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는 그 장면 #1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아직도 누군가가 내게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를 물을 때면, '한 작품을 꼽을 수는 없죠' 라면서 '최고의 가족 영화'로 매번 꼽는 작품이 바로 발레리 파리스, 조나단 데이톤 감독의 2006년 작 '미스 리틀 선샤인'이다. 단순히 루저 혹은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이야기로 규정짓기엔 좀 더 복잡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기본적으로 가족 영화라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토니 콜레트, 그렉 키니어, 앨런 아킨, 스티브 카렐,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슬린이 만들어내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앙상블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이며, 노란 색의 차에 한 명씩 뛰어들어 타는 장면은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코너(?)에 선택된 장면은 이 유명한 장면이 아니라 바로 아래의 장면이다.



ⓒ 2006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우여곡절 끝에 (우여곡절이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다!) 일종의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참여하게 된 올리브 (아비게일 브레슬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할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충격적인 안무를 무대 위에서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보수적인 대회에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올리브의 무대는 일부 관객이 자리를 뜨는 등 곧 관계자에게 제제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 이 대회 자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가족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올리브를 응원하는 한편, 올리브의 무대가 끝까지 계속 될 수 있도록 이를 막는 이들을 몸으로 막아낸다.

어서 무대 아래로 올리브를 대리고 내려오라는 관계자의 말에, 알아듣게 처리할 것처럼 보이던 아빠 (그렉 키니어)는 갑자기 올리브처럼 음악에 맞춰 어설픈 춤을 추기 시작하고 이내, 모든 가족이 무대 위에 올라와 올리브와 함께 격한 춤사위를 펼치게 된다. 

지금까지도 이 장면만 생각하면 그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본래 희극의 정점에 있는 장면은 어지간한 비극보다 슬프기 마련인데, 이 장면 역시 유쾌한 동시에 몹시도 눈물나는 장면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족이었던 적이 없던 이들이,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올리브를 위한 무대 위의 춤으로 진정한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으며, 남들이 뭐라던 그들끼리는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눈물 짓게 했던 것 같다. 다들 자신 만의 가치관에 갇혀 살던 이들이 가족이라는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버린 동시에, 그럼으로서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도 누가 뭐라던 남들에게 큰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본인들만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위의 장면은 약간의 해가 있긴 했지만 이 가족이 너무나도 행복해 하는 모습에 눈물이 절로 났다. 

내게 있어 아직까지도 최고의 가족영화이자 눈물나는 춤사위는 바로 이 장면이다. 더군다나 행복에 겨운 눈물이니 이건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겠다. 



* 갑작스레 블로그에 시리즈를 하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도했던 몇 번의 시리즈는 금새 사라지거나 지속적으로 연재하지 못하곤 했는데, 어찌되었든 이번에는 해보렵니다. 제목처럼 영화 속 눈물 나는 장면,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가볍게 추억하는 시리즈가 될 것 같네요. 아, 그리고 남들과 좀 다른 포인트에서도 잘 울곤 하는 제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하구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2006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에 있습니다.





콜래트럴 (Collateral, 2004) 
도시의 외로운 늑대 이야기 (Blu-ray Review)


마이클 만의 2004년작 '콜래트럴 (Collateral)'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라는 스타가 출연하지만 그 스타성이 빛나기 보다는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든 탓에, 작품과 배우가 모두 시너지 효과를 내는 동시에, 촬영과 카메라, 조명, 총기 액션의 디테일, 그리고 L.A라는 도시의 특수성 잘 드러난 질감이 눈으로 느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만의 작품은 대부분 영상의 질감이 깊게 느껴지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일반 필름의 비중보다 고화질 디지털 촬영 비중이 큰 경우에는 오히려 극장 관람보다 블루레이로 즐길 때 그 질감이 더 살아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글은 최근 출시된 '콜래트럴' 블루레이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두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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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라는 공간은 외로운 도시와 대비되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곳은 한정된 공간인 동시에, 나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래트럴'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다층적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빈센트 (톰 크루즈)와 맥스 (제이미 폭스)다. 전문 킬러인 빈센트는 하룻 밤 사이에 자신이 해치워야할 리스트를 갖고 있고, 이런 빈센트가 평범한 맥스의 택시에 타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먼저 영화가 이야기를 그리는, 아니 캐릭터를 그리는 서사 방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위와 같이 '택시를 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라고 했을 때는, 이렇듯 본격적 사건이 시작되기 전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나 사건의 시발이 되는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이건 친절함과 불친절함을 떠나서 그래야만 좀 더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겪는 일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래트럴'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그대로 빈센트가 택시를 타기 전, 그러니까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전의 일반적인 전개라고는, 영화의 말미에 다시 등장할 애니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소개와 더불어 이 대화를 통해 맥스의 성격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정도가 고작이다. 영화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그리기에 2시간의 러닝타임이 부족했는지 이렇듯 바로 핵심 사건으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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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빈센트가 맥스의 택시를 타기 전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이 부분에서 마이클 만은 L.A라는 도시의 낮시간의 평화로운 모습,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야경을 갖고 있는 도시의 모습도 비춘다. 이것을 단순히 '이랬던 도시가 밤과 새벽에는 더 차갑게 변한다'라는 설명을 하기 위한 대비로만 말하기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역시 외로움과 황량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감성은 택시 문을 닫으며 완전히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 만의 세계를 갖게 되는 맥스의 모습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택시의 문이 닫히는 순간 맥스는 완전히 자신 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 맥스에게 택시 안은 L.A라는 지리적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나 다름 없다. 맥스는 이 곳에서 자신 만의 꿈을 키워가며 더 나은 삶을 꿈꾼다. 택시 기사 일을 오래 해왔음에도 항상 '임시직'임을 강조하는 맥스의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택시는 맥스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긴 하지만, 맥스가 꿈꾸는 세상에 바로 지금의 택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꿈이 모두 휴양지나 섬과 같은 도시 밖에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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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는 택시 안에 있지만, 맥스의 꿈은 택시 밖에 있다)

도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해보자면, 개인적으로 '콜래트럴'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L.A라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본래 뉴욕 맨하튼으로 설정되어 있던 시나리오를 마이클 만이 감독하게 되면서 L.A로 수정이 되었는데, 물론 이는 마이클 만이 L.A의 곳곳을 잘 알고 있는 탓도 크다. 실제로 L.A라는 도시에 있는 특별한 건물, 장소 등은 감독이 단순한 로케이션 이상의 디테일을 구현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엇보다 한인타운, 멕시코계 등 다문화가 공존하는 특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이런 특성은 영화의 줄거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으로 등장할 때 더 큰 의미를 주기도 한다. 마이클 만은 L.A(도시)의 모습을 마치 주인공 그린 듯 묘사한다. 헬기 촬영을 통해 밤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동선을 묘사하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가 차창 밖으로 등장할 때마다 포커스를 차장 밖 배경에 맞추고 인물에서는 포커스 아웃을 하는 방식을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런 내용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마이클 만이 잡아내는 도시의 야경은 그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실제로 '콜래트럴'을 극장에서보고 나와 지금까지도 가장 깊게 남은 인상은 다름아닌 L.A의 야경이었다. 그 거친 그레인 질감과 더불어 유영하듯 미끄러져 나가는 택시와 불빛과 어둠이 모두 선명한 밤의 풍경은, '콜래트럴'의 가장 매혹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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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 풍경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다시 캐릭터로 돌아와 빈센트와 맥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분명 빈센트와 맥스 두 명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빈센트에게 조금 더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맥스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자면, 맥스는 보통 사람을 대변한다고 보면 되겠다. 크게 문제 일으키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나만의 꿈이 있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지만 무언가 꼭 말해야 할 때에는 반대로 잘 나서지 못하고 그냥 속으로 혼자 새기고마는 스타일이다. 

그의 반대로 빈센트는 정반대는 아니지만 여러가지로 반대할 만한 혹은 보완할 만한 성격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빈센트는 프로페셔널하며 자신만의 가치관이 매우 확고한 동시에 자신에게 매우 철저한 사람이다. 결국 '콜래트럴'이 재미있는 건 이 두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이야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는 이는 맥스다. 맥스는 연쇄 살인이라는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에 공범에 가까운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 중간중간 빈센트와의 대화와 행동들에서 무언가 결핍되고 억눌려 있던 부분이 해소됨을 느낀다. 이 둘의 대화는 결국 자신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맥스는 빈센트를 대신하여 살인을 청부한 갱단 두목(하비에르 바르뎀)을 만나게 되었을 때 비로서 억눌렸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빈센트라는 허울을 방패삼아 자신을 표출한다. 그 밖에도 재즈바에 들러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눌 때를 보면, 너무나 이 대화에 천진난만할 정도로 빠져있는 맥스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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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는 빈센트를 만나 잠재되어 있던 자신을 깨우게 된다. 맥스가 겪은 이 하룻밤이 단순히 지옥같은 경험이 될지, 무언가 의미있는 사건이 될지는 더 두고볼 일이나 분명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 예상한다)

사실 빈센트와 맥스가 겪는 이 하룻밤의 이야기를 맥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간중간 비현실적인 수준의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방금 눈앞에서 살인을 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택시 안에서 빈센트와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진솔하기까지 하다. 빈센트에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격없이 나누는 상황은, 빈센트가 킬러이기 때문에 공포감으로 인한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 억눌려 있던 자신을 표출하는 능동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저런 무서운 킬러가 뒷좌석에 앉아있는데 그와 진솔한 이야기를 저렇게 편하게 나눌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콜래트럴'은 그럼에도 이런 묘사가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두에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음에도 말이다. 맥스는 확실히 빈센트를 만나 변해간다. 그것도 이 짧은 시간 동안. 점점 잃어가는 빈센트와는 달리 맥스는 오히려 상황이 진행될 수록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희열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맥스는 빈센트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적이자 친구인, 아니 형제인 대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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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은 유난히 택시 안과 밖, 도시와 인물 간의 거리를 깊게 묘사하고 있다. 보케로 흐릿한 도시의 모습과 더불어 칸막이 유리창에 가려 흐려진 빈센트의 반쪽 얼굴은, 이 도시에서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외로운 한 캐릭터를 더 부각시킨다)

빈센트와의 만남으로 인한 맥스의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었다면 빈센트의 경우는 그 반대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정말 기계와도 같았던 킬러 빈센트는 맥스와의 대화가 깊어질 수록 후회와 더불어 많은 것을 잃어간다. 확실히 잃어간다는 쪽보다는 후회가 늘어난다는 쪽이 더 맞겠다. 자신이 룰에 철저하고 감정따위는 사치로 느끼는 빈센트는 (마이클 만은 빈센트 캐릭터를 이야기하며, '마음의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맥스와의 대화를 통해 역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빈센트가 맥스에게 하는 말들을 잘들어보면 곧 자신에게 하는 혹은 예전의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질책하는 경우에는,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질책과 동시에 항상 완벽해야만 하는 (그렇게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회환의 감정도 상당한 경우가 많은데, 빈센트에게서도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맥스와의 대화가 깊어지면 질 수록 자신이 고수해왔던 규칙을 깨는 일이 잦아지고, 계획되지 않았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빈센트는 맥스를 죽이지 않는다. 결국 빈센트는 자신을 비춰볼 맥스라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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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시퀀스는 '콜래트럴'의 장면들 가운데서도 가장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캐릭터의 심리 묘사가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빈센트가 맥스와 함께 맥스의 어머니를 병문안 가는 장면은 여러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마치 시트콤처럼 유머가 녹아있는 장면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그 이상의 감정선들이 교차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굳이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맥스의 어머니의 병문안을 빼먹지 말고 가자고 한다. 꽃도 사가야 한다며 맥스를 독촉하는데,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틋함이 발휘되었다기 보다는 (나중에 나오지만 빈센트에게는 어머니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계속 자신이 규칙이 깨어져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은 방문이었으나 자신에게 더 친절한 어머니의 반응을 보자 빈센트는 화색하며 이 분위기를 더욱 즐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에서 맥스가 미묘한 질투와 탄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마도 맥스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어머니 곁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홀로 남아 곁을 지켰는데, 처음보는 빈센트에게 자신에 비해 극친절한 모습을 보고는 묘한 질투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빈센트와 맥스의 관계는 마치 한 어머니 아래의 형제에 가깝다. 사실 이런 감정을 포착하기 전에는 맥스가 갑자기 빈센트의 가방을 들고 뛰쳐나가는 것이 단순히 빈센트가 느슨해진 틈을 타 기회를 포착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는 역시 빈센트와 어머니의 만남을 통해 느끼게 된 무력감이 역시 빈센트를 통해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잠재적인 불만에 힘입어 폭발하게 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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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맥스의 택시에 처음 타게 되었을 때 L.A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하철에서 죽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단순히 L.A라는 도시의 이면 혹은 진면목에 대한 냉철한 시선 정도로 볼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이 이야기가 비단 도시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홀로 외로운 자신의 대한 이야기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빈센트는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맥스에게 똑같은 말을 건넨다. 이 수미쌍관 사이에는 이를 뒷받침 할만한 황폐한 정서가 가득하다. 빈센트가 살인을 벌이는 이 하룻밤, 깊은 밤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살인사건은 생각보다 크게 번지지 않는다. FBI와 경찰이 가담하여 사상이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끝까지 이 둘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이 둘의 이야기로 한정한다. 아니 그것보다는 결국 L.A라는 도시는 이 둘의 이야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심하게도 빈센트가 떠나고 맥스가 만나게 된 L.A의 아침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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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콜래트럴'하면 생각나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그래서 글의 제목을 '도시의 외로운 늑대 이야기'로 정했다(하지만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늑대가 아니라 코요테다). 실제로 이런 상황을 도심에서 겪은 적이 있다는 마이클 만의 경험이 묻어난 장면이기도 한데, 이런 단순 에피소드로 생각하기에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가 않다. 한창 가치관의 대립, 캐릭터의 대립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던 중 맥스는 갑자기 택시를 멈춘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는 거짓말처럼 코요테 한 마리가 이들을 한번 스윽 쳐다보고는 이내 지나쳐간다. 이 순간에는 택시만 멈춰선 것이 아니다. 빈센트와 맥스 역시 마치 시간이 멈춘듯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맥스의 표정은 조금 의아하다 싶은 정도였지만 빈센트의 표정은 달랐다. 빈센트는 마치 유령을 만난냥 혹은 코요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냥,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동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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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도심 속 코요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마이클 만은 영화적 상황이 아닌 본인이 겪었던 이 상황을 두고 마치 이 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코요테가, 이제 겨우 수십년 정도 이 곳에서 살아온 인간들에게, 마치 이 곳이 본래 자신들의 사는 곳이었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느낌은 영화적 상황에서 빈센트라는 캐릭터와 겹쳐 의미깊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빈센트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코요테에게서 자신을 본다. 정신의 장애를 겪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그리고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이 도시라는 곳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존재... 이 장면이 더 흥미로운 건 코요테의 출현에 대해 그 이후에 둘다 아무런 말한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잠시 다른 차원의 포탈이 열린듯, 아니면 무언가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를 영접한듯, 이후 이들에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실제 영화에서는 다른 컷으로 이동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맥스가 택시를 다시 출발시키는 장면을 통해 이후 '정적'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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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이클 만...

서두에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마이클 만은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중요시한다기보단 놓치지 않는 이 더 맞겠다) 감독 답게 극중에는 노출되지 않는 캐릭터의 배경과 성격 형성을 위해 촬영전 배우들과 많은 연구를 거듭했었다. 그냥 단순히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가족환경이라고 가정해보자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마치 캐릭터의 히스토리를 시나리오로 작업하듯 가정사와 개인사에 대한 부분을 모두 완벽하게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렇다고 삭제 장면으로 촬영되지도 않는) 영화의 앞 상황에 대한 묘사들도 배우들과 논의하여 모두 언지를 주기도 했다. 

한 예로 빈센트의 경우 맥스의 택시를 타기 전, 이미 공항에서 도심으로 오며 다른 택시를 이용했었는데, 이 택시 기사는 빈센트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빈센트는 맥스의 택시를 타고서, 7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맥스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내기걸 듯 짜증을 풀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맥스는 빈센트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신뢰가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룰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맥스라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이 밤의 중요한 계획을 맡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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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캐릭터를 위해 트레이닝 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톰 크루즈의 경우 빈센트 처럼 프로페셔널한 킬러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극중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총격씬의 무한 반복 연습은 물론이요, 실제 전문가들이 받는 트레이닝 과정을 수행하며 직간접적으로 빈센트를 연기할 때 동작에서 자연스레 묻어날 수 있도록 치밀한 준비를 거쳤다. 제이미 폭스 역시 오랜 세월 택시 운전을 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레이싱에 가까운 운전기술을 익히는 등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실제로 총기 액션의 경우 톰 크루즈는 거의 대역없이 모든 동작을 정말 빠르게 소화해냈으며 (스텝들이 하나 같이 그의 손놀림이 정말 빠르다고 칭찬하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제이미 폭스 역시 대규모 총격전 뒤 충격을 받고 클럽을 떠나는 장면에서 직접 부딪히며 빠져나가는 장면을 연기(운전)하기도 했다. 또한 톰 크루즈가 극중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이 가능한 빈센트를 연기하기 위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UPS 배달원으로 분장해 사람들로 붐비는 L.A마켓에서 아무도 그가 톰 크루즈인줄 못 알아보도록 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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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의 격발음 만큼이나 총알이 발사될 때의 리얼한 섬광 표현은 마이클 만 영화의 또 다른 체크 포인트다)

마이클 만 영화를 논하면서 총기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일반 관객은 거의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혹은 굳이 알지 못해도 전혀 상관없는 부분마저도, 총기와 관련된 부분에는 상당한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특히 극중 빈센트는 프로페셔널 킬러이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총기에 대한 것도 꼼꼼히 체크하고 있으며, 한 때 관객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던 지하철에서 빈센트와 맥스의 난사 장면의 경우도, 바로 이런 총기에 대한 디테일이 숨어 있었음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이 대결에서 빈센트는 자신의 본래 총이 아닌 건물 경비의 총을 사용하고 있었고, 맥스는 사고 뒤 택시 주변에서 발견한 빈센트의 총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빈센트의 총은 지하철 문을 관통할 수 있는 전문가용 총기였으나, 건물 경비원의 총을 사용했다는 것을 뒤늦게 탄창을 교체하려고 하는 순간 알게 된 빈센트가 일종의 짜증섞인 자책과 함께 스스로 무너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마이클 만은 극중 등장하는 FBI 전술 요원들이나 클럽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무장 경비들 역시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들을 출연시켜 리얼리티를 강조했으며, L.A의 지역의 특성을 살린 (실제 갱들간의 경계가 되는 우범지역 등) 로케이션 설정으로, 극장에서 볼 때는 미처 알 수 없었으나 후에 리얼리티와 디테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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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야경을 배경으로한 장면인데 고화질의 HD 카메라를 사용한 탓에 자세히 보면, 저멀리 밤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도 표현이 될 정도로 디테일한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본래 장기인 총기만큼이나 마이클 만이 '콜래트럴'에서 신경 쓴 부분은 다름아닌 카메라와 촬영부분이었다. 마이클 만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디지털 방식의 고화질 HD 카메라를 통해 촬영을 하였는데, 특히 일반 필름보다 빛에 더 잘 반응하는 디지털의 특성 때문에 낮은 광량에도 어두운 거리의 디테일을 실감나고 아름답게 살릴 수 있었다. '콜래트럴'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가 바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들로 인해 갈색 톤을 담은 도시의 야경을 들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은 이런 디지털 촬영 방법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마이클 만의 이런 HD카메라 사용은 최근작 '퍼블릭 에너미'에서 아주 극대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이 작품을 보면 마치 HD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디지털 촬영방식으로 촬영된 영상은 필름 라이크한 느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게 된다), 이런 경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콜래트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 사용된 HD카메라는 '소니 HDW-F900'과 '톰슨 바이퍼캠 (Thomson VIPER)'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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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의 '콜래트럴'은 좋은 색감과 질감, 그리고 간결한 표면적 이야기 뒤에 숨은 디테일이 많은 그 다운 작품이었다. '히트'는 확실히 걸작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콜래트럴' 이후 마이클 만이 더 좋아진 경우다. 그리고 마이클 만이 추구하려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확실히 블루레이의 고화질로 더 선명하게 표현된다. 어서 그의 이전 작품들 '히트'와 '알리' 등도 블루레이로 정식 출시되길 바란다.

1. 본래는 기존 블루레이 리뷰들 처럼 화질/음질/부가영상 등 전체적인 면까지 정리해볼 예정이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 것도 있고, 촛점이 작품에 완전 집중된 느낌이 있어 그냥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

2. 참고로 의도된 그레인 현상이 깊은 화질은 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더군요. 오히려 그레인을 제외하면 디지털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화질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도 많았거든요.

3. 코멘터리 수록이 무엇보다 마음에 듭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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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Fantastic Mr. Fox, Blu-ray)
웨스 앤더슨만의 가족 우화

웨스 앤더슨은 항상 그랬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스토리텔링은 가족의 이야기로 표현될 때 가장 인상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2001년 작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은 가장 웨스 앤더슨다운 캐릭터들과 스타일이 극대화된 작품이었으며, 2004년 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역시 그 만의 따듯한 시선과 개성 있는 캐릭터가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2009년 내놓은 작품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의 원작자인 로알드 달이 1970년 발표한 동명 어린이 동화를 영화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로알드 달의 원작 동화 속 이야기는 일반적인 동화와는 조금 다르게 아웃사이더의 정서가 담겨있는 동시에 웨스 앤더슨이 좋아할 만한 장면적, 이야기적 요소가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유명 배우들에게서 오는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정도로 ‘판타스틱 Mr. 폭스’는 완벽한 웨스 앤더슨의 작품이다. ‘로얄 테넌바움’에 이어 또 한 번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져온 그는, 여우 캐릭터를 좀 더 의인화하여 각 가족 구성원들이 - 그리고 이 가족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 하나의 사건을 겪으며 변해가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간결하지만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웨스 앤더슨의 유머에는 항상 이면이 존재한다. 모든 아웃사이더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폭스 가족의 이야기는 허영과 우스꽝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페이소스와 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고단함이 서려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런 이면의 감성은 실제 배우들보다 애니메이션 혹은 이 작품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될 때 더욱 효과가 극대화되곤 한다





‘판타스틱 Mr.폭스’가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의 일부 장면을 스톱모션으로 만든 경험이 있던 웨스 앤더슨은 CG를 완전히 배제하는 대신, 자신 만의 개성과 더불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로 이를 택했다 (만약 이 작품이 부드럽고 깔끔한 CG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고 생각해보라. 분명 그 감흥은 절반으로 반감되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방식은 동작하나하나를 인형의 움직임에 따라 모두 나누어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손이 가게 마련인데, 웨스 앤더슨의 경우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웨스 앤더슨은 패션에도 상당한 관심과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런 그가 일종의 ‘인형놀이’를 하는 것이 되다 보니 인형의 질감을 직물 하나하나 콕 집어 선택해 줄 정도로, 그리고 인형이 입고 나오는 의상 역시 실제 옷을 제단 하듯 소재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디렉팅하다 보니, 스탭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 작업은 더욱 고되질 수 밖에는 없었다. 이렇게 준비된 세트와 인형들을 가지고 그는 실사영화를 촬영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촬영에 임했다. ‘판타스틱 Mr.폭스’는 한 편으론 스톱모션임을 일부러 부각시킨 인위적인 작품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의인화 된 캐릭터와 실사 영화처럼 촬영된 영상 때문에 매우 자연스러운 극영화이기도 한 독특한 작품이다.






위의 이유를 그대로 반영하듯, 이 작품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극중 캐릭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은 단순히 캐릭터가 눈물을 흘려서가 아니라 분명히 ‘인형’이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더욱 슬펐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방울을 볼 때 감정이 동요하는 것도 물론 있지만, 이 작품처럼 눈물이 눈가를 흘러 눈 주변 털이 촉촉히 젖어 드는 장면 역시 그 못지 않은 감정의 동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목소리 연기를 맡은 조지 클루니와 메릴 스트립이 실사 영화에서 이 장면을 연기했다 하더라도, 아마 지금처럼 슬프지는 못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앞서 패션에 관한 일가견과 마찬가지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사 영화 못지 않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 소품과 세트를 눈여겨보는 것도 이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웨스 앤더슨의 특성을 잘 알기에 소품 하나도 그냥 흘려 볼 수가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세트 속에서도 훌륭히 구현되고 있다는 놀라운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여하튼 여러모로 단순하면서도 몹시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Blu-ray Menu







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VC 코덱의 1080P 풀HD의 화질은 레퍼런스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주 얘기하는 바와 같이, ‘판타스틱 Mr.폭스’는 하드웨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측면과 영상 자체가 갖고 있는 특수성 - 이 경우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 이 결합하여 최고의 화질을 만들어낸 경우다. 웨스 앤더슨과 영화의 많은 스탭들이 공을 들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블루레이의 화질에서 그 빛을 발한다.


(원본 사이즈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아마도 DVD의 SD급 화질이었다면 전부 살아나지 못했을 털의 거친 질감과 인형들이 입고 있는 옷 재질의 질감이 블루레이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디테일한 소품들과 그 소품들에 새겨진 텍스트들까지 모조리 확인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며, 조명 역시 실사 영화보다 더 세심하게 고려한 탓에 어두운 장면은 물론, 빛이 반사되는 소품들과 빛이 반사되지 않는 인형 사이의 밸런스도 훌륭하게 표현된다. 이전 ‘아바타’ 블루레이를 리뷰하면서 ‘블루레이를 위해 태어난 작품일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으로 영상과 화질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판타스틱 Mr.폭스’처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역시 블루레이에 매우 적합한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만큼 블루레이로서의 감상이 작품을 즐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은 대사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에 목소리 연기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센터스피커를 통한 대사 전달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마치 조지 클루니가 내 옆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로 - 특히 그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 - 선명한 음질을 수록하였다.






나름 액션 장면에서의 효과음 전달도 수준급이며, 무엇보다 비치 보이스, 롤링 스톤스 등 센스 있는 선곡들로 이뤄진 사운드 트랙들도 장면마다 박진감 넘치게 전달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판타스틱 폭스]의 세계’는 원작자인 로알드 달의 미망인의 인터뷰를 통해 원작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화에 대한 소감으로 시작된다. 웨스 앤더슨은 원작이 갖고 있는 가치를 회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미망인과 웨스 앤더슨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원작과 원작자에 대해 얼마나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는지 절로 알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문가들의 손길이 묻어난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작품 자체를 상당히 다각화 할 수 있었고, 사과주 저장소 장면 같은 경우 병마다 반사되는 빛을 하나하나 정확히 계산하여 촬영했을 정도로 우리가 작품에서 보는 것 이상의 노력과 디테일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타스틱한 배우들’에서는 이 작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먼저 주연을 맡은 조지 클루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마치 미스터 폭스가 조지 클루니로 느껴질 정도로 - 그가 단순히 목소리 연기를 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가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유머러스하고 허세도 좀 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 완벽한 싱크로율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실제 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실사 영화 촬영하듯 연기하며 녹음한 방식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녹음은 녹음 부스 외에 이곳 저곳에서 이뤄졌으며, 조지 클루니는 극중 폭스처럼 땅을 직접 파기도 했다. 이런 장면을 보니 이렇듯 배우들이 실제로 연기한 버전으로 영화화 되었더라도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조지 클루니 외에 그 자체만으로도 스텝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던 메릴 스트립에 대한 존경의 분위기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 - 인기 스포츠 ‘왝뱃’’에서는 극중에선 너무 빠르게 지나간 터라 정확한 규칙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왝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장비 소개와 규칙 소개 등을 담고 있다.




[총평] ‘판타스틱 Mr.폭스’는 단순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서 개성 있는 작품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의 작품이라서 더 빛나는 작품이다.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아마 스톱모션 기법으로 더 재기발랄해진 그 만의 영화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도구로 레퍼런스급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한 블루레이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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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로커 : 블루레이 오픈케이스
The Hurt Locker : Blu-ray open case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총 6개 부문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캐서린 비글로의 '허트로커 (The Hurt Locker)' 블루레이가 국내에도 정식 발매되었다. 아카데미를 휩쓸긴 했지만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아바타'에 비해 흥행면에서는 훨씬 못미친 작품이기도 했고, 오락적인 측면보다는 전쟁이라는 실체에 대해 무거운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블루레이 출시를 바라긴 했었으나 기다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2차 영상물 판권에 대한 소식과 심이 소식등이 공개되면서 점차 기대를 갖게 하였고, 드디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판본으로 발매되었다.





스틸북 케이스 형식으로 발매되었는데 일단은 포스터의 특유의 임팩트를 잘 살린 전면의 이미지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리고 라이센스 버전에서 종종 불편사항으로 거론되곤 했던 등급 표시 부분도 케이스가 아니라 겉 띠지 부분에 표기함으로서, 온전하고 깔끔한 스틸북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띠지를 벗긴 위의 사진을 보면 더 강렬한 케이스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틸북만의 질감과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모래 질감과 황량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이번 '허트로커 : 블루레이'는 블루레이와 DVD가 함께 수록된 콤보형식으로 발매되었는데, 아직 블루레이 시장이 DVD시장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국내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가격에 (정가 : 31,900원) BD와 DVD를 모두 수록했다는 점은 만족할 만한 점이다. 이번 블루레이를 출시한 아인스 M&M의 경우 최근 블루레이 유저들에게 가장 칭찬 받은 제작사라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 예전 업계에 있을 때 그 전신인 스펙트럼DVD와 태원엔터테인먼트 시절부터 타이틀의 퀄리티(소장가치)와 가격부분을 특히 신경 써왔던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이런 그들의 정성이 시장에서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현재 국내 BD/DVD 시장에서 이런 퀄리티의 타이틀을 내놓는 것은 철저히 제작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사실 사치에 가깝다. 그걸 알기에 이런 퀄리티의 타이틀 출시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내의 많은 블루레이 유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더 좋은 퀄리티의 타이틀을 소장하기 위해, 한글 자막도 없는 해외의 여러 판본을 구매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점에서 라이센스 판본이 이 정도 퀄리티로 출시되었다는 것은 유저로서, 소비자로서 반기지 않을 수 없겠다. 

아, 이제는 케이스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서, 차세대 화질과 음질로 다시 한번 극장에서 느꼈던 영화의 감흥을 즐겨봐야 겠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섀넌 소사이먼 (Shannyn Sossamon)
한동안 잊고 있던 그녀를 들추다


한창 '기사 윌리엄 (A Knight's Tale, 2001)'이 극장에서 제법 인기를 끌던 시절, 히스 레저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아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던 작품. 개인적으로는 당시 히스 레저보다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 섀넌 소사이먼이 더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언제부턴가 '샤닌 소사몬'으로 굳어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어찌된 영문인지 '섀넌 소사이먼'이란 발음으로 더욱 익숙해져 지금까지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기사 윌리엄' 이후 관심을 갖게 된 그녀 때문에 아직 배우로서 영글기 전의 조쉬 하트넷과 출연한 '40 데이즈 40 나이트 (40 Days And 40 Nights, 2002)' 라는 말도 안되는 영화를 구해서 본 기억도 있을 정도였다. 이 작품은 아주 단순한 섹시 코미디인데 (왜 있잖나, 어떤 여주인공이 이런 장르에 출연한다고 해서 보았는데 정작 여주인공은 아슬아슬 피해가고 조연급들이 배드씬을 펼치는 그것) 작품으로서는 굳이 평할 것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오로지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하다는 사실 때문에 보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후 그녀를 한 번더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은 다시 한번 히스 레저와 함께한 영화 '씬 (The Order. 2003)' 이었다. 처음 이 작품의 음산한 분위기가 흘러나왔을 때에는, 조니 뎁 주연의 '프롬 헬' 정도의 느낌은 나지 않을까 했었는데, 이 작품 역시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채 사라져갔고, 그녀 역시 조금씩 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 이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발 킬머가 주연을 맡았던 '키스 키스 뱅뱅 (Kiss Kiss, Bang Bang, 2005)'과 주드 로, 잭 블랙 등이 출연한 '로맨틱 홀리데이 (The Holiday, 2006)' 등에 출연을 하기는 했으나, 확실히 '기사 윌리엄', '씬'과 같은 분량은 아니었고, 점점 메인 스트림에서 멀어져 가는 듯 했다. 

이렇게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듯 했으나, 그녀의 이름은 항상 뇌리 속에 스치듯 남아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과연, 요즘 그녀는 무얼하고 사나?'를 찾아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쭈욱 해왔었는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녀의 이름을 인터넷 창에 검색해 보게 되었다.





한 동안 적어도 국내 개봉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혹시 은퇴를 한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왜냐하면 DJ출신이기도 했고 우연한 기회에 배우가 된 케이스라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imdb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그녀는 지금까지도 제법 왕성한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TV시리즈에도 여럿 출연을 했는데 2007년에는 커트니 콕스 주연의 'Dirt'에서 'Kira Klay'역으로 총 5개의 에피소드에 출연하였으며, 2007년과 2008년에는 'Moonlight'라는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그 가운데 일본 공포영화 '착신아리'를 리메이크한 'One Missed Call, 2008'에도 출연을 하기도 했는데, 따지고보면 왜 그녀의 이미지가 공포영화에 적합한 것으로 분류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후 슈퍼맨으로 유명한 브랜든 루스와 함께한 'Life Is Hot in Cracktown, 2009'에도 출연했었고, 현재는 TV시리즈 'How to Make It in America'에 캐스팅되어 2011년에도 모습을 비출 예정이며, 영화 'American Empire'와 'Man Without a Head'에도 캐스팅 된 상태다. 




이렇게 살펴보니 그녀는 조금 주류에서 멀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쨋든 계속 배우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한 때 팬이었던 (지금도 팬이라 부르기엔 너무 초라한 정보력이라;;) 입장에서, 다시 한번 좋은 작품에서 멋진 캐릭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길 바래본다. 아니, 앞으로 그녀가 출연한 작품이 극장에 걸리면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꼭 관람해야 겠다. 


Shannyn Sossamon / 3 October 1978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필립 모리스 (I Love You Phillip Morris, 2009)
유쾌 절절한 러브 스토리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 '아이 러브 필립 모리스 (개봉제목 '필립 모리스)'에 대해 처음 접했던 소식은 이 영화가 게이 영화라는 점이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게이 영화'란 단순히 주인공이 게이인 것 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가 펼치는 로맨스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했던 영화였는데, 개봉소식이 들려오고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쯤 '엇, 이 영화가 내가 아는 그 필립 모리스가 맞나'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포스터와 헤드 카피들을 보면 전부 코미디 혹은 코믹 탈출극 정도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뭐 그런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관객에게 가장 전달해야할 코드 중 하나인 부분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참 아이러니인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게이라는 점은 그냥 안경을 쓴 정도 밖에는 안되는, 즉 게이 라는 자체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자, 이 영화는 게이 영화에요' 라고 홍보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흥행 측면에서 안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게이' 대신 '코믹'이라는 점을 전면에 부각시킨 면이 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낚였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서론이 길어졌다. 여튼 개인적으로 낚이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영화 '필립 모리스'는 실화라는 점에서 의미와 재미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임팩트는 조금 부족한 그럭저럭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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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작품이다. 가끔 슬프고 진지한 분위기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유쾌한 마무리로 가벼운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사건의 개연성 보다는 인물들에 더 촛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극중 스티븐 러셀 (짐 캐리)이 어떻게 매번 감옥을 탈출하는 지에 대해 '프리즌 브레이크'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장면, 스쳐가는 한 장면 정도로 밖에는 묘사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첫 눈에 반한 필립 모리스 (이완 맥그리거)와의 러브 스토리 부분은 좀 더 비중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둘의 러브 스토리는 우리가 너무 많이 본 전형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준다(그런데 전형적이라고 뭐라하기 그런 것이 '진짜' 실화가 아니던가). 한 때 둘 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뜨거운 두 연인과, 그들이 겪게 되는 권태기 그리고 다시 눈물의 화해. 스티븐 러셀의 기이한 사건들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이 남녀가 아닌 남남일 뿐 너무 전형적인 줄거리를 보여준다. 사랑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일이 우선이 되 사랑에 금이 가고, 갈등하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하지만 '필립 모리스'는 어느 한 편을 선택하지 않은 채 두 가지 이야기를 비슷한 비중으로 이어간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일 지도 모른다.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험난한 러브 스토리로도, 배꼽빠지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로도, 천재적인 주인공이 펼치는 탈출과 사기극으로도, 영화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편으로 그냥 확 성격을 갖는 작품을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한데, '필립 모리스'는 그런 면에서 조금 심심한 작품이긴 했다. 그런데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는 구름 동동 뜬 파란 하늘이나, 그 편안한 음악을 보았을 때 영화의 의도자체가 그리 무겁고 복잡한 것을 바라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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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객들이 단순한 코미디 정도로 알고 극장을 찾았기 때문에 두 주연배우의 키스 씬이 나올 때마다 소리 내어 '안돼~' 및 탄성을 질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단 오히려 두 주연 배우의 연기 자체에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특히 금발의 미소년에 가까운,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미지로 등장하는 이완 맥그리거의 경우 속으로 '야, 정말 게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이완 맥그리거에게 반할 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 앵글이나 묘사에 있어서 일반적인 남녀 로맨스를 다룬 영화가 여자 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즉, 이 영화를 볼 때 이완 맥그리거의 캐릭터를 보통의 여성 캐릭터로 생각하면, 필립 모리스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한 로맨스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현존하는 배우들 중 최고의 연기력을 갖고 있는 배우 중 하나인 짐 캐리 역시, 자신이 그 동안 맡은 캐릭터들과 종종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시원시원한 기럭지가 유난히 돋보였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자체의 재미는 조금 심심한 편일지 몰라도 두 배우의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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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0'과 '러브 액츄얼리' 등에서 그 미모(?)를 뽐낸 로드리고 산토로가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그 역시 이 영화와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 뒤늦게 찾아보니 실화의 주인공인 진짜 '필립 모리스'가 깜짝 출연하는 장면이 있었네요. 

3. 따지고보면 참 절절한 러브 스토리인 것 같기도 해요. 주객이 가끔 전도되기도 했지만, 결국 스티븐에게 이 모든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사건들은 다 사랑하는 필립 모리스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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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저서 '김태훈의 랜덤 워크'를 읽던 중 한 문장이 하나의 글감을 제공했다. 그는 1960년대를 두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이 신보를 발표하고, 고다르와 트뤼포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시대'라
고 이야기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많았던 터라 공감이 많이 되는 구절이었다. 나도 가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 당시 개봉관에서 이 주윤발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비틀즈라는 밴드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TV라이브로 즐겼다면 어땠을까, '스타워즈 - 에피소드 5'의 그 유명한 대사를 개봉 당시 실제로 들었더라면 과연 그 충격이 어땠을까 등 비디오나 후일담으로 전해들은 전설의 이야기들을 리얼타임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보곤 했었다.

매번 이런 생각은 이렇듯 부러움에서 그치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일인지, 그간 내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이 시대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후세에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되돌아본다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을 모두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으며, 앞서 부러워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역시 전야제라는 행사를 통해 팬들이 모여 그 유명한 오프닝롤이 등장할 때 극장에서 환호를 보내며 즐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 뿐인가 '메멘토'부터 시작해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그리고 '다크나이트'로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작과 성장을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며, 코엔 형제라는 세기의 천재 감독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소년에서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소룡의 영화를 비록 극장에서 즐기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성룡이라는 형님을 모실 수 있었으며,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같은 우리 감독들의 세계적인 작품도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별을 갖을 수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픽사라는 영민한 스튜디오, 에반게리온이라는 걸작을 무려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이걸 하나하나 말하자면 절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현재에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예전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지금은 지긋한 나이의 배우들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마련인데, 아마 이 다음 세대는 분명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테마 음악을 극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매번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라는 부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분명 다음 세대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시대다.




음악은 또 어떤가. 개인적으로 존 레논과 동시대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우 자주 하곤 하지만, 아마도 이 다음 세대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를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면, 그의 신보를 몇년마다 들어볼 수 있었다면, 내한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부러움, 아니 마치 꿈과도 같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내겐 그리고 우리에겐 마이클 잭슨이라는 세기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아마도 이건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축복일런지 모른다. 또한 U2, 라디오헤드, 뮤즈,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A.T.M 등 수 많은 밴드들은 물론 bjork, beck, sigur ros, 프린스 등 개성있고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뮤지션들의 신보를 흔치 않게 음반샾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부러워할 만한 자산들이 많은 세대였다. 한 앨범이 100만장 넘게 팔리던 상황을 목격한 마지막 세대였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기 위해 동네 음반샾에 미리 가서 예약표를 발권받거나 발매일 음반샾 앞에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본 마지막 세대였다. 또한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레전드 아티스트의 결성부터 해체까지를 모두 확인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발하지 않는 댄스 음악을 만들었던 듀스를 TV음악 프로에서 만나볼 수 있었음은 물론, 윤종신이라는 사람을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던 '가수'로서 갖을 수 있었다.  




그냥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누린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시대와 현재 누리고 있는 시대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라는 것. 내가 과거의 시간들을 부러워 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시절을 더 치열하게 즐겨야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나잇 앤 데이 (Knight & Day, 2010)
두 배우와 함께 그냥 즐겨라!


2005년작 '앙코르 (Walk The Line, 2005)', 2007년 '3:10 투 유마 (3:10 To Yuma, 2007)'등을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하고 톰 크루즈와 캐머런 디아즈가 출연한 영화 '나잇 앤 데이'를 월드컵 16강의 열기가 막 가라 앉은 어느 오후 감상하였다. 제임스 맨골드의 이름을 맨처음 거론하긴 했었지만 어찌되었든 '나잇 앤 데이'를 보게 된 이유는 톰 크루즈 때문이었다. 얼핏봐도 그리 무거워 보이지는 않는 이 작품을 기대하게 된 것은 톰 크루즈와 캐머런 디아즈가 펼치는 부담스럽지 않은 액션과 로맨스 때문이었는데, 확실히 영화는 무거운 메시지도 없고, 이야기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으나 큰 기대가 없다면 나름 재미있게 2시간 가깝게 즐길 수 있는 괜찮은 팝콘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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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 앤 데이'의 이야기는 흔히 보는 첩보물에 로맨스를 곁들인, 아니 로맨스에 첩보물을 곁들인 매우 익숙한 장면들과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로이 밀러'는 제이슨 본 못지 않은 최고 수준의 요원이며(즉 육탄전은 물론 비행기 조종, 총, 칼, 주변 무기 등 못다루는 것이 없고, 어떤 최악에 상황에서도 '절대' 빠져나온다), 여기에 제임스 본드와도 같은 로맨틱한 무드와 외모를 갖고 있다. 그리고 캐머런 디아즈가 연기한 '준 헤이븐스' 역시 이런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로서, 하지 말라면 꼭 하고, 주인공 남자를 매번 궁지에 모는 한편, 주인공과 스릴 넘치는 로맨스마저 즐기는 관계로 발전한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수 많은 (정말 많은) 영화에서 보고 또 본 설정들인데, '나잇 앤 데이'는 이런 진부한 설정을 어쩌면 자신있게 그대로 밀어 붙이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밀어 붙인데에는 톰 크루즈와 캐머런 디아즈라는 두 배우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약간 말이 안되는 건, 이 두 역할에 본래 이 두 배우대신, 크리스 터커, 제라드 버틀러 등과 에바 그린 등이 거론되었었다는 점이다. 다른 배우들이 연기했었더라면 작품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훨씬 덜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캐릭터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러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서 가져온 것도 있지만, 그 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톰 크루즈' 그 자신에게서 가져왔다고 볼 수 있겠다. '나잇 앤 데이'를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톰 크루즈'가 그대로 연상될 정도로, 매너 있고 만능의 그가 등장하는데 특히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가 키스를 하는 장면은, '자, 이 영화는 그저 오락영화야. 자, 즐기라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상당히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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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캐릭터를 두 매력적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더불어 이런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멋진 풍광의 로케이션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액션 영화라기에는 부족하지만 로맨스 영화치고는 상당 수준인 액션 씬 역시, 이런 식으로 기대한다면 만족할 만하다. '나잇 앤 데이'라는 영화 제목은 나름 스릴러 적인 측면을 반영한 제목이지만, 실제 영화는 '크루즈 앤 디아즈'로 해도 좋을 만큼, 가볍고 부담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었다. 단, 제임스 맨골드의 전작들의 깊이를 고려했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1. 고탄 프로젝트를 비롯해 수록된 음악들이 전체적으로 좋더군요. 

2. 피터 사스가드는 별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폴 다노 역시 그가 굳이 출연하지 않아도 될 만한 역할이었으며, 비올라 데이비스 역시 별로 이야기할 만한 비중이나 연기는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두 주연 배우의 비중이 너무 큰 탓이지요.

3. 확실히 그 나이에도(62년생) 아직 쌩쌩한 톰 크루즈 형님에 비해 아직은 젊은(?) 캐머런 디아즈(72년생)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더욱 느껴지더군요. 이건 물론 톰 크루즈가 워낙 동안인 탓이지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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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달소’보다 더 나을 지도 모를, 호소다 마모루의 ‘썸머 워즈’

호소다 마모루의 2006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시간 여행이라는 SF적인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이끌어낸 이 애니메이션 - 물론 이 작품은 1965년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 을 통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잇는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 차세대 감독으로까지 단번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이하 시달소 -의 기억이 아련해질 때쯤 그는, 2009년 신작 '썸머 워즈'를 통해 다시 한번 팬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포스터나 제목에서부터 벌써 스케일을 예상하게 만들었던 이 작품은 '시달소'로 익숙해진 팬들은 물론, '시달소'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들도 팬들로 만든 한편, 반대로 '시달소'로 잔뜩 기대하게 만든 팬들 가운데 적지 않게 실망을 주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아마도 호불호가 나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인 'OZ'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달소'의 '타임리프'보다도 '썸머 워즈' 속 'OZ'는 더 깊게 영화에 관여하고 있다.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사이버 세상이 오프라인의 진짜 세상의 대부분도 컨트롤 하게 된다는 이 OZ의 세계관은, 아주 치밀하다기보다는 그냥 설정 상의 것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듯 하다 - 만약 '썸머 워즈'가 이 OZ세계관을 깊게 파고든 작품이 되었다면 아마 나카무라 류타로의 1998년 작 '레인 (Serial Experiments Lain)'처럼 심오해졌을 것이다 - . 즉, 이 작품에서 OZ라는 설정은 영화의 기본 메시지가 되는 대가족과 그 안에서의 관계 설정 등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엇, 이런 도구치고는 매우 흥미로운데'라며 오히려 이 작품에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물론 도구 이상의 기능을 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결국 호소다 마모루가 이 전지구적 위기 극복 과정이라는 ‘드래곤 볼’과도 같은 스케일을 - 극중 ‘모두들 내게 힘을 모아줘’라는 식의 대사가 등장해 더더욱 드래곤 볼 생각이 났다 -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네트워크에 관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인터넷 세상 속의 네트워크가 마비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우리가 중요치 않게 혹은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의 네트워크가 도움이 된다는 것, 그 가운데서도 가족이라는 네트워크가 결국 세상을 구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OZ라는 거창한 세계관을 불러왔고 결국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작 ‘시달소’도 그랬지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이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화에 있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굉장히 디테일한 호소다 마모루의 캐릭터들은 다른 작가의 캐릭터에 비해 굉장히 ‘절실함’ 혹은 ‘절박함’이 느껴진다. ‘에반게리온 : 파’의 신지에게 공감하게 되는 그 순간과 살짝 비슷한데, 기존의 작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서 거칠어지는 절박한 순간의 묘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두 주먹을 꼭 움켜쥐며 함께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호소다 마모루의 캐릭터들에겐 항상 ‘절박함’이 엿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의 공감대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지점이라면 ‘게임’에 대해 얼마나 너그러운가 혹은 익숙한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썸머 워즈’는 OZ라는 사이버 세상과 맞물려 게임 - 혹은 게임기 - 이라는 도구가 극에 적극적으로 도입된다.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부터 시작해 고스톱 같은 게임이 세상을 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이라거나 국내에서도 이런 게임 관련하여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런 설정이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쉽게 받아들여질 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절로 코웃음 치게 만드는 유치한 구성으로 받아들여질 테니 말이다. 유치하다고 받아들인 다면 위와 같은 절박함도 느껴지지 않을 터. 결국 ‘썸머 워즈’는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호소다 마모루의 가족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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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Quality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DVD로서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사실 블루레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평균적이기는 하지만 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들기도 한다. 현재 국내는 블루레이 출시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임으로 일단은 DVD화질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좀 더 만족스러운 편이다. ‘썸머 워즈’는 의외로 액션 및 다양한 효과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은 편인데, 사운드 측면에서 별 기대하지 않고 보았다가는 중간중간 ‘어랏?’하는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워낙 등장인물들이 많은 터라 대사 전달이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사운드 체크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인물들 만큼 넓은 공간에 넓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아 대화 장면에서도 멀티 채널의 효용을 확인할 수 있다.

DVD Special Features

2장의 디스크로 발매된 ‘썸머 워즈’DVD의 첫 번째 장에는 남녀 주인공을 맡은 카미키 류노스케와 사쿠라바 나나미, 그리고 사쿠마 타카시 역을 맡은 요코카와 타카히로 그리고 연출을 맡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이들 외에 음성해설을 진행하는 진행자가 따로 있다는 점인데, 일본 영화 타이틀의 경우 이런 경우가 간혹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성해설은 ‘썸머 워즈 - 방과후 토크’라는 부제목으로 진행되는데, 영상을 보며 하나하나 코멘트를 하는 것은 물론 더빙 현장에서 있었던 뒷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아무래도 혼자서 녹음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마치 라디오 생방송 녹음처럼 -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되겠다 - 여럿이서 함께 부스 안에 들어가 녹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라, 이에 따른 에피소드들을 만나볼 수 있다





2번째 디스크에는 일단 극장 예고편과 TV스팟 모음집을 만나볼 수 있는데, 거의 모든 버전의 예고편을 - 스팟, 특보 포함 -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씩 가볍게 즐겨볼 필요가 있다.




‘캐스트 인터뷰’에서는 2009년 4월 15일부터 20일까지 실시했던 후시 녹음 중 진행 된 인터뷰 영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두 주연 배우를 비롯해 사카에 역의 후지 스미코, 카즈마 역의 타니무라 미츠키 그리고 와비스케 역의 사이토 아유무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각각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소감과 더불어 애니메이션 더빙 작업에 대한 느낌들과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한 짧은 감상을 들려준다.






’제작보고 무대인사 in 도쿄 신주쿠 발트9’은 2009년 7월7일 신주쿠 발트9에서 있었던 제작보고 무대인사 영상을 담고 있는데, 칠석이자 처음 선보이는 이 자리를 맞아 화려하게 진행된 이 무대인사를 통해 역시 작품에 임하게 된 소감과 에피소드 등의 대화가 오고 간다. 이 무대 인사에는 두 주연 배우와 감독 외에 일본의 베테랑 여배우이자 사카에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후지 스미코도 참석하고 있어, 어린 배우들과 함께 하게 된 소감과 처음 애니메이션 더빙 작업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 인터뷰 in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는 2009년 8월 5일~15일에 스위스에서 개최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 참석하여 수상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인터뷰의 전반부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해외 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소감과 로카르노 영화제에 대한 소감과 현장의 분위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후반부에는 전작 ‘시달소’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하게 들려준다.




[총평] 사실 ‘썸머 워즈’라는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약간 모호한 제목과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깊은 인상 때문에, 오히려 조금 관심에서 멀어질 뻔 했던 작품이 바로 ‘썸머 워즈’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떤 면에서는,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시달소’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아련함을 마음 깊이 전해줄 작품 또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시달소’가 한 소녀의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썸머 워즈’는 한 가족에 대한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이 타이틀을 조심스럽게 추천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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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의 진짜 같은 모습

크리스마스 이브. 유명 패션지 '보그 (Vouge)'의 특별 화보 촬영을 위해 20대부터 60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여섯 명이 이례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이렇게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함께 한 이 자리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정사'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는데, 리얼 다큐멘터리인듯 하지만 사실 극영화인 영화 '여배우들'이 오늘 소개할 작품이다.





영화는 '남자, 여자, 그리고 여배우들이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는 실제 배우들의 짤막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각기 다른 여섯 명의 여배우가 하나의 프레임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패션지의 특별 화보 촬영을 위해서였다. 이 프로페셔널 한 이벤트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묘사되는 배우들의 진짜 같은 모습과 함께 관객들에게 한껏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촬영을 위해 패션지 화보 촬영이라는 컨셉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패션지와 영화의 기획된 콜라보레이션이라할 수 있는데, 이 같이 패션업계라는 트랜디한 - 그리고 스타를 동경하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업계라는 점에서 더욱 - 집단의 이야기 배경은, 자신을 연기하는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더욱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점이 이 영화 '여배우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아니요, 잘 짜여진 이야기를 연기하는 100% 극영화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연기하는' 영화라는 점 말이다.




사실 이런 비슷한 컨셉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은 너무 '진짜인 것처럼' 연기하려는 극영화 성격이 강해 이런 미묘한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이 미묘한 지점을 잘 간파하고 있다. 사실 제목은 '여배우들'이지만 여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깊은 고뇌와 속 시원한 이야기들 보다는,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기인한 토크쇼 식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여섯 명의 여배우들의 대한 기본 정보 - 혹은 가십거리 - 에 관심이 많으면 많을 수록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선후배간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이렇게 무거운 주제보다는 그 이면에 더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대중의 호기심에 기인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윤여정 보다 윤여정을 더 잘 연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김옥빈 보다 김옥빈을 더 잘 연기할 여배우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대로 연기할 때 더 큰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들'에 출연한 여섯 명의 배우에 관해 박수를 보내야 할 점은, 연기력이 아니라 자신 만이 알고 있는 진짜 자신과 대중들이 알고 있는 여배우로서의 자신을 모두 자신의 캐릭터 안에 녹여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극중 최지우는 한류스타 '지우히메'로서 다른 다섯 명의 배우와 자신을 차별하려 하고 특히 조금 애매한 관계에 놓여있는 고현정과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고현정 역시 이런 최지우를 못마땅해 하며 이를 참지 못해 최지우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분명 대중들이 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낸 갈등관계라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장면이 진짜 같은 이 영화에서 펼쳐졌을 때 대중들은 묘한 재미와 긴장감을 얻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더 진짜 같이 연기하는 구성 덕에 진짜 이 둘의 사이가 불편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계속 '진짜'를 강조하던 영화는 갑자기 창밖에 내리는 눈,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몰래 기타 연주와 함께 휴대폰으로 러브 송을 들려주는 한 남자 스텝의 이야기와 함께, 조금은 급작스럽게 이 영화가 극영화임을, 더 나아가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준다. 사실 이 눈 내리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는 영화의 제목을 '여배우들'보다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쯤으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이후 전개과정을 보니 이재용 감독은 이 시퀀스를 일종의 경계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시퀀스 이후 영화는 와인과 함께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릎팍 도사’를 한 차원 넘어서는 여배우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짜를 바탕으로 진짜와 허구가 뒤섞여 있는 이 오랜 대화 시퀀스는 이 작품을 평가하는데 좋은 지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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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영상은 평균적인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극영화이긴 하지만 리얼 다큐멘터리 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기에 화질 자체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반대로 화질 자체가 크게 중요한 타이틀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여배우 여섯 명의 모습을 블루레이 화질로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DVD화질로도 충분한 편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멀티 채널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인터뷰와 대화가 99% 이상인 작품인지라 사운드 퀄리티가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99%를 차지하는 대사 전달 부분이 아쉬운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DVD Special Features

‘여배우들’의 진면목은 바로 음성해설에서 드러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6명의 여배우가 모두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은 이번 타이틀의 가장 큰 장점이다. 6명의 여배우는 물론 연출을 맡은 이재용 감독까지 총 7명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영화 속 ‘여배우들’이 어찌되었든 ‘연기’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진짜 ‘여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작품 이전부터 친했던 혹은 이 작품을 통해서 친해지게 된 이 배우들이, 짧았던 촬영 기간을 추억하고 영화 속 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탈함을 넘어 거침없이 나누는 분위기는 영화 속 장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와인을 한 잔씩 하며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음성해설은 참여하고 있는 여배우들도 듣는 DVD구입자들도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다. 이 음성해설 트랙만으로도 DVD타이틀의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일단 이채로운 것은 작품을 멀티 앵글로 새롭게 즐겨볼 수 있는 ‘그녀들의 대화’를 들 수 있겠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다 보니 일반 극 영화에 비해서는 앵글이 한정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가영상을 통해서 본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른 각도의 그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배우, 이야기’에서는 여섯 명 여배우들의 진솔한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그녀들 각각이 생각하는 ‘여배우’라는 것에 대한 의미, 배우가 된 계기 등에 대한 솔직한 답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작과정’은 제목 그대로 촬영장의 뒷얘기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작품 자체가 뒷이야기 그 자체에 가깝다 보니 보편과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촬영현장 스케치’ 영상과 ‘포토 갤러리’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처음에는 단순히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여배우들이 모였다는 것 정도의 이슈로 그칠 것만 같았지만,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괜찮은 작품이 되었다. 작품 자체도 괜찮았지만 진짜 여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음성해설 트랙으로 인해 좀 더 완벽해진 느낌을 갖게 된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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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우리를 보시라


현재 지구상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남조선’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음은 물론이요, 북한 역시 ‘조선’이 아니라 ‘북조선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기호 상으로만 남아있는 통일 조선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재일동포사회에 존재하는 ‘조선학교’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끔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살짝 엿볼 수 있었지만,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개봉한 김명준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는 존재 여부만, 혹은 존재 자체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김명준 감독은 궁극적으로 이 아이들과 제일 조선인 사회를 담은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이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의 소외되고 소수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로서는 단순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말 그대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역사나 현재의 상황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몰랐으며, 더 나아가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간 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극히 단편 적인 이야기가 전부 였으며, 너무 이데올로기 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하고 해석한 경우가 더 많았었다. 그래서 이 영화 <우리 학교>는 더욱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이데올로기 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데올로기 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오히려 그동안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했었던 이 문제를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결과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에 대해 정치적인 얘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말했듯이 ‘조선’국적을 갖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관한 자세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얻은 정보 말고는 더 자세한 것은 없지만, 남북이 분단 되기 전 타의로, 혹은 자의로 인해 일본으로 가게 된 이들은, 이후 남북이 분단이 되는 바람에 무국적자가 되어버렸고, 일본 사회에서 누구에게도 환대 받지 못하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북조선인도 아닌 ‘조선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일본 사회 내에서 자신들 스스로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마음으로 힘들게 싸워왔으며, 지금도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 나아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이들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영화 속에도 등장하지만 학교에 전화를 걸어 살해 협박 혹은 폭탄 테러 등을 경고 하는 등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그 동안 가장 많이 잘 못 알고 있었던 점 한 가지에 대해 정확히 바로 알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동안 이들을 우리 민족으로 생각한다기 보다는 ‘북한’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요즘 같아서는 오히려 북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도 이들에게 더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순수한 ‘조선’ 사람일 뿐이다. 이들이 민족 교육을 받고 인공기를 우리나라 국기라고 말하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북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하여, 너무도 적대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오히려 반대였다. 조선학교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만 가는 것도 그들이 북쪽을 원해서가 아니라, 남쪽은 가고 싶어도 우리 정부에서 이들에게 ‘왜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느냐며’ 국적 변경을 강요하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들에 대해 지금까지 너무도 무심했지만, 북한에서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지원과 도움을 지금까지도 주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은 남쪽임에도 조국은 북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굳이 물질적인 지원 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을 정말 살갑게 맞이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을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도 일본인에게도 북한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화이지만, 특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말해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명준 감독이 약 3년간 홋카이도의 조선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사실적인 생활상을 직접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영화이다. 3년이라는 촬영 시간은 이 영화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처음에는 남쪽에서 온 이 낯선 감독에게 수줍음이 많은 어린 학생들이 별로 친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명준 감독’, ‘명준 오빠’등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감독 자신 역시 처음에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해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100%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본어를 공부하여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 다음부터는 이들과 더욱 가까워져,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영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감독의 존재가 이들에게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감독의 말처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내내 감독과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분단이라는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이를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때는 북으로 수학여행을 오르는 만경봉호에 함께 탑승할 수가 없었던 그 때 한 번 뿐이었다(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감독에게 뱃머리에서 ‘명준 감독~’ 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독 자신만큼이나 보는 사람들도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가 보통의 다큐멘터리와 조금 다른 점을 꼽으라면 감독의 존재가 완전히 영화에서 벗어나 관찰자 입장에서만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영화를 보다보면 아이들이 감독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먹던 것이 있으면 감독에게도 나누어주고, 카메라를 보면 ‘안녕하십니까 감독’하면서 정답게 인사를 건내고,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거부감 없이 말을 걸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 영화를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사실 객관적으로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이 영화는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학교라는 배경만 없다면, 그냥 참교육이 실천되는 어느 작은 학교의 학생들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1학년부터 입학하여, 운동회도 하고, 수학여행도 가고, 각종 경연대회도 하고, 졸업식으로 마무리하는, 요즘의 학교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정겨움과 감동이 있는 진실한 ‘학교’의 이야기 말이다. 실제로 조선학교의 교육 방식은 우리가 흔히 유럽식, 선진식이라고 얘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를 선정하고 모든 일을 스스로 토의를 거쳐 결정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선배와 후배와의 관계,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가, 누구라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아, 저 학교에 나도 꼭 한 번 다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으로 따뜻한 학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학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기에 이 같이 진심으로 다니고 싶은 학교에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졸업식 장면이 더욱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3년간을 촬영해 약 2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것을 감상한 것이 고작이지만, 이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저런 학교를 떠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졸업식 단상 위에서 모두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과 함께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박대우 선생님이 하신 말. ‘힘들고 지칠 땐 언제든지 우리학교를 찾아오십시오. 여기는 동무들의 영원한 모교입니다’라는 말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이었는지 두 말 하면 잔소리 일 것이다.


 
사실 O.S.T가 발매 되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의 DVD가 출시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독립 영화라는 특성상 상업논리가 지배하는 DVD 시장에서 이 영화가 반드시 나와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는데, 훌륭한 퀄리티로 출시된 DVD가 먼저 무척이나 반갑다. DVD는 2장으로 구성되어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1.85:1의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의 영상과 돌비디지털 2.0채널의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는데, 화질과 음질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일 것 같다. 음성해설을 듣다보면 감독이 좀 더 좋은 HD카메라로 촬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랬으면 물론 좀 더 좋았겠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본편의 음성해설은 김명준 감독과 팬까페 운영자인 김선민 씨가 참여하고 있는데,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들을 수 있는 소중한 트랙으로 생각된다. 얘를 들어 본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3 학생들이 아니라, 선수가 5~6명뿐이었던 여자 농구부원 들로 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나, 고3의 대 깃발에는 고 3 학생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다 적혀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에 감독의 이름도 적혀있음을 알고 감독이 너무나도 감동을 받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의 후일담 등을 전해들을 수 있다. 함께 음성해설에 참여한 김선민씨의 경우 단순한 팬까페 운영자로서가 아니라 조선학교를 2회나 방문했던 이로서 좀 더 많은 정보와 더불어 감독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감독이 답하는 방식으로 음성해설을 이끌고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알찬 서플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영상들은 서플 용으로 제작되었다기 보다는, 다큐멘터리를 2시간 분량으로 편집하면서 영화적인 구성을 위해 제외되어야 했던 영상들로, 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우리학교 아이들의 예술경연 무대에서는 독무와 독주, 중무와 취주악부의 합주 등으로 이들이 연습하는 과정과 공연 장면을 담고 있다. ‘못 다 전한 이야기’에서는 그야말로 영화에는 미처 다 수록하지 못한 영상들로서 재미있고 다양한 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어린 유년부 학생들의 소년단 야영 영상이나 꼬마들의 축구 시합 장면들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매우 재미있었던 영상이었다. 이 외에도 ‘함께하는 우리학교’에서는 5만 관객 돌파 이벤트 파티 장면, 관객과의 대화 장면, 그리고 각종 시사회에서 이를 본 관객들의 인터뷰, 우리학교를 만든 이들의 인터뷰 등이 담겨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 ‘우리를 보시라’와 같이, 또한 북한을 떠나오며 학생들이 외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라는 말과 같이,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을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실천할 때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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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 2010)
뻔해도 눈물나는 성룡의 쿵푸 영화


1984년작 '베스트 키드 (The Karate Kid)'를 리메이크한, 해럴드 즈워트 감독의 2010년작 '베스트 키드'는 어찌되었든 성룡이 출연하기 때문에 보게 된 작품이었다. 일단 원제는 '가라데 키드'인데 1984년에도 2010년에도 '베스트 키드'라는 이름으로 개봉하게 된 것은 사정이 있는데, 일단 1984년의 경우는 국내에서 '가라데'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2010년 선보인 해럴드 즈워트의 리메이크작은 사실 '가라데 키드'라고 기 보단 '쿵푸 키드'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편이다. 리메이크판 '베스트 키드'에서는 배경도 중국이고, 가라데가 아닌 쿵푸가 영화의 큰 흐름을 쥐고 있다. 사실 제목에 관련해서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영화는 극 중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가라데가 아니라 쿵푸야'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주인공 제이든 스미스의 영화이기 이전에 스승인 성룡의 쿵푸 영화로 보았기 때문에 더 인상 깊을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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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키드'의 줄거리는 뻔하기 그지 없고 클리셰의 계속 되는 반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반해 러닝타임은 일반 액션영화들 보다도 훨씬 긴 140분이기까지 하다. 즉 이 작품에게서 무언가 신선한 것을 기대한다면, 그리고 가라데 키드를 연상시키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을 갖은 영화답게 화끈한 액션 장면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앞서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어찌되었든 '쿵푸 영화'라는 점을 강조한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쿵푸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성인 훈련 장면. 그저 얼른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빨리 화려한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주인공에게 스승은 항상 무술은 가르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동작들(혹은 쓸데없어 보이는 동작들)만 반복시킨다. 하지만 물론 이런 것들은 나중에 주인공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상승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베스트 키드' 역시 마찬가지다. '드레 (제이든 스미스)'의 쿵푸 스승인 '한 (성룡)'은 그저 자켓을 입고 벗고 거는 것만 내내 훈련시킨다 (이 영화가 살짝 다른 점이 있다면 '드레'는 다른 쿵푸 영화의 주인공들에 비해 거의 꽤를 부리지 않고, '한'의 훈련 방법은 무술의 기본이 되는 동시에, 아이의 잘못된 순간을 단번에 사로잡는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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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키드'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한 '드레'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은 불필요하다고 까지 생각되는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가 비중있게 그려져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쿵푸 영화의 구조로 보았을 때는 없어도 무방할 정도다 (드레를 괴롭히는 아이들 무리와 엮이게 된 것이 여자 아이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둘 간의 갈등은 여자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갈등관계다). 드레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이것은 성장영화다. 아버지의 부재, 미국인(흑인)으로서 중국이라는 낯설은 공간에서의 적응, 그리고 그로 인한 괴롭힘을 이겨나가는 과정 등 아이가 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국 소년의 성장 이야기는 자신이 성장하는 동시에 가족(엄마)과 주변 사람(여자 친구의 가족들), 그리고 그의 스승마저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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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이들, 특히 성룡보다는 윌 스미스에 더욱 익숙한 세대들에게 '베스트 키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드레'의 영화로 읽혀질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베스트 키드'를 성룡 때문에 보게 된 사람들, 즉 성룡의 오래된 쿵푸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관객들이라면 이 작품을 '드레'의 영화인 동시에, 아니 오히려 '한'의 영화로 보게 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일단 이 영화 속 '한'을 연기한 성룡은 거의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이렇게 정색하고 정극 연기를 펼치는 성룡을 본 것이 몇번이나 있었나 꼽아보게 될 정도로, '한'이라는 캐릭터는 유쾌하거나 장난기를 찾아볼 수 있기는 커녕, 어둡고 깊은 슬픔을 앉고 있는 캐릭터다. 일단 이것부터. 웃지 않는 성룡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룡 팬들에게 묘한 감정을 안겨다 준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쿵푸영화. 매번 투정부리며 스승에게 꾸지럼을 당해가며 쿵푸를 배우던 그 청년이, 어느 덧 자식만한 아이에게 쿵푸를 가르치는 이야기는, 성룡 팬들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아, 우리의 성룡 형님에게도 어느 덧 세월이 더 깊게 다가왔구나'라는, 새삼스럽지만 아직도 매번 겪게 되는 감흥과 더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웃지 않는 성룡'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짠해지는 감정이 들고 만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울만한 이렇다할 장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3번씩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사실 나조차도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뭐랄까 영화가 약간 울릴 려고 했던 장면이 아닌 장면에서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뻔하디 뻔한 이 영화에서 왜 눈물을 흘렸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머리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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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인 윌 스미스와 함께 출연한 '행복을 찾아서'와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SF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 출연했었던 제이든 스미스는, 본격적인 주연을 맡은 이 작품에서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행복을 찾아서'에서부터 그냥 '윌 스미스 아들'이 아니라 제법 연기 잘 하는 아역 연기자로도 손색이 없는 그였는데, 이제는 정말 아빠의 후광 없이 다른 작품에 캐스팅 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론 좀 감상 방향이 달랐지만, '드레'의 영화로 보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유는 성장한 제이든 스미스 때문일 것이다.


1. '드레'의 엄마로 타자리 P.헨슨이 출연합니다. 몰라서 인지 더욱 반갑더군요. '벤자민 버튼'의 엄마 역할에 이어 또 한 번의 엄마 역할이로군요.

2. 홍콩 영화 많이 보신 분들께는 너무도 익숙한 배우 '우영광' 역시 출연합니다. 이 역시도 몰랐던 캐스팅이라 무척이나 반갑더군요. 성룡과는 최근작 '대병소장'에서도 함께 연기했었죠.

3. 저도 더 늦기 전에 자켓 입고 벗는 연습하려구요 ㅎ

4. 본격적인 성룡 영화가 아니라서 엔딩 크래딧에 NG컷이 나오진 않지만,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스틸컷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누가 윌 스미스 제작 아니랄까봐 이 가족이 사진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참고로 윌 스미스 뿐 아니라 아내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 역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엄마,아빠가 제작하고 아들이 주연하고)

4.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가요. 왜 울었을까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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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Brødre Brothers, 2004)


1. 덴마크 출신 수잔 비에르의 '브라더스'를 월드컵 그리스전 승리의 기운이 만연한 새벽 시간, KBS 명화극장을 통해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최근 개봉했던,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질렌할, 나탈리 포트만 주연을 맡고 짐 셰리단이 연출한 동명의 리메이크작 '브라더스' 때문이었는데, 예전 짐 셰리던의 리메이크 작에 대한 평에 원작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아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우연히도 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2. 수잔 비에르의 '브라더스'를 처음 본 느낌은 마치 도그마 선언을 한 감독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보를 확인해보니 도그마 선언과 수잔 비에르는 연관이 있더라. 즉 수려한 영상미(더 영화적인)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원작 '브라더스'는 좀 더 영화 본연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3. 사실 원작과 리메이크가 있는 경우 무엇은 먼저 보았느냐에 따라 각각의 감상평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데, '브라더스' 역시 거꾸로 리메이크 작은 먼저 보고 원작을 나중에 보다보니 원작을 먼저 보았을 때의 평가와는 조금 다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다른 리메이크작의 예로 들어보자면, 아마 내가 '무간도'보다 '디파티드'를 나중에 보았다면 '디파티드'에 대한 평가가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다(물론 '디파티드'의 평가는 갈수록 나아져가는 편이긴 하다). '브라더스'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리메이크를 먼저 보다 보니 원작에서 받았어야 할 많은 감정들을 새롭게 느껴보지 못해 더 정확한 평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짐 셰리단의 리메이크작 '브라더스')

4. 수잔 비에르의 원작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짐 셰리단의 리메이크작이 거의 원작과 98% 이상 동일하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것이었다. 대략의 줄거리는 물론이요, 아주 작은 설정과 대사 하나하나까지도 거의 원작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배우들 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리메이크 작 만의 새로운 점은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즉, 리메이크 작에서 열연한 세 배우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지만 원작을 보고 난 이후였다면 너무 그대로인 내용과 묘사에 실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5. 세 명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극 중 형 역할을 맡은 두 배우의 경우 워낙에 감정 연기가 중요하고 폭의 깊이가 깊은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누가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편이다. 물론 여기에는 토비 맥과이어라는 배우에 대한 기존 이미지가 작용한 탓 (기존의 토비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연기)도 크다. 형이 아내 역할의 경우 코니 닐슨과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하고 있는데, 이 캐릭터는 유일하게 원작의 배우도 제법 익숙한 배우였고(참고로 코니 닐슨은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우의 상대역으로 출연했었다), 무엇보다 엄마이자 아내라는 캐릭터로 보았을 때 나탈리 포트만 보다는 코니 닐슨이 더 적역이 아니었나 싶다. 제이크 질렌할의 경우 물론 동생 역할도 어울리지만 형 역할로 나와도 되었을 만큼 정확히 '브라더스'의 동생 역할에 딱 어울렸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리메이크는 그 만의 인상이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원작이 더 나을 수 밖에는 없을 듯.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유령작가 (The Ghost Writer, 2010)
고전미 넘치는 폴란스키의 스릴러



사실 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들을 다른 감독들에 비해 유달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이번 그의 신작 '유령작가'가 크게 기대되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완 맥그리거도 나오겠다 안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극장을 찾았다.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유명 정치인의 대필작가에 관한(의한) 이야기를 다룬 '유령작가'는 (처음엔 단순히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고스트 라이더'와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쓴 우리말 제목이 아닐까 싶었지만, 보고 나니 '유령'작가라는 제목이 썩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최근 극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그래서 그것이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되버리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의 스릴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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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는 어쩌보면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닐지 모른다. 반전이 주가 되곤 하는 스릴러 장르에서 이야기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니, 이것은 '유령작가'를 단정 짓는 가장 큰 잣대가 될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분명히 커다란 줄거리에서 서서히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등장하고, 그 가운데 약간의 속도감을 주기도 하고, 누구를 정녕 믿어야 할지 관객들로 하여금 한 편을 선택하게도 하지만, 이 모두가 극적이거나 과장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과장이 안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도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커다란 반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반전 자체의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반전 자체를 묘사함에 있어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큰 임팩트를 일부러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단서를 얻게 되고 의심을 갖게 되는 장면들 역시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에 비하면 훨씬 불친절한 동시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불친절 하다는 것은 반전이나 미스테리를 위해 반드시 관객이 인지해야만 할 정보들이 나오는 장면에서조차, 이것을 보여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유령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은 정치적인 메시지였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가 겉으로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너무 단순하다. 반전의 임팩트가 부족하듯 여기까지 이끌어 온 정치적인 음모들은 기존 우리가 봐왔던 정치적인 영화들에 비해 너무 간단하고, 그 뒤에 숨어있는 메시지조차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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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는 온갖 자극적인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의 관객들에게 보내는 폴란스키의 작가주의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폴란스키는 못해서 안했다기 보다는 일부러 갈 수 있는 길을 피해가면서, 최근 자극적인 스릴러에 (자극적인 스릴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무언가 더 나올 것 만 같은,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만 살짝 주면서 결국 그 이상은 보여주지 않는, 좀 '다른' 스릴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며 최근 보았던 임상수의 '하녀'가 문득 떠올랐다. 극중 이완 맥그리거가 대필작가로 활동하게 되는 섬과 아담 랭 (피어스 브로스넌)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요새와 같은 곳의 미장센은, 세련되었지만 매우 고전적이고 1층과 2층, 방과 방, 방안에서 밖의 인물들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구조 등, 은근히 이 공간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인물들의 의상들도 그렇고, 비바람이 새차게 부는 날씨도 그렇고, 영화를 보고 나면 전체적으로 '회색'의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유령 (Ghost)'이라는 것과 회색의 느낌으로 가득한 작품의 분위기는 관객에게 무언가 메시지 그 이상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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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의 영국식 억양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는데, 최근 '언 애듀케이션'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올리비아 윌리엄스의 연기도 매우 인상깊었다. 외모가 꼭 닮아서도 아니었는데, '유령작가'에서 올리비아의 연기는 마치 샬롯 램플링을 보는 듯 했다. 언제나 맡은 역할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톰 윌킨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아멜리아 역의 킴 캐트럴은 얼굴을 보고도 끝까지 과연 내가 아는 그 킴 캐트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라 잘 적응이 안되더라. '섹스 앤 시티'를 열심히/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지나가다 스쳐본 기억과는 다르게 너무 진지한 캐릭터와 연기라 많이 놀랐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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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다크니스 (Edge Of Darkness, 2010)
씁쓸한 복수의 뒷 맛


마틴 켐벨의 신작 '엣지 오브 다크니스'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주연을 맡은 멜 깁슨 때문이었다. 그가 배우로 출연한 작품을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2년작 '싸인 (Signs, 2002)'이었으니 무려 8년만에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는 그였다. 이 작품을 보기 전 얼핏얼핏 지나가며 듣게 된 홍보 문구들로 인해 마치 '테이큰 (Taken, 2008)'과 같은 깔끔 시원한 아빠의 복수극으로만 알았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전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컨스피러시 (Conspiracy Theory, 1997)'를 기본으로 로맨스와 드라마의 요소는 싹 빼고, 어둡고 씁쓸한 아빠의 복수극을 그린 작품이라고 해야 될 것 같았다. 즉, 그 만큼 복수보다는 거대 권력 혹은 정부의 음모의 이야기가 복수의 테마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테이큰'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지루한 복수극일지언정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멜 깁슨이라는 배우와 함께 제법 볼만한 범죄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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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경찰서의 베테랑 경찰 크레이븐 (멜 깁슨)은 오랜만에 딸을 만나 자신의 집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괴한의 총격을 받아 딸이 그만 죽음을 맞고 만다. 처음에는 경찰인 자신을 노린 범죄자들의 짓으로 여겼지만 점점 이 살인사건의 뒤에는 더 큰 음모가 있었음을 알아가게 된다.

어느덧 주름이 깊게 페인 멜 깁슨이 연기하는 경찰이자 아버지인 '크레이븐' 캐릭터는 뻔하지만 멜 깁슨 덕에 공감과 함께 힘을 보태고 싶은 캐릭터이다. 그는 이 살인사건을 조사해 가는 과정에서 어떨 땐 경찰로서, 어떨 땐 아버지로서 조사에 임한다. 이 두가지 측면은 얼핏보면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닌 듯 하지만, 이 미묘한 입장차이를 영화는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크레이븐은 베테랑 경찰 특유의 경험을 통한 직감들로서 사건을 파악하고 더 큰 음모를 파해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한편, 가끔은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크레이븐은 경찰이라는 굉장한 좋은 조건 (사건을 조사하는데에 정보 접근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에 있으면서도 의외로(?) 이런 장점을 별로 활용하지 않는다. 이따금 경찰의 특권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는 영화 속에서 몇번씩 강조하는 것처럼 '경찰의 가족이 당한 사건'이라 특별한 대우를 받길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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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대사가 2번 이상 반복되며 인지시키려 할 때부터 영화의 마지막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만약 '엣지 오브 다크니스'가 '테이큰'과 같이 이것저것 따질 것 없는 복수극이라면 이런 대사를 굳이 반복해가며 관객에게 '자, 이 대사를 좀 잘 들어봐'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경찰 가족이 당했으니 지원을 아끼지 않고 수사할꺼야'라는 말에 크레이븐은 '경찰이라서라니, 일반 시민이 당했어도 그래야 하는 것 아냐?'. 결국 이런 뉘앙스는 니 편 내 편을 골라야만 순간에서 내 편 역시 완전히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과 고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위험에 처했을 땐 나(가족)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씁쓸한 결론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정부에는 미드 작가진들 같은 천부적인 작가진이 별도로 있어서 매번 이렇게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한 적이 있는데 (물론 천부적인 작가진이라고 하기에는 일반인도 헛점을 지적할 만큼 비전문적인 실수가 잦은 편이다), '엣지 오브 다크니스'의 후반부에는 이런 장면이 그대로 등장한다. 이 커다란 음모에 가담한 이들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모두 모여 서로의 안위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그럴 듯해 보이는 방향으로 조작한다. 이 과정은 매우 유아스럽게 그려지는데, 권력을 쥐고 있으면 얼마나 간단하고 유아적인 방법으로도 진실을 쉽게 은폐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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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경찰로서 (혹은 정의로운 사람으로서) 거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자에 관한 이야기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물론 둘 중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해 더 깊고 화끈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았을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엣지 오브 다크니스'가 이 두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도 괜찮게 느껴졌다. 영화는 잊을 만하면 크레이븐이 결국 딸을 잃은 아버지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아니, 첫 장면부터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크레이븐이 은폐된 진실에 점점 가까워질 수록 어린 딸의 환영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은, 멜 깁슨의 인상적인 연기와 더불어 관객으로 하여금 크레이븐에게 쉽게 공감하도록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을 스릴러로 분류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그냥 범죄 드라마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은데,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너무 전개 과정이 축약된 느낌이 강하다. 참고로 이 작품의 동명의 1985년 영국의 BBC의 인기 TV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이 TV시리즈의 연출자 역시 마틴 켐벨이라는 점과 이 작품의 성공을 통해 헐리웃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말로 긴 호흡의 TV시리즈였다면 이 이야기를 좀 더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그려낼 수 있었겠다 싶었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으로 축약한 만큼 스릴러의 깊이는 많이 얕아진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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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엣지 오브 다크니스'는 '테이큰'처럼 복수가 마냥 통쾌하지 만은 않으며, 더 나아가 권력 앞에 한 사람의 정의라는 것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현실의 씁쓸함을 크레이븐이라는 캐릭터가 겪은 일을 통해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씁쓸했다. 


1. 레이 윈스턴이 연기한 '제드버러' 캐릭터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영화의 짧은 분량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였는데, TV시리즈에서는 어떤 깊이로 그려졌을지 궁금해지더군요.

2. 전 이 각본이 참 맘에 들었는데 역시나 엔딩 크래딧에서 윌리엄 모나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그의 대표작으로는 '킹덤 오브 헤븐'과 '디파티드' 등이 있죠.

3. 딸인 '엠마 크레이븐'을 연기한 보자나 노바코빅은 어디서 많이 본 인상이다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주 살짝 원더걸스의 '선예'를 닮은 것 같기도 ㅋ

4. 돌아온 멜 깁슨이 너무 반갑긴 했는데, 한편으론 너무 많이 세월이 흘러버린 것 같아 짠하기도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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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안녕, 중앙시네마


미리 예고된 일이었고 더군다나 마지막 상영회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막상 그 간의 추억을 돌이켜 보려니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중앙시네마는 내게 있어 참 좋은 영화들을 여럿 만나게 해 주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지금처럼 성행하기 이전, 보고 싶은 영화들을 비교적 좋은 분위기 (영화 팬들에게 이 '좋은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요즘들어 자주 느끼곤 한다)에서 관람할 수 있었던 명동성당 아래 작은 극장이었다. 아니 1층에 위치한 1관은 제법 큰 관이었다. 1,2층으로 되어 있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야각이 나오기도 했다.




일단 중앙시네마에서 본 영화들이 여러 편 스쳐지나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 2001)' 였다. 2001년 당시 홀로 극장에서 가서 마지막 회를 감상했었는데,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날 때까지 눈시울을 적셨던게 생생히 기억난다. 사실 영화를 한 해에 100편 넘게 보는 터라 따로 티켓을 확인하거나 기록을 해두지 않는 이상, 제목만으로는 이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어둠 속의 댄서'를 보았던 중앙시네마는 너무도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앙시네마는 스폰지를 통해 일본 영화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역시 폐관된 씨네콰논과 더불어 일본 영화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소중한 곳이기도 했다. 또한 위의 사진에 나와있는 거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2007)'도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2층에 위치한 작은 상영관에서 보았는데 그 아름다운 화면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였다. 아, 이 작은 관을 떠올리니 2008년 보았던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도 떠오른다. 사실 몇몇 장면은 더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겨울 스웨덴의 차갑고 고요한 풍경과 잘 맞아 떨어진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된다.





샐리 호킨스 주연의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는 2층 맨 앞 좌석에서 보았었고, 특별전을 통해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도 일부러 찾아가서 다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런 좋고 작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극장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냐하면 대형 멀티플렉스와는 다른 '공간'의 추억과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중앙시네마는 물론 영화를 볼 때 자주 찾던 곳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명동 주변을 거닐 때, 항상 명동성당 뒤 조용한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와 코너를 꺽어 잠시 들렀던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씨네큐브, 씨네콰논, 필름포럼, 허리우드 극장 등은 분명 영화를 상영하는 의미로서의 극장도 극장이지만, 그냥 공간으로서 '극장' 그 자체로도 의미 깊은 곳이라 운영 주체가 바뀌고 개조되고 그런 것이 아닌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이 현실이 더 눈물 겨울 수 밖에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명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공간이 명동성당과 중앙시네마였기에 앞으로 다가올 후자의 부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다.








그냥 막연한 기억에 중앙시네마에 갈 때마다 혹은 자주 사진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했었는데, 막상 마지막을 남기려 사진을 찾아보니 정면 사진 하나 제대로 남겨둔 것이 없어 더 가슴이 아팠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중앙시네마처럼 많은 추억이 깃든 공간은, 더 많은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할지라도 쉽게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중앙시네마'.


중앙시네마의 마지막 편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짠하다.




안녕, 중앙시네마.

2010.06.01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Prince Of Persia: The Sands Of Time, 2010)
게임과 정치, 만족스러운 재미



마이크 뉴웰의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했던 PC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시작으로 리뷰를 하려고 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이 PC게임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는 이것보다는 오히려 이 PC게임을 원작으로 지난해 XBOX360/PS3를 통해 발매되었던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만 언급해도 될 만큼 원작인 PC게임보다는 최근 발매된 게임과 분위기나 컨셉 면에서 더 유사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의 작품이라 블록버스터다운 재미는 주겠구나 싶은 것이 기대의 전부였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예전 게임과 최근 게임을 모두 해본 입장에서 (추후에 언급하겠지만 다른 게임 하나 더를 해본 이유로) 많은 장면들이 보이는 영화였고, 의외로 정치적이기도하고 스케일이나 재미 측면에서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괜찮은 액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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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PC게임인 '페르시아의 왕자'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어서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다들 이 PC게임을 떠올리게 될텐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이크 뉴웰의 이 영화는 '페르시아의 거지'로 더 유명한 최근작 게임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물론 이 게임의 세계관은 영화 속 세계관과는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영화는 거친 페르시아의 왕자 '다스탄'의 이미지와 로케이션의 이미지 등을 참고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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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거지' 아니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게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쌔신 크리드'인데,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는 PC원작 게임, 그리고 지난해 발매된 리메이크 게임과 모두 비교해봐도 '어쌔신 크리드'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주 배경이 되는 성과 마을의 모습도 '어쌔신 크리드'의 배경이 되는 모습과 매우 닮아있고, 주요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지붕위나 장애물을 딛고 건너 뛰는 설정들은 어쌔신 크리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특히 영화 초반 성스러운 성을 공격하던 중 다스탄이 망루 비슷한 곳에 올라 점프하기 직전 성내를 주욱 돌아보며 카메라 앵글이 주변을 스윽 훑어내리는 장면은 '어쌔신 크리드'에 대한 오마주 장면이라고 해도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마이크 뉴웰이 '어쌔신 크리드가 뭐에요?' 한다면 그건 정말 말이 안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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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어쌔신 크리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유사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나리오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 구조였다. 영화를 수미쌍관으로 구성한 것도 괜찮았고, 블록버스터 답게 스케일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쁘지 않았다(이런 느낌에는 THX관의 사운드가 한몫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주인공인 제이크 질렌할을 비롯해 벤 킹슬리, 알프레드 몰리나 등 수준있는 연기자들의 공도 컸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경우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안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페르시아의 거지'에 가까운 컨셉이라 그런 면도 있지만(ㅋ), 일부러 몸도 키운 것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다스탄과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벤 킹슬리야 선과 악을 모두 오갈 수 있는 헐리웃의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니 더 말할 필요 없겠고, 알프레드 몰리나는 첨엔 못알아볼 정도로 분장이 짙던데, 어쩌면 그 치고는 참 심심한 캐릭터가 아니었나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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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의외로 깔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지 때문이었다. 영화 줄거리의 주된 설정 중 하나는 페르시아가 성스러운 성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야욕을 위한 침공의 이유로 자신들의 적국의 무기를 대고 있다는 의혹을 들고 있고, 결국 이 의혹이 있지도 않은 의혹이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이건 너무 노골적인 미국의 이라크 전에 대한 비유가 아니던가. (스포 있음) 그래서 인지 영화의 마지막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침공 사실을 정중히 왕으로서 사과하는 장면은 현실과 빗대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바마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이렇게 사과했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치적 비유로 생각해볼 수 도 있지만 어쨋든 이건 제리 브룩하이머의 영화다. 이런 비유를 해볼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어쨋든 액션 블록버스터이고 그냥 몸을 맡기고 2시간동안 즐기면 되는 유희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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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작품들은 전부 먹먹해지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는데,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참고로 게임은 후속편이 나올 예정인데, 영화는 어찌될지 모르겠다.


1. 참고로 영화의 뒷 이야기를 다룬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망각의 모래'가 곧 발매될 예정입니다. 전작과 영화를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이 게임 역시 안해볼 수 없겠네요.

2. '캐리비안의 해적' 만큼 강력한 캐릭터는 없음으로 그 만한 인기를 끌긴 어렵겠지만, 게임 원작 작품들이 대부분 실망스러웠던 것에 비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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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밴드 라이브 투어 - The Mobius : 극장관람기
(2009 Seotaiji Band Live Tour - The Mobius)


태지매니아라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연 실황을 또 한 번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이번 '서태지 밴드 라이브 투어 - The Mobius'를 지난 금요일 관람하였다. 그 어떤 해외 뮤지션의 내한 공연 인터넷 예매에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도, 이번에는 제법 위험하게(?) 겨우겨우 예매에 성공! 나쁘지 않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역시 같은 상영관인 메가박스 서태지 M관에서 볼 수 있었던 '서태지 심포니 실황' 이후 태지의 공연을 극장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뫼비우스 실황이 훨씬 좋았다 ㅠ 그도 그럴 것이 심포니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심포니는 공연 자체가 컨셉이 강한 작품이었고 이번 뫼비우스는 그와는 다르게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느낌과 더불어 서태지 밴드의 새로운 투어 브랜드로서 훨씬 더 보여주고 들려줄 것들이 많은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 갔어야 했어. 무리를 해서라도 갔어야 했어'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 만큼 뫼비우스 투어는 (특히 용산에서 갖은 공연은) 다양한 무대 장치와 효과들로 스케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은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자유롭게 열고 닫히는 병풍 스크린(ㅋ)을 통한 영상들과 마치 마이클 잭슨의 'Beat It' 공연을 연상시키듯 리프트를 타고 객석 가까이로 다가가는 무대 연출이나, 이제는 두말하면 입 아픈 'Take 5'의 노란 종이비행기 퍼포먼스까지. 기존 태지 공연의 레퍼토리들은 적절히 살리면서도 대형 무대만의 효과들에도 상당히 신경 쓴 공연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극장에서본 '뫼비우스 투어'가 더 좋았던 건 곡 중간중간에 바로 이어질 곡의 리허설 장면을 짧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서태지를 비롯해 밴드 멤버들의 평소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그야말로 '팬서비스'였다.




곡들에 대한 짧은 평을 해보자면, 지난 번 직접 보았던 'WORMHOLE' 콘서트를 통해 명곡으로 재 발견된 '내 맘이야'를 비롯해, 45RPM과 함께한 새로운 '하여가' 그리고 태지의 연기마저 돋보이는 '제킬박사와 하이드', 오랜만에 함께한 락과 탑의 트윈 기타를 만나볼 수 있었던 '대경성'과 '슬픈 아픔'. 특히 '슬픈 아픔'은 개인적으로도 추억이 깊은 곡이라 더더욱 반가웠다!! (여기서 개인적 추억이란 고등학교 축제 때 이 곡과 '널 지우려해'를 엮어서 불렀던 추억). 그리고 이스터섬으로 떠나는 'Moai'. Moai는 장담하건데 세월이 가면 갈 수록 나중에 가서 명곡으로 더평가(재평가 아님) 될 것이다. 들으면 들을 수록 참 대단한 곡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 10년쯤 뒤에 다시 집중해서 듣고 글을 써보리라.

이번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곡들은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들이었다. '서태지 심포니' 상영은 극장에서 본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뫼비우스 투어'는 진짜 공연장에 가서 보고 난 느낌이 들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후반부를 장식한 아이들 시절의 곡들 때문이었다. 팬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했겠지만 어찌나 찡하게 만드는 선곡들인지.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는 (그저 쓰려고 생각만 했는데 소름이 돋았다 ㅠ) 팬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글썽이지 않았을까 싶다. 뭐랄까 점점 서태지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공연을 공연 자체로 즐기는 것 외에,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뮤지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해져 가는 것 같다. 아이들 시절의 영상과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 자체로도 찡하지만 그 당시의 학생이었던 내가 떠올라 더 찡해진달까. 그렇게 태지와 나는 깊이 연관되어 있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공연장에서 그리고 또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운아고, 서태지의 영원한 팬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2010)
교훈적이기까지한 드림웍스의 성공작


드림웍스는 한동안 픽사의 성공을 부럽게 바라봐야만 했었다. '슈렉'이후 주춤했던 그들에겐 좋은 애니메이션이었던 '쿵푸 팬더'가 있었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자, 이제는 픽사와 동등하게 겨뤄볼 수 있겠다'라고 미뤄보기는 어려웠던 것이, 그 이후 내놓았던 '몬스터 vs 에이리언'의 경우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경우였기 때문이다. 픽사의 가장 강한 점은 역시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드림웍스는 본인들도 스토리텔링으로 바로 경쟁하기 보다는 기술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었다. 그것이 앞선 '몬스터 vs 에이리언'을 3D 포맷으로 제작한 경우였는데, 이 작품은 굳이 스토리텔링의 부족함을 꺼내지 않아도 3D효과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번 드림웍스의 신작은 사실 스튜디오에게 몹시도 중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픽사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걸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한동안 픽사에게 모조리 다 빼았겨 버렸던 명성을 이제야 찾아오게 되는 자랑스런 작품이 될 것인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후자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도 뻔한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데에 성공한 동시에, 3D라는 측면에서는 최근 보았던 영상혁명 '아바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어쩌면 더 나은) 영상으로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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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스토리텔링하면 구구절절을 떠올릴지 모르겠는데, 그것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가 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필요 없는 이야기는 거의 다 쳐낸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만약 이 작품이 실사 영화이고 주인공 '히컵'이 상처 입은 용 '투슬리스'를 타고 날아다니는 환상적인 시퀀스 같은 것은 없는 그리고 더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요하는 작품이었다면, 아마도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을 것이다. 영화를 볼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보고나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는 너무나도 생략된 이야기들이 많다. 버크 섬에 사는 바이킹과 용들과의 대립 관계에 대해서도 아주 짧은 내레이션이 있을 뿐이고, 초반에 히컵이 선망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아스트리드' 같은 경우도 전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무엇보다 투슬리스와 히컵이 친해지게 되는 과정의 경우 '너무 쉽게' 이루어진 느낌을 줄 정도로 간결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드래곤 길들이기'는 치밀한 짜임새를 요구하는 작품도 아니고, 환상적인 비행 장면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략이 전혀 단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히컵과 투슬리스가 친해지는 과정의 간결한 묘사같은 경우는, 의미상으로도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풀어낸 것보다는 '그간 오해했었다' (최근 국내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오해'와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다) 라는 의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적절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리도 간결하고 쉽게 해결해볼 수 있었던 걸, 누구도 그럴려고 해보지 않았던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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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래곤 길들이기'를 통해 인상 깊었던 정서는 바로 '장애'와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투슬리스는 꼬리 날개에 상처를 입고 혼자 날기 어려운 용이었다. 그를 투슬리스를 히컵이 알아보고 직접 꼬리 날개를 만들어주면서 이 둘의 마음은 통하게 된다. 처음에 이 둘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히컵이 조종하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투슬리스' 정도로 그려지지만 갈 수록 이 둘의 관계는 그것 이상으로 발전한다. 투슬리스는 자신이 날기 위해 - 그러니까 필요에 의해 - 히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히컵 역시 단순한 동정으로 투슬리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말 따지고보면 극중 히컵의 시선이나 대사에서는 거의 단 한번도 투슬리스를 동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이것조차 동정어린 시선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히컵 같이 어린 소년에게는 아직 그런 복잡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이건 분명 어른들이 사용하는 '동정'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투슬리스의 장애는 영화의 마지막 다소 충격적인 히컵의 장애로 대구를 이룬다. 아버지에게도 인정 받고 마을을 구하는 동시에 드래곤들과 함께 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뤄낸 히컵은 안타깝게도 다리 한 쪽을 잃고야 만다. 이런 설정이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전체관람가인 이런 애니메이션에서는 굳이 택하지 않았던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같았으면 모든 것을 해결한 히컵에게 영화 속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이상적인 그림이 펼쳐지며, 버크 섬의 바이킹들은 드래곤들과 함께 잘 살았더래요~ 로 마무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영화는 굳이 히컵에게 장애의 요소를 부여했다. 

그리고 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이킹으로 나오는 캐릭터를 보면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극중 인물들들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보는 이들 역시 꼭 애니메이션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불편함을 별로 장애로 느끼지 못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마지막 히컵이 다리 하나를 잃게 되었을 때, 이를 두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주변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이걸 단순히 바이킹 특유의 대범하고 쿨함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런 건 어른들도 물론이지만 아이들에게 특히 교훈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편견을 갖지 않게 하는, 그러니까 투슬리스의 꼬리 날개처럼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지만, 그것 외에 묘사들처럼 장애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혹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많이 다르거나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는 것을 은연 중에 일깨워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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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드래곤 길들이기'가 인상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 비싼 아이맥스 3D 티켓값을 할 정도로 환상적인 영상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몬스터 vs 에이리언'에서는 이렇다할 인상적인 3D 영상을 보여주지 못했던 드림웍스로서는 전작에서 보여준 3D기술 및 영상의 수준을 확실히 업그레이드 해냈다. 투슬리스와 히컵이 하늘을 자유롭게 - 여기선 정말 자유가 느껴진다! - 그리고 구름 속을 빠른 속도로, 그리고 황홀한 각도로 비행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3D에 최적화된 영상이라는 점은 여러가지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일단 장면 속 속도나 질감 그리고 공간감 (크기)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투슬리스를 타고 구름 속을 빠른 속도로 날 때면 마치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지고, 크기 역시 커다란 캐릭터의 경우 그냥 '와, 크구나' 정도가 아니라 '와! 진짜 무지막지하게 크구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런 크기의 입체감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3D 영상은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3D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관객이 손을 절로 뻗도록 만드는 약간의 인위적인 효과와, 이것보다는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을 넘어서지 않는 한도 내에서 효과를 주는 경우. '드래곤 길들이기'는 경우의 중간 정도, 그러니까 아주 적절한 3D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별것 아닌것 같은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입체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는 한편, 3D 효과를 한 껏 낼 수 있는 액션 시퀀스에서 역시 너무 과도한 입체 효과는 주지 않으면서도 (이 정도를 말로 표현하긴 좀 어려운데, 직접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진정 3D를 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폴라 익스프레스'부터 '아바타' 까지 거의 한편도 빼놓지 않고 본 3D영화들 가운데, 3D효과 측면에서는 최고로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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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 예고편이나 포스터 등이 공개되었을 때는 이 정도의 작품일 줄은 몰랐었는데, 시사회와 먼저 보신 분들의 쏟아지는 호평을 듣고서 '과연?'하는 물음과 기대가 들었던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는 결국, 많은 호평들 속에 내 밥 숟가락 하나 기꺼이 얹어놓고 싶은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1. 전날 왕십리 CGV 아이맥스관 영사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제가 보는 날도 못보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정상화되어서 문제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네요.

2. 

3D안경은 또 바뀌었던데 그간 써봤던 안경들 가운데서 착용감 측면에서는 가장 좋더군요. 영화 보는 내내 단 한번도 흘러내림에 신경쓰지 않고 볼 수 있었으니까요.

3. 또 블루레이를 기다려야할 작품이 생겼군요. 아, 과연 그전에 3DTV를 장만할 수 있을까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DreamWorks Animation. CJ엔터테인먼트에 있습니다.




기이한 그 남자의 대표작 '하녀'


지난해 감상했던 박스세트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와 소장가치가 높았던 작품을 꼽자면,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4장의 디스크로 출시되었던 '김기영 컬렉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뷰를 하기 위해 타이틀을 봐야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리뷰 목적을 제외하더라도 '고려장 (1963)' '충녀 (1972)' '육체의 약속 (1975)' '이어도 (1977)'가 수록되었던 컬렉션은 시대를 앞서갔던 걸작들을 우수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었으며, 영화감독 봉준호, 김대승, 오승욱과 영화평론가 정성일, 이연호, 김영진씨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이 위대한 영화들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음은 물론, 故 김기영 감독과 관련한 인터뷰 영상들은 그의 작품을 통한 모습과 작품 외적인 '인간 김기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컬렉션이었다.




(‘하녀’의 오프닝은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기이하다. 두 아역배우가 실뜨기를 하는 것을 배경으로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 영화에나 나올법한 폰트로 써내려 가는 크래딧과 관객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는 음악은, 지금 봐도 너무나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다)

이렇게 소장가치 충만한 컬렉션에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바로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하녀 (1960)'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시 리뷰에도 이런 아쉬움과 더불어 곧 출시된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있는데, 본래 지난해 말 출시 예정이었던 점을 감안하자면 생각보다는 더 오래 지속된 기다림이었다. 지난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하녀'에 대한 이슈가 커지게 된 데에는 곧 DVD가 출시될 예정이라는 것 소식 때문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칸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KOFA (Korean Film Archive)의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을 통해 디지털로 새롭게 복원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하녀'의 복원작업에는 2007년 설립된 세계영화재단 (World Cinema Foundation, 이하 WCF)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마틴 스콜세지가 수장으로 있는 이 국제영화단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세계의 영화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을 지원하는 단체로서 그 지원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였다. 이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한국영상자료원 측에서 WCF에 공동복원 작업을 제안하였고, 김기영 감독의 팬으로 알려진 마틴 스콜세지가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져 최종 복원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까지 WCF에서 복원을 지원한 작품으로는 Metin Erksan의 1964년작 'Dry Summer'(터키)와 Djibril Diop Mambety의 1973년작 'Touki Bouki' (세네갈) 그리고 Ahamed El Maanouni의 1981년작 'Transes'(모로코)가 있으며 WCF의 홈페이지 (http://www.theauteurs.com)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WCF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하녀 복원작)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작품성 이외에도 '하녀'를 대표작으로 많이들 꼽는 이유는 이후 이 작품이 김기영 본인에 의해 여러 차례나 리메이크 되기 때문이다. 1971년 작 '화녀'를 시작으로 '화녀'를 리메이크한 1982년 작 '화녀' 82'까지. 이 밖에도 그의 이후 작품 들에서 역시 직간접 적으로 '하녀'의 기본 설정과 메시지에 기반한 동의 반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근본이 되는 '하녀'를 대표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하녀'를 접하기 이전에 '화녀'나 '충녀'를 접한 입장 에서는 이 작품들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나 캐릭터의 설정, 공간의 설정, 미술적인 요소들이 거의 대부분 '하녀'에 기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 늦게 알아차리고는 이 작품 '하녀'가 더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이 영화는 굉장히 컷과 컷의 전환이 빠르고 내러티브의 전개 역시 재빠르게 이뤄지는 편인데, 기차가 가는 장면이나 거리를 걷는 짧은 장면을 삽입 함으로서 이런 빠른 컷의 전환을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재주는 참으로 탁월하다)

영화의 기본 구조는 이제 막 도시 하층민 생활을 벗어나 중산층에 접어든 한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직공들로 이뤄진 합창단 활동에 선생 역할을 하고 있는 남자(김진규), 그리고 가정에서 열심히 재봉 일을 하며 가정에 충실 한 아내(주증녀), 그리고 두 자녀로 이뤄진 이 가정에 어느 날 하녀(이은심)가 들어오게 되면서 이 지옥 같은 이야기는 조금씩 전개된다. 이런 구조로 되어있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역시 표면적으로 보았을 땐 집에 들이게 된 하녀가 모든 것을 망쳐놓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미 갖고 있던 뇌관을 건드린 것으로 더 옳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하녀'는 굉장히 직접적인 편이다. 극중 하녀가 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도 분명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시작부터 몇몇 장면들을 통해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샷 속 남자아이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 ‘안성기’씨가 맞는데, 정말 연기신동이라 불릴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웃는 얼굴에서는 지금의 안성기의 얼굴을 발견할 수도 있는데, 그 표정 연기 하나는 아역임을 생각지 않더라도 정말 대단한 연기를 선보인다. 애순이 역할로 출연한 이유리 씨의 그 기이한 표정 연기 역시 잊혀지질 않는다)

이 가족의 딸은 다리가 불편한 것으로 설정이 되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과 대사는 이런 내재된 불안감을 잘 드러낸다. 동생이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놀리는 장면을 보고는 안타까워 말리려는 경희(엄앵란)를 막아서며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발에 온 마비를 풀려면 운동을 해야 돼'.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자신의 딸을 위해주며 나아지기 위해 하는 말 같지만 달리 보면 상당히 가학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남자의 시선은 이후 다람쥐를 사다 주면서 또 한 번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를 딸에게 설명해주며 은유적으로 딸 역시 어서 다리가 낳기 위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더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하는 이 대사에서는, 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남자, 더 나아가 이 가정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 남자는 겉으로는 딸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다리가 낫길 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이제 막 중산층이 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절름발이 딸이 못내 마땅치 않아 어서 낫기를 바라는 시선이 더 깊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의 테마는 이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될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다. 이제 막 들어선 중산층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맹목적으로 재봉 질에 몰두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서우리만큼 섬뜩하며, 또한 일하는 여성 앞에서 작아지는 남성상에 묘사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산층으로서의 생존의 테마는 이 작품을 둘러싼 동시대적 깊은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맨 처음 허름한 단칸방, 그러니까 이 영화에 중요한 소품인 피아노와 재봉틀이 같은 방에 존재하는 집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얼마지 않아 2층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된다. 이렇듯 이 가정은 이제 막 하층민을 벗어나 중산층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시는 하층민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욕망이 매우 강한 편, 아니 집착에 가까운 편이다. 다람쥐 같은 경우 앞서 언급한 딸과의 에피소드에 매우 중요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중산층에 또 다른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TV를 들여다 놓은 장면은 아주 직접적인 중산층 가정의 상징적 요소다.




(하녀 역할을 맡은 이은심 씨의 등장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담배는, 말로 설명하는 것 이상의 캐릭터 설명을 가능케 한다. 담배와 뿜어내는 연기는 이 작품 곳곳에서 의미 깊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후 어쩌면 하녀보다도 더 무섭게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 역시 다시는 하층민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욕망과 집착, 그리고 내적으로는 어떤 곪은 상처가 있어도 대외적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숨기고만 싶은 이들의 욕망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특별한 한 가족과 제한된 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별한 하나의 개별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6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했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 아니면 식모 밖에는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문제(신분, 계급이 관련된)를 직접적으로 때론 은유적으로 표현한 동시대적 텍스트의 경향이 상당히 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커스 인 했을 때는 물론 자신에게서 포커스가 아웃 되었을 때에도 주목하게 만드는 이은심의 연기와 김기영 감독의 연출은 놀랍기만 하다)

이 영화는 그 영화보다 복선이 상당히 짙고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초반 장면 설정이 후반 부에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나하나 반복되는 짝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흥미거리다. 김기영 영화에서 이후 빈번하게 등장하는 쥐 같은 경우, 이 작품에서 거의 처음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쥐와 쥐약을 각 캐릭터가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이와 관련된 대사들에서 이와 같은 복선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쥐를 잡기 위해 찬장에 둔 쥐약을 두고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또 자식들이 서로 나누는 대사들은 너무 직접적이라 소름마저 돋을 정도다. '너희들, 이 쥐약은 조심해. 이걸 먹으면 죽어' '이거 사람도 죽어?' '응, 독약이거든'. 식사할 요리를 앞에 두고 한 손엔 쥐약을 들고 벌이는 이 대사들은 마치 앞으로 이 가족이 겪을 지옥 같은 일들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렇게 스스로들에게 그 위험성과 주의 성을 당부하지만 결국은 호기심과 유혹에 빠져 내재되었던 불안감에 잠식되고 마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이다.




(쥐약은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무기이자 독약이자, 탈출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쥐약에 대한 캐릭터들의 대사와 반응을 통해 이들의 권력구조와 그 이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전 '충녀'를 리뷰 하면서 극중 등장하는 '계단'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하녀'를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계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계단 자체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이 계단이라는 장소는 이 영화의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며, 신분상승과 몰락이 모두 존재하며 내용적뿐만 아니라 컷의 연출에 있어서도 아주 다양한 작용을 하는, 김기영 작품의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계단은 기본적으로는 1층과 2층을 나누는 (혹은 연결하는) 의미는 물론, 캐릭터에서 캐릭터로 권력에 이동에 따라 이를 영화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능은 물론, 그로테스크함을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논하면서 '그로테스크'라는 말이 이제서야 등장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한 '쾌거'가 아닐 수 없겠다 ^^;) 더욱 극대화시키는 조명과 카메라 앵글의 조력자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인 다리에 매달려 머리를 찧으며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장면을 가능케 한 장소이기도 하다. 아마도 전세계 영화들 가운데 이렇게 계단과 이를 오르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도 없을 것이라는 김영진 평론가의 말처럼, '하녀'에서 계단이 갖는 의미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절대적이 아닐 수 없겠다.





(아…계단. 계단이 없는 ‘하녀’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계단 그 자체이며, 인물들이 계단에서 벌이는 장면 장면은 그것이 계단에서 이뤄졌기에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하녀'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들만이 등장하는 영화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2층집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는 없다. 이 가운데 계단만큼이나 인상적인 공간적 구조물이 있다면 바로 '미닫이 문'을 들 수 있겠다. 이 2층 집에는 유난히 미닫이 문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미닫이 문은 영화 속에서 아주 여러 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녀는 가족들을 믿지 못해, 가족들은 하녀를 믿지 못해 서로를 엿보고 엿듣는 방패막이로 사용되기도 하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타인을 잠시나마 격리 시킬 수 있는 차단의 도구로도 사용되며, 각 캐릭터만의 공간을 가능케 해주는 경계의 의미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적인 역할 외에 컷과 컷을 나누는 영화적 도구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유난히 빠른 컷의 전환과 내러티브의 전환이 빠른 이 영화에서 미닫이 문을 열고 닫는 설정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마치 귀신이 사라지듯 미닫이 문 뒤로 서서히 뒷걸음쳐 퇴장하는 장면이나, 앵글 저 뒤편으로 무시무시한 하녀를 남겨둔 채 미닫이 문이 닫히며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후퇴하는 장면 등은 여느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연출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에서 미닫이 문을 열고 닫는 행위는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서로의 영역과 영역을 넘나드는 것(=침범하는 것)과 반대로 침입 세력을 떨쳐내는 행위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스크린 샷은 이 영화의 카메라 앵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계단과 미닫이 문, 중요 캐릭터들의 관계가 모두 녹아있는 훌륭한 샷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가 공간의 영화라는 점은 1층과 2층이라는 구조, 그리고 1층의 세계와 2층의 세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점, 그리고 2층 가운데서도 하녀가 머무는 왼편의 작은 방과 피아노 레슨이 이뤄지는 오른편의 방의 존재와 이를 그리는 연출 방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의 공간(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이뤄진 일들을 문 밖에서 바라보던 하녀가 남자를 협박해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가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수평 트랙킹은 이 공간의 이동을 직감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며 결국 남자가 하녀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점차 권력구조가 하녀에게로 이동하는, 그래서 나중에는 하녀가 남자의 공간마저 지배하게 되는 흐름의 전개를 가능케 하고 있다.




(수직적 카메라 트랙킹이 많이 사용된 것과는 달리 이 장면에서는 수평적인 트랙킹이 사용되었는데, 남자의 공간에서 하녀의 공간으로, 남자에게서 하녀에게로 권력이 옮겨가는 과정과 그 거리감을 수평 트랙킹을 통해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동선은 정말 예술이다)

김기영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공간의 미학을 여럿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중 백미는 역시 이 작품 '하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쥐와 쥐약이 등장하는 부엌이라는 공간, 오로지 생존과 중산층으로서의 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아내와 재봉틀이 있는 공간,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이라는 공간, 그리고 피아노가 놓여진 남자의 공간과 병원 침대 같은 초라한 침대만이 있는 하녀의 공간. 이렇게 공간 자체가 캐릭터를 설명하는 동시에 메시지가 되는 김기영만의 공간 연출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공간을 하녀가 끊임없이 침입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공간의 이해는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걸작이라 불리 우는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와!'하는 외마디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녀'를 보면서는 거의 매 장면 매 대사마다 이런 탄성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특히 '어떻게 저런 대사가', '아니,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는 의아함에 가까운 경이와 함께 그로테스크함을 견디지 못해 나오는 뒤늦은 탄성들도 여러 차례 내뱉게 되었다. 그야말로 압권의 연속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하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무슨 시구를 외우듯 가슴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포스의 냉소적이고 가학적이고 소름 돋을 정도의 직접적 대사들이 넘쳐났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아주 무서운 공포 영화의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처럼 이 영화의 어떤 대사를 들었을 때 몸이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얼어 붙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대사만으로도 관객을 얼어 붙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한 두 대사가 아니라 거의 모든 대사가 이렇다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대사만큼이나 압도적인 건 바로 '하녀'를 연기한 이은심 씨의 연기다. 김기영 감독 작품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종종 그랬지만, 당췌 당대의 한국여성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질적인 마스크를 갖고 있는 이은심의 마스크와 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기이한 표정들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어느 한국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캐릭터와 연기가 아닐까 싶다. 김기영 감독의 기이한 연출과 연기 디렉팅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이은심의 손짓, 발짓, 표정 하나하나는 정말 너무 영화적이라 예술적이다. 포커스 밖에 있어도 주목하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는 물론, 화면 가득 얼굴을 담았을 때 마치 극중 남자(김진규)의 경우처럼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함과 그로테스크함은 분명 독보적이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에 이후 이렇다 할 연기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로, '하녀'에서 이은심의 연기는 역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라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결코 1960년대 한국여성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개성 강한 마스크와 시대를 앞서 가도 너무 앞서간 환상의 연기는 지금 봐도 정말 무서울 정도로 영향력이 느껴진다. 그녀가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될 때는 나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로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와 눈빛이 이끌어내는 에너지는 실로 대단했다)

하녀 역할을 맡은 이은심 씨의 연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아내 역할을 맡은 주증녀 씨의 연기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였다. 코멘터리에 참여한 김영진 평론가에 표현을 빌리자면 '또 하나의 괴물' 이 되어가는 캐릭터를 연기한 주증녀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여배우와 김진규 씨 외에 두 자녀 역할을 맡은 아역 연기자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잘 알다시피 남자아이는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중견배우인 안성기인데, 개인적으로는 안성기 씨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소름 돋는 연기였다(그는 국민 배우가 아니라 국민 신동이었던, 이었던, 것이었다). 그 웃음에서는 아이에 얼굴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냉소가 듬뿍 느껴졌으며 어깨를 들썩일 때는 지금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누군가 안성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작품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하녀'를 꼽겠다. 딸인 '애순'역할을 맡은 이유리씨 역시 아역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은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표정과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굉장히 섹슈얼리티 적인 표현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 위의 스크린 샷도 그 중 하나다. 다리를 희한하게 감는 장면이나, 키스 씬에서 머리카락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가려버리는 것이나, 깍지를 끼는 등의 표현 등은 매우 은유적이지만 그 어느 직접적인 장면들보다도 기이한 섹슈얼리티가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복원된 화질로 만나는 '하녀'

이번 '하녀' DVD 출시가 기다려졌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복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정도 일 텐데, DVD에 포함된 책자의 내용을 빌려보자면 이번 '하녀' 복원의 경우는 다른 복원작업에 비해서도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최초 자료 원에 수집된 원본 네가 필름은 총 10권 중 두 권(약 20분 분량)이 없는 불완전 분이었고, 이를 채우기 위해 자료원에서 보유 중이던 영문자막 프린트 필름에서 네가를 복원하다 보니, 기존 디지털복원 작업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본 네가필름이 유실되어 화면의 톤이 다른 장면의 예. 완벽하게 복원된 장면에 비하자면 뭉개지는 듯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지만, 원본 유실로 인한 복원 임을 감안한다면 평균 이상으로 복원된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녀'의 경우 이 영어자막이 심하게는 화면의 1/3에서 절반 정도를 세 줄짜리 자막이 뒤덮는 경우도 있었으며 프레임 별로 미세하게 깨진 부분도 있어 감상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자막 제거 작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먼지, 스크래치 제거와는 좀 다른, 훨씬 복잡한 작업이라고 하는데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라 연구 끝에 자막복원솔루션 'MJW 1.0'을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자막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우 화질이 원본 네가 필름을 사용한 것보다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도 품질이라면 (그리고 이 정도 노력의 성과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DVD Menu



DVD Quality


이런 작품에 화질 음질을 따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느냐 만은, 이번 타이틀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라 바로 '복원'이었음으로, 이를 감안하여 평가하자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만족할만한 수준의 화질과 음질로 재탄생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화질의 경우 서플먼트에 수록된 복원 전과 후 비교 영상을 보면 확연히 할 수 있는데, 고전 영화 필름들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른바 '비가 내리는' 현상이 말끔히 복원되었으며, 흑백영화 특유의 색감과 질감도 거의 다 살려내었다. 특히 강렬한 콘트라스트비도 그대로 살려냈으며 암부의 표현력도 기존 필름에 담긴 정보를 거의 다 되살려낸 셈이다.




(담배 연기의 표현 같은 부분은 확실히 흑백이어서 더 질감이 잘 살아나는 듯 하다)

이 타이틀의 화면 비 표기를 보면 '1.53:1 애너모픽'이라고 되어 있는데, 화면 좌우에 조금씩 블랙 바가 생기는 화면 비이다. 이전 월트디즈니의 고전 '피노키오' 블루레이의 복원된 영상을 보고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화녀' DVD의 복원 수준 역시 원본 필름의 보존상태와 그 과정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최대한의 결과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음질 역시 최대한 원본 훼손이 없는 상태로 복원하려다 보니 약간의 노이즈가 남긴 했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전혀 아니며, 그 이외의 부작용이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Special Feature


깔끔한 디지팩 패키지로 출시된 이번 DVD타이틀의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또 다른 요소는 봉준호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서플먼트 때문인데, 지난 '김기영 컬렉션' DVD에서 '충녀'의 음성해설을 맡았던 봉준호, 김영진 콤비는 '하녀'에서 다시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역시나 내용적으로나 재미 측면이나 놓칠 수 없는 코멘터리가 되겠다. 두 사람 모두 김기영 감독의 팬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관련 지식들을 알고 있는 터라 다양한 부가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한편, 장면 장면과 캐릭터들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평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 자신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 때문에 '저런 장면은 어떻게 찍으셨을까' '저런 건 어떻게 하신걸까'하며 부러워 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코멘터리 외에 복원된 영상을 직접적으로 비교 체험할 수 있는 '복원전후 영상' 이 담겨있는데, 복원 전 영상과 복원 후의 영상, 그리고 두 영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화질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부가영상을 수록했다는 것만 봐도 한국영상자료원 측이 이번 타이틀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 밖에 이미지 자료모음이 수록되었으며, 자막은 한국어 자막 외에 한국문학번역원이 감수한 일어와 영어 자막이 수록되었으며, 세계영화재단에서 제공한 불어자막 또한 지원된다.





[총평] 故 김기영 감독은 분명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왜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오승욱, 김대승 감독 등이 존경해 마지 않은 감독으로 그를 꼽는지 절로 알게 되며, '이 영화가 정녕 그 예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란 말인가'라는 의문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처음 시작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작품 '하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1960년대 작이라는 점과 원본 필름의 보관상태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만족할만한 훌륭한 퀄리티로 복원된 이번 DVD타이틀은, 그의 팬들은 물론 김기영 이라는 감독의 작품에 대해 마냥 궁금증만 갖고 있던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09.07.30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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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김기영 컬렉션> / 시대를 앞서간 한 영화 감독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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