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 (2010)
왜 부당거래인가?


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를 보았다. 검사와 경찰이라는 설정만 들었을 때에는 대략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게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부당거래'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왜였을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은 왜 '부당거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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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대 에이스 최철기 (황정민), 젊은 검사 주양 (류승범) 그리고 해동그룹 대표 장석구 (유해진)는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엮이고 엮이게 된다. 이들이 서로 엮이게 된데는 물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굴레에 놓였다는 점, 즉 약점을 갖고 있고 이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간파당했다는 점과 반대로 그 자신도 누군가의 약점을 완벽하게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해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제목은 '부당거래'지만 이들 간의 거래는 지극히 합당한 모양새다. 이미 서로의 머리 꼭때기에 있는 베테랑들의 간보기는 적당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인정하고 그대신 뒤통수만 치지 말자 이야기하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는 이 '뒤통수' 역시 계산된 그러니까 서로 보험 하나 씩은 들어두고 있다는 점을 애써 숨기기는 커녕, 서로에게 자신의 무기를 보여주고는 큰 일 없이 서로 좋게좋게 넘기자 라는 합당한 거래를 이어간다.

극 중 상황이 반전되고 역전됨에 따라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와 주종관계 (이것은 확실히 주종관계에 가깝다) 역시 역전되지만, 상대를 쥐고 흔들던 자신이 한 순간에 발아래 놓이게 되더라도 이들의 동요는 크지 않다. 다시 말해 보통 정의로운 주인공이 등장한 영화라면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억울하고 참기 힘든 심정을 그대로 담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의 분노와 울분에 촛점을 맞췄을 테지만, 영화는 이런 울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 울분이 관객에게까지 100% 공감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즉 이들의 억울한 울분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벌여놓은 합당하지만 부당한 거래의 산물이며 또 하나의 연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의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도 '아, 드디어 내가 이겼군!'이라기 보다는 그저 역전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처럼 보인다. 내 머리 위에 있던 상대가 드디어 내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고해서, 상대가 드디어 나에게 굴복했구나 라는 것보다는 굴복할 수 밖에는 없는 그 '순간'을 즐기는 정도로 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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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류승완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부를 만큼, 전체적인 짜임새나 에너지가 수준급이지만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라던지 혹은 '짝패'에서 느꼈던 날 것의 느낌에 반했던 이라면 완전히 대중의 코드에 들어온 그의 신작에 조금의 아쉬움을, 반대로 일반 관객들은 기존 상업영화보다는 덜 대중적인 (물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몹시 완성도 높은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은 중간에 걸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뷔작부터 팬이었던 개인적인 시선으로서 류승완의 신작 '부당거래'는 분명 다운 그레이드된 대중성이나 성격으로 인해 모호해진 작품이 아니라, 확실히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그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대중영화에 녹여내는가에 대한 여정이었다고도 생각된다. 그 가운데 좀 더 자신의 성향이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들은 좀 더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하는 반면 대중들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었고, 좀 더 대중적인 코드를 잘 소화한 작품 같은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당거래'는 드디어 이 두가지 지점이 비로소 평균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성격을 가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당거래'와 비교하자면 분명 양면이 모두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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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국영화들을 되돌아보면 '부당거래'와 비슷한 지점을 지향했던 작품으로 김성수 감독의 2006년작 '야수'를 들 수 있겠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그 뒤에서 이를 조정하는 배후세력 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가 사라져버린 씁쓸한 한국사회를 그려내려 했던 지향점은 같았으나, '야수'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아쉬움은 '부당거래'를 보고나니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당거래'는 우리가 TV뉴스를 통해 너무 잘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 지배세력과 (혹은 신분) 그 사회에 물들어 권력을 이익을 위해 휘두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풍자'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철기 역시 완벽한 정의로운 피해자라기 보다는 가해자이자 그 구성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캐릭터에게 공감이나 동정을 주기 보다는 전체적인 씁쓸한 그림을 보고는 혀를 차게 되는, 풍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아니면 좀 더 대중적으로 그리려고 했다면 관객들이 극중 최철기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의 상황을 좀 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치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처럼 더 감정을 담아줄 수 있는 캐릭터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사회와 악이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에게 어떠한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국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안타까움을 풍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내내 이런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방식들을 대부분 지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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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반부의 경우 최철기의 에필로그 정도로 묘사되어, 없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마지막이 있어야만 비로소 '부당거래'가 완성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뒷 이야기가 없어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좀 더 친절하고 확실한 방식을 원했다. 그렇게 얽혀있던 이들이 서로 엉켜붙고 하는 통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보호받고 죄를 인정하지 않아도 권력을 통해 상황을 역전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즉 이런 비리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죄를 추궁받기는 커녕 어깨 쭉 펴고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뒤로 서울이라는 도시(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풍경을 비추는 것, 또한 수미쌍관을 이루는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은 희망적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이고 계속된다는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비로서 '부당거래', 즉 법을 수호하는 자들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만들어낸 '부당한 거래'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들려준다. 그래서 영화는 통쾌하지도 애절하지도 않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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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다들 베테랑들이라 간보기 없이 바로 실력발휘들 하시더군요 ㅎ 가장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주인공인 황정민이었는데, 이건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네요. 조연들의 연기는 이 세계관을 형성하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으며, 류승범의 연기는 갈수록 물이 오르고만 있는데 하나 걱정되는건, 그의 말투나 연기가 주양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아주 어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류승범을 보는 익숙한 시선 때문에 그저 코믹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2.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들도 반가웠어요. 안길강은 거의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지만, 왜 안나오나 싶던 김수현은 나름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더군요. 이런 캐릭터도 멋졌어요. 김수현씨!

3. 이경미 감독의 연기는 자연스러워서 못알아볼 정도였으나, 이준익 감독의 까메오는 '나 이준익 감독인데 깜짝출연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어색함 그 자체더군요 ㅋㅋ

4. 조영욱 감독의 음악은 확실히 좀 과잉으로 느껴졌는데, 그 과잉이 이 작품과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확실히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기보다는, '이 장면은 이런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야' '심각함이 극에 달했다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이런 과잉이 좀 더 영화를 장르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아요.

5. 이춘연 님이 특별출연하셨는데 무려 캐릭터 이름이 '엄충수 경찰청장'!! 

6. 류승완 감독님은 예전에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단독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던터라, 그 이후로는 왠지 더 반가운 느낌이에요. 그 때 제 블로그와 DP닉네임을 이미 알고 계셔서 감동받았었는데 말이죠 ㅠ (류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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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4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전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외면을 당했지만, 나에게는 앞선 작품들 만큼이나 아련한 (혹은 더 감정적인) 작품이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녀적인 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며, 애틋함의 정서가 굉장히 직접적으로 드러난 따듯한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그리고 리듬이) 완벽하다 못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버린 정말 마법같은 작품이었다.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들려준 왈츠는 아직까지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으며, 바로 오늘 '눈물나는 그 장면'에서 소개하려는 이 장면에서도 히사이시 조의 음악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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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말미. 소피가 하울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켈시퍼와 하울이 계약을 맺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이 장면. 이 장면 소피가 문으로 들어가며 배경이 온통 검게 변하고, 저 멀리서 뿌옇게 하울의 아지트가 밝아올 때 흐르는, 그 음악에서부터 감정이 치닫기 시작하는데 하울에 대한 소피의 간절함이, 그 간절함이 미야자키의 연출로 승화된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코너 '눈물나는 그 장면'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다들 울고 감동받는 장면 외에 개인적으로 특히 더 슬프거나 유별나게 슬픈 장면들이 많은 편인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바로 이 장면도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북받쳤던 장면이었다. 그냥 소피에게 흠뻑 동화되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장면은 언제봐도, 그리고 언제 들어도 참 눈물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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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성룡 영화 '베스트 키드'

1984년작 '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를 리메이크한, 해럴드 즈워트 감독의 동명 2010년 신작은, 원작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기본 뼈대만 공유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작품이다.

일단 원제인 'The Karate Kid'라는 제목대신 '베스트 키드'라는 영어 제목을 국내 개봉 명으로 사용하게 된 것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텐데, 1984년 당시에는 아무래도 '가라데'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으로 사용하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면, 해럴드 즈워트의 2010년 작은 원작의 리메이크라는 점에서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리메이크 작이 원작과는 다르게 가라데가 아닌 쿵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는 극중 대사를 통해서도 '가라데가 아니라 쿵푸야'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가라데 키드'를 리메이크한 2010년 작 '가라데 키드'는 사실 '쿵푸 키드'라 불러도 좋을 만큼 중국과 쿵푸의 정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스트 키드'의 줄거리는 뻔하기 그지 없고 클리셰의 계속 되는 반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반해 러닝타임은 일반 액션영화들보다도 훨씬 긴 140분이기까지 하다. 즉 이 작품에게서 무언가 신선한 것을 기대한다면, 그리고 가라데 키드를 연상시키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을 갖은 영화답게 화끈한 액션 장면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앞서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어찌되었든 '쿵푸 영화'라는 점을 강조한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쿵푸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성인 훈련 장면. 그저 얼른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빨리 화려한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주인공에게 스승은 항상 무술은 가르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동작들(혹은 쓸데없어 보이는 동작들)만 반복시킨다.

하지만 물론 이런 것들은 나중에 주인공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상승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베스트 키드' 역시 마찬가지다. '드레 (제이든 스미스)'의 쿵푸 스승인 '한 (성룡)'은 그저 자켓을 입고 벗고 거는 것만 내내 훈련시킨다 (이 영화가 살짝 다른 점이 있다면 '드레'는 다른 쿵푸 영화의 주인공들에 비해 거의 꽤를 부리지 않고, '한'의 훈련 방법은 무술의 기본이 되는 동시에, 아이의 잘못된 순간을 단번에 사로잡는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베스트 키드'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중국으로 이사온 이방인인 '드레' (제이든 스미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의 배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몇몇 장면을 아버지의 부재, 흑인으로서 중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이로 인한 집단 괴롭힘과 이를 이겨내는 과정, 그리고 사춘기 소년으로서 소녀와의 두근거리는 만남까지. 이 영화의 포인트는 철저히 드레에게 맞추어져 있다. 성룡이 연기하는 스승 '한' 역시, 드레의 스승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며, 드레가 성장함과 동시에 '한'을 비롯해 그의 주변 인물들도 성장하게 되는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너무 뻔하고 심심한 영화가 아닐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는데, 후에 얘기할 '우리만의' 관람 포인트를 제외하더라도 '베스트 키드'는 참 괜찮은 작품이다.

새롭지는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며 큰 지루함 없이 끝까지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재미와 감동을 두루 선사하는 모범적인 작품으로, 성룡이라는 배우를 '어, 저 동양배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러시아워에 나온 그 아저씨구나!'라고 만 받아들인 어린 서양 관객들에 입장에서 보아도 제법 괜찮은 작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에게 성룡이 어찌 그런 하찮은(?) 존재던가. 누군 가에게는 '영화 = 성룡' 일 정도로 유년시절을 통째로 앗아간 주인공이자, 굳이 명절 안방 극장을 찾아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이제는 그의 늘어가는 주름살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무리 어린 제이든 스미스가 주인공이라고 우겨도, 나를 비롯한 많은 성룡 영화의 팬들에게는 동시에 여전히 '성룡 영화'일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일단 이 영화 속 '한'을 연기한 성룡은 거의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이렇게 정색하고 정극 연기를 펼치는 성룡을 본 것이 몇 번이나 있었나 꼽아보게 될 정도로, '한'이라는 캐릭터는 유쾌하거나 장난기를 찾아볼 수 있기는커녕, 어둡고 깊은 슬픔을 앉고 있는 캐릭터다.

웃지 않는 성룡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룡 팬들에게 묘한 감정을 안겨다 준다. 성룡의 이런 변화는 이전부터 조금씩 있어왔지만 최근작 '대병소장'에서도 그런 의지를 강하게 엿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인터뷰를 통해 언제까지나 '러시아워' 속 예스맨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이 인터뷰는 아무래도 북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터라, '러시아워'를 언급하고 있다), 깊이 있는 드라마 연기를 펼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바로 이 작품 '베스트 키드'의 '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은 리메이크 기획 초기에 제이든 스미스 외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으며, 당연히 성룡이 반드시 고려되었던 것도 아니라 그가 직접 이 작품 (스승 '한'이라는 캐릭터를)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장면이 감정적이었던 이유는, 장면이 본래 명장면이어서라기 보단, 그 주인공이 성룡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쿵푸영화. 매번 투정부리며 스승에게 꾸지람을 당해가며 쿵푸를 배우던 '취권'의 그 청년이, 어느덧 자식만한 아이에게 쿵푸를 가르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성룡 팬들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아, 우리의 성룡 형님에게도 어느덧 세월이 더 깊게 다가왔구나'라는, 새삼스럽지만 아직도 매번 겪게 되는 감흥과 더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웃지 않는 성룡'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짠해지는 감정이 들고 만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울만한 이렇다 할 장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3번씩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사실 나조차도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뭐랄까 영화가 약간 눈물을 자아내려고 했던 장면이 아닌 장면에서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뻔하디 뻔한 이 영화에서 왜 눈물을 흘렸을까 에 대해서는 여전히 머리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룡의 오랜 팬들이라면 이 영화를 볼 때 아마도 저절로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장면은 감정선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찡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액션이나 분노로 인한 눈물이 아니라, 그리움과 슬픔만으로 눈물 흘리는 성룡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낯설고도 몹시 짠한 일이다)

예전에는 볼 때마다 '빌리'의 입장에서 꿈을 이뤄가는 성장영화로 보였던 '빌리 엘리어트'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빌리'가 아닌 빌리의 '아버지'의 입장으로 보게 되는 것처럼, '베스트 키드' 역시 성룡과 함께 자란 '우리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성룡 영화가 될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그래서 이 영화 '베스트 키드'는 더욱 특별한 작품이다.


Blu-ray 메뉴





Blu-ray : Picture Quality

'베스트 키드' 블루레이의 1080p 화질은 최신작답게 매우 우수한 편이다. 사실 보는 와중에 중간중간 놀라기도 했을 정도로 (어쩌면 기대치가 그리 크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레퍼런스에 가까운 훌륭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헬기로 만리장성 위를 촬영한 컷 등만 제외하면 (이건 항공 촬영을 위해 다른 카메라를 사용해서 발생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화질 측면에서는 거의 흠잡을 데가 없는 우수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이하 2장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수준급이다. 아마도 좀 더 사운드를 체감할 만한 장면이 많았다면 더 실감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액션 장면에서의 활용도는 물론, 제임스 호너의 영화 음악까지 매우 섬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Blu-ray Exclusive ON LOCATION: The Karate Kid Interactive Map of China'에서는 제목 그대로 영화의 촬영지를 중국의 지도를 배경으로 선택하여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Alternate Ending'에서는 보편과는 조금 다른 엔딩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편에 실린 엔딩이 훨씬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얼터너티브 엔딩에 수록된 내용은 너무 직접적이고, 너무 많이 가버린 진행이어서 더욱 그랬다). 각자 본편의 엔딩과 수록되지 못한 얼터너티브 엔딩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Production Diaries'에서는 성룡의 친절한 인트로 설명들과 함께 (마치 피터 잭슨의 BD를 보는 듯한 착각이 3초쯤 든다 ㅎ), 작품의 다양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극중 '드레'가 되기 위해 실제로 4개월 넘게 쿵푸 (우슈)를 열심히 배워야 했던 제이든 스미스의 트레이닝 과정을 엿볼 수 있고, 금지된 도시와 만리장성에서의 촬영 에피소드들 그리고 감독과 배우들이 말하는 성룡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공 제이든 스미스의 하루 일정을 살펴볼 수 있다.




'Chinese Lessons'에서는 제목 그대로 중국어를 배워보는 시간이 제공되며, 현재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저스틴 비버 (Justin Bieber)가 참여한 뮤직비디오와 또 다른 메이킹 필름인 'Just for Kids: The Making of' 가 수록되었다.

총평

2010년 작 '베스트 키드'는 단순히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 아닌, 쿵푸와 성룡으로 새로 쓰여진 작품으로서 무엇보다 성룡의 존재가 그의 팬들에게는 더욱 새롭게 다가왔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제이든 스미스 주연의 성장영화 일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성룡 영화가 '베스트 키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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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일본여행 #3 _ 진짜 에반게리온을 만나다

이번 일본여행의 핵심 코스는 바로 실물 크기의 초호기를 비롯해 에바와 관련된 다양한 것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에반게리온 월드'를 개장한, 후지큐 하이랜드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후지큐 하이랜드는 에반게리온 월드가 아니더라도 일본내에서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놀이공원으로서, 사실 나같이 짧은 일정과 가난한 여행객이 방문하기에는 결코 녹녹한 일정은 아니었으나, 이것이 이번 여행에 화룡점정이었으니 어쩌랴. 실제로 후지큐 하이랜드까지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이날 도쿄에는 비가 내렸는데, 아침부터 부랴부랴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하나 구매하고 신주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후지큐 하이랜드까지 가는 고속버스 티켓을 구매, 버스에 몸을 실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버스는 시외로 벗어날 때까지 정체를 반복했고, 예상보다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후지큐 하이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후지큐 하이랜드에서 다시 신주쿠로 돌아올 때 탔던 토마스 버스. 참고로 후지큐 하이랜드에는 에반게리온 월드 외에도 토마스 기차에 관련된 관과 건담 등의 테마 관들이 별도로 있었는데, 워낙에 빠듯한 일정이라 에반게리온 월드만 둘러보고 온 것이 조금은 아쉽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후지큐 하이랜드! 참고로 비가 와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쾌적한 환경에서 구경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






정문을 지나 매표소까지 가기 전에는 관련 상품들을 파는 상점을 지나야 하는데, 이미 여기서 부터 에바에 분위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에바 초코렛, 에바 과자, 에바 쿠키, 에바 사탕 등등등




우리는 미리 인터넷에서 프리티켓을 구매한 터라, 매표소에서 바우치만 보여주고 프리티켓으로 교환. 참고로 프리티켓 구매자에게는 위의 사진처럼 직접 증명사진을 촬영한 티켓을 제공하여 이 티켓만 보여주면 모든 놀이기구 및 테마관을 제한없이 즐길 수 있다. 하나 FAIL은 사진 찍는 기계가 좀 높이가 낮았는데, 알아서 찍어주겠지 하고 찍었다가 얼굴은 안나오고 목부터 찍혀서 FAIL.







아찔한 코스와 높이의 롤러 코스터들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비가 오는 관계로 이 날은 운행하지 않아, 탑승 및 구경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 안개속에 가려진 롤러 코스터를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두둥. 드디어 에반게리온 월드에 도착! 입구 앞에서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떨리는 마음을 토닥이며 바로 입장!






입구에서 나를 맞는 초호기와 레이 그리고 아스카! 이 사람 크기의 모형들은 바로 하루전 루미네 에스트에서도 본 터라 그리 떨지 않고 사진 몇 장 촬영한 뒤 제레가 있는 그 곳으로 이동!






극중 이카리 겐도가 제레에게 명령을 받던 바로 그곳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실제로 Sound Only라도 제공되었더라면 더욱 실감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어쨋든 약 몇 분간 이 곳에서 제레에게 나름 지령을 받은 뒤 다음 코스로 이동~





미사토와 리츠코를 비롯한 네르프의 직원들과 함께 회의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조형물. 저 사이에 들어가서 회의하는 장면을 몇 장면 찍어봤는데, 생각보다 리얼리티가 살지않아 FAIL.




아스카와 에반게리온 2호기의 위풍당당한 등장모습!




한 켠에는 에반게리온 최고 인기 캐릭터인 카오루의 대형 모형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약 160 이상이었음), 여기서 카오루와도 사이좋게 사진 한장 찰칵했음.









벽면을 가득채운 에반게리온 : 파의 주인공들. 각 캐릭터 별로 정리되어 있어 각각 살펴볼 수 있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이카리 겐도나 마리 등도 있었다.






극중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상황판 같은 곳에는 에바의 애니메이션 설정 파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설정 파일도 파일이지만 그것보다는 아주 좋은 컨셉 조형물을 만났다는 생각에 바로, 컨셉 사진을!




몇 번의 시도 끝에 (워낙에 실내는 어둡고 테이블은 빛이 나는 터라 쉽지 않은 촬영;;) 비교적 만족할 만한 위의 사진을 얻는 데 성공! 옆에 계신 일본 아저씨 덕분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욱 사는 효과까지!





실제 엔트리플러그의 조형물이 있어서 여기에서 사진을 찍을까 했는데, 저기에 앉아서 사진 찍으려면 천엔이었던가를 별도로 내고 찍어야해서 걍 포기. 몇몇 용자가 있었지만 그 돈으로 다른 걸 사기로 하고 걍 포기.







리리스 조형물 역시 직접 본인의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도록 준비되어 있었는데, 본토의 오타쿠들이 지켜보고 있는 터라 이건 차마 용기내어 찍기가 쉽지 않았다 (참고로 확실히 본토의 오타쿠들은 연기력이 다르더라. 실제 리리스보다도 더 실감나는 연기를 펼친 여성 오타쿠도 있었다!). 그 아래는 AT필드 모형으로 이 역시 직접 손을 넣어 동작을 취하고 촬영을 해볼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다.




그렇게 구경을 다 하고 나면 바로 출구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출구는 반드시 상점을 통해야만 나갈 수 있었다 (이런 기분좋은 상술 같으니라고!)










에반게리온 팬이라면 지갑을 두둑히 준비해야만 할 상점 코너. 그동안 인터넷으로만 보아 왔던 제품들을 비롯해, 갖가지 아이디어 음식 상품들도 판매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행에서 꼭 사리라 마음먹었던 'NERV'컵을 비롯해 마우스 패드와 사무실 식구들에게 줄 에바 과자 몇개 등을 구매했다. 티셔츠는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포기.

엇, 그런데 이러고 에반게리온 월드를 나오니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아! 맞다!! 초호기 실물 모형을 보러 온건데, 이거 못봤잖아!!!' 아니 이럴 수가. 프리티켓을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입구로 들어가 부랴부랴 지도 확인 뒤 실제 초호기 모형이 있는 곳에 도착!







(이거야말로) 두둥!!!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에바 초호기!! 네르프 본부에 격납되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확실히 이미 공개되어 큰 화제를 일으켰던 실물크기 건담에 비하면 디테일이나 그 크기에서는 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실제 크기의 초호기를 이렇게 부분이나마 눈 앞에서 볼 수 있는건 팬으로서 대단한 경험이었다.








아래에는 극중과 마찬가지로 LCL 용액으로 채워져 있었다.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것 외에 계단을 통해 옆으로 올라가서 볼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마련되어 있었다.






혹시나 사람이 엄청 많아서 사람들만 잔뜩 찍어오는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비가 와서 사람이 많지 않아 이렇게 온전한(?) 초호기 사진을 여럿 찍을 수 있었다. 참고로 10분인가 15분 정도마다 스페셜 타임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 초호기가 조금이나마 구동(?!)하는 시간이었다. 구동이래봤자 연기 뿜고 눈에 불들어 오는 것이 다 이지만, 이런 공간에서 빵빵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니 제법 분위기가 그럴싸 했다. 이 장면을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




초호기의 괴성을 현장에서 들으면 기분이 묘해지면서, 살짝 긴장감도 느껴질 정도였다. 초호기 팔이라도 슬쩍 올라왔다면 더 스펙터클한 장면이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상점 끄트머리에 있는 뽑기에서 운좋게 카오루 인형을 뽑는데 성공!! 무언가 될놈은 된다!


후지큐 하이랜드의 다른 모습들은 아래의 더보기로~




글 / 사진 아쉬타카 (
www.realfolkblues.co.kr)




검우강호 (劍雨, Reign of Assassins, 2010)

고전 무협영화의 정취


오우삼과 수 차오핑이 공동 감독하고 (하지만 중론은 오우삼의 그림자가 거의 드리워져 있지 않다는 것), 양자경과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검우강호'는 참으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클래식한 무협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하기 전까지는 양자경과 정우성 (특히 양자경!)만 믿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막상 보고나니 이 작품에는 두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 외에도 고전 무협영화의 팬들이라면 무언가 동요하게 만드는, 요새 찾아보기 어려운 상당히 클래식한 무협영화였다. 사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중화권의 무협영화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오히려 예전으로 회귀한 듯한 (좋은 의미로) 분위기의 '검우강호'는 예전 무협 영화들을 인상깊게 보았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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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의 이야기는 복수라는 큰 정서를 배경으로,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개된다. 많은 사람들이 러브 스토리가 주가 되는 것이 무슨 정통 무협이냐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무협 영화들은 러브 스토리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지 그것을 그리는 방식에서 무협적인 요소들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우강호'의 러브 스토리는 새로울 것은 없지만, 과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이 동하며 무협 영화에 틀 안에서도 다른 장치들을 크게 건들지 않으면서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가 매우 고전적인 무협영화로 느껴졌던 것은 '강호'라는 세계관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협영화에 '강호'라는 개념이 없다면 그건 무협영화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화려한 발차기와 무술 동작 등 너무 보여주기에만 치중했던 일부 무협영화와는 달리, '검우강호'는 이 강호의 개념을 뒷 편에 여유롭게 깔고서 준비한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는 방식이다. 뒷 편에 강호라는 든든한 세계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검우강호'는 무협 팬들에겐 볼 만한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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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이안의 '와호장룡'과 비교하며 '검우강호'의 수준을 폄하하곤 하는데, '와호장룡'은 이 작품과의 비교대상이 아니다. '검우강호'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전 무협영화의 정취를 그대로 계승한 작품이지만, '와호장룡'은 고전 무협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와호장룡'을 무협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검우강호'는 그저 약하기만한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와호장룡'과는 다른 정통 무협 영화에 더 익숙한 이들이라면 '검우강호'는 우선 반가운 작품이며, 그 향수와 정취가 묻어나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호라는 세계 속에서 최고의 비급을 얻기 위해 다투는 고수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들과는 다른 개인적인 원한과 애정으로 엮여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아주 익숙하지만 지루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그려진다. 극중 증정과 아생의 이야기는 100% 예상은 못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의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마저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름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이 그저 웃음거리도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쉽기도 했는데, 따지고보면 이런 조건(?)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은 예전 무협영화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봤을 때, '검우강호'에선 너무 극적인 것이 탈이라면 탈이겠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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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용 포스터에는 정우성이 대문짝만하게 톱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검우강호'의 메인 캐릭터는 양자경이 연기한 '증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양자경이라는 배우는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정말 그녀 아니면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무협영화의 옷을 입었을 때 양자경이라는 배우가 뿜는 아우라는 실로 대단한데, 이런 아우라를 '검우강호'에서도 잘 살려내고 있다. 정우성은 중화권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벌써 제법 여러편이 있는데, 비교적 큰 편차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양자경과 정우성 외에도 서희원과 여문락 등 중화권의 스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는데, 특히 '뇌빈' 역할을 맡은 여문락의 캐릭터 싱크로율은 거의 완벽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이런 조연 배우들이 완벽하게 강호의 세계를 표현해준 덕에 '검우강호'는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무협영화, 그리고 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보고 싶게끔 만드는 애틋한 영화가 되었다.


1. 엔딩 크래딧에 양자경과 정우성이 맡은 배역 이름이 '증정'과 '강아생'으로 나오더군요.
2. 정우성도 이 영화에서는 '그저 그런 보통 남자 따위'로 묘사됩니다 ㅎ
3. 이런 무협영화를 적어도 한해에 2~3편은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포커스앤컴퍼니 에 있습니다.





본래 첫 날 계획은 '킬 빌' 1편의 마지막 결투 장면의 모티브가 된 장소인 '곤파치'에 가는 것이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일정을 수정, 신주쿠를 그냥 배회하는 것으로 하려다가 문득 '그래, 일본 극장에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딱 일본은 아니지만 영화팬으로서 외국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곤파치'를 가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나에게도 훨씬 더 의미있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주쿠 근처에 극장을 찾아보던 중 저 멀리 'WALD 9 CINEMA'라는 높은 빌딩을 보고서는 그리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과 더불어 '극장을 경험하다'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였는데, 후자에 집중한다면 이미 본 영화라던가 아니면 자막이 필요없는 한국영화를 봐도 괜찮지만, 이왕 평소에 하기 힘든 경험을 하는 김에, 보고 싶었던 일본 영화를 선택해 영화를 보는 것과 극장을 경험하는 것 외에 자막없이 일본영화를 첨부터 끝까지 즐겨보는 것까지 경험해보게 되었다. 'WALD 9' 극장은 멀티플렉스였는데 현재 상영중인 작품들 가운데에는 이미 익숙한 작품들도 여럿 보였다. 참고로 일본은 해외영화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전체적으로 개봉이 매우 늦는 것으로 유명한데, 현재 상영중인 영화들 중에서도 국내에는 이미 DVD, BD로 출시가 되었거나 개봉한지 오래된 작품들 (싱글맨, 나잇 앤 데이 등)이 한창 상영중이었다.




그 가운데는 우리 영화 '해운대 (일본 개봉명은 '쓰나미')'도 보였고, 현재 부산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선보인 '13인의 자객'과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악인'도 상영중이었다/ 이 가운데 어떤 영화를 볼까 하다가 앞서 이야기했던 이유들을 고려하여 평소 보고 싶었던 '13인의 악인'을 보기로 했다. '악인'도 보고 싶긴 했지만 조금 더 보고 싶었던 '13인의 자객'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인데, 이것은 분명 도전의 의미도 있었다. 자막없는 일본 영화를, 더군다나 사극에다가 14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것 말이다. 후에 다시 정리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신선함과 동시에 제법 '할만한' 경험이었다.





티켓부스는 금요일 저녁임에도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 곳 역시 팝콘이나 음료 등을 파는 곳과 함께 영화관련 기념품을 파는 곳, 그리고 여러가지 홍보자료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준비되어 있었다.




티켓부스에 가서 티켓팅을 할까 하다가 상영시간이 촉박한 것도 있고 해서 옆에 있는 자동발권기를 사용해보기로 결정. 원하는 영화와 시간, 인원수를 결정하고 직접 결제까지 (현금도 가능) 가능한 터라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둘이 보니 금액이 무려 3,600엔!!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한 사람당 영화 한 편에 거의 2만원 정도 하는 것인데, 일본의 물가를 생각해 봤을 때 크게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어쨋든 우리 같은 한국 관광객에게 4만원을 투자하는 것은 조금은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과적으로는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경험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극장 안 풍경. 일본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결과 (물론 딱 한 군데서 본 것이 전부라 일반화를 하기엔 성급한 감이 있지만;;) 느꼈던 점들을 얘기해보자면, 일단 영화가 시작하기 전 상업광고가 한 편도 없다. 영화 시작 시간마저 어겨가며 시작 전 2~30분에 가깝게 광고를 지겹도록 틀어주는 국내 멀티플렉스와는 달리, 일본의 WALD 9 극장은 시작 전 위의 사진처럼 정지된 화면에 저 정도로 몇가지 텍스트 광고를 하는 것이 전부였고, 영화 시작 전에는 모두 영화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언제부턴가 국내 극장가에는 영화 예고편을 만나보기가 너무 어려워졌는데, 이곳에서는 기대되는 신작들의 예고편을 짧은 버전으로 (10~15초) 여러 편을 보여주었다.

그 예고편들 가운데 한국사람으로서 인상적인 것이었다면 'K-POP 콘서트' 관련 예고편이었는데, 국내에서 열렸던 드림 콘서트를 편집해 극장해서 상영하는 것이었는데, 국내의 인기 아이돌 들의 공연을 일본 극장에서 예고편으로 만나니, 이것도 참 감회가 새롭더라. 참고로 극장내의 분위기나 일본 음반샾의 분위기로 봐서 현재 일본에서 잘나가는 우리 아이돌 그룹이라면 역시 '카라'를 들 수 있겠으며, 소녀시대나 2NE1 등이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아직까지 동방신기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씨엔블루 도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정도.




그렇게 보게 된 영화는 미이케 다케시 감독의 신작 '13인의 자객 (十三人の刺客)'이었다. 이번 부산에서 상영한 작품이기도 한데, 이 영화를 일본에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ㅎ 이 작품은 포스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야쿠쇼 쇼지를 비롯해 이세야 유스케, 야마다 타카유키, 타카오카 소스케, 이하라 츠요시, 마츠카타 히로키 등 사극답게 여러 익숙한 배우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구도 에이이치의 동명의 작품 (1963년 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이런 류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비롯해, 그 뒤에 존재하는 이야기 측면에도 상당히 신경 쓴 작품이었다.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평보다는 일본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막없이 본 소감을 위주로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처음 보기로 했을 때에는 '과연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조차도 기특하게) 14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자막 한 줄 없이도 비교적 몰입하여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렇게 써놓으면 마치 내가 일본어에 능통해서 무리없이 관람했다로 오해할 수 있는데, 거의 90% 넘게 못알아 들었음에도 몰입하였기 때문에, 스스로도 기특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ㅎ

물론 자막없이 보았기 때문에 영화를 100%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 작품은 특히 13인이 어떤 이유로 자객단을 형성하게 되고, 이들이 마지막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벌이는 전략들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에, 이 부분을 100% 이해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영화를 반쪽만 즐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대충 감으로 이해하고 보았음에도 영화가 갖고 있는 정서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감상이었다. 특히 후반부의 클라이맥스 액션씬은 한동안 대사가 필요없는 시퀀스라 더욱 그런 점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영화가 표현하려는 그 '절절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다면, 과연 내가 예상했던 것들이 어디까지 맞았는지를 비롯해 이들이 정말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맞춰보는 의미로 꼭 재감상을 할 예정이다. 이런 감상평은 첨 해보는데, 추천할 만한 방식은 절대 아니지만, 자막없이 보아도 영화팬이라면 몰입할 수 있을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와 이제 일본 극장에서 영화 본 소감을 정리해보자면, 영화가 상영될 때에 시끄럽게 하거나 번잡스러운 관객이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단 한번 가지고 100% 인냥 결론내리기는 어렵겠지만 어쨋든 전체적으로 떠들 수 있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멀티플렉스 였음에도 영화가 끝나고나서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다 끝날 때까지 상영관에 불을 켜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와 더불어 관객들도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나고 불이 켜질 때까지는 단 한명도 퇴장하지 않았다. 국내 멀티플렉스에서는 영화가 끝날 것 같으면 벌써 부시럭 거리기 시작해서, 끝나는 동시에 대부분이 바쁘게 퇴장하고, 엔딩 크래딧이라도 여유있게 앉아서 즐길라치면 청소 직원들이 눈치를 주는 환경과 비교한다면, '감동'스럽기까지한 환경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이 멀티플렉스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어쨋든 일본 극장에서 일본 영화를 자막없이 본 경험은, 이번 일본여행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뜻깊은 경험이 되었다. '13인의 자객'도 어서 국내에 정식개봉해서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신예
여성 감독 타나다 유키가 연출을 맡고 아오이 유우가 주연을 맡은 백만엔걸 스즈코 제목에서 살짝 선입견을 갖게 수도 있는데, 코믹적인 요소는 거의 없는 차분하고 잔잔한 청춘 로드무비라고 있겠다. 부제목은 로드무비라고 했지만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형식은 아닌데, 특별한 사연으로 인해 자신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를 통해 백만 엔이 모이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스즈코의 여정으로 미뤄봤을 일종의 로드무비로도 있겠다.






여성감독의 작품답게 백만엔걸 스즈코 가장 장점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내면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주인공 스즈코의 심리 묘사에 있다. 실제로 극중 스즈코의 심리 묘사는 비슷한 결핍을 겪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있는 수준까지 세밀하게 묘사해 내고 있었는데, 스즈코와 같은 결핍을 겪은 이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들이라면 맞아, 같아도 저렇게 했을지 몰라혹은 나도 그랬었지…’하며 깊은 공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이야기와 결말은 크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세밀한 묘사와 현실적인 캐릭터 그리고 자연스러운 감정선, 새로울 없는 이야기에 한번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는 무엇보다 삶이라는 무게에 무릎 꿇었던 이들을 다시금 일으키게 하는 작은 용기를 심어준다. ‘백만엔걸 스즈코, 결국 혼자라고 생각했던 역시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는 것과 와는 반대로 속세의 것들에서 초연해 져야 한다는 결심을 동시에 들게 하는 묘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되든 작품은 무엇인가로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하는 작은 동요를 들게 하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DVD Menu







DVD Quality

 

1.85:1 화면 영상의 화질은 전형적인 일본 영화 타이틀의 화질이라고 보면 되겠다. 날카로운 외곽선 보다는 작품의 느낌을 부각시킨 부드러운 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색감 역시 선명함 보다는 마치 카메라로 치자면 로모느낌이 나는 감성적인 톤을 수록하고 있다. 가끔 이런 작품의 화질이 블루레이의 차세대급 화질이었다면 느낌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곤 하는데, 나름대로의 장점도 분명 있겠지만 현재 DVD 수록된 느낌이 분명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일반적으로 비슷한 장르의 일본 영화들이 2.0채널만을 지원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보완된 부분이지만, 2.0 수록된 타이틀을 리뷰 이야기했던 것처럼, 2.0만으로도 대부분 표현할 있는 소소한 장르라 5.1채널 만의 다이내믹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작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사 전달의 경우 크게 부족한 없이 센터 스피커를 통해 선명하게 전달된다.

 

DVD Special Features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백만엔걸 스즈코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예고편, 그리고 감독인 타나다 유키 감독과 아오이 유우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고, 번째 디스크에 본격적인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아오이 유우 인터뷰에서는  작품에 출연하게  계기와 자신이 맡은 스즈코 대한 인상을 들려주는데, 아오이 유우의  번째 작품이었던릴리 슈슈의 모든 ' 프로듀서였던 마에다 와의 관계로 인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과 ’스즈코'라는 캐릭터를 처음 대본을 통해 만나게 되었을  아주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짧은 소감도 들려준다. 또한 감독인 타나다 유키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여장부라고 표현과 함께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모두 갖고 있어 영화에 그런 면이  드러난  같다 라고 말한다.  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르바이트 들을 연기하면서 겪은 짧은 에피소드들을 각각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14 남짓의 인터뷰를 통해 아오이 유우가 ’스즈코'라는 캐릭터와  영화에 얼마나 빠져있는지를 느낄  있게 해준다.





제작과정에서는 처음으로 스텝들이 모인 자리에서 작품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타나다 유키 감독의 모습을 만날  있는 ‘두근두근 설레이는 크랭크인 시작으로 파란예감? 스즈코의 수난'에서는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배우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가 수록되었으며,  이후로도  ‘감옥에 갇힌 백만엔걸' ‘백만엔 모이면 나갈거야'  영화의 전개에 맞춰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위주로 제작과정을 차근차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프리미어 시사회 개봉일 무대인사에서는 2008 7 10 신주쿠 메이지 야스다 생명홀에서 열린 프리미어 시사회 현장 7 19 시네 리브르 이케부쿠로에서 열린 개봉 무대인사 장면을 만나볼  있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있는 질문과 답변들 외에 조금 다른 점이라면, 함께 출연한 남자 배우들이 한결 같이 아오이 유우와 함께  것에 대해

극찬과 설레임을 표현하고 있다는 정도를   있겠다.


 


[총평]백만엔걸 스즈코 아오이 유우의 풋풋함과 동시에 나이에 어울리는 성숙함도 엿볼 있는, 그녀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필모그래피라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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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맞아, 이건 '시라노'였어!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물론 개인적으로 '스카우트' (참고로 내게 있어 '스카우트'는 광주민주항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다)를 통해 찡한 감동을 주었던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라서 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최근 내게 새로운 여신으로 자리잡은 이민정 양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이유가 더 컸다. 즉 팬심이 더 깊었던 것이다. 본래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정보를 최소한으로 접하려 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에는 너무 무심했었다. 그 무심했었던 이유를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초반이 조금 지났을 때 바로 깨우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제목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 '시라노'임을 밝히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 무심한 나머지 '시라노'라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시라노'를 이전에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이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뻔하게 느껴졌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분명 '시라노'를 본 입장에서 스토리의 신선함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는데에 있어서도 그 감동의 깊이는 줄지 않았으니,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역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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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하면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1990년작인 프랑스 영화 '시라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작품을 제법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하면 가장 먼저 특유의 '코'와 함께 이 작품 '시라노'가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그래서 인지 다른 사람을 빌려(크리스티앙)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쓴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매우 깊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는 바로 이 핵심적인 부분이 프랑스 영화와 거의 겹쳐진다. 김현석 감독의 인터뷰를 보다보니 '지난날의 과오를 영화를 통해 고백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고백의 정서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굳이 영화 '시라노'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스토리텔링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음에도, 이 영화가 빛이 나는건 인물들의 감정표현에 있어 매우 섬세하기 때문이다. 극중 엄태웅이 연기한 병훈은 병훈대로, 이민정이 연기한 희중은 희중대로, 최다니엘이 연기한 상용은 상용대로 그리고 박신혜가 연기한 민영은 또 그녀대로 각자의 스토리와 감정선이 있는데, 이 네 명 가운데 자신의 과거 혹은 현재와 맞아 떨어지는 인물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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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은 그 자체로 발광한다. 그녀의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숨이 멎는다)

대부분 로맨스 영화는 남녀가 함께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나, 남과 여 각각이 만드는 두 가지의 이야기에 각각 공감을 하거나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병훈과 희중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상용과 민영까지 4명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그러나 복잡하게 뒤섞이지 않아도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극중에선 주인공이지만 영화에서는 조연이라 할 수 있는 상용을 그리는 방식이었는데, 그가 크리스티앙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한 발 더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아, 감독이 상용에게도 누구 못지 않은 애정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었는데, 이런 생각은 박신혜가 연기한 민영을 봐도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민영은 영화 내내 상용 보다도 더 조연에 머물러 있었다. 병훈을 좋아하는 것 같은 미세한 뉘앙스를 주기는 하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한 번도 없고, 정말 끝까지 '연애조작단'에만 머무르는 것 같았으나, 김현석 감독은 민영에게 역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영화가 폭풍같이 몰아치는 감정선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유쾌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민영에 대한 배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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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보고서는 마치 '500일의 썸머'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심하게 한번은 겪게 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던 동시에, 단순히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연관이 되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뜨거운 연애의 경험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고나면, '그 때의 자신'을 겹쳐보며 울컥이게 되는 동시에 이 이야기가 다 끝나고나면, '맞아, 나도 그랬었지, 그랬었어' 라고 한 마디 툭 던지며 극장을 나올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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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석 작품이라 특별히 야구와 관련된 무엇이 나올까 관심을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약하긴 하지만 고속터미널 씬에서 옆테이블에 야구부가 등장하더군요 ㅎ

2. 최다니엘의 연기변신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이 캐스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구요.

3. 엔딩 크래딧에 고마운 사람들을 보면 맨처음 '이병훈, 김희중'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실제 모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국의 모든 이병훈과 김희중에게 고맙다는 뜻인지 모르겠네요. 뭐 둘다 의미있겠지만요.

4. 오랜만에 참 좋은 연애 영화를 봤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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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공존을 경험하다


'엉클 분미'를 보았다. 아니 경험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는 한편으론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마저 제외한다면) 의외로 단순한 구성의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엉클 분미'는 개인적으로 단 번에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특히 '엉클 분미' 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다 본 이후에야 연장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극중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묘사된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엉클 분미'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보았다'라기 보다는 차라리 '경험했다' (몸을 맡겼다)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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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들판에 묶여 있던 소 한마리가 줄을 풀고 정글로 도망갔다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시 잡히는 과거의 시퀀스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는 주인공 분미 아저씨와 인물들이 등장해 얼핏 전생의 이야기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이 오프닝 시퀀스인 소의 이야기 역시 누군가의 전생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한참 분미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 가려 할 때쯤, 영화는 죽은 그의 아내와 원숭이에게 홀려 역시 원숭이가 되어 나타난 아들 분쏭과의 이상하지만 자연스러운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이 이상한 만남을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을) 영화 속 인물들은 전혀 거리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죽은 아내가 갑자기 귀신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나타나고 아들 역시 원숭이의 모습을 해 나타나지만, 분미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은 그저 '오랜만이네' 라는 식일 뿐이다. 이 이후에도 영화는 이런 이질적인 (적어도 현실적, 일반적으로는 이질적인) 만남과 공존에 대해 매우 자연스러운 시각으로 임하고 있다. 

이런 영화적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적어도 관객은 '아, 이런 공존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구나'라는 간단한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이라는 감정이 더해지게 된다. 그러니까 더이상 귀신이나 원숭이가 아니라 아내이자 아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왜 원숭이가 되어야 했는지 등에 관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과 메시지를 떠나서 적잖은 감동을 준다. '내가 죽어서 당신을 못찾으면 어떻하지?'라고 말하며 아내를 꼭 껴안는 분미의 장면을 볼 때면, 찰나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복잡한 요소를 재쳐두고 이 한 마디의 대사가 주는 영향력의 범주에만 오롯이 머물 수도 있다. 따지고보면 죽은 아내를 본인이 죽기 전에 이렇듯 만날 수 있는 공존의 기회야 말로 누구나 꿈꾸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엉클 분미'는 신파적인 요소가 1%도 없음에도 이런 애틋한 감동마저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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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후에도 갑자기 한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이상한 시퀀스 역시 누구의 전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 대상이나 주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렇게 꿈 혹은 전생의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은채 이야기를 들려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는 매우 노골적인 정치적 시퀀스를 삽입하는데,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갑자기 군복을 입은 요즘의 청년들이 등장하는 스틸컷 형식의 시퀀스는, 형식적인 이질감으로 인해 더 직접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전에 분미가 '예전에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죽여서 업보를 겪는거야'라는 대사 역시 매우 노골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 가장 환상적이었던 동굴 시퀀스. 이 시퀀스는 촬영이나 조명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보아도 '와,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이를 떠나서 영화 내적으로도 영화의 감정선이 가장 최고조에 달했던 클라이맥스였다. 그런데 영화는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에필로그 같은, 그리고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호텔방의 시퀀스를 더 보여주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참 의미 심장하다. 장면 속 인물들이 바라보는 TV속 현실 사회의 모습과 유체이탈을 하여 이런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바라본다'라는 측면에서 묘한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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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아마 좀 더 '영화적'이고 영화 자체가 지닌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었다면, 동굴씬에서 끝났어야 했을 것이고 늦어도 바로 이 호텔씬에서는 마무리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적'인 성취보다 더 현실적인 메시지에 대한 성취 의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영화는 그 이후에도 현실에 대한 장면을 더 이어간 뒤 막을 내린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배경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 마지막 시퀀스는 아무래도 일종의 여음구나 이질감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로 내가 조금 그랬다). 아마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겪어왔던 과거와 겪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좀 더 알았더라면 내게 '엉클 분미'는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충분한 영화적 재미와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2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존재와 시간, 차원들의 공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내게 '엉클 분미'는 참 아련한 영화였다.



1. 나중에 영화를 보고나서 관련 배경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많았으나 영화를 볼 때 제가 그대로 느꼈던 (어찌보면 무지에서 나왔던) 경험적 감상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이 부분은 글에 담지 않았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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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화의 퓨전, 아프로 사무라이

'아프로 (Afro)'란 주로 흑인들이 많이 하곤 하는 동그랗게 부풀려진 헤어스타일을 뜻하는 말이고, 사무라이는 일본 전통의 무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두 단어를 얼핏 겹쳐 놓으면 전혀 접점이 보이질 않는다. 사무라이는 가장 일본적인 것 중 하나이고, 아프로 헤어스타일은 흑인들의 힙합 문화로 미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만나면 기가 막힌 퓨전 스타일이 나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이가 있었으니, '아프로 사무라이'의 원작자인 타카시 오카자키가 그 주인공이었다. 예전부터 힙합 문화와 음악을 몹시 좋아했던 그는 자신이 생각해오던 이 구상을 간단한 스케치로 처음 표현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만화로 그리고 피규어로 제작되기까지 했는데, 바로 이 피규어에 끌린 제작자가 애니메이션을 제안하게 되었고 TV시리즈를 통해 5화 분량의 1탄이 제작되었으며, 이후 2탄인 '레저렉션 (Resurrection)'까지 제작되게 되었다.




'아프로 사무라이'가 갖는 특별한 위치는 단순한 퓨전이 아니라 (즉, 일방적으로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동경하거나 바라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애초부터 동서양 문화의 퓨전이라는 것이 전재된 작품이었으며, 서양의 스텝들이 동양의 것을 동경하여 오마주를 바치곤 하는 일방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퓨전으로 쓰여졌던 원작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들이 만든 그 자체로 퓨전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사실 퓨전을 표방하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지점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은데, '아프로 사무라이'는 적어도 퓨전 이라는 장르에는 매우 충실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단은 아프로 머리를 한 흑인 사무라이의 복수극이라니 이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일단 동양적인 색깔이 가장 많이 묻어나고 있는 면이라면 작품의 핵심적인 이야기 전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프로 사무라이'의 기본 줄거리는 복수극인데, 이 복수극도 매우 클래식한 복수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군더더기를 다 버리고 오로지 복수의 여정에만 집중한 전통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오로지 복수 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아프로'의 우직한 캐릭터도 그렇고, 그 복수의 여정 가운데 만나게 되는 (그리고 어린 시절 맺게 되는 주변 인물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인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런 단순하고 일방적인 복수극이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프로 사무라이'는 워낙 이야기 외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요소가 결합된 작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 자체는 심플하지만 힘을 실어준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아주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종이 반전 요소도 갖고 있으며,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을 통해 보여지는 세계 외에 존재하는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원작자인 오카자키는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마치 '스타워즈'처럼 이 이야기를 단순히 한 두 가지 작품에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기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더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넘버 1, 넘버 2 머리 띠가 처음 생기게 된 유래 라던지, 아프로의 아버지가 넘버 1 머리 띠를 갖게 된 이야기 라던지, 엠티 7의 관한 이야기 등등 이 5편의 이야기와 레저렉션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가득하다. 과장을 보태자면 이 1편과 2편은 '아프로 사무라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처음 소개하는 입문용 과제일 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 두 편의 이야기는 분명히 성공적인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의 문화가 가미된 부분을 들자면 역시 주인공인 아프로가 흑인이라는 점과 힙합 문화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역시 작품 전체에 드리워진 힙합 음악의 영향을 들 수 있겠다. 흑인문화와 동양문화 (사무라이 문화)에 모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동양적인 배경과 장면에서도 불쑥불쑥 하드한 힙합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소품이나 설정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것들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 작품 만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작품을 보다 보면 평소 힙합에 관심이 많은 이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힙합 브랜드의 로고가 스쳐 지나간다거나, 캐릭터가 대사를 라임을 맞춰 랩으로 갑자기 뱉는다던가 하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 이질감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그 기발함에 절로 '씨익'하고 미소 짓게 만든다.


더 스타일리쉬해지고 퓨전의 성격이 짙어진 레저렉션 (Resurrection)

그들 스스로 기존에 선행된 5편의 시리즈를 '아프로 1'이라 불렀다면, '아프로 2'는 바로 '레저렉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레저렉션'은 '아프로 1'보다는 확실히 원작자인 오카자키의 직접적인 영향력에서는 조금 멀어진 작품인 동시에, 오카자키가 처음 보고는 '엇, 키자키 후미노리 감독, 좀 너무 한 것 아닌가?'했을 정도로 더 다양한 퓨전과 스타일이 강화된 작품이다. '레저렉션'은 좀 더 북미 관객들을 겨냥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점과 동시에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음으로 액션 시퀀스 역시 전편보다는 훨씬 현란한 효과들이 사용되었으며, 영상의 퀄리티 측면에 있어서도 더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극장판'의 성격보다는 '아프로 2'의 성격이 훨씬 강한 작품이기 때문에, 기존 캐릭터들의 설명은 과감히 패스하는 것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여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레저렉션'은 반드시 '아프로 1'을 먼저 봐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연대기 측면에서 봤을 때 그대로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계속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 역시 '아프로 1'은 일본에 국한 되었던 것에 반해 '레저렉션'은 마치 서부영화를 연상시키는 장소와 구성이 등장하는 등 좀 더 자유로워진 측면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프로 1'과 마찬가지로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역시 간과하지 않고 있다. 잔인함의 측면에서나 섹슈얼리티 적인 측면에서 모두 성인용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사지가 툭툭 절단되어 나가고 신체 노출이나 성행위 장면이 등장하는 등 자극적인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는 '아프로 사무라이'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를 떠올려 볼 수 있는데(르자 (RZA)가 음악을 맡고 있는 점도 그렇고), 아마도 타란티노의 오마주 가득한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아프로 사무라이' 역시 비슷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듯 하다.


아프로 사무라이 – 디렉터스 컷 에디션 블루레이

사실 국내에는 정식으로 소개되지도 못했고 (참고로 예전 국내 개봉을 위해 일본의 GDH그룹과 협의를 하기도 했었는데, 열악한 국내 성인 애니메이션 시장 때문에 결국 포기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당시 감독이 직접 극장 판으로 재편집해서 개봉하려고 했었지만 끝내 무산되었다고 한다) 소수의 팬들 만이 열광한 작품이라 국내 BD시장을 역시 감안했을 때 한편으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아프로 1, 2'를 모두 수록한 것은 물론 무 삭제의 감독 판을 수록한 한정 판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럼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아프로 사무라이 – 디렉터스 컷 에디션' 블루레이의 화질 및 사운드, 부가영상에 대해 각각 살펴보자.

Disc 1 : 아프로 사무라이 – 디렉터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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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작품임으로 아무래도 최신 극장 판들의 화질과 비교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화질이다. 영상 자체가 칼 같은 선명함을 표현하기 보다는 비교적 부드러운 선을 갖고 있는 영상이었음으로 화질 측면에서 '쨍한' 느낌은 덜한 편이다. 색들 역시 선명함 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는데, 비교적 최근작인 '레저렉션'과 비교하자면 블루레이 차세대 화질로서의 강점은 조금 덜하게 느껴지는 편이지만, 제작연도나 작품 고유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하 2장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돌비 True-HD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최신작인 '레저렉션'에 비하면 살짝 아쉬움이 남지만, 액션 시퀀스에서의 바람을 가르는 효과음이나 시종일관 흐르는 힙합 음악의 전달에 큰 부족함은 없는 편이다. 아무래도 스케일이 큰 극장판을 목표로 한 작품이 아니다 보니 사운드 임팩트 측면에서는 극장용 액션 영화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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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ooth'에서는 아프로 사무라이의 시작부터, 다카시 오카자키의 원작 만화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사무엘 L.잭슨은 주연인 아프로와 닌자닌자의 목소리 연기를 모두 맡고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어 제작초기부터 제작과 기획에도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소에도 사무라이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사무엘 L.잭슨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알게 된 순간 자신이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밝혔을 정도였다. 두 명의 주요 캐릭터를 모두 연기한 사무엘 잭슨 만큼이나 인상적인 목소리 연기를 펼친 '저스티스' 역의 론 펄먼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론 펄먼이 연기하는 '저스티스'의 목소리 연기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친다.




'RZA Music Production Tour' 에서는 음악을 맡은 전 우탱 클랜 (Wu-Tang Clan)의 멤버이자 유명한 힙합 프로듀서인 르자(RZA)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 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이 퓨전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만큼, 음악 자체에도 스토리를 부여해 음악과 이야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동양과 서양, 사무라이와 흑인 등 다양한 문화의 퓨전이 존재하는 이 작품에서, 음악 역시 소울과 하드록, 그리고 힙합으로 연결되는 음악적 퓨전과 스토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원작자인 다카시 오카자키와 감독은 탈립과 모스 뎁의 (이 둘의 함께 만든 팀이 바로 블랙스타 (Black Star) 다) 팬이기도 한데, 이 작품의 사운드 트랙에는 탈립이 참여하고 있어 오카자키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고 한다. 새삼스럽지만 '아프로 사무라이'는 마치 누자베스 (Nujabes)가 참여했던 '사무라이 참프루'의 경우처럼, 음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점을 이 부가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A Charater Commentary' 에는 주인공인 아프로 사무라이를 비롯해, 닌자닌자, 저스티스, 엠티 7, 오키쿠, 쿠마 그리고 사부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각각의 배경을 만나볼 수 있다. 각각의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과정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한번 복습하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Disc 2 : 아프로 사무라이 – 레저렉션 디렉터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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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작이었던 '아프로 사무라이'에 비해 2009년 작인 '레저렉션'의 화질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특히 전작과 비교를 해보게 되면 이런 우위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는데, 첫 액션 시퀀스부터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터라 말 그대로 '쨍한' 화질을 만끽할 수 있다. 선예도도 높은 편이라 확실한 외곽선과 함께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색감이나 디테일 모두 차세대다운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 이하 3장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돌비 True-HD 5.1 채널의 사운드는 화질에 비하면 전작에 비해 체감하는 우위가 그린 큰 편은 아니지만, 액션 시퀀스가 화려해 진 만큼 사운드 적인 측면도 조금 더 나아진 면을 체크하기에 용이하다. 닌자닌자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사무엘 L.잭슨의 카랑카랑한 대사 전달도 선명하게 전달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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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me'에서는 게임 포맷으로 출시된 아프로 사무라이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게임 아프로 사무라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커팅 시스템'을 들 수 있겠다. 기존의 게임들이 특정한 부분 (정해진 부분)을 잘라야만 액션이 이루어졌던 것에 반해,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딜 자를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에 따른 적의 잘린 모습도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것이라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잘려나간다는 점이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사무엘 L.잭슨을 비롯한 원작의 성우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들 수 있겠다.




'Enter the RZA'는 작품의 음악을 맡고 있는 르자 (RZA)의 음악작업을 엿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디스크에 담겨 있던 르자에 대한 부가영상과는 달리, 아프로 사무라이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보다는 뮤지션이자 프로듀서로서 르자가 평소에 어떤 악기들과 어떤 프로그램들로 음악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과정과 소스들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평소 우탱 클랜이나 르자의 팬이었다면 더 흥미진진한 부가영상 아닐 수 없겠다.





'AFRO in Depth' 에서는 심층분석이라는 제목처럼, 처음 아프로 사무라이라는 캐릭터가 만화화되게 된 과정과 그렇게 만들어진 아프로 피규어를 통해 애니메이션 제의를 받게 된 과정 등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작품 속 중요한 소품 중 하나인 머리 띠의 유래와 의미, 힙합 문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와 작품에 녹여낸 과정, 그리고 극장 판인 레저렉션과 아프로 사무라이의 전체적인 연대기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만났던 이야기가 극히 일부일 뿐이며, 몇몇 캐릭터의 이야기는 이미 정해져 있고, 각각 캐릭터의 엔딩들도 이미 정해두었지만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이후 '아프로 사무라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AFRO Samurai : East Meets West, Part 1' 은 동양에 관한 이야기, 즉 원작자인 오카자키를 비롯한 일본 스텝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극장판을 기획하면서 감독과 제작자들이 이전 아프로 1에서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처 다 보여줄 수 없던 것을 극장 판에 와서는 북미 관객을 타겟으로 하여 좀 더 도시적이고 힙합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등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제약 없이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존 부가영상들이 원작자인 오카자키나 감독에게 집중되었던 것에 비해 이 부가영상은 해당 분야의 스텝들의 인터뷰가 골고루 수록되어 좀 더 다양하고 전문적인 관련 지식들을 전해들을 수 있다.





파트 1에서 동양파트를 주로 다루었다면 파트 2인 'AFRO Samurai : East Meets West, Part 2' 에서는 서양 파트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사무엘 L.잭슨을 비롯해 주요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캐스팅과 관련하여 사무엘 L.잭슨과 루시 리우가 일찌감치 참여를 결정해준 덕에 작품 제작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Afro Samurai at : San Diego Comic-Con 2008'에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최고의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코믹콘 행사에 참여한 아프로 사무라이 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행사에 참여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과 더불어 코믹콘을 찾은 아프로 사무라이의 광팬 들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총 평

사무라이 주인공의 클래식한 복수극에 힙합 문화가 깊게 드리워진 퓨전 애니메이션 '아프로 사무라이'는, 수박 겉핥기 식의 퓨전이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이해 깊은 퓨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무삭제, 감독판으로 출시된 블루레이 패키지는 현재 국내 블루레이 시장을 고려했을 때 작은 '사건'이라 불러도 좋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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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영화 (Enlightenment Film, 2009)
과연, 계몽이 필요한 한국사와 현실


제목부터 확실한 이 영화,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는 (한편으론 '계몽영화'라는 제목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미리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확실한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상처와 청산해야할 과거,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되물림 되고 있는 폭력 (넓은 의미의 폭력)에 대한 '계몽'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처음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니 스케일의 작품이었다. 독립 영화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3대를 그리더라도 시대극일 거라는 예상은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계몽영화'는 한 가족을 이어주고 있는 3대의 이야기를 각각 1931년, 1965년, 1983년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좋고 나쁘고의 의미를 떠나서 독립영화 같지 않은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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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의 내용적인 면을 논하기 전에 이 영화가 '계몽영화'의 영화적 완성도 (촬영 및 스케일)에 조금 놀랐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대극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무리가 없으며, 로케이션이나 공간의 활용 측면에서 보아도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비교했을 때 크게 부족함이 없는 결과물이었다. 이런 영화적 완성도는 영화가 의도하고 있는 이른바 '계몽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좀 더 쉽게 극중 인물들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실제로 아직 독립영화에 익숙치 않은 많은 관객들은 독립영화 혹은 저예산 영화, 그 '날 것'의 느낌 때문에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전에 실증내고 마는 경우를 자주 보았던 점을 떠올려 봤을 때, '계몽영화'의 이런 자연스러움은 시네필을 넘어서 더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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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일단 이 가족의 이야기를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회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과거, 그리고 반대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친일파 후손의 현실 (물론 대부분 친일파의 후손들은 이런 후회보다는 아직까지도 일제 강점기 마냥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의 가장 이상한 부분일 것이다),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와 살아남아야만 했던 변화의 시대 속에서 '나'를 돌볼 수 없었던 존재들에 대한 연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혹은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깍듯하고 아내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섬기던 정학송이 왜 그렇게 폭력적이고 술에 쩔어사는 남자가 되었는지, 딸 태선 역시 그런 아버지의 말도 잘 따르며 순종적이었던 아이가 종교부분에 있어서는 왜 그렇게 극도로 기독교를 민감하게 거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영화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물론 몇 가지 단서들을 통해 유추해볼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을 누락하다시피 한 것은 분명 시간 상의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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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런 '과정'을 갖지 못했던 이들의 현실, 이런 '과정'을 갖을 여유를 갖지 못했던 불쌍한 역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별 것 아닌 학교 단체 사진에서도 '왜 중앙에 서지 않았냐!'라며 딸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나, 매번 상사 욕을 입에 붙이고 살면서도 때마다 음식에 돈뭉치를 함께 전달할 수 밖에는 없었던 씁쓸한 현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하느님을 욕하는 이야기에 오랜 세월 한 번도 대항할 수 없었던 힘 없는 노모의 모습, 그리고 사회에서 엘리트로 취급받지 못하고 아내가 바람 피는 것을 알면서도 화조차 내지 못하는 불쌍한 가장의 현실 등, 중간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거나 반론을 제기할 만한 시간은 있었음에도 그 속에서 '여유'나 '용기'는 가져보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무엇이던가. 바로 '계몽영화'다. 즉, 한국사의 암울한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습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히 연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몽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연민보다는 오히려 냉소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나?'라고 물으며, 현실의 관객들에게는 '저렇게 그냥 두면 안되는 거였다'라고 계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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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영화'를 보고 나오며 좋았던 건, 이 영화가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루려 한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이 느끼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아마도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극중 '태선' 같이 관객들이 좀 더 감정이입을 하기 쉬운 인물을 완전히 계몽시켜, 영화 안에서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까지 마무리 지었을지 모르지만, '계몽영화'에서는 태선 역시 3대의 한 인물로서 이 굴레 안에 머물러 있다. 마지막에 가서 가족의 역사가 서려있는 서교동 집을 둘러보며 3대의 이야기를 훑으며 결국에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이 시퀀스를 통해, 무언가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영화에 마지막인 것처럼 영화는 바로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는 관객에게 그 다음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1.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 아니 거의 처음으로 느껴보는 '계몽'이라는 단어의 긍정적인 느낌인 것 같네요.
2. 코믹한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큭큭 하고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요.
3. 카라얀의 실황을 녹음하는 장면이나 실크로드 녹화하는 장면들을 보니, 영화 속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좋아하는 TV프로나 라디오 프로를 연달아 가며 녹음하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더블데크가 있어서 테잎으로 녹음할 때 테입을 갈아끼우는 시간의 여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양 쪽에 테입을 넣어놓고 한쪽이 다되면 다른 쪽을 눌러 바로 연결해 녹음하곤 했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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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Blu-ray Review)
코믹스 세계 속 선과 악의 탄생


'언브레이커블'은 '식스센스'로 영화 팬들의 주목을 한 껏 받았던 M.나이트 샤말란에게 바로 연이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수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샤말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차라리 식스센스가 없었더라면'하는 입장인데,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 '식스센스'를 가장 안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 평가는 최근 결국 보고야만 '라스트 에어벤더' 덕에 이제는 더이상 쓸 수 없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샤말란의 작품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보이게 된 작품은 '식스센스'의 다음 작품인 2000년작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이었다. 지금이야 '다크 나이트'부터 '킥애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와 방법론의 히어로 물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2000년 당시 '언브레이커블'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흥미롭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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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 노골적으로 이 작품이 영웅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만화(Comics)에 관한 이야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브레이커블'은 오래 볼 것도 없이 굉장히 코믹스 히어로물의 기본 세계관에 몹시 충실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는 이미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로 대표되는 만화책에서 수없이 보아온 영웅담에 근거, 아니 이 영웅담을 현재로 가져와 그대로 새로운 신화를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평소 코믹스에 관심이 있던 이들이라면 이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게 된다. 동어반복이라 지루하게 느껴진다기 보다는, 처음 히어로물을 접하게 될 때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이야기는 우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탄생되게 되고, 주적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다. 즉, 이런 기대를 한치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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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웅과 주적의 탄생부터 천천히 그려간다. 물론 주적으로 나중에 밝혀지는 '일라이저 (사무엘 L.잭슨)'의 경우, 처음부터 적임을 알리지 않을 뿐이다. 또한 영화는 서로 정반대에 있지만 같은 과정을 겪은 영웅과 악당의 성장과정을 짧지만 의미깊게 전달한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뒤늦게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와, 반대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각각 회상과 시간 흐름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가 처음 주인공 만큼이나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일라이저'의 이야기다. 그가 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그러하듯 주인공 히어로의 정반대에 선 주적은 태초에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경우가 많은데, '언브레이커블'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이런 탄생과 성장과정을 가진 캐릭터가 간혹 영웅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듯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큰 사고나 상처를 받고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곤 하는데, 영화는 전자의 경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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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저'가 탄생부터 특별함을 타고 난 탄생 과정을 그린다면,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빗 던 (브루스 윌리스)'의 이야기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을 통해 탄생의 과정을 그려낸다. 샤말란은 이 작품을 써내려가는데에 있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재탄생 시키는 것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다른 히어로물 들에 비해 주인공의 초능력이 과장되게 그려지는 것보다는 설득력있는 수준으로 묘사되고 있는 동시에, 데이빗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시험하게 되는 과정 역시, 일반인은 쉽게 들기 어려운 무게의 역기를 드는 것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참고로 M.나이트 샤말란의 특기라면 아주 공상과학적이고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그릴 때에, 과한 SF적 묘사보다는 스릴러와 서스펜스에 포커스를 두고 현실감있게 그려낸다는 점인데(그래서 태초부터 판타지인 '라스트 에어벤더'는 실패했는지도 모르겠다),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면에서 친근한 이웃인 '스파이더 맨'보다도 훨씬 현실적인 히어로 물인 동시에, 코믹스의 세계가 갖고 있는 기본 설정은 모두 갖고 있는 또 다른 영웅신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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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극중 코믹스에 정통한 '일라이저'라는 캐릭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만화의 세계관 속 영웅과 악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데이빗이 일라이저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그저 일라이저가 코믹스 세계에 빠진 인물로서, 초능력을 가진 데이빗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일종의 팬 혹은 조력자로 그려지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면 자신과 다르지만 같은 데이빗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려 했다는 것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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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데이빗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시험하고 활용하게 되는 첫 경험에 있다. 우리가 적어도 극장용 히어로물을 통해 보아온 영웅의 자각 순간들은,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에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게 되 좌충우돌하고 호기심 가득한 장면으로 묘사되거나, 혹은 자신의 초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고는 곧 쉽게 적응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이 작품 속 이 순간의 묘사는 조금 달랐다. 데이빗은 처음 자신이 아직까지 한 번도 다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것이 사실임을 점차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자신이 영웅임을 확신하는 일라이저를 만났을 때에도, 도저히 들 수 없는 무게의 역기를 들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계속 의심한다. 즉, 데이빗은 이미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이 훨씬 많고 이미 아이가 있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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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데이빗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원활하지 못한 부부관계를 이제 막 다시 맞추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더더욱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와! 나에게 이런 초능력이!!'하며 기뻐 날 뛰기 보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그로 인해 변하게 될지도 모를 현실 (가족)에 대한 고민이 그 누구보다 컸던 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기차역에가서 자신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그 어떤 히어로의 첫 경험보다 경건하게 그려진다. 또한 이것이 마냥 신나는 일이기 보다는 상당히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나서 데이빗이 실제로 악당을 무찌르고 아이를 구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사건 해결으로 인한 성취감이나 영웅의 탄생에 어울리는 두근거림 보다는, 무언가 슬프고 쓸쓸한 감정이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어로로서 첫 임무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신문을 보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네 말이 맞았어'라고 이야기하며 울먹이는 장면은, 다른 히어로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특별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신문을 보여주며 '봐! 아빠가 해냈어!'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데이빗도 아들도 서로 눈물 흘리며 그야말로 운명을 숙연히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하나 만으로도 '언브레이커블'은 특별한 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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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나이트 샤말란은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다른 영화로 치자면 서막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런 방식일 경우 2편에서는 선과 악이 대결을 펼치고, 3편에서는 최후의 악당과 싸우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된다고 하며, 자신은 이런 전개보다는 오로지 서막에 해당되는, 그러니까 한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어 이것만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샤말란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겠지만서도 '언브레이커블'의 이야기가 워낙 흥미로웠기 때문에 이 캐릭터들을 가지고 더 전개할 수 있는 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서막의 이야기로만 보자면 분명 뻔한 히어로물의 전개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물론 아닐 뿐더러, '언브레이커블'이라면 당연히 이 공식대로 흘러가야만 한다) 다른 영화들과는 또 다른 감동이 기대되는 바인데, 여기서 멈춘 것 같아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을 기대한다면 역시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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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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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 (Oki's Movie, 2010)
모호함으로 완성되는 논리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는 참 특별한 영화다.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하하하'가 묘한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신작 '옥희의 영화'는 이 연장선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면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우연을 통한 긴장감과 인물들간의 관계의 대한 논리 역시 기대하는 바를 벗어나는 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 특별한 작품이다. '옥희의 영화'는 홍상수의 예전 영화들과 비슷하게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이렇게 4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는 옴니버스는 물론 아닐 뿐더러 단순하 '장'의 개념으로 보기도 힘든 묘한 독립성을 지닌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옥희의 영화'는 이런 모호함의 논리도 가득찬 작품이다. 각 편의 인물들은 같은 인물인 동시에 다른 인물이며,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시에 사실은 1인 다역에 가깝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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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각 '편'은 완전히 연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독립적이지도 않다. 즉 각 편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은근히 주고 있기는 한데 (실제로 주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관객들에게는 확실히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영화들의 인과관계와는 달리 서로의 이야기를 맺어주고 인물들의 연결 고리를 이어주는 것에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중에 읽게 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일부러 이런 고리를 연결하지 않는 것을 통해 이질감을 주려고 했다는데, 확실히 이 부분에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미 이런 인과관계나 복선 등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이런 이질감을 더더욱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진 작가 여성의 경우 묘한 여운을 주고 마는데, 관객은 '아, 이 인물이 나중에 어떻게라도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영화의 GV에서 여성관객에게 예전 여자친구에 대한 질타를 받게 되는 진구의 이야기는 나중에 등장하는 송교수의 이야기 혹은 송감독, 아니면 진구의 다른 이야기와 겹쳐지진 않을까 엮어보게 되지만 사실 이들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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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호함의 연결 고리는 각 편에 등장하는 같지만 다른, 아니 다르지만 같은 인물들로 인해 더 깊어진다. '주문을 외울 날'의 등장하는 결혼한 진구의 집은 이후 '키스 왕'에서 등장하는 옥희의 집과 동일한 곳이다. 하지만 진구는 이 집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은 관객만이 느끼는 이질감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 네 편의 이야기를 시간 상으로 분류해보고 그 속에서 이들의 관계를 다시금 정리해보게 되는데, 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비교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인셉션'은 치밀한 설계를 통해 관객이 여러가지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한 경우라면, '옥희의 영화'는 처음에는 이와 비슷하게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이는 감독이 의도했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스스로 학습한 결과로 인한 것이라 봐야겠다) 것 같지만, 막상 답을 찾으려 연구하다보면 결국 애초부터 답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인셉션'은 여러가지 정답을 정해둔 경우고, '옥희의 영화'는 정답을 아예 만들어두지 않은 경우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모호함은 곧 이 영화의 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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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지막 편인 '옥희의 영화'에 가서 본격적으로 이 모호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말그대로 이 네 번째 편은 옥희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남자 (진구), 늙은 남자 (송교수)와 각각 동일한 아차산에 갔던 경험을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해 놓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는) 이 '옥희의 영화'는 이 모호함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된다. 씨네 21의 정한석 기자가 글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네 번째 편인 '옥희의 영화'를 통해 결국 진구와 송교수는 극중 배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배우가 되어버린 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선균, 문성근 등이 연기한 캐릭터가 1명이 아닐 수 있다는, 1인 다역일 수 있다는 좀 더 확실한 이유가 된다. 

더불어 '옥희의 영화'는 좀 더 홍상수 개인의 영화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극중 주인공이 영화 감독 및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국대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극중 유준상에게 질문을 하던 학생이나 이번 진구의 GV의 장면을 보면서도 역시 홍상수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는데, 감독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관객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가끔은 바램 정도가 아니라 작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나 방향을 강요하듯 요구하는 관객들에게, '니가 뭘 알아'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말하는 듯 해 오히려 시원한 부분도 있다. 감독이 원해서 18세이상 관람가가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맘 같아서는 30금 정도로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자존심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인정해야할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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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러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호기심이 넘쳤던 장면이라면 '폭설 후'에 등장한 강의실 장면을 들 수 있겠다. 폭설로 인해 수업에 진구와 옥희만 오게 되자 송교수는 이들에게 아무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여 이 문답은 시작되게 되는데, 그 질문들이 그야말로 아주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물음들에 가깝다. '저는 현명한가요? '제가 영화에 재능이 있나요?' '성욕은 어떻게 이기시나요?' '사랑은 꼭 해야하나요' 등의 질문에 송교수는 비교적 주저하지 않고 답들을 한다. 물론 이 답은 정답도 아니고 완벽하지 않은 것들도 대부분이지만, 내게 이 문답 장면은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렇듯 아무것도 꺼릴 것 없고, 과연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 없이 물어볼 수 있을까 라는 의심과 부러움은 물론, 저런 상황과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랄까. 이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개인적으로 인상 깊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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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는 우연의 법칙을 일부러 피해가려 하고 있지만, 홍상수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우연과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다. 실제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그 날의 느낌 혹은 당시의 상황 등에 충실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103년 만에 폭설이 내린 그 날, 영화 속에서 보았던 식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생각한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대본이 당일 나오는 것이야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 것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현장과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만들기를 보면 놀라움과 더불어 몹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다. 특히 정유미와 이선균이 웃으며 포즈를 취한 메인 포스터의 경우, 사실 '포즈를 취한' 것 같은 느낌이라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촬영장에 왔던 일반 분이 배우들을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청해 촬영된 사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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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수 많은 영화와 매체에 등장했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이렇게 사용될 수 있음을 몰랐다. 앞으로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면 '옥희의 영화'가 떠오를 것만 같다.

2. 아차산 시퀀스에서는 예상하지 않았던 몇몇 아름다운 영화적 장면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자연광을 받아 더욱 빛나는 정유미의 자태랄까.

3.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아래 씨네21 정한석 기자의 글을 읽었는데, 이 글 보고 많이 힘이 빠졌어요. 이미 전력을 다 쏟아낸 글을 보고나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하죠;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정한석.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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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는 천재다. 뭐 새삼스럽겠느냐 만은 그들의 신작 ‘시리어스 맨’을 보고서는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이를 영화로서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대한 기법,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이야기 꾼인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 거의 실망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인상 깊게 보았었는데, 최근 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나서는 코엔 형제의 영화가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장인의 경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번 애프터 리딩’을 통해서는 녹슬지 않은 그들의 재치와 블랙코미디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음을 역시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번 애프터 리딩’을 보고는 코엔 형제의 쉬어가는 작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엔 형제만이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런 코엔 형제의 시작이었음에도 ‘시리어스 맨’에 대한 기대는 사실 그들의 네임 벨류에 비하면 조금 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번 애프터 리딩’을 보러 갈 때의 기대와 비슷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난 ‘시리어스 맨’은, 아니 보는 내내 ‘시리어스 맨’은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엔 형제는 또 어떤 걸작을 만들고야 만 것인가?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타이틀롤 이전에 독립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슷한 이디시 설화를 쓰려고 했던 코엔 형제는 마땅한 이야기를 찾지 못해 그냥 자신들이 그럴 듯한 진짜 이야기를 하나 짧게 쓰기로 한다. 이 이디시 설화는 뒤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지만, 이 도입부를 통해 ‘시리어스 맨’은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 역할을 서두에 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설화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야 말로 코엔 형제 만의 번뜩이는 재치이자 기발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래리 (마이클 스털바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곧 대학의 종신 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있고, 아들은 성인식을 치르게 될 예정이며, 옆집 사는 남자가 자꾸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이 조금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영화는 래리의 소개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 학생은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슬쩍 돈봉투를 남기고 가버리고, 아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왔던 '싸이 에이블맨'과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며,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이 주목하고 있고,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종신 재직권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악의적 편지들이 도착하는 등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Serious)진다.




래리가 처한 상황과 그의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집 안 구성과 디자인 적인 요소다.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의상 컨셉이 있는데, 딸은 항상 화려한 꽃무늬 잠옷을 입고 나오고, 방안의 벽지 역시 모두 다른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집 안의 커튼 역시 방 마다 모두 다른 각각의 화려한 무늬를 하고 있다. 아내 역시 매번 다른 체크 무늬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암시다. 또한 여러 가지 패턴들 속에 살아가는 한 인물에 대한 강박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강박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매사에 진지한 주인공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패턴으로 뭉쳐있는 집 안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래리라는 캐릭터에 공감지수를 드높여 준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래리가 처한 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재앙은 하나같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내는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래리와 이혼하기를 바라지만 싸이를 사랑해서도, 싸이와의 관계가 깊어 져서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위자료를 받아내려는 속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아내 스스로도 '내 말이 말은 안되지만 이혼은 해야 돼'라고 느껴질 정도다. '싸이'는 또 어떤가. 그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싸이는 마치 래리를 아들처럼 감싸 안으면서 래리에게 왜 이혼을(서약서를)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싸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의 말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말만 놓고 보자면 이건 전혀 설득이 될 리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들이다.




낙제점을 면하게 해달라며 돈을 놓고 갔던 한국 학생 '클라이브'의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두고 간 것을 놓고 래리와 클라이브가 벌이는 대화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더 나아가 클라이브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소송을 건다고 집으로 찾아온다. 이 아버지 역시 클라이브와 래리의 아내의 말처럼 스스로가 '내 말엔 논리가 없다'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래리가 항상 불편하게 생각하던 옆 집 남자는, 클라이브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며 도움의 한 마디를 건 낸다. 래리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맞다. 래리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래리는 매사에 '진지한 (Serious)' 남자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한 래리는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래리가 만나게 되는 세 명의 랍비에 관한 이야기는 섹션으로 정리되어 보기 좋게 제공되는데, 이 세 명의 랍비에게서 듣게 되는 말들 (처하게 되는 상황) 역시, 다들 불확실하고 이상하기 짝이 없다. 본래 보기로 했던 랍비가 자리를 비워서 대신 만나게 된 젊은 랍비는 래리의 말을 다 듣고는 그럴 땐 그저 주차장을 보라'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두 번째 랍비는 이빨의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무언가 명쾌한 해답을 들려줄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 역시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무언가 답을 찾으려던 래리는 이 두 번째 랍비 와의 만남에서도 이를 찾지 못하고 결국, 최고의 랍비인 마르샥 과의 만남을 어렵사리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래리는 랍비를 만나려고 했느냐'라는 점이다. 앞서 물리학자이지만 수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의 이론을 엄청나게 긴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래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래리라 랍비를 찾게 된 이유는 역시 '정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다. 마르샥을 간절히 만나려고 했던 것은 본인 스스로 마르샥 개인을 원해서가 아니라, '마르샥 = 정답'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래리에게 마르샥과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했던 정답을 마르샥이 갖고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현실은 이렇듯 생각대로, 단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그의 이야기 역시 무언가 인과응보는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필요한 순간에서 또 한 번 생각지도 않은 요인으로 인해 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마되는 것을 겪게 된다. 즉,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프롤로그에 사용된 이디어 시퀀스처럼, 영화는 내내 이 언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해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 클라이브의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딱딱한 발음과 억양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었으며, 아들 대니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역시 래리와 대니의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래리가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이혼증명서라는 뜻의 랍비 언어를 매번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테나를 바로 잡으러 올라간 지붕 위에서 예상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불확실성이다.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 닿는 작품이 ‘시리어스 맨’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보세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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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어스 맨’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와, 디지털 상영도 아닌데 상당히 화질이 좋구나’라는 것이었는데, DVD의 화질에서도 그런 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본래의 촬영 소스가 훌륭하다 보니 마치 얼핏 얼핏은 HD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 정도다. Super 35 소스를 디지털 4K로 마스터한 영상의 장점이 DVD에서도 조금이나마 확인된다고 볼 수 있겠다 (블루레이였다면 아마도 훨씬 더 좋은 영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작품의 성격으로 미뤄봤을 때 국내 블루레이 출시는 어렵다고 봐야겠다)





돌비 5.1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의 경우, 특별한 효과음이나 사운드 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은 아닌지라 큰 메리트는 없지만, 카터 버렐의 사운드 트랙들과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곡들의 전달 시에는 의외(?)로 괜찮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시리어스 맨’은 개인적으로 사운드 트랙을 해외주문을 통해 구매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DVD에 수록된 사운드 퀄리티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비교적 간단한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양에 비해서는 질적인 면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Becoming Serious‘는 제작과정 영상을 담고 있는데, 코엔 형제의 인터뷰 및 배우들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어, 코멘터리의 부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준다.





‘Creating 1967‘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67년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미술적인 요소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의상이나 사회 배경으로 인한 설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196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 무엇보다 의상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앞서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메시지적인 부분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Hebrew And For Goys’에서는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히브리어 용어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수록되었는데, 대략 감으로만 인지하고 넘겼던 히브리어 용어들에 대한 자세한 풀이를 확인할 수 있다. 3가지 부가영상에는 모두 한국어 자막이 지원된다.



‘주차장을 보세요~’

총평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의 팬들 사이에서만 잠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더 큰 화제가 된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철학적인 면에서는 전혀 뒤질 것이 없는, 그야말로 코엔 형제다운 명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적 퀄리티에 비해 DVD의 가격은 몹시 매력적인 수준으로 발매되었으니, 코엔 형제의 팬이라면 무조건 소장해야 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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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유쾌하고 맛있는 삶의 진리

독립영화와 TV드라마를 통해 주목 받았던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극의 쉐프’는, 일단 제목에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 영화 속에서는 주로 고립으로 인한 공포의 대상이거나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스릴러 적인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곤 하는 남극이라는 공간과 요리를 만드는 쉐프(Chef)와의 공존이라니, 무언가 이 부딪힘 에서는 묘한 스파크가 발생한다.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남극의 쉐프라는 이 이야기가 잘짜여진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인데, 극중 주인공의 이름과도 같은 니시무라 준은 실제로 남극관측 대원으로서 기지에서 조리를 담당했던 조리사였다. 영화는 바로 이 니시무라 준이 쓴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그야말로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겪는 특별한 이야기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영화는 의외로 요리사라는 직업에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도구 그 이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요리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이자 소재가 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제3자가 아니라 요리사인 니시무라 준이 직접 썼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담담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남극 기지에서 일했던 다른 대원이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면, 매번 특별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주목하여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요리를 만든 장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 요리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반응이나 그 과정 등을 전체적인 남극이라는, 그리고 그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극의 쉐프’는 휴먼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템포가 깊게 드리워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본 영화에는 그들 만의 특별한 리듬과 템포, 그리고 소소함과 담담함이 존재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일본영화만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빠르고 자극적인 리듬에 익숙한 이들의 경우, 이렇게 굴곡이 많지 않고 참 담담하기만 한 (가끔 무덤덤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본 영화의 매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남극의 쉐프’의 매력에 또 한 번 빠져들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남극의 쉐프’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한정된 공간에서 여덟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분명한 캐릭터 영화이자, 결국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일곱 명의 남자 캐릭터들은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이 비교적 많은 편이 아님에도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할당량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으며, 이것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재미인 유머러스 한 부분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매우 직접적인 가족 영화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단편적으로는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를 만날 수 없는 가족 구성원들의 애환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여덟 명의 남자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특징적 역할이 주어져 있기도 하다.




‘남극의 쉐프’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처럼, 보고 나면 무언가 삶에 대해 깊게 여운이 남게 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니시무라 준도 그렇고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굉장히 담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런 담담함을 쭉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여운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담담한 연기에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카이 마코토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아, 물론 다른 7명의 배우들과의 이른바 ‘단체 연기’가 더욱 핵심적인 요인인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일 듯. 어쨌든 이 영화는 관객을 일부러 심하게 웃기려고 하지 않지만 웃게 되고, 억지로 울리려고 하지도 않지만 찡하게 만드는 매력을 갖은 작품이다. 즉, ‘남극의 쉐프’라는 특수한 상황이나 설정에서 오는 에피소드적 재미만으로 흘려 보내기엔 참 괜찮은 작품이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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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 DVD답게 훌륭한 편이다. 이 작품처럼 드라마 장르이면서 특히 일본 영화일 경우 화질 면에서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타이틀들이 많은데 ? 물론 이런 가장 큰 이유는 DVD자체의 화질의 문제라기보단 원 소스의 화질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 그에 반해 ‘남극의 쉐프’는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블루레이 위주의 감상 환경이라면 각각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업스케일링을 통해 DVD를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렇게 볼 경우 40인치 정도의 큰 화면으로 볼 때에도 비교적 DVD치고는 큰 부담이 없는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화질 자체가 감상을 좌우하는 타이틀은 아니지만, 클로즈 업의 디테일도 좋고 영화 속 맛깔스러운 요리들도 ‘정말’ 먹음직스럽게 보일 정도로 표현력이 좋은 편이다.





사운드의 경우 돌비 2.0만을 제공하고 있는데, 사실 5.1채널이 제공되었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로 5.1채널이 수록되었더라면 좀 과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화질도 그렇지만 음질 역시 주요 포인트는 아니기 때문에 2.0채널 만을 지원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사 전달에도 무리가 없으며 사운드 적인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2.0채널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다.




DVD Special Features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남극의 쉐프’ DVD는 Special Edition답게 풍부한 부가영상이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간단히 얘기해서 음성해설을 제외하고는 다 수록되었다고 봐도 무리 없을 정도. 최근 블루레이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SE 타이틀 다운 DVD의 부가영상들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는데, 이런 저런 편집이 많지 않은 제법 긴 분량의 제작과정 영상과 시사회, 무대인사 스케치, 토크쇼, 음악에 관한 제작과정 등 영화를 재미있게 본 이들이라면 모두 흥미롭게 즐길 만한 부가영상들이 가득 수록되었다.





‘남극의 쉐프가 만들어지기까지 월동생활 전반전’에서는 주로 극중 돔후지 기지의 세트가 있었던 로케이션지에서의 촬영 분량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남극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도 배우들이 추위와 싸워야 했을 만큼의 추운 날씨 속에서 벌어진 촬영장 뒷얘기와 더불어, 실제 남극처럼 보이기 위해 동원된 세트나 장치들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남극의 쉐프’의 첫 촬영이 바로 이 부분부터였는데, 그래서인지 나중에 후반부나 시사회에서의 모습들과 비교하면, 배우들이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친해졌는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다.




‘남극의 쉐프가 만들어지기까지 월동생활 후반전’ 에서는 주로 세트 촬영 분에 관한 장면들과, 주인공을 연기한 사카이 마사토가 남극의 쉐프로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과정 등이 담겨 있다. 누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절로 찾게 될 정도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정말 쉐프가 만든 것 같이 먹음직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었는데, 이는 모두 ‘카모메 식당’ ‘안경’ 등으로 유명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오미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를 능청스럽게 연기한 사카이 마사토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또한 7명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촬영장 뒷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하는지, 이 뒷이야기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을 정도다. 특히 모토씨 역할을 맡은 나마세 카즈히사의 경우,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로서 대장역의 기타로와 함께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현장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미수록 & 다른 테이크’는 제목 그대로 본편과는 다르거나 수록되지 않은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이라면, 본편에서는 공항 장면 이후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에 반해, 덥수룩해진 머리와 수염을 정리하기 위해 니시무라가 가족들과 함께 이발소를 찾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미엄 시사회’에서는 2009년 7월 27일 ‘르 테아토르 긴자’에서 가졌던 프리미엄 시사회 현장을 담고 있는데, 처음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라 긴장된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수록된 토크쇼와 무대 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나마세 카즈히사와 키타로의 만담은, 이번 타이틀의 부가영상의 백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두 중견 배우가 격이 없이 펼치는 만담들 덕에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관련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개봉일 무대인사’에서는 프리미엄 시사회와는 다르게 감독을 비롯해 출연한 여덟 명의 배우들이 모두 참석해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데, 물론 여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마세 카즈히사다. 의외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다른 대부분의 배우들 덕에, 나마세와 기타로 두 중견 배우가 나름의 짐을 짊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극중에서 니시무라의 딸 유카 역할로 출연했던 오노 카린 양이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한다.


‘영화 개봉 기념 토크쇼’를 비롯해 ‘남극의 쉐프 음악 제작 과정’과 ‘가족의 테마’는 모두 영화 음악에 대한 부가영상을 담고 있다. ‘남극의 쉐프’의 영화 음악은 일본의 밴드 유니콘 (Unicorn)’ 출신의 뮤지션 아베 요시하루가 맡고 있는데,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영화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녹음 과정 등이 수록되었다. 휘파람 연주가 돋보이는 테마 곡의 녹음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38차 남극지역 관측대인 돔후지 기지로 가는 길’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바로 그 진짜 돔후지 기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영상이 극중 ‘통칭 본’으로 불리는 대원이 촬영한 영상이라는 점이다. 실제 영화 세트와 너무도 흡사한 모습들과 남극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오로라 마저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데뷔작 ‘남극의 쉐프’는 추운 남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따뜻한 감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소소하고 담담한 매력에 빠지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반드시 무엇이든 먹고 싶어질 테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편이 좋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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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 (のだめカンタ-ビレ, 2009)
피날레를 향해가는 노다메 월드


니노미야 토모코의 원작 만화를 TV시리즈로 옮긴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노다메 TV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원작인 만화보다도 더 만화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사실 애초에 화제가 된 것은 이런 엽기적이고 일본 만화스러운 과장된 표현들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맛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인식시키는데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닌 노다 메구미와 (아, 어색한 이 풀네임;;) 치아키의 관계를 통해 꿈에 대한 깊은 이야기마저 들려주게 되었다. 그래서 TV시리즈의 팬들은 말그대로 노다메 때문에 '울고 웃을 수' 있었다. TV시리즈가 종료되고 유럽편을 통해 그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노다메 칸타빌레는 두 편의 극장판을 통해 드디어 이 대단원의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 피날레를 만나기 전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판 Vol.1을 국내 극장가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은 일단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특히나 이 극장판은) 노다메 TV시리즈를 즐기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을 만한, 즉 TV시리즈와 유럽편의 연장선 상에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노다메의 팬들이라면 이 극장판을 절대 놓쳐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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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극장판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는 워낙에 늦은 개봉이라 반가운 마음이 우선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극장판들이 그렇듯이 그저 TV시리즈의 캐릭터와 설정을 가져온 외전격 (에피소드 형식)의 작품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완전히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극장판들이 TV시리즈를 기존 팬들에 대한 팬서비스 창구인 동시에 새로운 관객들을 향한 구애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거의 기존 팬들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만한 수준이라 오히려 더 마음에 든 경우다. TV시리즈를 연출했던 타케우치 히데키가 극장판의 연출을 맡은 것도 그렇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보다는 기존 캐릭터들이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라,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고 매우 자연스럽게 TV시리즈와 유럽편의 기억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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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기존 팬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엽기적인 부분이 그리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편이다. 만약 새로운 관객을 더 의식했다면 한번에 관객들의 시선과 재미를 불러모을 수 있는 이 엽기와 만화적인 코드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을 테지만, 아직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가야만 하는 숙명의 성격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과하지 않게 사용되었고 오히려 전개와 피날레를 암시하는 설정들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물론 그대신 이 만화적인 부분을 극장판에 걸맞는 스케일로 보여주는 정성도 잊지 않는다. 기존 TV시리즈가 주로 노다메의 엽기적인 표정과 액션(?)연기에 치중했었다면, 극장판은 노다메의 환상 부분을 스케일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그 가운데 '변태의 숲' 시퀀스는 극장판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이자 노다메 월드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이기도 하다. 즉 처음 이 시퀀스를 접하는 이들은 '뭐야 이거, 너무 유치하잖아'라고 생각하는데에 그칠 수 있지만, 이미 이 유치함에 익숙(?)해진 팬들이라면, 이 시퀀스에서 그 유치함을 넘어선 노다메 월드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다메 월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지 표현방법이 만화적이고 유치하고 유아적일 뿐이지, 가끔씩 보여지는 진지함처럼 그 안에 하고자하는 메시지는, 그 어느 작품보다 진지하고 심각하며 깊은 고민을 함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이 몹시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무아지경에 빠진 순간에 멋진 음악과 배경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단지 노다메의 무아지경에는 이런 멋진 배경대신 망구스와 고로타, 가즈오 군이 등장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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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클래식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빼놓지 않고 있다. 처음 등장한 '볼레로 (Bolero)'의 그 유명한 메인 테마를 비롯해 (이 테마는 예전 바리시니코프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백야'의 삽입곡으로 더 익숙하다), 치아키가 말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게 되는 장면은 극장판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일 정도로 거의 한 곡이 풀로 수록되기도 하였는데, 마치 잠시나마 클래식 공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극장에서 나도 모르게 'Bravo'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치고 싶도록 (진짜 이럴 뻔했다) 만드는 힘도 갖고 있다. 또한 단순히 음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음악의 진정한 면, 즉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는데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곡은 베토벤이 무슨 일이 있어서 만들었으며, 극 중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아,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단순히 어렵기만한 것이 아니라 참 재미있는 음악이구나!'라고 절로 느끼도록 만든다. 

마치 요근래 유행하는 모 항공사의 광고 컨셉처럼 음악과 동시에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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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이 노다메 시리즈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노다메와 치아키 간의 특별한 관계, 즉 꿈과 사랑을 공유하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여전히 비중있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아다시피 노다메는 치아키를 좋아하는 동시에 치아키가 꿈을 향해 먼저 앞서가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보며 그리고 점점 치아키 센빠이와 격차가 나는 듯한 불안감에 초초해 하고 슬퍼하곤 하는데, 이 극장판에서 역시 이런 갈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이 노다메 시리즈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로를 위해 하향 평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노력하는 이 커플의 모습은, '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과 동시에 과연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특히나 그 엔딩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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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Vol.1'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이번 가을에 개봉할 Vol.2의 앞선 이야기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런 전초전 적인 성격을 서서히 풀어가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Vol.2, 그러니까 피날레에 대한 떡밥을 마구 뿌려댄다. 과연 노다메와 치아키는 어떻게 될까. S오케는 다시 치아키와 노다메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슈트레제만은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이미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은 종결이 난지 오래지만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미 올해 4월 개봉했었지만), 올 가을 극장에서 직접 피날레를 함께 하고 싶다.


1. 극중 노다메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의 실제 연주는, 무려 '랑랑 (Lang Lang)'이 연주했더군요. 다..다시 들어봐야 겠어요

2.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Vol.2 예고편이 나옵니다.

3. 극중 서양사람들은 모두 일본어를 하는데, 노다메는 친절하게도 특별 자막을 통해 '편의를 위해 모든 외국인들이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점 양해바랍니다'라고 재치있게 넘어가고 있어요. 노다메 월드니까 가능한 이야기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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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지브리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드디어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 및 기획을 하고 신예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은 (신예라고는 하지만 단독으로 연출을 맡은 장편이 없었을 뿐, 지브리에서 15년 간을 애니메이터로 활약해온 준비된 감독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지만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공개 시점부터 좋은 반응과 기대를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좋은 반응을) 모았던 작품으로, 자칭 지브리의 광팬인 나에게도 아니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기는 했지만 원작이 존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맡은 만큼 완전히 요네바야시 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연속성을 이어갈 만한 괜찮은 작품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문제인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으로 보기는 조금 어려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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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형의 집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전작인 '벼랑 위의 포뇨'에 비하면 상당히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다. 여기서 '어른스러워졌다'라는 표현은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전개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벼랑위의 포뇨'가 내적으로는 죽음을 관통하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 비해,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오랜 메시지인 환경과 '살아라'라는 화두는 그대로지만,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포뇨'에 비해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소인이라는 종족의 등장한 평소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전달해주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 세계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포장하는데에 생각보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이런 설정들이 활용될 만한 에피소드를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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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더 메시지를 지우거나 유쾌함으로 전달하려고 했다면, 소인 종족과 인간들의 만남에 있어서 화합의 에피소드를 강조했을텐데, 이 영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영화 속에서 나름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줌마가 그려지는 방식이야 그렇다쳐도, 주인공인 '쇼우'의 첫 등장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이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무서워'라는 말이 터져나오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지브리가 인간을 그릴 때 자주 묘사했던 방식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포 (특히 다른 종족이나 사물, 세계 등과 비교했을 때는 더욱)를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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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마루 밑 아리에티'에 담긴 정서는 확실히 쓸쓸하다. 한창 때의 디즈니 영화처럼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보통 같으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인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에 의해 인간과 소인이 모두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이 작품은 이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소인인 '아리에티'와 교감을 맺고 있는 주인공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만화적 전개라면 소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쇼우의 심장병을 치유라도 해주겠지만, 보시다시피 영화 속 소인들에겐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들은 단지 인간에 비해 몸의 크기가 매우 작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미에 가서도 쇼우에게 확실한 건강을 허락하지 않는다. 쇼우는 그저 힘내겠다 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오히려 이 마지막은 죽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공존하려했던 인물이 죽어간다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의 핵심인 부분이다. 아,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쇼우의 첫 등장장면 만큼이나 쇼우와 아리에티의 대화 장면에서 그 공포와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리에티에게 너희와 같은 소인 종족이 멸종해 가는 종족이라는 점을 아주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속으로 '와, 아이들도 보는 영화인데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놓고 '너흰 죽어가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터라 정말 놀랍기까지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리에티의 가족이 결국 화해나 공존을 포기하고 이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세기말적인 쓸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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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와중에도 지브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교훈인 '살아라'의 대한 것과 다른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메시지 역시 여전하다. 쇼우의 행동에서 이러한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쇼우는 직간접적으로 아리에티를 도우려고 하지만, 마지막의 순간에는 아리에티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 한다. 아리에티의 엄마가 아줌마에 의해 잡혔을 때도 직접 아줌마를 따돌리고 엄마를 구해서 아리에티 앞에 턱 하고 놓을 수도 있었고, 더나아가 악당인 아줌마를 할머니에게 고자질해 아줌마를 집에서 떠나게 하고, 아리에티 가족과 함께 잘 살 수도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사를 위해 험난한 여정을 가야만 할 아리에티의 가족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더욱 안전하게 도울 수도 있었으나, 쇼우는 그냥 길을 터주고 미련 없이 보내는 것을 택한다.

지브리가 택한 방식은 매번 이런 방식이었다. 어려움에 처했거나 약자를 돕는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약자가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말이다. 물론 쇼우도 맘은 그렇지 않았지만 첨부터 이런 지혜를 완전히 깨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직접 해결해주기를 원해서 각설탕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했으나, 처음 쇼우가 준 각설탕과 마지막에 준 각설탕의 의미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첨에 준 각설탕은 말그대로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내가 줄께'라는 식의 것이었지만 (그래서 아리에티는 쉽게 받을 수 없던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준 각설탕은 아리에티와 이런 모험과 교감을 겪고 나서 진심으로 전하는 '선물'의 의미, 즉 '그 땐 내가 경솔했어, 하지만 이제는 내 진심을 받아줄 수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전달되는, 그래서 아리에티도 더이상 '빌려가지' 않고 오전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내내 '빌려가는'것으로만 살아왔던 이 두 종족의 관계가 더 이상 빌려가고, 도둑질 해가는 것이 아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런 교감을 나눈 쇼우는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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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히사이시 조 없는 지브리의 사운드트랙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이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인 것과 더불어 사운드트랙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 '세실 코벨'의 음악은, 기존 지브리의 작품들 보다 훨씬 더 유럽풍의 인상을 준다('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도, 유럽을 배경으로 했던 '붉은 돼지'보다도 더하다). '썸머워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 군은 주인공 '쇼우'를 연기하고 있으며, '도쿄 타워'와 '걸어도 걸어도'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키키 키린은 나름 악당인 '하루' 아줌마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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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명절 연휴기간이라고 해서 영화를 더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쨋든 명절연휴라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간내에 상영하는 영화들이 기대되곤 하는데, 매번 너무 '추석연휴'를 노린 듯한 영화들만 많았던 것에 비해 올해 추석연휴 극장가는 그런 작품들 외에도 볼만한 소소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본격적인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2주 후를 비롯해 다음 주 개봉작들까지 아울러서, 연휴 기간 볼만한 작품들을 정리해보았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목록을 정리해놓고 반 이상을 못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연휴기간에는 꼭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순서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1. 계몽영화
감독 - 박동훈
출연 - 정승길, 김지인, 오우정
개봉일 - 2010.09.16

'전쟁영화'를 연출했던 박동훈 감독의 신작. 매번 좋은 다큐영화들을 소개했던 '인디스토리'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근 훈훈함이 주가 되었던 가족영화들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미완성 가족교향곡'이라는 설명처럼 한국근대사를 배경으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 




2. 땅의 여자
감독 - 권우정
출연 -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
개봉일 - 2010.09.09

오늘 개봉한 '땅의 여자' 역시 인디씬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은 재쳐두고서라도, 이 '진짜' 이야기가 과연 어떤 울림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잔뜩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터라, 그녀들의 농촌 라이프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풀냄새, 땀냄새 나는 인생의 맛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3. 노다메 칸타빌레 Vol.1
감독 - 타케우치 히데키
출연 - 우에노 쥬리, 타마키 히로시
개봉일 - 2010.09.09

우에노 쥬리의 왕팬이자 '노다메'의 팬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작품!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개봉했던 작품이라 국내 개봉은 결국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소규모이지만 국내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TV시리즈는 원작인 만화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었음으로, TV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이들에게만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미 TV시리즈를 통해 이 황당하고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연출과 유치한 설정들에 적응되지 않은 이들이라면 아마도 유치함게 못이겨 극장을 빠져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노다 메구미와 치아키 센빠이에 흠뻑 빠진 이들이라면 적은 상영관도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듯.




4.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개봉일 - 2010.09.09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른바 '빠'로서 이번 연휴의 최대 기대작은 볼 것도 없이 '마루 밑 아리에티'라 할 수 있겠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하지 않은 '게드 전기'의 실패 이후, 다시 선보인 지브리의 비 하야오 작품으로서 더 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적으로 실망을 표현했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만족을 표현한 작품이라니 일단 안심이 된다. 지브리의 작품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화두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런 것 다 무시하고 봐도 좋은 것이 바로 지브리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그야말로 '초' 기대작이다.




5. 시라노; 연애 조작단
감독 - 김현석
출연 -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개봉일 - 2010.09.16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국내 로맨스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나의 여신으로 떠오른 '이민정' 양의 출연 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 따위는 볼 것도 없이 기대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스카우트' 'YMCA야구단' 등을 만들었던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니 완성도 역시 기대해봐도 좋겠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로맨스를 즐길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는 동시에 (이민정 양을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기대도 동시에!),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소문난 야구광인 김현석 감독의 야구사랑이 드러난 장면이 있을지도 체크 포인트.




6. 엉클 분미
감독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출연 - 사크다 카에부아디
개봉일 - 2010.09.16

최근 시네필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이 있다면 단연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신작 '엉클 분미'였다. 이미 이 작품을 본 이들의 평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냥 '좋다'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인 느낌이 들 정돈데, 다행히도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극장에서 빠르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아니더라도, 좀 더 제대로 아피찻퐁 감독의 세계를 스크린에서 만나보고 싶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과연 어떤 영화, 어떤 감흥을 선사할까. '아리에티'와는 또 다른 설레임이다.




7. 옥희의 영화
감독 - 홍상수
출연 -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개봉일 - 2010.09.16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다.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라는 것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는 또 다른 절대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는데, 그의 신작 '옥희의 영화' 역시 이미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부터 몹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는 포스터 속 모습 만으로도 이미 홍상수 월드에 완벽 적응한 듯해 이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기대되는 가운데, 오랜만에 홍상수 월드로 돌아온 문성근의 연기도 주목할 부분이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은 것만 보자던 홍상수 감독의 의지가 이 영화에서는 또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이번 추석연휴도 개인적으로는 극장을 매일 들락날락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들로 인해 더 풍성한 추석연휴가 되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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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ソラニン, Solanin, 2010)
청춘의 또 다른 이름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는 언제나 반가운 동시에 아련하다. 청춘을 그린 영화의 특징이라면 한참 이를 겪는 이들은 그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엔 이미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지나온 뒤이기 때문이리라.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미키 다카히로의 '소라닌 (ソラニン)'은 이런 청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자에서 돋아난 싹에 있는 독성물질'을 뜻하는 '소라닌'이라는 제목처럼, 기존의 청춘 영화들 과는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 모든 청춘 영화들이 특유의 아련함으로 보는 이를 추억과 감성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지만, '소라닌'은 유난히도 아련하다. '소라닌'은 한 때의 소나기로 기억될 수도 있고, 작은 방에 드리워진 햇살로 기억될 수도 있고, 행복했던 추억 혹은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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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이런 감정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 감성스러운 사운드트랙을 들었을 때부터 얘견되었던 것이었다. 무언가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이 풋풋하고 자유로움이 샘솟아나는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니, 사무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으로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어졌는데, 역시나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감정은 더욱 본격화 되어버렸다. 극중 메이코 (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 (코라 켄고)는 각자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거를 하는 중인데, 어느 날 이런 평범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려 조금은 우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는 더 큰 압박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내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끔 했던 것은 아마도 청춘,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라닌'은 이런 청춘이 가진 양날의 검을 모두 담담히 그려낸다. 무조건 현실에서 도망쳐 사표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며 정해진 길을 그대로 가라는 것만도 아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이 자체에는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이들의 행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극적으로 묘사되지만 않을 뿐 영화 내내 이 현실의 그림자는 주인공들에게 드리워져 있으며, 은연 중에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별다른 자극적 연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그럼으로서 이를 맞닥들이게 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현실에 처한 청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현실에서 잠시 혹은 영영 벗어난 이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현실에 놓여져있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 '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깊은 과정이 포함된 (결과는 같지만, 과정의 깊이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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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밴드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청춘은 흔히 록(Rock)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록이라는 음악은 그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장르이기 때문에 청춘과 비견된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소라닌'은 그 지점을 아주 잘 짚어내는 작품 중 하나다. 청춘을 록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작품은 '린다린다린다'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소라닌'은 그 가운데서도 '밴드 (Band)'라는 것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록만을 (혹은 펑크를) 부르 짖는 청춘과 밴드가 위주가 된 청춘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록의 정신을 청춘고 결부시킨 것보다는 밴드라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러니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 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시절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한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전자를 강조한 작품들 역시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라닌'은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함께 한다는 것 (함께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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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라닌'은 미치도록 기타 연주를 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라기 보다는 미치도록 밴드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다.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겠지만, 혼자 연주할 때와 합주할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분명히 밴드와 함께 할 때는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소라닌'는 극중 등장하는 밴드 'ROTTI'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대리만족을 가능케 해준다. 여기에 이들만의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 ROTTI가 부르는 '소라닌'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서를 안겨준다. 이건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된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수록곡의 원곡인 'Asian Kung Fu Generation'의 곡을 들어보게 되면 금새 알게 된다. 원곡도 물론 좋지만, ROTTI가 부를 때 만큼의 감동은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ROTTI가 '소라닌'을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이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절절함과 뜨거움이 미처 식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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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소라닌'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앉아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니, 한 편으론 참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작품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지리하게 흘러가는 청춘들의 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라닌'에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 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와 정서가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소라닌'을 보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미야자키 아오이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미야자키 아오이보다 '소라닌'이 더 깊게 각인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깊은 청춘의 자욱이 남아있다. 

사실 청춘 영화들이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춘 영화'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주 심하게 얘기해서 영화가 시종일관 별로 였다 하더라도 청춘의 순간을 제대로 그려낸 장면이 있다면 그 자체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라닌'은 참 인상 깊은 청춘 영화였다. 내게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였던 청춘이란 순간을, 어쩌면 바로 오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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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만화책은 뒤늦게 사려고 보았더니 모두 품절이라 좌절했었는데, 곧 영화 개봉을 기념해서 다시 재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급 기대중입니다!

2. 미야자키 아오이에게도 이런 에너지가 있었구나 싶네요. 그 에너지는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3. 사실 청춘 영화는 이렇다할 설명이나 비평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구요. 보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죠.

4. 영화를 보고 난 뒤 무한반복 중인 아지캉의 'ソラニン'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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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 2010)
괜찮아, 우린 모두 괜찮아요


줄리안 무어와 마크 러팔로, 그리고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은, 어떤 기사의 제목처럼 '특별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결국 이 특별해 보이는 가족조차 '평범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소스라면 주인공인 닉 (아네트 베닝)과 쥴스 (줄리안 무어)가 레즈비언 부부로 등장한다는 점일텐데, 이런 점에 불편한 점만 없다면 아마도 '에브리바디 올라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게이나 레즈비언을 그린 영화들 가운데서도 이 작품은 아주 부담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타부시 될 때에는 좀 더 자극적이고, 이렇게 타부시하는 사회와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러워진 지금에는, 이 작품처럼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들 꼭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다시 말해 관객들이 더 이상 주인공의 성정체성에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 것 같다. 그런면에서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특별한 듯 하지만, 참 평범해서 더 깊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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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모를 둔 이복 남매인 조니와 레이저. 이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정자를 기증한, 친부를 찾고 싶은 궁금증에 친부인 폴 (마크 러팔로)을 만나게 되고, 폴과 이 가족은 점점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를 이어간다. 이 가족과 폴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여러가지 삶의 다양한 의미들을 짚어 간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닉은 갑자기 나타난 폴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가족을 송두리채 흔들까 두려워 그를 심하게 경계하는 한편, 닉과의 관계에서 점점 권태기를 느껴가던 쥴스는 새롭게 등장한 폴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폴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아이에게도 다르게 나타난다. 

조니는 폴과의 만남을 통해 그 동안 집에서는 억눌려 있었던 자아를 찾는 데에 속도를 내게 되지만, 레이저는 닉과 마찬가지로 궁금하긴 했지만 폴의 등장이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반응이다. 그렇게 이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은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폴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화목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갈등을 겪고 있던 이 가족은, 폴이라는 또 다른 가족을 통해 다시금 자신들(가족)을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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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의 이야기만 보아도 이 이야기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각각이 겪는 갈등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가부장적인 닉이 겪는 갈등, 사랑과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던 쥴스의 갈등, 이제 막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하는 조니의 갈등 그리고 아직은 자신이 속한 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는 레이저의 갈등까지. 영화는 별다른 큰 에피소드를 넣지 않았음에도 폴이라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등장을 통해 이 모든 갈등을 부각시키고 치유하는 것까지 성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부각이 아니라 치유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그저 하나의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가족이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은 마냥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관계 못지 않게 서로 견뎌야만 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갈등하지만 결국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집단이라는 점을 영화는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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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원제인 'The Kids Are All Right'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 혹은 잘 모르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려 섞인 일들이나 관계들이 사실은 그런 우려만큼 문제가 아니라는, 그래서 '우린 다 괜찮아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연 레즈비언을 부모로 두고 있는 이복 남매인 아이들이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혹은 그들 스스로조차 내가 레즈비언인데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잘 커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이들은 조금 다를 뿐이지 그렇게 특별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이 편견이나 선입견이 대상이 될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이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 특별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가깝게 겪어보고 난 뒤에는 이러한 편견을 갖기 않게 되곤 하는데, 이런 영화의 순기능이라면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이런 잘못된 편견을 조금이나마 지워내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확실히 더 극적이고 간절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나가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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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을 보고 나면 확실히 내가 속한 가족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내 부모, 내 자식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마치 극중 쥴스의 그 뜨거운 고백처럼 말이다.


1. 아네트 베닝의 가부장적인 캐릭터 연기는 정말 놀랍더군요. 한 때 '러브 어페어'등에 출연하며 아름다운 여배우 중에 하나로 꼽혔던 그녀가, 이렇게 남성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롭더라구요.

2.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했던 미아 바쉬이코브스카는 확실히 이런 영화에서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편이더군요. 앨리스 이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3. 마크 러팔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본래도 그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그는 뭐랄까, 매력을 막 줄줄 흘리고 다닌달까. 여튼 그렇습니다. 그는 분명 섹시스타에요!

4. 영화를 보고나니, 극중 마크 러팔로처럼 유기농 농장을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과, 극중 아네트 베닝처럼 와인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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