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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怒り, 2016)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


2010년작 '악인'에 이어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영화화 한 이상일 감독의 신작 '분노 (怒り)'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분노라는 제목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물론 그 질문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메시지는 믿음이라는 아주 진부하고 원초적인 감정 혹은 행동에 있다.


영화는 도쿄에서 벌어진 한 부부의 잔혹한 살인사건을 던져두고 이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치바와 도쿄, 오키나와를 각각 배경으로 하는 전혀 다른 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 구성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는 방식처럼 보이지만 영화 '분노'는 범인을 찾는 스릴러가 아닌 이 하나의 살인사건이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앞서 언급했던 의심과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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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인물들이 하나의 스크린에 등장하지만 이 세 개의 이야기는 결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즉,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존재가 가능하되 단지 전제가 되는 사건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셋 중 어떤 이야기 하나 만을 골라서 영화화를 했어도 충분히 힘 있는 드라마가 가능했었을 텐데, 왜 세 개의 이야기를 같은 시공간에 겹쳐 놓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인물들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지, 즉 비슷해 의심과 신뢰의 과정 속에서 어떤 잘못이나 상처를 겪게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의 네 번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나만의 분노, 아니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게 만든다.


이상일의 '분노'를 보며 새삼스럽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믿는다 는 말을 자주, 또 쉽게 하곤 하는데 그 믿는다는 말속에 과연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것과 같은 각오나 확신이 내포되어 있었는가 싶다. 이 영화가 끝까지 힘을 받게 되는 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예상되는 세 명의 인물에 대한 그 주변 인물들의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이고 수긍이 되는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의심을 보고는 '어떻게 저들을 의심할 수 있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세 명이 다 범인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이 더 쓰라린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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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를 보고 들었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 속 인물들의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의심이 확신에 가깝게 발전하게 된 이유다. 이들이 의심을 갖게 된 과정을 보면 그 대상의 말과 행동이나 과거 등으로 미뤄봤을 때 충분히 의심이 갈 정도의 합리적 추론은 결정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별 다른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자신이 아끼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써 경계 차원으로 의심을 갖게 되고, 또 확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들의 의심을 두고 뭐라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과정에 대한 묘사는 현실적이고 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그저 어쩔 수 없음의 비관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인가 라고 묻는 다면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일 감독의 '분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다.  그 과정의 상처를 잔인하리만큼 냉혹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걸 관객이 이전처럼 쉽게 내뱉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자 끼치고자 했던 영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완전히 믿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 혹은 완전히 믿어야만 하는 존재를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것. 이건 인생의 커다란 고통이자 또 희망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그럼에도 믿고자 했었던 아이코 (미야자키 아오이)가 타시로 (마츠야마 켄이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래서 더 처연하고 또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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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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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죽음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의 시점에 대해 미리 알게 되는 시한부 삶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통해 그 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구성으로, 주로 회환의 정서를 담아낸다.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이상일의 '분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등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역시 시한부 죽음과 회환의 정서가 담긴 작품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세상에서 한 가지가 사라질 때마다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판타지적 설정이다. 그렇게 영화는 주인공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사라지게 만든다. 전화를, 영화를, 시계를 그리고 고양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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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복잡한 플롯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 이 영화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영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과의 직간접적 연관성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면.


영화 속 주인공은 영화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지는 것으로 연결되지만,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내게 그 이상의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대해 쓰기를 좋아하고 또 부업으로도 삼고 있지만,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닌 이 영화라는 것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이 영화처럼 만약 영화가 사라진다면 하고 말이다. 영화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꿈꾸는 것을 그만두는 것과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꿈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연결되는데, 내게 영화란 바로 그런 꿈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기에 영화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꿈꾸는 것 자체가 턱 하고 먹먹하게 막혀버리는 듯한 심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영화, 극장, 비디오 가게 등과 관련된 즉, 영화와 관련된 삶의 모든 추억들이 사라진다고 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부분 영화가 내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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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영화를 보기로 처음 마음먹었던 건 역시 제목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미야자키 아오이가 출연한다는 사실 보다도 먼저 알게 된 이유였다. 수년 전에 옥탑방에 살면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었고, 이후 녀석을 입양 보내고 몇 년 뒤부터 지금까지 유기묘였던 한 녀석과 당시 여자 친구가 키우던 또 한 녀석과 함께 하고 있는 집사 인터라, 만약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이라는 궁금증은 결코 영화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이미 이별을 경험했거나 혹은 언제가 이별의 순간이 닥친다는 걸 천천히 준비하려 할 것이다. 흔히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가족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존재다. 뭐랄까, 고양이와 나, 나와 고양이가 서로가 서로에게 100% 의지하는 관계랄까. 나는 고양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순간,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녀석들에게 많은 의지와 위로를 받고 있다. 이건 아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순간인데, 문득 집에 있다가 녀석들을 보며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또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그런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스크린 밖 현실의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언젠가는 닥치게 될 그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게 되어 견디기 힘들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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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을 구성해 온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인연, 친구, 추억, 고양이 그리고 가족. 앞서 집사의 한 사람으로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하는 영화 속 가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족의 이야기 역시 얼마 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더 인상 깊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세상에 어떤 존재일까 라는 질문과 연결이 되는데, 다시 말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나, 나는 내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였나, 나는 내 가족에게 어떤 아들, 아빠, 남편이었나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리고 참 새삼스럽고 낯간지럽지만, 지금이라도 후회스러운 일들을 더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가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살아야겠다'라는 말은 한 편으론 참 거창하고 또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는 간지러운 표현인데, 이 영화가 담아낸 이 메시지는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면 '살아야겠다'는 맘을 먹게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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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좋아하는 배우들과 제목의 고양이가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기 전 예상했던 건, 일본 영화 특유의 알맹이 없는 그럴듯한 분위기의 감성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왜,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겠는데, 영화 스스로가 너무 앞서가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아도 공감은 덜한 그런 영화. 


누군가에겐 이 영화 역시 그저 그런 비슷한 일본 영화 한 편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영화 속 죽음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내 삶과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설령 잠시였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영화였다. 

역시 미야자키 아오이는 언제나 옳다.


1. 우리가 왜 헤어졌었지?라는 대사는 참 현실적이어서 와 닿더라는. 실제로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었지?' 싶은 일들이 많더라는.

2. 영화 속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는 나중에라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

3. 영화 속 미야자키 아오이의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놓치면 안 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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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

'혼자'와 '함께'가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에 대해



갈 곳을 잃고 시부야의 뒷골목을 배회하던 9살 소년 ‘렌’은 인간 세계로 나온 괴물 ‘쿠마테츠’와 마주치게 되고, 그를 쫓다 우연히 괴물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쿠마테츠’에게 ‘큐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소년은 그의 스승을 자처한 ‘쿠마테츠’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지만 너무도 다른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며 변해가고, 진정한 가족의 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어느 새 훌쩍 커버린 ‘큐타’가 인간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전작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를 통해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더 완벽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려냈던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는 넓은 의미에서 역시 전작인 '썸머워즈 (サマーウォーズ Summer Wars, 2009)'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늑대아이'의 주제를 또 한 번 확장시킨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판타지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또 한 번 사랑,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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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괴물의 아이'의 플롯은 같지만 다른 두 인물이 서로에게 자극 받아 동시에 성장하는 익숙한 드라마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갈 곳을 잃고 외톨이가 된 소년 렌과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한 편으론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쿠마테츠는 우연히 만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각자 조금씩 성장해 간다. 여기서의 성장이란 단순히 세상과의 소통하는 법이나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받은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버려지거나 소외된 존재라는 점을 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닫혀 버린 마음, 즉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기 방어적인 가치관이 서로로 인해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에 호소다 마모루 만의 포인트는 역시 '가족'이다. '늑대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인 하나가 스스로 어머니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던 것처럼, '괴물의 아이' 역시 렌과 쿠마테츠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탄생 혹은 가족애를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정한다. 전혀 다른 인물들이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동반 성장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아주 익숙한 구조인데, 여기에 호소다 마모루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테마는 그 역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늑대아이'에 이어 또 한 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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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는 '괴물의 아이'에서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택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가슴에 구멍이 뚫리거나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의 치유 방식과 같은 것은, 아주 직접적인 방식이지만 어쩌면 애니메이션에서만 표현 가능한 형식으로 메시지 전달에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쁜 생각 혹은 큰 상처를 받았을 때의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그 때의 감정으로 남게 되어 스스로를 앗아가게 된다는 설정은 메시지적으로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작품 내내 꺼내들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딕 (백경)'의 비유 역시 아주 직접적인 비유였다고 생각되는데, '모비딕'의 이야기가 결국 상대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괴물의 아이' 역시 앞서 말한 악한 감정으로 남게 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 '괴물의 아이'가 더 좋았던 건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결국은 모든 것을 홀로 해내려 하지 말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의 손을 뿌리치지 말고,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가 자신 과의 싸움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 내 편인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 문구인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정말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뻔한 말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왜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는, 아니 그렇다는 것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믿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의 믿음이 이야기의 힘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괴물의 아이'의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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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교가 큰 의미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해보자면 '괴물의 아이'는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썸머워즈'와 '늑대아이'를 적절히 융합한 작품이다. 즉, 어느 작품이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앞선 두 작품을 먼저 이야기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아쉬운 점들도 있었지만 (이 대부분의 아쉬움은 모두 엄청난 전작들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함께와 가족에 대한 메시지는 이번에도 강렬했다. 자, 이제 다음 작품은 다시 '시달소' 같은 작품 한 번 만들어주세요.



1.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들 중 하나는 바로 렌의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이었어요. 몇 장면 안되고 매우 짧지만, 없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2. 또 하나 좋았던 캐릭터는 이오젠의 아들 캐릭터. 여기서도 호소다 마모루의 성격을 알 수 있어요. 뭐 하나 나쁘기만한 캐릭터가 없죠.


3.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이 언제 될지 몰라 일본서 개봉했을 때 일찍이 보러 갔었는데, 처음 보고 바로 든 생각이 '아, 신주쿠가 배경이네..., 여기 또 다 다녀와야 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이랄까. 실제로 이미 몇 군데는 다녀왔던 곳들도 있어서 루트가 바로 머릿 속에 그려지던...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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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것



오다기리 조의 내한 소식 때문에 급하게 보게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은 그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츠다 류헤이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가던 마음 가짐도 오다기리 조를 실제로 본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하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기만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화는 의외로 진중하고 내 현실과도 겹쳐져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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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5년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를 배경으로 이들이 '대도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사전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과정의 묘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로서,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최근엔 전자 사전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사전 만들기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과정을 견뎌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일단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 아닌, 어쩌면 관심은 물론이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일들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바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사실상 전혀 몰랐던 일의 시작과 과정, 완성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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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큰 행복을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영화 속 대도해를 만드는 일은 이런 점은 물론 그것이 비록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도 '일'이라는 것에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평생 직장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마츠다 류헤이가 연기한 마지메는 대도해를 만드는 일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이 일에 평생을 매진하기로 결정하는데, 일단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마지메라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선택 혹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일을 만나고 그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부럽기도 했다. 또한 더 부러웠던 것은 그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고 묵묵히 바라봐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 속의 마지메의 삶도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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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평생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선택할 때 직장의 조건 및 환경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이거나 '가치 있는 일' 그 자체였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 가치를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전 만들기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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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주저없이 바칠 만한 일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환상에 가까운 일일까? 조용한 한 무리의 사전 만들기 이야기가 작은 파도를 불러왔다.



1.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터라 등장부터 놀랐던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 조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깜놀.


2. 아래는 지난 2월 18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전' 상영 이후 GV에 참석한 오다기리 조 사진. GV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에 답하느라 배우나 감독들이 고생이 많은 듯;; 오다기리 조는 이날 무심한 듯 하면서도 나름 솔직한 답변들을 들려준 편이었어요.


왜 미야자키 아오이는 내한하지 않은 것인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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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를 만든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를 보았다. '시달소'와 '썸머워즈' 모두를 인상 깊게 본 입장에서 그의 신작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처음 포스터가 공개되고 예고편을 보게 되면서 그 기다림을 더 깊어지게 되었다. 제목과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늑대인간과 인간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즉, 판타지에 더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그냥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가 진심으로 크게 당했다. 결국 호소다 마모루는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쓴 '어머니의 노래'를 바탕으로 이 세상 어머니들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함을 '늑대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빌려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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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 작품은 '늑대아이'가 되었다. 올해가 다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몰입도가 대단했는데, 왜인지는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정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초반 전개서부터 계속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머니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면 주인공 '하나 (花)'가 어머니가 되기 전 장면에서부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이미 올라와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픽사의 '업 (Up)'이 초반부에서 이미 관객을 펑펑 울렸던 것에 비할 정도였는데, 이 감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가 후반부에 가서 다시 끓어오른 것이 아니라, 이 때부터 끝날 때까지 러닝 타임 내내 감정선이 유지되어 글썽였다는 것이 '업'과는 다른 점이었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하나가 어머니의 삶을 살게 되는 시작 시점에서 별다른 대사 없이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일련의 순간들을 그려내는데, 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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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와 아메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만 그 근원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보편적인 이야기다. 보편적이지만 위대한 이야기. 정말 천방지축으로 말썽을 부리는 유키의 어린 모습, 숫기가 없어서 본인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 아메의 모습, 늑대인간인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들을 피해 인적드문 시골에서 어렵지만 작은 행복을 만들어 가는 하나의 모습, 이후 유키와 아메가 각각 겪게 되는 다른 이야기는 늑대인간이라는 특수성과 잘 맞닿아 있지만 늑대인간 이야기를 빼더라도 성립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자 모든 어머니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 만의 길을 택하게 되는 유키와 아메의 모습은 모든 아이들이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마음, 더 중요한 어머니의 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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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유키가 아팠을 때 소아과를 가야할지 가축병원에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에서 전혀 코믹함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여기서 중요한 건 두 병원 사이에 놓인 늑대인간으로서의 유키가 아니라, 아픈 아이를 두고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늑대와 인간 사이를 마음껏 오가는 어린 유키를 학교에 보내는 하나의 마음 역시, 처음 내 품에서 처음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메가 강물에 휩쓸려 죽을 뻔 했을 때 하나가 느낀 심정 역시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말로는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 하는 건 체감하기 어려운데, '늑대아이'는 처음부터 워낙 깊게 빠져있어서인지 이런 클리셰에 가까운 장면들에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내내 울면서 보다시피 한 것은 역시 태풍이 몰아치던 날의 장면이었다. 하나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바로 아메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인간보다는 늑대의 세계에 더 빠져있던 아메는 태풍이 몰아친 그 날 말없이 숲 속으로 향하는데 이런 아메를 찾기 위해 하나는 정말로 큰 역경을 겪는다. 보통 같으면 왜 기다리는 유키를 데리러 가지 않고 아메를 (끝까지) 찾기 위해 죽음에 문턱까지 겪으면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하나를 아메가 집으로 데리고 온 뒤의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하나의 마음을, 호소다 마모루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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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엄마가 되면서부터 계속 어떻하면 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어떻하면 늑대아이를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난감해 했었는데, 하나는 아메가 바로 그 어른이, 자신의 품을 떠나서도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본인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아메를 끝까지 찾아 헤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제는 가족을 떠나 산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를 닮아있는 아메를 산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은 정말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떤 과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키워낸 아메인지를 알기에, 그런 아메를 떠나보내기엔 아직 하나에겐 너무 이르다는 것도 잘 알기에 이렇게 '건강하라'며 떠나보내는 하나의 외침은 정말로 감정이 터져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이런 삶을 살아왔구나해서....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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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이라는 특수성에 더 기반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랬었기에 이 본편적 진리의 이야기에 더 무방비 상태로 눈물을 빼았겨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근본에는 그 동안 지겹게 들어왔던 어머니의 삶에 대해 비로소 '아!'하며 '아...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ㅠㅠ'하고 깨달을 수 있었기에 뭉클했었지만,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나가 어머니가 되기 전 일상을 담은 장면에서부터 무언가 감정이 일어났던 것처럼, 영화 내내 호소다 마모루의 마법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장면 하나 하나에 눈물이 섞여 나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다른 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런 어머니의 삶에 대해 와닿는 부분이 적은 상황이었음에도, 작은 일상에서부터 이 정도로 감정이입과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아직도 머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감정이입을 잘하고 감정적으로 쉽게 빠져드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나임을 감안하더라도 '늑대아이'가 주는 감동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알게 될까? 내가 지금 느낀 이 감동이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중에 나도 유키와 아메 같은 내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 알게 될까? 이유도 잘 모른채 내게는 너무도 큰 슬픔과 감동을 전해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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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 근래 이 정도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극장을 나올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감정선이 유지되고 있고, 유키와 아메를 두 손으로 안고 있는 하나가 그려진 포스터만 봐도 울컥할 정도네요 ㅠㅠ


2. 다른 분들에게는 아마도 아닐 듯 한데, 저에게는 '시달소'나 '썸머워즈'보다 더 좋았던 것은 물론, 올해 남은 기간 동안 무슨 영화가 더 나오더라도,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보다 더한 감동을 전해주거나, 피터 잭슨이 빌보 이야기로 포로도 얘기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줄지라도, 제게 있어 올해의 영화는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가 될 것 같네요 (에바가 나온다면?)


3. 집에 오자 마자 이 주제곡만 무한 반복하고 있어요 ㅠㅠ 바로 HMV에 사운드트랙 주문까지 ㅠㅠ





4.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이 영화가 또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은 하나가 시골에서 살게 되는 것 때문이었어요. 귀농 아니면 귀촌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로서는,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다시피 하는 하나 가족의 일상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군요.


5. 빨리 블루레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니, 그 전에 극장에서 더 봐야겠어요.


6. '하나' 목소리는 미야자키 아오이가 연기했는데, 제가 미야자키 아오이에 대한 언급을 한 줄도 안했을 정도로 영화에 푹 빠졌었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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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カラフル Colorful, 2010)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



확실히 선입견은 무섭다. 하라 케이이치의 전작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포스터의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조금의 아동스러움 때문에 내 취향이 아닐 거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관람을 하지 않았으나 뒤늦게 들려온 평들이 '초감동'이었던 전례를 보았을 때, '컬러풀' 역시 그림체와 마찬가지로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대략적인 이야기 전개에 굳이 보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포기할 뻔 했던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이 두 작품의 감독이 동일인 임은 '컬러풀'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포스터에서 느껴진 이른바 '뻔한' 전개라는 것이 죽음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후 세계)을 겪게 된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었는데, 넓게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으나 역시나(?) 그 가운데 다시 한번 나로하여금 울컥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확실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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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사후 세계를 맞이한다.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기 전 다시 한번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주인공은, 프라프라의 말처럼 일종의 홈스테이 개념으로 다시 누군가의 삶을 잠시 살아가게 된다. 주인공이 기회를 얻게 된 몸의 주인공은 고바야시 마코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소년이다.


'컬러풀'은 마코토로 잠시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생존, '살아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후세계에서 다시 한 번 환생의 기회를 얻은 주인공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라니, '살아라'라는 주제가 너무 일반적이거나 혹은 신파로만 흐르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담는 데에 있어 굉장히 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마코토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이유를 묘사하는 것에서 일본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들고 있는데, 10대 소녀들의 원조교제, 교내 왕따, 부모의 바람(불륜)으로 인한 문제 등 마코토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심하게 이야기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삭막한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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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컬러풀'이 더 좋았던 건 문제점을 묘사하기 위해서만 현실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도 역시 현실의 것들을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마코토라는 소년에게도 본인 스스로에게도 적응하지 못하던 주인공이 처음 같은 반 친구를 사귀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같은 반 친구는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던 마코토에게 처음 먼저 말을 걸어온 친구라는 점을 넘어서서, 그의 취미를 마코토가 따라가게 되면서 본격적인 영화의 메시지가 시작되는데, 바로 오래된 일본의 전철들의 역사와 발자취를 현실에서 따라가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잠깐 멈칫 할 정도로 영화의 국면이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되는데, 흡사 일본 전철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식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한참을 이 오래된 것에 주목하던 영화는 나중에 가서야 왜 여기에 주목했는지 친구의 말을 통해 들려준다. '이렇게 오래된 것들도 내가 관심을 가져주면 생명을 얻게 되는 것 같다'라는 말로. 사실 조금은 이질감마저 줄 수 있는 다른 이야기였음에도 처음부터 그 감성적인 영상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는데, 마지막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영화의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제대로 가슴 속에 깊이 박혀버리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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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의 영상은 앞서 이야기한 다큐멘터리 같이 거의 실사에 가까운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 외에도, 상당 부분의 배경들이 실사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감독이 말하려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더 강하게 해주는 장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주인공이라는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살아라'라는 메시지 역시 판타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 갖가지 현실의 환경과 이야기들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 있었던 역사를 그렇게 한참이나 설명했던 것이고, 치킨과 호빵 한 조각에 즐거워 할 수 있는 삶의 행복을 여과없이 중요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스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라고 영화가 관객에게 물었을 때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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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

나는 이 소중한 삶을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나요?



1. 미야자키 아오이가 목소리 연기를 했다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극 중 마코토를 주시하던 그 소녀 '사노 쇼코' 역할이더군요. 이걸 알고 나니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


2. 미야자키 하야오가 (1번과 라임 맞추는거 아님 -_-;) 말하는 '살아라'의 메시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살아라'였어요. 뭉클하기로는 '컬러풀' 쪽이 더.


3. 블루레이로도 발매되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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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ソラニン, Solanin, 2010)
청춘의 또 다른 이름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는 언제나 반가운 동시에 아련하다. 청춘을 그린 영화의 특징이라면 한참 이를 겪는 이들은 그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엔 이미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지나온 뒤이기 때문이리라.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미키 다카히로의 '소라닌 (ソラニン)'은 이런 청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자에서 돋아난 싹에 있는 독성물질'을 뜻하는 '소라닌'이라는 제목처럼, 기존의 청춘 영화들 과는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 모든 청춘 영화들이 특유의 아련함으로 보는 이를 추억과 감성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지만, '소라닌'은 유난히도 아련하다. '소라닌'은 한 때의 소나기로 기억될 수도 있고, 작은 방에 드리워진 햇살로 기억될 수도 있고, 행복했던 추억 혹은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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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이런 감정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 감성스러운 사운드트랙을 들었을 때부터 얘견되었던 것이었다. 무언가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이 풋풋하고 자유로움이 샘솟아나는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니, 사무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으로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어졌는데, 역시나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감정은 더욱 본격화 되어버렸다. 극중 메이코 (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 (코라 켄고)는 각자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거를 하는 중인데, 어느 날 이런 평범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려 조금은 우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는 더 큰 압박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내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끔 했던 것은 아마도 청춘,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라닌'은 이런 청춘이 가진 양날의 검을 모두 담담히 그려낸다. 무조건 현실에서 도망쳐 사표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며 정해진 길을 그대로 가라는 것만도 아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이 자체에는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이들의 행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극적으로 묘사되지만 않을 뿐 영화 내내 이 현실의 그림자는 주인공들에게 드리워져 있으며, 은연 중에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별다른 자극적 연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그럼으로서 이를 맞닥들이게 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현실에 처한 청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현실에서 잠시 혹은 영영 벗어난 이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현실에 놓여져있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 '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깊은 과정이 포함된 (결과는 같지만, 과정의 깊이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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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밴드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청춘은 흔히 록(Rock)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록이라는 음악은 그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장르이기 때문에 청춘과 비견된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소라닌'은 그 지점을 아주 잘 짚어내는 작품 중 하나다. 청춘을 록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작품은 '린다린다린다'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소라닌'은 그 가운데서도 '밴드 (Band)'라는 것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록만을 (혹은 펑크를) 부르 짖는 청춘과 밴드가 위주가 된 청춘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록의 정신을 청춘고 결부시킨 것보다는 밴드라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러니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 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시절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한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전자를 강조한 작품들 역시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라닌'은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함께 한다는 것 (함께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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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라닌'은 미치도록 기타 연주를 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라기 보다는 미치도록 밴드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다.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겠지만, 혼자 연주할 때와 합주할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분명히 밴드와 함께 할 때는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소라닌'는 극중 등장하는 밴드 'ROTTI'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대리만족을 가능케 해준다. 여기에 이들만의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 ROTTI가 부르는 '소라닌'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서를 안겨준다. 이건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된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수록곡의 원곡인 'Asian Kung Fu Generation'의 곡을 들어보게 되면 금새 알게 된다. 원곡도 물론 좋지만, ROTTI가 부를 때 만큼의 감동은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ROTTI가 '소라닌'을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이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절절함과 뜨거움이 미처 식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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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소라닌'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앉아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니, 한 편으론 참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작품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지리하게 흘러가는 청춘들의 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라닌'에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 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와 정서가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소라닌'을 보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미야자키 아오이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미야자키 아오이보다 '소라닌'이 더 깊게 각인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깊은 청춘의 자욱이 남아있다. 

사실 청춘 영화들이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춘 영화'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주 심하게 얘기해서 영화가 시종일관 별로 였다 하더라도 청춘의 순간을 제대로 그려낸 장면이 있다면 그 자체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라닌'은 참 인상 깊은 청춘 영화였다. 내게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였던 청춘이란 순간을, 어쩌면 바로 오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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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만화책은 뒤늦게 사려고 보았더니 모두 품절이라 좌절했었는데, 곧 영화 개봉을 기념해서 다시 재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급 기대중입니다!

2. 미야자키 아오이에게도 이런 에너지가 있었구나 싶네요. 그 에너지는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3. 사실 청춘 영화는 이렇다할 설명이나 비평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구요. 보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죠.

4. 영화를 보고 난 뒤 무한반복 중인 아지캉의 'ソラニン'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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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배케이션 (サッドブェケイション: Sad Vacation, 2007)

이 영화는 배우들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이미지로만 끌려서 보게 되었던 영화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는 감독인 아오야마 신지의 3부작 중 (<헬프리스> <유레카>에 이어)에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는데, 3부작으로 불리는 만큼 동일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다.

일단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상기를 쓸 때면 어느 정도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술술 써가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 작품은 어제 낮 시간에 감상을 했음에도 쉽게 감상기를 쓰게 되지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만큼 쉽지 않았던 영화였으며, 감독의 화법에 쉽게 동화되기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말)



극 중에 등장하는 마미야 운송회사에 직원들은 모두 떠돌이나 사연이 있어서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그네 혹은 방랑자 들이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일들로 인해 쫓기고 있는 이들도 있고, 자신이 처한 모든 것을
버린 채로 도망쳐와서 숨어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주인공인 켄지는 우연한 기회에 이 곳에, 자신을 예전에 버렸던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도 여기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잠시 순탄한듯 하지만, 켄지에게도 그리고 이 공간에 함께 하고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점점 운명처럼
그들을 기다렸던 일들이 닥치게 된다. 켄지에게는 더 힘든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다. 모든 일에 너무도 긍정적인 그녀에게 켄지의 복수의 방식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고 만다.
그러기에 켄지는 좌절하지만, 어머니는 무섭게(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어머니의
모습은 무섭기까지했다)도 이를 모두 '그러면 이러면 돼지'라는 식으로 넘겨버린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속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비누 방울이 터지면서
극한으로 대치했던 무리에게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어느 정도 희망을 얘기하는 듯 하지만, 완벽하게
희망스러운 이야기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뭐랄까 희망적이다, 정말적이다 라기 보다는 그냥 무기력하고
어쩔 수 없는, 흔히 불교에서 얘기하는 '업보'라는 개념이 자주 생각나는 분위기였다.

무거운 삶의 무게는 그것이 운명이던, 아니던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던 극복해내지 못하던 삶은 상관없이 계속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



1. 많은 사람들이 오다기리 죠의 이름을 보고 극장을 찾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엄연히 이야기의 중심에는 켄지 역을 맡은 아사노 타다노부가 있으며, 오다기리 죠는 조연 정도로 출연한다.

2. 미야자키 아오이 역시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팬으로서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터라 매우 반가웠다~

3. 기회가 된다면 <헬프리스>와 <유레카>를 본 뒤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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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好きだ,)

절제와 여백, 그리고 빛의 영화.

17세의 유(미야자키 아오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반년 전에 떠나 보낸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방과 후 강변에서 언제나 같은 소절만 연주하는 친구 요스케(에이타)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유는
언젠가부터 그 소절을 흥얼거리며 다닌다. 한 발짝만 다가서면 잡힐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서지 못하던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멀어지게 된다. 17년 후,
음반회사의 영업을 하고 있던 요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역시 음악제작회사에서
일하던 유(나가사쿠 히로미)는 우연히 재회하게 되는데..



<좋아해>는 결론적으로 매우 절제된 표현과 영상으로 만들어진 차분한 작품이다.
 ‘17년간 하지 못했던 말….좋아해’라는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오랜 시간 동안 고백하지 못했던
애틋한 마음을 극 절제된 대사와 여백을 살린 영상으로, 이야기보다는 이미지가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가 가져다 주는 재미나 감동보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솔직한 감정,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와 닿는 ‘좋아해’라는 말처럼,
 요즘 들어 우리가 너무 잊고 살고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 혹은 모두가 소년, 소녀 시절에 겪었던
그 순수한 떨림에 관해 숨김없이 그려내고 있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 못하는 이야기임에도
슬프다기보다는,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는 그런 추억과도 같은 영화이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모든 것들이 절제 되어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17년간 좋아한단 말도 못 건넨 것처럼 대사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대신, 자연 그대로를 담은 영상으로
이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나 날씨에 따라 파랗고 어둡고, 흐리곤 하는 하늘의 모습이 다양하게 담겼는데,
하늘의 빛깔에 따라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엿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좋아해>를 보게 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은 바로 조명과 빛에 관한 영화의 표현 방법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역광을 이용한 촬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과반수 이상의 컷들이 인물들의 뒤에서
빛을 비춰 인물의 얼굴이나 모습이 어둡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역광 이외에도 대부분의 장면이 자연광을 그대로 살린 실제와 거의 흡사한 조명을 택하고 있는데,
어두운 밤 장면에서 라던지, 다른 특별한 조명이 없는 실내에서 등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영화적인 조명에 의한 빛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완전히 어두운 밤에
자판기의 불빛만으로 비춰지는 장면이나, 해가 거의 질 무렵의 어슴프레한 빛 등은
살짝 적응이 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이런 자연광과 인위적인 조명을 거의 쓰지 않아
 돋보인 대표적인 장면들로는, 두 소년, 소녀 주인공이 풀 밭에 앉아 있을 때 머리 위로
큰 구름이 지나가며 그늘이 졌다가 개는 장면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주인공이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이 되어 동이 틀 때의 그 빛은 우리가 실 생활에서는 흔히 겪는 조명들이지만,
영화 속에서 이렇게 효과적으로 표현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백을 표현하는 방법. CF감독 출신답게 이시카와 히로시 감독은 영화 속에 영상들을
상당히 여백을 많이 주는 방법으로 연출했는데, 포커스를 두고 있는 인물들보다 여백이 비중을
더 높이 담아 내면서 좀 더 감성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영상들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클로즈업 시에는
매우 타이트한 카메라 워크로 인물을 잡아내기도 하며 극과 극의 연출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촬영 방식은 영화의 절제된 감정과 어울려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여기에 칸노 요코가 담당한
애틋한 음악 또한 이 여백을 채우려고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여백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돕는
매개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여백의 파란 하늘과 빛처럼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었던 영화 <좋아해>였다.

2007.01.23
글 / ashitaka


강아지를 비롯해 애완동물에 관한 영화는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큰 덩치의 세인트 버나드가 등장하는 코믹 가족 드라마 <베토벤>시리즈도 있었고, 국내에서는 전화기 CF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던 양치기 개 콜리가 등장하는 <내 친구 레시>라는 영화/시리즈도 있었고, <플란다스의 개>같은 유명한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음이>라는 국내 영화가 개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존에 공개되었던 강아지가 등장하는 작품들과 오늘 소개할 <우리 개 이야기>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기존에 작품들이 강아지가 등장하여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나 혹은 강아지의 충성스런 활약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 <우리 개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을 통해 다양한 장르로서 강아지와 인간과의 관계, 특히 최근 들어 애완동물을 그저 사치품 정도로 취급하고 너무도 쉽게 가졌다가 물건 버리듯 버려버리는 현실에 대해, 강아지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우리 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저 강아지가 등장하는 그저 그런 독립 단편집 정도로 생각했으나(특히 이누도 잇신이 연출한 에피소드를 제외한 다른 에피소드에 대한 편견은 더했다), 막상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니 이 같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개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주요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은 물론,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나카무라 시도우, <전차남>의 이노 미사키, 그리고 TV드라마와 영화 <나나>에 출연하여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미야자키 아오이 등 참여한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도 제법 탄탄한 작품이다. 국내에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렇게 의외의(?) 수준급 스펙의 DVD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우리 개 이야기>가 다른 옴니버스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각 에피소드들마다 다른 장르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우리 개가 No.1'은 뮤지컬 장르로 클래식을 번안한 노래와 코믹한 댄스를 만나볼 수 있으며,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 노래하는 남자’편에서는 극중에 소재가 되는 뮤지컬과 맞물려 뮤지컬 장르를 차용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A Dog's Life'는 뮤직 비디오로 수록되었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전체적인 장르는 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지만, 중심이 되는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한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4부작을 제외하면 각각 에피소드가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꾸민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작품들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CM이여 어디로 가는가'는 광고영상이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변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사랑에 빠진 고로'에서는 주인공인 강아지 고로의 생각이 그대로 더빙되는 설정으로 재미를 주고, '개의 말'에서는 외국에서 제작한 인터뷰 프로그램이라는 컨셉으로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나카 요지는 <스윙걸즈>를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파워 퍼프 걸>을 연상시키는 그림체의 뮤직비디오 'A Dog's Life'는 각각 Good과 Bad 버전으로 나뉘어 수록되었는데, 특히 Bad버전의 가사와 영상을 곱씹어 보면 이 작품이 말하려는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앞서 잠시 얘기했듯이 옴니버스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4부작이다. 어린 야마다 군과 우정을 맺은 시바견 포치가 계속 주인을 찾아가고 기다린다는 이 에피소드들은,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역시나 평범한 것을 애절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답게 야마다군과 포치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상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포치’시리즈는 그것만으로도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옴니버스라는 형식을 띄고 각 에피소드가 띄엄띄엄 삽입된 것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말해 4개의 에피소드를 한 번에 주욱 감상하는 것 보다 중간 중간 텀을 둔 것이, 결국 더 큰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엔딩 크레딧을 보기 전까지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있잖아, 마리모' 역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포치 이야기'가 <우리 개 이야기>의 중심이라면, 사나다 아쓰시 감독이 연출한 '있잖아, 마리모'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한 번이라도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참기가 쉽지 않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에 물결이다.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사용되었던 자막의 미학을 차용하여,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한 번은 주인인 미카의 입장에서, 또 한 번은 애완견인 마리모의 입장에서 그려낸 이야기는 주인에 입장에서 한 번, 애완견에 입장에서 또 한 번 눈물 흘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너 닮은 강아지 또 키우고 싶어’라는 자막이 흐를 때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만다. 애완동물을 한 번 이라도 키워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나, 더 나아가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냈던 애완동물을 먼저 떠나보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너무도 공감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영화제에서만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우리 개 이야기>는 상당히 수준급의 스펙으로 출시가 되었다.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본편의 영상은 모두 HD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매우 밝고 콘트라스트비가 높은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오히려 너무 깔끔한 영상 때문에 영화적인 느낌이 조금 덜한 편이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잔잔한 드라마인터라 크게 채널 분리도나 강력한 사운드를 필요로 하지 않아 특별히 멀티채널의 장점을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뮤지컬 장면에서는 공간감 있는 서라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스코어나 대사 전달도 선명한 편이다. 서플먼트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음성해설과 더불어 각각 에피소드들마다 메이킹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는 각 배우들과 감독들마다 ‘애완견은 키우는지’, ‘애완견과의 추억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다음 세상에 개로 태어난다면 어떤 개로 태어나고 싶은지’등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여섯 개의 삭제 장면을 수록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짧은 분량의 삭제장면이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와 버금가는 분량의 내용과 화질, 음질을 담고 있어 이 역시도 선택이 아닌 필수 감상코스라고 해야 할 듯하다.


2006.10.18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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