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상처 뿐인 회식을 통해 많은 것을 잃었다. 한 편으론 참 재밌다. 아니 우습다가 더 가까운 말이겠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아직도 술을 많이 마시고 이것저것 잃어버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못하는 내 자신이 말이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이젠 정말 나를 100% 믿지 못하겠다. 뭐 여러가지 다른 요인들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쨋든 무슨 상황에서든 나는 믿을 수 있었던 내가 더이상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꼭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는 특수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하긴 돌이켜보면 요 며칠, 너무 정리된 것 없이 정신없이 그냥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달리는 것은 제대로 했느냐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어쨋든 잘 되었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런 상실감은 분명 다시 정리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것들에 대해서 한 번씩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혹은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채우는 것을 따져보면서 무엇이 진짜 필요한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아무런 계기나 사건 없이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더욱 좋으련만, 인간이란 동물은 그게 잘 안된다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동물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계기를 발판 삼아 더 나아가지 않으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미였지만, 언제부턴가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소 잃고도 그냥 허탈함과 게으름에 허성세월하다가 외양간을 고치기 전에 다시 또 다른 소를 잃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자, 이제 소를 잃었으니 외양간을 열심히 고치자.


p.s - 어쨋든 오랜 시간 정들고 의미있는 지갑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더불어 고등학교때 사진으로 만들었던 주민등록증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구나. 그 사진은 딱 민증에 있는 것 하나 뿐이어서 더욱 아쉬움.



2010.05.23. pm.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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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Z - Get Real
Soul을 아는 싱어송 라이터


선입견이라는 것은 항상 무섭다. 무언가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않은채 마음대로 결론지어 버리기 때문이다. 처음 Deez의 앨범을 건네 받았을 때도 그랬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R&B를 (특히 정통이라는 문구) 담아냈다고 하는 국내 뮤지션들의 앨범을 들어보면, 진짜 Soul이 살아있는 R&B 라기 보다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가요 풍의 노래에 살짝 분위기만 낸 정도의 앨범이 많았다는 선입견이 작용했었다. 그렇게 들어보게 된 Deez의 앨범 'Get Real'은 'Intro' 트랙부터 '어라? 이거 분위기가 좀 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Soul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매우 세련된 R&B 뮤지션이자 싱어송 라이터인 Deez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은 2가지에 놀랐는데, 첫 번째는 앨범의 퀄리티 - 본토의 블랙뮤직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질감 - 가 상당한 수준으로 느껴졌다는 것과 보컬 만이 아니라 혼자 작사와 작곡은 물론 앨범의 프로듀서까지 맡고 있다는 점이었다. Deez를 수식하는 홍보 문구 가운데 단연 맨 앞에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비의 작곡가'라는 점이었는데, 뭐 대중들에게 어필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은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싱어송 라이터라는 점을 좀 더 부각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Soul Tree'를 듣는 순간 '와, 이 앨범 꼭 끝까지 정독, 아니 제대로 들어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컬의 느낌도 물론 좋지만 그것 보다도 전체적인 어레인지나 흑인음악 특유의 그루브와 익숙한 올드한 악기들의 사용이 전체적으로 곡의 퀄리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코러스 라인도 아주 맛깔나고 그 안에서 보컬도 화려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삽입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깔끔한 곡 진행이 돋보인다. 




타이틀 곡이라 할 수 있는 4번째 수록곡 'Sugar'는 제목 처럼 아주 달콤한 미디엄 템포의 곡이다. 사실 국내 정서에 비교적 잘 어울리는, 발라드에 가까운 슬로우 템포의 곡들보다 이 곡처럼 미디엄 템포의 곡들이, 실제 흑인음악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곡들이긴 하지만, 그만큼 국내에서는 제대로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Sugar'는 Maxwell이나 Musiq Soulchild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끈적하면서도 깔끔한 곡이다. 이 곡에서는 보컬과 코러스라인을 주목해서 들을 필요가 있는데, 라인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설계되어 있어 신경 써서 들을 수면 들을 수록 퀄리티가 느껴진다. 'Skit'같은 경우도 어설프게 해외 뮤지션의 그것을 따라하려는 것이 아니라 Skit의 성격을 잘 이해한 Deez만의 'Skit'을 제대로 표현한 흥미로운 곡이다 (2:48초나 됨으로 곡이라고 해도 되겠다).

'Devil's Candy', '나의 빛', '너 하나면 돼'는 지난 해 발표했던 본인의 앨범 'Envy Me'에 수록되었던 곡들을 2010 리마스터 버전으로 다시 수록했는데, 3곡 모두 지난 앨범에 수록된 버전과 곡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지는 않고 리마스터링에만 차이가 있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뭐 겨우 1년 전이니까 오버하기는 뭐하지만, 어쨋든 그 만큼 지난해 발표한 그의 곡들의 퀄리티가 괜찮았다는 것도 되겠다.




'너 하나면 돼' 같은 곡을 듣고 있노라면 한 편으론 참 평범하고 대중적인 곡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앞서 자주 얘기했던 코러스 라인과 보컬의 퀄리티가 좋다보니 평범한 진행 속에서도 퀄리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보컬 만이 아닌 프로듀서 답게 앨범 곳곳에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삽입하였는데, 'Interlude - 8 Bit'같은 곡은 얼마전 세상을 떠난 Nujabes를 살짝 연상시키는 동시에 Deez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 세계를 좀 더 깊이 엿볼 수 있다. 'Intro'나 중간 삽입곡들에 비해 'Outro - Free'는 조금 'Outro'스럽지 않았다는 것이 살짝 아쉬운 점. 오히려 인스트루멘탈 곡으로 채웠다면 좀 더 깔끔한 '앨범'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앨범을 듣고 하나 아쉬운 점은 이제 겨우 괜찮은 Soul 뮤지션을 알게 되었는데, Deez가 이 앨범을 내고 바로 군입대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앨범이 만족스러워 앞으로의 활동 등을 찾아보려고 했던 참이었는데, 어쨋든 한동안은 활동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었다. 국내에는 수 많은 뮤지션들이 '정통 R&B' '정통 흑인음악'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홍보를 한다. 그 중에서 진짜 제대로 된 뮤지션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Deez는 그 가운데 추천할 만한 진짜 R&B/Soul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기이한 그 남자의 대표작 '하녀'


지난해 감상했던 박스세트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와 소장가치가 높았던 작품을 꼽자면,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4장의 디스크로 출시되었던 '김기영 컬렉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뷰를 하기 위해 타이틀을 봐야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리뷰 목적을 제외하더라도 '고려장 (1963)' '충녀 (1972)' '육체의 약속 (1975)' '이어도 (1977)'가 수록되었던 컬렉션은 시대를 앞서갔던 걸작들을 우수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었으며, 영화감독 봉준호, 김대승, 오승욱과 영화평론가 정성일, 이연호, 김영진씨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이 위대한 영화들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음은 물론, 故 김기영 감독과 관련한 인터뷰 영상들은 그의 작품을 통한 모습과 작품 외적인 '인간 김기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컬렉션이었다.




(‘하녀’의 오프닝은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기이하다. 두 아역배우가 실뜨기를 하는 것을 배경으로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 영화에나 나올법한 폰트로 써내려 가는 크래딧과 관객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는 음악은, 지금 봐도 너무나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다)

이렇게 소장가치 충만한 컬렉션에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바로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하녀 (1960)'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시 리뷰에도 이런 아쉬움과 더불어 곧 출시된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있는데, 본래 지난해 말 출시 예정이었던 점을 감안하자면 생각보다는 더 오래 지속된 기다림이었다. 지난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하녀'에 대한 이슈가 커지게 된 데에는 곧 DVD가 출시될 예정이라는 것 소식 때문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칸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KOFA (Korean Film Archive)의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을 통해 디지털로 새롭게 복원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하녀'의 복원작업에는 2007년 설립된 세계영화재단 (World Cinema Foundation, 이하 WCF)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마틴 스콜세지가 수장으로 있는 이 국제영화단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세계의 영화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을 지원하는 단체로서 그 지원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였다. 이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한국영상자료원 측에서 WCF에 공동복원 작업을 제안하였고, 김기영 감독의 팬으로 알려진 마틴 스콜세지가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져 최종 복원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까지 WCF에서 복원을 지원한 작품으로는 Metin Erksan의 1964년작 'Dry Summer'(터키)와 Djibril Diop Mambety의 1973년작 'Touki Bouki' (세네갈) 그리고 Ahamed El Maanouni의 1981년작 'Transes'(모로코)가 있으며 WCF의 홈페이지 (http://www.theauteurs.com)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WCF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하녀 복원작)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작품이기도 한데, 작품성 이외에도 '하녀'를 대표작으로 많이들 꼽는 이유는 이후 이 작품이 김기영 본인에 의해 여러 차례나 리메이크 되기 때문이다. 1971년 작 '화녀'를 시작으로 '화녀'를 리메이크한 1982년 작 '화녀' 82'까지. 이 밖에도 그의 이후 작품 들에서 역시 직간접 적으로 '하녀'의 기본 설정과 메시지에 기반한 동의 반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근본이 되는 '하녀'를 대표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하녀'를 접하기 이전에 '화녀'나 '충녀'를 접한 입장 에서는 이 작품들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나 캐릭터의 설정, 공간의 설정, 미술적인 요소들이 거의 대부분 '하녀'에 기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 늦게 알아차리고는 이 작품 '하녀'가 더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이 영화는 굉장히 컷과 컷의 전환이 빠르고 내러티브의 전개 역시 재빠르게 이뤄지는 편인데, 기차가 가는 장면이나 거리를 걷는 짧은 장면을 삽입 함으로서 이런 빠른 컷의 전환을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재주는 참으로 탁월하다)

영화의 기본 구조는 이제 막 도시 하층민 생활을 벗어나 중산층에 접어든 한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직공들로 이뤄진 합창단 활동에 선생 역할을 하고 있는 남자(김진규), 그리고 가정에서 열심히 재봉 일을 하며 가정에 충실 한 아내(주증녀), 그리고 두 자녀로 이뤄진 이 가정에 어느 날 하녀(이은심)가 들어오게 되면서 이 지옥 같은 이야기는 조금씩 전개된다. 이런 구조로 되어있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역시 표면적으로 보았을 땐 집에 들이게 된 하녀가 모든 것을 망쳐놓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미 갖고 있던 뇌관을 건드린 것으로 더 옳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하녀'는 굉장히 직접적인 편이다. 극중 하녀가 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도 분명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시작부터 몇몇 장면들을 통해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샷 속 남자아이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 ‘안성기’씨가 맞는데, 정말 연기신동이라 불릴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웃는 얼굴에서는 지금의 안성기의 얼굴을 발견할 수도 있는데, 그 표정 연기 하나는 아역임을 생각지 않더라도 정말 대단한 연기를 선보인다. 애순이 역할로 출연한 이유리 씨의 그 기이한 표정 연기 역시 잊혀지질 않는다)

이 가족의 딸은 다리가 불편한 것으로 설정이 되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과 대사는 이런 내재된 불안감을 잘 드러낸다. 동생이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놀리는 장면을 보고는 안타까워 말리려는 경희(엄앵란)를 막아서며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발에 온 마비를 풀려면 운동을 해야 돼'.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자신의 딸을 위해주며 나아지기 위해 하는 말 같지만 달리 보면 상당히 가학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남자의 시선은 이후 다람쥐를 사다 주면서 또 한 번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를 딸에게 설명해주며 은유적으로 딸 역시 어서 다리가 낳기 위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더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하는 이 대사에서는, 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남자, 더 나아가 이 가정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 남자는 겉으로는 딸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다리가 낫길 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이제 막 중산층이 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절름발이 딸이 못내 마땅치 않아 어서 낫기를 바라는 시선이 더 깊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의 테마는 이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될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다. 이제 막 들어선 중산층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맹목적으로 재봉 질에 몰두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서우리만큼 섬뜩하며, 또한 일하는 여성 앞에서 작아지는 남성상에 묘사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산층으로서의 생존의 테마는 이 작품을 둘러싼 동시대적 깊은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맨 처음 허름한 단칸방, 그러니까 이 영화에 중요한 소품인 피아노와 재봉틀이 같은 방에 존재하는 집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얼마지 않아 2층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된다. 이렇듯 이 가정은 이제 막 하층민을 벗어나 중산층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시는 하층민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욕망이 매우 강한 편, 아니 집착에 가까운 편이다. 다람쥐 같은 경우 앞서 언급한 딸과의 에피소드에 매우 중요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중산층에 또 다른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TV를 들여다 놓은 장면은 아주 직접적인 중산층 가정의 상징적 요소다.




(하녀 역할을 맡은 이은심 씨의 등장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담배는, 말로 설명하는 것 이상의 캐릭터 설명을 가능케 한다. 담배와 뿜어내는 연기는 이 작품 곳곳에서 의미 깊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후 어쩌면 하녀보다도 더 무섭게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 역시 다시는 하층민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욕망과 집착, 그리고 내적으로는 어떤 곪은 상처가 있어도 대외적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숨기고만 싶은 이들의 욕망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특별한 한 가족과 제한된 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별한 하나의 개별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6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했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 아니면 식모 밖에는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문제(신분, 계급이 관련된)를 직접적으로 때론 은유적으로 표현한 동시대적 텍스트의 경향이 상당히 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커스 인 했을 때는 물론 자신에게서 포커스가 아웃 되었을 때에도 주목하게 만드는 이은심의 연기와 김기영 감독의 연출은 놀랍기만 하다)

이 영화는 그 영화보다 복선이 상당히 짙고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초반 장면 설정이 후반 부에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나하나 반복되는 짝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흥미거리다. 김기영 영화에서 이후 빈번하게 등장하는 쥐 같은 경우, 이 작품에서 거의 처음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쥐와 쥐약을 각 캐릭터가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이와 관련된 대사들에서 이와 같은 복선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쥐를 잡기 위해 찬장에 둔 쥐약을 두고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또 자식들이 서로 나누는 대사들은 너무 직접적이라 소름마저 돋을 정도다. '너희들, 이 쥐약은 조심해. 이걸 먹으면 죽어' '이거 사람도 죽어?' '응, 독약이거든'. 식사할 요리를 앞에 두고 한 손엔 쥐약을 들고 벌이는 이 대사들은 마치 앞으로 이 가족이 겪을 지옥 같은 일들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렇게 스스로들에게 그 위험성과 주의 성을 당부하지만 결국은 호기심과 유혹에 빠져 내재되었던 불안감에 잠식되고 마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이다.




(쥐약은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무기이자 독약이자, 탈출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쥐약에 대한 캐릭터들의 대사와 반응을 통해 이들의 권력구조와 그 이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전 '충녀'를 리뷰 하면서 극중 등장하는 '계단'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하녀'를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계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계단 자체가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이 계단이라는 장소는 이 영화의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며, 신분상승과 몰락이 모두 존재하며 내용적뿐만 아니라 컷의 연출에 있어서도 아주 다양한 작용을 하는, 김기영 작품의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계단은 기본적으로는 1층과 2층을 나누는 (혹은 연결하는) 의미는 물론, 캐릭터에서 캐릭터로 권력에 이동에 따라 이를 영화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능은 물론, 그로테스크함을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논하면서 '그로테스크'라는 말이 이제서야 등장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한 '쾌거'가 아닐 수 없겠다 ^^;) 더욱 극대화시키는 조명과 카메라 앵글의 조력자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인 다리에 매달려 머리를 찧으며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장면을 가능케 한 장소이기도 하다. 아마도 전세계 영화들 가운데 이렇게 계단과 이를 오르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도 없을 것이라는 김영진 평론가의 말처럼, '하녀'에서 계단이 갖는 의미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절대적이 아닐 수 없겠다.





(아…계단. 계단이 없는 ‘하녀’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계단 그 자체이며, 인물들이 계단에서 벌이는 장면 장면은 그것이 계단에서 이뤄졌기에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하녀'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들만이 등장하는 영화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2층집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는 없다. 이 가운데 계단만큼이나 인상적인 공간적 구조물이 있다면 바로 '미닫이 문'을 들 수 있겠다. 이 2층 집에는 유난히 미닫이 문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미닫이 문은 영화 속에서 아주 여러 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녀는 가족들을 믿지 못해, 가족들은 하녀를 믿지 못해 서로를 엿보고 엿듣는 방패막이로 사용되기도 하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타인을 잠시나마 격리 시킬 수 있는 차단의 도구로도 사용되며, 각 캐릭터만의 공간을 가능케 해주는 경계의 의미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적인 역할 외에 컷과 컷을 나누는 영화적 도구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유난히 빠른 컷의 전환과 내러티브의 전환이 빠른 이 영화에서 미닫이 문을 열고 닫는 설정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마치 귀신이 사라지듯 미닫이 문 뒤로 서서히 뒷걸음쳐 퇴장하는 장면이나, 앵글 저 뒤편으로 무시무시한 하녀를 남겨둔 채 미닫이 문이 닫히며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후퇴하는 장면 등은 여느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연출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에서 미닫이 문을 열고 닫는 행위는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서로의 영역과 영역을 넘나드는 것(=침범하는 것)과 반대로 침입 세력을 떨쳐내는 행위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스크린 샷은 이 영화의 카메라 앵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계단과 미닫이 문, 중요 캐릭터들의 관계가 모두 녹아있는 훌륭한 샷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가 공간의 영화라는 점은 1층과 2층이라는 구조, 그리고 1층의 세계와 2층의 세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점, 그리고 2층 가운데서도 하녀가 머무는 왼편의 작은 방과 피아노 레슨이 이뤄지는 오른편의 방의 존재와 이를 그리는 연출 방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의 공간(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이뤄진 일들을 문 밖에서 바라보던 하녀가 남자를 협박해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가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수평 트랙킹은 이 공간의 이동을 직감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며 결국 남자가 하녀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점차 권력구조가 하녀에게로 이동하는, 그래서 나중에는 하녀가 남자의 공간마저 지배하게 되는 흐름의 전개를 가능케 하고 있다.




(수직적 카메라 트랙킹이 많이 사용된 것과는 달리 이 장면에서는 수평적인 트랙킹이 사용되었는데, 남자의 공간에서 하녀의 공간으로, 남자에게서 하녀에게로 권력이 옮겨가는 과정과 그 거리감을 수평 트랙킹을 통해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동선은 정말 예술이다)

김기영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공간의 미학을 여럿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중 백미는 역시 이 작품 '하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쥐와 쥐약이 등장하는 부엌이라는 공간, 오로지 생존과 중산층으로서의 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아내와 재봉틀이 있는 공간,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이라는 공간, 그리고 피아노가 놓여진 남자의 공간과 병원 침대 같은 초라한 침대만이 있는 하녀의 공간. 이렇게 공간 자체가 캐릭터를 설명하는 동시에 메시지가 되는 김기영만의 공간 연출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공간을 하녀가 끊임없이 침입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공간의 이해는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걸작이라 불리 우는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와!'하는 외마디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녀'를 보면서는 거의 매 장면 매 대사마다 이런 탄성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특히 '어떻게 저런 대사가', '아니,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는 의아함에 가까운 경이와 함께 그로테스크함을 견디지 못해 나오는 뒤늦은 탄성들도 여러 차례 내뱉게 되었다. 그야말로 압권의 연속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하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무슨 시구를 외우듯 가슴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포스의 냉소적이고 가학적이고 소름 돋을 정도의 직접적 대사들이 넘쳐났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아주 무서운 공포 영화의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처럼 이 영화의 어떤 대사를 들었을 때 몸이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얼어 붙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대사만으로도 관객을 얼어 붙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한 두 대사가 아니라 거의 모든 대사가 이렇다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대사만큼이나 압도적인 건 바로 '하녀'를 연기한 이은심 씨의 연기다. 김기영 감독 작품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종종 그랬지만, 당췌 당대의 한국여성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질적인 마스크를 갖고 있는 이은심의 마스크와 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기이한 표정들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어느 한국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캐릭터와 연기가 아닐까 싶다. 김기영 감독의 기이한 연출과 연기 디렉팅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이은심의 손짓, 발짓, 표정 하나하나는 정말 너무 영화적이라 예술적이다. 포커스 밖에 있어도 주목하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는 물론, 화면 가득 얼굴을 담았을 때 마치 극중 남자(김진규)의 경우처럼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함과 그로테스크함은 분명 독보적이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에 이후 이렇다 할 연기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로, '하녀'에서 이은심의 연기는 역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라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결코 1960년대 한국여성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개성 강한 마스크와 시대를 앞서 가도 너무 앞서간 환상의 연기는 지금 봐도 정말 무서울 정도로 영향력이 느껴진다. 그녀가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될 때는 나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로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와 눈빛이 이끌어내는 에너지는 실로 대단했다)

하녀 역할을 맡은 이은심 씨의 연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아내 역할을 맡은 주증녀 씨의 연기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였다. 코멘터리에 참여한 김영진 평론가에 표현을 빌리자면 '또 하나의 괴물' 이 되어가는 캐릭터를 연기한 주증녀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여배우와 김진규 씨 외에 두 자녀 역할을 맡은 아역 연기자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잘 알다시피 남자아이는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중견배우인 안성기인데, 개인적으로는 안성기 씨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소름 돋는 연기였다(그는 국민 배우가 아니라 국민 신동이었던, 이었던, 것이었다). 그 웃음에서는 아이에 얼굴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냉소가 듬뿍 느껴졌으며 어깨를 들썩일 때는 지금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누군가 안성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작품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하녀'를 꼽겠다. 딸인 '애순'역할을 맡은 이유리씨 역시 아역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은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표정과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굉장히 섹슈얼리티 적인 표현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 위의 스크린 샷도 그 중 하나다. 다리를 희한하게 감는 장면이나, 키스 씬에서 머리카락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가려버리는 것이나, 깍지를 끼는 등의 표현 등은 매우 은유적이지만 그 어느 직접적인 장면들보다도 기이한 섹슈얼리티가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복원된 화질로 만나는 '하녀'

이번 '하녀' DVD 출시가 기다려졌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복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정도 일 텐데, DVD에 포함된 책자의 내용을 빌려보자면 이번 '하녀' 복원의 경우는 다른 복원작업에 비해서도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최초 자료 원에 수집된 원본 네가 필름은 총 10권 중 두 권(약 20분 분량)이 없는 불완전 분이었고, 이를 채우기 위해 자료원에서 보유 중이던 영문자막 프린트 필름에서 네가를 복원하다 보니, 기존 디지털복원 작업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본 네가필름이 유실되어 화면의 톤이 다른 장면의 예. 완벽하게 복원된 장면에 비하자면 뭉개지는 듯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지만, 원본 유실로 인한 복원 임을 감안한다면 평균 이상으로 복원된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녀'의 경우 이 영어자막이 심하게는 화면의 1/3에서 절반 정도를 세 줄짜리 자막이 뒤덮는 경우도 있었으며 프레임 별로 미세하게 깨진 부분도 있어 감상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자막 제거 작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먼지, 스크래치 제거와는 좀 다른, 훨씬 복잡한 작업이라고 하는데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라 연구 끝에 자막복원솔루션 'MJW 1.0'을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자막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우 화질이 원본 네가 필름을 사용한 것보다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도 품질이라면 (그리고 이 정도 노력의 성과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DVD Menu



DVD Quality


이런 작품에 화질 음질을 따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느냐 만은, 이번 타이틀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라 바로 '복원'이었음으로, 이를 감안하여 평가하자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만족할만한 수준의 화질과 음질로 재탄생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화질의 경우 서플먼트에 수록된 복원 전과 후 비교 영상을 보면 확연히 할 수 있는데, 고전 영화 필름들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른바 '비가 내리는' 현상이 말끔히 복원되었으며, 흑백영화 특유의 색감과 질감도 거의 다 살려내었다. 특히 강렬한 콘트라스트비도 그대로 살려냈으며 암부의 표현력도 기존 필름에 담긴 정보를 거의 다 되살려낸 셈이다.




(담배 연기의 표현 같은 부분은 확실히 흑백이어서 더 질감이 잘 살아나는 듯 하다)

이 타이틀의 화면 비 표기를 보면 '1.53:1 애너모픽'이라고 되어 있는데, 화면 좌우에 조금씩 블랙 바가 생기는 화면 비이다. 이전 월트디즈니의 고전 '피노키오' 블루레이의 복원된 영상을 보고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화녀' DVD의 복원 수준 역시 원본 필름의 보존상태와 그 과정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최대한의 결과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음질 역시 최대한 원본 훼손이 없는 상태로 복원하려다 보니 약간의 노이즈가 남긴 했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전혀 아니며, 그 이외의 부작용이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Special Feature


깔끔한 디지팩 패키지로 출시된 이번 DVD타이틀의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또 다른 요소는 봉준호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서플먼트 때문인데, 지난 '김기영 컬렉션' DVD에서 '충녀'의 음성해설을 맡았던 봉준호, 김영진 콤비는 '하녀'에서 다시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역시나 내용적으로나 재미 측면이나 놓칠 수 없는 코멘터리가 되겠다. 두 사람 모두 김기영 감독의 팬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관련 지식들을 알고 있는 터라 다양한 부가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한편, 장면 장면과 캐릭터들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평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 자신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 때문에 '저런 장면은 어떻게 찍으셨을까' '저런 건 어떻게 하신걸까'하며 부러워 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코멘터리 외에 복원된 영상을 직접적으로 비교 체험할 수 있는 '복원전후 영상' 이 담겨있는데, 복원 전 영상과 복원 후의 영상, 그리고 두 영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화질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부가영상을 수록했다는 것만 봐도 한국영상자료원 측이 이번 타이틀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 밖에 이미지 자료모음이 수록되었으며, 자막은 한국어 자막 외에 한국문학번역원이 감수한 일어와 영어 자막이 수록되었으며, 세계영화재단에서 제공한 불어자막 또한 지원된다.





[총평] 故 김기영 감독은 분명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왜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오승욱, 김대승 감독 등이 존경해 마지 않은 감독으로 그를 꼽는지 절로 알게 되며, '이 영화가 정녕 그 예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란 말인가'라는 의문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처음 시작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작품 '하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1960년대 작이라는 점과 원본 필름의 보관상태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만족할만한 훌륭한 퀄리티로 복원된 이번 DVD타이틀은, 그의 팬들은 물론 김기영 이라는 감독의 작품에 대해 마냥 궁금증만 갖고 있던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09.07.30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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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김기영 컬렉션> / 시대를 앞서간 한 영화 감독의 작품 세계









시 (Poetry, 2010)
시가 죽어버린 시대, 다시 시를 쓰다


주인공 '미자 (윤정희)'는 경기도 소도시에서 이혼한 딸이 남긴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많은 나이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거동이 불편한 회장님 (김희라)의 수발을 드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는 평범한 할머니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직도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추구하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런 미자에게 어느 날 얘기치 않은 세속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영화는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는 미자에게 더욱 주목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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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하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시인의 대답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대답 속에도 있듯 시라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자체는 무어라 정답지을 수 없을 터. 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이런 미자에게 며칠 전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의 죽음이, 자신의 손자의 성폭행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현실을 풀어놓는다. 사실 미자는 이 상황을 그리고 이 상황을 대처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완벽한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이 이야기를 조용히 마무리하려 한다. 가해자의 부모들 뿐 아니라 학교 측, 언론,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합의금을 받을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의 부모까지. 이들에게 미자가 알고 있었던 도덕적인 가치는 거세되고 없다. 하지만 미자는 투사가 아니라 그저 힘없는 노인일 뿐이다. 합의금 500만원을 만들기 어려워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 같은 같은 가해자 아버지 (안내상)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쉽게 들어줄리 없다.

그런데 이창동의 '시'는 이런 도덕이 거세된 세계를 현실로 등장시키면서도 이들의 모습을 더 극적으로, 악한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안내상이 연기한 가해자의 부모 같은 경우만 봐도 사람이 나빠보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극중 미자가 처음 본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될 정도로 사람 좋은 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묘사 방식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자와 상반되어 더 큰 쓰라림을 준다. 도덕적인 헤이가 너무 당연해진 세상. 그러니까 꼭 악당이라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도덕적 헤이가 익숙해진 세상이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런 순리 아닌 순리에 익숙해져 버린 세상을 그림으로서,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하는 돌이킬 수 없을 듯한 쓰라림과 회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주인공의 정의의 투사가 되어 이런 세상을 계몽하려 드는 것보다, 이렇게 자신도 힘없이 휩쓸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더 무섭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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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결국 오백만원의 합의금을 만들기 위해 본인의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야 만다. 그런데 회장님 (김희라)에게 돈을 받기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백만원을 달라는 말을 굳이 노트에 적어서 보여준 이유는 단순히 주변에 가족들이 있어서, 이들의 귀를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등장하는 노트의 클로즈업 장면을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감독은 오백만원만 달라는 이 메시지를 이전 미자가 어렵게 작성했던 시 한줄을 보여주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며 시를 쓸 때는 그렇게 한 줄 한 줄이 어렵던 것이,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너무도 쉽게 써지는 모습을 볼 때, 또 한 번 쓰라림을 겪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미자는 스스로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사건이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을 용기도 없고, 시를 좋아한답시고 모였지만 사실은 미자처럼 시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벼운 마음, 또 하나의 유흥으로 여기고 모인 이들 사이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에 적당히 물들어야만 '좋은게 좋은' 이 세상을 미자는 견딜 용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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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자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를 쓴다. 시를 쓰고자 마음 먹은 이후부터 계속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울림을 찾으려 했던 미자의 마지막 시는 결국, 자신의 손자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중생에 대한 미안함을 담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는 곧 그 여중생의 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영화 속 미자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서 기억을 잃게 되는 것 또한 쓰라린 일이다. 이미 물들어버린 세상과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가 스스로를 점점 더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난다.


1. 글을 쓰면서도 계속 울컥하네요.
2. 사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예전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밀양'은 좋아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가 제일 좋았어요. 진정 그는 작가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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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Robin Hood, 2010)
로빈 후드 비긴즈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로빈 후드' 이야기를 리들리 스콧이 새로 쓴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주인공이 러셀 크로우라고 했을 때 기대되는 바는 분명했다. 이미 '킹덤 오브 헤븐'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던 리들리 스콧의 장점과 '막시무스'로 정점에 올랐었던 러셀 크로우의 강인한 이미지가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본 '로빈 후드'는 하나의 개별 영화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은, 3부작의 1편의 성격이 강한 그러니까 '로빈 후드 비긴즈'의 내용을 담고 있는 프리퀄이었다. 이 이야기는 곧 무언가 '글래디 에이터' 급의 극적인 요소나 '킹덤 오브 헤븐' 같은 완성도를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로빈 후드 이야기가 아닌 '로빈 후드 비긴즈'의 이야기를 다룬 리들리 스콧의 이번 작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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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로빈 후드'에는 정작 로빈 후드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에는 '로빈 롱스트라이드'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빈 후드는 나오지 않을 뿐더러 '로빈 후드'로서의 활약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가운데 러셀 크로우가 로빈 후드로 등장하는 장면은 엔딩 장면이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중반 쯤에 나라의 불합리한 점을 알게 된 로빈이 동료들과 '후드'를 뒤집어 쓰고 밤에 몰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약탈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아, 이제부터 저런 로빈 후드 다운 활약상이 펼쳐지겠구나!' 싶었는데, 정확히 딱 그것 뿐이었다. 영화는 아직까지는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듯 오히려 본격적으로 그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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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가 아니라 로빈 롱스트라이드로서 수 많은 무리들을 이끄는 장면은 사실 조금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쉬운 예로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의 경우는 작은 마을에 살던 월레스가 어떻게 전설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 명성과 지지를 얻게 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는데 반해, 로빈 롱스트라이드는 그저 한 번의 발언권으로 옳은 말을 했을 뿐인데 수 많은 영주들을 재치고 대군을 이끌게 되는 전개과정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느껴졌다(물론 그가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은 무리들 사이에서 그가 대표될 만한 이유이지만, 이 아들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전파되는 부분이 없던 관계로 조금은 미흡하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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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로빈 후드'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현상금이 걸린 채로 숲에서 아이들과 숨어서 살며, 국가에 반해 선의의 도적질을 일삼게 되는 로빈 후드가 된 건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결국 영화는 왜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로빈 후드'가 되어야 했나에 대한 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사실 그런 면에서 그리 나쁘지는 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이 영화를 본격적인 로빈 후드의 활약상으로 예상했던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심심한 경험이 될 것 같다.


1. 사극 전문 조연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더군요. 왜 있잖아요.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역사극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배우들.
2. 러셀 크로우는 예전 숀 코네리와 함께 '로빈 후드'를 영화 속에서 연기한 가장 나이 많은 배우로군요 (45세)
3. 그런데 속편에 대한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비긴즈'만 하고 마는건가요, 이 작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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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팬인 회사 팀원분의 주도로 회사에서 단체로 지난 금요일 저녁 잠실, LG와 롯데의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정말 백만년전에 가본 야구장이라 그런지, 경기와는 별도로 그것만으로도 반갑고 즐길만 하더군요. 인기구단들 답게 거의 빈자리 없이 꽉찬 경기장, 그 열기만으로도 '와, 이래서 야구장에 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저런 코멘트 보다는 그냥 그 날이 분위기를 간단한 사진으로나마 남겨봅니다~




이 날의 결론

1. LG팬들은 참 속상하겠다
2. 응요(응원요정)라 불린다는 LG의 응원단장의 포스는 대단하더라. 진짜 저 사람을 봐서라도 응원해야겠다는 맘이 솟구침
3. LG치어리더보다 눈싸움 이벤트에 참여한 산다라박 닮은 여성분이 더 기억에 남더라(너무 밀어주는게 혹 치어리더로 데뷔할지도;;)
4. 금욜날 경기본게 천만 다행. 토욜 경기는 그야말로 LG팬에겐 암흑이었을듯 ㅠ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하녀 (2010)
계급사회에 대한 쌍방향적 비아냥


임상수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극장에 '하녀'를 보러 갔을 때까지도 계속 머릿 속으로 주문처럼 외웠던 것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잊자' 였다. 대부분의 리메이크는 원작보다 좋기 어렵다는 사실을 재쳐두더라도,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주었던 충격과 완성도와 그 독특함은 현대의 그 어떤 감독이 다시 만들더라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임상수의 '하녀'에 대한 좋지 않은 평들이 흘러나오는 것은, 원작의 구조만 빌려온 수준은 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쓰지는 않은 약간 모호한 지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김기영의 원작을 기억하는 이들은 저절로 두 작품을 비교해보게 되니 아쉬움이 보일 수 밖에는 없고, 일반 관객들에게는 좀 어려워 보이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해 끝나고 나서는 허무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임상수의 '하녀'는 김기영의 원작과는 다르다, 그러니 아예 비교를 말자 라고 수없이 되새긴 다음에 보게 된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려(?)와는 다르게 임상수 특유의 잘못된 사회에 대한 비아냥과 영화적인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괜찮은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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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의 라페스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매우 현대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무언가 원작과의 거리를 두려는 감독의 의지 같아 보였다. 이 오프닝만 보고 있노라면 절대 '하녀'라는 작품을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죽음이 담긴 오프닝은 마지막을 위한 대구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바쁜 도시, 어떤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잠깐의 이슈일 뿐,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본연의 이야기인 '하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임상수의 '하녀'는 너무 노골적인 계급사회에 대한 비아냥이다. 그런데 이 비아냥은 일방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서민이고 이들과 갈등을 겪는 자들은 지배 계급이자 부자인 것이 아니라, 주인공 역시 아파트를 전세주었을 정도로 별로 서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처음부터 쉽게 빠져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전도연이 연기한 '은이' 캐릭터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은이가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은 사실상 영화가 끝나기 바로 전, 그러니까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텐데, 그 이전까지 은이의 행동들을 보면 단순히 남성이 그리워하는 유혹하는 여성도 아니고, 주어진 하녀일에만 열심히 하려는 일꾼도 아닐 뿐더러, 주인집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노리려는 야심찬 자도 아니다. 그런데 극중 은이에게는 이런 요소들이 미약하게 나마 중간중간 드러난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은이라는 캐릭터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분이었다. 

주인집에 하녀로 들어온 첫 날 부터 별로 주눅들지 않아 보이는 대범함도, 주인집 남자의 유혹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모습도, 나중에 가서야 이들을 심판하고 저주를 내리고자 스스로를 산화하는 모습도 모두 갑작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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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향적 비아냥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극중 은이에게서는 관객의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이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은이 역시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주인집의 엄청난 부를 부러워 하는 동시에 별다른 갈등 없이 성의 유혹에 사로 잡히고(이 순간을 신분 상승을 위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 공감대가 없다), 극중 안주인 (서우)의 대사처럼 정말 인간적으로 잘해준 안주인을 봐서라도 거부해야 했던 것이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은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집 남자를 받아들인다. 이렇듯 '은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주인집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듯 '은이' 역시 비아냥의 대상으로 삶으려던 것이라면, 그러니까 이런 부를 누리고는 싶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이를 불평만 하는 중산층 (혹은 서민)으로 그릴려고 했다면(다시 말해 갖을 수 있어도 갖지 않은 자가 아니라,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해 못 갖은 자) 좀 더 확실할 필요가 있었는데 영화 속 은이는 무언가 모호하다. 그리고 이런 모호함은 주인집과 은이 사이에 놓인 늙은 하녀 (윤여정)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화녀'와 '충녀'에 출연한 것으로 인해 어느 정도 작은 배역을 부여 받은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가 연기한 또 다른 '하녀'인 것 같았다.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는 '은이'가 보여주지 못한 공감대를 어느 정도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그녀의 행동과 감정선이 더욱 확실하다. 그녀는 주인집 사람들에게는 오래 일해온 만큼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하지만, 역시 오래 일해온 만큼 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왜 은이에게도 계속 얘기하지 않던가), 이런 부 역시 동경하여 주인 집이 집을 비웠을 때 자신이 이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을 충분히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검사 아들과 주인집에 무시 당했을 때 술취해 혼잣말 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 역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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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은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민은 은이에 대한 연민인 동시에 자기 연민의 성격이 더 크다. 은이가 주인집 남자와 관계를 갖는 소리를 몰래 듣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묘한 부러움의 정서가 담겨 있으며, 그런 은이가 큰 돈을 받게 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장면에서 역시 질투 같은 것이 느껴진다. 반대로 주인집의 무서운 사람들로 인해 은이가 완전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시선에서는 연민과 동시에 어느 편에 서야할지 고민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그런데 나 같아도 고민할 것이, 극중 은이는 주인집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비아냥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시원하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는 마지막 은이가 자살을 시도하려 할 때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그저 '그냥 안하면 안돼?'라는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친 것이다. 은이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은이에 대한 비아냥과 주인집 사람들과 같은 지배 계급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런 응징에 대한 대리 만족 등 복합적인 정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재미있는 건 극중 늙은 하녀가 은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 때 이 하녀를 연기했던 배우가 윤여정이였기 때문에 독특한 정서가 생겼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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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주 비아냥의 대상인 주인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 다음으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이정재가 연기한 주인남자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정하고 만들어진 이 계급사회의 지배 캐릭터는 친절한 듯 하지만 강압적이고, 깨어있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 꽉 막혀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미술 작품이나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듯 하지만, 오히려 이 저택에 있는 예술 작품들은 이런 허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도구로 작용한다. 피아노 연주 역시 이들의 동물같은 본성을 숨기려는 도구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역시 장모님(박지영)과의 대화 장면을 들 수 있겠다. 이 캐릭터의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감히'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듯 보이지만 이 지배 계급에게는 뼈속부터 '감히 너희들이 나랑 말이나 섞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정서를 갖고 있음을 이 시퀀스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치 사극에 등장하는 왕처럼, 결혼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내 아이는 누가 낳아도 내 아이이거늘, 누가 감히 나에게 뭐라 할 수 있느냐'라는 식의 정서.

비아냥의 주 대상인 만큼 임상수는 이들 가족을 (특히 이정재를) 깍아내리는 대에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불타는 은이에 놀라 당황하며 서둘러 집을 빠져나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영화의 마지막 이런 일을 몇년 전에 겪었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오히려 더욱 추해지고 가짜스러운 모습은, 왜 이들이 '정말 무서운 사람들'인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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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하녀'를 보면서 눈여겨 본 것은 역시 세트와 구도 였는데, 세트는 '계단'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인상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으며, 여러 공간이 등장하지만 로비에 가깝도록 큰 거실이 '와, 넓다'라는 느낌을 준 것 외에는 큰 효과를 주지 못한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의 가장 큰 장기 중 하나가 미장센이라는 점을 미뤄봤을 때 아무리 비교안하려 해도 이 세트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부분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메라 앵글은 의도적인 샷이 굉장히 많았다. 일단 인물을 정확히 중앙에 두고 좌우의 여백을 크게 두는 앵글이 상당히 많았고, 무엇보다 한 샷을 여러개의 공간으로 나눠서 사용하는 구도를 자주 볼 수 있었다(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구도를 사용할 때는 포커스 인과 아웃 방식이 매우 자주 사용되고 있다). 마치 그래픽 노블을 보듯 공간을 통해 정확히 선을 그어 인물과 인물을 나누는 구도 등은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의 이해를 돕는 하나의 도구로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윤여정이 술에 취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의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도 딱 한번 뿐이어서 그런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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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하녀'는 김기영의 '하녀'를 인식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좀 더 확실했더라면 좀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임상수 감독 특유의 풍자와 비아냥이 부족한 스릴러에 오히려 잠식 당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윤여정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본다면 좀 더 괜찮은 드라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직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못 본 이들이라면 반드시 보길 바란다. 


1. 아드메치.
2. 첫 시퀀스에 나온 일산 라페스타는 예전 회사가 있던 곳이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더군다나 극중 전도연이 올랐던 그 옥상은 바로 예전 저희 회사 건물이었던 것 같아요.
3. 쥐는 나오지 않지만 주인집 거실에서의 마지막 시퀀스는 약간 기괴한 것이 원작을 살짝 떠올리게 하더군요.
4.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땐 하녀 역할로 오히려 서우가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임상수의 '하녀'에서는 안주인 역할에 서우가 더욱 어울렸던 것 같아요.
5. 예전에 심혈을(?) 기울여 썼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 DVD 리뷰 입니다. http://www.realfolkblues.co.kr/1049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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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홍상수 감독의 작품 '하하하'를 보았다. 이 영화는 보기 전 부터 예고편을 보고서는 확 끌리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극중 조문경(김상경)이 왕성옥(문소리)에게 건내었던 '전 좋은 것만 봅니다 (보려 합니다)' 라는 한 마디였다. 이 대사는 예고편에 등장한 또 하나의 명대사, '십니다'와 더불어 볼 때 절로 웃게 되는 한 마디 였는데, 영화를 볼 때부터 무언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이 대사는 결국, '우리 사람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이 되진 말자' 라는 '생활의 발견'의 대사처럼, 보고나서 한참이나 뇌리를 맴도는 대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과연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홍상수의 '하하하' 속 인물들을 보면 허무맹랑할 정도로 순수하고 정직한 편이다. 리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마치 내가 너고, 너가 내가 된양 자신의 속 마음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 중 핵심의 대사는 역시 '좋은 것만 봅니다' 다. 누구는 좋은 것만 보고 싶지 않겠느냐만, 이걸 대놓고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리 흔한 일, 흔한 관계에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좋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영화를 보고 난 가르침에 따르자면, 이것조차 좋은 것만 보지 못한 부족함의 산물이다), 일반적인 경우는 이 나쁜 것 때문에 좋은 것에 대해 그 어떠한 자신도, 확신도 갖기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내가 '나는 앞으로 좋은 것만 보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해도, 이 말을 뱉기전에는 '과연 이 사람이 이 말을 곡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줄까' 혹은 '좋은 것만 보는 것은 좋지만, 굳이 내가 앞서서 주창하고 나서서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할까'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극중 김상경이 저 대사를 읊었을 때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속으로는 '저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새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하니, 누군가가 '난 앞으로 좋은 것만 볼꺼에요' 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래 너는 그래라'라고 믿지 못한다던지, 이런 걸 나쁜 쪽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왠만한 용기없이는 이런 순수한 주장을 펼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주장에 조건으로는 반드시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에게서는 이런 조건이 성립한다. 그래서 모두들 주저 없이 나와 너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뒤끝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하하하'를 보고 있으면 마냥 'hahaha' 웃기는 어렵다. 저럴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현실한탄만 하고 있다면 '하하하'를 보고 난 보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세계와 인물, 인물들의 관계는 그저 웃으라고 재미있으라고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터. 그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좋은 것만 봅니다'로 돌아온다. 잘 생각해보자. 좋은 것만 보겠다던 극중 조문경에게는 '좋은 것만 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거의 없어보인다. 여기서 가능성을 엿보자면 누군가가 저렇게 두려움 없이 확신에 서서 이야기한다면 그 이야기에 한번 쯤은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한번 용기를 내어볼까?'하는 결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저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저도 좋은 것만 봅니다!'라고 확신에 차 바로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저도 좋은 것만 보려구요'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정도는 형성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 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겁에 질려 좋은 것만 보려는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면 결국 홍상수 월드와 같은 현실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있게 '나는 좋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당신도 함께 해요' 라고 얘기를 시작해야, 맘 속으론 그러고 싶었던 사람들도 하나씩 말을 꺼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홍상수의 '하하하'는 이런 세상에 던지는 용기의 북돋음인 것이다.

'자, 한번 봐봐. 이렇게 다들 천역덕스럽게 이야기해도 아무렇지 않잖아.'
'다 같이 좋은 것만 보는 거야. 이런 세상이 결코 판타지만은 아니라고'

라고 말이다.


2010.05.13 pm 6:37




시크릿 워 (Secret War)
어벤저스와 쉴드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


일찍이 그래픽 노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접하게 된 작품들은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나 DC코믹스에서 출간된 '배트맨 허쉬' '다크 나이트 리턴즈' 등이었는데, 최근 '아이언 맨 2'를 보고 아니 정확히는 '아이언 맨'시리즈에 떡밥으로 계속 등장하는 어벤저스의 이야기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저절로 마블사의 그래픽 노블에 서서히 손을 대게 되었다. 정말 '아이언 맨 2'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전에도 서점에서 혹은 커뮤니티에서 마블사의 그래픽 노블에 관련된 글들을 보았을 때 매번 흔들리기는 했었지만 바로 지름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는데, '아이언 맨 2'를 보고 나니 이제는 더이상 미룰 때가 아님을 깨닫게 되더라(이것은 '아이언 맨 2'의 장점이자 단점). 여튼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마블의 그래픽 노블 '시크릿 워'는 마블 코믹스의 여러 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쉴드(S.H.I.E.L.D)와 어벤저스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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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시크릿 워'를 비롯한 마블의 코믹스/그래픽 노블을 봐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 이유는 '재미'보다는 '정보' 적인 측면 때문이었다. 마블의 캐릭터를 영화화한 작품을 볼 때 마다 느껴지는 허전함. 그러니까 북미에서는 워낙에 인기가 많고 저변이 넓은 마블 코믹스인 탓에 이런 세계관을 배경에 깔고 시작되는 영화들을, 나처럼 코믹스의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얕은 관객들이 본다면 100%는 어찌어찌 이해할 지언정, 120%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터라, 일종의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시크릿 워'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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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맨이 등장한다고 '오옷! 주인공이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시크릿 워'에서 스파이더 맨은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일 뿐이다)

좋은 자료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시크릿 워'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상당부분이 닉 퓨리가 작성한(아니 검수한) 쉴드의 보고서 형식으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 형식의 자료가 소중한 이유는, 영화화된 캐릭터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미약한 코믹스 팬들에게 마블사의 수많은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본정보란 무엇인고 하니, 각 캐릭터의 본명과 닉네임은 물론, 기본 신상정보와 주적 그리고 소속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파워/무기, 그리고 닉 퓨리가 정리한 코멘트를 통해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소속 같은 경우는 그 캐릭터가 어떤 단체에 소속되었는지(쉴드 혹은 어벤저스 혹은 엑스맨 등등) 그리고 주적이 누구인지를 통해, 캐릭터들간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보고서 만으로도 '시크릿 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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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몇몇 캐릭터의 비중이 작다고 불평했던 것은 '시크릿 워'에 비하면 양반이더라. 영화화된 캐릭터들만 해도, 스파이더맨, 데어 데블, 판타스틱 4, 엑스맨, 블랙 위도우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외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대사 한 꼭지 부여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자주 펼쳐진다. 각 캐릭터 하나하나의 스토리를 확인하기에 '시크릿 워'는 그리 적절한 작품이 아니지만, 이런 점은 미리 인지한채 그 세계관을 화끈하게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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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같으면 이런 보고서 형식이 중간 중간 포함된 것은 전체적인 스토리를 끊는 듯한 느낌이 있어 별로 달갑지 않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시크릿 워'를 접한 나의 배경과 상태는 서두와 같다보니 이런 자료로서의 의미가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닉 퓨리의 이 보고서만 꼼꼼히 읽어보아도 나중에 마블사의 어떤 캐릭터나 작품이 영화화되어도 어렵지 않게 세계관과 캐릭터 간의 이해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그 반대로 이미 보았던 작품들 역시도 이 보고서를 읽은 후에 다시 보게 된다면 몰랐던 관계들 (그러니까 '왜 그 장면에서 이 캐릭터가 그리도 화를 냈었지?' 라던가, '저런 행동은 굳이 왜 넣은 거지?'라는 점들)이 보이는 것도 경험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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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스와 그래픽 노블에 조금만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너무도 잘 알겠지만, 이 세계는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정보와 궁금증을 요하는 세계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시크릿 워' 하나로 만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시빌 워', '아이언 맨 : 익스트리미스', '하우스 오브 엠', '헐크' 등을 두루두루 독파해야 어느 정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국내에는 시공사에서 정식 출간을 꾸준히 해주고 있는 터라 그래도 다행이다. 올컬러의 빠른 전개로 진행되는 작품 답게 하루 만에 금새 소화할 수 있었는데, 바로 다음에는 일단 '시빌 워'를 마스터 해야 겠다. 그리고는 마블의 남은 정발 작품들을 마스터하고 DC코믹스로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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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夏夏夏, 2010)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철학적 놀이


(참고로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를 훌쩍 넘기고도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을 건하게 걸치고 나서 작성하는 글 임을 밝힌다. 본래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매번 위험하지만, 이번 '하하하' 리뷰 만큼은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랬다. 일단 이것저것 복잡한 것을 떠나서 홍상수 감독의 열번째 장편 영화 '하하하'는 나에게 있어 술을 부르는 영화였다. 참고로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는 그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픈 국환 때문에 차마 글을 남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 술 한잔을 더해가며 글을 가져가게 되었다. 최근 15주년 기념 버전으로 발행된 '씨네 21'이 특별히 홍상수 에디션을 내어놓은 것도 그렇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홍상수가 대세라고 할 정도다. 사실 나는 예전 홍상수 영화에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편이었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떠나서 별로 달갑지 않게까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그랬던 홍상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 였다. 남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의 홍상수가 확연히 달라보일 만큼, 인상적인 변화였고 가볍지만 더욱 생각할 거리는 많아진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갖고 보게 된 '하하하'는 새로워진 홍상수 월드를 좀 더 견고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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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다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 뿐이다(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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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이지만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이내 뭐내 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한게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 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그 안에서 내가 완벽하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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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설프게 남아버린 글에서 더 본격적인 것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영화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려 한다. 이번 씨네 21에 실린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대담을 보면(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지난 호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그 만큼 압도적인 컨텐츠가 실려있다), 홍상수는 줌을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리듬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음악이 인식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점점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한 듯 하다. 이순신 장군 역의 김영호도 인상적이었으며(리뷰를 하다보니 이 시퀀스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못했는데, 작정하고 쓴다면 이 시퀀스만 가지고도 한 편의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연기였던 것 같다('오아시스' 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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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없는 듯 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완벽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번 영화 '하하하'. '잘알지도 못하면서'와 마찬가지로 인물 하나하나의 대사를 곱씹어 볼 수록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운 대사들. 이제는 홍상수 월드에 완벽히 적응한 페르소나들과 이제막 세계에 입성한 신예들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홍상수. 내게 있어 '하하하'는 참 재밌고, 참 의미있고, 참 깊은 영화였다.


1. 리뷰를 그저 '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써보고도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2.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영화 속 배경이 된 통영에 다녀온지라 살짝 남다르더군요. 나폴리 모텔에서 잘 뻔도 했었구요.
3. 서두에 밝혔듯이 술을 부르는 이 영화 때문에, 아래의 그림 처럼 순대에 막걸리 한잔하고 쓰는 글입니다. 영화 속 처럼 '막걸리에 도토리묵', '순대에 소주'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영화 분위기가 나더군요 ㅎ




4. 재미있어요. 또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전원사에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신촌 언저리에만 가도 반드시 가야할 곳이 되어버린 '북오프'에 어제도 예정없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예정이 없었다는 건 들어가는 찰나까지도 '그냥 구경만 하자' 였다는 것이죠;). 진짜 구경만 하려고 갔던 북오프. 진짜 갈 때마다 신기한 저의 매의 눈은 어쩌면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만 쏙쏙 골라내는지, 이번에도 몇몇 작품들을 쏙쏙. '카우보이 비밥 설정집'이나 '이누야샤 극장판 화보집' 등 찾고도 눈물을 머금고 선택하지 않은 아이템이 있는 반면, '바람의 검심' 올컬러 화보집 만큼은 그냥 올 수가 없더군요. 가격도 9,000원 정도 밖에 안하는 터라 바로 구입!




일단 표지 이미지부터 확 눈길을 끌었던 화보집은 아주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들을 담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도 만나볼 수 있고.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분들의 '멀쩡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켄신을 본 분들이라면 화보집에 담긴 컷 하나하나를 그냥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올컬러라서인지 더더욱 몰입되고 추억되는 장면들이 가득했습니다.





화보집이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네요. 사실 몇년 간 잊고 있던 켄신이었는데 이 화보집을 보니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ㅠ DVD출시 당시에도 한정판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타이틀이었는데, 어디 중고라도 찾아봐야 겠어요 (아, 중고 찾기가 더 어려웠던 켄신이었지 ㅠㅠ)



*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제작사인 Nobuhiro Watsuki 1998 에 있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부비부비 The Complete OST
이승환의 신곡이 수록된 부비부비 OST


사실 준혁 학생 윤시윤과 티아라의 지연이 함께한 '부비부비'는 CF속의 모습이 전부 인줄 알았었는데, 케이블에서 방영한 뮤직드라마라는 것도 이번 앨범을 듣게 되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운드트랙을 듣게 된 이유는 준혁 학생 때문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티아라 때문도 아닐터, 바로 이승환의 신곡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승환은 오는 5월 말이나 6월 초 중에 신보 10집 발매를 앞두고 있는데, 그 전에 미리 신곡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오랜만의 신곡이라는 점에서) 한 번 꺼내어 보게 되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지 이승환의 곡 '이별 기술자'가 첫 트랙으로 준비되어 있다. '이별 기술자'라는 독특한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승환 특유의 그루브를 맛볼 수 있는 빠른 템포의 곡이다. 이승환의 지난 음악들에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승환표 발라드와 강렬하고 거친 록 넘버들, 그리고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미용실에서' 등과 같이 사소한 가사와 빠른 비트, 그리고 랩핑과 멜로디의 묘한 지점에 있는(2 Step) 이승환의 보컬을 만나볼 수 있는 곡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별 기술자'는 후자와 같은 성격의 곡이다. 이승환의 팬들이라면 익숙할 특유의 전개 (보컬은 강약에 가장 포인트를 두고 보컬을 감싸주는 코러스 라인이 돋보이는)가 우선 반갑다. 그리고 이승환의 곡 답게 사운드 퀄리티에도 많은 공을 들였음을 스트리밍 따위의 음질로 들어봐도 대충 확인할 수 있다(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과 비교해서 들으면 더 확연히 느껴진다).

이번 앨범에서 이승환의 곡 외에 관심을 가졌던 곡은 바로 페퍼톤스의 'Ping-Pong'이었는데, 이 곡 역시 딱 듣는 순간 '아, 페퍼톤스구나!'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들 다운 곡이다. 평소 페퍼톤스의 사운드와 비교했을 때 기타 리듬 대신 건반 베이스로 다양한 효과음들로 채워져 있으며, 곡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탁구 경기 소리를 삽입한 것도 귀엽다. 전체적으로 '부비부비 OST'라는 앨범 성격에 맞춰진 컨셉곡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외에 제이의 곡과 준혁 학생이 직접 부른 곡들 및 몇몇 곡이 수록되었는데, 제이의 곡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음악적으로는 아쉬운 느낌이 많은 컨셉 곡들로 채워져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본래 뮤직드라마의 성격과 더 맞는 곡들은 이들이 아닐까도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버지의 훈장 (The Medal of Honor, 2009)
시대의 회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기 위해 갔던 이번 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 보다 먼저 보게 된 영화는 루마니아 영화 '아버지의 훈장'이었다. 영화제가 두근거리는 이유는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만나는 것 외에 모르는 감독과 작품을 감으로만 선택하여 즐기게 되는 '긴장감' 때문이기도 한데, 내게 있어 칼린 피터 네쳐의 영화 '아버지의 훈장'은 그런 종류의 미지의 영화였다.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시놉시스를 보고는 그냥 노인이 주연한 코믹과 감동의 드라마 일 줄 알았는데, 막상 본 영화는 루마니아라는 나라가 겪었던 시대와 그로 인해 벌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슬픈 자화상을 아주 개인화한 사건을 통해 풀어낸 '좋은 영화'였다.

변변한 직업 없이 연금으로 하루하루를 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노인 '이온'. 집 관리비가 밀려서 주인을 피해다니고, 난방이 안되 방안에서도 옷을 껴입고 있어야 하지만 고칠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남편과 말조차 섞지 않은 지 한참이 된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문을 알 수 없는 훈장 하나가 이온에게 수여된다는 통보를 받게 되고, 이온은 자신이 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면서 이야기는 한 발 더 나아가기 시작한다.

영화 속 이온은 참 정직한 사람이다. 보통 이런 줄거리의 주인공이라면 무언가 '생색'을 낼 수 있는, 넝쿨째 굴러온 좋은 기회를 그저 놓치지 않으려 바로 움켜쥐려고만 할 텐데, 이온은 도대체 자신이 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이유를 집요하게 찾아내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지만 중요한 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온은 (적어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게 되고, 그제서야 이 훈장을 떳떳히 자랑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대통령에게까지 초대를 받게 되면서 그의 이런 자랑은 그의 주변 사람들과 한 동안 말 한마디 않고 지냈던 아들에게까지 퍼지게 된다. 

루마니아가 겪었던 역사와 이로 인한 현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는 나처럼 정보가 적은 이가 보아도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일들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왜 '이온'은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 배경을 떠올려 보게 한다. 왜 이온은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밀고하여 감옥에 보낼 수 밖에는 없었으며, 그로 인해 가족들은 한 동안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소통을 닫고 살아야 했으며, 왜 훈장이라는 것에 그렇게 의미를 둘 수 밖에는 없었는지를 말이다. 


ⓒ  HI Film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몰고 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 순간에 무너트리고 만다. 그 무너지는 순간은 곧 이온의 좌절의 순간이며, 이 좌절은 허무함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래서 별다른 장치 없이 드디어 만난 아들 앞에서 나서기를 주저하고, 주변 인물들이 모두 모인 즐거운 식탁 앞에서 이들의 대화가 단순한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순간적으로 자신의 회환에 휩싸이는 마지막 시퀀스는 감정적으로 압도적이다. 루마니아가 겪는 시대를 떠올리지 못했던 이들이라도, 그래서 시종일관 이온의 행동들을 그저 한 노인이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로 보았던 이들 조차도, 마지막 이온의 울컥함에는 공감할 수 밖에는 없다. 그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마치 매일 웃으며 보던 TV 시트콤의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훈장'은 좋은 엔딩을 갖고 있다. 


1. 사실 큰 기대 없이 그 시간 대의 영화 가운데 시놉시스만 보고 고른 영화였는데, 대 만족이었습니다.
2.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노래도 좋았어요. 마치 '그르바비차'의 엔딩에 흐르던 '사라예보, 내 사랑' 과 같은 느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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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HI Film Productions에 있습니다.



브라더스 (Brothers, 2009)
토비 맥과이어마저 변화시킨 그 것.



일찌감치 지난해 하반기 기대작이었던 짐 쉐리단의 '브라더스 (Brothers)'를 조금 늦었지만 개봉하여 만나볼 수 있었다. 짐 쉐리단은 일찍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한 '나의 왼발 (1989)',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감독이었는데, 좀 의외였던 50센트 주연의 '겟 리치 오어 다이 트라인 (2005)'이후 오랜만에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시 포스터를 채우고 있는 세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피터 파커 토비 맥과이어와 나탈리 포트만 그리고 제이크 질렌할까지. 이 세 명의 배우만으로도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은 되겠구나 싶어 보게 된 '브라더스'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특히 토비 맥과이어) 어쩌면 배트남 전처럼 그리고 9.11처럼 미국의 오랜 트라우마로 남게될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관한 쓸쓸한 뒷 맛(동시에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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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봐도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샘(토비 맥과이어)은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와 두 딸을 남겨둔 채 또 한번 아프카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의 파병이 결정되던 날 그의 동생인 토미(제이크 질렌할)는 출소를 한다. 그렇게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된 샘은 적의 공격으로 헬기 추락사고를 겪게 되고, 미국에서는 이들을 찾지 못해 전사로 결정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샘은 부하 군인과 함께 살아남아 아프칸 세력에 포로가 되었고, 샘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그레이스와 가족들의 빈자리는 그의 동생인 토미가 조금씩 채워나간다.

'브라더스'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영화는 최근 본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였다. '허트 로커'야 군인과 전장을 배경으로 했으니 좀 더 본격적이긴 하지만, '브라더스' 역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로 느껴졌다. 두 작품은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데 전자는 전쟁 그 한 가운데 놓여진 인물의 중독과 공포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후자는 전쟁이 야기시키는 갈등과 슬픔들을 통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든다. 이 방식 역시 전쟁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브라더스'는 진정성이 있었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중요한 영화는 전혀 아니지만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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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다녀왔을 정도로 문제아인 동생 '토미'. 토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가는 형 샘에 비해 자식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었고, 샘이 전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가족의 갈등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된다. 토미는 아버지에게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던거죠!'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영화는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이 갈등은 여기서 더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형의 빈자리를 착실하게 토미가 채워나가며 형수인 그레이스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듯 하지만, 이것 역시 이 곳에서 멈춘다. 영화는 이렇게 몇가지 일반적인 길들을 보여주지만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않고, 다시 샘(토비 맥과이어)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랑하는 아내 그레이스와 다시 만나기 위해,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두 딸을 다시 한번 품에 안기 위해, 샘은 자신의 후임병을 직접 죽이는 일을 그들의 강요에 의해 저지르고야 만다.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게 되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서, 샘은 아내와 딸들을 다시 볼 것을 생각하며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샘은 동생과 아내의 관계를 의삼하게 된다. 동생과 아내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샘은 이 말을 믿지 못한다. 이 둘은 정말 샘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관객이 본 것처럼 이들의 관계는 키스 한 번으로 끝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관객 뿐 샘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샘의 행동은 '관객으로서' 공감이 될 정도로, 샘이 아프칸에서 겪은 일들은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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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그 것만을 위해 자신의 후임병을 스스로 죽여야만 했던 샘에게, 아내와 동생의 이런 미묘한 관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용서하기도 어려운 것이었을 터. 샘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지고 결국 딸들에게도 위협을 가하기까지 이른다. 사실 영화를 평면적으로만 본다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샘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두 딸들의 말처럼, 차라리 토미랑 더 살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그런데 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겪은 일들을 안다면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전쟁이란 것이 한 가정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는 점이다. 함께하기 위해 신념을 꺽고 살인마저 저지르게 만들었던 남자가 스스로 이런 가족을 떠나 아프칸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게 될 정도로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버린 것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빠와 남편이 돌아왔으나 차라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도 역시 전쟁이라는 무서운 존재다.

첨에 영화를 보고나서는 '브라더스' 라는 제목의 의미를 잘 접목시킬 수 없었는데, 글을 쓰는 와중에 한 가지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영화 속 동생 토미는 형이 총을 들고 난동을 부릴 때도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할 때도 단 한번도 형을 질책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평생 형과 비교당하며 살았고, 형수인 그레이스와 두 딸들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려고 했던 자가 아니었던가. 형의 몰락을 계기로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토미이지만, 토미는 단 한번도 이런 마음을 먹지 않은 듯 하다(형이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토미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끝까지 형을 이해하려 안심시키려 하는 것도 토미다. 이것을 단순히 그 동안 감옥에 다녀온 것을 비롯해, 잠시나마 형수와 그런 맘을 품었던 것에 죄책감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제목 '브라더스'처럼,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위로와 포용을 할 수 있는 형제로서의 무언가가 있다.

앞서서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미국에게 있어 앞으로도 계속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영화는 이런 주장을 더욱 뒷받침 해주고 있다. 영화 속 아버지는 힘들어 하는 샘을 보며 '나도 베트남에서 왔을 때 이유없이 화를 내고 조절하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은 미국의 오랜 트라우마인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아프칸 전쟁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아니 '왜?'라는 물음과 깊은 상처만 남긴 전쟁이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질식할 것 같아'라는 샘의 여린 한 마디는 이렇게 자의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린 상처 깊은 외마디 비명 같아 눈물이 핑돌았다(떠날 때는 그렇게 빠지지 않던 결혼반지가 돌아온 뒤에는 손가락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정도로, 변해버린 샘의 손가락을 보여주는 묘사도 짧지만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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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부제목으로 썼을 정도로 토비 맥과이어가 만들어낸 무서운 캐릭터는 피터 파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토비 맥과이어는 분노가 아니라 전쟁이 한 다정한 가장을 어떻게 변화시켜 버렸는지를 날카로운 턱선과 매마르고 날카로운 눈동자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이런 날카로운 연기를 보고서는 일라이자 우드가 '씬 시티'에서 맡았던 캐릭터가 떠올랐는데, 항상 해맑았던 일라이자 우드가 변하면 약간 사이코 틱한 느낌이라면, 역시 밝았던 토비 맥과이어는 정말 무섭도록 황폐한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싶었다(물론 캐릭터 차이겠지만서도;). 어쨋든 기존 피터 파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언제 폭발할지 몰라 시종일관 불안해하게 되는 영화 속 맥과이어의 모습에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이 영화는 순전히 그의 연기 덕택에 스릴러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1. 최근 '언 에듀케이션'을 통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캐리 멀리건이 깜짝 출연하더군요.
2. 사실 토비 맥과이어 만큼이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다름아닌 큰 딸로 출연한 아역 배우였어요. 마치 어른처럼 울음을 참으며 가슴으로 우는 연기나, 이렇게 무섭도록 변한 토비와 대결할 정도의 눈빛 연기나. '빵꾸똥꾸' 해리 만큼이나 강렬한 연기였어요.
3. U2의 음악은 영화 속에 'BAD'로 한 번, 이번 영화를 위해 만든 'Winter'로 한 번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영화를 보고나서 예고편을 보니 본편에는 없는 장면이 있군요.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장면 같긴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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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회 전주국제영화제 간단 둘러보기 (JIFF)
(11th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photo view)



이번 전주영화제는 못가보나 했었는데 다행히 어린이날이 껴있어서 짧은 일정이지만 다녀올 수 있었다.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스케쥴 표를 빠듯하게 짜서 셔틀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극장들을 옮겨다니며 미지의 영화들을 발견하는 재미와 그 밖에 다양한 부대 행사와 먹거리들을 즐기는 쏠쏠함을 만끽해야 할텐데, 짧은 일정 탓에 그 재미가 확 줄긴 했지만 어쨋든 나름 그 안에서 전주영화제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주의 도착한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거리가 그리 북적이지는 않았는데, 영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술집에서는 아직도 영화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만의 영화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나도 얼른 짐을 풀어놓고는 북적이는 술집을 골라 술 한잔, 퇴근하고 바로 온 터라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쉽게 잠들고 싶지 않은 전주의 밤이었다.







마치 그리스 신전을 보는 듯한 위용(?)의 전주 CGV. 건물 내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최신 시설은 아니었지만, 서울의 신식(?) 극장들만 다니다가 오랜만의 지방에 풋풋한 극장의 외관을 보니 오히려 정겨웠다. 참고로 상영관 시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빡빡한 스케쥴. 진짜 제대로 즐기려면 가이드북에 열심히 체크해가며 봐야할듯!






JIFF 라운지와 실시간으로 라디오 중계를 볼 수 있는 공개 부스, 그리고 별도로 마련된 영화 음악 감상실까지. 잠깐 영화 시작 시간이 남을 때 앉아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쉬기에 적절했던 장소.





영화의 거리는 5월 5일이고 낮시간이라 그런지 이후에는 엄청나게 붐볐다.






아침 일찍 루마니아 영화 '아버지의 훈장'을 보고 나서 오후 예매해 둔 영화 감상전까지 시간이 남아 가볍게 모닝 커피 한잔 하러 갔던 카페. 거의 홍대에 와 있는 듯한 마음에 드는 분위기. 커피 한잔 하면서 오후 스케쥴을 정리.


이번 전주영화제를 찾은 가장 큰 이유. 바로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기 위해! 국내 극장 개봉을 건너 뛰고 바로 DVD/BD 출시가 되어버린 불운의 작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여서 더욱 기대. 보고 난 짧은 감상은 역시 마음에 들었다. 원작이 동화책인 만큼 아이들이 보기에도 적절했던 참 동심의 세계.




그래도 전주에 온 김에 오리지널 전주비빔밥 한 번 먹어보자 싶어서 찾아간 '가족회관'. 여러가지로 1호인 만큼 제대로 된 레알 전주비빔밥을 즐겨볼 수 있었다.




콩나물 국에 나중에 나온 계란찜까지 더하면 총 14가지나 되는 푸짐한 반찬들. 반찬 하나하나에 장식을 특별히 신경쓴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상차림. 평소에 반찬 하나 놓고 먹는 나로서는 적응 안되는 과분함.



맛은 단백함이 일품이더군요. 평소 식당에서 먹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들에 비해 워낙에 담백하다 보니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 본래는 8천원이었는데, 특미를 사용하면서 가격은 1인당 1만원.


'모주'도 유명하다하여 한 잔 (1,500원) 시식. 개피향이 나는 시원한 약주더라.



멀리 홍대에서 부터 건너온 프리 마켓. 홍대 사는 나도 또 한번 관심.
짧은 일정이었지만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와 영화제의 분위기를 살짝 맛본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여행.


2010.05.04 - 05.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이언 맨 2 (Iron Man 2, 2010)
이젠 (슬슬) 어벤저스를 보고 싶다.


존 파브로의 '아이언 맨 (Iron Man)'은 참 잘 빠진 액션 히어로 영화였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와 비슷한 점이라면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여럿 갖췄다는 점이겠고, 차별점이라면 전반적인 히어로 물에 근본을 두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어쨋든 유머와 센스가 있는 존 파브로는 자신 만의 스타일로 마블의 작품 '아이언 맨'을 성공적으로 영화화 하는데 성공했다. 그 성공에는 존 파브로의 유머를 완벽하게 소화할 만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완벽한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1편의 다이나믹한 마지막 장면은 2편을 기대하게 하는 한편, 걱정을 하게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언 맨 2'는 이런 걱정스러운 면이 더욱 도드라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Paramount Pictures. Marv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아이언 맨 2'가 걱정스러웠던 요소는 소포모어 징크스로 표현할 수도 있겠는데, 3부작으로 기획된(혹은 최소 3편까지는 예정된) 대부분의 작품들의 경우 1편에서는 캐릭터 소개와 설정 소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속편에서는 확실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앞서 '아이언 맨 2'가 이런 걱정을 안고 시작했던 것은 1편의 마지막에서 대놓고 공개된 부분 때문이었다. 속편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반대로 첫 번째 작품이 수월한 이유라면 캐릭터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배경을 소개하며 그 캐릭터가 갖는(특히 히어로라면) 특성을 바탕으로 큰 줄거리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만으로도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편은 다르다. 속편에서는 적어도 전편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다보니 오히려 전편 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잦은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일단 '아이언 맨 2'는 히어로 물이 갖고 있는 주인공의 정체에 관한 부분을 다시금 이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커다란 흥미요소를 하나 잃어버린 격이었다(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가장 흥미로운 요소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 강력한 적의 등장 정도를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일단 2편에 등장한 악당 '위플래시/이안 반코'는 비중이 그나마 많은 편이었지만 임팩트는 부족하고 해머사의 CEO '저스틴 해머' 역시 악날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은 애매한 지점에 놓여있다. 이렇게 좀 더 확실하지 못하면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힘을 잃게 된다. 더군다나 그 안에 중간중간 '어벤저스'의 떡밥을 풀어놓는데에도 열심히다 보니 더더욱 포커스가 흔들릴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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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이 있는 경우, 특히 '아이언 맨 2'의 경우처럼 그 원작이 코믹스이며 더 넓은 세계관을 갖은 경우는 어찌되었든 영화로 처음 접하는 이들도 100% 만족할 만한 영화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언 맨 2'는 기본 이야기의 힘이 달리다보니 저절로 그들이 떡밥으로 남겨둔 어벤저스 이야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사실 코믹스의 세계는 워낙 광활하기도 하거니와 정확하게는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아이언 맨 2'를 통해 어벤저스와 관련한 코믹스의 세계관에 대해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 건 사실이다. 캡틴 아메리카나 닉 퓨리, 쉴드 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맨 마지막 대형 떡밥을 투척한 '토르' 같은 경우는 이번 '공부'를 통해 좀 더 그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블랙 위도우'를 비롯해 사무엘 L.잭슨이 연기한 '닉 퓨리',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와(참고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1편에도 등장했었죠), 마지막 쿠기 장면까지. '아이언 맨 2'에는 어벤저스의 거대한 예고편으로 봐도 좋을 만큼 이에 관련한 캐릭터와 소스들이 여기저기 노출되어 있다. 사실 이런 '떡밥'들은 말 그대로 곁가지로 활동할 때 좀 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이언 맨 2'는 기본적인 스토리가 힘을 잃다보니 이런 떡밥에 더욱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언 맨에 대한 스토리는 얼른 깔끔하게 정리하고 어서 어벤저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미드 '스몰빌'이 저스티스리그를 슬쩍 꺼냈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도 비슷한 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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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2'는 이렇게 기본적으로 소화해야할 캐릭터와 이야기에 더불어 어벤저스의 떡밥들까지 풀어놓다보니 전체적으로 흐지부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그래서인지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역시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언급해야할 아쉬운 점은 역시 캐스팅이 변경된 제임스 로드 역을 들 수 있겠다. 전편에서 테렌스 하워드가 연기한 로드는 속편에서 돈 치들이 맡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는데, 돈 치들이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로드'라는 캐릭터에는 테렌스 하워드가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겠다. 앞서 존 파브로의 장점으로 유머를 들었던 것처럼, '아이언 맨'을 관통하는 정서 중 하나는 쿨한 유머를 들 수 있는데, 로드라는 캐릭터가 돈 치들로 인해 너무 경직되면서 전체적으로도 토니 스타크와 로드가 함께 등장할 때 별다른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했던 것 같다. '매트릭스'의 오라클도 아니고 어지간하면 테렌스 하워드로 계속 갔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스칼렛 요한슨이 맡은 블랙 위도우는 물론 매력적이지만,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를 등장시킨 것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었으며(그런데 반대로 블랙 위도우의 비중을 늘리면 영화는 더 꼬이고 만다), 미키 루크 역시 '더 레슬러'로 재기한 그 이미지를 또 한번 사용하는 것 이상은 보여주질 못했으며, 페퍼 포츠 역의 기네스 펠트로우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전편부터 그래왔듯이 이 페퍼 포츠 역할을 꼭 기네스 펠트로우가 해야만 했나 라는 (팬의 입장에서) 생각 역시 여전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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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주욱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아이언 맨 2'가 최악의 경험이라고는 볼 수 없겠다. 기대하는 바가 낮다면 '아이언 맨 2'는 여전히 매력적인 액션 블럭버스터라 할 수 있겠다. 아이맥스를 통해 감상한 아이언 맨의 활강 장면은 역시나 매혹적이었으며, 의외로 엑스포에서의 프레젠테이션 장면이 더 멋스럽기도 했다. 액션은 분량이나 임팩트만 떼어 놓고 본다면 전편 보다 강해졌으나 (사실 이 정도 히어로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조금 부족한 편인데, 1편을 떠올려보자면 확실히 2편이 좀 더 강하다), 아마도 수 많은 코믹스 팬들이 고대했던 것이 비하면 그의 걸맞는 장면은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뭐랄까 '아이언 맨 2'는 우려되었던 길을 그대로 간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아이언 맨이 이렇게 흔들리면서도 계속 인기를 얻는 이유는 역시 '로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ㅎ
2. 오랜만에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를 봐서인지 시원시원하더군요.
3. 다들 아시겠지마나 극중 '해피' 역할을 맡은 배우가 바로 감독 존 파브로 입니다.
4. 트리비아를 보면 미키 루크가 이 캐릭터를 위해 많은 조사와 애정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정성이 100% 드러날 만큼 캐릭터의 깊이가 깊지 않은 것이 새삼 아쉽게 느껴지네요.
5. 스탠 리 찾기는 마블 영화 보기에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일반인이 아니라 '래리 킹' 역할로 나와서 더욱 재미있었어요 ㅎ
6. '아이언 맨 2'를 보며 새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2'가 얼마나 잘 만든 속편인가를 알 수 있더군요.
7. 자, 각자로 흩어져있는 어벤저스 주인공들의 영화는 과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Marvel Entertainment에 있습니다.






공기인형 OST (空気人形, OST by World's End Girlfriend)
슬픔으로 위로 받는 음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공기인형'은 그의 전작들 때문에 배두나의 출연을 접어두고서라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기대작이었다. 영화 외적으로 또 하나 관심을 갖게 된 점이라면 바로 'World's End Girlfriend' (이하 WEG)가 참여한 사운드 트랙이었다. WEG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모노 (Mono)' 때문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그들의 앨범 'Heartbreak Wonderland'의 자켓과 내한 공연에 초대 받았으니 그 전에 들어봐야지 하며 들어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그런데 정작 내한공연에는 가질 못했다;). 'Heartbreak Wonderland'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좀 묘한 것이었는데,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슬픈 감정이란 것은 그리 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매우 소소한 것으로 정리할 수도 없는, 참 듣는 사람을 무력하도록 만드는 '슬픔'이었다. 이 앨범은 이것저것 말할 것 많은 앨범이었지만 결국 남는 감정은 '슬픔'인 그런 앨범이었다.





내가 WEG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랬다. 그들의 'Heartbreak Wonderland' 앨범은 정말 좋은 앨범이었지만 우울한 날 듣고자 하는 용기가 쉽게 나지는 않는 음악이었고 (Radiohead나 Nell 등을 들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런 앨범이었다. 그런 그들의 곡이 한 두곡 정도 실린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그들의 정규 앨범에 가까운 형식의 사운드 트랙이라 '공기인형'의 OST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참여한다는 걸 미리 알고 보게 된 영화이긴 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지는 WEG의 음악에 다시 한번 동화될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이번 사운드트랙은 감독이 WEG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을 감명 깊게 본 이들이라면, 이 둘 간의 만남이 얼마나 적절한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 'Heartbreak Wonderland'는 어찌보면 상당히 실험적인 음악이 담긴 앨범이었다. 클래식과 엠비언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다할 일반적인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음악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험적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굉장히 치밀한 앨범이기도 했다. 그래서  'Heartbreak Wonderland'를 듣고 나면 실험적임에도 이 완성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공기인형' 사운드트랙은 이런 실험적인 면은 조금 덜하지만 전체적으로 장면 장면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커다란 이야기로 연결되는 점은 역시 완성도 측면에서 짚고 넘어갈 만 하다. 사실 좋은 사운드트랙이란 완전히 음악이 인식되지 않거나 반대로 음악만 들어도 그 장면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극과 극의 상황을 들 수 있을텐데, 이 앨범의 경우는 음악을 듣고 있어도 장면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전자처럼 음악이 인식되지 않는다 라는 측면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영화에서 음악이 사용된 방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공기인형' 속 영화 음악은 '장면'에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전체적인 '이야기'에 사용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어도 어느 한 장면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계속 뇌리를 맴돌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이 전하려던 메시지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사운드트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작에 비해 엠비언트 느낌이 강한 실험적 곡들은 덜 배치되었지만, 무채색의 영화 톤처럼(혹은 공기처럼) 영화의 이곳저곳을 감싸며 떠도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음악이었다. 현의 사용이 더 깊어졌고 몽롱함보다는 오히려 애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슬픔'의 정서는 계속 이어진다. WEG가 만드는 슬픔의 정서는 펑펑 터지는 울음이라기 보다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냥 말없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에 가깝다. 왜 우는 지도 모르는 채 울게 되는 경험을 '공기인형' 사운드트랙은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전작에 수록되었던 '百年の窒息'를 사운드트랙을 통해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이 곡은 본래도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영화 속의 애절하고 쓸쓸함이 더해지니 또 한번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영화는 이 음악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황량하고 쓸쓸한 영화의 미장센을 위로하듯 감싸는 것은 WEG의 음악이며, 이 음악은 묘하게도 더 슬프게도, 더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공기인형' 사운드트랙은 가끔씩 꺼내어 보게 될 것 같다. 슬프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말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King of Pop’ 마이클 잭슨. 워낙에 많은 히트곡들과 퍼포먼스, 뮤직비디오를 남긴 그 이기에 팬들 사이에서도 마이클을 추억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모타운 레코드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펼쳤던 기념비 적인 ‘Billie Jean’ 공연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도 있고, 영화 방식으로 만들어져 더욱 화제를 모았었던 ‘Thriller’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며, 어떤 이는 가장 최근 그를 만나볼 수 있었던 ‘This is It’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잭슨 하면 가장 많이 각인되어 있던 이미지는 바로 ‘문워커 (Moonwalker)’속 모습이었다. VHS 시절 정말 테이프가 닳도록 수도 없이 보며 노래와 춤을 방안에서 장판이 해질 정도로 따라 하게 만든 작품이 바로 ‘문워커’ 였으며, 영어 한 마디 모르던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배운(하지만 소리 나는 대로 적기만한) 영어의 대부분은 바로 이 작품 속 마이클의 가사들이었다.





(‘Man in the Mirror’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수 많은 팬들이 울고 실신하여 실려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 이런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라이브 영상과 뮤직비디오, 그리고 작은 영화 한편이 담겨 있는 ‘문워커’는 개인적으로 그런 작품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마이클 잭슨의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쉽기 않던 시절, AFKN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마이클 잭슨을 마음껏 만나볼 수 있는 매개체였으며, ‘Smooth Criminal’ 속 하얀 양복과 중절모를 눌러 쓴 모습과 ‘Man in the Mirror’속 파란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마이클 잭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을 정도로 수도 없이 반복 또 반복해서 보았던 영상이었다. 그런 ‘문워커’가 블루레이로 나올 줄은 사실 상상조차 못했었다(더군다나 국내 발매까지). DVD 시절에도 한참을 고대한 뒤에야 발매되었던 기억이라, 블루레이의 발매는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제법 빠른 시간 내에 발매되었다니 아무래도 최근 발매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디스 이즈 잇’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어느 시점에서 선정해도 역대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손꼽힐 ‘Smooth Criminal’ 뮤직비디오를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문워커’ 블루레이의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앞서서 살짝 언급했듯이 ‘문워커’는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 단순한 뮤직비디오 컬렉션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는 더더욱 아니며 그렇다고 완전한 극영화로 볼 수도 없다. 대부분은 뮤직비디오 컬렉션으로 볼 수 있지만, 그 가운데에 마이클 잭슨이 직접 주연으로 등장하고 조연 배우들 함께 약간의 스토리가 있는 단편이 하나 있는 가운데, 몇몇 뮤직비디오들은 얼추 스토리가 연결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혹시 ‘문워커’를 마이클 잭슨 주연, 조 페시 주연의 영화만으로 생각하고 보게 된다면 적잖게 당황할 수도 있겠다. 더군다나 이 단편은 마이클의 순수함이 심하게 묻어난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괴작에 가까운 편이다. 영화 속 마이클의 변신 장면은 지금 봐도 조금 충격적인데, 당시로서는 더욱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도 이 변신 장면 하나만큼은 각도 하나하나를 외울 정도다(하긴 ‘문워커’의 모든 장면은 이미 외워져 있다)





(어린 시절 보았을 땐 몰랐지만, 나중에 와서 보니 참 마이클다운 줄거리와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봐도 이 메카닉은 묘한 매력이 있다)

‘디스 이즈 잇’ 이후 블루레이로 다시 보게 된 ‘문워커’는 분명 익숙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Smooth Criminal’은 여전히 흥겹고, ‘Speed Demon’ 역시 여전히 재미있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드는 건 적어도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Blu-ray Menu






블루레이 메뉴 디자인은 영화 포스터를 기본으로 당시의 폰트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깔끔한 디자인이다. 서플먼트로는 극장판 예고편만을 수록하고 있다.


Blu-ray : Picture Quality & Sound Quality


아무리 블루레이 타이틀이라 하더라도 ‘문워커’를 소장하려는 이들 가운데 화질과 음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가 있겠냐 만은, 간단하게 화질과 음질에 대해 설명하자면 당연히 DVD보다는 나은 퀄리티로 출시되었으며 본래의 소스 자체가 - 특히나 공연 영상 같은 경우 -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블루레이 보다는 조금 아쉬운 화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DVD의 경우 4:3 화면비로 출시되었으나 블루레이는 와이드 화면비로 출시되었는데, 이 부분을 DVD 영상과 비교하여 보도록 하겠다.

(위 - DVD / 아래 - 블루레이)








보시다시피 화질은 확실히 좋아졌지만 화면 비는 위 아래를 자르며 와이드 화면 비에 맞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질은 장면 마다 편차가 있는 편이다. 뮤직비디오의 경우도 ‘Leave Me Alone’이나 ‘Music and Me’가 나오는 메들리 시퀀스의 화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어린이들로 이뤄진 ‘Bad’ 뮤직비디오나 시작 부분 등장하는 ‘Man in the Mirror’의 화질은 이 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DTS-HD의 사운드 역시 시퀀스 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DVD에 비해 훨씬 향상된 수준이다. 라이브 실황 장면의 경우 DVD에서는 묻혀 잘 표현되지 않았던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며, 극 영화 장면에서 역시 하나하나의 사운드가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극 영화 후반의 액션 장면 사운드의 경우 아무래도 사운드의 소스 자체가 좀 ‘예전 소리’ 이다 보니 선명한 맛은 좀 떨어지지만, 나름 사운드 부분에 신경을 썼다는 점은 느낄 수 있는 정도다.



(남아공 출신의 보컬 그룹 Ladysmith Black Mambazo가 노래하는 ‘The moon is walking’도 ‘문워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총평] ‘문워커’는 분명 마이클 잭슨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Bad’ 시절 마이클 잭슨의 주요 수록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나볼 수 있으며, 그가 주연한 단편 SF영화도 곁들여 만나볼 수 있고, 무엇보다 이를 통해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장가치가 높은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블루레이로서의 장점은 다른 타이틀에 비해 부족할지언정, 블루레이로서의 소장가치는 더 높다 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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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 블루레이 간단 리뷰 및 오픈케이스 (아트북)
(Avatar : Blu-ray Review and Open Case, Art book Image)


블루레이 유저로서 최근 발매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블루레이는 단연 최고의 화제를 모은 타이틀이었다. '아바타'는 극장에서 볼 때부터 블루레이 출시를 기다렸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선 순위에 놓였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특수성 때문에 '아바타'는 극장 포맷에서도 보여줄 것이 많았었지만, 좀 더 극강의 집약된 체험을 할 수 있는 매체는 어쩌면 블루레이가 아닐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바타' 블루레이의 AV 퀄리티는 정말 레퍼런스 그 자체다. 특히 화질의 경우는 누구도 흠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현재까지 발매된 블루레이 가운데 최고 수준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조심스레 아바타 블루레이를 플레이어에 넣고 드디어 재생되는 메뉴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입이 떡벌어지는 화질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메뉴 화면에 삽입된 영상만으로도 '와'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니 이거 말 다했다. 사실 너무나 (블루레이로서) 기대 큰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막상 보고나면 좀 실망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런 우려를 넘고도 남을 만큼 우수한 화질이 수록되었다. 어쩌면 '아바타'는 블루레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혹은 드디어 어울리는 첫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실 지금까지 출시된 타이틀 가운데서도 AV 측면에서 레퍼런스라 불릴 만한 타이틀은 제법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바타' 블루레이가 진정한 첫 번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역시 타이틀이 아닌 작품의 제작 과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간단히 얘기해서 지금까지 레퍼런스라 불리웠던 타이틀들은, 자체의 화질은 매우 우수한 편이었으나 애초부터 차세대 영상매체라는 그릇을 염두해 두지 않은(혹은 염두했더라도 그만의 특성을 100%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부족했던) 작품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애초부터 차세대 더 나아가 그 다음 세대의 영상매체(3D 입체 영상)까지 염두에 둔 작품이었기 때문에 비로소 블루레이라는 그릇의 크기에 걸 맞게 가득 찬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을 도드라지게 발견할 수 있는 점은 '아바타'가 전방위 적으로 엄청난 양의 CG와 그린 스크린을 통한 촬영이 있었음에도, 블루레이에서 흔히 발견되곤 하는 실사와의 결합 장면에서 이질감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CG가 많이 사용된 작품의 블루레이를 리뷰할 때마다 언급하는 내용이기도 한데, 극장에서 볼 때는 별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CG가 많이 사용된 작품들은 블루레이의 고화질로 보게 되면 그 외곽선이 실사의 외곽선에 비해 너무나도 선명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레이어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 '아바타'의 경우는 이런 점이 정말 '매의 눈 (그야말로 매의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사와 CG와의 경계가 블루레이에서도 커다란 이질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CG소스에 버금갈 만큼 실사로 촬영한 소스의 퀄리티가 좋다보니 두 소스간의 간격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이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질감을 덜면서 자동적으로 전체적인 화질 퀄리티가 상승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는 한 눈에 봐도 놀라운 화질을 체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화질 평가는 백마디 주옥같은 말보다 한 장의 캡쳐 화면이면 게임 끝인데, '아바타' 블루레이는 철저한 보안 탓에 여러가지 락을 걸어놓은 터라 일반적인 캡쳐 방법으로는 캡쳐가 불가능해 우수한 스크린샷을 함께 동봉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초창기처럼 TV화면을 카메라로 찍어 교묘히 편집하는 방법을 쓸까도 했지만, 이렇게 '감안하고 보시라'라는 아쉬운 사진을 첨부하는 것보다는 아예 '직접 블루레이를 확인하시라'라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과감히 포기하였다).

사운드는 또 어떤가. 사실 사운드의 퀄리티 역시 레퍼런스라고 불릴 정도의 퀄리티이지만 체감하기에는 더 확 와닿는 화질 탓에 조금 평가 절하되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나비 족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사운드와 역시 판도라 행성이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인 소리들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극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운드가 '임팩트'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안방에서 블루레이를 통해 체감할 수 있는 사운드는 아무래도 '선명함'과 '다양함'을 들 수 있겠다. 블루레이가 DVD보다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당연스럽게도) 사운드 퀄리티의 향상인데, 쉽게 말해 안들리던 소리가 들린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바타'는 이런 안들리는 소리가 다른 작품에 비해 더 많다고 보면 되겠다. 극장에서는 화끈한 임팩트에 가려져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세심한 소리들이, 블루레이에 와서는 조금만 귀를 기울이게 되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으니 이건 분명 블루레이만의 장점이라 하겠다. 아, 그리고 나도 인정할 수 밖에는 없겠다. 엄청난 화질 때문에 사운드 측면을 평가 절하 하는 것 말이다 ㅎ




이번 '아바타' 블루레이는 잘 알려졌다시피 서플먼트가 전무한 버전으로 먼저 출시되었다 (서플 등을 보강한 버전이 11월 정도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국내 출시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이번 '아바타' 블루레이 판매량이 보여준 작은 성과를 감안하자면 아주 어둡다고만 볼 수는 없겠다). 이렇게 서플먼트가 전무한 버전으로 출시된 타이틀임에도 소장가치가 높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화질과 사운드의 퀄리티가 만족스러운 편이다. 사실 개봉 당시 영화 평을 통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열광한 만큼의 감흥은 없었던 편이었다. 메시지나 줄거리는 평범했고(물론 평범한 것 가운데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많은 별점을 주었었지만) 기술적으로만 진일보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는데, 후자의 특성을 좀 더 발휘할 수 있는 매체는 역시 블루레이, 블루레이였다. 우리가 새로운 미디어로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볼 때 자주 느끼게 되는 것처럼, 이른바 '영화가 달라보이는' 효과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타이틀이었다.




만약 아직까지 '아바타'를 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보통 때와는 다르게 (극장 상영을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극장으로 달려가라는 것과 동등한 조건으로 블루레이 감상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그 만큼 '아바타' 블루레이는 차세대 영상 매체인 '블루레이'라는 특성에 걸 맞는, 아니 '딱 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 눈물 닦고 한 번 더 판도라 행성으로 가보는거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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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 (Kick-Ass, 2010)
히어로물의 또 다른 진화론


잘못 봐도 한 참 잘못 봤었다. 처음 매튜 본의 <킥 애스>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 '힛 걸'의 그 안대 위장 때문인지, <인크레더블>의 유쾌한 영화버전인 줄로만 알았었다. 오해도 이런 심한 오해가 없었다. 그 다음에 스샷 들이 공개되고, 그 안대를 한 소녀가 <500일의 썸머>에 출연했던 크로 모레츠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나에게 <킥 애스>는 그럭저럭 관심있는 영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깊은 오해는 영화가 시작되고나서부터 바로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슈퍼 히어로물의 정석을 이어가려는지 <슈퍼맨>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오프닝 크래딧부터 범상치 않은 조짐을 들어내더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산뜻한 음악을 배경과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아, 이 영화 진짜들이 만든 야심찬 작품인데?'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아, 이번 주말 <킥 애스>를 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영화 팬들을 넘어서 대중들을 압도한 히어로 물의 걸작이었다면, 매튜 본의 <킥 애스>는 그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공감할 지언정 그 적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그 어떤 영화보다 신나게 즐길 만한 또 다른 히어로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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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 오프닝의 참신함으로 '어랏?'하는 느낌을 주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한 듯도 보였다. 그러니까 이른바 왕따에다 루저 주인공이 히어로가 된다는 피터 파커 식 전개인데, 영화는 주인공 '데이브'의 내레이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미에게 물리지도 않았고, 외계에서 온 존재도 아닌' 그냥 히어로를 꿈꾸는 소년이라는 점에서 <슈퍼맨>등의 히어로 물은 물론 가장 가깝울 것만 같았던 <스파이더 맨>류의 히어로 물과도 차별된다는 점을 애초부터 강조하고 있다.

<킥 애스>가 뭔가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는 뉘앙스는 영화 속 킥 애스가 처음 공개적인 장소에서 결투를 벌이는 시퀀스 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왜 아무도 슈퍼 히어로가 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데이브의 무모한 '킥 애스'되기는, 사고를 통해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부분과 맞물려 (어쨋든 아주 평범한 건 아니었다 ㅋ) 불의를 보고 참지 않고 뛰어든 우연한 사건이 여러 사람들에게 촬영되고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얻으면서 커다란 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끝까지 방관하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이렇게 방관하다가 이후에 가서는 적어도 '계몽'되었을 군중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이 군중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실 <킥 애스>는 그냥 미친듯이 웃고만 즐겨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씁쓸한 뒷 맛을 남기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이 작품을 인상적인 영화로 만들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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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군중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전개를 해보자면, <슈퍼맨> 속 군중들은 가끔 언론에 휘둘려 슈퍼맨을 오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웅이라 칭송하는 분위기가 있고, <스파이더 맨>의 경우는 2편의 모습으로 미뤄 봤을 때 '우리의 아들이자 이웃일 수 있는 이 소년을 지켜주자'라는 분위기까지 드러내지만, <킥 애스>속 군중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부정적인 시각 뿐이다. 여럿에게 당하고 있는 한 남자를 구하던 킥 애스가 '다들 구경만 하고 있잖아!'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표정들이고, 그렇게 영웅시하던 킥 애스가 TV에 나와 공개처형 당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얼른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겨 이 '화끈한' 사건을 구경하려는 모습들 뿐이다. 그런데 <킥 애스>가 의미 심장한 건 적어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런 군중들을 계몽시키지 않는 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반 사람들은 끝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다. 이 사람들은 끝까지 구경꾼이며 또한 방관자다. 영화는 시종일관 통쾌한 웃음을 주는 가운데서도 이런 씁쓸한 시각을 간과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생각해 볼 점은 주인공이 소년과 소녀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어린 '아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 일반적인 성장담으로 이어지곤 하지만, <킥 애스>는 성장담으로 보기 어렵다. 성장하지만 이것은 성장이라기 보다는 자각에 가깝다. <킥 애스>에 관한 글을 쓰면서 부제목으로 고려 했던 또 하나는 '왜 아이인가?'였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이 테마가 인상 깊었다. 영화는 어린 아이가 어른스러운 삶과 현실 그리고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 놓여지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이는 확실히 불편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런데 <킥 애스>는 이 '힛걸'을 그냥 살인기계처럼 길러진 아이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교육 탓에 이런 비지니스에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프로페셔널이 되었지만, 어쨋든 아이라는 점을 영화는 계속 상기시켜 준다. 훈련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요구하는 것이나 특히 적과의 대결 중간 중간 아이다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몇 번씩 삽입한 것은 분명 '힛걸은 저래뵈도 아이다!' 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으리라. 결국 모든 짐을 어린 아이와 소년이 지게 되는 영화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대중의 모습과 더불어 이 작품이 배경에 깔고 있는 씁쓸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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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장르적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쨋든 마크 밀러와 매튜 본의 <킥 애스>는 히어로 물의 새로운 진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킥 애스>는 스스로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이야기의 변종으로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오마주와 이야기를 통해 밝히고 있다. 뭐랄까 <스파이더 맨>이 <슈퍼맨>류의 슈퍼 히어로 물이 아닌 일반인의 성장담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영웅담 격의 A-Side라면, <킥 애스>는 이런 전형적인 룰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B-Side의 느낌이다. 영화는 그래서 일부러 <스파이더 맨>의 여러 설정을 가져와 오마주와 변이를 반복하고 있다. 앞서 피터 파커와 데이브의 다른 점에 대해 언급했으니 그 외에 점을 들어 보자면, 데이브가 처음 킥애스가 되어 연습을 갖게 되는 옥상은 피터 파커가 올라서 있던 그 옥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물론 미국 내에 이런 풍경의 옥상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쨋든 그 옥상의 풍경이나 옥상에서 스파이더 맨이 벌였던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면 분명 염두에 둔 설정인 듯 하다). 그 외에 데이브 아버지의 모습과 벤 삼촌의 모습은 상당히 흡사하지만, 벤 삼촌이 피터 파커에게 책임에 관한 메시지와 트라우마를 동시에 주었던 것에 반해, 데이브의 아버지는 그 자신도 그렇고 데이브 본인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하다(만약 피터 파커가 그런 위기를 당했다면 당연히 벤 삼촌을 떠올렸겠지만 데이브는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로스트 마지막회 정도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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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배경에 깔고 있는 비판적인 텍스트나 장르적인 면을 모조리 무시하더라도 <킥 애스>는 그냥 웃어 넘기기에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영화의 곳곳에 숨어 있는 미칠듯한 인용구들과 코믹북이나 이런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쉽게 발견할 만한 갖가지 설정과 소스, 소품들 그리고 히어로 물의 기본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벌어지는 웃지 못할 장면들(그런데 웃긴)만으로도 <킥 애스>의 재미는 사실 충분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또 다시 유아적인 감성으로, 이 그냥 껄껄 웃고 넘겨될 이야기에 동화된 나머지 많은 이들이 웃고 넘겨던 장면들에서도 심하게 감정 몰입이 되어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킥 애스>의 장면 장면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양면성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다크나이트>를 비롯한 <배트맨> 시리즈를 보면서 예상할 수 있었던 히어로의 노고, 그러니까 검은 가면을 쓰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눈 주위를 검게 팬더 처럼 칠하는 장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거나(레드 미스트는 아예 팬더 같은 얼굴로 등장하기도 한다), 몸이 타들어가는 심각한 장면에서 그들만의 매니악한 암호들을 주고 받는 장면들을 보면, 막 웃다가도 무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마도 빅 대디(BD)가 아니었나 싶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빅 대디의 이야기만 보면 <스폰>이나 <왓치맨> 못지 않은 어두운 히어로 물인데, 이 이야기가 유쾌함이 묻어있는 데이브의 '킥 애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히어로 무비의 양면성을 갖게 된 것 같다. '킥 애스'의 이야기와 '빅 대디와 힛걸'의 이야기 중 하나만을 가지고 전개했다면 영화는 더 깔끔할 지언정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킥 애스>는 기존 히어로 물과는 또 다른 새로운 양면성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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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을 대놓고 두 손들어 찬양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래픽 노블의 세계가 무궁무진 하다는 것은 이번 마크 밀러의 <킥 애스>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그래픽 노블의 장점이란 나처럼 대부분의 작품을 영화화된 작품과 연결지어 알게 되고 보게 된 이들조차 느낄 정도로, 그 수 많은 작품의 수 만큼이나 스스로를 인용하고 복제하면서(좋은 의미로) 진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킥 애스>를 논하면서 거창하게 <다크 나이트>를 언급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킥 애스>는 <다크 나이트>처럼 완벽에 가까운 히어로 무비는 아니지만, <다크 나이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혹은 '다크 나이트'가 말하는 양면성과 비교 또는 차별되는) 또 다른 양면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 그 옥상이 <스파이더 맨>의 그것과 닮았다면 마크 스트롱이 수련하는 수련장이나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창을 깨고 등장하는 장면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게 하죠. 그것 외에 엘레베이터 입구에서 수 많은 적들과 총격을 벌이는 것도 그렇구요.

2. 마지막 바주카를 사용할 때의 장면은 정확히 마크 밀러의 작품인 <원티드>의 첫 장면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더군요.

3. 사운드 트랙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들이 잔인한 장면들과 함께 엉켜있죠. 미카(Mika)의 곡이 수록된 것은 적절하면서도 의외였어요 ㅎ (너는 이미 질러져있다!)

4. 개인적으로는 <노잉>도 좋았지만 연기 측면에서는 최근 몇년 간 본 니콜라스 케이지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우스움과 진지함을 다 보여주었달까요.

5. <500일의 썸머>에서 될 성 부른 떡잎으로 눈길을 끌었던 '힛 걸' 역의 크로 모레츠 (Chloe Moretz)는 겨우 1997년생! 앞날이 창창합니다. <렛 미 인> 리메이크 버전에도 캐스팅 되었군요.

6. 원작을 스틸컷으로나마 본 결과 그 보다는 덜하지만, 어쨋든 잔인한 장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알고 보면 그리 잔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애들이 주연하는 깔깔대는 히어로 무비만 생각하고 보시면 사뭇 놀라실 수도 있어요.

7. 최근 영화 팬들 사이에서 '힛 걸'의 기세를 보면 마치 예전 <엑스맨 3> 개봉 당시 엘렌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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