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The Big Short, 2016)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 된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과 과정을 다룬 아담 맥케이의 '빅쇼트 (The Big Short, 2016)'는,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오히려 거대한 수익을 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만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이 영화는 홍보 방식에 있어서 '금융 위기의 가운데 월가를 물먹이고 초대박을 터뜨린 괴짜 천재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정서다. 즉, 천재적인 인물들이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이를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과정을 통해 통쾌함과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아주 객관적으로 이 사태가 왜 벌어졌고 어떻게 최악으로 말미암았는지를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빌어 설명하는 내용에 가깝다. 영화는 아주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며 오락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내용은 정말로 끔찍하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망할 것만 같았던 정도의 세계 금융위기라는 현상을 아담 맥케이는 최대한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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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첫 번째 느낌은 '왜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았지?'였는데,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려다보니 내용은 자연스럽게 전문적 경제용어들이 난무하는, 일반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내용이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더 심화 된 내용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도, 무엇보다 제대로 이해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머니볼'을 쓰기도 했던 원작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원작은 전문적인 경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었는데, 아담 맥케이의 영화 '빅쇼트'는 여기에 한 번 더 친절한 필터링을 거친 설명서라고 보면 되겠다. 즉, 영화 '빅쇼트'는 아주 명백한 제작 의도가 담긴 작품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기로 몰고 간 금융위기가 왜 벌어졌고, 어떤 과정으로 최악으로 치닫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채 집과 직장을 잃어야만 했던 평범한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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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영화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극영화라는 장르의 선택이었을테고, 두 번째는 크리스찬 베일, 브래드 피트,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이었으며, 세 번째는 친절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크리스찬 베일이나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들의 이름에 낚여서 갑자기 의도하지 않았던 경제 공부를 하게 된 관객들도 많겠지만, 어쩌면 이 낚시 아닌 낚시는 영화의 의도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조연급의 유명한 배우들 외에도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같은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세계적 셰프인 안소니 브루댕이나 경제 학자 리차드 탈러 박사 같은 이들이 등장하여 스크린에서 관객을 똑바로 보면서 알기 쉽게 소개하는 방식은, 다시 한 번 이 영화가 어떤 목적성을 갖고 있는 지를 알게 한다. 또한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자레드 베넷 캐릭터는 스크린 밖의 관객을 인지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실제로 상당히 유효했다. 나 역시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CDO, CDS 등 전문 적인 경제 용어들과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화는 아주 낮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고 있어서 적어도 단순화 하여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는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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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이토록 설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이 2시간 넘는 일종의 공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는데, 이 문제로 처벌 받는 금융인은 단 한 명 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태를 일으켰던 일종의 금융 상품이 이름만 바뀌어서 다시 2015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안일하고 멍청한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모르는 것은 약이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걸 영화는 전하고자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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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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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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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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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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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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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의 마무리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처음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았을 때는 본래 계획에 없던 세 번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했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처음 배트맨 시리즈를 맡았을 때 '시작 – 중간 – 끝'의 삼부작을 계획했다고 말했던 만큼,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삼부작을 통해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으로 다시금 일으켜 낸 것은 물론, 무엇보다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지난 몇 년간 영화 팬들에게 새로운 배트맨의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즐거움과 떨림을 선사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과 동시에 블루레이의 출시를 고대하게 만들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 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재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베인이 던진 혁명의 메시지




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 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 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 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 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렇게 커다란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왔더라면 아마 이 작품에서도 완결을 짓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팬으로서는 그러기를 바랬는지도…)





로빈 이상의 로빈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열혈청년 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신념 그리고 믿음




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 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앗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 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 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인정




시리즈의 첫 작품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 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로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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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블루레이의 화질은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 간의 편차는 분명히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우수한 화질이며, 전작 '다크나이트' 보다 향상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들의 화질은 그야말로 레퍼런스급 최상의 화질을 보여주는데, 아웃 포커싱이 많은 장면에서도 뒤 편의 배경들이 뭉개지지 않으며, 날카로운 외곽선으로 베일의 스킨 헤드 피부질감은 물론, 배트맨 슈트 소재의 질감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베인이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이 화질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장면을 캡쳐해도 대부분이 화질 소개 란에 어울릴 만한 퀄리티의 장면들을 선사하고 있었다.







놀란의 배트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가 아이맥스로 가득 담아낸 고담시의 풍경을 들 수 있을 텐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는 이 아이맥스 시퀀스는 정말로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아이맥스 극장에서 느꼈던 스케일의 감동을 블루레이의 디테일로서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다만, 아이맥스로 촬영되지 않은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장면들의 화질은 아쉬움이 많은 편이다. 워낙 좋은 아이맥스 장면들과 연결되어 있다보니 체감적으로 덜 좋아 보일 수 밖에는 없는 현상도 발생한다. 일반 촬영 장면의 경우 날카로움이 이나 색감의 표현, 전체적인 디테일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편인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기존 작품들의 화질과 워너타이틀의 기존 타이틀을 떠올려본다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의 화질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아이맥스 시퀀스가 주는 화질의 감동이 어느 정도 상쇄 시켜준다 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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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의 경우,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 작품이 담고 있는 무게와 스케일을 안방으로 그대로 전달한다. 특히 한스 짐머가 고안한 베인의 테마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부분)의 울림은 우퍼 스피커를 통해 강렬하게 전달되며, 다양한 폭발이나 붕괴의 사운드 역시 최신 타이틀로서 부족함이 없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굉장히 현실성 있게 만들어진 영화답게 사운드 측면에서도 실제의 현실감 넘치는 사운드들로 가득 채워졌는데, 촬영도 그렇지만 사운드 측면에서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발생하는 소리를 기반으로 나머지를 채워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양한 폭발 장면은 수 천명이 동원된 월가 격투 장면이나, 동굴 감옥 (The Pit) 장면의 소리들 역시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사운드를 얘기하면서 베인을 빼놓을 수는 없을 텐데, 베인이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독특한 목소리와 특유의 울림은 극장에서도 대단했었는데, 블루레이로서도 그 대단한 첫 만남을 만끽할 수 있다. 베인의 목소리는 무언가 다른 공명으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블루레이 사운드 체크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요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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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보여주는 부가영상


본격적인 부가영상은 2번째 디스크에 수록이 되었는데, 추후 내년 말에 해외에서 발매 예정이라는 UCE 타이틀의 한국어 자막 수록여부나 국내 정식 발매의 불투명성과 굳이 저울질 하지 않더라도, 질적인 측면과 양적인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부가영상이 가득 수록되어 만족스럽다. 쇼핑몰 정보 등에 표현된 부가영상의 큰 카테고리만 보고 별다른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첫 번째로 살펴볼 'The Batmobile'에서는 제목처럼 배트맨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배트모빌의 관한 내용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겨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서브 피쳐 정도로 생각했으나 1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에 걸맞게 독립적으로 충분히 훌륭한 작품인 동시에, 배트모빌을 중심으로 배트맨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흥미로운 내용이 수록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얘기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이전의 팀 버튼이나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영화에 등장한 배트모빌들 역시 상당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동원된 작품이라는 점과 실제 구동 가능한 차체였다는 점이었다. 팀 버튼 영화의 배트모빌의 경우 페라리의 실제 부품 등과 전투기의 부속품들까지 접목시켜 완성시켰고, 슈마허의 작품에 등장한 화려한 디자인의 배트모빌의 경우, 처음에는 에이리언 시리즈로 더 유명한 H.R.기거에게 디자인을 의뢰했고 실제로 기거가 제작한 배트모빌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그의 버전이 쓰이지 못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거 스타일에 기초하여 배트모빌이 디자인 되었고 자동차라기 보다는 하나의 동물과도 같은 형태의 버전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영화와 코믹스가 시대를 거듭해 오면서 서로 얼마나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왔는가를 알 수 있는데, 영화에 등장한 배트모빌이 코믹스에도 적용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아이디어에 착안해 디자인 되는 등의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모빌인 텀블러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배트모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제작 방식이었다.


보통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스케치나 컨셉화를 시작으로 제작되는 것과는 달리, 놀란과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점토나 부품 등을 가지고 덕지덕지 만든 모형을 기반으로 스케치 등이 없이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텀블러는 기획 단계에서 진짜 과학과 현실적 이론에 근거해 최고의 효율을 만들 수 있는 배트모빌을 만들어보자는 것에서 시작한 것 답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동시에 부서지지 않는 차라는, 정말 괴물 같은 디자인과 성능을 실제로 보여주는 배트모빌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배트모빌의 역사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트모빌을 통해 배트맨 시리즈의 연대기를 살펴보는 동시에, 배트모빌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던 의미 깊은 영상이었다.


'Behind The Scenes : Ending the Knight'에서는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Production' 'Characters' 그리고 'Reflections'의 대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안에도 작은 메뉴들로 세부 구성되어 있다.






프로덕션에 담긴 부가영상들을 보며 알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가능하면 다 실제로 촬영하고자 했다는 점이고, 관객이 느끼기에 저런 것까지 과연 실제로 찍었을까 하는 것까지도 거의 대부분 실제 촬영을 하거나, 실제 촬영한 것을 기반으로 CG작업을 했다는 점이었다.


영화의 첫 시퀀스인 공중 납치 장면 역시 실제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영화 속 장면처럼 실제로 고공에서 스턴트 연기를 통해 촬영되었다. 제작 측면에서는 엄청난 비용과 공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었지만 결론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 고집은, 영화 초반 관객들로 하여금 압도당하도록 하는 동시에 긴장감을 단숨에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배트맨의 본부라 할 수 있는 배트 케이브와 베인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지하 시설의 경우도 모두 실제 크기의 세트로 제작이 되었는데, 배트 케이브가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라면 베인의 거점의 경우는 산업 현장의 느낌이 나도록 하여 상반된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 두 세트 모두 워낙 거대하다 보니 (베인의 지하 공간의 경우 무려 높이가 30미터가 넘는 세트로 제작되었다), 스텝들 조차 세트라기 보다는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고 한다.






배트맨의 새로운 탈 것인 'The Bat'의 경우도 실제로 나는 것까지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실제 크기로 제작한 기체를 대형 크레인과 엄청난 길이의 케이블로 연결하여 실제 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한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더 배트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작업 과정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극 중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배트맨과 베인의 1:1 격투 시퀀스에 대한 내용도 수록되었는데, 베인의 야만적인 면과 처음으로 육체적인 결투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배트맨의 대결 장면은 그 자체로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장면 역시 두 배우가 대역 없이 실제로 감정을 실어 연기했기에 더 큰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감정과 액션 디자인이 상당히 복잡한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텝들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임팩트 있는 시퀀스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예고편에 등장하여 더 기대를 모으게 했던 풋볼 경기장 파괴 시퀀스에 대한 뒷 얘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실제 피치버그의 미식축구 장에서 촬영되었고, 실제로 파괴시키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로만 보자면 충분히 파괴시킬 수 있는 논란 감독이기에..) 역시나 만 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동원, CG를 쓰더라도 인위적인 느낌을 최소화 하려고 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인즈 워드 선수를 비롯해 실제 선수나 선수 출신 들이 출연을 하였으며, 실제 피치버그 시장도 선수로 까메오 출연하는 등 피치버그의 협조가 적극적인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 중에서 블레이크가 차를 타고 갈 때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의 경우, 영화 속에서는 잠시 스쳐간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을 위해서도 수 많은 기술과 비용이 투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보면 한 편으론 그냥 CG로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관객도 거의 눈치채지 못할 듯 하고)하는 생각과 걱정이 들 정도인데, 관객이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길지 않은 장면이라도 더 실감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현실감이란 곧 주제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비상하라' 라는 뜻의 방언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된 베인의 테마가 한스 짐머를 통해 어떻게 음악으로 승화되는지의 과정도 'The Chant'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처음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것도 한스 짐머였는데, 베인의 캐릭터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불안함을 조장하는 불협화음을 전반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he War On Wall Street'에서는 월스트리트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액션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은 헐리웃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수 천명의 출연자'라는 얘기를 다시금 꺼내게 만들었던, 수 천명이 동원된 액션 장면의 촬영장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액션 장면의 스케일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바로 수 천명의 엑스트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집을 부려 이 장면을 완성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연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가 본래 보여주고자 했던 '수 천명이 싸운다'라는 스케일을 표현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대규모 액션 시퀀스의 경우, 시리즈를 마무리 하는 작품답게 전작들의 규모와 재미 요소를 모두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시한폭탄과 추격전이라는 고전적인 구성을 꺼내 들었는데,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의 텀블러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장면이었다는 것을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또 확인할 수 있었다.






'캐릭터'에서는 브루스 웨인과 베인 그리고 캣우먼으로 나누어 각각의 짧지 않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브루스 웨인의 경우 단순히 '다크나이트 라이즈' 속 그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삼부작을 거쳐 진행되는 그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이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수트를 입지 않았을 때도 관객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 일텐데, 그런 측면에서 이 부가영상은 배트맨으로서 보다 브루스 웨인으로서 표현되는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의 DNA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한스 짐머의 음악 역시 비긴즈를 기반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부가영상은 결국 영화를 이끄는 건 이야기, 이야기를 이끄는 건 캐릭터라는 놀란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번 시리즈의 악당을 선정 하는 데에 가장 큰 조건은 육체적으로 배트맨을 압도할 수 있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베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 속에 등장한 베인의 모습은 허황되고 과장된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영화 만의 베인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도 했다.


군대 출신의 용병 느낌이 나도록 기본적인 의상이 설정되었고, 거기에 타락한 혁명가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장교느낌과 프랑스 혁명 당시를 엿볼 수 있는 의상 요소를 추가해, 각 장면 별로 컨셉에 맞게 적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스크는 역시 오랜 제작과정을 거쳤는데, 거미나 고릴라 같은 동물적인 느낌이 강한 것에 더해, 공업적인 느낌까지 더해진 영화 속 마스크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톰 하디가 베인 특유의 목소리와 억양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요소들을 참고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 캣우먼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우려 반 기대 반이었는데, 왜냐하면 캣우먼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적인 면을 강조한 놀란의 영화에도 과연 어울릴까 하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란과 앤 해서웨이가 만들어낸 캣우먼은 가면을 쓰고 수트를 입고 있어도 별로 판타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우스꽝스럽지도 않은 현실감을 갖은 캐릭터로 완성되었다. 이런 양 측면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고안된 의상이나 가면 등 캣우먼 캐릭터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담겨있다. 또한 다른 연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장면을 대역 없이 실제 액션 연기를 펼친 앤 해서웨이에 대한 스텝들의 칭찬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Reflections'의 첫 번째 메뉴인 'Shadows & Light in Large Format'에서는 아이맥스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만나볼 수 있는데, '다크나이트'를 통해 아이맥스 카메라의 장점을 파악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처음부터 아이맥스 촬영 분을 늘려야겠다고 계획했다고 한다. 아이맥스의 장점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스케일을 가감 없이 그대로 가득 채운 캔버스에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일 텐데, 크리스토퍼 놀란과 촬영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 보고자 했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에 비해 단순히 아이맥스 촬영 분량이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노하우나 기술에서도 월등히 발전했기 때문에 이루고자 하는 바의 결과를 대부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굳이 3D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The End Of a Legend'에서는 이 전설의 삼부작을 함께 한 각 분야별 스텝과 배우들의 짧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스스로가 자만이 아니라 자부심을 갖게 되었을 정도로 이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그 인터뷰들은 대부분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부가영상을 보며 새삼 느낀 바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연출은 맡은 그를 비롯하여 각 분야별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자신의 최고 수준의 장기를 마음껏 펼친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총평]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이 작품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각각의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논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으며, 이후 등장한 히어로 물은 물론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블루레이는 극장에서 느꼈던 그 떨림과 긴장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화질과 음질은 물론, 삼부작을 정리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소개하는 부가영상들로 쉴 틈 없이 흥미로운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다. 다양한 판본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가는 말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는 말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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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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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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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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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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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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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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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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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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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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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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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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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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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Batman Begins, 2005)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



다음주면 드디어 개봉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감상에 더 효과적일 만한 각종 작품, 자료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놀란 배트맨 3부작의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배트맨 비긴즈'는 개봉 당시에도 매우 만족했던 작품이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전반적으로 '다크나이트'급의 열광은 없었으며, 별로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던 당시 분위기였다), '다크나이트'를 보고 나서 다시 보게 된 비긴즈는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라이즈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꼭 한 번 다시 볼 만한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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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역시 '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나?'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비긴즈' 영화의 숙제이자 반드시 설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특히 배트맨의 경우 후천적인 사고에 의해 본의아니게 히어로가 되었거나 아니면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 난 경우와는 달리, 본인의 의지에 따라 '배트맨'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왜?'라는 물음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배트맨 비긴즈'는 정말로 탁월한 작품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팬들이 '다크나이트'보다도 이 작품을 더 꼽기도 하고, 결국 이 3부작이 완성되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라는 물음에 답해야 할 '배트맨 비긴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에 대한 완벽하고도 충분한 답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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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기존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 이전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굉장히 많은 담론들과 이 3부작을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심어져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브루스 웨인은 스스로가 겪는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 혹은 중간의 해결책으로 배트맨이라는 아이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단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겪게 된 이후의 공포와 복수의 트라우마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을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 브루스는 그 이전 동굴에 떨어져 박쥐들로 표현된 공포를 겪은 것이 가장 큰 모티브인 동시에 고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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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메인 테마가 '공포'와 '극복'에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죽음, 특히 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히 부모를 잃은 것에 대한 상처가 아닌 공포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브루스가 어려서 깊은 우물에서 공포에 빠져있을 때, 이를 극복해준 매개체는 다름 아닌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이었다. 다른 히어로들이 아버지를 비롯해 자신에게 직언을 해준 이의 말을 고비 때마다 되새기며 다시 초심을 다잡는 것과는 달리, 브루스 웨인은 초심을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에 힘입어 자신의 공포를 극복해내게 되는 것이다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 라는 말은 단순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된 이후에도 겪게 되는 일들이나 배트맨이 되려고 한 목적 등을 따져본다면 '올라오면 된다'는 건 브루스 혼자서는 이끌어낼 수 없었던 해결책이었기에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정리하자면 어린 브루스는 공포를 스스로 극복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로 인해 극복하고 의지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아버지를 잃게 되자 다시금 공포에 휩싸인 동시에 본인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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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만약 브루스가 본래 계획했던 대로 스스로 복수할 수 있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공포 - 극복(아버지) - 아버지의 죽음 - 복수 (범인의 처단) 으로 내면적 고통을 해결했거나 혹은 스스로 극복하는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의 손으로 복수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 이 기회를 다른 곳 (고담의 악당들을 퇴치하는 것)에 쓰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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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결국 다른 자의 손에 죽게 되자 혼란을 겪던 브루스는, 고담의 지배자인 팔코니와 만나 또 다른 공포를 접하고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나기로 작정한다. 노숙자와 옷을 바꿔 입고는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뛰어가는 이 뒷 모습은, 이후 '다크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고담의 다크나이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뛰어가는 그 뒷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후 라스 알굴과 듀커드를 만나 자경단으로서 훈련을 받는 것 역시 브루스에게는 공포를 극복하는 하나의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은 대부분의 다른 영웅이 그러하듯이 코스튬을 입고 나선 이후 바로 완전한 영웅으로서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는 훈련 기간이 많아서인지 첫 시도에서도 거의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 역시 공포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는데, 즉 브루스 웨인이 진정한 배트맨이 된 시기는 스스로 공포를 극복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주적 중의 하나로 닥터 크레인 (허수아비)이 등장하고 있는데, 닥터 크레인의 주 공격 포인트가 바로 상대의 공포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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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과 상대하게 된 배트맨은 바로 이 공포를 자극하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거의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 안고 마는데, 영화는 이 지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아직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코스튬을 입고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자신의 공포를 극복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다시 한 번 알프레드를 통해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유산(재산적인 것 말고)을 비로소 흡수한 브루스는,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공포를 극복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존재인 듀커드와의 일을 마무리 짓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보면 볼 수록 완성도가 높은 것이 '비긴즈'로서 해야할 숙제들을 모두 만점으로 완료한 동시에 '다크나이트'로 가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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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대놓고 다음 편의 주적은 조커가 될 거라는 장면(이건 암시라고 하기엔 너무 직접적이니)은 이미 '다크나이트'를 통해 보았던 것처럼 속편의 주제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다크나이트'와 연결지어 보면 이 마지막 조커 장면 외에도, '다크나이트'에서 주로 다뤄지는 갈등의 요소에 대한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입장과 생각을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즉, 브루스 웨인이 자신이 공포를 극복해내며 드디어 배트맨으로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존재의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다는 것을 '배트맨 비긴즈'는 은근히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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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음 주 개봉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위해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생각은 '배트맨 비긴즈'를 보았을 때 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고 나서야 더 깊게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 이제 여섯 밤만 자면 그 대단원을 만날 수 있겠구나 ㅠ



1. 다시 본 '배트맨 비긴즈'는 '다크나이트'에 비해 유머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거의 시퀀스마다 하나 둘 씩 등장할 정도니까요. 어쩌면 시작부터 너무 무거워만 질 수 있는 것을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르겠네요.


2. '다크나이트' 역시 주말에 다시 보긴 할 건데, 또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비긴즈'에 비해 예전에 써놓은 글의 양이 많다보니 말이죠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http://realfolkblues.co.kr/696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http://realfolkblues.co.kr/700


3. 모든 이미지는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서 직접 캡쳐하였습니다.


4. 이건 그냥 보너스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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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재미있는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ㅋ 매번 눈 주위만 팬더처럼 까맣게 칠해야하는 배트맨의 이면. 이 장면은 '킥 애스'에서 직접적으로 나오기도 했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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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아주 가깝게 닿아있는 가족 영화


매 작품마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과 (이젠 많이 지겨운 얘기지만) 화려했던 과거는 접고 배우로서 꾸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주고 있는 마크 월버그,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 출연하고 있는 데이빗 O.러셀의 신작 '파이터 (The Fighter)'는 라이트 웰터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동생 미키 워드와 슈가 레이 레너드와 경기를 치르기도 했던 형 디키 애클런드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미키 워드는 'Irish'라는 별명으로 불리 우며 아투로 가티와의 기념비적인 경기로 더욱 유명한 복서인데, '쓰리 킹즈 (Three Kings, 1999)'를 연출했던 데이빗 O.러셀 감독은 이 실화를 권투 영화로 그리지 않고 가족 영화로 그려냈다. 그도 그럴 것이, 디키와 미키 형제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가족 얘기를 도저히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파이터'는 권투 영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패배를 계속해 오던 복서의 재기와 성공,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 하던 주인공이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권투 영화와 스포츠 영화의 기본적인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파이터'는 스포츠 영화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미키 워드와 디키 애클런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서의 삶에 중심을 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보니 주인공은 오히려 미키 워드가 아니라 디키 애클런드에, 아니 주인공 한 두 명에 의해 이뤄지는 영화가 아니라 가족과 이들을 둘러싼 이들 그리고 그 지역사회까지 하나로 포용하는 다층적인 작품이 되었다.

마크 월버그와 크리스찬 베일, 둘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후자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보편적인 캐릭터인 미키 워드에 비해 디키 애클런드의 캐릭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과 놀라운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덕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크리스찬 베일은 체중을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파이터'에서 보여준 디키 애클런드 캐릭터는 그 가운데서도 기존의 그와는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리스찬 베일이 주로 맡아온 역할은 (몸무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주로 무겁거나 어두운 캐릭터가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디키 애클런드'는 경망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고 사고 뭉치인 동시에 떠 벌이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캐릭터였기에 더욱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실제 배경이기도 한 로웰 지역에서 촬영되고 마을 사람들이 실제 참여하기도 하는 등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작품이기도 한데, 실제로 많은 동네 사람들이 크리스찬 베일을 디키로 착각할 만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이런 크리스찬 베일을 보고, 디키를 그대로 흡수해버렸다 라고 표현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가운데서도 실존 인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워낙 실제의 이야기가 충분히 드라마틱한 것과 더불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다시피 했으므로, 크리스찬 베일의 이 같은 캐릭터 표현 방식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가 얼마나 디키 애클런드에 빠져있었는지는 작품 곳곳에, 그리고 부가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더 파이터'를 보고 누가 이 남자를 고담시의 그 남자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슈가 레이 레너드는 이 작품에서 본인 역할로 출연하고 있다. 그 말고도 로웰의 많은 인물들이 본인을 연기하거나 주변 인물을 연기하는 것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다)


두 형제의 어머니인 '앨리스' 역할을 맡은 멜리사 레오의 연기 역시 크리스찬 베일 못지 않다. 그녀의 전작들과 비교해보자면 그녀 역시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는데 (멀쩡하게(?) 인터뷰 하는 부가영상을 봐도 같은 사람인가 싶다), 극장에서 첨 본 순간부터 돋보였던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와는 다르게 그녀가 연기한 앨리스는 다시 보면서 더욱 진가를 느낄 수 있었던 캐릭터였다. 이 대가족을 이끄는 사실상 가장이면서, 동시에 디키와 미키 두 아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어머니여서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매우 섬세한 지점을, 멜리사 레오는 관객이 뒤늦게 알아챌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변신을 감행한 또 한 명의 배우라면 에이미 아담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유쾌하고 즐거운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그녀는, 이 작품에서 거칠고 터프하며 섹시하기까지한 '샬린' 역할을 맡았는데, 이 가족의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듯 하면서도 미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샬린 캐릭터가 에이미 아담스를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해야겠다.
 




다시 영화의 본론인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자면, 극 중 등장하는 미키의 가족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아들을 끔찍하게 아끼기는 하지만 너무 아낀 나머지 아들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인생이 되어버린 (하지만 결국은 모두 아들을 위한 것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많은 누나들. 멜리사 레오가 연기한 어머니 역할과 여러 명의 누나들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누나들은 여럿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하나'처럼 행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로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의 경우보다는 우리 영화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고 보아왔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에 이런 가족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빗 O.러셀은 이 가족이라는 캐릭터를 조금은 공포스럽게도 또 한 편으로는 코믹하게도 그려내고 있는데, 두 형제가 벌이는 갈등의 든든한 배경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많지만 철옹성 같이 두터운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고자 하는 샬린의 존재도, 이 가족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파이터'는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을 굴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마저도 극복해 나가느냐에 대한 과정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겠다. 극중 미키와 디키가 겪는 갈등의 핵심은 성공도 사랑도 아닌 바로 가족이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떠난다는 그 말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키와 가족에 모든 기대를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디키, 이 영화가 선택한 과정은 챔피언으로 가는 여정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회복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간절하게 챔피언이 되어야만 하는 미키 워드를 주인공으로 한 권투 영화였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가족은 아마도 일찌감치 그의 인생에서 배제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키 워드는 가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챔피언이 되길 원했고, 그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복서였던 형 디키의 이야기가 녹아 들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파이터'는 결국 권투영화일지도 모른다. 미키와 디키 그리고 가족들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링 위에서 승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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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의 화질은 전반적으로 약간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블루레이로서 손색이 없는 화질이지만,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마치 미키와 디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듯 촬영되었고, 복싱 경기 장면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서는 특히 실제 중계화면과도 같은 실감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화질 측면에서도 의도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복싱 경기 장면은 실제 HBO의 제작진에게 촬영을 맡기기도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파이터'의 복싱 장면은 단순히 흉내내기가 아니라 진짜 복싱 경기 장면 그대로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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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영화음악과 경기장의 현장감 모두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극중 수록된 Bee Gees의 'I Started a Joke'와 Red Hot Chili Peppers의 'Strip My Mind'등 수록 곡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청아하게 들려오는 수록 곡들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긴박한 복싱 경기 중의 효과음과 경기장의 소음 역시 잘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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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볼 것은 역시 감독인 데이빗 O.러셀이 참여한 음성해설이다. 사실 크리스찬 베일, 마크 월버그 없이 감독 혼자 진행하는 음성해설이라 조금은 심심하지 않을까 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이런 우려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로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코멘터리였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가족들과 로웰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한 작품인데,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알려주는 것도 좋았고, 실제 인물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와 이를 영화화 하면서 겪은 과정의 이야기를 차분하지만 요목조목 들려준다. 어느 면에선 본편 보다 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음성해설 중 하나였다.






'The Warrior's Code: Filming The Fighter'는 기본적인 메이킹 다큐멘터리로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는 물론, 미키 워드와 디키 애클런드 등 실제 로웰 사람들의 많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마크 월버그는 주연 외에 제작도 맡고 있는데,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려고 오래 전부터 노력을 한 끝에 영화화를 결정지을 수 있었는데, 언제 촬영이 결정될지 몰랐기에 그 기간 동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실제 미키와 디키가 단순히 촬영장에 방문한 수준이 아니라, 마크 월버그와 크리스찬 베일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견과 영향을 주었는지도 엿볼 수 있다.
 

 





'Keeping the Faith'에서는 좀 더 영화가 아닌 미키와 디키 형제 그리고 가족과 로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디키 애클런드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복서로서 성공을 거두고 그 이후 마약으로 망가지고 이후 다시 마약을 끊고 지금처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까지의 일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여기서도 이 특별한 가족의 서로에 대한 사랑,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삭제장면'과 '예고편'을 수록하고 있다. 삭제 장면은 제법 많은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감독의 코멘트와 함께 볼 수 있어 삭제 장면이 의도한 내용과 최종적으로 빠지게 된 이유를 들려준다.


 
(극중 등장하는 이 장면은 연출된 장면이 아니다. 각자의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있던 배우들이 만들어낸, 우연이 빚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총평]'더 파이터'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그려냈지만,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세밀하고 리얼한 감정 묘사가 담긴 가족 영화다. 확실히 극장에서 보았던 것보다 블루레이로 다시 보며 더 깊어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크리스찬 베일의 필모그래피를 논할 때 이 작품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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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The Fighter, 2010)
가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매 작품마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과 (이젠 많이 지겨운 얘기지만) 화려했던 과거는 접고 배우로서 꾸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주고 있는 마크 월버그,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 출연하고 있는 데이빗 O.러셀의 신작 '파이터 (The Fighter)'는 라이트웰터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동생 미키 워드와 슈가 레이 레너드와 경기를 치르기도 했던 형 디키 애클런드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미키 워드는 'Irish'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으며 아투로 가티와의 기념비적인 경기로 더욱 유명한 복서인데, '쓰리 킹즈 (Three Kings, 1999)'를 연출했던 데이빗 O.러셀 감독은 이 실화를 권투 영화로 그리지 않고 가족 영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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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이터'에는 권투 영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패배를 계속해 오던 복서의 재기와 성공,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 하던 주인공이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권투 영화와 스포츠 영화의 기본적인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파이터'는 스포츠 영화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미키 워드와 디키 애클런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서의 삶에 중심을 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보니 주인고은 오히려 미키 워드가 아니라 디키 애클런드에 더욱 가까워졌다.

둘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후자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보편적인 캐릭터인 미키 워드에 비해 디키 애클런드의 캐릭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 그리고 놀라운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덕이었다 하겠다. 크리스찬 베일은 체중을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파이터'에서 보여준 디키 애클런드의 연기는 그 가운데서도 기존의 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리스찬 베일이 주로 맡아온 역할은 (몸무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주로 무겁거나 어두운 캐릭터가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디키 애클런드'는 경망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고 사고 뭉치인 동시에 떠벌이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캐릭터였기에 더욱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염 기른 점잖은 모습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던 그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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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본론인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와서보자면, 극 중 등장하는 미키의 가족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아들을 끔찍히 아끼기는 하지만 너무 아낀 나머지 아들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인생이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많은 누나들. 멜리사 레오가 연기한 어머니 역할과 여러 명의 누나들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누나들은 여럿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하나'처럼 행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로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의 경우보다는 우리 영화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고 보아왔던 문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기에 이런 가족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빗 O.러셀은 이 가족이라는 캐릭터를 조금은 공포스럽게도 또 한 편으로는 코믹하게도 그려내고 있는데, 두 형제가 벌이는 갈등의 든든한 배경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많지만 철옹성 같이 두터운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고자 하는 '샬린 (에이미 아담스)'의 존재도, 이 가족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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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파이터'는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을 굴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 마저도 극복해 나가느냐에 대한 과정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겠다. 극중 미키와 디키가 겪는 갈등의 핵심은 성공도 사랑도 아닌 바로 가족이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떠난다는 그 말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키와 가족에 모든 기대를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디키, 이 영화가 선택한 과정은 챔피언으로 가는 여정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회복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간절하게 챔피언이 되어야만 하는 미키 워드를 주인공으로 한 권투 영화였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가족은 아마도 일찌감치 그의 인생에서 배제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키 워드는 가족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챔피언이 되길 원했고, 그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복서였던 형 디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파이터'는 결국 권투영화일지도 모른다. 미키와 디키 그리고 가족들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챔피언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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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기 전 실제 주인공들의 뒷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는데,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나타낸다.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별다른 코멘트가 없어도 이들이 실제 미키와 디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영화 속 처럼 활발한 모습의 디키와 이런 형의 넉살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기는 미키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훈훈한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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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함께 아무말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에서도 디키와 엄마가 차 안에서 Bee Gees의 'I Started a Joke'를 부르는 장면은 역시나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곡이라 더욱 그랬구요. 여기에 Red Hot Chili Peppers의 'Strip My Mind'까지 나와서 황홀!

2. 하도 가족영화, 가족영화해서 권투영화로서의 장점을 조금 보태보자면, 극중 권투 경기 장면은 실제와 같은 현실감을 주기 위해 당시 방송촬영 영상을 컨셉으로 수록되었습니다. HBO의 유명한 방송스타일 말이죠.

3. 극중 등장하는 슈가 레이 레너드는 실제 그가 연기하기도 하였습니다.

4. 극중 디키가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던 슈가 레이의 다운 장면. 이것이 슬립 다운인지 넉다운인지는 직접 판단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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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2009)
마이클 만의 실험적인 갱스터영화


<히트> <콜레트럴> <마이애미 바이스>등을 연출했던 마이클 만이 조니 뎁, 크리스찬 베일 등과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 '등'에는 상당히 많은 거론할 만한 배우들이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이 작품 <퍼블릭 에너미> (원제목은 'Enemies'임으로 우리말 제목으로 하자면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들'이 맞겠다)는 기대작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필몰그래피 가운데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협연한 1995년작 <히트 (Heat)>를 최고의 작품을 꼽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999년작 <인사이더 (The Insider)>부터, 아니면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가 출연했던 2004년작 <콜레트럴 (Collateral)>에서야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그가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갱스터 '존 딜린저'를 영화한다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점들은 분명 몇 가지가 있었는데 (최신형 총기들의 격발음의 디테일을 선보였던 마이클 만이, 시카고로 대표되는 기관총의 사운드는 어떻게 차별화하여 들려줄 것인가 등등), <퍼블릭 에너미>는 그런 점들도 물론이거니와 기존에 <콜레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를 통해 사용 빈도를 높여왔던 HD카메라의 사용을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한 상당히 실험적인 영상물이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시작되고나서 솔직한 심정은 조금은 의외였다. 마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에서나 볼 법한, 아니면 역시 그의 작품인 <어둠 속의 댄서>의 HD버전을 보는 듯한 영상은, '정말 이대로 끝까지 다 담으려는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마이클 만은 작정을 한 듯 이렇게 조금은 관객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이질감이 느껴지는 화면으로 영화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특히 초반 장면들 같은 경우 실외 장면에서는 그 미치도록 파란 하늘에 혼이 팔려 감각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외 장면보다 실내 장면에서 더욱 크게 그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HD다큐멘터리르 보는 듯한 화면의 질감과 전혀 필름 라이크하지 않은 이 영상은 확실히 몰입도 측면에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를 소개하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1930년대를 구경하기 보다는, 그 안에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런 그의 의도를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카메라 워킹과 영상이었다. 이 작품의 카메라 워킹을 보다보면 화면 속 배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저리 비켜요'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완전히 VJ가 된마냥 인물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의 앵글은 완벽하게 방청석에 앉아 있는 시점에서 이를 빠져나가는 주인공들을 뒤 쫓고 있다(그렇다고 <클로버필드>마냥 완벽한 촬영자적 입장에서 본다고만은 볼 수 없는 영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헬드 기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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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메라 워킹은 '그 속에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HD카메라만을 통한 그 필름 라이크하지 않은 화면의 질감은 확실히 실험적인 것이었다.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도 이런 식의 장면들이 몇몇 있긴 했었지만 전체적으로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을 커버하리고는 생각지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HD카메라로 담은 영상은 한 편으론 정말 그 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일반적인 영화적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무언가 떨어져 보이는 영상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도 사실일 것이다. 특히나 만약 이 영화를 조니 뎁과 크리스찬 베일이 운명의 적수로 만나는 대결구도(.vs)의 액션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런 경험이었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실존 인물인 존 딜린저와 그와 관련된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것은 실화입니다'라고 강조하는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따로 자막을 통해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실제 있었던'이 아닌 '실제하는' 이야기로 전달하려는 욕심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확실히 영화의 영상은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좋을 정도인데, 마치 유명한 뮤지션들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투어필름 감독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실제로 당시 경찰들이 영화 상영 전 홍보를 위해 촬영한 영상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존 딜린저가 이런 작업을 진행했었다면 이런 비슷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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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시에는 굉장히 카메라를 인물에게 타이트하게 들이대는데, 이런 방식은 정말 라스 폰 트리에가 자주 썼던 방식으로, 관객들이 극중 인물에 심리상태를 더욱 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마치 극중 인물의 숨이 내 얼굴에 와 닿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또한 정경을 멀리서 촬영하거나 카메라가 먼 곳으로 빠지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실제하는 공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 감상기를 쓰면서 스포일러 걱정없이 술술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에는 별로 스포일러가 될만한 요소들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존 딜린저가 매우 유명한 실존 인물임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의 결말은, 히틀러의 암살작전을 다룬 <발키리>와 다를 바 없으며 (그렇다고 해놓고선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센스 ^^;), 그 과정의 이야기들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뿐이다. 존 딜린저는 시대를 풍미했던 갱스터로서 은행털고, 세력 다툼도 있었고 그를 잡으려는 경찰들은 더욱 조직화 되었으며, 운명 같은 사랑도 나누었다는 이야기 가운데 적어도 마이클 만은 내용 안에 특별한 메시지나 논란거리를 던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은 이 처럼 얼마든지 영화적으로 상상력을 더해(더하지 않더라도) 극적인 스토리로 만들 수 있었던 소재를 그저 다큐처럼 조명하는데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 속 총격씬에는 기술적인 구현 외에 극적인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있다면 윈스테드 경관의 앞구르기 정도!), 총격전 사이에도 긴장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각각의 인물들에게도 정말 진심으로 우러나서 공감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단 하나 이 영화에서 극적인 부분을 조장하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음악일텐데, 마치 <다크 나이트>의 스코어와 살짝 흡사한 음울한 스코어는 장면 장면 분위기를 만들려고 끼어드는데, 무언가 담백하게 가려는 영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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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이 이런 무거운 갱스터 영화에 어울리까도 싶었었지만, 터프하기보다는 섬세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존 딜린저 역에 그의 캐스팅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살짝 살이오른 그의 얼굴은 은근히 네모내 보이기도 하는데, 확실히 '넌 이제 내 여자야' 라는 대사를 그나마 덜 어색하게, 그래도 어느 정도 수긍 가능하게 만든 것은 '조니 뎁'의 역량이지 않았나 싶다. 크리스찬 베일은 역시나 크리스찬 베일이었다. 씨네21 리뷰에서는 그의 연기를 평하면서 <다크 나이트>보다도 오히려 이 영화의 등장한 멜빈 퍼비스
를 연기하기 위한 배우같았다고 짧게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정말 더 꽉 다문 입에서 브루스 웨인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그래도 첫 대사를 할 때 그 목소리는 마치 변조된 배트맨 목소리가 살짝 연상되긴 했다).

마리온 꼬띨라르는 <라비 앙 로즈>에 이어 또 한 번의 시대극이라서 그런지 에디뜨 피아프의 잔상을 다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조니 뎁과 은근히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후버를 연기한 빌리 크루덥은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연기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자꾸 <왓치맨>의 닥터 맨하탄이 생각나서 집중되지 않기도;; (닥터 맨하튼이 갱스터 하나 못잡아서 곤란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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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급 연기자들 외에도 이 작품엔 참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서 배우들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파라미르' 데이빗 윈햄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고, 며칠 전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스테판 그레이엄 역시 '참~ 맘에 안드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고 있고,
<블레이드>에 출연했던 스티븐 도프, 따져보니 본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은데 얼굴만은 참 익은 지오바니 리비시, 마지막에 잠깐 등장했지만 얼굴을 보고는 반가웠었던 <딥 임팩트>의 그녀 릴리 소비에스키까지. 예상치 못했던 조연급 연기자들이 다수 출연해 그것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그 중 가장 놀라웠던 출연자는 UFC와 프라이드에서 활동했었던 격투선수 돈 프라이였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존재감은 어느 정도 있는 캐릭터였는데, 돈 프라이를 마이클 만 감독 작품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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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마이클 만의 <퍼블릭 에너미>는 예상하던 장르 영화로서의 갱스터영화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번 영화 장인으로서의 마이클 만의 야욕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1.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HD카메라의 의도적 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2. 초반 클럽에서 노래하는 여가수는 다름 아닌 다이애나 크롤이더군요. 깜놀.
3. 누가 조니 뎁 아니랄까봐, 이름이 뭐냐는 물음에 '잭'이라고 하더군요 ㅎ
4. 극장 장면은 하나는 참 재미있었고, 다른 하나는 참 영화적으로 인상적이더군요. 셜리 템플 지못미.
5. 무언가 더 할말이 있었는데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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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4 : 미래 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
아쉬움 가득한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의 4번째 작품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영화 한 편, 혹은 시리즈라기 보다는 일종의 신드롬이자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여기서 그 얘기를 다 하자면 연작으로 해도 모자를 터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감독, 배우 등 다른 요소들에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터미네이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될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2>의 경우는 마니아층이 아주 두터운 작품이라 출시된 DVD의 경우만 해도 일반판, SE, CE, UE 등등 수 많은 에디션들과 각국에서 출시한 버전을 따로 컬렉팅하는 유저들이 유난히 많았던 작품으로도 기억되는 영화다. 엄청난 혹평을 받았던 3편을 뒤로하고(개인적으로는 3편의 엔딩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 편이다) 4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팬들 사이에서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크리스찬 베일이 존 코너를 연기한다고는 하지만 감독이 맥지(McG)라는 부분이 가장 불안요소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불안요소는 그대로 작용한 편이었고 <터미네이터 4>는(이 리뷰에서는 굳이 한국어 부제목인 '미래 전쟁의 시작'이라는 말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salvation'(구원)이라는 부제가 엄연히 있고 뜻하는 바가 분명 있는데 대중들이 혹할 만한 '미래'와 '전쟁'을 조합한 이 부제목은 역시나 아쉽다. 아마도 이 부제목은 이 영화가 5편, 6편쯤 갔을 때 실제 부제목으로 등장하지 않을까도 싶다), 호평 보다는 혹평이 더 쏟아지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일단 불만 혹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영화에 시나리오와 스토리 텔링 부분을 들 수 있겠다. 만약 이 영화가 '터미네이터'가 아닌 그냥 '미래 전쟁의 시작'이었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SF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이런 영화로서의 장점은 나중에..). 그런데 잘 알다시피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다. 더군다나 대외적으로 프리퀄이라고 홍보한 것도 아니고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임을 자명하고 있는 작품이라는게 이 영화에 가장 아쉬운 점에 시작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게 될 대부분의 관객은 그냥 액션 영화를 보자가 아니라 '터미네이터'의 새로운 시리즈는 어떨까?하는 궁금증과 기대치로 이 영화를 접하게 되기 때문에 일반 액션영화로서는 절대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 최대의 적이 '기대치'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터미네이터 : 살베이션>이 예상 보다 훨씬 더 큰 혹평을 받고 있는건, 이렇게 수년간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려온 팬들로 하여금 '아, 아쉽다'가 아니라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터미네이터라는 세계관에 맞지 않거나 어긋나게 묘사되고 있는 장면들과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잘 알다시피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SF/액션 영화라기 보다는 자신 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하나의 '세계'이다. 이런 세계관이 있는 영화에서 디테일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는 너무도 이런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 장면이 많아 더 큰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1,2편을 보면서 상상했던 2018년의 모습은 스카이넷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인간들이 지하나 굴 속에 숨어 살며 존 코너를 중심으로 게릴라를 펼치는 것 정도(그러니까 스카이넷에 비해 굉장히 열악한 시설이라 해야할까)로 생각했었는데, <살베이션> 속에 등장하는 저항군의 위용(!)은 가끔 스카이넷과 동등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장며는 저항군의 본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도망치는 마커스를 잡기 위해 대규모 공격과 폭격을 퍼붓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에서 처음 총성이 났을 땐 나도 모르게 '어, 저러다가 스카이넷에게 들키겠다!' 했으나 스카이넷에 레이더는 자신들 기지 근방 몇미터에만 적용이 되는지, 밤중에 시끄럽도록 펑펑 총과 폭탄을 쏟아부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더더군다나 물 속에는 이들을 공격하는 로봇도 있지 않았던가). 이와 비슷한 장면으로는 마커스와 블레어가 본부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이 장면에서도 속으로 '불을 피우게 되면 스카이넷에서 열감지를 해서 걸리는게 아닌가'했지만 역시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스카이넷 본부에 존 코너가 소니 기계 하나 들고 마커스와 연락하여 유유히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존 코너를 막 쫓던 아놀드(!)가 카일 리스의 이야기로 잠시 갔다온 뒤엔 갑자기 거리가 멀어진 점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었다. 저항군의 묘사에 있어서 A-10 전투기로 스카이넷의 비행선을 격추하는 장면등은 사실 전혀 의외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나리오 측면에서 '터미네이터'임을 망각하고 단순 'SF/액션' 정도로만 접근하고 있는 부분은 이것 외에도 상당히 많다. 각 인물들의 행동들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면에 있어서도 아쉬운 점이 많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분명 스카이넷에서는 '카일 리스'를 중요 인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끝까지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에서 계속 언급한 헛점들 가운데 몇가지는 굉장히 이 작품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풀어보자면 나중에 만들어질 5편 혹은 6편에서 본격적으로 풀어내기위해 던져둔 떡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왜 스카이넷이 카일 리스를 계속 그냥 두는가. 마커스의 모호한 존재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엔딩에 드러난 마커스와 존 코너의 애매한 결말 같은 경우는 후속편에서 설명하고자 하면 설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이렇게 후속편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던져둔 설정들이라고 해도, <살베이션>의 구성은 너무 헛점이 많았고 팬들로 하여금 아쉬움이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수준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인 맥지가 이 영화가 '터미네이터'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굉장히 고려하려고 노력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기존에 <터미네이터>를 인상 깊게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쉽게 눈치챌만한 오마주와 설정 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들에 앞서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짜임새가 선행되지 못하다 보니 이런 오마주들 마저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효과를 낳고 있다(얼마전 개봉했던 <스타트렉>의 경우와 좋은 비교가 될 것 같다). 사라 코너의 내레이션을 오마주한 존 코너의 내레이션도 그렇고, 카일 리스와 아놀드가 분했던 터미네이터의 그 유명한 대사(I'll be back은 정말로 전혀 살리지 못한 것 같다)도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고, 공장을 배경으로 용광로가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고, 100% CG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모습도 <스타트랙>의 경우가 감동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아무리 CG캐릭터라고는 하지만 터미네이터 라기 보다는 마치 이안 감독의 '헐크'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맥지 감독은 이런 장면들과 설정들을 삽입하면서 무언가 이 시리즈의 팬들의 향수와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을 기대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런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100%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MTV스타일의 화려하고 볼거리 가득한 액션 장면을 만들어내곤 했던 맥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런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토바이 형식의 터미네이터와 추격전을 펼치는 액션 장면도 괜찮고, 헬기와 비행선을 통해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도 나쁘지 않으며, 대형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도 <트랜스포머>에 까지는 못 미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관객이 얻으려고 하는 재미는 충분히 전달하는 편이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 같은 경우도 일부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 실감나도록 하는 앵글을 사용하여(헬기 추락씬 같은 경우) 체감을 더하고 있기도 하다. 액션 장면들이 SF/액션 영화로서 부족한 편은 아니지만 아예 액션을 강조한 오락영화의 길을 택하던지 아니면 마커스를 중심으로한 필립 K.딕의 세계관을 통해 고민하는 철학적 내용으로 담아내었던지(물론 가장 좋은 건 이 두가지의 조화일 것이나) 하면 조금 더 좋을 수도 있었겠으나, 맥지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결국 다 놓쳐버린 꼴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마커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샘 워싱턴이 연기한 마커스 라이트는 사실상 <터미네이터 : 살베이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존 코너의 감정선 보다는 마커스의 감정선을 따르고 있으며, 캐릭터가 주는 임팩트도 오히려 마커스가 존 코너보다 나은 편이다. 마커스라는 캐릭터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기도 한 필립 K.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 영향을 받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도 샘 워싱턴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완전한 로봇 같은 이미지보다는 본인이 인간임을 굳게 믿는 존재로서의 혼란스런 가치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그 여정에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만약 이렇게 마커스라는 새로운 캐릭터에게 큰 비중을 주고 있는 영화라면 오히려 더 마커스에게 집중해서 그의 가치관과 존재의 비밀까지 파해치는 영화가 되었으면 (존 코너는 거들 뿐) 차라리 색깔있는 시리즈 중 한편으로 인정받지 않았을까도 싶다.

존 코너 역할의 크리스찬 베일은 나쁘지는 않으나 영화 속에서 존 코너라는 캐릭터 자체가 큰 인상을 주지 못하다보니 별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많은 팬들이 '그래도 크리스찬 베일이라면....'하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을 듯 하다(이건 본인의 연기문제라기 보다는 시나리오상의 문제겠지요). 카일 리스 역을 맡은 안톤 옐친은 <스타트렉>에 이어 자주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한 관객분이 '원래 영어 잘하네'라는 말을 하시던데, 공감한다 ㅎ 카일 리스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에 비춰봤을 때에는 역시 아쉬운 부분이 들기도 한다. 블레어 윌리엄스 역할을 맡은 문 블러드굿은 딱 기대했던 정도의 모습이랄까. 왠지 메간 폭스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도 있었다. 초반에 살짝 등장해주었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뭐 비중이 크지 않아 별로 할 말이 없을 듯 하고, 이젠 영화배우로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커먼(common)은 개인적으로는 더 멋진 앨범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이클 아이언사이드는 출연여부를 몰랐기 때문에 등장만으로도 상당히 반가웠었는데 반가움 이상으로 발전할 비중은 없었던 것 같다. 케이트 역을 맡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아마도 속편을 위한 떡밥을 담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괜찮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작품 <터미네이터 : 살베이션>은 터미네이터의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렸던 많은 팬들에겐 아쉬운 작품이 될 것 같다. 분명 후속편을 염두해 두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과연 앞으로 기대로 작용하게 될지 더 큰 불안요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터미네이터>를 액션 영화로만 접근하면 어떤 아쉬움을 자아내는지 스스로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그렇다면 5편은 아예 철학적 난해한 텍스트로? ㅎ).


1.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의 창조자 '스탠 윈스턴'에게 헌정되었습니다.

2. 본문에도 있지만 맥지 감독이 기존 팬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건 느낄 수 있었어요.

3. 롯데시네마 였던가 이 영화 예고편을 패러디해서 '매너전쟁'이라는 캠페인 광고를 만들었었는데, 크리스찬 베일이 극중에서 'we are all dead'할 때 자꾸 매너전쟁이 오버랩되서 곤란했다는 ---;;;

4. 그런데 블레어 눈 주위에 붉은 색은 처음에는 비행선에서 탈출할 때 헬멧을 오래 쓰고 있어 생긴 자국인줄 알았는데,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하더라구요. 위장이고 하기엔 좀 어색한 것 같은데. 사실 로봇과 전쟁하는데 얼굴에 위장하는건 소용없는 일이잖아요;;

5. 완전 잡담으로, 전 언제부터가 영화에서 헬기타고 떠나기만 하면 <영웅본색 3>가 떠올라요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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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오늘 아이맥스로만 세 번째 관람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요 근래에 영화에서 이렇게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효과적으로 전달한 경우가 있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 답게 볼거리는 볼거리대로 전달하고, 스케일은 스케일대로 자랑하고 있으며, 코믹스를 원작으로한 히어로물답게 캐릭터별로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도 잘 표현해내고 있고(물론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영웅론과는 다르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영화 속에 녹여내 관객으로 하여금, 그 어떤 정치적 선동이나 말들 보다도 훨씬 강한 인상을 받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오히려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들이 (특히 초반부에 대사들은 영화에 막 빠져들기 시작하는 단계라서 - 그리고 어찌 진행될지 몰랐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에서도 - 작은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거의 한 마디도 그냥 쓰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혹은 농담하듯 던지며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관한 심각한 스포일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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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트맨, 하비 덴트, 조커, 이 세 명 모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모두 다 아시겠지만 이 세 캐릭터의 영화 속 관계나 캐릭터가 갖고있는 상징적인 의미의 관계를 보아도, 이들은 절대 독립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는 영웅과 악당의 단순 관계로 규정 짓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다 하겠습니다. 일단 얼핏 보아도 배트맨은 일반적 히어로물의 영웅들과는 거리가 있으며, 조커 역시 일반적인 악당들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다크 나이트>에 따르자면, 조커는 태생적으로 배트맨의 의해 탄생하게 된 인물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처럼 조커가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살해하게 되어 직접적인
원한의 구조로 이루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조커란 캐릭터는 고담시의 범죄와 싸우는 배트맨의 등장을 목격하고, 고담시민들이 배트맨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자신과의 유사점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일어나게 된 갖가지 사회적 현상들과 모순들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고, 이로 인한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의도 아닌 의도를 가지고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다크 나이트>에서는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조커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배경은 물론, 의도나 성격 자체가 없는 캐릭터로, 혼돈 그 자체로 보는 편이 더욱 맞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앞서 '의도'라고 표현된 것들은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지, 애초에 그럴려는 엄청난 계획과 목표를 갖고 진행된 일들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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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속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보여주는 이른바 '별종'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은 어느 정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화 초반 갱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별종'이라는 단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던 조커가 배트맨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별종'이라 칭하며 배트맨에게 '너도 나와 같은 별종이다'라고 이야기하죠. 배트맨은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지만 조커와의 대결이 깊어질 수록 점차 어느 정도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다른 히어로물의 영웅의 모습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물론 모든 히어물과의 비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경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설정은 놀란이 얘기하려는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외계인이 되었든, 돌연변이가 되었든, 아니면 사고로 특수능력을 얻었던지 간에, 일반적으로 주인공인 영웅들의 이러한 능력은 악을 소탕하는 데에만 쓰여지면 일반인들에게도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환호를 얻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일반인들이 보내는 시선과 반응이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이라면, <다크 나이트>에서의 모습은 영화의 겉모습처럼 상당히 리얼리티에 가까운, 즉 판타지에서는 숨기고 싶었던, 버젓이 존재하지만 숨기고 싶었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과 모순적인 양면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만드는 존재가 바로 조커이며, 조커가 만들어낸(만들었다기 보다는 끄집어낸) 사건들이 계속되면서 브루스 웨인 역시, 자신이 본래 생각했던 선한 의도로 행했던 일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직시하게 되고, 배트맨으로서 행해왔던 영웅적인 일들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즉 자신이 조커와 같은 '별종' 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다크 나이트>속 배트맨의 모습이 일반적이라면 이러한 고민에 굳이 빠져들 이유가 없으며, 그냥 조커 역시 다른 악당들처럼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결국 소탕해내고, 앞으로도 계속 영웅으로서 악당을 소탕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다릅니다. 배트맨은 자신이 이런 비정상적인 영웅 행동이 영원할 수 없음을 이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조커의 등장과 사건들을 통해 이를 더욱 확신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과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가 바로 하비 덴트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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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하비 덴트의 캐릭터에 공감을 하고 감정이입이 되었을 만큼,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는 어찌보면 가장 안쓰럽고 안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악과 맞설 방법을 찾던 브루스 웨인에게 적임자로 선택되었을 정도로 하비 덴트의 캐릭터는 '고담시'라는 배경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매우 곧은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고든과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비 덴트는 내사과 시절부터 어찌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보일 정도로, 관례적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좋지 않은 행태들 마저 일일이 태클을 걸며 걸고 넘어지는, 즉 너무 곧이 곧대로 법과 선을 행해서 나쁜 이들은 물론 동료들과 일반인들에게도 때때로 욕을 먹는 고담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이죠. 

물론 그렇다고해서 하비 덴트가 절대 선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가 <다크 나이트>에서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 그는 악당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데에는 어느 정도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면에서는 배트맨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얼핏 보면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이라는 인물이 가장 선한 캐릭터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배트맨 비긴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파트너가 뇌물을 먹고 부패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냥 긁어부스럼 만들기도 싫고, 또한 이미 모두가 썩었는데 어디가서 얘기하냐며 현실을 탓하고 마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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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비 덴트는 달랐죠. 그도 누구보다 이렇게 썩을 대로 썩은 경찰과 조직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하비 덴트는 이런 부조리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워온 용자라 할 수 있습니다. 고든이 하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영화 속 대화에 언급된 것처럼 영웅심에 불타 동료들 모두를 조사한 것에 불쾌한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마음 한 편에는 자신은 미처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을 거침없이 해나아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질투어린 시선과 부러움, 그리고 존경심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고든의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이후 하비 덴트가 결국 부패한 경찰들에 의해 레이첼과 각각 납치가 되고, 레이첼을 잃는 사고를 겪고 그가 고통에 힘겨워 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표현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고든이 하비에게 갖는 미안함은 레이첼을 잃게 되는 사건에 있어서 결국 하비를 믿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큰 것이겠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애초부터 갖고 있었던 이러한 부러움과 존경심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하비 덴트의 중심으로 돌아가자면, 하비 덴트에게는 레이첼을 잃은 책임을 묻는 대상이, 이를 사실상 직접 행했다고 볼 수 있는 조커도 아니고, 어찌되었든 레이첼보다 자신을 먼저 구하러 온 배트맨도 아니며, 그 동안 경찰조직 내에서 그 부패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미적한 태도로 이를 자신처럼 적극적으로 고쳐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고든이라는 점에서,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가 투 페이스로 변하게 된 근본적인 심경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 원한의 가장 큰 대상이 배트맨이나 조커 였다면, 영화 속 투 페이스의 모습처럼 변화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하비 덴트는 레이첼을 잃음으로서 그간  자신이 그토록 바꿔나갈려고 고군분투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던, 이른바 같은 편인 경찰들에게 (더군다나 결국 그 부패한 경찰들이 자신과 레이첼을 납치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음으로)그 화살을 돌리게 되면서 더 큰 분노로 인해 투 페이스의 모습으로 변화했다고 생각됩니다. 하비 덴트의 입장에선 어찌됬든 배트맨은 행동하는 인물이었고, 고든은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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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고든으로 돌아가자면, 고든은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가장 죄책감을 크게 느낀 인물로 보여집니다. 하비 덴트의 생각처럼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거나, 인정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면 고든도 참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비 덴트를 통해 이제야 자신이 역할과 해야할 일을 비로서 깨닫게 되었지만, 앞으로는 개혁하려는 용기가 있어도 배트맨의 뜻을 들어주기 위해 연기를 해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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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는 처음 볼 때부터 굉장히 정치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일단 아이러니하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히어로물은 가장 미국적인 동시에 전세계에서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은연중으로 혹은 세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토록 만드는 기능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것이 애초부터 의도적이든 하다보니 그리 되었든 말이죠. 슈퍼히어로물에서 주인공인 영웅은 곧 미국이며, 악당은 미국이 주적으로 칭하는 테러리스트 들이 되겠으며, 테러를 당하는 일반 시민들이나 보통 사람들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정도로 비교하면 될 듯 합니다. 즉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고, 슈퍼히어로가 나서서 악을 물리치면 만사가 행복하고, 이는 결국 세계의 혼란스런 정세 속에서 미국이 경찰 노릇을 해야만이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에서는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슈퍼 파워를 선한 의도로 좋은 일에만 쓰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즉 책임만 지면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로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슈퍼파워는 좋은 일에 써라'가 되기도 하겠지요. 물론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에는 감수하고 희생해야 될 것도 분명히 있다 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를 단순히 가면을 쓴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삶과 가족이나 여자친구를 포기해야 된다는 것 이상으로는 전개하지 않고 있지만, <다크 나이트>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괜찮은가?' 혹은 '슈퍼파워를 지닌 자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하여 선과 악의 균형을 맞추는 것 자체가 옳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만 사용된다면 다 괜찮은 것인가? 선한 의도로 행한 힘의 결과로 좋은 일들만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이런 것을 슈퍼히어로가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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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감독의 비판적 메시지는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조커의 행동들을 보며 '그들이 이렇게 까지 선을 넘을 줄은 몰랐다'라는 브루스의 말에 알프레드는 '선을 넘은 건 주인님이 먼저죠'라며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아주 직접적입니다. 배트맨은 분명 악당을 소탕한다는 의도 아래 악당들과 마찬가지로 법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폭력을 행했고(그 폭력이 누구에게 행해졌는지만 다를 뿐이죠), 단순히 용기 있는 몇 번의 행동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각종 신무기와 비밀스런 프로젝트 들을 통해 브루스 웨인의 삶보다 배트맨의 삶에 더욱 집중했을 정도로 악당과의 전쟁 아닌 전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브루스 웨인에게 배트맨으로서 아버지의 혼이 깃든 고담시를 지켜야 한다, 고담시의 악을 모두 소탕해야 한다라는 것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비판의 메시지는 정치적으로 미국과 미국의 군사행동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히어로인 배트맨의 모습은 미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현재 정세 속에서 일종의 영화 속 히어로 입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의도 아래 각종 군사작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아직 믿기 어렵고, 나에게 적대적인 나라들이 힘을 갖는 것은 위험하니, 착한 내가 힘을 다 쥐고 컨트롤 하는 것이 안전하다 라는 것이지요. 이 논리의 기본적인 모순은 착한 사람이라도 모든 권력을 쥐고 컨트롤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더 문제는 그 '착한 사람'이 실제로는 '더 나쁜 사람'이라는 것에 있겠지요. 물론 영화 속 배트맨의 모습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더 나쁜 사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착한 사람이죠. 힘을 가지고 영웅 대접을 받고 영웅놀음에 빠지게 되면 당사자는 이미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브루스 웨인도 이런 위기에 빠질 수 있었으나 그에게는 알프레드나 폭스, 레이첼 같은
곧은 말을 해주는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브루스 웨인은 항상 알프레드에게 '어떻게 해야하냐'며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알프레드는 브루스가 스스로 깨우치도록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으로 대답을 돌려줍니다. 그래서 브루스는 자신이 계속 고담을 위해 배트맨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담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선한 의도로 행해왔던 일들로 인해 더 큰 악이 발생한 것을 깨닫고 '영웅'으로서가 아닌 '어둠의 기사' 로서 자신 스스로를 희생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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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에게 있어 굉장히 비판적인 텍스트 입니다. 다른 장르도 아닌 미국의 영웅적 행세를 가장 근간에서부터
지지하고 있던 히어로물에서, 이런 미국의 영웅적 행태를 비판하는 텍스트를 끌어낸 것은 놀란 감독의 대담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클 케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기존 히어로물이 미국 내에서 바라본 미국의 모습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미국을 바라본 모습이라는 말은, 아주 완벽하게 떨어지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그것도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메시지의 표현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가 대단한 작품이라 평가 받는데에는 이런 비판적인 시각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영화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다'라며 화두를 던져준 영화는 많았으나 '이렇게 해야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영화 속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모습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단순히 문제 제기 뿐 아니라, 나아가야 할 해결책 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배트맨의 모습이 바로 그 해결책이지요.

조커와의 대결을 통해 배트맨의 등장이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후계자 겪인 인물을 모색하던 중 하비 덴트를 점 찍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하비 덴트 역시 타락해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결국 스스로 영웅의 이미지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배트맨은 폭스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휴대폰을 통해 모든 이들을 투시할 수 있는 이른바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되는데, 폭스는 '이건 너무 과한 힘이에요'라며 우려를 표시합니다. 배트맨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이번 일만 끝나면 이 기계가 존재하는한 회사를 떠나겠다는 폭스에게, 일이 끝나면 이름을 입력하라고만 합니다. 결국 기계를 통해 조커를 다시 잡아들이게 되고 폭스는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고, 기계는 폭파되며 폭스는 '그래 브루스 웨인이 그럴리가 없지'라는 식의 미소를 띄우며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일반적이라면 악당을 잡아들이는데 용이한 이 기계를 굳이 폭파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자면 배트맨이 앞으로도 활동하는한 더한 악당들이 계속 등장할테니, 그들과 계속 싸우기 위해서라도 이 최신의 무기는 남겨두어야 겠지요.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 기계를 과감히(?) 폭파합니다. 그 이유는 폭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이 너무 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아무리 선한 편이라 하더라도 이 경우처럼 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신도 본인이 소탕해야할 악당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앞으로 악당들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을 지언정, 도를 넘는 옳지 않은 방법은 과감히 포기하고 미련을 버립니다. 이것은 미국식 히어로물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비판적인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담기에 '배트맨'이라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아니 이 모호함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캐릭터는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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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알프레드의 대화 속에서 이 영화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제가 일일이 대사 하나하나를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다크 나이트>를 또 다시 보게 될 분들이 계신다면 이 둘의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곱씹으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던 대화들도 하나하나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무섭도록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화를 통해서는 이 영화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따져보면 영화 속에서 조커는 자신이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계획했던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 속에 내제되어 있었던 본성과 모순을 끄집어내 이용한 것 뿐이었죠. 그가 처음 배트맨에게 관심을 끌고 접근하게 된 것도, 배트맨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갱들에 필요를 끌어냈기 때문이었고,나중에 자신을 잡으러온 배트맨이 경찰 특공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도록 만든것도, (안이 훤히 보이는 의심스런 건물임에도, 더 치밀한 조사없이)가면을 쓴 사람은 악당이고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은 인질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죠. 특히 그간 범죄를 소탕해 오던 배트맨을, 막상 자신들에게 죽음의 위험이 닥쳐오자 제물로 바치는 듯이 자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장의 모습이나, 리스가 시간 내에 죽으면 폭파시키지 않겠다는 조커의 말에 모두들 달려들어 리스를 죽이려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무관한 일들에는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먼산 보듯 하다가, 정작 자신의 신변에 직접적인 위협이 닥쳐왔을 땐 그 어떤 악당들보다도 악한 본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이기적인 사회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병원에 입원된 가족을 위해, 혹은 밀린 입원비를 위해 남의 목숨을 쉽게 재물로 바치고 마는, (저도 물론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대사이지만, 영화의 초반에 고든과 라미레즈가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때, 고든이 라미레즈에게 부모님은 어떠시냐고 안부를 묻자, 계속 입원 중이시라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이 대사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면, 후반부에 경찰 가족 가운데 병원에 입원한 사람 찾아보라고 했을 때 벌써, 라미레즈의 배신을 눈치챌 수도 있었겠지요) 즉 선과 악의 차이는 동전 뒤집듯이 별 것 아닌 것이 되고마는 사회의 암울하고 어두운 면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과 악에 대한 묘사는 배트맨과 조커의 캐릭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고,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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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에 근거해 이 영화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시퀀스는 바로 두 대의 유람선 장면이었습니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선입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화법이나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화에 심하게 몰입한 관객들이 생각하기에, 막판에 한 죄수가 '당신이 10분 전에 못한 일을 내가 하겠다'며 기폭장치를 달라고 했을 때 대부분 그 죄수가 누르겠거니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죄수는 기폭 장치를 누르지 않고 오히려 창문 밖 바다로 던져버리죠. 그리고 다른 배에서도 한 남자가 '자기 손이 더럽히긴 싫다 이거지'하며 기폭장치를 손에 쥐었을 때 누르지 않을까 했지만, 이 남자도 결국 누르지 못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게 되죠.

그런데 저는 이 다음 장면에 각 배에 탄 사람들의 심리 묘사 장면이 더욱 좋았습니다. 좋았다기 보다는 표현함에 있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기폭장치를 던져버리거나 누르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같은 배에 탄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그래, 그런 짓을 할 수야 없지'라기 보다는 '아, 이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더욱 커 보입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차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본능적으로는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라는 감정이 극하게 교차되고 있는 순간이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함께 이 극적인 선과 악의 대립의 순간은 극렬하게 묘사되지만, 결국 둘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못하고, 이에 조커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 동안 사람들의 악한 본성에 내맡겨 자신의 일들을 척척 진행되었던 조커에게는 처음 맛보는 실패 아닌 실패였죠.

이 장면은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판타지 적이라기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쩌면 죄수들도 누르지 않고, 죄수들을 죽여야 한다며 큰 소리 치던 사람들도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는 이 장면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진 것 자체가, 현대의 이 사회가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가를 은연중에 느끼게 해준 섬뜩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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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메멘토> <인썸니아> <프레스티지>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물에서는 담을 수 없었던, 혹은 담으려 하지 않았던 미국식 영웅주의의 대한 비판적 메시지와 더불어 선과 악이 이성보다는 이기적인 본능에 의해 제어되는 사회의 대한 비판과 이러한 사회와 정세 속에서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의 메시지를 모두 담고 있는 완벽한 영화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다크 나이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자면, '완벽한 영화'라는 표현마저도 오만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어떻합니까.
완벽한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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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과 극찬들. 국내 시사회 이후에 역시나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걸작이라는 거침 없는 평가들. 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고(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저 뿐 아니라 기대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 수록 실망이 자연적으로 커지는 법이라 감상전의 이 같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은 분명히 곧 만나게 될 <다크 나이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습니다. 즉 쉽게 말해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었어도 워낙에 커진 기대 탓에 120점 정도는 보여줘야만이 100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부담스런 기대를 안고 관람했음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200점짜리 결과물을 저에게 안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감동과 전율의 눈물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위대함에 대한 박수를 보낸 영화였으며, 그 동안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영화들을 모두(과장을 보태자면)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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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작이었다는 것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기존 판타지스럽고 기존 히어로 물의 일반적인 구성에 충실했던(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이 이런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죠) 배트맨의 이야기를,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로 가져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인간적인 면으로 그려냈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왜 배트맨이 되었나에 관한, 혹은 될 수 밖에는 없었나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정말 놀란이 만든 <배트맨 비긴즈>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담시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워진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데에 <배트맨 비긴즈>의 최대 공을 들였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프롤로그 없이 이미 비긴즈에서 설명이 된 세계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복잡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배트맨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적으로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고, 투 페이스도 등장하게 되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기본적인 히어로 물의 아주 커다란(아주) 바탕 아래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히어로로서 겪는 갈등의 요소를 극대화해 어느 리얼한 극 영화들 보다도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고 지치고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갈등을 야기시키면서(그것도 히어로 물에서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심리극의 분위기로 배트맨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되는 배트맨을 만들기 위해 리얼리티를 강조함에 있어 마이클 만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 동안은 그저 코믹스나 영화 속에나 만나볼 수 있는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고담씨티를 실제 시카고를 배경으로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인물들과 배트맨, 조커 등의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도 동시에 부여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마이클 만이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총격씬에서의 리얼리티와 사운드(마이클 만은 역시 총소리의 달인!), 그리고 <콜레트럴>에서 보여주었던 L.A의 밤거리의 묘사 같은 장면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특히나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CG가 아닌 리얼리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반 프롤로그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의 사운드는 엄청난 박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밤거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차량 추격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묵직함과 박력이 느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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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열연은 <다크 나이트>를 위대한 영화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사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에 가려서이지,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신뢰를 깊게 할만큼 인상적입니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던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해 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언제 까지 배트맨이 고담시에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 악을 소탕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 오게 된 계기는 아니었나'하는 '배트맨'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더 집중적으로 리뷰할 글을 위해 남겨두느라 자세한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겪는 고민은 관객도 예상할 수 없음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따르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크리스찬 베일만한 배우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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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서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짙은 분장과 의도된 목소리 연기 탓만이 아니라, 그의 놀랍도록 몰입된 연기에서는 히스 레저는 물론, 조커 하면 떠오르는 잭 니콜슨의 그림자 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간 히스 레저가 출연한 작품들은 <카사노바>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보았던 것 같은데, 그 작품들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도된 목소리 연기와 입맛을 다시는 동작 등을 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탄스럽고 칭찬할 부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 또한 나중 포스트에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을 때보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온 오늘의 느낀 그의 공백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ㅠㅠ


초반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는 이 정도면 거의 까메오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이런 스쳐가는 분량에도 기꺼이 참여한 그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결과적으로 킬리언 머피도 이 걸작의 영화에 동참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과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역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하면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거치면서 어느새 악역의 기존 이미지는 거의 다 희석되다시피 되어버린 게리 올드만 역시 고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냈고(코믹스 속 고든의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코믹스 속 고든과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의 모습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케이트 홈즈에 이어 레이첼 역할을 맡은 메기 질렌할은 객관적인 미모 평가에서는 조금 뒤쳐진다는 평들도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가 교체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물론 영화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 감독의 연출력이 바탕이 되었죠).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과 조커 만큼이나)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선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비 덴트와 악당이 모습으로 변해버린 투 페이스의 캐릭터 모두를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되지 않도록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등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 포스트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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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무려(!) 함께 작업한 사운드 트랙은 그야말로 걸작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중후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하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너무 오버되지 않은 표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서사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묻어있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오랜만에 스케일이 느껴지는 사운드 트랙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 너는 질러져있다).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된 이후에 작정하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번 보고, 단 번에 연재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떠오르고 계획하게 된 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의 세계관 / 감독의 메시지, 배우/캐릭터 열전,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배트맨 이야기 등등 적게는 3회, 많게는 4~5회에 걸쳐 <다크 나이트>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작이자 히어로 물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에 대해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성의이겠지요 ^^;



1.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건 느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2.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해가는 과정과 배경을 보니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투 페이스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약간 우습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들이 다시 보였달까요. <다크 나이트>중복 관람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배트맨 포에버>를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3.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 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이 뜨자 한 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와 스텝의 이름이 떴을 때 한 번, 총 3번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4. 전 원래 어느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 보고 나오는 편이지만, 화요일 6시 용산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쳐다봤는데, 아마도 제가 본 이래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완전히 끝까지 남아있던 광경이었습니다.

5. 에릭 로버츠의 모습도 오랜만이라 반갑더군요.

6. 고든의 아들 역할로 나오는 아역배우 나단 겜블은 <미스트>에서 토마스 제인의 아들로 나오기도 했었죠.

7. 엔딩 크레딧에 히스 레저와 함께 추모의 뜻을 보냈던 이는 Conway Wickliffe 라는 특수효과 전문 스텝이었습니다. 1966년 생으로 지난해 9월 25일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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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가운데 가장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누가 뭐래도 <다크 나이트>일 것이다.
팀 버튼이 재해석한 <배트맨>시리즈 이후 완전히 망쳐놓은 3,4편을 넘어서(아니 3,4편은 언제 한 번 다시
곰곰히 따져봐야 겠다. 괴작으로의 맛이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시 만들어낸 <배트맨 비긴즈>의 의미심장한 성공 이후 매번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와 함께 가장 매력적인 악당 순위 1,2위를 다투는 조커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중 2번째 작품인 <다크 나이트>.

이미 아주 많은 티저 영상들과 포스터 등등이 공개되었지만, 포스터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미리 접하지 않고
그간 열심히 피해다녔다. 바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 완전히 신선한 느낌을 받기 위한 일종의 노력인데,
<다크 나이트>의 경우는 이런 행동들이 매우 어려웠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래도 이제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이런 노력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과연 히스 레저가 보여주는 조커의 모습은 어떨까.
이미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던 잭 니콜슨의 조우커 마저 뛰어넘은 영화사에 남을 연기를 펼쳤다는 평들도
자자하던데 정말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과연 <다크 나이트>도
이런 흔해빠진 공식을 이겨내지 못할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 CGV아이맥스 예매가 오픈하여, 개봉일과 그 주 일요일 아이맥스로만 2번 예약완료.
  시너스 이수5관도 오픈되는대로 예매 예약.
  메박 M관도 여유가 되면 예매할 계획.
  <스타워즈>이후로 극장에서 단일 영화로 가장 많이 보게 될 영화로 일단 내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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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밥 딜런의 몽타주

음악을 듣는 사람치고 밥 딜런 (Bob Dylan)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미 여러 뮤지션을 통해 리메이크 되었던 'Knocking on Heaven's Door' 같은 곡은 누구나 알 정도로,
밥 딜런은 단순히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당시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었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가장 흥분되었던 것은 이미 <벨벳 골드마인>이라는 작품으로,
음악과 문화를 대하는 깊은 태도를 보여주었던 토드 헤인즈가 감독을 맡았다는 점과,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벤 위쇼, 리처드 기어 등 여러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 다음 알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일반의 전기영화와는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6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밥 딜런을 연기한다는 점은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오랜만에 개봉날 관람하게 된 이 영화는,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전기 영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영화였으며,
어쩌면 밥 딜런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그를 통해 당시 문화를 꿰뚫고 있는 하나의 시대영화이자,
음악 영화로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 영화에 대해 '밥 딜런의 몽타주'라고 얘기하고 싶다.
몽타주란 여러 사람이 추정하고 상상하고 예측한 것으로, 몽타주의 당사자가 되는 인물과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우디 거스리 역(마커스 칼 프랭클린)' '아르튀르 랭보 역(벤 위쇼)' '쥬드 역(케이트 블란쳇)'
'로비 역(히스 레저)' '잭/존 역(크리스찬 베일)' '빌리 역(리처드 기어)')



역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각기 다른 6명의 배우가 밥 딜런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여섯 명은 밥 딜런의 각기 다른 자아를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각기 다른 시대의 밥 딜런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극 중 이름이 '밥 딜런'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극 중 어디에도 밥 딜런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 시작전에 '밥 딜런의 음악과 영혼에서 인상을 받아 만들었음'이라는 문구가 등장할 뿐이다.
감독이 이 6명의 밥 딜런을 그리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캐릭터나 사건, 모습 등이
실제의 밥 딜런과 유사하면서도 완전히 허구의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벤 위쇼가 연기한
'아르튀르 랭보'의 경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시인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나는 타자이다 (Je est un autre / I is another)'라는 랭보의 유명한 시구와 이 영화의 제목이자 밥 딜런의
노래 제목이기도한 'I'm Not There'는 여러모로 이 영화의 제목으로 완벽한 것이 아닌가 싶다.
<향수>통해 독특하고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벤 위쇼가 연기하는 랭보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아주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탁자 앞에 앉아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랭보의 시퀀스는,
1965,6년 기자회견 장에서의 밥 딜런의 모습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정적인 캐릭터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갖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기자회견 장에서의 밥 딜런과 영화 속 벤 위쇼가 연기한 '랭보'의 모습)


흑인 소년 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연기한 '우디 거스리' 역시, 실존 인물에서 이름을 빌려왔는데,
밥 딜런의 우상이기도 했던 포크 싱어 송 라이터 '우디 거스리'에게서 가져왔으며, 실제로 우디 거스리는
백인이었던 것에 비해 흑인 소년으로 설정한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극 중에서
실제 우디 거스리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인데, 우디 거스리라는 이름의 소년이, 포크 싱어인 우디 거스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밥 딜런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우디 거스리를
병문안차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느낄 수 있었지만,
감독인 토드 헤인즈가 얼마나 철저하게 관련 인물들과 배경에 대해 조사를 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밥 딜런이 직접 출연도 하고 음악도 맡았던 영화 <관계의 종말>(근데 왜 관계의 종말이지? --;),
포스터 속 빌리로 출연했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아임 낫 데어>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빌리'역할은 밥 딜런이 직접 출연도 하고 음악을 맡기도 했던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의 'Billy the Kid'에서 가져온 듯 하다. 이 에피소드에는
팻 가렛 역할로 브루스 그린우드가 등장하는데, '쥬드'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도 쥬드를 괴롭혔던 언론인
미스터 존스로 등장했던 브루스 그린우드가, '빌리'의 에피소드에서도 빌리를 괴롭히는 팻 가렛 역할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영화적인 재미와 더불어, 이 각기 다른 밥 딜런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 <관계의 종말>에 빌리 역할로 출연했었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인데,
(아래 포스터의 포스터 속 인물), <아임 낫 데어>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다. 이렇게 모든 관련 인물을 세세하게 배치한 토드 헤인즈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빌리'는 위의 영화에서 캐릭터를 빌려왔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찬 베일은 포크 가수인 '잭'과 목사 '존'을 함께 연기하고 있는데, 이 두 캐릭터 역시 밥 딜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포크가수 '잭 롤린스'는 한참 저항음악의 대표주자로 활동하던 밥 딜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나 잭을 추억하는 '앨리스' 캐릭터는 누가 봐도 '조앤 바에즈(Joan Baez)'임을 알 수 있는데,
그녀는 실제로 밥 딜런과 함께 공연을 수차례 가졌었으며,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스틸 컷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앤 바에즈와 밥 딜런)


잭 롤린스 시퀀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촬영 방식이었다. 이 부분은 아주 다큐멘터리 적인 촬영방법과
구성을 갖고 있는데, 실제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쓰는 스틸 사진과 인터뷰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앨리스의 인터뷰 장면의 카메라의 노이즈나 촬영 방식 등은 페이크 다큐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잭 롤린스라는 캐릭터를 실존 인물인냥 묘사하고 있다(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이렇게 허구와 사실을
계속 뒤섞고 있다). 또한 나중에 히스 레저가 연기한 '로비'의 시퀀스에도 '잭 롤린스'는 실존 인물인냥
추억되고 있다.



(크리스찬 베일이 맡은 잭과 존은 마치 실존 인물인냥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그려진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도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 과도한 연기보다는 리얼리티에 중점을 두고 임하고 있는 듯 했다)

히스 레저(ㅠㅠ)가 연기한 '로비'는 극 중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허구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실제적인 사건들과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 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뮤지션으로서의 밥 딜런 보다는,
연애와 가정 같은 사적인 면의 밥 딜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극 중
샬롯 갱스부르가 연기한 클레어는 밥 딜런의 연인이었던 수즈 로틀로와 첫 번째 부인이었던 사라 라운즈를
반반씩 섞은 인물로 보여진다.



(너무나도 유명한 밥 딜런의 'The Freewheelin' Bob Dylan' 앨범의 커버. 이 커버를 인용한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이런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난 히스 레저의 연기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는 없는데, 확실히 그에게서는 그 또래의
남자 배우들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15세 관람가인 이 영화에서 그는
18세 관람가에 가까운 노출을 보여주기도 해, 순간 움찔하게 했다. 참고로 연인으로 출연한 샬롯 갱스부르
역시 개인적으로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노출연기를 감행(?)하고 있다.



(이제 그의 모습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또 다시 아쉬워지기만 한다)


샬롯 갱스부르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면, 사실 개봉 전 포스터나 다른 소식들을 통해,
밥 딜런을 맡은 6명의 배우에 대한 이야기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외에 더 많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줄리안 무어나 미셸 윌리엄스, 샬롯 갱스부르가 등장했을 때,
너무도 반가웠던 것이 사실이었다(놀랍게도 이 배우들 모두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여배우들이다).
줄리안 무어는 감독의 전작이었던 <파 프롬 헤븐>의 인연을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갔고, 샬롯 갱스부르는
다른 여배우들에게는 없는 그녀만의 아름다움을 은은히 보여주고 있다(그녀는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한 명의 놀라운 출연은 미셸 윌리엄스 였는데, 많이 살이 빠진 모습으로 까칠한 '코코'역할을 연기한 그녀는,
그 짙은 아이라이너 만큼이나 신비한 '코코'의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미리 알지 못했던 캐스팅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


잘 아다시피 미셸 윌리엄스의 출연이 더욱 뜻깊게 다가왔던 것은 히스 레저 때문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나 예쁜 딸을 두고 있었던 둘 사이었으나, 촬영 당시에는 헤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번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가장 안타깝고
슬펐던 사람은 다른 아님 미셸 윌리엄스였을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시사회 장에서의 히스 레저와 미셸 윌리엄스의 다정했던 모습)


여러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밥 딜런을 연기했지만, 역시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가장 실제 밥 딜런과 가까운 외모와 더불어 내용적으로도 그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이기도한 '쥬드'는, 의외로 여자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는데, 깡마르고 독특한 모습의 밥 딜런을
표현하기에 여자배우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계획되었다고는 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는 다른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가운데도 단연 으뜸이라 할 만큼,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여신 같던 그녀가, 부시시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밥 딜런의 모습이 이리도 잘 어울릴 줄
누가 알았을까)


사실 모습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거의 코스프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케이트 블란쳇이 분한 '쥬드'의 모습은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헤어스타일과 선글라스를
제외하더라도, 독특한 몸짓이나 손짓, 걸음거리나 목소리 연기, 특히 잠깐잠깐 밥 딜런으로 착각했을 만큼
완벽했던 표정연기는 정말 놀라움을 넘어서 소름이 돋기 까지 했다. 특히나 글을 쓰려고 사진을 찾던 중에
실제 밥 딜런과 그녀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차 안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살짝 미소 짓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가장 멋진
장면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적어도 나에게는!).




(사실 이 사진을 보면, 케이트 블란쳇도 블란쳇이지만, 앨런 긴즈버그로 분한 데이비드 크로스의 싱크로율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엔 배우들의 연기에 놀랐지만, 영화가 계속 될 수록, 그리고 글을 쓰려는 지금 시점에 자료를 조사하면서
더욱 놀라게 된 것은 감독인 토드 헤인즈였다. 이미 데이빗 보위 없는 글램 락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통해,
뮤지션에 관련된 또 다른 음악영화에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파 프롬 헤븐>을 통해 시대와 문화를 읽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그의 장점이 <아임 낫 데어>에서는 한 꺼번에 발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던 밥 딜런에 대한 영화를 밥 딜런이 흔쾌히 허락한데에는 역시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조니 캐쉬의 전기 영화라 할 수 있는 <앙코르 (Walk the Line)>같은 방식도 좋았지만,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그리는데에는 토드 헤인즈가 선택한 이런 모험적인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 일반적인 전기 영화로 만들려했다면 밥 딜런이 허락하지도 않았을 듯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 외에, 알면 알수록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고 이해하고 있는 토드 헤인즈의
통찰력과 연출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토드 헤인즈라면 앞으로도 무조건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같은 배경 지식을 모두 다 감상전에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를 막상 볼 때에는
그 인과관계를 모두 파악하지 못해 조금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물론 이 같은 배경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기승전결 방식이 아니고, 그렇다고 에피소드 방식도 아니며,
무언가 이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개별적으로도 느껴지는 구성 방식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기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하고 관람을 하게 된다면 감상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밥 딜런에 대해 큰 관심이나
배경 지식이 없으면 100%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선이라고 보았을 때, 7~80% 정도만 함께 할 수 있는것도
수긍할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밥 딜런에 관해 관심이 있거나 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뉴스
등을 알고 있다면, 120~130% 즐기기에 완벽한 영화가 될 듯 하다.




(영화의 예고편에 쓰였던 이 형식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되었던 밥 딜런의 영상물에서 가져온 것이다)


음악 얘기릏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의 음성으로 불려지는 그의 곡이나, 배우들, 그리고 후배 뮤지션들이 부른
밥 딜런의 곡을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운드트랙을 접하기 전에, 영화의 엔딩 크래딧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크래딧에 등장하는
인디 포크 뮤지션들의 이름을 보고는 미리 기대할 수 있었는데, Sonic Youth, Yo La Tengo, Cat Power,
Iron & Wine, Calexico, Jack Johnson, Charlotte Gainsbourg, Glen Hansard & Marketa Irglova,
Antony and the Johnsons, Sufjan Stevens 등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른바 '환장할' 라인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나 소닉 유스의 'I'm Not There'와 Antony and the Johnsons가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는 엔딩 크래딧과 함께 깊은 울림을 가져왔으며, <원스>의 그와 그녀인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도 동참하고 있다. 위에 거론한 뮤지션들 모두 앨범이 나오면 무조건 구매할
만큼 좋아하는 뮤지션들이라, 이들 모두를 한 장의 음반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사운드트랙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들 모두를 하나의 자리에 모이게 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의 대단함도 새삼 느끼게 된다.



(포크 음악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사운드 트랙이 될 것이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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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투 유마 (3:10 To Yuma, 2007)
아버지의 이름으로

요 근래에는 부쩍 서부영화(혹은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이 개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정통
'서부영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 바로 이 영화 '3:10 투 유마'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큰 기대를 모았던 것은 바로 2명의 주연 배우의 캐스팅 소식 때문이었다.
크리스찬 베일과 러셀 크로우가 한 스크린에서 등장하는 것은, <아메리칸 갱스터>의 러셀 크로우, 덴젤 워싱턴
과는 또 다른 볼거리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캐스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두 배우의 연기와 더불어 <아이덴티티>와 <앙코르 (Walk The Line)>를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의
연출도 기대를 갖게 했던 주요 포인트였다.

결과적으로 정통 웨스턴 영화의 분위기와 장르적 특성을 적절히 배경으로 사용하면서도,
내용적인 면에서는 조금은 거창하지 않고 소박하고 개인적인 면을 가져오면서
조금은 다른, 그래서 또 괜찮은 서부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가지고 이끌어 간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의 고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점이 전통적인 서부영화와는 다른 점인데, 영웅적인 주인공과 악당이 외나무 다리에서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와는 달리, 그저 돈을 벌기위해,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주인공과 악당 역시 상당히 쿨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냉혹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주인공인 댄은(크리스찬 베일) 남북전쟁에서 한쪽 발을 잃고 두 아이와 아내와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하지만 철도회사에 빚을 지게 되면서 가정에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과정에서,
무법자인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의 사건에 자진해서 휘말리게 된다. 이렇듯 이 영화의 주인공인 댄은 영웅적인
면모를 띠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이 싸움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돈을 벌 수 있는 반대 기회의 유혹이 있을 때 크게 혼란을 겪는듯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벤과의 대화 속에서 그가 이 싸움에 이리도 목숨을 거는 이유, 그리고 왜 그 돈이 필요하고 철도회사와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등장한다. 구체적인 것은 영화 속에 나오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떳떳하기 위해 그는 이 목숨건 호송업무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벤은 댄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벤의
확실한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악당의 옷을 입은 벤의 의도는 러닝타임내내 갈등을 겪게 된다.
벤 캐릭터가 악당임에도 상당히 쿨하게 또는 영웅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이 영화에 또 다른 특징이 될 텐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오른팔로 등장하는 '찰리'라는 캐릭터가 좀 더 부각이 되는 듯 하다. 뚜렷한 선악의 구조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영화에서 '찰리' 캐릭터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냉혈한 악당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다 재치더라도 두 배우의 얼굴을 한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음...두 배우의 강한 카리스마가 격돌을 펼치는 스타일의 영화도 물론 좋았겠지만, 이렇게 한 캐릭터가
한 캐릭터를 압도하고, 점점 이에 동화되는 모습의 구성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은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서부 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두 멋진 배우의 연기를 맛보는 것 만으로도
괜찮았던 영화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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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트맨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물이 그러하듯 만화책을 원작으로 영화화되어 인기를 얻으며
시리즈물로 거듭난 작품이다. 코믹스에 원작을 두었다는 것은 다르게 해석해보면 국내보다는
미국 내에서 훨씬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배트맨을 비롯한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미국 내에서의 슈퍼 히어로를 그린 코믹스의 인기는,

일반 영화 속에서 가끔 광적으로 만화책에 유난히 집착하는 주인공들을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슈퍼 히어로 장르를 이야기 할 때마다 다른 히어로 캐릭터들과 비교가 빠질 수 없는데,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과 극을 달리는 캐릭터임으로 비교가 쉬운 편이다.



슈퍼맨은 타고난 능력을 가진 크립톤 행성 출신의 외계인이니 일단 접어두고,
헐크나 스파이더맨은 방사능 노출이나 후천적 사고에 의해 능력을 갖게 된 경우이나,
배트맨은 이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배트맨에겐 선천적으로 주어진 탁월한 능력도 없으며
후천적으로 얻게 된 능력 또한 없다. 그에겐 오직 부모님께 물려받은 엄청난 재력.
재력을 바탕으로 갖게 된 최첨단의 신형 무기들. 그리고 후천적 트레이닝을 통해
얻게 된 능력 들이 전부이다. 슈퍼 히어로들 가운데에는 가장 일반인스럽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소시민을 대변했던 스파이더맨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배트맨은 매우 우울하고 슬픈 히어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살해되는 장면과
동굴에서 박쥐들에게 느꼈던 공포를 바탕으로 분노와 복수심에 시작된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그 시작이 중요한 캐릭터가
바로 배트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팀 버튼의 ‘배트맨’과
 ‘배트맨 리턴즈’에서도 배트맨이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물론 비긴즈에도 등장하는 부모님에 살해 장면은 등장하지만,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이후 갖가지 잡다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포에버’ 등은
거론할 필요도 없을 듯. 팀 버튼의 배트맨 이후 나왔던 두 편의 배트맨은 연기력, 캐스팅,
작품성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작품들이었다.
배트맨 슈트를 아무나 입혀놓는다고 흥행할 수는 없었던 것.



이에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새 천년에 새롭게 시작될 배트맨의 감독으로
워너가 점찍은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 워너 입장에서
배트맨이라는 블록버스터의 감독으로 ‘메멘토’나 ‘인썸니아’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크리스토퍼 놀란을 선뜻 감독으로 캐스팅하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싶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워너에서 3편과 4편의 실패 요인을 제대로 분석한 처방이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내는 배트맨이 화려함에서 뒤 떨어질 것 같은 우려는 할 수 있을지라도,
이야기 구조가 엉성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될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액션의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배트맨이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나를 비중 있게
그려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놀란을 감독 의자에 앉힌 것은 매우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겉으로 드러날 정도의 엄청난 초호화 캐스팅은 아니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조지 크루니,
우마 서먼, 알리시아 실버스톤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만(?) 모았던 ‘배트맨 & 로빈’에
전혀 뒤질 것이 없는 화려한 캐스팅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배우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어느 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탄탄한 연기파 배우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트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무래도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 일 텐데, 배트맨과 웨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연기해야 하며, 쉽지 않은 액션도 소화해야하고 무엇보다 내면연기를 이어가야 하는
복잡한 캐릭터임을 감안하였을 때, 크리스찬 베일이 재 창조해낸 배트맨은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배트맨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싱크로 율을 선보인다.
크리스찬 베일은 영화 제작 전에 팬들에게 의견을 물었던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배우였었다.

크리스찬 베일 외에 가장 눈에 띠는 배우 중 하나는 바로 리암 니슨일텐데, 지금까지 주인공의
스승이나 현자 등 지적이고 좋은 역할로만 분했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거의 처음 악역을 맡아
새로운 악역 캐릭터를 그려낸다. 완전 나쁜 놈이라기보다는 그저 주인공과 이상향이 다른 인물로
느껴지는 것도 그의 우아한 연기덕분 일터.



이와 반대로 악역 연기에 고수로 널리 알려진 게리 올드만은 참으로 오랜 만에 선한 역할을 맡아
극의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특히나 그의 캐릭터 ‘고든’은 코믹스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으로 만화책의 열렬한 팬들에게도 적극적인 지지를 얻을 만한 캐릭터라 생각된다.
이 밖에도 이전 시리즈의 알프레드 보다 더욱 인자하고 아버지에 느낌을 물씬 전해주는 캐릭터를 그린 마이클 케인과 주인공을 돕는 조연 역할로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모건 프리먼,
여자 주인공으로 나름대로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 케이티 홈즈, 이 밖에도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인
실리안 머피와 켄 와타나베,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 룻거 하우거까지...
꼼꼼히 따져보면 모든 배우들 중 아무나 주연을 맡아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을 정도의
화려한 캐스팅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출시된 DVD는 블록버스터에 걸 맞는 수준급 화질과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액션 블록버스터 하면 떠올리게 되는 DTS사운드는 제공되지 않지만
돌비디지털 5.1채널만으로도 만족할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워너는 DTS사운드를 수록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배트맨 비긴즈에는 역시나 수록되지 않았지만 최근 이와 함께 출시된 전작들의 SE버전에는 DTS트랙이 수록되어 놀람과 반가움을 동시에 전하기도 했었다).
슈퍼 히어로를 다룬 영화답게 멀티 스피커를 최대한 이용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동굴에서 박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의 공간감이라던가, 영화의 하이라이트 겪인 텀블러(배트카)를 타고 벌이는 추격 씬 에서의 사운드는 레퍼런스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조금 못 미치는 매우 우수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텀블러가 만들어내는 그 묵직한 사운드는 우퍼 스피커를 통해 무겁게 전달된다.



이 바로 전에 ‘킹덤 오브 헤븐 DE'를 리뷰 한 뒤라 그런지 모르지만, 배트맨 비긴즈의 화질은 레퍼런스에는
역시나 조금 못 미치는 우수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영화 자체가 어두운 장면이 많았던 터라 화질의
여부는 여느 때보다 매우 중요한데, 암부의 표현력도 우수한 편이여서 감상에 전혀 지장을 주지는 않을 듯하다.
서플먼트는 두 번째 디스크에 따로 수록되었는데 코믹스 풍의 메뉴 화면이 인상적이다.
마치 이스터 에그를 찾듯 하나씩 공개되는 서플먼트에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과 프로듀서의
인터뷰를 통해 마치 비밀스런 007작전과도 같았던 배트맨 프로젝트의 탄생과 준비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또한 크리스찬 베일을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인터뷰와 만화가 영화로 옮겨지기까지의 과정,
배트맨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배트맨의 특별한 의상의 제작과정 등이 흥미롭다.



특히 영화를 위해 실제로 운전이 가능한 텀블러를 제작하여 영화에 적용하기까지의 과정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이밖에 각 캐릭터들을 설명해주는 파일 형식의 메뉴와 배트맨의 각종 무기 등을 설명해주는 영상이 수록되었다. 최근 서플먼트의 경향을 보았을 때 감독과 배우, 스텝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지 않은 점, 그리고 기존 시리즈가 DTS를 포함한 SE버전으로 재 출시된 것을 감안하였을 때, 더 나은 버전에 ‘배트맨 비긴즈’가 나올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최근 출시된 버전으로도 저렴한 가격과 스펙을 감안하였을 때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DVD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2005.10.17
글 / ashitaka





프레스티지[prestige]의 뜻:
1. 환상, 착각, 마술의 트릭, 사기
2. 순간이동 마술에 사용되는 이동수단
3. 신의 경지에 도달한 마술의 최고 단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휴 잭맨, 크리스찬 베일, 스칼렛 요한슨, 데이빗 보위 출연

올해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와 더불어 가장 기대했던 작품인 <프레스티지>.


그리 많은 작품을 하진 않았지만 <메멘토>의 충격으로 시작하여

<배트맨 비긴즈>같은 블럭버스터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연출력과 새로움을 갖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라 볼 것도 없이 기대했던 영화.


(.....이 영화는 스포일러 없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음으로 이제부터 막 나옵니다)


국내에서는 '영화사상 최대의 결말(반전)이 공개된다' 등등 국내 관객에 입맛에 지나치게

기댄 홍보전략으로 나섰는데, 뭐 이런 문구에 현혹될리 없었지만,

이 문구에 끌린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최근 모든 스릴러 영화는 반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과연 식스센스 이후 국내 관객들이 만족할만한 반전이 있었나 싶다).

사실 '보든'이 쌍둥이 일 것이라는 건 영화 중반쯤 부터 예상되었던 바다.

이 후 각자의 길을 가자며 상대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고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100% 예상할 수

있었다. 오히려 테슬라가 만들어낸 기계가 순간이동 기계가 아니라 사실상 '복사기' 였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으며, 이후 앤지어가 마술을 할 때마다 새롭게 복사된 자신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없이 복사되어 수조에 익사시킨 자신의

복사체들이 보여지는 장면과 엔딩 크래딧에서 휴 잭맨이 크리스찬 베일을 앞선 다는 것에

혹 복사된 앤지어 중에 살아남은 앤지어가 있다는 것은 아닌가 했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감독이 의도한 바 같지는 않았다(이건 나중에 dvd가 나오면 코멘터리를

들어봐야 할듯).

이 영화는 반전으로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다.

휴 잭맨이 연기한 '앤지어'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보든', 그리고

에디슨과 테슬라, 과학과 마술 등 라이벌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술사들의 이야기 정도일 수도 있었지만, 여기에 과학이라는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시나리오는 매우 탁월했으며, 여기에 실제 있었던

과학자 에디슨과 테슬라의 관계를 역시 접목시켜 또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에디슨은 워낙 유명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의 조수로 시작하였으나

결별한뒤에는 에디슨과 라이벌이 되었으며, 의문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자료들도

흔적을 감추는등, 이 둘 간의 이야기도 더 파볼 만한 이야기가 무궁무진 한듯 하다)



크리스찬 베일은 종종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는 <아메리칸 사이코>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현존하는 배우 중에는 선악을 모두 다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연기였다(뭐 물론 두 쌍둥이가 한명은 선, 한명은 악 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휴 잭맨은 개인적으로 울버린 캐릭터로 남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던 배우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적어도 '반 헬싱'이 떠오를 지언정 '울버린' 이미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휴 잭맨과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를 보는 것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두 배우의 연기는 놀란 감독의 연출력 만큼이나 수준 높은 완성도를 펼치고 있다.


국내 홍보나 포스터에는 스칼렛 요한슨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대만큼의 비중은 아니었다 (프레스티지는 딱 잘라 결국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디 알렌을 비롯 여러 감독들에 작품에 이어 놀란 감독까지,

참으로 감독과 시나리오 선택만은 최고로 잘하는 배우로 생각된다.


그리고 테슬라 역할의 데이빗 보위와 그의 조수 역할의 앤디 서키스.

사람들이 앤디 서키스는 제법 알아봤는데 의외로 데이빗 보위는 잘 못알아 보는 분위기.

앤디 서키스를 피터 잭슨 외 감독의 영화에서 만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데이빗 보위는 많은 사람들이 못알아 볼 수도 있을 정도로 정갈하고 깔끔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래도 특유의 눈동자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커터 역의 마이클 케인은 연기만으로는 사실 잘했다 못했다 따질 수준은 이미

훨씬 넘어선 터. 영화내내 무게감을 주는 존재감은 아마도 놀란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얻어낸 노하우 였을 듯.



마술이 중심이 되는 영화인듯 했지만,

사실 두 남자의 라이벌 의식과 과학과 이상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였으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수준 높은 연출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글 / ashitaka


p.s / 1. 데이빗 보위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못알아본 사람은 휴 잭맨의 부인역할로

           초반에 익사해 죽는 파이퍼 페라보인데, 그가 <코요테 어글리>의 히로인이였다는

           사실은 많이들 모르는듯. 하긴 그 이후의 활동이 너무 뜸하긴 했다.


        2. 크리스찬 베일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이 '알프레드 보든'인데, 배트맨으로 출연했던 그가

           그의 시종인 '알프레드'의 이름으로 출연한것도 재미있었다.


        3. 앞서 말한 <배트맨 비긴즈>의 알프레드 역할로 출연했던 마이클 케인이

           영화내내는 휴 잭맨 편으로 나와서 '이 영화에선 반대로 나오네' 했었는데,

           결국에는 크리스찬 베일과 한 통속이 되는(내 생각은 초반에 대사에 언급했던것처럼

           커터가 앤지어에게 투입된 장기 스파이가 아니었나도 싶다)설정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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