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DF2015] 퀸 오브 사일런스 (The Queen of Silence, 2014)

영화가 응원하고자픈 소녀의 꿈



데니사는 폴란드의 집시 캠프에 불법 거주하고 있는 열 살 소녀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 춤과 리듬으로 가득한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며, 데니사는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발리우드영화에서 본 화려한 여인들의 흉내를 낸다. 춤추는 동안만큼은 잔인한 현실을 떠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소녀는 마침내 말로 할 수 없었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공포와 같은 감정들을 표현해낸다.


아그니에슈카 즈비에프카 감독의 '퀸 오브 사일런스 (The Queen of Silence, 2014)'는 귀가 들리지 않는 집시 소녀 데니사의 이야기를 통해 은근히 한 소녀의 꿈과 집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들리지 않는 소녀의 장애에 관한 묘사는 비교적 가혹하지 않다. 관객에게 일부러 들리지 않는 고통에 공감하도록 주입하지 않고, 데니사를 둘러 싼 동네 아이들의 짓궃은 놀림과 장난들도 데니사를 피해자로서 묘사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감독의 의도 못지 않게 데니사 자체가 워낙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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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오브 사일런스'가 조금 특별했던 건 이 영화의 연출 방식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100% 실제의 것 만을 다룬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른 편집이 가해지기 때문) 일반적인 다큐 영화가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데니사는 발리우드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는데,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발리우드 영화처럼 중간 중간 연출된 댄스 장면을 삽입하였다. 즉, 데니사가 맨 앞에서고 몇몇 실제 아이들과 동원된 엑스트라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댄스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으로 조금 이질적이고 불편할 수 있는 방식인데, 그러게 느껴지기 보단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데니사의 꿈을 조금 이라도 이뤄주고픈 영화의 마음이 느껴져 조금은 행복해지고 또 조금은 애잔해졌다.


만약 실제 데니사의 이야기가 조금 더 희망적이거나 더 행복해 지는 일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더라면 이 연출된 댄스 장면이 더 이질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함께 지내던 가족들과도 떨어져 더 먼 다른 나라에서 홀로 지내게 되고, 듣는 것 역시 그다지 진전이 없게 된 현실에 비춰 보았을 때 감독은 더 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서 데니사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퀸 오브 사일런스'는 일반적인 다큐와는 다르게, 실제 주인공들과 함께 만든 영화에 가깝다. 그냥 의미상 함께 만든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데니사와 아이들이 이 작업을 이해하고 연기하며 함께 만든 영화.


아마 이 작품을 본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하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감정이 들기 이전에 데니사의 환하게 웃는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 미소가 남긴 의미가 깊은 여운으로 남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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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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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



이번 EIDF 2014에서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애런 슈워츠에 관한 작품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다.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인터넷을 위해 태어난 소년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말 제목인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IT업계에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였다. 앨런 슈워츠는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블로그를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RSS를 개발한 것은 물론, 저작권과 관련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 역시 만든 장본인이다. 특히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이미 프로그램에 눈을 떠서 자신이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바를 코드로 구현 하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그의 인생에 대해 특히 천재 프로그래머로서의 면면 외에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앨런 슈워츠는 단순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용감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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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 그가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미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현대 정보 통신 이면에 숨어 있는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친다. 무엇이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는가? 2014년 Hot Docs 개막작


세상을 바꾼, 혹은 바꾸려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보면 감탄과 동시에 우러러 보게 되는데, 앨런 슈워츠의 경우는 정말 최근 내가 알게 된 누군 가의 삶 가운데 가장 진심으로 우러나와 그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주장했던 것들은 그가 천재 개발자나 해커여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해할 만한 평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 문제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순 없을 땐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역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던. 그래서 천재 해커로서 그가 이룬 것들 보다 오히려 사회운동가로서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더 대단하고 인정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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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가 사회의 불합리와 싸워온 과정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너무도 보편적이고 뻔하게만 느껴지는, 바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명제였다. 더 나은 세상은 누구나 꿈꾸지만 막연하거나 실제로는 이를 위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진심으로 이를 위해 싸우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겁내지 않았던 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몹시 두려워 했고 힘겨워 했다) 애런 슈워츠의 삶과 행동을 보니 무언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 그러니까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만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시스템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애써 생산한 콘텐츠를 너무 쉽게 도용하는 잘못된 사용과 이해가 만들어 낸 상황들 때문이기도 한데,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좀 더 공유 보다는 만든 사람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시스템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후 그의 삶에서 그가 보여준 정보 공유가 한 사회, 아니 세대와 역사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작게 생각하면 정보라는 것은 생산하거나 처음 취득한 사람이 개인적 이익의 측면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정말 속 좁지만 내가 어렵게 알게 된 걸 그저 남이 쉽게 알게 되는 자체가 못 마땅해서 지식 공유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애런 슈워츠의 경우 처럼 이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이 한 사회의 단위로 공유될 때, 그 이전엔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까지 가능한 가를 그가 설파 한 논리는 물론 실제 그의 생각을 믿고 있던 이들이 이뤄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애런 슈워츠는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프로그램 안에 갇혀 있는 우리들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유라는 마법의 스펙트럼이 코드로 쫙 머리 속에 펼쳐졌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의 삶에 진정으로 감동 받았고,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만들고자 했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까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 다시보기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112658&lectId=10245365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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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인디게임 (Indie Game: The Movie, 2012)

모든 인디 제작자가 겪게 되는 일들



정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거기다가 인터넷에서 다시 보기로 까지!) EIDF! 매 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영화제라 이번 역시 어떤 작품을 먼저 볼까 고르던 중이었는데, 일단 가장 구미가 당겼던 '인디게임'을 선택하였다. 뭐 게임이라면 워낙 관심이 많고, 지난 해 흥미롭게 읽었던 조던 매크너의 '페르시아 왕자 개발 일지'처럼 내가 평소 즐기는 게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 궁금했기에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택했다. EIDF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간략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에드먼드와 토미는 게임 <Super..Meat..Boy>의 출시를 7개월 앞두고 있고,..필은 4년 동안 준비한 게임 <FEZ>의 공개를 5개월 남겨두고 있다...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한 스크린 뒤에는 개발자들의 고난과 역경만이 계속되는데……...과연 게임은 무사히 완성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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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디게임 한 편이 어떤 과정, 특히 소비자는 미처 알기 어려운 힘겨운 과정과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출시가 가능한지 그 이면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론 사실 '인디게임' 이라는 제목 가운데 '게임'에 더 흥미가 느껴져서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보고 난 느낌은 '인디'에 더 전반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게임 측면으로는 나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엑스박스 마켓 플레이스에 출시되는 인디 게임을 다룬 이야기라 하나 하나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역시 '인디'게임의 제작 과정을 소재로 했다는 것. 대형 게임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이 출시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물론 이 과정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다) 1~2명의 개발자가 기획, 개발, 디자인, 퍼블리싱,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독립적인 제작과정의 이야기는,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과정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게임 개발이라는 특성상 홀로 사회와 멀어져 오랜 시간을 개발에만 몰두하거나, 그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개발한 게임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심리적 상태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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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인디 게임과 그 시장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부터 출시까지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십분 공감할 만한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서비스를 운영했던 입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특히 최근 다른 새로운 서비스(제품)를 처음부터 하나 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터라, 이들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일들은 물론, IT업계에서 기획, 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본다면 아마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EIDF는 정말 감사하게도 방영 시간을 놓친 작품이라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보기를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하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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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BS 국제다큐영화제]

특별 추천작 및 개막작 _ 블랙 아웃 (Black Out)



지난 토요일(12일), 매봉역에 위치한 EBS 사옥에서 있었던 제1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EIDF)의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 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지난 번 '계단 2'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EIDF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소개를 했었었는데, 한 번 더 추가하자면 전 세계의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소개하는 '좋은' 영화제로, 극장은 물론 TV에서도 영화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영화제였는데, 좋은 기회에 개막전에 미리 간담회에 초대 받아 자세한 설명도 듣고, 개막작인 '블랙 아웃 (Black Out)'을 가장 먼저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어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의미 깊었던 시간은 EIDF의 프로그래머 분이 직접 소개해주신 'EIDF를 즐기는 10가지 방법'이라는 내용의 간단한 발표였는데, 특히 시놉시스 등 기본 정보 만으로는 흥미를 이끌기에 조금은 부족함이 느껴졌던 작품들을, 몹시 보고 싶게 끔 만드는 핵심적인 소개의 시간이라 매우 유익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EIDF를 매년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렇게 좋은 영화제인 것에 비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라는 점이었거든요. 물론 다큐멘터리 라는 장르의 특성 상 대중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고 다큐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해소 시킬 만한 극 상업 영화 못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여럿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도 별로라는 평을 듣기 이전에 많은 분들이 아직 존재조차 모르는 현실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포스팅으로나마 EIDF를 소개하고자 하는 점도 있구요.





이 시간을 통해 제가 특별히 흥미를 갖게 된 몇 작품을 소개하자면,


1. 게이트키퍼 (The Gatekeepers) _ 드롤 모레 감독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 중 하나 인 신베드(Shin Bet)의 지난 30년 간 수장을 지낸 6명의 심층 인터뷰를 담은 작품으로, 정보기관이라는 특수한 조직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 역사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2.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Google and the World Brain) _ 벤 루이스 감독


현재까지 1천만 권의 책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다는 구글. 하지만 이 가운데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책들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빅 브라더가 되고자 하는 구글의 프로젝트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 담긴 작품입니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으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네요.


3. 우리들의 닉슨 (Our Nixon) _ 페니 레인 감독


닉슨에 관한 자료와 뒷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죠 ㅎ 이 작품은 닉슨의 최측근이었던 삼인방 봅 홀드먼, 존 얼릭먼, 드와이트 체이픈이 직접 슈퍼8mm 카메라로 촬영했던 영상들을 담은 작품으로서, 기록으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쓰촨은 무너지지 않았다 (Fallen City) _ 치 자오


개인적으로 상실과 상실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런 면에서 주목하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쓰촨은 무너지지 않았다' 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삶이 무너져 버린 가족의 이야기와 그럼에도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5.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I Will Be Murdered) _ 저스틴 웹스터


이미 제목에서 부터 잔뜩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암살을 예고한 듯한 발언을 했던 과테말라의 로드리고 로젠버그라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자신이 암살 당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동영상이 공개되며 이 문제는 대통령과 과테말라 전체를 혼란에 휩싸이게 만드는데.. 아, 이 작품도 안보고는 못 배기겠네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날은 간담회가 끝나고 가장 먼저 개막작 '블랙 아웃'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요, 평소 EBS SPACE 공감의 공연이 펼쳐지는 곳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에바 웨버 감독의 이 작품은 서아프리카의 빈국 기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인구의 80%가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해 공부를 하려는 어린 학생들이 밤이면 유일하게 전기가 공급되는 공항이나 주유소 등의 불빛에 의존하여 공부를 하는 모습을 통해, 기니라는 나라의 현실은 물론, 우리의 삶을 되 돌아 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IDF의 프로그래머 분께서도 간담회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개인적으로도 EIDF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가정에서 손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일 텐데, 그런 면에서 '블랙 아웃'을 통해 만나보게 된 기니의 현실은, 얼핏 들어왔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47분의 길지 않은 러닝 타임에도 기니의 핵심을 관통하는 여러 가지 담론에 대해 떠올려 볼 수 있었으며, 이들에 비해 너무도 부유해 한 편으론 배부른 현실에 놓인 우리를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EIDF 영화제는 10월 18일 부터 25일 간 TV EBS채널과 건대 시네마테크, 고대 시네마트랩, 인디스페이스 등을 통해 상영될 예정이며, 자세한 스케쥴 및 내용은 아래 EIDF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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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한 달간 꼬박꼬박, 마치 수업을 듣는 것처럼 한 시간도 빼놓지 않고 함께 했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Justice)' 강의가 모두 끝이 났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일방적이지 않은 (하지만 결국 노련한 마이클 샌델의 손바닥 안에 있는) 토론 방식 자체가 흥미로웠다. 평소에 쉽게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충분히 들어보고, 한 편에 서서 다른 한 편의 논리를 무너 트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상대가 설득 당하지는 않을 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상대의 논리를 경청하며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것에 호의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선입관이었는데, 마이클 샌델에 관한 선입관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강의에 대한 선입관이었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처럼 답이 너무 뻔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 도출해 내기 어려운 주제일 경우엔 이런 선입관이 더 깊게 작용하게 되는데, 일반적인 경우 이런 주제의 결론은 아무리 잘 된 경우라도 고작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정의란 무엇입니다'라고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렸을 때 '그 정도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잖아'라고 너무 쉽게 예상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도 무언가 큰 가르침을 얻기 보다는 그저 과정을 즐기는데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이번 마이클 샌델의 '정의' 역시 그 토론 과정과 방법론에 주목하며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 강의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게 중요하다).

그렇게 주제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자세로 보게 된 마지막 강의. 지금까지 거의 자신의 주장은 펼치지 않았던 (펼치더라도 마이클 샌델로서 하기보다는 다른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하던) 마이클 샌델은 드디어 '정의'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역설이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원화 사회로 각각 추구하는 선의 가치가 다른, 그래서 정의라는 것에 정의도 저마다 다를 수 밖에는 (틀린 것이 아닌)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의란 이런 것이라고 하나의 가치관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실 여기서 나는 크게 한 방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나만의 가치관이 정립된 이후부터 줄 곧 누군가와 의견을 나눠야 할 일이 있을 때, 대부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왔었다. 물론 이런 중립적 태도는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는,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 만은 없다는 (내가 나의 주장을 옳다고 믿는 것처럼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전재 하에)것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면서 갖게 된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 이런 중립적인 태도는 마이클 샌델이 마지막 결론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상대의 대한 이해에 근거하기 보다는 회의적인 입장으로 인한 결과일 때가 더욱 많아졌다. 간단하게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토론을 벌이다가 상대가 절대 내 의견을 이해하지 못한 다거나 합의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 회의적인 태도로 '이 토론은 끝날 것 같지 않다'라는 마음에 중립적인 것으로 마무리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토론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아, 이 상대와는 어차피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해' '서로 마음만 상할거야'라는 생각에 애초부터 회의적 중립 태도를 갖게 되곤 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중립적 태도란 것은 허울 좋은 '중립'과 '이해' 일 뿐, 사실 회의적이고 외면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회사에서 일 적인 주제로 혹은 그 밖의 여러 주제들로 의견을 나눌 때, 나는 언제부턴가 처음부터 중립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나는 언제부턴가 중립에 서야만 한다는,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내 의견보다는 소수에 서서 그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겠다는 마음에 (여기에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일종의 희열 탓도 있었다), 무엇이 옳은 가에 대한 문제는 종종 뒤쳐지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마지막 강의를 통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외면하지 말아라' '외면하지 않고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정의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라고. '외면하지 말라'는 그의 결론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중립이라는 허울 좋은 방법을 앞세워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 본심이야 어찌되었든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면 좀 더 편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끊임없이 정의에 가까워지기 위해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은, 훨씬 더 귀찮고 번거로우며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강의가 내 이성에 작지만 실천을 가능케 하는 가르침을 주었다. 

'외면하지 말라'
'그것이 정의에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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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5th EIDF _ 히어 앤 나우 / Hear and Now
삶의 적응 그리고 러브 스토리


제 5회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어느새 부턴가,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만큼이나 좋아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는데, 요즘 워낙 정신이 없는 탓에 날짜도 미처 기억 못하고 있던
이번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의 한 작품을 우연히도 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이래서 이번 페스티벌이 좋다. 잠시 신경을 못써 놓칠 수도 있는 작품들을 다행히 TV에서 방영하는 관계로 극장에서만
상영할 때 보다는 훨씬 놓칠 확률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오늘 감상한 <히어 앤 나우>같은 경우도 집에서 해야될 일이 있어서
컴퓨터를 하던 중 틀어놓은 EBS채널에서 다큐가 시작되었고, 바로 컴퓨터를 접어두고 TV앞에 집중하게 된 경우다.
(참고로 이번 EIDF 영화제는 EBS를 통해서 뿐 아니라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
TV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도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시놉시스

감독은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처음으로 소리를 경험하는 생애의 기념비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부부는 65세의 나이에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하는데, 고요함에서 소리로의 여정은 쉽지가 않다. 얻는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은 이들의 경험은,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남는다. - 자료출처 : EIDF 홈페이지 (http://www.eidf.org/)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인간극장' 풍의 장애를 다룬 소소한 에피소드, 그 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치 애초부터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소스같은, 두 주인공 부부의 어린 시절 사진과 동영상들,
그리고 담백하지만 힘이 있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은 색다른 느낌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65년이나 청각 장애를 갖고 살아온 부부가, 65세의 노년이 되어서야 내이(內耳)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여기서 이들이 겪는
감정과 변화에 다큐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통 '인간극장'같은 형식의 일반적인 구성이었다면,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로
고통받는 부부의 삶을 조명하다가 마지막에가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예전에 장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리뷰하면서도 이야기 했던 말이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결말이라기 보다는, 비장애인이 장애를 갖고 있는 이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해피엔딩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가 없어지고 극복되어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장애인이 반드시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고
극복되었다 여겨지면(물론 일방적으로) 그걸로 바로 끝내버리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장애를 다루었던 대부분의 영화들(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은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행복한 세계를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 <히어 앤 나우>는 수술이라는 것을 종점으로 선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술 전에 앞으로의 일들을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부부의 심정 만큼이나 수술 후의 그들의 겪고,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해 더욱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선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인 아이린 테일러 브로드스키(Irene Taylor Brodsky)가 바로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노 부부의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부모의 고단함과 두려움을 잘 알고 있고,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가장 외곡없이 바라볼 수 있는 화자로서, 아이린은 이 다큐멘터리를 단순히 꿈만 같은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수술 이후에 이 노 부부가 겪는 일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것부터,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하려했던
중요한 이들까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부부 역시 수술을 통해 들을 수만 있겠된다면 모든 것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들리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 이들은,
오히려 들리는 비장애가 장애로 다가와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고,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행동까지 보이게 된다. 그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내이 수술은 부모님에게 그저 들리는 것만 주었을 뿐이라고'
'그저 들릴 뿐이라고'. 극중 어머니는 오히려 수술 이후에 더 큰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너무 많은 소리를 한꺼번에 접하다
보니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주의에서는 자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라며 기계를 착용하라고만 하는데, 이 어색하고
혼란스럽기만한 기계 착용이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과 장애로 다가오게 된다.
내이 수술을 한 뒤에도 보청기와 같은 기계를 귀에 착용해야만 듣는 것이 가능한데, 들리는 자유보다 들리지 않는 장애에
오랜 세월 익숙해진 부부는 오히려 이 자유를 만끽하기 보다는, 기계를 벗어놓고 있을 때 훨씬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그리도 바라던 출소를 했던 모건 프리먼이 너무도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낸
탓에 출소 후에도 다시 감옥을 그리워 할만큼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노 부부는 그토록 바랬던 들리는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조금 더 환경에 빨리 적응해 기계에 익숙해지려고도 하고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 비해 적응이 느린 것 또한 스트레스고, 자신도 남편과 비슷한 속도로 적응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매우 현실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보기 힘든 디테일로서,
이 이야기를 단순히 장애에 관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노년에 접어든 두 부부의 깊은 삶과 러브 스토리로 감싸 안고 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위해 너무 앞서나가지 않고 속도를 맞춰주고, 3개월, 6개월이 지나도록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아내는
1년이 지나고서야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것조차 '완전히 수술이후에 적응해 이젠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식이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두 부부의 대화와 뒷 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함께 겪어오며 깊어진 그들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저들처럼 오래 살지 않고서는,
저들처럼 오랜 세월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바로 '그것' 때문에, 한적한 길가에서 서로 '당신이 날 챙겨줘야지'
하며 서로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치는 모습에서 깊은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나 다큐는 많이 봐왔지만, 단연코 이 다큐처럼 더도 덜도 없이, 하지만 따뜻한 심정으로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고. (최근 재미있게 보았던 러브 스토리라면 '월-E'가 있겠다 ;;;)

아내 - 경적을 울리는 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편 - 그것도 대화지. 이쪽으로 비켜, 저쪽으로, 이렇게 경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니까.
아내 - 근데 이건 뒤 차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거 잖아요. 그러니까 대화라고 할 수 없죠.
남편 - 그렇네. 이건 대화라고 할 수 없겠네.


한 번 본 기억으로만 쓴거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이런 대사는 절대 시나리오 작가는 쓸 수 없는 경지의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작품을 꼭 나중에라도 보여주고 싶다.


1. EBS Space 2008-09-25 10:00
   아트하우스 모모 2008-09-26 11:00
   아트하우스 모모 (2차) 2008-09-27 10:30   

  아직 못 본 분들 가운데 시간이 되는 분들은 EBS Space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위와 같이 상영 예정이니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간대가 별로 좋지는 않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제5회 EBS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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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Morrison _ Undiscovered

최근 EBS에서 목요일 밤마다 하는 애비로드 라이브 방송은,
교육방송의 설립의지대로 참으로 유익하다.
첫 날부터 레닷이 출연하더니 3주째인 오늘은 제임스 모리슨과 데이브 메튜스, 크렉 데이빗이 나왔다.
다른 뮤지션들은 이미 잘 알고 있고 노래도 좋아하는 편이였지만, 제임스 모리슨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너무 떴기 때문이며, 더 큰 이유는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 'You Give Me Somthing'이
국내 CF와 방송에 너무 자주 사용되면서 이미 입맛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CF나 방송에서 좋은 음악을 너무 골라쓰는 것에 있어서 조금 반감이 있는데,
뮤지션이 의도하지는 않았을 전혀 다른 의도의 광고에 좋은 노래가 쓰이고,
가끔은 가사까지 코믹으로 계사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무이자 무이자'로 알고 있는 '빠로레 빠로레(Paroles Paroles)'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듯
모 사이트의 지식인 질문을 보니 '빠로레'가 '무이자'라는 뜻 아니에요? 라는 질문이 있더라.....-_-).

그래서 제임스 모리슨도 처음부터 관심이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의 노래는 이미 너무 유명해져있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앨범은 들어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어제 방영한 애비로드 라이브에 출연한 그의 음악은,
단순히 'You Give Me Somthing'만으로 기억되기엔 너무 아쉬운 진정성이 있었다.
(물론 이 곡이 가장 좋긴 하더라;;)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인터뷰에서 혹자들은 자신을 음반사에서
구미에 맞게 기획된 가수라고들 생각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말도 않되는 일이며, 처음 음악을 시작할때부터
음악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선입관이란것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진정성과 진실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는 가장 무서운 것.
그래서 역시나 EBS는 나를 교육시키는 유익한 방송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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