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의 영화 (Oki's Movie, 2010)
모호함으로 완성되는 논리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는 참 특별한 영화다.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하하하'가 묘한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신작 '옥희의 영화'는 이 연장선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면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우연을 통한 긴장감과 인물들간의 관계의 대한 논리 역시 기대하는 바를 벗어나는 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 특별한 작품이다. '옥희의 영화'는 홍상수의 예전 영화들과 비슷하게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이렇게 4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는 옴니버스는 물론 아닐 뿐더러 단순하 '장'의 개념으로 보기도 힘든 묘한 독립성을 지닌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옥희의 영화'는 이런 모호함의 논리도 가득찬 작품이다. 각 편의 인물들은 같은 인물인 동시에 다른 인물이며,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시에 사실은 1인 다역에 가깝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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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각 '편'은 완전히 연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독립적이지도 않다. 즉 각 편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은근히 주고 있기는 한데 (실제로 주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관객들에게는 확실히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영화들의 인과관계와는 달리 서로의 이야기를 맺어주고 인물들의 연결 고리를 이어주는 것에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중에 읽게 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일부러 이런 고리를 연결하지 않는 것을 통해 이질감을 주려고 했다는데, 확실히 이 부분에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미 이런 인과관계나 복선 등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이런 이질감을 더더욱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진 작가 여성의 경우 묘한 여운을 주고 마는데, 관객은 '아, 이 인물이 나중에 어떻게라도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영화의 GV에서 여성관객에게 예전 여자친구에 대한 질타를 받게 되는 진구의 이야기는 나중에 등장하는 송교수의 이야기 혹은 송감독, 아니면 진구의 다른 이야기와 겹쳐지진 않을까 엮어보게 되지만 사실 이들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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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호함의 연결 고리는 각 편에 등장하는 같지만 다른, 아니 다르지만 같은 인물들로 인해 더 깊어진다. '주문을 외울 날'의 등장하는 결혼한 진구의 집은 이후 '키스 왕'에서 등장하는 옥희의 집과 동일한 곳이다. 하지만 진구는 이 집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은 관객만이 느끼는 이질감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 네 편의 이야기를 시간 상으로 분류해보고 그 속에서 이들의 관계를 다시금 정리해보게 되는데, 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비교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인셉션'은 치밀한 설계를 통해 관객이 여러가지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한 경우라면, '옥희의 영화'는 처음에는 이와 비슷하게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이는 감독이 의도했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스스로 학습한 결과로 인한 것이라 봐야겠다) 것 같지만, 막상 답을 찾으려 연구하다보면 결국 애초부터 답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인셉션'은 여러가지 정답을 정해둔 경우고, '옥희의 영화'는 정답을 아예 만들어두지 않은 경우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모호함은 곧 이 영화의 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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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지막 편인 '옥희의 영화'에 가서 본격적으로 이 모호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말그대로 이 네 번째 편은 옥희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남자 (진구), 늙은 남자 (송교수)와 각각 동일한 아차산에 갔던 경험을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해 놓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는) 이 '옥희의 영화'는 이 모호함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된다. 씨네 21의 정한석 기자가 글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네 번째 편인 '옥희의 영화'를 통해 결국 진구와 송교수는 극중 배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배우가 되어버린 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선균, 문성근 등이 연기한 캐릭터가 1명이 아닐 수 있다는, 1인 다역일 수 있다는 좀 더 확실한 이유가 된다. 

더불어 '옥희의 영화'는 좀 더 홍상수 개인의 영화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극중 주인공이 영화 감독 및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국대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극중 유준상에게 질문을 하던 학생이나 이번 진구의 GV의 장면을 보면서도 역시 홍상수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는데, 감독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관객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가끔은 바램 정도가 아니라 작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나 방향을 강요하듯 요구하는 관객들에게, '니가 뭘 알아'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말하는 듯 해 오히려 시원한 부분도 있다. 감독이 원해서 18세이상 관람가가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맘 같아서는 30금 정도로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자존심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인정해야할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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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러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호기심이 넘쳤던 장면이라면 '폭설 후'에 등장한 강의실 장면을 들 수 있겠다. 폭설로 인해 수업에 진구와 옥희만 오게 되자 송교수는 이들에게 아무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여 이 문답은 시작되게 되는데, 그 질문들이 그야말로 아주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물음들에 가깝다. '저는 현명한가요? '제가 영화에 재능이 있나요?' '성욕은 어떻게 이기시나요?' '사랑은 꼭 해야하나요' 등의 질문에 송교수는 비교적 주저하지 않고 답들을 한다. 물론 이 답은 정답도 아니고 완벽하지 않은 것들도 대부분이지만, 내게 이 문답 장면은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렇듯 아무것도 꺼릴 것 없고, 과연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 없이 물어볼 수 있을까 라는 의심과 부러움은 물론, 저런 상황과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랄까. 이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개인적으로 인상 깊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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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는 우연의 법칙을 일부러 피해가려 하고 있지만, 홍상수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우연과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다. 실제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그 날의 느낌 혹은 당시의 상황 등에 충실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103년 만에 폭설이 내린 그 날, 영화 속에서 보았던 식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생각한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대본이 당일 나오는 것이야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 것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현장과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만들기를 보면 놀라움과 더불어 몹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다. 특히 정유미와 이선균이 웃으며 포즈를 취한 메인 포스터의 경우, 사실 '포즈를 취한' 것 같은 느낌이라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촬영장에 왔던 일반 분이 배우들을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청해 촬영된 사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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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수 많은 영화와 매체에 등장했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이렇게 사용될 수 있음을 몰랐다. 앞으로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면 '옥희의 영화'가 떠오를 것만 같다.

2. 아차산 시퀀스에서는 예상하지 않았던 몇몇 아름다운 영화적 장면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자연광을 받아 더욱 빛나는 정유미의 자태랄까.

3.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아래 씨네21 정한석 기자의 글을 읽었는데, 이 글 보고 많이 힘이 빠졌어요. 이미 전력을 다 쏟아낸 글을 보고나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하죠;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정한석.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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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베타 기간동안 회사 동료들과 틈틈히 즐겼던 스타크래프트 2 : 자유의 날개가 드디어 베타기간이 종료되게 되었는데, 요즘 아무래도 게임을 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터라 실력의 격차도 점점 벌어진 탓에, 구입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엔 이렇듯 구매하게 되었다. 발매이전부터 나오네 마네 말이 많았던 스타 2 패키지의 간단한 오픈케이스!






누군가가 그랬듯이, 확실히 예전 PC게임 패키지에서 거의 발전하지 않은 모습이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벨류답지 않은 패키지 임은 분명하다. 알다시피 다른 부가 아이템들이 포함된 한정판 패키지는 국내에 발매되지 않았는데, 하긴  이런 기본적인 패키지 마저도 발매하지 않으려고 했던 터라, 다행스럽기까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박스를 열고 나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게임 디스크와 안내 책자, 그리고 와우와 스타크래프트 2 무료 이용권이 수록되어있다. 




DVD디스크. 왼편 속지에 붙은 스티커에는 배틀넷을 평생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시리얼 번호가 포함되어 있다.






69,000원이라는 가격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타2에 미친듯이 빠진 유저가 아님에도 평생 스타2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제공되는터라 크게 비싸게 느껴지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아마도 1~2년 정도만 열심히 할테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가격은 한다고 생각한다. 엑스박스나 플3의 신작 게임들이 평균적으로 5만원이 넘는 것과 비교해도 더 오랜 시간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69,000이 부담은 되지만 많이 비싼 가격은 아니라는 생각. 더군다나 롯데마트몰을 통해 다른 먹을 거리들과 더불어 당일배송으로 받아보는 편리함을 통했으니, 더 만족스러운 편이다. 이제 얼른 연습해서 실력차가 많이난 동료들을 따라잡아야 겠다!



사진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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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는 천재다. 뭐 새삼스럽겠느냐 만은 그들의 신작 ‘시리어스 맨’을 보고서는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이를 영화로서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대한 기법,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이야기 꾼인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 거의 실망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인상 깊게 보았었는데, 최근 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나서는 코엔 형제의 영화가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장인의 경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번 애프터 리딩’을 통해서는 녹슬지 않은 그들의 재치와 블랙코미디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음을 역시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번 애프터 리딩’을 보고는 코엔 형제의 쉬어가는 작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엔 형제만이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런 코엔 형제의 시작이었음에도 ‘시리어스 맨’에 대한 기대는 사실 그들의 네임 벨류에 비하면 조금 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번 애프터 리딩’을 보러 갈 때의 기대와 비슷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난 ‘시리어스 맨’은, 아니 보는 내내 ‘시리어스 맨’은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엔 형제는 또 어떤 걸작을 만들고야 만 것인가?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타이틀롤 이전에 독립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슷한 이디시 설화를 쓰려고 했던 코엔 형제는 마땅한 이야기를 찾지 못해 그냥 자신들이 그럴 듯한 진짜 이야기를 하나 짧게 쓰기로 한다. 이 이디시 설화는 뒤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지만, 이 도입부를 통해 ‘시리어스 맨’은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 역할을 서두에 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설화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야 말로 코엔 형제 만의 번뜩이는 재치이자 기발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래리 (마이클 스털바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곧 대학의 종신 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있고, 아들은 성인식을 치르게 될 예정이며, 옆집 사는 남자가 자꾸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이 조금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영화는 래리의 소개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 학생은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슬쩍 돈봉투를 남기고 가버리고, 아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왔던 '싸이 에이블맨'과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며,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이 주목하고 있고,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종신 재직권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악의적 편지들이 도착하는 등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Serious)진다.




래리가 처한 상황과 그의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집 안 구성과 디자인 적인 요소다.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의상 컨셉이 있는데, 딸은 항상 화려한 꽃무늬 잠옷을 입고 나오고, 방안의 벽지 역시 모두 다른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집 안의 커튼 역시 방 마다 모두 다른 각각의 화려한 무늬를 하고 있다. 아내 역시 매번 다른 체크 무늬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암시다. 또한 여러 가지 패턴들 속에 살아가는 한 인물에 대한 강박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강박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매사에 진지한 주인공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패턴으로 뭉쳐있는 집 안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래리라는 캐릭터에 공감지수를 드높여 준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래리가 처한 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재앙은 하나같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내는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래리와 이혼하기를 바라지만 싸이를 사랑해서도, 싸이와의 관계가 깊어 져서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위자료를 받아내려는 속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아내 스스로도 '내 말이 말은 안되지만 이혼은 해야 돼'라고 느껴질 정도다. '싸이'는 또 어떤가. 그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싸이는 마치 래리를 아들처럼 감싸 안으면서 래리에게 왜 이혼을(서약서를)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싸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의 말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말만 놓고 보자면 이건 전혀 설득이 될 리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들이다.




낙제점을 면하게 해달라며 돈을 놓고 갔던 한국 학생 '클라이브'의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두고 간 것을 놓고 래리와 클라이브가 벌이는 대화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더 나아가 클라이브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소송을 건다고 집으로 찾아온다. 이 아버지 역시 클라이브와 래리의 아내의 말처럼 스스로가 '내 말엔 논리가 없다'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래리가 항상 불편하게 생각하던 옆 집 남자는, 클라이브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며 도움의 한 마디를 건 낸다. 래리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맞다. 래리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래리는 매사에 '진지한 (Serious)' 남자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한 래리는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래리가 만나게 되는 세 명의 랍비에 관한 이야기는 섹션으로 정리되어 보기 좋게 제공되는데, 이 세 명의 랍비에게서 듣게 되는 말들 (처하게 되는 상황) 역시, 다들 불확실하고 이상하기 짝이 없다. 본래 보기로 했던 랍비가 자리를 비워서 대신 만나게 된 젊은 랍비는 래리의 말을 다 듣고는 그럴 땐 그저 주차장을 보라'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두 번째 랍비는 이빨의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무언가 명쾌한 해답을 들려줄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 역시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무언가 답을 찾으려던 래리는 이 두 번째 랍비 와의 만남에서도 이를 찾지 못하고 결국, 최고의 랍비인 마르샥 과의 만남을 어렵사리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래리는 랍비를 만나려고 했느냐'라는 점이다. 앞서 물리학자이지만 수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의 이론을 엄청나게 긴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래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래리라 랍비를 찾게 된 이유는 역시 '정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다. 마르샥을 간절히 만나려고 했던 것은 본인 스스로 마르샥 개인을 원해서가 아니라, '마르샥 = 정답'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래리에게 마르샥과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했던 정답을 마르샥이 갖고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현실은 이렇듯 생각대로, 단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그의 이야기 역시 무언가 인과응보는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필요한 순간에서 또 한 번 생각지도 않은 요인으로 인해 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마되는 것을 겪게 된다. 즉,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프롤로그에 사용된 이디어 시퀀스처럼, 영화는 내내 이 언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해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 클라이브의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딱딱한 발음과 억양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었으며, 아들 대니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역시 래리와 대니의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래리가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이혼증명서라는 뜻의 랍비 언어를 매번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테나를 바로 잡으러 올라간 지붕 위에서 예상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불확실성이다.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 닿는 작품이 ‘시리어스 맨’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보세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DVD 메뉴






DVD Quality

‘시리어스 맨’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와, 디지털 상영도 아닌데 상당히 화질이 좋구나’라는 것이었는데, DVD의 화질에서도 그런 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본래의 촬영 소스가 훌륭하다 보니 마치 얼핏 얼핏은 HD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 정도다. Super 35 소스를 디지털 4K로 마스터한 영상의 장점이 DVD에서도 조금이나마 확인된다고 볼 수 있겠다 (블루레이였다면 아마도 훨씬 더 좋은 영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작품의 성격으로 미뤄봤을 때 국내 블루레이 출시는 어렵다고 봐야겠다)





돌비 5.1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의 경우, 특별한 효과음이나 사운드 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은 아닌지라 큰 메리트는 없지만, 카터 버렐의 사운드 트랙들과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곡들의 전달 시에는 의외(?)로 괜찮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시리어스 맨’은 개인적으로 사운드 트랙을 해외주문을 통해 구매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DVD에 수록된 사운드 퀄리티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비교적 간단한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양에 비해서는 질적인 면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Becoming Serious‘는 제작과정 영상을 담고 있는데, 코엔 형제의 인터뷰 및 배우들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어, 코멘터리의 부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준다.





‘Creating 1967‘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67년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미술적인 요소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의상이나 사회 배경으로 인한 설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196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 무엇보다 의상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앞서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메시지적인 부분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Hebrew And For Goys’에서는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히브리어 용어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수록되었는데, 대략 감으로만 인지하고 넘겼던 히브리어 용어들에 대한 자세한 풀이를 확인할 수 있다. 3가지 부가영상에는 모두 한국어 자막이 지원된다.



‘주차장을 보세요~’

총평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의 팬들 사이에서만 잠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더 큰 화제가 된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철학적인 면에서는 전혀 뒤질 것이 없는, 그야말로 코엔 형제다운 명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적 퀄리티에 비해 DVD의 가격은 몹시 매력적인 수준으로 발매되었으니, 코엔 형제의 팬이라면 무조건 소장해야 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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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유쾌하고 맛있는 삶의 진리

독립영화와 TV드라마를 통해 주목 받았던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극의 쉐프’는, 일단 제목에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 영화 속에서는 주로 고립으로 인한 공포의 대상이거나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스릴러 적인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곤 하는 남극이라는 공간과 요리를 만드는 쉐프(Chef)와의 공존이라니, 무언가 이 부딪힘 에서는 묘한 스파크가 발생한다.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남극의 쉐프라는 이 이야기가 잘짜여진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인데, 극중 주인공의 이름과도 같은 니시무라 준은 실제로 남극관측 대원으로서 기지에서 조리를 담당했던 조리사였다. 영화는 바로 이 니시무라 준이 쓴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그야말로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겪는 특별한 이야기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영화는 의외로 요리사라는 직업에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도구 그 이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요리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이자 소재가 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제3자가 아니라 요리사인 니시무라 준이 직접 썼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담담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남극 기지에서 일했던 다른 대원이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면, 매번 특별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주목하여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요리를 만든 장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 요리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반응이나 그 과정 등을 전체적인 남극이라는, 그리고 그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극의 쉐프’는 휴먼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템포가 깊게 드리워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본 영화에는 그들 만의 특별한 리듬과 템포, 그리고 소소함과 담담함이 존재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일본영화만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빠르고 자극적인 리듬에 익숙한 이들의 경우, 이렇게 굴곡이 많지 않고 참 담담하기만 한 (가끔 무덤덤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본 영화의 매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남극의 쉐프’의 매력에 또 한 번 빠져들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남극의 쉐프’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한정된 공간에서 여덟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분명한 캐릭터 영화이자, 결국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일곱 명의 남자 캐릭터들은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이 비교적 많은 편이 아님에도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할당량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으며, 이것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재미인 유머러스 한 부분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매우 직접적인 가족 영화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단편적으로는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를 만날 수 없는 가족 구성원들의 애환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여덟 명의 남자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특징적 역할이 주어져 있기도 하다.




‘남극의 쉐프’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처럼, 보고 나면 무언가 삶에 대해 깊게 여운이 남게 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니시무라 준도 그렇고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굉장히 담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런 담담함을 쭉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여운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담담한 연기에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카이 마코토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아, 물론 다른 7명의 배우들과의 이른바 ‘단체 연기’가 더욱 핵심적인 요인인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일 듯. 어쨌든 이 영화는 관객을 일부러 심하게 웃기려고 하지 않지만 웃게 되고, 억지로 울리려고 하지도 않지만 찡하게 만드는 매력을 갖은 작품이다. 즉, ‘남극의 쉐프’라는 특수한 상황이나 설정에서 오는 에피소드적 재미만으로 흘려 보내기엔 참 괜찮은 작품이라는 얘기.

DVD 메뉴






DVD Quality

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 DVD답게 훌륭한 편이다. 이 작품처럼 드라마 장르이면서 특히 일본 영화일 경우 화질 면에서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타이틀들이 많은데 ? 물론 이런 가장 큰 이유는 DVD자체의 화질의 문제라기보단 원 소스의 화질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 그에 반해 ‘남극의 쉐프’는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블루레이 위주의 감상 환경이라면 각각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업스케일링을 통해 DVD를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렇게 볼 경우 40인치 정도의 큰 화면으로 볼 때에도 비교적 DVD치고는 큰 부담이 없는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화질 자체가 감상을 좌우하는 타이틀은 아니지만, 클로즈 업의 디테일도 좋고 영화 속 맛깔스러운 요리들도 ‘정말’ 먹음직스럽게 보일 정도로 표현력이 좋은 편이다.





사운드의 경우 돌비 2.0만을 제공하고 있는데, 사실 5.1채널이 제공되었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로 5.1채널이 수록되었더라면 좀 과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화질도 그렇지만 음질 역시 주요 포인트는 아니기 때문에 2.0채널 만을 지원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사 전달에도 무리가 없으며 사운드 적인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2.0채널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다.




DVD Special Features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남극의 쉐프’ DVD는 Special Edition답게 풍부한 부가영상이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간단히 얘기해서 음성해설을 제외하고는 다 수록되었다고 봐도 무리 없을 정도. 최근 블루레이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SE 타이틀 다운 DVD의 부가영상들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는데, 이런 저런 편집이 많지 않은 제법 긴 분량의 제작과정 영상과 시사회, 무대인사 스케치, 토크쇼, 음악에 관한 제작과정 등 영화를 재미있게 본 이들이라면 모두 흥미롭게 즐길 만한 부가영상들이 가득 수록되었다.





‘남극의 쉐프가 만들어지기까지 월동생활 전반전’에서는 주로 극중 돔후지 기지의 세트가 있었던 로케이션지에서의 촬영 분량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남극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도 배우들이 추위와 싸워야 했을 만큼의 추운 날씨 속에서 벌어진 촬영장 뒷얘기와 더불어, 실제 남극처럼 보이기 위해 동원된 세트나 장치들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남극의 쉐프’의 첫 촬영이 바로 이 부분부터였는데, 그래서인지 나중에 후반부나 시사회에서의 모습들과 비교하면, 배우들이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친해졌는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다.




‘남극의 쉐프가 만들어지기까지 월동생활 후반전’ 에서는 주로 세트 촬영 분에 관한 장면들과, 주인공을 연기한 사카이 마사토가 남극의 쉐프로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과정 등이 담겨 있다. 누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절로 찾게 될 정도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정말 쉐프가 만든 것 같이 먹음직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었는데, 이는 모두 ‘카모메 식당’ ‘안경’ 등으로 유명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오미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를 능청스럽게 연기한 사카이 마사토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또한 7명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촬영장 뒷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하는지, 이 뒷이야기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을 정도다. 특히 모토씨 역할을 맡은 나마세 카즈히사의 경우,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로서 대장역의 기타로와 함께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현장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미수록 & 다른 테이크’는 제목 그대로 본편과는 다르거나 수록되지 않은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이라면, 본편에서는 공항 장면 이후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에 반해, 덥수룩해진 머리와 수염을 정리하기 위해 니시무라가 가족들과 함께 이발소를 찾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미엄 시사회’에서는 2009년 7월 27일 ‘르 테아토르 긴자’에서 가졌던 프리미엄 시사회 현장을 담고 있는데, 처음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라 긴장된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수록된 토크쇼와 무대 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나마세 카즈히사와 키타로의 만담은, 이번 타이틀의 부가영상의 백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두 중견 배우가 격이 없이 펼치는 만담들 덕에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관련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개봉일 무대인사’에서는 프리미엄 시사회와는 다르게 감독을 비롯해 출연한 여덟 명의 배우들이 모두 참석해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데, 물론 여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마세 카즈히사다. 의외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다른 대부분의 배우들 덕에, 나마세와 기타로 두 중견 배우가 나름의 짐을 짊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극중에서 니시무라의 딸 유카 역할로 출연했던 오노 카린 양이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한다.


‘영화 개봉 기념 토크쇼’를 비롯해 ‘남극의 쉐프 음악 제작 과정’과 ‘가족의 테마’는 모두 영화 음악에 대한 부가영상을 담고 있다. ‘남극의 쉐프’의 영화 음악은 일본의 밴드 유니콘 (Unicorn)’ 출신의 뮤지션 아베 요시하루가 맡고 있는데,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영화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녹음 과정 등이 수록되었다. 휘파람 연주가 돋보이는 테마 곡의 녹음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38차 남극지역 관측대인 돔후지 기지로 가는 길’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바로 그 진짜 돔후지 기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영상이 극중 ‘통칭 본’으로 불리는 대원이 촬영한 영상이라는 점이다. 실제 영화 세트와 너무도 흡사한 모습들과 남극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오로라 마저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데뷔작 ‘남극의 쉐프’는 추운 남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따뜻한 감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소소하고 담담한 매력에 빠지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반드시 무엇이든 먹고 싶어질 테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편이 좋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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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 (のだめカンタ-ビレ, 2009)
피날레를 향해가는 노다메 월드


니노미야 토모코의 원작 만화를 TV시리즈로 옮긴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노다메 TV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원작인 만화보다도 더 만화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사실 애초에 화제가 된 것은 이런 엽기적이고 일본 만화스러운 과장된 표현들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맛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인식시키는데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닌 노다 메구미와 (아, 어색한 이 풀네임;;) 치아키의 관계를 통해 꿈에 대한 깊은 이야기마저 들려주게 되었다. 그래서 TV시리즈의 팬들은 말그대로 노다메 때문에 '울고 웃을 수' 있었다. TV시리즈가 종료되고 유럽편을 통해 그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노다메 칸타빌레는 두 편의 극장판을 통해 드디어 이 대단원의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 피날레를 만나기 전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판 Vol.1을 국내 극장가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은 일단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특히나 이 극장판은) 노다메 TV시리즈를 즐기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을 만한, 즉 TV시리즈와 유럽편의 연장선 상에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노다메의 팬들이라면 이 극장판을 절대 놓쳐서는 안되겠다.


 미로 비젼. All rights reserved

사실 처음 극장판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는 워낙에 늦은 개봉이라 반가운 마음이 우선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극장판들이 그렇듯이 그저 TV시리즈의 캐릭터와 설정을 가져온 외전격 (에피소드 형식)의 작품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완전히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극장판들이 TV시리즈를 기존 팬들에 대한 팬서비스 창구인 동시에 새로운 관객들을 향한 구애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거의 기존 팬들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만한 수준이라 오히려 더 마음에 든 경우다. TV시리즈를 연출했던 타케우치 히데키가 극장판의 연출을 맡은 것도 그렇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보다는 기존 캐릭터들이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라,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고 매우 자연스럽게 TV시리즈와 유럽편의 기억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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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기존 팬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엽기적인 부분이 그리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편이다. 만약 새로운 관객을 더 의식했다면 한번에 관객들의 시선과 재미를 불러모을 수 있는 이 엽기와 만화적인 코드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을 테지만, 아직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가야만 하는 숙명의 성격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과하지 않게 사용되었고 오히려 전개와 피날레를 암시하는 설정들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물론 그대신 이 만화적인 부분을 극장판에 걸맞는 스케일로 보여주는 정성도 잊지 않는다. 기존 TV시리즈가 주로 노다메의 엽기적인 표정과 액션(?)연기에 치중했었다면, 극장판은 노다메의 환상 부분을 스케일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그 가운데 '변태의 숲' 시퀀스는 극장판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이자 노다메 월드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이기도 하다. 즉 처음 이 시퀀스를 접하는 이들은 '뭐야 이거, 너무 유치하잖아'라고 생각하는데에 그칠 수 있지만, 이미 이 유치함에 익숙(?)해진 팬들이라면, 이 시퀀스에서 그 유치함을 넘어선 노다메 월드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다메 월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지 표현방법이 만화적이고 유치하고 유아적일 뿐이지, 가끔씩 보여지는 진지함처럼 그 안에 하고자하는 메시지는, 그 어느 작품보다 진지하고 심각하며 깊은 고민을 함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이 몹시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무아지경에 빠진 순간에 멋진 음악과 배경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단지 노다메의 무아지경에는 이런 멋진 배경대신 망구스와 고로타, 가즈오 군이 등장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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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클래식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빼놓지 않고 있다. 처음 등장한 '볼레로 (Bolero)'의 그 유명한 메인 테마를 비롯해 (이 테마는 예전 바리시니코프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백야'의 삽입곡으로 더 익숙하다), 치아키가 말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게 되는 장면은 극장판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일 정도로 거의 한 곡이 풀로 수록되기도 하였는데, 마치 잠시나마 클래식 공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극장에서 나도 모르게 'Bravo'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치고 싶도록 (진짜 이럴 뻔했다) 만드는 힘도 갖고 있다. 또한 단순히 음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음악의 진정한 면, 즉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는데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곡은 베토벤이 무슨 일이 있어서 만들었으며, 극 중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아,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단순히 어렵기만한 것이 아니라 참 재미있는 음악이구나!'라고 절로 느끼도록 만든다. 

마치 요근래 유행하는 모 항공사의 광고 컨셉처럼 음악과 동시에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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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이 노다메 시리즈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노다메와 치아키 간의 특별한 관계, 즉 꿈과 사랑을 공유하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여전히 비중있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아다시피 노다메는 치아키를 좋아하는 동시에 치아키가 꿈을 향해 먼저 앞서가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보며 그리고 점점 치아키 센빠이와 격차가 나는 듯한 불안감에 초초해 하고 슬퍼하곤 하는데, 이 극장판에서 역시 이런 갈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이 노다메 시리즈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로를 위해 하향 평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노력하는 이 커플의 모습은, '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과 동시에 과연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특히나 그 엔딩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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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Vol.1'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이번 가을에 개봉할 Vol.2의 앞선 이야기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런 전초전 적인 성격을 서서히 풀어가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Vol.2, 그러니까 피날레에 대한 떡밥을 마구 뿌려댄다. 과연 노다메와 치아키는 어떻게 될까. S오케는 다시 치아키와 노다메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슈트레제만은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이미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은 종결이 난지 오래지만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미 올해 4월 개봉했었지만), 올 가을 극장에서 직접 피날레를 함께 하고 싶다.


1. 극중 노다메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의 실제 연주는, 무려 '랑랑 (Lang Lang)'이 연주했더군요. 다..다시 들어봐야 겠어요

2.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Vol.2 예고편이 나옵니다.

3. 극중 서양사람들은 모두 일본어를 하는데, 노다메는 친절하게도 특별 자막을 통해 '편의를 위해 모든 외국인들이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점 양해바랍니다'라고 재치있게 넘어가고 있어요. 노다메 월드니까 가능한 이야기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미로 비젼 에 있습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지브리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드디어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 및 기획을 하고 신예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은 (신예라고는 하지만 단독으로 연출을 맡은 장편이 없었을 뿐, 지브리에서 15년 간을 애니메이터로 활약해온 준비된 감독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지만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공개 시점부터 좋은 반응과 기대를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좋은 반응을) 모았던 작품으로, 자칭 지브리의 광팬인 나에게도 아니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기는 했지만 원작이 존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맡은 만큼 완전히 요네바야시 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연속성을 이어갈 만한 괜찮은 작품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문제인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으로 보기는 조금 어려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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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형의 집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전작인 '벼랑 위의 포뇨'에 비하면 상당히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다. 여기서 '어른스러워졌다'라는 표현은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전개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벼랑위의 포뇨'가 내적으로는 죽음을 관통하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 비해,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오랜 메시지인 환경과 '살아라'라는 화두는 그대로지만,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포뇨'에 비해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소인이라는 종족의 등장한 평소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전달해주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 세계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포장하는데에 생각보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이런 설정들이 활용될 만한 에피소드를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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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더 메시지를 지우거나 유쾌함으로 전달하려고 했다면, 소인 종족과 인간들의 만남에 있어서 화합의 에피소드를 강조했을텐데, 이 영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영화 속에서 나름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줌마가 그려지는 방식이야 그렇다쳐도, 주인공인 '쇼우'의 첫 등장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이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무서워'라는 말이 터져나오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지브리가 인간을 그릴 때 자주 묘사했던 방식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포 (특히 다른 종족이나 사물, 세계 등과 비교했을 때는 더욱)를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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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마루 밑 아리에티'에 담긴 정서는 확실히 쓸쓸하다. 한창 때의 디즈니 영화처럼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보통 같으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인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에 의해 인간과 소인이 모두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이 작품은 이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소인인 '아리에티'와 교감을 맺고 있는 주인공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만화적 전개라면 소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쇼우의 심장병을 치유라도 해주겠지만, 보시다시피 영화 속 소인들에겐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들은 단지 인간에 비해 몸의 크기가 매우 작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미에 가서도 쇼우에게 확실한 건강을 허락하지 않는다. 쇼우는 그저 힘내겠다 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오히려 이 마지막은 죽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공존하려했던 인물이 죽어간다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의 핵심인 부분이다. 아,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쇼우의 첫 등장장면 만큼이나 쇼우와 아리에티의 대화 장면에서 그 공포와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리에티에게 너희와 같은 소인 종족이 멸종해 가는 종족이라는 점을 아주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속으로 '와, 아이들도 보는 영화인데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놓고 '너흰 죽어가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터라 정말 놀랍기까지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리에티의 가족이 결국 화해나 공존을 포기하고 이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세기말적인 쓸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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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와중에도 지브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교훈인 '살아라'의 대한 것과 다른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메시지 역시 여전하다. 쇼우의 행동에서 이러한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쇼우는 직간접적으로 아리에티를 도우려고 하지만, 마지막의 순간에는 아리에티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 한다. 아리에티의 엄마가 아줌마에 의해 잡혔을 때도 직접 아줌마를 따돌리고 엄마를 구해서 아리에티 앞에 턱 하고 놓을 수도 있었고, 더나아가 악당인 아줌마를 할머니에게 고자질해 아줌마를 집에서 떠나게 하고, 아리에티 가족과 함께 잘 살 수도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사를 위해 험난한 여정을 가야만 할 아리에티의 가족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더욱 안전하게 도울 수도 있었으나, 쇼우는 그냥 길을 터주고 미련 없이 보내는 것을 택한다.

지브리가 택한 방식은 매번 이런 방식이었다. 어려움에 처했거나 약자를 돕는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약자가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말이다. 물론 쇼우도 맘은 그렇지 않았지만 첨부터 이런 지혜를 완전히 깨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직접 해결해주기를 원해서 각설탕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했으나, 처음 쇼우가 준 각설탕과 마지막에 준 각설탕의 의미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첨에 준 각설탕은 말그대로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내가 줄께'라는 식의 것이었지만 (그래서 아리에티는 쉽게 받을 수 없던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준 각설탕은 아리에티와 이런 모험과 교감을 겪고 나서 진심으로 전하는 '선물'의 의미, 즉 '그 땐 내가 경솔했어, 하지만 이제는 내 진심을 받아줄 수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전달되는, 그래서 아리에티도 더이상 '빌려가지' 않고 오전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내내 '빌려가는'것으로만 살아왔던 이 두 종족의 관계가 더 이상 빌려가고, 도둑질 해가는 것이 아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런 교감을 나눈 쇼우는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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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히사이시 조 없는 지브리의 사운드트랙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이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인 것과 더불어 사운드트랙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 '세실 코벨'의 음악은, 기존 지브리의 작품들 보다 훨씬 더 유럽풍의 인상을 준다('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도, 유럽을 배경으로 했던 '붉은 돼지'보다도 더하다). '썸머워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 군은 주인공 '쇼우'를 연기하고 있으며, '도쿄 타워'와 '걸어도 걸어도'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키키 키린은 나름 악당인 '하루' 아줌마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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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에 있습니다.





사실 명절 연휴기간이라고 해서 영화를 더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쨋든 명절연휴라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간내에 상영하는 영화들이 기대되곤 하는데, 매번 너무 '추석연휴'를 노린 듯한 영화들만 많았던 것에 비해 올해 추석연휴 극장가는 그런 작품들 외에도 볼만한 소소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본격적인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2주 후를 비롯해 다음 주 개봉작들까지 아울러서, 연휴 기간 볼만한 작품들을 정리해보았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목록을 정리해놓고 반 이상을 못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연휴기간에는 꼭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순서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1. 계몽영화
감독 - 박동훈
출연 - 정승길, 김지인, 오우정
개봉일 - 2010.09.16

'전쟁영화'를 연출했던 박동훈 감독의 신작. 매번 좋은 다큐영화들을 소개했던 '인디스토리'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근 훈훈함이 주가 되었던 가족영화들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미완성 가족교향곡'이라는 설명처럼 한국근대사를 배경으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 




2. 땅의 여자
감독 - 권우정
출연 -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
개봉일 - 2010.09.09

오늘 개봉한 '땅의 여자' 역시 인디씬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은 재쳐두고서라도, 이 '진짜' 이야기가 과연 어떤 울림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잔뜩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터라, 그녀들의 농촌 라이프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풀냄새, 땀냄새 나는 인생의 맛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3. 노다메 칸타빌레 Vol.1
감독 - 타케우치 히데키
출연 - 우에노 쥬리, 타마키 히로시
개봉일 - 2010.09.09

우에노 쥬리의 왕팬이자 '노다메'의 팬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작품!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개봉했던 작품이라 국내 개봉은 결국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소규모이지만 국내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TV시리즈는 원작인 만화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었음으로, TV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이들에게만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미 TV시리즈를 통해 이 황당하고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연출과 유치한 설정들에 적응되지 않은 이들이라면 아마도 유치함게 못이겨 극장을 빠져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노다 메구미와 치아키 센빠이에 흠뻑 빠진 이들이라면 적은 상영관도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듯.




4.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개봉일 - 2010.09.09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른바 '빠'로서 이번 연휴의 최대 기대작은 볼 것도 없이 '마루 밑 아리에티'라 할 수 있겠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하지 않은 '게드 전기'의 실패 이후, 다시 선보인 지브리의 비 하야오 작품으로서 더 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적으로 실망을 표현했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만족을 표현한 작품이라니 일단 안심이 된다. 지브리의 작품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화두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런 것 다 무시하고 봐도 좋은 것이 바로 지브리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그야말로 '초' 기대작이다.




5. 시라노; 연애 조작단
감독 - 김현석
출연 -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개봉일 - 2010.09.16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국내 로맨스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나의 여신으로 떠오른 '이민정' 양의 출연 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 따위는 볼 것도 없이 기대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스카우트' 'YMCA야구단' 등을 만들었던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니 완성도 역시 기대해봐도 좋겠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로맨스를 즐길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는 동시에 (이민정 양을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기대도 동시에!),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소문난 야구광인 김현석 감독의 야구사랑이 드러난 장면이 있을지도 체크 포인트.




6. 엉클 분미
감독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출연 - 사크다 카에부아디
개봉일 - 2010.09.16

최근 시네필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이 있다면 단연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신작 '엉클 분미'였다. 이미 이 작품을 본 이들의 평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냥 '좋다'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인 느낌이 들 정돈데, 다행히도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극장에서 빠르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아니더라도, 좀 더 제대로 아피찻퐁 감독의 세계를 스크린에서 만나보고 싶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과연 어떤 영화, 어떤 감흥을 선사할까. '아리에티'와는 또 다른 설레임이다.




7. 옥희의 영화
감독 - 홍상수
출연 -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개봉일 - 2010.09.16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다.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라는 것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는 또 다른 절대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는데, 그의 신작 '옥희의 영화' 역시 이미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부터 몹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는 포스터 속 모습 만으로도 이미 홍상수 월드에 완벽 적응한 듯해 이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기대되는 가운데, 오랜만에 홍상수 월드로 돌아온 문성근의 연기도 주목할 부분이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은 것만 보자던 홍상수 감독의 의지가 이 영화에서는 또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이번 추석연휴도 개인적으로는 극장을 매일 들락날락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들로 인해 더 풍성한 추석연휴가 되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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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ソラニン, Solanin, 2010)
청춘의 또 다른 이름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는 언제나 반가운 동시에 아련하다. 청춘을 그린 영화의 특징이라면 한참 이를 겪는 이들은 그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엔 이미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지나온 뒤이기 때문이리라.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미키 다카히로의 '소라닌 (ソラニン)'은 이런 청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자에서 돋아난 싹에 있는 독성물질'을 뜻하는 '소라닌'이라는 제목처럼, 기존의 청춘 영화들 과는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 모든 청춘 영화들이 특유의 아련함으로 보는 이를 추억과 감성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지만, '소라닌'은 유난히도 아련하다. '소라닌'은 한 때의 소나기로 기억될 수도 있고, 작은 방에 드리워진 햇살로 기억될 수도 있고, 행복했던 추억 혹은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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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이런 감정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 감성스러운 사운드트랙을 들었을 때부터 얘견되었던 것이었다. 무언가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이 풋풋하고 자유로움이 샘솟아나는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니, 사무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으로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어졌는데, 역시나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감정은 더욱 본격화 되어버렸다. 극중 메이코 (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 (코라 켄고)는 각자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거를 하는 중인데, 어느 날 이런 평범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려 조금은 우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는 더 큰 압박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내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끔 했던 것은 아마도 청춘,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라닌'은 이런 청춘이 가진 양날의 검을 모두 담담히 그려낸다. 무조건 현실에서 도망쳐 사표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며 정해진 길을 그대로 가라는 것만도 아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이 자체에는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이들의 행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극적으로 묘사되지만 않을 뿐 영화 내내 이 현실의 그림자는 주인공들에게 드리워져 있으며, 은연 중에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별다른 자극적 연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그럼으로서 이를 맞닥들이게 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현실에 처한 청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현실에서 잠시 혹은 영영 벗어난 이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현실에 놓여져있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 '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깊은 과정이 포함된 (결과는 같지만, 과정의 깊이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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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밴드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청춘은 흔히 록(Rock)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록이라는 음악은 그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장르이기 때문에 청춘과 비견된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소라닌'은 그 지점을 아주 잘 짚어내는 작품 중 하나다. 청춘을 록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작품은 '린다린다린다'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소라닌'은 그 가운데서도 '밴드 (Band)'라는 것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록만을 (혹은 펑크를) 부르 짖는 청춘과 밴드가 위주가 된 청춘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록의 정신을 청춘고 결부시킨 것보다는 밴드라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러니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 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시절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한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전자를 강조한 작품들 역시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라닌'은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함께 한다는 것 (함께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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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라닌'은 미치도록 기타 연주를 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라기 보다는 미치도록 밴드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다.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겠지만, 혼자 연주할 때와 합주할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분명히 밴드와 함께 할 때는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소라닌'는 극중 등장하는 밴드 'ROTTI'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대리만족을 가능케 해준다. 여기에 이들만의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 ROTTI가 부르는 '소라닌'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서를 안겨준다. 이건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된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수록곡의 원곡인 'Asian Kung Fu Generation'의 곡을 들어보게 되면 금새 알게 된다. 원곡도 물론 좋지만, ROTTI가 부를 때 만큼의 감동은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ROTTI가 '소라닌'을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이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절절함과 뜨거움이 미처 식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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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소라닌'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앉아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니, 한 편으론 참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작품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지리하게 흘러가는 청춘들의 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라닌'에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 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와 정서가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소라닌'을 보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미야자키 아오이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미야자키 아오이보다 '소라닌'이 더 깊게 각인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깊은 청춘의 자욱이 남아있다. 

사실 청춘 영화들이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춘 영화'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주 심하게 얘기해서 영화가 시종일관 별로 였다 하더라도 청춘의 순간을 제대로 그려낸 장면이 있다면 그 자체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라닌'은 참 인상 깊은 청춘 영화였다. 내게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였던 청춘이란 순간을, 어쩌면 바로 오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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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만화책은 뒤늦게 사려고 보았더니 모두 품절이라 좌절했었는데, 곧 영화 개봉을 기념해서 다시 재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급 기대중입니다!

2. 미야자키 아오이에게도 이런 에너지가 있었구나 싶네요. 그 에너지는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3. 사실 청춘 영화는 이렇다할 설명이나 비평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구요. 보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죠.

4. 영화를 보고 난 뒤 무한반복 중인 아지캉의 'ソラニン'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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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 2010)
괜찮아, 우린 모두 괜찮아요


줄리안 무어와 마크 러팔로, 그리고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은, 어떤 기사의 제목처럼 '특별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결국 이 특별해 보이는 가족조차 '평범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소스라면 주인공인 닉 (아네트 베닝)과 쥴스 (줄리안 무어)가 레즈비언 부부로 등장한다는 점일텐데, 이런 점에 불편한 점만 없다면 아마도 '에브리바디 올라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게이나 레즈비언을 그린 영화들 가운데서도 이 작품은 아주 부담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타부시 될 때에는 좀 더 자극적이고, 이렇게 타부시하는 사회와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러워진 지금에는, 이 작품처럼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들 꼭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다시 말해 관객들이 더 이상 주인공의 성정체성에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 것 같다. 그런면에서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특별한 듯 하지만, 참 평범해서 더 깊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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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모를 둔 이복 남매인 조니와 레이저. 이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정자를 기증한, 친부를 찾고 싶은 궁금증에 친부인 폴 (마크 러팔로)을 만나게 되고, 폴과 이 가족은 점점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를 이어간다. 이 가족과 폴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여러가지 삶의 다양한 의미들을 짚어 간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닉은 갑자기 나타난 폴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가족을 송두리채 흔들까 두려워 그를 심하게 경계하는 한편, 닉과의 관계에서 점점 권태기를 느껴가던 쥴스는 새롭게 등장한 폴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폴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아이에게도 다르게 나타난다. 

조니는 폴과의 만남을 통해 그 동안 집에서는 억눌려 있었던 자아를 찾는 데에 속도를 내게 되지만, 레이저는 닉과 마찬가지로 궁금하긴 했지만 폴의 등장이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반응이다. 그렇게 이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은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폴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화목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갈등을 겪고 있던 이 가족은, 폴이라는 또 다른 가족을 통해 다시금 자신들(가족)을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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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의 이야기만 보아도 이 이야기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각각이 겪는 갈등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가부장적인 닉이 겪는 갈등, 사랑과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던 쥴스의 갈등, 이제 막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하는 조니의 갈등 그리고 아직은 자신이 속한 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는 레이저의 갈등까지. 영화는 별다른 큰 에피소드를 넣지 않았음에도 폴이라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등장을 통해 이 모든 갈등을 부각시키고 치유하는 것까지 성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부각이 아니라 치유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그저 하나의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가족이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은 마냥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관계 못지 않게 서로 견뎌야만 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갈등하지만 결국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집단이라는 점을 영화는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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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원제인 'The Kids Are All Right'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 혹은 잘 모르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려 섞인 일들이나 관계들이 사실은 그런 우려만큼 문제가 아니라는, 그래서 '우린 다 괜찮아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연 레즈비언을 부모로 두고 있는 이복 남매인 아이들이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혹은 그들 스스로조차 내가 레즈비언인데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잘 커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이들은 조금 다를 뿐이지 그렇게 특별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이 편견이나 선입견이 대상이 될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이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 특별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가깝게 겪어보고 난 뒤에는 이러한 편견을 갖기 않게 되곤 하는데, 이런 영화의 순기능이라면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이런 잘못된 편견을 조금이나마 지워내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확실히 더 극적이고 간절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나가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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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을 보고 나면 확실히 내가 속한 가족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내 부모, 내 자식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마치 극중 쥴스의 그 뜨거운 고백처럼 말이다.


1. 아네트 베닝의 가부장적인 캐릭터 연기는 정말 놀랍더군요. 한 때 '러브 어페어'등에 출연하며 아름다운 여배우 중에 하나로 꼽혔던 그녀가, 이렇게 남성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롭더라구요.

2.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했던 미아 바쉬이코브스카는 확실히 이런 영화에서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편이더군요. 앨리스 이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3. 마크 러팔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본래도 그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그는 뭐랄까, 매력을 막 줄줄 흘리고 다닌달까. 여튼 그렇습니다. 그는 분명 섹시스타에요!

4. 영화를 보고나니, 극중 마크 러팔로처럼 유기농 농장을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과, 극중 아네트 베닝처럼 와인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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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나처럼 영화보고 쓰기를 즐겨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모든 일이 주객이 전도되고 초심을 잃게 되면 의미가 퇴색되는 것처럼, 영화 글 쓰기 역시 영화 보기를 넘어서는 수준이라면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몇 해전에도 한 번 깊게 했던 적이 있었고, 어쩌다보니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을 때마다 들곤 하는 화두이기도 한데, 완고했던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유해졌다고나 할까. 다시 한번 글로써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일단 여전히 영화 보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순수한 영화 보기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때문에 얻는 것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라면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즐거움에는 히노애락이 모두 포함되며, 괴로움은 재미없는 영화나 불편한 영화가 포함된다) 굳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가며 매번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 '보고 싶다'가 아닌 '무언가 쓰고 싶다'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관람 태도에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보고 나서 써야한다는 부담이 없다면, 영화를 오롯이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된다. 분석하려는 마음도 써야 할 때보다는 압박이 덜할 것이고, 그저 2시간 남짓을 맡기면 된다는 것에 그야말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이전에 보고 나서 써야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면, 아무리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해도 분명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를 보는 중간 이미 머릿 속은 글을 반 쯤 써내려가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극장을 나오면서 나머지 반을, 실제로 글로 옮길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전에는 이런 영화보기와 글 쓰기에 있어서 상당히 완곡한 입장이었다. 이렇듯 영화 글 쓰기가 영화 보기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과감하게 글 쓰기를 포기할 지언정, 순수한 영화보기가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생각이 원론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영화 보기 만큼이나 영화 글 쓰기의 독립적인 의미를 새삼 찾게 되었달까. 영화 글 쓰기가 단순히 영화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글을 쓰면 쓸 수록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영화 글 쓰기에는 여러가지 스타일들이 있지만, 나의 영화 글 쓰기는 결국 영화를 빌려 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하기 보다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 말하려는 것이 내 생각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는지 혹은 공감과 반대 되는 의견을 담고 있는지를 글로써 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 글 쓰기는 영화 보기 만큼이나 의미있는 작업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예전에 써둔 글들을 보면 그 영화가 어떤 영화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요새 새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글 쓰기는 궁극적으로 '글'자체가 의미있기도 하지만 '쓰는' 과정에서 오는 재미와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 특히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도구이자, 영화 만큼이나 재미있는 또 다른 유희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본 영화들은 머릿 속에 가득하고, 이것들을 글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가득하고, 점점 이런 것들이 압박으로 느껴질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에 부담을 느끼는 거지?'라며 반문해 보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분명 한 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점점 옭아매는 안좋은 습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보기 만큼이나 영화 글 쓰기의 재미를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것을 더 이상 짐이 아닌 즐거움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09.02. pm. 01:42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Kero One _ Kinetic World
질감이 느껴지는 비트


케로원 (Kero One)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한참 언더그라운드 힙합, 인스트루멘탈, 재즈 힙합에 관심이 많아 Madlib이나 Nujabes의 음반을 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아마도 처음 케로원의 음악을 들었던 이들이라면 그의 국적은 오히려 나중에 알게 되어 인식하게 된 경우가 많았을텐데, 나 역시 조금 나중에야 그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음악에 있어서 국적이라는 것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케로원의 경우처럼 사실상 가요의 영역에 한 번도 속하지 않은 뮤지션이라면 더욱) 어쨋든 본토의 힙합과 전혀 공기가 다르지 않은 비트에 살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케로원의 음악은 그냥 본토의 힙합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에게 '한국계'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조차 그의 음악에 또 다른 선입견을 주는 것이 아닐가 싶기도 하다. 

그의 데뷔작 'Windmills of The Soul'은 당시 즐겨듣던 다른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과 비교해도 크게 감흥이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재즈힙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따듯함과 아날로그의 공기가 느껴졌으며, 역시 랩핑이나 피처링보다는 비트가 더욱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그리고나서는 한 동안 케로원의 음악을 잊고 지냈었는데, Nujabes가 떠난 올해 그의 새 앨범 'Kinetic World'를 만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피처링한 것으로 더 화제가 되고 있는데, 에픽하이의 최근 앨범을 리뷰하면서 Nujabes를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음악적 교류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실 앨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순간은 처음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흘러나오는 그 첫 경험의 순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Kinetic World를 플레이어에 넣고 처음 흘러나오는 'Let Me Clarify'를 들었을 때 저절로 '와!'하는 짧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처음 재즈힙합을 듣게 되었던 그 때보다는 훨씬 경쾌해진 분위기였지만, 심플하면서도 따듯한 '그 느낌'이 단번에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앨범 전반에 걸쳐 드리워져 있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앨범과 동명 타이틀곡인 'Kinetic World'는 후렴구의 브라스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다. 요 몇년 사이 들었던 힙합 곡 가운데 인상적인 곡에는 거의 모두 브라스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는 기억을 되짚어 볼 때, 이번 케로원이 사용한 브라스 파트도 매우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따듯함 하면 이 곡을 떠올려야 할 것 같은데 바로 'On Bended Knee'이다. 재즈 기타의 선율은 '따.듯.함'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절로 그루브를 타게 하는 (담 넘는 듯한) 이 잘게 나눈 비트는 세련됨을 더한다. 언제 어떤 기분에서 들어도 청자를 위로해줄 그런 곡이 아닐까.




'My Devotion'은 일렉트로닉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이 곡 역시 기타리프가 곡을 이끌고 있는데, 기존 케로원 하면 떠오르던 따듯함은 조금 사라진 느낌이지만, 새로운 케로원을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라 하겠다. 'Missing You'는 간결한 피아노 선율과 역시 간결한 드럼 비트가 인상적이며, 'Time Moves Slowly'는 케로원의 곡이라기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힙합 뮤지션의 앨범 그 어디에선가 들어봤음직한 인상을 풍긴다. 왜 힙합 앨범을 여럿 들어본 이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5~9번쯤 사이에 이런 분위기의 꼭 한 곡이 수록되곤 한다 ㅎ 

'Asian Kids'는 굉장히 의식적으로 만든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목부터가!) 타블로를 비롯해 케로원 처럼 한국계 미국인 힙합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이다. 한 가지 이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었다면, 어차피 'Asian Kids'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곡이었다면 전체는 아니더라도 우리말로 된 플로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The Fast Life'는 아날로그한 느낌의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끈적한 여성 보컬과 어우러져 있는 곡인데, 확실히 이 곡은 미래적이라기 보단, 미래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음에도 결국은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디사이저를 사용해도 아날로그를 살려내는 것이 케로원의 장점이 아닐까. 




한국판에는 11곡 외에 'Goodbye Forever'의 리믹스 곡이 보너스트랙으로 수록되었는데, 전작을 인상 깊게 들은 팬이라면 좀 더 특별했을 보너스 트랙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앨범 커버의 그 따듯한 질감과 색감처럼 전체적으로 따듯함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케로원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 해설지에 있는 것처럼 확실히 기존 앨범들보다는 보컬이 추가된 부분이 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시 금 예전의 재즈힙합의 전성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인스트루멘탈로만 꽉 차여진 케로원의 새 앨범도 기대해본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영화를 삶의 낙으로 삼고 있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극장이란 곳은 그냥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공간적인 측면 외에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극장의 가장 큰 기능이라면 역시 좋아하는 영화를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이 것 외에도 극장은 그 자체로 (그러니까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별한 공간이 되곤 한다. 가깝게는 친구와의 약속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내 인생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추억 중 많은 조각들은 영화 혹은 극장과 연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볼 때 첫 경험을 몹시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사람은 약은 존재라 아무리 선입견을 지우려고 의식적으로 거부해도 이미 이 의식 속에는 또 다른 선입견이 생기는 것처럼,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볼 수 있는 첫 관람의 조건을 가능하면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나의 영화보기에 가장 큰 준비작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본래 의도한 바를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극장의 조건을 찾아 첫 경험을 치루곤 하는데, 필름 상영인지 디지털 상영인지, 혹은 3D상영인지 아이맥스 상영인지 등은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어찌보면 영화를 보는 대에 가장 직접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극장의 분위기는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영화를 예매할 때는 다른 요소보다 바로 이 분위기를 가장 1순위로 고려하게 되었으며, 이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실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의 에티켓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저버린지 오래다. 왜냐하면 멀티 플렉스에는 '영화'를 보러 온 사람보다는 그저 '시간'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영화를 보려는 사람만 극장에 와야 하는 것이냐 라고 반문할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제발 그래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영화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이일 뿐이니, 내 인생에서 영화보기의 중요성을 남에게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전 재상영된 '영웅본색'을 보러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시네마테크' 역시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시네마테크'는 좀 더 영화에 애정이 있는 이들 혹은 영화 보기에 대한 인식이 높은 이들이 주로 보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반대로 얘기하자면 '시간'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보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기 때문에) 무개념에 가까운 관람 태도는 피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점점 시네마테크에도 멀티플렉스에서나 볼 법한 관람 태도의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매우 우울해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시네마테크에서나 볼 법한 영화들을 일반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판권 및 상영권을 가져가는 바람에, 이런 영화들을 보려면 할 수 없이라도 멀티플렉스를 가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 이유도 들 수 있겠다 (멀티플렉스의 예술 영화 끌어 안기는 분명히 양날의 칼이다). 여기까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부분이라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는데, 앞으로 이야기할 관람 에티켓에 대해서는 사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다.




일단 극장에서 전화 받는 사람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껏해야 2시간 정도 핸드폰과 이별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고 말하고 싶지만, '중요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라는 이유라면 공감은 안되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연락이 온 다음부터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바로 옆에 앉은 이들에게 눈치가 보여서라도 작게 이야기하거나 바로 끊고 이따 통화하자 라고 이야기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요새는 끊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이 오히려 절대 작지 않은 목소리로 계속 통화하는 이들도 여럿있는데, 이 분들은 '극장에서는 통화를 삼가해주세요'라는 기본 개념이 전혀 자리잡지 못한 탓일 것이다. 나는 누가 돈을 줄테니 한 2분만이라도 평소처럼 상영시 통화해주세요 라고 부탁을 해도 아마 주변 눈치와 내 스스로 민망해서 못할텐데, 이렇게 너무나 평온한 상태에서 오랜시간 통화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확실히 이들과 나는 절대 섞일 수 없는 부류이리라. 문자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다. 거의 영화 상영내내 핸드폰의 환한 불빛을 드러내며 문자를 주고 받는 이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럴려면 왜 아까운 돈을 내가며 극장에 들어와서 문자를 주고 받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앞좌석을 발로 차는 것도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장 의자와 의자와의 간격은 열악한 시설이 아니라면 다 성인을 기준으로 제작이 되어 있어서 정상적으로 앉았을 때 크게 무리가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신체구조를 지닌 것인지 앞사람을 차지 않고는 영화를 볼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평소에 잘 교육을 받지 못해서인데, 이런 이들의 평소 습관을 보면 앞좌석에 아예 발을 대고 보는 것으로 익숙한 이들도 상당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앞좌석에 사람이 없으면 아예 두발을 앞좌석에 높게 걸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여럿이 함께 왔을 때 더 대담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예 이런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뒷좌석이 없는 중간 통로좌석을 택하는 편이다. 이런 이들과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훨씬 나은 편.




그리고 또 하나 불편한 관람태도라면, 사사건건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이들이다. 마치 이 곳이 자신들의 안방인냥 영화를 보는 내내 작지 않은 소리로 '저건 왜저래?' '저 사람 죽은거야?' '뭐야 유치하게' 등등 보통 사람들은 나 혼자 머릿 속에서 하곤 하는 생각들을 별도의 여과장치 없이 입밖으로 내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니 그걸 궁금해하는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이걸 굳이 그 자리에서 옆사람에게 '큰소리로' 확인하는 걸 보면 과연 내가 옆에 있는 것이 보이질 않는 것인지를 '정말로'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정말 잡담이 멈추질 않길래 정말정말 참다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 혹시요. 저 안보이세요?' 

말이 나온 김에 관객들 외에 극장 측의 에티켓도 이야기하고 싶다. 멀티 플렉스에서는 상영시간이 정시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미 일반화 되었다. 그래서인지 멀티플렉스를 주로 다니던 관객들은 시네마테크에 왔을 때 영화가 정시에 시작하면 오히려 당황하기까지 하더라. 이것은 분명히 극장이 관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럴 거면 차라리 영화의 정시를 뒤로 늦출 것이지 정시는 그대로 표기하되 그 이후까지 한참이나 광고를 상영하는 것은 분명 '불법'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러 간 것이지 광고를 보러 간 것이 아닌데, 이 수준이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상영시간 이후에 10분 가까이 광고를 하는 것은 진짜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엔딩 크래딧에 대한 것은 누누히 지적했지만 분명 극장의 100% 잘못에 가깝다. 요새도 간혹 끝까지 틀지 않고 관객이 있음에도 꺼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뭐 논란의 여지가 없는 극장의 잘못이지만 실제로 크래딧을 중간에 끊지 않더라도 남아있는 관객을 극장 직원들이 계속 눈치주는 것에 불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청소 아주머니는 매우 친절하게 '이거 끝나고 아무것도 안나오니 빨리 나가요'라고 가르쳐주기시도 하시던데, 다른 사람들은 뭐 추가 장면이 있나 해서 남아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추가 장면이 있건 없건 크래딧을 끝까지 감상하며 스탭들 이름도 확인하고 영화에 삽입된 수록곡들도 보고 무엇보다 스코어를 만끽하기 때문에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순간은  아직 영화 감상의 연장선에 있단 말이다. 그런데 극장의 직원들은 '쟤가 도대체 왜 안나가고 있나' 엄청나게 눈치를 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직원들과 이런 밀고 당기기를 하게 되었는데, 도대체 내가 내 돈 주고 영화를 보면서 왜 이런 억울한 대우를 당해야하는지 아직까지도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냥 내가 유독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슬픈 뿐이다.




어쨌든 극장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인데,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기 위해 고려해야할 영화 외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아졌다. '내 뒷 사람은 왜 이렇게 계속 찰까', '쟤는 왜 저렇게 전화통화를 하는 걸까', '저 사람은 계속 말이 많던데 이 장면에서 또 한 마디 하겠네', '직원이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군' 등등 직간접적으로 영화 한 편 보는데 너무 고려해야할 것들이 많아진 탓에 정작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지금의 티켓값에 2~3배를 지불할 용이가 있으니 이런 프리미엄 상영관(현재 멀티플렉스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상영관과는 다른 개념의)이 있다면 아마도 굳이 사람들이 비싼 돈 주고 들어오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비싼 돈 주고 영화를 봐야할까 하는 억울한 마음도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말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관람환경이 주어진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냥 '제발' 극장에서는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다. 왜 이런 당연한 사실을 '제발'을 붙여가며 바래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극장에서는 오롯이 영화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영화 팬으로서의 정말 최소한의 바람이다.


2010.08.30. pm. 03:25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더 코브 (The Cove)
잔인한 진실, 이제는 행동할 때 


지난해 가장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중 하나였던 '더 코브'를 뒤늦게 EIDF 프로그램을 통해 TV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극장 개봉 당시 이미 많은 화제를 불어일으켰고 선댄스에서의 수상 등 주목받는 작품이었는데, 늦었지만 EIDF 덕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카피 들을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더 코브'의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저 황홀한 이미지에만 끌려, 단순히 해양세계와 돌고래의 압도적인 신비로움을 알려주는 작품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저 카피들이 말해주듯 '더 코브' 에 담긴 내용은 (그리고 사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잔혹함과 공존에 대한 신랄한 경고이자 신고의 성격을 갖고 있는 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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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린피스의 활동이나 가끔씩 들려오는 해외 토픽 등을 통해 불법 고래잡이에 관한 사실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예전에 포경 관련해서도 일본의 행동들을 알게 된 적이 있는데, '더 코브'를 통해 알게 된 일본 타이지의 잔인한 진실은 그 동안 철절히 숨겨져 왔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곳에서는 매년 2만 3천마리가 넘는 돌고래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데, 일단 그 사실 이전에 이것을 은폐하려는 타이지 사람들과 관리들의 모습들이 가관이다. 가끔 이런 사회 고발성 다큐멘터리에는 그 어느 극영화 못지 않은 악당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이 곳 사람들 역시, 그 어떤 작가가 만들어낸 악역 캐릭터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실존인물들이 아닐 수 없겠다. 자신들의 부당함을 숨기고 이를 밝혀내려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고 있노라면, 인간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끔까지 만든다. 

작게는 마을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정부와 돌고래 사업과 관련된 거대 회사와 국제 단체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너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고발은, '더 코브'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다. 영화는 이를 위해 '오션스 일레븐'에 버금가는 정예 팀을 만들어 잔인한 진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대에 결국 성공하는데, 물론 이 과정이 극영화 못지 않게 긴장감 넘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극영화 다른 점이라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극영화와는 다르게 이 잔인한 장면이 사실이라는 점 때문에 그저 재미만 느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만큼 일본 타이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잔인함 그 자체였다. 

극영화에서도 가끔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루이 시호요스 감독은 드디어 그 충격적인 영상을 영화를 통해 공개하게 되는 순간, 그 어떤 영화적 묘사의 장치도 사용하지 않는다. 극적인 음악도 없고, 그 동안 계속 포함되었던 내레이션도 이 순간엔 침묵한다. 그리고는 그저 어부들이 잔인하게 돌고래를 학살하고, 그로 인해 붉게 물든 바다를 말없이 보여준다. 이 장면이 얼마나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는지는 직접 보고 느끼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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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자신 역시 돌고래들을 사육하고 돌고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한 남자 후회로 부터 시작되었다. 릭 오배리는 이 다큐를 통해 여러번 '그 때는 몰랐었다' '왜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를 후회하곤 한다. 어쩌면 이 큰 후회가 그를 지금까지도 돌고래 보호를 위해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후회는 이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우린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다큐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사실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막말로 이런 것들을 모두 염두에 둔다면 내가 먹는 것, 보는 것, 사는 것 들 모두가 행복이 아닌 삶의 제약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논리로 다시금 나를 합리화하며 작게 나마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시작도 전에 관두게 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합리화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부당함을 느꼈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신이 믿는 가치가 계속 구현되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한 발이나마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코브'를 보고 나서 아주 작은 결심을 하나 했다. 사실 돌고래는 너무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했고,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놀이공원의 '돌고래쇼' 는 꼭 한 번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적어도 볼 수 없는 '쇼'가 되어버렸다. 나 하나 안본다고 돌고래쇼를 보는 사람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 돌고래를 잡아들이는 행동이 줄지는 않겠지만, 분명 한 건 돌고래쇼를 보려는 사람의 수가 하나는 줄었다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미약하나마 돌고래 사업에 손실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다큐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는 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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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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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데니스 르헤인의 원작소설을 스콜세지는 깊이 있는 질감과 시각적인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공감하도록 만드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원작 못지 않은 훌륭한 영화화를 이루었다. '셔터 아일랜드' 개봉 당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이야기의 반전을 두고 양측이 제법 대등하게 의견을 겨루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완벽하게 정해지고 짜여진 한 쪽의 이야기, 그러니까 너무 명확한 일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와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설을 들어보아도 '제법 이야기가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당시 영화 평에도 썼듯이,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극장을 나오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으며,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영화를 본 사람에게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묻게 되고, 또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설득하고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인셉션'은 모두가 정답이 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라면, '셔터 아일랜드'는 정답은 분명 한가지이지만 오답 역시 설득력을 갖을 수 있도록 연기와 연출이 섬세하게 다룬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은 '인셉션'과 여러모로 비교할 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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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개봉 당시 글에서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런 점보다는 다시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극장에서도 두 번을 관람하였었는데, 이런 영화의 특성상 두 번 이상 보게 될 경우,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일 수 밖에는 없으며, 그저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나 인물들의 행동들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기'의 방식으로 끄적여 보았다.


(이 글은 스포일러 투성이인 글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서는 모쪼록 내용이 전부 들어 있는 이 글을 읽지 마시고, 영화를 감사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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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릴러 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두 가지를 특별히 고려하고 있다. 하나는 영화는 알고 있는 진실을 나중에 관객에게 알렸을 때 모든 것이 수긍가도록 그 과정을 세밀하게 설계해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단서를 여기저기 흩어놓으면서도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주인공의 심정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그래서 심지어는 영화가 나중에 반전을 알려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이런 두 가지를 모두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주인공 앤드류, 아니 테디 다니엘스의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이에 대한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예 확실한 결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너무나 명확히 극중 앤드류 레디스, 그러니까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이며, 영화의 마지막 닥터 코리가 이야기해준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면 이것저것 고민할 것도 없이 '정신병자를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라는 식으로 확정지어 얘기하고 있으니 사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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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셔터 아일랜드'는 극중 디카프리오가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보게 되면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그리고 앤드류 레디스라고 인정할 때만 더 확연히 보이는 디테일이나 연출, 연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런 점들,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었던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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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셔터 아일랜드에 테디 다니엘스와 그의 동료 척이 (일단 이렇게 지칭해두자) 도착하자 굉장히 삼엄한 경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현재 위험한 환자가 탈출한 상황이고 이 연방요원들이 그냥 탐탁치 않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겼었지만 사실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이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폭력적인 성향의 환자이고 경관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만큼 위험한 환자였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병원 밖을 활보하는 이 상황이 경관들로서는 몹시 긴장된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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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에 설치된 전기선을 보고는 '전에도 본 적이 있어'라고 얘기하는데, 이 대사는 나중에 나치의 수용소에 갔었던 기억 (이 기억조차 거짓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에서 그 때봤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았었지만, 사실은 저 말 그대로 바로 그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앤드류 레디스고, 이곳의 환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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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에서도 이런 이상한 점을(테디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관객들이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테디와 척이 애쉬클리프에 입장하기 위해 총기를 반납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총기를 반납하려는데 연방 보안관으로 4년이나 근무했다는 척은 어찌된 일인지 허리춤에 있는 총 조차 제대로 벗어내질 못한다. 이 장면에서는 위 스크린 샷 속 테디의 시선처럼 관객 역시 척 (마크 러팔로)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척을 의심케 하는 몇가지 연막 작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척을 의심하는 것은 맞지만, 테디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척은 바로 닥터 시한이기 때문에 이런 연방 보안관의 행동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었을 터. 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는 좀 더 직접적인 단서는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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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더욱 그렇지만, 척은 유난히 테디에게 '괜찮아요?'라고 걱정스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이는 물론 그가 척이 아니라 앤드류의 주치의인 닥터 시한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한은 코리와 더불어 이런 방식의 치료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진보적인 의사이기 때문에 아마도 테디의 파트너인 척 역할을 자청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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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연기에 관심없는 배우들을 시한 박사가 열심히 이끌고 있는 한 연극의 장면과도 같다)

이 병원 내에는 앤드류 레디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두가 동원된 거대한 연극을 하는 것에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적인 이라면 역시 코리와 시한 박사를 들 수 있겠고, 부정적인 이들이라면 막스 본 시도우가 연기한 내링 박사를 비롯해 소장과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코리 박사와 주치의인 시한은 이런 치료방법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지만, 내링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봤자 소용없어'라는 식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추장스러운 연극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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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 유난히 앤드류 혼자서 열심히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다)

위와 같은 장면에서는 아예 앤드류가 돌아서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연극 놀음이 그저 재밌기만 한 한 남자 간호사의 웃는 장면마저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비롯한 이 곳 직원들에게는 자신들이 계속 돌보던 한 환자가 연방 보안관 행세를 하며 자신들을 심문하고, 그의 주치의 역시 보안관 행세를 하는 것이 한편으론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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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은 대부분 이 상황에 비협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대놓고 테디를 우습게 깔보며 대하기까지 한다. 항상 반대로 자신들이 환자에게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랬던 환자가 보안관이라며 자신들을 심문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불편한 것이다. 위의 두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편의 간호사는 못마땅의 강도가 더한 경우라 계속해서 테디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것이고, 오른편의 간호사는 그저 이 상황이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그렇게 연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않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지금의 간호사들처럼 이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환자가 실종되었고, 연방 보안관이라는 자가 자신들을 심문하는 떨리는 상황이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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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심문하는 곳에 닥터 코리가 자리잡고 이 상황을 주시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땐, 혹시 어떤 직원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캐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비협조적인 직원들이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봐 혹은 앤드류가 계속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이 틀어질 경우 그 길을 조정해주기 위한 안내자이자 감시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잘보면 앤드류가 직접 방향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척이나 주변 사람들이 은근 슬쩍 앤드류의 경로를 정해주는 장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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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해서 뭐라도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위의 장면도 이런 비협조적인 이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해안가에 실종사 수색을 하러 나왔는데, 실제로 수색하는 인력들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테디는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경관들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연극일 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즉 아무리 찾아봐도 시체나 환자따위 나올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연극에 열심히 참여할 동기조차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저렇게 비협조적인 모습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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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환자들을 테디가 심문하는 장면부터다. 이 심문 장면이 시작하기 전 아까 그 까칠한 반응을 보였던 간호사가 위와 같은 주사를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심문을 받게 되는 환자들이 발작이나 이상 반응을 보일 때를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장면 역시 다시보게 되면 이 주사가 환자들이 아니라 또 다른 환자, 가장 위험한 환자인 앤드류 레디스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1로 다른 환자들과 맞닥들였을 때 이상 행동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는 앤드류였기 때문에, 아까 직원들을 심문하던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긴장한 모습으로 환자들과의 심문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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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떡하니 앉아있으니 말하기가 쑥스럽네요;;;")

이 심문 장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시한 박사에 대한 묘사다. 이 장면 전에도 슬쩍 그런 분위기를 보였던 영화는 이 장면에 와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척이 닥터 시한임을 연기와 컷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앤드류가 시한에 대해 묻자 여자 환자는 오른편에 앉은 시한을 흘깃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일반인이었다하더라도 바로 앞에 그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인척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정실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 같은 경우는 이런 연기에 아무래도 좀 더 미숙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잘 생겼다는 얘기를 할 때는 쑥스러움을 그대로 표정에 드러내기도 하고, 위의 스크린 샷처럼 저렇게 바로 앞에 시한을 쳐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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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그 반대편에 앉은 척을 보여준다.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쑥스럽게 할 때 바로 시한의 표정과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 속에서 시한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거의 모든 장면이 척에게로 이동한다. 즉 영화는 이때부터 척이 닥터 시한이다 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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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 근데 나는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거임? -_-;;")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재미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같은 위급 상황에 닥터 시한에게 휴가를 주고 섬을 나가게 했다는 이야기에 바로 본인인 척이 '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라며 되묻는 장면은, 이 연극의 작은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연극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 이런 대화들이 오갈 때의 반응을 보면, 조금씩 머뭇거리거나 쑥스러워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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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링 박사의 위와 같은 질문도 이 연극의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 바닥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와중에는 약간 비꼬는 투가 섞여있는데, 환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 니가 보스턴에서 온 보안관이라며?'라는 식으로 약간 비꼬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이 환자가 자신의 환상에 깊이 빠져있는지 일종의 테스트를 겸하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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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레이첼'을 앤드류가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구성자체가 너무 연극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각 인물들의 배치자체도 마치 무대 연극을 보는 듯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고,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조명은 이런 연극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앤드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레이첼의 불꽃 연기에 감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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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돌변한 레이첼을 맞닥들이는 앤드류의 표정도 흥미롭다. 이 장면만 본다면 극중 앤드류는 명백한 정신병동의 환자이고 레이첼은 간호사 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저 표정은 갑자기 변한 상대에 대한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불안을 겪는 환자로서 공포를 느끼는 표정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 장면은 그래서 테디가 이 곳에 와서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이었다는 점을 그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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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척이 테디를 눈치보는 장면은, 둘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고 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앤드류를 철썩 같이 테디로 믿고 있을 때에는 이런 시선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런 종류의 영화의 묘미다. 그리고 다시 보는 '셔터 아일랜드'의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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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금씩 소스를 제공하던 영화는 조지 노이스 (잭키 얼 헤일리)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매우 노골적으로 영화의 본래 이야기를 드러낸다 (여기서 본래 이야기란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관계상 본래 이야기를 말한다). 조지 노이스는 앤드류 레디스와 테디 다니엘스를 모두 잘 알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빨리 아내를 잊으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테디를 만난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그를 테디가 아닌 앤드류 레디스로서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는 앤드류는 이 이야기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관객은 점점 더 주인공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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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 한가지만 언급하자면 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저 장면은, 이 모든 이야기의 단서이자 시작이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레디스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우울증을 겪던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익사시킨 이 사건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손으로 이런 아내를 죽인 것에도 충격을 받아 결국, 자신안에 또 다른 자아를 갖게 되는 정신질한마저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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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인 척을 잃고, 동굴에서는 실제 레이첼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갖은 뒤 앤드류는 소장에게 발견되어 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소장은, 코리 박사가 주장하는 이 거대한 연극에 결코 협조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소장은 앤드류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낸다. 앤드류를 완전한 환자 취급하며 그의 폭력성이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건 앤드류, 아니 현재는 테디 다니엘스인 디카프리오가 소장의 이런 억압에 전혀 꼼짝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테디는 더 이상 연방보안관이 아니라 이곳의 환자인 앤드류의 모습으로 변모해왔으며, 자신을 완전히 환자 취급하는 소장의 말에도 제대로 한 마디 받아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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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 박사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이 테디 다니엘스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코리 박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는 바로 과거에도 이렇게 치료됐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앤드류의 마지막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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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인 소설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대사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겠나?'

바로 이 것이다. 시한 박사를 다시 한번 척으로 부르고 이곳을 탈출해야 겠다고 한 뒤 남긴 말이 바로 위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고는 제 발로 자신을 수술하려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로 걸어간다. 이것은 분명 테디 다니엘스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여러번 치료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또 한번 환상에 빠지기 전 오롯한 앤드류 인 지금 선택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 때문에 계속 정신이상과 현실을 반복하는 괴물로 평생을 살기 보다는, 그냥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죽음을 택한다. 영화는 이렇게 걸어가는 앤드류의 뒷 모습으로 끝나지 않고, 수술이 행해질 등대를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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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반전을 숨기고 있는 영화로서 이야기의 양면성을 영화화로서 잘 표현해 낸 작품이었다. 영화가 이끄는 대로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물론 흥미롭고, 그 반대로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테디 다니엘스를 보는 것도 몹시 흥미로운 감상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위드블로그 2.0을 말하다


요 근래 (근래라고 부르기 부담스러운 정도의 기간동안) 정말 모든 노하우를 퍼부으며 정성에 정성을 들인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위드블로그 2.0 이었습니다 (http://withblog.net). 위드블로그는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맡게 된 서비스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가장 주력해온 서비스였기에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른 서비스였죠. 하지만 그 동안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불만이나 불편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불편한 점을 개선하기도 하였지만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성에 차질 않았던 것도 사실. 그러던 차에 더 늦기 전에 위드블로그 2.0을 발동해야 된다는 전사적인 공감대가 형성! 아무것도 없던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이루기까지, 그 시작부터 끝까지 (물론 아직 2.0은 진행중입니다) 제 정성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선보인 위드블로그 2.0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는 포스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미 여러 블로거분들이 자세하게 남겨주신 것도 있고, 또 다른 자세한 부분은 위블 인사이드 등을 통해 소개가 가능함으로 이 포스트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소개할 예정입니다 ^^;




일단 메인 페이지를 보시면 기존과는 달리 시원해진 슬라이드 배너와 같은 크기로 나열된 각 캠페인의 썸네일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기존의 슬라이드 배너는 디자인적인 측면이나 정보를 담는 측면에서 모두 조금 답답하고 심심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에 기획할 때 '시원하게!'가 목표였을 정도로 이런 느낌을 좀 더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캠페인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썸네일의 경우 기존에는 각 페이지 마다 여러가지 사이즈가 존재했던 것에 비해, 2.0에 와서는 모두 동일한 크기의 썸네일로 통일하여 좀 더 통일성을 주도록 했습니다. 현재는 위젯에 노출되는 것 외에는 모두 같은 사이즈로 노출되고 있는데, 추후에는 위젯 역시 동일한 사이즈로 수정될 예정입니다.




이번 2.0에서 가장 주력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마이 페이지의 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 마이 페이지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캠페인 관리나 이로 인해 받은 리워드 (적립금/레벨 포인트) 들의 확인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죠. 그래서 이번에 개선된 마이 리뷰에서는 좀 더 이런 관리 및 확인 측면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캠페인 관리에서는 자신이 참여한 캠페인과 현재 참여중이라 글등록해야하는 캠페인들의 확인이 용이하고, 적립금의 경우 어떤 캠페인에서 얼마를 적립 받았는지 등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참여한 캠페인의 경우 캠페인 컬렉션을 통해 좀 더 보기 좋게 (베스트/우수/참여 에 따라) 한 눈에 확인하실 수도 있구요.




그리고 오픈 이후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갖고 이슈를 만들어주고 계신 '뱃지 시스템'. 사실 처음에 뱃지 시스템을 기획했을 때는 좀 단순한 수준이었는데, 기획이 진행되면서 이 뱃지가 위드블로그 2.0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감이 오기 시작했죠. 처음 기획된 뱃지는 현재 공개된 뱃지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어요. 하지만 여러 회의 끝에 일단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차근차근 스페셜 뱃지 등을 통해 늘려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2.0과 함께 오픈되지 못했지만 뱃지의 소개 및 스페셜 뱃지의 획득 등 뱃지의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뱃지 센터 (Badge Center)'를 준비 중입니다. 좀 더 모양새를 갖추게 되면 공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뱃지는 그야말로 '재미'의 요소로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놓고는 이 글 역시 스페셜 뱃지 획득을 위해 쓰는 중 -_-;;)




이번에 또 하나 신경 쓴 부분이라면 기존 사용자 분들은 물론, 위드블로그를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좀 더 개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카툰이었습니다. 위드블로그가 나아가려는 지향점과 간단한 소개 및 뱃지와 커뮤니티에 대한 소개 등을 부담없이 확인하시도록 카툰 형식을 빌려보았는데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이 밖에 위드블로그의 메인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캠페인에 대해서는 '캠페인 완전정복 가이드'를 통해 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드블로그 2.0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공들인 부분이 또 있다면, 바로 기존에는 없었던 컨텐츠 부분인 '위블 베스트 초이스'와 '위블 인사이드' 그리고 조금 뜸했던 '집중! 위드블로거'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블로깅 외에 어찌보면 위드블로그 운영자로서 하는 블로깅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좀 더 부담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가볍고 편안하게 블로거분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집중! 위드블로거' 역시 2.0부터는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분씩 모시려고 하구요. 한 달에 한 분씩 블로거 분들을 만나는 것도 저에게는 흥미로운 일 중 하나에요. 지금까지는 다 만나면 뭐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었던 것 같네요. 9월에는 또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아직 미정입니다 ^^;




그리고 또 하나, 기존 위드블로그에는 없던 기능이라면 바로 커뮤니티 기능을 할 '위블 티타임'을 들 수 있을텐데요, 애초 기획은 상세 게시판 형태까지 정해진 형태로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일단은 자유게시판 형태로 오픈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티타임 배너의 경우 살짝 숨어있는 느낌이 있는데, 조만간 좀 더 눈에 띄는 곳으로 영역이 확대될 예정이며, 티 타임 역시 좀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한가지 떡밥을 드리자면, 제 개인적으로 (운영자 자격이 아닌) 티 타임을 통해 나눔 이벤트 같은 걸 진행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정말 위드블로그가 모든 리뷰 블로거들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또 뭐 재밌는게 없을까? 뭐 개선할 건 없을까를 계속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위드블로그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라스트 에어벤더 (The Last Airbender)
너무 순진했던 샤말란의 졸작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름 자랑한 만한 거리가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내 취향에 맞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선택해내는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걸 들 수 있을텐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만 대부분이 긍정적이고 인상적인 평을 끄적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선택에서 살아남은 작품들 가운데 아주 가끔 만족스럽지 않은 영화들도 있었는데, M.나이트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보기 전부터 '이걸 과연 봐야할까?'라는 고민을 굉장히 심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제작이 들어가고 연출을 샤말란이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보다는 걱정을 훨씬 더 했었으며 (그 때 내 반응은, '왜?, 도대체 왜 샤말란이 이런 작품을?' 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시사회와 개봉 이후 들려오는 지인들의 평들을 보니 '샤말란의 팬이라도 안보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그래도!'라는 마음에 속는 셈 치고 이 작품 '라스트 에어벤더'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여기에는 '그래도 나는 재미있게 볼지 몰라'라는 일말의 생각이 있었는데, 결론은 나조차 샤말란을 편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총체적 난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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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라스트 에어벤더'는, 그렇다고 해도 어쨋든 영화화된 작품이라면 반드시 있어야할 몇가지 요소들에서 너무나 결핍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유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치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렇다할 기본 요소들의 힘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각각의 원소를 다스리는 벤더와 이 모두를 다스릴 수 있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아바타라는 존재와 세계관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자체가 굉장히 유아적이긴 하지만 이는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라스트 에어벤더'를 보고나서 얼핏 떠올랐던 작품은 또 다른 판타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자 실패로 인해 속편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황금 나침판'이었는데, 결과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조금 차이가 있다 하겠다. '황금 나침반'은 애초부터 시리즈로 기획된 점에 기인해 1편에서는 대부분의 분량을 세계관과 캐릭터 설명에 할애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 지루했으며 그 과정에서 전혀 리듬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설명 조차 다 하지 못해 1편이 해야할 역할들을 겨우 해낸 듯도 했지만 결국 그 기대가 2편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지는 못했던 작품이었다.

이에 반해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는 사실 이 보다도 못한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일단 그 세계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 캐릭터의 설명도 거의 없는 편에 가깝다. 그리고나서는 다짜고짜 여정을 시작하는데, 당연히 공감대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거기에 갑자기 나타난 캐릭터와 말 한번 섞지 않고도 목숨을 바치는 말도 안되는 설정이나 전혀 위압감이나 공포스러움은 물론 존재감마저 주지 못하는 악당들도 문제다. 그런데 영화의 중간중간, 관객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데 마치 영화는 스스로 이 장면이 굉장히 멋진 장면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장면들이 많다. 관객은 이 굴곡 없는 이야기에 점점 수면에 가까워지는 와중이지만, 영화는 이와는 다르게 '이것봐, 이거 정말 환상적이지않아?'라며 스스로 감탄하고 있는 듯한 장면이 여럿 느껴지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순수하기보다는 순진한 것으로 봐야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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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에 대한 실망감들이 바로 이런 '순진함' 때문이기를 사실 바랬었다. 샤말란은 이전 작품들을 통해 대중들에게는 외면 당할 지언정 그 순수함은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계속 그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아왔었는데 (그래서 이번 작품의 악평들도 이런 순진함 때문이길 바랬었는데), '라스트 에어벤더'는 이런 순수함이 아닌 그저 순진함으로 만들어진 아쉬운 작품이었다. 순진함으로 인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거의 모두 간과하고 있으며, 캐릭터의 미스 캐스팅은 지금까지 본 영화 가운데 손꼽을 정도이며, 그렇다고 화려한 CG나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나보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가 문제인건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런 요소가 모두 있는냥 자신들이 이렇다고 믿는 장면에서 나름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관객은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는 언제 얻을 수 있나? 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영화는 이미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믿고 있으며, 관객은 과연 에어벤더만의 특별한 액션 시퀀스는 언제 볼 수 있을까?라고 기다리지만, 영화는 이미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순수한 영화라면 관객이 공감을 못할 지언정 이런 결과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담 이걸 유아용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라스트 에어벤더'는 그냥 순진하기만 한 것이다. 지금까지 M.나이트 샤말란은 순수하긴해도 순진한 감독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은 처음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부터 '왜?'라는 물음을 갖게 하더니, 결국 이런 의문을 더 깊게 만들만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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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캐스팅 얘기를 잠시 했는데, 정말 '황금 나침반'처럼 호화캐스팅을 바라보는 재미마저 이 영화엔 없다. 주인공을 연기한 노아 링어는 전혀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으며 (물론 이건 이 아이의 잘못만은 아니다), '카타라' 역할을 맡은 니콜라 펠츠는 너무 평범해서 길에서 봐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고, '소카'역을 맡은 잭슨 라스본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매력적인 캐릭터마저 잊게끔 만들 정도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데브 파텔 역시 샤말란과 마찬가지로 도대체 왜 이 영화에 나왔을까 싶을 정도의 미스 캐스팅이었다.

M.나이트 샤말란은 과연 자신이 만든 '라스트 에어벤더'가 만족스러웠을까? 제발 나중에 인터뷰 등을 통해, 스튜디오의 압박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없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게 마지막 바램이다. 아...샤말란...이건 정말 아니다.


1. 3D로 봤는데 전혀 3D로 볼 필요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거의 3D로 밖에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고민없는 3D는 이처럼 아주 심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더군요.

2. 너무 자신있게 속편을 암시하고, 아니 광고하고 있는데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만약 나온다면 제발 샤말란은 손 때주길. 팬으로서 부탁드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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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별점주기를 하면서 매번 고민스러웠던 일은, '점수주기'의 의미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도 아니고 (하물며 스포츠도 결과보단 과정의 중요성을 더 보고 있는데!) 영화 같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작품을 가지고 점수를 준다는 것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만약 이 이유만으로 별점 주기를 포기한다고 치자면, '그렇담 어차피 개인적인 것인데, 개인적으로 점수를 주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유보다는 바로 그 '개인적'인 감상이 볼 때마다는 아니더라도 분명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좋아하는 영화는 극장에서 여러번 보기를 주저하지 않고,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로 출시되면 구매해 시간 날 때마다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되는 일이, 같은 영화를 여러 다른 시간대 (나이)에 보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렇게 되면 바로 이 '개인적' 감상이 변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영화가 어른이 되어, 혹은 세월을 갖은 뒤에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전혀 다른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당시의 추억만으로 공유하게 되는 (그러니까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그 외적인 내용으로 간직하게 되는) 작품도 생겨나게 되며, 인생의 어떤 일들을 겪고 겪지 않음에 따라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공감하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영화들을 여럿 겪었었다. 어떤 사건을 겪기 전에는 그냥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일 뿐이던 어떤 영화는, 비슷한 일을 겪게 된 뒤엔 더이상 주인공이 주인공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영화가 되었으며, 쓰기 위해 봐야만 했던 어떤 영화를 아무런 부담없이 그냥 보게 되었을 땐 또 다른 영화가 된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별점이란 그 순간의 기록일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 기억은 당시의 내 심정을 반영하는 '기억'으로 존재하기보단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또 다른 '선입견'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즉, 예전에 만점을 주었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무의식적으로 '이건 만점짜리 영화야'가 인셉션 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운 백지 상태는 아니더라도 이미 어떤 확실한 평가 기준으로 가지고 보기 때문에, 당시의 선택이 맞았나, 틀렸나에 오히려 집중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별점을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선입견이 전혀 없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 별점은 이런 것에 있어 확실한 잣대로 남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전에도 한 번 별점주기를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말을 매번 그렇게 했으면서 리뷰 말미에는 계속 점수를 표기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던 차에 주저없이 포기했었다. 하지만 그리고나서 내 글을 자주 읽어주시던 분들이 '글도 좋지만 별점이 어떤 기준점이 되었었는데 아쉽다'라는 의견이 제법 있었던 터라, 당시에는 독자를 위해 다시금 별점주기를 곧 부활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독자에 대한 무시는 절대 아니다) 결국 글은 개인적인 것이고, 영화 역시 개인적인 것이며, 내가 내키는 글을 그나마 써내려가야 오히려 읽게 될 누군가에게 더욱 떳떳한 글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정성일 평론가처럼 '점수주기는 전혀 의미없다'라고 확언할 만큼의 절대적 기준은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기준점이 될 것이며, 자신의 글을 마무리 하는 좋은 재료임은 물론, 오히려 긴 글보다 더 확실한 표현방법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금 이 영화나 음악에 대한 별점 주기를 그만 두기로 했다 (글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음악 역시 영화와 다를 바 없이 같은 이유다). 예전에 작성한 글들의 별점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부터 새롭게 쓰게 되는 글들에 대해서는 점수 주기의 평가는 하지 않으려 한다. 또 한 번의 번복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써본 글.



2010.08.19. pm. 01:07
글 / 아쉬타카 





액션 블록버스터 그리스 신화

1981년작 ‘타이탄 족의 멸망 (Clash of the Titans)’를 원작으로 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동명 신작 ‘타이탄’은 제목과 원작에서 알 수 있듯 대중들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허나 개봉은 물론 블루레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의 경우처럼, 그리스 신화의 기본 설정과 줄거리를 갖고 있긴 하지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혹은 기본 설정에만 충실한 채 이야기는 거의 새롭게 써 내려간 방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퍼시잭슨…’의 경우나 이 작품에게서 그리스 신화의 진수를 얻어내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즉, 에픽(Epic)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루이스 리터리어의 ‘타이탄’은 무척 재미있는 액션 블록버스터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타이탄’에는 그리스 신화의 익숙한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가득 등장한다.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등 신들의 이야기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페르세우스의 이야기까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고 빠른 전개로 진행되는 방식이지만 이런 방식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신화를 넓은 의미에서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감독인 루이스 리터리어와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가 - 스튜디오를 특별히 따로 언급한 이유는 이후 서플먼트를 리뷰할 때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 원한 방향은 거대한 의도를 가지고 신화를 재해석한다거나 혹은 원작을 단순히 블록버스터로 리메이크하는 것보다는, 익숙한 재료들을 가지고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흥미롭게 만들 대중적 입맛의 요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타이탄’은 주인공 페르세우스를 중심으로 한 데미갓이자 인간으로서의 이야기와 제우스와 하데스 간에 벌이는 올림푸스의 권력 다툼의 이야기, 이렇게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볼거리와 액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작품에서 조금은 부족한 캐릭터 간의 갈등 관계를 보완해주는 것은 이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제우스 역의 리암 니슨과 하데스 역을 맡은 랄프 파인즈 같은 경우는, 둘 모두 비슷한 캐릭터를 한 번쯤 맡았던 터라 - 리암 니슨은 넓게 보면 ‘스타워즈’ 시리즈의 콰이곤 진 같은 마스터 역할들의 인상과 가깝게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아슬란’의 목소리 연기가, 랄프 파인즈의 경우는 역시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 모트를 들 수 있겠다 - 익숙함 마저 드는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이 둘의 그럴싸한(?) 연기는 확실히 ‘타이탄’이라는 제목과 신화라는 설정에 걸 맞는 무게 감을 제공하고 있다.





원작과는 다른 각색과 블록버스터 다운 볼거리에 초점을 맞춘 ‘타이탄’은 전 세계 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흥행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흥행 성적은 곧바로 속편의 제작 소식으로 빠르게 전달되었는데, 참고로 2012년 봄에 선보일 예정인 속편은 주인공을 연기했던 셈 워딩턴이 그대로 출연할 예정이며, 감독은 아직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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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은 극장에서 디지털 상영으로 감상했을 때부터 블루레일의 화질이 기대되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는 부분이라면, 작품의 특성상 많은 컴퓨터 그래픽과 그린 스크린이 동원된 세트 촬영분과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부분과의 화질 차이, 그리고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장면이라 할지라도 CG가 많이 사용된 장면일 경우, 좀 더 확연한 차이를 발견하기 쉬운 차세대 화질의 블루레이로 감상했을 때 그 결과물이 어떨 것인가가 관건이었는데,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극장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조화와 날카로운 선예도가 공존하는 우수한 화질이었다.

▼ 이하 4장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CG로 이루어져 있는 장면들의 표현이야 말할 것도 없고 - 첫 번째 스크린 샷 - 세 번째와 네 번째 스크린 샷 처럼 배경과 인물의 표현이 모두 우수한 가운데, 사물의 선예도가 높은 편이라 좀 더 우수한 화질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은 역시 따듯한 색 온도를 배경으로 한 장면보다는 차가운 색 온도의 장면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극장에서 디지털 상영으로 관람 시 가장 큰 이질감이 느껴진 장면이 바로 두 번째 스크린 샷의 장면이었는데, 배 위의 인물과 마른 번개가 치는 바다 배경의 이질감이 너무 커 마치 그림을 두고 촬영한 듯했던 이 장면의 느낌은 오히려 블루레이 쪽이 나은 편이다.





‘타이탄’은 몇 가지 다른 환경(색감과 색 온도)에서 각각 화질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올림포스 신전의 경우처럼 아주 밝은 조명과 거대한 구조물들 사이에 빛나는 갑옷을 입은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아르고스나 메두사의 소굴처럼 전체적으로 브라운 톤의 색감과 더불어 어두운 조명으로 이뤄진 장면도 있고, 메두사의 굴 앞의 풍경처럼 그레이 톤으로 이뤄진 장면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각각의 장면에서 화질의 우수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각각의 환경에서 화질의 어떤 점들이 부각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블루레이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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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라 부를 만한 만족스런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두말 하면 잔소리. ‘타이탄’의 사운드가 만족스러운 것은 역시 이를 제대로 활용할 만한 장면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액션 시퀀스마다 특성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덕에 각각 다른 종류의 사운드를 체크해볼 수 있는 것 또한 ‘타이탄’ 블루레이 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 전갈들과 사막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첫 번째 체크 포인트라고 볼 수 있을 텐데 ? 물론 그 이전에 거대 제우스 동상이 무너지는 장면을 비롯해, 사운드를 체크해볼 만한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이리저리 캐릭터들을 휘감아 오는 전갈의 움직임은 멀티 채널을 통해 공간감 있게 전달되며, 각종 타격 음과 부서질 때 생기는 파열음, 찌르고 터져 나오는 효과음들 역시 실감나게 전달된다. 메두사가 등장하는 시퀀스의 경우 특히 사운드의 공간감이 중요한 시퀀스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멀지 않은 곳에서 허공으로 터져 나오는 메두사의 웃음 소리나 기둥들을 휘감는 거대한 꼬리 같은 몸의 움직임이 발생시키는 사운드 역시, 그 미끄러짐의 효과음마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애초부터 사운드 측면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장면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크라켄의 등장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잔뜩 기대했음에도 크라켄이 맘껏 괴성을 질러버릴(?) 때는 나도 모르게 우퍼 스피커의 울림에 못 이겨 스피커의 볼륨을 줄이게 될 정도였다. 확실히 영상 측면 만큼이나 장면의 거대함, 등장하는 캐릭터의 거대함이 사운드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묻어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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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타이탄’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으로는 PIP 기능을 통해 ‘
WB Maximum Movie Mode’가 제공된다. 다양한 내용들이 담겼지만 많은 PIP 수록 부가영상 들이 그러하듯이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PIP로 제공되는 부가영상 외에 ‘Focus Points’라는 제목의 촬영장의 뒤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는데, 많은 배우들의 촬영장 모습은 물론 크라켄의 탄생 과정, 특수 분장, 시각 효과에 대한 스텝들과 배우들의 인터뷰, 관련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WB Maximum Movie Mode’과´마찬가지로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그 다음 만나보게 되는 부가영상은 ‘Sam Worthington: An Action Hero for the Ages’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연을 맡은 샘 워딩턴의 이른바 ‘고생기’ 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을 거의 대역 없이 다 연기했잖아요’라는 말과 함께 거의 모든 장면을 대역 없이 고난도의 스턴트 장면 역시 소화했던 장면들과 소감을 들려준다.





배우들이 가장 힘겨워 하는 촬영이라 할 수 있는 와이어 촬영을 천정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거의 하루 종일 촬영에 직접 임하는 등, 스턴트 스텝들이 모두 칭찬하는 것처럼 타고난 액션 배우임을 ? 하지만 본인은 가장 힘든 영화였다고 고백하기도 ? 보여주는 부가영상이 아닐까 싶다. ‘아바타’와 ‘터미네이터 4’에 잇달아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며 단숨에 주목 받는 배우로 떠오른 그지만, 부가영상으로 슬쩍 확인해본 것 만으로도 그가 작품에 임하는 성실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극장 판의 엔딩 과는 다른 ‘
Alternate Ending'이야말로 DVD나 블루레이 만의 재미라고 볼 수 있을 텐데, ‘타이탄’ 블루레이 역시 본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엔딩’을 수록하고 있다. 개인에 따라 극장 판의 엔딩이 더 마음에 들 수도, 블루레이에 수록된 또 다른 엔딩이 마음에 들 수도 있겠으나, 따지고 보면 감독의 본래 의도는 또 다른 엔딩 쪽이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스튜디오가 아마도 이런 방향성을 가졌던 듯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영화가 개봉한 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본래 감독인 루이스 리터리어가 연출하려던 ‘타이탄’은 우리가 극장에서 본 버전과는 조금 방향이 틀린 버전이었다. 특히 극장 판을 보면 약간 의아할 정도로 올림푸스의 제우스와 하데스를 제외한 다른 신들의 비중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실 감독의 애초부터 만들려던 작품에는 이 신들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실릴 예정이었다. 또한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해야만 하는 이유 역시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이고, 제우스와의 관계와 마무리도 조금 어색한 감이 있는데, 이는 본래 감독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스튜디오의 방향성이 담긴 결과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손해를 본 캐릭터는 다름 아닌 아폴로 였다. 극장 판에서 아폴로는 그저 멀뚱하게 서 있는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활약상이 없는데, 블루레이의
삭제 장면에 수록된 내용들을 보면 유독 아폴로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삭제 장면에 등장하는 아폴로는 제우스와의 관계는 물론 하데스와 다른 신들을 배반하고 결국에는 이복 형제인 페르세우스를 돕게 되는 것의 단초가 되는 장면들도 확인할 수 있다. 극장 판에서는 제우스가 페르세우스 앞에 나타나 죽음의 강을 건널 금화를 전달해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와있지만, 감독이 본래 의도가 담긴 삭제 장면에서는 제우스가 아닌 아폴로가 페르세우스에게 금화를 전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만약 감독의 의도대로 그려졌다면 훨씬 더 중요한 캐릭터가 되었을 아폴로에 관한 이야기는, 삭제 장면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총평] 루이스 리터리어의 ‘타이탄’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흥미로운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이야기와 스케일 있는 액션을 풀어낸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겠다. 블루레이 타이틀의 경우 레퍼런스에 가까운 화질과 음질은 물론이요,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엔딩’은 물론, 감독이 본래 의도했었던 영화의 내용이 가득 담겨있는, 어쩌면 ‘진짜’ 타이탄 일지 모를 삭제 장면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소장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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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악마를 본 자의 대답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 오락가락하던 지난 13일의 금요일. 우연치 않게 이 날에 딱 들어맞는 영화 한 편을 보았으니 바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였다. 박찬욱, 봉준호 등과 함께 국내 감독 중 신작을 낼 때마다 기대를 갖게 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널 뛰듯 만족스러움의 정도가 각각 달랐고 느끼는 완성도의 차이도 그러했다. 그의 전작들에게서 느껴지는 첫 번째 감정이라면 무언가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항상 기대는 갖게 하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고나면 또 허전함을 느끼게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제한 상영판정과 삭제 뒤 개봉 등으로 화제가 된 그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 느껴지던 그 부족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과잉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의미없지 않은' 이야기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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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과 이병헌, 최민식이라는 두배우 그리고 분위기를 암시하는 포스터의 문구와 배치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이 영화가 단순히 악마같은 상대와 주인공의 대결 구도가 아닌, 관객에게 누가 악마인지를 묻는 다던가, 혹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일반적인 구조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보면 이 영화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처럼 분명 '광기의 대결'이자 '복수의 두 얼굴'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가 본 시점은 오히려 악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방적인 구조로 받아들여졌다. 즉, 악마는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이고 그를 본 사람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인 것이다. 영화는 일단 '악마'로 불리는 장경철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한다. 대부분 이런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처럼, 장경철 역시 악마적인 행동들을 먼저 보여준 뒤 그가 어떤 개인적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알려준다 (물론 이 영화는 장경철의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개인사를 묘사함에 있어 이런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그와 반대로 김수현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가 국정원의 요원임에도 이 특수한 사실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한 여인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그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배경 설정은 있으면 이야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캡슐로된 GPS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나 강력계 형사 여럿을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의 격투실력) 반대로 말하면 요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예로 들자면 캡슐 GPS는 암시장을 통해 구하고, 본래 격투에 능하다고 설정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장경철을 압도하는 것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영화는 애초부터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상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악마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에 집중하지만,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는 그 제목처럼 '보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악마가 되어가는 듯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은 항상 미장센은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굴곡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악마를 보았다'에 와서야 미장센이 그저 보기 좋은 그림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간에 미적인 매력만이 아니라 영화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낸 좋은 결과물로 느껴졌으며, 장면을 그리는 방법 역시 작정하고 만든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수현의 '이제 시작인데' 라는 대사처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존의 느껴졌던 아쉬움이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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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처음부터 지독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냥 총을 구해 한 방에 죽음으로 이끄는 방식이 아닌, 그리고 무엇보다 단 한번의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상대가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 복수를 구상한다. 그래서 장경철을 흠씬 두들겨 패고 난 뒤 풀어주고, 또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 나타나 몸을 부숴트리고 또 놔주기를 반복한다. 장경철의 친구인 태주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김지운 감독이 정말 복수를 위해 사냥을 즐기게 까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설정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간섭으로 일을 그르친다거나 확대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구성이 있었다면, 정말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흐름에 따라가게 되었겠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흐름은 없다. 

수현은 치밀하고 무엇보다 복수의 뜨거움보다는 차가운 머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딱 필요 만큼의 고통만 주고 풀어주는 것에 계속 성공한다. 마지막에 한번 실수 하지만 (사실 이 실수도 그의 부하 요원이 경철이 잠든 줄 알고 했던 말을 경철이 들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다), 그 이후에도 재빨리 상황을 수습한 뒤 '니 말대로 너를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본인이 준비한 복수의 마지막을 치뤄내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악마' 그 자체가 되는 것보다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한 차가운 감정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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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를 성공한 수현의 오열은 이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오열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첫 째로 약혼자를 처참한 죽음으로 잃게 된 슬픔과 자신의 복수 때문에 역시 처첨한 고통을 당한 장인어른과 처제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라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도 악마처럼 변해버린 모습 (장경철에게만 복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전혀 상관없는 가족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과 이제는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린 것에 대한 후회도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이라면 이 '악마'를 잡기 위해 자신이 예상한대로, 원했던 방법으로 모두 복수를 행했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여기서 오는 진정한 공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택한 이 마지막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갖는 마지막에는 몇 가지 선택의 옵션이 있는데, 하나는 대부분의 '착한'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마지막에 악마를 죽음으로 응징하지 않고 법의 잣대로 판결하게 되는 것이고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이 경찰인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마치 '세븐'의 경우처럼 법이 아닌 죽음으로 응징하였으나 이것조차 악마의 의도였다는 것 때문에 더 황량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과 한 편이 되어  '법대로 처리하지 말고 저 악마를 그냥 죽여버려'라는 내 안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악마성의 결과물로서 황폐함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는 후자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언급한 '세븐'과는 다르게 영화 속 장경철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수현이 계획한 것 그대로였다. 즉, '세븐'의 브래드 피트는 제 손으로 악마를 제거하고서도 결국 악마의 손에 놀아난 것에 대한 후회와 이겨내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행했음에도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이룬다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자신과 이 상황에 대한 공포가 서린 오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끝을 알면서도 갈 수 밖에는 없었던 주인공이 그 끝을 만났을 때 예상했음에도 겪게 되는 공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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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상영판정 논란과 더불어 고어한 표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일단 극장에서 본 '악마를 보았다'의 고어 수준은 분명 일반 관객에게 있어 (고어 영화를 즐기는 팬들이 아닌)서는 '고어'라 부를 만한 수위의 것이었다. 매번 변하는 등급위원회의 평가 잣대 때문에 이번 제한 상영판정 논란은 '도대체 얼마나 고어하길래?'하는 다른 감상 포인트를 일부에게 제공하고야 말았는데, 물론 '호스텔' 등을 비롯한 고어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심심한 것도 사실이나,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내 영화에서 표현된 수준으로는 분명 고어한 수준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 정도가 뭐가 고어냐?'라는 논란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고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에 담긴 고어한 장면들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영화에서는 굳이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을 굳이 보여주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냥 안보이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소리나 효과로만 처리할 수도 있고, 컷 전환을 통해 결과만 알려주어도 될 것을, 이 영화는 굳이 여러 차례 내리치는 장면이라던가 찢어지는 입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터져나오고 뭉게지는 신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가학적이고 공포스러운 표현과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과연 이 복수가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대신에 마지막의 오열과 더불어, '이 복수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복수를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은 뉴스에서 이 보다도 더한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뉴스들을 접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내 가족, 내 약혼자의 이야기였다면 누구든지 마음만은 영화 속 수현과 같았을 것이고, 그 중 몇은 수현처럼 복수를 결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그런 일을 겪은 한 남자, 즉 악마를 본 남자의 대답을 들려준다. 여기서 아이러니하면서 공포스러운 점은, 영화 속 수현처럼 이 대답을 충실히 들은 관객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수현처럼 끝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할 수 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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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장에 관객들이 정말 견디기 어려워하더군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극중 수현에게 '그냥 차라리 빨리 끝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구요. 이런 몰입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2. 장경철의 학원버스 안 그 천사날개 조명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조명이 처음에는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는게 흥미로웠죠.

3. 가제였던 '아열대의 밤'이나 '사냥꾼의 밤'보다 '악마를 보았다'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이 제목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글의 부제목으로라도 이 제목을 자연스레 썼었을 것 같아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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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3 _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눈물나는 그 장면' 그 세 번째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 '그랜 토리노' 입니다. 대부분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오면 그 날이나 며칠 안에 리뷰를 쓰게 마련인데, 몇몇 작품은 워낙에 작품에 압도되고 도저히 부족한 글로서 표현하기 부담스러워 끝내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저에게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이 그랬고, 바로 이 작품 '그랜 토리노'가 그랬죠. 너무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뭐라고 글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부담스럽고, 힘들고 그러더군요. '그랜 토리노'는 중간 중간 슬프고 눈물 나기 보다는 단 한 번에 몰아서 눈물이 터져나오는 영화였죠. 그래서 가장 눈물나는 그 장면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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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엔딩 크래딧이 나오던 순간이었어요. 진짜 이 마지막 장면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부른 노래 '그랜 토리노'가 흐르던 순간, 얼마나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는지 모를 정도로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의 눈물을 계속 흘렸었죠 ㅠㅠ 이 작품은 단순히 '그랜 토리노'만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감독이자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커리어가 모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더욱 슬펐던 작품이었는데, 별다른 감정적 자극없이 이렇게 풍경을 비추는 엔딩 만으로도 이렇게 눈물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더랬죠. 지금도 이 장면만 보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에요 ㅠ 한 명의 배우가 자신의 커리어를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눈물 나게 멋진 일인지가 영화의 이야기가 겹쳐져 더욱 눈물이 났던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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