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 다크 월드 (Thor : The Dark World, 2013)

어벤져스의 그늘 아래 놓인 속편



서두에 밝히자면 난 어벤져스의 멤버들 가운데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히어로들 중에서도 토르를 특별히 좀 더 좋아하는 편이다. 오래된 마블 코믹스의 팬들에 비하면 그 정보나 이해력은 미비한 수준이지만, 영화로 시작한 토르의 대한 호기심은 조금씩 코믹스로 이어졌고, 크리스 햄스워스라는 배우의 시원 시원한 매력과 맞물려 '토르'의 속편을 더더욱 기다리게 했었다. 그렇게 서울에선 보기 힘들었던 '토르 : 다크 월드'를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줄거리는 의외로 진전됨이 거의 없이 반복되는 양상이었다. 솔직히 전편에 비해 아주 조금 더 나아간 형태인데, '아이언 맨' 시리즈처럼 작품이 계속될 때마다 확장시켜 나아가는 것과 비교하자면, 조금은 아쉬운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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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스터와 스틸컷에서 공개된 제인 포스터 (나탈리 포트만)의 아스가르드 의상을 보았을 땐 기대보다는 우려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면 너무 뻔한 전개이면서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부분은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 전개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미 전편에서 세계관과 캐릭터 소개를 마친 토르의 속편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소극적인 전개와 캐릭터의 확장이 아쉬웠다.


단순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자면 아쉬울 것이 없는 구조이지만, 이미 소개를 마친 것은 물론 '어벤져스'를 통해서 또 한 번의 활약을 펼쳤던 토르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단순히 새로운 에피소드에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야기가 좀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했었는데, '토르 : 다크 월드'는 또 한 번의 에피소드를 선택하는 것에 그쳤다. 새로운 적과의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재미있고, 그 중심에 있는 토르와 로키와의 미묘한 관계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전편처럼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더 발전시켜 나아갔더라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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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케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토르라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처음 소개하는 기능도 물론 수행하고 있었지만, 로키의 이야기가 사실상 메인 스토리에 놓이면서 더 고전적인 느낌과 풍모를 갖추며, 다른 어벤져스의 영화들과는 다른 풍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알랜 테일러의 '토르 : 다크월드'는 액션이나 볼거리는 좀 더 화려해졌지만 (사실 이 부분도 더 화끈했어도 좋았다고 생각된다) 갈등 구조나 이야기의 짜임새 측면에서는 조금은 심심한 구성을 보여주며, 그냥 어벤져스 멤버의 또 다른 에피소드 정도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 하지만 물론 '어벤져스 멤버의 또 다른 에피소드'만으로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화 된 '어벤져스'라는 자체가 캐릭터 각자의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각자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또 다시 뭉쳤을 때의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순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나중에 '어벤져스 2' 겪인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했을 때, '토르 : 다크월드'의 이야기는 한 줄 정도의 대사로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 한 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고, 바로 그 재미가 전체적인 세계관을 다루고 있는 '어벤져스' 만의 독특한 포인트 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이 작품이 결코 아쉽다고 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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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된 생각은, 이미 '어벤져스' 이전에 자리를 잡은 '아이언맨'과는 다르게 다른 멤버들의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어벤져스'라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 될 때에는 분명한 한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각각이 자신의 영화를 만났을 때 뭔가 화끈한 전개를 이어가려고 해도, 추후 다시 뭉치게 될 '어벤져스'의 세계관과 시간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은 제한을 받을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팬들은 영화로서 '토르'를 만나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영화로서 토르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다.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토르라는 캐릭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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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로키 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담아냈다면, 이 작품 '토르 : 다크월드'에서는 '어벤져스' 이후 몰라보게 인기가 높아진 톰 히들스톤을 보란 듯이 활용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측면에서 로키를 둘러 싼 이 작품의 묘한 긴장감은 만족스러웠다. 팬들이 기대하는 로키의 매력을 보여준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토르와 적과의 대결 구도를 보완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영화 제목을 '토르'라기 보다는 '토르와 로키'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탱고와 캐쉬처럼), 로키라는 캐릭터가 그 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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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더 좋아했기에 더 아쉬움도 많았던 '토르 : 다크월드'였다.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토르의 시원시원한 매력과 로키라는 양면의 캐릭터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럼에도 또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물론 아이맥스 3D로만 보다가 작은 관에서 보니 답답함이 느껴져 그런 것도 있는 듯.



1. 이제 토르를 또 만나려면 다음 '어벤져스'를 기다려야 하는군요. 2015년 개봉 예정인데, 곧 오겠죠? ㅠ

2. 팬들의 성원만으로 보면 '토르 3' 이전에 '로키 1'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인데, 이건 불가능하겠죠? ㅠ

3. 이번엔 묘묘를 묘묘로 번역하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

4. 두 번의 쿠키가 나오는데 첫 번째 장면은 코믹스 팬이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긴 역시 어려웠고, 두 번째 장면은 그냥 소소한 장면으로 스토리가 연결되는 부분은 아니에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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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의 극한의 백조의 호수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항상 그랬다. 그의 이름을 알게 해주었던 영화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이 그랬고, 얼마 전 왕년의 스타 미키 루크를 다시금 끌어올린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에서도 그랬다. 아로노프스키는 항상 대상을 어떤 상황에 던져 두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심적 갈등과 신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었다. 극한이라는 것은 언제나 완벽이라는 것과 강박이라는 것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런 것에 관심이 많던 아로노프스키에게 '백조의 호수' 는 언젠가는 반드시 영화화 해야 했을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로노프스키는 백조의 호수를 상당히 늦게 접하게 되어, 한 명의 배우가 백조와 흑조의 두 가지 자아를 연기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감독 스스로도 정작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에 자세한 내용은 뒤늦게 알았던 터인지, '블랙 스완'에서는 누구나 알법한 이 유명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두 차례나 거듭 설명하고 있다).
 




뉴욕 발레단의 무용수 니나 (나탈리 포트만)는 누구보다 완벽한 안무와 실력을 갖고 있는 발레리나지만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 해야 하는 발레단의 새해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단장 인 토마스 (뱅상 카셀)로 부터 듣는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보게 된 단장은 니나를 주인공인 백조 여왕으로 캐스팅하고, 그녀는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에 몰입 또 몰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흑조를 더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과, 같은 발레리나로서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압박, 그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빼앗겨 버린 전 백조 여왕인 베스 (위노나 라이더)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자신이 갖지 못한 흑조의 매력을 갖고 있는 릴리 (밀라 쿠니스)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강박까지, 이 모든 것들을 여린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결국 '블랙 스완'은 강박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물론 이 강박은 완벽하기 위함 때문이다. 즉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니나는 (사실 이 작품은 강박 그 자체에 대한 텍스트에 더 가깝기 때문에, 본래 니나가 완벽주의자였는지 아니면 정황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벽해야만 했던 상황에 놓인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분위기로만 보자면 영화 속 니나는 둘 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나친 강박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와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자아분열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로 인해 니나는 엄마와 릴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 어디까지가 니나의 환상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허상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근접한 카메라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하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전하게 니나의 심리와 결합되어 움직인다. 여기에 동참한다면 관객 역시 니나가 겪는 불안한 심리와 강박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지하철 창에 비친 니나의 모습을 그리는 영상에서 우리는 감독의 전작 '더 레슬러'를 그대로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 뒤에 근접해서 들고 찍기 (Handheld)로 촬영된 방식에서 역시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아로노프스키의 전작 '더 레슬러'와 짝을 이루는 영화이기도 하다. '더 레슬러'에서 미키 루크가 연기한 랜디와 '블랙 스완'의 니나 모두 신체를 이용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인 동시에, 부상에 대한 (혹은 신체의 변화) 공포가 있으며 신체를 활용하는 직업을 갖은 이로서 노쇠화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있다. 또한 서로에게 작용하는 방식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쩌면 극복 이상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계에 자신을 밀어붙여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맺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상 측면에 있어서도 다큐멘터리를 찍듯 거칠고 현실적인 질감을 보여주고 있는데, 같은 촬영 감독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일한 컨셉과 분위기로 구성된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의 촬영 감독인 매튜 리바티크 (Matthew Libatique)가 아로노프스키와 '레퀴엠' '파이' 등 여러 번 호흡을 맞춰왔던 터라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블랙 스완'을 보고 나서 '더 레슬러'를 보게 된다면 좀 더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블랙 스완으로 돌아와) 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니나의 강박을 그리되, 심리적 갈등에만 집중하거나 관객에게 보여지는 영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덜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 같은 심리변화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도 몹시 흥미를 갖고 있는 감독이다. '블랙 스완'에서는 이런 불안함과 강박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정도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더니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그야말로 그 강도와 속도가 심장을 뚫고 나올 정도로 폭발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로노프스키가 택한 바로 이것. 주저 없이 극한까지 몰고 가는 영화의 속도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 강도에 흠뻑 반했다. 사실 '블랙 스완'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발레 작품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다시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독처럼 이 이야기를 잘 몰랐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이야기를 겉핥기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블랙 스완'의 몰입 감은 최고수준이다. 또한 '블랙 스완'은 완벽한 '백조의 호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니나가 백조와 흑조 연기에 모두 완벽해 질 수록 영화는 점점 더 '백조의 호수'에 가까워 진다.
 





다시 매력을 느꼈던 그 '극한'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블랙 스완'은 주인공인 니나가 극심한 자아분열을 겪게 되면서부터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강도를 계속 높여 끝에 가서는 마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와 신지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극점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런 시각적인 표현 방법과 클라이맥스의 속도 그리고 이야기의 세기는 분명 과잉이다. 과잉이라는 것은 본래의 그릇을 넘어 넘쳐난다는 것인데, '블랙 스완'은 이 넘쳐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넘쳐나기를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잉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감정선을 잃지 않은 채 과잉의 끝까지 극한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이 극한을 영화와 함께 경험했다. 진짜 얼마 만에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극중 주인공과 같은 박동으로 뛰고, 허기지고 힘이 들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블랙 스완'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도 이것은 분명 과잉이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과잉이었다.
 





작품의 매력을 잘 살려낸 또 다른 주역은 역시 배우들이었다.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동년배 여자 연기자들보다 항상 한 발 앞서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블랙 스완'에서 그녀의 연기는 극한까지 몰고 간 감독 아로노프스키처럼 극한까지 표현해 내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작품이 끝난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 작품은 시각적인 표현이 지금처럼 없었더라도 아주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큼이나 무섭도록 연기하고 있는 나탈리 포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탈리 포트만이 발레 연기에 대역을 썼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이 판단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뱅상 카셀의 경우, 아주 오래 전 '증오' 때부터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나에게 있어 뱅상 카셀은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이 아니라 그냥 오롯이 뱅상 카셀이다), 오랜만에 큰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다. 특히 뱅상 카셀이 이렇게 목소리가 좋았었나? 라고 느낄 정도로 세련된 발레단 단장의 캐릭터를 세련되고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확실히 얼굴 속에 독기를 가득 담고 있는 뱅상 카셀의 캐스팅은 나탈리 포트만 만큼이나 완벽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했던 '일라이'에서는 비주얼 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과는 달리, 밀라 쿠니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릴리' 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데에 아마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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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 평가에 있어서는 앞서서 여러 번 언급했던 작품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거친 입자의 영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최신 영화 블루레이와 1:1 화질 비교했을 때에는 '아니 화질이 왜 이래?'하고 놀랠 수도 있으나, 본 소스를 트랜스퍼한 결과물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우수한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측면의 평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 부분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의도된 거친 입자와 차별화되는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확실히 샤프니스라던가 선명도와는 거리가 먼 화질이고 그레인을 가득 머금은 영상이지만, 이 모두가 의도된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만약 '블랙 스완'의 영상이 칼 같은 선예도로 표현되었더라면 전혀 다른 작품이 (단순 화질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운 타이틀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감독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극한으로 치닫는 작품의 리듬을 전달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전작 '더 레슬러'와 '천년을 흐르는 사랑'에 이어 이 작품의 음악을 맡고 있는 클린트 만셀 (Clint Mansell)의 사운드 트랙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데, 강약의 세기 전달에 있어 여느 액션 영화 못지 않은 쾌감을 준다.




클래식한 발레 음악과 기괴함과 불안함을 더해주는 인더스트리얼 계열 사운드의 조화는, '블랙 스완'의 음악을 단순한 클래식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는데, 블루레이의 차세대 사운드는 이 두 가지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함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액션 영화 못지 않은 우퍼의 활용과 몰아치는 사운드의 향연 역시 추천할 만 하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에서 첫 번째로 만나보게 되는 것은 '제작과정'인데, 총 세가지 챕터로 나뉘어 각 주제별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감독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인터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 밖에도 편집자, 촬영 감독 외 스텝 들의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촬영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 무엇보다 풀HD의 깔끔하고 쨍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반갑다.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내용들도 비중 있게 들려주는데, 작품 속에서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니나의 방과 같은 특별한 세트 외에도 뱅상 카셀의 연기한 단장의 공간들에서도 숨겨져 있는 디자인적 디테일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촬영을 맡은 매튜 리바티크의 인터뷰와 작업 방식을 통해 이 작품의 독특한 영상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을 비롯해 뱅상 카셀, 밀라 쿠니스, 위노나 라이더 등 배우들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의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감독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작품을 연기하기 위해 각각 준비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들려준다. 나탈리 포트만의 경우 니나를 연기하기 위해 수개월간 발레 연습과 혹독한 트레이닝을 해야만 했었는데, 물론 실제 영화에 사용된 장면들 가운데는 그녀가 연기하지 않은 장면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얼굴을 대체한 장면들도 있지만, 그녀의 많은 연습과 발레리나 연기에 의문 부호를 갖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블랙 스완'에 사용된 특수 분장 및 효과,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등에 대해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에도 CG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좀 더 실제 분장을 선호하는 아로노프스키의 성향에 맞게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실제의 것을 활용하는 한 편, CG의 경우도 실제 발레리나의 연기와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를 합성하는 모션 캡쳐를 비롯, 극 중 니나의 환상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작과정 외에 '발레' '프로덕션 디자인' '의상 디자인' '나탈리 포트만 – 프로필' '대런 아로노프스키 – 프로필'에서는 각각 2~3분 여의 짧은 분량으로 각 주제에 대한 짧은 영상과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이 밖에 '감독과 배우의 대화 – 역할 준비하기'와 '감독과 배우의 대화 – 카메라와 함께 춤추기'에서는 각각 4분여, 1분 30초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나탈리 포트만의 대화 형식으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폭스 무비 채널로 제공되는 감독과 4명의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었다 (폭스 무비 채널 영상만 SD로 제공).

 



[총평]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은 완벽 그 자체에 관한 텍스트이자, 아로노프스키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신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자아분열의 심리묘사를 거침없는 과잉의 리듬으로 쏟아낸 심장 뛰는 작품이었다. 이런 극한의 백조의 호수를 다시 금 체험하기에 블루레이 타이틀만큼 좋은 선택은 아마 없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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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 천둥의 신 (Thor, 2011)
대서사와 셰익스피어를 입은 마블 히어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총집합하는 '어벤져스 (The Avengers)'의 또 다른 멤버 '토르 (Thor)'를 보았다. 토르가 영화로 만나볼 수 있었던 다른 마블의 히어로들과 다른 점이라면, '스파이더 맨' '헐크' '아이언 맨' 등의 경우 후천적으로 사고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슈퍼 파워를 얻고 히어로가 되는 것에 (혹은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것에) 반해, 신화에 근본을 두고 있는 토르의 경우 이미 파워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시작점을 달리 한다. 이 시작 점이 다른 것은 특히 영화화에서 큰 차이점을 갖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물이 쉽게 말해 영화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직 멀쩡한'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토르'는 오히려 그 반대로 초중반 토르가 힘을 잃게 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 세상)가 교차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마블 히어로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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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점은 '토르'는 이미 대중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대 그리스 희곡 및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토르'는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인과 쉴드 (S.H.I.E.L.D)로 대변되는 현재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고전적인 서사와 갈등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현재의 이야기와 교차하지 않았다면 '타이탄' 같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토르'는 왕과 왕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한 이야기에 히어로 물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 때문에 연출을 캐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배우인 동시에 감독이자 극작가인,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캐네스 브래너 만큼 '토르'가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되는 점을 잘 표현해낼 이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캐네스 브래너가 '토르'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이야 걱정할 바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히어로물이자 블록버스터 연출로서의 캐네스 브래너는 의문 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갖는 한계 내에서 이 정도 결과물이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스럽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액션 전문가가 시나리오까지 맡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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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가 갖는 한계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처럼 소개가 필요한 첫 작품이었다는 공통의 한계와 다른 히어로와는 다르게 탄생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극적인 공감대를 얻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그 만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토르가 지구로 추방 당한 뒤 겪는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은 그가 진정한 히어로로서 거듭나는 탄생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사실 빠른 전개 탓에 적극적인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제인 (나탈리 포트만)과의 로맨스도 브루스 배너나 피터 파커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토르'는 그 자체로도 소개가 주목적인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 나올 '어벤져스'의 큰 그림으로 보자면 더더욱 '토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의미가 컸기에, 이 한 편만으로 평가 받기에는 조금 억울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토르'의 속편이 나온다거나 '어벤져스'에서는 좀 더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상태라(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소개를 마쳤으니 말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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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쩔 수 없는 한계들 때문이었는지, 극 중에서 가장 비중있게 느껴진 캐릭터는 주인공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가 아니라 동생 '로키 (톰 히들스톤)'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극중 토르는 쿨하고 우직한 매력은 있지만 (마치 사조영웅전의 곽정과도 같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내적인 갈등이라던가 감정의 동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비해 로키라는 캐릭터는 그 탄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영화에 주요 갈등 및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서, 캐네스 브래너가 그린 셰익스피어적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스포일러 시작)
로키가 극의 주된 갈등을 쥐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악한이라기 보다는 동정에서 이해될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왕국을 지배하려는 야욕보다도 그저 아버지에게 용기있고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별다른 갈등구조가 없던 토르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고, 더 나아가 엔딩 쿠키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만약 계속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그의 행동으로 인한 스토리에 좀 더 깊이를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아주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번 영화 '토르'는 토르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로키로 인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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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우리에게 마침내 선보일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1. '아이언맨 2'의 쿠키 장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묠니르 장면은 '토르'에서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것 외에도 '토르'에는 '어벤져스' 떡밥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있는 편이에요. 동료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이야기라던가, 토니 스타크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그렇고.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더군요. 이래서 마블 코믹스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연계되는 부분이 깊다보니 말이죠.


2. 오딘의 아들을 '오딘손'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토르의 풀네임이 Thor Odinson 이네요 ^^;


3. 토르가 지구에 와서 겪는 코믹한 장면들에서는 의외로(?) '엑셀런트 어드벤쳐'가 떠오르더군요.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이 쇼핑몰 가던 장면이 겹쳐져서 ㅎㅎ


4. 짧은 분량이었지만 역시 '어벤져스'를 위한 포석이었던 '호크아이'의 출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호크아이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터라 보는 순간 100%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레미 레너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봤기에 비중있는 캐릭터라는건 알 수 있었죠 ㅎ


5. 그의 반해 아사노 타다노부의 활용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이런 작품(비중)으로 헐리웃을 노크할 배우는 아닌데, 그냥 들러리 정도로 묘사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군요.


6. 요툰하임의 분위기나 이곳 캐릭터들의 모습 그리고 쿠키장면에서 등장한 큐브까지, 얼핏 '트랜스포머'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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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항상 그랬다. 그의 이름을 알게 해주었던 영화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이 그랬고, 얼마전 왕년의 스타 미키 루크를 다시금 끌어올린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연출할 작품인 '로보캅'과 '엑스맨 : 울버린 2'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애로노프스키는 항상 대상을 어떤 상황에 던져 두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심리와 신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었다. 극한이라는 것은 언제나 완벽이라는 것과 강박이라는 것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런 것에 관심이 많던 애로노프스키에게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은 언젠가는 영화화 해야 했을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애로노프스키는 백조의 호수를 상당히 늦게 접하게 되어, 한 명의 배우가 백조와 흑조의 두 가지 자아를 연기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감독 스스로도 정작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에 자세한 내용은 뒤늦게 알았던 터인지, '블랙 스완'에서는 누구나 알법한 이 유명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두 차례나 거듭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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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발레단의 무용수 니나 (나탈리 포트만)는 누구보다 완벽한 안무와 실력을 갖고 있는 발레리나지만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발레단의 새해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단장인 토마스 (뱅상 카셀)로 부터 듣는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보게 된 단장은 니나를 주인공인 백조 여왕으로 캐스팅하고, 그녀는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에 몰입 또 몰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흑조를 더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과 같은 발레리나로서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압박, 그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빼았겨 버린 전 백조 여왕인 베스 (위노나 라이더)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자신이 갖지 못한 매력을 갖고 있는 릴리 (밀라 쿠니스)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강박까지, 이 모든 것들을 여린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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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블랙 스완'은 강박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물론 이 강박은 완벽하기 위함 때문이다. 즉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니나는 (사실 이 작품은 강박 그 자체에 대한 텍스트에 더 가깝기 때문에, 본래 니나가 완벽주의자였는지 아니면 정황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해 완벽해야만 할 상황에 놓인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분위기로만 보자면 영화 속 니나는 둘 다인것 같지만) 지나친 강박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와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자아분열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로 인해 니나는 엄마와 릴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 어디까지가 니나의 환상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허상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근접한 카메라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하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전하게 니나의 심리와 결합되어 움직인다. 여기에 동참한다면 관객 역시 니나가 겪는 불안한 심리와 강박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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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니나의 강박을 그리 되, 심리적인 면에만 집중하거나 관객에게 보여지는 측면에 있어서는 덜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그가 앞으로 맡게 될 '로보캅'과 '울버린 2'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같은 심리변화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갖고 있는 감독이다. '블랙 스완'에서는 이런 불안함과 강박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정도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서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그야말로 그 강도와 속도가 심장을 뚫고 나올 정도로 폭발한다. 사실 나는 바로 극한까지 몰고가는 영화의 이 속도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 강도에 흠뻑 반했다. 사실 '블랙 스완'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독처럼 이 이야기를 잘 몰랐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이야기를 겉핥기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블랙 스완'의 몰입감은 최고수준이다. 또한 '블랙 스완'은 완벽한 '백조의 호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백조와 흑조 연기에 모두 완벽해 질 수록 영화는 점점 더 '백조의 호수'에 가까워만 진다.

다시 매력을 느꼈던 그 '극한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블랙 스완'은 주인공인 니나가 극심한 자아분열을 겪게 되면서 부터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강도를 계속 높여 끝에 가서는 마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와 신지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극점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런 시각적인 표현 방법과 클라이맥스의 속도 그리고 이야기의 세기는 분명 과잉이다. 과잉이라는 것은 본래의 그릇을 넘어 넘쳐난다는 것인데, '블랙 스완'은 이 넘쳐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넘쳐나기를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잉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감정선을 잃지 않은 채 과잉의 끝까지 극한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이 극한을 영화와 함께 경험했다. 진짜 얼마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극중 주인공과 같은 박동으로 뛰고, 허기지고 힘이 들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블랙 스완'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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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동년배 여자 연기자들보다 항상 한 발 앞서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블랙 스완'에서 그녀의 연기는 극한까지 몰고간 감독 애로노프스키처럼 극한까지 표현해 내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작품이 끝난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 작품은 시각적인 표현이 지금처럼 없었더라도 아주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만큼이나 무섭도록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뱅상 카셀의 경우, 아주 오래 전 '증오'부터 은근히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나에게 있어 뱅상 카셀은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이 아니라 그냥 오롯이 뱅상 카셀이다), 오랜만에 깊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다. 특히 뱅상 카셀이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었나? 라고 느낄 정도로 세련된 발레단 단장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확실히 얼굴 속에 독기를 가득 담고 있는 뱅상 카셀의 캐스팅은 나탈리 포트만 만큼이나 완벽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했던 '일라이'에서는 비쥬얼 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과는 달리, 밀라 쿠니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릴리' 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데에 아마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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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아주 불안하고 관객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자아분열의 심리묘사를 다룬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은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기가 빨려버린 것만 같은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또 한 번 이 극한의 예술을 한 번 더 맛보고 싶다.


1. 예전에는 그냥 흘려보거나 지나쳤던 발레 '백조의 호수'를 '블랙 스완'을 보고나니 너무도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갖고 있는 DVD들 중에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타이틀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2. 잔잔한 것만큼이나 극한에 대한 도전적인 영화를 즐기는 저에게 있어서 '블랙 스완'은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손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3. 글을 쓰며 영화를 한 번 더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오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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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Brothers, 2009)
토비 맥과이어마저 변화시킨 그 것.



일찌감치 지난해 하반기 기대작이었던 짐 쉐리단의 '브라더스 (Brothers)'를 조금 늦었지만 개봉하여 만나볼 수 있었다. 짐 쉐리단은 일찍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한 '나의 왼발 (1989)',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감독이었는데, 좀 의외였던 50센트 주연의 '겟 리치 오어 다이 트라인 (2005)'이후 오랜만에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시 포스터를 채우고 있는 세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피터 파커 토비 맥과이어와 나탈리 포트만 그리고 제이크 질렌할까지. 이 세 명의 배우만으로도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은 되겠구나 싶어 보게 된 '브라더스'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특히 토비 맥과이어) 어쩌면 배트남 전처럼 그리고 9.11처럼 미국의 오랜 트라우마로 남게될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관한 쓸쓸한 뒷 맛(동시에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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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봐도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샘(토비 맥과이어)은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와 두 딸을 남겨둔 채 또 한번 아프카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의 파병이 결정되던 날 그의 동생인 토미(제이크 질렌할)는 출소를 한다. 그렇게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된 샘은 적의 공격으로 헬기 추락사고를 겪게 되고, 미국에서는 이들을 찾지 못해 전사로 결정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샘은 부하 군인과 함께 살아남아 아프칸 세력에 포로가 되었고, 샘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그레이스와 가족들의 빈자리는 그의 동생인 토미가 조금씩 채워나간다.

'브라더스'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영화는 최근 본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였다. '허트 로커'야 군인과 전장을 배경으로 했으니 좀 더 본격적이긴 하지만, '브라더스' 역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로 느껴졌다. 두 작품은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데 전자는 전쟁 그 한 가운데 놓여진 인물의 중독과 공포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후자는 전쟁이 야기시키는 갈등과 슬픔들을 통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든다. 이 방식 역시 전쟁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브라더스'는 진정성이 있었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중요한 영화는 전혀 아니지만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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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다녀왔을 정도로 문제아인 동생 '토미'. 토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가는 형 샘에 비해 자식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었고, 샘이 전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가족의 갈등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된다. 토미는 아버지에게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던거죠!'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영화는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이 갈등은 여기서 더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형의 빈자리를 착실하게 토미가 채워나가며 형수인 그레이스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듯 하지만, 이것 역시 이 곳에서 멈춘다. 영화는 이렇게 몇가지 일반적인 길들을 보여주지만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않고, 다시 샘(토비 맥과이어)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랑하는 아내 그레이스와 다시 만나기 위해,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두 딸을 다시 한번 품에 안기 위해, 샘은 자신의 후임병을 직접 죽이는 일을 그들의 강요에 의해 저지르고야 만다.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게 되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서, 샘은 아내와 딸들을 다시 볼 것을 생각하며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샘은 동생과 아내의 관계를 의삼하게 된다. 동생과 아내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샘은 이 말을 믿지 못한다. 이 둘은 정말 샘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관객이 본 것처럼 이들의 관계는 키스 한 번으로 끝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관객 뿐 샘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샘의 행동은 '관객으로서' 공감이 될 정도로, 샘이 아프칸에서 겪은 일들은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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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그 것만을 위해 자신의 후임병을 스스로 죽여야만 했던 샘에게, 아내와 동생의 이런 미묘한 관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용서하기도 어려운 것이었을 터. 샘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지고 결국 딸들에게도 위협을 가하기까지 이른다. 사실 영화를 평면적으로만 본다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샘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두 딸들의 말처럼, 차라리 토미랑 더 살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그런데 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겪은 일들을 안다면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전쟁이란 것이 한 가정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는 점이다. 함께하기 위해 신념을 꺽고 살인마저 저지르게 만들었던 남자가 스스로 이런 가족을 떠나 아프칸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게 될 정도로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버린 것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빠와 남편이 돌아왔으나 차라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도 역시 전쟁이라는 무서운 존재다.

첨에 영화를 보고나서는 '브라더스' 라는 제목의 의미를 잘 접목시킬 수 없었는데, 글을 쓰는 와중에 한 가지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영화 속 동생 토미는 형이 총을 들고 난동을 부릴 때도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할 때도 단 한번도 형을 질책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평생 형과 비교당하며 살았고, 형수인 그레이스와 두 딸들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려고 했던 자가 아니었던가. 형의 몰락을 계기로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토미이지만, 토미는 단 한번도 이런 마음을 먹지 않은 듯 하다(형이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토미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끝까지 형을 이해하려 안심시키려 하는 것도 토미다. 이것을 단순히 그 동안 감옥에 다녀온 것을 비롯해, 잠시나마 형수와 그런 맘을 품었던 것에 죄책감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제목 '브라더스'처럼,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위로와 포용을 할 수 있는 형제로서의 무언가가 있다.

앞서서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미국에게 있어 앞으로도 계속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영화는 이런 주장을 더욱 뒷받침 해주고 있다. 영화 속 아버지는 힘들어 하는 샘을 보며 '나도 베트남에서 왔을 때 이유없이 화를 내고 조절하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은 미국의 오랜 트라우마인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아프칸 전쟁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아니 '왜?'라는 물음과 깊은 상처만 남긴 전쟁이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질식할 것 같아'라는 샘의 여린 한 마디는 이렇게 자의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린 상처 깊은 외마디 비명 같아 눈물이 핑돌았다(떠날 때는 그렇게 빠지지 않던 결혼반지가 돌아온 뒤에는 손가락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정도로, 변해버린 샘의 손가락을 보여주는 묘사도 짧지만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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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부제목으로 썼을 정도로 토비 맥과이어가 만들어낸 무서운 캐릭터는 피터 파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토비 맥과이어는 분노가 아니라 전쟁이 한 다정한 가장을 어떻게 변화시켜 버렸는지를 날카로운 턱선과 매마르고 날카로운 눈동자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이런 날카로운 연기를 보고서는 일라이자 우드가 '씬 시티'에서 맡았던 캐릭터가 떠올랐는데, 항상 해맑았던 일라이자 우드가 변하면 약간 사이코 틱한 느낌이라면, 역시 밝았던 토비 맥과이어는 정말 무섭도록 황폐한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싶었다(물론 캐릭터 차이겠지만서도;). 어쨋든 기존 피터 파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언제 폭발할지 몰라 시종일관 불안해하게 되는 영화 속 맥과이어의 모습에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이 영화는 순전히 그의 연기 덕택에 스릴러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1. 최근 '언 에듀케이션'을 통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캐리 멀리건이 깜짝 출연하더군요.
2. 사실 토비 맥과이어 만큼이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다름아닌 큰 딸로 출연한 아역 배우였어요. 마치 어른처럼 울음을 참으며 가슴으로 우는 연기나, 이렇게 무섭도록 변한 토비와 대결할 정도의 눈빛 연기나. '빵꾸똥꾸' 해리 만큼이나 강렬한 연기였어요.
3. U2의 음악은 영화 속에 'BAD'로 한 번, 이번 영화를 위해 만든 'Winter'로 한 번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영화를 보고나서 예고편을 보니 본편에는 없는 장면이 있군요.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장면 같긴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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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2007)
왕가위의 헐리웃 뮤직드라마

무엇보다 왕가위 감독이 주드 로, 노라 존스, 나탈리 포트만, 레이첼 와이즈 등 헐리웃 배우들을 데리고
어떤 영화를 찍었을까 궁금하게 했었던 영화. 왕가위 스타일은 <동사서독>에서부터 많이들 좋아했던
<중경삼림>은 물론, 많이들 난해해했던 <2046>에 이르기까지 잘 즐겨왔던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되었던 건 역시 노라 존스의 주연 캐스팅이었다.
'Don't Know Why'의 재즈/블루스/컨츄리 뮤지션으로 너무도 유명한 노라 존스이지만,
그가 과연 배우로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는 참으로 걱정이었다. 특히나 내가 알고 있는 노라 존스는
그렇게 활달한 성격도 아니고 순둥이라면 순둥이인 성격을 지닌 사람인데, 자신의 주 영역도 아닌
아니 전혀 다른 분야인 연기를 어떻게 해냈을지가 사실 걱정이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는 왕가위 감독도 인간 노라 존스를 알고 있었는지, 조금은 순둥이같은 캐릭터를
연기한터라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왕가위' 영화다. 왕가위 영화 특히 <중경삼림>을 인상깊게 본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 영화가 왕가위 영화임을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중경삼림>등 그의 주요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영상들(약간 느린 슬로우모션과 멈춰있는 배경속에서 인물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등의 기법)이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등장하고, 서로 다른 몇몇의 인물들이 시간과 공간을 두고(이 영화에서는 공간/지역을
두고)얽히고 섥히는 과정을 감각적인 영상미로 그려내는 방법 또한 여전하다.

씨네21 리뷰를 보다보니 '신인 헐리웃 감독이 왕가위에게 오마쥬를 바친 작품인듯 하다'라는 평을 했던데,
이 평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다. 이 영화는 분명 왕가위스럽긴 하지만 더 나아가지는 않고, 말그대로
그저 배경과 인물들만 서양으로 옮겨와 답습한 분위기를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옮겨오는 것 만으로도
이 황홀한 배우들 덕분에(여기나오는 배우들은 노라 존스까지 포함해서 내가 모두 평균이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라^^;)충분히 볼만했던 영화였지만, 작가로서의 왕가위라면 무언가 옷을 갈아입는 것 외에 더 나아가는
무언가를 기대했던 팬들에겐 조금은 아쉬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스토리보다는 이미지와 음악이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
영화인데, 일단 이미지를 중시한 스타일에 있어서 배우들의 캐스팅은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 노라 존스의 이미지를 많이 그대로 가져온 '엘리자베스'캐릭터를 비롯하여, 말끔한 정장만큼이나 이런
내츄럴한 이미지도 잘 어울리는 주드 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레이첼 와이즈가 오랜만에 좀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 듯 하고, 나탈리 포트만은 확실히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연기가 성숙해지고, 자신만의
아우라가 강해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굿 나잇, 앤 굿 럭>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데이빗 스트래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음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단 노라 존스가 출연하는 만큼
노라 존스 특유의 편안한 재즈/블루스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겠다.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신곡 'The Story'는 이 영화의 전반을 둘러싸고 쉽지 않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이 영화의 영화음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으로 유명한 라이 쿠더가 맡고 있는데,
그의 다양하고 박식한 음악적 역량을 또 한번 발휘한 음악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라이 쿠더 외에도
<바벨>등 영화음악감독으로 유명한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곡도 수록이 되어있으며, Cat Power, Amos Lee 등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흥을 주는 곡들이 가득하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영화의 특성상, 다른 영화들보다는 장면과 음악과의 아주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에 사운드트랙만으로도 충분히 들을만한 음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으로는 왕가위가 만든 한 편의 헐리웃 뮤직드라마로 다가왔지만,
단순하게 그렇게 지나치기에는 너무 황홀한 배우들의 모습과, 헐리웃의 옷을 입은 왕가위의
화려한 영상미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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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조심해주세요^^)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화약 음모 사건. 그 사건은 결코 잊혀 져선 안 된다.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The Gunpowder Treason and Plot
I Know of no Reason Why the Gunpowder Treason
Should Ever Be Forgot)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극중 ‘이비’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브이 포 벤데타’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그 화제의 주된 목적은 바로 ‘매트릭스’제작진이 만든 영화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홍보 문구가 번잡스럽게 치장하고 있는 영화들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사실상 회자되는 영화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담당한 경우가 아니거나, 매우 극소수의 스텝이라 ‘...팀’이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오히려 이런 홍보 문구들이 영화의 본질은 재껴두고 잘못된 기대심만 부추겨 영화자체의 평가를 시작부터 몰살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명실상부한 ‘매트릭스 팀’이 만든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감독을 비롯해 매트릭스의 우수한 주요 스텝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조 감독이었던 제임스 맥티이그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워쇼스키 형제는 제작은 물론 원고의 초안을 쓰기도 했고, 매트릭스 세계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담당했던 프로덕션 디자이너 오웬 페터슨이 ‘브이 포 벤데타’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나중에 서플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다시 언급하겠지만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한 조엘 실버가 제작을 맡고 있다 (심지어 서플먼트를 잘 살펴보다보면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대역을 맡았던 배우가 스턴트맨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 또한 엿볼 수 있다).



분명 진정한 ‘매트릭스 팀’이 만든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이번 경우에도 이 홍보문구는 조금의 잘못된 기대를 불러일으킨 경우가 될 듯하다. 물론 매트릭스 시리즈가 단순한 SF액션물이 아닌 ‘생각하는 SF’라는 평처럼 철학적인 내용과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배경지식을 동원하는 작품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매트릭스 팀이 만든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SF액션을 기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브이 포 벤데타’에도 액션이라 불릴 만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액션’은 양념일 뿐, 영화의 장르는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영화의 바탕이 되는 사건은 바로 1605년 11월 5일, 무정부주의자 가이 포크스가 영국의 제임스 1세 정부의 독재체재에 반하여 의회를 폭파시키려다 실패, 처형된 일명 ‘화약 음모 사건’이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획일화 되고 자유가 탄압받는 사회에 ‘브이’라는 남자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 다시 한 번 세상에 이 사건을 되새기고, 의사당을 폭파시키겠다고 알리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코믹스였던 원작이나 영화인 ‘브이 포 벤데타’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성향이 이전 영화들에게서 전혀 없던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전에도 정부의 음모론이나 억압되고 패쇠된 사회에서 이에 항거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많은 돈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특히 9/11 이후 테러에 관해 몹시도 조심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2005년과 2006년에 들어오면서 점차 조금씩 테러와 관련한 영화들이 조심스레 차츰 늘어가고 있지만, 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내용은 어찌 보면 너무도 직설적이다. 몇 가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정치적인 설정들을 말해보자면, 그 첫 번째로는 먼저 미국이 몰락한 세계정세에 있다. 영화는 미국이 일으킨 3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미국이 아닌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텍스트가 이런 설정을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놀랍다(물론 여기서 ‘놀랍다’라는 것은 메이저 제작사에서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전제하에서 더욱 그렇다. 서플을 보다보면 제작자인 조엘 실버가 이런 영화를 가능케 해준 워너브라더스의 용기에 감사한다는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이 영화에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독재체제와 은폐되고 음모로 가득 찬 정부의 모습에 있다. 9/11의 충격이 가실 즈음 여러 저널리스트나 의식 있는 작가들은 이 사건에 얽힌 음모론에 관해서 조사하고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기에 이르렀는데, 그 중 아마도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들 수 있겠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음모론에 근거하여 부시 행정부를 조롱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최근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 (Loose Change)’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방법으로 소름 돋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간단히 종합해보자면 9/11 참사는 결국 사고가 아닌 미 정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치러진 계획범죄라는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이런 음모론이 나돌던 시기에 비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극중에서 독극물로 인해 수만 명이 죽게 된 사건이 결국 정부의 음모였고 이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이러한 설정 자체가 9/11 이후 계속되는 음모론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 영국 의회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은, 9/11 이후 테러와 관련된, 특히 건물 폭파 등에 관련된 장면에 대해 굉장히 조심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정말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단순한 정치 원리와 자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설정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된 것 같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탄압받고 획일화된 사회를 그려서 인지, 건물을 비롯한 배경의 디자인은 어두우면서도 고풍스런 16~17세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미장센은 영화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임에도 ‘가까운 미래’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브이 포 벤데타’가 고급스러우면서 멋스러운 영화로 기억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V 역할을 맡은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라고 생각된다.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도 ‘엘론드’ 역할을 맡아 멋진 내레이션을 선보인바 있는 그는, 영화 내내 마스크를 쓰는 탓에 목소리가 매우 중요한 V 역할을 맡아 또 한 번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평소에 대화 투에서도 멋진 목소리는 빛이 나지만, 연설이나 설교하는 장면들에서는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흡입력 강한 어조와 목소리로 관객들을 손쉽게 사로잡고 만다. 사실 러닝 타임 내내 웃는 얼굴의 마스크로만 비춰졌던 V의 표정이 지루하지 않고 계속 다르게 느껴졌던 데에는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삭발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삭발에 관한 이야기만 화제가 된 것이 억울할 정도로 그녀의 영화 속 연기는 매우 뛰어났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평범한 방송국 직원이었던 ‘이비’가 압제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를 갖는 캐릭터로 변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며,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멋진 작품을 남겼다. 핀치 경감 역할을 맡은 스티븐 레아도 빼놓을 수 없는데, 바바리를 입은 모습과 헤어스타일, 표정 등은 정말로 핀치 경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한 모습과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느와르 영화와 형사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사실 이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V나 이비가 중심이 아니라 V가 일으킨 하나의 사건을 통해 수사를 거듭하여 결국 정부의 거대한 음모를 파해 치게 되는 핀치 경감 주연의 스릴러물로 볼 수도 있는데, 여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스티븐 레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셔틀러 의장 역의 존 허트, 디트리히 역의 스티븐 프라이, 루이스 프로더로 역의 로저 알람, 딜리아 역의 시네드 쿠삭 등 여러 중견 연기자들이 멋진 연기를 펼쳤다.



‘브이 포 벤데타’ DVD는 한정판과 일반판으로 나뉘어 출시되었는데, 특히 한정판은 이전 폭스의 ‘킹덤 오브 헤븐 DE'에서 사용되었던 슬림 틴케이스가 사용되어 소장가치를 더하였다. 2.3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답게 우수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조명이 어두운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암부 표현력이 최고라고 말하긴 어려운 수준이지만, 평균 이상이며 감상에 지장을 주거나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다. 어두운 장면이 많은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영화에 사용된 색들 또한 회색이나 검은색, 짙은 갈색 등 화려하고 다양한 색들 보다는 적은 수의 어두운 색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에 대비되는 짙은 붉은 색 등의 표현은 평균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는 최신작에 걸 맞는 우수한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초반과 후반의 폭발 장면에서 더 웅장한 폭발음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나 워너에서 DTS를 수록할 일은 아마도 없을 듯하니, 현재의 돌비디지털에 만족해야 할 듯(절대 돌비5.1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님). V가 격투 중 단도를 휘두르고 던질 때에는 선명한 채널 분리도를 느낄 수 있으며, 쉐도우 갤러리에 흐르는 줄리 런던의 'Cry Me a River'도 공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혹자는 센터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V의 대사전달이 조금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V의 대사 자체가 마스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사운드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2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따로 수록되었는데, 최근 출시되는 타이틀의 경향으로 보았을 때 ‘브이 포 벤데타’ 정도의 타이틀에 감독이나 배우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지 않은 것이 먼저 아쉽다. 'Designing the Near Future'에서는 감독 제임스 맥티그와 제작자 조엘 실버,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등이 출연하여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등장한 89개의 세트와 베를린을 비롯한 로케이션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Remember Remember : Guy Fawkes and the Gunpowder Plot'에서는 디트리히 역의 스티븐 프라이와 프로더로 역의 로저 알림의 소개로 가이 포크스에 관한 이야기를 짧지만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관련한 저서를 쓴 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가이 포크스의 의회 폭파 시도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의와 16,17세기의 사회적 배경에 관해 들려준다. 영국 내에서는 가이 포크스와 이 사건이 제법 인지도가 있지만, 사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은 국내에서는 매우 유익한 영상인 듯하다. 'V for Vendetta and the New Wave in Comics'에서는 원작인 DC코믹스의 그래픽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원작 자체가 당시 코믹스에서는 없던 것들을 시도한 창시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밖에 사운드 트랙 광고 화면과 만화를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 영화에 삽입되었던 Cat Power의 뮤직비디오, 극장 예고편 등이 담겨있다.

2006.07.20
글 / ashitaka



아래는 보너스 캡쳐

 

매트릭스의 제작자 조엘 실버와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하고
매트릭스 시리즈 조감독 출신의 제임스 맥테이그와
스미스 요원 휴고 위빙, 나탈리 포트먼 주연의 영화.
 
사실 국내에서는 매트릭스의 이름값에 어떻게든 묻혀서
흥행을 해보려 홍보전략을 짠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홍보전략은 역시나 그렇듯이 관객 속이기에 가깝다.
 
영화에 대해 잘 몰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트릭스 류의 SF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듯 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관객들도 영화가 끝난뒤 매우 실망한 기색이었다 --;)
 
 여튼 그런 기대없이 정상적인 기대만을 가지고 보게 된 나에겐
기대만큼의 감흥을 얻은 작품이었다.
 
SF라고는 하지만, SF라기보다는 정치와 사상에 관련된 스릴러이며
이념과 권력에 관한 다른 방식의 고발 영화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미국 주도의 3차 대전이 벌어진다는 설정이나
영화의 마지막 영국의 의사당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등은 9/11이후
테러, 특히 건물폭발에 대해 민감한 헐리웃에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고 용감하기까지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엄청난 음모가 결국은 정부 주도의 사악한 만행이었으며,
도청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가운데
진실을 외곡시키는 사회의 모습은 흡사  5.18 광주 혹은
아일랜드의 블러디 선데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헐리웃 영화가 정부와 테러 간의 구도에서
무차별적 테러에 대항하는 정부에 편에서 이야기를 풀어갔었다면
이 영화, V for Vendetta는 국민에게 진실을 감추고 통제하려드는
정부에게 진실을 알리려드는 테러에 편에 서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일듯.
 
정부 관료들이 밀실에 모여 거대한 스크린의 의장을 필두로 회의를 갖는 장면은
흡사 에반게리온을 떠올리게 했다.
 
이미 에이전트 스미스와 엘론드 역할을 통해
멋진 보이스를 선사했던 휴고 위빙은, 이 영화에서 V 역할을 맡아 본격적으로
멋진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탈리 포트먼은 그저 삭발을 했다는 사실만이 화제가
되었던 것이 아쉬울 만큼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서와는 또 다른 인물을 자연스레 소화한다.
 
V for Vendetta는 내 생각엔 매트릭스의 후광을 받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영화로 처음부터 각광을 받았을 영화라고 생각된다.
괜히 매트릭스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바람에 (물론 감독과 제작자, 배우까지 연관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거론은 어쩔 수 없다곤해도), 기대완 달라 실망하거나
화려한 SF액션물로 오해되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매우 정치적이며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노골적인 독설이 담긴 영화로
또 다른 버전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고까지 하면 무리일까 ㅋ

 
글 / ashitaka


p.s 1. 확실히 IMAX의 위용은 일반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스케일과 화질, 음질을 선사했다.

         시야 가득 남는 부분없이 꽉차는 화질과 높은 암부 표현력은 역시 IMAX가 최고.


     2. 영화속 혁명의 날인 11월 5일은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개봉일이기도 하다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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