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Genova, 2008)
불안함으로 말하는 영화
<코드 46> <관타나모로 가는 길>등을 연출했던 영국출신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의 2008년작 <제노바>를 지난 8월 31일,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씨네큐브의 마지막날 마지막 회차로 관람하였다. 사실 마이클 윈터바텀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익숙한 편인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내가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 뿐인 것 같다(<쥬드>나 <웰컴 투 사라예보>같은 작품은 발로 보았기 때문에 제외 -_-;). <제노바>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극장의 특수한 사연 때문에 보게 된 것이라는 점을 고백할 수 밖에는 없겠는데, 영화를 보기 전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굉장히 불안하면서도 기승전결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고 시종일관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Revolution Film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를 다 보고 가장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역시 '불안함'이었다. <제노바>는 첫 장면부터 불안함을 계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 차를 타고 가면서 눈을 가리고 차의 색깔을 맞추는 게임을 하고 있는 모녀의 모습에서 단란함 보다는 불안함이 더 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차소리가 시종일관 불안하게 하고 더군다나 눈을 가리는 게임은 지속적으로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결국 사고가 나고 엄마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이 부분은 시작하자마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내용상 스포일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버지(콜린 퍼스)는 딸들과 함께 이탈리아 제노바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극중 이 가족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대사처럼 '제노바'라는 곳으로 떠나는건 분명 아내와 엄마를 잃은 가족의 슬픔을 잊고 새출발하기 위함일텐데, 영화 제목이 '제노바'인 것처럼 잊고 새출발하려 떠난 곳에서 결국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가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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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차사고가 나고 제노바로 떠나고 그 이후 한 동안은 약간은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부터의 전개인데 계속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어린 딸은 밤마다 악몽을 꾸는데 악몽에서 비명과 함께 깨어나는 장면들 다음에는 꼭 이 아이에게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이며, 자매가 피아노 레슨을 받고 돌아오는 위험한 골목길들에서는 험한 일이라도 꼭 당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가득 전한다. 그리고 언니가 남자친구를 만나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 역시, 맨 첫 장면의 차사고 장면과 연관되어 계속 사고가 날듯 말듯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흥미로운건 결국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런 불안감은 단 하나도 실제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앞서 복선을 깔아둔 것으로 예상되던 장면들은 이후에 아무런 사건으로도 연결되지 않으며, 불안함은 그냥 '불안함'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일어날듯 말듯한 분위기에 불안해 할 때쯤,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정작 불안함을 실컷 조성한 장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사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지점에서 큰 사고를 겪게 된다. 그리고 나서 한참 공황을 겪지만 다른 영화들처럼 큰 비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에 이르러 드디어 큰 사고가 일어나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결국 이 가족이 스스로 결핍되어 있던 것이 무언인지를 말하려고 했을 뿐 더 큰 잔인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제노바를 떠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니고 싶지 않아하던 학교를 다니고 데려다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 무언가 깔끔하지 않은 뒷 맛이 남는다. 불안불안 하지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결국 이 가족에게 문제가 되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채 '그냥 살아가는' 느낌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해보면 아버지나 언니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결핍된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본인을 희생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돌이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일어날듯 말듯한 분위기에 불안해 할 때쯤,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정작 불안함을 실컷 조성한 장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사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지점에서 큰 사고를 겪게 된다. 그리고 나서 한참 공황을 겪지만 다른 영화들처럼 큰 비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에 이르러 드디어 큰 사고가 일어나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결국 이 가족이 스스로 결핍되어 있던 것이 무언인지를 말하려고 했을 뿐 더 큰 잔인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제노바를 떠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니고 싶지 않아하던 학교를 다니고 데려다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 무언가 깔끔하지 않은 뒷 맛이 남는다. 불안불안 하지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결국 이 가족에게 문제가 되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채 '그냥 살아가는' 느낌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해보면 아버지나 언니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결핍된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본인을 희생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돌이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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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상당히 지루하거나 모호한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무언가가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관객에게는요.
2. 켈리 역할을 맡은 윌라 홀랜드의 모습은 참 우월합니다. 이탈리아 제노바라는 공간과 어울리게 이건 완전히 프레타포르테가 따로 없더군요 @@
3. 이 영화를 보고 왠지 모르게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보았던 <유리의 날>이 살짝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어떤 기자가 이 영화를 보고는 장르를 '미스테리 호러'라고 한 걸 보았는데, 글쎄요...무서웠나봐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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