 3명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데, 일단 아역을 맡은 두 배우는
최근 개봉했던 <렛 미 인>의 오스칼과 이엘리에 버금가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오스칼과 이엘리는 영화를 시작부터
끝까지 이끌어 갔던 캐릭터였고, <북극의 연인들> 아역 배우들의 경우는 그야말로 아역에만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 두 명의 아역 배우의 인상이 얼마나 깊었나를 가늠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오토 역할을 맡은 페루 메뎀은 그 깊고 불안함이 가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는데(보는 내내 <바벨>에 등장했던
그 총쏘던 아이가 연상되더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인 훌리오 메뎀의 아들이더군요.
어린 아나 역할을 맡은 사라 발리엔테 역시 매우 인상깊습니다. 어린 아이임에도 마냥 어린이스럽지 않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이 두 어린이들의 인상과 연기는 <북극의 연인들>을 보는 또 다른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기를 연기하는 두 배우도 인상적인데, 특히 아나 역을 맡은 크리스텔 디아즈 (Kristel Diaz)의 투명한 마스크와
신비스런 표정연기는 너무도 매력적입니다. 뭐랄까요 청소년기의 소년들을 자극하는 신비스런 표정을 갖고 있는
소녀랄까요. 그런데 이 이후로 자국에서 두 작품 정도 더 출연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이렇다할 정보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저 정도 마스크와 분위기라면 충분히 주목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마저 드는군요.

성인 오토와 아나를 맡은 두 배우, 펠레 마르티네즈와 나즈와 님리는 <오픈 유어 아이즈>를 통해 조금 낯이 익은
배우들이었습니다(물론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페넬로페 크루즈 였지만요 ;;;).
이 두 배우의 연기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역과 청소년기를 연기한 배우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탓에,
이들에 대한 코멘트는 여기서 줄이도록 하죠.



10년만에 국내에서 정식 개봉이 된 만큼 신선도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라는 우려도 아주 조금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켜버린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사실 시놉시스만 보면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절절하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깊게 남고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올 겨울 극장가에서 단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북극의 연인들>을 꼽을 수 있겠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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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ip _ The Renaissance

1. Johnny Is Dead 
2. Won't Trade  
3. Gettin Up   
4. Official   
5. You   
6. WeFight / WeLove   
7. ManWomanBoogie  
8. Move  
9. Dance On Glass   
10. Life Is Better   
11. Believe 
12. Shaka


사실 이 앨범을 들으려고, 블랙뮤직을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눈에 확 들어온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Q-Tip이었다. 힙합음악을 비롯해 R&B, Soul 앨범들을 듣다보면 Q-Tip의 피처링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정작 그의 솔로 앨범을 제대로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제로도 1999년에 발표한 [Amplified]앨범 이후에 거의 10년 만에 내는 앨범인듯 하다).

여러 피처링을 통해 Q-Tip만의 독특한 래핑과 라임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솔로 앨범을
풀로 감상하니 더 감회가 새로운 것 같다. 가끔 피처링에서는 매우 훌륭한 실력을 선보이던 MC들도
정작 자신의 앨범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번 Q-Tip의 앨범은 이와는 반대로 피처링만으로는 다 들려줄 수 없었던 그의 장기를 잘 펼쳐보인
앨범으로 생각된다.

일단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실망을 줄래야 줄 수 없는 이들이다.
고인이 된 J Dilla와 Q-Tip이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고,
Raphael Saadiq, Norah Jones, D'Angelo 등이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복고스런 샘플링의 후반부와 반복되는 리듬이 인상적인 'Won't Trade'를 비롯해,
첫 번째 싱글인 'Gettin' Up'은 미니멀하면서도 인상적인 베이스라인과 대중적인 곡 진행으로
이른바 타이틀곡으로 적합한 곡인것 같다.
다음 곡 'Official'부터는 마치 Nujabes류의 분위기를 조금씩 풍기기 시작하는데, 'You'에 달해서는
피아노 반주까지 흘러나와 더더욱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얼마전 새앨범을 들고 나와 몹시도 반가웠던
라파엘 사딕이 피처링하고 있는 'WeFight / WeLove'도 전반부의 Q-Tip의 랩과 후반부의 라파엘 사딕의
멜로디가 잘 어울리는 곡이다(여기서 라파엘 사딕은 마치 마이클 잭슨처럼 노래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Move'라는 곡은 낯설지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은 Jackson 5의 'Dancing Machine'을 샘플링한 곡이다.
'Dancing Machine'의 인상적인 도입부를 여기서도 잘 살려내고 있다.

'Life Is Better'는 노라 존스가 피처링하고 있는 곡인데, 얼핏 생각했을 때 컨트리/재즈 보컬인 그녀와 비트있는
힙합음악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 곡에서 노라 존스는 적어도 그녀의 앨범에서처럼 노래하고 있지는 않다.
상당히 그루브있게 끊어가며 노래하고 있는데, 곡의 비트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린다.
모르고 듣는다면 이 목소리가 노라 존스라고 100% 확신하기는 어려울 정도다(물론 그녀 특유의 여유가 목소리에서
여전히 느껴지기는 한다). 'Believe'는 디안젤로가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있는 곡인데, 다른 곡들에 비해서는
그렇게 상생의 에너지가 극대화되지는 못한 것 같다. 곡도 나쁘지 않고 디안젤로의 보컬도 여전히 멋지지만
곡 자체가 짧은 것도 있고 완벽하게 어울리는 곡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최근 들었던 힙합 앨범 가운데는 가장 들을 만한 앨범이었던 것 같다.





Q-Tip _ Gettin' Up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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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2008)
눈뜬 자들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개봉 전, 아니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부터 많은 영화팬들과 원작 소설 팬들이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은 베스트셀로로서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고, 영화화에 참여하게 된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이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라인업이었기에
영화 팬들은 기대를, 소설을 읽었던 팬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했었더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가운데 소설을 먼저 읽었던 경우가 극히 드문
케이스였는데, 이번 <눈먼 자들의 도시>의 경우는 바로 그 '드문'케이스 중 하나였습니다.
우연히 오랜만에 심도이는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점에 들러 눈에 띄는 책을
고르게 되었고, 그 책이 바로 하얀 표지의 '눈먼 자들의 도시'였죠
(참고로 역시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뜬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는 '눈먼 자들의 도시' 이야기에서 시간 상 4년이 흐른 뒤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얘기라고 합니다. 서점에 갔었을 때 두 권을 다 사려다가, 일단 먼저 나온
'눈먼 자들의 도시'부터 사게 되었죠).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참 영화화 할 만한 소지가 다분한 작품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는데, 동시에 영화화 하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주제 사라마구는 그래서 쉽게 소설의
영화화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




영화화가 결정되고 나서 감독과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콘스탄트 가드너> <시티 오브 갓>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물론, 무거운 이야기를 진중하게 이끌어
가는 재능을 가진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 만으로도 일단 원작에 현저하게 못 미치는 영화는
나오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을 갖을 수 있었죠.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줄리안 무어가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이 영화를 기대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재미있는건 누가 캐스팅 되었는지 모른 상태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여자 주인공인 의사 부인 역할로 줄리안 무어가 제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었다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그녀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뭇 놀라기도 했었죠 ;;).

줄리안 무어 외에 캐스팅된 배우들 중에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출연이 가장 반가웠고,
<이터널 선샤인>과 <조디악>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특히 조디악!) 마크 러팔로도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라 그랬었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허니와 클로버>에서 만났었던 이세야 유스케의 출연도 반가웠습니다.
물론 대니 글로버의 든든한 출연과 최근 윌 스미스와 함께 출연했던 <나는 전설이다>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앨리스 브라가의 모습도 반가웠구요.

이런 기대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99%는 원작 소설보다 덜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는
통계적 우려를 적잖이 물리치고(원작을 먼저 읽은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저 나머지 1%에 속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반지의 제왕' 정도만을 꼽을 수 있겠네요;),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를 개봉일에 감상하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는 99% 법칙이 그대로 통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소설을 이미 읽어버린 나머지 영화를 원작과 비교하면서
볼 수 밖에는 없었는데, 소설과 비교해 많은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습니다.




(이후부터는 영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과감히 이동해 주세요)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점은, '만약 내가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봤더라면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까?'하는
궁금함이었습니다. 소설을 이미 봐버린지라 비교할 수 밖에는 없었는데, 소설과 비교해 너무도 빠른 전개는 아쉬움을 넘어서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더군요. 특히 초반 주요인물들이 눈이 멀고 수용시설에 모이게 되는 부분도 너무 빨리 전개가
되었고, 수용소 안에서 대표나 배식을 타기 위해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급작스럽게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받게는
없더군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단순히 시간을 늘려서 배분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 보다는, 핵심만 짚 되 소설 속에서
잘 표현되었던 바로 그 공간의 지옥같은 느낌, 이 느낌이 제대로 우려나기도 전에 정리해 버렸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주인공들이 처하게 된 상황이 단지 눈이 멀어서 라기 보다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수용시설 안의 지옥 같은 환경 때문인데, 이 환경적인 요소를 오히려 더 영화적으로 오버해서 표현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건조하고 스피디하게 진행이 되더군요. 핵심적인 사건들은 영화에서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앞 뒤의 분위기를 한 두 장면 만으로 스치듯 표현하다보니 극적인 상황을 그릴 때 조차 그 몰입감이
조금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배식을 타기 위해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바치게 되는
그 장면의 지옥 같음은 눈을 찌푸리고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게 표현되었지만, 반대로 3병동의 남자들이
그런 권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 조금은 어이없게 그려진 것도 같고 아쉬움이 남더군요.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조금은 단편적으로 그려진 것 같습니다(뭐 이 모든것이 축약할 수 밖에 없는 영화화의
숙제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요). 소설 속에서는 수용시설 안에서 의사와 의사의 아내,
그리고 썬글라스를 낀 여자와 애꾸눈의 흑인노인과의 관계(이 부분에 대한 묘사는 사실상 마지막에 단 한 번 밖에 없었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영화만 보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진터라), 그리고 아이가 썬글라스를 낀 여자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에
대한 묘사도 조금 아쉬웠구요(뭐 관계를 새로 설정했다고 말하신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영화를 보면 새로 설정까지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원작자인 주제 사라마구는 영화화에 부탁하기를 '눈물 핥아주는 개'는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구체적 주문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눈물 핥아주는 개'가 영화에서 등장하는 장면도 상당히 의외의 반응을 불러오는
결과를 만들더군요.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 개를 단 한 번도 공포의 존재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사람의 시체를 먹는 개들의 무리가 등장한 뒤 바로 이어서 이 개가 등장하기 때문에, 줄리안 무어의 뺨 쪽으로 이 개가
얼굴을 들이밀 때 '줄리안 무어를 깨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들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공포의 탄성을 내뱉게
되었거든요. 소설을 읽으면서는 생각해볼 수 없었던 구성과 반응이라 한 편으론 재밌기도 했습니다.




주제 사라마구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었던 것은 물론 '눈이 멀게 되면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우린 지금 제대로 눈을 뜨고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것에 가깝겠지요.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중간중간 의사 아내의 독백들이 등장합니다. 혼자만 볼 수 있는 존재인 의사 아내는 눈먼 자들의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인
행동들을 모두 눈으로 목격하고 스스로도 처음에는 자신 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이들을 도와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의 만류와 전개되는 상황들 속에 결국 그녀도 자신 만의 볼 수 있는 특권을 자신의 남편, 그리고 몇몇 동료들
즉 어떤 집단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는 발전시키지 않는, 안주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그녀는 한 편으로는 배식을 위해 여성들이 나서야 할 때 제일 먼저 나서기도 하고, 남편의 만류에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바쁘게 노력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다른 이들이 하나씩 시력을 회복하게 될 때 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이제 해방이다' '다들 돌아와서 다행이다'라는 것 보다는, '홀로 눈뜬 자였던 내가 과연 역할을 다 했는가' 또는
'나는 눈뜬 자로서 과연 눈먼 자들에 비해 행복했는가'를 자문했을 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눈먼 자들의 우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반대로 눈뜬 자들은 과연 행복한가 라는 것을 묻는 것이 주제 사라마구가
던진 화두이자, 이 답변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의사의 아내 역할을 맡은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역시 흠잡을데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그녀의 지친 얼굴과 힘겨운 걸음걸음 이니까요. 그녀는 참 여배우로서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부분을(뭐 쉽게 얘기하면 이뻐보이는 요소랄까요) 연기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해버리는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영화였는데, 거의 화장기 없이 그녀의 주근깨 가득한 피부가 심할 정도로 묘사되고 있는 것도 그렇고,
피폐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배우가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훨씬 과감하고
높은 수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썬글라스 쓴 여자나 일본 여자배우만 봐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나,
줄리안 무어처럼 이른바 '망가지지'는 않죠).

극중 줄리안 무어의 남편인 의사 역할로 출연하고 있는 마크 러팔로는 흠잡을 데는 없으나, 그렇다고 열연이라고 까지
얘기하기엔 부족한 평균적인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연기에 수준 논하는 것이 우습기는 하나, 딱 어울리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부득이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사실 마크 러팔로도 그렇고 대니 글로버도 그렇고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 캐릭터들이라
크게 튀지도 않지만 크게 인상적이지도 않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건 가엘 베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캐릭터였는데, 소설 속에서 표현되었던 캐릭터와는 달리
이렇다할 포스가 느껴지지 않고 공포스러움도 덜한 '약한' 캐릭터였던 것 같습니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키가 작은 것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조금은 전체적으로 아쉬웠던 캐릭터와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아, 음악에 대한 점을 빼놓은 거 같아 마지막으로 언급하자면, 후반 부의 음악은 그나마 조금 괜찮았으나,
초반 인물들이 눈이 멀게 되고, 수용소로 오게 되고, 거기서 일들을 겪게 되는 부분에서 흐르는 음악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더 우울하고 답답함을 강조한 음악이면 좋을 듯 한데, 조금은 장난스럽고 너무 리듬감을
주고 있는 음악이라 개인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설을 먼저 읽은 입장에서는 좋은 점 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많았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였습니다.
서두에도 남겼듯이 과연 소설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1. 산드라오가 거의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더군요. 그녀가 맡은 직책이 직책인지라 좀 더 비중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까메오로 그쳤다는(물론 첨에 나오고, 조금 지나서 다시 나오긴 하지만요).

2. 눈먼 자들이 가득한 도시의 풍경은 CG보다는 실제 거리를 통제하고 촬영했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좋았으나
    좀 더 '눈먼 자들'을 거리에 많이 좀비처럼 배치하여서 피폐해진 도시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3. 이제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어봐야 겠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Rhombus Media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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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 (悲夢: Dream, 2008)
애증, 그리고 꿈


김기덕 감독의 열 다섯 번째 작품이자 오다기리 죠, 이나영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비몽>.
사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레도 <악어>부터 시작해서 <파란대문> <실제상황>
<나쁜 남자> <해안선>등 예전 작품들을 주로 보았던 것 같고 이들 작품들에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최근 화제를 불러모았었던 <빈 집>이나 <숨> <사마리아>같은 영화들은 제대로 챙겨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비몽>을 쉽게 넘기기 어려웠던 것은 역시나 캐스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 & 기사를 보니 스타 배우라 할 수 있는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의 캐스팅은 김기덕 영화가
대중들과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처럼 김기덕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마저 극장으로 불러오는 효과를 거두웠으니 어느 정도 이 소통방법이 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비몽>은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이라는
스타의 캐스팅으로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 시도가 엿보인 작품이며, 그 시도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각자마다 틀려질 수 밖에는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대충 이렇습니다. 극중 오다기리 죠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 하며 매일 꿈을 꾸는데,
오다기리 죠가 꾸는 꿈은, 반대로 연인을 떠나버린 이나영에게 작용하게 되고, 오다기리 죠의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달되게 됩니다. 즉 오다기리 죠는 꿈 속에서 그리도 만나고 싶던 헤어진 연인을 만나지만, 이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옮겨오면 이나영은 자신이 스스로 떠나보낸 증오만 남은 연인에게 매일 새벽 찾아가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비현실적인 표면적인 설정을 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 대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극 중에서 오다기리 죠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물들과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즉 오다기리 죠가 일본어로 말하면, 이를 받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어로 대답하는 형식이지요.
만약 한 사람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 몽유병으로 연결된 다는 설정이나,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설정을, 그대로 넘기지 못하면 이 영화는 매우 불편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영화에
묵시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현실적이지만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기본 설정은 묘한
분위기 외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소통과 사랑과 증오의 가까움, 여러 사람이 결국은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와 교묘하게 교차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본래 김기덕 감독은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에 한국어 자막조차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김기덕 감독은 대부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설정에
전혀 구속 받지 않는 감독임은 확실한 듯 해요.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다기리 죠는 자신이 잠이 들고 꿈을 꾸게 되면 그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를 알고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나영 역시 잠을 자게 되면 몽유병으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옛 애인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구요.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교차로 자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얼마 정도는 성공을
거두는 듯 하지만, 이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서로 수갑을 차고 같은 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죠. 이들이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기 까지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코믹하기도 했는데, 잠들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고 얼굴을 쥐어 뜯는 다던가 눈에 테입까지 붙여가며
잠을 안자려고 하는 모습은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 정도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 눈물 겨운 노력들은
무섭게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어쩌면 김기덕 감독은 코믹함으로 느껴졌던 장면들이 분위기에 따라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까지 느껴지는 것을 통해, 사랑과 증오는 어차피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들자면 아무래도 갈대밭에서 4명의 인물이 모두 등장해 벌어지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영화 화법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이상한 장면인 동시에, 마치 현실에서 완전히 차단된
죽은 자들의 세계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장면이긴 하지만,
인물과 인물이 교차되고, 상대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이 사람도
같은 사람인, 즉 모두가 하나이고 모든 감정도 하나라는 것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준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장면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나영은 온통 검은 옷을, 오다기리 죠는 온통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아주 노골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기덕 영화 하면 가학적이라는 선입관이 있긴 합니다. 그 내면에 정말 폭력성이 있느냐,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쨋든 화면으로 보여지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에서는
가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몽>역시 오다기리 죠의 연기를 통해 이 가학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독이었다면 영화 속 오다기리 죠의 후반부의 행동들을 그런 식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이는 분명 김기덕 감독이라 그런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김기덕 감독이 작품이 조금 불편하기도 한 것 같구요.

영화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화법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지만(그것이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술적인 측면이나 장면들을 통해
메시지를 이미지화 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이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백과 강렬한 색,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 효과들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와 맞물려 메시지 전달에 시각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를 과감히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나영 때문이 아닌 바로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배우들 가운데도 특유의 여유로움과 코믹함부터
극 진지함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오다기리 죠가 김기덕의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지요. <비몽>에서 그가 연기한 '진'이라는 캐릭터가 오다기리 죠만이 할 수 있는, 아니면 오다기리 죠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 캐릭터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반 부에 처절하게 변해가는 진의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오다기리 죠의 연기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나영의 연기는 사실 연기력 자체보다는 그 무표정의 이미지가 더욱 기억에 남는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무표정으로 대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섬뜩함까지
느껴지곤 하니까요.

쉽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영화가 될 것 같네요.


1. 결국 잠이 보약!
2. 어디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완전 '한옥투어'무비라고. 그 말에 동감.
3. 아직 <텐텐>을 못봤는데 이 영활 보고 <텐텐>을 보게 되면 그가 어찌보일지 궁금하군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김기덕 필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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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70
Soul이 없는 젊은 이들에게 보내는 음악영화


<후아유>와 <사생결단>을 만들었던 최호 감독의 작품. <후아유>에서는 방준석 음악 감독과 함께 음악적인 요소를
영화에 잘 녹여냈었다면 <사생결단>에서는 황정민, 류승범 두 배우의 열연 만큼이나 좋았던 이른바 '때깔'이 돋보였던
영화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고70>은 이 두 영화의 장점이 모두 담겨있는 최호 감독의 최근작이라 하겠다.
'데블스'라는 실존했던 아니 실존하는 밴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70년대 당시의 암울했던 가요계, 문화 예술계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들려주고 있고, 이를 데블스의 화끈한 음악과 춤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70년대 당시를 재현하는데 있어서
당시의 의상이나 배경들로 인해 제법 괜찮은 때깔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중에 다 얘기하겠지만 주연을 맡은 조승우,
신민아를 비롯해 문샤이너스의 멤버인 차승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와 연주, 춤도 볼만한 영화였다.


이야기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방에서 올라온 '데블스'는 통금과 함께 갈 곳이 없어진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클럽에서 연주를 하게 되고, 성공과 좌절을 모두 맛보면서 70년대를 그들만의 방법으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70년대 대한민국의 음악계나 문화계를 그리면서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그리지 않을 수 없을텐데, 이 영화는 아주
직접적이지는 않으면서도 해줘야 할말은 다 하고 있는 적절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보면 우습기까지한 이유들로
가요들이 줄줄이 금지곡으로 선정되었다던가, 록 음악을 퇴폐음악이라 하여 가수들을 무조건 잡아들이고 마약으로 엮어서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아주 심각하게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퇴폐로 몰린 록 밴드가
젊음의 악으로 록 스피릿으로! 소울로! 공연을 밀어 붙이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전경들과 최류탄이 투입되는 장면은
어느 정도 일반적인 구성이긴 하지만, 이런 와중에서 데블스와 정부의 사이에 있는 '이병욱'이라는 캐릭터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저 데블스를 돈 되는 이들로 생각해 이용하려는 것 정도로만 알았던 이병욱이 알고 보면 데블스 멤버들과
똑같이 '소울'을 갖고 있는 이로, 단지 한 세대 앞선 어른일 뿐이라는 점에서 마치 감독이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화자로
심어놓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계속 등장하는 '소울'이라는 것은 단순히 장르의 이름인 '소울(Soul)'이라기 보다는 요즘말로 하자면 '록 스피릿'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하긴 록 스피릿을 요즘말이라고 하긴 어렵겠다;;), 이 영화를 접하는 이들도 소울이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따라 영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감동의 정도가 달라질 것 같다. 차승우 처럼 기타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 때는 기타리스트를 꿈꾸기도(꿈만) 했었고, 공연을 해보기도 했던 나로서는 이들이 그저 '깡'으로만 외치는 것으로 보이는
'소울'이 단순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나중에는 살짝 찡한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70년대의 음악,
당시의 소울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배경적인 대사나 장면들에 쉽게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스포가 될까마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한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웃고만 장면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웃을 수가 없었던 오히려 찡한 장면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데블스가 실패를 맛보는 장면에서는 연주하기 위해 술집에 반주 밴드로도 가고, 기타를 걸고 도박을 하기도 하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요즘 가요계의 현실과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도 받았다. 노래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음악만 좋아서는 성공할 수 없는 요즘 가요계, 자신의 노래를 알리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쇼프로에 나와 우스꽝스러운
개그를 해야만하는 요즘의 상황과, 어떻게든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앞선 상황도 감수해야 하는 데블스의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겉으로만 보자면 통금과 긴급조치로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던 당시 상황이 더 암울스럽기는
하나, 따져보면 트로트 가수들도 앨범을 내면 10대나 보는 쇼프로에 나와 성대모사를 하고, '벨소리 다운 많이 받아주세요'하고
얼굴을 붉히며 얘기해야만 하는 요즘이 더욱 암울한 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바로 차승우였다. 노브레인의 전 멤버이자 현 문샤이너스의 보컬,
기타리스트이기도한 그는 대한민국 록 씬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며,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와
연주를 선사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맡은 만식이라는 캐릭터는 차승우가 연기한다기 보다는 차승우의
본래 캐릭터가 많이 녹아든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여지 없이 문샤이너스의 차승우를
엿볼 수 있었다. 연주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실제로 촬영된 이 영화에서, 장면이 더욱 실감나게 보이는 것은 이를
주도하고 있는 차승우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샤이너스의 드럼을 맡고 있는 손경호 역시
드러머로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연기는 사실 어색하기 그지 없는 날 것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들이기도 하거니와, 어느 정도 이 실제 연주 능력을 위해 연기부분을 포기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이라고 하겠다(나 같아도 연기가 되고 연주가 안되는 배우보다는, 연주가 되고
연기가 안되는 이들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문샤이너스의 차승우가 아니라 <고고70>의 배우 차승우로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현실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 그의 음악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민아가 나오는 영화는 몇 편 본 기억이 있긴 한데, 그녀가 돋보이는 영화는 아마 <고고70>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클럽이름은 '닐바나 (Nirvana)', 즉 '열반'인데, 신민아가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에게서 이 '열반'이 절로 느껴진다. 아무리 영화 촬영장이긴 하지만, 평소에 그리 활발한 성격 같지도 않고,
그 동안 이런 역할을 맡아보지도 않았던 그녀가 이렇게 화끈거리는 역할을 이 정도로 연기한 것 만으로도, 신민아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보게 끔 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열반에 든 모습으로 춤을 춰대는 장면 외에 귀여움을 아주 의도적으로
뽐내는 장면들도 있는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음...흠흠 ;;).

주인공인 상규 역할은 사실 조승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배우가 없을 정도로 애초부터 그에게 맞춰져 쓰여진 캐릭터였다.
조승우는 뮤지컬을 통해 이미 여러번 보여준 열창하는 모습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긴 머리가 살짝
어색한 느낌도 있지만,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 만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조승우의 열연과 열창을
칭찬하지만, 남들이 다 칭찬하는 것도 있고해서 나는 차승우와 신민아가 더욱 인상 깊었다고 하고 싶다.

<고고70>은 70년대를 직접 몸으로 체험했던 이들에게도 멋진 영화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록 스피릿, 아니 소울이 있다면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도 왠지 가슴 한 켠에서 숨어있던 소울이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어 아주 고마운 시간이었다.


1. <사생결단>에서 리얼한 부산 사투리에 신경 썼던 것처럼, <고고70>에서는 리얼한 당시 속어들을 많이 연구한듯 싶다.

2. 영화 속 실제 모델이기도한 '데블스'는 이번 펜타포트에서 직접 공연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젊은 관객들을 확 사로잡을 '소울'이 여전한 모습이었으며, 영화 속 처럼 '와일드걸즈'가 아닌 '나비소녀'를 대동한
   모습이었다(재미있었던 건, 이날 펜타포트에서 '데블스'다음 순서가 '문샤이너스'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날 두 밴드의
   공연을 모두 관람한 터라 <고고70>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참고로 펜타포트 데블스 공연사진 보기         /     문샤이너스 공연사진 보기

3. 신윤철과 이지형이 까메오 치고는 제법 등장하고 있다.

4. 스토리 상의 아쉬움도 분명히 있던 영화였지만, 전체적으론 소울이 살아있는 영화라 만족스러웠다 하겠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보경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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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럽 (Deception, 2008)
끝까지 심심한 '스릴러'


국내에는 <더 클럽>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Deception'. 'Deception'이란 해석해보자면 사기, 속임 뭐 이런 정도의 뜻인데,
제목 자체가 좀 스포일러스럽기는 하지만, 반대로 '더 클럽'이라는 제목 때문에 영화를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로 알고
접하게 되었고, 나 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스릴러 라기 보다는 사교계의 비밀 클럽을 둘러 싼 섹스 스캔들을 다룬
성인 드라마로 알고 극장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이 마케팅 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릴러 적인 재미보다는 배드씬이 자주 등장할 것만 같은 홍보 방법은 많은 '어른'분들을 당혹스럽게 했을 듯 하다
(실제로 <색, 계>나 <권태>같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나이 지긋하신 어른 분들이 극장을 오랜만에 찾으신 경우가 많았었는데,
아마도 영화 초중반부터는 적잖이 당황하셨을 듯 하다).

어떻게 보자면 제목에서부터 '속임'이라고 광고하는 것 보다는, 전혀 다른 제목으로 스릴러 본연의 재미를 100%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도적이진 않지만) 좋기도 했지만, 영화는 스릴러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부터 대략적으로
마지막까지 예상이 가능한 평범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그 이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심지어 장르가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은채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이완 맥그리거와 휴 잭맨, 그리고 미셸 윌리엄스, 이렇게 세 사람을 한 영화에서 만나보는 것 만으로도 나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영화는, 일단 그 뿐으로 마무리 된 듯해 아쉬움이 있다. 휴 잭맨의 경우 우디 알랜의 영화 <스쿠프>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를 맡은 적이 있는데, 선과 악을 모두 갖은 듯한 그의 양면적인 마스크는 분명히 매력적이기는 하나,
빈틈이 많은 영화에서는 그리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다. 휴 잭맨은 정작 액션 영화인 <엑스맨>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데,
이 영화처럼 일반 드라마에서 멀쩡히 정장을 입혀놓으면 그 엄청난 기럭지와 덩치를 실감하곤 한다. 이 영화에선 
그리 크지 않은 키의 이완 맥그리거와 작은 체구의 미셸 윌리엄스가 상대역으로 등장해서 더 그런지 몰라도, 그의 엄청난
덩치와 엄청난 손 크기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완 맥그리거 또한 그리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 멋진 발성과 음색, 억양은 여전하지만, 별로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 탓에 그 만의 장점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미셸 윌리엄스의 출연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캐릭터 자체거 너무 뻔한 터라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 외에는 별 다른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배우들 만 믿고 보러갔던 영화인데, 역시 영화는 시나리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스릴러임에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그렇다고 그 과정의 긴장감이 두근 두근 하는 것도 아니며, 이렇다할 볼거리가 있던 것도
아니라 아쉬운 점만 많았던 영화였다. 누가 배신을 하겠구나, 마지막엔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것이 너무 쉽게 예상되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 때문에 김이 쉽게 빠지는 식이었으며, 차라리 마케팅 차원에서 선택했던 바로 그 사교클럽에 집중한
다른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더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도 싶다.


1. 샬롯 램플링과 매기 큐가 깜짝 등장한다. 두 캐릭터 모두 깜짝 이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2. 낚이신 어른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대신하고 싶은 심정...;;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20세기 폭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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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일본 TV애니메이션에는...

1967년, <갓챠맨> (국내 방영 제목 ‘독수리 5형제’), <신조인간 캐산>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타츠노코 프로덕션은 <마하 GO GO GO> (국내 방영 제목 ‘달려라 번개호’)를 선보이게 된다(제작 연도 상으로 보았을 때 <마하 GO GO GO>(1967)가 <독수리 5형제>(1972)나 <신조인간 캐산>(1973)보다 앞서 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츠노코 프로덕션의 이름을 널리 알린 첫 번째 작품은 <마하 GO GO GO>라고 해야 맞겠다). <마하 GO GO GO>는 자동차 경주를 주요 소재로 포뮬러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번째 작품이었으며, 주요 인물인 레이서들의 개성적인 캐릭터 묘사라던가 차체마다 각각의 고유 기능이나 개성을 부여하거나,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이후 만들어진 레이싱 관련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자적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최근 세대들에게 익숙한 레이싱 애니메이션인 선라이즈 제작의 <신세기 사이버포뮬러>의 아버지 격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역사과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GO GO GO>가 미국에서, 미국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에는 일단 기대와 우려가 함께 들 수밖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트릭스> 시리즈를 연출한 워쇼스키 형제(본 블루레이 타이틀 내의 서플먼트에서는 공식적으로 ‘형제’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여기서도 그대로 따르기로 하겠다)가 <마하 GO GO GO>를 영화화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우려보다는 기대가 앞설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누구던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쿵푸 등 동양의 정서를 헐리웃에서 영화화 할 때 우려되는 이른바 ‘양키 센스’를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통해 이미 완전히 불식시킨 감독이 아니던가.

<매트릭스> 3부작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확고함은, 이들이 동양문화에 대해 단순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동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오타쿠’ 중에서도 최상위급 오타쿠라 할 만큼 원작과 문화의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다면 분명 다르겠지’ 하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 영화 <스피드 레이서>도 무한한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워쇼스키 형제는 오타쿠의 세계를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까지 올려놓는 금자탑(?)을 쌓고야 만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 그들이 만들면 다르다!

사실 필자는 <신세기 사이버포뮬러> 세대인터라 <스피드 레이서>의 원작인 <마하 GO GO GO>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는데, <스피드 레이서>를 보고나서 원작의 영상을 살펴보니, 원작의 캐릭터 묘사나 설정들을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복고적인 느낌을 살리려거나 아니면 영화화 과정에서 좀 더 극적인 요소를 보강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줄로만 알았던 장면들은, 전부 원작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등장하는 것들이었으며, 굳이 재현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원작의 골수팬들이나마 겨우 알아볼 정도의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영화로 옮겨온 워쇼스키 형제의 꼼꼼함(지독함)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캐릭터들의 묘사 같은 경우에도 성격적인 면은 제쳐두더라도, 만화의 캐릭터와 영화 캐릭터의 모습이 거의 흡사한, 정말 만화 속 캐릭터가 그대로 실사화 된 듯한 느낌을 줄 정도의 캐스팅과 의상 등 매우 싱크로율이 높은 캐스팅임을 나중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 역할을 맡은 존 굿맨과 수잔 서랜든의 캐릭터의 묘사가 특히 그러했으며, 개봉 시 많은 관객들의 불편함으로 지적되었던 스프리틀과 침팬지 침침의 개그 시퀀스 역시, 아주 생뚱맞은 것이 아니라 원작의 캐릭터에서 많은 부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전체 관람가 영화로서 좀 더 많은 연령대를 커버하려는 노력과 가족 영화로서의 재미를 주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스피드 레이서>의 화려한 액션을 감싸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가족 영화와 성장 영화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단순히 가족이 레이싱 가족인 배경 탓에, 그리고 동경하는 형이 레이서인 탓에 레이서가 되고 싶었던 스피드(에밀 허쉬)가 갖가지 사건들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유 없이 그저 좋았던 레이싱에 대해 마지막에 가서는 ‘왜 레이싱을 계속 해야 하는가?’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결국 그 해답을 찾게 되면서, 이 영화는 성장 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스피드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는 형 렉스에게 했던 실수를 스피드에게는 거듭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스피드를 둘러싼 가족들(스파키를 포함한, 스파키의 존재는 이 영화에 또 다른 생각해볼 거리라 생각된다)또한 한 걸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가족 영화가 들려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만약 극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다면 이 같은 전형적, 신파적 설정들은 그저 코웃음 치게 하는 유치한 개그에 머물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같이 뻔한 스토리와 메시지에도 울컥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될 수도 있는 영화이다.

판타지 레이싱의 황홀경을 보여주는 카-푸(Car-Fu)액션

구구절절 말이 많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피드 레이서>를 얘기할 때 가장 첫 번째로 거론 되야 할 것은 역시 눈이 황홀하다 못해 피곤해지기까지 하는 화려한 액션과 영상이다. <스피드 레이서>에 등장하는 레이싱 액션 장면들은 일반적인 실사 레이싱 액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액션이라 할 수 있다. 레이싱 카가 앞으로 달리기 보다는 옆으로, 뒤로 달리는 장면이 더욱 많을 정도다.


그리고 각종 무기들이 차안에 내장되어 있어 스피드를 괴롭히는 장면들도 등장하고, 차가 차 위로 점프를 하고 차를 날려 다른 차를 막아내는 등 실사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카 스턴트 액션을 강조된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만나보게 된다(혹자들은 이 같이 너무 비현실적인 레이싱 액션 장면 때문에 너무 만화 같다며 혀를 차기도 했었는데, 그도 당연한 것이, <스피드 레이서>는 그냥 ‘만화 같은’ 영화가 아니라 만화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면서 스크린으로 옮기려고 작정한 작품이니 뭐 말 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카-푸(Car-Fu)’ 액션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동차(Car)와 쿵푸(Kung-Fu)의 합성어로서 마치 자동차가 쿵푸를 하듯 액션을 벌이는 장면을 일컫는 말이다. <스피드 레이서>의 액션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카-푸’액션이라고 부르는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단순히 양옆에서 속도를 겨루는 것을 넘어서 경공을 펼치듯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날아다니다 못해 마치 날라 차기를 하듯 상대차를 쳐서 낭떠러지로 보내버리는 장면이 바로 ‘카-푸’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화려한 CG영상

<스피드 레이서> 개봉 당시 가장 극렬하게 호불호가 갈린 부분은 바로 너무나도 만화적이고, 인위적인 느낌마저 드는 영상 때문이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원작인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는 물론이고, 좀 더 애니메이션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화려하게 옮겨온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CG를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만화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씬 시티>같은 작품과 유사점을 찾아볼 수도 있겠고, 실사로 표현된 인물들이 CG가 적극 활용된 배경에서 연기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 <스파이 키드>같은 작품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 초반 원색으로 표현된 동네의 디자인과 각각 원색의 옷을 입은 인물들의 모습은 팀 버튼의 세계를 떠올리게도 하고, 워렌 비티 감독,주연의 <딕 트레이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다른 감독(오타쿠가 아닌 일반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CG를 사용하되 이렇게 과도하게 티가 날 정도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같으면 어떻게 하면 더 실사 영화에 가까울까, 어떻게 하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현실적인 자연스런 영상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했겠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애초부터 이 영화를 리얼리즘에 근거해서 만들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스런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CG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아예 드러내 놓고 ‘즐겨 보시죠’하고 내놓은 경우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면 분할 시퀀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은 조금 과도한 감이 없지 않지만,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량을 담으려는 시도로서, 비주얼 적인 면에서도 멋진 장면들을 여럿 선사하였다. 특히 사막에서 펼쳐지는 레이싱 장면에서 레이싱 카들이 모래 언덕을 내려올 때 모래 연기가 만화처럼 ‘퐁퐁~’하고 표현된 장면들은 더도 덜도 없이 완전히 애니메이션 그 자체였다. 공격을 하거나 액션이 이루어질 때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예전 대전 게임에서나 등장하는 촌스러운 전환 배경이 펼쳐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성격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레퍼런스급 최고의 화질로 만나는 <스피드 레이서> 블루레이!

종종 극장에서 만족스러운 영화를 만나게 되면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 영화, 빨리 DVD나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블루레이가 미친 듯이 기다려진다!’라고 생각했던 영화는 아마도 <스피드 레이서>가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만큼 <스피드 레이서>는 러닝 타임 내내 눈이 즐겁고 황홀한 영화였으며, 화려한 볼거리와 색감으로 가득 찬 영화라, 좀 더 극대화된 화질을 경험할 수 있는 블루레이의 출시를 기다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1080p/VC-1 코덱의 BD영상은 감히 사상 최고 수준의 레퍼런스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아니 레퍼런스다. 사실 영상 자체가 워낙에 화려하니 화질 평가에 있어 다른 작품에 비해 평가가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스피드 레이서> BD의 풀HD 화질은 레퍼런스로서 손색이 없는 우수한 화질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실제 로케이션 장소를 360도 촬영한 사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 외에 추가적인 배경이나 인물들 역시 렌더링 작업을 거친 뒤 레이어로 추가하는 방식의 영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CG가 사용된 영화들의 경우 고화질인 블루레이로 감상할 경우 실사와의 이질감이 극장에서 볼 때보다 유난히 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스피드 레이서>같은 경우는 오히려 CG가 전체적으로 겹쳐지게 사용된 경우라 초고화질의 BD로 감상하여도 이런 이질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중의 렌더링을 거쳤기 때문에 실제로 촬영된 배우들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상 간의 부조화를 찾아보기 어렵고(여기서 말하는 CG와 실사와의 부조화란 보통 CG가 사용된 영화를 BD로 감상할 때 겪게 되는 이질감을 뜻하는 것이지, 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의도된 만화적인 영상과의 이질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원색의 색감이나 비현실적인 차체의 질감도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다. <스피드 레이서>는 한 장면에서 레이어 방식을 통해 굉장히 많은 영상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블루레이만의 풀HD 고화질 영상이 감상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눈에 보이는 것만(실제로 느끼지 못하는 레이어 영상까지 더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겹쳐진 영상들로 이루어진 장면들이 가득하다) 따져보아도 네, 다섯 가지의 영상들이 좌우로 겹쳐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배우들의 클로즈 업 디테일은 물론 레이어 화면 하나하나에 디테일이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지만 상당히 선전한 돌비디지털 5.1 사운드

<스피드 레이서> BD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이후 언급할 서플먼트의 SD화질 수록 보다도), 아마도 사운드 측면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상 매체가 차세대인 풀HD의 블루레이로 넘어오면서 사운드 스펙 역시 무 압축의 PCM 5.1채널이나 돌비 트루 HD사운드를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최상의 화질을 수록한 타이틀에 최상위 사운드 포맷이 수록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장에서의 흥행 성적이 기대치에 못 미친 것이 어느 정도 이유가 되기는 하겠지만, 앞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극장에서 <스피드 레이서>를 외면했던 이들 가운데서도 <스피드 레이서> BD를 선택하게 될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으로 미뤄봤을 때, 좀 더 화끈한 스펙으로서 더 많은 새로운 팬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수록된 돌비디지털 5.1채널(640Kbps : DVD보다 높은 수치)의 음질은 이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 잊게 할 만큼 의외로 아주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레이싱 카 특유의 엔진 굉음도 우퍼 스피커를 통해 잘 전달되고 있으며, 카-푸 액션을 벌일 때 발생하는 각종 효과음들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TV시리즈의 주제곡에서 가져온 메인 테마도 극적인 순간에서 ‘탁’하고 치고 나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판타지에 가까운 레이싱을 그린 영상과 더불어 사운드 적인 측면에서도 과장되고 애니메이션에나 등장할 법한 효과음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배경음악이 깔린 상태에서 이뤄지는 격렬(?)한 격투 장면에서도, 각종 격투 효과음의 채널 분리도가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워너 타이틀은 기본적으로 타사 타이틀보다 사운드의 볼륨이 작게 설정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데, 평소보다 좀 더 볼륨을 키워서 감상한다면 크게 감상에 부족함이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SPECIAL FEATURES


스페셜 피쳐는 총 4가지의 주제별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무엇보다 HD급 영상이 아닌 SD급 4:3 풀스크린의 영상이 수록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작임을 감안했을 때 HD급 메이킹 영상이 수록되지 않은 점도 물론 아쉽지만, 와이드 영상이 아닌 풀스크린의 영상이 담긴 것은 엄청난 풀HD 화질을 자랑하는 본편과 비교해 봤을 때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 에는 없을 듯하다.

첫 번째로 수록된 ‘Spritle in the Big Leagues'에서는 영화 속 말썽꾸러기 동생인 스프리틀 역할을 맡은 폴리 리트가 촬영장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각 스텝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기술적 정보들을 들려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각각의 섹션에 대해 소개했던 픽사 애니메이션 타이틀의 서플먼트를 본 이들 이라면,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메이킹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역 배우의 눈에서 본 기본적인 질문들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질문거리를 스텝들에게 던지고 스텝들은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영화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기 까지 어떤 기술적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CG나 카메라 기법 등 기술적인 스텝들과의 만남은 물론, 스턴트 배우들, 디자인, 소품 등을 담당한 스텝들과의 만남까지 짧지만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영화 한 편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이해하기 쉽도록 제작되었다. 단점을 꼽자면 스프리틀과 스텝들과의 대화 도중에 정보성 텍스트가 그림으로 제공되는데, 아주 쏠쏠한 정보임에도 그리 길지 않은 짧은 시간에 지나가버리는 데다가, 대화에 대한 자막 또한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가독성 면에 있어서는 그리 효율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Speed Racer : Supercharged!' 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레이싱 카에 대한 역사와 설계 도면을 통한 자세한 설명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부가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그냥 겉만 보고 지나치는 레이싱 카의 디자인에 있어서, 설계 단계부터 매우 디테일하게 작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총 50대가 넘는 각각의 레이싱 카를 디자인하고 그 중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는 차체에 대해서는 세밀한 설계도까지 제작을 하여, 각각 어떤 무기를 내장하고 있고 이 무기가 사용될 때는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작동을 하게 되며, 어떤 종류의 엔진이 장착 되었는지까지 기획이 되었다는 것을 이 부가영상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치 실제 레이싱 카를 제작하듯(실제 모형으로 제작된 차체는 ‘마하 5’와 레이서 X의 레이싱 카인 ‘슈팅스타’ 뿐이다) 디테일하게 설계한 스텝들의 노력을 엿보고 나니, 영화 속에서 휙휙 날라 다니던 레이싱 카들이 새삼 다시 보이기도 한다.


'Speed Racer : Car-Fu' 에서는 쿵푸와 카 레이싱이 결합된 카-푸 액션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이 작품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어떤 점들을 가져왔고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인터뷰와, 이 작품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에 대한 전문 스텝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스피드 레이서>가 블루 스크린을 활용한 다른 CG 영화들과는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고전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들 수 있겠는데, 기법은 가장 고전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첨단 기술을 접합시켜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하겠다.


블루 스크린을 통해 보여 지는 배경을 완전히 컴퓨터 그래픽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로케이션 장소에 가서 마치 '불릿 타임(Bullet Time)' 기법을 연상시키듯(불릿 타임을 만든 장본인인 시각효과 감독 존 가에타를 비롯해 <매트릭스>시리즈의 대부분의 기술 스텝들이 이 영화에도 그대로 참여하고 있다), 고화질 카메라로 360도의 사진을 모두 촬영해 소스로 사용함으로서, 블루 스크린에 투영된 배경이 좀 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합성 기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만큼 거의 모든 장면에 이 같은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이 관련 영상을 보면서, 고전 영화에서 야외 배경을 처리하기 위해 사진이나 그림을 두고 촬영한 방식이 21세기에 와서 디지털로 업그레이드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Speed Racer : Ramping Up!'에서는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세계관과 <스피드 레이서>가 다른 작품과 차별되는 이유에 대해 전해들을 수 있다. 주연을 맡은 에밀 허쉬는 물론이고, 레이서 X역의 매튜 폭스, 트릭시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 아버지 역의 존 굿맨, 어머니 역의 수잔 서랜든이 등장해 촬영장의 에피소드 보다는 영화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아쉽게도 태조 역을 맡은 비의 인터뷰는 만나볼 수 없었다. 참고로 비는 앞서 언급한 'Spritle in the Big Leagues'에서 액션 연습 장면을 통해 잠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스피드 레이서>는 영화 자체의 강한 마니아적인(혹은 오타쿠적인)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긴 하지만, 블루레이라는 매체 적 측면만 놓고 보았을 때는 거의 다수가 동의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레퍼런스 급의 BD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풀HD 디스플레이를 테스트 할 때 화질 비교용으로 쓰이기에도 훌륭한 타이틀이며, 아직 블루레이를 경험하지 않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것이 블루레이다’ 라는 것을 설명 혹은 설득 시킬 때, 화질 면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추천할 만한 타이틀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사운드 스펙 면이나 서플먼트의 SD영상 수록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극장문을 나서며 들었던 ‘블루레이가 미친 듯이 기다려 진다’라는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만한 최강의 화질을 자랑하는 타이틀로 만족스럽게 나와주었다. 아마 아직도 ‘에이, 그래도 BD인데 돌비 트루 HD사운드 정도는 수록되었어야지’하고 구매를 보류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텐데, 유례가 없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레퍼런스급 화질을 한 번 보고나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타이틀이라는 것을 단박에 깨닫게 될 것이다.



2008. 9. 16 | 신현이(a_shitak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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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IA W4000 리뷰 _ 4. 못다한 리뷰와 마무리

한 달 정도 브라비아 W4000을 리뷰하게 되면서, 처음에 리뷰할 때는 놓쳤던 것들이나 미흡한 점들을
마지막 주에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브라비아의 가장 큰 장점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Theater'모드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블루레이나 DVD 등을 통한 화질의 관해 리뷰했을 때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했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에는 그렇게 확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언제부턴가 디스플레이나 영상소스가
고급화 되어가면서 기존 고유의 색감보다는 좀 더 '쨍하고' 선명한 영상을 선호하게 되는 기호가 저절로
생겨버려, 무의식 중에 그저 쨍한 화면이 좋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처음 화질에 관한 리뷰를 할 때만
해도 '선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표준'정도의 화질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었고, '시네마'모드의 화질은 단순히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 있어서 크게 장점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여러 차례 모드 간의 비교를 해보고,
오랜 시간 감상을 해 본 결과, 이 '시네마'화질모드의 장점을 좀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영화 본래의 의도된 색에 가까운 색감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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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미스 리틀 선샤인>DVD의 한 장면입니다. 위의 사진이 '시네마'모드를 활성화 했을 때의 화면이고,
아래는 일반 '표준'화면입니다. 사실 표준으로만 계속 시청한다면 이 모드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 힘들겠지만,
시네마 모드로 오랜 시간 시청을 하다가, 표준모드로 영화를 시청하게 된다면,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시네마 모드의 화질이 좀 더 자연스럽고, 영화적인 화질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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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파프리카> 블루레이의 한 장면입니다. 위의 사진이 시네마 모드, 아래 사진이 표준모드인데요,
애니메이션의 경우 극영화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시네마 모드라는 것이 실사 영화에 좀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영상에서는 좀 더 쨍하고 선명한 영상을 선호하는 분들도
상당 수 계실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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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블랙 호크 다운> 블루레이의 한 장면입니다. 이와 같은 극 영화에서는 좀 더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영화 자체의 영상이 본래 노이즈가 많고 어두운 장면이 많은 영상이라 그런지, 좀 더 선명한 표준
모드 보다는 시네마 모드가 좀 더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의 화질과 가까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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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모드와 시네마 모드의 차이점이라 하면, 아무래도 선명이나 표준에서는 어두운 부분이나 피사물의 윤곽선이
비교적 뚜렷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영상으로부터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본래 감독이나
영화가 의도했던 바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두운 장면은 어둡게, 그리고 특히 색감의 경우, 콘트라스트나
명암대비가 강하지 않은 의도된 색감에 가까운 화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를 볼 때 이 '시네마'모드의 선택은
필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많은 리뷰에서 언급이 되었듯이 W4000의 가장 큰 장점은 화질과, 각 모드마다
화질의 기본 설정값이 훌륭하기 때문에, 실제로 전문가가 원하는 색감을 수동으로 조정한 것과 기본 설정의
화질 모드가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런 점을 강조하듯 리모컨에 특별히 주황색 버튼으로
'THEATER' 버튼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기도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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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DSLR을 통해 사진 촬영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사진 모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일단 사진모드를 활성화 했을 때의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진 모드 역시 화질 모드처럼, 선명이나 표준 등의 모드를 제공하고 있는데, 원본 모드에서는 오히려 원본보다
좀 더 어둡게 나오는 듯 했고, 표준에서는 원본 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표현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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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모드 보다는 오히려 표준 모드가 좀 더 '원본'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만 보면
표준 모드가 너무 선명한 것이 아닌가도 싶지만, 실제로 비교해보면 그리 과하지 않은 선명도 였으며, 원본모드는
조금 어두운 분위기가 나, 표준 모드로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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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3에서는 USB단자를 통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요,
저 같은 모든 사진을 RAW로 촬영하기 때문에(아직까지 플레이스테이션 3에서 RAW파일은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정을 거친 후 JPG파일을 다시 메모리 카드에 담은 뒤에 감상할 수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큰 사이즈의 사진을 40인치의 대형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은 매력적이 더군요.
PC에서도 뷰어 프로그램을 통해 슬라이드쇼 모드로 감상할 수 있지만, 작은 모니터로는 조금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40인치에 꽉 들어차게 (물론 와이드로 촬영한 사진이 아니니 좌우 부분은 남습니다) 사진을
볼 수 있는 기능은,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라던가 한 번에 많은 사진을 슬라이드 쇼로 보게 될
경우에는 사용하게 될 기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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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단에 선정되어 약 한 달간 브라비아 W4000을 사용하고 나니, 확실히 눈이 높아진 것 같네요.
일단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장점

1. 소니의 우수한 기술로 만든 최고급 화질
2. 수준 높은 화질 기본 모드의 세팅값
3. 클리어 보이스와 다이내믹 사운드를 수록한 사운드
4. 별다른 치장없이 디스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작된 디자인


단점

1. EPG 기능의 부재와, 이렇다할 부가 기능이 없는 점
2. 디지털 방송을 4:3화면비로 송출할 경우, 인위적으로 화면비를 조정할 수 없는 점
3. 디지털 방송 간의 채널 변경시 반응속도가 늦는 점과 처음 전원을 켰을 때 반응속도가 약간 늦는 점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가격대비 성능비로 보았을 때 EPG 기능만 탑재했었다면 좀 더 적극 추천할 만한
제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국내 회사의 타 제품들에서는 대부분 지원하고 있는 기능이기도 하고,
국내 사용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기능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시장에 대한 소니의 로컬라이징 정책에 있어서는,
한 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한 달간 사용하면서 높아진 눈은 절대 낮춰지는 법이 없는데, 문제네요 ^^;
개인적으로는 EPG기능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화질을 가장 중요시 하는터라, 이 정도 가격에
브라비아 제품이라면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제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안 부족한 리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2008/08/15 - [Hardware Review] - BRAVIA W4000 리뷰 _ 3. PS3&XBOX360, 노트북과 캠코더 연결
2008/08/04 - [Hardware Review] - BRAVIA W4000 리뷰 _ 2. TV&Blu-ray 시청 및 각종 기능 살펴보기
2008/07/28 - [Hardware Review] - BRAVIA W4000 리뷰 _ 1. 외관 및 디자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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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IA W4000 리뷰 _ 3. PS3&XBOX360, 노트북과 캠코더 연결

조금 늦게 돌아온 이번 시간은, PS3와 XBOX360을 이용한 게임 플레이와 노트북과 캠코더 등
다른 멀티미디어와의 연결을 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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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 3의 메뉴 시스템은 위의 사진과 같은 XMB (Xross Media Bar)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소니 브라비아 W4000같은 경우도 기본적으로 PS3와 같은 XMB 방식의 메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W4000같은 경우 좌측으로 이어지는 메뉴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이 그리 활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다고 볼 수 있지만, PS3같이 좌측으로 늘어지는 메뉴의 종류가 많을 경우에는 용이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소니는 PS3의 발매 이후 자사의 제품들의 메뉴 시스템을 대부분 XMB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으로, 소니 제품을 많이 사용하시는 분들께는 이 방식이 여러모로 편리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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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플레이스테이션 3로 야구게임 타이틀인 MLB The Show 08을 플레이한 장면입니다.
MLB The Show 08의 경우 1080p까지 지원하는 타이틀이지만, 1080p 사용시에는 프레임에 약간 불안한
감이 있어 720p를 권장하는 편이며, 별도의 설정을 수정하지 않는한 MLB The Show 08을 실행시키면,
자동적으로 720p로 플레이되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 1080p로 설정을 해두었을시 좀 더 화질 면에서는 쨍하고
우수한 화질을 보여주긴 했지만, 가끔씩 프레임상에서 불안한 감도 있고 해서 720p로 플레이할 때 좀 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만약 1080p로 플레이 하시길 원하시는 경우에는 플레이스테이션 3의 디스플레이 설정에서
720p를 강제로 해제해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에 언급한 대로 자동적으로 720p로 플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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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샷만 봐서는 실제 중계방송인지 게임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죠 ^^;
메탈 기어 솔리드 같은 최신 게임을 플레이해보진 못했지만, 엑스박스 360 게임과 비교를 해보자면
아무래도 브라비아와의 싱크로율에 있어서는 PS3 게임이 미세하지만 더 좋을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경향은 좀 더 고사양을 요하는 타이틀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며, TV방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본래
의도한 색감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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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BOX360의 레퍼런스 타이틀인 '기어즈 오브 워' 플레이 장면입니다. 이미 1080i 32인치 디스플레이로
수도 없이 질리도록 즐겼던 타이틀이지만, 확실히 1080p 40인치의 디스플레이로 플레이해보니,
게임을 새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번 리뷰를 통해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은
FPS 게임시에 '움직임 표현 강화 기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다른 스포츠나 롤플레잉, 액션 등 3인층으로 주로 진행되는 게임들과는 달리,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FPS게임에서는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이동시킬 때 마다 빠른 화면전환 속도 때문에 속칭 '멀미'현상이
느껴지기도 하고(물론 FPS에 적응된 게이머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만 ^^), 빠른 움직임 표현으로
인해 화면에 잔상이 남거나 프레임에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움직임 표현 강화'기능을
'높음'으로 설정한 뒤 플레이 해보면 확실히 움직임이 부드러워 짐을 느낄 수 있었고, 영화를 볼 때 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기 보다는(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좀 더 자연스런 게임화면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기어즈 오브 워'에서 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로디런'동작이라던가, 구르는 동작에서는
'움직임 표현 강화'기능에 효과를 좀 더 극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히 어려울 것 같아 캠코더로 촬영을 해보았는데, 캠코더 촬영영상으로도
직접 플레이하는 것의 느낌은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네요 ^^;



(초반 장면이 촬영이 안되었지만, 시작 부분은 '움직임 표현 강화'기능이 '높음'으로 설정된 채로
플레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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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노트북과 연결한 모습입니다. 소니 VGN-C21LH/W 모델을 PC입력 단자에 연결해 보았는데,
컴퓨터 모니터 용으로도 큰 손색은 없어보였습니다. 기존 사용하던 모델인 제바32인치 모델의 경우 DVI/HDMI
케이블을 통해 1:1로 매칭이 되어 기존에도 TV화면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할때 가끔 사용하곤 했었는데,
이번 브라비아 W4000의 경우도 PC입력으로 노트북과의 연결과 동시에 HDMI단자를 통한 데스크탑 컴퓨터와의
연결도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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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되었지만, 포스트의 가독성에 있어서도 크게 무리가 없는 표현력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웹서핑이나 일반적인 컴퓨터 모니터 용으로 40인치의 W4000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음으로,
대략적인 인터넷 사용정도만 테스트 해보았습니다. 이전 디스플레이를 사용할 때에도 그랬지만 가끔씩
컴퓨터와의 연결을 할 경우에는 웹상에서 제공하는 1080i,1080p 급의 예고편 영상 감상이라던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VOD서비스 등을 감상할 때 사용하곤 했는데, 이런 소스의 경우
컴퓨터 모니터로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체감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아쉬웠었는데, 확실히 40인치로
감상하니 좀 더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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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에 올라왔었던 '다찌마와리 720p 예고편'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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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DP에 올라왔었던 '놈놈놈 1080p 예고편'영상입니다. 기존 컴퓨터 모니터로 볼 때는 아무래도
와이드모니터가 아닌터라 위아래 블랙바의 비율도 크고 버벅거리는 점도 많았는데, 브라비아를 통해 감상하니
화면비 적인 면이나 화면의 퀄리티 면에 있어서도 제법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본래 소스가
720p,1080p 이다보니 40인치 디스플레이에서 재생을 해도 크게 화질이 저하되거나 하는 점은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존 1080i까지 지원하던 디스플레이와의 차이점 가운데 아쉬운(?)점을 꼽자면,
SD급 영상이나 VOD 소스 같은 경우 1080i 32인치에서는 크게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지만, 1080p의 40인치
디스플레이에서는 아무래도 소스가 디스플레이를 따라오지 못하다보니 이미 블루레이급 영상에 익숙해진
눈으로서는, 많은 부족함과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건 뭐 업스케일링 되지 않은 DVD를 풀HD
디스플레이에서 재생할 때 느끼는 불편함과 같은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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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플로어를 2개씩 띄워놔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화면크기더군요. 기존에 32인치를 사용했을 때에는
익스플로어 창 2개는 엄두도 못내었었는데, 40인치만 되어도 창 2개씩 띄워놓는 건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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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P 기능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즐기면서 TV를 동시에 즐기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사실 소니 HD캠코더를 HDMI케이블로 연결하여 브라비아 W4000의 싱크 기능을 사용해 볼려고 했는데,
소니 HDR-HC3모델은 이 싱크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 같아 이 기능을 직접 활용해보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공식적으로 마지막편이 될 다음 리뷰에서는 앞선 리뷰들에선 다루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와,
4주간을 걸치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느낀 W4000의 장단점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2008/08/04 - [Hardware Review] - BRAVIA W4000 리뷰 _ 2. TV&Blu-ray 시청 및 각종 기능 살펴보기
2008/07/28 - [Hardware Review] - BRAVIA W4000 리뷰 _ 1. 외관 및 디자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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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TV나 블루레이 시청을 하게 되면서 미리 알려드린대로, 2주차에는 TV와
블루레이 시청을 위주로하여 연관된 기능들도 살펴보는 것으로 리뷰를 해볼까 합니다.

(참고로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는 모두 TV화면을 DSLR로 촬영한 것으로 최대한 보정을 하지 않은,
그러니까 사진으로서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른 색감과 느낌이 나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가까운 수준으로만 보정을 거친 사진입니다)


일단 현재 저희 집의 TV시청 환경은 지금까지 기존 지역 케이블(무료)에 HD방송은 별도 안테나를 이용해
수신해보고 있었는데, 주변 환경상 안테나로 수신하는 HD방송의 신호세기도 매우 미약해서 거의 안나오기도
하고, 이번 리뷰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지역 케이블 방송에 HD형 상품을 신청하여, HD방송을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지난번 디자인과 외관 편에서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았었는데, W4000은
안테나 수신단자가 1개 뿐이라, 만약 이전과 같이 일반방송 케이블과 별도의 안테나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경우였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뻔 했습니다).

지역 케이블의 HD형 상품의 경우 외장의 셋톱박스를 이용해 재전송하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는데,
물론 이 셋톱박스도 HDMI케이블을 통해 TV와 연결이 되어 있어 HD방송 시청이나 케이블 방송을 시청할 수
있지만, 케이블을 직접 TV에 연결하는 편이 좀 더 높은 퀄리티의 지상파 HD방송을 즐길 수 있는터라,
직접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이 경우 케이블(OCN이나 채널 CGV,XTM 등)에서 HD로 송출하는 방송은
HD로 볼 수 없기 때문에, HDMI로 연결된 외부입력을 통해 HD로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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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HD방송을 수신하는 장면은 위와 같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HD방송의 경우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대한 제목 정도의 정보와 그 프로그램의 종료까지 남은 시간, 현재 시각, 그리고 화면비와 화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근 HDTV들은 TV자체에서 방송의 시간표나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소니의 W4000같은 경우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현재 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제목만 정보를
제공하고, 좀 더 구체적인 시간표의 기능은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브라비아 제품을 처음 사용해보는터라
자세히 몰랐지만, 기존 제품들에 대한 리뷰들을 읽어보니 기존 브라비아 제품들도 이런 기능은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 같더군요). 물론 저 같은 경우나 케이블에서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케이블에서 제공하는 시간표 정보를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국내에 출시되는 대부분의
TV들이 이 같은 기능을 지원하는 것에 비교하면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표도 시간표지만 특히 TV방영 영화 같은 경우, HD소스로 방영하는 것인지 SD급으로 방영하는 것인지가
궁금할 때가 많은데, 이런 정보를 TV에서 미리 확인할 수가 없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아쉬웠습니다.

채널을 보면 디지털 채널은 일반 채널과 다르게 11.1, 9.1 처럼 '.1'의 형태로 표기되는데(그래서 리모컨에도
. 버튼이 따로 있었죠), 이 것이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지만 지상파 일반 방송까지 합치면 같은 채널이 상당히
겹치게 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조금 번거로움도 있습니다. 물론 각 채널을 매번 직접 숫자버튼으로 누른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지상파 채널 이동의 경우는 직접 채널 번호를 입력하기 보다는 채널상하 버튼
만으로 돌려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조금은 불편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이 아닌 일반 채널은
그냥 지우면 되지 않느냐 하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 화면비 설정 기능을 얘기할 때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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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방송인 MBC 뉴스데스크의 모습입니다. 표준 화질모드로 촬영된 것이며(특별한 코멘트가 없는 것은
모두 표준화질 모드로 촬영되었습니다), 약간의 흔들림은 화면상의 문제가 아니라 촬영상의 미흡함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위의 사진에서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서태지의 인터뷰 장면의 경우 아래 날씨
정보 장면처럼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SD급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금의 화질차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위의 사진의 자막 부분처럼 일반 HD방송은 매우 선명하고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화질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무래도 뉴스보다는 HD로 방송하는 드라마에서 좀 더 화질의 퀄리티를 느껴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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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잠시 지상파 채널의 경우 디지털 채널과 아날로그 채널이 겹쳐서 살짝 번거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날로그
채널을 지우지도 못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브라비아 W4000에는 디지털 채널에서 16:9 와이드 화면비가
아닌 4:3의 풀스크린으로 방송을 내보낼 경우, 인위적으로 화면비를 TV에서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상파 3사와 EBS의 디지털 방송의 경우 모든 방송이 HD 와이드 화면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거의 절반에 가까운 방송이 4:3의 풀스크린으로 방영되고 있는데, W4000에서는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이 가로로 주욱 늘어진 디지털 방송을 볼 수 밖에는 없는 형편입니다. 제가 기존에 사용하였던
제바 32인치 모델의 경우 리모컨에 별도로 화면비를 와이드에서 풀스크린으로 또는 반대로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어, 디지털 채널에서 HD가 아닌 4:3 화면비의 방송을 방영할 때에도 본래의 화면비인 4:3으로
감상할 수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W4000에서는 와이드 화면의 경우 위의 사진처럼 '가로늘리기' '확대' '와이드 줌'
등 와이드 화면을 더 늘이는 기능들은 존재하지만 4:3 화면비로 바꾸는 기능은 제공하지 않고 있어,
결과적으로 아날로그 채널을 지울 수도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대표적으로 MBC의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의 경우도 HD로 제작되는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날로그 채널을 통해 본래의 화면비인 4:3으로
즐기고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이 기능이 없는 것이 가장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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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디지털 채널인 EBS의 방영장면인데, 위의 프로그램은 HD의 와이드 영상으로 제작된 영상이 아니지만,
4:3으로 화면비를 조정할 수가 없는터라 저렇듯 좌우로 늘어난 채 감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10.1의
디지털 채널이 아닌 아날로그 채널 13번으로 감상을 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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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량과 화질의 경우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어있고 사용자가 이를 직접 세팅할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값들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대부분의 일반 사용자라면 기본 세팅만으로도 특별한
조정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좀 더 자신에 취향에 맞는 세팅을 해도 좋겠구요.
음향 모드의 경우 '클리어 보이스'라는 기능을 수록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뉴스나 드라마처럼 외부소리보다
중심이 되는 소리의 비중이 월등하게 큰 경우에 어울리도록, 주 사운드가 돋보이게 세팅이 된 기능이라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멀티 사운드를 요하는 경우는 옵티컬 단자를 통해 리시버와 연결하여 TV스피커가
아닌 홈씨어터 시스템으로 즐기는 편이라, 일반적으로 TV를 볼 때에는 클리어 보이스로 설정해 두고
보기 때문에 아주 큰 특징점은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W4000의 경우 하단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스피커가 들려주는 사운드의 퀄리티가 TV스피커 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 벌써부터 W4000의 기본 사운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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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의 경우 기본 설정이라 할 수 있는 '표준'을 기준으로, '선명' '시네마' 그리고 '사용자 정의'로 모드를
수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 수록된 <다크나이트>프롤로그의
1080P 영상인데, 표준과 시네마, 선명의 차이점을 부족하게나마 느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시네마'의 경우 약간 어두우면서 좀 더 필름틱한 따뜻한 느낌을 주며, '선명'의 경우 밝기와 선명도가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표현된 쨍한 화면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느낌은 1080P의 HD화질을 더 극하게
즐겨보겠다는 생각에 선명으로 감상하였으나, 이 선명 모드는 약간 과도한 감이 있고 또 오래지 않아서
눈이 금방 피곤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표준 모드로 감상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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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특별한 기능은 아닌데, 자막 방송의 경우 구현 장면을 그냥 추가해보았습니다.
자막 방송의 경우 지원하는 방송에 한해, 자동으로 지원되도록 할 수 있으며, '조용히' 기능을 사용할 때만
자막이 제공되도록 설정에서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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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찾기' 기능을 사용할 때의 화면인데, 즐겨찾기라는게 일반적인 외부입력 선택이나 채널 선택 등을
추가로 설정하는 기능 이상으로 사실상 쓰이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메리트가 있는 기능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외에 추가적인 기능으로는 '시계팝업'과 '스토리보드'가 있는데 이건 솔직히 왜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사실상 필요 없는 기능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시계팝업'이란 말그대로 시계방향으로 화면을 뿌려주는
기능이며, '스토리보드'역시 화면에 장면을 하나씩 계속 풀어주는 기능인데, 뭐랄까 '백남준 비디오아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특별히 W4000만의 장점이라고 내세울 만한 기능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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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4000이 강조하고 있는 기능 중에 하나라면 바로 '120 Hz MotionFlow'를 꼽을 수 있겠는데, 말 그대로 잔상없이
움직임을 좀 더 부드럽게 구현해주는 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스포츠 중계 같이 움직임이
시종일관 많은 영상 같은 경우에는 이 기능이 상당히 유용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른바 '깍뚜기'현상도
이 기능을 통해 어느 정도 개선된 듯 하고, 빠른 움직임의 표현에 있어서도 좀 더 자연스러운 영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W4000의 상세정보 페이지에 보면 이 모션플로우 기능을 설명하면서 '더욱 더 부드러운 영화
감상이 가능'이라고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 감상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듯 했습니다.
물론 기능적인 면만 보자면 추가로 가상 이미지가 생성되어 좀 더 부드러운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이 기능을 극대화 하기 위해 '높음'으로 설정해두고 영화를 본다면, 뭐랄까 극영화라기 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나 HD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듯한 느낌의 이질감이 느껴지고, 혹은 마치 입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진 탓에 오히려 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으며, 마치 테입을 빨리 감는 듯한
느낌까지는 주지 않지만, 무언가 너무 효과가 극대화되어 영화 본연의 감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표준'보다도 '해제'로 해두는 편이 영화를 볼 때에는 특히 추천하는 바이며,
스포츠나 움직임이 그리 많지 않은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표준'정도로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이 부분은 각자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으니, 기회가 되시면 직접 체험해
보시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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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동안 사용해오던 디스플레이가 32인치에다가 1080i까지만 지원하는 모델이었기 때문에 40인치 풀HD의
위용을 느끼기에는 블루레이 소스의 재생시의 효과가 가장 컸습니다. 사실 기존에는 32인치 정도면 1080i나
1080P나 별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는데, 40인치 정도되다보니 1080P 만의 우수성이 확실히
느껴지더군요. 특히 W4000은 24P 트루시네마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 오리지널 24프레임으로 저장된 블루레이
소스의 경우 60i에 맞춰 억지로 pull down하지 않고 그대로 재생하여 좀 더 극장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 차이를 확연히 느끼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를 두 대 놓고 비교해보면 좀 더 용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눈은 좋은 환경에 금방 적응하기 때문에 며칠 전까지 봐왔던 32인치
1080i 환경과의 상대적 비교가 쉽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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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같이 1080P 소스의 블루레이를 재생하게 되면 '1080/24p HD'로 화면에 표기됩니다.
화면 속 영상은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 수록된 <다크나이트>프롤로그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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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계속 화질과 구현이 좋은 것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소스도 블루레이의 최강의 화질을 수록한 다크나이트 프롤로그 이고, 디스플레이도 32인치에서 40인치로,
1080i에서 1080p로 한번에 모두 '겹경사'를 맞은 상태이기 때문에, 평소 느끼는 것보다 좀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렇다하더라도 1080p 소스를 구현함에 있어 브라비아 W4000의 표현력은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이번 브라비아 W4000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이 화질 면을 주저 없이 꼽을 정도로, TV의 본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영상 재생과 화질에 있어 소니다운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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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론 잘 표현이 안되었지만, 풀HD 소스의 재생시 느껴지는 화질의 퀄리티는 상당합니다.
밝은 장면에서 쨍한 색감은 물론 위의 사진처럼 비교적 어두운 장면에서도 암부의 표현력이 상당한 편입니다.
움직임이 많을 때에도 잔상이 거의 남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물론 이부분은 모션플로우 기능을 어떻게
설정해 놓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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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로 출시된 <픽사 단편 컬렉션 VOL.1>을 재생해 보았습니다. 카 (Cars)의 경우 이 작품을 보면서
세 번 놀랐다고 할까요.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 놀라운 기술력에 놀랐고, 처음 블루레이급 화질로 접했을때
놀라운 화질에 놀랐고, 세 번째로 풀HD로 보았을 때 다시 한번 화질의 우수성에 놀라구요 ^^
애니메이션의 경우 실사 영상보다는 모션플로우 기능의 이질감이 아무래도 좀 덜한 편입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3D 애니메이션을 볼 때 다시 한번 화질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더군요.
지금까지 봤던 화질이 우수한 블루레이들을 죄다 한 번씩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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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역시 블루레이로 출시된 <살아있는 지구>를 재생한 모습입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의 경우 좀 더
쨍한 화질을 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화질모드를 '표준'이 아닌 '선명'으로 두고 감상해보았습니다.
영화 같은 경우 '선명'으로 재생하게 되면 본래의 색감을 너무 많이 잃게 되어 선택을 잘 하지 않게 되었지만,
<살아있는 지구>같은 HD다큐 영상의 경우에는 '선명'으로 감상하여도 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약간의 색감이 오버되는 경향이 있지만, '쨍한' 화질을 느끼기에 크게 이질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션플로우 기능같은 경우도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높음'으로 설정했을 때도 영화나 일반 TV시청시
보다는 불편함이 덜하였습니다. 다큐라는 영상의 특성상(특히 자연다큐) 실제로 살아있는 듯한 입체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같이 다큐영상을 볼 때는 일반적인 시청시보다,
좀 더 '선명'모드와 '모션플로우'기능을 적절히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기능적인 면에서는 최근 출시되는 타 회사의 신모델에 거의 제공되고 있는
EPG기능 등이 수록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지만, 화질 면에서는 역시 소니, 브라비아 다운 수준급의 퀄리티를
선사함으로서 TV의 기본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의 시청 자체에 대한 면에서는 매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소니가 삼성이나 LG 등 국내기업에 비해 로컬라이징이 약하다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약점이 될듯하며, 화질 자체의 퀄리티를 중요시 한다면 브라비아를 주저 없이 선택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이 글은 DVD프라임의 브라비아 체험단 게시판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8/07/28 - [Hardware Review] - BRAVIA W4000 리뷰 _ 1. 외관 및 디자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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