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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액션 블럭버스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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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 리로디드](이하 리로디드)를 설명하고 있는 문구 중에 하나이다.
이 같은 형용사를 감히 붙일 수 있는 영화는 아마도 [매트릭스]뿐일 것이다.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던 [매트릭스]가 개봉한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우리는 그 사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2],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해리포터]등
많은 대작들을 겪었지만, 매트릭스의 팬들로서는 그 어느 것도 성에 차지는 않았다.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 [리로디드]에 대해 이미 많은 매체에서 언급되었던 장면들을
위주로 다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새로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스포일러에
위험이 너무도 많았음을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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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믿기 시작한 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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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과 내용적으로 그 시작이 가장 다른 점을 들자면, 바로 네오의 자기 인식이다.
[매트릭스]에서는 그저 현실에 만족 못하고 두 가지 삶을 사는 해커 네오였던 앤더슨은,
 모피어스(Morpheus)에 이야기와 여러 가지 일들, 영화의 마지막 죽음과 부활을 겪으며
그(The One)로서의 자신을 믿기 시작 한다(끈질기게 앤더슨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스미스 요원에게  ‘My Name is Neo'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믿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로서의 네오가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은 영화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일단 1편에서는 처음 요원과 대결할 때, 화려한 총알 피하기 묘기를 선보이기 전
트리니티에게 도움을 청했었지만, [리로디드]에서는 이렇듯 주저하고 자신없어 하는
네오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는 오히려 동료들의 안전을 걱정하여 자신이 처리할 테니 빨리 피하라는 식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또한 1편에서 총알 피하기와 총알 멈추기 등의 능력을 선보였지만,
이는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1편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나왔던 하늘을 나는 모습은, [리로디드]에서는
멋진 준비 포즈와 함께 여러 번 볼 수 있으며, 동료들을 구하고 적을 상대하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되어버렸다. 또한 그저 손동작만으로 총알을 멈추어 버렸던
그로서의 능력 또한 엄청난 업그레이드로, 셋이서 권총으로 공격받는 것이 아닌
여럿이서 기관총으로 공격받는 것에도 개의치 않는 존재가 되었다.
이렇듯 당당해진 네오의 모습은 1편에서는 불가능하던 여러 가지 장면을 가능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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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주목할 만한 액션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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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스미스 요원과 네오와의 전투 장면과 고속도로에서 트리니티와 모피어스가
트윈스와 요원들과 펼치는 추격 장면이 그것이다. 이미 많이 언급이 된 장면으로,
[두개의 탑]의 헬름 협곡의 전투 씬과 같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던 장면이다.
먼저 무려 100명의 스미스 요원과 네오와의 전투 씬은, 그야말로 끔찍할 정도로
계속 튀어나오는 스미스 요원이 압권이다.
그야말로 이연걸이나 보여줄 수 있는 무술 실력을 보여주는 네오는,
CG의 도움을 받으면서 완벽한 액션 씬을 연출하였다. 이 장면에서 네오가 보여주는 봉술(?)은
무술감독 원화평의 손길이 묻어나 마치 황비홍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입을 떡 벌리고 다물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숨 가쁘고 다이나믹하게 전개된다.

다음은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한 추격 장면이다. [리로디드]를 소개한 모 프로에서
2편에서는 액션이 곧 철학이며, 철학이 곧 액션이라고 했다.
그만큼 철학적인 깊이와 더불어 액션에 강도를 극대화 시켰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고속도로 크기에 도로 세트를 만들어 촬영하였다는 이 장면은,
그야말로 추격의 묘미와, 액션의 아름다움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
[리로디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키메이커를 구출하기 위해 벌이는 이 추격적은,
자동차에서 자동차로, 또 오토바이로 그 탈 것을 변화시키면서 속도를 극으로 내몰게 된다.
검으로 차를 베어버리는 모피어스의 모습은, 트윈스와의 대결에서는 대등함을 보이지만,
역시 요원과의 대결구도에서는
부족함을 나타낸다(아시다시피 요원과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은 ‘그’인 네오 뿐 이다).




이 두 장면을 설명하는 것만 해도 더 많은 얘기들을 하고 싶지만, 최대한 아무 얘기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장면들 외에도 예언자 오라클을 지키는 고스트와 네오가 벌이는
결투장면은, 1편의 네오와 모피어스의 결투장면이 그러하였듯,
완벽하게 홍콩 무술영화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이 고스트 역할은 이연걸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이연걸 측의 높은 개런티 요구로
무산되고 말았었다. [리로디드]에서 고스트가 출연하는 씬은 단 한 번 뿐 이지만,
그래도 이연걸이 출연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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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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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편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약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부터,
모든 선택은 결정되어 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편에서 네오는 오라클을 만나 자신에 대해,
예언에 대해 물었었다.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그’인가 하는 것과, 화분을 떨어트린 것에 대해
오라클에 화분을 조심하라는 말 때문에 떨어트린 것인지, 아니면 화분을 떨어트릴 것을 알고
조심하라고 했던 것인지에 대한 것과 같은 예언에 대한 것.


하지만 [리로디드]의 네오는 이미 스스로를 믿고 있었고,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없었다.
오히려 오라클의 존재에 대해 묻고 ‘왜?’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리로디드]에서 네오는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또 선택에 기로에 선다.
하지만 이 선택은 어찌 보면 여지가 없는 이미 결정되어 진 것에 대한 따라하기 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네오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인지, 아니면 이미 여러 번 그러하였듯
네오 자신도 모든 오차와 불규칙성마저도 계산에 넣은 프로그램에 따라 결정되어 지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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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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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오만한(?)카피는 바로 평론가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폄하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속은 텅 빈, 액션으로만 치장한 블록버스터라고 하기도 하였으며, 결국 기대를 저버린
속편 정도로 폄하하며, 1편에 비해 너무나도 컷 던 기대 탓이라고 그 이유를 돌렸다.
하지만 이렇게 앞 다투어 한심하다는 평을 내놓는 이들을, 일반인인 필자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엄청난 장면들을 기대했었는지는 모르지만,
위에도 언급했던 두 장면에 대해 평범하다든지 아쉽다 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는 듯 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충분히 상상을 추월한 장면들이 많았고,
1편 보다 약해졌다는 철학적인 깊이에 대한 이야기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생각해볼만한 대사들이 즐비하였으며, 지루하기는커녕 몇 번을 더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지루해지고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1편인 매트릭스를 몇번 이고 다시 감상하여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뒤 2편을 다시 보기 바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리로디드]는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어낸 매트릭스 시리즈의
한 편일뿐, 그들의 이야기는 3편인 [레볼루션]이 개봉된 후에야 정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갑자기(그야말로 갑자기), ‘결말은 다음에‘라는 말은 당혹과
아쉬운 마음이 달아오르게 했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반지의 제왕의 경우처럼 1년씩
기다려야 하는 일이 없는 것을 위안삼아야 하겠다.
11월에 개봉될 [레볼루션]으로 매트릭스 속에서 현실을 모르고 기계에게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은 깨어날 것인지, 시온은 무사할 것인지,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네오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지,
[리로디드]의 수많은 의혹들은
모두 풀릴 것인지...앞으로도 하루하루 기다릴 일이 쉽지 많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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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Ma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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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우리가 [매트릭스]를 접하는 과정 중에서 가장 우선이
되어야할 요소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배경이기도 한 ‘매트릭스’에는,
최고의 흥행과 인기를 끄는 대부분의 블록버스터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심오한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
사실 매트릭스를 흔히 말하는 가상현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죄책감이 들 정도로,
치밀하고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앙으로 이야기되어도 좋을 [매트릭스]는
미래에 대부분의 재앙이 그러하듯 결국 인간들의 끝을 모르는 자만과 허영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A.I(인공지능)를 탄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말 그대로 A.I가
스스로를 자각하고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를 복제하여 세력 확장을 이루면서 인류를
협할 만큼의 힘을 갖기에 이른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계들에 의해 생존마저
위협 당하게 된 인류는, A.I가 전력 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태양을 인간 스스로 파괴시킴으로서
A.I의 작동을 멈추려 한다.

하지만 뛰어난 A.I들은 대체 동력원을 금방 찾아내게 되고, 그것은 바로 자신들을
오랜 시간동안 노예로 삼아왔던 인간들이었다. 인간들은 A.I에게 키워지고 길러지면서
그들이 원하는 동력원으로서의 역할로 완전히 지배당하고 만다.
A.I에게 가장 두려운 요소는 인간들이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일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매트릭스’이다. 첫 번째 매트릭스는
전혀 결점이 없는 완벽한 탓에 인간들은 의심을 갖게 되고, 결국이 어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에 A.I들은 현실과 똑같이 어느 정도 결점들을 배치하여 불완전한,
그야말로 현실적인 매트릭스를 탄생시키게 되고, 인간들은 전혀 의문을 갖지 않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매트릭스 속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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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보다 위대한 워쇼스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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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광대하고도 심오한 세계를 창조한 이들은, 당시 저예산 영화 [바운드]로
소수에게만 알려졌었던 래리 워쇼스키(Larry Wachowski)와 앤디 워쇼스키)Andy Wachowski),
 바로 워쇼스키 형제이다. 이들은 [공각기동대], [아키라]등 아니매와
SF소설의 대가 필립 K.딕, 오우삼 스타일의 홍콩영화 등에 그야말로 마니아이다.
이런 것 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각종 철학서적에도 능통한 것은 어찌 보면 조금은 의외일 수도 있겠다.
워쇼스키 형제가 가진 능력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래리는 자신의 평소에 열렬하게 팬이었던 저명한 사상가이자
프린스톤 대학의 교수인 커널 웨스트를 쵤영장에 모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웨스트 교수의 말에 따르자면, 래리는 ‘헤르만 헤세에 대해 독일을 석학들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얘기했을 정도이니, 이들을 그저 반짝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감독들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도움을 주러 왔던 웨스트 교수는 촬영장을 떠날 때,
래리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워갔을 정도라니....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워쇼스키 형제가 팬들에게는 라이트 형제와 버금가는
(그 이상의..)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수박 겉핥기식에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총체적이고 전반적인, 마니아를 뛰어넘은
수준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같은 그들의 능력은 자신들이 얘기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관심사, 대중의 관심사까지 모두다 [매트릭스]안에 융합하여 그야말로 ‘바이블(Bible)'을
탄생시키게 하였다. 심오한 철학적인 요소로서 작품성을 극대화 시켰고,
’불릿-타임‘으로 불리는 신기술과 초감각의 스타일적 요소로서 대중성마저
극대화 할 수 있었던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재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과연 누가 이 같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와 정서를 한 영화 속에
담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감히 말 하건데,
[스타워즈]의 범우주적 세계를 창조했던 조지 루카스나, 상상력 하나 만은 최고로 뽑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스티븐 스필버그, 스타일리스트 데이빗 핀처,
장으로 추앙받는 알프레드 히치콕, 스텐리 큐브릭,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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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철학과 극한의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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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트릭스]의 이 같은 엄청난 성공은 전혀 예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워쇼스키 형제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신예 감독에
불과했고, 그 당시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은 모두 다 새롭게 시작되는 거대 시리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해 전 세계의 관심사는 결국
[스타워즈]가 아닌 [매트릭스]에게로 돌아갔고, 역시 스타워즈가 그러하듯 관심을 넘어선
마니아 층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는 철학과 액션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영화는 이 두 요소 가운데 한 가지에만 치중되기가 일쑤인데,
매트릭스는 놀랍게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극한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끌어올림으로서
그야말로 경이로운 영화를 탄생시켰다.

먼저 액션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자. 사실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따지자면,
조지 루카스가 자랑하는 I.L.M에 맞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I.L.M이 만들어내는 영상은
그야말로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엄청난 것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완전히 눌러버린 [매트릭스]만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불릿-타임’이었다.
각자의 위치에 촘촘히 자리한 여러 대의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불릿-타임’은,
1초에 12,000프레임이나 들어가는 엄청나게
정밀한 슬로우 모션 영상을 실현시키며, 그야말로 영상 기술의 혁명을 가져왔다.
극중 네오가 요원의 총알을 넘어지듯 피하는 장면은 이 ‘불릿-타임’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장면이라 하겠고, 수많은 CF나 영화 등에서 패러디 되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불릿-타임’외에 [매트릭스]를 보며 또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주인공들이 펼치는
현란한 쿵푸 액션 장면이다. 그 동안 헐리웃은 동양 무술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의 영화에서
많은 시도를 했었지만, 관객들이 보기에는(특히 홍콩영화를 비교적 많이 접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헐리웃은 성룡이나 이연걸 등을 출연시켜 그대로 가져오려 하지만 이마저도
크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았다(와이어 연기를 펼치는 성룡이나 이연걸의 연기는 우리가
보았을 때는 참으로 어색한 것이었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라던가 홍콩 무술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워쇼스키 형제는,
자신들의 영화에 쿵푸 적인 요소를 삽입하기로 하고, 그야말로 제대로 된 쿵푸의
스승을 초빙하게 된다. 그는 바로 홍콩 최고의 무술 감독인 원화평이다.
이미 [와호장룡]으로 헐리웃에서도 인지도가 있던 그는, 이제는 단순히 무술감독을 넘어서서
영화 전반에 그의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칭송받는 인물이 되었다.
제작자인 조엘 실버가 이야기하듯 ‘워쇼스키 형제의 심오한 철학을 액션으로 녹여낸 인물’
이기도 하다. 그의 내공 깊은 액션은 단순 때려 부수는 액션이 아닌 철학적 의미를
담은 동작을 원하는 워쇼스키 형제와 잘 어울리며, 말 그대로 액션 그 이상의
액션 장면을 만들어냈다. 키아누 리브스, 캐리 앤 모스, 로렌스 피쉬번 등 주연 배우는
원화평의 혹독한 무술지도를 받아내야 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웬만한 홍콩 배우들은
능가하고도 남을 액션 장면을 스크린 속에서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화려한 액션에 내포된 영화의 철학적인 주제.
[매트릭스]는 여러 면에서 성서와 비교가 되곤 한다. 워쇼스키 형제의 천재성은
이 같은 곳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성서의 구절이라던가, 배경 등을 오묘하게
영화 중간 중간에 포함시키며 철학적인 내용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이렇게 숨겨놓은 장치들을 제외하더라도, [매트릭스]속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그(The One)인 네오는 예수와 닮아있으며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네오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모피어스는 역시
예수에게 세례를 배 풀었던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닮아있으며,
트리니티의 이름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동료들을 배신하고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게 되는 사이퍼는,
예수를 배신하는 유다와도 흡사하다. 성서와도 흡사한 내용들이 많지만,
사실 [매트릭스]는 그리스신화에 더 바탕을 두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2편인 [리로디드]에 가면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 주체성에 대한 고찰, 현실과 비현실, 기계 문명과의 공존관계, 믿음...
[매트릭스] 속에는 근접하기 힘든 주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생각해볼 거리에
대해서는, 워쇼스키 형제의 의도가 그러하듯 각자가 느끼는 데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옳을 것이다.

2003.10.10

글 / ashitaka



단지 에미넴(Eminem)이라는 한 스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8마일]은 디트로이트의 작은 경계에 빗대어, 누구에게나 어느 곳이나 존재하는 경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Synopsis
 
디트로이트의 소외 받은 계층은 생존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다. 이러한 계층의 - 특히 빈민 흑인 -
힙합은 이들의 탈출구 이자 삶의 에너지이다. 지미 스미스 주니어 또한 힙합이 그의 유일한 출구이자
그를 지탱해주는 에너지이다. 결손가정에서 살고 있는 지미는 그의 친구들,
카리스마적 인물인 퓌쳐, 낙천적인 몽상가 솔, 행동파 DJ Iz, 느리지만 꾸준한 체다 밥과
그들만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젠가 성공 하리라는,
이 암울한 현실로부터 탈출 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밤이면 디트로이트의 힙합 클럽에 모여 그들의 꿈을 키운다. 힙합 클럽에서는 디트로이트 최고의
랩퍼들이 모여 밤마다 '랩 배틀'에 참가 한다. 주로 상대방의 인신 공격으로 이루어지며 리듬에 맞추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서 랩을 한다. 그리고 가장 재치있게 상대방을 공격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경계의 관한 이야기
 
감독인 커티스 핸슨이 얘기했듯이 [8마일]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미넴 스스로가 주연을 맡았을 만큼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임에도 분명하지만,
자신을 영화화하길 원치 않는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분명 영화의 포인트는
에미넴이라는 한 사람보다는 더 넓은 의미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감독과 배우의 의도가 그러했을 지라도,
이 영화 [8마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에미넴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8마일은 이러한 하나의 경계의 의미이다.
디트로이트 내에서도 8마일을 경계로 빈민가와 그렇지 않은 공간이 둘로 나뉜다.
미국 내의 랩 스타일이 웨스트코스트(Westcoast)와 이스트코스트(Eastcoast)로 확연히 나뉘고,
음악을 함에 있어 특히 랩, 힙합 뮤지션에 있어서 흑인과 백인이 명백히 나뉘듯 말이다.
 [8마일]에서는 이 같은 여러 가지 경계의 개념을 에미넴의 자전적 이야기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Face to Face'의 랩 배틀로서 사실적이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경계를 뛰어넘은 승리자?
 
물론 많은 경계와 틀을 깨버린 에미넴이긴 하지만, 그에게 ‘승리자’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영화 속 지미 스미스는 승리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랩 배틀의 승리 후에도
이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한 젊은이에 가깝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에미넴은 흑인들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랩 음악을 통해 자신의 하얀 피부색이 무색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트레일러와 공장을 오가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결국은 이루어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랩 배틀에서 챔피언 파파 독을 물리친(?)후에도 야근을 위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며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의 뒷모습은,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얘기는 아직까지도 그대로 존재하는
빈부 격차의 문제와 흑백의 인종차별(대상이 백인이건 흑인이건 간에)등 여전히 경계로 남은
사라져야 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영화 속 지미 스미스를 통해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랩 배틀에서 승리를 거두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지만,
한 편으론 그 만큼 처절한 현실에 쓴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다.



뻔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감독인 커티스 핸슨의 공이 컸다. [L.A 컨피덴셜], [리버 와일드]등의
스릴러 장르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커티스 핸슨은 자칫 팝 스타의 출연으로 거품만 가득하고
속은 텅 빈 영화가 될 뻔했던 영화를, 철학이 담긴 자신의 영화로 만들어 냈다.
사실 대부분의 관개들이 주연을 맡은 에미넴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많은 영화 팬들은 이러한 장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티스 핸슨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감독과 배우가 얘기하듯, [8마일]은 커티스 핸슨과 에미넴 간의 신뢰로서 완성된 영화다.
감독인 커티스 핸슨은 랩 음악과 흑인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에미넴 역시 연기에 있어서는
신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각자의 영역에 대해 양보하고 조화를 이룬 영화는
커티스 핸슨에게도 에미넴에게도 득이 되는 결과물이 되었다.



물론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인지라 어느 정도 장점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에미넴의 연기 실력은,연기를 처음 하는 배우라고는 보이지 않는 수준급의 것이었다. 이 같은 에미넴의 연기 실력은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도 만족하고 놀란 사실이었으며, 그저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평론가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주연을 맡은 에미넴 외에도 지미 스미스의 엄마 역할을 맡은 킴 베이싱어는 오랜 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보이며, 참 이상한(?)엄마 역할을 자연스레 연기하였다(아시다시피 현재 에미넴과 그의 엄마와의 관계는 서로를 욕하는 내용을 담은 가사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며, 법정에서나 만나는 관계가 되었다). 킴 베이싱어 외에 눈길을 끄는 신예 스타가 있는데, 바로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브리트니 머피이다.

여자 주인공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역할이지만, 알렉스 역할을 맡은 브리트니 머피는
자칫 어둡고 음악 영화로만 흘러 갈 수도 있었던 영화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영화 속 묘한 매력은 이내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으며, 이후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Rap Battle and O.S.T
 
일단 랩 배틀과 사운드 트랙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아쉬운 점을 잠깐 얘기해보자면,
번역에 관한 것인데 'Battle'정도는 그냥 배틀이라고 써주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말 ‘맞짱’으로 표기된 ‘Battle'은 왠지 본뜻과는 비스듬히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듯했기 때문이다.
번역에 관한 이야기는 이후 타이틀 관련 단락에서 좀 더 얘기해보도록 하고, 음악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8마일]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을 이루는 것은 바로 ’맞짱‘이라 불리는 ’랩 배틀‘이다.
두 명의 랩퍼가 나와 정해진 시간 내에 자신의 랩 스킬을 겨루는 것으로서,
정형화되고 짜여진 것이 아닌 프리스타일(Free Style)로 이루어진다. 에미넴 자신도 이야기 했듯이
 랩 배틀에서 패했을 때에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모욕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듯 피할 곳 없는 절벽에서의 진검 승부이기에
승리했을 때의 희열과 흥분은 더 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영화 속에서는 여러 번의 랩 배틀 장면이 나오는데, 단지 두 사람이 겨루는 것을 뛰어넘어
그러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에미넴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답게
영화 속에는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비트의 랩 음악이 가득한데, 영화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Lose Yourself'를 비롯하여, 동명 타이틀인 ‘8 Mile'등이 기억에 남는다.
타이틀 외에 별도로 발매된 사운드 트랙에는 영화 속 삽입되었던 곡들 외에, 50 Cent, D12, Xzibit
(엑지빗은 영화 속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Nas, Rakin등의 곡이 수록되었다
(참고로 8마일 사운드 트랙은 기존의 사운드 트랙 외에 스페셜 패키지, 디럭스 에디션 한정반 등으로
발매되어 팬들을 조금은 곤란하게(?)하기도 했다).
 
틴케이스 한정판으로 출시된 타이틀
 
[8마일]타이틀은 초판 한정으로 틴 케이스에 담겨 출시가 되었다. 틴 케이스 속에 내용물은
아마도 일반판과 동일할 것으로 추측되며, 일반 판은 7월 초에 출시가 될 예정이다
(틴 케이스가 헐겁다는 얘기는 제법 들려오고 있는데, 한정판이고 모든 타이틀이 그러한 상태를 보이는 것은
아닌지라 리콜이나 교환은 어려울 듯 하다. 필자의 타이틀도 조금은 헐겁다...).
일단 음악을 다루고 있는 타이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운드이다. 그러한 면에서 [8마일]은
만족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DTS로 들려지는 랩 배틀 장면은 ‘쿵쿵’하는 우퍼의 울림과 더불어
 ‘셀터’의 흥분이 느껴질 듯한 현장감을 들려준다.



그 다음은 서플먼트를 살펴보자. 일단 서플먼트 가운데 발매 전부터 가장 내세운 목록은
[슈퍼맨]뮤직비디오에 관한 것이었는데, 코드 1의 타이틀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거친 것과는 달리 무삭제,
노모자이크 버전의 영상이 실려 있다는 것이었다. [슈퍼맨]뮤직 비디오를 본 소감은 15세가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싶었고, 성인이 보기에는 생각보다는 크게 야한 장면은 나오지 않아 아쉬움(?)도 남겼다.

이외에 제작 과정 다큐멘터리에서는 감독인 커티스 핸슨과 에미넴의 인터뷰 영상이 주로 등장하는데,
영화의 두 주역인 두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와 뒷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와 제작 과정외에 또 하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맞짱’장면인데,
본 편 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미공개의 랩 배틀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관중을 연기했던
여러 엑스트라 가운데(필자도 감독과 마찬가지로 엑스트라라는 단어를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실제로 에미넴과 촬영장에서 랩 배틀을 겨루는 영상이 담겨있다.
신기해하면서도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하는 아마추어 랩퍼들과 에미넴의 대결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8마일]타이틀은 전반적으로는 내용적이나 사운드 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 역시 갖고 있다. 아까 잠시 언급했었던 번역과 자막에 관한 것인데,
워낙에 사실적인 흑인 문화를 근접해서 촬영하였기에 번역에 있어서는 개인별로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하지만, 주제곡인 'Lose Yourself'를 비롯하여 본 편에 흐르는 음악들의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군다나 극장에서는 이 같은 곡들의 가사가
모두 자막처리 되었었고, 영화와 랩 음악의 특성상 가사의 중요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노래 가사의 자막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3.06.23
글 / ashitaka



괴물 (The Host)
 
몇 년 전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난 뒤 바로 들었던 생각은, 아니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영화가 재미있다
보다 도 (물론 재미있지만), 완성도가 정말 높구나 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에다가 긴박함을 시종일관
유지시키는 리듬감, 감칠맛 나는 대사, 현실적인 캐릭터와 배경, 봉태일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디테일 등은 봉준호 감독의
다음 작품을 몹시도 기다리게 했다. 아마도 <살인의 추억>이 개봉관에서 내린 뒤 모 잡지에 난 인터뷰에서 다음 작품은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것 같다고 했던 것에서부터, 이 영화 '괴물'에 대한 기대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2006년 영화계에 최고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영화 <괴물>은 그 동안 국내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시도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던) SF 괴수영화, CG컷이 맛 배기 정도가 아니라 주축이 될 정도로 많이
사용되었음에도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로서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면서, 다른 한 편으론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줬던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플란다스의 개>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개봉 시에 너무도 많이 다뤄졌기 때문에 이번 리뷰에서는
 DVD의 관한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다.



극장에서 <괴물>을 몇 번씩 관람하면서 지속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괴물>DVD의 관한 기대였다.
아무리 DVD가 훌륭한 스펙과 완성도를 수록하였다 하더라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케일을 한 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중복 관람을 몇 번이고 했었다면, DVD타이틀에는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서플먼트가 음성해설이
있기 때문에 DVD로서의 <괴물>도 엄청난 기대를 갖게 했었다. 특히 ‘봉태일’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몇 번의 관람에도 찾아낼 수 없었고 다 소화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와 세밀한 디테일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개봉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던 몇 가지 사실 관계와 감독의 의도에 관한 궁금증으로 이 같은 기대를
더욱 갖게 하였다(논란이 되었던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뒤 음성해설 리뷰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먼저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 출시된 타이틀 가운데서도 최상급에 속할 만큼 수준급의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필자의 시청 환경은 32인치 와이드 HDTV로 시청하였는데, 마치 HD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선명하고
컨트라스트비가 높은 화질로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하수구에 갇힌 현서의 얼굴처럼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최고수준의
화질을 만나볼 수 있으며, 비오는 동호대교 아래의 추격 장면에서와 같은 움직임이 많고 거친 영상에서도 외곽선이나
잔상이 남지 않는 뚜렷하고 선명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1.85:1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강을 배경으로 하는 괴물 영화를 찍는 다고 하였을 때, 넓은 한강을 와이드 하게 담을 수 있는 2.35:1의 영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나, 봉준호 감독은 아메리칸 스탠다드 영상인 1.85:1을 선택하여 조금 의아해 하기도 했었다.
물론 한강 하면 좀 더 와이드 한 2.35:1을 생각하기 쉽지만, 봉준호 감독이 구상한 영화의 특성상, 수평적인 움직임보다
 수직적인 움직임이 많고(괴물의 움직임만을 갖고 보아도 좌우로 움직이는 수평적 움직임보다는 교각을 오르내리는
동작이라던가 은신처를 오고 가는 움직임에서도 수직적인 움직임이 주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컷에 있어서도 장면을 이어갈 때 여러 컷을 촬영하여 편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로 한 테이크에서 인물들이
들락 날락 하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장면에서도 1.85:1이 더욱 용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TS-ES 6.1채널과 돌비디지털 5.1EX를 수록한 사운드 역시 최신 타이틀다운 수준급의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가장 중요한 사운드 포인트가 되는 괴물의 소리는 그야말로 최근 한국영화는 물론 외국영화 타이틀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결과물을 들려주는데, 초반 괴물이 등장하여 한강 둔치를 쿵쿵 뛰어오는 장면에서는
우퍼 스피커의 진동을 통해 그 무게감이 절로 느껴지며, 바로 이어지는 아수라장의 한강 시민 공원 장면에서도
괴물의 소리는 물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잡다한 소리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음에도 높은 채널 분리도와 함께
매우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특히 사운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은 극중 희봉이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빗속의 결투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세차게 내리 치는 빗 소리와 괴물의 소리, 괴물에게 향하는 총소리,
그리고 긴박감을 더하게 하는 극적인 스코어까지 더해져 사운드의 요소가 집합된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선명한 사운드와 높은 채널 분리도는 조용한 매점 안에서 시작하여 다리 아래 강변에서 희봉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정신 없이 몰아치며 사운드적인 몰입도 측면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괴물의 소리는 물론 에이전트 옐로우의
살포 시에 사운드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운드의 표현은 물론, 이병우 음악감독의 극적인 스코어도
풍부한 출력으로 만끽할 수 있다.



보통 DVD가 출시가 되고 나면 영화 본 편을 먼저 감상하기 마련인데, 아마도 본 편이 아닌 음성해설을
먼저 감상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이번 <괴물>DVD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괴물 DVD는 레퍼런스급 DVD답게
음성해설도 총 3가지가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는 감독과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 배우들이 참여한 버전,
두 번째는 봉준호 감독의 단독 음성해설, 세 번째는 조능연 프로듀서와 김형구 촬영감독, 정영민 조명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등 스텝들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양가 있고 흥미로운 버전은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의 단독 음성해설일 것이다. 차분한 태도이지만 장면 장면에서 할 말은 다하고
미안했던 스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생각이나, 논란 거리가 되었던 일들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도 하는데, 먼저 개봉 당시 논란이 되었던 현서의 죽음에 관련해서는 ‘현서는 죽은 것이 맞다’로
당연하게 결론지어졌다. 사실 이 논란을 논란이라기 보다는 감독의 말처럼 현서의 캐릭터에 너무 빠져버린
관객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생기게 된 일로서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또한 일부 장면이 일본 애니메이션 <패트레이버>를 표절 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두 작품을 잘 보게 되면
유사성이 없다는 것을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었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기도 했던 마지막 괴물과의 결투 중 불 붙은 괴물의 CG에 관해서는,
예산과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그렇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음을 어느 정도 스스로 인정하는 코멘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극 중 강두가 ‘No Virus?’하고 묻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라크전에 관한 풍자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극 중 남일이 예전 운동권 선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장면의 분위기는 의도적으로 80년대 운동권 학생과
그 주변의 분위기를 내려고 했었다는 말도 전한다. 그리고 강두가 전두엽 추출 수술 이후 분명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송강호의 연기의 패턴 또한 그 전과 후 과 뚜렷이 구분되고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배우들의 음성해설은 시나리오와 연출 의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촬영현장과 분위기,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들이 즐거운 분위기 아래 진행된다(하지만 변희봉 씨와 고아성 양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스텝들의 음성해설은 각각 파트에 해당하는 장면이 개별적으로 녹음되어 있으며
각각의 전문 분야에 관한 더욱 세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마치 괴물의 세포를 연상시키는 메뉴 디자인 아래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어있다.
크게 ‘괴물탄생’과 ‘괴물제작’으로 나뉘어있는데, ‘괴물탄생’에서는 촬영 이전에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관한 영상들을
주로 수록하고 있다. 제작자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와 봉준호 감독과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작업한
하준원, 백철현씨의 인터뷰가 수록되었으며, 주연배우들이 촬영에 필요한 사격, 양궁 등을
미리 연습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감독 자신이 캐스팅의 핵심이라고 표현한 현서와 세주 역할의 캐스팅의
관련한 오디션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그 사이 많이 커버린 고아성 양의 어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뉴스 속보’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뉴스 클립들을 따로 감상할 수 있는데, 최일구 앵커를 비롯하여
김원장 KBS기자 등 연기자가 아닌 실제 방송인들이 출연한 뉴스 클립들인지라, 또한 영화 속에서는
TV속 화면으로 작게 표현되거나 스쳐 지나가는 영상으로 표현되어서 자세하게 감상할 수 가 없었던 영상이라
매우 흥미롭다. ‘괴물 제작’ 에서는 괴물 자체의 구상에서부터 디자인, 컴퓨터 그래픽을 거쳐
최종적으로 스크린에서 관객들이 보게 될 때 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특히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가 뉴질랜드의 웨타숍에 건너가 웨타숍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통해, 영화 <괴물>에 있어 괴물의 디자인을 완성한 장희철 디자이너의 공로를
새삼 느끼게 된다. 또한 웨타숍에서의 영상은 <반지의 제왕>서플먼트에서 볼 수 있었던 리차드 테일러가 등장하기도 해
마치 외국 영화 DVD의 서플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괴물은 왜 그랬을까’라는 제목의 서플먼트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음성해설과 함께 영화 ‘괴물’을 강두 가족이 아닌
‘괴물’의 입장에서 영화를 재해석 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의도처럼 ‘괴물’이 단순히 무지막지한 괴수가 아니라
나름 상처를 입고 외롭기도 하고, 인간의 잘못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로서 어떠한 관점을 갖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스페셜 피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괴물 갤러리’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 과는 다르지만, 초기에 구상되었던 다양한 형태와
컨셉의 괴물의 이미지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스터 에그로 수록된 영상에서는 현서와 바뀌게된
여중생 역할 소녀와 방역업체 직원으로 괴물에게 잡혀가게 되는 역할의 배우,
그리고 한 때 ‘괴물녀’로 소개되기도 했던(음악을 듣다가 괴물에게 끌려가는 여자)역할을 맡은 배우의 인터뷰가
핸드폰에 전송된 동영상 방식으로 수록되었다.



세 번째 디스크에는 한강의 지도를 연상시키는 메뉴 화면아래 역시 다양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한강질주’에서는 한강에서 촬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과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한 건축물들이 실제로 한강에 존재했었다는 스텝들의 이야기 등 한강 로케이션에 관한 영상들이 수록되었다.
 ‘삼켜버린 장면’은 말 그대로 삭제장면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봉준호 감독이 삭제된 장면에만 출연했던
단역 연기자들에게 미안해하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금액이 투자된 괴물 장면들도
일부 삭제가 되었는데,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금액이 금액인 만큼 눈물을 머금고 본 편에서
삭제했다는 말도 전해 들을 수 있다. 음성해설과 일부 서플에서도 가끔씩 등장하지만,
 ‘봉감독의 사과합니다’에서는 본격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자신 때문에 고생했던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사과를 하는 재미있는 영상이 수록되어있다. ‘한강 찬가’에서는 이병우 음악감독이 영화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시사회와 해외 영화제에 참여했던 장면들이 수록된 ‘스크린 외출’,
그리고 변희봉, 윤제문 등이 출연하는 단편 ‘Sink & Rise’등이 수록되어있다.



이 밖에도 일일이 나열하진 않았지만 소개 한 것 외에도 더욱 재미있고 흥미로운 서플먼트들이 가득 담겨있어
서플먼트도 가히 최고수준의 퀄리티와 완성도를 수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 이 영화가 1300만이라는 엄청난 관객 동원으로 인해 여름용 블록버스터,
상업영화 로만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쉽고, 그렇게 평가되기 보다는 그저 독특한 감성과 형식을 갖고 있는
하나의 재미있는 영화로 평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봉준호 감독의 본래의 의도처럼 영화 <괴물>이 단순한 흥행작이 아닌 특별한 작품으로 이해되기에,
<괴물>DVD는 최고의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2007.01.10
글 / ashitaka



주성치 세계의 마스터피스

흔히들 주성치 영화, 주성치 영화 한다. ‘주성치’영화 라는 말 속에는 단순히 주성치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라는 것 외에,
 특정한 웃음의 코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주성치가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 후반으로 거슬러올라가니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국내에서 주성치의 영화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
아니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90년대 후반이었다. 즉 그저 유치 뽕짝의 저질 코미디 영화 정도로 평가 받던 영화들이
하나의 개성 있는 작품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전까지 소수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비디오스타로 군림했던 주성치는, 2001년 <소림축구>가 엄청난 흥행을 거두고 2004년 <쿵푸 허슬> 역시 성공을 거두며,
이젠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 급 스타로, 코미디 영화와 중화권을 대표하는 배우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반 대중들은 주성치 하면 앞서 언급한 흥행작인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주성치 마니아들 사이에서
진정한 바이블로 불리는 작품은 다름 아닌 <서유기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이라 할 수 있다.



주성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쉽게 말해 대놓고 웃으라고 하는 장면에서 웃지 못한 다면 주성치의 영화가
결코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웃음코드에 한 번 맛들이기 시작하면 주변의 반 주성치 파에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안 가득 자지러지며 웃게 되어 버린다. 서유기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주성치 특유의 웃음 코드가 가득하다.
특히 급소에 불이 붙은 지존보에게 여러 명이 달려들어 밟아서 불을 끄는 장면이나, 나레이션을 사용하여 평범한 상황을
괜히 심각하게 만든 다던가, 특유의 말도 안 되는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장면, <중경삼림>등 영화의 패러디까지 주성치 영화만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많은 팬들이, 또한 주성치 영화의 팬이 아닌 사람들도 서유기 시리즈를 그의 영화 가운데
최고로 손꼽는 이유는, 이 같은 웃음의 요소는 물론 신화적인 배경과 러브 스토리, 철학까지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성치 영화가 새롭게 재해석 되기 시작한 데에는 웃음 코드 외에 그 속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가 한 몫을 하고 있는데,
불가에서 얘기하는 깨달음의 과정, 무지했던 주인공이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존재로 가는 과정 등을 은연중에 담고 있다. 특히 서유기 시리즈에서는 손오공과 지존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극중 캐릭터 들은 장난처럼 지나가듯 대사를 던지지만, 또 이런 대사들이 웃음에 가려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선리기연의 경우는 그래도 상당부분 의도적으로 이런 대사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웃고 즐기는 과정 속에 잠시 돌아보면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유기 월광보합>과 <선리기연> DVD는 주성치 팬들이 백 만년이나 기다렸던 타이틀이었다. 주성치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영화이기도 했고, 차근차근 출시되었던 태원엔터테인먼트(구 스펙트럼)의 홍콩영화 시리즈들이
대부분 수준급의 화질과 사운드로 리마스터링 되어 만족스런 결과물을 내놓았었기 때문에,
이 같은 기대는 더하기만 했었다. 필자도 언제 출시될지 모를 타이틀을 기다리지 못하고 한글 자막이 포함된 홍콩 버전을
구입했었으나, 마치 번역기를 돌린 듯한 조악한 한글 자막 때문에 적잖이 실망하고 있던 차에 이번 정식 출시는
그야말로 백 만년을 기다린 뒤에 맛보는 짜릿함이 저절로 느껴졌다(아직 출시되지 않은 타이틀 가운데 많은 팬들이
기다리는 작품으로는 <동사서독>이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성룡의 <미라클>이 하루 빨리 정식 출시되길 바란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의 경우 매우 만족스럽다 할 수 있을 텐데, 영화의 시작 검은 바탕에 빨간 텍스트나,
 어두운 장면에서 손오공이 관세음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붉은 색이 번지고 외곽선이 조금 불투명하게
표현되는 등 매우 뛰어난 화질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영상이 수록되었으나, 이 시퀀스 말고는 (특히 밝은 장면에서)
최신 홍콩영화 타이틀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는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인물의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정말 리마스터링의 혜택을 톡톡히 누려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화질을 자랑한다.
사운드의 경우 광동어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북경어는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고 있는데,
본래 촬영되고 배우들이 더빙한 언어는 광동어 이지만(즉 영상과 입이 맞는 사운드는 광동어이다),
DVD출시 전 비디오로 접했던 익숙한 음성은 북경어인데,
이 두 트랙 모두 5.1채널을 지원하고 있다. DTS의 경우 정정이 지존보에 몸에 들어갔을 때 심장 뛰는 소리에서
우퍼 스피커가 활약했던 것을 제외하면 크게 돌비디지털 5.1채널과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 어려운 정도.



<서유기 월광보합 / 선리기연> DVD의 유일한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바로 서플먼트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극장용 예고편만이 수록된 것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대부분 주성치 영화의 팬이라면 서플 부족의
아쉬움은  정식 출시의 반가움으로 모두 희석될 것이 틀림없다.

2007.01.04
글 / ashitaka



바보같이 눈물 나는 영화.

<왕의 남자>는 <괴물>의 천 3백만 관객 동원 기록이 있기까지, 한국영화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었다. 원 제작비를 따져보자면 천 만을 넘어선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였을 때 훨씬 저렴(?)한 제작비로 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왕의 남자>가 어쩌면 기대 밖이었을, 아니 아마도 기대 밖이었을 큰 흥행을 거두면서 이준익 감독의 차기 작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모아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 이렇게 전작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경우, 차기 작에서 엄청난 부담 때문에 감독 스스로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처음부터 큰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안고 있는 작품이었다. <왕의 남자> DVD의 서플먼트를 보면서도 느꼈고 <라디오 스타> 개봉 시에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또 한 번 느꼈던 것은,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부담감에서 어쩌면 어느 정도 초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자신의 말대로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이 막중한 부담감에서 초월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애초에 시작할 때부터 큰 흥행을 노리고 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최근 영화 소비의 주 타겟이 되고 있는 10대는 물론, 20대의 취향도 아닐 뿐더러, 그들 취향에 맞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도 아니고, 액션물은 더더욱 아닌 잔잔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에 이어 이 같이 큰 규모의 영화가 아닌 일종의 작은 영화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 선택이 잘한 선택이 되었다고 해야 될 것이다. 이런 감독의 선택은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을 때 많은 관객들이 배신 등등을 운운했던 것과는 달리, <왕의 남자>의 감동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에게도 배신의 감정 따윈 느껴지지 않을 결과를 낳았다. 물론 흥행 면에서는 왕의 남자의 거의 7분의 1에 가까운 관객 동원을 거두었지만, 감독과 배우, 스텝들이 모두 입을 모아 얘기 하듯이 천 만 부럽지 않은 180만이라는 말을 실감하듯, 거창하진 않지만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엔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한 때 가수 왕 까지 할 만큼 잘나갔던 가수와 매니저가 세월이 흘러 흔히 말하는 한 물 간 스타가 된 뒤에,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 하는 과정에서 가수와 매니저 간에 겪게 되는 감정, 그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자칫하면 뻔한 신파가 될 위험이 많은 이 영화가 특별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에 있었다. 글쎄 뭐랄까, 쉽게 말해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너무 영화 같으면서도 한 편으론 실제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의 관한 이야기 같았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에 다른 두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면 그 두 배우가 아무리 초절정의 연기 고수라 할지라도 지금 같은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칠수와 만수>부터 <투캅스>를 거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르기까지, 함께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도 많았던 이 두 배우. 하지만 최근에도 계속 꾸준히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던 안성기 와는 달리, 한 때 한국 최고 흥행 배우였던 박중훈은, 수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점점 관객에게 흥미를 일어갈 때쯤,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고 이후에 코미디 연기를 포기하고 조나단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의 출연하고, 악역으로 출연한 <세이 예스>, 눈물의 정극 연기를 선보였던 <불후의 명작>에 이르기까지,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지만,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영화 속 추억의 록스타 ‘최곤’이 더 와 닿았던 것은 ‘최곤’을 ‘박중훈’이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영화계에서 거의 20년 가깝게 함께해오며 친분을 쌓고 있는 안성기와 박중훈이 동반 출연한 자체도 극 중 ‘최곤’과 ‘박민수’의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청룡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며 잔잔히 감격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젠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불러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던 박중훈의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가 어쩌면 이를 보고 즐긴 관객들보다도 이 두 배우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감동을 준 작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 스타>는 가수와 매니저 사이의 관계에 집중이 된 나머지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상당히 음악에 신경을 쓴 영화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한국 록 음악 계보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같은 마음은 영화 음악과 삽입곡들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는데, ‘유 앤 미 블루’출신의 방준석이 영화 음악을 맡은 것은 물론이요, 신중현의 ‘미인’ ‘아름다운 강산’ ‘빗 속의 여인’ 등을 비롯하여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물론,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에 이르기까지 간단하지만 한국 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신중현부터 노브레인까지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고 있다. 노브레인의 캐스팅 역시 단순히 그들의 이미지나 캐릭터 때문에 캐스팅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한국 록 의 계보를 따지던 중 막내 격인(물론 그들도 어느덧 데뷔 10년 차이긴 하지만)노브레인을 출연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캐스팅 했다고 한다. 노브레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극중 이스트 리버가 그들의 캐릭터와 닮아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종일관 떠들며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스트 리버가 미워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처음 연기를 하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에는 아주 괜찮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라디오 스타>는 극장에서는 크게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후에 입 소문을 타고 좋은 영화라는 평이 나돌았기 때문에, 극장에서 놓친 관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DVD출시를 기다렸을 텐데,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제법 빠른 시일 내에 DVD가 출시가 되었다. 2장의 디스크와 1장의 O.S.T를 포함한 패키지는 ‘비와 당신’을 비롯한 영화 속의 수록 곡들을 인상 깊게 들었던 터라 무척이나 반갑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 출시된 타이틀답게 올해 출시된 한국영화 타이틀 가운데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특히 밝은 부분에서는 이렇다 할 문제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고, HD급의 TV로 시청하여도 큰 화질저하를 느끼지 못할 만큼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인물들의 클로즈 업에서는 물론, 동강과 영월 시내를 훑어가는 와이드 샷에서도 화질의 우수성을 만나볼 수 있다.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극중 이스트 리버의 공연 장면에서는 우퍼 스피커의 활용도가 늘어나며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며, 감동적인 스코어 역시 깔끔하면서도 스케일있게 전달된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두 개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트랙에는 이준익 감독과 안성기, 박중훈, 그리고 정승혜 대표와 최석환 작가가 참여하였고, 두 번째 트랙에는 이준익 감독과 음악감독 방준석, 그리고 노브레인이 참여하였다. 첫 번째 트랙에서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관계가 묻어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음성해설이 이어지는 한 편, 감독과 제작자, 작가의 참여를 통해 촬영장의 에피소드는 물론, 본래 의도하려 했던 바와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작 뒷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트랙에서는 노브레인의 참여하여 재미를 더하는 한 편, 방준석 음악 감독이 함께 하여 영화의 전반 적인 음악에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세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서플먼트는 예전 LP를 회상하게 하듯 Side A와 Side B로 나뉘어 담겨있는데, 주로 배우들과 감독, 스텝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이후 <라디오 스타>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고,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 역시 이 영화를 통해, 혹은 이번 인터뷰 기회를 통해 그 동안 못했었던 진솔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번 영화에 감초 역학을 톡톡히 한 노브레인에 관한 스페셜도 수록되었으며, 방준석 음악감독의 인터뷰와 O.S.T 녹음 현장의 모습도 수록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던 좋은 영화.
<라디오 스타>였다.

2006.12.26
글 / ashitaka


린다 린다 린다

청춘!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아름다운 순간.

일본 영화 팬들이 일본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특별한 것을 끄집어내 눈물짓게 하는 재주와 소박한 것들을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끌렸을 것이다. 특히 특별한 갈등 구조 없이도 시간과 순간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꾸며가는 구조는 최근 일본 영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 배우 배두나가 출연하여 더 화제가 되기도 했던 <린다 린다 린다> 역시 순간에 주목하고 있는 영화이다. 즉 이야기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 감독의 시선이 더욱 중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린다 린다 린다(이하 린다)>는 종종 비슷한 소재(음악을 배경으로 하는)로 주목 받았던 <스윙걸즈>와 비교되곤 하는데, 이 영화에는 <스윙걸즈>에는 없는 정서가 담겨있다. <스윙걸즈>가 유쾌 발랄한 청춘과 음악이라는 것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린 신나는 이야기라면, <린다>는 고등학교 3학년의 마지막 축제, 즉 아름다운 청춘의 순간을 섬세하게 다룬 이야기라 하겠다. 시바사키 고등학교의 축제 첫 날 인트로 멘트를 촬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 영화는, 축제의 막바지 강당에서 밴드가 공연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것은 어쩌면 청춘 자체가 축제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것이 바로 펑크(Punk)음악이다. 펑크가 상징하는 것, 자유 즉 스스로 그러한, 있는 그대로만으로도 아름다운 것, 바로 청춘이다. <스윙걸즈>에서는 거의 유대감이 없었던 인물들이 우여곡절 끝에 빅 밴드를 이루게 되면서 영화에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하나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린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물론 밴드를 하게 되면서 연습하는 과정에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일본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다니던 ‘송’과 다른 멤버들의 유대감은 더 해지게 되지만, ‘음악으로 하나 되다’라는 느낌이 강하지는 않다. 음악은 소재만의 역할을 할 뿐, 그들은 음악 때문에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교환학생이라는 설정이라면 몇 가지 예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으나, <린다>는 이런 차이에 집중하진 않는다. 배두나가 맡은 ‘송’은 노래방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화차이를 느끼기도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송이 일본어가 서투르다는 것 뿐, 다른 차별 점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송에게 서투른 한국어로 고백하는 일본 남학생의 경우나, 나중에 케이와 송이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송은 한국어로 케이는 일본어로 얘기하지만 서로가 표면적인 언어로서가 아니라 마음에 언어로서 대화가 가능해졌을 만큼, 이 언어적인 문제마저도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여기서 송이 케이에게 ‘고마워, 동지’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단지 한국어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진정한 ‘동지’임과 유대감을 확인하는 일종의 교감의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린다 린다 린다>DVD는 일본에서 개봉시기를 감안하였을 때 출시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나중에 다시 인기를 끌면서 재개봉까지 하게 되면서 DVD출시는 조금 더 늦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2장의 디스크의 SE버전으로 출시된 타이틀은 이러한 기다림을 희석시켜줄 만큼 만족스러운 패키지로 출시되었다. 16:9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기술적인 면으로만 보았을 때는 최고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본래 감독의 의도에 따라 칼 같은 콘트라스트비와 대비가 강한 명암과 색 보다는, 필름의 느낌이 강하게 촬영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의도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그런 칼 같은 화질로 담았다면 감정이입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역시 5.1채널을 지원하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스테레오 사운드만으로도 대사 전달이나 라이브 장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감독과 작가가 함께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음성해설은 영화적인 기술과 촬영기법 등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배우들과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 배두나 씨의 표정이 참 좋았다 던지, 시오리 씨의 굽은 새우 등이 좋다든지 하는 배우에 대한 애정과 자랑, 찬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2번째 디스크에는 메이킹 필름을 비롯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메이킹 필름은 주로 배우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으며 촬영 현장에서의 모습 보다는, 영화 장면이 흐르면서 인터뷰 음성이 흐르는 구성으로 담겨있다. <린다>만의 특별한 서플먼트를 들자면 아무래도 시사회 후에 갖은 ‘파란마음’의 라이브 실황 영상을 들 수 있을 텐데, 딱 2곡 밖에는 레퍼토리가 없는 밴드라 금방 무대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영화 밖에서 주인공들이 영화 속의 의상을 그대로 입고 라이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하다. 그리고 영화 속 마지막 라이브 영상을 각 멤버별로 감상할 수 있는 4가지 버전의 라이브가 수록되었는데, 본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 멤버들의 표정을 만나볼 수 있어 새롭다. 이 외에 음악을 맡은 제임스 이하의 작업장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 영상과 예고편 등이 수록되었다.
 
2006.12.04
글 / ashitaka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

<말죽거리 잔혹사>를 마친 유하 감독은 이 작품이 학교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주입식으로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강압적인 폭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군사정권 아래 암울한 시기에 무방비 상태에 청소년들에게 가해진 폭력, 직접적으로 가해진 폭력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된 간접적 폭력 등 인성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시기에 폭력성을 주입하는 사회와 시스템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한 남자아이가 어떻게 폭력성이 생겨나고 키워가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만들며 유하 감독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얘기하면서 폭력에 관한 3부작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작품 <비열한 거리>는 바로 그 두 번째 격인 작품이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폭력성에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면 <비열한 거리>는 전작에서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폭력성을 키워온 한 고등학생이, 성인이 되어 이 폭력성을 소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배경도 고등학교에서 사회로, 즉 조직폭력배로 스케일이 커졌다. 흔히 말하는 조폭영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조폭 코미디물과 조폭 영웅물이 있다. 조폭 코미디란 이미 한국 영화계에서 수없이 복제되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조폭 영웅물이란 쉽게 말해 한 때 전설이었던 주인공이 시간이 흘러 손을 때고 지내려는데, 예전에 원수들이 여자 친구 혹은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다시 폭력을 쓰게 되는,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장렬히 전사하게 되는,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미화하고 멋지다고 생각되게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열한 거리>는 얼핏 보았을 때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조폭이 되지 말아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이 영화는 절대 조폭을 미화시킨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조인성이 멋있어서 그랬다면 할 말 없겠다만).


 
폭력성과 더불어 유하 감독이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집단성’ 혹은 ‘조폭성’이다. 감독은 왜 폭력성과 집단성이 항상 함께 하는지(조직폭력배 라는 말자체가 집단성과 폭력성에 합성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에 관한 이유를 ‘성공’이라는 보편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 특히 <비열한 거리>에서는 주인공 병두 외에도 이 같은 사례를 보여주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폭력을 일삼고 있는 조직폭력배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영화 성공을 위해 친구의 비밀을 영화화하는 감독 민호(남궁민 분)나 역시 자신의 사업을 위해 폭력배들을 이용하는 황 회장(천호진 분)이나,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이 그려지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천태만상들은 여전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그 힘을 갖기 위해 갖은 자는 더 많은 나쁜 일들을 정당화하며, 이 힘의 논리에 피해 받아 죽어간 자들 역시 복수를 하기 위해, 역시 그들과 같은 방법을 쓰게 되며 결국 잘못된 연결고리가 계속되는 쓸쓸한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감독은 직접적으로 폭력사용이 나쁘다 라는 표면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잘못된 연결고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래도 어느 정도 희망을 엿볼 수 있었던 ‘슬픈’ 영화였다면, <비열한 거리>는 그 희망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씁쓸’한 영화이다. 'One Summer Night'은 애절했지만, 'Old & Wise'는 씁쓸하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비열한 거리>는 폭력이 중심이 된 영화인만큼 액션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진흙탕에서 벌어졌던 ‘인천터널’액션 장면은,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이 힘들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찍었다는 말들을 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다(봉고차에서 내리기까지만 3일을 촬영, 총 7일간 이 장면만을 촬영했다고 한다). 스텝들도 한국영화에 길이 남을 액션 씬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일념 하에 좀 더 리얼하고, 차 유리도 효과를 위해 실제 유리를 깨트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완성도 높은 장면을 완성해 냈다. 그리고 스스로 국내최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서점액션’씬 에서도 장소에 특성에 맞는 동선과 액션으로 리얼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 외에도 실제 오락실을 빌려 촬영했던 ‘오락실 액션’과 봉고차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 등 모든 액션 씬들이 영화적인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더 현실적인 액션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 고심했던 장면들로 결과적으로는 스텝들과 관객들 모두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병두 역할은 본래 조인성 같은 꽃미남 스타일이 아닌 좀 더 거칠고 말 없는 스타일이 될 예정이었으나, 조인성이 맡게 되면서 본래 시나리오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진구가 맡은 역할도 본래는 좀 더 익살스러운 캐릭터였으나, 진구가 캐스팅되면서 충복의 이미지로 변화되었고, 남궁민이 맡은 민호 역시 본래 시나리오와는 조금 다르게 변화되었다고 한다(처음에는 병두가 아닌 민호가 주인공이었으나, 영화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의견이 많아 병두를 주인공으로 수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인성에 연기에 관한 얘기들은 아직도 분분한 것이 사실이지만, <비열한 거리>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액션이면 액션, 감정이면 감정, 모두 다 한층 성숙해진 연기였다고 생각된다. 처음 조인성이 조폭역할을 맡았다고 했을 때는 앞서 언급했던 조폭이 미화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이 전에 드라마에서 보았던 귀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이 외에 여러 배우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배우들은 윤제문과 천호진인데, 이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꼭 필요한 무게와 중심을 잡아주는 탄탄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특히 라스트 씬에서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야지’하는 천호진의 대사와 곧 이어지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 Wise'는 정말 그가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작답게 우수한 수준이다. CJ에서 출시했던 한국영화 타이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비열한 거리>역시 외곽선이나 명암비가 뚜렷한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액션씬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데, 쇠파이프, 야구 방망이등 수많은 연장(?)들을 사용한 액션 소음들과 사시미 특유의 섬뜩한 소리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채널 분리도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며, 노래방 씬에서의 공간감도 수준급이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유하 감독과 김선중 PD의 음성해설, 그리고 조인성, 이보영, 진구가 참여한 음성해설 등 총 2가지 트랙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영화와 주제에 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원한 다면 첫 번째 트랙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장의 에피소드나 장면 당시의 일들을 전해듣고 싶다면 두 번째 트랙을 추천한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서플먼트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메이킹 다큐멘터리 격인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에서는 전체적으로 영화를 기획했던 단계에서부터 촬영장 에피소드 등을 감독과 스텝,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비열한 거리의 군상들’에서는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폭력성과 조폭성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이야기가 인터뷰로 수록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열한 거리>는 상당히 액션 장면에 심혈을 기울인 장면인데, 서플먼트에서 이 노력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다. ‘인천터널 액션’ ‘오락실 액션’ ‘고수부지 액션’등 각각 액션을 파트별로 나누어 촬영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아마도 이 서플을 감상한 뒤 각 액션 장면의 본편을 다시 감상한다면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6.11.22
글 / 아시타카


뉴욕의 역사란 곧 미국의 역사라는 말과도 같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전하는, 미국인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뉴욕의 피비린내 나는 탄생의 보고서. [갱스 오브 뉴욕]
 
Synopsis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 월 스트리트의 비즈니스 지구와 뉴욕 항구, 그리고 브로드웨이 사이에 위치한 파이브 포인츠는 뉴욕에서 최고로 가난한 지역이며 도박, 살인, 매춘 등의 범죄가 만연하는 위험한 곳이다. 또한 이 곳은 항구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매일 수 천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꿈의 도시도 하다.



그러나 파이브 포인츠에 사는 정통 뉴요커들은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침입자라 여기며 멸시한다. 결국 두 집단의 갈등은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아일랜드 이주민의 존경을 받던 데드 레빗파의 우두머리 프리스트 발론은 빌 더 부처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그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 발론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16년 후,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복수를 위해 빌 더 부처의 조직 내부로 들어간다. 뉴욕을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으로 지배하며 파이브 포인츠 최고의 권력자로 성장한 빌 더 부처는 자신을 향한 음모를 까맣게 모른 채 암스테르담을 양자로 삼게 된다. 암살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암스테르담은 빌 더 부쳐의 정부(情婦)이자 소매치기인 제니 에버딘을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되고 처절한 복수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의 필생의 프로젝트
 
[갱스 오브 뉴욕]이 기획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는 언젠가는 반드시 뉴욕의 역사에 관한 딱 잘라, 뉴욕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이미 20년도 더 전에 [갱스 오브 뉴욕]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만한 이야기를 담아낼 만한 여력이, 스콜세지에게도 제작사에게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제작사에서는 거대한 스케일과 긴 러닝 타임 등을 고려해, 이 프로젝트를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난해인 2002년에야 그 뜻을 이루게 된 [갱스 오브 뉴욕]은 이와 같은 커다란 기대 때문이었는지 전체적으로는 관객들에게도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볼 때에도 크게 지루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 전체적인 반응은, ‘지루하다’였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긴 러닝타임인 2시간 40분이 넘는 시간과(아시다시피 16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본래 22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제작사인 미라맥스에 설득 끝에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서사적 보고서에 가까운 이야기와 전개가, 자극에 민감한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결코 달가웠을 리가 없었다. 흥행 성적은 그렇다쳐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중요 시상식의 중요 부분을 노렸음에는 분명한 영화였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득을 본 것이 없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는 무려 10개의 중요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단 한 개의 오스카상도 가져가지 못하였다. 이는 어쨌거나 감독인 스콜세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으며, 제작사인 미라 맥스 역시 울상 짓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실망이 컸던 것 같고, 마틴 스콜세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엔 분명하지만, 처음 기획부터 영화화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체되면서 많이 지쳐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최근 영화들에 비하면 오락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는 그래도 오락적 요소가 제법 있는 영화라 생각되고,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를, 콕 찍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가 지루했다는 사람들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연기에는 뭐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었지만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조차도 무시 못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빌 더 부쳐 역할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였다. 이미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라스트 모히칸]등에서 선 굵고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었던 다니얼 데이 루이스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은퇴선언을 번복하며 출연한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연기를 선보였다. 일명 ‘도살 광’이라고 불리는 뉴욕의 토박이들의 리더 격인 ‘빌 더 부쳐’역할을 맡은 그는, 이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완전히 다른 한 인물을 새롭게 그려내면서 무서우리만큼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과 육체적으로도 강한 인상의 ‘빌’이 된다. 함께 출연하였던 ‘리암 니슨’의 말을 빌리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촬영을 하는 동안이 아닐 때에도 동료 배우들을 극중 이름으로 대하고, 그중 캐릭터처럼 생활했다는 것이다. ‘빌 더 부쳐’라는 인물에 너무 깊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은 그중 그의 악센트를 결코 쉽게 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카메론 디아즈의 말로도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는 스콜세지의 영화에 주인공하면 떠오르던 로버트 드니로를 잠시도 생각나지 않게 하였다.




[갱스 오브 뉴욕]은 대부분 모두의 박수와 관심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에 맞추어 지긴 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을 훌륭히 연기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관심에 초점이 되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레오가 [타이타닉]때보다는 많이 성숙했다는 것이었다. 잘 생긴 외모와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단번에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레오는, 이제는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 듯 하다. 거칠고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레오 자신도 배우로서 많이 발전한 듯 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 카메론 디아즈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방식도 예전보다는 많이 터득한 것 같다. 관객들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에 눈을 빼앗겼지만, 레오 자신에게는 [갱스 오브 뉴욕]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 DVD의 자켓에도 주연 배우 세 명의 이름과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되어 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는 이들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능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초반부 ‘빌 더 부쳐’와 맞서는 발론 신부 역할로 출연한 리암 니슨을 들 수 있다. 비록 시작부분 잠깐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설정한 중요한 역할인 발론 신부역할을 인상 깊게 연기하였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치인을 연기한 짐 브로드밴드. 그리고 존 C.라일리브랜든 그리섬 등은 다른 영화라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도 젼혀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지만 또한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조연 역할에도 익숙한 배우들인지라,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주연 배우들에 비해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카메라가 돌아왔을 때에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을 쟈니 역할은 바로 이전 [E.T]에 주인공 엘리엇으로 출연했던 헨리 토마스가 맡았다. 그 동안 몇몇 작은 영화에 출연했었던 헨리 토마스는 [갱스 오브 뉴욕]을 계기로 다시금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Gangs of New York / DVD

일단 기본적인 화질과 음질은 최신 출시된 타이틀답게 비교적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재공하고 있다. 시대, 서사극을 표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 의상 등일 것인데, 180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엄청난 크기의 세트들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다양하고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한 의상들은 [갱스 오브 뉴욕]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VD는 이 같은 배경과 의상 디자인을 섬세하게 재공하고 있으며, 영화 자체가 표방하는 컬러인 갈색과 회색 톤의 색감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제법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갱스 오브 뉴욕]에서 사운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데,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전투의 소리들을 현실적으로 전해준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대포에 의해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DTS의 음장감을 실감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갱스 오브 뉴욕]DVD 타이틀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은 바로 본 편이 두 장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많은 DVD 마니아들이 귀찮아하는 일로, 타이틀의 구매를 한 번 더 선택하게 하는 단점이 된 것 같다. 본 편과 같이 두 장의 디스크에 나뉘어 담긴 서플먼트를 살펴보자.




일단 가장 반가운 서플은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의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다른 어느 영화보다도 감독이 할 말이 많았었을 법한 영화인지라 음성해설의 수록은 DVD마니아와 마틴 스콜세지의 팬이라면 아니 기쁠 수 없을 것이다. 화질을 언급하며 잠시 거론되었듯이 [갱스 오브 뉴욕]에서 스토리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세트와 의상 등 디자인 요소를 들 수 있는데, DVD타이틀도 이 같은 중요성을 강조하듯 디자인에 관련된 서플먼트들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또한 세트를 설명하는 영상에서 360도 팝업을 지원하는 서플은, 넓고 다양한 1800년대 뉴욕의 거리를 좀 더 가까운 시선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몇 가지 다큐멘터리 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에 관련된 제작 과정 노트라던가 에피소드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 뉴욕의 역사에 기인한 다큐멘터리가 수록되어 영화의 기본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같은 영상들은 위와 같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흔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과 U2가 부른 주제곡 ‘The Hands that Built America'의 뮤직 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다.
 
2003.09.08
글 / ashitaka

 
<박치기>를 리뷰하면서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너무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박치기’라는 제목 자체가 그러하다. 물론 이 제목은 국내에서 번안하거나 새로 지은 제목이 아니라 원작자가 의도한 제목 그대로가 맞다(맞는 것은 물론 오프닝 크레딧에도 정확하게 한글로 ‘박치기’라고 표기했을 정도). 하지만 국내에서 ‘박치기’하면 일단 액션과 코믹에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또한 여기에 고등학생들의 폭력과 코믹적인 요소만 강조한 홍보 또한),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가 쉬운 것이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에 끌리게 되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코믹 요소들이 걸림돌이 되긴 하였으나 오다기리 죠나 사와지리 에리카 같은 배우들의 이름 때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처음에 예상했던 바는 우려로 끝났고, 배우들의 이름 만에 끌렸던 때가 부끄러울 만큼 더한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치기 하면 레슬링의 기술, 단순히 머리로 머리를 받는 일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 영화와 관련된 일본인 배우, 스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에서는 단순한 액션 적인 의미 외에 경계를 뛰어넘는, 즉 초월(超越)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넓게 보았을 때 초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초월에 사건이고 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일본 내에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이야기이다. 재일조선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뉴스나 TV는 물론 예전에 소개했었던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영화 <고 (Go)>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박치기>는 여기에 코믹적인 요소와 액션적인 요소(코믹과 액션은 그야말로 양념일 뿐이다)를 적절히 배치하고,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로 이전에 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했던 다른 영화들보다 더 큰 감동을 끌어낸다.



일단 일본인인 코스케와 재일조선인인 경자 사이의 로맨스는 누가 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형식을 빌고 있다. 여기에 경자의 오빠이자 무리의 우두머리 격으로 등장하는 인성의 구성은 마치,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대어 그려냈던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와도 닮아있다(개인적으로는 특히 ‘웨스트사이트스토리’와의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인성의 캐릭터는 물론이고(붉은 복대와 붉은 셔츠까지 이미지가 흡사하다), 클라이맥스에서 음악(노래)을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사건들을 동시에 그려내는 구성 방법에서도 그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고스케와 경자 사이에 경계를 허물기 위해 등장한 매개체가 바로 ‘임진강’이라는 곡이다. 이 곡의 원곡은 북한 곡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른 임진강에 빗대어 한민족 분단의 슬픔을 담은 노래인데, 1968년 일본의 포크 밴드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안하여 발표하였으나 바로 발매중지와 함께 금지곡이 되었던 곡이다(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했던 ‘더 포크 크루세더스’의 멤버인 카토 카즈히코는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일본인 고스케는 호감을 느낀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녀가 연주하고 있던 곡 ‘임진강’을 연습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의 슬픔과 전쟁의 무의미,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어쩌면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저 여자아이들에게 잘 보일 궁리만 하던 두 친구가, 분단 상황에 대해 ‘우리도 이 강을 중심으로 반으로 나뉜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가볍게 얘기를 꺼내게 되고,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깊진 않아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다는 자체가 의미를 갖는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분단의 역사와 재일조선인의 슬픔이 담긴 임진강이라는 곡이, 단순 폭력과 로맨스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며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20대 초반의 어린 배우들조차 처음에는 자신들의 캐릭터나 시대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은 전혀 알지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 처럼 이러한 역사와 상황이 있었고 이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 더 깊은 주제로 가는 첫 걸음으로서 좋은 스타트였다고 생각된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 눈길이 갔던 것은 배우들이었는데, 시오야 슌, 타카오카 소우스케, 사와지리 에리카 등 어린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한국 사람인 우리가 보았을 때는 재일조선인 역을 맡은 배우들의 한국어 연기가 어색하게 들리긴 하지만, 배우 자신들은 교토 사투리를 배우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이야기할 만큼,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었던 캐릭터들을 결과적으로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오다기리 죠는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그대로 몸소 보여주는 사카자키 역할을 맡고 있는데, 진지하면서도 코믹스런 설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한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임을 감안한다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평범한 수준이다. 특히 콘트라스트 비가 높지 않고 채도 또한 그리 높지 않은 화질인데, 감상에 불편을 주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은 콘트라스트 비와 채도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조금 아쉬운 화질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5.1채널을 수록하지 않은 것이 표면적으로는 아쉬움을 갖게 하지만, 그리 멀티채널을 널리 활용하는 작품도 아닌 터라 감상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본편에는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과 사카모토 준지, 씨네콰논의 이봉우 프로듀서가 참여하였는데, 젊은 주연 배우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재미적인 요소로서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봉우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텝들의 음성해설은 좀 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는데, 먼저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이 눈에 띤다. 인터뷰의 경우 대부분 주연배우 2~3명 정도에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박치기>DVD에서는 이전에 소개했던 <스윙걸즈 SE>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배우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 외에 3개의 메이킹 필름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메이킹 영상에는 감독과 이봉우 프로듀서 등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기 까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메이킹에서는 주로 촬영장에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계속 NG를 내는 젊은 연기자에게 ‘니 돈 주고 필름 사와’라고 무섭게 다그치는 모습이 이채롭다(특히 촬영 첫 날부터 초반에는 단 한 번에 OK되는 영상들을 보고 난 뒤라 더욱 재미있었다). 3번째 메이킹 필름은 영화에 주요 소재가 되는 곡인 ‘임진강’에 대한 깊고 자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이 밖에 제작 발표회 영상과 예고편 등이 추가로 수록되었다.

2006.11.16
글 / ashitaka


그들에 관한, 우리를 위한 영화


1994년 르완다 수도 키갈리.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두 부족의 공존을 위해 평화 협정에 동의하면서 수십 년간 이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평화 협정의 진행을 돕기 위해 UN군이 파견되었고,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이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르완다로 몰려들었다.

르완다의 최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호텔 지배인인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는 평화 협정과 관련하여 밀려드는 취재 기자와 외교관들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랑 받는 가장이자 지배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폴은 하루빨리 협정이 체결돼 르완다가 안정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르완다의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르완다의 상황은 악화된다. 후투족 자치군은 대통령 살해의 책임을 빌미로 아이들까지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온건파 후투족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위협을 느낀 폴은 투치족 아내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호텔로 피신한다. 이후 그곳으로 수천명의 피난민들이 모여드는데...



영화 <호텔 르완다>는 이처럼 실존 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흔히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와 비교되곤 하는데, 이미 여러 영화와 매체에서 소개되었던 유태인 학살과는 달리 <호텔 르완다>에 등장하는 1994년 르완다 내전에 관한 이야기는,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덜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알지 못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영화 내용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르완다 내전 사건은 수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학살당했던 참극이었지만, 르완다에는 미국이, UN이, 전 세계가 이득을 얻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석유나 금 같은 자원은 물론 지리적으로도 강대국들에게 의미가 없는 곳이었으며, 있는 것이라고는 커피와 차가 전부인 나라였기 때문에)누구도 이 참극에 개입하기를 꺼려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죽어가는 르완다 인들은 그냥 놔둔 채 자국의 국민들만을 빼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이 와중에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이었던 폴 루세사바기나는 자신의 인맥과 호텔을 이용해 1천 2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에서 지켜내게 된다. <호텔 르완다>는 참혹하기만 했던 르완다 내전 속에서 호텔 지배인이었던 한 남자 ‘폴 루세사바기나’를 중심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하트의 전쟁>의 공동 각본을 썼던 테리 조지가 감독을 맡았는데, 테리 조지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를 만나 영화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그와 함께 르완다 현지에 들러 참혹했던 사건의 현장을 보며 눈물짓기도 했다. 그는 이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영화화를 결심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너무 현실적인 다큐멘터리스럽지도, 또 너무 영화적이지도 않은 명작을 만들어냈다. <호텔 르완다>는 분명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인해 절로 눈물이 흐르거나 영화 속 사건에 의해 분노가 치밀거나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한 편으론 너무 신파나 감성에 기대지 않고 또 한 편으론 극 사실적이거나 잔인한 표현은 배재하며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실화를 바탕으로 스필버그 특유의 영화적 감성을 더한 <쉰들러 리스트>와 극 사실주의로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던 <블러디 선데이>와 비교해 봤을 때 <호텔 르완다>는 실제 있었던 사건과는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는 인간애에 의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조화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는 내용이 가진 의의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력을 따지는 것 자체가 다른 영화에 비해 무의미하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주연을 맡은 돈 치들의 연기는 절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200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서 아쉽게 <레이>의 제이미 폭스에게 수상을 넘겼지만,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결코 어느 한 쪽을 쉽게 손들어주지 못할 만큼 돈 치들의 연기는 현실과 감동을 모두 느끼게 하는 열연이었다. 테리 조지 감독이 영화의 준비를 위해 실존인물을 만나고 자료조사를 하고 있을 때,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 돈 치들에게 미리 언지를 주었었는데 돈 치들은 자신의 캐스팅 여부에 상관없이 이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르완다 내전으로 고통 받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하였다. 영화 자체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유명한 배우들이 몇몇 출연하고 있는데, 주연인 돈 치들을 비롯하여 UN군의 올리버 중령 역에는 닉 놀테가 열연하고 있고(닉 놀테의 대사 처리는 언제 봐도 열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장 르노와 호아킨 피닉스도 짧은 분량이지만 얼굴을 비추고 있으며 <이온 플럭스>에서 강렬한 액션을 펼쳤던 소피 오코네도가 폴 루세사바기나의 부인역할을 맡아 역시 열연하고 있다.



대형 블록 버스터 영화가 아닌 탓에 국내에서는 개봉은 했으나 매우 짧은 시간 만에 상영을 마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기회를 놓쳤었는데, 다행히 DVD는 빠른 시일 내에 출시되어 아쉬움을 덜해주고 있다. 2장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시된 <호텔 르완다 SE>는 최근작답게 수준급의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콘트라스트비와 샤프니스가 강한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며, 클로즈업에서는 물론이고 군중 씬에서도 우수한 해상력을 보이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총 소리, 폭발음 소리도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센터 스피커에 또렷한 대사는 물론, 일반적인 소음들도 채널 분리도와 함께 매우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서플먼트로는 먼저 첫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는데, 감독 테리 조지와 음악을 맡은 'Fugees'출신의 뮤지션 와이클리프 장, 그리고 영화 속 실존인물인 폴 루세사바기나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 감독이나 배우, 스텝들이 참여하거나 혹은 영화에 관련된 사건이나 내용에 관해 전문적 지식이 있는 이들이 간혹 참여하는 음성해설은 있었지만,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그 실존 인물이 직접 참여한 음성해설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만큼 이 음성해설 트랙은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 될 것이다. 폴 루세사바기나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영화와 부가 영상에 수록된 이야기들 외에 장면 장면을 통해 좀 더 자세한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다양한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Selected Scenes Commentary Don Cheadle'에서는 돈 치들의 음성해설과 함께 중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으며, 'Making Hotel Rwanda'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폴 루세사바기나의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있다. 그리고 'Return to Rwanda'에서는 사건이 있은 후 처음으로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르완다와 호텔을 방문한 폴 루세사바기나가 당시에 사건을 함께 겪었던 호텔 직원들, 주방장 등을 만나는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그대로 간직한 기념관 방문 영상도 수록되어 있다.



<호텔 르완다>는 영화 속 르완다의 모습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지만, 영화적으로는 물론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에 비춰봤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바람을 갖을 것이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최근 정세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통 받는 소수 민족, 약소국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다시금 되새기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마땅히 분노를 느껴야할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호텔 르완다>는 그들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영화이다.


2006.10.26

글 / ashitaka




강아지를 비롯해 애완동물에 관한 영화는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큰 덩치의 세인트 버나드가 등장하는 코믹 가족 드라마 <베토벤>시리즈도 있었고, 국내에서는 전화기 CF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던 양치기 개 콜리가 등장하는 <내 친구 레시>라는 영화/시리즈도 있었고, <플란다스의 개>같은 유명한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음이>라는 국내 영화가 개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존에 공개되었던 강아지가 등장하는 작품들과 오늘 소개할 <우리 개 이야기>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기존에 작품들이 강아지가 등장하여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나 혹은 강아지의 충성스런 활약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 <우리 개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을 통해 다양한 장르로서 강아지와 인간과의 관계, 특히 최근 들어 애완동물을 그저 사치품 정도로 취급하고 너무도 쉽게 가졌다가 물건 버리듯 버려버리는 현실에 대해, 강아지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우리 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저 강아지가 등장하는 그저 그런 독립 단편집 정도로 생각했으나(특히 이누도 잇신이 연출한 에피소드를 제외한 다른 에피소드에 대한 편견은 더했다), 막상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니 이 같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개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주요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은 물론,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나카무라 시도우, <전차남>의 이노 미사키, 그리고 TV드라마와 영화 <나나>에 출연하여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미야자키 아오이 등 참여한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도 제법 탄탄한 작품이다. 국내에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렇게 의외의(?) 수준급 스펙의 DVD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우리 개 이야기>가 다른 옴니버스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각 에피소드들마다 다른 장르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우리 개가 No.1'은 뮤지컬 장르로 클래식을 번안한 노래와 코믹한 댄스를 만나볼 수 있으며,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 노래하는 남자’편에서는 극중에 소재가 되는 뮤지컬과 맞물려 뮤지컬 장르를 차용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A Dog's Life'는 뮤직 비디오로 수록되었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전체적인 장르는 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지만, 중심이 되는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한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4부작을 제외하면 각각 에피소드가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꾸민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작품들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CM이여 어디로 가는가'는 광고영상이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변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사랑에 빠진 고로'에서는 주인공인 강아지 고로의 생각이 그대로 더빙되는 설정으로 재미를 주고, '개의 말'에서는 외국에서 제작한 인터뷰 프로그램이라는 컨셉으로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나카 요지는 <스윙걸즈>를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파워 퍼프 걸>을 연상시키는 그림체의 뮤직비디오 'A Dog's Life'는 각각 Good과 Bad 버전으로 나뉘어 수록되었는데, 특히 Bad버전의 가사와 영상을 곱씹어 보면 이 작품이 말하려는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앞서 잠시 얘기했듯이 옴니버스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포치는 기다리고 있다' 4부작이다. 어린 야마다 군과 우정을 맺은 시바견 포치가 계속 주인을 찾아가고 기다린다는 이 에피소드들은,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역시나 평범한 것을 애절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답게 야마다군과 포치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상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포치’시리즈는 그것만으로도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옴니버스라는 형식을 띄고 각 에피소드가 띄엄띄엄 삽입된 것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말해 4개의 에피소드를 한 번에 주욱 감상하는 것 보다 중간 중간 텀을 둔 것이, 결국 더 큰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엔딩 크레딧을 보기 전까지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있잖아, 마리모' 역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포치 이야기'가 <우리 개 이야기>의 중심이라면, 사나다 아쓰시 감독이 연출한 '있잖아, 마리모'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한 번이라도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참기가 쉽지 않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에 물결이다.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사용되었던 자막의 미학을 차용하여,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한 번은 주인인 미카의 입장에서, 또 한 번은 애완견인 마리모의 입장에서 그려낸 이야기는 주인에 입장에서 한 번, 애완견에 입장에서 또 한 번 눈물 흘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너 닮은 강아지 또 키우고 싶어’라는 자막이 흐를 때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만다. 애완동물을 한 번 이라도 키워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나, 더 나아가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냈던 애완동물을 먼저 떠나보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너무도 공감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영화제에서만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우리 개 이야기>는 상당히 수준급의 스펙으로 출시가 되었다.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본편의 영상은 모두 HD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매우 밝고 콘트라스트비가 높은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오히려 너무 깔끔한 영상 때문에 영화적인 느낌이 조금 덜한 편이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잔잔한 드라마인터라 크게 채널 분리도나 강력한 사운드를 필요로 하지 않아 특별히 멀티채널의 장점을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뮤지컬 장면에서는 공간감 있는 서라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스코어나 대사 전달도 선명한 편이다. 서플먼트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음성해설과 더불어 각각 에피소드들마다 메이킹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는 각 배우들과 감독들마다 ‘애완견은 키우는지’, ‘애완견과의 추억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다음 세상에 개로 태어난다면 어떤 개로 태어나고 싶은지’등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여섯 개의 삭제 장면을 수록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짧은 분량의 삭제장면이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와 버금가는 분량의 내용과 화질, 음질을 담고 있어 이 역시도 선택이 아닌 필수 감상코스라고 해야 할 듯하다.


2006.10.18

글 / ashitaka



짝패 (The City of Violence)

류승완, 정두홍 콤비의 리얼 생짜 액션!

류승완 감독은 그리 길지 않은 필모그라피에도 불구하고 자신 만의 색깔로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그의 색깔이란 어떤 것인가. 류승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액션, 이젠 한국 영화에서 액션 영화하면 류승완 감독이 절로 떠오른다. 인디영화이자 화제의 데뷔작이었고, <짝패>와 마찬가지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전도연과 이혜영이라는 두 여배우를 내세운 하드보일드 액션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와이어 액션과 CG를 사용하여 환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던 무협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비롯하여, 승자와 패자가 불분별한 결말을 맺는 드라마 <주먹이 운다>에 이르기까지, 류승완 감독에게는 항상 액션이라는 주요 맹점이 있었다.



이미 여러 인터뷰, 보도자료 등을 통해 그가 예전의 쇼브라더스 무협 액션 영화 등은 물론,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와 같은 성룡의 액션영화, 그리고 <와일드 번치>의 샘 페킨파 감독의 팬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그 동안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그의 성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쉽게 말해 본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정도였다. 류승완 감독 본인에 말 만 따라, 그 동안은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면, 이 영화 <짝패>는 자신이 그 동안 영화감독이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영화,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탄생시킨 영화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이러한 결심이 끝까지 가장 잘 살아있는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짝패>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과 가장 많은 비교를 받곤 하는데, 그건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앞서 얘기했던 류승완 감독이 보아왔고 좋아하는 장르와 감독의 영화들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장르와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비슷한 영화를 좋아하는 감독들이 각각 이런 것이 집약된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 작정하고 만든 영화이니 태생적으로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닐 수밖에는 없었을 터.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이에 대해 밝혔듯이 타란티노의 <킬 빌>은 마지막의 액션 시퀀스에서 좁은 공간에서 시작하여 점점 넓은 공간으로 이동해 결국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인 뒷마당에서 결말지어지는, 즉 액션과 폭력으로 인해 점점 해방되어 가는 결말이지만, 류승완의 <짝패>에서는 넓은 마당에서 시작하여 점점 공간으로, 지하로 이동해 가며, 결국 폭력으로 해방을 얻는 다는 것보다는 복수 뒤에도 해방감을 얻지는 못한 다는 정서를 담고 있다.



<짝패>에서 류승완은 공간을 이용한 액션을 기존 어느 영화보다 더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운당정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좁고 길게 뻗은 공간 일 때와 이후 동그란 형태의 2층 공간에서처럼 공간이 틀려질 때마다 액션의 스타일을 달리 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마치 장철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폭력적인 액션 스타일과 물건을 집어 던지고 구조물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며 발차기를 하는 등, 사물과 장소를 100% 활용하는 성룡 스타일을 장면 마다 각각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액션 장면에서는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엔니오 모리꼬네 풍의 음악이 배경에 흐른다. 이러한 장면 장면의 설정 들은 물론 영화의 기본이 되는 조직과 배신, 복수의 스토리는 흡사 영웅본색을 비롯한 8,90년대 홍콩영화들과 그대로 닮아있기도 하다. 또 무술의 고수인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화려하게 물리친 뒤 나중에 자신들의 실력에 버금가는 고수들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시스템은 홍콩 무협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짝패>는 얼핏 봐서는 짜깁기 영화 혹은 <킬 빌>처럼 오마쥬를 스타일로서 승화시킨 영화로 보기 쉽지만, 많은 스타일을 차용했음에도 전자나 후자에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레 류승완 만의 스타일로(한국적인 토종 액션) 녹여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짝패>는 물론 표면상으로도 류승완과 정두홍 콤비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가 아니라 액션 영화의 감독과 무술감독으로서 각자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투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둘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독과 무술감독으로 혹은 감독과 배우로서 오래 손발을 맞춰왔는데, <짝패>에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듯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테러리스트>를 비롯해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액션 영화의 무술감독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던 정두홍은 류승완 이라는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의 액션 연출에 있어서 두, 세 단계 높은 결과물을 얻게 되었으며, 류승완 감독 역시 정두홍 무술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액션 스타일을 좀 더 구체적이면서 영화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서로에게 날개를 단 겪인 이 두 콤비는 연기적인 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데, 그간 무술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정두홍을 오래 지켜봐왔던 류승완은, 그간 영화에서 어색한 연기로 아쉬움을 남겼던 정두홍을 위해 미리 그를 염두에 두고 '태수'라는 캐릭터를 만든 결과, 정두홍이 연기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캐릭터가 되었다.



사실 정두홍에 한층 자연스러워진 연기보다 더 만족스럽고 놀라운 것은 감독인 류승완의 연기이다. 더 몸이 망가지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이 해보고 싶은 액션 연기를 마지막으로 한 다는 심정으로 연기했다는 류승완은, 이런 말이 무색할 만큼 화려한 발차기를 비롯한 액션 연기는 물론, 그 찰지는 사투리 대사의 소화능력! 정말 중견 연기자들도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사투리연기를 너무도 구성지게 만들어낸 배우 류승완은, <짝패>를 보는 가장 큰 재미이기도 하다. 사실 사투리라는 것이 단순한 코믹적인 소스 정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짝패>에서는 단순히 코믹스러움을 넘어서 리얼함과 스타일을 동시에 살려주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결과물이 되기까지는 대사 연기력만큼이나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 자체가 액션과 비주얼에 중점을 둔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대사들이 짜임새 있게 쓰여 있었으며, 특히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들이 살아 숨 쉰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마치 <범죄의 재구성>의 ‘말빨’을 보며 혀를 내둘렀던 것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된다.
류승완 감독이 <짝패>를 찍으면서 가장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범수 라는 배우의 재발견이었다고 한다. ‘아, 이 배우가 <태양은 없다>에 출연했던 그 이범수였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짝패>는 그간 <슈퍼스타 감사용> 이후 휴먼 드라마나 순하고 착한 캐릭터들 혹은 코믹한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하며 비슷한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던 이범수라는 배우를 다시금 꺼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악랄하고 비열한 미소가 섬뜩하기까지 한 동시에 인간적인 연민마저 느껴지는 ‘필호’ 역할을 연기한 이범수의 재발견 또한 <짝패>가 갖는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 일 것이다.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상급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본래의 소스가 슈퍼16mm였음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본래 HD 디지털 프로젝트로서 저예산의 영화로 계획되었던 영화였으나 이후 점점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이와는 별개로 감독의 의도에 따라 HD 디지털 보다는 슈퍼16mm 카메라가 더욱 영화에 어울린다는 판단 아래 지금에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디지털 후 보정 작업을 거쳤음으로 최신작에 어울리는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액션 영화이긴 하지만 폭발음이나 거대한 소리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음으로 dts와 돌비5.1 채널 간의 큰 차이는 없다.



2장의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출시된 타이틀답게 첫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본편에는 류승완 감독의 코멘터리가, 두 번째 디스크에는 다양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번 서플먼트는 단순히 이 영화 <짝패>에 관련된 영상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류승완과 정두홍의 영화들을 거슬러오면서 이전 영화들에서의 액션과 <짝패>에서의 액션의 차이, 그들이 직접 말하는 자신들의 액션 철학에 관한 이야기 등, 액션 영화에 관한 총체적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기존 서플들이 단순히 제작 다큐라는 이름을 통해 촬영장 스케치, 배우들의 에피소드에 관한 인터뷰 등이 수록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제에 맞춰 두 감독인 류승완과 정두홍이 생각하는 바를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으며, 그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액션영화’라는 장르에 걸맞게, 총체적인 것이 아닌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스킬과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수록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저 촬영 중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하는 영상들이 주를 이뤘던 다른 타이틀과는 달리, 매우 짜임새 있고 유익한 내용들로만 꽉꽉 담긴 터라, DVD타이틀로서 소장가치를 더욱 느끼게 해준다. 특히 카메라 기종, 촬영 기법 등 실질적인 영화적 기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영화의 팬들은 물론 영화 스텝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가 될 듯 하다. 이 밖에도 류승완 감독의 음성해설이 보태진 삭제장면과 추가 장면 등도 빼놓을 수 없으며, 베니스 영화제에 참여했던 영상들도 만나볼 수 있다.

2006.10.11
글 / ashitaka



시대를 개척한 장르 영화 이상의 영화

유명한 수록곡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과 함께 서부영화 팬들은 물론, 예전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라도 알만한 작품 <내일을 향해 쏴라>. 베트남 전쟁과 혼란한 정국 속에 전성기를 누리던 서부 영화의 붐도 종착역으로 향할 때 쯤, 새로운 스타일에 서부 영화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바로 <내일을 향해 쏴라>이다.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틀에서는 벗어난 작품이지만, 오히려 일련의 서부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고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영화적 기법들과 이야기 구조 등으로 인해, 기존 서부 영화 팬들은 물론 모든 영화 팬들에게 어필하고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남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1969년 작으로 개봉한지는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오늘에 비춰보아도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장면들은 물론, 당시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기법들과 스타일들이 넘쳐 나고 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서부 영화이자, 버디 무비이며 추격(Chase) 영화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 부치와 선덴스가 그들을 잡으려는 정예 무리에 쫒기면서 지나치게 되는 로케이션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온통 노랗게 펼쳐진 사막과 애리조나와 콜로라도의 바위산들을 비롯하여 스튜디오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로케이션만의 장점이 극대화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풍경도 풍경이지만 이런 멋진 풍경을 담아낸 감독 조지 로이 힐과 촬영감독 콘라드 홀의 역량도 참으로 대단하다. 특히 지금처럼 첨단을 달리는 촬영 기법이 없었음을 감안하다면 아이디어만으로 멋진 풍경들을 담아낸 것으로 더욱 높이 살만한 장면들이다. 캐릭터들에게 과감한 클로즈업으로 긴장감을 더하였으며, 풍경을 담을 때에는 먼 거리에서 줌 아웃으로 시작하여 줌 인 해가는 방식으로, 장면에 스케일을 더하였다. 초반 사막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언덕진 사막 특유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말을 탄 두 주인공이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면서 말소리를 비롯한 소리들도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를 반복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촬영기법과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낸 멋진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두 주인공을 추격해오는 무리들을 다룰 때에는 아주 먼 거리에서 촬영하는 방식만을 선택하였는데, 이런 촬영기법 역시 오히려 거리를 두어 촬영한 것이 더욱 주인공과 관객을 죄어오는 긴장감을 주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기존 서부 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촬영기법들이 사용된 것은 물론, 영화음악은 여기에 한 발을 더 나아가 더 무모할 수 있는 실험을 감행하였다. 이 영화를 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유명한 수록곡이 흐르는 자전거 시퀀스를 이 영화의 대표 장면으로 기억할 만큼 인상 깊게(혹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보았지만, 당시로서는 다른 영화도 아닌 서부 영화에서 스코어가 아닌 노래가 등장하는 것은 굉장한 실험이었다. 특히나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제목과 가사 (빗방울이 내 머리위로 떨어진다는...)는 더더군다나 모험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노래를 넣자고 했을 때, 음악감독인 버트 바차라크 또한 이것이 자신의 커리어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기도 했을 정도였고(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처럼 이 곡은 그의 커리어의 대표곡이 되었다), 로버트 레드포드를 비롯한 배우들 또한 이 시퀀스를 불쾌하게 여기거나 빼달라고 요구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조지 로이 힐의 선택은 적중했으며, 배우와 스텝들이 우려하고 어쩌면 감독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았을 이 선택은 이 영화를 명작에 반열에 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얘기할 때 대부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평화스런 이 시퀀스를 떠올리니 말이다.




이 자전거 시퀀스 외에도 볼리비아에서 강도짓을 벌이며 지내는 날들을 표현할 때, 대사 없이 보사노바 풍에 음악만으로 처리한 것은 정말 멋진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어둡지 않고 밝고 빠른 리듬을 통해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는 한 편, 중간 중간 세 주인공 사이에 감정들이 교차 할 때는 음악을 템포를 늦춰 대사가 없음에도 관객들이 주인공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한 이런 구조는, 이 영화의 백미다. 이 장면 외에 세 주인공이 볼리비아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역시 스틸 사진과 음악만으로 처리한 시퀀스 역시, 조지 로이 힐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만약 이 두 시퀀스를 지금처럼 처리하지 않고 일반 적인 영화들처럼 음악 없이 대사들로 처리했다면, 아마도 <내일을 향해 쏴라>가 지금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지금 봐도 멋진 이런 영화적 기법들은 당시로서는 난해할 정도로 새로운 것으로(특히나 서부 영화에서는), 모험수가 있었던 선택이었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두 주인공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를 빼놓고는 절대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본래 이 영화의 두 주인공으로 거론되었던 배우는 폴 뉴먼과 스티브 맥퀸 이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톱 스타였던 두 배우를 한 영화에 출연시키려던 스튜디오에 생각은,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요청으로 인해 결국 당시로서는 신예라고 할 수 있었던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돌아갔다. 스티브 맥퀸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남자 배우라고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맥퀸 보다는 레드포드가 선덴스 역할을 맡은 것이 오히려 나았던 것 같다. 물론 스티브 맥퀸과 폴 뉴먼은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서로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으나, 스튜디오 측에서는 두 배우의 이름 중 누구를 먼저 크레딧에 올릴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두 대스타가 공존하기에는 미묘한 문제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 관객들은(필자를 비롯하여) 브래드 피트, 조니 뎁 등 남자 배우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아마도 이 영화를 보게 된다는 폴 뉴먼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멋진 배우인지 알게 될 것 같다. 특히나 최근 할아버지가 되어 출연한 영화들만을 보았던 젊은 관객들에게는 꼭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폴 뉴먼은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첫 장면, 갈색 톤으로 채색 된 화면 속에서 말없이 등장하여 이곳저곳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폴 뉴먼이라는 배우가 참 멋진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부치 캐시디 역할이야 말로 폴 뉴먼의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었던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폭스의 새로운 컬렉션인 ‘시네마 리저브’ 시리즈의 첫 번째 출시작으로 출시된 <내일을 향해 쏴라 SE>는 고품격을 지향하는 컬렉션의 모토답게 깔끔한 패키지와 더불어 수준급의 스펙을 수록하고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에 가까운 수준 높은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높은 컨트라스트비로 날카로운 화질을 선보이며 먼 풍경을 담은 장면에서는 극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지는 못했지만, 본 소스를 감안한다면 DVD로서 담을 수 있는 최상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영화 속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화질과 본편에 화질을 비교해보자면, 본편 화질을 우수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후반부의 총격 씬 등에서 5.1채널 사운드가 지원되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2.0채널로도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깔끔한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시네마 리저브 컬렉션의 장점은 무엇보다 서플먼트에 있을 것이다. 2장에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은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 조지 로이 힐, 주제가 작사가 할 데이비드,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크로포트 주니어, 촬영 감독 콘라드 홀 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과,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골드만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 등 총 두 개의 코멘터리를 수록하고 있다. 배우들이 참여한 코멘터리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여러 기법들과 우수함에 대한 장본인들에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풍부한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작비화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니라 스티브 맥퀸이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본래 영화 제목은 ‘Butch Cassidy & The Sundance Kid’가 아니라, ‘Sundance Kid & The Butch Cassidy’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제작비화들은 이 영화를 최근에 접하게 되는 이들에게는 물론이요, 예전 극장에서 보았었던 이들에게도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를 다들 할아버지들이 된 스텝들과 배우들을 통해 전해 듣는 색다른 시간이 될 듯 하다.



'The Truth Tale of Butch & Sundance'에서는 실존인물이었던 두 인물과 영화 속 이야기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들려준다. 실존 인물이었던 부치 캐시디와 선덴스 키드에 관한 이야기는 이에 관해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많을 정도로 상당히 흥미 있는 역사인데, 그 중에서도 부치 캐시디가 실제로 볼리비아에서 죽었는가 하는 것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이 같은 조금이나마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조지 로이 힐 감독은, 결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마지막 장면으로 멋지게 마무리한 것이다. 사실과 영화 속을 비교하는 서플에서는 이외에도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볼리비아 도착했을 때 부치와 선덴스가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볼리비아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둘 모두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잠시 일한 것으로 나오지만 둘 모두 탄광에서 2년 정도 일하기도 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밖에 영화에 관한 배우와 스텝들, 역사학자 등의 주요 인터뷰가 담겼으며, 1994년에 제작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역시 94년 제작된 7개의 인터뷰 클립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음성해설이 포함된 삭제장면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들려주는 조지 로이 힐 감독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다른 버전의 크레딧 롤, 3가지 버전의 극장용 예고편 등이 수록되었다.

 

2006.10.04

글 / ashitaka



근래 최고의 스타일리쉬 액션스릴러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에 손을 담근 주인공이나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마피아 세력, 그리고 이들의 약점을 잡아 거래를 하는 경찰 등 이런 식의 범죄 액션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어왔다. 여기에 스릴러 장르의 맛과 반전의 묘미를 추가한 액션 영화들도(결국 사건에 범인이 누구였는지 혹은 누가 배신하게 되는지 등) 최근 들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이런 비슷한 유의 영화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 ‘러닝 스케어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턴가 스타일리쉬한 액션 영화에 개봉 홍보 문구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한 마디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도 훈장처럼 타란티노의 칭찬 문구가 겉을 치장하고 있다.



스타일리쉬 하다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영상, 그 중에서도 카메라웍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웍에 있어서 ‘러닝 스케어드’는 동일 장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영상을 선사한다. 감독 중에는 한 장면을 여러 대의 카메라의 동원하여 촬영한 뒤 편집 시에 가장 좋은 영상을 본편에 수록하는 경우와(최근의 경향) 카메라 한 대로 원하는 영상만을 롱 테이크로 촬영하는 경우가(고전적인 방식) 있는데, 보통의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담은 영화에서는 전자의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전환이 빠르고 더 많은 양의 영상과 좋은 구도를 담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조합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닝 스케어드’의 감독인 웨인 크레머는 고전적인 방식을 선택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멋진 영상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이런 방식으로도 긴박감 넘치고 ‘때깔’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촬영 자체의 기술 못지않게 시나리오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영화가 한 대의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는 촬영 방식을 사용했음에도 멋진 영상을 만들어낸 데에는, 감독인 웨인 크레머가 연출 뿐 아니라 시나리오도 직접 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장면 장면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구도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매우 세밀한 카메라웍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영화 초반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빠져들게 만드는 좁은 방에서의 총격 씬은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카메라웍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멋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러닝 타임 거의 내내 등장하는 멋진 차를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멋진 차를 더욱 멋지게 그려낸다. 그리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거리에 어스름한 불빛과 네온 사인 등 조명의 효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충격적인 내용만큼이나 인상 깊은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식스센스’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이른바 ‘반전’ 영화들 덕택에 요즘 관객들은 여느 반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와일드씽’처럼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치를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영화들도 등장하는 한 편, 영화의 10분만 보고도 반전을 눈치 챌 수 있는 영화도 생겼고, 마침내 반전이 공개되었을 때에도 놀라움 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들도 속출했다. 사실 이런 경향이 팽배한 최근에는 ‘반전’이라는 홍보 문구만 봐도 기대와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러닝 스케어드’는 이 같은 기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보다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통해 엄청난 반전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극의 연결과 해결이 적당히 자연스러울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소소한 트릭들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반전에 실망한 이들의 아쉬움마저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패스트 앤 퓨리어스’ 시리즈를 통해 빈 디젤과는 또 다른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폴 워커는 ‘러닝 스케어드’를 통해 단순히 멋진 몸을 위주로 한 액션만이 아니라 극 연기에도 훌륭한 재능이 있음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여전히 액션이 많은 스릴러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단연 폴 워커의 실감나는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 마치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조이’의 캐릭터는 폴 워커의 남성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극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역시 폴 워커에게는 ‘에이트 빌로우’처럼 가족영화가 아닌 이런 고생하는 영화가 어울린다). ‘갓센드’를 통해 할리조엘 오스먼드와는 또 다른 공포물의 아역 캐릭터를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던 카메론 브라이트 연기도 인상적이다. ‘갓센드’의 공포스러움이 연상되는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런 표정의 ‘올렉’ 역할을 맡은 카메론 브라이트는, 그 특유의 표정만으로도 이 영화에 스릴러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하게 했다. 이 밖에도 부패한 경찰 역할로 멋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체즈 팰민테리와 이 영화를 통해 인상적인 연기력과 매력을 알게 된 테레사 역할의 베라 파미가의 연기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듯.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러닝 스케어드' DVD는 1장으로 출시된 것에 비하며 비교적 영양가 있는 서플먼트와 스펙을 수록한 타이틀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답게 수준급의 화질을 담고 있는데, 어두운 조명에 장면이 많았으나 암부 표현 정도도 수준급이어서 시청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DTS-ES 6.1채널의 사운드는 레퍼런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준급이다. 특히 영화 초반 총격 씬에서의 채널 분리도는 근래 본 타이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다 채널을 활용하고 있는 장면으로 여겨진다. 총 소리와 차 엔진 소리 등은 우퍼 스피커를 통해 더욱 묵직하게 전달되며, 큰 소리에 가려모르고 지나치는 미세한 생활 소음들도 매우 세세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을 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우수하다. 아무래도 돌비디지털 5.1채널 보다는 DTS-ES 6.1채널이 더욱 긴박하고 박진감있는 본편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서플먼트로는 감독인 웨인 크라이머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필름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 치고는 불필요한 서플이 없이 알찬 영상들을 담고 있다. 특히 감독의 음성해설에서는 70,80년대 유행했던 범죄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와 더불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존 웨인을 숭배하는 계부 캐릭터를 위해 실제 존 웨인의 아들에게 허락을 받기도 했다는 에피소드 같이 음성해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정보들도 가득하다. ‘거울을 통해 본 모습’이라는 제목의 메이킹 영상에서는 주 조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특히 이 메이킹 영상은 와이드스크린으로 수록되어 있어 더욱 반갑다 (감독의 인터뷰 장면에서는 본편과도 같은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이 밖에 한국과 미국 버전의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었다. 메이킹 영상만 수록된 서플먼트가 조금 아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비교적 짜임새 있는 메이킹 영상과 더욱 흥미로운 음성해설은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충분할 듯 하다 (참고로 영화가 끝난 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일러스트로 요약하여 펼쳐지는 엔딩크래딧을 놓치지 말 것).
 
2003.06.27
글 / ashitaka



두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한 남자는 식물인간인 한 여성을 극진히 간호하고 매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한 남자는 똑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그녀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우정과 사랑의 묘한 감정 선을 아우르는 걸작.
 
Synopsis
 
오랫동안 아픈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보살펴왔던 베니그노.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우연히 창 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발레학원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는 알리샤를 발견한다. 환한 봄 햇살처럼 생기 넘치는 알리샤. 베니그노는 창문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비가 오던 어느날, 알리샤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간호사였던 베니그노는 그런 알리샤를 4년동안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는 알리샤에게 옷을 입혀주고,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해주고, 책을 읽어주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 잡지 기자인 마르코는 방송에 출연한 여자 투우사 리디아에게 강한 인상을 받고 취재차 그녀를 만난다. 각자 지닌 사랑에 대한 기억과 상처를 가슴에 묻고 있는 두 사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해 주는 사이 그들은 사랑에 빠지지만, 리디아는 투우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다. 그녀의 곁에 남아 그녀를 돌보기 시작하는 마르코. 그러나 마르코는 그녀와 그 무엇도 나눌 수도 없음을 괴로워한다.



두 남자는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들을 통해 병원에서 다시 만난다. 함께 그녀들을 돌보고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두 사람. 하지만 알리샤가 살아있다고 느끼고 지극한 사랑을 전하는 베니그노와 달리, 마르코는 리디아와 더 이상 교감할 수 없음에 절망한다. 몇 달 후, 그녀의 사망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마르코는 베니그노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를 찾아가는데...
 
아름다운 사랑인가 아님 스토커의 집착인가
 
[그녀에게]에 쏟아지는 찬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감성과 영화적 능력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부었고, 관객 대부분도 지루해 할 수도 있는 이 영화에게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필자도 기본적으로는 참으로 인상적인 영화라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던 중, 어느 한 잡지에 기고한 여기자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기사의 내용의 핵심은 [그녀에게]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여성에 대해 진지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에는 ‘그녀’의 의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식물인간이 된 두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두 남자의 얘기는, 요즈음에는 찾아보기 힘든 섬세한 감정묘사와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정작 그 모든 일들은 ‘그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 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러한 반론의 입장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지만, 필자 개인의 생각은 그래도 엄지손가락을 꼽고 싶다.



알모도바르의 놀라운 영화적 기술

알모도바르의 놀라운 감성적 기술은, 그의 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인정할 수밖에는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다. 커다란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한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간 것이 일단은 첫 번째 재주라 하겠다. 영화는 아무리 이른바 ‘예술영화’를 표방한다 해도, 어차피 대중 예술이다. 그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감독은 자신이 가진 철학과 논지를 대중에게 어렵고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는데, 그러한 점에서 알마도바르는 거의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여준다. 단지 네 인물의 관계 설정과 감정의 교류만으로도(그것이 일방적이던 상호적이던 간에), 영화 하나를 훌륭하게 완성시킨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에게]는 대체적으로 식물인간이 된 여성에게 바치는 남성의 감정에 집중된 영화로 보이지만,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다른 면에 더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그건 바로 두 남자 주인공인 베니그노와 마르코의 관계이다. 전혀 상관이 없던 두 남자가 ‘그녀’로 인해 서로를 알게 되면서 나누게 되는 우정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하 속에서 두 남자가 나누는 우정의 감정은 일반적인 우정의 개념과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데,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여기서 사랑에 의미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의 의미로 쓰였다)관계로서, 친구를 위해 목숨 바치는 우정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수준급의 타이틀
 
[그녀에게]타이틀은 [반지의 제왕 확장판]같은 대형 타이틀들과 견주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감히 수준급의 타이틀이라 불릴 만하다 먼저 화질과 음질을 살펴보자. 화질은 2.35: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제공하고 있는데, 투우 장면에서는 분홍빛 천의 색감과 아울러 투우사 특유의 복장에서 묻어나는 화려한 색체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전체적으로도 선명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사운드는 돌비 디지털 5.1채널을 제공하고 있는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삽입된 피나 바우쉬의 무용 장면과 브라질 음악 하면 떠오르는 카에타노 벨로소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특히 벨로소의 공연 장면은 [그녀에게]사운드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서플먼트도 제법 다양하게 수록되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감독인 알마도바르의 음성해설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타이틀의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그 외에도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이 배우별로 나뉘어져 있어서 선택하기에도 간편하다. 그리고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영화의 다양한 포스터 갤러리, 스텝과 배우들의 프로필 등등 유용한 부가영상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판 한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별도로 구매하려고 했던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2003.06.27
글 / ashitaka


"삶은 우리를 가르칠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혼동하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바꿔놓을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상처 입힐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치유할 방법을 알고 있다. 삶은 우리를 고무시킬 방법을 알고 있다."
 
Story...
 
17세의 동갑내기 테녹과 홀리오. 테녹은 멕시코에서 알아주는 갑부집 아들이고, 홀리오는 그저 그런 집안 출신이다. 하지만 그런 건 둘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막 섹스에 눈을 뜬 그들에겐 각자의 여자친구와 그걸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서로 못 만나는 동안 정조(?)를 지키기로 약속했건만 남겨진 테녹과 홀리오, 그 동안을 못 참고 터질 듯한 그것을 발산할 대상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테녹의 집에서 성대한 결혼 파티가 열리고, 거기서 테녹과 홀리오는 아름다운 연상의 여인 루이자를 만난다. 둘은 그녀의 미모와 분위기에 반해 '천국의 입'이란 해변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알폰소 쿠아론의 재주는 인정해야 할 듯
 
에단 호크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위대한 유산]의 감독으로 우리에게 더욱 더 잘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영화 [이투마마]이다. 원제목인 '너의 엄마도(And Your Mother Too)'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성(性)의 관한 이야기를 직설적이고도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성(性)에 관해 눈을 떠가는 두 십대 소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구성원의 조합이 일단 심상치가 않다.



두 십대 소년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이들과 함께 한 것이 그들의 친척의 아내이기도 한 유부녀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위에 이미 언급하였듯이 '너의 엄마도'라는 원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정상적이기보다는 혼음과 동성애 등 비윤리적인 코드들을 등장시키며, 반대로 인간의 윤리의 대한 문제에 대해 깊게 파고들고 있다.



[이투마마]는 일반 대중들보다는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는데, 겉보기엔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드라마적 요소와, 코믹, 에로틱, 도덕적 요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관한 추억과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요소까지 모두 한 작품 속에 담아냈다는, 말 그대로 극찬을 쏟아냈다. 이러한 평론가들의 극찬은 그대로 각종 영화제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2001년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과 신인남우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이 그 예이다. 평론가들에게 더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하였지만, 외국어 영화치고는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플 속에 단편 영화 한 작품이 더!
 
타이틀을 플레이어에 실행시키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메인 메뉴 화면이 일단 참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메인 메뉴의 디자인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 영화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돋보이는 타이틀 메뉴라고 생각된다. 화질은 16:9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제공하고 있고,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로 전해지는 라틴, 록, 힙합 등 다양한 음악들도 영화를 더욱 더 감각적으로 감싸고 있다. 서플먼트로는 삭제장면을 담은 'Deleted Scenes'과 제작 과정을 감독의 코멘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TV와 극장용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카롤로스 쿠아론의 단편 영화 'Me La Debes'도 수록되어 있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나한테 빚진 거야'라는 말이 참 인상 깊게 남는 작품으로 쏠쏠한 재미를 준다.




2003.04.12
글 / ashitaka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조심해주세요^^)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화약 음모 사건. 그 사건은 결코 잊혀 져선 안 된다.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The Gunpowder Treason and Plot
I Know of no Reason Why the Gunpowder Treason
Should Ever Be Forgot)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극중 ‘이비’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브이 포 벤데타’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그 화제의 주된 목적은 바로 ‘매트릭스’제작진이 만든 영화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홍보 문구가 번잡스럽게 치장하고 있는 영화들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사실상 회자되는 영화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담당한 경우가 아니거나, 매우 극소수의 스텝이라 ‘...팀’이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오히려 이런 홍보 문구들이 영화의 본질은 재껴두고 잘못된 기대심만 부추겨 영화자체의 평가를 시작부터 몰살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명실상부한 ‘매트릭스 팀’이 만든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감독을 비롯해 매트릭스의 우수한 주요 스텝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조 감독이었던 제임스 맥티이그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워쇼스키 형제는 제작은 물론 원고의 초안을 쓰기도 했고, 매트릭스 세계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담당했던 프로덕션 디자이너 오웬 페터슨이 ‘브이 포 벤데타’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나중에 서플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다시 언급하겠지만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한 조엘 실버가 제작을 맡고 있다 (심지어 서플먼트를 잘 살펴보다보면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대역을 맡았던 배우가 스턴트맨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 또한 엿볼 수 있다).



분명 진정한 ‘매트릭스 팀’이 만든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이번 경우에도 이 홍보문구는 조금의 잘못된 기대를 불러일으킨 경우가 될 듯하다. 물론 매트릭스 시리즈가 단순한 SF액션물이 아닌 ‘생각하는 SF’라는 평처럼 철학적인 내용과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배경지식을 동원하는 작품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매트릭스 팀이 만든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SF액션을 기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브이 포 벤데타’에도 액션이라 불릴 만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액션’은 양념일 뿐, 영화의 장르는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영화의 바탕이 되는 사건은 바로 1605년 11월 5일, 무정부주의자 가이 포크스가 영국의 제임스 1세 정부의 독재체재에 반하여 의회를 폭파시키려다 실패, 처형된 일명 ‘화약 음모 사건’이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획일화 되고 자유가 탄압받는 사회에 ‘브이’라는 남자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 다시 한 번 세상에 이 사건을 되새기고, 의사당을 폭파시키겠다고 알리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코믹스였던 원작이나 영화인 ‘브이 포 벤데타’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성향이 이전 영화들에게서 전혀 없던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전에도 정부의 음모론이나 억압되고 패쇠된 사회에서 이에 항거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많은 돈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특히 9/11 이후 테러에 관해 몹시도 조심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2005년과 2006년에 들어오면서 점차 조금씩 테러와 관련한 영화들이 조심스레 차츰 늘어가고 있지만, 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내용은 어찌 보면 너무도 직설적이다. 몇 가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정치적인 설정들을 말해보자면, 그 첫 번째로는 먼저 미국이 몰락한 세계정세에 있다. 영화는 미국이 일으킨 3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미국이 아닌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텍스트가 이런 설정을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놀랍다(물론 여기서 ‘놀랍다’라는 것은 메이저 제작사에서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전제하에서 더욱 그렇다. 서플을 보다보면 제작자인 조엘 실버가 이런 영화를 가능케 해준 워너브라더스의 용기에 감사한다는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이 영화에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독재체제와 은폐되고 음모로 가득 찬 정부의 모습에 있다. 9/11의 충격이 가실 즈음 여러 저널리스트나 의식 있는 작가들은 이 사건에 얽힌 음모론에 관해서 조사하고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기에 이르렀는데, 그 중 아마도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들 수 있겠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음모론에 근거하여 부시 행정부를 조롱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최근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 (Loose Change)’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방법으로 소름 돋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간단히 종합해보자면 9/11 참사는 결국 사고가 아닌 미 정부의 치밀한 계획 아래 치러진 계획범죄라는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이런 음모론이 나돌던 시기에 비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극중에서 독극물로 인해 수만 명이 죽게 된 사건이 결국 정부의 음모였고 이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이러한 설정 자체가 9/11 이후 계속되는 음모론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 영국 의회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은, 9/11 이후 테러와 관련된, 특히 건물 폭파 등에 관련된 장면에 대해 굉장히 조심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정말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단순한 정치 원리와 자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설정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된 것 같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탄압받고 획일화된 사회를 그려서 인지, 건물을 비롯한 배경의 디자인은 어두우면서도 고풍스런 16~17세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미장센은 영화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임에도 ‘가까운 미래’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브이 포 벤데타’가 고급스러우면서 멋스러운 영화로 기억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V 역할을 맡은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라고 생각된다. 이미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도 ‘엘론드’ 역할을 맡아 멋진 내레이션을 선보인바 있는 그는, 영화 내내 마스크를 쓰는 탓에 목소리가 매우 중요한 V 역할을 맡아 또 한 번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평소에 대화 투에서도 멋진 목소리는 빛이 나지만, 연설이나 설교하는 장면들에서는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흡입력 강한 어조와 목소리로 관객들을 손쉽게 사로잡고 만다. 사실 러닝 타임 내내 웃는 얼굴의 마스크로만 비춰졌던 V의 표정이 지루하지 않고 계속 다르게 느껴졌던 데에는 휴고 위빙의 멋진 목소리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삭발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삭발에 관한 이야기만 화제가 된 것이 억울할 정도로 그녀의 영화 속 연기는 매우 뛰어났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평범한 방송국 직원이었던 ‘이비’가 압제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를 갖는 캐릭터로 변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며,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멋진 작품을 남겼다. 핀치 경감 역할을 맡은 스티븐 레아도 빼놓을 수 없는데, 바바리를 입은 모습과 헤어스타일, 표정 등은 정말로 핀치 경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한 모습과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느와르 영화와 형사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사실 이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V나 이비가 중심이 아니라 V가 일으킨 하나의 사건을 통해 수사를 거듭하여 결국 정부의 거대한 음모를 파해 치게 되는 핀치 경감 주연의 스릴러물로 볼 수도 있는데, 여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스티븐 레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셔틀러 의장 역의 존 허트, 디트리히 역의 스티븐 프라이, 루이스 프로더로 역의 로저 알람, 딜리아 역의 시네드 쿠삭 등 여러 중견 연기자들이 멋진 연기를 펼쳤다.



‘브이 포 벤데타’ DVD는 한정판과 일반판으로 나뉘어 출시되었는데, 특히 한정판은 이전 폭스의 ‘킹덤 오브 헤븐 DE'에서 사용되었던 슬림 틴케이스가 사용되어 소장가치를 더하였다. 2.3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답게 우수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조명이 어두운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암부 표현력이 최고라고 말하긴 어려운 수준이지만, 평균 이상이며 감상에 지장을 주거나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다. 어두운 장면이 많은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영화에 사용된 색들 또한 회색이나 검은색, 짙은 갈색 등 화려하고 다양한 색들 보다는 적은 수의 어두운 색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에 대비되는 짙은 붉은 색 등의 표현은 평균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는 최신작에 걸 맞는 우수한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초반과 후반의 폭발 장면에서 더 웅장한 폭발음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나 워너에서 DTS를 수록할 일은 아마도 없을 듯하니, 현재의 돌비디지털에 만족해야 할 듯(절대 돌비5.1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님). V가 격투 중 단도를 휘두르고 던질 때에는 선명한 채널 분리도를 느낄 수 있으며, 쉐도우 갤러리에 흐르는 줄리 런던의 'Cry Me a River'도 공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혹자는 센터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V의 대사전달이 조금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V의 대사 자체가 마스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사운드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2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따로 수록되었는데, 최근 출시되는 타이틀의 경향으로 보았을 때 ‘브이 포 벤데타’ 정도의 타이틀에 감독이나 배우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지 않은 것이 먼저 아쉽다. 'Designing the Near Future'에서는 감독 제임스 맥티그와 제작자 조엘 실버,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등이 출연하여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등장한 89개의 세트와 베를린을 비롯한 로케이션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Remember Remember : Guy Fawkes and the Gunpowder Plot'에서는 디트리히 역의 스티븐 프라이와 프로더로 역의 로저 알림의 소개로 가이 포크스에 관한 이야기를 짧지만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관련한 저서를 쓴 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가이 포크스의 의회 폭파 시도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의와 16,17세기의 사회적 배경에 관해 들려준다. 영국 내에서는 가이 포크스와 이 사건이 제법 인지도가 있지만, 사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은 국내에서는 매우 유익한 영상인 듯하다. 'V for Vendetta and the New Wave in Comics'에서는 원작인 DC코믹스의 그래픽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원작 자체가 당시 코믹스에서는 없던 것들을 시도한 창시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밖에 사운드 트랙 광고 화면과 만화를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 영화에 삽입되었던 Cat Power의 뮤직비디오, 극장 예고편 등이 담겨있다.

2006.07.20
글 / ashitaka



아래는 보너스 캡쳐



단순 엽기 발랄뿐이 아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 <워터보이즈>는, 겉보기에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싱크로 나이즈를 한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유쾌, 발랄, 엽기 코미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단지 그것 뿐은 아닌 작품이었다. 그것은 현재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가 있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어린(?)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웃음에 포인트가 억지스럽지 않으며 왠지 모르게 인물들에 동요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소소한 감동까지 전해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워터보이즈>의 여학생 버전이라는 조금은 오버스런 홍보 문구와 함께 2006년 국내에 개봉했던 <스윙걸즈>(일본 개봉은 2004년)는, 오히려 <워터보이즈>보다 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야구치 감독의 대표작이 되었다.



<스윙걸즈>는 조금만 보아도 금세 야구치 감독의 영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워터보이즈>를 비롯 <비밀의 화원>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등에서 보여주었던 야구치 특유의 만화적인 상상력이 동원된 장면들이나 인물들, 상황설정, 특히 다른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의 독특한 표정 하나 하나는 <스윙걸즈>에서 거의 경지에 오른 무르익은 연출력을 선사한다. 마치 만화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이라기보다는, 만화만이 갖는 장점을 영화라는 다른 장르에 자연스레 융화시킨듯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이러한 요소가 대표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멧돼지 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비슷한 시퀀스가 등장하여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시퀀스는, 그야말로 작정하고 만든 장면이다. 처음 이 장면을 보게 되면 CG를 사용하여 작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 장면은 감독의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낸 멋진 장면이다. 장면 속 배우들은 별다른 기술에 도움을 받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었을 뿐이며(잘 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예전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코너 ‘추억은 방울방울’과도 같이, 움직이는 듯 한 멈춤 자세와 순간 포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코믹한 표정들, 그리고 여기에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야구치 감독의 영화들에서 만나볼 수 있는 궁극의 표정들!

<스윙걸즈>가 야구치 감독의 전작들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은,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음악영화라는 것에 있다. 여기에 다른 음악영화들과 크게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영화 속 연주를 배우들이 직접 소화해냈다는 점이다(최근에는 'Walk the Line'의 호아퀸 피닉스의 경우도 그렇고 직접 소화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음악영화의 경우 영화 속 노래나 연주를 배우들이 실연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사실 단순한 차이를 넘어서서 굉장한 차이를 갖게 하는 요소이다. 특히 이 영화처럼 배우들이 모두 어린 소년, 소녀들로 이루어진 경우에 이 차이는 더 크게 작용할 터. 영화 속 캐릭터처럼 실제로 연주를 하나하나 배워가며 겪는 어려움을 체험하고, 나중에 비로소 멋진 연주를 하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희열은, 아무리 배우가 직업이라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14명의 배우들의 대부분이 실제로 악기를 처음 연주하고(밴드의 일원들 가운데 주연 배우 5명은 악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 초보였으며, 나머지 멤버들 중 몇 명은 그래도 각자 연주 경험들이 있는 경우였다), 영화 속 캐릭터들보다도 더 많은 노력과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정된 시간 안에 악기를 다룰 수 있게끔 하려는 노력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그리 유쾌하고 즐겁기 만한 시간들은 아니었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연주할 때의 몸동작이나 표정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연주를 하며 본인이 재미와 흥을 느끼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배우들이 실제로 연주한 장면들은 이 영화에 가장 큰 자랑거리인 동시에 영화를 한층 더 재미있고 멋지게 그려내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에도 비슷한 시퀀스가 삽입되어 더욱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멧돼지씬'!'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배우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알려진 우에노 주리는,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이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오디션을 본 뒤 ‘바로 토모코다!’하고 다들 생각했을 정도로 엉뚱하고 게으르지만 사랑스러운 토모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 영화의 주연을 꼽으라면 우에노 주리를 비롯, 히라오카 유타, 칸이야 시호리, 다케나카 나오토, 모토카리야 유이카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중에 차이만 있었을 뿐 '걸즈 (and the boy)'라는 타이틀처럼 14명의 배우 모두를 소중하게 다뤄야 할 듯싶다. 특히나 DVD에 수록된 서플먼트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은 더할 듯싶다.



최근 출시된 DVD타이틀은 일본에서의 제작년도와 비교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 출시된 것이지만, 국내 개봉일과 따져보자면 제법 빠른 시간 내에 출시되었다고 하겠다. 총 2장에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은, 영화의 재미만큼이나 재미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었다. 재미있는 서플먼트를 살펴보기에 앞서 화질과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 치고는 조금 부족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감상에 불편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신작임을 감안한다면 일부 노이즈가 발생하는 등 최상에 퀄리티를 수록하였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극선명한 화질이 수록되지 않은 점은 영화의 분위기상 어울리는 부분도 있으니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닌 듯하다.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매우 만족스럽다. 센터스피커를 통한 대사의 전달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연주 장면에서 웅장한 사운드를 전달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Mexican Flyer' 의 도입부분에서는 그 강력함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DVD타이틀이 만족스러운 것은 바로 서플먼트에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2가지 종류의 음성해설과 각종 예고편들이 실렸는데, 오랜만에 보는 2가지 이상에 음성해설이라 우선 반갑다. 첫 번째 트랙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과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그리고 타케다 유코 아나운서의 설명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트랙은 감독과 나머지 걸즈의 멤버들, 타케다 유코 아나운서가 참여하였다.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주축이 된 음성해설인 만큼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더불어 색다른 재미를 맛 볼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매우 짜임새 있는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메이킹 필름은 30분 가량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이지만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한 영상들을 담고 있다. 14명 배우들이 연습하는 과정은 영화 보다 더한 감동을 전해준다. 또한 메이킹 영상 시작부분에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엑스트라에 가까운 비중을 갖은 배우들까지 한 명 한 명 소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메이킹 필름 자체가 하나의 작은 ‘스윙걸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상이다.



‘스윙걸즈 만드는 법’에서는 감독과 제작자가 말하는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와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배우들의 오디션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처음에 어느 시골의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재즈 밴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감독의 말과 이후 캐스팅에서 연주와 연기가 함께 가능한 배우들을 찾지 못해 결국에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캐스팅 한 뒤, 연주실력이라고는 전무한 배우들을 데리고 막막한 상황에서 영화를 시작해야 했던 제작자의 고민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배우들이 직접 말하는 연습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캐릭터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 조명, 세트 디자인에 관해 담당 스텝들이 전하는 에피소드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신호등에서 시작된 주인공 5명의 유쾌한 이동장면에서 아파트 앞을 지날 때에 베란다에 나와 있던 인물들이 다른 엑스트라들이 아닌 걸즈들이 아줌마 변장을 하고 등장했다는 사실과, 피트병을 무섭게 빨아드리는 장면과 엘피판이 굴러가는 장면, 공에 눈을 맞아 심하게 부은 장면 등 영화 속에서는 금방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이 의외로 많은 노력과 기술이 투자된 장면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멧돼지 씬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수록되었다. ‘스윙걸즈 만드는 법’의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본편처럼 넷 킹 콜에 LOVE에 맞춰 스텝들이 멋진 에필로그를 장식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일 듯. 이밖에 ‘로케이션 촬영지 탐방’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과 장소의 헌팅 계기와 이유 등이 담겨있다.



'영화 속 연주 장면은 모두 배우들이 실제 연주한것이라는 사실!'

서플먼트 가운데 메이킹 필름이 흥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면, 'Side Stories'에 수록된 단편들은 마치 스윙걸즈 외전을 보는 듯한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 일반적으로 DVD에 수록되는 단편들이 감독의 전작들이나 관련된 단편들이 수록되는 것과는 달리, 본편에 출연했던 캐릭터들이 그대로 등장해 갖가지 다양한 다른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 중에서도 드러머인 나오미 타나카의 눈물겨운 다이어트 의지를 엿 볼 수 있는 단편 ‘하루’와 조용조용한 캐릭터인 세키구치가 주연인 ‘플라잉’은 혼자 보는 가운데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수록하였다. 그 밖에도 5개의 단편들은 모두 나름대로 본편에 버금가는 재미와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로 이번 DVD에 보석과도 같은 서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Secret Clips'에서는 엔딩 크레딧인 L-O-V-E에 풀 버전과 영화에는 수록되지 않은 다른 버전, 그리고 애니메이션 버전이 수록되어 골라보는 재미를 준다. 그리고 포크듀오로 재결성한 그들의 곡 ‘실연해도 러빙 유’의 풀 버전도 만나볼 수 있으며, 몇 가지 미 공개씬과 NG컷 등을 담은 Outtake 모음도 수록되었다.



이 밖에 'Music'에서는 각 악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걸즈 멤버들이 직접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Cast'에서는 한 명 한 명 짧지 않은 분량의 자기소개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주연 배우들 외에 다른 멤버들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2006.06.05
글 / ashitaka



데스티니스 차일드 (Destiny's Child)는 R&B를 베이스로 팝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미국출신의 그룹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3인조의 데스티니스 차일드이지만 본래는 4인조 그룹으로 1988년 데뷔했다.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은 싱글 'No, No, No'가 싱글차트 3위, R&B차트 1위를 기록하며 주목을 끌었고 특히 영화 <맨 인 블랙>의 사운드트랙에 'Killing Time'이라는 곡이 수록되면서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집 앨범 'The Writing's On The Wall'에서는 팬들에게 익숙한 'Say My Name'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서포모어 징크스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Say My Name'은 유명 프로듀서 로드니 저키스가 프로듀싱을 맡았고, 다른 곡들에서는 와이 클라이프 진, 대릴 시몬스 등 유명 프로듀서, 작곡가들의 참여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이후 2001년 발매된 3집 'Survivor'부터는 4인조에서 비욘세 놀즈, 켈리 롤랜드, 미셸 윌리엄스의 3인조로 재편성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첫 싱글 'Survivor'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곡 중 하나로, 극적인 비트와 구성으로 이루어진 그녀들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다른 수록곡 'Independent Women Part 1'은 그녀들의 이미지와도 흡사한 영화 ‘미녀 삼총사’에도 사용되며 2집 앨범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3집부터 메인 보컬인 비욘세 놀즈의 역할이 돋보이기 시작하는 동시에, 다른 두 멤버들도 조금씩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3집 앨범 'Survivor'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데스티니스 차일드를 단순한 여성 보컬 그룹이 아닌 팝 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후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그룹 외의 솔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데, 비욘세 놀즈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여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곡 'Crazy in Love'를 대히트 시키면서 솔로 아티스트로서 대성공을 거두는 한편, 영화 출연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데스티니스 차일드라는 그룹에서 벗어나 비욘세 놀즈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른 멤버인 켈리 롤랜드 역시 솔로 앨범 'Simply Deep'를 발표하는 한 편, 넬리와 함께한 'Dliemma'로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각자의 솔로 앨범 뒤에 2004년 발표한 4번째 앨범 'Destiny Fulfulled'는 이전 앨범들 같이 힙합적인 요소와 펑키, R&B등이 가미된 다양한 곡들이 담겨 큰 사랑을 받았지만, 데스티니스 차일드라는 이름으로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에 관련된 DVD타이틀은 국내에도 몇 편 소개가 되었었는데, 싱글 성격을 띤 'The Platinum's in the Wall' 타이틀과 네덜란드 로테르담 공연 실황을 수록한 'World Tour'가 그것. 최근 출시된 'Live in Atlanta'는 이 두 타이틀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더 많은 볼거리와 내용을 수록한 타이틀이다. 2005년 팀 해체 선언이 있은 뒤 그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로 갖은 콘서트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공연. 아틀란타에서 벌어진 공연 실황에서는 말그대로 데스티니스 차일드에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다. 'Say My Name', 'Independent Women Part II', 'Survivor' 그리고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곡 'Lose My Breth'에 이르기까지 그녀들의 히트곡이 모두 수록되었고, 비욘세와 켈리, 미셸의 솔로 곡들도 수록되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파워풀한 댄스와 소울 풀한 보컬은 마지막 무대여서 그런지 더더욱 인상 깊게 느껴진다.



각자의 솔로 무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인데, 비욘세이 파워풀한 댄스가 부담스럽기까지 느껴지는 'Crazy in Love'는 말할 것도 없이 주체할 수 없는 바운스를 뿜어내는 한 편, 넬리의 피처링 없이 켈리의 보컬로만 이루어진 'Dilemma'는 오히려 더 멋진 시간을 연출한다. 16:9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약간의 노이즈가 발견되고 콘트라스트비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매번 말하는 것처럼 라이브 실황 타이틀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화질이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5.1채널과 PCM스테레오를 제공하고 있는데, 공연장에 가득 찬 관객들의 환호성은 리어 스피커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되며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극적이고 파워풀한 사운드와 힙합 비트 특유의 바운스를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음질을 들려준다. 서플먼트로는 각 멤버들의 인터뷰와 그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점은 역시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밖에 비욘세와 제이미 폭스가 주연한 영화 'Dreamgirls'의 예고편 그리고 켈리 롤랜드의 새 앨범 광고 등이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 각 멤버들의 미공개 솔로곡이 보너스 오디오 트랙으로 수록되었는데, 특히 미셸 윌리엄스가 다시 부르는 알 그린의 명곡 'Let's Stay Together'는 특히 더 감미롭다. TLC와 더불어 R&B/힙합 여성 보컬 그룹의 대표 주자였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또한 역사의 한 편으로 사라져가는 것에 아쉬워했던 팬들에게 이 DVD는 그녀들을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DVD가 될 것 같다.


2006.05.22

글 / 아시타카




어린 시절 보았던 판타지 영화는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뒤에도 뇌리에서 쉽게 잊혀 지지 않곤 한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판타지 명작 중에 하나가 아마도 이 작품 <라비린스>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아마도 당시에 많은 작품을 출시하던 ‘CIC 비디오’가 아니었었나 싶다)보았던 <라비린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이었으며, <네버 엔딩 스토리>가 그러하듯이 특히 어린이들이 빠져들 만한 요소가 가득한 판타지 영화의 보석 같은 작품이었다.



스필버그가 주름 잡던 어린 시절 SF영화들 사이에서, 짐 헨슨이 만든 <라비린스>는 공상과학 보다는 판타지라 불러야할 영화였으며, 주류라기보다는 비주류 적인 요소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더 애틋하게 찾게 되는 작품이 된 것 같다. 조지 루카스가 제작, 기획에 참여하였고 록 스타 데이빗 보위가 주연과 음악을 맡았으며, 어린 시절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제니퍼 코넬리가 주인공 ‘사라’ 역할을 맡아 청순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다’ 역할로 유명한 프랭크 오즈가 참여하여 완성도를 더하였다.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은 없었으며 비디오로만 출시되었으며, TV에도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사라의 미로여행’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라비린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환상적인 캐릭터들, 배경 디자인들과 데이빗 보위의 매력적인 보이스가 돋보이는 'Magic Dance'등의 수록곡들일 것이다. 최근 DVD로 다시 감상한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은, 매해 기술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익숙해진 탓에 척 봐도 엉성한 티가 쉽게 느껴지지만, 1986년이라는 제작년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만한 정도이며, CG가 사용된 영상처럼 매끄러움과 자연스러움은 부족하지만, 직접 스텝들이 인형을 손으로 조작하는 아날로그 적인 방식은, 그 방식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쁜 인형들이기보다는 괴상하고 독특하고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었기에 더더욱 눈 하나하나 깜빡이는 것,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미 <머펫>시리즈와 <개구리 커밋>시리즈로 인형극에는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감독 짐 헨슨은 <라비린스>에서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을 다양화 시켰으며, 판타지 영화에 걸 맞는 그야말로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하던 캐릭터들을 스크린 속에 살려냈다.



<라비린스>는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종종 뮤지컬로 불릴 만큼 음악적인 요소도 중요한 작품이다. 데이빗 보위가 트레버 존스와 함께 직접 담당한 영화 음악은, 영화의 줄거리는 기억이 얼핏 해도 주요 수록곡의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Chilly Down' 'As the World Falls Down'등의 곡과 특히 영화의 초중반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고블린의 왕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곡 'Magic Dance'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다. 이제와 DVD로 감상하니 데이빗 보위의 곡이 여전히 흥겨운 것은 물론, 이 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형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모두 다 움직임을 갖고 춤추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새삼 놀라게 되었다. 이것 외에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다가 몇몇 감탄한 장면 혹은 설정들이 있었는데, 똑같은 문이 매번 열 때마다 다른 장소로 연결되는 설정이나 미로에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었던 캐릭터와 퀘스트, 그리고 마지막 고블린의 성에서 펼쳐지는 공간이 뒤섞인 계단들의 설정은 이후 SF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DVD로 출시된 <라비린스>의 화질과 음질은 사실상 크게 논할 거리가 아니다. 화질은 최근 출시되는 영화들에 비하면 노이즈 끼가 선명하고 외곽선의 표현 또한 선명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도 화질이면 DVD로 소장하는데 큰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국내 DVD로 출시되기 이전에 영화의 팬들이 해외 사이트에서 코드 1번 타이틀을 주문해 소장하거나, 비디오테이프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화질에 타박을 주는 것은 행복한 비명에 불과할 것이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데 이 역시 채널 분리도가 활발하거나 영화 속 노래와 스코어를 웅장하게 전달한다거나 하는 데에는 부족하지만, 감상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서플먼트로는 포토갤러리와 필모그라피, 스토리보드, 예고편, 메이킹 다큐멘터리 등을 제공하는데, 특히 57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Inside the Labyrinth'는 팬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몇 안 되는 영화 관련 영상이 될 것 같다. 고인이 된 감독 짐 헨슨의 인터뷰는 물론 데이빗 보위의 인터뷰 영상은 소장가치 있는 영상이며, 영화 속 캐릭터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숨 쉬게 되었는지의 해답이 될 장면들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추억의 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영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라비린스>는 내 인생에 첫 번째 판타지였음은 물론, 가장 최근의 판타지를 선사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2006.05.04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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