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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Fantastic Mr. Fox, Blu-ray)
웨스 앤더슨만의 가족 우화
웨스 앤더슨은 항상 그랬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스토리텔링은 가족의 이야기로 표현될 때 가장 인상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2001년 작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은 가장 웨스 앤더슨다운 캐릭터들과 스타일이 극대화된 작품이었으며, 2004년 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역시 그 만의 따듯한 시선과 개성 있는 캐릭터가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2009년 내놓은 작품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의 원작자인 로알드 달이 1970년 발표한 동명 어린이 동화를 영화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로알드 달의 원작 동화 속 이야기는 일반적인 동화와는 조금 다르게 아웃사이더의 정서가 담겨있는 동시에 웨스 앤더슨이 좋아할 만한 장면적, 이야기적 요소가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패션에 관한 일가견과 마찬가지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사 영화 못지 않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 소품과 세트를 눈여겨보는 것도 이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웨스 앤더슨의 특성을 잘 알기에 소품 하나도 그냥 흘려 볼 수가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세트 속에서도 훌륭히 구현되고 있다는 놀라운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여하튼 여러모로 단순하면서도 몹시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Blu-ray Menu
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VC 코덱의 1080P 풀HD의 화질은 레퍼런스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주 얘기하는 바와 같이, ‘판타스틱 Mr.폭스’는
하드웨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측면과 영상 자체가 갖고 있는 특수성 - 이 경우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 이 결합하여 최고의 화질을
만들어낸 경우다. 웨스 앤더슨과 영화의 많은 스탭들이 공을 들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블루레이의 화질에서 그 빛을 발한다.
(원본 사이즈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아마도 DVD의 SD급 화질이었다면 전부 살아나지 못했을 털의 거친 질감과 인형들이 입고 있는 옷 재질의 질감이 블루레이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디테일한 소품들과 그 소품들에 새겨진 텍스트들까지 모조리 확인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며, 조명 역시 실사 영화보다 더 세심하게
고려한 탓에 어두운 장면은 물론, 빛이 반사되는 소품들과 빛이 반사되지 않는 인형 사이의 밸런스도 훌륭하게 표현된다. 이전 ‘아바타’ 블루레이를
리뷰하면서 ‘블루레이를 위해 태어난 작품일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으로 영상과 화질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판타스틱 Mr.폭스’처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역시 블루레이에 매우 적합한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만큼 블루레이로서의 감상이 작품을 즐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은 대사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에 목소리 연기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센터스피커를 통한 대사 전달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마치 조지 클루니가 내 옆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로 - 특히 그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 - 선명한 음질을 수록하였다.
나름 액션 장면에서의 효과음 전달도 수준급이며, 무엇보다 비치 보이스, 롤링 스톤스 등 센스 있는 선곡들로 이뤄진 사운드 트랙들도 장면마다
박진감 넘치게 전달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판타스틱 폭스]의 세계’는 원작자인 로알드 달의 미망인의 인터뷰를 통해 원작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화에 대한 소감으로 시작된다. 웨스 앤더슨은 원작이 갖고 있는 가치를 회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미망인과 웨스 앤더슨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원작과 원작자에 대해 얼마나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는지 절로 알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문가들의 손길이 묻어난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작품 자체를 상당히 다각화 할 수 있었고, 사과주 저장소 장면 같은 경우 병마다 반사되는 빛을 하나하나 정확히 계산하여 촬영했을 정도로 우리가 작품에서 보는 것 이상의 노력과 디테일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평] ‘판타스틱 Mr.폭스’는 단순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서
개성 있는 작품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의 작품이라서 더 빛나는 작품이다.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아마 스톱모션 기법으로 더 재기발랄해진
그 만의 영화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도구로 레퍼런스급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한 블루레이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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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달소’보다 더 나을 지도 모를, 호소다 마모루의 ‘썸머 워즈’
호소다 마모루의 2006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시간 여행이라는 SF적인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이끌어낸 이 애니메이션 - 물론 이 작품은 1965년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 을 통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잇는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 차세대 감독으로까지 단번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이하 시달소 -의 기억이 아련해질 때쯤 그는, 2009년 신작 '썸머 워즈'를 통해 다시 한번 팬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포스터나 제목에서부터 벌써 스케일을 예상하게 만들었던 이 작품은 '시달소'로 익숙해진 팬들은 물론, '시달소'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들도 팬들로 만든 한편, 반대로 '시달소'로 잔뜩 기대하게 만든 팬들 가운데 적지 않게 실망을 주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아마도 호불호가 나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인 'OZ'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공감대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지점이라면 ‘게임’에 대해 얼마나 너그러운가 혹은 익숙한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썸머 워즈’는 OZ라는 사이버 세상과 맞물려 게임 - 혹은 게임기 - 이라는 도구가 극에 적극적으로 도입된다.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부터 시작해 고스톱 같은 게임이 세상을 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이라거나 국내에서도 이런 게임 관련하여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런 설정이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쉽게 받아들여질 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절로 코웃음 치게 만드는 유치한 구성으로 받아들여질 테니 말이다. 유치하다고 받아들인 다면 위와 같은 절박함도 느껴지지 않을 터. 결국 ‘썸머 워즈’는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호소다 마모루의 가족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DVD Quality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DVD로서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사실 블루레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평균적이기는 하지만 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들기도 한다. 현재 국내는 블루레이 출시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임으로 일단은 DVD화질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좀 더 만족스러운 편이다. ‘썸머 워즈’는 의외로 액션 및 다양한 효과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은 편인데, 사운드 측면에서 별 기대하지 않고 보았다가는 중간중간 ‘어랏?’하는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워낙 등장인물들이 많은 터라 대사 전달이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사운드 체크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인물들 만큼 넓은 공간에 넓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아 대화 장면에서도 멀티 채널의 효용을 확인할 수 있다.
DVD Special Features
[총평] 사실 ‘썸머 워즈’라는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약간 모호한 제목과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깊은 인상 때문에, 오히려 조금 관심에서 멀어질 뻔 했던 작품이 바로 ‘썸머 워즈’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떤 면에서는,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시달소’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아련함을 마음 깊이 전해줄 작품 또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시달소’가 한 소녀의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썸머 워즈’는 한 가족에 대한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이 타이틀을 조심스럽게 추천하고 싶다.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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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의 진짜 같은 모습
크리스마스 이브. 유명 패션지 '보그 (Vouge)'의 특별 화보 촬영을 위해 20대부터 60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여섯 명이 이례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이렇게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함께 한 이 자리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정사'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는데, 리얼 다큐멘터리인듯 하지만 사실 극영화인 영화 '여배우들'이 오늘 소개할 작품이다.
이렇게 계속 '진짜'를 강조하던 영화는
갑자기 창밖에 내리는 눈,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몰래 기타 연주와 함께 휴대폰으로 러브 송을 들려주는 한 남자 스텝의 이야기와
함께, 조금은 급작스럽게 이 영화가 극영화임을, 더 나아가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준다. 사실 이 눈 내리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는 영화의 제목을 '여배우들'보다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쯤으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이후 전개과정을 보니 이재용 감독은 이 시퀀스를 일종의 경계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시퀀스 이후 영화는 와인과 함께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릎팍 도사’를 한 차원 넘어서는 여배우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짜를
바탕으로 진짜와 허구가 뒤섞여 있는 이 오랜 대화 시퀀스는 이 작품을 평가하는데 좋은 지점이 된다.
DVD Menu
DVD Quality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영상은 평균적인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극영화이긴 하지만 리얼 다큐멘터리 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기에 화질 자체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반대로 화질 자체가 크게 중요한 타이틀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여배우 여섯 명의 모습을 블루레이 화질로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DVD화질로도 충분한 편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멀티 채널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인터뷰와 대화가 99% 이상인 작품인지라 사운드 퀄리티가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99%를 차지하는 대사 전달 부분이 아쉬운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DVD Special Features
‘여배우들’의 진면목은 바로 음성해설에서 드러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6명의 여배우가 모두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은 이번 타이틀의 가장 큰 장점이다. 6명의 여배우는 물론 연출을 맡은 이재용 감독까지 총 7명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영화 속 ‘여배우들’이 어찌되었든 ‘연기’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진짜 ‘여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작품 이전부터 친했던 혹은 이 작품을 통해서 친해지게 된 이 배우들이, 짧았던 촬영 기간을 추억하고 영화 속 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탈함을 넘어 거침없이 나누는 분위기는 영화 속 장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와인을 한 잔씩 하며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음성해설은 참여하고 있는 여배우들도 듣는 DVD구입자들도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다. 이 음성해설 트랙만으로도 DVD타이틀의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할 수 있겠다.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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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우리를 보시라
현재 지구상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남조선’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음은 물론이요, 북한 역시 ‘조선’이 아니라 ‘북조선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기호 상으로만 남아있는 통일 조선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재일동포사회에 존재하는 ‘조선학교’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끔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살짝 엿볼 수 있었지만,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개봉한 김명준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는 존재 여부만, 혹은 존재 자체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김명준 감독은 궁극적으로 이 아이들과 제일 조선인 사회를 담은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이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의 소외되고 소수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로서는 단순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말 그대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역사나 현재의 상황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몰랐으며, 더 나아가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간 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극히 단편 적인 이야기가 전부 였으며, 너무 이데올로기 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하고 해석한 경우가 더 많았었다. 그래서 이 영화 <우리 학교>는 더욱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이데올로기 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데올로기 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오히려 그동안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했었던 이 문제를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결과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에 대해 정치적인 얘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말했듯이 ‘조선’국적을 갖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관한 자세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얻은 정보 말고는 더 자세한 것은 없지만, 남북이 분단 되기 전 타의로, 혹은 자의로 인해 일본으로 가게 된 이들은, 이후 남북이 분단이 되는 바람에 무국적자가 되어버렸고, 일본 사회에서 누구에게도 환대 받지 못하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북조선인도 아닌 ‘조선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일본 사회 내에서 자신들 스스로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마음으로 힘들게 싸워왔으며, 지금도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 나아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이들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영화 속에도 등장하지만 학교에 전화를 걸어 살해 협박 혹은 폭탄 테러 등을 경고 하는 등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그 동안 가장 많이 잘 못 알고 있었던 점 한 가지에 대해 정확히 바로 알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동안 이들을 우리 민족으로 생각한다기 보다는 ‘북한’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요즘 같아서는 오히려 북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도 이들에게 더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순수한 ‘조선’ 사람일 뿐이다. 이들이 민족 교육을 받고 인공기를 우리나라 국기라고 말하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북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하여, 너무도 적대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오히려 반대였다. 조선학교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만 가는 것도 그들이 북쪽을 원해서가 아니라, 남쪽은 가고 싶어도 우리 정부에서 이들에게 ‘왜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느냐며’ 국적 변경을 강요하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들에 대해 지금까지 너무도 무심했지만, 북한에서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지원과 도움을 지금까지도 주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은 남쪽임에도 조국은 북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굳이 물질적인 지원 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을 정말 살갑게 맞이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을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도 일본인에게도 북한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화이지만, 특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말해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명준 감독이 약 3년간 홋카이도의 조선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사실적인 생활상을 직접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영화이다. 3년이라는 촬영 시간은 이 영화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처음에는 남쪽에서 온 이 낯선 감독에게 수줍음이 많은 어린 학생들이 별로 친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명준 감독’, ‘명준 오빠’등으로 불릴 정도로 친숙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감독 자신 역시 처음에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해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100%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본어를 공부하여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 다음부터는 이들과 더욱 가까워져,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영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감독의 존재가 이들에게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감독의 말처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내내 감독과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분단이라는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이를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때는 북으로 수학여행을 오르는 만경봉호에 함께 탑승할 수가 없었던 그 때 한 번 뿐이었다(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감독에게 뱃머리에서 ‘명준 감독~’ 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독 자신만큼이나 보는 사람들도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가 보통의 다큐멘터리와 조금 다른 점을 꼽으라면 감독의 존재가 완전히 영화에서 벗어나 관찰자 입장에서만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영화를 보다보면 아이들이 감독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먹던 것이 있으면 감독에게도 나누어주고, 카메라를 보면 ‘안녕하십니까 감독’하면서 정답게 인사를 건내고,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거부감 없이 말을 걸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 영화를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사실 객관적으로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이 영화는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학교라는 배경만 없다면, 그냥 참교육이 실천되는 어느 작은 학교의 학생들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1학년부터 입학하여, 운동회도 하고, 수학여행도 가고, 각종 경연대회도 하고, 졸업식으로 마무리하는, 요즘의 학교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정겨움과 감동이 있는 진실한 ‘학교’의 이야기 말이다. 실제로 조선학교의 교육 방식은 우리가 흔히 유럽식, 선진식이라고 얘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를 선정하고 모든 일을 스스로 토의를 거쳐 결정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선배와 후배와의 관계,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가, 누구라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아, 저 학교에 나도 꼭 한 번 다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으로 따뜻한 학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학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기에 이 같이 진심으로 다니고 싶은 학교에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졸업식 장면이 더욱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3년간을 촬영해 약 2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것을 감상한 것이 고작이지만, 이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저런 학교를 떠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졸업식 단상 위에서 모두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과 함께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박대우 선생님이 하신 말. ‘힘들고 지칠 땐 언제든지 우리학교를 찾아오십시오. 여기는 동무들의 영원한 모교입니다’라는 말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이었는지 두 말 하면 잔소리 일 것이다.
사실 O.S.T가 발매 되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의 DVD가 출시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독립 영화라는 특성상 상업논리가 지배하는 DVD 시장에서 이 영화가 반드시 나와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는데, 훌륭한 퀄리티로 출시된 DVD가 먼저 무척이나 반갑다. DVD는 2장으로 구성되어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1.85:1의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의 영상과 돌비디지털 2.0채널의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는데, 화질과 음질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일 것 같다. 음성해설을 듣다보면 감독이 좀 더 좋은 HD카메라로 촬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랬으면 물론 좀 더 좋았겠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본편의 음성해설은 김명준 감독과 팬까페 운영자인 김선민 씨가 참여하고 있는데,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들을 수 있는 소중한 트랙으로 생각된다. 얘를 들어 본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3 학생들이 아니라, 선수가 5~6명뿐이었던 여자 농구부원 들로 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나, 고3의 대 깃발에는 고 3 학생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다 적혀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에 감독의 이름도 적혀있음을 알고 감독이 너무나도 감동을 받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의 후일담 등을 전해들을 수 있다. 함께 음성해설에 참여한 김선민씨의 경우 단순한 팬까페 운영자로서가 아니라 조선학교를 2회나 방문했던 이로서 좀 더 많은 정보와 더불어 감독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감독이 답하는 방식으로 음성해설을 이끌고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알찬 서플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영상들은 서플 용으로 제작되었다기 보다는, 다큐멘터리를 2시간 분량으로 편집하면서 영화적인 구성을 위해 제외되어야 했던 영상들로, 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우리학교 아이들의 예술경연 무대에서는 독무와 독주, 중무와 취주악부의 합주 등으로 이들이 연습하는 과정과 공연 장면을 담고 있다. ‘못 다 전한 이야기’에서는 그야말로 영화에는 미처 다 수록하지 못한 영상들로서 재미있고 다양한 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어린 유년부 학생들의 소년단 야영 영상이나 꼬마들의 축구 시합 장면들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매우 재미있었던 영상이었다. 이 외에도 ‘함께하는 우리학교’에서는 5만 관객 돌파 이벤트 파티 장면, 관객과의 대화 장면, 그리고 각종 시사회에서 이를 본 관객들의 인터뷰, 우리학교를 만든 이들의 인터뷰 등이 담겨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 ‘우리를 보시라’와 같이, 또한 북한을 떠나오며 학생들이 외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라는 말과 같이,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을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실천할 때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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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그 남자의 대표작 '하녀'
지난해 감상했던 박스세트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와 소장가치가 높았던 작품을 꼽자면,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4장의 디스크로 출시되었던 '김기영 컬렉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뷰를 하기 위해 타이틀을 봐야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리뷰 목적을 제외하더라도 '고려장 (1963)' '충녀 (1972)' '육체의 약속 (1975)' '이어도 (1977)'가 수록되었던 컬렉션은 시대를 앞서갔던 걸작들을 우수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었으며, 영화감독 봉준호, 김대승, 오승욱과 영화평론가 정성일, 이연호, 김영진씨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이 위대한 영화들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음은 물론, 故 김기영 감독과 관련한 인터뷰 영상들은 그의 작품을 통한 모습과 작품 외적인 '인간 김기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컬렉션이었다.
이렇게 소장가치 충만한 컬렉션에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바로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하녀 (1960)'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시 리뷰에도 이런 아쉬움과 더불어 곧 출시된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있는데, 본래 지난해 말 출시 예정이었던 점을 감안하자면 생각보다는 더 오래 지속된 기다림이었다. 지난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하녀'에 대한 이슈가 커지게 된 데에는 곧 DVD가 출시될 예정이라는 것 소식 때문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칸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KOFA (Korean Film Archive)의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을 통해 디지털로 새롭게 복원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하녀'의 복원작업에는 2007년 설립된 세계영화재단 (World Cinema Foundation, 이하 WCF)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마틴 스콜세지가 수장으로 있는 이 국제영화단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세계의 영화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을 지원하는 단체로서 그 지원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였다. 이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한국영상자료원 측에서 WCF에 공동복원 작업을 제안하였고, 김기영 감독의 팬으로 알려진 마틴 스콜세지가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져 최종 복원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까지 WCF에서 복원을 지원한 작품으로는 Metin Erksan의 1964년작 'Dry Summer'(터키)와 Djibril Diop Mambety의 1973년작 'Touki Bouki' (세네갈) 그리고 Ahamed El Maanouni의 1981년작 'Transes'(모로코)가 있으며 WCF의 홈페이지 (http://www.theauteurs.com)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작품성 이외에도 '하녀'를 대표작으로 많이들 꼽는 이유는 이후 이 작품이 김기영 본인에 의해 여러 차례나 리메이크 되기 때문이다. 1971년 작 '화녀'를 시작으로 '화녀'를 리메이크한 1982년 작 '화녀' 82'까지. 이 밖에도 그의 이후 작품 들에서 역시 직간접 적으로 '하녀'의 기본 설정과 메시지에 기반한 동의 반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근본이 되는 '하녀'를 대표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하녀'를 접하기 이전에 '화녀'나 '충녀'를 접한 입장 에서는 이 작품들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나 캐릭터의 설정, 공간의 설정, 미술적인 요소들이 거의 대부분 '하녀'에 기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 늦게 알아차리고는 이 작품 '하녀'가 더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영화의 기본 구조는 이제 막 도시 하층민 생활을 벗어나 중산층에 접어든 한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직공들로 이뤄진 합창단 활동에 선생 역할을 하고 있는 남자(김진규), 그리고 가정에서 열심히 재봉 일을 하며 가정에 충실 한 아내(주증녀), 그리고 두 자녀로 이뤄진 이 가정에 어느 날 하녀(이은심)가 들어오게 되면서 이 지옥 같은 이야기는 조금씩 전개된다. 이런 구조로 되어있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역시 표면적으로 보았을 땐 집에 들이게 된 하녀가 모든 것을 망쳐놓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미 갖고 있던 뇌관을 건드린 것으로 더 옳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하녀'는 굉장히 직접적인 편이다. 극중 하녀가 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도 분명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시작부터 몇몇 장면들을 통해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딸은 다리가 불편한 것으로 설정이 되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과 대사는 이런 내재된 불안감을 잘 드러낸다. 동생이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놀리는 장면을 보고는 안타까워 말리려는 경희(엄앵란)를 막아서며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발에 온 마비를 풀려면 운동을 해야 돼'.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자신의 딸을 위해주며 나아지기 위해 하는 말 같지만 달리 보면 상당히 가학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남자의 시선은 이후 다람쥐를 사다 주면서 또 한 번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를 딸에게 설명해주며 은유적으로 딸 역시 어서 다리가 낳기 위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더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하는 이 대사에서는, 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남자, 더 나아가 이 가정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 남자는 겉으로는 딸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다리가 낫길 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이제 막 중산층이 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절름발이 딸이 못내 마땅치 않아 어서 낫기를 바라는 시선이 더 깊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산층으로서의 생존의 테마는 이 작품을 둘러싼 동시대적 깊은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맨 처음 허름한 단칸방, 그러니까 이 영화에 중요한 소품인 피아노와 재봉틀이 같은 방에 존재하는 집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얼마지 않아 2층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된다. 이렇듯 이 가정은 이제 막 하층민을 벗어나 중산층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시는 하층민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욕망이 매우 강한 편, 아니 집착에 가까운 편이다. 다람쥐 같은 경우 앞서 언급한 딸과의 에피소드에 매우 중요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중산층에 또 다른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TV를 들여다 놓은 장면은 아주 직접적인 중산층 가정의 상징적 요소다.
그리고 이후 어쩌면 하녀보다도 더 무섭게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 역시 다시는 하층민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욕망과 집착, 그리고 내적으로는 어떤 곪은 상처가 있어도 대외적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숨기고만 싶은 이들의 욕망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특별한 한 가족과 제한된 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별한 하나의 개별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6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했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 아니면 식모 밖에는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문제(신분, 계급이 관련된)를 직접적으로 때론 은유적으로 표현한 동시대적 텍스트의 경향이 상당히 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영화보다 복선이 상당히 짙고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초반 장면 설정이 후반 부에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나하나 반복되는 짝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흥미거리다. 김기영 영화에서 이후 빈번하게 등장하는 쥐 같은 경우, 이 작품에서 거의 처음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쥐와 쥐약을 각 캐릭터가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이와 관련된 대사들에서 이와 같은 복선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쥐를 잡기 위해 찬장에 둔 쥐약을 두고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또 자식들이 서로 나누는 대사들은 너무 직접적이라 소름마저 돋을 정도다. '너희들, 이 쥐약은 조심해. 이걸 먹으면 죽어' '이거 사람도 죽어?' '응, 독약이거든'. 식사할 요리를 앞에 두고 한 손엔 쥐약을 들고 벌이는 이 대사들은 마치 앞으로 이 가족이 겪을 지옥 같은 일들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렇게 스스로들에게 그 위험성과 주의 성을 당부하지만 결국은 호기심과 유혹에 빠져 내재되었던 불안감에 잠식되고 마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이다.
예전 '충녀'를 리뷰 하면서 극중 등장하는 '계단'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하녀'를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계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계단 자체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이 계단이라는 장소는 이 영화의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며, 신분상승과 몰락이 모두 존재하며 내용적뿐만 아니라 컷의 연출에 있어서도 아주 다양한 작용을 하는, 김기영 작품의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계단은 기본적으로는 1층과 2층을 나누는 (혹은 연결하는) 의미는 물론, 캐릭터에서 캐릭터로 권력에 이동에 따라 이를 영화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능은 물론, 그로테스크함을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논하면서 '그로테스크'라는 말이 이제서야 등장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한 '쾌거'가 아닐 수 없겠다 ^^;) 더욱 극대화시키는 조명과 카메라 앵글의 조력자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인 다리에 매달려 머리를 찧으며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장면을 가능케 한 장소이기도 하다. 아마도 전세계 영화들 가운데 이렇게 계단과 이를 오르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도 없을 것이라는 김영진 평론가의 말처럼, '하녀'에서 계단이 갖는 의미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절대적이 아닐 수 없겠다.
'하녀'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들만이 등장하는 영화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2층집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는 없다. 이 가운데 계단만큼이나 인상적인 공간적 구조물이 있다면 바로 '미닫이 문'을 들 수 있겠다. 이 2층 집에는 유난히 미닫이 문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미닫이 문은 영화 속에서 아주 여러 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녀는 가족들을 믿지 못해, 가족들은 하녀를 믿지 못해 서로를 엿보고 엿듣는 방패막이로 사용되기도 하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타인을 잠시나마 격리 시킬 수 있는 차단의 도구로도 사용되며, 각 캐릭터만의 공간을 가능케 해주는 경계의 의미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적인 역할 외에 컷과 컷을 나누는 영화적 도구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유난히 빠른 컷의 전환과 내러티브의 전환이 빠른 이 영화에서 미닫이 문을 열고 닫는 설정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마치 귀신이 사라지듯 미닫이 문 뒤로 서서히 뒷걸음쳐 퇴장하는 장면이나, 앵글 저 뒤편으로 무시무시한 하녀를 남겨둔 채 미닫이 문이 닫히며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후퇴하는 장면 등은 여느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연출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가 공간의 영화라는 점은 1층과 2층이라는 구조, 그리고 1층의 세계와 2층의 세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점, 그리고 2층 가운데서도 하녀가 머무는 왼편의 작은 방과 피아노 레슨이 이뤄지는 오른편의 방의 존재와 이를 그리는 연출 방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의 공간(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이뤄진 일들을 문 밖에서 바라보던 하녀가 남자를 협박해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가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수평 트랙킹은 이 공간의 이동을 직감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며 결국 남자가 하녀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점차 권력구조가 하녀에게로 이동하는, 그래서 나중에는 하녀가 남자의 공간마저 지배하게 되는 흐름의 전개를 가능케 하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공간의 미학을 여럿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중 백미는 역시 이 작품 '하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쥐와 쥐약이 등장하는 부엌이라는 공간, 오로지 생존과 중산층으로서의 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아내와 재봉틀이 있는 공간,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이라는 공간, 그리고 피아노가 놓여진 남자의 공간과 병원 침대 같은 초라한 침대만이 있는 하녀의 공간. 이렇게 공간 자체가 캐릭터를 설명하는 동시에 메시지가 되는 김기영만의 공간 연출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공간을 하녀가 끊임없이 침입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공간의 이해는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걸작이라 불리 우는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와!'하는 외마디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녀'를 보면서는 거의 매 장면 매 대사마다 이런 탄성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특히 '어떻게 저런 대사가', '아니,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는 의아함에 가까운 경이와 함께 그로테스크함을 견디지 못해 나오는 뒤늦은 탄성들도 여러 차례 내뱉게 되었다. 그야말로 압권의 연속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하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무슨 시구를 외우듯 가슴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포스의 냉소적이고 가학적이고 소름 돋을 정도의 직접적 대사들이 넘쳐났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아주 무서운 공포 영화의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처럼 이 영화의 어떤 대사를 들었을 때 몸이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얼어 붙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대사만으로도 관객을 얼어 붙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한 두 대사가 아니라 거의 모든 대사가 이렇다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대사만큼이나 압도적인 건 바로 '하녀'를 연기한 이은심 씨의 연기다. 김기영 감독 작품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종종 그랬지만, 당췌 당대의 한국여성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질적인 마스크를 갖고 있는 이은심의 마스크와 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기이한 표정들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어느 한국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캐릭터와 연기가 아닐까 싶다. 김기영 감독의 기이한 연출과 연기 디렉팅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이은심의 손짓, 발짓, 표정 하나하나는 정말 너무 영화적이라 예술적이다. 포커스 밖에 있어도 주목하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는 물론, 화면 가득 얼굴을 담았을 때 마치 극중 남자(김진규)의 경우처럼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함과 그로테스크함은 분명 독보적이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에 이후 이렇다 할 연기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로, '하녀'에서 이은심의 연기는 역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라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하녀 역할을 맡은 이은심 씨의 연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아내 역할을 맡은 주증녀 씨의 연기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였다. 코멘터리에 참여한 김영진 평론가에 표현을 빌리자면 '또 하나의 괴물' 이 되어가는 캐릭터를 연기한 주증녀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여배우와 김진규 씨 외에 두 자녀 역할을 맡은 아역 연기자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잘 알다시피 남자아이는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중견배우인 안성기인데, 개인적으로는 안성기 씨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소름 돋는 연기였다(그는 국민 배우가 아니라 국민 신동이었던, 이었던, 것이었다). 그 웃음에서는 아이에 얼굴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냉소가 듬뿍 느껴졌으며 어깨를 들썩일 때는 지금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누군가 안성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작품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하녀'를 꼽겠다. 딸인 '애순'역할을 맡은 이유리씨 역시 아역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은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표정과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녀'의 경우 이 영어자막이 심하게는 화면의 1/3에서 절반 정도를 세 줄짜리 자막이 뒤덮는 경우도 있었으며 프레임 별로 미세하게 깨진 부분도 있어 감상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자막 제거 작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먼지, 스크래치 제거와는 좀 다른, 훨씬 복잡한 작업이라고 하는데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라 연구 끝에 자막복원솔루션 'MJW 1.0'을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자막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우 화질이 원본 네가 필름을 사용한 것보다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도 품질이라면 (그리고 이 정도 노력의 성과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DVD Menu
DVD Quality
이런 작품에 화질 음질을 따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느냐 만은, 이번 타이틀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라 바로 '복원'이었음으로, 이를 감안하여 평가하자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만족할만한 수준의 화질과 음질로 재탄생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화질의 경우 서플먼트에 수록된 복원 전과 후 비교 영상을 보면 확연히 할 수 있는데, 고전 영화 필름들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른바 '비가 내리는' 현상이 말끔히 복원되었으며, 흑백영화 특유의 색감과 질감도 거의 다 살려내었다. 특히 강렬한 콘트라스트비도 그대로 살려냈으며 암부의 표현력도 기존 필름에 담긴 정보를 거의 다 되살려낸 셈이다.
이 타이틀의 화면 비 표기를 보면 '1.53:1 애너모픽'이라고 되어 있는데, 화면 좌우에 조금씩 블랙 바가 생기는 화면 비이다. 이전 월트디즈니의 고전 '피노키오' 블루레이의 복원된 영상을 보고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화녀' DVD의 복원 수준 역시 원본 필름의 보존상태와 그 과정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최대한의 결과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음질 역시 최대한 원본 훼손이 없는 상태로 복원하려다 보니 약간의 노이즈가 남긴 했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전혀 아니며, 그 이외의 부작용이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Special Feature
깔끔한 디지팩 패키지로 출시된 이번 DVD타이틀의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또 다른 요소는 봉준호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서플먼트 때문인데, 지난 '김기영 컬렉션' DVD에서 '충녀'의 음성해설을 맡았던 봉준호, 김영진 콤비는 '하녀'에서 다시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역시나 내용적으로나 재미 측면이나 놓칠 수 없는 코멘터리가 되겠다. 두 사람 모두 김기영 감독의 팬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관련 지식들을 알고 있는 터라 다양한 부가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한편, 장면 장면과 캐릭터들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평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 자신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 때문에 '저런 장면은 어떻게 찍으셨을까' '저런 건 어떻게 하신걸까'하며 부러워 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코멘터리 외에 복원된 영상을 직접적으로 비교 체험할 수 있는 '복원전후 영상' 이 담겨있는데, 복원 전 영상과 복원 후의 영상, 그리고 두 영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화질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부가영상을 수록했다는 것만 봐도 한국영상자료원 측이 이번 타이틀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 밖에 이미지 자료모음이 수록되었으며, 자막은 한국어 자막 외에 한국문학번역원이 감수한 일어와 영어 자막이 수록되었으며, 세계영화재단에서 제공한 불어자막 또한 지원된다.
[총평] 故 김기영 감독은 분명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왜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오승욱, 김대승 감독 등이 존경해 마지 않은 감독으로 그를 꼽는지 절로 알게 되며, '이 영화가 정녕 그 예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란 말인가'라는 의문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처음 시작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작품 '하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1960년대 작이라는 점과 원본 필름의 보관상태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만족할만한 훌륭한 퀄리티로 복원된 이번 DVD타이틀은, 그의 팬들은 물론 김기영 이라는 감독의 작품에 대해 마냥 궁금증만 갖고 있던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09.07.30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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