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스토커 (Stoker)
거역할 수 없는 악마의 탄생


곧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와 함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Stoker, 2012)'는 우리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 더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 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스토커'는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분위기는 누가 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이미지와 정서가 극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미아 바시코브스카 연기한 '인디아' 스토커의 성장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이 소녀의 성장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보다는 소녀가 악마로서 탄생하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을 선택한 이유로 구체적이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 여지가 많아서였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공간에서 인물들의 악마 성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다른 모든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오히려 소녀의 성장 드라마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스토커'는 확실히 한 소녀가 악마로 태어나게 되는 아프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인디아가 아니라 어쩌면 그 주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와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스토커'의 백미이자,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디아와 찰리는 경쟁 관계인 동시에 스승과 제자이며,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마치 그의 전작 '박쥐'에서의 상현과 태주의 관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미묘한 관계를 그리는 데에 있어서 동떨어진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따듯함과 차가움이 계산되듯 매치되어 있는 집 안의 이미지 그리고 내러티브 상의 반전 포인트는(반전이라는 말은 빼도 무방하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불안함과 우아함의 원인이자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 한다.






이렇듯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할 때가 더 매력적이고 집중도가 높았던 것 같다.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영화적 구도,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었던 작품이지만, 작품만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지 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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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극장에서 '스토커'를 보았을 땐 화질이 특별히 좋다는 느낌까지 받지는 못했었는데, 블루레이로 보니 확실히 더 특유의 색이 잘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스토커'의 색은 원색적으로 강렬하기 보다는 조금씩 톤이 다운 된 컬러가 주가 되는 편이라 오히려 더 화질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인데,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색감임에도 흐릿하거나 불분명함 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만족스러운 화질이었다.







대부분 실내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실내 장면에서는 각 캐릭터의 방과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컬러가 잘 살아나고 있으며, 적지만 집 외부의 장면에서는 블루레이 만의 디테일한 화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피부는 물론 파란 빛을 띄는 눈동자까지 아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장면들도 많은데 특별히 암부의 표현이 탁월하게 뛰어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음영에 있어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보여준다.


Blu-ray : Sound Quality


'스토커'에 대한 첫 인상은 비주얼 적인 것만 남았었는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한 작품이었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효과와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극장에서 보다 작은 공간인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통해 이 점을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눌 때도 어느 위치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울림이나 사운드의 공간감을 다르게 가져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공간감을 블루레이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일부러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삽입한 소리들은 더 날카롭게 들려주고 있으며, 대사들은 작은 소리들을 캐치해 내는 인디아의 능력에 맞춰, 지나칠 만한 작은 볼륨으로 섬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만약 '스토커'를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고 싶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사운드 적인 측면 때문일 것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의 첫 번째로는 '삭제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데, 총 3개의 삭제 혹은 확장 장면이 수록되었다. 찰리와 인디아가 처음 만나 계단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는 확장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으며, 진 고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본편에는 없던 추가 대화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다음은 부가영상의 메인 피쳐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 : 감독의 여정'인데, 일반적인 제작과정 영상이라기 보다는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담긴 부가영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약 28분여의 영상을 통해 이 작품으로 처음 헐리웃 데뷔를 치른 박찬욱 감독에 대한 배우, 스텝들의 찬사와 존경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는데, 여부를 떠나서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뿌듯한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가 '스토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여러 인터뷰가 등장하는 한 편, 영어를 못하는 외국 감독과의 작업을 두려워했던 스텝들이 그와의 작업을 통해 결론적으로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했는지도 전해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현지 스텝들과의 첫 작업이었음에도 평소 본인 작품의 성격과 색깔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던 현장의 분위기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자 역시 정정훈 촬영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 부가영상에서도 정정훈 촬영 감독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은 국내 버전에 맞춰 수록된 것이 아니라, 북미 버전에도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부가영상으로서, 이 타이틀을 구매하는 전 세계의 팬들에게도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뿌듯한 부가영상이기도 했다.






'매리 앨런 마크의 사진 갤러리'와 '런던 극장 디자인'이 갤러리 형식으로 수록되었으며,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총 다섯 가지 주제로 짧은 영상 들이 수록되었다. 프로모션 영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네셔널 – 한정판 포스터 제작과정'이었는데, 일부는 사진 이미지를 가져다가 쓴 것으로만 생각했던 포스터 속 배우들의 이미지들이 모두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로 그 제작 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 밖에 '비밀스러운 캐릭터' '감독의 비전' '스타일 디자인' '음악 창작'이라는 주제로 각각 짧은 영상이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레드카펫 프리미어'와 '영화 예고편 & TV광고'가 수록되었는데, '레드카펫 프리미어'는 생각보다는 상당히 긴 분량 (15분)이 수록되어 여의도 CGV에서 가졌던 레드카펫 행사의 요모조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 해주는 박찬욱 감독과 미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총평]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평소 볼 수 있었던 그 만의 매력이 헐리웃 데뷔작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의 말대로 대사로 전달되는 내러티브 보다는 이미지로 전달하는 그의 작법이라면 헐리웃에서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깔끔하게 잘 나온 '박찬욱'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블루레이 속지에 수록된 감독의 말로 대신하려 한다.




'여럿이 함께 보아야 하는 영화관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한 가정에서의 관람이 더욱 개인적인 꿈체험과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악몽' 꾸시길 빕니다. – 박찬욱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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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Stoker, 2012)

불안함으로 가득 찬 공간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 '스토커 (Stoker, 2012)'를 보았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이미지, 분위기는 누가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밖에 없게끔 하고 있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 변화나 갈등을 많은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에 대해 이런 반응과 갈등을 겪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볼 수 있을 텐데, 이 심리를 박찬욱은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인디아의 입장에 조금 만 더 빠져들고자 하면 더 복잡하고 슬픈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하는 것들이 더 매력적이고 집중되었던 것 같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동시에 영화적인 구도와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강렬함까지 더해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거침 없이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 지 기대된다.
아마도 많은 헐리웃 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1. 각본가가 배우로 너무 알려져 있다보니 각본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화제가 논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전 이에 대해 특별한 의견은 없어요. 박찬욱 감독이 선택했고, 표현했고, 그 결과물을 본 거니까요.


2.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를 보았을 때도 그랬는데, '스토커' 역시 보는 순간 박찬욱 영화라는게 너무 확실해서 반갑더라구요. 과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역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3. 아, 미처 정정훈 촬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박찬욱의 헐리웃 데뷔인 동시에 정정훈의 데뷔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Fox Searchlight Pictures 있습니다.


 




래빗 홀 (Rabbit Hole, 2010)

주체할 수 없는 상처를 절제로 담아낸 영화



'헤드윅'과 '숏버스'를 연출한 존 카메론 미첼이 니콜 키드먼과 아론 애크하트와 함께 공연한다고 했을 때 과연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막상 작품을 보고나니 이 작품 '래빗 홀'은 '와! 존 카메론 미첼이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의 작품들과는 사뭇 공기의 다른 작품이었다. 결국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앞선 전작들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지만, 굉장히 적극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래빗 홀'에서 존 카메론 미첼이 선택한 방식은 매우 관조적이고 제3자적인 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 상실의 슬픔을 온몸으로 겪는 듯 했지만, 이를 담는 그릇인 영화는 상당히 절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아픔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주인공들,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절제로 담아낸 영화. '래빗 홀'은 이 상반된 이미지가 주는 조화가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Olympu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어린 아들을 잃은 베카(니콜 키드먼)와 하위(아론 애크하트)가 이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의 상처를 겪고, 또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베카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아들의 부제를 지우기 위해, 아들의 흔적이 하루 빨리 지워내고 잊어가는 것으로 극복하려 하고, 반대로 하위는 아들의 존재로 매일매일 되내이며 항상 곁에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극복하려 한다. 앞서 영화가 취한 방식이 관조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베카와 하위의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른다는 평가를 전혀 내리지 않는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베카의 행동을 보고 매몰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거나 또 하위의 행동을 보고 집착한다고 느껴지도록 만들지 않는다. 영화는 그냥 부부가 각자 아들을 잃은 상처를 견뎌내는 과정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말없이 응시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더 이 슬픔의 깊이를 실감하게 만들어 이들의 행동과 감정 하나하나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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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땐 무언가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먹먹함 만이 남는 작품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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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Olympus Pictures 에 있습니다.




나인 (Nine, 2009)
뮤지컬은 결국 판타지와 챕터의 예술


<시카고>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하고,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벅찬 캐스팅으로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영화 <나인 (Nine)>은, 앞선 이유만으로도 뮤지컬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호불호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대부분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혹평을 등에 업고 관람을 하게 된 <나인>은 그래서인지, 아니면 뮤지컬 세계에 유난히도 동화가 잘 되는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 크게 아쉬울 것 없는 멋진 뮤지컬 영화로 기억될 작품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와 롭 마샬 감독(혹은 롭 마샬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과 나의 시선은)은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긴 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큰 인기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카고 (Chicago, 2002)>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인>의 리뷰를 쓰기 전에는 적잖은 고민도 되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영화가 좋았다는 평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최근 본 <파르나서스....>의 경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인상 깊게 보았다는 글을 쓰기가 잠시나마 머뭇거려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뭐 어차피 개인적인 차이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ㅎ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 All rights reserved

(한 때 합성논란까지 있었을 정도로 말이 안되는 이 화려한 캐스팅을 보라!)

<나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에 영감을 받아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그러니까 정확히 얘기하자면 <8과 1/2>의 리메이크라기 보단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천재 영화 감독이자 카사노바인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작품(이탈리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보여지는 것에서만 벗어나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뇌를 고백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과정 속에 그의 인생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으로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어떤 특별한 감동이 요소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분명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일 것이다.

또한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공감대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귀도가 영화 감독으로서 창조의 고통을 겪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보다는, 그의 여성편력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는 편이라 귀도의 고뇌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 All rights reserved

뮤지컬 영화들이 내러티브나 공감대(특히 공감대)면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무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경우일 때 더 자주 나타나는데,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타 장르의 영화들보다 챕터의 성격이 짙으며, 그 챕터들이 노래라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캐릭터나 에피소드에 관한 설명을 대사나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 대신 노래를 통한 시퀀스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화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 한 곡은 정확히 챕터와 성격을 같이 하기 때문에,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비교적 다음 에피소드로 빨리 이야기가 전환되곤 한다. 쉽게 얘기해서 노래가 삽입된 장면에서 인물들의 가사가 관객에게 좀 더 공감대를 얻어야만 챕터 방식이라도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텐데, 대부분이 이 장면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에 몰입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뮤지컬을 제외하고 최근 그나마 좋은 반응을 끌었던 뮤지컬 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뮤지컬은 뮤지컬이되 주인공이 가수이거나 쇼비지니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경우가 많다. 이런 종류의 뮤지컬은 음악영화와 뮤지컬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작품들인데 (가까운 예로는 <드림걸즈>를 들 수 있겠다), 이런 작품들은 일반적인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전통적인 구성도 있으면서 또한 가수로서 노래하는 구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적은 부담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되곤 한다. <나인>의 경우는 또 조금 다른 경운데, 그래도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는 상당수가 그렇지만 '노래하는 것 =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이런 공식에 가까운 작품이다. 애초부터 귀도가 상상하는 영화의 장면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나인> 속 노래하는 장면들은 귀도의 판타지이자 뮤지컬의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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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리도 화려한 여배우들이 캐스팅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판타지적인 특성과 강조된 챕터 형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작품은 확실히 무대 뮤지컬의 성격을 깊게 띄고 있는데, 사실 그러기엔 좀 캐릭터가 많았다는 생각도 든다. 워낙에 캐릭터가 많은 탓에 거의 소개와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곡에서 모두 소화해야 했던 탓에, 이야기보다는 '소개'의 인상을 더 깊게 남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저 '니콜 키드먼 나왔다!', '아니, 소피아 로렌이잖아!', '퍼기는 역시 가수출신이라 무대가 강렬한데', '페넬로페 크루즈는 늙지도 안나봐' 등 배우마다 간단한 소감을 풀어내기가 일쑤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무대화되고 영화화 되면서 영화라는 것과 감독,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사그라든 것이 사실이다. 맨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 <나인>은 펠리니의 작품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로 인한 혹평들은 어쩌면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뮤지컬 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나인>이 좋았던 것은 클래식 뮤지컬 영화스러운 분명한 챕터별 구성과 환상적인 노래와 춤 때문이었다(확실히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챕터를 감싸는 기본 이야기의 전개가 아쉬웠던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화려한 캐스팅의 배우들은 각자의 챕터에서 짧지만 강렬한 등퇴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니콜 키드먼 같은 경우는 확실히 그 금발과 아름다움 외에는 이렇다할 분량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내가 감독이라도 누가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여배우다운 한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 캐릭터에는 주저없이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했을 듯 하다(그녀 외엔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릴 수 있겠다). 블랙 아이드 피스 출신의 퍼기의 경우는 사실 드라마타이즈의 연기는 하나도 없이 노래와 춤에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욱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사실 이런 여배우들 사이에서 어설프게 연기하느니 안하는게 나을듯 하다). 많은 이들이 페넬로페의 시퀀스와 더불어 최고의 장면으로 그녀의 시퀀스를 꼽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무대 뮤지컬의 한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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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여배우와 챕터는 바로 케이트 허드슨의 시퀀스였다. 'Cinema Italiano'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기도 했는데, 무리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주디 덴치의 캐릭터는 조금 어정쩡한 감이 없지 않았고, 소피아 로렌 역시 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출연 소식 만큼의 인상은 주지 못한 듯 하다. 마리온 꼬띨라르의 경우 드라마 타이즈에 있어서는 페넬로페와 함께 가장 분량이 많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아카데미 수상자 답게 화려함이 없는 가운데서도 빛이 나고 있다(이 영화에선 숨막힐듯한 그녀의 클로즈업이 나온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섹시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선사하며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처럼 보라색으로 표현하면 좋을 매력을 선사하는데, 확실히 그녀의 출연분이 다른 챕터에 비해 튀는 편이긴 하다. 오히려 주연을 맡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경우 그의 출연작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편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관객을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그가 어느 정도 힘을 빼고 펼치는 이번 연기도 색다르게 볼 만하다(첨에 그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또 하이라이트에서 목에 핏줄 세우며 열창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말이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황홀함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던 영화로서, <나인>은 뮤지컬 영화팬인 내게 가슴 뛰는 영화였다.


1. 음악이 오히려 고전적이라 참 좋더군요. 사운드트랙은 이미 질러져있다.
2. 배우들의 연습장면이 짧게 나오는 엔딩 크래딧도 좋았어요.
3. 이 작품의 각본은 안소니 밍겔라가 마이클 톨킨과 함께 작업했었는데, 아시다시피 2008년 세상을 떠났죠. 영화는 그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4. <시카고>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카고>를 재미있게 본 관객을 홍보타켓으로 삼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5. 어쩌다보니 최근 본 두 작품(파르나서스...)이 전부 저만 좋아하는(혹은 응원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에 있습니다.





 











물랑 루즈 (Moulin Rouge) O.S.T

1. Nature Boy (David Bowie)    
2. Lady Marmalade (Christina Aguilera, Lil` Kim, Pink, Mya)    
3. Because We Can (Fatboy Slim)    
4. Sparkling Diamonds (Nicole Kidman)    
5. Rhythm Of The Night (Valeria)    
6. Your Song (Ewan Mcgregor, Alessandro Safina)  
7. Children Of The Revolution (Bono, Gavin Frday, Maurice Seezer)  
8. One Day I`Ll Fly Away (Nicole Kidman)    
9. Diamond Dogs (Beck)    
10. Elephant Love Medley (Nicole Kidman, Ewan Mcgregor)    
11. Come What May (Nicole Kidman, Ewan Mcgregor)    
12. El Tango De Roxanne (Ewan Mcgregor, Jose Feliciano)  
13. Complainte De La Butte (Rufus Wainwright)    
14. Hindi Sad Diamonds (Nicole Kidman)    
15. Nature Boy (David Bowie, Massive Attack)
 

흥행한 사운드트랙은 대부분 2가지로 나뉜다.
첫 째는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만을 위해 만들어진 곡, 즉 신곡으로 채워져 히트하는 경우가 있고,
둘 째는 기존의 곡들을 수록하여, 그 곡으로 하여금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큰 사랑을 받게되는
경우가 있다. 얼핏 생각해서는 아무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첫 번째 경우가 훨씬 고된 작업이며,
더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해야할 것이,
기존에 아무리 좋았던 곡도 무턱대고 영화에 삽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이미 발표되었으나 당시에는 크게 히트치지 못했던 곡들도 사운드트랙으로서의 삽입으로 새롭게 조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 곡들을 사용하는 방법이 결코 쉬운 작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물랑 루즈 사운드트랙은 이런 점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두 번째 방법의 경우라 하겠다.
일단 수록된 곡들을 슬쩍 살펴만 보아도, 팝, 록의 팬들이라면 제목 만으로도 익숙한 곡들이 즐비하다.
냇 킹 콜의 보컬로 유명한 'Nature Boy'를 데이빗 보위와 메시브 어택이 각각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연주해낸 것을 비롯하여, T-렉스의 히트곡 'Children Of The Revolution'을 U2의 리더 보노와
개빈 프라이데이, 모리스 시저가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Diamond Dogs'는
벡에 의해 새롭게 불려지고 있으며, 루퍼스 웨인와잇은 'Complainte De La Butte'를 자신만의 나른한 보컬로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물랑 루즈 사운드트랙은 기존의 곡들을 사용하긴 하되, 원곡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뮤지션들이 새롭게 다시 편곡하여 수록함으로서,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전하고 있다.
사운드트랙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Lady Marmalade'역시 고전 디스코 넘버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릴 킴, 마야, 핑크 이렇게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4명의 디바들이 완벽하게 스타일을 바꿔서 노래하였는데,
이 곡은 영화 만큼이나 화려한 뮤직비디오로도 굉장히 큰 사랑을 받았었다.

이렇게 장점들을 늘어놓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사운드트랙의 가장 큰 장점은 주연인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이 직접 부른 곡들에 있다 하겠다. <물랑 루즈>라는 영화가 뮤지컬과 올드팝을 결합한
바즈 루어만의 명작으로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오래된 팝송들의 재해석에 있었다. 엘튼 존의 곡으로 유명한 'Your Song'은 이 원곡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신곡으로 생각될 만큼, 극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이고 있는데,
아마도 이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는 순간은 바로 'Your Song'이 시작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사운드트랙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면 아마도 이 곡 'Elephant Love Medley'를 들 수 있을 텐데,
비틀즈의 'All Yoy Need is Love', 키스의 'I Was Made For Lovin' You', 필 콜린스의 'One More Night',
U2의 'Pride', 데이빗 보위의 'Heres', 그리고 엘튼 존의 'Your Song'과 <보디 가드> 사운트랙으로 유명한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등등 우리 귀에 익숙한 곡들이 마치 원래 한 곡이었던 것처럼
완벽한 메들리로 불려지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이 장면은, 물랑 루즈란 영화를 한 마디로
정의할 때 가장 적합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영화 내내 몽환적인 영상을 선보였던 <물랑 루즈>
그 몽환적인 영상 만큼이나 우리를 꿈꾸게 했던 사운트랙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lephant Love Medley (Nicole Kidman, Ewan Mcgregor)  




* / 얼마전 부터 기획해 오던 건데, 영화 만큼이나 음악을 사랑하는 저로서,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운트랙에 관한 연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는 거창한 제목 아래 앞으로 제가 갖고 있는 음반들을 기반으로
  연재를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순번에 의미는 없습니다 ^^


퍼 (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2006)

그저 니콜 키드먼과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가 출연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정보를 미리 접하지 않고
보게 되었던 영화 <퍼>. 이 영화는 부제인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에서 알 수 있듯이
여류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의 관한 일종의 가상의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존 인물인 디앤 아버스를 실명으로 등장시키고 있지만, 이 이야기에는 허구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큐라기보다는 '이랬지 않았을까'하는 가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즉 정상적인 육체가 아니라 독특하고 특별한 육체의 사진들로 유명한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가
사진 작가가 되기 전에 어떻게 사진작가가 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이랬지 않았을까'하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배우 이름 외에는 별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는데, 디앤 아버스의 사진들은 몇몇 작품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지만, 우습게도 그 작품의 작가인
'디앤 아버스'라는 이름을 잘 모르고 있던 터였다.
이 영화는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약간' 이상한 분위기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별 다른 정보가 없다면
상당히 흔히 말해 '이상한' 영화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독인 스티븐 세인버그가 무엇을 말할려고 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극 중 라이오넬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다모증으로 털 속에 가려져 있는 그처럼, 그리고 디앤 아버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처럼, 다른 겉모습으로 인해 사람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 내면을 봐야한다는 이야기를, 그 내면을 볼 수 있었던 디앤 아버스의 이야기를 통해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영화의 분위기 만큼이나 약간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극중 디앤이 어느 날 이사온 라이오넬에게 끌리게 되는 배경이나, 그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친해지게
되는 전개과정, 그리고 더 나아가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가면서까지 라이오넬과 함께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부족한 편이다. 이해하려고 해보자면 그녀는 정형화되고 권위적인 가족 사이에서
무언가 억눌린 감정이 항상 있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좀 특별한 성향을 갖고 있었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만나게 된 라이오넬 이라는 특별한 존재의 등장으로, 한 순간에 급격히 빠져들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남편은 몰라도 아이들까지 사실상 버려가면서 라이오넬과 함께 하려고 한 동기를 관객에게
설득하는 방식은 효과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평범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렇다치더라도
니콜 키드먼이라는 스타 배우의 캐스팅은 이런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호기심으로 보게 된 관객들을 완전히 만족시켜주기에는
조금 부족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뉴라인 영화사에 있습니다.


인베이젼 (The Invasion, 2007)

(스포일러 있음)
이미 여러번 소개된 것과 같이 2007년작 <인베이젼>은 잭 피니의 고전 소설 <바디 스내처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잭 피니의 이 원작 소설은 이미 이 작품을 포함해 총 4번이나 리메이크가
되었는데, 돈 시겔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 (1956)>, 필립 카우프먼의 <우주의 침입자 (1978)>,
그리고 아벨 페라라의 <바디 에일리언 (1993)>이 그것이다. 잭 피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전의 3작품은
모두 각각 당시 미국의 사회적인 문제와 현상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작품인데, 이 작품 <인베이젼>역시
2007년 현재의 미국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전작들에 비해 깊이나 임팩트가 부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전작들과 비교해본다면 좀 더 깊은 성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좀 더 고어하고 액션을 강조한 작품이었으면 차라리 어땠을까 하는 바램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나쁘지는
않았던 괜찮은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정신과 의사인 캐롤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으로, 외계로 부터
온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감염되어 감정을 잊게 되고 무리를 형성하면서, 그 속에서 바이러스와
감염자들로부터 벗어나 계속적으로 인간이기를 희망하는 캐롤의 고생담을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의 직업인데, 주인공인 캐롤은 정신과 의사이고
남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벤 (다니엘 크레이그)의 직업은 의사(혹은 연구원)이다.
이런 직업적 설정을 가지고 영화는 신체강탈의 소재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세포에 관한 CG장면들이라던가 세포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이것이 어떻게 인간 DNA에 결합하여 반응하고,
면역이 있다는 등의 설정들은, 최근 관객들에 구미에 부합하는 설정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시작부분에서는 상당히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나, 특히 바이러스가 어떻게 퇴치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바이러스가 면역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방어체계가 아예 없는 바이러스다'라는 조금은 황당한 이론으로
단순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바이러스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시작부분에 바이러스 자체에 집중했던 비중을 감안한다면 좀 더 디테일한 설명과 해결이 있었으면 더 완성도가
높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이러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포'의 핵심은 무엇일까.
영화 속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획일화가 되어진다.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 처럼 그들간에는
다툼이나 전쟁등도 없으며 시기나 질투 등 감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좋지 않는 결과들도 전혀 없는 세계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미스트>보다는 덜 하지만, 군중심리 또한 엿볼 수 있는데, 빠른 수로 다수가 되어 버린
감염자 무리들은 점점 소수가 되어 가는 정상적인 인간들에게 함께 하기를 강요 혹은 권유하며, 더 많은 수를
그들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과정속에서 극 중 캐롤의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결국은 가장
믿었던 벤 마저 그들과 한 패가 되버린 후 코너에 몰린 캐롤에게 함께하자고 권유를 하게되자, 캐롤은 그러면
올리버(아들)는 어떻게 하냐며 되 묻는다. 극중에서 그녀의 아들인 올리버는 면역자로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필요가 없는 존재. 즉 캐롤의 저 대사는, 올리버만 함께 할 수 있다면
미친 다수 속에서 멀쩡한 소수로 공포를 느끼며 사느니, 차라리 다같이 함께 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특히나 영화 속 감염자들의 모습은 다른 영화의 좀비들처럼 인간을 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말대로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집단이다. 그래서 캐롤은 아들도 함께 할 수 있거나
아들이 없었다면 이런 공포를 택하느니 차라리 그들 처럼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공포의 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수 속에서 소수로 남는 공포.
부조리 속에서 홀로 정의를 외치느니,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 하나쯤 변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계의 공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덭붙여 9.11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공포 영화는 이를 반영하지 않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9.11이후 미국 사회가 느끼는 공포.
즉 주변 인물들도 믿을 수 없게 되고, 잠들지 말라(Don't Sleep)는 영화 속 문구 처럼 항상 불안해 떨고 있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원작을 소재로한 다른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 영화도 정치적인 느낌을 쉽게 받을 수가 있다.
바이러스의 감염된 자들이 원하는 세상과 가치관은 어찌보면 사회주의와 동일시 할 수 있다.
모두가 다 평등하고 다툼이 없고 '하나'가 되는 세계. 민주주의를 어느 나라들 보다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사회주의의 강요는 공포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캐롤의 대사 외에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사가 또 등장하는데, 마지막에 바이러스가 다 퇴치되었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스티븐(제프리 라이트)은 '좋든 싫든 이제 다시 인간이 되었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이 대사는 매우 중요한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이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되는 가치관으로
보기가 쉽지 않으며,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체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음으로, 스스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미국에게 '과연 미국이 얘기하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그들이 악이라 일컫는 사회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절리 늘어놓았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생각해볼 만한 의문은 아주 살짝 제시했을 뿐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급작스러운 마무리와 더불어 스릴러나 액션면에서도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큼 임팩트를 주고 있지 못하다. 감염자들이 차에 달라 붙어 위협하는 장면은
무섭기는 하지만, 최근 공포 영화들이 주는 공포에 비하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무언가 생각할 만한 거리를 제공하는 면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에서 유난히도 미모가 돋보이는데, 조디 포스터가 최근 영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톱으로 나서서 어려움을 해쳐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극적인 면이 조금 부족한 편이라 오히려 미모가
더욱 빛나지 않았나 싶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확실히 분위기만은 확실히 잡아주고 있지만,
나중엔 그도 변할 것이라는 너무 자명한 스토리 탓에 그가 변했을 때 놀라거나 할 수는 없었으며,
캐릭터 자체가 너무 밋밋한 분위기라 그의 재능을 맘껏 펼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인베이젼>은 태생적으로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실망감을 안긴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자체로서도 조금은 밋밋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며
니콜 키드먼, 다니엘 크레이그의 이름을 기대하고 영화를 관람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둘이 또 한번 주연을 맡은 <황금 나침반>역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황금나침반 (The Golden Compass, 2007)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타지 장르는 판타지를 보는 접근방식으로 봐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름대로 신경쓴 장면들도 그저 코웃음 치고 넘길 정도일 것이며,
그 세계와 인물들을 설명하는 구성은 그저 졸음이 올 뿐 일 것이니 말이다.

이 영화 <황금나침반>은 기존에 우리가 즐겨왔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보다도
더 이런 자세에 입각해서 봐야 즐길 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원작이나 영화 홍보면에서도 앞서 비교했던 두 작품들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
<나니아 연대기>의 경우는 캐스팅 면에서 반지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였기 때문에,
판타지 물의 팬이 아니라면 100% 즐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더군다나 1편으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연작 중 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빨리 결판나고 극적인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원하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 사실.

이런 전례에 비춰본다면 <황금나침반>은 <나니아 연대기>보다도 더 적은 관심속에 묻혀갈지도 모르겠다.
일단 니콜 키드만, 다니엘 크레이그, 에바 그린 등 스타들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긴 하였지만,
특히나 국내에서는 흥행파워 면에 있어서는 특 A라고 보기는 어려운 배우들이라 크게 메리트를 주지
못할 듯 하며,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겪인 이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 더 나은 평을 듣기도
아마도 힘들듯 하다.

이렇게 아쉬운 이야기를 먼저 쭈욱 늘어놓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괜찮게 감상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미 관람한 이들 가운데 꼭 기회가 있다면 원작을 읽고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 있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판타지 장르 답게 이 영화에서도 관객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처음 접한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유추하며
스크린 속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는 전개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야 한다.
영화에 대해 집중력을 가지고(기본적으로 애정을 갖고) 본다면 이처럼 숨을 좀 헐떡이더라도
이해하며 영화를 따라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쉽게 실증을 내고 지루해 질 수도 있을 듯 하다
(참고로 내 옆에서 본 사람들은 보는 내내 하품하거나, 실소를 자주 터트리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는 '데몬'에 관한 설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순 있겠지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언제쯤에 이야기인지, 각각의 세계와 각각의 세력(인종?)의 관한 설명이
역시나 시간적으로는 많이 부족하였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과 특히 <반지 원정대>와 너무도 흡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프로도가 처음 등장하는 파란 풀밭 장면은 여자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대로 복습하고 있으며,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고, 어느 세력, 어느 세력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뒤,
약간의 액션을 마지막에 배치하고, 이들이 모여서 '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라고 말한뒤
끝을 맺게 된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라라 = 프로도, 에스라엘 = 아라곤, 세라피나 = 아르윈,
로저 = 샘, 이오렉 = 간달프(이건 좀 무리가 있을지도 --),, 대충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반지와 닮은 점이 있어 기대를 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점도
분명 들었다.

1편 성격인 이 영화가 사실상 영화 속의 세계와 인물을 설명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라면,
나머지 볼 거리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아머 베어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마도 가장 기대한 장면이었을 텐데, 종종 뭐 음료회사 광고의
모델이 생각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수준 급의 표현력으로
사실상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머 베어간의 결투 장면을 멋지게 이끌어 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종족들이 모여서 전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어두운 배경속에 치뤄진 것이(전체관람가 인것을 감안한다면),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다.
(참고로 나니아 연대기의 경우, 훤한 대낮에 전투를 치르지 않았는가! ㅋ)
그래서 인지 전투 장면에서는 마치 <킹 아더>에서의 전투 느낌이 나기도 하였다.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평을 할 수 없는 건, 그 비중들이 다들 매우 적었기 때문인데,
니콜 키드먼을 제외하고 다니엘 크레이그와 에바 그린은 거의 까메오 수준에 이르는 정도만
등장하기 때문에 이렇다하게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 분위기만은 2편을 기대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는 판타지 전문 배우라 할 수 있을 크리스토퍼 리 옹도 살짝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영화에
목소리로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이었다.
대표적으로 이오렉의 목소리를 맡은 이안 맥켈런을 비롯하여, 케시 베이츠, 그리고 최근 <어거스트 러쉬>로
이름을 더욱 알린 프레디 하이모어가 목소리 연기를 맡아 활약하고 있다.
1편은 모르고 봤지만, 2편부터는 이들의 목소리 연기를 주목하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 일듯.

결과적으로 아쉬운점이 많은 작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후속편이 나온 다음에 총체적으로 평가해야만 진정한 평가가 되는
영화가 아닐 듯 싶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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