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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A Taxi Driver, 2017)
목격자로서 정의롭게 기록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항상 위험함이 존재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하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운 과거의 경우, 또 그 역사적 사실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경우는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될 정도로 앞서 언급한 장점에 비해 위험성의 부담이 더 큰 장르가 바로 과거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장훈 감독의 신작 '택시운전사'는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은 80년 광주 5.18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영화다. 


5.18 광주를 다룬 영화는 상업영화 가운데도 이미 여러 편이 있었는데 '화려한 휴가'처럼 제대로 된 방향성을 잡지 못해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영화도 있었고, '26년'처럼 많은 기대를 모은 것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영화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 (Scout, 2007)'를 주저 없이 꼽을 수 있겠다. 


당시 한창 코미디 영화로 주가를 올리던 임창정 주연의 영화로 코믹한 느낌을 강조한 포스터와 홍보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영화는 놀랍게도 1980년 광주의 공기를 가장 잘 표현해 낸, 특히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면서도 5.18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가장 올바름을 보여준 영화였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섣불리 피해 당사자의 입장으로 참혹한 역사의 중심에 서서 어설픈 공감대를 자랑하듯 전시하지 않고, 스스로 최대한 한 발 물러섬으로써 광주를 바라보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는 광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추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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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스카우트'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 더 접근한 영화다. 영화는 이번에도 제삼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좀 더 당시의 현실을 전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는 것을 선택한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잘 알려졌다시피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에게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완전히 통제되었던 언론 탓에 광주의 참혹한 현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토마스 크레취만 분)는 한 택시운전사의 도움으로 광주에서 취재를 할 수 있었고,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 과정을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바라본다. 즉, 서울 택시를 몰던 소시민으로 우연히 광주에 오게 된 김만섭 (송강호 분)과 독일 기자 피터의 목격자적 입장이 이 영화의 시선이자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많은 재난 영화 혹은 특수 상황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이런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재난 혹은 사건과는 전혀 무관했던 평범한 인물이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관객들에게도 공감대를 유도하는 방식 말이다. 이런 구조는 또한 대부분 평범했던 인물이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면서 문제의 중심에 도달, 해결하는 이야기로 귀결되곤 하는데, 일반적인 액션, 재난 영화에서는 오락적인 측면으로 쉽게 수용되는 부분이지만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주저해야만 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분명히 '스카우트'와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이 한 편만 두고 보아도 제삼자가 역사의 중심에 더 많이 접근해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런 실수를 범했던 다른 역사 배경 영화들에 비해 좋았던 건 접근에 주저함이 보일 정도로 조심스럽고, 최대한 제삼자이자 목격자임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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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섭이 피터의 탈출을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그 이전에 금남로 현장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자칫 타자의 영웅적 면모로 비칠 수 있는 (그저 장르적 장치로 소비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만섭과 피터는 목격자임을 잊지 않고 목격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고민하는 것에 집중한다. 만섭은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 딸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만 직접 목격한 참혹한 현실 앞에 보통의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만섭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양심의 갈등은 거대한 정의나 영웅적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느껴야 할 것들로 인한 지극히 현실적인 갈등이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만섭이 광주로 다시 돌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깊이 갈등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만약 만섭이 다른 재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태의 중심으로 들어가 해결하려고 했다면, 설령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관객들에게는 더 큰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할 바를 다했고, 누구 하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욕하는 이도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홀로 남겨진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서울로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한 상황을 알기에 눈물로 결심하는 이 장면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목격자로서, 제삼자로서 그럼에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하는 것에서 한 발만 더 나아가 행동할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또 어떤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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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택시운전사'를 보며 또 하나 생각해 보게 된 건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랄까, 역할에 관한 점이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거대한 음모와 부정의가 판치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힘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직업인으로서 각각의 개인이 각자의 맡은 바를 제대로 하기만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메시지를 이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 기자 피터는 실제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엄청난 사명감으로 당시 광주로 향했던 것이 아니라 기자이기 때문에, 기자로서 알려야 할 일이 있다면 취재를 해야 한다는 직업윤리에 기반해 행동했던 것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대사에서도 '택시운전사가 손님을 가려 받으면 되나'처럼 기본적으로 택시운전사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바를 충실히 했다는 것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직접 데모에 나서지 않는 이들도 데모에 참여한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내주고, 쉴 곳을 내주며 응원의 힘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당시 광주는 광주 시민 모두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행동으로 옮겼던 현장이었다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 역시 최대한 있는 그대로, 하지만 목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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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역사적 비극을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자 호소가 담긴 질문의 결과물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직도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화는 당시를 기억하고 5.18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보다는 아직 제대로 광주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이들을 위한 영화다. 그래서 철저하게 목격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반대로 목격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1. 이 영화에서 가장 판타지스럽다고 생각되었던 후반부 검문 장면은 사실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2. 자동차 추격 장면은 확실히 조금 이질적인 시퀀스였어요. 이 부분이 조금만 더 세련되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듯.

3. 초반부 만섭이 광주로 향하기 이전 장면들에 여러 복선들이 있더군요.

4. 이렇게 5.18 광주를 다룬 영화들은 조금씩 한 발씩 나아갔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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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아름다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보기 전,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황옥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자세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었지만 황옥의 삶은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에게 조차 그가 끝까지 의열단 단원이었는지 아니면 일본 경찰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당시 행했던 행동과 결과들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이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존재인 동시에 몹시 영화적인 인물로서 아마도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황옥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고 했을 땐 그 존재의 모호함을 어떻게 시대와 함께 그려낼 것인지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작품이 바로 김지운의 '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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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다르게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 (영화 속에서 황옥과 같은 인물)이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 모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의열단과 뜻을 함께 했다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황옥의 삶을 보면 의열단으로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했다던가 반대로 일본 경찰이라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까지 번갈아 가며 행했었기 때문에 그가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가 매우 불확실한 인물인데, 영화 속 이정출로 분한 황옥의 모습은 초반에는 살짝 모호한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주 확고한 시선으로 조선을 위해 행동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영화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실명으로 등장시키지 않았을뿐더러 다큐멘터리도 아니니까), 황옥이라는 인물을 영화화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밀정'이라는 제목 역시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영어 제목처럼 시대의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위태로움에 대한 묘사와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을 나오며 '과연 이정출은 어느 편에 섰던 것일까?'라고 되묻게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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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러한 선택과 별개로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이미지, 미장센은 역시 기대한 대로 매혹적이었다. 당시 상해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미장센이 스크린 가득 펼쳐졌을 땐, 아마도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선택했을 때 바로 이런 장면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소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대는 바와 영화적 시대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모습이었다. 기차 씬도 전체적인 긴장감의 묘사가 흥미로웠고 후반부의 볼레로를 배경으로 한 씬은 반어적인 음악이 적중한 매력적인, 또 보고 싶은 멋진 씬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나중에 읽어보니 처음에는 존 르카레의 스파이 영화들처럼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자 싶었으나 후반부가 되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에 대해 감화되어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래서인가. '밀정'은 매력적인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지점은 두 군데 정도인데, 장면으로 두 곳 정도이지만 아쉬웠던 이유는 사실 같다. 하나는 중반쯤 독립군들이 밀정으로 인해 함정에 빠져 참혹하게 사살될 때 스윙 재즈 곡인 'When you’re smiling'이 반어적인 느낌을 주며 배경에 흐르는 장면이다. 이런 반어적 음악의 사용은 참혹함을 강조시키기거나 혹은 정반대로 풍자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선과 악이 모호한 주인공 혹은 인물이 또 다른 악을 처단하거나 할 때 비극적인 느낌이 아닌 음악을 활용함으로써 그 인물의 선악의 모호함과 함께 그 행위 자체의 선악의 불분명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밀정'에서 독립군들이 총격을 당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리듬감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를 땐, 반어적 활용에서 오는 재미나 메시지보다는 1차적인 불편함이 더 컸다. 이러한 반어적 음악의 활용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액션 (폭력, 살인 등)을 행하는 인물이나 당하는 인물의 선악이 불분명하거나 특히 가하는 쪽이 분명한 정의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데, 독립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명확한 슬픔과 아픔의 역사이기에 아직은 반어적으로 표현하기엔 보는 입장에서 불편함이 더 앞섰다. 더군다나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확실한 전후 처리, 그러니까 친일 세력에 대한 벌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불편한 영화적 기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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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기차 씬에서 이정출과 김우진 (공유)이 대화를 나누는 씬들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중요한 상황으로 밀정, 그러니까 배신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동시에, 경성에 잠입하려는 의열단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 경찰이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하는 장면으로서, 사실상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 씬이다. 이 가운데 이정출은 김우진과 몇 차례 조우하게 되는데, 그 대화 시퀀스를 보면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밀정을 색출해 내고 또 무사히 경성에 도착하기 위한 말만을 전하는 반면,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이 대화 속에서 배우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유머를 구사한다. 


예를 들면 김우진이 어떻게 하라고 이정출에게 말하자 이정출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기를 '저 새끼는 나한테 자꾸 명령을 하고 그래'라며 투덜대는 장면 같은 거다. 이런 생활감, 현실감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연기는 오달수 배우나 송강호 배우 등이 많은 영화를 통해 자주 보여주었던 스킬인데, 그런 대사들이 적절한 곳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주 반가울 일이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서의 웃음 포인트 (실제로 여기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웃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웃을 만한 장면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는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기보다는, 긴장감을 떨어 뜨리는 동시에 이정출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마저 떨어 뜨리는 역효과가 있었다. 너무 내용이 무겁다고 판단된 탓에 긴장을 덜어주고 재미를 주려 했다면 이러한 대화 시퀀스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점에 삽입되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 중요한 그 기차 씬 중간에 벌어지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는 분명 아쉬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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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 조금 모호한 지점에 놓여 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애초 그리고 싶었던 것처럼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을 냉전 시대의 스파이 영화처럼 차가운 분위기로 그려내거나 아니면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더 감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섞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조금은 어중간한 영화로 남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역사를 다룰 땐, 특히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같은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의 결이 분명한 역사를 다룰 땐 행여 더 투박할지언정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정'은 영화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땐 이미지 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역사적 측면으로 보았을 땐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1. 써놓고 보니 마치 프로불편러가 작성한 글 같은데 영화의 전부가 그런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몇 가지 지적한 부분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부분을 특별히 콕 집어 얘기한 경우죠. 


2.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밀정'과 '암살'을 비교했을 때 영화적으로만 보면 '밀정'이 훨씬 매력적이지만, 역사를 대하는 태도나 신중함에 있어서는 '암살'이 더 낫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암살은 맞고 밀정은 틀렸다가 아니라, 암살이 밀정보다 역사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


3. 전 개인적으로 일제 시대 그리고 독립운동의 근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인 소재인 동시에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영화와 프로그램 등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억울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많은 친일파 세력들을 더 자주 불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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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The Throne, 2014)

이야기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력



아마 많은 이들이 사도세자 이야기가 또 한 번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이미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인데 더 할 이야기가 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도세자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준익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최대한 다른 시각으로, 즉 역사적 의미나 더 정확한 역사 구현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연으로 사도세자 이야기를 풀어냈다.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역사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영조 그리고 아버지가 조선의 왕이었던 아들 세자의 이야기에 깊게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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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이야기가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소개되었다고는 하나 이전에 관객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감안하지 않는다 해도 '사도'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한다. 이준익의 전작 '왕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영화 '사도'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비극과 깊은 슬픔이다. 영화는 이 비극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플래시백 형태로 보여준다. 즉, 영화의 첫 장면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극적 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 지를 보여줌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시작부터 비극적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것은 영화가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의 기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또한 그 비극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걸 (굳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느끼게 함으로서, 인물들의 슬픔이 더 깊게 느껴지도록 한다. 영화가 영조와 세자, 특히 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로움 그 자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운명에 처한 것도 애처로운데, 그가 바랐던 것이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로 세자를 비극적 운명을 자처했다기 보다는 선택권 없이 놓여 버린 가여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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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영화의 애처로운 시각에 관한 것인데, 세자와 그를 지지하는 인물들은 물론, 그를 시기하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인물들조차 날이 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통 극 중 인물을 관객이 애처롭게 여기도록 만드는 방식으로는 주인공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 더 가혹하게 주인공을 밀어 붙임으로서 그 효과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는 대표적인 대립 구도에 서 있는 영조의 묘사 방법은 물론이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여러 가신들과 인물들에게서도 그러한 가혹함 혹은 날 섬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사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자에 대한 안쓰러워 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인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함으로서, 관객들이 세자에게 더 큰 감정적 몰입과 동정의 마음을 갖도록 했고, 그것은 정확히 통했다.


'사도'가 슬픔을 전하는 방식은 주인공을 사면초가로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사면초가에 운명적으로 놓여버린 인물을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주변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 한 인물이자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영조의 묘사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영조라는 캐릭터를 철저하게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려 한 것이 그것이다. 즉, 겉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심이 아니었던, 혹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송강호라는 배우를 통해 120%로 표현해 낸다. 예전에 '색, 계'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배우의 영화 외적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겨우가 있는데, '사도' 역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인상이 영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배우이거나 악당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아마 영조의 깊은 진심이 미처 다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호소력 짙은 배우가 이를 연기함으로서, 관객은 최소한 좀 더 영조의 진심을 듣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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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역시 영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우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연기력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인데, 유아인이 최근 작 '베테랑'에서 악역을 연기했음에도 워낙 잘 한 덕에 그 초점이 연기력으로 집중되었던 것은, '사도'를 만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유아인이 연기한 세자는 그러한 기대를 넘어서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사도 세자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의 연달아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조태오가 아직도 생생한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짧은 시간에 완벽히 사도 세자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만큼 유아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만약 올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연기력 만으로 꼽자면 이 영화 '사도'를 주저 없이 꼽을 만큼, 유아인과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설득력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결국 이 비극적 운명에 놓여야만 했던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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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 속 이야기가 너무 슬픔과 비극을 강조할 땐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분명 비극을 감정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설사 강요라 해도 넘어가고 싶을 만큼의 힘을 가진 비극이었다. 그리고 '왕의 남자' 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 한 명의 인물을 깊이 그리워 하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아인은 지금이 전성기다. 그가 만든 사도 세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사도'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1. 전 워낙 사전 정보를 얻지 않은 터라 문근영이 나오는 줄도 몰랐어요;;; 후반부의 분장은 좀 충격;;;

2. 소지섭이 깜짝 등장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몰랐더라도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분명 나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닮은 아역이 나옵니다 ㅎ

3. 좀 가벼운 얘기로 영화 속 영조와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 딱 어울리는 주제라는 생각이 ㅋ

예법과 공부를 엄하게 가리켜 훌륭한 왕으로 자라길 바랐던 아버지와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간절했던 아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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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2013)

이름을 걸고 함께 할 수 있는 용기



양우석 감독의 데뷔작 '변호인'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 만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맨 처음 지문으로 밝혔듯이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하긴 했지만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그런 인물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은 그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인데, 일단 '변호인'은 여기서 영리하게 비켜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는 직접적인 실명이나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와 인물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는 없는 태생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그 감정을 자극하려 들면 더 촌스러워지고, 그 전달 하려던 본심마저 곡해될 정도로 역효과를 내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변호인'은 최대한 영화 속 이야기에 집중하려 애썼고, 일부러 자극하지 않으므로서 더 감정적인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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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은 지극히 상식적인 영화다. 하지만 그 누구나 아는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상식대로 행동하기 위해선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솔직히 최근 이런 영화를 보게 되면 섣불리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지!'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점점 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일 것이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변호인'을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은, 과연 내가 저 당시 송우석 (송강호)의 입장에 처했더라면 혹은 송우석의 주변 인이었다면 과연 영화 속 인물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처럼 용기내어 행동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속좁은 이야기지만 제발 내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송우석을 비롯해 당시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은 그냥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그들은 애초부터 사명감이 있었다거나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의 일인줄로만 알았던 부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용기와 부끄러움 가운데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부끄러운 삶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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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당시 80년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부끄러움의 선택지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비록 자신은 내 몸과 마음, 가족을 고통받게 하는 공권력과 상대할 용기를 내진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운 줄은 알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항상 부끄럽고 죄의식을 갖고 불합리한 시절을 살아왔던 이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용기를 내기는 커녕 부끄러움 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아직도 눈에 보일 정도로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피하려고, 피하려고만 애쓴다. 예전에는 용기나 안나서, 지켜야할 것들이 많아서 혹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무서워서 피하려 했다면, 지금은 그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서 피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그런 현실의 상처가 더 깊이 욱신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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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영화는 슈퍼 히어로의 가까운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저런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들도 저런 힘을 낼 수 있는 그런 큰 그릇이 되자 라는 식이라면, '변호인'은 이와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재판장에 피고로 서 있는 송우석을 지지하고 변호하기 위해 부산 지역 수십명의 변호사들은 자신의 이름 한 자 한 자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영화는 희미한 미소를 남기고 끝이 난다. 결국 '변호인'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송우석의 삶을 기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함께 하고자 했던 수 많은 변호사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렇게 외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의로움을 위해 싸울 때, 최소한 그 뒤에서 그를 지지하고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 달라고.

2013년 대한민국에게는 함께하는 용기가 더 간절하다.



1. 전 사실 최근 몇 작품을 통해 송강호 배우의 연기가 어느 정도 패턴이 읽혀져 새로움을 못 느껴가고 있었는데, 이번 '변호인'의 연기는 왜 그가 대단한 배우인지를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연기였네요. 오열할 때보다 감정을 숨기고 속으로 삼킬 때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한 정서까지도 표현해내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기였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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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2013)

역사와 허구의 사이에서



'연애의 목적 (2005)' '우아한 세계 (2006)'등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 '관상'을 추석 연휴 느지막히 보았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더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한데, 송강호를 비롯해 백윤식, 김혜수,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까지 이름 만으로도 포스터를 부족함 없이 채울 면면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수양대군이 자신의 반대파를 청산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관상쟁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대입한 펙션 장르를 취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역사와 허구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한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부담 없이 추천할 만한 웰메이드 영화를 꼽으라면 어렵지 않게 '관상'을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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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이라는 장르는 실제 역사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영화들 보다 더 큰 흥미를 주게 마련인데, 그 점에서 '관상'은 전형적인(나쁘지 않은) 방식을 택했다. 역사와 허구의 비중을 두고 봤을 때 전체적인 비중은 역시 실제 역사에 더 크게 두고 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나 전개 과정에서의 신선함은 아무래도 좀 떨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재미와 흥미를 주는 것은 영화가 선택한 허구의 이야기, 즉 관상쟁이 내경 (송강호)의 이야기일텐데 여기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을 제목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고자 함이 엿보였다. 


초반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그 관상을 기가 막히게 보는 주인공 내경의 존재에 집중한다. 내경이 오롯이 관상에 집중할 때만 해도 영화는 균형을 잃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경이 관상쟁이를 초월한 한명회 못지 않은 책사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초반 흥미를 주었던 관상이라는 주제가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관상이라는 소재가 이 역사적 비극 가운데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기대와 흥미를 갖게 했는데, 내경이 관상이 아닌 사건에 더 깊게 연루될 수록 그 가능성을 희미해지고 조금은 단순한 사극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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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라는 소재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이것은 필히 운명론과 맞닿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전형적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치열한 운명론과의 대립이 주가 되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상을 읽는 관상쟁이 내경. 역적 집안에서 벼슬을 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내경의 아들 진형 (이종석), 그리고 왕의 될 운명보다는 역적의 상을 하고 있지만 왕을 꿈꾸는 수양대군 (이정재)의 이야기들을, 치열한 각각의 대립으로 그렸다면 끝까지 강렬한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비극을 그리는 방식은 역시 신파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고 역시 송강호의 열연 탓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지만,  영화가 처음 던졌던 관상이라는 테마에 비하면 조금은 심심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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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무래도 '광해'와 비교 혹은 연상 될 수 밖에는 없는데,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관상'이 더 인상적이었다 (내게 '광해'는 아무래도 심심한 작품이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멋진' 배우들이 있다. 이 역사 속 이야기에 짧은 시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건 거의 배우들의 응집된 연기력 때문이었다. 송강호 연기는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이제는 좀 더 힘 있고 무거운 연기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고 (소시민 연기가 이제는 조금씩 지루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조정석은 너무 가볍기만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배우 본인이 갖고 있는 깊이가 더해져 무게를 만들어 냈던 것 같고, 존재 만으로 크게 서 있는 김종서 역할의 백윤식이나 김혜수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뭐 그래도 역시 '관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양대군 역할의 이정재였다. '신세계'와 '관상'의 이정재를 보면 특별히 연기력이 갑자기 나아졌다 기 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의 옷을 입게 되어 더 돋보인 듯 했다. 수양대군이라는 캐릭터는 양면성 보다는 오히려 완벽한 악으로 그려져야 했는데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선), 등장 장면에서 한 눈에 공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워낙 매력적이었기에 앞서서 그의 운명론으로 영화가 전개되었어도 좋았겠다는 바램도 들었었고. 



1. 한 번 실수록 세 단락 이상 썼던 글을 날린 이후로 다시 쓰는 거라 집중력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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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질서와 균형, 굴레를 벗어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첫 번째 헐리웃 진출작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를 보았다. 두 번 보았다. 사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헐리웃을 통해 선보였던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는 달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작품이자 초호화 캐스팅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기대감을 가졌던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 년 전에 구입했던 원작 만화도 일부러 개봉 전 보지 않은 것은, 오롯이 봉준호의 영화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본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와 '하지만'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두 번을 연달아 보았는지도 모르겠는데, 결론적으로는 '역시' 생각할 거리와 이야기할 거리를 여럿 생산해 냈다는 점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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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개발한 프로젝트가 오히려 빙하기를 가져오게 되 인류가 오로지 영원히 달리는 열차 안에 존재하게 된다는 영화의 배경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테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서두 이기도 하다. 꼬리 칸에 살고 있는 빈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맨 앞 칸으로 전진해 이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를 향해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체제 전복의 텍스트로 보기 쉽지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보다는 오히려 질서와 균형 그 자체와 이를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체제 전복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며, 인물들이나 한 칸 한 칸 전진할 때 마다 등장하는 그 다음 칸의 모습 역시 꼬리 칸의 모습과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주인공 커티스를 중심으로 한 꼬리 칸 사람들의 분노나 억울함의 표출 등이 아니라 (만약 이것이 포인트였다면 영화는 없는 시간을 할애해서 라도 꼬리 칸 사람들의 고통을 초반에 더 묘사해야만 했을 것이다), 전진할 때마다 더 확고해지는 균형과 질서에 관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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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서 부 터 맨 앞 까지 한 칸 씩 전진한다는 설정은, 마치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처럼 한 칸 씩 전진할 때마다 더 강력한 적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거나 더 혹독한 조건을 만나게 돼, 결국 최종 보스와의 결투(?)를 자연스레 고대 하게 되는데, '설국열차'의 내용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칸 한 칸 전진하는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꼬리 칸과 맨 앞 쪽 엔진 칸의 사람들만 서로를 인지하고 반응할 뿐 중간에 위치한 다양한 사람들은 이 반란이나 억압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만약 이 영화가 계급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열차 칸이 엔진 칸에 가까워 질 수록 상하 관계를 더 분명히 했을 텐데, 영화는 초반 꼬리 칸 사람들이 멀리 나마 볼 수 있었던 그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계를 등장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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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중간 이라고 만 표현해도 될 정도로 꼬리 칸의 주인공들이 엔진 칸으로 전진하는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그 과정 정도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그 칸의 성격에 따른 이슈나 담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커티스 일행과 이를 막으려는 윌포드가 보낸 이들이 부딪히는 배경 장소로 밖에는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균형과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여러 번 극 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다양한 중간 칸 사람들의 모습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클럽에서 파티를 하고 약에 취하고(크로놀), 고급 식사를 즐긴다던가 여유롭게 사우나나 뜨개질을 즐기는 모습들은 '잘못된' 것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극 중 겪었던 것처럼 당황스러울 정도의 의아함을 주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 질서가 반드시 깨야 할 것이라든지, 잘못된 것이라는 일방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후반부 드디어 윌포드를 만난 커티스는 윌포드에게 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열차의 균형을 위해 질서 유지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윌포드의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편이다.  그렇게 윌포드를 증오 했던 커티스조차 그의 제안을 따라 그의 자리를 맡는 것이 이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결정인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이 가장 다수를 만족 시키는 방법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윌포드의 이 방법은 쉽게 말해 맘에는 안 들지만 그 것 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가 이 메시지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든 비유는 바로 수족관의 비유였다. 자연(自然) 상태가 아닌 한정된 상황에서 개체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조정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는데, 윌포드는 바로 이 원리를 열차의 모든 칸에 적용하여 남은 인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영화 속 사실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이렇듯 이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구세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대로만 가자는 단순한 텍스트는 아니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구세대의 상황과 논리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약 '설국열차'가 오롯이 커티스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더 단순 했을 테지만, 이 영화엔 커티스의 전진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곧 다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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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는 내내 워쇼스키의 '매트릭스'를 떠올렸는데, 두 작품의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한 편으론 비슷하지만 잘 따져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매트릭스'를 떠올렸던 건 열차라는 작은 세계(하지만 곧 인류 그 자체)가 존재하기 위한 균형과 질서로서 성립되는 각 인물들과 열차 칸 들의 성격 때문이었는데, 윌포드는 마치 아키텍트와 같이 감정적이기 보단 전체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티스를 네오와 같은 구세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구원이나 체제 전복, 계급 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이기도 한데, 커티스는 오히려 이 거대한 질서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거대한 톱니 바퀴가 돌아가기 위한 제법 큰 또 다른 톱니 바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형태의 영화에서 이 자체가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윌포드와 길리엄이 같은 지향 점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였다는 점이나, 결국 이 거대한 질서를 위해 커티스가 윌포드의 후계자로 사실상 길러져 온 것 자체 말이다), 이 영화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달랐던 건 바로 그 다음, 그 다음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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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러한 구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의 결말을 보면, 무언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때 그 허무함의 충격으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면, '설국열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상황에서 힘겹게 발휘된 주인공의 자유 의지를 통해 굴레를 벗어난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정말 현 시대의 암울함이나 미래의 어두운 면을 다루려 했다면, 아마 관객의 지지를 받았던 커티스가 결국 종극에 다다랐을 때 윌포드의 논리에 수긍할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윌포드가 되고 마는, 그래서 열차는 계속 달리고 남은 인류는 또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둔 남궁민수와 요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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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남궁민수는 윌포드를 무찌르거나 엔진 칸을 차지하는 것 대신, 열차 밖을 탈출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미에 드러내는데, 이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극 중에서도 설명했던 이누이트 족 여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극 중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요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남궁민수의 부인이 바로 이누이트 족 여인이라는 점을 밝혔는데, 극 중 남궁민수가 열차 밖을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 여인의 행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녀가 열차 밖을 나가 몇 발자국 못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바로 깨닫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전혀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그 가능성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눈이 녹고 있는 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더 흥미로운 건, 영화가 허락한 열차 밖 세상의 주인공은 커티스는 물론이요 남궁민수도 아닌, 이 열차에서 태어난 요나와 열차의 동력으로 활용되었던 또 다른 어린 아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송강호와 고아성이 부녀 관계로 다시 등장하는 것 외에도 결말 부분에 있어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데, 남겨진 아이라는 테마 때문일 것이다. 요나와 또 다른 아이에게만 생존 가능한 기차 밖 세상을 허락했다는 건, 이 영화가 어른이나 기성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론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반성의 잣대인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커티스에게도, 오래 전부터 열차 밖 세상의 가능성을 꿈꿨던 남궁민수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한 편으론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세상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긍정의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극 중 커티스가 내내 자신의 오래된 잘못으로 인해 고통 받고 스스로를 옥죄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결말은 그들에게 진정한 속죄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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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움찔 하게 되었던 장면은 말미에 남궁민수가 급박한 상황에서 부탁을 하게 되는데, 요나가 정색한 얼굴로 '싫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요나의 성격이 좀 이상하고 유별나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동안 비교적 아버지를 잘 따랐던 요나가 극적인 순간에 와서 아주 단호하게 정 반대의 감정 표현을 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결말이 그러하듯 새로운 시대에는 남궁민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설국열차'는 결국 구세대의 종말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빙하기라는 것 자체가 한 시대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구세대가 스스로 자초한 빙하기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종말(설국열차는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멸종, 종말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종말의 과정에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희망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분명 희망적이다. 혹자는 그렇게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의 앞에 또 다른 먹이 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이 등장한 것을 두고, 절망적인 결말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러닝 타임 내내 보여주었던 구세대의 종말 만으로도 이 영화의 결말이 맞은 상황은 분명 싸워서 이겨내 살아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일 것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그렇게 질서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굴레를 벗어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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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흥미로운 건 항상 여러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 그 자체에요. 봉준호 감독이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2. 세계관이나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 게임 '바이오 쇼크'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3. 개인적으로는 틸타 스윈튼의 연기야 뭐 더 말할 필요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출연하는지도 잘 몰랐던 앨리슨 필의 등장이 더 반가웠어요!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4. 좀 아쉬운 점이라면 액션 연출이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었고, 영화 음악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했어요.


5. 뭔가 더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 정리가 안되네요 ㅎ 기회가 되면 봉감독님 만나서 직접 인터뷰도 하고 얘기 나누고 싶네요!! ㅎㅎ


6. 마지막은 <설국열차> 관련 제가 시도한 인증샷 들 ㅋㅋ




프로틴 블록과 함께 한 진정한 4D 관람 인증샷!



'Are you 냄궁민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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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작품 중 하나인 봉준호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 '설국열차 (Snowpiercer)'의 새로운 캐릭터별 스틸컷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캐릭터 스틸은 예전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았던 여권에 포함된 컷들인데, 이렇게 웹상으로도 함께 공개가 되었네요.


저도 신청했었는데 아직 도착을 안 해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중 ㅠㅠ

저도 얼른 여권이랑 티켓 수령하고 공식카페에도 가입하고 싶어요!

주변을 확인해본 결과 받으신 분들과 못 받으신 분들이 적절히(?) 섞여 있는 걸 보니, 양이 많아 순차적으로 발송이되고  있는 듯 합니다.


아... 스틸컷 들을 보니 영화가 어떨지 더욱 더 기대되네요!












이런 캐스팅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니, 더 나아가 봉준호 감독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믿기 어려운 일인 것 같 아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실감할 수 있을 듯.



얼른 도착해라! 설국열차 탑승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김지운 감독이 꿈꾸던 만주 웨스턴

김지운 감독의 2008년 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은 작품성이나 흥행여부를 떠나서 일단 지난해 최고의 기대작이자 화제작이었다. 지난 해는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감독들의 신작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던 한 해였는데,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 이전에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선을 보이게 된 것이 바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었다. 물론 '놈놈놈'이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난해 최대 기대작에 꼽혔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를 들자면 하나는 캐스팅이요 다른 하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의 캐스팅은 이 세 명의 남자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팬들로서 흥분되는 것이 사실이었고, 한국영화에서는 (적어도 근래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웨스턴 장르라는 점에서 어쩌면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듯이 감독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웨스턴 영화를 '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이만희 감독의 1971년 작 '쇠사슬을 끊어라'였다. 만주를 배경으로 한 이만희 감독의 웨스턴 영화를 보고서 김지운 감독은 캐릭터가 중심이 된 웨스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 영화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이른바 '때깔' 좋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사실 개봉 당시 기대가 너무나 컸던 탓인지 짜임새나 완성도 면에서 기대치는 못 미친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당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회고전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뒤라 더더욱 레오네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석양의 무법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놈놈놈'이라는 제목 뿐만 아니라 레오네의 다른 작품인 '석양의 건맨'을 오마주하는 듯한 장면들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설정만 가져다가 쓰는 것인지 모호한 장면들이 많아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기대보다는 아쉬운 점이 많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블루레이에 담긴 서플먼트를 통해 김지운 감독의 의도에 대해 듣고 나니,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캐릭터'와 '오락영화'라는 점이었다. 확실히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그리 꼼꼼한 편은 아니다. 감독 스스로가 '말이 안되고'라고 하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딴 얘기를 했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 조금 놀랍기까지 했는데,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냥 작품을 내놓은 것은, 감독의 의도는 내러티브를 통한 치밀 함이나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 그리고 장면들을 구현하는 데에 더 노력한 오락영화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확실히 '놈놈놈'이 주는 영화적 쾌감은 한국영화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정우성 같이 멋지게 생긴 배우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코트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장총을 한 손으로 돌려가며 쏘는 장면은, 어쩌면 '놈놈놈'의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이런 장면을 배경으로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경쾌한 리듬마저 흐르니 그야말로 '희열'이다!). 아마도 송강호 만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몸 개그와 언어 유희가 더해진) 태구라는 캐릭터는 반대로 송강호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이상한 놈'이었으며, '나쁜 놈' 창이는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연기 변신이 더해지면서 좀 더 그럴싸한 캐릭터가 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깊이가 아쉬웠던 캐릭터 역시 창이였다. 굳이 리 반 클리프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거의 같은 장르의 영화를 두 번 만들지 않았던 김지운 감독에게 '놈놈놈'은 분명 웨스턴이라는 꿈꾸던 장르의 실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감독과 스텝들의 도전과 꿈이 영화에 100% 반영, 아니 관객에게 100%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전의 과정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었던 블루레이 혹은 DVD 감상이 더 의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Blu-ray Menu





세피아 틱한 색감과 3D로 구현된 인트로 영상은 높은 해상도로 단번에 눈을 사로 잡는다. 메뉴 네비게이션은 우측 하단에 나침반 이미지와 함께 구현되고 있는데 하나 아쉬운 점은, 넓은 여유 공간에 비해 폰트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멀리서는 일일이 메뉴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좀 더 시원한 폰트와 크기로 구현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Blu-ray | Picture Quality

<놈놈놈> 블루레이가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것은 개봉 전 HD급 예고편에서부터 시작된 화질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스크린 샷을 보시다시피 상당히 우수한 화질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클로즈업 장면에서 배우들의 피부를 통해 확인되는 표현력은 블루레이의 우수한 화질을 그야말로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느낄 수 있다.






<원본으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매트릭스’ 시리즈의 모피어스 역할을 맡은 로렌스 피쉬번의 피부가 한 때 DVD와 블루레이의 화질을 가늠할 만한 척도로 사용되었던 점을 떠올려보자면,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쓴 피부와 수염, 다양한 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잔주름 등으로 꽉 채워진 극중 태구의 얼굴은 ‘놈놈놈’ 블루레이의 화질을 체크해 볼 만한 좋은 도구가 된다. (유독 송강호가 등장하는 장면 캡쳐가 좀 더 화질이 좋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는 듯 하다 ^^).





<원본으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웨스턴 특유의 질감을 살리기 위함이었는지 칼 같은 샤프니스 보다는 약간의 노이즈 섞인 질감이 중간중간 엿보이기도 한다. 그리 많지 않은 밤 장면 같은 경우는 배경이 CG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블루레이의 차세대 화질로 감상하면 미묘한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장면 마다 약간의 화질 편차가 존재하는 편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매우 우수한 화질이며 만족스러운 화질이라 할 수 있겠다.


Blu-ray | Sound Quality


사실 화질만큼이나 기대되었던 것은 바로 차세대 사운드였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는 말 달리는 소리, 총소리, 기관총 소리, 부서지는 소리 등 굉장히 다양한 사운드가 등장하고 또 한꺼번에 몰아치기도 하는 등 사운드 측면에서 귀가 매우 즐거운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DTS-HD MA 7.1 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화질만큼이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수한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일단 총소리의 경우 굉장히 다양한 총기들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그 격발 음들의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의 다양한 소음들이나, 빗속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에서의 사운드, 그리고 대사 전달 역시 깔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놈놈놈’ 블루레이 사운드의 하이라이트라면 아무래도 후반부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배경에 흐르면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이 장면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굉장히 다양한 소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는 복잡한 시퀀스이다. 일단 수많은 무리들이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으며, 일본군은 기관총을 발사하고, 도원은 말을 타고 재장전을 해가며 총을 쏘고 있으며, 태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고 있고, 이후에는 폭발들도 일어난다. 사실 이 부분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이라이트라고 보았을 때 조금은 아쉬운 사운드였는데, 일단 너무 많은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나오다 보니 개별적인 사운드는 아무래도 조금씩 죽는 느낌이었으며 특히 배경음악의 비중이 큰 관계로 나머지 (더 임팩트 있을 수 있었던) 사운드들은 조금은 소외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우퍼를 비롯한 스피커들의 강렬한 활약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조금은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개인 취향 차를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는 블루레이의 걸 맞는 차세대 사운드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앞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놈놈놈’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들은 관객이 잘 알지 못했던 스텝들의 기술적인 도전과 감독의 의도, 그리고 배우들이 솔직하게 전하는 촬영 뒷이야기들을 많은 영상들을 통해 수록하고 있다. 그 많은 양의 내용에 비해 아쉬운 점이라면 DVD에 수록되었던 부가영상들과 동일한 영상이 담긴 탓인지 모두 4:3 화면비의 SD화질로 수록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가 개봉한 뒤에 별도로 부가영상을 위해 만난 자리 같은 경우는 HD화질로 수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놈놈놈’ 블루레이에는 DVD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종류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트랙은 김지운 감독, 이모개 촬영감독, 오승철 조명감독, 조화성 미술감독이 참여하고 있고, 두 번째 트랙에는 감독과 주연배우 세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음성해설의 경우 DVD에 담긴 국내 개봉버전과 블루레이에 수록된 인터네셔널 버전의 러닝타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수록되었을 지가 궁금했었는데, DVD에 수록된 음성해설 트랙을 가지고 씽크를 맞춰 편집한 경우로 결론적으로는 DVD와 동일한 - 즉, 추가되거나 새롭게 녹음된 것은 아닌 - 음성해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질주’는 일반적인 메이킹 필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인터뷰들을 통해 감독이 ‘놈놈놈’을 통해 이뤄내고자 했던 비전을 엿볼 수 있다.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가능성을 보고 만주 웨스턴에 도전하게 된 것이나, ‘매드맥스’ ‘벤허’등 CG로 만들어진 영상들 보다는 이른바 ‘생짜’ 영상에 매력을 느껴 그와 같은 영상을 만드는데 주력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스텝들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촬영감독을 맡은 이모개 감독의 이야기였다. ‘놈놈놈’을 보면 장면에서도 느껴지지만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촬영 방식들은 물론 기존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방식들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런 장면은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찍어야 될지 몰랐다’라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말은, 번지르르한 말보다 오히려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와이어에 매달려 배우의 뒤를 똑같이 날면서 촬영하는 방식이나, 카메라를 원통형 구조물에 부착해 굴려서 촬영하는 방식, 달리는 말들을 촬영하기 위해 크레인을 사용한 방식 등을 보니, 이모개 촬영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노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연출해서 촬영했다기 보다는 실제상황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는 그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놈놈놈 그리고 독한 놈’은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따로 감독과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가 함께 자리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담고 있는데, 정말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여서 그런지 이런 공식 영상에는 걸맞지 않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늦게 합류하게 된 이병헌이 최종적으로 창이 역을 맡기까지 고심했었던 이유도 들을 수 있었고, 사실상 ‘놈놈놈’으로서 갖는 마지막 공식 스케줄이라는 점에서 각자 돌이켜보는 시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날로그’에서는 촬영과 조명, 액션, 사운드 메이킹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정두홍 무술감독이 액션 장면에 대해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국 로케 촬영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중현 무술감독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그의 인터뷰는 더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참고로 영화의 엔딩 크래딧을 통해 지중현 무술감독을 추모하고 있기도 하다.






‘공간’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세트 디자인에 관한 영상이 담겨있는데, 의상의 경우 유니폼이라고 할 만큼 중복되는 의상이 거의 없는 관계로, 보통 다섯 작품에 소비되는 정도의 새로운 의상을 이 한 작품을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미술 역시 웨스턴이라는 한국영화에서는 흔히 다루기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접근하여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는 스텝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다.




‘삭제 장면’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많은 조연 캐릭터들의 대부분의 분량이 바로 이 삭제 장면에 들어있기 때문인데, 김지운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몇몇 장면들은 너무 인상적이라 분위기를 해치는 관계로 할 수 없이 삭제했다고 한다. 박사장 역할을 맡은 오달수의 중요한 장면 역시 삭제장면을 통해 만나볼 수 있으며, 도원의 꿈 이라는 제목으로 도원이라는 캐릭터의 에필로그성 영상도 수록되었으며 무엇보다 이청하가 연기한 캐릭터의 많은 분량도 확인할 수 있다.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뺄 수 밖에 없었다며 이청하씨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김지운 감독의 코멘트도 담겨있다. 또한 짧지만 너무 강렬해 뺄 수 밖에 없었다는 김인권의 출연 분량도 삭제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알~놀았다’에서는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각기 다른 엔딩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추가로 국내 개봉버전의 엔딩 장면이 본편과 동일한 풀HD 화질로 수록되었다.




[총평] 극 영화로서는 최초로 국내에서 직접 오소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분명 의미가 있는 타이틀이지만, 처음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이 전해왔을 때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 이라는 세 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던 것처럼 그 작품을 차세대급 화질과 사운드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은 또 한번 설렐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글 I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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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Thirst, 2009)
욕망으로 물들인 박찬욱의 새로운 장르영화


박쥐. 박쥐. 박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찬욱 감독의 2009년 신작 <박쥐>를 개봉일날 역시 말이 많았던 예매이벤트를 통해 관람했다. 그 덕에 멋진 사인 시나리오 북도 얻을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른 감독들과는 조금 자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텐데, 다른 감독들에 비해 박찬욱 감독의 신작은 보기에 앞서 '과연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일까?' '어떤 영화일까?'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더 분비된달까. 마치 서태지의 신보를 기다리는 심정과도 비슷하다. 좋을까? 나쁠까?이기 보다는 '뭘까?'하는 궁금증이 더 크다는 말이다. <박쥐>는 잘 알려졌다시피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을 원안으로(inspired by)한 작품인데(한 인터뷰에서 보니 박찬욱 감독은 이 원작에 'inspired by'하여 만들었는데 이게 '원작'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 다른 우리 말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해 그냥 '원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밀 졸라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가 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미뤄보자면 친구의 아내를 탐하는 것이나 살인극, 심리극이라는 것은 맞지만 정작 뱀파이어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얼핏보면 카톨릭 사제가 뱀파이어가 되어서 욕망을 갈구한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는 신선하다기보다는 굉장히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톨릭 사제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만 봐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알 수 있고, 각각의 욕망과 서로의 욕망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텍스트가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박찬욱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에는 의외로 '메시지'에 관한 부분이 그리 크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박찬욱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장르적으로 접근하여 환상적인 미쟝센들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며, 쉽게 말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쾌감을 선사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실망했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매우 재미있게 보았으며(참고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지금까지 작품들 가운데 씨네마테크에 남기고 싶은 영화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바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택했다), <박쥐>역시 이런 기대감에서 접근하게 되었다. 결과는 역시 박찬욱이었으며, 그는 장르영화의 틀 안에 갖혀있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복잡한) 장르영화적 요소와 영화적 장치들을 <박쥐>라는 하나의 그릇에 온전히 담아내는 시도를 했으며, 그 시도는 괜찮았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상현(송강호)은 신부다. 그는 병자들을 돌보는 곳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데, 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에 인간적으로(또는 신앙적으로) 무력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외국에서 바이러스 백신을 위한 실험에 자원하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목숨이 위험해져 수혈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수혈 받은 피로 인해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상현은 뱀파이어로서 느끼는 욕망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욕망을 신부로서 자제하려 애쓰게 된다.

일단 이 영화 <박쥐>는 공감대 측면 면에서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만큼 박찬욱 감독은 각 인물들의 히스토리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빠르게 묘사하고 있다. 상현이 외국으로 가서 실험에 자원하게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부로서 인간으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해도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은 무척이나 갑작스럽다. 만약 상현이 그래야만 했을 더 공감가는 줄거리를 풀어놓았다면 이 과정에 좀 더 공감이 갔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더 정형화 되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공감대 측면을 과감히 축소하더라도 자신이 말하려는 메시지의 핵심 자체에만 집중하려 한 듯 하다. 본래 이렇게 주인공이 급작스런 변화나 변이를 겪게 되는 영화는 거의 중반부가 되서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작은 에피소드들을 늘어놓게 마련이고. 이렇게 해야만 변하고 난 뒤 그의 행동들에 어느 정도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쥐>는 이런 것을 정상적인 단계를 다 밟기보다는 바로 핵심 공략으로 들어가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직접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감독이 담으려고 했던 다양한 장르적 특성들과 갈등 요소들을 모두 담아낼 여지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상현을 비롯해 태주나 강우의 경우도 그렇다. 강우(신하균) 역시 왜 그런 병을 얻게 되었는지 태어날 때 부터 병을 앓았던 것인지 그런 성격을 갖게 된 것이 꼭 병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 태주(김옥빈)도 마찬가지다. 그 지옥같은 집안에서 일탈을 꿈꾸는 모습은 그려지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족쇄가 채워진 것도 아니고 도망가려면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태주는 몽유병을 가장해 밤마다 거리를 맨발로 뛰는 것으로 억압에서의 자유를 느끼는 것으로만 설명된다(물론 이 둘이 이상한 부부관계에 대한 플래쉬백은 잠시 등장하기도 하고 강우에 대한 이야기도 얼핏 지나가지만, 분명 포인트는 여기에 없다). 상현이 실험에 자원한 것이 그러하였듯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온 역사로 인해 영화 속 사건에 반응한다기 보다는 그 각각의 '반응'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겨보기에도 편리해지고.




이 영화가 완전히 박찬욱 영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나뭇가지 그림자가 비치는 벽을 배경으로 상현이 문을 열고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긴 했지만, 역시 그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은 라여사(김해숙)와 강우, 태주가 살고 있는 행복한복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공간은 딱 보는 순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간의 색감은 물론이고 인물들이 입고있는 옷의 이미지는 이를 더한다. 특히 라여사의 어둡과 화려한 드레스와 강조된 인위적 화장은 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고, 퀭한 얼굴의 태주와 해맑게 웃는 강우의 얼굴도 이를 더한다. 한복집이라는 설정은 여러가지를 빗대어 이야기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데, 일을 하는 공간인 1층에서는 라여사와 태주 모두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는 것은 물론 공간 역시 이에 걸맞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일과는 무관한 생활의 공간인 2층의 이미지는 한복집과는 정반대다. 마치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미장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보라색 식탁보와 개성강한 인물들, 의상들, 마작을 하는 는 모습은 남인수의 노래 '고향 그림자'가 더해지면서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감독인 박찬욱과 함께 <올드보이> 등을 함께 해온 류성희 미술감독의 공도 크다하겠다.

김기영 감독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트 디자인이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물론이고 각 인물들을 그리는 방식도 김기영 감독의 분위기를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열열한 팬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동안 그의 작품들 가운데 <박쥐>가 가장 김기영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과장된듯까지한 인물들의 대사와 분위기, 그리고 자신이 말하려는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거침없이 연출하는 방식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박쥐>는 아무래도 '멜로'이기 때문에 좀 더 낭만적인 느낌이 가미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여튼 '행복한복'이라는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강하다. 1층에서 한복을 팔기 위해 마치 마네킹 처럼 한복을 입고 손님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태주의 모습에서는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몸'을 파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으며, 태주의 얼굴이 가게 문의 할머니(?)얼굴과 정확히 겹쳐지는 장면이라던가 2층의 긴 복도 그리고 지하실 등은 이후 상현과 태주가 이 공간을 라여사로부터 지배하게 되었을 때에도 용이하게 사용된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역시 욕망이다. 극중 상현과 태주의 욕망은 대부분의 욕망이 그러하듯 모든 것을 파국으로 만들고 만다.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생존과 신앙 사이에 고민하게 된다. 아니 이건 신앙이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랄까.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하지만 사제라는 것을 재쳐두더라도 상현이 그 동안 지켜왔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현은 이 '생존'이라는 좋은 구실 때문에 욕망을 이루게 되고 이 안에는 인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제로서 억눌려 왔던 욕망도 포함되어 있는 듯 하다. 뱀파이어로서 다른 사람의 피를 먹는 것으로 욕망을 채웠다면 인간으로서는 강우의 아내인 태주와 관계를 맺으면서 욕망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도 물론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면과 사제로서의 면 모두 관련이 있다 하겠다. 상현이 사제로 설정되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른 인간들에 비해 자신이 욕망을 채울 수 밖에는 없는 이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설득시키려 계속 노력하는 과정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단순히 '어쩔 수 없잖아' 정도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죽는 자를 살리고자 실험에 자원했던 '사제'인 상현에게는 이것만으로는 스스로를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신부에게도 끊임없이 '내가 수혈 받을 피를 고를 수 있던 것도 아니었잖아요?' '좋은 일 하려고 그랬던 거 잖아요'하면서 설득하려 하는데, 이는 노신부를 설득시켜 자신의 처지를 인정받고 싶다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납득시킬 구실을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끊임없이 이런 자기 설득에 애를 쏟는다. 남의 피를 마시지만 살인이 아니라 자살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들어준다는 이유를 만들고,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의 피를 마시면서 깨어 있었다하더라도 분명히 줬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심지어 이블린의 피를 마시면서도 태주에게 '너는 아까 많이 마셨잖아'라고 일부러 얘기한다). 이런 이유 만들기는 그 순간 뿐 아니라 나중에 욕망에 더욱 잠식되었을 때에도 하나의 구실로 사용된다. 처음부터 욕망에 노예처럼 자유롭게 행동했던 태주와는 달리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최소한의 방법을 사용해 왔다고 생각해온 상현에게 '그래, 그 동안 나는 할 수 있을 만큼 했잖아'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구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주의 욕망은 어떨까. 태주는 라여사의 집에서 강우와 원치않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녀가 표현하는 욕구해소 행동이래봤자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속옷 차림에 맨발로 전력질주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태주는 잘 생각해보면 뱀파이어가 되기 전부터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하는 뱀파이어처럼 고아나 다름없는 태주는 역시 생존을 위해 이 지옥같은 공간에 있을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것이 구실이었다면 태주에게는 라여사와 강우가 구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주는 사제인 상현을 유혹하다시피해 관계를 맺기도 했고, 결국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현을 이용해 강우를 낚시터에서 강에 빠트려 죽이고 만다. 사실 태주는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실제로 뱀파이어가 된 것과 같은 현실을 살게 된다. 자신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상현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하며 오히려 상현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지경까지 그를 밀어붙인다. 건물 옥상에서 상현에게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냐며 유혹하는 장면은 상현이 사제이기 때문에 마치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태주는 스스로 뱀파이어가 된 다음부터는 더 과감해진다. 태주에게는 상현과 같은 자기 설득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피를 마신다. 상현은 이런 태주를 타이르려고 하지만 이미 뱀파이어가 된 태주를 컨트롤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상현은 그 동안 똑바로 보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을 태주에게서 서서히 보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태주를 통해 자신이 욕망마저 버릴 수 있는 구실을 찾게 된다.

영화 속에서 태주를 그리는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혹자들은 김옥빈의 연기에 대해 어설프다며 말이 많지만 이는 분명히 의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대사톤과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 마치 아이처럼 좋아하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모습, 떠오르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상현에게 때를 쓰며 반항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부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태주의 욕망을 이렇게 아이의 그것처럼 그린 것은 또 어떤 의도일까. 욕망이라는 것은 결국 순수하다는 것일까. 순수함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야 말로 금기시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영화 속에서 상현과 태주 만큼 중요한 인물은 김해숙씨가 연기한 라여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 그로테스크함 가득한 화장과 얼굴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라여사는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된 이후부터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왜 라여사를 죽이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분위기를 보면 그래도 키워주신 어머니라 아니면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상현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고 보기보다는, '남겨두었다'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마치 듣지 말아야 할 인물이 옆에 있는 가운데 이런 은밀한 진실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부분도 있는 듯하며, 반대로 누가 들어주고 보아주었으면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상현과 태주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 순간, 그 장소에도 눈을 감지 못하는 라여사를 굳이 대려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현과 태주는 결국 외로운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그녀의 아들을 죽게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마지막에 누군가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마지막에는 이런 감정 외에 상현이 사제로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산화를 택한 것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상당히 복잡한 장르적 요소들이 결합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욕망과 뱀파이어의 큰 줄거리에 살인극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신하균이 연기한 강우를 두 사람이 죽이게 된 이후부터 이 살인극으로 인한 이야기와 묘사들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특히 두 사람 모두가 물 속에 빠트려 죽인 강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강우의 환상을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뱀파이어와 욕망에 이야기와는 쉽게 용해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는 침대 위에 강우가 중간에 돌을 앉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두 사람이 섹스를 할 때 강우가 두 사람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 등의 묘사는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겪는 공포감(두 발 뻗고 못자는)을 나타낸 장면으로 큰 줄기인 욕망의 이야기에 완벽하게 융합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이 설정은 에밀 졸라의 원작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설정인 것 같은데, 결국 이 설정이 라여사라는 캐릭터에 일종의 '존재의 이유'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로 느껴졌다. 송영창과 오달수가 각각 연기한 승대와 영두의 이야기는 한복점이라는 공간내에서 욕망이라는 큰 줄거리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지만 죽은 강우의 모습이 두 인물을 계속 괴롭히는 장면은 너무 복잡해진 느낌도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가위를 입안에 여러번 넣었다 뻈다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삽입하고 있는데, 다음 번엔 찌를지도 모르겠다고 관객이 느끼는 불안감을 통해 상현과 태주가 강우가 살아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감정을 느끼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화 속 상현의 대사처럼 뱀파이어는 불사의 존재가 아니듯이, 이렇게 공포에 떠는 나약한 존재임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도구나 장면장면이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다. 그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숨겨놓은 의미를 찾길 바라는 점도 있는 듯 하고,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미장센으로서 장면 만으로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상현과 태주가 제대로 된 첫 번째 섹스를 병실에서 갖은 뒤 부활절 달걀을 먹는 장면도 그렇다. 태주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디어 지옥같은 공간에서 빠져나와 상현과 섹스를 나눈 뒤에 부활절 달걀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부활'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나중에, 그 동안 생일을 한번도 치르지 못했다던 태주가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자 '해피 버스데이, 태주씨' 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앞선 단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전작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 금자가 상상하는 장면에서 극중 최민식의 얼굴에 몸은 개가 되어 등장하는 묘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박쥐>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영화의 대부분이 이런 식의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 옥상들을 뛰어넘는 장면들에서는 왠지 모를 낭만이 느껴지고, 온통 하얀 한복가게 2층의 이미지는 빨간 피의 이미지를 준비한 너무 노골적인 연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상현과 태주가 나는 베드씬에서의 대사들은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 부끄럼 타는 사람 아니에요' '원래 좋은 거에요? 이런 대사 말이다.

어째 영화보다 더 화제가 되고 있는 송강호의 노출 장면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그 전에 감독이 기자 시사후에 이 노출 부분만 화제로 기사를 쓰지 말라고 특별히 요청까지 했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성기노출 기사만 써낸 기자들은 참으로 자격이 없다. <박쥐>라는 영화가 좋고 나쁘다를 떠나서 영화의 본질은 따로 있는데 마치 이 영화를 노출로 대변되는 영화로 일순간에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그 전엔 김옥빈의 노출 연기만 운운했으니 말 다했다). 이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죽음을 맞기 위해 차를 운전하던 상현은 갑자기 수도원으로 항햔다. 수도원 앞에는 자신을 성자로 믿고 있는 이들이 벌써 한참 동안 노숙을 하고 있다. 상현은 이 중에 한 여성의 텐트에 들어가 있다가 여성의 비명소리에 모인 신자들에 의해 발각이 된다. 사람들은 이로 인해 자신들이 성자로 믿고 있는 상현이 사실은 몹쓸 놈이라는 것을 알고 돌을 던지며 상현을 쫓아낸다. 관객들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 상현은 황우슬혜가 연기한 이 여성을 성폭행 한 것이 아니다. 죽기 전에 자신을 성자로 믿는 자들에 환상을 깨주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장면을 연출 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통해 의연히 나오면서 알수 없는 표정을 짓는데 이 표정만으로는 살짝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노출 장면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상현의 성기는 성행위를 하다가 발간된 직후임에도 발기가 된 상태가 아니다. 이는 바로 상현이 전혀 흥분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며, 다시 말해 상현이 만든 의도적인 상황임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보였다 안보였다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쉽다(객석에서도 이상한 탄성이 흘러나오던데, 이건 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역시 김옥빈이다. 그녀가 이전에 연기한 작품들을 별로 보진 못했지만, 태주라는 역할은 그녀가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상당히 김옥빈과 어울리는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욕망에 눈떴을 때 그 살아있는 눈빛. 장난기와 희망에 잔뜩 부푼 눈빛과 입꼬리지만 왠지 사악함마저 느껴지는 이 얼굴은 태주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어울린다. 대사 톤은 확실히 약간 어색한데 이는 분명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태주라는 존재는 분명히 영화 속에서 불완전한 존재다. 어린아이같이때를 쓰거나 장난기 어린 모습도 그렇고, 아마 말투도 이런 측면에서 연출된 것이 아닐까 한다.

송강호의 연기는 부족함은 없었으나 최고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태주의 경우 김옥빈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우나 상현의 경우는 송강호 외에도 더 나은 선택이 있을 듯 하다. 약간 뱀파이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허무하고 현실적인) 대사들을 할 때는 그 만의 장기가 살아나는 부분이었지만 좀 더 뱀파이어스럽거나 심각한 연기를 할 때는 약간 임팩트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뭐랄까 90점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겠으나 왠지 120점 정도로 연기할 다른 배우가 있을 듯한 느낌.

김해숙의 연기는 확실히 장르화된 연기로서 객석에서 '움찔'하는 반응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서움 그 자체였다. 몸은 완전히 굳은 채로 눈만으로 연기하는 후반부의 연기가 압권이었는데, 확실히 베테랑 답게 눈의 움직임만으로도 공포와 독기를 넘나드는 멋진 연기를 선사하고 있다. 송영창, 오달수의 경우는 캐릭터의 비중이 작은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정형화된 느낌이 있었으며, 신하균의 경우는 연기도 연기지만 확실히 그 해맑은 미소하나만으로도 캐스팅에 이유가 될 것 같다. 그 해맑음이 이 영화에서는 얼마나 섬뜩하게 표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




<박쥐>는 확실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단순히 취향이 문제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박찬욱 감독의 팬으로서 하나 안타까운 점은 그의 영화 팬층이 너무 갑작스레 광범위하게 퍼져버린 탓에 그의 본래 취향에 성향이 강한 영화들이 나왔을 때 그 어떤 감독보다 실망하는 관객들이 많이 나오곤 한다는 점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경우처럼 <박쥐>도 많은 사람들이 별로 혹은 최악이라며 악평을 쏟아낼지도 모르겠다(벌써 나오는듯도 하다). 영화야 어차피 개인의 것이고 취향의 차이니 좋고 나쁨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맘은 없지만, 그저 너무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버린 현실이 안타깝달까. 적어도 <복수는 나의 것>을 본 이들이 많다면 이 정도의 악평이 쏟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 <올드보이>나 <공동경비구역 JSA>에 더 익숙한 사람이 많은 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 같기도 하다. 이 점은 아마도 박찬욱 감독이 계속 짊어지고 나가야할 하나의 짐이라고 해야겠다.

또 하나, 확실히 메시지 자체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러티브가 주가 된 영화도 아니었고. 복합적인 장르적 재미와 영화 팬들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발견해야만 더 즐길 수 있는 불친절한 영화라고도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좋았다. 이 영화 <박쥐>.


1. 관람할 당시 옆 관에서 <스타트랙 : 더 비기닝> 상영이 되고 있었는데, 옆 관의 강한 우퍼소리 때문에 <박쥐>상영관까지 울리게 되어 관람시에 좀 불편하더군요;;

2. 주인공이 뱀파이어 영화인데 영화 중반이 지나도록 피를 먹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소리내어 반응하더군요. 초반에는 그럴 수 있어도 뱀파이어 영화라는 점이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하는 바램도.

3. 의외로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제법 있더군요.

4. 스쿠버다이버들이 수색을 마치고 물위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분명 의도된 느낌이었습니다.(그 낚시터가 수몰지구위에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구요).

5. 유니버설 픽쳐스의 로고를 한국영화에서 보니 그것도 흥미롭더군요.

6. 확실히 딱 한 번 감상으론 부족한 영화인것 같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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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Weird, 2008)
좋은 점, 나쁜 점, 이상한 점.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기대를 갖게 된 것은,
일단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의 캐스팅 소식이었다. 물론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이렇게 되었다면 더
기대했겠지만,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이라면 무언가 볼거리(?)는 확실히 책임져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웨스턴 장르라니 더더욱 그러했었고. 예고편에서 보여준 그 리듬감과(물론 이 리듬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킬 빌>의 OST로도 사용되었었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였다),
때깔 좋은 액션은 이러한 기대를 최고조로 이끄는데 한몫을 톡톡히 했었다. 하지만 기자 시사회와 전야제에서
흘러나오는 so so나 기대이하라는 감상기들을 보고는 '그래, 배우들 본인들도 오락영화임을 강조하잖아,
오락영화 이상에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으로 개봉일 날 조조로 관람하게 되었다.


(아래 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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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 (The Good)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 제대로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던(웨스턴 장르에 한해) 볼거리, 이른바 '때깔' 면에서는
만족할 만 했다. 정우성이 맡은 박도원 캐릭터는 좋은 놈으로 등장하는데, 말을 타며 장총을 휙휙 돌려가며
장전 뒤 사용하는 장면이나, 도르레 원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줄을 타고 건물 위를 휙휙 날아다니며
마적단을 소탕하는 모습들은 물론 다른 배우들이해도 참 멋있었을 장면이었겠지만, 멋있는 남자 배우의
대명사인 '정우성'이 맡아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송강호가 맡은 (영화의 사실상 주인공인) 윤태구 캐릭터의 연기는 가장 큰 볼거리이다.
사실상 이 영화가 액션 영화보다는 코미디 영화에 가까웠던 것은 모두 윤태구 캐릭터가 보여준 대사와
몸개그 때문이었으며, 이런 것들은 송강호라는 배우를 거치면서 좀 더 생동감있는 캐릭터로 보여지고 있다.
특히나 액션도 좋지만 코믹에 대한 선호도가 상당히 높은 국내 관객들을 생각해 봤을 때, 흥행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 같은 코믹한 요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나도 재미있는 장면이 많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관객이 10번 웃었다면 난 3번 정도 웃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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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점 (The Bad)

송강호가 맡은 윤태구 캐릭터를 제외하면 캐릭터 적인 면에서 다른 두 캐릭터는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단 정우성이 맡은 박도원의 경우, 좋은 놈이라 한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저 폼나는 모양새와 장면 외에는 별 다른 깊이라던가 생생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면은 이병헌이 맡은
박창이 역할도 마찬가지인데, 이병헌이 악랄한 악역을 맡아 어느 정도 선전한 것은 인정하지만,
마적단의 두목스럽지는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그냥 좀 더 깊이를 더해 혼자 활동하는 악랄한 놈 정도로
그려졌다면 오히려 지금의 분위기가 더 살지 않았을까 싶은데, 만주를 호령하는 마적단의 두목으로서는
쉽게 말해 '두목 포스'가 조금 부족해 보였다.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에서 나쁜 놈을 맡았던 리반 클립과는
비교조차 힘들 듯 하다.

이 영화는 한국형 웨스턴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좀 더 한국화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극 중 배경이 만주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만주만의 독특한 느낌이 묻어난다기 보다는 특정 색을 찾아보기
어려운 애매하고 잡다한 색이 혼합해 있는 장소로 느껴졌다. 캐릭터들도 윤태구를 제외한다면 다른 캐릭터들은
한국형 웨스턴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웨스턴의 일반적인 캐릭터들로서, 좀 더 토착화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 영화에는 상당히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송영창, 윤제문, 류승수, 손병호, 오달수, 이청하, 엄지원 등
주조연급 배우들이 예고도 없이 계속 등장한다(오히려 그래서 개인적으론 좀 관람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누가 나오면, '어 누구다' '쟤, 누구 아니야'하면서 나올때 마다 웅성거려서 --;). 근데 일단 안습인
것은 특별출연이라는 엄지원 보다도 분량이 적은 이청하를 들 수 있겠으며(그래도 나름 <동갑내기 과외하기 2>
에서 주연도 맡았던 배우인데), 이 조연급 캐릭터들이 전부 맛이 없고 그냥 스쳐가는 정도로 묘사되었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오달수의 경우 거의 까메오에 가까운 터라 상관없겠지만, 윤제문, 손병호 같은 배우들은
상당히 포스가 있고 연기력이 있는 배우들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이러다할 자신만의 색이나 깊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건 단순히 분량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나리오나 배우의 능력 탓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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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점 (The Weird)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역시 레오네의 영화인 <석양의 건맨 (For a Few Dollars More)>역시 연상되는
영화인데, 이 부분이 참 이상하다.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은 레오네 영화에 대해 오마주를 하려는 것인지,
그냥 차용정도로 하려는 것인지 그 수준이 참 애매하게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태구가 모자를 떨어트리자
도원이 총으로 모자를 맞춰 계속 멀리 보내는 장면은 <석양의 건맨>에서 이스트우드가 리 반 클립에게 했던
바로 그 장면이고, 이상한 놈을 묶고 끌고 다니거나(물론 그 상하관계는 바뀌었지만),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이
잠깐 연합을 하게 되는 설정이나, 마지막에 가서 보물을 찾아낸 이상한 놈에게 좋은 놈이 나타나 삽을 주며
파라고 시키는 것이나, 마지막에 세 명이서 그 유명한 구도로 서서 결투를 벌이는 것 등 레오네의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과 설정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것들이 앞서 얘기한것 처럼 애매한 정도로 삽입되고 재현되었다는 점에 있다. 송강호의 '누구냐 너'
처럼 아예 제대로 비틀어 버리거나, <슈렉>처럼 아예 패러디로 가거나(웨스턴을 표방했으니 이럴리는
없겠지만), <킬 빌>처럼 제대로 된 오마주를 보여주었거나(이 것이 가장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했어야 했는데, 애매한 입장을 취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틀전
2008 시네 바캉스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에서 <석양의 무법자>와 <석양의 건맨>을 본 뒤였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물론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많은 아쉬운 평을 받은 것은 엄청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정말 많은 영화팬들이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았을 만큼 엄청난, 그야말로 엄청난
기대가 있었던 영화였고, 정말 멋진 예고편을 보여주었기 때문에(이 영화는 예고편 만든 회사에 보너스 줘야한다)
더 큰 기대를 갖게 되었고, 200% 보여주어야만 만족할 기대에 80~90% 밖에는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아쉬운 평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하다.

딱 더도 덜도 아닌 오락영화로서는 큰 손색이 없는 영화라고 생각된다(물론 러닝 타임이 좀 길어 오락영화로서
지루한 면도 있다). 김지운 감독과 웨스턴 장르라면 무언가 좀 더를 기대하게 되 아쉬운 것도 있지만,
큰 기대와 부담없이 본다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레오네 영화와의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이 영화의 아쉬움은 커질 수 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놈놈놈>을 먼저 보고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를 보는 방법도 추천한다).



1. 칸 영화제용 사인 포스터를 준다길래 조조로 부모님과 3장 예매해서 갔는데, CGV직원들은 내용도
  잘 모르고 있고, 포스터 이벤트를 한다는데 포스터를 접어두고 고무밴드도 준비해두지 않은점은 분명히
  아쉬웠다.

2. 아...세르지오 레오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예전에 만든 것인가. 이번에 극장에서 다시 보니
    리 반 클립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3. 15세 치고는 상당히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그래서 인지 내 옆자리 여자분은 모든 액션 장면에
    감탄사와 신음으로 반응하여 아주 괴로웠다).

4. 독립군과 일본군 시퀀스는 <석양의 무법자>의 남북전쟁을 보고 삽입한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 깊이가 하늘과 땅 차이랄까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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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The Host)
 
몇 년 전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난 뒤 바로 들었던 생각은, 아니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영화가 재미있다
보다 도 (물론 재미있지만), 완성도가 정말 높구나 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에다가 긴박함을 시종일관
유지시키는 리듬감, 감칠맛 나는 대사, 현실적인 캐릭터와 배경, 봉태일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디테일 등은 봉준호 감독의
다음 작품을 몹시도 기다리게 했다. 아마도 <살인의 추억>이 개봉관에서 내린 뒤 모 잡지에 난 인터뷰에서 다음 작품은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것 같다고 했던 것에서부터, 이 영화 '괴물'에 대한 기대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2006년 영화계에 최고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영화 <괴물>은 그 동안 국내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시도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던) SF 괴수영화, CG컷이 맛 배기 정도가 아니라 주축이 될 정도로 많이
사용되었음에도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로서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면서, 다른 한 편으론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줬던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플란다스의 개>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개봉 시에 너무도 많이 다뤄졌기 때문에 이번 리뷰에서는
 DVD의 관한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다.



극장에서 <괴물>을 몇 번씩 관람하면서 지속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괴물>DVD의 관한 기대였다.
아무리 DVD가 훌륭한 스펙과 완성도를 수록하였다 하더라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케일을 한 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중복 관람을 몇 번이고 했었다면, DVD타이틀에는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서플먼트가 음성해설이
있기 때문에 DVD로서의 <괴물>도 엄청난 기대를 갖게 했었다. 특히 ‘봉태일’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몇 번의 관람에도 찾아낼 수 없었고 다 소화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와 세밀한 디테일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개봉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던 몇 가지 사실 관계와 감독의 의도에 관한 궁금증으로 이 같은 기대를
더욱 갖게 하였다(논란이 되었던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뒤 음성해설 리뷰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먼저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 출시된 타이틀 가운데서도 최상급에 속할 만큼 수준급의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필자의 시청 환경은 32인치 와이드 HDTV로 시청하였는데, 마치 HD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선명하고
컨트라스트비가 높은 화질로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하수구에 갇힌 현서의 얼굴처럼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최고수준의
화질을 만나볼 수 있으며, 비오는 동호대교 아래의 추격 장면에서와 같은 움직임이 많고 거친 영상에서도 외곽선이나
잔상이 남지 않는 뚜렷하고 선명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다. 1.85:1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강을 배경으로 하는 괴물 영화를 찍는 다고 하였을 때, 넓은 한강을 와이드 하게 담을 수 있는 2.35:1의 영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나, 봉준호 감독은 아메리칸 스탠다드 영상인 1.85:1을 선택하여 조금 의아해 하기도 했었다.
물론 한강 하면 좀 더 와이드 한 2.35:1을 생각하기 쉽지만, 봉준호 감독이 구상한 영화의 특성상, 수평적인 움직임보다
 수직적인 움직임이 많고(괴물의 움직임만을 갖고 보아도 좌우로 움직이는 수평적 움직임보다는 교각을 오르내리는
동작이라던가 은신처를 오고 가는 움직임에서도 수직적인 움직임이 주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컷에 있어서도 장면을 이어갈 때 여러 컷을 촬영하여 편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로 한 테이크에서 인물들이
들락 날락 하는 형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장면에서도 1.85:1이 더욱 용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TS-ES 6.1채널과 돌비디지털 5.1EX를 수록한 사운드 역시 최신 타이틀다운 수준급의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가장 중요한 사운드 포인트가 되는 괴물의 소리는 그야말로 최근 한국영화는 물론 외국영화 타이틀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결과물을 들려주는데, 초반 괴물이 등장하여 한강 둔치를 쿵쿵 뛰어오는 장면에서는
우퍼 스피커의 진동을 통해 그 무게감이 절로 느껴지며, 바로 이어지는 아수라장의 한강 시민 공원 장면에서도
괴물의 소리는 물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잡다한 소리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음에도 높은 채널 분리도와 함께
매우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특히 사운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은 극중 희봉이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빗속의 결투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세차게 내리 치는 빗 소리와 괴물의 소리, 괴물에게 향하는 총소리,
그리고 긴박감을 더하게 하는 극적인 스코어까지 더해져 사운드의 요소가 집합된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선명한 사운드와 높은 채널 분리도는 조용한 매점 안에서 시작하여 다리 아래 강변에서 희봉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정신 없이 몰아치며 사운드적인 몰입도 측면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괴물의 소리는 물론 에이전트 옐로우의
살포 시에 사운드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운드의 표현은 물론, 이병우 음악감독의 극적인 스코어도
풍부한 출력으로 만끽할 수 있다.



보통 DVD가 출시가 되고 나면 영화 본 편을 먼저 감상하기 마련인데, 아마도 본 편이 아닌 음성해설을
먼저 감상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이번 <괴물>DVD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괴물 DVD는 레퍼런스급 DVD답게
음성해설도 총 3가지가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는 감독과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 배우들이 참여한 버전,
두 번째는 봉준호 감독의 단독 음성해설, 세 번째는 조능연 프로듀서와 김형구 촬영감독, 정영민 조명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등 스텝들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양가 있고 흥미로운 버전은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의 단독 음성해설일 것이다. 차분한 태도이지만 장면 장면에서 할 말은 다하고
미안했던 스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생각이나, 논란 거리가 되었던 일들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도 하는데, 먼저 개봉 당시 논란이 되었던 현서의 죽음에 관련해서는 ‘현서는 죽은 것이 맞다’로
당연하게 결론지어졌다. 사실 이 논란을 논란이라기 보다는 감독의 말처럼 현서의 캐릭터에 너무 빠져버린
관객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생기게 된 일로서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또한 일부 장면이 일본 애니메이션 <패트레이버>를 표절 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두 작품을 잘 보게 되면
유사성이 없다는 것을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었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기도 했던 마지막 괴물과의 결투 중 불 붙은 괴물의 CG에 관해서는,
예산과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그렇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음을 어느 정도 스스로 인정하는 코멘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극 중 강두가 ‘No Virus?’하고 묻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라크전에 관한 풍자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극 중 남일이 예전 운동권 선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장면의 분위기는 의도적으로 80년대 운동권 학생과
그 주변의 분위기를 내려고 했었다는 말도 전한다. 그리고 강두가 전두엽 추출 수술 이후 분명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송강호의 연기의 패턴 또한 그 전과 후 과 뚜렷이 구분되고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배우들의 음성해설은 시나리오와 연출 의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촬영현장과 분위기,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들이 즐거운 분위기 아래 진행된다(하지만 변희봉 씨와 고아성 양이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스텝들의 음성해설은 각각 파트에 해당하는 장면이 개별적으로 녹음되어 있으며
각각의 전문 분야에 관한 더욱 세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마치 괴물의 세포를 연상시키는 메뉴 디자인 아래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수록되어있다.
크게 ‘괴물탄생’과 ‘괴물제작’으로 나뉘어있는데, ‘괴물탄생’에서는 촬영 이전에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관한 영상들을
주로 수록하고 있다. 제작자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와 봉준호 감독과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작업한
하준원, 백철현씨의 인터뷰가 수록되었으며, 주연배우들이 촬영에 필요한 사격, 양궁 등을
미리 연습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감독 자신이 캐스팅의 핵심이라고 표현한 현서와 세주 역할의 캐스팅의
관련한 오디션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그 사이 많이 커버린 고아성 양의 어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뉴스 속보’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뉴스 클립들을 따로 감상할 수 있는데, 최일구 앵커를 비롯하여
김원장 KBS기자 등 연기자가 아닌 실제 방송인들이 출연한 뉴스 클립들인지라, 또한 영화 속에서는
TV속 화면으로 작게 표현되거나 스쳐 지나가는 영상으로 표현되어서 자세하게 감상할 수 가 없었던 영상이라
매우 흥미롭다. ‘괴물 제작’ 에서는 괴물 자체의 구상에서부터 디자인, 컴퓨터 그래픽을 거쳐
최종적으로 스크린에서 관객들이 보게 될 때 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특히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가 뉴질랜드의 웨타숍에 건너가 웨타숍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통해, 영화 <괴물>에 있어 괴물의 디자인을 완성한 장희철 디자이너의 공로를
새삼 느끼게 된다. 또한 웨타숍에서의 영상은 <반지의 제왕>서플먼트에서 볼 수 있었던 리차드 테일러가 등장하기도 해
마치 외국 영화 DVD의 서플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괴물은 왜 그랬을까’라는 제목의 서플먼트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음성해설과 함께 영화 ‘괴물’을 강두 가족이 아닌
‘괴물’의 입장에서 영화를 재해석 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의도처럼 ‘괴물’이 단순히 무지막지한 괴수가 아니라
나름 상처를 입고 외롭기도 하고, 인간의 잘못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로서 어떠한 관점을 갖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스페셜 피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괴물 갤러리’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 과는 다르지만, 초기에 구상되었던 다양한 형태와
컨셉의 괴물의 이미지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스터 에그로 수록된 영상에서는 현서와 바뀌게된
여중생 역할 소녀와 방역업체 직원으로 괴물에게 잡혀가게 되는 역할의 배우,
그리고 한 때 ‘괴물녀’로 소개되기도 했던(음악을 듣다가 괴물에게 끌려가는 여자)역할을 맡은 배우의 인터뷰가
핸드폰에 전송된 동영상 방식으로 수록되었다.



세 번째 디스크에는 한강의 지도를 연상시키는 메뉴 화면아래 역시 다양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다.
‘한강질주’에서는 한강에서 촬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과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한 건축물들이 실제로 한강에 존재했었다는 스텝들의 이야기 등 한강 로케이션에 관한 영상들이 수록되었다.
 ‘삼켜버린 장면’은 말 그대로 삭제장면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봉준호 감독이 삭제된 장면에만 출연했던
단역 연기자들에게 미안해하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금액이 투자된 괴물 장면들도
일부 삭제가 되었는데,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금액이 금액인 만큼 눈물을 머금고 본 편에서
삭제했다는 말도 전해 들을 수 있다. 음성해설과 일부 서플에서도 가끔씩 등장하지만,
 ‘봉감독의 사과합니다’에서는 본격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자신 때문에 고생했던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사과를 하는 재미있는 영상이 수록되어있다. ‘한강 찬가’에서는 이병우 음악감독이 영화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시사회와 해외 영화제에 참여했던 장면들이 수록된 ‘스크린 외출’,
그리고 변희봉, 윤제문 등이 출연하는 단편 ‘Sink & Rise’등이 수록되어있다.



이 밖에도 일일이 나열하진 않았지만 소개 한 것 외에도 더욱 재미있고 흥미로운 서플먼트들이 가득 담겨있어
서플먼트도 가히 최고수준의 퀄리티와 완성도를 수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 이 영화가 1300만이라는 엄청난 관객 동원으로 인해 여름용 블록버스터,
상업영화 로만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쉽고, 그렇게 평가되기 보다는 그저 독특한 감성과 형식을 갖고 있는
하나의 재미있는 영화로 평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봉준호 감독의 본래의 의도처럼 영화 <괴물>이 단순한 흥행작이 아닌 특별한 작품으로 이해되기에,
<괴물>DVD는 최고의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2007.01.10
글 / ashitaka



2003.10.31

이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던 제목 --;;

그 당시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잘 지었다와 창피하다가 주기적으로 교차하는듯 --;


'농촌 스릴러'와 '전원일기 세븐' 가운데서 메인 제목을 상당히 고민했던 기억이...;;;



밀양 (Secret Sunshine, 2007)
 
 
(스포일러 있음)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매우 호평을 받았던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등도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밀양>은 매우 기다렸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창동, 송강호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이긴 했었다(전도연의 연기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다)
 
난 보기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일부러 정보를 많이 사전에 얻지 않는 편인데,
<밀양>은 촬영현장을 스케치한 모 프로그램에서 납치라는 소재를,
그리고 모 잡지에 난 기사가운데 스쳐지나간 종교라는 소재만 미리 알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밀양'이 지명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오프닝에 송강호와 전도연이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고
사뭇 놀라게 되었다 (난 왜 부부일꺼라 미리 생각했던가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밀양>은 두 번 다시 보고싶지는 않은 영화이다.
영화가 재미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불편함과 억눌림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갑자기 얼마전 보았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떠올랐다.
<밀양>은 어떤 면에서는 <마츠코..>와 닮아 있기도 하다.
마츠코의 일생과 극중 이신애의 일생은(이신애의 경우 일생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둘 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고 고통스런 순간들이지만,
<마츠코>의 경우 희망과 뮤지컬 리듬으로 영화를 이어갔다면
<밀양>의 경우엔 참담하고 안타까운 사건들을 진지하고, 한편으론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납치와 살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신애는
누구보다도 우스운 소리라고 여겼던 종교(기독교)에 의지하고 빠져들게 되지만,
살인자를 용서하러 간 자리에서 그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용서를 받았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다시 한번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곤 자신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신'이라는 존재에게 보란듯이
이상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일종의 '멜로'영화라고 했는데,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 해매는 신애와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곳에
항상 보이는 곳에 있는 종찬의 특별한 멜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자칫 '구원'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으로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밀양>이 담고 있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는 (종교적인 소재가 직접적으로 담겼음에도)
범인간적인,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하는 넓은 의미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 영화가 매우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종교 때문이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종교라는 것은 그 어느 소재보다도 건드리기가 껄끄러운 문제이며
어떻게 그려도 한 편에선 욕먹기 쉬운 것이 종교인데,
<밀양>에서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그리면서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기독교인들도 기분 나쁘지 않게, 중도를 지키는 매우 어려운 '중간'을 그리는데 성공한듯 하다.
실제로 연기자가 아니라 목사님이 출연하기도 했을 정도로, 기독교인들 스스로에게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찬양조로 그리지도 않았으며,
'기독교'라는 집단 자체는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그저 보수적인 한 단체 정도의 의미만이
느껴질 정도였다.
 
종교적인 것이라면 신애와 종교 사이에 일일텐데,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던데, 신이 있다면 왜 이런일들이 생기느냐 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논란이 되는 문제가 신애에게 닥치게 된다.
이 문제는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도 명확히 답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극 중 신애는 이 같이 어디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처참한 한 여자의 삶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도연의 연기는 참 대단했다.사실 전도연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특히 연기력에 대해서
이렇다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물론 신애라는 인물 자체가 여배우로서
거듭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도연의 연기가
단순히 인물자체의 매력때문이었다고만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기엄마가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잃고 난 고통을
제대로 쉽게 연기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그런 마음에서 임한 만큼 정말 처절하리 만큼
공감할 수 있는 신애를 볼 수 있었다.
 
다들 전도연, 전도연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송강호의 연기였다.
포커스는 분명 신애에게 맞춰 있는 영화이지만, 만약 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이 없었다면
<밀양>은 더 무겁기만 하고, 단순히 처절하기만 한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찬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 타임 속에서
잠시나마 쉴 여유를 갖을 수 있었으며, 무거워만 갈 수 있었던 영화에
리듬감을 가미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마치 무슨 감초역할로 비춰질 수도 있을텐데,
종찬의 역할은 감초가 아니라 신애의 그림자와도 같이 없어서는 안될 캐릭터이며,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구원'이라는 물음에 있어서,
결국 인간이 구원받을 곳은 인간 뿐이다 라는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보는 내내 송강호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표면적으로 돋보이는 전도연의 열연 못지 않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밀양>.
납치, 살해, 종교 등 너무나도 선정적인 소재들이 한 꺼번에 쓰였음에도
그 본래의 존재 이유처럼 '소재'로만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그 만큼 더 큰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었다.
 
 
 

 
글 / ashitaka


주인공 박강두는 영화 시작에는 분명 위의 사진처럼 평범하다 못해 평균이하이며,
부지런한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낮잠과 나태함을 달고 사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반갑게 자신을 만나러 달려오다가 헛딛여 넘어지는 아빠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던 현서의 반응만 보아도 이런일이 비일비재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강변에 나타난 괴물과의 결투(?)중(사실 이 결투 중에도 강두의 잠재력이 살짝
드러나게 된다. 무거운 돌덩이가 붙어있는 쇠봉을 단순한 기합만으로 들어재끼는
(분명 처음에는 혼자 들지 못해 외국인이 도와줘서야 들 수 있었다)모습을 연출하기도했다)에
괴물의 피가 강두의 얼굴에 튄 뒤로 분명 강두에게는 무언가 생체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조사에서는 결국 아무런 바이러스도 검출되지 않고 애초에 바이러스라는 것 자체가
없던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영화의 정황을 요목조목 살펴보자면 이후 계속되는
강두의 슈퍼히어로급 활약은 단지 딸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에 의한 것이라고는
명쾌하게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이 있다.
 
유기농 식단으로 커왔던 강두이긴 하지만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해
병든 닭마냥 꾸벅꾸벅 졸기 일쑤라는 아버지의 말과는 무색하게,
이후 강두는 병원의 강력한 마취제에도 끄떡없는 엄청난 면역력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뇌수술이라는 강력한 정신적, 체력적 저하 요인이 있었음에도
수술 바로 직후에 간호사에게 주사를 뺏어(간호사가 방심하긴 했지만, 그녀가 금자씨에 등장했던
마녀라는 점을 되새긴다면 결코 쉽게 넘길일은 아닐듯), 홀연히 탈출할 수 있었던데에는
분명 앞서 말했던 분노 이외에 무엇인가 있다고 보는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해줄 좀 더 신빙성있는 증거는 없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골뱅이.
바로 이 골뱅이 씬은,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카메라 구도와 분위기가
짙게 깔린 장면이다. 박희봉 선생께서는 잘 안씼어서 가려운 거라고 했지만,
이것 또한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며, 바이러스로 인해 생겼다고 의심되는 가려운 부분을
심하게 긁은 뒤, 그 긁은 손으로(맨손으로) 골뱅이를 꺼내먹는 장면은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매점에서 나오면서 굳이 골뱅이를 들고 나온점,
골뱅이의 모습이 괴물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 무엇보다 상당히 골뱅이를 먹는
강두에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는 점등을 통해 강두가 괴물의 피에 노출되면서
괴물의 새로운 숙주(HOST)가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과자나 다른 먹을거리가 아닌
왠지 괴물이 좋아할듯한 골뱅이에 손길이 간 것은 아닐까.
아니면 괴물에 피해 노출되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바이러스의 원 소스의 습성(식성)이
전이된 것은 아닐까.



이후 괴물과의 1:1대결에 앞서서는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바로 뛰어내린뒤에
(분명 수영을 못했었는데)멀쩡하게 수영을 해 빠져나와 총격중이던 경찰을 어깨차징으로 제압하고
이후 괴물과의 1:1대결에서도 역시 허름한 쇠봉하나로 괴물의 입속 중앙을 정확히 겨냥하여
약간 뒤로 밀림만 있었을뿐, 손에 동그란 자국만 남았을 정도로 거의 자신은 밀리지 않고
괴물에게 정확히 타격을 입힘으로서 괴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옐로우 (뭐였더라..)를 살포했을때 분명 경찰을 비롯한 시위대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는데도 강두를 비롯한 강두 가족들은 멀쩡함을 넘어서 괴물과 겨룰정도로
집중력이 높은 상태였다는 점 등도 의문점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의문점들을 종합해볼때 미국의 조사팀은 분명 강두에게서 비범한 바이러스를 검출했으나
미정부가 자주 그러듯 이를 은폐하기 위해 세상에는 바이러스에 위험성을 알린뒤
결국에는 옐로우 모시기로 제압가능한 것으로, 결국 제압해 사건이 종료되는것으로
마무리하여 세상에 관심에서 벗어나게 만든 뒤, 강두에게 뇌에 심어놓았던
위치추적 장치를 가동시켜, 세상에 관심에서 멀어진 강두를 잡아다가 결국 괴생명체를
연구하는 숙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괴물 1편이 사실이 은폐된 강두 주연의 슈퍼 히어로물이었다면
2편이 나온다면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강두가 숙주로서의 역할로 리플리나 스피시즈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심오한 영화가 나오진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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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웃자고 하는 완죤 공상허무픽션임.
여튼 난 이전에는 술집에가서 소주를 마셔도 골뱅이 안주는 절대 시킨적이 없는데
영화 관람뒤 두 번이나 술집도 아닌 집에서 골뱅이를 만들어 먹었다 --;
 
p.s. / 1. 첫번째 봤을때 이동통신사 직원 형님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고만했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었는데, <남극일기>서플에서 보았던 임필성 감독이었다.
 
2. 아이맥스의 꽉찬 화면도 좋았지만 메박 1관의 디지털 화면도 역시 좋았다.
3번째 관람은 일반 필름이나 cgv에 디지털이 될듯.


괴물 (The Host)

몇년전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난 뒤 바로 들었던 생각은, 아니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영화가 재밌다 보다도 (물론 재밌지만), 완성도가 정말 높구나 하는 것이였다.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에데가 긴박함을 시종일관 유지시키는 리듬감, 감칠맛 나는 대사,

현실적인 캐릭터와 배경, 봉테일이라고 불릴만큼 엄청난 디테일 등은 봉준호 감독의 다음 작품을 몹시도 기다리게 했다.

아마도 <살인의 추억>이 개봉관에서 내린뒤 모 잡지에 난 인터뷰에서 다음 작품은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것 같다 고 했던 것에서부터, 이 영화 '괴물'에 대한 기대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특징이 매우 잘 나타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포와 스릴러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특유의 리듬감.

공포영화들의 기존 법칙과는 다르게 <괴물>은 초반에 공포에 대상이 완전히 드러나고

사실상 시작하자마자 사건이 터져 끝날때까지 잠시 숨돌릴틈만 주고 몰아치는 스타일이다.

이런 전개에 적절한 리듬감을 준것은 역시 특유의 유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유머는 상황설정의 아이러니와 대사의 맛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나리오를 직접 작업하기도한 봉감독의 대사와 이 멋진 대사를 더 멋지게 살려내는

배우들의 조화는 그야말로 탁월한 수준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조금 느낄 수 있었지만, <괴물>에서는 권력(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특히 미국(미군)의 권력)에 대한 풍자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감독의 의도로만 따진다면 극중 가족들이 괴물에게 갖는 분노와 맘먹을 정도로

감독이 권력에 대해 갖는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인 풍자의 설정들이 가득하다.

국민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미군이 관련된 상황에서는 아무런 조사, 결정권도

없다는것이나, 주인공 박강두의 인권은 무시한채 사건을 은폐시기고 희생양을 삼아

사건을 매듭지어버리려는 시도는 물론, 다 재쳐두고라도 괴물의 탄생 자체가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린것에서 원인했다는 기본 설정만 하더라도

상당히 공격적인 바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 풍자와는 조금 별개지만, 합동분향소에서

그 와중에도 차빼달라고 소리쳐 사람을 찾는 경비원에게서,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풍자를 엿볼 수 있었다)




디테일에 있어서는 한국영화 계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봉테일, 봉준호 감독.

<괴물>의 표면적인 주인공인 '괴물'의 디테일을 완성시키기 위해(한국영화라는 태초의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쉽게 말해 어설프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웨타워크숍에 괴물 디자인을 맡겼고, 미국의 오퍼니지 스튜디오에 전체적인 CG를 맡겨

스크린에 괴물이 단지 영화속에 괴물로만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디테일을 완성하였다.

특히 다리 아래를 체조하듯 이동하는 괴물의 멋진 움직임은

약간 과장된 몸짓임에도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았으며, 특히 인물들과 괴물이 겹치는 부분에서

정확히 괴물과 인물들간에 접촉이 있는 장면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말은 CG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것만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배우들도 가상의 캐릭터와 연기하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했던것보다 괴물의 실체가 상당히 많은 시간 노출된데에는, 괴물의 퀄리티에

상당한 자신감이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였을터. 괴물의 디테일은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헐리웃 영화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이라는 공포스런 존재로 시선을 끌긴 했지만, 사실상 영화 <괴물>은 가족영화이다.

가족들간의 유대감이 부족하고 구성원들 개개인들도 특별히 유별날 것이 없는 한 가족이,

딸이 괴물에게 잡혀가면서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되고(합동 장례식 장에서 박희봉 왈 '현서야,

너 때문에 우리가 다 한자리에 모였다'라고 했을 정도로), 이후 또 한번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동안 서로를 믿지 못했던 가족이 서로를 조금 더 신뢰하게 된다. 특히 아버지와 딸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하며 순간순간 감동마저 불러일으킨다.

혹자는 결국 현서가 죽음에 이르고 현서와 함께 있던 남자아이는 살아나며, 별볼일 없던

박강두가 괴물과 1:1로 맞설정도로 초인적인 캐릭터로 변한 것에 대해 오바라고 하기도 하지만,

현서가 아닌 현서가 구하려던 남자아이가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구하려던 현서가 살아남은것

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영화내내 함께 느꼈던 가족의 분노가

그들을 용사로 만들었던것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장된 것은 아니였다.

(개인적으로는 박강두든지 아니면 박남일이라도 마지막 장면에 괴물에 면상에 대고 욕지껄이라도

한번 해주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기대하기도 했었다.

마치 <에일리언 2>에서 리플리가 에일리언에게 덤빌테면 덤벼봐라고 멋지게 말했던것처럼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봉감독의 디테일만큼이나 섬세했다. 송강호는 약간은 모자란 박강두 역할을 맡아

딸을 잃고 모든 것을 괴물을 찾는데 쏟다가 권력에 의해 고통받기까지 하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특히 병원에 갖혀있을때 미국인 의사가 노 바이러스 하는 것을

알아듣고 '바이러스 없구나'할때의 그 특유의 억양은 송강호만이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대사였다고 생각된다. 변희봉은 <살인의 추억>에서는 이렇다할 포스를 펼치지 못했던것과는 달리

<괴물>에서는 러닝타임내내 가족을 리드하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변희봉 역시 대사를 치는데

있어서는 연기경력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경지에 오른 수준을 보여준다.

박해일이 맡은 박남일은 후반으로 갈 수록 빛을 발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운동권 시절에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후반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배두나가 맡은 박남주 역할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비중이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괴물을 똑바로 쳐다보고 활을 날린 뒤

쳐다보지 않고 돌아서는 장면에서의 포스는, 국내 여배우에게 저런 아우라를 풍길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현서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고아성은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로서, 특히 괴물과 대치하는 대부분의 긴장되는 상황에 등장하면서 단순 아역이

아니라 당당하 주, 조연 배우급의 활약을 펼쳤다 (극중 캐릭터들의 이름을 잘 보면 알겠지만

배두나가 맡은 '박남주'를 제외하면 모두 실제 배우와 캐릭터간의 이름이 한글자 이상씩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살인의 추억>에 출연했던 김뢰하, 박노식 등도 잠깐씩 만나볼 수 있으며,

<남극일기>에서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 윤제문도 매우 중요한 결정적 캐릭터를 맡았다.

그리고 이미 여러번 화제가 되었던것처럼 오달수는 괴물의 목소리 더빙을 맡기도 했다.




<괴물>은 여러가지 면에서 최고라 불릴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극장을 나오면서 바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동안 멍해질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이미 2번째 얘매는 마친 상태. 최소 2번은 더 볼듯하다. 벌써부터 DVD가 기다려지는건

봉준호 감독작품이라 아무래도 더한것 같다.


 
글 / ashitaka

p.s / 1. 영화 초반 뉴스 장면에서 앵커를 맡은 최일구 앵커는 너무 유명해서 제쳐두고 라도,

           현장에 기자로 나왔던 김원장 기자까지 실제 기자를 쓴 것을 눈치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 김원장 기자는 KBS기자로서 뉴스나 라디오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던지라

           제법 반가웠는데 MBC앵커에 KBS기자라니 이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2. 오프닝 크래딧에 음악 이병우 라고 나왔을때, 사실 조금 어울리지 않을 듯해 우려섞인

            걱정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런 영화음악이 나왔다.

            이병우는 이제 기타리스트 보다는 먼저 영화음악가가 더 우선적으로 호명되어야

            할 것 같다.


         3. 이제 원효대교 밑을 비롯해 한강둔치는 다리 아래들은 관광명소가 될듯.


         4. 극장을 나올땐 더 많은 p.s가 생각났었는데 지금은 졸려서 그런지 생각이 잘...

           몇번 더 관람뒤 제 정리해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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