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리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일본영화 'GO'는 그저 그런 반항하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쯤 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영화이다. 2000년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이효진(가네시로 가츠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일이 공동 제작한 작품인 'GO'는 가장 무겁다면 무거울 수 있는 재일 한국인, 혹은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이즈음에는 재일 조선인 여학생에 대한 일본인들에 폭력 사태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본과 북조선, 대한민국 사회 모두에 재일 조선인에 대한 정체성에 관심이 커졌을 때이기도 하다.
이 정체성에 대한 영화에 주장은 영화 속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인용구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영화의 주인공인 일본 이름 스기하라는 북조선 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재일 조선인이었으며, 한국 국적을 선택하면서 재일 조선인 학교가 아닌 일본인 학교에 다니며 이정호라는 대한민국 이름을 갖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스기하라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국적과 상태 때문에 한국 국적을 선택한 뒤에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는 배신자로, 일본 사회 내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차별 받았으며, 여자 친구와의 연애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걸림돌 아닌 걸림돌이 되어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스기하라가 일본 사회 내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은 폭력이라는 수단이다. 권투 선수인 아버지 아래서 강하게 자란 스기하라는,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누가 뭐라 든 자신은 자기 자신으로서 나아가는(GO) 방식을 택한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애매한 신분은 스기하라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 굴레 아닌 굴레는 애초부터 차별에 조건이 되어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 속에서 스기하라가 아버지와 몇 번 대립하게 되는 장면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스기하라로서는 부모가 물려준 차별에 굴레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이며,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자유행동이기도 하다. 결국 몇 번의 결투(?)에서 스기하라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이기지 못하지만, 강하게만 보이는 모습 뒤엔 자기 자신도 재일 조선인으로서 온갖 차별을 겪어왔기에 자신에 자식에게는 이 같은 현실을 되 물림시키지 않고자 노력해왔던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시선은 여자 친구인 사쿠라이와 길가에서 만난 한 경찰관과의 대화에서 엿 볼 수 있다. 사쿠라이는 스기하라가 한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놀란 기색을 표하지만 결국에는 스기하라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여기게 되었고, 자신을 공격하고 달아났던 스기하라와 짧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경찰은 ‘힘내’라는 말로 그를 위로한다. 이 같은 시각은 일본 내에서도 재일 조선인,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반성하는 분위기가 있으며, 적어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따뜻하게 감싸 앉아야 한다는 정서를 전하고 있다.



'GO' DVD는 최근 출시되는 일본 영화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초기에 출시된 타이틀이라 스펙이나 서플 수록에 아쉬운 점이 많은 타이틀이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영상이나 돌비디지털 2.0만을 지원하는 사운드는 사실 영화의 분위기를 봤을 때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1장에 디스크에 실린 형식적인 서플먼트들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메이킹과 인터뷰 영상도 분량이나 내용이 알차다고 볼 수는 없으며, 그야말로 형식적인 줄거리와 인물 소개 등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스펙이나 서플 등을 대폭 추가한 스페셜 에디션 버전 등으로 재 출시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봤을 때, 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으로 좋은 영화를 소장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다시 봐도 단순한 진리다. 이 같은 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전혀 동 떨어져있는 이야기가 아닌 만큼 이 영화 'GO'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새삼스럽지만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06.04.25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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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과 새로운 인연, 그리고 로드무비.

<엘리자베스타운>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최신작으로 큰 기대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아카데미를 수상한 <올모스트 훼이머스>는 물론이고, 그의 전작인 <클럽 싱글즈> <제리 맥과이어> <바닐라 스카이>등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드라마를 그려내는 연출력은 이미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기도 했던 카메론 크로우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직까진 레골라스의 느낌이 다 지워지지 않은 ‘올랜도 블룸’과 스파이더맨의 연인에 이어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을 맡는 다는 소식은, 두 청춘 남녀주인공의 색다른 러브 스토리를 기대하게 하는 동시에, SF나 액션이 아닌 장르에서 올랜도 블룸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또 다른 궁금증도 유발시켰다.

이전의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가 그랬듯이 이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역시 평범한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다. 영화의 시작부분은 회사(사회)에서 크게 실패와 실연당한 주인공의 인생에 집중되며, 이 후에는 실패에 대한 파장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가족과 나, 나와 다른 사람들에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그 사건 사이에 만나게 되는 새로운 인연인 ‘클레어’를 통해 자살까지 생각했었던 주인공이 희망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대충만 훑어보아도 흔하지는 않은 스토리는 카메론 크로우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한 편으론 극장에서의 흥행성적과 평단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처럼, 카메론 크로우의 작품 치고는 조금 부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엘리자베스타운>이기도 하다.




유머와 감동을 모두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크로우의 말처럼, 이 영화에는 슬픔과 웃음의 요소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하지만 슬픔의 요소는 조금은 중심을 잃은 이야기 구조 덕에 100%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유머러스한 부분도 모두가 공감할 만한(특히 미국 외에 국가에서 충분히 공감하기에는)정도의 것은 아니라 이것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올랜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를 쉽게 놓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 올랜도 블룸이 본격적으로 드라마와 로맨스 장르에서 연기를 펼친 것은 이 영화에서 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 작품들에서는 칼과 활을 쓰는 액션 때문에 레골라스의 이미지가 어쩔 수 없이 떠올랐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후광 없이도 충분히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커스틴 던스트는 깜찍하면서도 신비롭고 무언가 슬픔을 숨긴 듯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으며, 제시카 비엘, 알렉 볼드윈 등의 조연 연기자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수잔 서랜든의 연기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추모식 장에서 그녀의 마지막 연설과 탭댄스는 그 자체만으로는 훌륭했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그 시퀀스가 의도만큼 감동적으로 전달되기엔 2% 부족했던 것 같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작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에 요소, 장점을 꼽으라면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작들에서는 그저 괜찮은 곡들을 한 두 곡 선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터라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움을, 대중들에게는 좋은 곡들을 소개해주는 역할로서도 손색이 없는 최적화된 선곡을 보여줬었다. 이 작품 <엘리자베스타운>에서도 사운드 트랙은 절대적이다. 부인인 낸시 윌슨이 만든 곡들을 비롯하여, 엘튼 존, 라이언 아담스, 톰 패티 앤 하트브레이커스 등의 곡들이 요소요소 삽입되어 있다. 사운트트랙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선곡된 곡들이 장면을 한층 부각시켜주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는 장면을 좋은 곡들로 무마시켜버리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만큼,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선곡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에서 언급했던 스토리에 아쉬움이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서 마지막 로드 무비 식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도 영화가 거의 끝나는 느낌을 주는 장례식 장면 다음이라 약간 쌩뚱 맞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퀀스였다. 클레어가 만들어준 지도를 통해 음악과 더불어, 의미 있는 여러 곳들을 차례차례 여행하는 형식은, 차라리 영화를 애초부터 이런 스타일의 로드 무비로 끌어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DVD는 최근 출시된 작품답게 수준급의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1.78: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인물들의 클로즈업의 많은 장면과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장면에서 빛을 발하며, 사운드 역시 여러 가지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과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스페셜 피처로는 배우들의 오디션 장면과 리허설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 'Training Weels'와 스탭들을 소개하는 'Meet the Crew', 영화 속 재미있는 소품 영상이었던 ‘아이들 달래기 비디오’를 포함한 두 가지의 확장판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모두에게 권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카메론 크로우의 팬이라면 쉽게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작품임에도 분명하다. 자켓 이미지나 홍보 문구들로만 봐서는 단순히 두 남녀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오인하기 쉬운데, 오히려 그것과는 다른 세계를, 크로우의 시점에서 관찰한 작품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2006.04.10
글 / 아쉬타카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몰랐던 순간

2005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 칸느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등 해외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 'Me and You and Everyone and We Know' (이하 ‘미 앤 유’)는 감독이자 각본을 써낸 미란다 줄라이 (Miranda July)를 빼고는 절대 논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녀의 프로필은 그녀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한데, 이 작품 ‘미 앤 유’ 이전에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자 설치 미술 작품을 뉴욕과 런던에 공개하기도 했으며, 단편 소설을 기고하기도 한, 말 그대로 아티스트이다. 이미 스무 살 무렵에 자신의 작품을 배급하고자 웹을 기반으로 배급 네트워크를 만들었으며, 웹상에서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하고 소통해가며 새로운 작업을 창조해냈다. 한 마디로 우리가 그녀를 알게 되고 인디 영화계의 슈퍼스타로 거듭나게 된 것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영화 ‘미 앤 유’를 통해서였지만, 이미 그녀는 수년전부터 다양하고 창조적인 예술 작업들로 소수 마니아들 사이에서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미란다 줄라이의 최근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일상과 프로젝트들을 엿볼 수 있는 블로그를 들러보면 좋을 듯하다(http://meandyou/typepad.com). 아마도 이 영화를 감명 깊게 감상한 이들이라면 그녀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 ‘미 앤 유’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외 된 인물들 간의 만남과 소통의 부재, 소통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소박하지만 남다른 감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다른 영화들과 같이 이렇다 할 커다란 갈등 요소도 없으며 기승전결에 구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정형화된 문법에 맞춰 써내려간 글이라면, 줄라이의 작품은 틀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간 산문과도 같다. 오프닝 크레딧 장면부터 남다른 감각을 선보이는데, 극중 리차드가 파란 잔디가 깔린 집 앞 마당에서 자신에 손에 불을 붙인 뒤 흔드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며, 제목이 오버 랩 되는 인트로는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감 잡을 수 없는 동시에 묘한 호기심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미 앤 유’는 미란다 줄라이의 다양한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설치 미술에 능한 그녀이기에 가능했을 공간의 활용도와, 보는 사람이 시각 뿐 아니라 오감을 동원하여 느껴야만 될 색감과 질감이 풍부한 배경과 소품들. 너무 감정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영화 내내 유지하게 해주고 있는 사운드트랙, 너무나 아름답고 기막힌 장면 장면과 주고받는 대사의 맛과 동시에 마치 리차드 링크레이터를 연상시키는, 아니 그 보다 더욱 감각적이고 창조적인 스크립트는 놀라움을 넘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같은 대사의 정점은 모든 장면에 삽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특히 영화의 초반부 리차드와 크리스틴이 처음 만나 길 모퉁이에서 헤어지기까지의 시퀀스는, 줄라이 만의 감각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얘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채팅 시퀀스에서 로비가 상대방이 한 말을 복사한 뒤(Copy) 붙여 넣는(Paste) 장면에서는 정말 그 기발함에 박수가 나올 정도였다.





그녀의 감각을 100%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아역 연기자들의 연기는(특히 표정연기!) 경이롭기 까지 하다. 로비 역할을 맡은 브랜든 랫클리프는 단독 주인공이 없는 이 영화에서도 단연 돋보이는데, 단지 귀엽기 만한 표정들을 넘어서서 이러한 영화의 성격을 100% 파악하고 표현해내는 듯한 연기를 펼친다. 실비 역할의 칼리 웨스터먼의 연기도 놀라운 수준인데, 흡사 ‘천사들의 합창’의 ‘마리아 호아키나’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실비가 만들어내는 표정 하나 하나는 마치 무표정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동안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어서 무표정으로 느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극 중 로비와 실비가 만들어내는 표정 연기 자체만을 이 영화를 설명하는 커다란 구성요소로 정의 내려도 될 만큼, 이 두 아역 연기자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극에 전체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다.





이번에 출시된 DVD는 작품만큼이나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과 구성으로 출시되었다.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독특한 색감은 잘 살려주며 따뜻한 분위기도 잘 전달하고 있다. 영상 자체가 높은 콘트라스트비나 화질을 요하는 작품은 아님으로, 작품에 걸 맞는 최적화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커다란 채널의 분리도나 사운드의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은 아니지만, 중간 중간 수록된 스코어와 대사 전달에는 부족함이 없다. 서플먼트로는 삭제 장면과 예고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영화와 관련된 제작 다큐 등의 영상은 아니더라도, 미란다 줄라이에 대해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기본적인 프로필을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는 무언가 새로운 감각에 영화가 필요했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것이며,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작품이다. 또한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미란다 줄라이의 앞으로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지만, 한 편으론 그 속에서 모두가 몰랐던 순간을 잡아낸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2006.04.04

글 / 아시타카



영국 출신의 3인조 록 밴드 뮤즈 (Muse)가 활동한지도 벌써 8년이 다 되었다.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밴드의 프론트맨 ‘매튜 벨라미’를 중심으로 베이스의 크리스 윌스턴홈, 드럼에 도미닉 하워드로 구성된 뮤즈는, 브릿팝이 한창이던 1999년 얼터너티브한 사운드를 들고 록 신에 등장했다. 데뷔앨범 'Showbiz'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밴드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제2의 라디오헤드’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을 정도로 우울하면서도 극적인 사운드가 라디오헤드와 많이 닮아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2집 'Origin of Symmetry'까지만 해도 라디오헤드의 그림자를 깨끗이 지우지 못한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었지만, b-side곡들과 라이브 곡들로 채운 앨범 'Hullabaloo' 까지 지속적으로 보여준 그들의 음악성에 결국 뮤즈라는 밴드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후 2003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Absolution'은 지난 앨범들보다 좀 더 대중적인 멜로디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기도 했다. 뮤즈의 음악하면 역시 강한 중독성을 빼놓을 수 없는데,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극한까지 심장이 터지도록 끌고 달렸다가, 클라이막스를 지나 차분히 마무리하곤 하는 감정적인 곡 진행은 뮤즈만이 보유한 강한 중독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오아시스나 라디오헤드 등과 함께 영국 록 신을 대표하는 밴드임에도 국내에는 이렇다 할 관련 DVD가 출시된 적이 없었는데, 최근 출시된 'Absolution Tour' DVD는 일단 출시자체가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다.



2004년 Grastonbury에서 가졌던 'Absolution Tour' 라이브를 수록한 DVD는 12곡의 실황 영상과 4곡의 보너스 라이브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최근 앨범 'Absolution'에 수록된 'Apocalypse Please', 'Time is Running Out', 'Blackout' 등과 데뷔앨범에 수록된 'Sunburn', 'Muscle Museum', 그리고 2집 앨범에 수록된 'Bliss' 'Plug in Baby'등 전 앨범에 걸친 히트곡들이 고루 수록되어 있어, 국내 첫 번째로 출시되는 뮤즈라이브 DVD의 가치를 더한다. 보너스로 수록된 4곡의 라이브 영상은 영국과 미국에서 펼쳐진 소규모 게릴라 콘서트 등의 영상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상은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을 수록하였는데 영화 타이틀과 비교하였을 때 우수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야외에서 펼쳐진 라이브 실황 타이틀임을 감안하였을 때에는 감상에 전혀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니 안심해도 될 듯. 라이브 타이틀에서 중요한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사운드에 있다 할 수 있는데, PCM스테레오만을 제공하는 사운드는 역시나 조금 아쉽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DTS 사운드나 5.1채널 사운드가 수록되지 않은 점과 별다른 서플먼트가 수록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6.04.04

글 / ashitaka


영화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3명의 인물

그 첫 번째 / 필립 K.딕 (Philip K. Dick)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었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와 [토탈리콜]의 원작 단편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로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현대 공상과학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첫번째는 경계에 관한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는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를 그려내며,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경계에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뇌하고 죽음과 현실에 슬퍼하는 안드로이드 와, 자신들이 만든 인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에게 너무쉽게 총탄과 파괴를 일삼는 인간들을 교차시키며 진정한 인간다움의 기준을 우리에게 반문하기도 하였다. [토탈리콜]에서는 현실과 환상, 시간과 선악의 모호함까지 얘기하고 있으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미래를 보는 예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을 따라 일어나지도 않은(일어날 것이라는)살인에 연루된 사람을 체포하는 모습에서 원인과 결과 사이에 모호함을 우려하고 있다.



두번째는, 어둡고 암울한 미래의 모습인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역시 이러한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물론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탓에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이전 영화들보다는 덜 어두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스필버그의 영화치고는 제일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 중 하나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러한 어두운 미래사회의 모습은 그의 삶과도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가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난 쌍둥이 누이들과 5살때의 부모의 이혼, 정신분열 환자로까지 불렸던 그의 신경과민 증세 등은 그의 정서를 어둡게 했고 이러한 것은 고스란히 그의 소설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영화화된 그의 원작소설들에서 보여준 그 만의 철학적 깊이와 고뇌만으로도 그를 감히 정신병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 톰 크루즈

톰 크루즈는 왠지, SF 영화는 적어도 한 두편 정도는 출연했던 걸로 생각되지만 의외로 그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처음으로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였다. 그 자신은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상당히 어색하고 힘들었다고 했지만, 스텝들의 말처럼 톰 크루즈는 존 앤더튼 역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그는 또한 헐리웃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비싼 몸이시지만, 마치 미국의 성룡을 꿈꾸는 듯 스턴드 연기에도 가능한한 직접적으로 몸을 던지는 편이다. 이미 [미션 임파서블 2]의 인트로장면에서 정말 살떨리게 살벌했던 암벽등반 장면을 직접 연기하였고, 이번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와이어 액션장면들과 스턴드 장면들도 대부분은 그가 직접 소화하고 있다. 코의 높이가 1cm만 낮았어도 일찍이 오스카를 수상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듯이, 톰 크루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능하게 하는 좋은 감정연기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 스티븐 스필버그

필립 K.딕의 뛰어난 원작소설과 SF장르에는 처음 출연하는 톰 크루즈 모두를 잘 어울러 영화를 완성시킨 것은 바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그는 데이빗 핀처오시이 마모루 등의 감독이 맡았을 법한 필립 K.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이전에는 자주 시도하지 않았던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의 스릴러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역시 스필버그 답게 그 사이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의 감정을 부각시키며 감동에 요소를 포함시켰다. 스필버그의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자신의 방식을 좋아하는 팬들과 좀 더 어둡고 스릴러적인 방식을 좋아하는 관객들을 함께 껴안으려는 노력으로 보여진다.



DVD 시스템에 잘 어울리는 타이틀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영화 출시전의 기대와 마찬가지로, DVD로서의 출시도 많은 매니아들에 상당한 기대를 모아왔었다. 몇 번의 출시일 연기끝에 발매된 [마이너리티 리포트 SE]타이틀에 대해 화질과 사운드, 서플먼트 부문으로 나누어 알아보도록 하자.



화질 - 16:9 Widescreen Version

오래전의 필름 느와르를 표방하며, 어두운 색채와 거친 색감등을 의도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화질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만한 여지가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현실감 넘치는 영상으로 촬영상을 받았던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는 영화의 느와르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독특한 촬영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이러한 카민스키의 촬영기법은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맞물려, 시종일관 차가운 느낌의 파란색과 빛의 강도 조절로 몽환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미래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촬영과 영상 스타일은 의도된 것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깨끗하고 선명한 화질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의 거부감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사운드 - DTS/DD 5.1

화질에서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금의 편차가 있을 수도 있지만(그렇다고 해서 화질이 좋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사운드에 관한한은 논란에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에서 들려오는 사운드도 듣기 좋지만, DTS를 지원하는 플레이어라면 주저할 것 없이 DTS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DTS 시스템의 찬사는 이를 재공하는 타이틀의 발매시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더군다는 이 영화는 미래사회를 다룬 SF물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드라마 보다 SF나 액션물에서 사운드가 더 빛을 발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각 영화마다 실감나는 사운드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톰 크루즈가 '후버팩'이라 불리우는 장비를 갖춘 동료들에게 쫓기는 추격씬에서 그 진가가 들어난다. '후버팩'에서 내뿜는 불꽃과 굉음은 우퍼로 전달되어 실감나는 효과음을 들려주고, 바닥을 기어다니듯 질주하는 장면과 집들을 여기저기 통과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DTS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자동차 공장의 기계들의 효과음이라던가 자기부상 자동차의 이동음들은 존 윌리암스의 스코어와 잘 어울리며 레퍼런스급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Special Features

[반지의 제왕: 디렉터스 컷]의 여파 때문인지, 이제는 어지간한 퀄리티의 서플먼트가 아니면 성이 안차게 되어버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서플먼트는 본편과는 별도의 디스크에 담겨져 있고 퀄리티도 보통은 넘는다고 할 수 있으나, 워낙에 기대가 컸던 타이틀이라서인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중에서 발매전 재공되었던 정보들과는 달리 감독인 스필버그의 음성해설 트랙이 수록되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이외에 수록된 서플먼트들은 상당히 유익하고 흥미로운 것들이다.



'Minority Report - From Story to Screen Faturettes'에서는 스필버그의 설명으로 영화 사전 제작과정에 대해 들을 수 있고, 'Deconstructing Minority Report Featurettes'에서는 각종 시퀀스를 통해 제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재공하고 있다. 'The Stunt of Minority Report Featurettes'에서는 스턴트 장면이 쓰였던 씬들을 위주로 톰 크루즈와 스텝들의 인터뷰를 수록, 스턴트 장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스턴트를 담당하고 있는 스텝에 말을 따른다면 톰 크루즈는 거의 스턴트맨에 가깝다. 또한 특수효과를 담당한 ILM에 영화제작 과정을 담고 있는데, 영화속 홀로그램이나 호버팩 등의 탄생과정을 옅볼 수 있다. 'Final Report'에서는 공동작업으로 화제를 모았던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가 등장하여 서로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는다. 마지막으로 'Archives'에서는 제작 컨셉과 스토리보드, 배우와 제작진들의 프로필, 제작노트 등을 볼 수 있고, 극장용 예고편도 수록하고 있다.



21세기형 SF느와르



영화의 스탭과 배우들이 언급하였던 이 영화는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스릴러 장르의 느와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범인을 추리해가는 앤터튼의 모습은 [미션임파서블 1]의 이던 헌트와 닮았고, 차가운 미래사회의 이미지는 [블레이드 러너]와 크게 동떨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하고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프리 크라임(Pre-Crime)의 시스템인데 영화속에서도 반문하듯, 이 시스템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예언자에 의해 살인이 예언되어 살인 현장을 급습하여 이를 막게 되면 결국은 살인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언자의 예언은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 된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모호함과 혼돈은 이 영화를 그저 단순한 SF영화에 틀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만약 이 영화를 스필버그가 아닌 다른 감독이 감독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앤더튼은 마치 [세븐]에 브래드 피트와도 같이, 자신이 잘못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영화속에서 앤더튼은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미란다의 법칙을 얘기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영화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후에 반전을 위해 영화는 계속 진행된다.(혹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에 더이상은 언급하지 않겠다)

만약 영화 속에서와 같이,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에는 정말 미래를 예언하는 시스템이 도입될 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와도 같이, 만약 미래마저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참혹한 일이겠는가. 분명한 것은 꼭 스필버그 식의 희망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빽 투 더 퓨처]에서와 같이 미래의 사진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질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을런지도...



플로리다 걸프 해안의 작은 마을에 사는 8살의 핀 벨(Finnegan Bell: 에단 호크 분)은 누나와 함께 산다. 가난한 집안형편이지만 화가가 꿈인 핀은 아름다운 바다를 그리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간다. 어느 날 그는 탈옥한 죄수 루스티그(Prisoner - Lustig: 로버트 드니로 분)를 우연히 만나 그의 발목에 찬 족쇄를 풀어주면서, 그의 단순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깨어짐을 느낀다. 인근에서 가장 부자로 소문나 있는 노라 딘스무어 여사(Ms. Dinsmoor: 앤 밴크로프트 분)로부터 갑작스런 초대를 받게 된 핀은 그녀의 은둔자적인 비밀스런 삶에 두려워 하면서도 그녀의 조카인 에스텔라(Estella: 기네스 펠트로 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사랑으로 매일 그녀를 찾는다.



에스텔라는 그런 핀에게 상류사회 특유의 냉정함과 오만함으로 일관하지만 핀이 그녀를 그린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에스텔라를 사랑한다면 그의 마음만 아플 거라는 노라의 충고에도, 어느새 커버린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억누를 수 없다. 노라의 말대로 에스텔라는 홀연히 파리로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져 헤매던 핀은 그림그리기를 포기한 채 나날을 보낸다. 갑작스런 익명의 후원자 덕분에 뉴욕에 보내진 그는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며 뉴욕 미술계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부와 지위, 명성을 한꺼번에 얻게 된 핀은 에스텔라와의 갑작스런 재회에 행복해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한마디 말로 그에게 또 한번 깊은 상처를 남긴다. 괴로워하는 핀 앞에 갑자기 나타난 루스티그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며 그가 누리는 위대한 유산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데.



[위대한 유산]을 보고 나서 머리 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이미지는, 영화 내내 스크린을 녹색 빛으로 물들였던, 녹색 그 자체의 색감일 것이다. 이러한 색의 이미지는 다분히 감독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온통 초록색의 나무들과 넝쿨 들이 어지럽게 감싸고 있는 딘스무어의 저택과 그녀의 화려한 초록색 옷차림. 그리고 어린 에스텔라의 초록색 원피스와 영화의 중반 뉴욕에서 다시 만날 때의 초록색 의상까지... 어찌 보면 원색 계열이나 우울한 정서를 한껏 담은 블루 톤에 비해 수수하고 무난한 것이 초록이라 하겠지만, [위대한 유산]에서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초록 자체의 느낌은 밝고 생동감 있는 것이지만, 영화의 쓰인 그린(Green)의 느낌은, 블루(Blue)보다 우울하고, 레드(Red)보다도 강렬하며, 어떤 컬러보다도 뇌리에 깊이 파고드는 인상을 준다.



이 영화는 알다시피 너무나도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이 리메이크가 되었던 처음이 건 간에,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리메이크 작품들은 원작보다는 못하다는 평을 듣는 경우가 지배적이었고, 평균적으로 보자면 [위대한 유산]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영화 [위대한 유산]은 분명 동명 소설에서 기초하고 있지만, 일련의 리메이크 영화들과 동등하게 분류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듯싶다.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은 원작에 기초하되 가능한 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고, 이 같은 의도는 비교적 성공했다고 여겨진다. 멕시코 출신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영화와 [이투마마]로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며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감독으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줄곧 해리포터 시리즈를 감독했던 크리스 콜롬버스의 뒤를 이어, 3편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작업하고 있다.



[위대한 유산]이 헐리웃 적이고 대중적인 것은 아무래도 출연한 배우들의 영향력이 컸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즐비’까지는 아니나 ‘제법’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러브스토리의 남여주인공은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가 맡았다.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도 헐리웃 적이지 않고, 이지적인 매력을 풍기는 에단 호크는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혹자는 이 영화에서 에단 호크의 연기가 카리스마가 없고 이미지도 약하다고 평하지만, 그것이 연기를 잘 한 것이다. 극중 핀의 캐릭터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소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여린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자신감이 없어보이던 핀의 얼굴은,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비로서 편안함과 여유를 찾게 된다.



[위대한 유산]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누가 뭐래도 기네스 펠트로 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과 행동으로 얄밉기까지 한 에스텔라 역을 맡은 기네스 펠트로는, 적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한 열연을 펼쳤다. 신비스럽고도 도도한 에스텔라 역은 사실 다른 배우가 맡았으면 말 그대로 재수 없는(?)역할이 되었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 배우들의 이름이 스크린에 오를 때 주연 배우들 외에 유명한 배우들이 조연이나 카메오 등을 맡았을 경우 'and'로 표현되곤 하는데, 위대한 유산에는 'with'가 추가되었다. [졸업]으로 많은 영화 팬들에게 인상을 남겼던 앤 밴크로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멕시코만의 갑부인 노라 딘스무어 역할을 맡아 그야말로 관록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짙은 화장과 담배로 외롭게 살아가는 딘스무어 역은 두 주인공보다도 [위대한 유산]을 더 [위대한 유산]답게 만들어 주었다. 슬픈 눈으로 ‘배사매 무쵸’를 부르던 그녀의 연기가 인상 깊게 남는다.



그렇다면 'and'는 누구인가? 더 이상 연기력을 논할 여지가 없는 로버트 드니로가 그 주인공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이 영화에서 출연하는 러닝 타임은 길지 않지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위대한 유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중요한 인물로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준다. [위대한 유산]은 이렇듯 젊고 색깔 있는 두 배우와 노련미가 저절로 느껴지는 두 배우가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의 완성도는 뒤로 하더라도 연기력만큼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 핀은 화가로 등장하는데, 그의 그림들을 보다보면 참으로 개성 있고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의 등장하는 모든 그림을 그려준 이는 프란치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라는 이탈리아의 실제 화가이다. 1952년 나폴리에서 출생한 클레멘테는 80년대 등장한 트랜스 아방가르드 계열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장 미셀 바스키아와 공동작업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화가이다. 처음 이탈리아 벽화를 그리는 화가로 알려졌던 클레멘테는 인물과 사물을 관찰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과 밝고 어두운 단면을 모두 잘 소화해 내는 능력을 톡톡히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면을 반영하듯 영화 속 그의 그림들은, 물고기나 사물을 나타낸 그림들은 비교적 수채화 같이 밝게 느껴지지만, 에스텔라의 초상화라던가 조 삼춘의 초상화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슬픔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필자도 그러하였듯 평소에 이러한 그림들과 화가들을 접할 기회가 드문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영화를 계기로 프란치스코 클레멘테 라는 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또한 될 것이다.



[위대한 유산]을 아쉽다고 말하는 이들의 공통분모는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이 엉성해지고, 느닷없이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구성에 엉성함이라고 얘기되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세히 풀어놓으면 너무 자세하게 얘기해버려서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고, 과감히 생략하게 되면 이번처럼 느닷없고 구성이 엉성하다는 반응이 나오듯이, 어차피 양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피 엔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마지막 장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핀은 이혼하여 혼자가 된 에스텔라를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해피 엔딩’이란 말 그대로 영화가 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마음이 ‘해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만의 생각이 될 지도 모르지만, 자막이 올라가고 음악이 흐를 때,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슬픈 운명에 휘말려버린 주인공들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인물들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니 더욱 더 그러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핀은 오직 에스텔라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림에 정진했고, 성공적으로 개인전을 마친 뒤, 보란 듯이 부자가 되었다며 소리쳤지만, 오로지 성공에 집착하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변해버린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에스텔라는 자신을 사랑하는 핀에게 확신을 주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멀리 떠났지만, 결국 돌아와 보니 남는 것은 후회 뿐 이였다. 딘스무어 역시 에스텔라를 위해 핀을 이용한 것에 대해 뒤늦은 후회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루스티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는 평생 도망자로 살아온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단 한 사람이 어린 핀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후원을 하였고,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정말 위대한 유산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루스티그에게는 그나마 편히 눈감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위대한 유산]의 아름다운 영상과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장면 장면을 더 인상 깊게 만들었던 음악이었다. 영화와 잘 맞아 떨어지는 팝과 락 넘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몇몇 아티스트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Finn Runs'와 ‘Siren' 두 곡을 수록하고 있는 토리 에이모스를 들 수 있겠다. ’Siren'으로 에스텔라와 그림을 모두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려는 핀의 마음을 빠른 리듬과 그녀만의 신비한 음색으로 전하고 있다. 그 다음 수록 된 곡은 모노(Mono)의 ‘Life is Mono'인데, 토리 에이모스와 마찬가지로 몽환적이면서도 신비스런 노래로 핀과 에스텔라의 묘한 관계를 역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최근 오디오 슬레이브(Audioslave)로 활동 중인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Sunshower'과 펄프(Pulp)의 ’Like a Friend', 스톤 템플 파일러츠(Stone Temple Pilots)의 보컬이였던 스콧 웨일렌드(Scott Weiland)의 ‘Lady Your Roof Brings Me Down', 그리고 이기 팝(Iggy Pop)의 ’Success'까지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락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락 음악들보다 [위대한 유산]에서 더욱 기억이 남는 곡은 아마도 ‘Besame Mucho'일 것이다. 세사리아 에보라(Cesaria Evora)가 부르는 ’Besame Mucho'는 영화 속 딘스무어가 흥얼대던 그 느낌과 핀과 에스텔라의 슬픈 사랑, 그리고 핀의 성공과 그를 뒤에서 후원한 루스티그의 운명까지도 모두 포용해 버리는 원숙함을 들려준다. 또한 사운드 트랙의 맨 마지막에 자리하였듯, 이 한 곡으로 영화의 모든 감정을 모조리 정리해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장면과 감정들을 스쳐가게 한다.


2003.06.13
글 / 아시타카



서기 2035년 미래의 인류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99%가 멸망하고 소수의 생존자들은 지상에서의 생활을 포기한 채 지하 세계에서 생활하게 된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제임스 콜(James Cole: 브루스 윌리스 분)은 자원 임무를 띠고 지상으로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사자와 여러 동물들이 배회하는 것을 보며 '12 몽키즈'란 단체의 마크를 보게 된다. 탐사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제임스에게 일련의 과학자들은 그에게 인류의 지상회복을 도와준다면 완전 사면을 해주겠다고 제의한다. 결국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1996년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어떤 착오로 인해 1990년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경찰을 부상을 입히는 등 말썽을 피워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그는 곧 인류가 바이러스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고 설득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담당의사인 캐서린 레일리(Dr. Kathryn Railly: 매들린 스토우 분) 박사는 그를 치료하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제임스와 같은 병동에 수감되어 있는 제프리 고인즈(Jeffrey Goines: 브래드 피트 분)라는 사람은 부친이 대단히 유명한 바이러스 연구학자로 아버지에게 연락이 닿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TV를 통해 인간들의 폭력을 본 제임스는 혼잣말로 인류가 멸망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하자 제프리는 그에 동조하며 인류는 바이러스 같은 것으로 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임스는 제프리의 도움으로 탈주하지만 다시 붙잡혀 감옥에 수감 도중 미래로 돌아간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자료를 통해 제프리가 12 몽키즈라는 단체의 주요 인물임을 알아내어 제임스는 다시 1996년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실수로 1910년대의 프랑스 전쟁터로 떨어져 위기를 맞게 된다. 위기의 순간 그는 다시 1996년으로 보내지고 6년 만에 레일리 박사를 만나게 된다. 제임스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던 그녀에게 1914년 전쟁터에서 자신이 위기에 순간에 찍혔던 사진으로 진실에 대한 확신을 주지만 레일리 박사의 납치 사건으로 경찰의 추격을 받는다. 제임스가 미래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제프리 일당이 한 일은 동물원에 갇혀있던 동물들을 풀어놓는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진짜 범인은 제임스가 어려서부터 꿈에서 보아왔던 제프리 부친의 조수라는 것을 알게 되어 공항을 탈출하려던 그를 막으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 브래드 피트, 매들린 스트로우, 모두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된다. 그간 [다이하드]시리즈의 존 맥클래인 형사로 더 잘 알려졌던 브루스 윌리스는, 이 영화에서는 복잡한 심리 묘사와 상극의 표정연기로서 한 단계 성숙한 연기를 펼친다(하지만 감독인 테리 길리엄은 다이하드에서의 브루스를 보고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어울리겠다고 여기고 캐스팅 했다고 한다). 특히 6년 만에 다시 돌아와 레일리 박사의 차를 납치하였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즐거워하던 그 표정이란, 브루스 윌리스 영화사상 최고의 표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트 모히칸]에 출연했던 매들린 스트로우도 차분하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과거에서 제임스를 믿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비극적인 운명에 함께 하게 되는 역할을 맡았다. [12 몽키즈]에서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일단 튄다. 그는 미치광이 정신병자이자 혁명가이기 까지 한 제프리 고인즈 역할을 맡았는데, 이전까지 폼나고 뻔지르르한 역할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멍청한 표정과 심하게 집중하는 손짓, 몸짓의 연기는 그해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브래드 피트는 제프리 고인즈 역할을 위해 실제로 정신병원에서 몇 주 간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대한 생각할 거리를 한 번 더 던져놓고 있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슬프게 들리지 않을 때야말로, 우린 정말 잘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관점은 대부분의 이런 종류의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다른 SF 장르의 영화에서는 대부분,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미래에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커다란 재앙을 직접 차단하여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단 [12 몽키즈]에서는 주인공을 과거로 보내기는 하지만, 그는 자료 수집이 주 목적이고, 바이러스를 퍼트린 당사자를 찾아내어 과거를 사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단서를 재공하려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왔던 비극적인 공항에서의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비극적으로 그려지면서, 결코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다.



[백 투 더 퓨처]에서 과거를 변화시키면 미래에 사진이 변하는 등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첫 장면에 배치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관념 속에 영화의 마지막 그대로 펼쳐짐을 보여줌으로써,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는 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알리고 시작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죽어가는 제임스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어린 소년은, 어린 제임스 자신이었으며, 그는 결국에 미래에 가서는 다시 과거로 돌아와 또 그러한 결과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저 매일 마시고 공유하고 있는 공기. 오염된 미래에서 온 제임스에게는 맑은 공기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은 없었으리라. 또한 라디오를 신기해하며 흐르는 음악에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감상에 졌던 제임스. 제임스를 이해하려고 했던 레일리 박사조차도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흐르는 음악은 영화의 주제와 생각과도 깊게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12 몽키즈]의 엔딩 음악도 그러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엔딩에 배치하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하며 감사의 마음을 되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극 중의 ’12 몽키즈‘란 비밀 조직은 바이러스를 퍼트린 이들이 아니었으며, 그저 동물에 대한 무분별한 실험에 항거하는 단체였음을 보여주면서, 역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한 번 더 던져놓고 있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슬프게 들리지 않을 때야말로, 우린 정말 잘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3.05.09
글 / 아쉬타카





보컬에 짐 모리슨(Jim Morrison), 전자 오르간에 레이 만자렉(Ray Manzarek), 기타에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 드럼에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로 이루어진 밴드가 바로 도어즈이다. 이들은 60년대에 등장하여 독특한 사운드와 연주, 그리고 엄청난 카리스마로 대중을 압도했던 짐 모리슨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락 매니아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밴드 중 하나이다. 베이스 주자가 없는 독특한 밴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로비 크리거의 창조적인 기타연주와 존 덴스모어의 드럼, 그리고 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내는 전자 오르간의 선율은, 이른바 도어즈 사운드를 만들어 내며 락 팬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의 젊은이들을 열광케하고 그들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짐 모리슨의 시적인 가사에 있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심오하고도 파격적이었던 가사는 다른 여타 밴드들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이틀 내 수록된 서플먼트 다큐멘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로비 크리거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도어즈]를 영화화 하는데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그리고 도어즈를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있었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의 초기 영화를 보고 팬이 되었던 로비 크리거는, 만약 도어즈를 영화화 한다면 올리버 스톤 외에는 적임자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결국에는 다른 멤버들도 찬성을 하여 올리버 스톤에게 기회가 돌아가긴 하였지만, 도어즈의 전 멤버들과 그들과 관련된 이들,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었다. 이는 올리버 스톤의 능력 탓이나 영화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도어즈'라는 주제에 관한 모호함에 있었다. 특히 보컬 짐 모리슨에 관한 내용은 올리버 스톤이 제작 초기에 꼼꼼히 100명 이상의 주변 인물 등에게 조언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영화 장면에는 불만을 갖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애초부터 완벽함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점들을 알면서도 도어즈의, 그리고 짐 모리슨의 열렬한 팬이었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영화화를 결정하였고 사실과 픽션을 섞어가며(가능한한 사실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영화화를 우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도 짐 모리슨을 연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러한 점은 도어즈를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만한 이유였으며, 가장 더렵혀지고 외곡되길 원치 않는 존재였기에 우려는 더하였다. 로비 크리거의 말을 빌리자면, 처음 발 킬머를 보았을 때는, 그가 절대 짐 모리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짐을 연기하려 하지않고, 그냥 그가 되버리려고 접근하였던 발 킬머를 결국에는 로비 크리거도 짐이라도 자연스럽게 부르게 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짐 모리슨의 모습을 스크린에 투영하는데 성공하였다. 자라온 환경이나 정서가 짐 모리슨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발 킬머는, 대부분의 노래하는 장면 등에서도 립싱크가 아닌 직접 노래하는 열성도 보여주며, 이 영화로서 '배우'의 반열에 들만한 열연을 펼쳤다. 짐 모리슨 일생의 사랑이었던 파멜라를 연기했던 맥 라이언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물론 이것은 그녀가 너무 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데에 있다). 완전한 픽션인 대부분의 영화들에 비해 사실관계가 존재하는 영화인 탓에 자료조사와 인물에 관한 깊은 연구가 필요했던 연기자들은, 사실과 픽션 사이에서 일정선을 유지하며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과감하게 펼쳤다.



영화의 제목은 [도어즈 (Doors, the)]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짐 모리슨의 전기영화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도어즈를 얘기할 때 짐 모리슨을 빼고는 시작도 끝도 맺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팀내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였던 짐 모리슨.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짐 모리슨의 모습에는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는 락스타의 모습도 있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시인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며 짐에게 주술적인 세계와 의식 등을 소개하였고 또한, 영화를 가장 못 마땅하게 여겼던 사람 중 한 명인 파트리샤에 말에 따르면, 짐 모리슨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을 지녔고 정중하고도 친절한 신사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진실된 면은 영화 속에서 배제되고 오로지 마약과 술에 쩔은 광기어린 락스타로만 그려진 짐의 모습 때문에(자신에 관한 묘사부분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영화에 관해서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 편의 시와도 같았던 그의 일생은, 어찌보면 그를 끈질기게도 따라다녔던 죽음의 그림자로 막을 내렸다. 그 자신은 항상 사막과도 같이 황량하고 순탄치 않은 길을 외롭게 걸으며 괴로움속에 모든 것을 초월하기를 꿈꿔왔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짐 모리슨은 젊음과 억압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자유와 영혼에 대해 노래하던 짐 모리슨과 동시대를 살지 못했다는 것, 또한 그의 이러한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못내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출시 연기로 따지자면 이 영화 [도어즈 SE]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계속되는 연기 끝에 드디어 발매가 되었다. 출시 연기에 이유는 몇몇 장면에 관한 심의 덕분(?)이었는데, 심의를 담당하는 어른들께서는 아무래도 시청자를 걱정하는 마음에 그럭저럭 통과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작년부터 발매예정일이 발표된 후 몇달이나 지나서야 연기끝에 나온 타이틀은 비교적 만족할 만한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일단 발매 하루전까지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았던 사운드는, 다행히도 DTS트랙을 포함하게 되었다. DTS를 통해 전해오는 도어즈의 흥겨운 음악은 돌비디지털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함과 무게를 전해준다. 화질도 최근 개봉한 영화들과의 비교에는 조금은 어려움이 있지만, 10년 전 개봉한 영화치고는 깨끗한 화질을 선보인다. 타이틀은 총 2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1번째 디스크에는 영화 본편이 수록되어 있고, 두번째 디스크에는 각종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어 있다. 첫번째 디스크에는 보통의 장면 선택외에 곡들 위주로 선택할 수 있는 섹션이 있어서 노래 위주로 장면을 선택할 수도 있다. 두번째 장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서플먼트 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Featurette' 'The Road to Excess'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등은 영화와 도어즈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들이 실려있다. 감독인 올리버 스톤과 도어즈의 기타 리스트인 로비 크리거, 그리고 위에도 잠깐 언급하였듯이 왠지 불만이 많아보이는 파트리샤, 짐 모리슨 역을 맡은 발 킬머 등 주요배우들과 실존 인물 등의 인터뷰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다른 영화들의 서플먼트들의 중요성 보다는 아무래도 실존하던 밴드와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지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외에도 삭제장면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의 시간상, 내용상 삭제된 장면들을, 씬에 관한 친절한 한글 설명을 덧붙여 제공하고 있다. 삭제장면 외에 다른 서플먼트에서도 친절하게까지 느껴지는 한글 설명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 [도어]는, 도어즈의 팬들에게는 그들의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게 할 것이고, 이전까지는 고작 이름만 아는 것뿐 도어즈에 대해 잘 몰랐던 이들조차도, 마치 우연히 주말저녁 밤늦게 TV에서 나오는 [밴디트]를 보고 사운드트랙을 미친듯이 찾아 구매하듯(참고로 밴디트 타이틀은 절판이 되어 현재는 전설로만 남았습니다), [헤드윅]을 보고 또한 고가에 달하는 사운드트랙을 주저없이 구매하듯, 도어즈에 음악에 대해 미친듯이 구매욕을 불태울 수 밖에 없게 될 영화가 될 것이다.




2003.02.17
글 / 아시타카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그 동안 영화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장동건은 <친구>한 편으로 최고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 그가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이후 선택한 영화는 의외의 저예산 영화인 <해안선>이었다. 워낙 이전에 흥행참패를 많이 겪었던 이력이 있어서 인지, 장동건은 이른바 ‘떳을 때 바싹 버는’ 길을 버리고 김기덕 에게로 안겼다. 이러한 그의 모험아닌 모험은 일단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흥행과 비평은 제쳐두더라도 배우인 장동건을 위해서 말이다. 김기덕 감독은 <섬>, <수취인불명>등 이전 영화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한정된 공간과 분단 상황 등을 그려왔는데 이 작품 <해안선>역시도 한정된 공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감했었던 것처럼 거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같은 부담스러운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한 인간에 대한 고뇌와 고통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강한철 상병(장동건 분)은 해안경비대 소속의 군인이다. 그는 제대 날짜만 세고 있는 다른 군인들과는 다르게 임무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하고 반드시 간첩을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는 의지가 강한 남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술김에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왔던 근처에 사는 두 남녀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간첩으로 오인한 강한철 상병은 무자비하게 남자에게 총격과 수류탄을 퍼붓는다. 하지만 상황종료후 이들이 간첩이 민간인임을 알게 된 강한철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고, 총살된 남자의 애인이었던 여인도 심한 정신적 충격에 늘 웃으며 근처를 떠돌게 된다. 정신적 이상으로 강한철 상병은 제대를 하지만,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는 다시 군복을 입고 해안선으로 돌아가게 된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리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그저 동정과 조롱을 받을 뿐이다. 그 자신은 임무에 너무도 충실한 탓이었지만, 출입금지 구역을 침범한 민간인을 사살한 죄책감과 충격은 한낱 표창장으로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조직에서 세뇌당한 이는 피해자로 평생을, 아니 일생을 마감하게 되고 우리는 그렇게 또 금방 잊고 만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 그리고 해안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설정은 한 인간의 심리극을 나타내기에 더할 나위없는 것 이었다. 또한 김기덕 감독 자신은 해병대 출신으로 이 같은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주인공 강한철 상병 외에도 상처받은 여인인 미영, 그리고 강상병과 동기인 병사, 그리고 미쳐버린 동생의 오빠. 이들은 자신의 의도였던 아니던 간에 모두 씻을 수 없는 분노와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러한 감정들은 어느 곳, 어느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했던 여러 명의 군인들이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음모를 도모하는 장면은, 상처받기도 쉽지만 또한 무섭도록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록 영화는 대형 블록버스터 급 지원을 받지는 못한 저예산 영화였지만, DVD 타이틀은 다른 외국영화 타이틀들과 비교하여도 크게 뒤떨어질 것이 없는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화질과 음질을 살펴보면, 1:85:1의 아나몰픽 화면으로 검푸른 바닷가와 우거진 수풀 등 배경 등을 깔끔하게 선보이고 있다. 섬세한 화면의 표현만큼 사운드 면에서도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데, 한 밤중을 빗발치는 총알 소리는 높은 분리도로서 실감나게 전달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DTS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다음은 서플먼트인데, 무엇보다도 반가운 서플먼트는 바로 김기덕 감독과 장동건이 참여한 음성해설이다. 딱딱하지 않고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의 음성해설은, 장면에서의 감독과 배우의 의도와 부가 에피소드 등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메이킹 필름에서는 ‘해안선 신병들의 지옥훈련’ ‘김기덕, 장동건의 이중주’ ‘넘어서는 안될 선’ ‘본격 심리 드라마’ ‘전쟁 없는 전쟁영화’란 제목들로 나뉘어 성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작과정을 전한다. 외국 타이틀들과는 다르게 자막이 아닌 성우의 목소리로 듣는 제작과정은 매우 흥미있는 요소라 하겠다. 이외에도 스틸 겔러리 에서는 노래 한 곡을 들으며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예고편과 TV 광고 장면도 수록되어있다.




타이틀의 메인화면에 등장하는 헤드카피문구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비약 해안선에만 머무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선은 표면적 해안선 보다는 내면적인 인간의 심리적 요소에 더 가깝게 닿아있는 듯 하다. 우리가 영화 속 상처받은 인물들을 보며 마냥 슬퍼할 수만 없었던 것, 그리고 극중 강한철 상병이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것, 이것들 또한 이 영화 속 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03.02.14
글 / 아시타카




전운이 감돌던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폴란드의 국보급 천재 음악가다.
스필만은 여느 때와 같이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데, 바로 그 순간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고 스필만은 자신의 연주를 완전히 끝내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나치는 폴란드 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유대계인 스필만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실린다. 피아니스트인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스필만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나치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되는데....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역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중요 표적이 되었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주인공인 스필만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배경의 이야기를 로만 폴란스키만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배경에 있다.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는 그 역시 유태인이며, 스필만과 같이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였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잃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꼭 이 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저서를 읽는 순간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물론 폴란스키 감독은 스필만처럼 처절한 생존의 상황에 내버려 지지는 않았었지만, 적어도 스필만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이 전쟁을 영화화 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하고 되새긴다기보다는,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전쟁이라는 것의 무의미함과 참혹성을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이었을 것이다. 타성에 젖을 수도 있었던 폴란스키는, 그러나 상황을 냉정하고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데 성공하였고, 그의 여러 영화 가운데서도 스스로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가 가장 하려는 이야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영화는 종종 같은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와 비교가 되곤 하는데, 이 같은 시각이 [쉰들러 리스트]와 가장 구별되는 점이다. 스필버그는 그의 영화 답지 않게 어두운 분위기와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고,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군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들이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심심풀이로 유태인들에 머리에 총을 겨누었고,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없이 그저 참혹하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느꼈던 폴란스키의 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독일 군 역할을 맡아 출연한 배우들은 촬영을 하면서도 분노가 일정도로 나쁜 놈처럼 보였지만, 카메라가 멈추었을 때에는 그저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로 돌아온 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처참한 전쟁의 가운데에는 착한 독일인들도 있었고, 반대로 폴란드인들 중에는 악한 폴란드인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절대 악이란 ‘전쟁’ 자체였으며, 절대 선으로 하여금 악으로의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전쟁이란 것이다. 결국 모두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이 전쟁이고, 폐허와 악몽만이 남는 것이 전쟁일 것이다. 다음에 사실은 이러한 전쟁의 사실적인 내용을 보탬 없이 그대로 들려준다.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The Warsaw Ghetto).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 나치의 첫 번째 목표지역 중 하나는 바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였다. 바르샤바는 독일의 민족적, 경제적, 기타 다양한 이유로 시작한 전쟁에 있어 중요한 요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에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한 뒤 1939년 9월 16일, 전면적으로 이 도시를 침공했다. 스테판 스타진스키 시장과 줄리앙 롬멜과 같은 인사들을 필두로 용감한 저항이 시도되었으나 독일은 그들의 전력과 수력 공급 로를 차단했다. 결국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는 대가로 저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독일군은 10월 1일 도시를 완전 점령했다. 12일에 히틀러 정권은 철조망으로 403 헥타르의 게토 지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16일, 독일군은 도시 인구의 30%가까이 되는 36만 명의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 강제 거주시키기에 이른다. 점차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보내지고 곧 50만 명이 넘게 된다. 10만 명의 유대인은 이곳에서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



마침내 도시의 모든 유대인은 이 강제거주지로 몰린다. 그들은 파란별이 그려진 흰색완장을 반드시 착용해야했다. 또한 노역을 당해야했고 식량은 아주 조금씩 배급되었다. 나치군은 자기 기분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환경 속에서도 강제거주지역, 즉 게토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게토 내에서 그들은 학교를 다녔고 정치적 활동도 조심스레 진행되었다. 1942년 7월, 8월에 거대한 이송이 시작되었다. 31만 명에 가까운 게토의 유대인들은 트럭 혹은 배로 이동, 대부분이 트레블링카 실험 캠프로 옮겨졌다. 1943년 3월, 히틀러는 남아있는 유대인 처형을 위해 나치 군을 보냈다. 같은 해 4월, 나치의 학살계획이 확실해지면서 처형당하는 자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게토 지역은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사회주의자이자 시오니스트 운동의 지도자 모데하이 아닐레빅이 이끈 폭동에 4만 명의 유대인이 참가했다. 그들 중 무장된 이들은 단지 200명뿐이었다. 이 처참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5월 16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주민들은 탱크와 화력을 앞세운 독일 군에 강력하게 대항하였다. 이 싸움은 폴란드 저항군이나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의 도움 없이 진행되었다. 이 전투에서 7천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고 3만 명의 생존자는 강제 이송되었다. 독일이 바르샤바를 포기한 1945년 1월, 이 도시에 살아남은 유대인은 불과 20여 명뿐이었다. (보도자료)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여과 없이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과 생존에 관한 것이다. 실제 스필만은 영화 속처럼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배고픔, 추위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폴란스키 역시 스필만이 역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돌아온 스필만이 연주회를 여는 장면으로도 알 수 있다.

또한 스필만의 생존의 이유가 그가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연주로 인해 독일 군 장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Wilm Hosenfeld‘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독일 군 장교는, 폐인에 모습을 하고 있던 스필만 으로부터 연주를 들을 후에 독일 군과 유태인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전쟁을 초월한 인류애적인 입장에 서서 그를 돕게 된다. 사실 많은 헐리우드의 영화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만 있으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었다. [피아니스트]역시 따지고 보자면, 그러한 입장에 서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둘 간의 분명한 차이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스필만의 연주가 사치스럽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모든 생각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동의하게 때문일 것이다.



일단 타이틀은 3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져 있다. 본 편을 담은 첫 번째 디스크와 서플먼트 만을 수록한 두 번째 디스크, 그리고 초판 한정으로만 수록되어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디스크가 세 번째 디스크로 수록되어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는데, 타이틀의 화질은 그때의 전장의 비극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고 있는데, 총소리나 폭발음에 포커스를 맞춘 사운드는 아니기에 이러한 소리들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레퍼런스 급의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폐허가 된 건물 안에서 스필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반드시 볼륨을 키우고 감상해 볼만한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영어 더빙 외에 프랑스어 더빙도 지원하고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갖가지 서플먼트가 담겨있는데, 무엇보다도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감독인 폴란스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A Story of Survivor'가 눈길을 끈다. 다른 타이틀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들보다는, 좀더 숙연하고 조심스레 접근한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다 하지 못했던 폴란스키의 얘기와 그가 표현하려 했던 의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여기에는 주연 배우인 애드리언 브로디와 독일 군 장교역할을 맡았던 토마스 크래츠만의 인터뷰도 들을 수 있다. 이외에 각종 예고편들과 골든 글로브와 칸 영화제 스케치, 포스터 모음, 포토 갤러리, 보너스 오디오 트랙, 스필만을 비롯해 스텝들과 배우들의 소개 또한 담고 있다.

2003.06.26
글 / 아시타카





주인공 앨리(조디 포스터 분)는 매일 어디 론가 무선 통신을 한다. 누가, 어디서 응답할지 알 수 없는 일방적인 목소리이다. 멀리, 더 멀리 통신을 시도하던 앨리의 호기심은 결국 그녀를 광활한 우주로 이끈다.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미약한 언어로는 사실상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것이었기에, 앨리의 이 같은 연구 활동은 무모한 것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십상이었다. 심지어는 같은 입장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까지 말이다. 하지만 앨리는 이러한 것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언젠가 들려올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헤드폰을 쓰고 언제 올지 모르는 신호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토록 기다리던 신호가 앨리의 귀에 들려온다. 그 신호는 믿기 힘들 정도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베가성으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우주와 미지의 생물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SF영화들은 주로 인간이 우주로 나가 겪게되는 모험담이나 외계인들과 벌어지는 액션, 전투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미지의 생물과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와 공포를 동시에 전해주기는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올 때 가슴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성을 버릴 수는 없다고 보았을 때, 너무 학문적인 것에만 치중한 영화도 관객들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콘택트]는 이러한 영화들 가운데에는 가장 추천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원작이 되는 소설과 그 저자에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코스모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칼 세이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우주 연구에 있어서는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에 관해 전문 지식이 전무 한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서 광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하고 쉽게 설명하여 이 분야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또한 그는 NASA의 자문역으로서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의 중심에 있었고, 저서 'The Dragons of Eden'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저서 ‘코스모스’와 동명 TV시리즈를 대중에게 소개하여 작게는 과학을, 넓게는 우주라는 개념을 보편적인 생활과 접목시키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영화 [콘택트]에서 칼 세이건은 직접 자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아쉽게도 영화가 완성되기 전인 1996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콘택트]는 칼 세이건의 자전적인 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인 앨리 애로웨이는 여러 면에서 칼 세이건과 닮아있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난 후 ‘For Carl'이라는 말과 함께, 이 영화를 칼에게 헌정하는 부분은 아쉬움과 존경심으로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과학과 진리, 과학과 믿음의 개념은 상대적인 것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렇게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물론 한낱 dvd타이틀 리뷰에서는 거론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이다. 이러한 대립의 개념은 인간이 하느님의 손으로 빚어진 작품이냐, 아니면 원숭이가 진화되어 생겨난 존재인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더 크게 본다면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 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콘택트]에서는 이러한 대립 개념은 중요치 않다. 중요치 않다고 하기 보다는 아예 대립의 개념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앨리는 누구보다도 눈에 보이는 증거와 물증을 믿는 과학자였다. 하지만 우리도 영화에서 느꼈다시피, 그녀가 경험한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고 증거가 남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도 언급하였던 것과 같이, 이러한 것을 경험한 자로서도 그렇지 못한 자들이 의심하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칼 세이건은 중요한 말을 전하고 있다. 우주를 탐구하는 일은 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라는 것. 즉 과학과 신앙은 추구하는 바가 같기 때문에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영화 속 두 주인공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신학을 공부하여 신념이 강한 팔머(메튜 매커너히 분)와 과학자인 앨리의 관계 말이다. 팔머는 영적인 존재를 믿는 신앙이 강한 자이지만, 과학자인 앨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반대로 과학자인 앨리는, 역시 사랑하는 팔머와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함으로써 모든 것이다 말로서 증거로서 입증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게 된다. 신을 믿는 사람이건 과학을 믿는 사람이건, 우리는 모두 우주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속에서 끝없이 진리를 갈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꿈꾸는 이상향의 파라다이스가 있다. 앨리의 파라다이스는 ‘펜사콜라’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플로리다 주 어느 곳에 위치한 동네일뿐이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사실 특별한 추억이랄 것 까지는 없었지만 그녀 자신은 무의식 속에, 항상 그리워하는 아버지가 있는 펜사콜라를 그려왔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이러한 것은 중요하지가 않았다. 베가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앨리의 무의식 속에서 찾아내 만들어진 공간과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영화 속에서 수사를 맡은 제임스 우드가 비아냥 거리 듯, 엄청난 자본과 기술로 완성된 이동수단을 타고 수십억 광년을 날아간 곳이 고작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바닷가였고, 거기서 만난 존재가 겨우 예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는 것. 하지만 그러면 어떠하랴. 자신의 항상 꿈꿔왔던 곳에서 그토록 다시 만나기를 원했던 아버지를 만난 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필자로 하여금 가장 큰 생활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그 시작은 항상 작은 것에서 시작하듯이, 넓은 우주에 대한 호기심도 결국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우주란 공간은 인간만이 살기에는 너무 넓은 곳이다. 그리고 인간의 힘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리하여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살아가지만, 한번쯤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자신의 영혼의 뿌리를 찾아가는 길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타이틀의 퀄리티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DVD로 출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린시절 손에 땀을 쥐며 인디와 모험을 함께 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정말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최첨단 복원기술과 완벽한 리마스터링을 통해, 팬들에게 개봉직 후 느꼈던 놀라움을 또 한번 선사해버렸다.



[인디아나 존스 트릴로지 시리즈](이하 ‘인디’)는 많은 DVD마니아들에게 [스타워즈 트릴로지 박스세트], [백투더 퓨처 트릴로지 박스세트]와 더불어, 가장 많은 출시 요청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일단 영화적 요소를 살펴보자면 [인디]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어드벤처 영화의 바이블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재미와 흥미진진함, 짜임새 있는 스토리, 볼거리, 완성도 등을 고루 갖춘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작품이다. 사실 이후에 나온 작품들 가운데 [미이라]의 경우, [인디]의 명성에 견줄만한 작품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주관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인디]만한 어드벤처 물, 시리즈 물은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렇듯 대단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지 루카스스티븐 스필버그이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인 부와 명예, 마니아들을 양산해 냈고, 스필버그는 [E.T]등으로 시작해 최근 [A.I] [마이너리티 리포트]등을 통해 뛰어난 상상력의 SF 영화 감독으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디]를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만 알고 있는데, 스필버그가 감독임에는 분명하나 조지 루카스의 비중이 그 못지 않았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출시된 [인디[타이틀을 살펴보면, 두 명의 감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조지 루카스에게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조지 루카스는 사실 [스타워즈]의 이야기를 쓰기 전에 [인디]의 대한 구상을 먼저 했었고, [스타워즈]가 개봉한 뒤 영화화할 감독을 찾던 중 스필버그에게 감독직을 제안하게 됐던 것이다. TV시리즈와 B급 액션영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인디]는 이 같은 소박한(?)제작 초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 장르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리즈가 되었다.



하지만 [인디]의 탄생과 반응이 처음부터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지 루카스가 생각해 낸 이야기는 당시로서는 많은 제작비가 예상되는 관계로 선뜻 나서는 영화사와 제작자가 없었고, 개봉 뒤에는 인도를 비롯한 다른 인종들을 미개인으로 묘사하는 등 인종차별의 논란과 여성을 비하하고, 각 지역의 유적들을 훔치는 인디의 행동을 정당화 했다는 비판, 그리고 과도한 폭력과 잔인한 장면들로 인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등 많은 비판 또한 들어야했다(실례로 잔인한 장면과 폭력적인 장면들로 인해 당시에는 없었던 P-13등급이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시 타이틀로 돌아가서 개봉 직후 안겨줬던 놀라움을 다시 선사해버렸다는 표현에는, 타이틀의 놀라운 화질과 사운드에 있다. 사실 1981, 1984, 1989년에 개봉한 영화가 아무리 최첨단의 리마스터링 복원 기술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최근 개봉한 영화만 할까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분야의 최고를 자랑하는 루카스 필름의 THX리마스터링 사운드와 라우리 디지털의 영상 복원 기술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영상과 화질을 만들어 냈다. 리테일러 컨벤션에서 잠시 느낄 수 있었던 THX 사운드는 최근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왠만한 타이틀의 사운드를 넘어서는 스펙터클하고도 실감나는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사실 많은 인디 팬들이 걱정했던 것은 사운드 보다는 영상이었는데, 이 마저도 아주 깔끔하게 잠재워버렸다. 라우리 디지털사의 완벽한 영상 복원기술로 재탄생한 영상은,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최근 개봉한 영화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길게는 20년도 더 전에, 짧게는 10년 전에 개봉한 영화라고는 정말 믿겨지지 않는 완벽에 화질을 재공하고 있다. 특히 시리즈의 2편 격인 [인디아나 존스 : 미궁의 사원]의 경우, 어두운 배경과 조명의 장면이 주를 이룸에도, 완벽에 영상을 보여주는 점은 정말 복원 기술에 놀라움을 또 한번 느끼게 한다.



또한 타이틀의 메뉴 디자인은 인디다운 역동감이 넘치면서도 화려한 메뉴로, 일반의 밋밋하고 정지되어 있는 메뉴 디자인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보았던 메뉴 디자인 중에 단연 최고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타이틀은 [프랭클린 플래너 포함 한정반]과 [라의 목걸이 포함 한정판]으로 나뉘어 출시되었는데, 두 가지 모두 메리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플랭클린 플래너 한정반은 인터넷상에 공개된 사진보다는 실제로 받아보았을 때 더 고급스러움이 느껴졌으며, 많은 이들이 구입을 꺼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플래너를 개별적으로 사용할 때 속지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플래너를 사용할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디를 더욱 소장가치 높은 세트로 소장한다는 점과 디지팩으로 이루어진 박스세트를 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과 라의 목걸이 한정판과 가격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에서 플래너 한정판을 더 추천하고 싶다(참고로 플래너 내에는 속지를 할인 구매할 수 있는 할인권도 포함되어 있다). 라의 목걸이 한정판에 주어지는 목걸이는 1편 레이더스에서 등장하는 목걸이를 본 딴 목걸이로서 실제로 목걸이의 용도로 쓰기에는 조금 부담감이 있으나 장식용이나 소장용으로는 이것도 좋은 아이템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인디아나 존스 박스세트를 시리즈 별로 하나씩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자.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정부로부터 성서에 나오는 성궤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인디는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성궤의 행방을 추적해 나간다. 그런데 나치군들도 역시 전쟁에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지닌 성궤를 찾아 나서는데..



시리즈의 가장 첫 편인 레이더스는 1981년 개봉한 작품으로, 인디아나 존스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다. 일단 시리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인지라 영상의 회손 정도와 팬들의 우려가 가장 컸던 작품이었는데, 이미 여러 번 언급했던 복원 기술로 인해 완벽하게 재탄생하였다. [레이더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영화의 초반 인디가 거대한 돌을 피해 탈출하는 시퀀스와 마지막 성궤를 개봉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 고대 유물을 가지고 거대한 돌을 뒤로 한 채 탈출하는 장면은,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의도했던 B급 액션 영화와 TV시리즈 물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서,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에 대해 특별히 다른 설명 없이도 파악이 가능토록 배치한 오프닝으로 기억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블루 스크린 기법을 이요한 ILM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신비스럽고도 괴기스런 장면을 연출하였다.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만주족 시조의 유골이 있는 보물을 둘러싸고 라오 일당과 협상하기 위해 상해에 와있다. 그러나 그는 이 협상 도중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고 우연히 쇼걸인 윌리와 꼬마 택시운전수 소년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러나 탈출 도중 비행기가 추락하여 티벳의 샤만 마을에 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예기치 못한 모험 속에 뛰어들게 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들을 본 마을 사람들은 존스 박사 일행을 구세주로 여겨 자신들이 빼앗겨 현재 판코드 궁 어딘가에 있는 신비의 돌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존스는 신비의 돌을 찾고 밀교 일당에게 잡혀간 마을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 전설의 미궁을 찾아간다. 일행은 그 미궁에 도착하여 그 비밀집단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비밀종교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인디아나 존스 : 미궁의 사원]은 전편인 [레이더스]의 성공에 힙 입어, 1편에서는 러닝 타임과 제작비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다 보여주지 못했던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루카스가 만들었던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과 같이 시리즈의 2번째 작품으로서,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와 폭력적 장면들로 인해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P-13이라는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미궁의 사원]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한다면, 갱 안에서 석탄 운반차를 타고 벌어지는 추격 장면과 마지막 다리에서의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는 추격 장면은 사실 1편인 [레이더스]때 수록하려던 장면이었는데, 넘치는 아이디어로 인해 2편인 [미궁의 사원]에 포함되게 되었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 장면은 곳곳에 유머러스한 장치를 삽입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추격 장면을 만들어냈다. 추격 장면에 이어지는 다리 장면은 영화사에 또 하나에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과 다리가 끊어지는 장면, 그리고 다리에 매달려 절벽을 오르는 장면은 언제 봐도 흥분되고 몰입하게 되는 장면들이다.



어릴 때부터 모험심이 많았던 인디는 보이스카웃 시절인 1912년, 도굴꾼이 보물(십자가) 훔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막으려 한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 핸리 박사의 무관심으로 실패한다. 인디는 이 일로 훗날 그가 늘 쓰고 다니는 트레이드마크인 중절모와 채찍을 얻는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처럼 고고학자가 된 인디는 어린 시절 놓쳤던 보물인 십자가를 되찾는다. 그리고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으로 돌아와 오래 전에 도착한 소포를 발견한다. 소포에는 아버지의 일기장이 있었는데, 월터라는 여자가 앙카라 북쪽에서 발견된 반쪽짜리 석판을 보여주며 헨리 박사의 일기장을 참고로 나머지 반쪽 석판을 찾으면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한 술잔인 성배(Holy Grail)를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해 준다. 인디의 아버지 헨리는 성배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에 행방불명이 되었었는데 인디는 아버지가 나치에게 납치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니스로 달려가 그를 구해낸다. 그리고 오랜 만에 다시 만난 이들 부자는 성배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면서 중동의 오지로 간다.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은 가장 최근의 작품답게 영상과 사운드, 그리고 완성도 면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인디를 만들 때 염두 해 두었던 것 중 하나는 여러 번 언급했던 B급 액션 영화들이고 또 하나는 007영화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이 가장 기획 의도에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단 인디 시리즈를 시작하며 계속 생각했었던 성배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과 무엇보다도 가장 성공하고 인기 있는 제임스 본드였던 숀 코너리가 출연한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숀 코너리가 인디의 아버지로 출연하면서, 인디에 개인적이고 가정사적인 배경이 설명되었고, 기존에 사랑과 모험 외에 부자간의 정을 다룬 요소까지 포함되게 되었다.



[최후의 성전]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인디와 아버지가 나치로부터 도망치는 추격전 장면과 마지막 성배를 얻기 위해 세 가지의 시험을 통과하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는 추격전에 스필버그의 유머러스함이 더해져 한층 재미를 더한다. 갈매기를 이용해 무기하나 없이 전투기를 상대하는 인디 아버지의 지혜도 배울 수 있고. 마지막 장면인 세 가지 시험 시퀀스는, 가장 긴장되면서도 한 편으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단순 오락 영화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번 타이틀 출시에 본 편의 영상과 사운드의 퀄리티 만큼이나 기대를 모았던 것이 바로 DVD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플먼트였다. 완벽한 복원으로 기대에 부흥한 스펙 만큼이나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들로 가득한 보너스 디스크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인디 팬들에게 충분한 즐거움과 만족을 전해주고 있다. 일단 시리즈 별로 메이킹 다큐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영상들은 아마도 가장 유익한 서플먼트라고 할 수 있겠다. 루카스와 스필버그의 인터뷰를 통해 인디가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들과 캐스팅, 캐릭터의 설정, 배경, 장면 연출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인디아나 존스 역할의 해리슨 포드를 비롯해, 카렌 알렌, 숀 코너리, 케이트 캡쇼, 아역이었던 케 까지...(특히 아역을 맡았던 케의 성장한 모습은 정말 징그럽다...)자신들이 맡았던 캐릭터와 촬영장의 에피소드, 그리고 상대 배우와 스텝들의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영화 자체가 워낙에 할 얘깃거리가 많은 영화 인지는 몰라도 일련의 제작 다큐들 보다는 훨씬 유익하고 흥미로운 시간들로 꾸며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제작 다큐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감독인 스필버그 외에 조지 루카스에게도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즐겼던 장면을 만들기 위해 뒤에서 모르게 힘썼던 스텝들의 얘기들도 전해들을 수 있어 좋은 정보가 될 것 같다. 또한 어린 인디아나 존스로 출연했었던 리버 피닉스의 인터뷰 영상도 수록되어 있어 그의 팬들에게는 또 다른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세 가지의 메이킹 다큐 외에 스턴트와 사운드, 음악, 시각 효과 등으로 나뉘어 영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들 영상을 통해 저 장면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이 되었고, 스필버그 영화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존 윌리엄스의 기념비 적인 ‘빰빠밤빠~빰빠바’하는 스코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ILM의 기술적인 부분까지도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짙은 갈색의 가죽 자켓과 단추가 몇 개쯤 풀어진 셔츠, 손에 움켜쥔 채찍과 눌러쓴 중절모. 인디아나 존스는 만화 캐릭터가 아님에도 확실한 그림이 그려지는 영화사에 몇 안 되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아이디어와 유머러스함, 액션, 로맨스, 스릴러적 요소가 모두 포함된 하나의 완벽한 어드벤처 영화이다. 이후로도 이를 뛰어넘는 어드벤처 영화가 나오지 않은 점을 감안 할 때, 아니 혹 그런 영화가 추후에 만들어지더라도, 이번 [인디아나 존스 트릴로지 박스세트]의 출시는 명백히 기념비적이고 또한 감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첨부터 ‘왜 기념비적인가?’하는 물음 자체가 바보 같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냥 플레이어에 디스크를 넣고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마도 ‘빰빠밤빠~ 빰빠바~’하는 스코어가 흐르는 순간 온몸은 전율로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2003.10.28
글 / 아시타카


슈퍼 비트에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잠수함 영화! 여럿 잠수함 영화 가운데 단연 최고의 영화! 더 이상 형용할 필요가 없다.


독일군의 패전기미가 보이던 1941년. 잠수함에 승선한 젊은 독일군들은 먹고 마시며 하루 하루를 보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잠수함이라는 공간에 답답함을 느끼고 전쟁의 비정함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그들에게 위험한 명령이 떨어진다. 영국군의 본거지인 지브롤터해협을 통과하라는, 마치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명령이다. 드디어 적지를 향하던 U-보트는 폭탄에 맞아 바다 속 깊은 곳에 처박히고, 군인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 놓이게 된다.



감독인 볼트강 페터슨은 [사선에서] [퍼펙트 스톰] [네버엔딩 스토리]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진 감독이다. 또한 그의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펙터클하고 스케일이 큰 영상을 잘 만들어내는 이 분야의 대가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특전 유보트]인데, 이 영화는 영상에 표현에 있어서 극과 극을 달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1981년에 제작된 영화인지라 지금의 컴퓨터 그래픽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어설픈 효과와 영상의 삽입이 쉽게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 당시로서 그 정도 영상의 잠수함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감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영상 표현에 있어 극과 극을 달린다는 말은 잠수함 영화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대양을 가르며 적 잠수함과 전투를 벌이고, 어뢰와 폭발이 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큰 스케일의 스펙터클한 영상 표현이 필요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는 대부분의 러닝 타임을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할애하기 마련이다. 사실 이같이 한정된 공간에서의 영상 표현이, 이것저것 활용 요소가 많은 다른 공간에서의 표현보다는 훨씬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줄 수 있고, 흥미를 잃게 하기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이 영화 [특전유보트]는 무려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 같은 지루함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지루함은 감독에 의해 의도된 것으로,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실제 병사들이 겪는 지루한 감정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후반부에 극적인 요소들이 더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장면 장면의 카메라 앵글이라던가 잠수함 영화 특유의 영상미는 이후 만들어진 대부분의 잠수함 영화들의 초석이 될 만큼 완벽하고 절대적인 스타일을 제공한다.
영화가 개봉한지 20년이 지난 오래된 영화인만큼, 아무리 슈퍼비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할지라도 최근 영화들과 화질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 같은 현상은 TV로 시청할 때는 크게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지만, DVD-ROM 환경에서 플레이 할 시에는 콘트라스트 비가 확연히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매번 얘기하지만, 충분히 감안할 만한 정도이다. 시종일관 어두운 조명 속에서 대부분의 러닝 타임을 소지하는 영화의 특성상 화질의 극대화를 노릴 만한 영상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역시도 충분히 봐줄만한 화질을 제공하고 있다.




[특전 유보트]가 슈퍼비트로 출시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사운드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잠수함 영화의 생명은 바로 사운드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에 잠수함 내에서 적을 감지하고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소리이기 때문이다. [U-571]의 경우 어뢰를 사용한 전투 장면이 부각되어 사운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특전 유보트]에서는 잠수함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운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계 수심을 넘어 잠수할 때,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사운드 이다. 미세하지만 압력을 받는 잠수함의 소리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며, 또한 압력을 견디다 못해 하나 둘씩 터져 나오는 볼트의 굉음도 실감나게 전달된다.

아무런 사건이 없을 때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운드만이 간혹 들리지만, 공격을 당했을 시에는 물이 강하게 새들어오는 소리, 화제로 불꽃이 이는 소리, 분주하게 함 내를 오가는 병사들의 발소리, 또한 고래고래 질러대는 외치는 소리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데, 이 같은 장면에서 채널의 분리도가 극대화 되었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로 잠수함 내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에는 충분한 현실적인, 정신없이 긴장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더빙 언어 선택에 있어 영어가 아니라 원어인 독일어에 DTS트랙을 사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아니메는 일본어 특유의 어감으로 감상해야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듯이, 독일어 특유의 강세를 느낄 수 있는 더빙은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3.07.30
글 / 아쉬타카




걸작. 명작. 대작. 역작 등...이러한 수식어들은 가히 아무 것에나 붙일 수 있는 말들이 아니다. 하지만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이러한 찬사의 수식어들조차 별 볼일 없게 만들어 버린다.



1940년대 푸에르토리코를 보호령으로 한 미국에 자유로 들어오는 푸에르토리코의 빈민들이 뉴욕에 제2의 할렘을 만든다. 백인지구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지구가 인접한 뉴욕의 웨스트사이드에서 젊은이들의 텃세 싸움이 되 풀이되고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계의 제트단과 푸에르토리코계의 샤크단으로, 서로 앙숙관계이다. 제트단의 리더 리프는 샤크단에 도전하기 위해 댄스 파티 장으로 가고, 토니에게 함께 가자고 제의한다. 패싸움에는 관심 없는 토니는 리프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파티 장을 찾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마리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녀는 샤크단의 리더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그날 밤 토니와 마리아는 마리아의 집 발코니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토니는 두 그룹의 화해에 힘쓰는 한편, 마리아와의 관계를 인정받으려 하지만, 리프와 베르나르도의 대립은 더욱 격화된다. 다음날, 고속도로 아래에서 샤크단과 제트단의 대결이 벌어진다. 마리아의 부탁으로 그들의 싸움을 말리러 간 토니. 그러나 베르나르도와의 결투에서 친구 리프가 죽자 토니는 베르나르도를 죽이고 만다. 오빠를 죽인 사람이 토니라는 것을 알게 된 마리아.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한편 샤크단에서는 토니를 죽이려하는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는 수많은 결정적 장면들과 인상적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서두를 여는 장면은 바로 영화의 맨 처음 선보이는 프롤로그 장면이다. 프롤로그 장면은 이례적으로 감독이자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에게 전권이 주어졌다. 제롬 로빈스는 큰 부담감을 느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훌류한 프롤로그 장면을 완성해냈다. 뉴욕의 풍경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각으로 그려낸 시작부분에서는 부유한 빌딩 숲에서부터 공장들이 밀집한 장소로의 카메라의 이동만으로 영화의 주된 주제가 되는 이민자와 토착자 간의 갈등의 요소와 원인을 잘 나타내고 있다.

웨스트사이드의 어느 외곽 공터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프롤로그 장면은, 제롬 로빈스의 역량이 돋보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트 단과 샤크 단의 세력다툼과 숫적 우세함과 불리함으로 인해 계속 바뀌는 주도권, 이를 감싸고 있는 극적인 음악과, 대사 없이도 프롤로그를 완벽하게 장식한 뛰어난 안무는, 이 장면만으로도 의미있는 장면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뮤지컬 영화의 고전, 아니 비단 뮤지컬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고전이다. 일단 영화를 자랑하는 김에 화려한 수상 경력을 나열해 보자면, 196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남우조연, 여우조연, 미술, 촬영, 음향 등 무려 10개의 오스카를 수상하였고, 그해의 골든 글러브 작품, 남녀 조연상, 뉴욕영화 비평가협회 작품상, 미국 감독협회 감독 상, 그래미 어워드 사운드 트랙 앨범 상까지 정말 화려하다. 하지만 영화의 중요성은 상으로 대변될 수만은 없듯이, 이런 수상경력은 그저 얘기 거리일 뿐 중요한 것은 영화이다.

세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의 슬럼가로 옮겨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공연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제작 스텝들의 면면도 실로 만만치가 않다. 국내 팬들에게는 이보다 더욱 잘 알려진 뮤지컬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독으로 더 유명한 로버트 와이즈와 [왕과 나]의 안무를 맡았던 제롬 로빈스가 공동 감독을 맡았다. 또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음악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맡아 ‘Maria', 'Tonight', ’America'등의 유명한 곡들을 들려주었다.



또한 나탈리 우드, 리차드 베이머, 루스 탬블린, 조지 차키리스 등의 젊고 유능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노래와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발레를 전공한 제롬 로빈스의 안무는 영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때로는 전투적이고 공격적으로, 또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동작들을 그려내며, 연기 이상의 안무를 보여주었다.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서플먼트를 감상하다보면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접하게 되는데, 바로 감독과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의 완벽한 능력에 관한 것이다. 그냥 보기엔 연기자들이 대본에 맞추어 연기하는 일반적인 장면들인줄로만 알았던 장면들이 사실은, '원, 투, 쓰리...'하는 정확한 박자에 맞추어, 말 그대로 '연기'하듯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완벽함은 혹 부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합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제롬 로빈스에 방식에 대해 배우들이 혹독하고 정말 고생스러웠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사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이러한 안무의 아름다움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치 대사를 읊는 것과도, 또한 노래하는 것과도 같은 안무는 정말 놀라움마저 들게 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 역시, 제롬 로빈스의 뛰어난 안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훌륭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기도 한 레너드 번스타인은 대사보다 노래로 극을 전달하는 뮤지컬의 장르에 걸맞게 전체적인 분위기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스코어와, 곡 자체만으로도 유명해진 여러 멜로디들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속에 쏟아 놓았다. 중요한 몇 몇 곡들을 위주로 살펴보자.



영화의 프롤로그의 이어지는 곡으로서, 웨스트사이드 지역의 토박이(?)집단인 '제트 단'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는 곡이다. 노래와 대사가 계속 반복되면서, 제트 단의 우두머리 격인 리프(루스 탭블린 분)의 선창과 단원(?)들의 합창으로 이루어지는 곡은 짧지만, 영화의 초반 극의 분위기와 배경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중립지역인 댄스 파티장에서의 긴장되고도 화려한 댄스의 향연이 끝난 후, 서로 한 눈에 반해버린 토니와 마리아. 얼핏 '마리아'라는 이름을 전해들은 토니의 감정을 잘 표현한 곡이다. 그저 마리아라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해져버린 마음을 그대로 담은, 토니의 감미로운 세레나데.



JET Song을 통해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제트 단의 성격을 얘기했다면, America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족인 '샤크 단'의 성격과 애환을 유쾌하고 흥겹게 다루고 있는 곡이라 하겠다.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실상과 아메리칸 드림 사이에서의 갈등과 현실을, 그들만의 리듬과 역동적인 춤으로 풀어내고 있다. 옥상에서의 남여가 어울린 큰 스케일의 댄스 씬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손 꼽힌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Tonight'은 가장 유명한 만큼 가장 중요한 의미와 장면에 흐르는 곡이다. 창가에 기댄 마리아와 이내 계단을 올라 그녀 곁에서 노래하는 토니의 모습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름다운 시로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고, 토니와 마리아는 감미로운 멜로디로 서로에 사랑을 확인했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극적으로 조여오는 스트링과 역시 극적으로 대비되는 가사와 장면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서로 결투를 준비하고 있는 제트 단과 샤크 단, 사랑하는 베르나도를 설레이며 기다리는 리타, 그리고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토니와 마리아. 모두 같은 '오늘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아래 각기에 다른 상황들을 한 곡안에서 절묘하게 대비시키면서, 또한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곡이다.

이외에도 마리아의 깜찍함이 돋보이는 'I Feel Pretty'와 엇갈려만 가는 운명에 슬퍼하는 토니와 마리아의 'Somewhere', 역동적이고 고난도의 안무와 음습한 분위기가 어울린 'Cool' 등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코드 1은 이전에 발매가 되었으나 이 역시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드디어 발매되는 코드 3의 타이틀은 정말 반갑게 느껴진다. 스페셜 에디션의 2장의 디스크로 발매된 타이틀은 첫 번째 장에는 본 편을 수록하고 있고,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를 수록하고 있다. 본 편은, 물론 최근 출시되는 영화들과 그 화질과 음질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이를 감안한다면 비교적 훌륭한 화질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의 만족할만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타이틀의 발매가 반가운 것은 두 번째 디스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에는 그 동안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자료들이 가득 담겨있다.

제작과정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West Side Memories'에는 스텝들의 이야기와 세월이 흘러 주름과 백발이 성성한 배우들의 인터뷰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스토리 보드와 영화 장면을 비교한 몽타주, 다양한 갤러리들과 여러 가지 버전의 예고편을 수록하고 있다. 갤러리도 이전 영화들보다는 좀 더 다양한 분류의 갤러리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스크린의 뒷 편에서의 배우들과 스텝들의 모습을 다룬 갤러리는 특히 돋보인다. 예고편 역시 단순한 극장용, TV Spot의 종류에서 벗어나 예전의 고전적인 분위기까지 한껏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을 수록하고 있다.



2003.04.14
글 / 아쉬타카




분명히 영화 사상 가장 인상적인 엔딩 장면 중 하나인 마지막 장면의 누들스의 그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앞으로도 눈 감는 날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슬픔과 씁쓸한 감정을 가슴 깊이 각인시켰다.



누들스를 주축으로 짝눈, 팻시 등은 어릴 때부터 몰려다니며 좀도둑질을 하는데 어느날 술에 취한 주정뱅이를 털려다가 프랑스에서 막 이민 온 맥스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누들스는 이렇게 만난 맥스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한편 짝사랑하는 데보라는 누들스가 한낮 깡패에 불과하다며 거절한다. 맥스가 가담된 이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 좋은 누들스의 기발한 방법으로 갱단의 밀수품을 안전하게 운반하고 큰 돈을 모은다. 이들은 그 돈을 넣은 가방을 역의 간이 보관함에 넣고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을 떼어 공금으로 모으기로 한다. 큰 부자가 될 것을 기뻐하며 거리를 걷던 이들에게 곧 총을 든 버그가 뒤 쫓아와 누들스는 첫 살인을 하게 되어 감옥에 들어간다.



뚱보의 술집을 방문했던 누들스는 공원의 고급 묘지에 묻혀있는 어릴 적 친구들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는 묘지에서 자신에게 남겨놓은 현금 가방이 든 열쇠를 발견하고 그 역에 가는데 거기서 그는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선불'이라고 쓰인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막 출감한 누들스는 마중 나온 맥스를 따라 뚱보의 술집으로 간다. 누들스가 감옥에 있는 사이에 맥스의 수단으로 이들은 프랭키라는 거물과 손을 잡고 밀주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다. 하지만 금주법이 끝나면서 이들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누들스는 비록 맥스와 함께 불법 일을 하기는 하지만 맥스의 지나친 검은 야망에 둘 사이는 점점 금이 간다. 맥스는 평생 꾸어온 꿈이라면서 연방 준비은행을 털자고 제안하지만 누들스는 반대하는데..



사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장이라는 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일명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인 [황야의 무법자]로 거장의 대열에 올랐던 레오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야의 무법자]보다 더 뛰어난 영화는 아마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들을 떨쳐내고,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하 원스)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레오네가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의 [원스]를 내놓기 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과 역경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으로서도 다른 영화들보다 엄청나게 긴 러닝타임 덕분(?)이었다. 처음 편집을 마치고 난 작품의 길이는 무려 8시간이 넘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오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 같은 러닝타임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어 내용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재편집을 한 결과 229분, 즉 3시간 49분 가량으로 단축(?)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2시간 남짓으로 이루어진 것에 견주어 보았을 때 결코 짧은 러닝타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작사에서는 러닝타임을 과감히 삭제한 2시간 19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여 개봉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2시간 19분 동안에는 감독이 하려는 말을 모두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흥행을 목적으로 편집을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흥행에도 참패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삭제된 러닝타임을 복원하여 공개된 영화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도 전혀 달랐다. 드디어 세르지오 레오네의 진가를 깨달게 된 평론가들은 1980년대 최고의 영화를 뽑는데 주저 없이 [원스]를 선택했고, 관객들 역시 레오네가 만든 한 편의 대서사시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장으로 추앙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는 장르영화에 명작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서부영화로 장르자체를 개척한 작품이 되었고, 이 작품 [원스]는 마피아를 다룬 갱스터 영화로 장르적 성향이 짙은 영화였다. 이러한 그의 역량은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많은 젊은 감독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존재가 되었다. ‘한계를 모르는 분이죠’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이다.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관한 얘기들은 타이틀 두 번째 디스크에 담긴 서플먼트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가 위대한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얼마나 위대하고 따뜻하고 완벽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그 다큐멘터리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그의 한 마디를 옮겨 적어본다.

My way of seeing things is sometimes naive but with the sincerity of the kids from the Viale Gloriose steps - Sergio Leone (1929-1989)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진지하다.




사실 호화 캐스팅이라는 광고가 걸린 작품들은 뚜껑을 열어보면, 이름만 있을 뿐 그 속은 비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원스]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은, 절대 관객을 실망시키는 이름들이 아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와 함께 현재 활동하는 배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기력과 앞으로 각종 공로상을 휩쓸게 될(이미 수상하기 시작했다)배우가 바로 로버트 드니로이다. 그는 이미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대부], [카지노],[좋은 친구들], [디어 헌터]등 많은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관객에게 선사하였다. 이 작품 [원스]에서도 역시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누들스 역할을 맡은 드니로는 감정 선이 굵은 면서도 섬세한 누들스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연기해 내고 있다. 특히 이미 언급하였듯 영화의 마지막, 그가 연기하는 누들스의 미소는,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 낸다. 위에 나열한 영화들과 같이 로버트 드니로는 수많은 명작들에 출연하여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감히 [원스]에서의 연기가 그중 최고가 아닐 까 싶다.



제임스 우즈는 [원스]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강열한 연기에도 전혀 눌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우즈의 이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악역을 연기한 것을 알 수 있다. [원스]에서 그를 악역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표독스러우면서도 주도면밀하고 누들스와 우정과 시기, 배신을 겪는 맥스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참고로 모든 나오는 배우마다 훌륭하다, 최고의 연기, 완벽한 연기 등 칭찬 일색의 수식어를 쓰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자신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절정에 있었던 시기가 바로 레오네 감독과 함께한 [원스]의 기억이라고 얘기하듯, 그를 아는 관객들도 그의 최고 절정의 연기를 [원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은 이 두 배우들 외에도 주목할 만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많다. 먼저 국내 팬들에게는 [나홀로 집에]의 코믹한 이미지로 더 알려진 조 페시. 그는 사실 유명한 마피아 영화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마피아, 갱스터 영화의 주로 출연한 성격파 배우이다. [원스]에서는 많은 러닝타임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 그가 출연하는 것만으로 영화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준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역 배우들 가운데 우리에 눈을 유난히 끄는 배우가 한 명 있는데, 그녀는 바로 제니퍼 코넬리이다. 우리에게는 [뷰티풀 마인드]로 잘 알려져 있고, [레퀴엠]과 최근작 [헐크]에도 출연했던 제니퍼 코넬리는 [원스]에서 정말 깜찍하면서도 어린 나이 답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다. 어린 누들스가 몰래 훔쳐보는 그녀의 발레 연습장면은 아마도 누들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성인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맥거번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제니퍼 코넬리에게 더 감동을 받게 될 것 같다.



처음 [원스]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비단 짤려나간 영상들 뿐만은 아니었다. 삭제된 버전에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역시 제대로 수록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원스]에서는 무엇보다도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고 있는데, 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작품의 일부를 완성시켰을 만큼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요소라 하겠다. 타이틀의 커버를 장식한, 뒤로는 다리가 보이는 양쪽 건물 사이로 어린 주인공들이 벅시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에서 흐르던 너무나도 유명한 ‘뚜뚜두뚜~’하는 테마를 비롯하여 영화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아름답고도 너무나도 슬픈 모리꼬네의 음악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아니, 돕고 있다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누들스를 연기한 드니로의 눈빛 연기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모리꼬네의 음악이 더해지면서 연기 자체에도 날개를 단 격이 아니었나 싶다.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계속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 알프레드 히치콕과 버나드 허만 같이 감독과 작곡가가 콤비를 이루어 영화를 완성하게 되는 케이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엔니오 모리꼬네는 브라이언 드 팔마, 페드로 알모도바르, 로만 폴란스키 등 거장들과의 꾸준한 작업으로, 매번 감독적인 영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 궁금증은 영화가 개봉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물음이다. 타이틀의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이에 관한 제임스 우즈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역시도 아직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 같은 궁금증을 물어온다는 것이다. 제임스 우즈도 감독인 레오네에게 물어보았지만, 레오네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맥스가 쓰레기차에 타고 안타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로 이해된다. 그리고 개봉당시 한 팬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지막 장면의 웃음의 의미에 관해 물었으나 그 대답은 듣질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가 아편으로 인한 누들스의 꿈이라는 답변을 들을 까봐 그랬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는 긴 러닝타임 때문임을 제외하더라도 시간과 사건의 편집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점은 어린 시절로 감옥에 다녀온 뒤로, 노인이 되어 나타난 요즈음으로 변하지만, 그러한 시점의 변화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정의 선이 그대로 이어지게 편집한 기술은 영화만의 매체의 장점을 백분 살리고 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배경이 되는 아편굴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이 꿈인가 아닌가의 중요성보다는, 부질없음과 슬픔에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일단 반갑다는 말을 해야겠다. 229분의 무삭제 버전으로 출시된 것 말이다. 하지만 완벽한 무삭제라는 말을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데, 누들스가 출소하여 장의사 차안에 누운 여자 시체(물론 아니었지만)를 보는 장면에서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옥에 티라고 불러야 할 장면이 될 것 같다. 개봉한지 2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출시된 타이틀은,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높은 퀄리티로 출시되었다. 일단 화질은 애너모픽 1.78:1의 화면을 재공하고 있는데, 최근 영화들처럼 날카롭고 선명한 화질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색감에 충실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음향은 예상외로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는데, 5.1채널을 체험할 만한 시퀀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전체적인 대사의 볼륨이 좀 작은 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 같은 점 역시 충분히 감안되어질 만한 정도이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여전히 감동적으로 들려온다.



2장의 디스크로 한정판의 양장본으로 출시된 타이틀은 일단 외관상으로는 양장본인 만큼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제외하면 일반판과 똑같은 타이틀이 들어있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제작사가 워너임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양장본 케이스에 만족해야할 듯싶다(이 같은 평가는 양장본 케이스가 맘에 안 든다고 하기 보다는, 한정판만의 특전이나 부클릿 등이 수록되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서이다). 일단 본편이 워낙에 긴 러닝타임을 자랑함으로 두장으로 나뉘어져 있다(참고로 중간에는 휴식 시간을 알리는 자막도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가장 기대가 되는 서플먼트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코멘터리가 눈길을 끈다. 리차드 쉬클이라는 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반갑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곁을 떠난 레오네 감독은 아닐지언정, 로버트 드니로나 제임스 우즈 같이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음성해설에 참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멘터리 외에 다큐멘터리 하나가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의 제작과정을 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를 추모하고 기리는 뜻에 포함시켜 들려주고 있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제임스 우즈와 어린 누들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 주요 스텝들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영화가 최고의 걸작인 만큼 출시된 DVD타이틀도 이 정도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타이틀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2003.07.08
글 / 아시타카



[엑스 파일]의 충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막 시즌 1이 출시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랜 여정 끝에 마침내 한국어 더빙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된 [엑스 파일 시즌 1]의 벅찬 감동은 미처 숨길 수가 없을 것 같다.



[
엑스 파일]을 단순한 TV시리즈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심한 오류가 있다. 또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흥얼대듯, 단순히 외계인의 관한 에피소드를 담은 공포물(?)로 분류하기에도 아주 심한 오류가 있다. [엑스 파일]의 주된 논지들을 나열해 보자면, 믿음(Believe), 진실(Truth), 외계인(Alien), 정부 음모론(Conspiracy Theory)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엑스 파일]은 이전 TV드라마가 갖지 못했던 스토리 구조라던가 스펙터클한 장면들, 높은 완성도 등이 장르를 초월하여 영화에 완성도에 비등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엑스 파일]이 TV드라마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저렇듯 많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또한 저렇듯 완벽하게 표현하기에는, 영화라는 두 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참고로 극장용으로 제작된 [엑스 파일]은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는 못하였다. 물론 엑필(엑스파일 팬들을 칭하는 말)들에게는 TV브라운관으로만 만나던 멀더와 스컬리의 얼굴을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TV드라마의 제한적 요소는 과감히 탈피하고 초월하는 동시에 TV드라마만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작품이 바로 [엑스 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엑스 파일]의 요소들은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도 하여금, 단순한 시청자가 아닌 중독성이 짙은 엑필들로 탈바꿈 시켰으며, 그 중독성으로 인해 매주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졸린 눈을 부여잡으며 TV앞에 대기토록 만들었다(개인적으로 이러한 TV시리즈의 중독증은 어린 시절 방영되었던 멕시코 어린이들의 아기자기하고도 감동적인 생활상을 담은 [천사들의 합창]이후 첨으로 겪는 현상이었다).



[엑스 파일]에서 두 주인공인 멀더와 스컬리를 제외하고는 얘기가 안 된다. [엑스 파일]을 잘 보지 않는 시청자들조차 데이빗 듀코브니질리안 앤더슨을 ‘멀더’와 ‘스컬리’라는 극중 이름으로 기억할 정도로, 이 두 주인공의 비중은 그 어떤 시리즈보다도 컸다. 9시즌이라는 오랜 시간을 멀더와 스컬리로 살아온 탓에 우리에게는 그들의 본래 이름은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일단 멀더와 스컬리는 다른 영화나 TV시리즈의 남녀 주인공과는 기본적인 설정부터 완전히 다르다. 일단 남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전혀 로맨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 가서는 이 같은 절대적인 설정에도 조금에 변화는 있었지만,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는 분명 여타 다른 남녀 주인공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감독인 크리스 카터는 처음부터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둘 사이에는 전혀 로맨스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첫 에피소드부터 스컬리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로맨스 장면을 촬영했다. 멀더와 스컬리 간의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확고하게 못을 박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을 것이다(하지만 이 장면은 굳이 이 같은 장면 없이도, 앞으로 멀더와 스컬리 간의 관계를 짐작할만한 여지가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방영되지는 않았다. 이번 [엑스 파일 시즌 1]DVD에는 이 삭제장면에 보너스로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엑스 파일]은 이러한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설정 외에 역할 분담에서도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의 역할은 고지식하고 논리 정연한 지식에 기초하고 여자의 역할은 논리와 지식보다는 직감과 지혜에 기초하는 것이 보통인데, [엑스 파일]의 경우는 이와는 정 반대다. 멀더는 텍스트와 기록에 의한 수사보다는 자신의 직감과 상상력의 근거한 수사를 펼치고, 스컬리는 이와는 반대로 의사로서의 학문적 지식과 논리에 근거한 수사를 한다(물론 이 같은 설정 역시 나중에 가서는 변화를 겪게 되고, 멀더 - 스컬리의 역할 분담은, 스컬리 - 도겟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그 당시 헐리웃에서 주목 받던 젊은 배우였던 데이빗 듀코브니와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질리안 앤더슨은 [엑스 파일]을 통해 골든 글로브 남,여 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그야말로 스타에 자리에 올랐다. 데이빗과 질리안, 두 배우들 스스로도 그러하고 팬들로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오랜 시간 각각 F.B.I요원인 '멀더‘와 ’스컬리‘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에, 다른 작품에서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매번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서는 이 같은 요소가 커다란 부담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또한 영원히 기억 속에 멀더와 스컬리로 남길 바라는 팬들의 바람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시즌의 모든 시리즈가 끝난 현재, 두 배우의 또 다른 선택이 기대가 된다.



사실 [엑스 파일]을 외계인 관련 시리즈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또 외계인의 관련된 내용이 중요한 요지이기는 하지만, 그것뿐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너무도 성급한 판단일 것이다. 그리고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도 맞지만, 모든 개념을 포괄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왜냐하면 [엑스 파일]에는 직접적으로 외계인에 관련된 사건들 외에도 돌연변이라던가 불가사의한 사건, 미확인되고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이라는 말은 상당히 반론에 여지가 있는 말이다.




위와 같이 설명되어 지는 일들은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오류로 결정되어 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 말 그대로라면 ‘현대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뿐, 나중에 발달된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도 있는 일들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예전에 지구는 둥글다고 얘기하면 다들 거짓말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것이 ‘진실’임에 부인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진실이 아니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멀더의 사건 추리는 이 같은 논지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신념은 커다란 벽에 가로 막힌다. 그것이 바로 정부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다.



‘담배 피는 남자’를 비롯한 힘이 있는 정부의 고위층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진실을 쫓는 멀더를 눈에 가시처럼 여긴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지만, 멀더는 그럴 수록 더 많은 의심과 진실 추구에 대한 욕망을 키워나가게 된다. 사실 [엑스 파일]에 등장하는 정부음모론은 [컨스피러시]같은 다른 영화들에서도 다룬 바 있고, 실제적으로 밝혀진 바가 있을 정도로 상당히 구미를 당기는 요소이다. 로즈웰에 추락했던 U.F.O.의 일만해도 그렇다. 이렇듯 [엑스 파일]은 미스터리하고 권력에 음모를 다룬 이야기는 그저 흥미위주로 흐르기가 쉽지만, 픽션(Fiction)임에도 현실을 의심해 볼만큼 근접한 리얼리티(Reality)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미 코드 1번인 미국에서는 7시즌까지 발매된 현실에서, 국내 팬들에 코드 3 타이틀 발매에 대한 기대는 말할 것도 없이 커져만 갔었다. 곧 출시가 예정이 되었고, 팬들은 드디어 한국에서도 엑스 파일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반가워했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한국어 더빙 트랙의 수록 문제였다. 미국에서 일곱 번째 시즌까지 출시가 되는 동안 국내에서 첫 번째 시즌조차 발매가 되지 않은 상황은, 다른 타이틀 같으면 대부분의 매니아들은 코드 1번을 벌써 구매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엑스 파일]의 경우는 거의 그런 일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어 더빙 트랙 때문이었다.

첫 번째 시즌부터 아홉 시즌이 이어지는 동안 한 번의 변동 없이 두 주인공의 목소리를 맡았던 성우 이규화, 서혜정씨의 목소리는, 적어도 국내 팬들에게는 [엑스 파일]을 논함에 있어 또 하나의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이규화 씨에 연기로 전해지는 멀더의 목소리와, 서혜정 씨의 연기로 들려주는 스컬리의 목소리는, 결코 분리해서 생각되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가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STAR TV에서 방영하는 [엑스 파일]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본래의 데이빗과 질리안의 더빙으로 진행되는 [엑스 파일]은, 어색하고 재미없기 짝이 없었다.



이렇듯 중요한 한국어 더빙이 처음에는 수록되지 않아 많은 팬들은 구매를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서명운동으로 고집 세기로 유명한 폭스의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어 냈다. 물론 그에 따른 출시일은 더 많이 지연이 되었었지만, 그만한 고통은 한국어 더빙 수록이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조금 미흡했던 번역을 수정하고 몇몇 부분은 재 더빙이 이루어져 TV드라마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궁극의 타이틀로서 손색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화질은 TV드라마 인지라 영화 같은 영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그러한 화질을 기대한 팬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음질역시 돌비 디지털 2.0의 사운드를 지원하는데, 이것 역시 최근 발매되는 영화 타이틀과 견주기에는 너무 미흡하지만, 아무도 5.1이나 DTS채널의 사운드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즌 1 타이틀은 6장의 에피소드를 담은 디스크 외에 한 장의 서플먼트를 담은 디스크를 재공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서플들이 담겨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감독인 크리스 카터가 말하는 시즌 1 에피소드는 [엑스 파일]의 기획 초반 의도와 감독이 그리려고 했던 시리즈의 청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엑스 파일 시즌 1]타이틀 구매에 힘(?)을 써서, 중단 없이 시즌 9까지 무사히 발매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03.07.04
글 / 아시타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이미지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아이언 자이언트가 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슈퍼맨’이었다.

1957년 어느 날, 메인주의 작은 마을 록웰 해변에서 한 어부가 거대한 괴물을 발견한다. 그러나 같은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다음 날 엄마와 둘이 살고 있던 호갈드 휴즈라는 소년이 발전기를 부수고 있던 아이언 자이언트를 발견하고 둘은 친구가 된다. 어부의 신고로 사건을 조사하러 나온 켄트 맨슬리는 호갈드가 아이언 자이언트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갈드를 협박하여 장소를 알아낸다. 고철 예술가인 딘 아저씨의 기지로 아이언 자이언트는 위기를 모면하지만 켄트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아이언 자이언트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몸으로 미사일을 막아 산산이 부숴 지고 만다. 그러나 우주의 어는 곳에서 온 아이언 자이언트는 아이슬란드의 빙하에 살아 있었다.



[아이언 자이언트]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바로 ‘감동’이란 단어일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이언 자이언트]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감동과 재미를 주는 참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우리에게 익숙해진(특히 DVD타이틀에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메’가 아닌 미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물론 미국의 오래된 정서인 영웅적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심하게 오버하고 과장되게 포장된 이야기라기보다는, 보는 이들에게 그러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가슴 따뜻한 감동만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테드 휴즈의 ‘아이언 맨’을 각색한 [아이언 자이언트]는 애니메이션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과 원작의 본연의 감동의 스토리를 적절히 혼합시켜 다 큰 어른들에게도 때론 웃음 짓게, 또 때론 눈물짓게 하였다. 작품을 잘 만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뻔할 수도 있는 희생적이고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임을 미리 알면서도,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 눈물지을 수밖에는 없게 만드는 걸 말하는 바. [아이언 자이언트]가 바로 그러하다.



로봇에게 본능이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아이언 자이언트는 본능적으로 나쁜 악당이 되기보다는 정의에 편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슈퍼맨을 더 닮으려 했던 것 같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드러내놓고 슈퍼맨을 동경하는 자이언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크립톤 행성에서 온 한 외계인이 지구로 보내져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슈퍼맨]의 경우라면, [아이언 자이언트]는 아마도 예전에 군용으로 대학살의 ‘무기’의 용도로 만들어졌을 법한 로봇이, 기억을 잃고(여기서는 메모리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까울 것 같다)한 어린 소년에게서 순수하고 착한 성품을 배워 자신을 희생하고 사람들에게 교훈마저 주고 떠나는 이야기라 하겠다.



또한 아이언 자이언트를 파괴시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나중에는 명령체계까지 무시해가며 일을 초래한 맨슬리와 사슴의 죽음에 슬퍼 잠 못 이루는 자이언트를 대비시키면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자이언트의 모습을 통해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슈퍼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철로가 끊어져 다시 복구하는 장면은, 이미 슈퍼맨에서 보았던 장면으로 제작진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물론 철로가 끊어지게 된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영화의 마지막 맨슬리의 오기로 인해 발사된 미사일을 막기 위해, 지구 저 멀리에서 자신이 슈퍼맨이 된 것에 감동하며 눈을 감던 아이언 자이언트의 모습은, 언제봐도 감동적이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이미 2000년 DVD타이틀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초창기에 출시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다. 그렇다면 이전 일반버전과 이번 출시된 SE버전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일단 영상 포맷은 2.35:1의 와이드 스크린으로 영화의 스케일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로 출시되었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으며 한국어 더빙 트랙 역시 수록되어 있다. 특히 빈 디젤, 제니퍼 애니스톤, 헤리 코닉 주니어 등이 참여한 영어 더빙은, 그 출연진의 이름들만큼이나 화려하고 흥미롭다.



이번 SE버전에서 가장 많이 향상된 부분은 바로 스페셜 피쳐부분인데, 이전 20분 내외의 메이킹 다큐와 뮤직비디오가 전부이던 서플먼트와는 확연히 다르게, 다양하고 많은 볼거리를 수록하고 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감독을 비롯해 주요 스텝들이 참여한 음성해설인데, 제작진이 전하려고 했던 의도와 영상으로 표현되기까지 기술적인 측면에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삭제된 장면들과 오리지널 영상, 아이언 자이언트의 목소리 연기를 한 빈 디젤의 인터뷰, 그리고 애니메이션 인지라 배우들의 촬영 후기가 아닌 작품을 만들어낸 스텝들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초판 한정으로 제공되는 작은 아이언 자이언트 로봇 모형은 당장 구매를 결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2003.08.12
글 / 아시타카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느낄 수 없었던 웅장한 스케일과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수많은 명장면을 보유하였고, 예전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배우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출연해 열연을 펼치는 영화.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걸작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걸작이다. 먼저 감독과 배우들이 이름들은 가히 가공할만하다. 최근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그저 명불허전(名不虛傳)인 경우가 많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먼저 감독인 데이비드 린은 예전 영화 팬들이라면 너무나도 잘 아는 감독이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를 여럿 만든 거장이다. 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비롯하여,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 [인도로 가는 길] [여정] [밀회] [위대한 유산]등 모두가 다 고전영화로서 오래 사랑받고 영화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이 중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와 더불어 데이비드 린 감독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1962년에 개봉한 작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놀랍고도 거대한 영상의 스케일과 웅장하고 감동적인 스코어 일 것이다. 사실 최근 범람(?)하는 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해진 필자로서도 ‘과연 저 당시에 어떻게 저런 엄청난 스케일의 영상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CG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사실적이고 풍부한 질감의 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아리비아의 로렌스]는 70mm에 담은 이 같은 영상만으로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에 분명하다.



또한 사막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그린 영화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사막에서 동이 터오는 장면을 실제 해가 뜨기 시작하여 다 떠오를 때까지 실제 그대로의 러닝 타임을 실은 것과 원거리에서 촬영한 사막의 광대한 모습은, 흡사 네셔널 지오그라피에나 나올만한 장면들로 다큐멘터리나 아이맥스 영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굉장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영화사에 가장 인상적인 등장 장면이라는 오마 샤리프의 등장 장면은, 아마도 관객들보다 영화감독들이 더 부러워하고 감탄할 만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닥터 지바고]에서도 감동적인 스코어를 만들었던 모리스 쟈르의 음악은(물론 이 영화가 지바고 보다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나), 웅장한 영상의 스케일과 맞물려 역시 큰 스케일 의 스트링으로 영화적 감동을 한층 더하고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출연한 배우들은 그 세대가 아닌 사람들이라도,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만한 이름들이 무더기로 등장해 소이 ‘압박’이 심하다. 로렌스 역의 피터 오툴을 비롯해, 알리 역의 오마 샤리프, 파이잘 왕자 역의 알렉 기네스, 아우다 아부 타이 역의 안소니 퀸. 이 외에도 잭 호킨스, 안소니 콰일 등 인기가 아니라 연기로 승부하는 ‘명배우’들이 전부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황제]에서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피터 오툴은 주인공 로렌스 역을 맡아 그야말로 열연을 펼쳤다. 로렌스란 인물 자체가 그다지 평범한 인물은 아닌지라, 또한 실존 인물인지라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정말 훌륭한 연기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오마 샤리프. 그해 아카데미의 남우조연상 수상이 말해 주듯 이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오마 샤리프는 이 영화로 인해 단 번에 명배우란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감독인 데이비드 린은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오마 샤리프를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닥터 지바고]에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당시 데이비드 린 감독은 로렌스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인 알리 역 캐스팅에 상당히 고심했다고 했는데, 진짜 아랍 사람처럼 생긴 배우들을 찾던 중 오마 샤리프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개인적으로는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가 먼저 인지라 이 같은 이미지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느끼긴 힘들지만, 정상대로 로렌스를 먼저 보고 지바고를 보았다면 아마도 로렌스의 알리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훗날 사람들이 오마 샤리프하면 [닥터 지바고]를 떠올리는 걸 보면, 지바고에서의 연기가 또한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파이잘 왕자 역의 알렉 기네스는 역시 개인적으로는 [스타워즈]의 ‘오비완’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차분함과 중후함으로 스토리의 한 축을 훌륭히 써내려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바론 요새]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안소니 퀸이 있다. 극 중 아우다 아부 타이는 마치 안소니 퀸을 위해 탄생한 역할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에게 적역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국 장교 T.E 로렌스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만큼, 그의 일대기를 사실적이면서도 또한 영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진정으로 아랍 민족의 통일과 자주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영국군의 정책, 터키 군에게 당한 치욕적 사건, 아랍 부족 간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인해 로렌스 자신 역시 회의를 느끼고, 초심의 본질은 상실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실존인물임으로 역사적이나 정치적 평가는 삼가도록 하겠다). 어쨌든....파란만장한 삶과 힘든 인생을 보낸 인물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이 같이 결국 영국에게도 아랍에게도 배신자가 되어버린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해 영화의 초점을 맞추었고, 다른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는 액션이나 로맨스는 제외하였다(액션 씬은 가끔 등장하나 로맨스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는 대사가 있는 여배우는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완벽한 ‘남자 영화’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배우는 아우다 아부 타이의 진영에서 대화를 나눌 때 잠시 스쳐가는 것과 마지막 위생병으로 출연하는 엑스트라가 전부이다). 그리고 227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때문에 중간에 휴식시간(Intermission)이 있는데, 이번 출시된 타이틀에는 이 휴식시간이 그대로 수록된 점도 이채롭다.



슈퍼비트 포맷의 타이틀은 궁극의 화질과 사운드를 구현해 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개봉한지 40년이 넘은 영화인지라 최근 개봉한 영화의 타이틀들과는 그 화질과 사운드를 같은 잣대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태생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였을 때에는 만족할 만한 화질과 음질을 들려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1.85:1의 와이드 스크린 포맷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신 영화들과는 분명히 비교되는 선명도와 콘트라스트 비를 수록하였지만,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을 비교적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사운드는 화질보다는 조금 나은데,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총소리나 폭발음 등은 조금 음장감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물론 이 같은 느낌은 최신 영화의 DTS와 비교하였을 때 이다), 스코어는 비교적 큰 손실(?)없이 전달되고 있다.



2003.10.15
글 / ASHITAKA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반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식스센스]는 더할 나위없는 자랑거리이자, 또한 늘 따라다니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전작과의 비교를 거부하며 철저하게 배일에 쌓여진 채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싸인]이다.

- 식스센스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

정말 그랬다. 개봉 전 극장에서 [싸인]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에는 그저, 미스테리 서클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밖에는 짐작할 수 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멜 깁슨이 출연한다는 걸 겨우 알정도 분량의 장면들과 빠른 카메라워크로 진행되는 미스테리 서클의 모습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조금 더 효과적으로 관객들의 머릿 속에서 전작 [식스센스]를 지워버리기 위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의도된 하나의 묘수였다.

[싸인]의 분위기는 조금 의외였다.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부터가 그랬다. 또한 스릴러 장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그림들이었지만, ‘스릴러’라기 보다는 ‘공포’로 불러도 좋을 만큼 영화 내내 심장을 조여 오는 긴장감은, 그의 전작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부분들이었다. 또한 그가 좀 더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미한 요소는 바로 유머였다. 이것도 상당히 의외였는데, 극도로 공포스런 분위기로 몰고 이끌다가도 곧바로 웃음을 참기 어려운 장면들을 배치하여 관객의 심장박동수를 이리저리 혼란스럽게도 하였다. (심지어는 가장 공포스럽고 감동적인 장면에서도 유머스런 장치를 배치하여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또한 흥미로운 상황과 공간의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주된 사건은 모두 주인공 멜 깁슨의 한 한적한 옥수수 농장을 배경으로, 그의 집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해서 영화의 주된 원인이 되는 현상들이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의 인간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의 스케일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커다란 스케일의 장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집안 TV를 통해 보여지는 뉴스만으로도, 오히려 더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또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와 고립된 공간적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스케일과 혹 지루해질 수 도 있는 부동적 공간 설정을 우려하여, 영화 중반에는 가족들이 잠시 집을 나와 읍내를 구경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장면을 삽입하였다.



영화 [싸인]은 제작초기에는, 이미 배우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도 오스카를 수상하였던 멜 깁슨과 아직 두 편밖에는 감독하지 않았었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도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샤말란 감독은 멜 기습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감독으로서 원하는 것을 100%주문했고, 멜 깁슨 또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며 자신의 연기를 펼쳤다.



멜 깁슨 외에도 [글래디에이터]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던 조와킨 피닉스도 새로운 장르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할리 조엘 오스몬드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었던 지라 이와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멜 깁슨의 아들, 딸 역할을 맡은 두 아역 배우들도, 최근에 대부분의 아역 배우들이 보여주는 어린이 답지 않은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식스센스]와 마찬가지로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 탓에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는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으로 삼가도록 하겠다.

비록 [식스센스]비스타 시리즈 타이틀이 두 장이 똑 같은 디스크가 수록되어 리콜 되는 어처구니 없는 오점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브에나 비스타는 DVD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는 제작사라 하겠다. 일단 아나몰픽 와이드 스크린의 화질은 영화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제작한 미스테리 서클도 실감나게 표현된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전에 영화들에서도 유난히 음악을 쓰는 걸 싫어했다는데, [
언브레이커블]에서도 그러하였고, 이번 영화 [싸인]에서도 완성된 음악을 듣고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 밖 에는 없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고 한다. 또한 관객들이 느끼기에도, 감독은 어떨는지 모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심장을 멎게 했던 것은 음악에 힘이 컸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통해 듣게 되는 사운드는 상당히 높은 퀄리티를 보인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영화의 특성상 실감나는 사운드는 옵션이 아닌 필수 요건인데,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음악들이라던가, 한적한 농장에서 들려오는 각종 벌레, 스치는 풀 소리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존재가 가족들을 점점 조여 오며 내는 각종 효과음들은 좌우, 우퍼 스피커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된다.

스페셜 피처로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삭제 장면, 그리고 스토리보드와 멀티앵글이 포함되어 있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에는 [싸인]의 초기 구성과 스토리 구성, 감독의 해설로 들어보는 제작 과정, 특수 효과, 음악 제작 과정 등이 수록되어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샤말란 감독이 얼마나 꼼꼼하고 자신이 하고자하는 바를 100% 스크린에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는지 느낄 수 있다. 스페셜 피처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서플 중 하나는 바로 샤말란 감독의 첫 외계인 소재 영화를 담은 짧은 필름인데, 그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만들고 촬영했던 공포(?)영화를 수록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샤말란의 연기 실력도 볼만 하다.

- 눈에 보이는 것만이 반전은 아닐 것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었다는 것만큼(설마 아직까지도 이 결말에 놀라는 분들은 없길 바라며..)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결말은 없지만, [싸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엄청난 반전이 될만한 사실이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사건을 되돌려 하나하나씩 추리해 나가듯, 멜 깁슨이 아내의 사고를 회상하며 놀라운 반전을 하나씩 알게 되는 컷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스센스]그 이상의 소름을 돋게 한다.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덕에 모두를 구할 수 있었지만, 만약 정말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2003.03.11
글 / 아쉬타카






기관총과 갱들이 난무하는 걸로 봐서 카포네가 주름잡던 시카고에 분위기가 물신 느껴진다. 하지만 갱들과 그를 잡으려는 딕 트레이시의 색감은 카포네보다는 훨씬 뷰티풀하고 컬러풀했다.



무자비한 악당 빅 보이는 지하세계의 보스 립스 맨리스와 마찰을 일으킨다. 빅보이의 다음 목표는 도시의 남은 갱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최고의 두목자리에 오르는 것. 이를 막기 위해 딕 트레이시는 빅보이가 관할하는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절친한 동료 펫, 샘과 함께 빅 보이와의 전면전을 시작한다. 늘 빅보이와 싸우느라 사랑하는 애인 테스와 함께 보낼 시간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딕 트레이시.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전하며 힘겨워하는 딕 트레이시 앞에 어느 날 미모의 나이트클럽 여가수 브레들리스가 나타난다.

매일 밤마다 유혹하는 브레들리스 때문에 더욱 난처해진 딕 트레이시는 결국 애인에게 들키게 되고 이 때문에 테스와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진다. 사랑하는 여인마저 자기 곁을 떠나게 될 위기에 처해진 딕 트레이시에게 이번엔 빅 보이 보다 더한 악당이 나타난다. 진짜 얼굴과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그저 블랭크라고만 불려지는 이 악당은 딕 트레이시와 빅 보이를 모두 없애버리고 도시 전체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빅 보이와의 싸움으로도 늘 위협을 받는 딕 트레이시는 이제 블랭크와도 싸워야 하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 영화 [딕 트레이시]는 배우들의 면면을 꼭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는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배우들의 이름들이 엔딩 크레딧에는 버젓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주인공 트레이시 역을 맡은 워렌 비티부터 살펴보자.
워렌 비티는 헐리웃에서 배우로서 또한 제작자와 감독으로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초원의 빛]으로 배우로 데뷔한 그는,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를 제작하였고, 이 영화 [딕 트레이시]를 비롯한 여러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딕 트레이시]에서는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고 있는데, 폼 나면서도 코믹하기 까지 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연기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딕 트레이시]에서 워렌 비티의 노란 바바리 차림에 변신 정도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심하게 분장하고 나와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던 두 배우 덕인데, 그들은 이른바 대 배우라 칭송받는 알 파치노와 더스틴 호프만이다.

멋진 역할,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만 도 맡아서 해오던 알 파치노에 극 중 ‘빅 보이’ 연기는 정말 특이한(?)케이스가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팀 버튼의 [배트맨]과 비교되곤 하는데, 마치 잭 니콜슨이 맡았던 ‘조우커’역할과 상응하는 악당 역할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정말로 심하게 망가져 버린 분장, 아니 변장은 알 파치노 임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나타내고 있고, 알 파치노는 이런 분장에 화답이라도 하듯, 심하게 망가지고 코믹한 악당의 캐릭터를 장난치듯 신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딕 트레이시]는 영화의 분위기상 [대부]의 분위기와도 닮은 점들이 많은데, [대부]에서 넘치는 카리스마로 출연했던 알 파치노가 같은 갱 역할을 심하게(?) 다르게 연기한다는 점도 이채롭다.
그래도 알 파치노는 얼굴을 조금은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더스틴 호프만은 정말 일반인들로서는 구분이 힘들 정도로 하드 한 겹에 분장으로 출연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는 알 파치노에 비해 출연하는 러닝 타임도 길지 않으며, 대사 또한 적다(그나마 그 대사들도 웅얼웅얼 거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알 파치노나 더스틴 호프만 같은 연륜 있는 배우들은 오히려 이런 코믹하고 심하게 뒤틀린 캐릭터를 연기함에 있어 여유 있게 연기하는 듯 하다.
돈나는 이 영화에서 팝 적인 요소들보다 재즈 적인 느낌이 강한 곡들을 소화해 내며, 만화적이지만 갱스터 무비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잘 연출해 냈다.

브에나 비스타에서 발매된 타이틀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서플먼트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4장짜리 서플먼트 디스크가 판치는 요즈음 이렇게 전무한 서플먼트는 확실히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 같다. 하지만 본 편의 영상과 사운드의 퀄리티는 레퍼런스 급은 못 되지만, 수준급의 화질, 음질을 선보이고 있다. [딕 트레이시]는 비디오로도 절판되어 구하기가 워낙에 힘든 영화였는지라, 서플먼트의 마이너스 요인에 상관없이도 높은 소장가치가 있는 타이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돈나. 이미 언급되었던 세 명의 배우들 외에 [딕 트레이시]가 주목받은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마돈나의 출연이었다. 미국 팝의 여왕이라 불리며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었고, 또한 워렌 비티와도 염문설이 있던 터라 그녀의 출연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클럽의 여가수 역할을 맡은 마돈나는 역할이 역할인지라 자신의 매력을 맘껏 뽐내고 있다. 그리고 영화 내내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영화 전체를 Jazzy하고 Smooth하게 만든다. 위의 소개한 이들 배우들의 출연 이유만으로도 [딕 트레이시]는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정말로 눈에 확확 들어올 정도로 강렬한 원색의 색감이다. 주인공 딕 트레이시의 트레이드 마크인 샛노란 바바리코트와 중절모를 비롯하여, 갱스터 답지 않게 초록, 빨강, 연두, 노랑 등의 원색의 의상을 입고 있는 악당들, 역시 원색으로만 이루어진 자동차들은 영화 자체를 신비하고도 만화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이 영화는 원래가 1931년부터 연재했던 체스터 굴드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것이라 기존의 만화의 팬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끌게 했다. 딕 트레이시가 범인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집 전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장면이라던가, 도시 전체를 비추는 앵글에서는 완벽하게 만화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화려하고 장난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신비스럽고 만화스러운 영상은 [배트맨]과 비교되는 첫 번재 요소로 꼽힌다.
두 번째 요소는 바로 음악이다. [배트맨]의 음악을 맡았던 데니 앨프먼이 음악을 맡아 신비스러운 영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비슷한 탓인지 음악 또한 분위기가 많이 흡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데니 앨프먼의 음악 외에 이 영화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마돈나의 노래들인데, 마돈나는 이 영화에서 팝 적인 요소들보다 재즈 적인 느낌이 강한 곡들을 소화해 내며, 만화적이지만 갱스터 무비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잘 연출해 냈다.

브에나 비스타에서 발매된 타이틀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서플먼트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4장짜리 서플먼트 디스크가 판치는 요즈음 이렇게 전무한 서플먼트는 확실히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 같다. 하지만 본 편의 영상과 사운드의 퀄리티는 레퍼런스 급은 못 되지만, 수준급의 화질, 음질을 선보이고 있다. [딕 트레이시]는 비디오로도 절판되어 구하기가 워낙에 힘든 영화였는지라, 서플먼트의 마이너스 요인에 상관없이도 높은 소장가치가 있는 타이틀이 될 것 같다.

2003.05.15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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