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의 시대는 이대로 저무는가


일본 애니메이션, 아니 지브리의 팬으로서 어제 본 뉴스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그 즉슨, 스튜디오 지브리가 더 이상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지 않고 앞으로 기존 작품들의 저작권 관리만 하는 회사로 남게 된 다는 전망이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과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는데, 전자는 요 근래 지브리의 성적이 연속적으로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그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일본은 물론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하나의 스튜디오가 이렇게 제작을 접을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존재는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내게도 지브리와 하야오는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위안과 행복, 메시지를 전달해 준 작품을 선사한 곳이었다. 그런 지브리이기에 이번 소식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번 소식이 전해진 결정적인 요인은 지브리의 최신 작 '추억의 마니 (思い出のマーニー, 2014)'의 흥행 부진이었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연출한 이 신작은 역시 최근 개봉했던 지브리의 '가구야 공주' 보다 도 흥행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위기는 점점 현실로 받아 들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의 '가구야 공주'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서도 손꼽힐 정도로 참 좋은 영화였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_ 모든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설화



사실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턴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우리가 지브리의 열광하던 그 때의 작품들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아주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노노케 히메' 이후 처음 은퇴 선언을 했던 때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여기서 부터 무언가 하야오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세간에서 지브리의 위기를 이야기했던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아마도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했던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드전기'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본인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아들을 (본인도 썩 탐 탁 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국내의 반응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이제부터 지브리의 작품은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쨋든 강도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중론은 미야자키 고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미야자키 고로는 '게드전기' 이후 2011년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다른 평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람이 분다'가 있기 전까지 거의 유일하게 좋지 않은 평을 했던 지브리 작품이기도 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_ 직설적이어서 부담스러운 메시지



  '게드전기'는 이제와 다시 보면 그 정도로 혹평을 받을 작품이었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쨋든 지브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충분한 소스를 가진 작품이었음에도 연출이나 전반적인 면에서 부족함을 많이 드러냈던 아쉬운 작품이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 = 미야자키 하야오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야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보았을 때, 하야오가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후계자를 키워내지 못한 것이 지금의 위기와 현실을 맞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후계자에 대한 계획이 없었느냐?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한 자신의 후계자는 바로 '귀를 기울이면'을 연출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이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콘도 요시후미는 너무 안타까운 인재였다. '빨강머리 앤'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기도 했던 콘도 요시후미는 '귀를 기울이면'으로 데뷔 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버렸다. 실제 스튜디오 지브리에는 적은 수이긴 하지만 몇 명의 후계자로 거론될 만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앞서 있고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이는 콘도였다. 오래 전부터 지브리에서 차근 차근 과정을 밟아왔으며 성공적인 데뷔작을 내놓아 더는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금 현역으로 돌아오게 되고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발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다시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귀를 기울이면 _ 리얼리티로 살아나는 아련함



그 사이에 안노 히데아키, 오시이 마모루 그리고 호소다 마모루 까지, 지브리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감독들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브리 출신인 콘도 요시후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지브리의 현재의 위기가 시작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복귀 한 이후에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벼랑 위의 포뇨 (2007)'를 선보이며 건재함을 증명하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다음, 자신의 다음 지브리를 책임질 이에 대한 걱정은 어쩌면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처음 부터 은퇴 작이라고 명명한 '바람이 분다 (2013)'를 내놓은 뒤로는 더 이상 작품 활동은 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바람이 분다 _ 이기적 순수함의 안타까움



문제작 '바람이 분다' 이후 앞서 이야기했던 '가구야공주 이야기'와 신작 '추억의 마니'를 내놓은 지브리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지 않는 다는 소문 아닌 소문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던 자신들의 시대를 떠나 보내는 것일까. 아직 공식적인 것은 없지만, 이런 뉴스를 접하니 참 기분이 허하고 쓸쓸하여 남겨 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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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

모든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설화



지브리의 신작이자 다카하다 이사오의 신작이라는 이유 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를 보았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포스터를 만났을 때는 손 안에 담긴 작은 공주의 모습에 '아, 저런 작은 크기의 공주가 겪는 이야기구나'라고 마냥 생각했었는데,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달랐다. 전혀 다르긴 했지만 '가구야공주 이야기'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인 ‘다케토리 이야기 (竹取物語)'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다케토리 이야기라는 설화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지만,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설화 들이 그러하듯이 다케토리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구조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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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에서 가구야를 데리러 온 달의 사자가 “가구야공주님은 죄를 저질러서 이 땅에 내려와, 너희처럼 천한 자들 집에 잠시 계신 것이다. 그 죄를 갚는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렇게 모시러 왔다”라는 부분에 대해 감독은 가구야가 달에서 저지른 죄는 어떤 죄며, 달과의 약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출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라는 내용을 보았는데, 이미 이 설화에 너무도 익숙한 일본인들에게는 다카하다 이사오의 이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이 새롭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설화의 내용이라는 것이 혹은 교훈이라는 것이 오늘 날에 와서 보면 너무 진부하고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그 새삼스러운 것들의 감정이 모두 솜털이 하나 하나 서 듯 살아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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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배경을 떠나서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 만들었는데, 일단 가장 첫 번째로는 공주의 어린 시절을 보낸 대나무 숲과 그 곳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극장에도 부모들과 온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그 아이들이 이 장면을 보고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나 같은 어른에겐 그저 잠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모습. 풀과 들에서 뛰 놀고, 특별한 무엇이 없어도 그저 자연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그 때가 요즘 아이들에겐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영화 속에서도 공주의 어린 시절은 훗날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카하다 이사오는 이 어린 시절을 더 담백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은 너무 단순하고 순수해서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들이었다. 한 편으론 다시 그런 시절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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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이 작품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부모의 관련된 정서다.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설화에 근거해 판타지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너무 명백한 부모님에 관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낸 부모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아주 조용하게, 대놓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워 아주 조용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자, 어쩌면 이제는 스스로가 부모가 되어 알게 된 그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 하겠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바로 그런 시점에서 작용한다. 공주와 부모와의 거리도 시종일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는 부모의 행동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영화 스스로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감정선은 조용히 터져 나온다. 내내 돌아가고 싶었으나 결국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땐 남아있는 것이 훨씬 행복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 회환과 후회의 감정, 미안함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주 조용하게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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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굳이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영화 속 이별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막상 이별을 하게 될 땐 그리 슬플 수가 없었다. 뭐랄까 이 작품이 이 회환과 슬픔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담백하면서도 몹시 간절하달까. 과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을 최대한 그대로 담으려 영화가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다카하다 이사오가 선택한 수묵화스럽고 스케치만 한 듯한 느낌의 담백한 작화는, 처음에는 빈 듯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그 빈 공간에 감정이 스며들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을 주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요즘 같이 디테일로 꽉꽉 채워진 애니메이션 들에 비해 여백이 있는 이 작화는,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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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영화보며 잘 울컥하는 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데 옆에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아이가 우는 탓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는 단순히 영화 속 이별이 슬퍼서 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우는 아이와 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이 영화 속 정서와 겹쳐져 더 눈물이 나버렸다. 아직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기 전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나중에 딸 아이를 낳게 되면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참으며 볼 수 있을까.


참 좋은 작품을 보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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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

이기적 순수함의 안타까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랜 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내가 한 손에 꼽을 만한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은 내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의 신작이자 마지막 작품(아마도)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를 기다리는 마음은 내내 편치 않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 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말들이 쏟아져 나오든, 내 입장은 직접 보기 전에는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졸이며 보게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아쉽지만 보는 내내 불편한 작품이었다. 혐오스러운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영화니까' 불편함은 없었던 나였는데, 이 작품은 '영화기 때문에' 불편한 경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간 성향이나 가치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논란에 대해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본능적으로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그 논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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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근본적으로 반전을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말해왔으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는 등 그가 '바람이 분다'를 통해 군국주의를 옹호했다거나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옳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들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들은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그냥 이슈를 위한 제 3자들의 어쩔 수 없는 시선일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했었다. 따지고 보면 미야자키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가치관에 대한 모순과 갈등은 계속 존재했었다. 그는 일관적으로 반전을 외치며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날 것과 탈 것,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비행기이자 전투기였다. 이전 작품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작품과 가장 비교될 만한 작품은 그의 전작 '붉은 돼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붉은 돼지'는 하늘을 나는 것과 전투기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 된 작품이자, 그 스스로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최대한 빗겨가려고 애 쓴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붉은 돼지'는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서, 어른의 드라마, 낭만과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현해 낸 수작이었다. 그렇다면 '붉은 돼지'도 문제인가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일단 아름다움에 집중한 것은 맞지만, 포르코는 전쟁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갖고 이를 행동으로 표현한 인물이었고, '바람이 분다'의 지로는 회의 감은 갖고 있다고 봐야 겠지만 행동과는 거리가 있었던 이었기 때문이다. 이 별 것 아닌 차이점이 '바람이 분다'의 역사 의식을 말해주는데, 이것은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갖고 있던 모순과 갈등이 적어도 일본인들을 제외한 (특히 아시아인들이) 이들이 기대하던 바로는 표현되지 않은 몹시 안타까운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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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로센을 설계한 지로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 하고 군국주의를 옹호하려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최근 아베 정권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받아들이면 고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는 '바람이 분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고민스럽다. 고민스럽다는 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고민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모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동경해 오던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든 설계자의 이야기를 언젠 가는 꼭 한 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앞서 여러 번의 은퇴 번복이 있기는 했지만, 평가를 떠나서 이 작품 만큼 그의 마지막 영화로 어울리는 주제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보니 그가 설계한 제로센은 결국 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그 것은 일본이 피해자로서가 아닌 가해자로서 범한 전쟁이었다. 그것을 미야자키 하야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모르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의도적으로 전쟁에 관한 장면들을 피하는 한 편, 지로라는 캐릭터도 상당히 건조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 속에서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요소는 몇 가지가 있는데, 전쟁 장면을 전혀 등장 시키지 않고 있는 점과 지로의 꿈을 지속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것, 그 꿈에 등장하는 이가 아름다운 비행기를 설계하려 했던 카프로니 백작이라는 것, 독일인이지만 히틀러 정권에게 쫓기고 있는 융커스의 이야기가 바로 그 것이다. 사실 난 이 영화가 논란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더라도 '일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하야오가 전쟁을 피한 것처럼, 최대한 피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는 지로의 꿈 장면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일본 소년'이라는 걸 특별히 강조하고 있고, 이후에도 관동대지진과 이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장면과 대사로 표현하면서, '일본'이라는 실질적 존재를 유난히 도드라지게 언급하고 있다.


앞서 일본이라는 존재 역시 전쟁처럼 피해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그렇게 해서 모순이 되는 요소에 대해 최대한 언급하는 것을 자제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즉, 하야오가 일본이라는 현실을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반드시 이 모순에 대해 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굳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고, 이를 제외한 방식으로 자신이 추구하려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해 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건 예상이라기 보다 그랬으면 하는 바램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결국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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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함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엄청난 계산과 의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일부러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날 것에 대한 동경은 그를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알 정도로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그의 전작들은 노인이 되어도 잃지 않은 순수한 동심이 있어서 가능한 순간들이 여럿 있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이 분다'는 그럼에도 순수함으로 평가할 수 없는 순진함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순수한 것과 순진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특히 이번 경우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순진한 것은 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순수함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를 반드시 예상했어야 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어떤 결과를, 특히 다수의 일본인들 외에 한국을 비롯한 전쟁 피해 국가의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으로 받아들여질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는 작품에 분명 드러나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정말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간과라고 하기엔 그 무게가 심히 무겁고, 순수함의 발로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처사였다.


하야오의 논리는 이랬던 것 같다. 지로는 제로센을 설계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옹호하는 이는 아니며, 지로가 겪는 삶의 일화들을 통해 정의롭고 인정이 많은 면모를 부각하여 그가 결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로 스스로도 고뇌가 없지 않았다는 것 역시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독일(나치)과 일본의 차별점 역시 이야기한다. 만약 지로가 자신이 순수한 의도를 갖고 만든 비행기가 침략 전쟁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 얘기는 수긍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이게 아니면 처음에는 몰랐으나 후에 어떻게 쓰이게 되는 지 알게 된 후 행동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였다면 역시 수긍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나 회피 정도가 아니라 공범에 가까운 행위이라는 점에서, 그냥 의도치 않던 결과로 그도 계속 고뇌하고 후회했다 라는 것 정도로는 면죄부를 얻기 힘들다. 더더군다나 지로는 자신이 만든 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의 동료에 말처럼 '우린 그냥 비행기만 만들면 돼'라는 건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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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것이 아름다웠던 그렇지 않던, 순수함의 발로이던 그렇지 않던, 지로가 만든 비행기는 본인도 알고 역사도 알 듯, 일본의 침략 전쟁에 도구로 사용된 것이 사실이라면 지로라는 인물을 다룰 땐 특별히 조심, 아니 지금 시점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인지 더 면밀히 조사와 책임을 따져봤어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지로의 이야기를 개인의 순수한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일까? 독일 국민들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독일은 패전 이후 분명한 전범처리와 국제 사회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최근에야 비로소 독일인 가운데서도 나치에 반대했던 이들의 이야기라던가, 전범국이 되어버린 이후 태어날 때 부터 원죄를 갖게 된 세대들의 고민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범에 대한 처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제 사회에 명확한 사과보다는 자위대를 조금씩 다시 정당화 하려는 움직임이나, 대한민국의 침략에 대해 정당화 하려는 우익의 움직임이 정부차원에서 그 어느 때 보다 강하게 주장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진해도 이건 너무 순진한 거다.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바람이 분다'의 이야기는 발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라는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것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쪽에서 아직도 가해자가 잘못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통에, 잘못한 건 맞는데 사실 그 안에도 이렇게 순수한 꿈을 쫓는 이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오해 없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라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생각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 작품이 어떤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더 배려있게 생각했어야 하는게 도리였다. 그가 진정 반전주의자라면 이건 옵션이 아니라 필수여야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순수한 마음을 객관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밀어 붙였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시기상조 였다는 것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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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람이 분다'에 짙게 깔린 역사 의식만 걷어낸다면, 난 이 작품을 그의 작품 중 한 손에 꼽았을 것이다. 영화적으로도 아쉬웠다는 많은 이들에 평가와는 다르게, 난 불편한 가운데도 지로의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마다, 이 작품에 깊게 빠져들기도 했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의 필모그래피를 마무리 하는 작품으로서 최고의 선택이 되었을 수도 있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했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품은 내게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그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보면 알 것이다'라는 말 때문에 일말의 믿음을 끝까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위와 같았다. 아.. 내가 지브리 작품, 그것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이런 부정적인 글을 쓰게 되다니... 글의 부제를 '안타까움' 정도로 순화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라는게, 이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을 단정적으로 말해준다.



1. 오늘따라 '붉은 돼지'가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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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에 있습니다.




히사이시 조 내한공연 후기 (Joe Hisaishi - Asia Tour 2010-2011)
늘 꿈꿔왔던 황홀한 판타지



누구에게나 늘 꿈꿔오는 판타지가 있을 것이다. 많은 꿈만 같은 일 가운데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즐기는 것으로만 한정해도,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그 수가 적게는 몇에서 많게는 수백개에 이를 것이다. 내게 있어 꿈에 그리는 라이브 가운데 손을 꼽을 만한 공연이 있다면, 록 밴드 'Red Hot Chili Peppers'와 여성 뮤지션 'Bjork', 그리고 슈퍼밴드 'U2'를 들 수 있겠다. 이 가운데 너무 운이 좋게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뷔욕의 경우 내한했을 때 모두 라이브를 (정말로 코앞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세 팀은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꿈에 그렸던 공연이었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히사이시 조의 공연은 아무래도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에 흠뻑 빠져들게 되면서 꿈꿔왔던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로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던, 그리고 지금의 닉네임인 '아쉬타카 (아시타카의 변형이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항상 히사이시 조가 있었다. 사실 이렇듯 감독과 음악감독의 관계를 좋아하게 된 건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가 더 먼저였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면 내 취향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 콤비에게 조금 더 마음이 쏠리는 것 같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지난 10년 넘는 세월 동안의 고민이었고, 여차하면 큰 결심을 하고 일본으로 날아가 공연을 관람할 용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2010년 12월, 그의 내한공연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비싼 티켓가격과 그에 반해 한없이 빈약한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가의 티켓을 구매하고 말았다. 아마 지금보다 더, 아니 더 어려운 상황이었더라도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히사이시 조의 공연은 그냥 보고 싶은 공연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평생을 통틀어 가장 보고 싶었던 공연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히사이시 조의 공연에 대한 미칠듯한 욕구를 품게 된 것은 바로 이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이었다. NHK를 통해 방영한 공연을 보고서는 후에 블루레이가 발매되자 마자 역시 고민할 것도 없이 구매했던 공연이기도 한데, 이 공연은 정말로 나처럼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단 한 곡도, 단 한 순간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주옥같다라는 표현으로도 다 형용할 수 없는 최고의 공연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연을 보고서는 다시금 히사이시 조 공연에 대한 갈증이 더더 깊어지고 있던 차에, 내한공연이었으니 어찌 맨발로 뛰쳐나가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그렇게 고대했던 공연이었는데 하마터면 공연 당일 회사에서 늦어서 공연을 제 시간에 관람하지 못했을 걸 떠올리니, 다시 생각해도 참 아찔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지하철과 지하철 사이 그리고 그 사이에 달릴 수 있는 곳에서는 거의 모두 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헐레벌떡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섰고, 아주 잠시 숨을 고르자마자 히사이시 조, 그가 무대 위에 올랐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 마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음악을 접한 것이 대부분 애니메이션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히사이시 조는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이번 공연 컨셉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무엇보다 이번 공연이 아시아 투어 전체를 마무리하는 가장 마지막 회차 공연이라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그의 다짐에, 공연이 시작도 하기 전에 몹시 달아오를 수 밖에는 없었다.
이번 공연은 1부와 2부로 진행되었는데, 1부의 프로그램은 '미니멀리즘'과 'The End of the World'로서 특히 미니멀리즘의 경우 하나의 테마를 다양한 악기와 리듬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주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사실 2부의 내용을 훨씬 더 기대하고 온 터라 조금 지루해질 수도 있는 1부였지만, 오히려 1부를 통해 히사이시 조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와 음악의 참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히사이시 조가 평소에 좋아하는 악기들이 자주 등장한 탓에 계속 그의 음악 세계를 쉽게 공유해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결코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얘기지만, 주로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된 멜로디포니의 곡들을 듣는 순간, 1부에 선보인 그의 음악세계와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미션을 지나 드디어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2부의 막이 올랐다. 2부 '멜로디포니'에서는 다름 아닌 지브리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비롯,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곡들을 차례차례 만나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나보게 된 곡은 히로스에 료코가 출연했던 타키다 요지로 감독의 영화 '굿,바이'의 사운드트랙 'Departures'였다.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첼로의 선율이 인상적인 곡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온 곡은 무려 'Kiki's Delivery Service' ㅠ 너무도 익숙한 '마녀 배달부 키키'의 그 선율이 딱 한 음 들려오는 순간, 정말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감동의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키키의 사운드트랙을 라이브로 듣는 순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애니메이션 속 장면이 그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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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의 감동에서 아직 빠져나올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바로 다음 곡이 이어졌는데, 이 곡을 듣는 순간 정말 눈물이 핑돌았다 ㅠ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사운드트랙인 'One Summer's Day' 때문이었는데, 바로 이 테마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음은 물론, 그 장면들이 하나같이 찡하고 뭉클한 장면들이어서인지, 바로 그 피아노 선율을 듣는 순간 눈가에 절로 눈물이 고였다. 키키를 지나 센과 치히로의 그 유명한 테마를 라이브로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비싼 티켓값 따위는 벌써 초월해 버렸다. 이 두 곡을 들은 것만으로도 보람이 넘치는구나!'라고. 실제로 그랬다. 예전 칸노 요코의 공연을 가면서 '카우보이 비밥'의 사운드 트랙인 'The Real Folk Blues'를 라이브로 듣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One Summer's Day' 이후에도 너무 익숙한 곡이 이어졌는데, 한동안 내 휴대폰의 벨소리이기도 했던 (하긴 다른 곡들도 대부분 한번씩은 벨소리로 사용되었던 듯), '기쿠지로의 여름' 사운드트랙인 'Summer'였다. 정말 내 인생에 가장 유쾌한 영화 (감동은 재쳐두고라도)중 하나인 기타노 다케시의 이 영화에 사용된 너무 유명한 이 곡. 영화 속 그 들판과 두 남자가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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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성 라퓨타'의 사운드트랙을 지나 최근작 '벼랑위의 포뇨'의 'Ponyo of the Cliff by the Sea'가 연주되었다. 포뇨의 경우 워낙에 노래와 율동을 외우고 있었던터라, 노래가 없는 연주였음에도 나도 모르게 자꾸 따라하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아야했고 특히 율동이 절로 나와 몸을 억눌러야만 했다 (왜 그, 손을 쭈욱 뻗었다가 접는 바로 그 동작 ㅋ). 'Oriental Wind'까지 마치고 나서 또 한 번 기절할 만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 다음 연주된 곡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공연 소식이 처음 알려지고 프로그램이 공개된 뒤, 몇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는데 꼭 듣고 싶었던 몇몇 곡들이 리스트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곡들 가운데 몇 곡을 꼽자면 '붉은 돼지'의 사운드트랙 중 한 곡인 '帰らざる日々' (아, 피아노 솔로인 이 곡 너무 듣고 싶었었는데 ㅠ) 이 곡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메인 테마인 '인생의 회전목마 (Merry-go-round)' 이렇게 두 곡을 정말로 꼭 듣고 싶었었다. 하지만 이 곡들이 빠져있어서 아쉬워하던 찰나, 갑자기 하울의 그 선율이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아니 하울은 안한다고 했었잖아 ㅠㅠ' 하며 돋는 소름과 터져나오는 눈물을 훔친 채 왈츠 선율에 절로 몸을 맡겼다. 진짜 '인생의 회전목마'를 라이브로 듣게 된 건 이 날의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다. 기대하지 않아서인지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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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추가된 대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들을 순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회전목마'를 너무도 좋아하는 터라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마지막 곡인 '이웃집 토토로'의 테마곡 'My Neighbor TOTORO'가 이어졌다. 아까 포뇨와 마찬가지로 이 곡도 워낙에 노래로 더 익숙한 곡이나 몇번이나 노래가 나오는걸 참아야 했는데, 정말 나중에 기회가 또 있다면 합창단과 함께 하는 공연으로, 다같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즐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토토로 연주가 모두 끝나고 객석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히사이시 조는 오케스트라를 자리에 남겨둔 채 피아노 솔로 곡을 한 곡 더 연주하고 다시 무대를 떠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관객들의 기립박수는 계속 되었고 다시 무대에 인사를 하러 나온 그는, 피아노 쪽을 가리키더니 다시 앞에 앉아 너무나도 익숙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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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 역시 프로그램에 없던 곡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였는데, 바로 '모노노케 히메'의 엔딩 테마인 'Ashitaka and San'이었다 ㅠ 아쉬타카라는 닉네임을 쓰는 내가 어찌 이 곡을 반기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ㅠ 이 곡을 앵콜 곡으로 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듣고 있노라니 만감이 다 교차하더라. 그랬다. 공연이 이제 정말 끝이 나는구나 라는 생각에서부터, 내가 지금 과연 꿈을 꾸는 것인가, 꿈이 나를 꾸는 것인가를 비롯, 다시금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 꿈결 같은 판타지에서 과연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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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지브리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드디어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 및 기획을 하고 신예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은 (신예라고는 하지만 단독으로 연출을 맡은 장편이 없었을 뿐, 지브리에서 15년 간을 애니메이터로 활약해온 준비된 감독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지만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공개 시점부터 좋은 반응과 기대를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좋은 반응을) 모았던 작품으로, 자칭 지브리의 광팬인 나에게도 아니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기는 했지만 원작이 존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맡은 만큼 완전히 요네바야시 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연속성을 이어갈 만한 괜찮은 작품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문제인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으로 보기는 조금 어려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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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형의 집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전작인 '벼랑 위의 포뇨'에 비하면 상당히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다. 여기서 '어른스러워졌다'라는 표현은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전개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벼랑위의 포뇨'가 내적으로는 죽음을 관통하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 비해,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오랜 메시지인 환경과 '살아라'라는 화두는 그대로지만,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포뇨'에 비해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소인이라는 종족의 등장한 평소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전달해주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 세계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포장하는데에 생각보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이런 설정들이 활용될 만한 에피소드를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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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더 메시지를 지우거나 유쾌함으로 전달하려고 했다면, 소인 종족과 인간들의 만남에 있어서 화합의 에피소드를 강조했을텐데, 이 영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영화 속에서 나름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줌마가 그려지는 방식이야 그렇다쳐도, 주인공인 '쇼우'의 첫 등장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이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무서워'라는 말이 터져나오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지브리가 인간을 그릴 때 자주 묘사했던 방식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포 (특히 다른 종족이나 사물, 세계 등과 비교했을 때는 더욱)를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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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마루 밑 아리에티'에 담긴 정서는 확실히 쓸쓸하다. 한창 때의 디즈니 영화처럼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보통 같으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인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에 의해 인간과 소인이 모두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이 작품은 이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소인인 '아리에티'와 교감을 맺고 있는 주인공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만화적 전개라면 소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쇼우의 심장병을 치유라도 해주겠지만, 보시다시피 영화 속 소인들에겐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들은 단지 인간에 비해 몸의 크기가 매우 작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미에 가서도 쇼우에게 확실한 건강을 허락하지 않는다. 쇼우는 그저 힘내겠다 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오히려 이 마지막은 죽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공존하려했던 인물이 죽어간다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의 핵심인 부분이다. 아,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쇼우의 첫 등장장면 만큼이나 쇼우와 아리에티의 대화 장면에서 그 공포와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리에티에게 너희와 같은 소인 종족이 멸종해 가는 종족이라는 점을 아주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속으로 '와, 아이들도 보는 영화인데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놓고 '너흰 죽어가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터라 정말 놀랍기까지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리에티의 가족이 결국 화해나 공존을 포기하고 이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세기말적인 쓸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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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와중에도 지브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교훈인 '살아라'의 대한 것과 다른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메시지 역시 여전하다. 쇼우의 행동에서 이러한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쇼우는 직간접적으로 아리에티를 도우려고 하지만, 마지막의 순간에는 아리에티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 한다. 아리에티의 엄마가 아줌마에 의해 잡혔을 때도 직접 아줌마를 따돌리고 엄마를 구해서 아리에티 앞에 턱 하고 놓을 수도 있었고, 더나아가 악당인 아줌마를 할머니에게 고자질해 아줌마를 집에서 떠나게 하고, 아리에티 가족과 함께 잘 살 수도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사를 위해 험난한 여정을 가야만 할 아리에티의 가족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더욱 안전하게 도울 수도 있었으나, 쇼우는 그냥 길을 터주고 미련 없이 보내는 것을 택한다.

지브리가 택한 방식은 매번 이런 방식이었다. 어려움에 처했거나 약자를 돕는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약자가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말이다. 물론 쇼우도 맘은 그렇지 않았지만 첨부터 이런 지혜를 완전히 깨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직접 해결해주기를 원해서 각설탕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했으나, 처음 쇼우가 준 각설탕과 마지막에 준 각설탕의 의미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첨에 준 각설탕은 말그대로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내가 줄께'라는 식의 것이었지만 (그래서 아리에티는 쉽게 받을 수 없던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준 각설탕은 아리에티와 이런 모험과 교감을 겪고 나서 진심으로 전하는 '선물'의 의미, 즉 '그 땐 내가 경솔했어, 하지만 이제는 내 진심을 받아줄 수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전달되는, 그래서 아리에티도 더이상 '빌려가지' 않고 오전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내내 '빌려가는'것으로만 살아왔던 이 두 종족의 관계가 더 이상 빌려가고, 도둑질 해가는 것이 아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런 교감을 나눈 쇼우는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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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히사이시 조 없는 지브리의 사운드트랙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이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인 것과 더불어 사운드트랙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 '세실 코벨'의 음악은, 기존 지브리의 작품들 보다 훨씬 더 유럽풍의 인상을 준다('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도, 유럽을 배경으로 했던 '붉은 돼지'보다도 더하다). '썸머워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 군은 주인공 '쇼우'를 연기하고 있으며, '도쿄 타워'와 '걸어도 걸어도'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키키 키린은 나름 악당인 '하루' 아줌마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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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저서 '김태훈의 랜덤 워크'를 읽던 중 한 문장이 하나의 글감을 제공했다. 그는 1960년대를 두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이 신보를 발표하고, 고다르와 트뤼포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시대'라
고 이야기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많았던 터라 공감이 많이 되는 구절이었다. 나도 가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 당시 개봉관에서 이 주윤발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비틀즈라는 밴드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TV라이브로 즐겼다면 어땠을까, '스타워즈 - 에피소드 5'의 그 유명한 대사를 개봉 당시 실제로 들었더라면 과연 그 충격이 어땠을까 등 비디오나 후일담으로 전해들은 전설의 이야기들을 리얼타임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보곤 했었다.

매번 이런 생각은 이렇듯 부러움에서 그치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일인지, 그간 내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이 시대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후세에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되돌아본다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을 모두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으며, 앞서 부러워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역시 전야제라는 행사를 통해 팬들이 모여 그 유명한 오프닝롤이 등장할 때 극장에서 환호를 보내며 즐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 뿐인가 '메멘토'부터 시작해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그리고 '다크나이트'로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작과 성장을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며, 코엔 형제라는 세기의 천재 감독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소년에서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소룡의 영화를 비록 극장에서 즐기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성룡이라는 형님을 모실 수 있었으며,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같은 우리 감독들의 세계적인 작품도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별을 갖을 수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픽사라는 영민한 스튜디오, 에반게리온이라는 걸작을 무려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이걸 하나하나 말하자면 절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현재에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예전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지금은 지긋한 나이의 배우들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마련인데, 아마 이 다음 세대는 분명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테마 음악을 극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매번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라는 부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분명 다음 세대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시대다.




음악은 또 어떤가. 개인적으로 존 레논과 동시대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우 자주 하곤 하지만, 아마도 이 다음 세대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를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면, 그의 신보를 몇년마다 들어볼 수 있었다면, 내한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부러움, 아니 마치 꿈과도 같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내겐 그리고 우리에겐 마이클 잭슨이라는 세기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아마도 이건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축복일런지 모른다. 또한 U2, 라디오헤드, 뮤즈,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A.T.M 등 수 많은 밴드들은 물론 bjork, beck, sigur ros, 프린스 등 개성있고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뮤지션들의 신보를 흔치 않게 음반샾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부러워할 만한 자산들이 많은 세대였다. 한 앨범이 100만장 넘게 팔리던 상황을 목격한 마지막 세대였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기 위해 동네 음반샾에 미리 가서 예약표를 발권받거나 발매일 음반샾 앞에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본 마지막 세대였다. 또한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레전드 아티스트의 결성부터 해체까지를 모두 확인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발하지 않는 댄스 음악을 만들었던 듀스를 TV음악 프로에서 만나볼 수 있었음은 물론, 윤종신이라는 사람을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던 '가수'로서 갖을 수 있었다.  




그냥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누린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시대와 현재 누리고 있는 시대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라는 것. 내가 과거의 시간들을 부러워 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시절을 더 치열하게 즐겨야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이바라드 시간 - 이노우에 나오히사
마음을 정화하는 세계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그림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사실 첫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에 작품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노우에의 작품을 언젠가는 만났을 터. 그 우연한 기회란, 지브리 관련 이야기를 듣던 중 누군가가 많은 영향을 준 그림 작품이 있다는 얘기를 했고, 바로 찾아서 이노우에의 그림을 보게 된 나는 그의 환상적이고도 고요한 세계관에 단숨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바라드'란 현실과는 원근이 표현이 반대로 된 세계를 이야기하는데(고대 히랍의 공중도시 '라퓨타'로 연결되는 거리를 일컫기도 한다), 사실 이것만으로 '이바라드'의 세계를 설명하기는 매우 부족할 뿐더러, '이바라드 시간'은 이것과는 또 다른 확장된 세계라 볼 수 있겠다.



2007 INOUE Naohisa.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그의 작품에 대한 갈증으로 애가 탈 때쯤 그의 그림과 지브리 스튜디오가 함께한 특별한 영상인 '이바라드 시간'이란 작품을 알게 되었고, 곧 이 작품이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참고로 이 타이틀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가운데 블루레이로 출시된 최초의 작품이다). 국내 출시야 어차피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타이틀이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가격 탓에 쉽게 구매를 생각지 못하다가 지난 10월 도쿄 여행길에 아키하바라의 어느 가게에서 덥썩 집어들고야 말았다.

처음엔 이 작품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영상인지, 그러니까 예전 출시되었던 <이노센스의 정경>처럼 영상이 가미된 사운드트랙에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지브리에서 이노우에의 그림들을 배경으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인지, 이렇다할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바라드 시간'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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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이바라드 시간'을 설명해보자면 기존 화가인 이노우에 나오히사가 그린 작품들에 지브리의 기술과 상상력이 더해져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볼 정도로 움직임이 많은 것은 아니다. 화면 상에 줌인과 아웃, 그리고 포커스의 이동이 주가 되고, 새롭게 추가된 캐릭터들이 움직임을 맡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애니메이션 적인 성격보다는 여전히 회화적인 느낌이 더욱 강한 작품이다.


스크린 샷 들을 통해 엿볼 수 있지만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들은 상당히 화려한 파스텔 색감으로 이뤄진 상상력의 세계다. 하지만 이 판타지에 가까운 세계 속에는 '따듯함'을 베이스로 깔고 있는 것이 이노우에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파스텔 색감이 따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가 창조해낸 세계는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것들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아련함과 추억을 연상시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뭐랄까, 분명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인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거닐었던 추억이 연상될 듯한 느낌이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에는 분명 이런 독특한 감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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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스크린 샷을 보면 배경이 되는 그림과 움직이는 캐릭터 간의 작화 차이(혹은 뚜렷한 경계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보면 이 차이가 이질감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불편한 부분은 아니다. 기존 작화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발생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이라 여겨지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약간의 이질감은 이노우에의 작품과 이 타이틀 '이바라드 시간'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브리의 생각은 아마도 이랬던 것 같다. 보기만 해도 황홀한 이노우에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뛰어놀면 어떨까. 저 신비스러워 보이는 집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오면 어떨까. 저 아름다운 길을 전차가 지나가면 어떨까 식의 생각. '이바라드 시간'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멈춰 있던 풍경은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새로운 영상(혹은 정경)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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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온천장 아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히 열차가 터널 형식을 지나는 구조는 매우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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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 C&A 홀딩스.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 역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센이 가오나시와 함께 제니바를 찾아 떠나는 장면은 '센과 치히로'의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는데, '이바라드 시간'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정류장도, 전차도 이를 떠올리게 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전차씬 역시 연상된다).

사실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 '이바라드'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저를 포함한) 알려지게 된 가장 큰 이슈는,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귀를 기울이면'의 후반부를 보면 극중 시즈쿠가 쓴 소설 속의 세계가 표현되는데, 이 부분을 이노우에 나오히사가 직접 맡아 기존 지브리 작품과는 다른 영상을 보여주면서 많은 팬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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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나오히사가 맡은 '귀를 기울이면' 속 장면들)

 '귀를 기울이면' 속 이바라드의 세계는 소설 속 이야기라는 구조를 빌려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고 있는데, 확실히 '귀를 기울이면'의 전체적인 정서와 동 떨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이 작품을 떠올려 보았을 때 그 정겨운 '컨트리 로드'와 함께 환상적인 이 세계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바라드 시간'을 보고 나서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면'을 보게 된다면 아마 더 색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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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장면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처음 켈시퍼를 만나던 그 시퀀스(이건 하울을 통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퀀스죠 ㅠ)에 등장하는 하울의 집과 매우 닮아있다. 특히 넓은 들판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더욱).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노우에의 일러스트를 처음 보고 매우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아예 본격적으로 그에게 맡겨버린 '귀를 기울이면'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작품에서는 이노우에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장면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이노우에의 작품을 보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인데, '이바라드 시간'을 보고 있노라니 많은 장면에서 지브리의 장면들이 겹쳐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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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Me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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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메뉴 디자인은 기존 지브리 DVD 타이틀과 동일한 컨셉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지브리의 이런 구성이 조금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데, 지금까지 계속 고수해온 만큼 통일성은 단번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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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MPEG-2 코덱의 1080p 풀HD 화질의 영상은 2007년 작임을 감안하다면 만족스러운 편이다. 사실 영상 자체가 그리 고화질을 요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화질의 좋고 나쁨을 따져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다. 영상이 주는 회화적인 느낌 때문에 블루레이의 칼 같은 화질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좀 더 이 장점이 도드라지는 편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기회에 한 번 더 이야기해보자면, 아무리 블루레이의 장점을 잘 못살린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더라도 이건 '블루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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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Sound Quality

일본어 LPCM 5.1과 2.0 채널을 지원하고 있는 블루레이의 사운드 역시 퀄리티 자체를 논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다. 하지만 '이노센스의 정경'처럼 이 작품 역시 배경음악이 제법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돌비가 아닌 PCM 사운드로 전달되는 배경음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바라드 시간' 블루레이 타이틀은 본편 외에 한 장의 디스크가 더 들어 있는데, 다름 아닌 사운드트랙 CD다. '이바라드 시간'에 수록된 음악들은 물론 그 자체로도 괜찮은 음악들이지만 '이노센스의 정경'과는 달리 영상과 함께 하지 않았을 때의 매력은 분명히 떨어지는 편이다. 작품 자체가 고요하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판타지'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하고 있는 음악 역시 영상과 함께 감상하는 쪽이 훨씬 더 만족스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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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Special Features

스페셜 피처는 초기 블루레이 타이틀이다보니 대부분 SD소스의 영상이 수록되었다. 그럼에도 반가운 건 음성해설 트랙이 무려 2개나 수록이 되었다는 점인데, 첫 번째는 감독인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단독 코멘터리가 담겨있고 두 번째는 이노우에와 더불어 CG작업을 맡은 지브리의 스텝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우리말 자막은 지원되지 않는다). 주변에 도움을 받아 두 음성해설의 대략적인 내용을 확인한 결과, 이노우에의 단독 코멘터리는 '이바라드'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들부터 시작해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두 번째 트랙에서는 좀 더 지브리와 함께한 '이바라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어가 가능한 이들에게는 두 트랙이 담긴 음성해설이 반갑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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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 영상에서는 이노우에 감독이 지브리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자신의 작품을 애니메이션 '이바라드 시간'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이 담겨있는데, 단순히 원작자로서 혹은 연출자로서 참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간단한 음향효과 작업에까지 직접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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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그의 작품 전시회와 함께 연주회를 함께 연 장면도 엿볼 수 있었는데, 조그마한 전시회에 팬들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자신의 작품과 더불어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에서 (앞서 음향효과를 내는 장면을 더해), 참 재주 많고 의외로 열정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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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바드 시간'은 지브리에서 발매된 타이틀이라는 사실만으로 구매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타이틀일듯 싶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들고 출시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바라드 시간'은 지브리 보다는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평소 그의 작품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멋진 음악과 함께 블루레이로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지브리의 팬들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작품을 슬쩍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30분 분량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은 가끔씩 마음이 복잡할 때, 정화용으로 탁월한 선택이 될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DVD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2007 INOUE Naohisa. Studio Ghibli/대원 C&A 홀딩스에 있습니다.





[추가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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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 -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25년간
블루레이 리뷰

영화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연들이 한 두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라이브로 직접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물론,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애니의 사운드트랙 공연 실황을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만큼이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터라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수록된 곡들을 직접 라이브로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하는 생각을 한 두번 해본 것이 아니었다. 그중 가장 보고 싶은 두 가지 공연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는 <카우보이 비밥> <신세기 에반게리온>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만들었던 칸노 요코의 공연을 들 수 있을텐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몇 해전 국내에서 가졌던 내한 공연에 참석할 수 있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황홀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확실히 그냥 일반 뮤지션의 콘서트와 애니메이션 사운드 트랙 공연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과 애니메이션의 수록곡을 직접 듣는 경험은 같은 종류로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 '다른' 체험이었는데, 뭐랄까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2009 NHK Video. All Rights Reserved


칸노 요코의 공연 보다 조금 더 보고 싶었던 공연이 있었다면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만나볼 수 있었던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의 공연을 꼽을 수 있겠다. 헐리웃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 콤비가 있다면, 일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 콤비를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없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히사이시 조는 지브리의 작품들 외에 여러 극영화들과 개인 음반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지만, 가장 빛을 발하고 가장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던 것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히사이시 조가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한 25년의 세월을 정리하며 기념 공연을 가졌다는 소식은 팬으로서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의 반가운 소식이었으며, 지난해 NHK를 통해 방영했던 공연을 스트리밍 영상으로나마 접한 뒤 하루 빨리 블루레이나 DVD로 출시를 고대했었는데, 드디어 올해 일본 내에서 반갑게도 블루레이 포맷으로 발매가 되어 이 미칠듯한 고환율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타이틀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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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4일과 5일 양일간 무도관에서 열렸던 '히사이시 조 in 무도관 _ 지브리 아니메와 함께 걸어온 25년간' 공연 실황은 지난 해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벼랑위의 포뇨> 개봉에 촛점이 조금 더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함께 걸어온 25년간'이라는 제목처럼 그 간의 작품들 속에 담긴 주옥같은 곡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200인조로 이뤄진 뉴 저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800명에 달하는 합창단으로 이뤄진 이번 공연에서 히사이시 조는 기존 곡들을 조금씩 편곡하여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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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는 미아쟈카 하야오가 감독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모든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서막을 장식하는 것은 1984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 ナウシカ)>이다. 오프닝 테마 속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솔로를 듣는 순간 관객은 순식간에 애니메이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대규모 코러스가 함께하는 레퀴엠이 이어진 뒤 공연장 가운데를 가득 채운 스크린에서 나우시카의 한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The Battle Between Mehve And Corvette'이 이어진다. 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과 더불어 삽입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 특유의 아이들 코러스가 매력적인 레퀴엠이 이어지며, 나우시카의 엔딩곡 'The Bird Man : Ending'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섹션은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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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바로 내가 10년 가까이 쓰고 있는 닉네임인 '아쉬타카'의 어원이 된 '아시타카'가 등장하는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이다. 'The Legend Of Ashitaka'의 웅장한 사운드를 듣는 순간 숨이 멎을 듯 했다. 그 다음은 <모노노케 히메>속 장면들과 함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는 메인 테마곡 '모노노케 히메'가 하야시 마사코에 의해 불려진다. 하야시 마사코는 <벼랑 위의 포뇨>의 주제곡에도 참여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본래 이 곡을 불렀던 요시카즈 메라가 불렀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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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섹션은 1989년작 <마녀 배달부 키키 (
魔女の宅急便)>가 이어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좀 더 애잔하고 감성적인 느낌의 편곡으로 이뤄져있는데, 특히 두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마음 아픈 키키' 같은 곡은 '키키가 이렇게 슬펐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공연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녀 배달부 키키>의 경우 스크린 속 영상과 음악이 더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올린 솔로 역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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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배달부 키키>의 섹션이 끝나면 이 공연의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는 <벼랑 위의 포뇨 (
崖の上のポニョ)> 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때 쯤 되서야 히사이시 조가 처음으로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앞에서서 자신과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벼랑 위의 포뇨>에는 무려 8곡이 포진되어 있는데 중간 중간 보컬 곡이 포함된 관계로 크게 지루하지 않은 편이다. 첫 번째 보컬 곡은 앞서 '모노노케 히메'의 메인테마 곡을 불렀던 하야시 마사코의 '바다의 엄마 / 海のおかあさん'이다.  '파 도 타는 물고기 포뇨 / 波の魚のポニョ'에서는 브라스의 활약이 돋보이며, 두 번째 보컬 곡은 후지오카후지마키가 등장해 '후지모토 / フジモト'의 테마곡을 들려준다. 세 번째 보컬 곡은 '폭풍 속의 해바라기 집 / 嵐のひまわりの家 '인데 이 곡을 부른 '마이'는 다름 아닌 히사이시 조의 친 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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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포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메인테마곡이다. 후지오카후지마키와 어린 소녀 오오하시 오조미가 부르는 이 곡은 한 번 들은 사람들은 입에서 땔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 있는 곡으로 라이브를 많이 본 이들이라면 율동마저 외우게 되는 곡이다(길을 가다 이 곡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율동이 나와 당황스러웠던 적도 -_-;;). 참고로 오오하시 오조미와 함께 이 곡을 부른 후지오카후지마키를 그냥 '아저씨들'로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은 이전 70년대에 방송금지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밴드 '마리챤즈'의 멤버인데, 이들이 이렇게 어린 꼬마와 '포뇨 포뇨~'하는 곡을 부르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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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하나의 대표작인 1986년작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이다. 고적대가 객석 뒤에서부터 등장해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연출이 인상적이며, 라퓨타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合唱 君をのせて (합창, 너를 태우고)'도 인상적이다. 마지막 곡은 오케스트라가 모두 퇴장한 가운데 고적대의 반주로만 이뤄진다. 합창이 이뤄질 때 무도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숨죽이듯 감상하는 자세도 또 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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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야자키 작품들 중 하나인 1992년작 <붉은 돼지 (
紅の 豚)>이다. 특히 여기서 히사이시 조가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는 마르코와 지나의 테마곡은 지브리 사운드트랙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번 공연에서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와 더불어 섹소폰 및 브라스의 연주로 들려주고 있는데, 작품이 그러한 것처럼 성인 취향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편곡이었다. 이번 공연에 <붉은 돼지> 관련 곡은 마지막 앵콜 곡을 포함하여 딱 두 곡 뿐인데, 마지막 엔딩 테마인 '때로는 옛 이야기를'을 들을 수 없어 살짝 아쉽기도 했다. <붉은 돼지> 섹션이 끝나고 나서는 스크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자신과 예전부터 작품을 함께 해온 히사이시 조의 대한 감사와 추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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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작품은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Merry- go-round'는 역시 지브리 사운드 트랙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테마이기도 한데, 오케스트라를 통해 만나니 더욱 웅장하고 후반부에는 박진감마저 느껴진다. 특히 왈츠 리듬의 '따라라라~ 따라라라~따라라라~라 라라라라라~'로 이어지는 후렴구는 언제들어도 행복해진다. 하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는 극 중에서 하울이 처음 켈시퍼를 만나게 되는 그 장면, 소피가 그 광경을 목격하던 순간에 흐르던 곡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바로 그 장면과 함께 만나볼 수가 있었다. 'Merry- go-round'는 피아노 솔로가 메인이 되어 다시 한번 들려주는데, 이 곡의 왈츠 리듬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몸을 가만히 있기 힘들 정도다. 극중 하울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도 절로 떠오르고 그 공중을 걷던 장면도 생생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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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2001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千と千尋の神隱し)>인데, 처음 만나게 되는 곡은 본래는 경음악 곡인 '어 느 여름날(あの夏へ)'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히라하라 아야카의 보컬 곡인 '생명의 이름(いのちの名前)'으로 편곡되어 불려진다. 두 번째 곡 '또 다시 ( ふたたび )' 역시 본래는 경음악이었으나 히라하라 아야카의 보컬 곡으로 편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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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만나볼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인 1988년작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 トトロ)>이다. 하프 연주가 인상적인 '風 のとおり道 (바람이 지나는 길)'이 흐르면 어느 덧 무도관은 일본 시골의 어느 마을로 변해버린다. 다양한 코러스 파트의 합창이 돋보이는 'さんぽ (산책)'의 후렴구에는 지금까지 출연했던 출연진이 모두 무대 위에 등장해 합창으로 마무리한다. 이 곡이 끝나고 나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와 픽사 스튜디오의 존 라세터가 함께 토토로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영상이 잠시 나온 뒤, '토토로! 토토로' 하는 <이웃집 토토로>의 메인 테마곡이 연주된다. 토토로가 끝나고 나면 무대 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꽃을 들고 나타나 히사이시 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데, 이 장면은 정말 뭉클해 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25년간을 함께 해온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팬으로서도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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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앵콜 곡으로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붉은 돼지>의 삽입곡 'Madness'와 <모노노케 히메>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ashitaka and san'이 연주된다. 대단원의 콘서트를 마무리 하는 곡으로는 사실 조금 의외의 선곡이었는데(그래서 더 좋았지만), 차분하게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더 뜻 깊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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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으로는 메이킹 필름이 담겨있는데 2008년 8월 2일과 3일 가졌던 전체 리허설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히사이시 조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으며,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소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공연 당일 이뤄진 출연진들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다. 이 역시 모두 HD영상으로 제공된다. 그 밖에 공연 중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의 영상을 따로 감상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건 이 작품들이 아직 블루레이로 출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HD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거의 최초의 기회라는 점이다.



ⓒ2009 NHK Video. All Rights Reserved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마도 스튜디오 지브리의 팬이라면 이번 히사이시 조의 공연은 그야말로 '꿈'같은 공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함께 해온 지브리 작품들과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들과의 추억들을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 다시금 책장에 꽃혀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DVD들을 꺼내보게 했던 매력적인 타이틀이었다. 아마도 이번 공연 실황 타이틀은 지브리 타이틀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 때나 불쑥 꺼내어 봐도 언제든 행복해질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9 NHK Video.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NHK Video에 있습니다.










지난 해였나, 일본 TV를 통해 방송되었던 히사이시 조와 그가 만든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의 수록곡들로 이뤄진 음악회 실황 클립을 본 적이 있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의 골수팬인 나로서는 이 음악회의 감동은 실로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이후 이 음악회가 일본내에서 블루레이로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미칠듯한 환율에 꾹꾹 참고 있던 중 발매와 동시에 '저도 받았어요~'하는 글들을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차, 친한 형님께서 미개봉 타이틀을 파신다는 글에 재빨리 연락을 취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었다!

나중에 차근차근 리뷰를 해보게 되겠지만, 이 영상물은 일본에서 발매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음악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막 없이도 본 공연을 즐기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으며,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 만한 공연을 들려주는 것이 사실이다.

히사이시 조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작품과 함께 해온 25년을 정리하는 공연으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공연장인 무도관에서 진행이 되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근래 질렀던 블루레이들. 엇그제 밤에 자미로콰이 보다가 졸았음 -_-;;
나머지 작품들도 당췌 만만치 않은 작품들이라 얼른 큰 맘먹고 감상하고 리뷰도 써봐야 할듯.




사진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1. 용산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지난 번에 회사에서 상품으로 받은 문화상품권도 사용할 겸해서 서점에 들렀다.
요즘은 영화만 소화하는 데에도 뇌용량을 초과하여 머리를 쓰고 있는터라, 길고 복잡한 소설이나 책들 보다는
가벼운 책들에 눈이 더 갔는데, 데이빗 린치라는 이름이 확 눈에 들어왔고, 책의 질감과 내용도 살펴보니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빽빽하지 않고 여백이 있는 책을 집어 들었더니 조금 여유가 생긴 듯.




2. 며칠 전 DP DVD게시판에서 '고인돌'님이 타임어택 이벤트를 진행하셨는데, 내가 운좋게도 당첨이 되어
이두용 감독의 친필 싸인이 포함되어 있는 <최후의 증인>DVD를 선물 받게 되었다!
지난번 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상영회에 못가서 아쉽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감독님의 친필 싸인판 DVD까지 얻게 되어
얼마나 경사스러운지 모름!




3. 지난 해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직접 달력을 만들었었는데,
올해도 해볼까 하다가 약간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고해서 지브리 달력을 2년 만에 다시 구매했다.
지브리의 작품들이 한 달에 하나씩 그림으로 제공되는 탁상용 달력인데,
나 같은 지브리 팬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달력인듯.




4. 요며칠 음반을 들은 것이 제법 있는데, 아직까지 리뷰를 못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은 역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라 할 수 있겠다.
자켓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음악들이 요즘 내 귓가를 즐겁게 해준다.


5. 어제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서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상영했었는데,
갈수록 높아지는 씨네토크 수준에 다시 한번 놀랐고, 영화도 좋았다. (요건 리뷰 예정).


6.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을 아이맥스로 관람하였는데,
뭐 하도 기대치를 낮춰서인지 그럭저럭 본듯(이것도 곧 리뷰 예정).


7. 이번 주는 3일말 출근하면 된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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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2008)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함, 그 세계

스튜디오 지브리.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만들어낸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이지요(이 창대한 시작 문구로
알 수 있듯이 저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월드에 흠뻑 빠져있는 팬이며, 객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해
둡니다. 하긴 평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관적이지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다시금 직접 몸소 나서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는 기획 단계서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던 <게드 전기>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제가 쓴 <게드 전기>리뷰를 보면 아실 수 있지만,
엄청난 혹평들에 비해 저는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고 봤었구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의 경우가 그랬듯이, 사실 <벼랑 위의 포뇨>는 포스터만 보고는 별로 끌리지는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얼굴이랄까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같은 경우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질 않았던 것도 갓파쿠의 생김새가 크게 작용했었거든요.
이렇게 엄청난 기대와 조금의 우려도 있었던 <벼랑 위의 포뇨(이하 '포뇨')>는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른으로서 잃어가는 순수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 스틸컷만 보니, 마치 괴수물의 도입부분과 흡사하군요. 어떤 공포스런 미확인 물체가 인간을 덮치기 이전에는
꼭 저런 앵글의 컷이 등장하죠. 멀리서 간을 보는 장면이랄까요. 물론 <포뇨>에서는 전혀 이런 분위기를 찾을 수 없지만요)


고전인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미야자키 하야오 식으로 풀어낸 <포뇨>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어 '브룬히루데'가
인간인 소스케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섯 살 어린이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소스케 등장 이전에
'브룬히루데('포뇨'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본래 이름입니다)'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묘사되는데, 이 세계의 모습은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간이지만 바다의 여신과 결혼하여 바다 속에서 인간들로 인해 오염된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나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후지모토'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조명되는데,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도
같은 포스의 뒷모습을 풍기는 듯 하지만, 이 후지모토 캐릭터의 역할은 '하울'과는 분명 다른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후지모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졌는데, 그에게서는 <렛 미 인>에 등장했던 '이엘리'의
보호자 격 남자의 모습과,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아버지와도 같은 부정이 엿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뇨>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드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들은 '후지모토'가 악당 역할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느낌이(매우 동양적인)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뇨가 인간이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포뇨가 인간에게 선택 받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경우 받을 상처와 일들이 걱정이 되어 미리 예방하려 하는 것이고,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결합이 행복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직접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아마도 그는 바다의 여신을 극진히 사랑해서 인간 세상과 멀어져
바다 속 삶을 택한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외로움도 느꼈을테지요. 자신의 딸인 포뇨가 이런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구요. 잘 생각해보면 '인어공주' 스토리는 포뇨의 아버지인 후지모토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돌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깊었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후지모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포뇨가 인간인 소스케와 더불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애초부터 있었다는 걸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끝끝내 둘의 만남을 막거나 했어야 했는데 결국엔 그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애초부터 '브룬히루데'가 '포뇨'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후로 '포뇨'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불러주었거든요.
<포뇨>에서 후지모토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개그를 치는 조연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초반 바다속 에서 포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잠깐 움찔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포뇨와 닮은 수 많은 '포뇨스럽게' 생긴
이들이 단체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포뇨는 저들의 엄마인가? 하고 생각할 때쯤 '엄마'가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포뇨가 먼저 태어났거나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프로토 타입이라던가 라고만은
생각하게 되지 않더군요. 이후 포뇨가 소스케의 피를 마시고 인간으로 변하기 이전에도 포뇨는 동생들보다 월등히
큰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우친 네오와도 같이, 물 밖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동생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일찌감치 깨우치게 되었고, 이런 깨우침으로 인해 궁금한 점들이나 욕구들이 많아졌으며,
그로 인해 발달하지 않았던 신체가 발달하여 동생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이렇게 보자면 아예 동생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똑같이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존재였지만, 유독 발달하여 '언니'로서의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부터 프로토 타입으로 생겨난 존재일지도 모르겠구요.

아마 이 동생들도 포뇨가 이렇듯 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욕구불만이 없었겠지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생들이 굉장히 포뇨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자신들은 못하지만 포뇨가
꿈을 이루는데에 적극적으로 돕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들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거죠.
포뇨와 동생들의 관계도 흥미로웠던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 가까운 배경음악과 함께 포뇨가 파도위를 춤추듯 달리는 이 장면은, <벼랑 위의 포뇨>의 명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속도감도 좋았고, 묘한 느낌도 좋았죠)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독특한 캐릭터를 꼽자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역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운전 스킬로(폭풍우 치는 좁을 길에서도 드리프트를!!) 보는 이를 움찔하게 했던 리사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주가 되는
<포뇨>에서 '후지모토'와 포뇨의 엄마와 더불어 어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사실 대변한다기 보다는
이런 어른이 되야 한다 라는 쪽이 더 어울리겠네요). <포뇨>에서 리사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화려한 운전 실력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다 못해 영웅적인 면모까지 발휘하는 모습도 아닌, 포뇨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아이가 굴러들어왔을때(포뇨는 굴러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죠 ㅎ), 단 한번의 의심이나
고민도 없이, 아무런 스스럼없이 포뇨를 소스케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월드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일이도 모르겠는데, 마법을 부리고 더군다나 며칠 전에 물고기로서 만났던 이가 갑자기 꼬마 아이로
등장했음에도 이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사의 모습은, '멍청하다' '허술하다'라기 보다는 '깨어있다' '열려있다'로
봐야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결국 말하려는 것은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경이와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순수함을 갖은 아이에게 얼른 어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 순수함을 더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옳은 부모의 자세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부터 언급한 후지모토를 비롯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 그리고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까지...
<포뇨>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가감없이 편견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한 작품인 동시에, 한 편으론 이런 아이들을
보호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영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리사의 옆 모습에선 '하울'이 어렸을 적 '캘시퍼'를 처음 받아들일 때의 옆 모습과, '나우시카'의 옆 모습이 동시에
연상되더군요)

부모에 관한 작품이라는 점은 후반부에 가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포뇨의 앞으로에 대한 일들을 놓고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와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가 마치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듯 '누구 어머니 되세요?'하며
만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현실 세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리사에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리사와 포뇨의 부모들과 함께 노인정에서 피신한
노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리사와 마찬가지로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한 할머니가 계속 되는
의심을 갖고 불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여느 작품 같다면 이 할머니가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으로 등장해서 마수에 걸려있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겠지만, 미야자키 월드에서는 '왜 순수하게 믿지 못하는가?'라는 것을 되묻기 위한 캐릭터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를 보니 '다섯 살 아이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여있다' 라고 했던데 이런 마음에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해 노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들려주고 싶은 '원석'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리사와 그랑망마레의 대화는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라는 식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옳은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멀리서 지켜주자 라는 것이 이 두 부모의
선택이었던 셈이이죠.



(아마도 '포뇨'는 지브리 역사상 가장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책없이 대놓고 귀여우니까요 ^^;)

<벼랑 위의 포뇨>를 일반 영화보는 방식으로 보게 되면 여기저기 모순 점 투성이고 이해안되는 부분도 분명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영화를 볼 때는 의심이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캐릭터의 몸짓, 말짓
하나에도 무언가 암시하는 의도가 있지는 않나 생각하며 보는 스타일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포뇨는!)이런 의심 가득한 시선들 없이 맘 편하게 즐겨라 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는 마냥 즐기는 것보다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필요없는 작품들이었거든요.

다섯 살 아이가 중심이 된 순수한 세상에 어떤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한창 때의 미야자키 하야오
였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져봐도 나름 젊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보면
결국 순수함과 진리로 포용하기는 했지만, 환경파괴와 문명화, 기계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강했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는 점점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입장으로서 비판적인 마인드 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과 보호가 더 앞서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센과 치히로..>를 보면서도 감독이
치히로를 그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포뇨>에서는 이렇듯 아이를 할아버지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것이 일부에서는 일종의 '늙었다'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기본 정서가 동심을 비롯한 순수함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더군요.
장면 장면에서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심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많은 이들이 유치하다라고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섯 살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만든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이니까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임팩트 면에서는 최근작 <센과 치히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비해 조금
약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주제곡만으로도 깊은 각인을 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네요(이 노래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는군요). 물론 앞서 잠시 언급했던 정통 클래식 스타일의 곡들도
좋았구요. 역시나 미야자키 월드를 완성시키는 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팬심없이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근거는
항상 변하지 않는 순수함에 있기 때문인데,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점점 나이를 먹기 때문이죠. 작품은 계속 아이의 순수함으로
머물러 있으나 보는 이들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기 때문에 점차 간극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구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벌어진 이 공간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다시 좁혀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의 '포뇨'모습만 보고 조금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나,
'포뇨'의 주제곡을 미리 듣고는 조금 유치하고 아동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다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환경 파괴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 담고 있지만, <포뇨>는 이를 전작들에 비해 깊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판적 메시지가 깊게 담긴 작품들을 다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듯이, 이런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미야자키 월드이구요.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그 세계에 빠지지 못하면 공감하기 힘든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5세에 맞춰졌기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듯 싶구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와 그 세계에 매료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 며칠 전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를 사려고 들렀던 매장에서 <벼랑 위의 포뇨>OST를 보고는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은 질러야 겠군요!

2.

후지모토는 왠지 살짝 목소리도 그렇고 오다기리 죠가 연상되기도 하더라구요. 문득 문득 멋진 모습도 보여주는데
폐인스러움도 갖췄다고 할까요 ㅋ

3. 크리스마스에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군요.

4. 사실 닭살스러운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포뇨'는 대책없이 귀여운대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5. '소스케! 좋아!' 더 많은 대사는 필요없어요. 사실 여기에 다 담겨있기도 하구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에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耳をすませば, 1995)
리얼리티로 살아나는 아련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전의 대부분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귀를 기울이면>
역시 용산에서 구한 일본에서 넘어온 불법 VCD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전에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이 작품이 지난해였나, 대원에서 <마녀 배달부 키키>와 함께 DVD출시를
하기 위해 메가박스에서만 단독으로 잠깐 개봉을 했었고, 그 당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키키'와 함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죠. 그 이후에 DVD가 결국 출시되긴 했지만, 이번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귀를 기울이면>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요즘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한 때 지브리 하면 만사 재쳐두고 DVD며 피규어며, 디오라마며, OST며,
화보집, 설정집 등 닥치는대로 모으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모았던 각종 아이템들과 선물해주었던 피규어들을
다 모으자면, 조금 오버해서 지브리 스튜디오 서교분점 정도 될지도 모르겠네요.
메가박스에서 개봉했던 당시에는 너무 감상에만 젖어 제대로 된 감상기를 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한 번 써보는데 까지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지브리 DVD타이틀이 출시되면
열심히 줄줄이 리뷰를 썼던 것에 반에 반만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훔베르트 폰 지킹겐 남작과의 첫 만남! 남작은 이후 <고양이의 보은>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일단 이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지브리의 느낌과는 약간 틀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콘도 요시후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부분의
지브리 작품들이 그렇듯 각본이나 기획 작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콘도 요시후미가 연출한 영화의 분위기는
확실히 미야자키의 판타지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장면장면의
디테일은 매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시즈쿠' 캐릭터는 정말 또래의 사춘기를 겪는 소녀의
미묘한 감정과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시즈쿠를 둘러싼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이라던가(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빠, 대학원 논문 준비로 시즈쿠 만큼이나 바쁜 엄마, 그리고 이제 막
사회로의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는 언니까지), 시즈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유코와 스기하라의 알콩달콩
미묘한 사춘기의 감정 묘사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전혀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는 연출력을 선보입니다.

특히 굳이 그런 설정들을 넣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는데,
시즈쿠가 유코의 집에 놀러갔을 때, 유코가 아버지와 다퉈 냉전중이라 이층으로 올라가는 중에도
아버지가 시즈쿠와는 인사를 나누지만 유코와는 냉랭하게 지나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이런 애니메이션에서는 좀 처럼 만나기 힘든 리얼리티라고 아니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굳이 극중 전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설정들을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외에도 부모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자녀가 빨래, 청소, 공과금 납입 등 집안일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나,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방에 모여 선생님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 등,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디테일들을 여럿 배치하면서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좀 더 이야기에 공감하고
몰입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즉 내 얘기, 혹은 우리 딸 아이의 얘기로 여기게끔 돕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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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브리 작품 가운데 명장면 베스트 5에 꼽힐 '컨츄리 로드' 연주와 노래 장면)

지브리의 작품들은 주인공이 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 동네나 거리 모습의 작화에 있어 실제 있을 법한
(물론 이 가운데는 실제 있는 경우를 토대로 애니메이션화 한 경우도 아주 많죠, 이런 방법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 경우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cm>같은 작품을 들 수 있겠네요) 분위기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어스름한 새벽녘의 장면이나 해지는 도시의 장면 연출을 볼 때, 거의 실사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전신주나 일상 풍경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예전에 어느 글에선가 이 작품에 배경이 된 실제 동네가
일본 내에서도 부자 동네에 속하는 동네이고 작품 속 처럼 아래로 훤히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길 본적이 있는데, 작품 속에서는 그리도 소박해보이던(신비스럽긴 했지만, 귀티나진
않았었는데 말이죠) 동네가 실제로는 부촌인 것을 확인한다면 실망하게 될까요? 그래도 언젠가 직접 일본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좀 더 확인해보니 도쿄 교외의 타마시 라는 곳이 배경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 작품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영화에 삽입된 노래 때문입니다. 존 덴버의 곡인
'Take Me Home Contury Road'가 바로 그 곡인데, 이 작품에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버전이 초반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이 원곡의 느낌보다도 시즈쿠가 세이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 수줍지만 열심히 부르는 그 버전이 더욱 깊이 가슴에 남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네요. 거기에다가 이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크리트 로드'를 더하자면, 가끔 이 애니메이션의
영어제목이 'Contury Road'가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로, <귀를 기울이면>에서 이 곡이 주는 인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중 'take me home county road')

<귀를 기울이면>하면 <고양이의 보은>이 절로 따라올 정도로 이 두 작품의 연관성은 이미 많이
언급되었지만, 그래도 나도 한 번 더 언급해본다면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심술쟁이 고양이 '문'과
('문'은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문'외에 여러 이름이 있다며 '무타'라는 이름이 후반부에 잠깐 언급되기도
하는데,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바로 이 이름 '무타'로 등장합니다)
영롱한 눈을 갖고 있던 훔베르트 폰 지킹겐 남작이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좀 더 비중있게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즈쿠가 극중에서 썼던 소설 '귀를 기울이면'의 내용을 보자면 <고양이의 보은>은
시즈쿠가 쓴 소설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현실적인 작품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시즈쿠가 쓴 소설 속의 내용 뿐인데, <고양이의 보은>은
이 판타지스러운 요소를 전면으로 가져와 소녀의 사춘기와 성장기를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겠네요.
물론 두 작품의 원작이 모두 히이라기 아오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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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2002년작 <고양이의 보은>)        

잘 알려졌다시피 <귀를 기울이면>은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기도 합니다.
<빨강머리 앤>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기도 했던 콘도는(그래서인지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시즈쿠의 친구인 유코의 모습에서는 얼핏얼핏 '빨강머리 앤'이 보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에 가장 큰 기대주였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을 시작이자 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 일로(직간접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불가피하게 은퇴를 번복할 수 밖에는 없었고,
지금까지도 지브리 스튜디오 내에서 미야자키를 이을 이렇다할 확실한 후계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이 콘도 요시후미가 살아서 <고양이의 보은>을 연출했으면 어땠을까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고양이의 보은>은 캐릭터만 비슷할 뿐, 소소한 리얼리티보다는 더 지브리적인 판타지적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라 콘도와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인듯 하고, 정작 <귀를 기울이면>의 속편 격 작품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꼭 그 작품이 아니더라도 콘도가 만약 지금까지도 지브리 스튜디오에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남아있었다면,
지브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너무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가 떠난 이후로
지브리에 <귀를 기울이면>같은 색깔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아쉽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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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2년작 <붉은 돼지>.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붉은 돼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양이의 보은>의 경우 <귀를 기울이면>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작품인데 반해,
<붉은 돼지>와의 연관성은 그리 자주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아 짧지만 정리해보자면.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드워프 왕자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오래된 시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시계의 바늘이 자리한 곳을 보면 'Porco Rosso'라는 이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이름만 살짝 끼워 넣은 것이구나 할 수도 있겠는데, 그 다음 할아버지의 대사를 보면,
'이 시계를 만든 사람도 한 때 힘든 사랑을 했었던 것 같아'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붉은 돼지>에서도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포르코'와 '지나'가 한 때 결혼까지 하려고 했던 사이였다고 미뤄봤을 때,
세이지 할아버지의 저 대사와 <붉은 돼지>의 포르코 로소의 이야기는 정확히 매치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세이지는 바이올린의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계획하는데,
<붉은 돼지>하면 '이탈리아'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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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코 로소가 만든 환상적인 대형 시계. 2008년 극장에서도 저 시계가 작동하는 장면에선
 관객들이 모두 탄성을 내지르더군요!)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 외에 <귀를 기울이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른 작품의 흔적으로는 1989년작
<마녀 배달부 키키>를 들 수 있겠는데요, 시즈쿠의 책상에 정확히 키키는 아니지만 빗자루를 탄 검은 복장의
인형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팬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넣은 그림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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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사춘기의 미묘한 사랑에 관한 감정을 그린 것 만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진지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것을 친구들보다 더 좋아하고 글 쓰는 것(정확히 말해 번역일)을 단순히 좋아하던 시즈쿠는,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하나하나 노력하고 준비해 나가고 있는 세이지의 모습을 보고,
단순히 부럽다, 멋지다라고만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과 나태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면서 세이지에게는 좋아하는 감정과 더불어 일종의 질투심 또한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정은
'나랑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뭐하고 있었나'라던지, '세이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서 저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현재 DVD가 없는 관계로
극장에서 본 기억만으로 대사를 쓰려니 정확하지가 못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

이런 설정은 적어도 지브리의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TV 연속극에나
나올 법한 얘기에 가깝기도 하구요. 소녀가 진로를 고민하고, 자신보다 앞서서 한참이나 멀리 나아가고 있는
애정의 대상에게 지지않기 위해, 아니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진로 상담을 하게 되고 여기서 일반적인
진학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무언가 꿈을 위한 도전을 하느냐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과 자기 자신과도
깊은 갈등을 겪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가족이라는 자체가 성장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는 이 이야기는, 앞서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극중 시즈쿠가 겪는 고민들이 내가 겪었던 사춘기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죠. 시즈쿠를 통해 나의 사춘기를 돌아보는 한 편, 나는 왜 시즈쿠 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보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사춘기 때 꿈꿨던 것들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하는 것도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이 그저 소녀의 꿈같이 판타지스런 사춘기를 그린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더더욱 오랫동안 가슴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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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은 1995년 작으로, 만들어진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떠들거나 크게 웃는 것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을 볼 때 이 또래의 자식을 둔 어머니 분들이 장면마다 크게 웃으시는 것은 별로 불편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웃음에는 영화가 웃겨서 웃는다기 보다는 시즈쿠가 자신의 딸처럼 느껴져서,
귀여운 마음에 웃으시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거든요. 저는 아직 시즈쿠에게 감정 몰입을 더 하고
있지만, 한 10년 쯤 지나면 저도 오늘 극장에서 만난 어머니들처럼 시즈쿠를 제 딸 보듯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와 대원 C&A 홀딩스에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이번에 메가박스에서 지브리의 예전 작품 두 작품을 정식개봉한다고해서 바로 달려가 하루에
두 편을 모두 관람해주었다.

2편 모두 이미 예전에 봤던 작품이지만,
역시나 극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귀를 기울이면'은 존 덴버가 부른, 그리고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불렀던 노래가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물론 '콘크리트 로드~'가 먼저 떠오르지만 ^^;

왠지 모를 아련함과 풋풋함이 넘쳐나는 작품.
오랜만에 보아도 그 풋풋함은 여전하였고, 역시나 집에있는 '고양이의 보은' DVD를
보고 싶은 마음이 용솟은 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고양이의 보은과 귀를 기울이면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작품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

키키 역시 이미 예전에 봤었던 작품.
'귀를 기울이면' 보다는 조금 '덜' 재미있게 본 작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창한 주제없이 아주 소소함만을 가지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보는 어린이들도 아주 재미있게 보더라.

여튼 오랜만에 지브리가 전해주는 행복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주말.



4년은 긴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원령공주] 이후로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감독하는 작품이 없을 것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말에(하지만 젊은 스텝들과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아직 만들고 싶은 작품이 한,두 작품 더 있다는 말도 했었다), 이 시간들은 더욱 더 길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2001년 그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하 [센과 치히로])을 발표함으로서, 이 기다림에 시간들은 헛되지 않은 소중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기대들은 흥행성공으로 이어져, 일본에서는 그 자신이 [원령공주]로 가지고 있었던 일본내 최고 흥행기록을 갱신하였고(일본내 2,400만 관람), 국내에서도 [이웃의 토토로]의 흥행부진으로 반신반의했었던 올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면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다(국내 2백만 7천명 관람). 사실 [이웃의 토토로]의 흥행부진 요인은, 하야오의 이전 작품들은 이미 볼 사람은 다 보았다는 핸디캡이 존재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센과 치히로]은 국내 관객들이 컴퓨터가 아닌 극장에서 먼저 접하게되는 최초의 미야자키하야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다.



사실 가족영화라는 사실을 내세우며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지는 작품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가족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영화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가족 영화라는 슬로건을 건 영화들은 아이들은 만족할 만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은 그저 아이의 보호자로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는 달랐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상상력으로, 아이들에게는 놀라운 판타지와 화면들을 제공하면서 볼거리와 교훈 등을 주었고, 어른들에게는 그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넘어서서 영화적 재미와 감동도 전달했다. 또한 [센과 치히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일본적인 작품이라 불러도 좋을 영화였지만 특별히 거부감 같은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 작품들에서 자연과의 공생관계나 기계 문명, 독재 등을 비판하는 메세지를 담아왔던 반면, [센과 치히로]는 기존의 그의 영화들 보다는 메시지나 주제의식 등이 전면에 들어나지 않고, 팬터지적 재미의 요소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었음에도 영화를 가볍지 않게 완성했다는 것은, 이젠 경지에 오른 미야자키 하야오에 영화적 기술에 저절로 박수를 보내게 한다.



[센과 치히로]는 이전 그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는 동시에, 이전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단 [원령공주]의 '산(san)'이라던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의 '나우시카'와는 전혀 비슷한 점을 찾아보기 힘든 주인공 '치히로'의 모습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주인공을 더 선호하는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가진 하야오 답게 [센과 치히로]에서도 10살의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산'과 '나우시카'가 갖고 있던 용맹함이나 강한 의지등은 치히로에게는 없다. 치히로는 그저 평범하고 엄마, 아빠에게 투정도 잘 부리고, 겁많은 그 또래 소녀일 뿐이다. 하지만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구해야하는 '센'의 경우는 달랐다.

[센과 치히로]가 미야자키 판타지의 결정판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개성강한 수많은 캐릭터들 때문이라 해야겠다. 그의 전작 어느 작품들 보다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말그대로 총출동하여 팬터지적 요소와 영화적 재미를 더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미야자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톡톡튀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러한 경우는 상당히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코드 1, 2번의 타이틀이 코드 3번 보다는 더 알차게 실리는 경우가 많다.(물론 전부다 그런것은 아니다) 이미 일본 현지에서 화면에 붉은 색감이 지나치게 강하게 표현된 문제로 말들이 많아 코드 3 발매가 기대가 되었었는데 이 부분은 말끔히 보정이 되어 파래진 하늘색을 접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 문제로 인해 [센과 치히로]DVD가 극장에서 본것 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며 판매원인 디즈니 재팬을 상대로 법적 소송까지 걸리기도 하였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전 DVD타이틀이였던 [원령공주](code2)보다는 화질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고 전체적으로 뿌연 화질을 보인다는 말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화질을 선보인다.



붉은 색감의 보정만큼이나 코드 3 발매의 기대를 모았던 것이 한국어 더빙이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수성과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센과 치히로]라는 작품에 특성상 국내 DVD 사용자들은 한국어 더빙이 옵션이 아닌 꼭 수록되어야할 필수 목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어 더빙이 5.1채널로 수록이 되었고, 일본어 더빙도 DTS-ES 6.1로 실려, 캐릭터들의 특이한 효과음들과 영화의 중간중간 흐르는 히사이시 조의 감동적인 선율을 즐기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아마레이 슈퍼 클리어 더블케이스에 담겨져 있는 타이틀의 2번째 디스크에는 몇가지 서플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레도 코드 2 버전에도 수록되지 않은 다큐멘터리이다. 니혼 TV에서 방영한 개봉직전 스페셜 TV 프로그램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작 다큐멘터리가 약 48분 가량의 분량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전에 우리가 접하기 힘들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젊은 스텝들과 일하는 모습이라던가, 스튜디오 지브리 직원들이 시간내에 작업을 마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장면 등이 담겨있다. 이 외에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는 더빙 작업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데, 기존의 성우들보다는 연기자들이 위주가 된 더빙작업이었음에도 혼신에 힘을 다해 열연을 펼치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부터 쭉 음악 작업을 해왔던 히사이시 조의 작업 장면에서는 그의 꼼꼼한 성격을 옅볼 수 있다.

이외에도 국내 극장 예고편, 케이블 예고편, 일본 극장 예고편 등 여러 예고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완성된 영화가 아닌 그림 콘티만으로 진행되는 [센과 치히로]도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2003년 발매예정인 [원령공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의 토토로]의 예고편도 만나 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는 관객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감독이며, 실망을 주지 않는 감독이었다. 친구의 딸의 모습을 보며 그 아이가 언제까지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그런 어린 시절의 행복함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는 그는, 당시 열 살이었던 그 소녀를 비롯해 한 때 열 살이었던 어른들에게 또한 이제 열 살이 되려는 아이들 모두에게도 행복함을 전달해주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위에서 그의 이전 작품들보다는 주재의식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꺼냈었지만, 사실 그의 영원한 화두인 자연에 대한 사랑과 보존은 이 작품에서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강의 신'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센을 비롯한 모든 온천탕 식구들이 힘쓰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오염된 자연을 복귀시키기란 쉽지 않음을 말하고 있고, 주인도 없는 식당에서 음식을 많이도 먹어치우던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로 변한다든가, 금을 나눠주는 가오나시에게 잘 보이기위해 오로지 여기에만 매달리는 온천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욕심과 과욕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치히로가 센으로 일하면서 행방불명된 자신의 이름을, 하쿠의 도움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서 부모님을 구해 결국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듯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도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도움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마음속에 간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겠다.



2002.12.07
글 / 아시타카



Carl Orrje Piano Ensemble _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집
 
1. Always with Me『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 If I can be an Ocean『바다가 들린다』 
3. Stroll:The Opening Song『이웃집 토토로』 
4. My Neighbor Totoro『이웃집 토토로』 
5. Carrying You『천공의 성 라퓨타』 
6. Princess Mononoke『원령공주 (모노노케 히메)』 
7. Been Enveloped by Tenderness『마녀 배달부 키키』 
8. Symbol Theme Song『바람계곡의 나우시카』 
9. Become The Wind『고양이의 보은』 
10. Le Temps des Cerises『붉은 돼지』 
11. Once in a While, Talk of the Old Days『붉은 돼지』 
12. Take Me Home, Country Road『귀를 기울이면』 
13. Home Sweet Home『반딧불의 묘』 
14. The Promise of the World『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실 이런 컬렉션스런 음반은 거의 사지 않는 편인데,
카를 오르제 피아노 앙상블의 음악은,
히사이시 조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들이 만든 곡들의 본래 장점들을 거의 해치지 않으면서도
피아노 연주만의 리듬감과 건반의 느낌을 살려서
또 하나의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 음반의 가장 큰 포인트는 역시 '리듬감'!
 
지브리의 왕팬인 나로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었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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